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장, 졸속매각 저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재건하자! 10월 19일 한국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는 시각, 산업은행 정문에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민유성 산업은행장 면담과 국정감사 참관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그 자리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이 날 국정감사에는 3,000여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박영태 공동관리인이 출석해 2009년 법정관리 과정에서의 회계조작 의혹, 구조조정, 향후 매각과정에 관해 증언했다. 박영태 공동관리인은 ‘아직 여유인력이 많다’며 매각과정에서 또다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산업은행 정문에서 장시간의 항의 끝에 마련된 산업은행 실무자와의 면담에서 산업은행은 11월 중으로 마힌드라로의 매각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0년 5월 매각 공고로 시작된 쌍용차 재매각에서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이하 마힌드라)이 8월 12일 단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9월 한 달 쌍용차에 대한 정밀실사 이후 매각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11월 중으로 매각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임이 산업은행을 통해 흘러나온 상황이다. 쌍용차 재매각에 대해 쌍용차 노동자들과 대다수 시민들은 ‘제2의 상하이차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 목표가 기술 확보라는 점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2005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3~4년에 걸쳐 1조 2,000억여 원을 투자하고 완전고용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기술 유출에 먹튀까지 발생했다. 마힌드라는 ‘제2의 상하이차’를 우려하는 여론을 의식해 투자와 개발 약속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안정 서약에 공증까지 받고도 3,000여 명을 해고하고 도망친 상하이차의 사례를 떠올린다면,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대책마련 없는 마힌드라의 약속 또한 믿을 것이 못 된다. 상하이차로 쌍용차를 부실매각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 산업은행과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일사천리로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쌍용차 투쟁이 한국 사회에 남긴 메시지를 다시금 환기하고, 고용보장과 졸속매각 저지를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할 때다. 10월 5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여의도 산업은행 옆에 비닐천막을 차리고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10월 4일~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쌍용차 정리해고와 재매각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쌍용차 문제를 전국화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기 위함이었다. 국정감사 일정은 끝났지만 비닐천막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힌드라로의 매각이 예정되어 있고, 매각 협상의 핵심 주체이자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가 바로 산업은행과 정부이기 때문이다. 마힌드라 현황과 쌍용차 인수 목적 마힌드라는 인도의 자동차 기업으로 자산 규모가 약 2조 4천억 원이다. 스포츠실용차(SUV), 농업용 기구(트랙터 등)를 판매하며 2009년 매출 약 3조 7천억 원, 순이익 약 2,200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56%를 차지하는 자동차는 180만 대(삼륜차 포함, 승용차는 20만 대)를 판매했다. 올해 순익은 5,500억 원 정도로 작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쌍용차 인수에 대해 마힌드라는 인수 의향을 밝혔던 어느 기업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취했다. 르노닛산이 공장 시설 확장과 쌍용차 인수 비용 사이를 저울질할 때, 마힌드라는 30명에 가까운 실사단을 한국에 보내고, 그룹 차원의 재정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인수자금 모집에 적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중급 이상의 자동차 기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008년 영국 로버자동차 인수에서 인도 타타자동차에 밀렸고, 올해는 르노자동차와의 전략적 제휴도 끝났다. 한편 미국 시장에 픽업트럭을 수출하려다 안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힌드라가 인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국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독자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인도보다 앞선 디젤 엔진 기술과 조립 공정을 갖춘 쌍용차는 마힌드라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이다. 졸속매각 우려에 대해 마힌드라가 상하이차와 다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쌍용차 인수를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 신뢰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마힌드라에게 ‘먹튀’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 또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 한국을 찾아 ‘제2의 먹튀는 없을 것’이며, ‘상호 기술협력을 지향’하고, ‘쌍용차 노사가 만든 합의서를 그대로 준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인수 후 계획만 보아도 마힌드라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마힌드라의 자동차 부문 사장 파완 고엔카는 마힌드라가 렉스턴과 코란도 C를 완제품이 아닌 CKD(조립 전 상태)로 인도에 수입할 예정이며, 인도에서 두 제품은 고가 SUV 제품군으로 도요타 포츄너, 지엠 캡피타, 현대 투싼과 경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 자동차 전문가들은 마힌드라가 고가 제품 시장에서 연 300~400대를 팔기 힘들 것으로 본다. 현재 고가 SUV시장은 인도에서 대중적이지 않다. 마힌드라는 연 1,000대 정도를 팔아야 수지 타산이 맞는 수준인데, 인도 SUV 시장은 6~7년 후에나 4~5만 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마힌드라의 현재 점유율(9.2%)을 고려할 때, 쌍용차의 인도 수출이 언론에서 부풀리는 것처럼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한편 현지 언론에서 마힌드라는 MOU 체결 시 고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으며 ‘임금협상만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공장 안의 쌍용차 기업노조는 추석연휴 이후 몇 차례 마힌드라와 만남을 가졌지만 고용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이 없는 상태다. (쌍용차 기업노조는 2009년 쌍용차 투쟁 이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를 탈퇴하고 2010년에 결성된 노조다. 이 노조는 노사협조주의를 활동 기조로 삼고 있다.) 한편 마힌드라는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 일부를 제외하고 쌍용차의 생산시설을 인도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노조와 부딪힐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힌드라의 내수 시장 점유율도 낮고, 인도 노동자의 임금이 한국의 6.36%(2005년 기준)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는 장기적으로 한국 공장을 유지할 이유가 많지 않다. 제2의 먹튀로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고용과 생존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이다. 쌍용차 팔아먹기에 급급한 산업은행과 경영진: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77일의 공장점거파업을 종료하며 2009년 8월 6일 맺은 노사대타협 중에 이행되고 있는 합의사항은 단 하나도 없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등에 부과된 손해배상 가압류 액수만 120억 원이 넘으며, 무급휴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 역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파업 참여 조합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매우 어렵고, 일부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올여름 정신질환으로 지난 1년 내내 자신의 집에 점거 파업 당시를 재현해놓고 있었던 조합원의 충격적인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쌍용차 사측은 구속 상태에 있는 한상균 전 지부장을 포함한 15명에게 징계 해고와 정직 3개월 조치를 취하는 등 매각 과정에 대해 불안함과 불만을 갖고 있는 공장 안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단속하기 위해 다양한 수를 쓰고 있다. 또 사측은 올해 8월 6일, 노사대타협에 의해 현장에 복귀했어야 할 무급휴직자들에 대한 복귀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중앙노동위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해고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쌍용차 살인진압을 진두지휘한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을 경찰청장으로 승진시켰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작년 경찰의 살인적 진압으로 크게 다친 조합원들에게 3,000만 원의 건강보험료 환수조치를 내렸다. 노동자와 한 약속을 모두 내버린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채권단은 일사천리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파업 종료 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1원도 지원할 수 없다는 정부 방침하에 2010년 상반기 쌍용차는 공장을 돌려도 계속 빚이 쌓이는 실정이며, 상반기 이자 비용만 237억 원이었다. 헐값매각과 먹튀로 쌍용차를 이 지경에 빠뜨린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생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채권회수에 급급하다. 지난 7월 운영자금 부족을 이유로 쌍용차 안성 부지를 팔아넘긴 채권단의 행보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인수가 끝날 때까지 우량 자산은 보유하는 것이 당연한데, 산업은행을 통한 출자가 아니라 자산 매각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쌍용차를 또다시 헐값매각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한편 상하이차는 인수 당시의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술을 유출한 후 경영이 어려워지자 바로 쌍용차를 내팽개쳤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러한 외국계 기업의 횡포는 쌍용차 뿐 아니라 발레오만도, 포레시아, 3M 등에서 공장 청산, 해고와 징계라는 방식으로 무수히 많이 벌어졌다. 외국계 기업의 먹튀 행각과 노동자에 대한 횡포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IMF 이후 해외매각 증가로 국내 제조업에서 외국계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3.2%에 달하며 17만에 가까운 노동자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는 헐값매각을 도와주고 지자체들은 토지무상임대, 각종 보조금 지원, 조세감면 등 특혜를 준다. 그러나 이는 세금 낭비일 뿐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공장을 단순 하청기지로 활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아무 책임 없이 버린다. 지난 8월 9일 2009년 투쟁으로 구속된 전 지부 지도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주장이 과장이 아니며 기술 유출, 법정관리를 불러온 상하이차와 경영진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상하이차의 책임을 물을 길은 별로 없다. 오히려 재판부는 기술유출에 관한 재판에서는 검사를 교체하는 등 진행을 연기시키면서 정부와 경영진, 상하이차의 책임을 은폐하는데 급급하다. 정부의 졸속매각과 상하이차의 먹튀를 규탄하는 쌍용차 재매각 투쟁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와 먹튀 규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모으는 과정에서 더욱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용보장과 졸속매각 저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재건하자 정부의 졸속매각, 상하이차의 먹튀로 쌍용차에서 4,300여 노동자가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실직하고, 9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또 94명이 구속, 46명이 불구속되었으며 사측과 정부가 200여 노동자에게 청구한 벌금과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이 200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책임자인 정부와 경영진은 어떤 책임도 반성도 없이 이전과 똑같은 졸속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 안의 기업노조는 노동자들의 고용보장과 상하이 사태 재발 방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채 사측과 다를 바 없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해고와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부당한 해고의 억울함과 살인적 경찰 진압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 등 조합원들이 처한 어려움은 쌍용차 재매각 투쟁이 처한 현실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이 남긴 깊은 상처를 딛고 무급휴직, 해고 조합원들을 조직하면서 졸속매각 저지와 민주노조 재건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쌍용차 제2의 졸속매각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해고자 복직 △총고용 보장 △졸속매각 반대 △쌍용차 사태 책임자 처벌 △손배 철회 및 구속자 석방을 요구로 쌍용차지부와 함께 정부, 산업은행과 쌍용차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재매각 국면에서 고용 보장과 외국계 기업 규제 등의 요구에 대한 사회적 지지 형성 여부와 공장 안팎의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가 이러한 요구들을 관철시키는 데 관건이 될 것이다. ‘제2의 먹튀’ 우려는 쌍용차 매각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2010년 쌍용차 재매각 대응 투쟁은 2009년과 달라진 바 없는 졸속 매각을 최대한 알려내며 정부, 지역사회, 채권단이 해고자 및 무급휴직자들의 복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쌍용차지부가 공장 밖에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재매각 대응 투쟁을 통해 매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교섭력을 획득해야 한다. 2010년 외투자본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결의한 금속노조는 전형적인 외투자본 먹튀행각으로 벌어진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09년 GM 유럽법인인 오펠 매각 협상 시 독일금속노조는 정부에게 고용유지 우선 기업에 매각할 것을 요구하여, 고용협약을 맺겠다고 약속한 매그나와 우선 협상을 하도록 했다. 결국 GM이 매각을 철회하기는 했으나 노조가 매각 과정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고용협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고용보장과 지역협약을 요구하면서 실제 매각을 주도하는 정부에 대한 사회적 투쟁을 펼쳐가야 한다. 이 투쟁 과정에서 마힌드라가 이를 언급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요구를 수용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 과정은 77일 간 함께 투쟁했던 무급휴직, 해고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고, 공장 안 노동자들로부터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투쟁의 동력을 형성하는 과정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이는 매각 과정에서 실제 교섭력을 확보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이지만 사측과 독립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무력화하고, 장기적으로 민주노조 재건을 준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재매각 국면은 조직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공장 안 노동자들의 매각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해소하고, 매각 과정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용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책임지려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를 통해 졸속매각 저지와 민주노조 재건에 이들이 함께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공장 안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여론전과 실천투쟁을 펼치고,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의 깊은 상처 속에 신음하는 해고자, 무급휴직자, 파업 참가 조합원들이 다시금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연대단체와 운동세력들은 적극적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매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 매각 이후 쌍용차의 미래가 순탄하기는 어렵다. 