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1 겨울.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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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 독자에게

김진현, 허지선 | 사회진보연대
1. 기본대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가계대출을 묶고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고,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예를 들어 집값 상승이나 세금 인상에 따른 전·월세 인상 대응 등 복지 혜택으로 커버하기 어려운 대출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규제만 강화할 경우 오히려 훨씬 더 악질적인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로 흐르는 등 위험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대출에 대한 대안이 ‘마이너스통장 대신 복지 혜택 + 은행 건전성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예대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 은행에 대한 통제도 시급합니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세계 사회운동은 '위험 관리'에 초점을 둔 주요국 정부들의 대응을 비판하며 금융위기에 대한 민주적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여기에는 가계부채 규제도 포함되지만, 은행에 대한 규제 강화, 투기적 금융상품 금지, 공공은행 강화,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통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공적 통제, 헤지펀드나 단기 주식보유에 대한 규제, 공공주택 중심의 주택정책 확대 등 금융체계를 개혁하기 위한 대안들이 논의되었습니다. 이런 대안을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재정 건전성이나 위험 관리를 넘어, '시장의 자기규제'의 한계를 비판하며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금융위기 당시 제시한 대안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한가요? 재정 건전성이나 위험 관리를 넘어서 사회운동이 제시해야 하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제기하신 쟁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답변해 보겠습니다. 첫째, 주택가격 상승이나 전·월세 인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복지 혜택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악질적인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사람들이 증가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예대금리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드러나듯이 은행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세계 사회운동의 대안이 아직 유효한지, 재검토가 필요한지, 사회운동이 제시해야 하는 대안이 무엇인지 질문하셨습니다.

첫째 쟁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책자에서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저리의 정책서민금융을 제공해야 하고, 빚을 갚을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는 복지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여기서 복지혜택이라고 하는 것 안에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나 전·월세 지원도 포함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관련된 정책들이 시행 중입니다. 그것들이 부족한 경우에 확대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소책자에서는 주택과 관련된 예시를 들지는 않았는데, 기본대출은 1인당 천만 원에 불과한 것이라 주택보증금 대출 같은 고액 대출과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민중이 고통 받는 현실은 있으나,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온갖 미봉책들이 등장했는데, 대출 총량 규제 같은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여러 부작용이 발생해 민중이 고통 받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중의 고통이 해결되려면 먼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바뀌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되어야 하지, 돈을 조금 더 빌려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가계에 대한 과잉대출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대출 규제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과잉대출을 묵인하면,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둘째 쟁점에 대해서는, 상업은행의 대출, 예금 금리 책정에 현재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상업은행의 대출 금리 책정에는 금융 감독원의 관리·감독이 뒤따릅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예대금리차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려보겠습니다. 

대출 금리는 크게 3가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기준금리, 가산금리, 가감조정금리입니다.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콜금리(금융기관 간의 자금거래에 사용하는 금리)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 금리로,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이 코픽스(8개 대형은행 자금 조달 비용 평균으로 산출한 금리)와 은행채 금리입니다. 코픽스와 은행채 금리는 콜금리의 영향을 받지만,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닙니다. 가산금리는 앞선 답변에서 설명해 드린 리스크 관리비용과 업무 원가 등을 포함해서 산정한 금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가감조정금리는 쉽게 말해 ‘우대금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량고객에게 제공하는 예금 금리 인상이나 대출 금리 인하입니다. 이 세 금리를 모두 합산한 것이 최종적으로 채무자가 부담해야 할 대출 금리입니다.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에 의하면, 최근 대출 금리 상승의 요인은 기준금리 인상과 그것으로 인한 은행채 금리 인상과 우대금리의 축소입니다. 은행채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것에는 은행채 매수자(주로 기관투자자나 금융기관)의 추가 금리 상승 기대 심리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인상했고, 추가적인 금리 인상도 예고했습니다. 동시에 미국 연준도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인상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앞으로 더 오를 게 확실하니 그것까지 반영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면 은행채를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대금리의 축소는 금융감독원의 대출 총량 규제로 인한 것으로, 정책적 요인이 더 큽니다. 더구나 우대금리는 우량고객들에게 제공되던 것이라 취약차주들의 이자 상환 부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재 시중 상업은행들에 잘못이 있다면 예금 금리를 대출 금리 상승만큼 인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관련해서 금융감독원장이 예대금리차를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고 발언했고, 뒤늦게나마 예금 금리 인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채무자들의 이자 상환 부담과는 무관합니다. 