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민주의체제는 무엇보다도 스웨덴식 노사관계의 산물이다. 역사적 타협에 기원을 둔 사민당정권 및 LO(스웨덴 노총)과 SAF(사용자단체) 간의 협조주의적 노사관계가 그것이다. 스웨덴은 90%가 넘는 노동조합조직률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같은 스웨덴 모델의 근간은 역사적 타협 이후 확립된 중앙집권적 산별 교섭체계다. 또한 이러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는 스웨덴 사민당의 사상 이념적 전통과 결합된다. 경제정책, 사회화정책을 집대성한 비그포르스와 소련식 사회주의와 혁명주의를 배격하고 점진적인 사민주의적 개혁을 정치이념화한 칼레비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스웨덴 체제의 주요구성요소는 거대기업 중심의 성장주의적 경제정책이다. 연대임금정책과 렌-마이드너 모델의 기본 구상 역시, 높은 고용률을 추구하는 동시에 거대 독점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정책에 기본 토대를 두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스웨덴은 거대 법인자본의 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왕성한 나라다. 스웨덴은 일찍이 독점기업을 용인하고, 차등 의결권을 부여하며, 아주 낮은 법인세를 유지해왔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와 거대 법인자본이 공존해온 셈이다. 실제로 1932년 집권한 스웨덴 사민당은 1970년대 초까지 시장주의적인 성장모델을 선택했다. 평등주의적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동일업종 내의 임금평준화 정책은 경쟁력 낮은 기업의 시장 퇴출을 통해 산업합리화와 자본집중을 촉진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집권 초기부터 재정지출에도 매우 신중했다. 스웨덴은 전후 경제 호황기에 긴축재정 기조를 바탕으로 임금인상 자제, 간접세 인상 등을 통해 인플레를 관리했다. 시장 친화적 정책은 효율성을 높여 성장에 기여했고, 이를 기반으로 고용증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확대, 생산적인 복지, 삶의 질 향상 등을 성취해왔다. 다만 스웨덴식 성장경제 모델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구분되는 점은 성장과 함께 고용에 중점을 두면서도, 특수한 국내외의 역사적 조건들로 인해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과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을 결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스웨덴 모델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대안이라기보다는 냉전과 자본주의적 호황이 만들어낸 특수한 조건의 효과로 자본주의적 모순에서 빗겨나 있을 수 있었던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스웨덴은 더 이상 예외로 남지 못하고 여타의 서구유럽국가들과 엇비슷한 신자유주의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국적인 자본주의적인 성장을 보장해주었던 특수한 국내외적 조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쮀바덴 협약정신과 협조주의적 노사관계 스웨덴의 노사관계는 국가의 개입보다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간의 장기간의 협조주의적 협상을 특징으로 해왔다. 이러한 노사관계 정착의 기점이 되는 것이 1938년에 체결된 살쮀바덴 협약이다. 이 협약의 핵심내용은 첫째, SAF와 LO로부터 각기 3인씩 파견되는 대표들로 노동시장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업단위나 산업단위에서 노사간 교섭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다루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노동쟁의 절차를 제도화하는 동시에, 직장폐쇄도 어렵게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실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그 구체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이른바 살쮀바덴 정신이 바로 그것인데, 노사간 분쟁사항에 대한 LO와 SAF의 조정권한을 대폭 강화시킴으로써 분쟁사항이 국가의 직권중재나 노동법원을 통한 사법적 절차로 다루어지기 전에 노사중앙조직들이 가능한 한 자율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한편, 파업이나 직장폐쇄와 같은 대결을 되도록 피한다는 것이다. 협조주의적 노사관계의 정착과 계급교차연합의 형성 과정 살쮀바덴 협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스웨덴 노동운동은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자본가단체들 역시 매우 중앙집권적인 결속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SAF는 LO보다 앞서서 전국적인 중앙집권적 조직형태를 완성했다. 이에 반해 초기 LO는 소속연맹들을 확고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당시 건설부문노동자들은 스웨덴의 건설 산업이 국제경쟁으로부터 보호되는데다 스웨덴 특유의 기후조건에 힘입어 강한 교섭력을 가졌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LO소속의 다른 부문 노동자들보다 높은 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제조업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노동자 스스로 억제하는 계급 협조주의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으로 LO내에 가장 규모가 커다란 금속노련의 노선이 그러했다. 그 결과 1931년 현재 건설부문노동자들의 임금은 전체산업노동자들의 평균 시간당 임금에 비해 1.7배 높은 수준이었다. LO는 이러한 노동자들 간의 격차와 입장 차이를 조정하지 못한 채 강한 결속력을 가진 SAF의 공세를 맞이해야 했다. 결국 LO는 수출부문 노동자들이 수출부문 자본가 및 사민당정부와 연합하고, 전투적인 노동자운동을 분쇄하는 대가로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계급교차연합(Cross-class Coalition, 계급연합)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앙 단체교섭 틀의 형성 1980~90년대 스웨덴 노동운동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세의 핵심은 중앙교섭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스웨덴에서 중앙교섭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자본가단체인 SAF가 먼저 요구한 것이다. LO는 1952년에야 SAF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시 SAF의 입장에서 산업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 경쟁을 유도하기 쉬운 산업별 단체교섭보다는 중앙단체교섭이 임금인상을 억제하는데 보다 유리했다. 반면 LO의 입장에서는 LO산하 연맹들 간의 경제적조건과 입장차이가 컸기 때문에 중앙교섭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LO가 중앙교섭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1950년대에 극심했던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장기호황국면에 진입했는데, 호황은 노동에 대한 수요증가와 그로 인한 임금인상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물가인상과 뒤이은 임금상승이라는 인플레이션 순환을 일으켰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아온 집권 사민당의 입장에서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악순환이었다. 이에 따라 사민당은 LO에게 인플레이션 악순환 해결을 위한 임금동결을 요청하였고, LO는 사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1949~1950년, 2년간 산하연맹들에게 단체교섭을 갱신하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호황국면에서 이 같은 임금동결조치는 산하연맹들의 강한 불만을 낳았고, 1951년이 되자 LO는 산하연맹별 단체교섭을 허용하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23%대의 폭발적인 임금상승이 이루어졌고, 사민당정권과 LO를 당혹스럽게 했다. 사민당은 다시금 LO에게 임금동결을 요구했고, LO는 물가상승에 따른 생계비 상승분만큼만 임금인상을 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중앙 단체교섭 → (중앙교섭 결과를 전제조건, 즉 하한선으로 하는) 산업별 단체교섭 → 기업별 교섭 → 작업장단위 교섭]으로 이루어진 중앙교섭 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결국 스웨덴의 중앙 단체교섭은 노총 중앙이 집권 사민당의 임금동결 요청을 산하 노조들에게 강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스웨덴의 자본은 거꾸로 중앙 교섭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불황기에 자본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을 줄이고 투쟁하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목적은 일관되었다. 연대임금정책 중앙교섭이 단체교섭의 형식이라면, 연대임금정책은 중앙교섭을 통해 LO가 추진한 임금정책의 내용이다. 연대임금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충실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방대한 직무조사가 반드시 요구된다. 무엇이 동일노동인가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종 노동들 간의 난이도, 위험성 정도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체계적인 직무조사가 있어야 다양하고 수많은 이종 노동들 간의 임금격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그런 조사가 (거대한 물리적인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고)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하게는 이러한 격차와 또한 차이를 노동자 스스로 납득하고 능동적으로 해소하고 축소해 나갈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사 결과가 이루어진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기도 어렵고, 이것만으로는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평의회주의적인 이행(변혁)과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 차원에서 모색되어온 노동자 민주주의와 교통(communication), 대중의 지적 차이 감축이라는 사회변혁적인 과제들과 연관된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이 문제들은 임금정책 실행을 위한 직무조사라는 실무정책집행 차원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진다. 주체형성과 이행, 대중운동과 같은 차원이 아니라, 행정적인 정책집행 수준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한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올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노동자들 간의 계급적 통합과 연대는 그저 하나의 불합리한 현실의 모순, 말 그대로 실현 불가능한 난제일 뿐이었다. 행정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스웨덴에서 충분히 체계적인 직무조사에 입각하여 연대임금정책이 추진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LO가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한 방식은 임금격차를 낳는 원인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가능한 전반적인 임금균등화를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즉 임금격차의 원인이 노동의 난이도나 위험도이든, 기업들 간 수익성의 격차든 관계없이 가능한 한도에서 임금균등화를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구체적으로 전체 노동자층의 임금상승률을 고임금 노동자층의 임금상승률보다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했다. 다시 말해 평등주의적인 임금균등화 정책이 위로부터 행정적으로 집행된 것이다. 연대임금정책의 확장과 변화, 렌-마이드너 모델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노동, 경제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어내는 연대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연대임금정책은 애초에 목적했던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했다. 거기에 고도성장에 힘입은 임금유동의 발생이 최초의 균열점을 만들어냈다. 