고용보장과 해고자, 무급휴직자 원직복직에 대한 단체협약과 사회적 협약을 맺지 않는 매각은 제2의 먹튀를 부를 뿐이다. 이를 막는 확실한 길은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제기하고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투쟁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번역, 출판했다. 이 책은 케네스 라피데스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 기원, 발전, 해석』(Kenneth Lapides, Marx’s Wage Theory in Historical Perspective: It’s Origin, Development and Interpretation, Wheatmark, 2008) 중 마르크스의 저술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전체 구조를 펼치고 초기의 사상을 성숙기 사상으로 대체하면서 수많은 정식화들을 논리 정연하게 종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노동조합에 관한 저술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최초의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피데스는 『자본』에서 정점을 이루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임금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이로부터 노조이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자본』의 집필 시기에 작성된 마르크스의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을 바탕으로 그가 당대 노동자운동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주의 내외부에서 전개된 두 개의 이론적·실천적 논쟁을 검토하면서 합리적 핵심을 추출하고 있다. 전자가 『자본』의 ‘작업의 계획 또는 저작의 구성’을 의미하는 ‘플란’ 논쟁이라면, 후자는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전개된 자본주의의 위기이론과 연관된 ‘궁핍화’ 논쟁이다.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논쟁인 만큼 이번 기회에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 저작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 의의는 ‘마르크스 문헌학(Marxology)’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의 과학적 문제설정에 대한 이해에 있을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의 당부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소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조합 이론서가 대체로 노동조합에 대한 정당의 우위를 강조하는 편향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시각을 정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논지를 보충하면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해설하겠다. 경제학의 임금이론 임금이란 무엇인가? 라피데스는 ‘자본주의 경제 관계의 가장 익숙한 양상 중 하나인 임금은 그 중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명제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학은 임금 문제를 어떻게 규명하였나? 임금이론은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면서 임금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 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고전파 경제학 이전의 임금론은 주로 규범적이거나 국가의 정책과 관련된 논의에서 나타났다. 가령 가격이 소도시와 동업조합 관계자들에 의해 강제로 결정되었던 중세에서 임금은 장인들에게 관례에 따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강제로 결정되는 ‘공정가격’이라는 규범적인 형태를 띠었다. 또 초기 중상주의는 임금 문제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임금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했다. 이들은 저임금이 상품 가격을 낮춰 수출을 늘리고 따라서 산업 성장과 국부의 증가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임금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규율을 갖추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간주했다. 중세 봉건적 질서의 쇠퇴와 더불어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규제가 아닌 시장을 통한 자연 가격 형성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임금관계가 상품교환과 관련된 것임을 규명함으로써 초기 중상주의와 단절한 윌리엄 페티, 임금이론에 최초로 계급투쟁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존 로크, 노동자의 욕구의 사회적·역사적 성격에 착안한 제임스 스튜어트, 노동력 가치의 결정이라는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초보적인 잉여가치 개념에 도달한 캉티용 등이 후기 중상주의 임금이론을 대표한다. 이어서 중농주의를 대표하는 케네는 잉여가치의 원천이 생산에 있음을 인식하지만 농업노동만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전 시기의 경제학적 분석을 종합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고전파 경제학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국부(민족·시민의 부)의 본성은 노동생산물이고, 그 원인은 분업에 의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타인과의 자유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을 자연적·불변적·보편적 인간형으로 승화시킨다. 각 개인들은 분업에 기초한 사회에서 생산물을 생산하고 교환관계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생계에 필요한 생산물을 얻는다. 이때 시장에서 교환되는 노동생산물, 즉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스미스는 소상품생산 사회를 전제한 나머지, 교환을 통해 영유할 수 있는 타인의 노동생산물에 들어간 노동량(‘지배노동’)과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노동(‘투하노동’)이 동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윤과 지대가 노동자에게 지불된 임금을 초과하여 잉여노동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노동력과 교환되는 법칙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를 비판한 리카도 역시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종속시키는 사회적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잉여가치의 신비를 풀지 못했다. 리카도는 임금 수준을 노동에 대한 수요·공급의 관계로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 대신, 노동의 시장가격(‘수요-공급 비율의 자연적 작용 때문에 실제로 노동에 지불되는 가격’)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노동의 자연가격을 설정했다. 리카도는 이러한 노동의 자연가격, 즉 자연임금률을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와 그 가족이 필요로 하는 생계수단의 가격(즉 사용가치로 측정되는 생계수단의 양이라는 의미에서 ‘실질임금’)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카도 역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와 노동의 가치(즉 노동과 교환된 임금) 사이의 불일치라는 문제에 계속 시달려야 했고 결국 임금 문제를 해명하는 데 실패했다. 즉, 노동력과 노동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따라서 노동력)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창조한 것보다 더 적은 가치를 가지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82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투쟁이 전면으로 확대되면서 부르주아 경제학은 변호론적이고 속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경제학은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분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윤의 원천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가령 세는 이윤이 자본가가 지니고 있는 생산수단의 생산성 때문에 창출된다고 보았고(‘자본생산성론’), 시니어는 자본가가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절욕’의 대가가 이윤이라고 생각했다(‘절욕설’). 이중에서도 당시 속류화된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설은 바로 임금기금설이었다. 1820-70년대를 풍미한 임금기금설은 ‘특정 시점에서 임금에 지불될 자본의 총량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크기를 변경하려는 노동조합 등의 인위적 노력은 무용하다’는 것을 요지로 한다. 특히 임금기금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임금을 강제적으로 인상하려고 시도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지불될 임금기금의 일정 부분을 강탈하여 그들을 실업·저임금 상태로 내몬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반대를 정당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는 노동자의 생활조건이 개선되려면 그들 스스로 ‘도덕’을 증가시켜서 출산을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배정되기로 ‘예정된’ 기금이 설정하는 수준으로 노동력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임금이론을 어떻게 비판했나? 마르크스 최초의 ‘경제학에 대한 진지하고 비판적인 연구’인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고전파 경제학 임금이론을 따라 수요-공급 법칙과 노동자의 생계적 필요를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일차적 요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마르크스의 성숙기 분석의 근본적 특징인 생계적 필요가 역사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시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혁명주의’적 입장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이 발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엥겔스와의 조우였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년)에서 이전의 경제적 분석을 종합하며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엥겔스의 가장 큰 성취는 맬서스의 절대적 과잉인구를 비판하는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실업 노동자 예비군’)에 있다. 엥겔스로부터 자극을 받은 마르크스는 1847-49년 임금과 관련한 일련의 강연과 저술을 병행하는데, 이는 후에 『임금노동과 자본』으로 출간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노동력’이라는 표현을 도입함으로써 잉여가치이론의 기초를 수립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생계수단으로 측정되는 실질임금과 ‘자본과 노동 간의 사회적 부의 분배’를 의미하는 상대적 임금을 구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경제적 약점을 지적하고 있다. 1848년 발표된 『공산주의자 선언』은 청년기 마르크스가 ‘이전의 철학적 의식을 청산’하고 성숙기로 이행하는 저작이지만, 여기서 제시되는 임금론(‘임금노동의 평균 가격은 최저임금으로서, 최저생계를 연장하고 재생산할 수 있을 정도이다’)은 이후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속적인 곤란을 야기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의 패배로 런던으로 망명한 이후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던 마르크스는 『자본』 서술에 선행하는 연구 과정으로서 1857-58년 원고와 1861-63년 원고를 작성한다. 1857-58년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도입된 노동력 개념을 발전시켜, 가치를 창조하는 현실적 노동으로서 사용가치와, 노동 또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자의 능력이 지닌 가치로서 교환가치 양자를 명확히 구별한다. 또 리카도가 강조하는 실질임금의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노동력 가치의 ‘역사적·도덕적 요소’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861-63년 원고에 이르러서야 임금이론을 노동조합과 분명히 연관 짓는다. 이러한 예비적 과정을 거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임금이론을 완성한다. 『자본』에서 종합되는 임금이론에서 임금 결정 법칙을 분석하려면 우선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모순, 즉 적대적 사회관계를 전제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듯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적대적 관계의 배후에 ‘은폐된 비합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원동력이자 그 본질적 계기인 잉여가치의 생산은 임금이라는 통상의 현상에 의해 망각되고 은폐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임금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임금은 노동력 상품의 가격, 즉 노동력 가치의 화폐 형태다. 마르크스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 역시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생산, 따라서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이는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노동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계수단의 일정량의 가치에 상응한다. 그러나 다른 상품들과 달리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생산·재생산되지 않는 특수한 상품으로서 노동력의 가치는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투쟁을 둘러싼 ‘관습’ 또는 역사적 제도에 따라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임금을 규정하는 기본 요인을 분석한 뒤, 그 수준을 변화시키는 요인을 분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특징짓는 기계제 대공업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결합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 가치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마르크스는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면서 노동일의 길이, 노동강도, 노동생산성이라는 세 가지 주요 변수들이 노동력 가치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한다. 먼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노동자의 생계수단으로 소비되는 상품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 노동력 가치가 감소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력 가치의 감소가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노동력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필수품의 양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일정량에 상응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일정량의 노동일에 투여되는 노동력 가치가 증가하면서 노동력 가격이 가치 이하로 하락하거나 또는 노동력 가치 자체가 하락한다. 끝으로 노동일의 길이가 연장됨에 따라 노동력 마모가 급증하면서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과 작동에 필요한 일체의 조건들이 억제된다. 이상의 분석은 기계제대공업에 고유한 임금 지불 방식, 즉 시간급과 성과급에 대한 분석과 통합된다. 