반면에 대출 금리는 임의로 내리기 어려운데, 정책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은행이 가산금리를 갑자기 급격히 인상했다거나, 체계적인 조작을 통해 채무자의 신용 상태보다 더 많은 이자율을 가산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며 처벌의 대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런 정황이 보이지 않고, 상업은행이 이자를 조작하지 말라거나, 예금 금리를 인상하라고 주장하는 게 현재 사회운동이 해야 할 주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제기하신 세 번째 쟁점은 아마도 모두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에서 나온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The time has come: Let's shut down the financial casino - ATTAC’s statement on the financial crisis and democratic alternatives”). 그래서 원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제기해주신 ‘은행에 대한 규제 강화’라는 쟁점은 오해가 있습니다. ATTAC의 원문에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은 ‘F-a. Capital requirements and prudential practices in the banking sector’입니다. 여기서 일단 첫 번째 주장하고 있는 점은 금융기관의 자본비율 강화입니다. 즉,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걸 해결할 수 있도록 부채가 아닌 금융기관의 자본금을 충분히 쌓자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로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예를 들며 위험한 신종금융상품, 특히 증권화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행에 대한 규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여기서 지칭하는 은행은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이 아니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입니다. 뭉뚱그려서 은행으로 통칭한 게 아니라 정확히 ‘투자은행’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사실 투자은행은 한국적 맥락에서는 은행이 아니라 증권회사입니다. 반면 기본대출을 실행하게 되는 건 상업은행입니다. 물론 겸업화도 비판하고 있는데, 은행과 증권사를 겸업하는 금융기관은 모두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겸업화 금지를 제외하면, 상업은행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증권회사와 사모펀드가 만들어내고 있는 투기적 신종 금융상품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최근 상황과 관련해서는 「혁신 없이 거품만 조장하는 혁신성장 정책」(김진현,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0년 봄호)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다른 주장도 제기해주셨으니 간단하게만 의견을 드려보겠습니다. 공공은행 강화에 대해서는, 해볼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민중의 대안인가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여기서 지칭하는 공공은행이란, 협동조합 또는 비영리 은행 모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비판적 인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험일 뿐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통제 부분은 원문에서 살펴보면,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당사자(금융자본)로부터 받아내자는 내용이며 만약 지불하지 못할 시에는 금융기관을 국유화하자는 내용입니다. ATTAC은 국유화된 은행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필수적 금융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도모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비용 회수의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금융 대신 매입한 은행의 지분을 이용해 대안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장기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 추구, 성장, 투명한 경영 등을 이끌어 내는 것)나 과거 참여연대가 주장했던 소액주주운동, 이미 실행되고 있는 국가 정책금융을 통한 저소득층 저금리 대출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공적 통제는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한국의 운동 상황에서 핵심 쟁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ATTAC의 원문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영국의 피치, 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증권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위험도를 평가하니, 낮은 등급을 줄 수 없고, 그래서 위험한 증권이 세계 금융기관에 확산되어서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일리 있는 주장이나, 영국이나 미국 민중운동의 우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의 신용평가사들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금융시장의 신용평가 관련 핵심 쟁점은 오히려 그것보다는 연준의 코로나19 기간의 수량완화 정책으로 인해 회사채의 등급이 무의미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연준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줬기 때문에 신용평가등급 자체가 무력화되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헤지펀드나 단기 주식보유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모펀드 관련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기관지 글을 참고하십시오. 단기 주식보유에 대한 규제나 증권거래세 인상 등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15 총선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세를 불린 ‘동학개미’들의 표를 잡기 위해 민주당은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주택 중심의 주택정책 확대와 관련해서는 공공임대 주택 확충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있으나, 그걸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해 입장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본대출과 밀접히 연관된 쟁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재정 건전성이나 위험 관리를 넘어서 사회운동이 제시해야 하는 대안에 대해서 미흡하게나마 의견을 드려보겠습니다. 금융세계화의 폐해는 아직 지속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겸업화의 폐지나 사모펀드, 증권회사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직도 입장이 변한 것이 아니고,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을 개혁해서 사회변혁으로 나아가겠다는 주장은 좀 무리하다고 판단됩니다.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는 금융위기로 인해 민중이 고통받지 않게 하고,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것 자체가 변혁의 목적이나 중요 수단이 될 순 없습니다. 