임금유동이란 기업수준에서 최종 확정된 임금상승률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된 임금상승률을 상회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임금유동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임금유동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연대임금정책이라는 인위적인 절차와 임금정책으로 결정된 임금수준을 교정하여, 시장원리가 제약 없이 작용했을 경우에 결정되었을 임금수준으로 복귀시켜준 것으로 해석된다면, 결과적으로 중앙단체교섭이나 연대임금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낳지 못한 셈으로 볼 수 있다. 그냥 시장에 맡겨두면 마찬가지 결과일 것을, 공연히 절차만 복잡하게 만든 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금유동은 LO가 추진한 연대임금정책이 임금인상 억제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켜 버렸다. 이러한 문제점이 부각되자, LO 연구국의 연구책임자였던 마이드너는 “임금유동에도 불구하고 연대임금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임금유동에도 불구하고 보존되는 임금균등화를 그 효과로 꼽았다. 마이드너는 이후 LO의 경제학자인 렌과 함께 연대임금정책을 보다 확장하고 종합한 렌-마이드너 모델을 제시한다. 임금균등화를 추구하는 연대임금정책을 경기안정화정책(인플레이션 억제정책, 긴축정책), 산업합리화정책(산업구조조정),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확장-결합시킨 것이다. 그 후 렌-마이드너 모델은 종합적인 경제발전전략으로서 1950년대 후반 이후 사민당정권 경제정책의 골간이 된다. 렌-마이드너 모델의 핵심 정책 내용과 문제점 경기안정화정책 - 긴축정책 - 간접세 도입 렌은 긴축정책수단으로 간접세를 도입한다. 하지만 간접세는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기본이익과 상충된다. 렌의 논리는 간접세 재정수입의 일부를 가장 빈곤한 계층을 지원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이 간접세의 역진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렌은 정부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하여 흑자예산을 유지할 것을 권유한다. 연대임금정책 - 저임금노동자지원, 산업합리화 촉진 연대임금제도는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LO는 연대임금제도를 통해 동일업종 동일노동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 기업규모나 이윤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였다. 연대임금제도는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임금을 양보하는 한편, 동일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중소자본은 퇴출(구조조정)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은 경쟁력 있는 거대 법인자본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과 결합되는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력의 원활한 이동을 지원한다. 성장하는 부문과 지역은 보다 많은 노동인력을 필요로 하고 쇠퇴하는 부문과 지역은 노동인력을 방출한다. 이때 방출되는 노동인력을 성장하는 부문과 지역으로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실업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연대임금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면, 저수익 기업들로부터 대량의 인력이 방출되기 때문에 이 정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알선, 재교육,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에 필요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 (겐트제도와 같은 실험보험제도도 그중 하나이다.) 강한 성장주의적 사고방식 이처럼 렌-마이드너 모델은 강한 성장주의적 사고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완전고용과 경제성장, 물가안정이라는 거시 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과 관련해서도, 수요보다는 공급측 요인을 더 강조한다. 산업합리화, 경제효율화는 지상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렌-마이드너 모델에서는 중소기업이나 낙후지역의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경제구조의 균형을 이룬다는 식의 사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생산적 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구조조정 정책의 보조정책일 따름이다. 스웨덴 모델이 위기에 빠지면서 등장한 임노동자기금 본래 임노동자기금안은 민간 대기업들의 이윤 중 일부를 신규 발행 주식의 형태로 노동조합이 소유-관리하는 임노동자기금에 매년 의무적으로 적립케 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이 민간 대기업들의 지배주주가 되도록 한다는 웅대한 청사진이었다. 일부 논자들은 이러한 청사진이 사회주의적 이행의 다른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꽃으로 소개되는 임노동자기금은 실은 스웨덴 모델이 고유한 내적 모순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나오게 되었다. 특히 임노동자기금은 LO가 직면한 대내적 정당성위기의 산물이다. 스웨덴 모델의 모순과 LO의 정당성위기의 표출 연대임금정책은 고수익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연대임금정책은 점차 직업 내부 임금억제정책에서 직업 간 임금억제정책으로 전환되었고, 인플레이션과 투자축소, 노동자집단 간 분열의 원인이라고 공격받게 되었다. 중앙단체교섭은 기업 단위노조들의 역할과 권한을 위축시켜, 풀뿌리노동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그 결과 다양한 비공인 와일드캣 파업들이 발생했고, 노총 상층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들이 표출되었다. 또 거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은 결과적으로 재산과 경제적 권력이 소수 사적 거대 주주들에게 집중되는데 일조함으로써, 사민주의운동의 평등주의적 이념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모순을 가진다.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둘 부각되자, LO는 임노동자기금안이라는 급진적인 정책안을 제출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LO의 급작스러운 제안은 1975년부터 1983년에 걸친 혼란스럽고 지루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자본가진영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결집한 반면, 사민당과 LO진영은 제 각각의 계급적 기반과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기반에 따라 분열했다. 게다가 기금논쟁이 진행되는 중에 폭발한 1979~1980년 세계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임노동자기금을 찬성 추진하는 진영이 기금안을 본래의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이행의 관점보다는 경제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강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된다.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노동자권력과 사회경제적 힘을 형성하기보다는 임노동자기금을 시장에 동원해서 불황을 해결하자는 정책대안이 그것이다. 또 사민주의운동의 평등주의적 이념과 배치되는 기금안의 여러 한계점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문제들보다는 효율적인 사회-경제운영 모델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부각 되었다. 그러한 변화를 거쳐, 마침내 1983년 사민당이 제출하여 의회에서 최종 통과된 실제 임노동자기금안 법안은 애초의 급진적인 성격과 취지가 무색해진 모습이었다. 당초에 계획했던 기금규모가 현격하게 축소되어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위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본연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시장원리 중심적인 기금운영방식이 전면화된 형태이었던 것이다. 임노동자기금안 실패의 원인 평가 첫째, 임노동자기금안은 부르주아 진영의 강한 결집과 격렬한 저항으로 변질되었고 실질적으로 좌초되었다. 둘째, LO와 사민당 진영은 노동자계급 내외부의 계급적, 이념적,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분열과 대립을 통합하는데 실패했다. 예컨대,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 특히 1980년대 들어 더욱 격렬해지는 공공노동자와 사적부문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경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셋째, 임노동자기금 논쟁은 위력적인 대중운동의 전개와 결합하지 못했다. 그것은 국회나 국가연구위원회와 같은 전통적인 조합주의적인 의사결정구조 내부의 정책적 논쟁으로 국한되었다. 넷째, LO는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로 제도도입을 추진했으나, 전반적인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자본가 진영과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줄곧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계급적 이념적 통합력이 부족한 가운데, 연대임금정책을 둘러싼 LO 내부의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맥락에서 제안된 경제 정책안으로서의 임노동자기금안만으로는 부르주아 진영의 격렬한 저항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임노동자기금논쟁 종결 이후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해체와 신자유주의화 변질된 임노동자기금안이 도입된 이후, 사민당 정권은 1980년대 내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민간기업의 수익성 제고와 시장규제완화, 복지국가 팽창억제를 뚜렷한 정책노선으로 삼아왔다. 이에 힘입어 스웨덴 자본은 자유화된 외환시장 등을 통해 상당량의 자본 해외이전을 단행했고, LO의 힘의 근간인 중앙 단체교섭으로부터 이탈해 갔다. 1990년 SAF는 중앙교섭단위를 해체했고, 1년 뒤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를 철수시켰다. 스웨덴 노동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 또한 1980년대 들어 그 제도적 기반인 중앙단체교섭 체계가 와해됨에 따라 더 이상 작동될 수 없었다. 그러나 LO는 중앙단체교섭이 와해된 원인인 자본주의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기득권들의 방어를 넘어서는 공세적인 운동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위기의 원인을 직시한 계급 통합적 운동보다는 자본의 위기에 조응하는 계급내부 특수이익 방어에 머물렀던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공세에 직면한 LO의 모든 요구는 (불황기에 불가능해진) 더 많은 재정지출과 중앙단체교섭 복원을 요구하는 즉자적인 방어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고, LO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반복적인 패배를 경험하며 쇠퇴했다. 반면 사민당의 오랜 집권에도 불구하고 학계, 언론계 등의 지식인사회 영역에 뿌리내린 오랜 부르주아적 권력은 건재했다. 거대하지만 오랜 집권과정에서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혁신의 전망을 세우지 못한 노동자운동은 거센 신자유주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소련사회주의권 붕괴 이후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어 이어졌고, 2000년대에 이르러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은 이미 여타 유럽연합 소속국가들의 사회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와 통화주의적 규범주의 정책의 전면화 1970년대 불황기에 스웨덴 사민당 정부와 우파정부는 모두 케인즈주의적인 수요부양정책을 가교로 삼아 불황을 건너뛴다는 일명 가교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가교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어 사민당 정부는 1980년대에 이른바 ‘제3의길’을 내세우며, 통화주의적인 규범정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제3의길 정책의 핵심은 ‘규범정책’이라고 불리는 시장주의적 정책개혁을 도입하는 것이다. 즉 완전고용보다는 물가안정을 중시하고, 단기적 임기응변적 처방(주로 케인즈주의적이거나 사민주의적 처방들)보다는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스웨덴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제3의길 정책 역시 1980년대 말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동산-금융거품을 야기함으로써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 후 1990년대 초반에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로써 스웨덴은 1992년에 제3의길 정책의 근간이었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 변질된 형태로 도입된 임노동자기금 또한 이때 폐지된다. 1993년부터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채택하였다. 