표준 시간급이 저하하면 노동자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일정 액수의 화폐임금을 충당하기 위해 잔업·특근과 같은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시간급의 전환된 형태’로서 성과급이 저하할 경우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높여 화폐임금을 충당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시간급과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에게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제하고 이는 노동력 가치 아래로 임금률(단위 시간 당 임금)을 저하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마르크스의 노조이론 이로부터 노동조합의 의의가 도출된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경제투쟁이 없다면 ‘임금노예’에 불과한 임금노동자는 노예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궁핍만 가득한 처지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이 집약되는 것은 영국의 오언주의자 웨스턴이 주장하는 임금투쟁 무효론을 반박하는 동시에 임금투쟁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는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이다. 이 팸플릿은 마르크스가 『자본』 3권 마지막 52장 ‘계급’에서 분석하려고 예정했던 계급투쟁의 개요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일종의 ‘관습’ 또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는 임금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임금률의 장기 추세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노조의 경제투쟁으로 인해 임금률은 노동력 가치와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은 국제노동자연합 활동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이 패배로 막을 내린 뒤에도 185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는 노동자 투쟁과 민족해방의 물결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 결성되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863년 각국 노동자운동 지도부가 임시회의를 개최하여 ‘국제노동자연합’을 명칭으로 채택하고 각국별 대표위원으로 총평의회를 구성했다. 이때 마르크스는 독일 통신서기로 선출되어 국제노동자연합 발기문과 임시규약을 작성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국제노동자연합은 1864년 런던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한 뒤 1866년 마르크스가 기초한 「창립선언문」(발기문)과 임시규약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또한 마르크스는 「총평의회 회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대한 지침」을 작성하여 국제 노동자운동이 연합을 매개로 노동일의 제한과 여성·아동 노동의 보호를 위해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그는 이 「지침」에서 ‘노동조합은 그 원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위대한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투쟁을 사회·정치 운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국제노동자연합의 창립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상정한 노동자 조직의 모델이 최소한 ‘형식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원리의 측면에서 국제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 자율성의 원칙, 정치권력의 쟁취라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기본원리, 국제주의의 원리를 표방했다.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연합은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조직 형태들과 경향들의 통일을 추구했다. 특히 영국 노조주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대중적 토대라는 조건을 충족했다. 그 결과 연합 내에는 △직능노조를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한 영국의 노조주의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상호부조 사상을 펼친 프루동주의 △비밀결사를 바탕으로 국가폐지론을 주장한 바쿠닌주의 △정당을 기반으로 국가주의를 표방한 라살주의와 같은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871년 파리코뮌 이후 국제노동자연합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는 동시에 내부적 대립이 격화되었다. 프랑스 노동자운동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 탄압이 강화됐다. 독일 사회주의 내부의 반목, 바쿠닌 세력의 부상, 미국 전국노동동맹의 약화, 영국 노조주의의 국제노동자연합 탈퇴 등으로 국제노동자연합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1871년에 개최된 국제노동자연합 런던 임시대회에서는 파리코뮌 패배의 교훈으로 노동자 정당을 통한 정치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연합은 ‘노동자계급은 유산계급과 독자적인 정당으로 자신을 조직할 경우에만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안을 결의한다. 동시에 바쿠닌주의자를 제명하고 본부 소재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데, 이는 곧 국제노동자연합의 해산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약점을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조직의 중심의 부재’라고 설명했지만 결코 정당을 노동자 조직의 일반적 형태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관념에서 정당이란 ‘계급투쟁의 최고로 발전된 형태이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경과·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 ‘계급투쟁의 분석자’이자 ‘사회운동의 실험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노조와 당을 제도적으로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바쿠닌주의자와의 갈등이라는 표면적 요인도 있었지만 영국 노조주의의 개량화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궁핍화 논쟁과 독일사민당, 제2인터내셔널 영국 노조주의의 이탈 이후 국제 노동자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독일 사회주의가 부상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독일 사회주의는 과연 그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1869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마르크스파’ 또는 일명 ‘아이제나흐파’)가 주도하여 창당한 독일사회민주노동당과 1863년 라살이 주도하여 창립한 전독일노동자협의회는 1875년 고타대회를 개최하여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한다(1890년부터 독일사회민주당으로 개명). 그러나 ‘마르크스파’는 마르크스와 라살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지 못한 채 오히려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수용하고 만다.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의 독일어 초판 서문(1867년)에서 라살이 자신의 ‘지적 정수’를 참칭하면서 저지른 ‘중대한 오류’를 명시적으로 지적했지만 독일 사회주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마르크스는 1875년 『고타강령 비판』을 집필하여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비판하지만, 리프크네히트의 만류로 이를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우리 국민은 스스로 라살의 ‘임금철칙’이라는 짐을 졌다. 이것은 우리 당의 거대한 정신적 패배다”라고 개탄한다. 그렇다면 임금철칙설의 오류는 무엇인가? 라피데스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 자신은 성숙기로 이행한 이후 실질임금이 노동자계급의 ‘최저생계’ 수준으로 하락한다거나 빈민으로 전락한다는 의미에서 ‘궁핍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우선 지적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웨스턴과의 논쟁(『가치, 가격, 이윤』)에서 사회주의 사상에까지 침투한 정통적 임금론, 다시 말해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제학의 임금기금설을 기반으로 하는 라살의 임금철칙설은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이나 전투적 행동에 대한 반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철칙설로 위조된 사이비 ‘마르크스주의’는 노조주의에 대한 라살의 오도된 적대와 함께 ‘마르크스파’의 정통 노선으로 승인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르크스 사후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의 ‘궁핍화’ 논쟁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르크스파’는 궁핍화론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교의로 수용한 반면, 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것이 마르크스 임금이론의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890년대 이후 독일에서 생활조건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의회에서 사민당이 약진하자, 당 내에서는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수정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베른슈타인은 사민당의 혁명적 수사로 장식되던 묵시론적 성격의 붕괴이론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정식화된 마르크스의 궁핍화론의 탓으로 돌렸다. 그 실천적 함의는 독일사민당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포기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회주의와 계급연합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사민당과 자립적으로 노사관계를 제도화하고 단체협상의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로 대표되는 정통파는 수정주의를 비판하면서 혁명적 수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시간’이 도래하기 이전에 정치적 행동에 돌입하는 것을 우려했다. 정치적 수동주의와 대기주의가 정당화된 것이다. 이는 총파업과 같은 노동쟁의를 정당이 주도할 경우 의회 안에서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불충분하게 준비된 파업이나 성공의 희망이 없는 파업은 노조를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노조 지도부의 공포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독일사민당의 의회주의와 노조의 조직보존 논리가 결합해서 집단적 ‘대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독일 노동자운동의 우경화는 사민당의 1차 대전 참전 결의와 노조의 ‘산업 휴전’ 동의로 귀결됐고, 이는 곧 제2인터내셔널로 상징되는 국제 노동자운동의 거대한 분열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갖은 오해를 야기한 ‘궁핍화론’에 대한 마르크스적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엥겔스가 1891년 독일사민당 강령(에어푸르트 강령)의 ‘궁핍화’에 반대하면서 “실제로 증가하는 것은 존재의 불안전이다”라고 주장한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결론부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창출’, 즉 ‘착취·억압의 증대’와 ‘빈곤·무지·야만·타락’의 축적을 ‘궁핍화’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대면하는 가장 큰 재앙이란 임금하락이 아니라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 위협이다. 임금노동 제도의 가장 큰 해악은 비판자들의 억측대로 ‘궁핍화’가 아니라 임금노동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노예관계’ 그 자체인 것이다. 시사점 마르크스는 임금이론을 통해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조직형태라는 점을 밝혀냈다. 동시에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라피데스는 마르크스가 임금이론을 완성함으로써 노조 투쟁에 대한 적대와 종파적 불모성으로부터 사회주의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생디칼리즘의 파업 일변도로부터 노조 운동을 해방시켰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우리는 이상의 논의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방어적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를 방어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실업자와 반(半)실업자를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구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후자의 입장에 선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 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노동조합의 변화·발전은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 책이 마르크스주의 노동조합 이론에 관한 하나의 지침서로 활용되어,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처한 안팎의 곤란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출범에 발맞춰 본서가 출간된 것은 연구소의 활동 방향을 어느 정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노동자운동을 변화·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쇄신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교육을 통해 활동가들과 만날 것을 약속한다.
한미, 한EU FTA 쟁점 토론회: 한미FTA 재협상,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 2010년 10월 28일 (木) 장소 : 민주노총 15층 교육원 □ 발표(각 20분) - 한미FTA 재협상, 무엇인 문제인가 |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통상연구소 소장 - 미국의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와 한국정부의 대응 | 박상표, 수의사
소개_4 세계 경제위기 현황과 전망_7 박하순(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 한국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과제_20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노동운동 지형변화에 따른 운동방향의 재정립_40 김태연(노동전선 집행위원장) 민주노조운동과 지역 연대운동 강화를 위한 고민_52 서장수(민중행동 상근활동가) 토론문_59 임승철(혁신네트워크 집행위원장) 토론문_75 정일부(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대내외적 불안이 상존하는 가운데 계속되는 위험 신호 2008년 9월 리만 브러더스 파산 후 2년 전 2008년 9월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면서 세계경제는 한치 앞을 모르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30년대 세계대불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해졌다. 2007년 부동산 시장 침체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결국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경제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각국경제는 1년 반 정도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뒤, 2009년 3/4분기부터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경제지표상으로는 경제위기가 종료된 것이다.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가 사실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경제위기의 심도나 기간을 보면 이번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는 4년 내내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첫 세 해는 10% 내외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 이후 경제가 성장하다가 4년 뒤에 또 마이너스 성장을 해 결국 2차 대전에 정부의 막대한 군비지출을 통해 완전히 불황에서 탈피하였던 것이다. 