브뤼노프와 폴리도 자본주의 신용시스템을 통해 화폐자본을 ‘사회화’하려는 시도는 환상에 불과하며,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2006년 공동 발표한 글(「칼 마르크스의 화폐와 신용 이론」)에서 신용시스템을 통한 자본의 ‘사회화’를 비판합니다. 자본주의적 신용시스템은 투자와 임금 지불을 위해 자본가들이 맡겨놓은 자금을 생산적 자본으로 집중시켜서 규모를 키우고, 기술진보로 이어지게끔 합니다. 이런 자본의 집중 효과는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하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국가가 은행을 국유화하면 이 효과를 이용해 중앙집중적 투자 프로그램에 필요한 신용 할당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좌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적 화폐자본을 이용해야만 하는 제약을 국가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하는데, 실제로는 사적 화폐자본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과 자본 집중 효과를 분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마르크스 역시 이것이 이행의 수단으로 작동하려면, 사적 소유와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이 모두 폐절된 후라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폴리와 브뤼노프는 이와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는데, 생시몽 사회주의자들이 무이자 신용을 생산수단 축적에 이용하려고 했었던 환상(illusions)부터 힐퍼딩이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의 소비에트 경제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개혁적 환상(reformist fantasies),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은행 국유화, 최근의 협동조합적 ‘마이크로크레딧(빈곤층에 담보나 보증인 없이 소자본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제도)’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현대화폐이론(MMT)과 같이 중앙은행을 통해 민중을 위한 수량완화를 하자는 포퓰리즘적 주장이 만연해 있어, 이 쟁점과 관련된 주장을 할 때는 신중한 고민과 판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관련해서는 「포퓰리즘의 무기, 현대화폐이론」(김진현,《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년 여름호)와 「일자리 보장제는 100조 원짜리 공공 근로?」(김진현,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1년 가을호)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일정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검찰개혁이 요구된 것은 검찰이 권력형 범죄 앞에 무력하거나 권력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표적 수사, 강압 수사 등 절차상 권한 남용이 문제가 되거나, 권한을 남용해 부패·비리 스캔들을 일으킨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의 중립성과 도덕성을 강화할 쇄신안이 필요하다는 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발간한 소책자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한 이유”에서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구상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양축으로 했습니다. 기존 수사기관과 독립된 수사기관으로 공수처를 설치해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게 권력형 비리를 수사토록 하고, 수사권을 경찰 중심으로 재편해 검찰을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책자에서는 이런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수처장을 비롯해 인사 임명이 청와대와 여당에 유리하게 되어있는 공수처는 정권 방탄용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행정부 소속의 경찰과 여전히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부족한 검찰이 대장동 의혹을 비롯한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지 2년, 공수처가 출범한 지 1년여가 되어갑니다. 문재인 정부의 청사진대로 개혁이 이루어졌는지 평가할 시점입니다. 이 글에서 수사권조정에 대한 검토는 제외하고 공수처에 대해 평가해보겠습니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른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수처는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여당 국회의원보다는 아직은 민간인일 뿐인 야당의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사건만을 다루었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사법기관과 권력의 유착을 끊어내고 사법권의 모범을 세우는 데 실패했습니다.

지난 1년간 공수처는 여당에 매우 편향된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공수처가 입건해 수사해 온 12건 가운데 4건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것으로, 친여 성향 시민단체가 공수처에 고발한 사건이었습니다. 공수처는 이들 사건에 수사력을 대거 투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고발사주 의혹’의 경우 석 달 가까이 수사 인력의 대부분을 투여했지만, 핵심 수사 대상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의 체포영장과 두 차례 구속영장이 모두 법원에서 기각되었습니다. 과잉·부실 수사라는 사유였습니다. 이에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공수처는 아마추어다”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수처의 무리한 행보에 ‘윤수처’(윤석열 수사처)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지만 윤 후보에 대한 공수처의 공세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공수처는 최근 판사사찰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출석을 통보했습니다. ‘고발사주’ 수사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판사 사찰 문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수사 방해’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이미 법원, 검찰 등에서 무혐의 결론이 난 바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월 윤 후보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정직 2개월의 징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피신청인(법무부)은 문건이 재판부를 공격하거나 우스갯거리로 만들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하지만, 소명자료만으로는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고등검찰청은 2월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을 수사한 뒤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한 전 총리 사건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며 법무부-대검 합동 감찰까지 벌였지만 지난 7월 무혐의로 결론 났습니다. 공수처가 두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이 의도를 가진 편파, 중복 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제보 사주’ 의혹 사건이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사건 등 여권에 불리한 수사는 입건 시늉만 했을 뿐 사실상 멈춰있습니다. 고위 법조인을 포함한 정관계 로비 의혹인 대장동 사건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있습니다. 대장동 사건에는 곽상도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국정농단 특별검사 등이 소위 ‘50억 클럽’ 의혹으로 얽혀있습니다. 권 전 대법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과 관련한 ‘재판 거래’ 의혹으로도 고발된 상태입니다. 이들 의혹은 모두 공수처 수사 범위에 해당합니다. 현행 공수처법은 모든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에 대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수처는 지난 10월 검찰에 대장동 관련 고발사건을 이첩한 뒤 손을 뗀 상태입니다. 