또 1994년에 집권한 사민당 정권은(1994년~2006년)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개혁을 단행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이는 1990년대 들어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 또는 (시장)규범 정책적 합의를 사민당도 확고하게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LO는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왔다. LO는 특히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면서 수요부양정책을 요구했고, 무력화된 중앙집권적 단체교섭체계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러나 LO의 반대는 별다른 성과를 못 보고, 1990년대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자 LO는 점차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1996년 LISA프로젝트 보고서에서 LO는 “과도한 임금상승을 자제해야 하며, 노동시장정책은 인력의 이동성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약평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빠지면서 스웨덴 모델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소개하는 논의가 간혹 있다. 하지만 스웨덴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외부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보수주의적인 통화정책과 거대자본 중심의 성장주의적 경제정책이 결합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스웨덴 모델이 1980~90년대에 실패하면서 선택한 대안이 신자유주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신자유주의가 곤경에 빠진 상황을 놓고 스웨덴을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웨덴 모델은 말하자면 ‘일국 사민주의’인데, 그 골간은 일국수준의 계급타협에 기반한 국민경제적 성장모델이다. 스웨덴 모델은 자본주의적 성장과 수출지향 공업화전략을 기반으로 성립했다. 스웨덴의 경제모델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면서도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불황기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 본연의 모습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케인즈주의적 수요관리정책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민당 내에서조차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일국적인 사민주의를 실현시키는 전제조건이었던 강한 고정환율 규범과 일국적인 금융통제체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초민족적인 금융세계화의 결과 사민주의적인 계급타협은 경제적인 토대를 잃어버리고 크게 변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웨덴 모델을 가능케 했던 다른 한 축은 강력하고 거대한 노동조합과 사민당정권의 코포라티즘 체제다. 그런데 스웨덴의 강력한 노동조합-사민당 권력은 애초부터 거대 법인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민경제적 성장모델과 생산양식을 바꾸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제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는 계급타협을 추구했다. 그 대신 노동조합-사민당 권력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몫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복지정책-정치에 힘썼다. 문제는 이러한 복지 분배정책-정치가 계급 내 분할과 갈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고유한 문제점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복지정책은 필연적으로 비용부담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계급 간 분배개선에는 어느 정도의 구조적인 제한선이 있고, 계급 내 분배를 강화하게 된다. 복지의 수혜자와 부담자의 이해가 충돌하고,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실업자-취업 노동자, 노동빈민-상위계층 노동자 사이에서 수혜계층과 부담계층의 이익이 갈등을 빚는다. 그 결과 복지정책-정치는 계급적 통합력을 형성하거나 계급주체 형성에 기여하기보다는 계급 내부 분할과 갈등을 양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복지정책-정치는 자본주의 지배체제와 함께 위기에 빠지면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분할을 확대한다. 나아가 이렇게 분할된 노동자 계급대중은 자본가 내부의 갈등에 손쉽게 동원되어, 노동-자본-국가가 연합하여 다른 노동계급 집단을 공격하는 데 이르기도 한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1950년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수출중심의 금속산업 자본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건설노동자들과 수출기업 소속의 저임금 금속노동자들이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국면은 나중에는 수출기업 자본가 그룹과 금속노동자들이 노동-자본 연합을 맺고, 전투적인 건설-고임금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던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요구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민간부문 남성 노동자들이 민간부분 사용자협회 SAF 및 사민당정권과 연합하여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발단은 생산성이 낮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높은 금속노조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스웨덴 총연맹인 LO의 금속노조가 민간부문 사용자협회인 SAF-사민당 정권과 손을 잡고 공공부문 노조를 민간부문에 기생하는 집단이라고 비판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물가상승과 최저임금' 자료집은 물가상승의 원인을 짚어보고,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생활고를 겪을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분석하면서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아닌 민중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또한 최저임금과 임금인상투쟁이 함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담고 있습니다. <목차> 1. 물가상승의 원인과 파급효과 ①물가상승 현황 ②물가 상승의 원인 ③물가 정말 문제인가? ④물가상승과 노동자의 생활고 2.통화정책적 대응의 문제점 ①실패한 정부 물가관리 정책 ②저환율 고금리 정책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③물가문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법과 민중적 해법 3.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실업자가 늘어날까? ①최저임금 인상하면 중소영세업체들이 망한다? ②최저임금인상은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③한국의 최저임금 수준 4.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공동투쟁 ①경제위기 이후 변화 ②임금단협투쟁과 결합된 최저임금 투쟁 ③최저임금투쟁 한 걸음 더 앞으로
한미FTA 10문 10답 발간사> 우리는왜한미FTA를반대하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006년 이래 뜨겁게 타올랐던 한미 FTA 반대 물결은 한동안 소강 상태입니다. 이대로라면 한미 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정부는 이미 44개국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FTA 대상국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국 간 협상에서 이익균형만 잘 맞추면 FTA는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대책만 잘 마련하면 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FTA의 핵심적 문제점을 감춥니다. FTA는 단순히 국가 간 통상전략이나 부문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시작해서 한미 FTA로 완성된 미국식 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와 서비스·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포괄합니다(질문1). 이에 따라 자본에게는 국경을 오가며 막대한 이윤을 누릴 자유가 보장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굴레가 강요됩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자본도피와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FTA가 체결되면 수출경쟁력을 갖춘 재벌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만 경제 전체적인 성장과 고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질문2, 질문3). 따라서 FTA가 1997년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질문5). 한미 FTA는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특히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질문4). 또 한미 FTA에 포함된 각종 투자 자유화 조치들은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질문6). 이와 관련하여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대폭 강화되고 의료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질문8).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한EU FTA도 한미 FTA 못지 않은 파괴적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질문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당면한 한미 FTA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을 저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FTA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별 FTA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질문10, 질문7). 이 소책자는 이상 10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각각의 질문 당 4-5쪽 분량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했고 사이사이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소책자가 한미 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운동의 물결을 다시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5월 31일 사회진보연대
