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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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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구조조정 반대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굽쇼"

진재선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국
철도, 발전노조 등 공공부문 민영화와 구조조정 추진에 맞선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2월 26일, 대법원은 하나의 판결을 선고했다. 99년 검찰의 파업유도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폐공사 파업투쟁에서 노조 간부를 업무방해죄 따위로 고발한 형사사건 판결이었다. '파업유도'는 없었다고 판단해 물의를 빚었던 법원이, 아니나다를까 노조의 업무방해를 모두 유죄로 판결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구조조정은 전적으로 회사의 권한인 만큼 이에 반대하는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고, 설사 단체협약에서 구조조정을 노사합의로 한다고 했더라도 그것 역시 무효여서 노조 파업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노조가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노동부, 검찰 등 관계당국이 총출동하여 무조건 불법으로 매도한 것이 현실이기에, 그렇게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으로라도 파업 이후 법원 재판에서 파업이 정당하다고 인정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 판결만 해도 대전지방법원이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해 업무방해부분을 무죄로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최근 노조 파업이 불법이라는 판결로 내달려온 대법원이 작년 11월 만도기계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더니, 급기야 구조조정 반대 파업조차 불법이라며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소리 없이 강하다고 했던가. 지난 95년 한국통신 파업 때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가전복세력' 운운하며 엄포를 놓은 건 아닐 지라도, 이번 공공 파업에서 역시 결코 이에 뒤진 것이 아니다. . 여전히 정부와 언론은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이라며, 노조파업을 불온시, 범죄시했다. 그리고 한발 나아가 민영화는 절대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고, 그를 제외한 부분만 노사 자율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수법을 썼다. 여기에 대법원은 구조조정 반대 파업이 무조건 불법이라고 선포해서, 구조조정과 민영화의 걸림돌인 노조 투쟁을 어떻게든 무너뜨리려는 전방위적 공세에 가담했다.

구조조정은 신성불가침이다!

더욱이 이번 판결은 구조조정 실시여부가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IMF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심각한 노동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맞선 노조 파업이 합법이냐 불법이냐 논란이 많았다. 노동부, 검찰 등 관련 당국에서 정리해고는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무조건 불법으로 매도했다. 98년 현대자동차노조 파업 때가 대표적인데, 만도기계에서는 아예 경찰병력을 투입하였다. 파업 이후 몇몇 형사재판에서 정리해고도 쟁의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향적인 판결이 나와 기대를 모았으나, 이번 판결로 그 같은 기대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관련하여 판결문의 주옥같은 표현을 보도록 하자.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그 실시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쟁의행위에 나아간다면, 비록 그 실시로 인하여 근로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하더라도 그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 희망퇴직, 비정규직 전환, 사업장 통폐합 내지 이전과 동의어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비록 살아남더라도 비정규직 신세가 되든지 다른 사업장이나 부서로 옮겨야 한다. 즉 노동자 입장에서 구조조정은 노동강도 강화에 임금수준 악화를 의미한단 말이다. 구조조정을 할 때 회사에서 얼마나 고도의 경영상 결단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노동자도 자신과 가족의 생사가 달려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노동조건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노동조건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단체교섭을 하란 말인가.
법원 말대로라면 낮은 경영상 결단으로 충분한 문제, 이를테면 임금인상 등만을 교섭하고 쟁의해야 한다. 그런데 임금협상 중 회사가 갑자기 고도의 경영상 결단을 발휘하여 정리해고,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오면 어떻게 되나. 실례로 조폐공사에서도 처음엔 회사가 임금 삭감을 주장해 이를 협상하던 도중, 갑자기 옥천 조폐창을 문닫고 경산 조폐창으로 통합하겠다고 해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앞서와 같이 간단 명료하게 답했다. "그로 인해 근로자 지위나 근로조건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파업은 불법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간 법원은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답게 사용자의 경영권을 절대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했다. 노동자에게 법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니까.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대중의 조직화와 노동악법 철폐투쟁의 성과에 힘입어, 법원 판결도 반동적 판결 일색에서 다소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IMF가 몰아닥치고서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광풍으로 그간 어렵게 쌓아올렸던 노동자의 투쟁 성과가 일거에 날아갔다. 법원 판결도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영권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정리해고, 구조조정은 신성불가침이라고 선포하고는 노조의 파업권을 원천 봉쇄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자본가는 내키면 고도의 경영상 결단을 해서, 법의 비호 속에서 노조를 묵살하면 그만이다.

