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동아시아, 세계의 화약고가 될 것인가

2020년 동아시아 군사·외교 전망

김성균 | 사회진보연대 회원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에서 일차적 대립축은 ‘한미일 대 북중러’다. 양측의 핵심행위자는 미국과 중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국가의 핵심 전략으로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전략’(이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미일 동맹의 견고함에 비교하면 북중러 관계는 상당히 느슨했다. 그러나 2018년을 기점으로 해서 북중러 삼국은 동맹을 바라볼 정도로 접근하고 있다. 이와는 대칭적으로 한미일 관계는 마찰음이 들리고 있다. 징용 대법원판결로 촉발된 한일갈등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지소미아) 종료선언까지 나아가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으나 조건부 협정종료 연기로 얼마간 진정된 상황이다. 미일동맹은 여전히 굳건한 편이지만 여러 교란 요인이 존재한다.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 협상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대체로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정책과 다른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이 한미일 동맹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1. 국방비 천조국을 향하여: 미국의 군사력 강화

 

1)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인도태평양 전략은 2012년 아베 총리의 제안과 2011년 힐러리 국무장관의 ‘아시아로의 회귀’가 함께하며 추진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기본적인 기조로 가져가고 있는데, 인도태평양 전략 역시 이런 기조 아래서 구체화된다. 올해 6월에 발표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에서는 중국을 현상을 깨는 수정세력(revisionist power)으로, 러시아를 다시 소생한 악의 주인공으로,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명기하며 미국과 경쟁적인 국가를 노골적인 표현으로 규정한다. 또한 민감할 수도 있는 대만문제도 건드리는데, 대만을 국가(country)로 서술하여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건드리고 있다.

 

한편 보고서는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을 차지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세력균형을 이뤄 ‘자유와 개방’의 국제질서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사력 운용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훈련과 첨단화된 장비를 유지하고 군수 및 조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지역적 차원에서 이러한 목표를 미국 혼자 달성하기 버거우므로 군사동맹에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동맹에 기대하는 부분은 ‘상호운용성의 확대’와 ‘안보부담의 공유’이다. 안보부담 공유는 안보비용의 분담을 의미한다. 상호운용성 확대는 삼각동맹(한국-미국-일본, 미국-일본-호주, 미국-일본-인도) 내부가 아닌 동맹 간의 교류에 있어서 (예를 들어 한국-일본 간, 한국-호주 간, 한국-인도 간)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훈련을 실시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의 군사능력을 배양하는 계획으로 현실화된다.

 

정리하면 중국 등 도전세력의 팽창을 견제해야 하는데, 여기서 동맹의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역할은 비용부담 늘리기와 각 동맹국이 제공하는 유무형의 군사력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다.

 

2) 2020년 미국의 대외기조 전망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예산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 6060억 달러, 2018년 6706억 달러, 2019년 6850억 달러에 이어 2020년에는 7138억 달러의 국방예산이 편성되었다. (결과적으로 2020년 국방예산은 직접적인 국방예산 7183억 달러에 더해 에너지부에 배정된 핵에너지 개발비 317억 달러를 포함한 7500억 달러 규모이다.) 아직 2020년도 예산안이 확정되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예산안이 편성되었던 역사를 봤을 때, 민주당이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예산안이 급격하게 변동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예산의 확장은 2017년 제출된 백악관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과 2018년 발표된 미 국방부 「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위 문서들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을 위하여 투자를 지속해서 늘려갈 것을 촉구한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세계적인 테러리즘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중국을 제1의 위협으로 꼽았으며 다른 세 가지 위협보다도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한다.

 

러시아는 극초음속비행체(HGV) 등 현대화된 무기를 갖추고 있으면서, 동유럽과 발트 지역 나토 동맹국에 가까운 ‘회색지대’에서 미국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러시아의 능력은 경제적으로 취약하므로 제한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국가안보에 있어서는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현대화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데, 올해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은 이전과는 다르게 현대화된 무기를 실제로 선보였다. 미 국방예산은 70주년 행사 이전에 편성되었으니 열병식이 2020년 미국 국방예산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나, 미국에 확실한 물증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위해서 국방예산을 확장하면서 미 국방부는 “① 우주 및 사이버 영역 장악, ② 지상·해상·공중 영역 지배 강화, ③ 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 ④ 전투력 강화에 중점을 두어 향후 미국에 도전하는 경쟁에 대비하였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부분은 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인데, 약 1040억 달러를 편성하여 70년 만에 가장 많은 비용이 편성되었다. 과학기술 부문에서 투자가 늘어난 것은 미국이 도전세력에 비해서 자국의 군사적 준비태세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예산편성을 보충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또 다르게 주목할 만한 부문은 미사일방어체계(MD)와 전략핵 부문이다. 미국의 일부 군사전문가는 수십 년 전 배치된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으로는 러시아의 신형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 부분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지적이 어느 정도 반영된 듯, 이 부문에도 눈에 띄는 예산이 편성되었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이후에 위협적이라 판단하는 중국의 대규모 미사일 전력, 그리고 러시아의 극초음속비행체(HGV)에 대한 대응책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1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우주정책명령4’에 서명한 뒤, 서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우주군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감시, 정찰, 탄도미사일 탐지 및 요격 작전, 적국 위성파괴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를 통해 미국 ‘킬-체인’의 핵심인 정찰 및 탐지능력을 방어하는 한편 적국의 탐지능력을 파괴하여 군사작전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 [사진출처: VOA 2019.02.21.]

