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0 봄.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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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운가

김동근 |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21대 국회의원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번 총선을 개혁에 실패해 지리멸렬해진 보수 세력과 개혁으로 포장한 포퓰리즘 정치집단인 민주당의 대결로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규정은 단순히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양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친문 핵심으로 자리 잡은 386운동권과 시민운동진영, 그리고 이들과 반보수전선을 매개로 결합하며 사회변혁의 지향을 잃어버린 노동자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보수 세력의 무능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은 경제정책, 외교정책, 정치개혁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다. 반보수전선과 하루빨리 결별하지 못한다면 노동자운동은 집권세력과 함께 몰락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2019년 겨울호 “개혁의 몰락: 21대 총선 전후 정치 전망”을 참고하라).
이런 국면에서 진보정당운동의 위치는 어디인가.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10석 이상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를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것을 넘어서는 진보정당운동 최대의 성과로 볼 수 있는가.
크게 두 가지 쟁점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진보정당을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운동의 결과로 볼 때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운동의 관계가 문제다. 정치세력화 운동의 관점에서 민주노총 총선 방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전·현직 민주노총 인사들이 출마하고 시민 선거인단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상당수 참여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를 포함하는 민주노총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평가는 이어지는 글 “민주노총 총선 방침 평가”에서 다룬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 진보정당운동 평가의 단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 스스로 현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운동 방향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본고는 이 같은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행보를 중심으로 정의당을 평가한다.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운가?

 

보수 세력은 정의당을 “민주당 2중대”라고 평가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또한 보수정당의 의석을 빼앗아 정의당에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정의당을 공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자극적인 규정이지만, 이러한 평가에는 정의당 자신의 책임 역시 상당하다.
대선 후보 시절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대선 이후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하며 연립정부의 범위를 민주당, 국민의당, 보수정당까지 열어둘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으며, 내각 구성 과정에서 정의당 의원들은 여당 포지션으로 인사청문회에 임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규제프리존법에 호의적이었던 이낙연 국무총리나 노동 4법에 찬성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인사청문이 대표적이었으며, 이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도 찬성함으로써 정의당은 상당한 비판에 직면했다.
정의당은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주요 사안들에서도 대부분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 했는데, 소득주도성장 전략, 김경수-드루킹 선거 조작 스캔들, 검경수사권조정 및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선거제도 개편, 패스트트랙 상정을 둘러싼 논란, 강제징용 배상과 지소미아 파기 등 반일민족주의 쟁점 등이 그것이다. “민주당 2중대”라는 규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것이 무색하게도 정의당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주요 정세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자유한국당에 맞선다는 노선을 견지해왔다.
원내 정당으로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연합함으로써 얻은 것이 적지 않은데, 2019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여영국 의원을 배출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총선 이후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의 행보가 정의당의 이념·노선을 반영하는 것인지 정당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인지 불확실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정당이 뜻하는 바를 펼치기 위해 국회 내 영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서 정의당의 행보를 이해할 수도 있다. 정의당이 조국 임명 동의와 관련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 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진척을 보이자 찬성으로 돌아선 것 역시 이러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정의당 지지층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층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 또한 현실론을 뒷받침한다. 현실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노선으로 민주당 지지층 중 일부를 흡수하는 한편 선거법 개정이라는 실리를 얻어내면서 당의 영향력을 키우는 전략을 채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이라 하더라도 정의당의 행보는 정당화될 수 없다. 여론 조작을 통해 정치 권력을 획득하려는 시도였던 김경수-드루킹 선거 조작 스캔들은 자유주의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이 결코 자유한국당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히 포털사이트 댓글과 SNS를 통한 여론조작은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을 공격한 핵심 쟁점이었는데, 민주당은 김경수-드루킹 스캔들이 터지자 태세를 바꾸어 보수 세력의 정치공세라고 물타기 했다. 진영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내로남불’ 행태다. 조국 사태 역시 정치적 이중 잣대라는 점에서 김경수-드루킹 스캔들과 판박이였다. 민주당 등 소위 “개혁 세력”은 보수 세력을 비판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엄격한 도덕성 잣대를 도입한 원조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도덕적 타락이 드러나자 검찰개혁의 절박성을 핑계 삼아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중은 광화문-서초동으로 양분되면서 포퓰리즘 정치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이성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더욱이 검찰개혁의 실내용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 검찰개혁보다 집권 세력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강화하는 수단에 더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국 사태는 개혁-반개혁 대결이 아니라 정치 권력을 위한 민주당의 독선에 가까운 것이었다.