검찰의 파업 유도는 무죄, 노조 파업만 유죄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 직후였던 98년 8월, 조폐공사는 갑자기 '조폐창 통폐합 99년 상반기 중 조기 실시' '2000년까지 인건비 50% 절감'이라는 정부 계획을 훨씬 넘는 구조조정 방침을 발표했다. 노조는 당연히 파업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런데 노조가 열흘동안 파업을 하고는 이를 철회했지만, 공사 측은 불법으로 한 달이나 직장을 폐쇄했다. 무슨 작정이라도 한 듯 강경 일변도로 치닫더니 정부 계획대로 하라는 여당 중재안도 거부한 채, 조폐공사는 결국 99년 초 조폐창이전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병력 투입으로 다수가 부상당하고, 노조 간부들을 구속 해고하였다. 한 간부는 분신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폐공사 파업이 끝나갈 즈음, 점심시간 폭탄주에 얼큰하게 취한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이 자기과시로 발언하면서 사태의 진상이 밝혀졌다.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가 만든 거다"로 시작된 이 발언은, "정부 투자기업체에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우리가 지시해서 복안을 만들었다. 공기업체에 파업이 일어나면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랬는데 .. 그쪽(조폐공사 노조)이 너무 일찍 손을 들고 나와 버린 거야." 등의 내용이었다. 그 뒤 입수된 문건에 따르면, 대검공안부는 '직장폐쇄->철회임금삭감안 철회->구조조정안 제시->파업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기조로 한 파업대책을 대전지검 공안부와 공안합수부에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계의 거센 항의와 여론에 밀려 국회 청문회를 거쳐 특별검사제까지 도입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특별검사팀마저 '진형구 1인 자작극'이라며, 검찰의 결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강희복 사장 주연, 진형구 조연'이라는 결론으로, 검찰의 조직적 개입을 은폐하고 말았다. 그나마도 서울지방법원은 그 두 명을 재판 중간에 보석으로 석방하더니, 결국 작년 7월 '파업유도'는 실체가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해 충격을 주었다.
당사자가 취중 무용담으로 파업유도를 털어놓았고, 국회 청문회나 검찰, 특별검사도 명백히 인정한 파업유도 사실을 "강요나 압력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법원이, 파업유도 범행으로 초래한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를 유죄라고 선고했다. 정말 완전히 전말이 전도된 격이다. '파업유도' 재판에서 파업유도사실을 인정한 강희복 전사장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고, 진형구 전공안부장의 진술은 취중이었다는 이유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공안기관이 작성한 동향보고서를 근거로 당시 집회 발언 내용까지 들먹이면서, 노조가 노동조건 개선과 상관없이 오로지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할 목적으로 파업을 했다는 왜곡된 사실마저 인정했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와 근무조건이 걸려있으니까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파업을 벌인 것이지, 아니라면 왜 무조건 구조조정에 반대했겠는가. 아울러 이번 판결 내용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나 합리적인 이유없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 이를 반대하는 쟁의행위는 그 목적이 정당성이 없다"
백번 천번 양보하여 판결 내용을 따르더라도, 당시 조폐공사가 진행한 구조조정은 '파업유도'라는 명백히 불순한 의도로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은 이에 대해 함구했다. 경영상 필요와 하등 상관없이 공안검찰의 '본때 보여주기'식 조직적 개입으로 노조 파업이 유도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가 알고 있는데, 어찌 지엄하신 대법관 나리들만 모른단 말인가.

이 땅에 진정 노동삼권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노동 삼권을 보장한다고 배웠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한 마디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측과 교섭하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권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위치가 아닌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집단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도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파업'이란 말 앞에 항상 '불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심지어 노조 파업은 불법을 넘어 사회불순세력의 혼란 조장 수준으로 매도당했다. '합법파업은 몰라도 불법파업은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럴싸한 말 뒤에서, 노조 파업은 언제나 불법으로 규정당했다. 노동자에게 일자리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그 일자리를 내놓으라는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은 신성불가침이니 이에 반대하는 노조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면, 결국 대한민국 헌법의 '노동삼권 보장'은 공문구에 불과하게 된다.
더구나 이번 판결의 경우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마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부정해버려 노동삼권을 더욱 빈 껍질로 만들어버렸다. 관련한 판결문의 내용을 보자
"경영권의 본질에 속하여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관하여 노조와 '합의'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이 있는 경우, … '협의'의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당시 조폐공사의 단체협약에는 '공사는 정리해고나 사업장조직 통폐합에 따른 직원의 해고시 노조와 사전에 합의한다'고 되어 있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일반 계약 차원이 아니라 노동법상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보다 우선해서 적용한다. 그런 단체협약에 '노조와 사전 합의'라고 명문한 것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을 정한 것이므로 효력이 없다고 간단히 부정해버렸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노사가 단체교섭을 하여 체결한 단체협약을 법원이 부정해버리면,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단체협약을 위반했을 때 벌금 몇 푼만 내면 되고 말아 사용자들이 상습적으로 단체협약을 어기는 판에, 법원이 앞장서서 단협 불이행을 조장하고 있는 꼴이다. IMF 이후 몰아닥친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은 많은 노동조건 개악을 감수하고 고용안정 협약을 따내려고 했다. 그 결과 일부 사업장에서나마 고용안정협약을 쟁취하기도 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완전히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평소 노동 관련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의 문구를 그대로 금과옥조로 받아들였다. 노동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회유, 강요로 작성한 근로계약서의 문구를 그대로 노동자의 의사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예컨대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사측의 강요로 계약직으로 전환한 경우 노동자가 그 계약직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노사가 자유의사로 계약직 전환을 합의한 이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런데 유독 노조와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그것도 노조가 쟁취해낸 조항에는 법의 잣대랍시고 정치적 판단을 들이대, 효력을 부정하느냐 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예 이 땅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삼권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공식 선포를 하라.

글을 마치며 문득 한 개그프로의 유행어가 생각나 패러디 해본다. "대법원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니 대관절, 구조조정 반대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굽쇼. 그렇다면 노동자 보고 나가 죽으라 이말입니까"라고. 그렇다. 법원은, 이 사회의 법 제도는, 이 사회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충실하게 노동자들에게 순종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너무 정해진 정답 같지만,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가.
주제어
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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