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9.28호
첨부파일
200209앨범.hwp

아, 대한민국

박준도 | 편집실장
멈춰버린 포크의 꿈 - 정태춘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모던)포크의 역사는 70년대 중반 서유석, 송창식의 성공을 기점으로 분명해진다. 1975년 신중현의 대마초 사건(청년문화의 봉쇄)을 한편으로, 1977년 대학가요제(탈출구)를 지나 포크가 대중오락으로 정착한 것이다.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은 비켜선 정도고, 덧붙여서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가 '노래운동'의 주류였던 포크도 정치의식이 앞선 예외일 따름이다. 그리고 정태춘·박은옥이 의아한 자리에 엉뚱하게 성공해서 앉아 있다.
싱어 송 라이터(작곡과 가수 겸임) 아티스트로서 이들은 대중오락이라는 지위가 몹시 거추장스러웠고, 모던포크(미국 근대 포크음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포크도 못마땅했다. 1985년 MBC 10대가수라는 지위를 제치고, 전국 순회공연차 '이야기 마당'을 떠나면서, 대중-관객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1987년 우연한 기회로 청계 피복 노조의 '일일찻집'의 노래손님으로 초대되는데, 이때 처음 노동자들과 마주했다고 한다. 1988년 12월 정태춘은 이제까지 시도를 모아 '송아지 누런 송아지'라는 일인 집체공연을 펼친다. 송아지는 얼룩 송아지가 아니고 '누런 송아지'란다. 대학 풍물패들과 민족예술인들과 함께 한 이 공연은 1989년 전교조 지지공연에서 정점에 이르는데, 1만 명이 넘는 관객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시도(북의 사용)가 유효함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제작한 앨범이 [아, 대한민국](정태춘 5집, 1990)이다.

대중들과 만나면서 시대정신에 눈을 뜬 정태춘은 노랫말의 리얼리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은유보다 직설과 대조로 말을 이어가고, 가락도 낭송조의 말을 뒷받침하도록 구성했다. 첫 음을 명쾌하게 잡고 박자를 정확히 지키는 가수들과 달리, 구르는 듯한 특유의 창법에 단위 박자를 뭉개면서까지 말의 구절을 유지하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을 또박또박 던지며 유장하게 흐르도록 노래를 맺는다. 이러한 특징은 '아, 대한민국', '우리들의 죽음', '일어나라 열사여', '우리들 세상', '그대 행복한가'에서 단연 돋보이는데, 두말할 것도 없이 이 곡들은 사물의 본질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도록 한다. 국악기를 어설프게 사용하면, 익숙하지 못한 소리 탓에 국악기가 튀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는 모양새가 (그의 과거와도) 사뭇 다르다. 특히, 북과 꽹과리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일어나라 열사여', '황토길에서' 같은 곡에서 긴장의 고조와 유려한 맺음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대목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포크의 공동체 지향과 북이 부르는 집합적 대중의식 사이의 관계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과 함께 그는 이철규 열사 투쟁(1990), 강경대 열사 투쟁(1991)의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1991년 계급투쟁의 패배를 운동진영과 함께 지켜보면서 더 이상의 시도는 멈춘다. '예술이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싸움에 복무하는 것'이라던 그의 말은 새벽, 안치환과 자신을 구별짓는 기억으로만 남는다. 노동자 노래단과 꽃다지로 대표되는 노동자 문화에서 자신이 설 곳 없음을 확인하고는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뒤로 물러선다. 90년대 대학생들(지식인들) 사이에서 시대의 보편을 거스르는 이기심을 목격하고부터는 대학 공연도 마다한다. 1990년대 대중 문화에서조차 신세대들의 기호와 취향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외면에 맞서 '사전검열철폐'운동을 홀홀 단신 투쟁하면서부터는 더더욱 자신에게 침잠(沈潛)한다. 그리고 비빌 언덕을 삼으려는 것인지 '386세대'의 정치적 각성·성장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외치며 주위를 설득하려 든다. 이렇게 그는 90년대를 '건너간다'.

주류 포크 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정태춘의 5집 앨범을 외도라 보며, 그를 따스하게 맞이하려 품을 넓힌다. 이것이 그의 외도인지, 멈춰버린 시도(혹은 불가능한 꿈)인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나,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포크의 역사와 정태춘의 개인사가 유사한 점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동일하게 대학 '노래운동'이 80년대 중 후반 몰아치는 대중가요의 영향(팝 발라드, 트로트, 록-힙합) 앞에 맥없이 주저앉은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못 다한 중산층의 꿈을 이루려 애쓰는 '386'세대들의 문화적 취향에 대꾸하려드는 경향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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