 

정리하면 미국은 2019년에 들어오면서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중국에 대한 경쟁을 노골화하면서,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충돌에서는 이길 수 있도록 한다는 기조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은 과거 1990년대 대만 해협 위기에서 미국이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방어해주겠다고 공언하면서 중국의 군비확장 1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최근 대만을 ‘국가’로 지칭하며 중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는 2020년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특히 2020년 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라는 큰 이벤트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재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미중 갈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미국의 국방예산 규모는 익히 알려진 대로 타국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다. 그런 미국이 최우선적인 목표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며 국방예산을 확대 편성한다면,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고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다.

 

2. 점증하는 절멸의 위기: 한미일 동맹과 아시아 미사일 배치 논의

 

1) 미일동맹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라 할 수 있다. 2011년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선회에 동반된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서태평양에서 중국과의 전투 발발을 상정함으로써 공군과 해군의 합동 군사작전 즉, 공해전(Air-sea battle)을 핵심구상으로 한다. 공해전이란 1980년대 동아시아 경제의 부상을 계기로 2011년 클린턴 국무장관의 선언 이후 본격화되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균형점을 이동한다는 의미와 중국의 군사력 부상에 대항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대만에 비해 중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 기지가 중요해진다. 특히 오키나와는 대잠수함 전투(ASW) 작전에 유리하다. 따라서 일본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확실한 전제가 있어야만 중국을 봉쇄한다는 공해전 개념도 성립 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이런 흐름에 협력하며 2014년 집단자위권 행사 방침을 선포하고, 2015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게 된다.

 

이렇듯 미일동맹은 견고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조금씩 변수가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기본적으로 일본은 현재 미국의 대외기조가 미국의 전통적인 기조와 상당히 다르고 예측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고 여기고 있다. 먼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대외기조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이른바 ‘미니 무역협정’을 사례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자동차, 철강에 대한 관세부과 압박을 가하자 일본은 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으로 무마했다. 이 사안은 일단 원만히 해결되었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계속된다면 일본의 피로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일본 양자 사이에서 해결할 사안뿐만 아니라 역내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내국과의 관계에서 북한의 핵 문제, 역사에 관한 남한과의 갈등, 미중 갈등 등은 일본 국익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인데, 이런 문제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같은 입장에 서서 사안을 논의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의 경우 북한이 핵을 이미 보유한 상황에서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것으로 만족하기 어렵다. ICBM이 아니더라도 북한 핵무기의 직접적 타격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 내 재무장 지지 세력을 키우는 효과도 낳고 있다. 또 남한과의 갈등에서도 트럼프는 이전의 미국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사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고, 미국의 이해에도 관련이 되는 지소미아 문제가 개입되자 행동에 나섰다.

 

한편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서도 양국은 잠재적이기는 하지만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서의 자유무역을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에 초점을 맞추도록 수식을 약간 비틀었다. 그리고는 ‘공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위하여 중국과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는 근거가 여기서 도출되는데, 이들이 공정한 룰을 침해하는 수정세력(revisionist power)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국제질서의 수호자로서 미국이 이들에게 우위에 서야 하며 이것이 다른 나라에도 좋다는 논리구조이다. 수정세력에 대해서는 ‘힘을 통한 평화’, 일종의 제로섬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자세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라본다.