김경수-드루킹 스캔들에 대하여 정의당은 시종일관 보수 세력의 정치공세를 비판했고, 조국 임명과 관련해서도 조국 일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개혁-반개혁 대결에서 개혁 전선을 선택했다”는 입장이었다. 정의당이 현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개혁-반개혁 대결이라는 정의당의 정세 인식은 옳은가. 나아가서, 설사 개혁-반개혁 대결이 벌어지는 정세라 하더라도 이를 명분으로 여론조작과 인사 청탁, 고위공직자 일가의 도덕적 타락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민주당에 대한 정의당의 협력이 현실정치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서 진보정치를 펼치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여론조작과 고위공직자 비리를 옹호한 정의당이 확대된 영향력을 토대로 펼쳐나갈 진보정치는 무엇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진보정치”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가.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에 반발하기 전에 정의당 스스로 성찰해야 하는 질문이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 정의당의 처방은 무엇인가

 
작년 7월 당 대표 선거에서 심상정 대표는 양경규 후보가 주장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정의당의 이념을 “개혁적 자유주의부터 민주적 사회주의까지를 포괄하는 다원적 진보주의”로 규정했다. 또한 진성당원제 원칙을 폐기하고 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주의하에서 정당은 이념을 위한 것이 아니며, 정의당에 필요한 것은 선정성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도 했다. 84%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후 대표 수락 연설에서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하고 민주당과 집권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집권 경쟁을 시작하겠다는 포부에 걸맞은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있는가. 심상정 대표는 이번 총선을 맞아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없을 것이라 선언했으며, 청년 기초자산 제도와 최고임금제 등의 공약으로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시적 쟁점에서의 차별성이나 정책의 급진성이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한국이 맞고 있는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 그리고 위태로운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
 

실패한 소득주도성장론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의당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 전략과 그 핵심 정책수단인 최저임금 1만원 및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2018년 5월 1주년 평가에서도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8월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 강화 입장을 내자 “소득주도성장은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 격차를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성장동력의 제고를 도모하는 방안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연기와 혁신성장 등의 부상으로 우왕좌왕하던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이번 발표를 통해 바로 서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더 단호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를 비판하고 자영업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강조한다거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더 원칙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장 등이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사실상 포기한 2019년부터는 민주당을 비판하며 “정의당이 소득주도성장의 정통노선을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불평등을 개선한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이 될 수 없다. 소득(임금)상승이 경제성장을 추동한다는 가정은 경제학적 근거가 없는 낙관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성장은 자본 투자·노동 투입·자본 생산성의 함수로 결정되는데, 노동생산성 상승과 연동되지 않은 소득(임금)상승은 자본 투자와 노동투입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소득(임금)상승이 자본의 기술혁신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자본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자본 생산성을 향상하는 기술혁신은 자본가의 의지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개별자본의 기술혁신은 일반적으로 자본 투입-노동 절약이어서 장기적으로 총자본의 자본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은 이를 “편향적(노동 절약적) 기술진보로 인한 자본 생산성 하락”이라는 자본주의 일반법칙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마르크스경제학뿐 아니라 주류경제학에도 미달하는 경제정책으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돌파하는 대안적 경제정책이 될 수 없다. 좋게 봐주어 단기에서 수요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과 특정한 조건에서 소득재분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도일 뿐이다.