한미 한EU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서 2011. 4. 11에 발표한 '한EU FTA 50개 점검과제' 입니다.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대비 4.7% 상승(전월대비 0.5% 상승)으로 발표되면서 물가문제가 운동진영의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실 생활물가 상승은 4.9%(2월 5.2%)로 더 높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 초기 유가가 145달러까지 폭등하고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생활물가가 폭등하자 52개 생활필수품의 가격( ‘MB 물가’)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3월 7일 발표에 따르면 MB 물가는 지난 3년간 20% 이상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1.7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노동자, 특히 소비가 주로 생활필수품에 한정되는 저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 악화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신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물가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라마다 사정은 확연히 다르다. 몇 나라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들어 2%대(3월 2.7%)를 기록하고 있지만, 가격등락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대(3월 1.2%) 초반을 기록하고 있어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다. 그것도 2010년 1.6%(근원물가상승률 1.0%)에 비해 약간 상승한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2년간 미국 정부의 정부지출 증대를 통한 경기부양정책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야기할 것이라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렀으며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부채권 수익률도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러 금융시장은 보수주의자들의 미국의 정부부채에 대한 걱정을 비웃고 있다(정부채권 수익률이 낮다는 것은 미 정부가 발행하려는 정부채권을 안전자산으로 여겨 여전히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한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사가 미 정부부채에 대해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채권 수익률은 오히려 더 떨어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애처로운 표준(Poor Standards)이라고 S&P사를 조롱하고 있을 정도이다. 즉 미국의 경우 통화증발과 재정적자를 통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지도 않고 있고, 금융시장이 미 정부의 정부부채를 걱정하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수요부족과 여기에서 비롯한 지지부진한 성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도 미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로지역의 3월 물가상승률은 2.7%이고, 유럽연합 물가상승률은 3.1%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높은 물가상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지난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4%로 치솟았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등귀로 인한 비용인상형 물가상승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1/4분기 성장률이 9.7%로 예상보다 높아 수요견인형 물가상승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는 인도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인도는 3월 물가상승률이 9%에 이르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8%대에 이른다. 즉 인도, 중국 같은 개도국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초과수요가 오히려 문제가 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크게 보면 미국, 유럽 등은 여전히 수요부족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낮다. 반면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은 경제위기의 영향이 덜했고 이미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초과수요 문제가 야기되면서 물가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특히 원유나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은 각국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는 주로 개도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해서는 가동률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을 한 상태이지만,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해서는 여전히 경제위기의 영향권에서 확실히 탈피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초과수요로 인한 물가앙등의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해야겠다. 또한 이제까지 진행된 물가상승도 원유가 및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과 구제역 등 일시적인 원인에 의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이었고,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3.1%로 정부 물가 관리선을 크게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어 보인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대로 생필품 중심의 물가는 크게 올라 저임 노동자층의 생활상의 곤란은 매우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의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물가관리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환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에서도 ‘물가폭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며 암묵적으로 이에 동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미국으로 치면 보수당인 공화당에서나 주장할 정책이다. 이런 주장은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진보진영의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장이 언제나 고용증대를 가져오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분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성장 속에서 고용이 늘거나 분배개선을 이룩할 수는 도저히 없다. 현재 세계적인 차원에서 실업 및 저임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생산성 저하에서 오는 성장 및 자본축적 둔화 등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물가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서 연유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생태 문제 등을 야기할 무조건적인 성장정책을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무턱대고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생태친화적 성장 속에서 (시장에 의한) 고용증대와 분배개선을 도모하면서 당분간 노동자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한다면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현재 금리인상과 환율인하를 무턱대고 주장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원유나 국제원자재가의 지속적인 상승 등의 경우 적절한 환율인하는 필요할 것이나 물가인하를 위해 일부러 환율을 인하할 필요는 없다). 일종의 긴축정책인 이러한 정책은 고용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물론 저성장 속에서도 일자리 나누기나 실질 임금 보전 등을 통해서 고용문제나 저임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한다거나 이런 문제를 일정하게 개선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 노동자운동의 조직 역량으로 볼 때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러면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주장하고 투쟁해야 할까? 물가상승을 이유로, 생활물가 상승을 이유로, 그리고 MB 물가 상승을 이유로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현재 자본의 어마어마한 이윤에 비춰 봤을 때 노동자들이 상당한 임금인상을 한다고 해서 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잘만 한다면 조합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 투쟁인 임금인상 투쟁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그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 내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가상승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기회인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투쟁, 최저임금투쟁과 조합원들의 임금인상 투쟁의 결합, 그리고 이런 투쟁 속에서 노동자 내부의 단결의 확대 강화를 기대한다.
FTA 글로벌 네트워크는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나 한미 FTA 재협상이 2010년 12월 타결되어 2011년 중 양국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다. 양국의 여러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로 발효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협정문 한글본 번역 오류가 잇따라 발견되고 정부가 잠정발효 시점을 2011년 7월로 EU와 구두합의한 것이 확인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는 한EU FTA도 조만간 국회 비준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칠레,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모두 44개국과 FTA를 체결한 상황이다. 최근 3월 21일에는 한페루 FTA 협정문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터키, 콜롬비아, 캐나다, 걸프협력회의(GCC), 멕시코 등 12개국과의 FTA도 조속한 타결을 추진 중이다. 그밖에도 정부는 시장 선점과 자원협력을 위해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FTA 추진국을 지속적으로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한일, 한중 FTA와 환태평양파트너십(TPP)도 검토 중이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은 노무현 정부의 선진통상국가론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무역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경제의 활로는 오직 수출경쟁력의 확보와 세계경제의 분업화 추세에 적응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97년 경제위기ㆍ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특히 2007-09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각국이 경기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이러한 논리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FTA가 한국 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무역·금융 자유화와 산업의 서비스화를 가속화할 FTA는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운동과 전문가들이 한미 FTA의 부정적 효과를 비판했는데, 대개는 국가 간 통상전략과 부문별 이해득실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글은 1997년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하면서 2007년 이후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FTA가 야기할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FTA 추진 과정 1992년 EU의 출범과 1994년 NAFTA의 발효를 계기로 지역적 조건에 따라 세계화를 구체화하려는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경제위기·외환위기 극복이 절대 과제였던 김대중 정부는 세계적인 지역주의 확산으로 인한 대외 수출 여건의 악화를 방지하는 동시에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FTA를 추진했다. 이러한 한국의 FTA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선진형 통상국가론’으로 본격화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개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여 발효함으로써 각 협상 별로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하여 전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라 2003년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수립한다. 