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10일 오전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 소추를 인용하며,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끈질기고 견고한 연대와 불굴의 저항이 이룬 승리다. 초조하게 선고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환호를 질렀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광장과 거리에서 환호는 이어지고 있다.

133일 간 연인원 1600만 명의 시민들은 전국 100개 지역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작년 10월 29일 2만에서 시작한 촛불은 11월 5일 30만을 넘어 12일 106만으로 폭증했고, 12월 3일 전국 232만으로 불붙었다. 야당들이 탄핵 의결을 머뭇거리며 ‘질서 있는 퇴진’을 운운할 때, 사법부가 물주 이재용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뒷걸음질 칠 때, 촛불은 더 활활 타오르며 ‘주권자의 명령’을 들을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 파면은 누구의 승리인가? 야당 정치인들인가, 재판관인가? 아니, 주권자 자신의 승리다. 이 땅에서 ‘개돼지’라 천대받고 ‘국민들은 어차피 곧 잊어’라 취급받던 평범한 노동하는 시민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는 ‘보통의 삶’을 일궈온 이들의 승리다.

박근혜 파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정문에서 헌재는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한다고 밝혔다. 광장의 촛불이 박근혜 파면 결정의 원천임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미완의 승리

물론 박근혜 탄핵을 ‘완벽한 승리’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헌재는 공무원 임면권 남용, ‘정윤회 문건’ 보도 관련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거나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박근혜는 끝까지 압수수색을 거부했고, 특검 수사를 방해했다. 의혹이 팽배한 만큼 앞으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또한 헌재는 세월호 참사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에 대해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렵다”며 각하했다. 그러면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관련 헌법상 의무는 위반하지 않았지만 국가공무원 상의 의무는 위반했다”는 보충의견을 덧붙였다. 절충을 통해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 이 역시 청와대의 수사 방해로 사고의 구조적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철저한 수사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통해 ‘진실을 인양’해야 한다.

나아가 헌재는 최순실의 재단 설립과 이권 개입에 도움을 준 박근혜의 행위에 대해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번 게이트에서 드러난 재벌과 권력자 간 관계가 철저한 거래 관계였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 재벌들의 돈이 명백히 뇌물이고 헌법상 규정한 ‘공공복리에 적합한 행사’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언급이다. 재벌들이 박근혜에게 준 수백억 원은 노동자를 비정규직과 해고로 내몰아 착취하고, 국민연금을 강탈한 돈이다. 이점에서 우리 헌법재판소의 한계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헌재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했다”며, 이는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박근혜는 파.면.됐.다. 주권자의 승리다.

‘촛불 끄라’는 안면몰수 보수언론

게이트 초기 촛불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던 보수언론은 새누리당 분열과 반기문 불출마로 대선 국면이 뜻대로 되지 않자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촛불에 색깔론을 들이대는가 하면, 최순실‧박근혜 물주 이재용을 두둔하는 후안무치한 모습까지 보였다. ‘결과가 어떻든 승복해야 한다’, ‘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둥 정도가 심각하다. 가당치 않은 소리다. 이는 촛불의 지속이 지배세력 재편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헌법상의 집회의 자유를 누구 맘대로 중단한단 말인가? 안면몰수 인면수심도 이 정도면 연기대상 감이다.

승복해야 하는 건 무엇이며, 누구인가? 보수언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더러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 요구에 승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승복해야 한다. 박근혜를 당선시키고 삼성왕국을 일구는 일등공신이었던 보수언론은 떠들 자격이 없다. 오히려 청산 대상이다.

민주주의와 평화의 봄을 만들자!

이제 우리는 적폐 청산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박근혜‧우병우 등 범죄자들은 아직 구속되지 않았고, 삼성 이재용은 뇌물과 불법 경영세습 등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벌 체제는 견고하고, 빈곤을 심화시키는 부익부빈익빈, 때만 되면 ‘북풍’을 소환하는 평화 위협 행태는 여전하다. 탄핵 정부의 황교안 대행은 외교적 노력은커녕 사드를 졸속으로 추진하며 국민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임금 체불액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비정규직 차별과 노동조합 탄압은 난무하며, 가계부채와 실업난은 사상 최악이다.

박근혜 파면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대선 기간은 짧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광장과 일터, 삶터에서 촛불을 밝히고, 민주주의를 요구하자. 누구든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가진 자들의 논리에 부역하는 권력자들이 있다면 동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밝히자. 그것이 지난 133일 간 우리가 확인한 주권자의 힘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싸울 것인가? 이후 촛불 시민은 아래 세 가지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 불평등과 불법 경영세습 해결을 위해 시민의 힘으로 재벌 체제를 개혁하자. 둘째,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 할 수 있는 제도적‧집단적 권리를 확보하자. 셋째, 한‧중‧일 민중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전 국민 평화운동을 펼치자!

우리는 박근혜 파면과 함께 봄을 맞고 있다. 이제 일터와 삶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일궈나가자.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빌며, 박근혜 파면 만세! 촛불 민주주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