 

반면 일본은 이와는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에 중요한 것은 자유무역이다. 일본은 자원이 제한적인 섬나라로서 자유무역이 실제로 국익에 중요하고 따라서 안정적인 해양물류가 중요하다. 역내 국가에 압박을 가해 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국익에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제안자라고 할 수도 있음에도 현재는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부터 영토분쟁 문제로 악화되었던 관계가 지난 6월 G20 정상회의에서의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복원되었다. 이후에도 수차례의 교류 속에서 영원한 우방임을 확인한다는 발언까지 보도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중국에 해양 통로를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면 이에 대응하는 것에는 동의하겠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선제적 압박과 같은 적극적인 수단보다는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미일동맹은 미국의 태평양 장악에 있어서 핵심적인 지지대이다. 미국이 동맹을 사고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일본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입장에서도 국내 우익 세력은 보통국가를 외치며 자주국방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일본이 당장 헌법을 개정하고 나아가 군국주의로 간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본 국내적인 여론을 극복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자국의 예산을 국방력에 대폭 편성하는 것이 반드시 이익인가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국내적인 움직임보다는 오히려 북핵 문제와 같은 일본 외부에서 동아시아 군사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이 일본 재무장화를 부채질할 개연성이 크다.

 

2019년 8월 25일, 프랑스 G7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두 정상은 양자회담 직전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UN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아베 총리에게 동의를 구했으나 아베 총리는 “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위반이라는 입장은 분명하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답했다. [사진출처: Nicholas Kamm/GETTY]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일동맹에 이상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는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려할 만한 사안이다. 일본도 당장은 미국의 불안정성에 맞춰가고 있지만 이를 무한정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끌며 내년 미국 대선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미일 간에 2020년 쟁점이 될 만한 큰 사안은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아시아 미사일 배치논의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런 큰 쟁점에 대해서는 일단 시간을 끌면서 대선 판세를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2) 한미일 동맹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남북회담, 북미회담 등 평화 이벤트와 더불어 형성되었던 2018년의 화해무드와 다르게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2월 말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지난 7월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판결을 계기로 수출국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한국 정부와 진보단체들은 모두 반일 여론을 조성하였고 지소미아 연장종료 선언에 이른다. 이후 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해 한일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이 쟁점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쟁점이었고, 지소미아 종료시점인 11월 23일이 다가오는 11월, 다시금 쟁점이 불거졌다. 일단 지소미아는 연장종료 연기로 얼마간 양국 갈등이 진정되었다. 한일 간의 큰 고비는 넘겼으나 끝났다고 하기에는 거대한 미해결의 쟁점이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관련해서는 계간사회진보연대 2019년 겨울호, ‘2020년 한국정치 정세전망’을 참고할 수 있다.)

 

한일 갈등에서 시작한 지소미아 갈등은 한미 간의 관계까지 확장되었다.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과 일본은 직접적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미국을 매개로 느슨한 삼각 군사관계를 맺고 있다. 삼국이 군사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지소미아는 미국의 안보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지소미아는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추진되었던 협정이다. 따라서 지소미아 갈등은 근본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로 번져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소미아 갈등에 대해 한일 간의 문제일 뿐 한미관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지소미아에 더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의 진통 역시 관계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이전과는 다르게 동맹국을 철저하게 금전적 이해득실에 따라서 평가하는 태도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곤란 및 국민의 불만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경우 일본에도 4배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나토(NATO)에도 그에 준하는 비용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만 과하게 취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이 사안과 관련하여 조선일보는 11월 19일부터 ‘방위비 역청구서 내자’린 제목으로 주목할 만한 연재기사를 보도했다. 연재기사의 핵심 주장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 오히려 발상을 전환해 남한에 걸려있는 ‘안보족쇄’를 풀 수 있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걸려있는 ‘안보족쇄’를 푼다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고,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 플루토늄 재처리를 허가받고, 핵무기 공유협정을 요구하고,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 로켓 개발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위비 분담금협상이 어떻게 지렛대가 될 수 있을까?

 

우선 미국은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의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현재 표면으로 드러나듯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주둔군을 축소하고 예를 들어, 최근 논의되는 핵 공유와 같은 방식으로 핵무기를 배치하는 이른바 ‘나토식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나토의 사례처럼 동아시아 주둔국 본토는 주둔국의 육군이 방어하고 미국은 해군과 공군 그리고 첨단무기를 배치하여 안보부담을 분담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조선일보의 기사는 한국의 선택지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일단 주한미군 축소에 반대해야 하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그 대신에 한국이 미국의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안보에 한국이 충분히 기여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셋째, 방위비 인상의 반대급부를 반드시 얻어낸다. 여기서 반대급부는 기존에 미국이 수출을 금지했던 첨단 무기를 수입할 수 있게 하거나, 한국이 첨단 무기를 직접 개발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한미 양자 간에 맺고 있는 각종 협정( 예를 들어 원자력협정, 미사일지침)을 개정하여 제약조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언급하는 ‘안보족쇄’의 해제는 이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이 보수세력만의 구상은 아니다. 지난 10월 국방부는 해군이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라고 공식화했다. 물론 실제로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가능성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를 선전하고 있음에도 이면에서 군비증강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움직임과 조선일보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남한의 핵 보유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3) 아시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논의

 

미국은 2020년 국방예산을 확장 편성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극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대결할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므로 현재와 같은 유예 상황은 한시적일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중국, 러시아와 더 적극적인 대결을 벌일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과 별개로 중국, 러시아와 대결을 벌인다면 그 최대 쟁점은 아시아 미사일 배치가 될 전망이다.