동시다발적 FTA 전략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미주, 유럽, 남미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탈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었다는 사정이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력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고 중국과 같은 후발 경쟁국들의 급성장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정체되어가는 상황에서 FTA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FTA 전략의 정점은 한미 FTA였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능동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선진 제도를 받아들이고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여 국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인식했다. 즉, 한미 FTA가 ▲선진기술 및 자본의 도입을 통한 혁신선도 업종의 성장 및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 ▲비교우위를 지니거나 성장잠재력 및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지닐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동시에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했다. 한미 FTA를 정점으로 하는 FTA 추진 전략은 단순히 재화의 원활한 거래뿐 아니라, 자본 및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와 서비스의 이동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이는 곧 세계화의 심화와 가속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상품분야의 관세철폐뿐만 아니라 투자, 서비스,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을 WTO의 관련 기준과 일치시키는 포괄적 FTA를 지향한다. 포괄적 FTA 전략은 WTO 체제가 다루는 범주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WTO 플러스’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협상 상대국(선진국)의 기준이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사회 전반에 도입하여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2007-09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경제가 대외 충격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한국경제는 2008년 4/4분기부터 2010년 3/4분기 사이에 1분기 평균 5.7%의 GDP 손실을 기록하면서 성장세가 장기추세선을 이탈한다.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충격으로 장기 성장추세를 이탈한 데 이어 2007-09년 위기로 다시 한 번 성장추세를 이탈한 것이다. 한국경제는 위기 이후 급락하다가 비교적 빠르게 회복했지만, 이는 상당 부분 대규모 재정투입에 기인한다(한국 재정적자 규모는 2008년 GDP 대비 1.5%에서 2009년 4.1%로 급증했다). 또한 위기 시기 한국의 경제성장률 변동성은 OECD 국가 중 9번째를 기록했다. 위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사상최대의 무역흑자가 발생하자 수출이 한국경제를 지탱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한다. 또한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감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는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한미 FTA의 조속한 발효가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재협상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EU FTA를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한미 FTA 비준을 압박하는 동시에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FTA 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대체로 계승하면서도 체결 대상을 다면화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즉, 미국, EU와 같은 거대경제권 외에도 자원부국(걸프협력협의회(GCC), 호주, 뉴질랜드, 페루, 콜롬비아 등), 동북아 국가, 대륙별 거점 국가(터키, 러시아, 이스라엘, SACU(남아공, 보츠나와, 레소토, 나미비아, 스와질랜드))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자유무역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 등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확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무역이 국민경제에 ▲소비자의 후생 증가 ▲자원의 재배분을 통한 경제의 효율성 증대 ▲규모의 경제 실현 ▲경쟁 강화를 통한 효율성의 증가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은, 한미 FTA는 향후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약 6.0% 증가시키며, 대미 무역흑자는 46억 달러 확대시키고, 약 33만 5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 이들은 한EU FTA가 체결되면 장기적으로 실질 GDP가 약 5.6% 증가하고, 15년간 대EU 무역흑자가 연평균 3.61달러 확대되며, 취업자가 25만 3천 명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1997년 위기와 장기 침체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대로 FTA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처한 원인을 분석해보자. 아래 <그림 1>에 나타나 있듯이, 한국경제는 1979-80년과 1997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또 2001년과 2009년에도 각각 미국의 신경제 거품과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이 급락하였다. 추세적으로 보면 1980년대까지 8%를 상회하던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0년대에는 4% 내외에서 진동한다는 사실도 관찰된다. 그럼 이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근원적 추세를 분석해보자. <그림 2>에서는 1979-80년 위기와 1997년 위기를 전후하여 이윤율 및 자본생산성의 하락, 노동생산성 및 임금의 둔화, 그리고 자본-노동 비율의 증가가 관찰된다. 이를 순환적 위기와 구별하여 구조적 위기로 지칭할 수 있다. 자본에 대한 이윤의 비율로 정의되는 이윤율의 하락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한계이자 ‘공황의 궁극적 필연적 원인’이다. 이윤율은 자본생산성과 이윤분배율의 곱으로 분해되는데, 이윤율 하락은 대개 추세적 요소로서 자본생산성 저하와 관련된다. 1979-80년 위기는 1970년대 재벌 중심의 중화학공업화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채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자유무역은 생산력 격차에 따른 부등가교환을 본질로 하고 무역적자의 누적으로 현상한다. 후진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차관 같은 방식으로 외채를 도입한다(자본수입). 그래서 누적되는 무역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로 보전해야 하는데, 그런 외채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바로 외채위기인 것이다. 1997년 위기는 1990년대 재벌의 과잉 중복 투자가 야기한 이윤율 급락에 따른 경제위기와 외환위기가 결합된 결과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촉진하면서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고평가 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경제는 1997년 환율이 폭등하여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인위적인 고평가 정책의 이면에서 한국경제와 미국·일본경제 사이의 생산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의 폭력적 조정이 일어난 것이었다. 1997년 이후 이윤율은 하락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자본축적률 하락과 구조적 실업을 야기한다. 아래 <그림 3>에서 보듯이 1997년 이후 한국경제의 자본축적률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10년 이상 매우 낮은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이윤율 하락이라는 요인 외에도 ▲해외 직접투자와 같은 자본 이동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위주의 투자행태 ▲기업결합(M&A) 중심의 투자행태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배당금의 증가와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행태 ▲경제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실물투자의 기피 현상 등이 실물투자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파악된다. 자본축적률의 하락은 구조적 실업을 낳고, 이는 다시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노동소득분배율을 악화시키고 불안전 노동을 확산한다. 한편 환율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800원에서 1900원으로 폭등하다가 1998년 말에 1200원까지 하락한다. 그 후 환율은 계속 하락하여 1999-2003년에는 1200원, 2004년에는 1100원, 2005년에는 1000원, 2006-07년에는 900원에 도달한다(<그림 4> 참고). 외환위기가 진정되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수입과 무역흑자를 통해 달러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은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이는 또 다른 모순을 파생했다. 한국경제는 금융자유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수입하게 되었지만,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 및 국부유출이라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 국내자본의 해외도피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 구조조정과 평가절하를 통해 한국경제는 수출경쟁력을 회복하여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이는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했다. 그런데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금융자유화에 따라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확대되면서 평가절상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역흑자나 환율하락(평가절상)은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결코 한국경제의 생산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2006-07년에 환율이 900원으로 하락하고 2008년에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하자 무역수지도 적자로 반전되었다. 또 2004년부터 증시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구가하자 외국인은 매도세를 지속하는데, 시가총액 중 외국인 비중이 2004년 40%대에서 2008년 20%대 후반으로 하락했다(<그림 5>). 그 결과 다시 환율상승(평가절하) 압력이 가중됐다. 금융자유화와 금융위기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를 구조적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효과라는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금융자유화, 수출-재벌 주도 성장 전략, 산업의 서비스화라는 측면에서 FTA가 미칠 효과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997년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시장 자유화를 통해 ‘신흥시장’으로 변모한다. 앞의 <그림 5>에 나타나 있듯이 1997년 위기 이후 외국계 기관투자가와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가 급속히 확대되는데, 이는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 확대(1997.12)와 폐지(1998.5)에 따른 결과다. 이로 인해 국부유출과 자본도피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아래 국제투자대조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외국인이 소유하는 국내자산이 ‘국부유출’의 지표가 된다면, 내국인이 소유하는 국외자산은 ‘자본도피’의 지표가 된다. 내국인의 대외투자에서 외국인의 국내투자를 제한 값인 순국제투자는 1997년 이후 큰 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그림 6> 참고). <표 1> 국제투자대조표(IIP)는 ‘일정 시점에서 한 나라 거주자의 비거주자에 대한 금융자산(대외투자) 및 금융부채(외국인투자) 잔액’을 보여준다. 