지난 3~5월 ‘김학의 불법 출금(피고 이성윤)’ 관련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에 줄기차게 이첩을 요구해 오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입니다. 당시 공수처는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서는 피의자인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에 태워 면담 조사하면서 ‘황제 조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지적했듯이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공수처에 쥐여 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은 정권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성역 없이 공정한 수사를 하라고 부여한 것입니다. 김진욱 공수처장 본인도 취임사에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함으로써 공정한 수사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7000명이 넘는 수사 대상 고위공직자 중 야당 대선후보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수사력을 총동원해왔습니다. 검찰이 받던 권력에 봉사한다는 혐의를 공수처 역시 피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공수처가 수사 과정 등에서 인권을 침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공수처는 지난 10월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된 손준성 전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체포영장에 대해 “손 검사가 소환에 불응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기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구속영장을 재차 청구한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행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손 검사 측도 “변호사들이 (선임을) 꺼려서 당초 출석 예정이던 10월 22일 전날 변호인을 선임해 연기를 요청했고, 11월 2일 출석하겠다고 공수처에 밝힌 상태였다”라며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형해화시키고 헌법상 기본권 행사를 침탈하는 조치”라고 반발했습니다. 

체포영장이 기각된 피의자에게 조사도 없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공수처에 유감을 표하면서 “형사 피의자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해 보장된 방어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최고 수사기관 중 하나인 공수처가 오히려 규칙과 규율을 무시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장기적으로 기본권을 경시하는 문화가 수사기관에 뿌리내릴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공수처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 이후 TV조선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15회, 8월 이후 문화일보 사회부 법조팀 기자 3명의 통신자료를 총 8차례 수집했습니다. 이 밖에도 중앙일보 등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이외에 ‘조국 흑서’ 저자인 김경율 회계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우 변호사의 통신자료도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통신 조회 대상은 공수처와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많이 해 온 언론사, 인사들입니다. TV조선은 공수처가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무마’ 혐의로 수원지검 수사를 받고 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에 태우고 들어와 ‘황제 조사’를 했다며 그 장면이 담긴 CCTV를 입수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문화일보 측도 “통신자료 조회는 공수처의 정치개입 비판 기사를 쓴 뒤 이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수처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피의자들의 통화 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조·언론계에선 “공수처에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에 대한 사찰 시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공수처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를 근거 조항으로 들며 적법한 통화 내역 확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이미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되어온 것입니다. 지난 2016년 민중총궐기 이후 민주노총 조합원, 시사IN, 한겨레 등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의 통신자료를 국정원과 경찰이 수집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큰 논란이 인 적도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남용과 인권을 침해하는 수사 관행이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립의 근거였습니다. 공수처가 수사 관행과 수사권과 기소권 운용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그러나 무리한 영장 청구, 언론탄압은 김진욱 공수처장이 천명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검찰개혁은 중립성과 도덕성을 잃은 검찰 스스로가 만든 결과입니다. 그러나 공수처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검사는 그 직무독립성과 신분보장이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면 공수처는 여당에 유리한 위원회를 거쳐 대통령이 처장을 임명하고, 수사처 검사를 임기제로 두고 있습니다. 그 체계상 공수처가 검찰보다 훨씬 권력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출범 이후 1년 동안의 행보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잘라내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려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설립한 공수처를 폐지할 수 없다면 애초에 기대한 고위공직자 감시를 위한 독립성을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없이 공수처를 운영한다면 검찰 위의 검찰 혹은 정권의 편을 드는 검찰을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검찰개혁의 또 다른 문제의식은 검찰이 과도한 권한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야당과 검찰 일각에서 제안하는 수사청이 대안일 수 있습니다. 검찰이 막대한 권한을 남용해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거나 정치 권력에 봉사한 것이 문제라면, 그 권한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청과 함께 수사권을 독점하는 수사청을 병행 설치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에 대한 지휘를 수사청에 두어 행정 권력으로부터 개입을 차단해 독립적인 사법작용을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지난 1년간 공수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도, 인권 친화적 수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되려 정치적 중립 논란과 인권탄압 논란만 빚었습니다. 김 처장은 취임사에서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안대로 눈을 가린 것처럼, 사람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국민이 주신 보검을 사용하는 국가 기관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실상은 거리낌 없이 정적을 공격하고 비판을 묵살하며 권력형 비리는 독점해 뭉개는 정권의 보검이 되었습니다. 공수처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역시 철저한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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