 

2019년 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간에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한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그리고 6개월 뒤인 지난 8월 2일, 미국은 조약 탈퇴를 공식 선언하였다.

 

INF 조약은 1987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한 것으로 핵탄두를 장착하는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폐기한다는 조약이다. 조약은 사거리 500~5500km인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그에 따라 양국은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692기를 폐기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퇴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 미사일 시리즈를 개발했기 때문에 위반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똑같이 미국이 미사일방어체계(MD)를 개발했기 때문에 조약을 위반했다고 맞섰다.

 

미국이 조약에서 탈퇴한 이유 중에 러시아의 조약 미준수도 있었겠지만, 더 큰 목적은 INF 조약으로 인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되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것이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청문회에서 “러시아뿐 아니라 향후 중국과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해 INF 사거리(500-5500km)의 미사일을 자체 개발해야 하며, 중거리 미사일 요격에 실수가 없도록 미사일 방어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미국은 INF에 중국을 포함하여 조약을 넓힐 것을 먼저 타진했었지만 중국 측에 거절당했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중국은 해군력에서 뒤처지는 상황이라서 태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7함대를 상대하려면 중·단거리 미사일이 필수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조약의 확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약은 파기되었다.

 

미국은 조약 탈퇴 후 보름 만에 미사일 실험을 진행하였다. 중국 역시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부터 미국의 작전능력을 저하하기 위한 전자전(電子戰) 전용 첨단 무기, 개량된 미사일 등을 선보였다. 중국이 첨단 무기와 미사일에 있어서 실질적인 성과물을 보여주자, 미국도 이에 반응하여 일본과 아시아 미사일 배치 논의를 시작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당연히 반발하였다. 그러자 미국과 일본은 아직은 논의된 바가 없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이다.

 

그런데 아시아 미사일 배치논의는 INF가 체결될 당시의 맥락을 고려하면 매우 위험하다. 1970년대 말 소련이 서유럽을 겨냥한 SS-20 미사일을 배치하고, 미국은 이에 대항한다는 준중거리 핵탄도미사일 퍼싱-Ⅱ를 서유럽에 배치하려고 했다. 그러자 소련은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신형 미사일이 자국을 선제 공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소련의 공격 우선순위가 미국 본토가 아니라 유럽에 배치된 미사일이 된다는 의미였다.

 


“나토의 군인들은 크루즈 미사일과 퍼싱-Ⅱ(미사일)에 대해서 NO라고 외친다!!!” 1983년 10월, 독일 본(Bonn)에서 개최된 미사일 배치 반대 시위의 사진이다.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130만 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러한 대규모의 반전운동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미 대통령은 유럽 내 퍼싱-Ⅱ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다. 소련은 미사일 배치가 자국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한다고 인식하였다. 결국 1970년대 데탕트가 종료되고 다시 동서진영의 심각한 안보대립이 시작된다.

 

결과적으로 유럽 미사일 배치는 미국과 소련 간의 전쟁을 유럽과 소련 간의 전쟁으로 전환했다. 아시아 미사일 배치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 아시아 미사일 배치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을 미사일이 배치된 아시아의 국가(일본, 한국 등)와 중국 간의 전쟁으로 전환할 것이다. 아시아 국가가 전장이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아시아국가의 절멸을 의미한다.