국제투자대조표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변동한다. 하나는 경상거래 및 자본·금융거래와 같은 거래적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환율 및 가격의 변동에 따른 비거래적 요인이다. 국제투자대조표는 국제수지표(BOP) 중 금융계정 항목과 개념 및 포괄범위가 일치하므로 거래적 요인만 고려한다면 순국제투자는 국제수지 상의 경상수지 변동분만큼만 증감할 것이다. 아래 <표 2>에서 2002-10년 중 경상수지 누계가 약 1,740억달러 흑자이므로 거래적 요인에 의한 변동만 반영할 경우 2001년 순국제투자 약 -560억 달러는 2010년 약 1,180억 달러가 되어야 하나 실제 잔액은 약 -1,370억 달러다. 이 둘의 차액 약 2,550억달러는 비거래적 요인, 즉 환율·가격 변동에 의한 것이다. 이 액수는 곧 외국인의 국내투자 평가이익과 내국인의 해외투자 평가이익의 차액을 의미하는데, 같은 기간 중 발생한 무역흑자 누계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한편 <그림 7>에서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임을 알 수 있다. 증권투자의 경우 성장유발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 반해 변동성이 커서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자본유입 형태별 성장 파급효과는 직접투자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직접투자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투자유발효과가 낮아지는 추세다. 이는 직접투자의 성격이 최근 들어 단기자금화하고 M&A형 유입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는 장기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증가시킴에도 불구하고 자본축적률을 증가시키지 않을뿐더러 자본 이동의 불안정성으로 오히려 축적률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증가된 생산성이 실물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축적률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분배의 악화만 가져올 뿐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임금을 감소시키고 비정규직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현재와 같은 성격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장기적인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특히 외국인의 투자 행태가 단기화되고 대외여건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 외국인 투자 자금의 빈번한 유출입이 금융시장 및 거시경제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 자금 흐름의 불안정성 확대는 기초 경제 여건에 관계없이 국제수지 및 환율의 급변을 초래함으로써 거시경제의 불안정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 금융서비스 부문 협상은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된 금융개방 기조를 재확인하는 한편 국내 금융제도·규제체제를 재정비하는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이러한 금융자유화 조치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FTA 체제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새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파생금융상품을 금융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제조,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노무현 정부하에서 제정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발효되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는 원칙적으로 금융서비스 관련 수량규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규제 방안에 많은 제약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FTA를 통한 투자 자유화 확대는 한국경제의 성장·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낳기보다는 국부유출 및 자본도피 경향을 강화할 우려가 높다.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금융세계화 기조를 유지·강화하는 FTA는 한국경제의 불안정성과 금융위기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무역자유화와 수출-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 1997년 이후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 따라 한국의 무역규모가 급증한다. 수출입을 합한 한국의 무역규모는 1997년 2천 8백억 달러에서 2002년 3천7백억달러, 2007년 7천 2백억 달러, 2010년 8천 9백억 달러로 급증하였다(<그림 8> 참고). 1997년 이후 무역규모의 가파른 성장에 따라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도 심화됐다. 2000년대 전반까지 70% 대에서 등락하던 무역의존도는 2006년 최초로 80%를 돌파한 이후 2007년 86%, 2008년 111%, 2009년 99%로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그림 9> 참고). 동시에 1970-80년대 40-50% 수준으로 유지되던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1990년대 전반기까지 내수 확대로 다소 감소세를 보이다, 2001년 이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41%, 111%, 93%, 69%, 73%, 64%로 대단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그림 10> 참고). 이상의 사실로부터 한국경제가 무역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수출을 주도한 산업은 무엇인가? 아래 <표 3>을 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반도체, 자동차의 수출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2000년 이후에는 선박, 자동차, IT 제품이 꾸준히 수출 상위 5대 품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출 상위 5대 품목의 수출비중이 1990년대 30%대에서 2000년대에는 40%대로 상승한 것을 볼 때, 주요 품목에 대한 의존도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에 따라 국내 산업구조가 국제적 비교우위를 지닌 산업 위주로 재편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반도체·자동차·IT 등 선도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재벌이 크게 성장한 반면, 여타 산업이나 중소기업은 성장이 지체됐다. 한편 1997년 이후 국내자본의 해외 직접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림 11> 참고).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앞서 확인했듯이 국내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국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1997년 이후 자본 이동 자유화 조치에 따라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자본축적률을 하락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를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이 2009년 말 현재 전체의 41.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이 46.0%를 차지하는데,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저임금 활용 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을 시계열로 살필 때 가장 특징적인 점은 현지시장 진출의 비중이 최근 들어 크게 증가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현지법인의 대 한국 수입이 한국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기준 30%에 달한다. 반대로 현지법인의 대 한국 수출은 한국의 총수입의 11.9%에 달한다. 이러한 현지법인과의 수출입은 큰 폭의 흑자를 유지하여 전체 무역수지 흑자 기조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해외 생산의 확대로 인한 기업 내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수출이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과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990년 0.68에서 1995년 0.70으로 증가하였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생산이 확대되면서 2000년 0.63, 2003년 0.62, 2008년 0.53으로 하락하고 있다. 부품·소재 산업의 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소재 및 조립가공 제품을 중심으로 수입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저하되는 요인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수출기업의 호조가 내수기업의 성과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생산 현지화는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대기업의 가격경쟁력과 매출액을 제고하는 데 효과적이나 1, 2차 기업의 동반 해외 진출로 수출이 감소하고 국내 산업 공동화를 낳는다. 대기업의 해외 조달 확대는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반면 범용 부품의 수입 증가로 인해 1, 2차 내수 경쟁의 격화를 낳는다. 또 고환율 정책은 완제품 수출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지만 원자재와 핵심 부품소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원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로부터 수출 재벌의 활황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소득, 고용이 호전되지 않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가 체결되면 생산기지의 국외 이전이 더욱 촉진될 것이다. FTA는 투자 자유화를 위해 투자자의 소유권을 대폭 보장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자동차 부문의 경우 국외 현지생산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때 기존 한국 공장의 수출 물량은 미국 내 수요 증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맞추어지기 때문에 생산 신축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그리고 생산 신축성을 위해 비정규직 고용 유인이 더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FTA의 관세철폐 효과로 무역이 증진되어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미공개 보고서인 「기발효 FTA와 한미 FTA 발효 시 경제적 효과 분석」(2009.9)은 이전의 주장과 달리 한미 FTA 발효 15년 후 대미 무역수지가 71억 달러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기존 정부 주장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 각국 정부의 FTA 경제성장 효과 예측이 대단히 자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한미 FTA로 인한 자동차 부문의 수출 증대효과는 2007년 원안 타결 당시에도 크지 않았는데 지난 연말 재협상으로 인해 그 효과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요컨대, FTA를 통한 무역자유화의 확대는 수출-재벌 주도의 세계화를 가속화한다. 수출 재벌과 국민경제의 괴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FTA가 발효될 경우 한국경제의 성장, 고용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정부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서비스산업 개방과 선진화 수출 주도 성장 전략의 결과, 2009년 현재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는 세계 흑자국 중 7위, 아시아 신흥국 중에서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2009년 G20 피츠버그 정상회의는 세계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한 협력 체계’에 합의했다. 