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3.23호
첨부파일
0203도서박준형.hwp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박준형 | 기자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은 '짤린 손가락'이라는 노래를 많이 알 것 같다. 김호철이 지은 곡이데, 박노해의 '손무덤'처럼 80년대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가슴 아프게 그렸다.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는 제목이 연상하는 것처럼 거창한 노동자 국제주의나 국제연대투쟁을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보는 내내 '짤린 손가락', '손무덤'이 머리에 맴돌도록 이야기를 소근거리는 책이다.

"몽골인 바트센드 씨가 급성맹장염이었는데 진통제 몇 알을 먹고 참고 참다가 결국은 혼절하여 병원 후송되었고, 수술을 했지만 맹정이 파열되고 복막엽이 되어 폐혈증으로 하루만에 사망하였다. 스리랑카인 서짓 쿠마라씨는 작업중 발등에 부상을 당하였는데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결국은 무릎 밑을 절단하였다. 서짓 쿠마라 씨는 절단하여 없어진 부위가 '가렵다'며 호소를 해오는데 의사에게 물었더니 '환각통'이라는 설명이다."(책 84쪽)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장면을 담은 사진집이다. 사진작가 김지연 씨의 사진과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는 김해성 목사의 글을 함께 엮었다. 이주 노동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가득하다.

***

부끄럽게도 나는 이주 노동자와 그들이 처하는 상황을 잘 모른다. 그나마 이 책 덕에 조금 더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란 대단히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 '구체적인' 것이라고는 집회 현장이나 전철에서 보는 검은 피부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정도였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함' 자체다. 손가락 잘리는 것은 예사고, 팔목, 발목, 전신화상에 정신이상이 된 사람도 흔하다. 한국인 사장에게 맞아 죽은 사람, 과로로 죽은 사람, 사고로 죽은 사람, 병으로 죽은 사람.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자들의 시신을 화장한 유골들은 외국인노동자의 집 지하실에 빼곡히 쌓여있다. 많은 경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동포 김길원(36세)씨는 손가락을 모두 잘리고 사장에게 보상을 요구하다가 삽자루로 두들겨 맞아 허리를 다친 채 사장의 신고로 경잘에 불법 체류자로 체포가 되어 방광 파열로 피오줌을 싸며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되어야했다. 중국동포 류정기(65세)씨는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손목을 잘리고도 보상 한푼 받지 못한 채 병원비 1300여 만원을 갚아야한다며 콩팥 밀매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에는 할말을 잊기도 했다.
중국동포 서문봉(45세)씨는 지난 해 5월 31일 한국인의 몽둥이에 맞아 피살당했다. .. 장례라도 치르려고 찾아갔지만 병원 측에서는 치료비 1300여 만원을 내지 않으면 시신을 내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 앞에서 물러 서야했다. 사망한지 5개월이 넘어서자 부인이 찾아와 "고국이라고 찾아와 몽둥이에 맞아 죽은 것도 서러운데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5개월 째 시체를 놓고 어떡하란 말이냐 나도 따라 죽겠다"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책 46쪽)

책에 실린 것만 해도 이런 사례가 하나둘이 아니다.

***

글머리에 이야기한 '짤린 손가락", 80년대 노동자 대중이 처한 상황을 이제는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처지도 참혹하였지만, 이들 이주 노동자에게 이 상황은 너무도 일반적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착취가 가장 가혹하게 일어나는 현장부터 한국인 노동자를 대신하였고, 이제 그 수는 36만에 이른다.(여기에 중국동포 15만을 더해야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노동의 불안정화가 집중되는 계층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이들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직종과, 가정부 같은 하인노동에 종사한다.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이 아직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 문제는 중심부 국가처럼 인종문제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만만치 않다.

국가권력은 여러 가지 매개로 이들을 '관리'한다. 그 매개란 출입국 관리소와 같은 국가 기관일 수도 있고 중소기업중앙회와 같은 자본가 단체일 수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심지어 '불법체류자'라는 형태조차 국가 관리의 일종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법'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배제'란 형식으로 관리한다. 이 때문에 임금체불과 폭력, 산업재해로 피해를 당하고도 이주 노동자들은 "신고"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한다. 법적 보호에서 버려진 이들이 최소의 '보호'라도 호소하면,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어 강제 출국 당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동포의 임금 체불 건을 안양노동사무소에 진정을 하자 업주와 동포가 함께 출석을 하였다. 업주는 이내 근로 감독관과 중국동포의 집 직원 앞에서 휴대전화로 경찰 112에 불법체류자 신고를 하였고, 그 동포는 업주에게 매달려 사과를 하고 월급을 받지 않기로 다짐을 한 뒤에야 눈물을 머금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와야 했다."(분문 45쪽)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은 (명목상으로나마)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조차 적용하지 않는 무법천지다. 단결권 따위의 노동3권이 유명무실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해간 전태일 열사가 땅을 칠 일이다. 이들은 단결할 권리조차 몇 배의 투쟁으로 겨우 쟁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들은 80년대 한국노동자의 상황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착취의 먹이사슬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이 먹이사슬이 어디까지 더 이어질지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금융세계화에서 배제된 자, 그러나 한국사회는 물직적 생산에 이들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착취한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착취에서만 '배제'하지 않는 셈이다. 이들의 처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동반하는 노동자 대중의 성적, 인종적 분할의 가장 가혹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 이주 노동자의 참혹함은 특수하면서 또 한편으로 보편적이다. '어떤 민족'인 자들을 착취하는 특수성일 뿐 아니라 '초민족적' 금융세계화라는 보편성의 또 한 장면이다.

***

권력관계의 피라미드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단계 아래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가 불안정 노동자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그리고 한국인들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그렇다. 그것을 조금씩이라도 이해하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추상적으로 착취의 보편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부족할 때, 이 책은 그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주제어
노동 이론
태그
국민연금 연기금 연금개악 기초노령연금 국민행복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