실제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라는 핵심 수단이 효과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실패했다. 성장을 추동하기는커녕 최악의 고용 위기와 경기침체가 현실화함으로써 경기 부양이라는 효과조차 불러오지 못했음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최소한의 도덕적 효과인 소득재분배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득 격차는 2017년 이후 대폭 악화했고, 최근 약간의 개선이 있지만, 이는 소득주도성장 전략 때문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통한 일자리 사업 등의 효과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지지했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 1월 최저임금인상으로 저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증가했으나 총고용 시간이 감소함으로써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파기하고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폐기한 것은 의지 부족이라기보다 정책이 실패함으로써 더 추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정의당은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정통노선을 걸어가겠다고 천명하는 대신, 애초에 소득주도성장 전략 자체를 비판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2019년 10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심상정 대표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시장 구조개혁은 하지 않고 사회정책인 최저임금을 중심에 놓은 것이 실패의 핵심 원인이고, 혁신성장은 재벌·대기업의 투자와 일자리에 매달리면서 낙수 경제로 회귀했다고 평가한다. 대안으로는 불공정거래 청산을 통해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지불여력을 주고, 고도성장기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균형재정론을 버리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충분히 시행하며, 그린뉴딜과 전기차 시장 창출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인데, 평가와 대안 모두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먼저 최저임금을 사회정책에서 경제정책으로 격상시킨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 전략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해 소득(임금)을 증가시키면 수요가 확대되고 자본 생산성이 상승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설을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포기하고 혁신성장으로 선회한 것은 최저임금의 위상을 다시 사회정책으로 환원하고, 자본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복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성장론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사회정책인 최저임금을 중심에 둔 것이 소득주도성장 전략 실패의 원인이라는 평가는 소득주도성장 전략 자체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다.
불공정거래 청산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구조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불공정거래 청산을 통해 중소 자영업자들의 지불여력을 개선함으로써 최저임금인상을 시장에 관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소득주도성장론자들 자신의 반성, 그리고 혁신성장으로 경제정책의 중심을 선회한 민주당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지불여력을 일정하게 개선할 수 있고 분배 개선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불공정거래 청산은 필요하지만, 이를 통해서 경제정책의 핵심으로서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분배개선을 위한 사회정책으로서 최저임금 정책이 필요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성장의 방아쇠가 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학현학파의 평가의 핵심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적절한 자본 투자를 통해 높은 소득을 높은 생산성이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이 체계적으로 제시한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정책은 그린뉴딜이다. 지난해부터 토론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주장했으며, 5호 총선 공약으로도 제시했다. 정의당은 그린뉴딜을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민주당의 혁신성장과 크게 나뉘는 경제발전전략으로 제시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 ② 2030년 전기자동차 1,000만 대 시대 개막, ③ 그린 리모델링으로 공공건물 및 상업건물 탄소배출 순제로 건물로 전환, ④ 지역 재생에너지 산업, 순환 경제산업 확산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⑤ 국가 신규 연구개발 투자의 50%를 녹색 혁신 투자로 배정하는 등 탈 탄소 산업과 농업 육성, ⑥ 매년 GDP의 1~3%의 녹색투자재원을 마련하고 투자전략을 수립(녹색 채권 발행을 통해 재원 조달) 등이다.
기후 위기에는 한국 사회, 나아가서 전 지구적으로 대응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기반 경제에서 친환경 경제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하에 그린뉴딜을 경제정책·산업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의당의 한국형 그린뉴딜 공약은 재정제약에 가로막힐 가능성이 크다. 공약에서 제시한대로 10년간 GDP의 2%의 재원을 녹색 채권으로 조달한다면 소요되는 재정은 380조 원에 이르는데, 이는 현재 국가채무 700조 원의 절반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다른 증가요인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현재 40%에서 60%로 증가하게 되는데, 한국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과 같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가 아니므로 과도한 재정확장과 국가채무 증가는 국채이자율 상승 및 환율 상승으로 이어져 국가 부도-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린뉴딜 재정투입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국가채무 증가를 상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정의당의 그린뉴딜 공약은 확장재정을 통해 대규모 고정자본 투자와 기술혁신을 추동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데, 현재 시점에서 탈(脫)탄소에너지전환은 상당한 비용을 유발해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에너지 비용의 상승은 한국경제의 주력인 수출제조업에서 생산성과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기후 위기 대응은 정의롭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기후 위기 대응이 한국경제에 상당 기간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에너지전환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배신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낙관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경제성장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한 기후 위기 대응 자체가 중도 반단 될 위험이 높다. 소득분배 개선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대중을 현혹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던 소득주도성장 전략처럼 말이다.