물론 라트비아 등 발트 3국과 아일랜드 경우 1930년대 대공황에 근접하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호전은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전형적으로 취해진 금리인하 및 수량완화 같은 통화정책과 대규모 경기부양 같은 케인스주의 정책, 금융부문의 구조조정, G20으로 상징되는 국제적인 공조 등이 일정하게 효과를 발휘해서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중국, 인도 등 거대 개도국들의 강력한 성장세가 불황기간을 단축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중국의 경우 위기가 한창인 시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고, 회복 시에는 수입 증대를 통해 동아시아, 심지어는 독일과 미국의 회복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개선되지 않는 고용 상황 그러면 이제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는 종료되었고 세계경제도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를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답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성장세는 대폭 하락하여 더블딥 가능성이 이야기될 정도이고, 그리스로 대표되는 남유럽 몇 나라와 아일랜드의 국가부채는 여전히 현안으로 등장해 있어 해결난망의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에 미국경제를 중심으로 이후 세계경제의 향방을 전망해 보기로 하자. 미국경제 현황부터 보기로 하자. 미국경제는 2009년 3/4분기에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선 뒤 2009년 4/4분기 성장률은 5.0%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2010년 1/4분기 성장률은 3.7%로 둔화되었고, 2/4분기에는 1.6%로 더욱 낮아졌다. 거의 정체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에서 적절히 드러나듯이 1년여의 플러스 성장 뒤에도 고용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 8월 실업률은 9.6%로 2009년 10월에 기록한 직전 최고치 10.1%에 비해서는 약간 낮아졌지만, 5월에서 8월 사이 실업률은 9.5%에서 9.7% 사이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즉 최근 들어 실업률이 낮아지거나 고용사정이 호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미한 성장으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거의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업률은 위기 이전 4-5% 실업률에 비춰보면 매우 높은 것이고, 장기실업자 비율 등 여러 고용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를 보건대 전후 최악의 고용상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이후 미국경제는 어떤 모습을 띨까? 우선 간단히 지적할 사안은 하반기부터 경기부양 규모가 감소할 예정이라는 것과 지난 1년 동안의 성장 중 재고변화의 기여도가 약 60%에 달한다는 점이다. 즉 경기부양 감소 그 자체로만 보면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이고, 재고증가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부동산-주택 부문의 불안한 게걸음 행보 더욱 중요한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자. 이번 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부문은 약간 호전되다가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택판매량은 금융기관 차압주택 판매가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극히 부진하고, 주택가격은 약간 상승한 후 게걸음을 하다가, 7월부터 다시 하락을 하고 있다는 보도다(<그림 1> 참조). 신규주택 구입 시 제공되던 8,000달러 세제혜택 조치가 4월로 종료되고 난 뒤의 일이다. 물론 케이스-쉴러 지수로 33-34%가 하락했던 1차 하락 때와 같은 급격한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는 하지만, 추가적으로 5-10%가 하락한다 하더라도 이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원리금 상환 연체 및 유질처분은 늘어날 것이고, 주택담보대출에 기초하여 발행된 각종 유사채권들의 가격은 다시 하락할 것이며, 아직 이런 채권들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다시 부실해 질 것이다. 또한 지금도 상환해야 할 주택담보대출금보다 주택가격이 낮은 일명 ‘깡통주택’(마이너스 에쿼티)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수가 주택담보대출 이용가구의 약 23%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들 가계의 소비가 더욱 움츠러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사실 이들은 ‘생산수단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력만 소유한’ 노동자가 아니라, '깡통주택'이라는 마이너스 자산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노동자의 지위에도 미달한 일종의 주택노예라 칭할 만하다. 실제로 이들은 실업을 당했어도 노숙을 무릅쓰지 않고는 멀리 다른 곳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뉴욕타임즈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는 크루그만 교수는 미국에서 신규 채용공고가 꽤 늘고 있는데도 실업률이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깡통주택’에 긴박되어 있는 노동자가계를 지목하기도 한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런 주택부문 침체가 단기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1%] 위안화 문제의 교착 둘째, 대외 조건을 살펴보자. 우리가 보기엔 미국경제가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의 대폭적인 절상을 통해서 수출을 늘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럽은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국가부채 문제를 안고 있어서 유로화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엔화가치도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위안화절상 여부이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구가하고 있어 위안화 절상 여력은 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 기간에 위안화가치를 달러에 고정시켜 놓았던 중국당국은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하여 위안화가치가 일정하게는 다시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몇 달 동안 위안화 가치 상승은 1% 정도에 그쳐 미국의 기대에는 현저히 못 미쳤다. 크루그만 교수 같은 이는 중국의 이런 환율관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 미 정부가 중국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수입관세 부과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자금이 미국에서 철수하여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수출을 늘릴 수 있어 미국에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환율관리가 '부자 몸 사리기' 측면이 없지는 않고 이것이 세계경제나 미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도, 개도국에서의 대폭적인 평가절상-거품형성-경상수지 악화-거품붕괴-초민족자본 철수-경제위기의 싸이클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마당에 위안화의 대폭적인 절상을 회피하려는 중국의 처신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중국을 설득하고 강제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위안화 절상을 통한 대 중국 수출 증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쉽지 않은 추가 경기부양 다음으로는 추가적인 경기부양 가능성을 살펴보자. 이후 현재의 저성장과 고실업을 상당부분 해결할 정도의 추가적인 경기부양 가능성은 있는가? 이도 부정적이다. 성장률이 지지부진하고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면서 오바마와 민주당의 지지는 하락하고 있어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공화당을 견제하면서 상당 규모의 추가적인 경기부양안을 제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정부부채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 소소한 규모면 몰라도 현재의 실업률을 대폭 낮출 정도의 대규모 추가부양책은 오바마와 민주당마저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중간선거는 그야말로 경제위기 책임 떠넘기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면, 미국경제의 성장률은 하반기 들어 더욱 악화되고 실업률은 거의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10% 내외의 실업률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제위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한 루비니 교수는 하반기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1% 이하에 머물 것이며, 더블딥과 디플레이션의 위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진2%] 이윤율 반등의 가능성 크지 않아 이윤율 대용으로 비금융법인자본 세전수익률(=영업이익/(순자본스톡+재고))을 이용하여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향방을 이야기해 보자.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 중반 전후 최고치에 오른 미국의 이윤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한다. 시기를 보다 세분해보면 1980년대 초반까지 추세적으로 하락한 이윤율은 초민족적 거대자본들이 IT혁명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통해 노동자와 개도국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 미약하나마 추세적으로 상승한다. 1990년대 말-2000년 초반 IT 거품형성과 붕괴로 이런 기조는 꺾이고, 2007년 부동산-주택 부분의 거품형성과 붕괴는 이를 다시 확인한다. 즉 80년대 중반부터 1997년까지의 상승추세가 그 뒤에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자본생산성(=국민소득/유형고정자산) 추이도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상승하다가 그 이후에는 하락한다(<그림 3> 참조). [%=사진3%] 이후 이윤율과 자본생산성의 추세는 어떻게 될까? 이윤율(=자본생산성×이윤분배율)에 규정적인 것은 사실 자본생산성이므로 자본생산성의 추이를 예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자본생산성의 상승은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의 도입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새로운 대규모의 자본축적을 전제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수요부족의 상황에서는 작아진 이윤량으로 인해 새로운 대규모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질 수가 없고, 고용인구의 감소 혹은 정체로 분업 협업의 확대를 통한 생산성제고의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결국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자본생산성의 후퇴 내지 정체상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사실 2000년대 중반 주택부문에서의 거대한 거품형성 및 붕괴는 미국자본주의의 후퇴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1990년대 말 IT 거품은 생산성증대의 결과냐 아니냐를 논란해볼 여지라도 있었으나 주택부문 활성화에서 투자은행 등 거대 금융기관들이 얻은 막대한 이익은 순전한 금융조작의 결과였을 뿐이다). 이윤율은 근로조건의 하락이나 상승, 가동률의 증감, 달러가치의 하락 또는 상승으로 인한 해외투자자산의 소득 증감 등으로 약간의 부침을 겪겠지만 1997년의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 주택부문의 추가적인 악화,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르는 남유럽 상황의 현저한 악화, 중국의 저성장 궤도로의 진입 등 예상치 못한 내외부 변수와 만나게 된다면 이윤율은 2001년이나 2009년 수준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계속되는 위기의 가능성 자본생산성과 이윤율 운동이 이런 궤적을 그린다고 한다면 미국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는 상당기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루한 불황의 모습을 보일 것이고, 앞에서 언급한 부정적인 요인들이 겹친다면 심각한 위기를 또다시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등 몇 나라는 미국 및 유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지만, 이들도 자본주의 중심국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각국별로 양상이 차별적이겠지만 세계 경제위기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체제적 대안 마련, 이를 위한 운동의 모색은 여전히 유효하다.
안녕하세요 노동자운동 연구소(준)입니다. 활동가를 위한 노동경제 통계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노동 경제 분야의 기본적인 통계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필요하신 분들의 많은 활용 바랍니다. <차례> 1.고용 -취업자 및 실업자 실태 경제활동 인구조사 -비정규직규모와 실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사회보험가입률/상여금, 퇴직금 적용률/노조가입률, 고용형태별 임 금 근로시간) -산업별 고용실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산업별 분류통계) 광업 제조업조사 (산업편) 사업체 고용 동향 조사/특별조사 (현원, 구인, 채용, 미충원, 부족, 채용계획인원) -외국인근로자(고용허가제)고용동향 2.임금 사업체 임금 근로시간 조사 (사업체 규모별, 산업별, 임금 근로시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직종별, 산업별, 규모별, 학력별 통계) 중소제조업직종별 임금조사 법정최저임금 협약임금인상률 3.노동조합 활동 민주노총 조직현황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중소제조업직종별 임금조사 (노동조합 결성 유무) 노사분규발생건수 및 근로손실일수 4.국민계정 실질국내총셍산(GDP) 경제활동별 성장률 지출항목별 증감률 노동소득 분배율 5.물가 생산자 물가동향 소비자 물가지수 6.국제수지 국제수지 국제투자 대차대조표 대외채무 7.환율 8.금리 9.정부수지 통합재정수지, 관리대상수지 조세수입 및 조세부담률 국가채무 10.산업활동 자동차 산업 동향 조선산업 동향 IT산업 생산 외국인 투자 제조업 평균가동률 11.기업경영 제조원가명세서 성장성에 관한 지표 손익의 관계비율 자산자본의 관계비율 12. 국제통계 국제 경제성장률 국제 GDP 국제 실업률
목차 발간사 우리는 왜 G20에 반대하는가? G20 정상회의의 역사와 전망 1. G20은 언제, 왜 탄생했나요? 2. 개도국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G20은 무엇을 위한 모임이고 전망은 어떠한가요? 경제위기와 G20 4. G20의 경제위기 원인 진단은 타당한가요? 5.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G20이 합의한 것은 무엇인가요? 6. 경제위기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G20과 우리의 삶 7. G20이 합의한 금융개혁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는 것인가요? 8. G20의 글로벌 협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9. G20이 노동권을 보호한다는 데 실제로 그러할까요? 10. G20이 빈곤국 발전을 돕는다는 데 정말인가요? 11. 이명박 정부가 G20을 통해서 노리는 바는 무엇인가요? 12. G20과 APEC, FTA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G20과 우리의 투쟁 13. G20 투쟁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14. 주요 의제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요? 15.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요? * 인쇄본 구입 문의: 02-778-4001~2, 가격 2000원 * 오탈자 수정했습니다. 새로 올린 파일로 보세요(9월 11일).