세계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무역적자국인 미국의 수입 축소와 흑자국인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내수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내에서는 한국경제의 중장기 발전전략으로 내외수 균형성장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내수 비중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소득유발 효과를 높여 수출과 내수 간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자는 것이다(수출호조→소득확대→소비진작→투자확대).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최근 수출 산업은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감소하고 있다. 이는 수출산업이 제조업에 국한되며, 제조업 부문에서는 산업고도화 및 기술발전으로 인한 취업유발효과 제고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성장과 고용창출력이 저하된 가운데 높은 대외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논리다. 문제는 한국경제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결과 서비스산업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고 생산성도 대단히 낮다는 사실이다. 도소매·음식숙박업 등의 비중이 높고 보건의료·금융 등 고부가가치 업종의 비중이 낮음에 따라 생산성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고 제조업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2000-07년 평균 제조업 대비 54.7%)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정부는 FTA를 통해 서비스 시장을 개방할 경우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산업간 융합이 늘어나고 제조업 생산과 서비스 부문에 대한 상호 투입의 비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제조업을 비롯한 전 분야의 경쟁력 강화의 선순환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수익성 있는 공공부문이나 보건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를 ‘신성장동력’으로 간주하여 개방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 선진화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낳는다. 1970-80년대 중심부 국가에서 서비스산업의 빠른 팽창을 주도한 것은 고기술의 지식집약적 서비스 부문, 그중에서도 주로 생산자 서비스 부문이었다. 반면 유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부문은 낮은 성장을 보이며 고용 비중 또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때문에 교육수준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는 높은 실업률 하에서 오히려 노동시장 접근 기회가 줄어들었다. 또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새로운 통제 기법이 도입된 결과, 과거에 비해 높아진 숙련요구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산업의 변화는 고용형태의 변화를 초래하여 파트타임, 기간제, 교대제, 임시직 등 불안전 고용의 증가를 초래했다. 특히 파견근로제가 정착함에 따라, 기업의 핵심적 업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경비, 청소, 식당 등의 업무 영역에서 고용불안이 확산된다. 또한 서비스 노동과정에 대한 내적 통제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헌신을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 이는 고객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진 것과 연관된다. 다른 한편으로 복지 관련 사회서비스가 시장화되면서 감정노동이나 돌봄노동과 관련한 젠더 문제가 파생되기도 한다. 서비스산업 개방과 관련해서는, 특히 초민족적으로 활동하는 제약회사ㆍ보험회사와 관련된 보건의료 개방이 핵심적 문제다. 한미 FTA는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간보험 상품을 포괄적 허용(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EU FTA도 한미 FTA와 유사하게 금융부문 협상을 마무리했다. FTA가 발효되면 현재 무규제 상태에 놓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공적 건강보험이 침해될 가능성은 물론,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피소 가능성,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의 존재 자체로 인한 정부 규제 위축 효과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한미 FTA는 보건의료서비스를 ‘미래 유보’로 인정하고 있으나, 경제자유구역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한 관련 특례는 예외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 FTA가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영리병원, 약국 혹은 이와 유사한 시설이 설치될 경우 이에 관한 규제 조치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또한 한미 FTA는 초민족적 제약회사의 이해에 적극 부합하는 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의약품 접근권을 심각히 침해한다. 한미 FTA는 의약품의 보험 적용과 가격 산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모든 특허의약품의 ‘혁신성’을 인정함으로써 약가 상승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또 지적재산권 관련 대표적 독소조항인 허가-특허 연계 제도에 따라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가 대폭 보장되는 반면 의약품 접근권이 제한된다. 사회운동의 대응 지금까지 우리는 금융자유화, 수출-재벌 중심 성장 전략, 서비스 개방을 중심으로 FTA가 한국경제에 끼칠 부정적 효과를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심화와 가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재 정부·여당은 FTA 체제의 중핵을 이루는 한미 FTA와 한EU FTA를 조속히 국회 비준하려고 한다. 민주당은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협정안에 대해서는 ‘선대책 후비준’이라는 기존의 당론을 유지하되 2010년 타결된 재협상안을 ‘굴욕·밀실·기만·불평등·퍼주기 협상’으로 규정하여 폐기하자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미 FTA범국본은 4월 임시국회에서 한EU FTA 국회 비준에 대응하는 한편 한미 FTA 국회 비준이 시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6월에 투쟁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그런데 범국본은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대중투쟁의 동력이 소진된 상황에서 FTA 대응 기조를 ‘이명박식 졸속 재협상 반대’로 설정함으로써 민주당을 한미 FTA 반대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민주당이 ‘반FTA’ 공조 대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운동은 당면한 한EU FTA,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막아내기 위해 투쟁 흐름을 살려야 한다. 민주노총이나 전농, 진보정당 등 주요 사회운동 조직들은 5-6월 FTA를 이슈로 집중 투쟁 계획을 세우고 다시 한 번 교육·선전과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대중적 투쟁을 통해 FTA 반대 여론을 확산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운동은 ‘FTA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특정 FTA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일부 진보학계와 사회운동에서 거론되는 대안적 지역주의나 공정무역론은 대안이 될 수 있나. 우선,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와 같은 대안적 지역통합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지역통합이 가능하려면, 우선 유럽연합(EU)에서 독일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 헤게모니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의 민족 갈등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이는 현재로서 무망하다. 무엇보다 한중일 3국이 대미 수출 달러 환류를 통해 미국의 이중적자 구조를 지지하는 상황, 특히 미국이 ‘개방적 지역주의 구상’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이와 같은 구상은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역통합 모델(ALBA-TCP)이 한국이나 동아시아에 적용될 수도 없다. ALBA의 경우, 단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지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2008년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신통상법(‘Trade 법안’)을 참고삼아 한국에서도 통상 관련한 원칙과 기준을 법제화하자는 구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되는 ‘공정무역’이 바람직한 무역의 원리를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정무역’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품목에 대해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자’는 소비자운동에서 ‘공정무역’ 개념이 사용된다. 둘째, 미국이 1980년대 이후 기존의 역개방 정책을 철회하면서 ‘상대방이 개방하는 만큼 우리도 개방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때 ‘공정무역’ 개념이 동원된다. 그런데 무역에서 ‘불평등교환’이 발생하는 것은 (경제외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국가 간 기술력·생산력 격차에 따라 부등가교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에서 부등가교환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술 격차가 축소되어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연대를 통해) 국가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함으로써 후진국의 기술진보를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소비자운동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공정무역론은 부등가교환을 지양하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의 의제에 미달한다. 또한 ‘쌍방의 동등한 개방’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되는 공정무역론은 개방 부문과 수위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 갈등에 휘말리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만일 이러한 발상을 실행에 옮기려 할 경우 2011년 국회 비준 과정 또는 2012년 총선·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권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실행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 무역이나 통상과 관련한 대안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려면 무엇보다 노동자 농민 등 대중운동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매개로 대중투쟁을 활성화하면서 정세의 주도성을 확립해야 한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기존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다자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기존에 미국은 아세안+3과 같은 아시아만의 공동체에 일본 등 친미 국가들을 간접 조종하여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태도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 내의 다자적 협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도, 호주, 뉴질랜드, 미국이 포함되는 동아시아 구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아시아 주변의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도 참여했다. 이는 아세안+3을 통해 지역 내 헤게모니를 추진하는 중국과 경쟁하는 구도이다.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환태평양파트너십(TPP)을 중심으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기존 자료를 요약 정리했다. [참고] 아세안+3 정상회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일본, 중국, 한국 등 3개국을 포함시킨 정상회의. 