 

민주당 포퓰리즘에 종속된 정의당

2017년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이정미 후보는 “(문재인 정부는) 촛불 개혁의 요구를 실현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으므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방해 세력이 있다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방해 세력’은 당시 자유한국당일 것이다. 2019년 선출된 심상정 대표 역시 유사한 인식을 보여준다.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그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야” 하며, “정의당은 범진보 진영 내의 혁신정당, 선거제도와 검찰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공조할 것이며, 자유한국당과 협력할 일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인식처럼 검찰개혁, 선거제도 개편, 자유한국당 척결으로 한국 정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즈음을 돌이켜보면 만성적인 정치 위기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인 합의가 존재했다.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 편성권을 통해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한 우위를 갖고, 대통령이 대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재판관에 대한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마저 통제하는 구조 속에서는 대통령의 개인기에 국정 운영이 종속됨에 따라 정치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취임 초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을 통해 현 정권이 대통령 권력을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음이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 권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4년 중임제 개헌안을 청와대가 제출했으며, 2018년 2월 민주당도 4년 중임제를 당론으로 정했다. 당연히 개헌논의는 파행으로 이어졌고, 이후 민주당은 엉뚱하게도 정치개혁의 핵심 이슈를 검찰개혁으로 몰고 갔다. 정치 위기의 해법이 검찰개혁에 있다는 인식 자체가 과도할뿐더러 그간 검찰이 집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따르면서 정치를 왜곡했던 것이 문제라고 할 때 민주당이 제시하는 검찰개혁의 방향도 문제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 권한을 제한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행정부에 더 종속적인 경찰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도리어 “정치경찰”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또 공수처는 청와대와 여당에 구조적으로 유리한 까닭에 집권 세력의 상설 사정기구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다(자세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 “검찰개혁인가, 수사기관의 과대팽창인가?”를 참고하라).
민주당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고 검찰개혁에 몰두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민주당 세력은 자유주의 정치이념에 맞게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세력을 제거하고 민주당의 정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정치 위기의 해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민주당이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거국중립내각,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집권에 성공한 후 민주당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상대화하고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친박 주요 인사들을 처벌하는 데 검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만 해도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합은 민주당식 검찰개혁을 위한 최상의 조합이라 생각되었는데, 조국 일가의 부패가 드러나고 검찰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주문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검찰총장과 검찰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무리한 검찰 인사를 밀어붙이면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것이다. 친문 세력은 이 국면에서 검찰개혁이라는 제도개혁을 “조국 사수”와 동일시하면서 극단화된 포퓰리즘 정치를 선동했고, 이에 따라 윤석열에 대한 평가도 돌변했다. 박근혜 정권에 독립적인 행보를 했던 것을 근거로 추앙했던 것과 반대로 문재인 정권에 독립적인 행보를 한다는 이유로 정치검찰로 몰아세운 것이다.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라는 애초의 문제의식과 검찰개혁의 효과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는 사라지고 “개혁”으로 부당하게 표상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극한 대결만 남게 되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던바, 실제 민주당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정치개혁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애초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근거로 논의되었던 개헌 논의가 파행으로 이어진 것, 검찰개혁의 내용이 집권당의 정치 권력을 강화하는 형태로 제시된 것, 그리고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지고 검찰총장이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자 “개혁에 저항하는 자유한국당-검찰 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간 것은 모두 필연적 과정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나아가서 만성적인 정치 위기 해결에는 애초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검찰개혁 역시 개혁 그 자체보다 민주당 권력을 유지·강화하는 수단으로 사고했다.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는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스스로 만든 제도에 대한 입장을 당리당략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모습은 민주당이 장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혁신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아니라, 나는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는 이분법에 빠진 포퓰리즘 정치 세력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에서 정의당은 사실상 민주당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물론 조국 스캔들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리한 검찰 인사 등의 국면에서 일부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검찰개혁이 촛불 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정치공세라고 몰아붙이는 등 정치개혁의 방향에 대해서 민주당과 동일한 인식을 보였다. 심상정 대표 자신도 “‘민주당 2중대’ 소리까지 들어가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돕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거니와, 실제 조국 일가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개혁 전선을 택했다는 것이나 자유한국당 퇴출 자체를 정의당의 목표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의 집권 자체가 개혁이라는 민주당과 친문 세력의 인식에서도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개혁 관련한 정의당의 독자적 입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유일한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 비례성을 높인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고 국회 권한을 약화할 수 있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점한 제왕적 대통령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국회는 소수정당이 난립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사회운동포커스 “패트법 통과, 개혁으로 포장된 민주주의 퇴보일 뿐이다”를 참고하라).
