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2 가을.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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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경쟁 시대,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쟁점

한국 정부 대외경제정책 분석과 사회운동의 과제

임지섭 | 정책교육국장
 
최근 세계정세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라고 할 수 있다. 경제안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경제안보는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의) 경제적 공세로부터 국가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며, 오늘날에는 첨단기술, 공급망, 디지털이 경제안보의 주요 영역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경제안보 개념은 방어적 측면의 대응과 적극적 측면의 대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방어적 측면에서는 공급망의 단절이나 타국의 공급망 무기화에 대비해 공급망의 전략적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고 중요 데이터 및 인프라를 보호하는 것이 있다. 적극적 측면에서는 핵심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의 주요 분야에서 전략적 우월성을 갖추는 것이 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00년대 이후 세계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를 통해 국가 간 상호의존성과 초연결성이 증대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경제-안보의 연계가 강화되었다”라고 평가한다. 즉 글로벌 공급망은 세계화의 확대 속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상호의존 상태를 무기화하여 경쟁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인식되고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세계화의 효율성 논리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2010년대부터 주요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압박 수단을 통해 경쟁국을 견제하고 자국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다자무역체제의 혜택 속에서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통해 경제적 부상을 이루며 미국의 경제적 지위를 위협한다고 인식하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라는 맥락에서 수입규제 및 수출통제 등 기존의 통상정책수단 뿐만 아니라 투자규제조치, 공급망 재편, 산업육성정책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안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 및 에너지 위기는 2020년대 경제안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경제, 기술, 안보 등이 통합된 형태의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된다는 점에서 경제안보에 주목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경제안보 시대에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당히 강조하면서 한미동맹 강화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대외경제정책에서 이러한 경제안보 개념은 다음의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주요 글로벌 무역협정 참여를 포함한 국제공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경제정책 관련 주요 공약과 정책 및 행보를 살펴보고, 그 성격에 대한 평가와 함께 사회운동이 주목할 바를 정리해본다.
 
 

1. 경제안보 시대 한국 정부의 대외경제정책

 
 
한국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에서 경제안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9월 경제와 안보를 종합 고려한 현안 이슈를 보다 치밀하게 점검하고 대응하기 위해 대외경제장관회의 산하에 별도의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신설했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는 “코로나 이후 시장선점 경쟁, 기술패권 경쟁, 탄소중립 가속, 치열한 공급망 재편 등 최근의 글로벌 경제환경 급변과 잠재된 불확실성은 언제나 리스크로 부각,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 상존한다”라며 “특히 최근 경제, 기술, 안보 등이 연계 및 통합된 형태의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경제대응 포지셔닝에 전략적, 정무적 판단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윤석열 정부는 나아가 경제안보 시대에 ‘안미경중’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한미동맹을 재건하고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는 협력을 지속하되 의존도를 줄여나가겠다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먼저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의 대외경제정책 관련 주요 공약과 정책 및 행보를 간략히 살펴보자.
 

대선 공약 및 인수위 국정비전과 목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대외경제정책과 관련된 공약은 △ ‘기술통상정책 추진을 통해 산업 경쟁력 강화’, △ ‘경제-안보 연계 통상정책을 추진하여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강화’, △ ‘맞춤형 수출지원정책 강화로 중소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 확대’, △ ‘서비스산업 통상협상 강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일자리 창출 유도’다. 

이 중에서 △ ‘기술통상정책 추진을 통해 산업 경쟁력 강화’와 관련해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핵심 산업(반도체/배터리/친환경/디지털/ICT 등)의 기술동맹 구축에 적극 참여하여 미래 신기술 선점하고, 글로벌 디지털 통상질서 구축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 ‘경제-안보 연계 통상정책을 추진하여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강화’와 관련해서는 국무총리 산하 ‘신흥안보위원회’(ESC)를 설치하고 통상교섭본부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5월 3일 발표한 ‘인수위 국정비전 목표 및 110대 과제’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 전개’, ‘능동적 경제안보 외교 추진’ 등의 과제를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공급망 등 경제안보를 위해 ▲ 국내 반도체·배터리 핵심기업의 대외투자 지원확보와 공동 연구·개발(R&D) 확대, ▲ 한·미 경제·안보 2+2 회의(한국 외교부와 산업부, 미국 국무부와 상무부)를 통한 경제안보 협력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및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경제협의체에서 공급망, 인권, 환경, 디지털 관련 규범 형성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고, 대선 공약과 마찬가지로 능동적 경제안보 외교 추진을 위해 국무총리 직속 ‘신흥안보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국가안보실 개편

대선 공약과 인수위에서 강조했던 신흥안보위원회 설치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5월 1일 대통령 직속 참모기관인 국가안보실을 포괄안보적 관점에서 안보 문제를 다루기 위한다는 취지로 대폭 개편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겸하는 국가안보실 1차장을 군사안보 전문가에게 맡겼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전문가에게 맡겼다.