현황과 과제 동시 진행 중인 두 개의 위기 이윤율 저하를 배경으로 한 경제 위기는 좌파들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던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 운동의 희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선언했던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은 몇 년째 정체되어 있고,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의 노동조합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투쟁이 때때로 승리하기도 하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진정한 성과는 노동자들의 확대되는 단결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의 노동자 운동에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경제 위기는 자본에게도 타협 의지보다는 계급투쟁의 투지를 불태우도록 만든다. 노동자 운동에게 승리보다는 패배가 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이 확대될 수 있다면 우리 운동은 대안 세계를 위한 한 걸음을 더 내 딛는 것이다. 문제는 일희일비하는 승패를 넘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전략적 과제를 찾는 것이다. 노조운동의 이념과 정체성 - 사회운동노조 지금까지 노동자 운동의 전략과 관련된 논의들은 특정 ‘모델’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독일 노조 모델을 수입한 산별노조-노동자정당 건설 운동과 유럽의 사회 협약(또는 노사정협약)을 따온 노사정협조주의 전략이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 고성장 시대에 정착된 1950~1960년대 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과 금융 세계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 반주변부 국가에서 실현하려 했으니,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려 했던 격이다. 안정적 노사관계를 기초로 한 사민주의 모델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모두 파탄이 났다. 중앙교섭 쟁취를 중심으로 했던 금속 산별 운동의 정체, 국민정당화의 길로 들어선 진보정당 운동, 이명박식 노사민정으로 희화화된 노사정협약을 보면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 독일 산별모델을 1990년대 초부터 열정적으로 소개해 왔던 임영일 소장조차도 산별노조운동의 재설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투쟁에서 사회협약 정치로 중심을 이동할 것을 십여 년간 주장해온 김유선 소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노사정 사회협약은 어려우니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야당과 시민운동 진영을 파트너로 사회연대전략을 펴자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시했던 노동자운동 혁신론은 사회운동노조주의다. 이는 20세기 주류를 이룬 노동조합주의가 한편으로는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의 방어에만 몰두하는 사회경제적 노조주의(실리적 노조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를 정당의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대상으로 간주하는 정당중심적 노조주의 양자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는 기구임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노동자들이 생산 통제, 민주주의, 생태 평화 페미니즘을 배워나가는 학교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을 통해 대안 세계의 이념과 주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운동노조는 소수의 조직 노동자를 위해 다수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비즈니스 노조나 국내 노사관계 제도화를 통해 자본간 국제 경쟁의 하위 파트너로 노동조합을 격하하는 코포러티즘 노조 모두를 지양한다. 국내외 경제전망 지금부터 검토해 봐야 할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사회운동노조주의가 최근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적합한가 여부다. 모든 노조 노선은 정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사회운동노조주의는 한국 자본주의가 금융세계화 국면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이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코포러티즘적 약속들을 남발하며 노동자 민중 운동에 환상을 심어주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운동노조주의는 금융세계화에 맞선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 재벌 대공장 노조의 실리주의, 국민파 지도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비판 노선으로 정세적 적합성을 획득했다. 그렇다면 금융적 축적의 막바지로 이윤율 저하 궤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세에도 사회운동노조주의는 정세적 적합성을 가질 수 있을까? 먼저, 현재 정세를 보자. 수년간의 저성장/위기 국면이 반복되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 속도, 각국의 정부 재정 위기 진행 과정이 세계 자본주의의 결정적 위기 시기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 지출을 통한 위기 완화는 미봉책일 뿐 이번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었던 장기적 이윤율 저하 추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자본 회전률(자본 조달, 생산, 소비에 걸리는 시간의 역수)을 임시로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잠시 늦춘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적자 재정은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현재의 소비를 늘리는 것일 뿐인데, 정부 지출로 인한 경제 성장 증가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남유럽 재정위기 사태와 같은 국가 부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성장은 새로운 헤게모니가 아니라 19세기로의 퇴행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 증가는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 저하 속도를 늦춘다. 중국의 자본 수출과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 증가는 세계적 수준에서 자본 축적 둔화를 늦출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언제까지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감싸 안고 갈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이 이룬 생산과 경영의 혁신은 전후 세계 자본주의를 재조직할 정도의 힘으로 작용했지만, 20세기 후반 미국 이중적자의 파트너로 성장한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혁신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중국 폭스콘, 혼다 자동차 부품 공장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성장은 20세기 미국 노동자보다는 19세기 영국 노동자 상태에 가까운 퇴보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럭저럭 버티는 가운데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 빈발 세계 경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추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미래 세입을 담보로 한 정부 지출과 중국의 성장으로 몇 년간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상황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일부에서는 현재 상황이 당장 1930년대 공황처럼 발전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가 발전시켜 놓은 위기 관리 도구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으며, 중국이라는 변수를 간과하는 것이다. 당장 대공황과 같은 시장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저성장이 계속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무담보 채권, 모기지 파생상품, 주식 등을 통한 신용 확대가 1990년대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 성장을 이끌었는데, 더 이상 이러한 신용 확대를 통한 고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산 시장 활성화, 자금 조달 비용 감소, 생산과 소비 확대라는 금융-실물경제의 성장이 역전되어 자산 시장 침체,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생산 감소와 소비 축소, 자산 시장 붕괴라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각국 정부들의 공세적 통화 재정 정책이 속도를 늦추고는 있지만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잠재적 성장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악순환의 속도 조절이 다시금 세계적 경기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많은 통화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 점이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은 유럽 은행 위기가 언급되고 있는 점이 그 예다. 최근에는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이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저임금 착취를 받아온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정세 변수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라, 세계적 차원에서 생산이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속했고 그 중에서도 중국은 농민공에 대한 저임금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최근 중국 내 초국적 기업에서 농민공의 파업과 시위가 폭발적으로 전개된 것은 출혈적인 저임금 정책에 맞선 투쟁을 통해 세계적 차원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지양하는 실마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 경제 정세의 세 가지 포인트는 재벌의 수탈, 유럽 금융위기, 부동산 거품 한국은 2008년 4/4분기, 2009년 1/4분기 이후 빠르게 경제 성장률을 회복했다. 일부에서는 2010년 6% 이상의 성장을 점치기도 한다. 한국은 2008년 4/4분기부터 증권 시장을 탈출한 미국,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인해 2009년 초 외환위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2008년 10월 이후 경상수지 흑자와 2009년 중반 이후 국제 금융 시장 위기 완화는 한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① 재벌의 수탈 경제 회복을 주도한 것은 재벌 대기업의 수출이었다. 2008년 6월 400억 달러에서 2009년 1월 243억 달러까지 줄어든 수출은 2010년 5월 다시 400억 달러 선으로 회복되었다. 세계적 무역 감소 속에서도 수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4분기 46.5%에서 2010년 1/4분기 47%로 상승했다. 수출 대기업들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는 100대 대기업의 순이익은 2008년 43.7조원에서 2009년 55.2조원으로 늘어났고, 이들의 순이익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2%에서 5.5%로 크게 늘었다. 재벌 대기업들의 당기순이익 증가는 2009년 환율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늘어나 매출 감소 폭이 적었지만, 그에 반해 비용 절감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들과 중소 부품 업체의 부등가교환으로 인한 가치 이전이 이들 대기업 자본 축적의 중요한 경로 중 하나다. 단적인 예로 현대차는 2009년 매출이 전년에 비해 1% 가량 감소했지만, 오히려 과감한 비용 절감을 통해 영업이익을 19% 가까이 증가시켰다. 2009년 현대차의 납품 단가 인하로 인해 현대차의 상위 10개 부품사의 매출액 감소는 현대차의 매출액 감소에 비해 3배 가까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 구조는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계열화 구조이며, 정부의 각종 정책 역시 이들 재벌들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제공한 공적자금은 이들 대기업들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데 쓰였고, 당시만 해도 반주변부 국가의 제조업 기업에 불과했던 재벌 대기업들은 이후 현재와 같은 명실상부한 초국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2009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은 세계 경제 위기 와중에서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한 걸음 더 발전했다. 더군다나 이들 재벌들은 2000년대 호황을 기점으로 주요 자금 조달 경로를 내부 자금 조달로 바꾸어 신용 경색의 영향도 덜 받고 있음이 이번 경제 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계속한다면 이들 대기업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비용 전가를 확대할 것이다. 심지어 이들 재벌 대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커 국내 경제 성장률 증감에도 상대적으로 둔하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 전체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고, 생산 역시 국외에서 절반 가량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외 매출이 국내 매출에 4배 가까이 되고, 해외생산 비중도 매출액 대비 절반 가까이 된다. ② 유럽 금융위기 남유럽 재정 위기 이후 더욱 위험도가 커진 유럽 금융 시장은 한국 금융 시장 위험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2009년 말 외국인증권투자 중 33%(1,274억 달러, 약 140조 원)가 유럽계 금융 자본으로 미국보다도 많다. 유럽 금융자본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내 증권투자를 560% 가까이 늘렸고, 또한 경제 위기 시기에는 가장 빠르게 자본을 빼냈는데, 2008년 말에는 2007년 말에 비해 47%의 자본(816억 달러, 당시 환율로 약 110조 원)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2009년 2월 환율은 달러 당 1,560원 선까지 치솟았다. 유럽발 금융 위기 발발 시 한국의 외환위기가 다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③ 부동산 거품 부동산 거품 붕괴 역시 한국 금융 위기의 뇌관 중 하나다. 은행이 가계에 대출한 주택담보부대출은 500조 원 규모며, 건설사에 대출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50조 원 규모다.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경우 한국의 일년 국내 총생산의 50%에 가까운 규모의 잠재적 부실 채권이 발생하는 것이며, 상환 및 이자 연체가 발생할 경우 9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은행 이자 수익(국내 총생산의 약 30%에 달하는 규모)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자, 건설사, 금융자본 삼자 간의 투기 동맹은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을 이끌었다. 은행은 실제 가치가 확정된 것이 아닌 미래의 부동산 개발 기대 수익을 담보로 건설사에게 대출(프로젝트 파이낸싱, PF)을 해주고, 그 부동산의 수요를 높이기 위해 부동산 투자자에게 또 다시 주택담보부대출을 확대해왔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해 건설사는 분양 수익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남을 수익을 올리고, 부동산 투자자는 매매 차익을 얻고, 은행은 양자에게 이자 수익을 올리면 문제가 없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여 기대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3자가 동시에 파산하게 된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자산가 계층의 이해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국민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상황 속에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거품을 계속 확대할 수도, 꺼뜨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의 노동현황과 노동조합 한국의 실질 실업률은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0년 2/4분기 실업률은 3.5%로 2008년 1/4분기 3.4%에 근접했다. 2010년 1/4분기 4.7%까지 상승한 실업률이 2/4분기에 들어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 고용률도 2008년 1/4분기 58.5%보다 높은 59.6%다. 하지만 정부 공식 실업률은 실업자의 수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으로 최근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취업준비자, 구직포기자 그리고 취업자로 분류되는 불완전취업자들을 실업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흔히 확장 실업률이라고도 불리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실업지표를 구해 보면 실업률은 2008년 6월 10.7%, 2009년 6월 12.5%, 2010년 6월 12.5%로 경제위기 이후 낮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 통계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그리고 취업자 중 18시간 미만 취업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분기와 2분기 5%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체감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수출 재벌을 위한 내핍형 위기 극복으로 임금 및 고용 조건이 악화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취업을 포기(혹은 대기)하고, 소비 감소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사업 포기가 속출한 것이 원인이다. 고용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의 원자료를 재가공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3월 858만 명(경제활동인구의 53.6%)에서 2009년 3월 841만 명(52.3%), 2010년 3월 828만 명(49.8%)로 줄어들었다. 정규직은 2008년 3월 741만 명(46.4%)에서 2010년 3월 833만 명(50.2%)로 늘어났다.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초에 비해 2010년 초 30만 명 가까이 줄었고, 정규직은 92만 명 가까이 늘었다. 