결과적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고, 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정의당은 의석 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있어서 정의당과 뜻을 같이했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당에는 선거제도 개편이 검경수사권조정과 공수처 도입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를 둘러싼 정치적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최근 비례·위성정당 설립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 논의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정의당이 민주당과 “촛불 개혁”의 지향을 공유한다는 인식에서 소위 “민주당 2중대” 행보를 한 것이라면 이는 정의당만의 착각이었던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의당이 독자적 노선을 펼치기 위해 국회 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펼쳤던 것이라 하더라도 문제다. 최근 민주당 세력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정의당의 의석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줄어든 것만 보아도 그렇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의당의 국회 내 지분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펼쳐 나갈 대안적 노선·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독자적인 경제정책과 정치적 입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영향력 강화가 어떤 의미인가. 나아가서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정체성이 과연 존재하는가.
 

진보정당의 우경화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정의당 대표에 이정미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정미 후보는 사민주의가 진보정당의 이념적 가치를 다 담아낼 수 없다면서 “녹색 평화 복지국가”를 주장했고, 촛불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민주당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총선을 1년 앞둔 2019년 당 대표 선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심상정 후보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정의당 노선이 될 수 없다면서 정의당의 이념을 “다원적 진보주의”로 규정했으며,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측면에서 민주당과 뜻을 같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정의당의 과감한 대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개방형 경선제와 전략공천 도입을 주장했다. 심상정 후보는 84%에 이르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견지해왔던 진성당원제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고, 정치위원회 논의에서 전략공천은 폐기되었지만 개방형 경선제는 도입되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의당의 행보는 2011년 진보신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 출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2011년 3월 27일 진보신당은 정기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이 이루어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과 연합하자는 ‘야권 단일정당 건설’, ‘연립정부론’ 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이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갈 방향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부터 진보정당 통합 논의가 진행되면서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 의원은 진보신당을 탈당한 후 “새진보통합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민주노동당 및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했고,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 사회를 건설한다”는 내용조차 반영되지 못했으며, △나라의 주권 확립 △복지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지향 △녹색 생태 사회 건설 △한국 정치 개혁 등이 통합진보당 5대 비전으로 제시되었다.
민주통합당과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을 중심에 두고 진보정당운동을 사고하면서 진보정당의 이념·노선이 유명무실해졌던 것인데, 이는 원내 정당으로서의 입지 강화와 새누리당에 맞서는 반보수전선 구축이라는 현실론으로 정당화되었다. 진보신당 지도부였던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은 탈당까지 하면서 당의 공식적인 의사결정에 불복했으며,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 실현과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명분으로 민주통합당과 후보 단일화까지 추진한다. 당의 외형적 성장과 반보수전선이라는 현실론으로 진보정당의 이념·노선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의당의 행보와 동일하기도 하다. 현재 상황과 차이라면 당시에는 진보신당 당원 다수가 지도부의 노선에 반대하면서 원칙을 지키려 했다면 현재는 정의당 당원 다수가 이러한 노선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3명을 배출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이른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를 거치면서 다시금 통합진보당과 (진보) 정의당으로 분리되었고,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으로 진보정당운동이 대중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그 자체로 참담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합진보당 실패 이후 “변혁 운동으로서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의 표면적 원인은 부정 그 자체와 당 운영의 비민주성일 수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사회변혁의 이념과 노선, 그리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폐기하고 선거를 통한 정당의 외연 확대만을 추구한 것에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파산은 비례대표 부정선거로 인한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원칙·노선을 무시한 권력지향적인 정파연합이라는 통합진보당의 본질로부터 초래된 필연적 사건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는 “통진당 사태” 자체를 부정하면서 어떠한 성찰도 없이 민중당으로 변모했고, 구당권파의 패권성과 비민주성을 비난하면서 (진보)정의당을 창당한 신당권파는 진보정당운동을 친노 세력의 근거지인 국민참여당에 종속시켰던 노선에 대한 반성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정의당이다. 목도하다시피 정의당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보수전선에 더 심하게 종속되었다. 