동남아지역의 공동안보 및 자주독립 노선의 필요성 인식에 따른 지역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1967년 설립된 아세안(ASEAN)은 창설 30주년을 계기로 1997년부터 정상회의의 개최시마다 한중일 정상을 초청하여 회의를 염. ASEAN 회원국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 [참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2005년 처음으로 개최됨. 원래 아세안+6 정상회의였으나, 2010년 미국과 러시아의 공식 참가가 결정됨 현재 18개국(아세안+3, 인도,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미국). 미국무역대표부의 보고서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2011년 대통령 통상 정책 의제 보고서」는 미국에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또 다시 지적했다. APEC 회원 21개국은 2009년 세계무역의 43%, 세계 GDP의 55%를 차지했다. 2010년 미국과 APEC 회원국과의 상품 무역규모는 2조 달러였고, 서비스의 경우 2780억 달러(2009년 기준)에 이른다. 보고서는 아태지역에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촉진하는 것이 APEC의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2010년 일본 APEC 정상회의의 성과를 이어받아서 2011년 미국 APEC 정상회의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야심찬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고서는 미국은 APEC을 통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 통합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FTAAP는 TPP과 같은 존재하는 지역협정의 발전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국무역대표부는 TPP도 강조했다. 2009년 12월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무역 협정인 환태평양파트너십 참가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환태평양파트너십을 높은 수준의 포괄절인 지역협정으로 만들려고 한다. 보고서는 이 협정이 완성된다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경제 통합의 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새로운 TPP 협정이 완성된다면 이전의 무역 협정에는 없었던 새로운 조항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미국 기업들과 새로운 시장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만드는 조항, 규제 시스템을 미국 기업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조항,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일자리 창출과 세계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조항 등이 포함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TPP의 참가국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는 모든 TPP 참가국들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APEC의 FTAAP 논의 2010년 11월 일본에서 개최된 18차 APEC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지역경제 통합을 다시 강조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특히 APEC 정상들은 FTAAP 실천을 위해 APEC이 ‘부화기’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화기라는 표현은 반드시 APEC을 통해서 지역경제 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인정하고 이를 APEC이 촉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APEC에서 FTAAP를 주축으로 하는 경제공동체 형성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르 목표 이행 평가와 APEC 경제통합과제』라는 보고서는 올해 APEC 의장국인 미국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FTAAP에 상당히 신중하던 미국이 2007년경부터 입장을 바꿔 적극적으로 변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①FTAAP를 도하개발아젠다(DDA)의 촉매로 활용하고자 하고자 한다. 이미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위해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1차 APEC 정상회의를 소집하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이라는 대안이 있음을 EU 등에 과시한 압박전략을 사용한 바 있다. ②동아시아 소지역주의 확대에 대한 경계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패권을 상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인 FTAAP 구상은 잃을 것이 없는 선택이다. 다만 미국은 FTAAP 이행 시 기술적인 제약이 따르는 APEC 주도의 협상을 선호한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다양한 접근을 모색할 것이다. 최근 미국은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가하고, TPP에 참가하는 등 지역경제협력체 활용을 위한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한편 일본 역시 APEC의 경제통합 활동을 통하여 자국경제 성장의 활로를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일본은 FTAAP 논의 초기 단계에는 다소 관망자적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역사, 정치, 경제적 관계가 복잡한 한국이나 중국과의 FTA 체결이 어렵고, 높은 수준의 개방과 제도개혁이 요구되는 미국, EU 등과의 FTA 추진도 용이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본은 APEC의 경제통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통해 국내 경제개혁과 FTA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현 단계에서 FTAAP 논의가 장기적인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연구대상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중국은 인접지역과 개도국을 우선으로 하는 자국 중심의 전략적 FTA 추진에 전략적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FTAAP가 추진될 경우 예견되는 높은 수준의 자유화 및 제도 개혁이 부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의 경제주도권 문제도 있다. 따라서 중국은 FTAAP 논의를 장기적 차원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며 논의 범주가 가능성 타진 수준을 벗어날 경우 FTAAP을 포함한 APEC의 지역 통합 논의 전반에 대하여 소극적 반대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TPP 추진 TPP는 2003년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가 협상을 시작하였고, 2005년 브루나이가 참여하여 2006년 4개국이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4개국의 TPP, 약칭 P4 또는 TPP4라고 부른다. 협약이 체결되자 4개국은 APEC 회원국에게 추가 참여를 요청했다. 2008년 호주, 페루, 베트남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2009년 미국에 오바마 대통령도 참여 의사를 밝혔고, 2010년에는 말레이시아도 뒤따랐다. 따라서 2010년부터 9개국이 새로운 TPP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2011년 11월 자국의 하와이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때까지 협상을 타결한다는 시한 목표를 정해두고 있다. 여러 보고서들이 미국의 TPP 추진의 공통된 배경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세계무역기구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다른 국가들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경제위기 이후 수출 확대를 통해 국내 경제의 어려움을 풀려고 하는 미국의 경제 정책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TPP를 기반으로 FTAAP를 형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TPP는 조기에 타결된다고 해도 미국에는 경제적으로 별다른 실익이 없는 FTA다. 말레이시아와 호주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시장규모가 미미한 국가이고, 협상대상 8개국 중 4개국과는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TPP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TPP가 성공적으로 타결되었을 경우 예상되는 전략적 이익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대하듯이 TPP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어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FTA로 기능할 경우, TPP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의 경제적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나중에 가입하는 나라들은 미리 만들어 놓은 TPP의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의 규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미국은 TPP를 추진했던 핵심국가인 싱가포르와 칠레와는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이고, 이들이 P4 협상의 토대로 삼았던 협정문은 이들 국가가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사용했던 것에 기초를 두었다. 따라서 P4 협정문은 미국식 FTA 모델을 따르고 있다. 또한 호주와 칠레도 미국과 이미 FTA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들 분야에서의 이들과의 추가적인 협상은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TPP 8개국 협상에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나라는 뉴질랜드와 말레이시아 2개국에 불과하다. 베트남, 브루나이는 경제발전 격차 및 규모의 차이 때문에 미국의 실질적인 시장개방 협상 대상국이 되기 어렵다. 결국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TPP는 최소한의 협상비용으로 아태지역을 포괄하는 FTA를 자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유도하여 체결할 수 있는 방안이며, 이를 바탕으로 추후에 상대적으로 시장규모가 큰 국가들을 추가 가입시킴으로써 무역개방과 시장 확대를 도모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TPP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을 비롯한 주요 참여국이 모두 농수산물을 주요 수출품목인 국가들인데, TPP가 높은 수준의 FTA를 추구하고 있으며, 농수산물 분야에서 양자 FTA를 넘어서는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상타결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TPP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더라도 현재로서는 미국 정치 사정상 의회 비준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 의한 협상결과의 수정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추가 회원국 가입을 유도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TPP를 통한 아태지역 무역자유화의 확산이라는 미국의 의도는 실현되기 어렵거나, 실현에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미 FTA가 미국의 국내 상황으로 장기간 동안 비준되지 않고, 반면에 TPP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회원국이 확대된다면 한국에게 TPP에 참여하라는 요청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통상정책의 무게중심이 한미 FTA와 같은 전략적 무역상대국과의 양자 FTA에서 TPP같은 선택적 다자 FTA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TPP의 진전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상황이다. 한편 TPP에 관심을 보인 일본의 참가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TPP 참가는 일본 농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실현할 일본 민주당의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대지진과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 국내 상황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