비정규직은 제조업, 도소매업, 건설업에서 감소 폭이 매우 컸으며, 정규직은 사업서비스, 도소매업, 운수, 교육, 보건 서비스 분야에서 증가했다. 상용직 증가도 대부분 상용직 평균 임금 이상에서 증가한 것으로 보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인한 정규직 전환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 임금 감소, 임금 격차 확대 노동부 사업체임금근로시간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 월임금은 2010년 1/4분기 276만 9천 원으로 2009년 4/4분기에 비해 실질 상승률이 3.2%를 기록했다. 2008년 3/4분기 -2.7%를 시작으로 6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하다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아직까지 본격적인 임금 회복은 되지 않고 있다. 2008년 1/4분기와 비교하면 실질임금은 여전히 -3.6% 하락한 수준이다. 이러한 감소는 고용 형태별로도 차이가 난다. 고용형태별 근로조사에 따르면 정규직(노동부 기준) 임금은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에 비해 2009년 8.48% 상승하여 0.9% 정도 증가가 있었던 반면, 비정규직(노동부 기준)은 4.98% 상승하여 2.6% 이상의 실질 임금 감소가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역시 2007년 월 88만 원에서 2009년 월 1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벌어진 것은 경제 위기로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이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의 노동시간은 2007년에 비해 2009년 월 2.5시간 증가한데 반해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4시간 줄었다. 더군다나 통상, 수당이 정규직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노동 시간의 감소는 더 큰 임금 격차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노사연이 재구성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08년 3월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1.2%였으나, 2010년 3월 47.5%까지 하락했다. 이후 전망: 파견근로 확대와 노동시간유연화 한편 정부는 작년 초부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노동법 재개정과 정부 고용 정책을 논의해 왔다. 정부가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장기적 고용 전략은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노동 수요 측면에서는 제조업 일자리 창출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노동 공급 측면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대비하여 여성 노동 활용을 위한 상용 단시간 근로 확대와 정년 연장, 그리고 대학 구조조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노동 시장의 효율화를 위해서 임금유연성 확대(성과급 확대)와 고임금 정규직 보호 완화(해고 요건 완화), 실근로시간단축과 변형시간근로제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10년이 넘게 이야기되는 방안들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의 경우 생산자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를 예로 들고 있다. 생산자 서비스는 보험, 부동산 등의 금융서비스, 회계 연구개발 등 기업 특정 분야의 외주화된 서비스를 말하는데 금융 서비스는 두 집 건너 보험 설계사가 있고, 상가에 부동산만 넘쳐나는 현실만 보아도 탁상공론임을 알 수 있고, 기업 외주 서비스는 재벌 대기업이 수직 계열화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상태에서 그다지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사회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여성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저임금 노동 시장만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실상 정부 부문을 민영화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정부의 서비스업 확대 방안은 일자리 창출의 곤란함을 정부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수요 공급 정책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정부는 중간착취를 규제하는 직업 안정법을 전면 개정하여 파견중개업을 대형화하고, 파견법개정으로 인한 논란을 우회하기 위해 고용서비스촉진법을 새로 만들어 파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이미 공무원 노동자를 상대로 시범 실시하고 있는 단시간근로시간제 역시 전 산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이지만 일반화된 불법 파견 노동자 사용을 아예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며, 자본의 의도만큼 활성화되지 않은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대폭 확대된 노동 유연화의 종점인 셈이다. 노동조합 상황 총연맹 집행부 스스로가 평가하듯이 2009~2010년 대부분의 투쟁은 물리적 파급력이 없는 상징적 투쟁과 지지 연대 정도로 그쳤다. 총노동투쟁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총노동투쟁전선이라 부르는 것은 가장 높은 수위의 집중 투쟁인 총파업에서부터, 대규모 조합원 동원을 통한 위력적 가두 시위, 산별노조부터 단위 사업장에 이르는 임단협 투쟁 시기와 기조의 통일, 조합원들의 결의와 범사회적 지지 여론 조직 등 여러 수위가 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은 총파업은 고사하고 가장 낮은 수위의 전선 구축에도 실패했다. 산별노조의 경우 이명박 정권 이후 더욱 강경해진 자본가들의 태도로 인해 산별교섭 자체가 대부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민주노총에서 가장 집중적 형태로 산별교섭을 펼쳤던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 해산으로 인해 대각선교섭을 진행 중이고, 금속노조는 2만 수준의 중앙교섭 명맥은 이어가고 있지만 완성차 3사와 대공장을 포함한 중앙교섭 투쟁은 사실상 잠정 유보된 상황이다. 금속노조가 최근 조직발전특별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고 있는 바는 2006년 이후 금속 산별노조 완성의 척도처럼 여겨졌던 중앙교섭을 유연화하고, 기업지부 해소를 장기적 과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중앙교섭 참가를 강제할 만한 조직적 제도적 힘이 없는 상황,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실리가 분명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동의지반도 크지 않은 상황을 당장 타개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공공운수연맹은 조직을 공공운수노조준비위로 개편하고 오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이후 조직 통합 일정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통합의 키를 쥐고 있는 운수노조 업종본부(철도본부, 화물연대본부)들이 대대적 탄압을 받아 역동적인 조직 전환을 결의할 상태가 아니고, 공공서비스노조의 전국단위지부들 역시 단협해지와 탄압(사회연대연금지부, 가스공사지부) 속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규모 있는 연맹 직가입 노조들 역시 탄압으로 인해 노조의 생사 기로에 처해있거나(도시철도노조, 발전노조) 어용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고 있다(서울지하철). 공공운수 산별 노조 건설의 현실적 장애는 정권의 탄압이지만, 좀 더 근본적 원인은 산별 건설의 동인이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민주노조 진영의 전략적 지역에 탄압을 집중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의 대규모 사업장들과 금속노조가 그 전략적 타겟이다. 재벌 대기업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조업 공단의 핵심 노조들에서부터, 파업 파급 효과가 전산업에 미치는 운수 노조들, 초국적 자본 이동에 제약이 되는 외투기업의 노조들, 노조 조직률이 높은 공공기관 노조들에 이르기까지 정권과 자본은 한국 자본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조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편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조운동 기반에 큰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현재 금속 및 공공 대형 사업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 지부들 중 상당수는 아예 사용자가 타임오프 건을 가지고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타임오프제가 가장 첨예하게 걸린 금속의 경우 현대차 그룹 계열사, 두산그룹 계열, S&T 그룹 계열사 등 재벌 대기업 계열사들이 노조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사업장 수로는 약 80% 가까이가 단협을 타결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60여 개 사업장(대부분 500인 이상)은 8월까지 단협투쟁을 진행 중이다. 타임오프제로 인한 전임자 축소 규모도 문제지만 타결 이후도 문제다. 사회공헌기금 등의 우회로를 통해 합의를 하더라도 이후 전임자에 대한 규제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기존 조합활동이 타임오프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떼를 쓸 수 있다. 단협을 체결했음에도 상근단체 파견에 대한 임금지급을 중단하는 사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철도의 경우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사측이 규모 제한을 두려 하고 있다. 별도의 단협 조항이 없다면 무급전임자에 대해서도 무급휴가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비 인상, 사측에서 제공받은 전임자 기금 등으로 전임자 수를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전임자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산별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법 개정이 당분간 어렵다고 전제하면, 현실적으로 버티는 기간이 사회운동을 포기하는 기간이 되어서는 투쟁의 의미가 퇴색해 버린다. 타임오프산정범위 등으로 옭아매면 사실상 노조판 국가보안법이 되는 것이다. 사회운동노조의 노동자 대중운동 강화를 위한 지향 이러한 정세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흐름은 두 가지다. 위기는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전적 사민주의적 입장과 대공황에는 이행적 강령을 내걸고 사회주의 정당으로 노동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고전적 좌파 입장 등 다시 고전적 방식들이 부활하고 있다. 전자는 복지동맹(민주대연합), 사회연대노조(복지동맹에 참여하는 노동운동 노선으로)등으로 불리고 후자는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 사회변혁적 노조 등으로 불린다. 한편 현실에서는 정치세력들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대공장 노동자들의 실리적 선택이 더욱 많아 있다. 2년간 무쟁의 임단협을 진행한 현대차 노동자들, 타임오프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사측의 선물 공세에 별다른 투쟁을 만들고 있지 못한 기아차 노동자들, 단협효력상실이라는 노조 붕괴 상황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을 만들지 못하는 발전, 도시철도 등의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대표적 예다.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 전략의 문제점은 복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로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 현 정권의 노골적인 친기업, 부자 우선 정책에 대한 분노를 고려할 때 응당 노동자들이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지동맹-사회연대노조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사회운동이 노동자운동을 상대화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하고, 노동자 간 격차 확대와 분열에 대해 눈을 감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의 실행 경로가 노조 외부(정당에 대한 특정 시기의 지지)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노조 운동의 우향우에 대해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회주의정당-사회변혁노조 전략은 노동자운동 위기의 문제를 오로지 전위당 건설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이같은 맹점으로 인해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복구라는 현실의 대중운동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세적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운동노조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로 보인다. ①노동자 계급의 분열과 내부 갈등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②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강화에 복무해 나가며 ③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을 다시금 세워나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경제위기와 노동자 계급의 단결: 연대임금 전략과 투쟁 임노동제에서 노동자 간 갈등의 핵심은 임금 격차다. 이는 급증하는 산업 예비군, 상대적으로 더 보호를 받고 있었던 대기업 노동자들의 보수화 등으로 타협의 여지가 줄어드는 경제 위기 시기에는 더욱 첨예한 문제로 등장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현 정세를 ‘대공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혁신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당장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우리의 정세 분석 결과다. 저성장과 국지적 위기가 한동안 지속된다고 봐야 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을 논의해야 한다. 즉 한동안은 저성장 시대 핵심 문제로 대두될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투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임금 격차를 축소시키면서도 노조의 수동화를 가져오지 않는 방식의 연대임금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연대임금은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와 스웨덴 렌 마이드너 모델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1970년대 중반에 도입된 이탈리아 물가연동제는 물가연동 표준 임금(1974년 2,389 리라)을 소비자물가(1974년 8월-10월을 100으로 기준) 인상분만큼 상승시켜 그 정액 인상분을 모든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 전체 임금 평균이 1982년에는 1974년 대비 250% 이상 오르고 임금 격차도 크게 축소했다. 스웨덴 모델은 1950년대 물가 인상과 수출 대기업 경쟁력 저하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억제, 저임금 노동자 임금 인상, 대규모 복지정책, 한계기업의 퇴출과 구조조정, 정부의 적극적 완전 고용정책 등을 핵심으로 한다. 이 역시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했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1980년대 세계적 저성장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유지되지 못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우 세 노총의 분열, 피아트 노조, 공공부문 독립노조 등 고임금 노동자 층의 저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통화동맹 가입 조건에 따른 물가 안정이 1994년 제도 붕괴에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역시 1980년대 고임금 노동자 층이 연대임금으로 인한 임금 억제에 저항하며 비공인 파업을 광범위하게 벌이며 제도가 붕괴했다. 위와 같은 적극적 연대임금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을 연대임금의 한 형태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는 노사 교섭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정부가 이의 적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형태다. 그리스 노총은 최저임금 인상분 요구를 가지고 매년 파업을 벌여, 평균임금의 40%선까지 최저임금을 끌어올렸다. 프랑스의 경우 평균임금의 50%선까지 최저임금이 보장되는데, 물가인상분과 실질구매력 상승분 등의 지수를 통한 결정과 동시에 정부 재량에 의한 결정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매년 총연맹은 정부 재량에 의한 인상분 수준을 제한하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의 연대임금 현재 한국 상황에서 1970년대 이탈리아와 같은 연대임금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1969년 대투쟁이라는 대중운동과 1970년대 이탈리아 경제 성장이 만나 만들어진 제도는 현재 대중투쟁 약화, 경제위기라는 한국 조건과 괴리가 크다. 