이전의 반보수 선거 연합론이 명목상으로나마 독자적 정체성하에서의 활용론이었다면, 지금 정의당이 제시하는 “촛불 개혁 연합론”은 경제정책과 정치개혁이라는 양대 노선에서 대놓고 민주당과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언명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제1야당 교체”, “5비 2락(5번인 정의당 찍으면 2번인 자유한국당 떨어진다)”, “갑질 없는 세상” 등을 주장하면서 정의당의 독자적인 노선을 바탕으로 민주당과 대별되는 대신 자유한국당을 주 공격대상으로 했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이 민주당 내부 개혁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자조적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독자 완주하면서 6.17%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정의당의 독자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대 대선의 경우 문재인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고, 심상정 후보의 완주 여부가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심상정의 완주와 높은 득표율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번 총선에서 후보 단일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정의당의 입장은 현재 시점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 그리고 지역구 의석보다는 비례의석 확보가 관건인 정의당의 상황 등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심상정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정의당의 연대전략은 기본적으로 정책과 비전 중심으로 하는 협력이므로 정책과 비전이 같고 목표가 같다면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면서 여지를 남겨두기도 했다.
정의당의 현재 상황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부터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7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선 출마를 계기로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출범 초기 나름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은 점차 축소되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 이후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과 이를 위해 선거에서의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지원을 획득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당의 인력과 재정은 노동자운동의 역량 강화를 고려하지 않은 의정 지원 활동에 편중되었다. 이에 따라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화되었다. 민주노총 역시 정치 영역을 민주노동당에 맡겨놓고,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7년 분당 이후 진보정당운동은 한없이 추락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 구도 속에서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2012년 총·대선에서 반MB 야권연대의 승리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여 신자유주의 구집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자 했다. 민주노총도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하여 진보 대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는 진보정당 간의 갈등을 더욱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과정은 앞서 서술한 대로 진보신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창당, 그리고 몰락이다.
 

반보수전선의 미망에서 벗어나 이념·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민주당 내부에서 비례·위성정당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봉주 등 친문 세력이 중심이 된 열린 민주당 창당이 공식화되었으며, 주권자전국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에 “정치개혁 연합” 창당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공수처 도입 등 검찰개혁을 강행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실토했으며, “정의당과의 연대는 똥물에서 뒹구는 것”이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창당된 상황에서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 현실화할 경우 정의당의 의석 증가 여부가 불확실하다. 민주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제1야당으로 도약하여 “진보정치”를 펼치겠다는 정의당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 대표는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했지만,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두고 민주당과 갈등하는 상황에서 향후 전개 과정에 따라 지역구 후보 단일화 혹은 출마 포기, 비례·위성정당 합류 등의 방식으로 선거연대가 이루어질 여지도 있다.
총선 이후의 상황도 정의당에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대야소 국면이 될 경우 민주당은 국정운영이나 국회 내 활동에서 정의당을 더욱 상대화할 것이다. 서술했던 것처럼 민주당과 핵심 정책과 노선에서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정의당의 운신 폭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여소야대 국면이 될 경우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다시금 반보수전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의당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총선 결과와 선거 개입 관련 수사·재판 결과에 따라 탄핵 국면이 이어질 수 있고, 반보수전선의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는 선거제도 개편과 이어진 총선을 계기로 당의 질적 변화를 도모했던 계획의 좌절을 의미한다.
사회변혁을 위한 이념·노선의 약화, 원내 진입과 의석수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현실론, 반보수전선을 통한 민주당에의 종속의 과정이 반복된 결과 진보정당운동의 형해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당장 총선에서 얻을 성과도 불확실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대안 사회를 향한 정의당 고유의 이념·정책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정의당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는 정의당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의당을 포함하여 노동자·사회 운동 전반이 지난 역사를 성찰하며 미래지향적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 출발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민주당이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착각과 반보수전선을 통한 개혁-반개혁 전선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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