 

3. 다시는 패배하지 않겠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

 

1)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의미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에서 중국 서부의 시안(西安)을 기점으로 중앙아시아~유럽까지 철도로 연결하는 ‘내륙 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를 제안하고, 10월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 저장성(浙江省)과 푸젠성(福建省) 등 연해지역을 기점으로 남중국해~인도양~중동~아프리카~유럽까지 연결하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경제벨트’(一路)를 제안하며 일대일로의 서막을 열었다. 올해 18차 샹그릴라 대화에서의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일대일로에는 150개 이상의 국가들과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고, 2차 포럼에는 150개 국가와 92개 국제기구에서 6천 명 이상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가 문명다원주의의 원칙에 따라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평화적 발전을 추구할 것이며, 패권을 추구하거나 영향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사력은 방어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일대일로의 전망을 서양(미국)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중국의 세계화’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이며 신형대국관계(강대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핵심전략이 일대일로이다. 그렇다면 일대일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일대일로는 중국 국내적으로 고속성장기가 끝나고 중속성장기에 들어선 중국사회에 대한 구조개혁 정책이지만, 실제로 일대일로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투자하는 철도와 항만에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도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는 유지가 어려울 정도이며 항만은 물류의 중심지로 활용하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렇듯 핵심사업의 수익성이 크지 않음에도 추진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군사적인 목적이 더 크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이래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성장을 견제하고 압박한다는 의미이다. 일대일로는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계획이다. 항만이 수익성이 거의 없음에도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 바로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리랑카의 콜롬보와 함반토타항,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과 지부티의 도랄레항 등이 그러한데, 특히 과다르항과 도랄레항은 아예 중국의 군사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수익성을 어느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유럽항만의 경우도 군사적 목적이 존재한다. 중국원양해운그룹(COSCO)과 같은 중국의 국영기업에 의한 유럽항만의 인수합병을 통해 유럽항만 물동량의 10%를 점유한다. 즉 유럽에 대한 중국의 국가적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 일대일로에서 주목할 지점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국식 세계화, 즉 중국의 팽창주의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몇 가지 주목할 지점이 존재한다.

 

첫째,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물류네트워크를 새로이 구축하고 지정학적 요충지를 장악함으로써 일본과 미국 중심으로 구축된 아시아-태평양 역내 패권 및 중국 포위망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그들과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가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경쟁은 역내 정치지형을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경제협력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대외기조와 맞물려서 참가국이 미국과 중국 중에 택일하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중국 봉쇄에 맞서 필수적인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통로를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표적인 게 원유수입이다. 기존에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을 거쳐야만 원유를 수입할 수 있었으나, 현재 일대일로의 ‘일로’, 즉 ‘21세기 해양실크로드 건설’을 통해서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관련해서 2019년 7~8월에 발생했던 미국-이란 간의 갈등 속에서도 중국은 이란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았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에너지 확보에 있어서 이란은 중국에 매우 중요한 파트너인데, 이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 이미 존재한다. 이 철도가 건설되면 육로를 통해서도 자유롭게 원유를 수송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봉쇄에 맞설 수 있는 에너지 공급 인프라가 온전히 갖춰지는 것이다.

 

셋째,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해군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중국의 계획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군사력 강화와 더해져 더 큰 의미가 있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 해양강국 성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래로 최근까지 해양강국화에 주력하고 있는데 해양강국화의 핵심은 해군력의 강화이다. 물류와 에너지 확보에 있어서 해군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현재 호르무즈해협과 말라카해협 모두 미국의 제해권 아래 있기 때문에 앞서 살펴봤던 일대일로의 통로다변화와 동시에 직접적으로 미국의 제해권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는 것이다. 지리적 요충지의 항만 확보 역시 이런 맥락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해군력이 강화될수록 역내 다른 국가와의 분쟁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해군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자 남중국해 영토분쟁문제(남사군도 분쟁)나 동중국해 영토분쟁문제(센가쿠 또는 댜오위다오 분쟁) 등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베-시진핑 회담 직전까지 동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은 실제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영토분쟁지역의 갈등은 국지전 가능성을 높인다. 한편 역내 국지전은 언제든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3) 중국의 군사력 강화

 