더군다나 1970년대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고임금 노동자들의 반발이 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에서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임금 격차는 크지 않았다. 1987년 이전 사내하청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80~90%였다. 울산과 거제의 금속 사업장들에서는 정규직 사내하청이 함께 임단투를 벌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조 민주화 투쟁과 전투적 임단투 이후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는데, 연대임금 없이 진행된 노동조합 임단투의 결과다. 현재 현대차의 경우 1차 사내하청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60% 수준이다. 2,3차 하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에서 연대임금투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해볼 수 있다. 먼저 한국노동자운동의 혁신의 중요 사안으로 연대임금을 다시 세워내는 것이다. 수년 전에 노동자운동 내 일부 정파에 의해 연대임금이 정규직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금 조성이라는 형태로 제시된 적이 있다. 사실상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심리를 자극하는 논의 제기였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에 나오는 연대임금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이용한 “기금 조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해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함께 요구할 수 있는 제도로 연대임금이 제시되어야 한다. 연대임금을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워야 한다. 단결의 이데올로기로 연대임금은 우선 민주노총 차원에서 “재벌에 의한 국민 수탈 저지” 투쟁을 범사회적으로 펼쳐보는 것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로의 부의 집중과 하청기업 수탈 문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 문제들로 제기하는 것이다. 내수 육성과 같은 공허한 이야기보다는 재벌들의 이윤을 사회화하며 사내하청 노동자, 부품업체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을 상향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최저임금 실질화 제도적 연대임금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투쟁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임금 격차가 매우 크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한국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그나마 저임금 노동자들의 보호막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투쟁은 지금까지 여성연맹, 공공서비스노조 등으로 조직된 저임금 노동자들 일부의 투쟁으로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저성장 위기반복 국면이 계속되면 고용, 임금 유연화 정도가 매우 큰 한국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위기 과정에서 위기 비용을 민간 자본이 일정하게 부담하는 방법으로서도 효과가 있고 노동자가 언젠가는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정부 재정 적자 방식보다 바람직하다. 전체 노동자의 42%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다. 최저임금투쟁이 총연맹 차원의 연대임금투쟁으로 더 많은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 위원이 사실상 아무런 기준도 없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제도는 문제가 크다. 법적 기준과 정부 재량권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프랑스식 제도가 바람직해 보인다. 현재 정치 구조에서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법적 기준으로만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것은 대중운동 활성화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초 발표되는 민주노총 임금 인상 요구액과 최저임금인상액을 동일액수로 맞추며 전국적 임금 요구 설정의 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총 임금 요구안은 조합원 생계비 조사를 통해 임금 인상액을 설정하고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을 최저임금요구안으로 만든다. 이 과정부터 하나의 틀이 필요하다. 같은 액수의 정액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공동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남녀 간 임금격차 문제 마지막으로 연대임금의 다른 핵심 과제로 남녀 간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연대임금은 주로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를 중심으로 언급되지만 격차 수준을 놓고 보면 남녀 간 격차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남성 정규직 대비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38.3%에 불과하고, 남성 비정규직에 비해서도 80%다. 여성 노동자 중 전체 노동자 평균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77%에 이른다.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남녀차별에 관한 법제도가 있으나, 성별 분업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좀 더 복잡한 것은 남성 노동자의 경우 1990년대 후반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된 이후 임금 계층이 중간층이 두터운 구조에서 저임금과 고임금으로 양극화되는 변화를 보였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우 저임금 계층에 극단적으로 몰려 있던 임금 구조가 저임금부터 고임금까지 고루 확산되는 변화를 보였다.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와 중위임금 이상의 여성고용이 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남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가 중간층이 저임금 층으로 몰리는 문제라면, 여성 노동자 임금 격차 문제는 아예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배제되었던 여성 직무와 여성 업종에 대한 문제이다. 일반적 연대임금과 종별적인 여성 노동권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직무, 업종에 대한 노조 조직화와 운동 의제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에 맞선 대응 제도적 요구로는 우선 2011년 상황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다. 현행 노조법은 기본틀부터가 창구단일화의 틀을 기업노조로 설정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거부감과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을 봤을 때 민주노조 사업장 내 어용노조를 만들어 교섭 체계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금속, 보건, 공공 등에서 사용자들이 노조를 흔들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 노조 간 경쟁은 실리적 노조에게 산별의 정치적 교섭 의제들을 회피할 명분을 쥐어줄 수도 있다. 결국 승패는 얼마나 준비된 투쟁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집단교섭 혹은 중앙교섭을 통한 산별노조 임단협이 연대임금 실현에 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임단협 의제 개발이 시급하다. 이러한 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하고, 산별교섭의 이유를 보다 대중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노조법 재개정 투쟁이 국회 앞에서 진을 치는 투쟁이 아니라 중앙교섭 혹은 전국교섭의 사회적 우위를 확인해 나갈 수 있는 준비에서 비롯된다는 점, 그리고 핵심의제는 임금격차를 줄여볼 수 있는 연대임금 의제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토론해봐야 한다. 국제적 대안세계화 운동의 강화 반주변부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에서 일국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수 중심 경제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미 초민족기업화된 재벌 대기업, 국내총생산 증감에 90% 가까운 영향을 미치는 수출 비중 등 금융세계화된 21세기 한국 경제 체계에서 내수 중심 전환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 상황으로 인해 일국적 집권 전략 중심의 대안보다는 국제적 수준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대안 세계화 운동에 주목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대안 세계화 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검토를 요한다. 세계사회포럼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새로운 국제 흐름은 현재 정체다. 1994년 북미자유협정 반대 투쟁, 1999년 시애틀 투쟁, 2001년 세계사회포럼으로 이어진 이 흐름은 2007년 이후 정체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더 이상 변화가 없으면 운동이 계속되기 힘들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위기 한 복판에서 열린 2009년 벨렝 세계사회포럼과 2010년 지역사회포럼들은 정세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해 왔던 남미와 유럽의 노동자 대중 운동이 침체해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세계경제위기가 남미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은 가운데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주요 중도좌파 정권들은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절하게 관리하며 사회운동을 국가 정책 내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좌우파 정권 할 것 없이 사회협약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화와 정부 경기부양 정책으로 노동자 운동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관리에 일정 부분 성공했다. 세계사회포럼을 중심으로 한 대안세계화 운동이 왜 한계에 봉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비판적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현재로서는 오히려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운동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① G20 투쟁 대안세계화 운동에 친화적인 노조 운동을 위해 올 가을 G20 투쟁을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의제를 다루는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즉자적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한국 노조 운동을 국제적 운동에 친화적으로 변화시켜본다는 목적 의식 하에 가능한 국제적 운동과 매개할 수 있는 의제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주로 논의되는 국제적 의제는 금융 통제다. 대안세계화 운동 진영과 일부 케인즈주의 학자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되던 은행세, 금융거래세, 금융상품규제 등 여러 정책 대안들이 이제는 우파 정부들의 국제 회의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자본은 실상 금융 규제에 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국제회의 상의 요란한 립 서비스로 무마하며, 실제로는 대형은행의 리스크 관리 수준의 조치들만 취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7월 15일 통과시킨 도드-프랭크 법안은 대형은행에 대한 정부 감시를 높이고 부실은행을 조기에 퇴출시켜 금융 시장 교란 요인을 줄여보겠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국제적으로 공조가 안되고 있다는 이유로 유럽과 미국은 핑퐁 게임을 벌이며 은행세, 금융거래세와 같은 금융 규제안은 회의 석상에만 올려 놓고 있는 상황이다. G20을 계기로 한국 노동자 운동은 국제적 노동 조건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의제들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좋은 일자리’, ‘사회보장확대’ 정도로 의제화되어 있는 노동 문제는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자주 제기되는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남반구 노동자와 북반구 노동자의 갈등이나 초국적 기업에 의한 노동권 파괴 앞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되고 국지적 위기가 반복될 경우 국제적 노동권 보호 문제는 노조 운동에 있어 핵심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가 작년과 올해 초국적 기업들의 구조조정, 자본 철수로 곤욕을 치루었듯이 경제위기 시기에는 자본 철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보호무역 혹은 국가 경쟁력 우위를 위한 저임금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상징적 수준에서 주요 노조들이 국제적 수준의 노동헌장 제정 운동을 펼치는 것에서부터, 무역협정에서 노동권 기준과 노동권 파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의제들의 개발,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 투쟁을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 마련 등 여러 수준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하반기 G20 투쟁을 준비하며 한국 상황과 국제적 흐름을 반영하는 요구들을 만드는 토론이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②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철수에 대한 대응 대안세계화 운동의 다른 경로로 초국적 자본의 구조조정 및 자본 철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을 만드는 것도 모색해 볼 일이다. 한국에 있는 초국적 자본의 자본 철수와 구조조정으로 작년부터 금속노조 십여 개의 지회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 공장을 폐쇄한 발레오공조부터 자본 철수 압력으로 노조를 파괴한 발레오만도, 대규모 해고와 임금삭감을 단행한 캐리어, 만도위니아 등 초국적 자본에 의한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 의한 국외 현지 노동자들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인도 현대차, 포스코 사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벌어지면 대응하는 현재의 투쟁 방식은 초국적 자본의 휘발성으로 인해 효과를 보기 힘들다. 2~3년 전부터 브라질 CUT와 프랑스 CGT가 양국에 서로 진출해 있는 초국적 기업의 단체교섭, 사회적 의무, 최저임금 적용 방법 등에 대해 사전적 조치를 취하는 전략적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0년에 CUT, CGT는 발레오, 패넥스, 미쉐린, 까르푸 등 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일종의 양자 간 ‘투쟁협정’인 셈이다. 한국 노조 운동 역시 구조조정, 자본 철수 등의 사태가 터지고 난 후 원정투쟁 등을 통해 어려운 싸움을 하는 것보다 위와 같은 방식의 총연맹, 산별 수준에서 초국적 기업과 관련한 장기적 전략, 단체협약 및 기타 의무조항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에 진출해 있는 유럽계 자본의 노조들, 인도 노총과 인도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계 자본의 노조들이 단체협약 또는 노동 기준의 국제화를 이루는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것이다. 정세에 걸맞은 노조 체계와 이념의 구축 2010년 그 어느 때보다 총연맹의 존재감이 없는 가운데, 총연맹 위상 문제는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 반드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더군다나 올해 하반기부터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동조합 간부들이 어디로 배치되어야 하는지는 모든 노조 조직에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총연맹의 위상 잠시 국외 노조의 사례를 살펴보자. 산업 발전이 일정 수준 이상인 중심국과 반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내셔널 센터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조건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이를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다. 1990년대 초 전노협이 그러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브라질노총이 ABC공단 파업과 이후 전국적 노조 조직화로 정권의 반노조 정책에 맞설 때가 그러했다. 