또한 경제안보비서관을 1차장 산하에 신설해 전통적 안보와 경제안보를 통합적으로 다루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안보실은 ‘6비서관 1센터장’ 체제로 운영되며 김태효 1차장 산하에는 안보전략비서관, 외교비서관, 통일비서관,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인호 2차장 산하에는 국방비서관, 사이버안보비서관, 위기관리센터장이 배치되었다.
 

한미정상회담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이루어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은 민간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안보 동맹에 초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통상과 관련한 주요 논의 내용은 크게 △ 전략적 경제 및 기술 파트너십, △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 ‘전략적 경제 및 기술 파트너십’과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부분은 양국 간 대화채널 신설 및 강화다. 우선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해 정례적인 장관급 공급망 산업대화(Supply Chain and Commercial Dialogue, SCCD)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공급망 문제 등을 대통령실 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양국 국가안보실 간 경제안보대화를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8개 대기업 관계자와 퀄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GM 코리아, 블룸에너지, GE 코리아, 구글, 코닝 등 8개 기업 관계자가 참석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디지털,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교역 및 투자 확대와 공급망 협력을 위한 실질적인 실천방안 등을 논의하고, 한미 투자 협력 확대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 ‘글로벌 포괄 전략 동맹’과 관련해서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포괄적 전략 동맹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즉 양국 정상은 민주주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촉진, 부패 척결 및 인권 증진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세부 사항으로 ▲ ‘글로벌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 관련해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감염병 위협 예방과 대응을 위한 다자간 노력 강화,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안전한 인터넷 제공의 중요성 인식(주로 5G 네트워크 장비), 사이버 위협 및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저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을 논의했고, ▲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 관련해서는 한국의 IPEF 참여를 공식화하고, 아세안과의 협력 및 한미일 3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PEF 참여 공식화

IPEF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지난해 10월 처음 제시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협력체다.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냉전 시대의 완전한 봉쇄 정책이나 탈냉전 시대의 낙관적인 관여 정책과 달리, ‘국제적 규칙의 수립을 통한 협력 및 통합’과 ‘경제, 가치, 안보상의 위험에 대한 대비’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 IPEF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통합과 대비, 협력과 경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구체화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IPEF의 첫 번째 특징은 경제와 안보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에 따라, 기존의 무역협정과 달리 무역과 안보를 모두 다룬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IPEF는 ① 공정하고 복원력 있는(resilient) 무역, ② 공급망 복원력, ③ 사회기반시설,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④ 조세 및 반(反)부패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다. IPEF의 두 번째 특징은 전통적인 무역협정과 달리 시장개방을 포함하지 않으며, 일괄타결 방식이 아닌 각 기둥별 참여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를 결정하고 중국이 RCEP 출범을 주도하면서 미국이 잃어버린 인도태평양 지역의 리더십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함이다.

종합해보면, IPEF는 미국이 단기적으로 CPTPP에 복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하에 두 가지 목표를 내세운 계획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동, 디지털, 환경, 조세 및 반부패 등의 영역에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합의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IPEF 가입을 선언했다. 이후 6월 7일 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원팀 협상단’ 대응 체계 구축을 발표했다. 이 범정부 원팀 협상단 중에서 산업부가 IPEF 대응의 핵심 부처라고 볼 수 있다. 즉 산업부, 기획재정부, 외교부가 범부처 협상단의 중심축을 담당하면서 IPEF 4대 주요 분야 논의를 이끄는 한편, 대외 장관급 협의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수석대표를 맡고 고위급 협의는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이 총괄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주요 경제 단체와 업종별 협회·단체, 전문기관 등이 참여하는 민관전략회의를 출범하고, 경제계와 함께 4대 분야별 민관협의체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7월 12일 산업부가 발표한 ‘새정부 산업통상자원 정책방향’에서도 ‘국익과 실용 중심의 통상전략’이 3대 전략 중 하나로 강조되었다. 구체과제로는 ▲ 한미 공급망 산업협력대화 본격화, ▲ IPEF 공급망 필러 협상 참여, ▲ IPEF 청정에너지, 탈탄소, 인프라 필러 논의 등 한미정상회담 이후 후속 조치와 IPEF 대응방향이 제시되었다.
 
 

2. 미국 및 일본의 경제안보전략과 공명하는 윤석열 정부 대외경제정책

 
 
종합해보면, 윤석열 정부 대외경제정책의 핵심은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경제안보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경제안보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경제안보 시대에 ‘안미경중’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한미동맹 강화와 중국에 대한 의존도 축소라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난 8월 24일 한중수교 30주년 행사에서도 한중 양국 정부는 공급망을 비롯한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미중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중관계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인식의 차이를 보였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축하 서신에서 양국이 “방해를 배제”하고 협력하자고 언급한 것이나, 왕이 외교부장이 별도 축사에서 “디커플링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이 중국과 갈등 요인을 만들지 말라는 기대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국의 기대와 달리, 윤석열 정부가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 및 코로나19 대유행 여파 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라는 정세에서는 경제와 안보가 더 이상 분리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핵심산업의 기술동맹 및 공급망 확보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미국 및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과 공유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미중갈등 시대 일본의 통상 대응 정책을 주로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아베 총리 집권 시기부터 현재까지 ▲ 경제책략, ▲ 전략기반산업 및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 ▲ 동지국과의 글로벌 공급망 강화 협력이라는 세 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안전보장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전략기반산업 및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인데,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 및 해상물류, 금융, 의료 5대 전략기반산업의 공통 위협요소로 주목되는 사이버보안, 재해, 공급망 3개 분야에 대한 복원력 강화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경제안전보장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인 내각관방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반을 신설하는 등 경제안보 관련 직제를 개편하고, 미국과 양자 간 경제안보 대화를 신설하며,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직속 참모기관인 국가안보실 직제를 개편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하면서 IPEF 참여를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중갈등과 경제안보 논리