중국 역시 국방예산을 매년 꾸준히 확대해왔다. 1978년부터 매년 연도별 국방예산 총액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7.5% 증가)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두 자릿수의 국방예산 증가율을 유지해왔다. 2016년부터는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감소했지만 2017년 국방비가 최초로 1조 위안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1조 1898억 위안(약 199조)이 국방예산으로 책정되었다. 미국의 국방예산에 비하면 1/4수준이지만, 상당한 규모의 국방예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2019년 성장률이 6.1%(IMF)로 전망된 데 비해 국방예산의 증가율은 7.5%로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리커창 총리는 예산을 브리핑하면서 개혁과 과학기술로 군대를 강하게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행사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은 리커창 총리의 이런 발언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보여줬다. 과거에도 이런 열병식은 정기적으로 열렸지만 올해의 열병식은 특별했는데, 규모도 크고 새로운 첨단무기가 다양하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방력을 과시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열병식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단연 첨단무기와 발전된 미사일 시스템이었다. 먼저 첨단무기를 보자. 이 무기들의 목표는 미국의 작전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미국의 정보, 감시, 정찰체제(ISR)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이 갖추고 있는 다양한 전자전(電子戰)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이전에는 정찰임무만 수행하던 ASN-207 무인기의 전자전용 변형을 포함한 두 종류의 공중교란 드론을 공개했다. 미국의 무선 전투네트워크는 정보, 명령, 통제데이터를 종합하여 정밀유도무기를 사용하는 과정인 ‘킬-체인’의 완성에 있어서 핵심적인데, 중국의 전자전 무기는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한다. 또한 무인 전투항공기인 글리제11을 공개했는데, 글리제11은 스텔스 기능을 갖춰 중국 미사일부대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이와 함께 초음속 드론인 WZ-8도 공개했다. WZ-8은 적의 지상군을 찾아 표적으로 삼는 데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새로운 무인 수중 차량을 선보였다. 전장을 정찰하고 적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이 무기는 중국의 대잠수함 능력과 수중 정보, 감시, 정찰(ISR) 능력에서의 발전을 보여준다. 기존까지 중국의 제한된 ISR 능력은 약점으로 작용해왔으나 새로운 첨단무기를 도입함으로써 중국식 ‘킬-체인’ 완성을 눈앞에 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로 미사일 시스템의 경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6개의 미사일 및 여러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6개의 미사일은 3개의 신형 크루즈 미사일, 2개의 탄도미사일 그리고 극초음속미사일이다. 몇몇 미사일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선 DF-17은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극초음속미사일이다. 이 극초음속미사일은 러시아와의 군사교류를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군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탄도미사일과는 다르게 이 미사일은 비행 중에 궤도를 바꿀 수 있어서 중간요격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DF-26은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데, 이 미사일은 기본적으로 재래식 미사일이지만 핵탄두도 장착이 가능하다. DF-31AG는 중국이 핵무기 현대화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미사일은 고체연료 ICBM인데, 최대 사거리 1만 1700km에 핵탄두를 장착하고 있다. DF-31AG는 비포장 도로를 통과하기 위한 발사차량을 장착한 최신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더이상 지형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되어 전 국토로 미사일 전력을 분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DF-41은 중국의 전략적 현대화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미사일로서 1만 5000km의 사거리를 가지며 이동가능하다. DF-41은 기존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가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위 그림은 극초음속 미사일의 발사궤적을 설명한 그림이다[사진출처: 세계일보 2019.09.07.]. 위성공격 사거리와 지대공 미사일 사거리의 사각지대인 100km지점에서 분리되어 활공한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탄도미사일과 비교하여 활공 시 비행경로가 불규칙하다. 한편 극초음속 비행체의 속도는 마하 5 이상이다.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은 현재 마하 20의 비행체를 개발 중이다. 종합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은 비행경로가 불규칙하고 속도도 매우 빨라 레이더 탐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설사 탐지되더라도 중간 요격이 어려워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렇게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신형드론, 전자전 능력, 미사일 등 첨단기술과 미국의 IRS를 저하시키기 위한 복잡한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음을 보여줬다. 미국이 중국을 수정세력으로 규정하고 국방예산을 확대하여 견제하듯 중국 역시 미국을 겨냥하여 자신의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이다. 압박에 순순히 굴복할 의사가 없으며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긴다’(能打勝仗)는 의지를 보여준 중국의 이번 열병식은 미국이 군사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근거로 이용될 것이다.

 

4. 북중러의 상호 접근, 자기방어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해서 살펴봤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다. 북중러 삼국은 사회주의 시절 동맹국이었으나 1960년대 중소분쟁과 이에 따른 북한의 자주노선으로 사실상 동맹관계가 해체된 상태였다. 그러던 관계가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 이후 1996년 북러관계 재개, 그리고 기존 북중 간 우호조약으로 삼국 간의 관계복원이 시작되었다.

 