비슷한 시기 남아공노총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에서 흑인 노동자의 노조 설립 자체가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인종차별 투쟁에 대한 민중연대 투쟁이 그러했다. 1990년대 이후 브라질 노동자운동은 1980년대와 같은 총파업 투쟁을 통한 전선 구축보다는 PT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에 주력하고, 총연맹의 역할 역시 정당 건설 강화의 센터로서 역할이 커졌다. 정부 민주화로 그나마 노조 교섭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화되고 산별노조가 대부분의 교섭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아공노총은 1990년대 ANC 집권 이후 정부 집권 세력의 한 파트너로 총연맹의 역할이 커진 경우다. 주로 저임금 흑인 노동자가 조합원의 대다수인 남아공노총은 교섭 수준에서의 안정화보다는 정부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제도적으로 총연맹이 (중앙 및 지방)정부, 사용자 단체와 임금, 연금 등에 관해 의미 있는 교섭을 하거나, 복수노조 상태에서 제도적으로 어느 한 총연맹 소속의 단위노조에게 유리한 조건이 법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총연맹이 사용자단체와 전국단위통합교섭을 하는데, 실업보험 퇴직연금 등의 사회보험관련 문제부터 노동법 개정 사항에 대한 사전 사후 교섭을 주로 한다. 프랑스의 단협 효력확장제도에 의해 교섭은 사실상 전노동자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지방정부들은 지역내 고용 문제나 투자 유치 문제 등으로 노자 대립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관여해온 전통이 있는데, 이 때 총연맹의 지역본부가 지방정부 사용자단체와 중요한 교섭을 해왔다. 이탈리아는 1969년 이후 현장 노조 운동이 확대되는 가운데 1970년대 중반부터 물가연동임금제도를 통해 총연맹이 중앙정부, 사용자단체와 물가 통제, 임금 인상 등에 관한 교섭을 해왔다. 1994년 이후 물가연동제가 폐지된 이후 총연맹의 제도적 교섭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20세기 초부터 계속되어 온 이탈리아 노조의 중앙 집중적 전통으로 인해 총연맹에 의한 산별노조 관장력이 유지되는 편이다. 특히 2000년대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 펼쳐진 각종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많이 펼쳐졌다. 총연맹 지역본부들은 제도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지방정부가 관장하는 각종 보험 기금들에 대해 총연맹 지역본부들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노조 간 경쟁이 첨예한 상황도 총연맹의 역할과 지도력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인이다. 프랑스는 법률로 보호하는 5개 총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업 내 노조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고, 전국 교섭이나 산별 교섭에도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탈리아 역시 기업 내 노조 선거에서 주요 총연맹 소속이 아니면 RSU라 불리는 기업단위 노조통합 대표단에 끼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정세적 조건과 총연맹 한국의 경우 정부 노동 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하는 노동 시장, 국가적, 산업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초기업 교섭,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의 조건으로 총연맹을 강화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위의 국외 사례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다만 유럽과 같이 총연맹이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대한 안정적 개입 경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한계다. 명확한 공동의 투쟁 과제가 있지 않으면 산별노조나 기업별 노조가 총연맹을 경유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총연맹의 지위가 제도적이기보다 운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총연맹 지도력 상실의 원인은 총연맹 지도부의 운동 노선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흔히 양날개론이라 불리는 초기업 교섭 제도화를 핵심으로하는 산별노조, 의회 진출을 통한 집권 세력화라는 노동자정당 건설 운동, 무늬만 코포러티즘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정부에 대한 대립과 참여를 반복하며 노동자 대중운동의 힘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의지했던 사회적합의주의 운동 등이 그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의 집행부 노선이 핵심 문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집행부를 바꾸면 되는 문제인가? 집행부 교체와 더불어 총연맹으로 힘을 모으기 어려운 조건들이 동시에 고민되어야 한다. 하나는 노동자 운동 전반적으로 현재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별 건설 운동에서조차 금속 자동차 지부들과 공공운수연맹 대형 공공기관들이 사실상 저항하고 있는 상태다.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뿌리 깊은 관념이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민주노조 운동 진영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산별노조 건설이었고, 이는 총연맹에 대해서 산별노조 협의체로서 위상을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한국에서의 산별은 독일식 산별 모델을 이상화하여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식 총연맹-산별은 유럽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다. 많은 다른 나라에서 오히려 총연맹의 역할이 산별노조와 더불어 중요했다. 지역 대중운동의 중심으로 총연맹 지역본부 강화 총연맹의 지도력 재구축은 지도부 문제와 더불어 몇 가지 조직 혁신 ‘운동’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지역연대운동의 구심으로서, 총연맹 활동의 집행기구로서 지역본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노조 조직화, 정세대응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연대의 활성화를 위해서 지역본부와 산별지역본부/지부의 통합적 운영 및 공동기획ㆍ공동집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인력, 재정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다만 지역본부 강화를 위한 한 조건으로 예산에 대해서만 잠시 살펴본다. 산별노조 연맹과 총연맹 예산을 총연맹 지역본부로 가능한 집중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예를 들면 금속노조 수입 중 7.6%가 총연맹 납부금으로 올라가고, 이 7.6%의 43%가 지역본부 예산으로 교부된다. 금속노조 예산의 3.3%만이 사실상 금속노조 지역지부와 함께 하는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CGIL의 경우를 보자. 금속노조는 조합비를 총연맹에서 교부받는 형식으로 예산을 받는데, 금속노조 조합비는 1%가 총연맹 예산으로, 9%가 총연맹 지역본부로, 16%가 총연맹 지구지역협의회로 분배된다. 금속노조 전체 예산의 25%가 총연맹 지역본부에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역 본부에 대한 기여도가 8배 가까이 된다. 참고로 우리 금속노조의 지역지부에 해당하는 산별 지역본부는 9%, 지역지회에 해당하는 산별노조지구협의회에는 56%가 배정된다. 이탈리아 공공노조의 경우도 규모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산별노조 안정화와 전략적 공동 투쟁 과제 정립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산별노조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별노조를 포기하고 다시 기업별노조로 돌아가자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조직 전환이란 머릿속의 모델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의 성과와 정세 조건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조직 전환 논리는 관념적 발상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속노조와 공공운수연맹은 산별건설 운동을 조직 형태를 갖추는 방식에서 공동 투쟁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금속노조의 경우 한국 제조업이 수출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하청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운동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의 제조업 산업 조건은 수직 계열화를 통해 경영혁신을 달성했던 20세기 초 미국 대기업들과 하청 기지 건설을 통한 부등가 교환으로 이윤을 극대화했던 일본 대기업들의 전략을 종합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은 파워트레인(엔진, 변속기) 등의 핵심 부품사를 수직 계열화하며 동시에 국내 2,3차 부품사들을 강하게 수탈하고 있다. 최근 친기업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내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로 경제 위기 와중에 재벌 대기업들의 수탈은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내 지불 능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로는 재벌 기업 노동자들과 하도급 기업 노동자들의 격차 축소는 고사하고 적대적 대결 구도를 피할 길이 없다. 미국 전미자동차노조의 퇴행 사례 금속노조가 기업별 노조 전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CIO의 전미자동차노조가 전후 산별노조와 산업 평균 임금 정책을 포기하면서 걸었던 길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유럽식 산별노조로 조직된 CIO는 전쟁 기간 중 정체된 임금 인상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자본가와 정권의 탄압을 우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별 교섭 전략을 취했다. 지엠, 포드, 크라이슬러 완성차 기업과 5~6개 대형 부품사는 큰 인상을 해줄 여력이 있었지만, 2천여 개에 달했던 하도급 기업들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CIO는 ‘능력만큼의 지불(ability to pay)’이라는 슬로건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서 많은 하도급 기업의 노동자들을 조직에서 배제했다. 사회운동노조주의가 비판했던 비즈니스 노조의 세계적 첨병으로의 발전 경로가 시작되었다.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 고성장 시기에 전미자동차노조는 완성차와 핵심 부품사, 그리고 일부 하도급 기업들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실리를 챙겨왔지만 1980년대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조합원 수는 200만에서 40만까지 줄어들고, 결국 2009년 경제위기 와중에 노조 자체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기존 투쟁에 대한 평가와 대안 무리한 조직 전환과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중앙교섭에 당분간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남은 금속노조의 쟁점은 완성차 지부들과 지역지부의 관계를 대립 관계로 몰고 가지 않을 전략적 공동 투쟁 의제를 만들어 내는 것과 조합원의 구성 비율을 조정하고 계급적 대표성을 높여낼 조직화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금속노조의 공동투쟁 과제는 지금까지 주로 주간연속 2교대제나 노동시간단축 등이었다. 이 중 노동시간 단축은 쟁점이 있는데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1990년대 독일, 프랑스 등에서 기업노조 혹은 종업원평의회에 비해 영향력이 줄어들어가는 산별노조가 취한 전략 중 하나였다. 독일의 경우 산별협약을 통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시간계좌제와 같은 변형근로시간제와 맞물려 결과적으로 노동강도의 강화로 귀결되기도 했지만, 산별 노조의 전략으로는 유럽 대륙 노조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한국 노동자운동에서도 유럽 사례(특히 독일)를 들어 2000년 이후 전략적 투쟁 과제로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도 노동시간유연화를 통한 노동 효율성 강화와 시간단축을 통한 고용 증대 방안이 공공연히 이야기된다. 다시 말하면 저성장 시대에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노자간의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대공장과 중소영세사업장 간의 공동 요구가 될 수 있냐는 점이다. 이번 2009년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현재 제조업 임금 체계에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 경우 통상, 수당이 뒷받침되는 대공장 노동자보다 시간외 수당에 의해 임금 변동폭이 커지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큰 타격을 입는다. 독일과 같이 산업 평균 임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노조 전략으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단결과 노조 지위 상승의 매개보다는 오히려 대공장 노동자의 이해만 관철되기 쉽상이다. 저성장 시대의 금속노조는 현대-기아 노조와 금속노조 간의 대결 구도에 대해 고민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기아 노조와 현대-기아 기업 간의 싸움이 아니라 산별 금속노조와 현대-기아 자본 간의 싸움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직적 산업 구조에서 금속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의 중심에 현대-기아 자본이 있다. 성장의 열매는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하락의 고통은 중소제조업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조그만 실리의 분배로 완성차 노동자들을 포섭하는 현대-기아 자본에 대한 싸움은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투쟁이 아니다. 특히 앞으로 많은 고통 전가가 예상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노조 내에서 이야기되었던 여러 의제들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근절, 자동차 산업 내 노동소득분배율 상향 조정을 위한 사회적 기금 조성, 모비스, 위아, 동희오토 등 무노조 공장에 대한 노무관리정책 변화, 사내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등이 있다. 이러한 의제들을 공허한 정책 선전 수준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지부, 지역지부의 부품업체지회, 금속노조 중앙이 함께 실천적으로 책임지는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의 손실을 현대-기아 자본 스스로가 지게 하고, 이 과정 속에서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사업장 노동자로 분열되어 있는 금속노조의 ‘단결력’을 높여내는 것이다. 현대-기아의 문제를 현대-기아 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게끔 만드는 것이 내용 있는 산업 차원의 교섭, 투쟁의 과제다. 공공부분의 2010년 공동 투쟁 과제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 공공부문의 노조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정부의 임금 통제로 민간기업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임금을 정상화시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이러한 공동 투쟁 속에서 1999년 공익노련, (구)공공연맹, 민철노련이 공공운수연맹을 결성하고, 2006년에는 공공운수연맹, 화물통준위, 민주택시, 민주버스가 산별노조 건설 결의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부족하게나마 운수노조와 공공서비스노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민간 부문 임금의 정체와 정권의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코포러티즘적 대응으로 민간부분에 비해 오히려 임금과 고용안정 수준이 높아졌고,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대규모 민영화 계획도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과 임금 유연화 정책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동 이해로 자리잡기도 했으나, 대규모 정리해고가 아닌 추가 고용에 대한 감축과 조기 퇴직 확대, 미시적인 임금 유연화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고강도 탄압을 뚫어낼 만큼의 동인을 만들지는 못했다. 공공부문 역시 일각에서는 굳이 무늬만 산별인 조직통합을 할 필요가 있냐고도 주장하지만 현재와 같이 기업별 노조로의 복귀 흐름이 강한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를 포기하는 것은 훨씬 해악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전임자임금지급금지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다 내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까지 시행된다면 기업별로 나뉘어져 대응이 가능한 단위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시급한 문제는 수차례의 연맹 대의원대회에서도 드러났듯이, 공공운수노조 건설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금속노조와 같은 산별노조에 대한 당위론적 동의지반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