 
 
한국의 ‘안미경중’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로 보인다.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미중 간 공급망 분리가 심화되고 경제안보 논리가 강화되는 흐름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에서는 기존의 기술유출 방지나 투자 제한 조치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먼저 반도체 산업에서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칩4 동맹’ 참여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하는 칩4 동맹은 반도체 설계에 강점을 가진 미국, 소재 및 장비에 특화된 일본,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이 모여 반도체 생산 전 과정에서 협력하자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칩4 동맹을 위한 예비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8월 9일 발효된 미국의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글로벌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최대 3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담겼다. 그런데 보조금을 받게 되면 안전장치 조항에 따라 향후 10년간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시설을 투자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된다. 

한편, 지난 8월 16일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에는 전기차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유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안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투입하는 3690억 달러는 친환경 사업 지원방안으로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보조금(세액공제)을 확대하는 데 활용된다. 그런데 법안에 담긴 보조금 지원 조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해외의 ‘우려 국가’)에서 추출, 제조, 재활용된 광물이 일정 비율 이하여야 한다. 나아가 2023년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이 지급된다. 현재 한국 완성차 기업이 제조한 모든 전기차는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8월 29일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2025년까지 유예해달라고 제안할 방침이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법안 내용을 수정하거나 구제책을 마련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투자하기로 한 전기차 공장 착공을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배터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한편 북미와 유럽 시장에 올해 30조 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4. 사회운동의 과제

 
 
이렇게 미중 간 경쟁이 심화되고 경제안보 논리가 강화되는 흐름에 대해 《한겨레신문》의 박민희 기자는 ‘안미경중’이 불가능하고 미국 주도 흐름에 같이 가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능력과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한 중국과의 관계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화, 자유, 인권의 원칙을 명확히 하여 일관된 입장과 정책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제기한다. (“푸틴과 시진핑이 바꾸는 세계”, 《한겨레신문》, 2022년 3월 24일.)

한편 한국 사회운동은 주로 한미정상회담과 한국의 IPEF 참여에 대해 미국에 대한 굴욕외교이자,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봉쇄 및 신냉전 구도에 맹목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최근 미국이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에서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미국이 제시하는 경제협력의 규칙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부족하고, 중국의 공격적 팽창주의와 무역질서교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첫째, 미국이 제시하는 경제협력의 규칙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과 대응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경쟁은 경제안보를 내세워 중국과의 일정한 공급망 분리를 시도하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다자간 국제규범을 형성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IPEF를 비롯한 최근 통상협정은 양자간 FTA와 다자간 CPTPP를 거치면서 논의되어 온, 노동권, 반도체 등 첨단산업, 환경, 디지털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규범을 형성하려는 시도다. IPEF의 경우 ‘① 공정하고 복원력 있는 무역’ 기둥의 노동 분야에서 국제노동기구가 정한 핵심 노동기준 준수, 환경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무역 정책 확립,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④ 조세 및 반(反)부패’ 기둥의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를 바탕으로 한 무역규칙 확립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핵심은 ‘노동자 중심의 무역정책’과 ‘공정한 경쟁에 대한 약속’이다. 이는 무역 파트너들과 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고 현행 또는 신규 무역협정 하에서 새롭고 높은 수준의 노동권에 관한 약속을 수립할 것을 제시한다. 탈냉전 이후 형성된 WTO 체제가 현재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노동권을 비롯한 대안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에 두고, 이러한 다자간 규칙 기반 질서 형성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러한 규칙이 보편적 이익에 더욱 부합하도록 대응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과 경제안보의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경제안보의 시대는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시대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IPEF를 비롯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을 일정하게 분리하려는 시도가 궁극적으로 중국의 시진핑 체제와 공격적 팽창주의에 대한 경제안보와 군사안보상의 우려를 반영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은 자유무역 체제에 편승하면서도 규칙에 기반한 국제무역질서를 교란하고, 강군몽과 애국적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워 동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에서 무력충돌의 위협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위협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낙관적인 관여정책을 펼쳤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였다. 중국의 공격적 팽창주의가 동아시아 국가들에 현실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한, 안보이슈와 경제이슈를 결합해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을 것이다. 나아가 동아시아 각국의 공격적 민족주의가 상호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기본적 가치에 기반하여 일관된 입장을 갖고 중국의 공격적 팽창주의를 비판하는 한편, 아울러 중국과 자국의 공격적 팽창주의 및 민족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실천적 효력을 발휘할 때 경제안보의 논리도 비로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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