한편 올해 7월, 러시아 전투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무단으로 침범하였다. 7월 이후 총 20차례 침범했다는 합참의장의 보고가 있기도 했다. 침범 당시 러시아군은 중국군과의 합동훈련 중이었으며, 이후에는 중국과의 군사동맹이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이 느닷없는 일은 아니다. 러시아는 2010년대 들어서 동아시아 정세에서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큰 계기마다 중국과 군사동맹 가능성이 대두될 정도로 중국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는 아예 미국의 「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의 도전세력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1)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러시아는 2012년 5월 푸틴의 세 번째 집권기부터 ‘신동방정책’이라 불리는, 아시아-태평양을 주목하는 대외정책을 본격화한다. 신동방정책의 맥락에서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한다. 양국의 관계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정상화되었지만 본격적으로 관계가 강화된 것은 2010년대 들어서이다. 2012년 러시아는 북한이 소련/러시아에 지고 있던 110억 달러의 채무 90%를 탕감하고, 10억 달러는 20년간 무이자로 상환받기로 했다. 산업적 교류도 진행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파베다(승리)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가 북한의 철도 및 광산개발을 진행하면 그 대금을 북한의 천연자원으로 지급받고, 이를 다시 북한에 재투자하여 북한의 산업시설 현대화를 도모한다는 내용이다. 경제협력이 진행되면서 양국의 관계도 조금씩 접근하고 있다.

 

2) 북한과 중국의 관계

 

중국과 북한은 조약상 동맹관계이다. 양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상호 관계를 혈맹이라 칭했고 이의 연장선에서 1961년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다. 조약 2조에서 상대국이 침략을 받을 시에 군사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조약상 상호방위규정이 명시되어있는 동맹국 관계이다. 그런데도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진행된 이후 북한이 실질적인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핵무기와 관련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북중 관계는 긴장상태였다.

 

특히 2017년은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해였다. 중국은 북한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경제제재에 동참하였다. 중국이 이 정도였는데,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전쟁 직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양국의 수뇌는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냈고,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는 2017년 북미관계의 ‘키워드’였다. 미국은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중국도 압박하는데, 중국 역시도 북한 핵무기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북한을 압박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강경발언도 문제이기는 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북한당국의 강경한 발언들을 이 위기를 심화시키는 더 핵심적인 요인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중국은 2017년 한 해,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통상압박을 강화하는 네 개의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물론 중국은 북한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물밑에서 미국과 협상을 지속하고 결의안 위반이지만 대북 석유수출을 묵인하기도 한다.

 

극악으로 치닫던 상황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반전되는데, 2018년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북미 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돌아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이를 환영하지만 한편에서는 우려했는데, 반전된 구도에서 중국의 역할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2018년 3월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으로 북한과의 외교를 재개하기 시작한다. 시기가 3월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한데, 4월에 남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뤄진 북중 간의 회담은 모두 미국, 남한과의 정치이벤트 직전에 성사되는데,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하는 중국의 의지가 반영되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중국은 미국 주도의 북한 비핵화를 지지하면서 북한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비록 하노이 회담은 노딜(No deal)로 끝났지만 중국은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여 수년 안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우호관계를 확인했다. 이 만남에서 중국은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한다. 고위급 관료들이 방북하였고 북한이 일단 일대일로 참여를 중국에게 허가받기도 했다. (당장은 UN제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참여는 어렵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스톡홀름에서의 북미협상이 또 다시 결렬되었음에도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이다. 이렇듯 최근의 분위기는 북한의 핵에 대해서 굉장히 격하게 반응했던 중국의 태도와는 대조된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자체보다는 북한의 안정과 국경의 안정성, 역내 주변국과의 갈등회피를 우위에 뒀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우호적 관계는 중국이 이미 ‘핵무장한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했다고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중국이 이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이전보다 확실히 개선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공조했던 부분이 옅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앞으로 ‘미국 주도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중국은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에도 비협조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미국에게 연내를 시한으로 만족할만한 안을 가져오라고 통보했다. 그런데 핵을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입장을 미국이 쉽게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2020년으로 넘어가면서 북한의 군사적 시위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군사적 시위를 정말 실행한다면, 동아시아는 급속도로 2017년과 같은 전쟁의 위기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3) 중국과 러시아의 상호 접근

 

러시아와 중국은 신동방정책 이전부터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국가 정상이 서로 상대국에 방문하며 성명의 형태로 우호관계를 확인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0년 중러 정상회담과 함께 푸틴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의 ‘북경선언’을 통해 양국이 서로의 영원한 우방임을 확인했고, 2001년에는 중러 간에 ‘친선우호협력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평등과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관계를 정의한다. 이 조약에서는 상대국이 침략 위협에 직면할 경우 즉시 ‘협의’한다고만 규정했을 뿐, 의무적인 군사행동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양국은 이미 1994년 군사합동훈련에 합의했고 2005년부터 실제 훈련이 시행되었다. 그 범위와 규모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또한 무기교류도 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18년 7월, 러시아판 사드(THAAD)로 불리는 S-400의 1차 인도분이 중국 내로 반입되었고, 12월에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조만간 2차 인도분이 중국으로 반입될 예정이다. 극초음속비행체도 교류한 무기 중 하나이다.

 

이렇게 양국의 군사교류가 점차 늘어나자 최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동맹 체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렇지만 군사동맹이 당장 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중국은 지금까지 비동맹 노선을 견지해왔으며, 이에 입각해서 미국의 군사동맹 노선을 비판해왔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을 180도 바꿔야만 하는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체결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체결은 미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므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일단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면서 점진적으로 군사적 준비태세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 군사동맹이 체결될 가능성은 작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더 친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병합 이후에 서방과 미국으로부터 받는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2018년 러시아는 19년 만에 국방예산을 감축했다. GDP의 3% 이내로 군비를 줄일 것이며 군비경쟁 역시 없을 것이라는 푸틴의 말이 보도되기도 했다. 즉 객관적 조건상 선제적으로 군비를 확장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적으로 교류를 늘리는 이유는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과 견제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며 2020년 국방예산을 확장했다. 이는 러시아에 굉장한 위협이고 생존을 위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응 과정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중국과 협력을 도모할 것이다.

 

5. 결론: 동아시아가 전쟁으로 파괴되지 않기 위하여

 

지난 8월 한국 국방부는 앞으로 5년간 290조 5000억의 예산을 투입해 안보위협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연 7.1%씩 국방비가 증액되는데, 내년에는 50조 원을, 2023년에는 60조 원을 돌파할 것이다. 일본도 2019년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 편성된 국방비가 5조 2600억 엔(약 53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미국의 중국 압박으로 북한과 중국의 대응이 군비확장이라는 형태로 드러나자 다시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남한과 일본의 국방비가 증액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한편 현재 미국과 일본 사이의 이질적인 지점을 검토했을 때, 동아시아 정세에서 그래도 현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일본인 것처럼 보인다.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방향성도 그렇고, 센가쿠 또는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당시 당장에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극한의 군사적 긴장상황이었음에도 일본은 예상보다 적절한 위기관리로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일본이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기조로 대응했다면, 중일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첨예한 상황에서 일본이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적절히 통제했던 것은 일본 정부의 외교력이나 정치력도 있겠지만, 일본 평화헌법이 큰 축으로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평화헌법은 일본이 무력 충돌 이전에 한 번 더 외교를 사고할 수 있게 하는 안전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일본 국민의 정서 역시 평화헌법의 존재의미 중 하나로 일본 정부의 과격한 행동을 제어하는 데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20년 가장 큰 쟁점일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논의는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다시금 높일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미사일 배치와 관련하여 미국이 중국을 INF 체계에 실질적으로 포섭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력으로’ 견제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중국에 INF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INF 체계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라는 의미이다. 애초에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INF가 서유럽 핵무기 철폐운동이 거둔 성과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이 새롭게 INF를 체결한다면 (북한은 어쨌든 비핵화 프로세스를 논의 중이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면) 얼마간이라도 핵 경쟁에 제약이 가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INF 체계로 중국이 포섭되지 않았을 때는 아시아 미사일 배치 논의는 일본 평화헌법에 또다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거리미사일 배치를 논한다면 (올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왔던 만큼) 미국 입장에서 가장 굳건한 동맹인 일본과의 논의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일본에 배치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검토된다면 북중러의 반발로 인한 군비확장 악순환이 강화되고, 그간 동아시아의 현상질서를 유지하는 안전핀 역할을 했던 평화헌법은 약화될 것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아시아 미사일 배치 논의와 관련하여 일본 평화헌법이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바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평화헌법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군사긴장을 막아줄 수 있는 다른 안전핀 중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다. 지난 7월 미국 국방대학교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핵미사일을 배치함에 있어서 정치적 제약이 존재함을 언급했는데, 그 정치적 제약이 바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원칙’은 2016년의 시점까지도 한국정부에 의해 유효함이 확인되기도 했고, 올해도 북핵협상 당시 미 당국자들에 의해 북한 핵무기 폐기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근거로 북한의 핵무기에 반대하며, 동시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주장에도 반대해야 한다. 핵무기는 그 자체로 민중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무기이다.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또한 북한의 핵 보유가 남한의 핵무장,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각국의 호전적인 우익 세력에 힘을 싣고 있다. 중국, 러시아, 미국 등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전력의 확장은 동아시아의 절멸로 나아갈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이를 막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일본 평화헌법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동아시아의 모든 핵무기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군비증강에 반대해야 한다. ●

주제어
정치 평화 국제
태그
미국 핵무기 동아시아 미사일 군사력 평화헌법 한미일 중국 비핵화 일대일로 러시아 북중러 중거리미사일 인도태평양전략 군비증강 I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