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조합의 무역, 노동기준 연계 전략에 대한 평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국 정부가 서명한 FTA에 노동조항(labor provision)이 포함되는 최초의 사례다. 이는 미국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가 제시한 핵심 노동조항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표명했지만 미국은 의회비준의 전제조건이라며 2007년에 수정안까지 제시하고 결국 관철시켰다. 미국노총(AFL-CIO)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무역협정에 체결국의 노동ㆍ환경기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무역, 사회조항 연계를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FTA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하지만 AFL-CIO는 한미 FTA에 대해 노동ㆍ환경조항이 여전히 미흡하고 실패한 무역모델을 답습하고 있다며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미국식 FTA 모델에서 노동조항은 어떤 기본구조와 특징을 지녔는가. 둘째, 한미 FTA의 노동조항은 미국이 그 이전에 체결한 것에 비해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셋째,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후 노동조항 이행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넷째, 그에 비추어 볼 때 한미 FTA 노동조항은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미국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국제적인 노동권 강화는 어떤 맥락에서 제시되었는가, 그 함의는 무엇인가. 여섯째, 미국 노동조합이 그 수단으로 제시하는 무역 노동기준 연계에 대해 한국 노동자운동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미 FTA 노동조항의 기본 구조와 특징 1994년에 발효된 NAFTA는 미국이 맺은 FTA에 노동조항이 포함된 최초의 사례다. NAFTA에는 노동ㆍ환경조항이 부속협정 형식으로 포함되었다. 이중 노동협정을 북미노동협력협정(NAALC)이라고 부른다. 또한 미국이 맺은 양자 간 FTA에서 노동조항이 설치된 최초의 사례는 2000년 10월에 체결한 요르단과의 협정이다. 2003년 이후 미국이 체결한 14개국과의 FTA에도 노동조항이 포함되었다. 이스라엘과 맺은 협정만 예외다. 한미 FTA 노동조항의 원형은 북미노동협력협정이기 때문에 핵심적 특징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북미노동협력협정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협정 체결국에 대해 노동법이나 기준을 상호조율하거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둘째, 협정 체결국에 노동관련 당국(노동부)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법 집행기관의 설립을 요구하지 않는다. 셋째, 노동 분쟁과 관련하여 고용주의 유죄 여부를 판결하거나 위반자들에게 시정조치를 명령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는 초국가적인 법원을 설립하지 않는다. 결국 북미노동협력협정의 핵심개념은 체결국이 법 내용이나 법 집행 권한 및 절차에 대해서는 주권을 유지하되 체결국이 ‘자국의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enforcement)’하도록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체결국은 공동으로 노동 문제와 노동법 집행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해야 하며, 이는 구체적으로 당사국이 국내 노동법의 집행 현황에 대한 국제적, 독립적인 비판적인 검토와 평가, 심지어 중재의 가능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미 FTA의 기본 특징은 큰 틀에서 NAFTA과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분쟁해결 절차가 NAFTA의 사례처럼 중재를 통한 노동환경 개선보다 직접적인 무역제재에 상당히 무게를 싣는 형태로 최종 타결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먼저 한미 FTA 노동조항의 기본구조를 살펴보고 그 의미와 특징을 검토하자. 1) 한미 FTA 노동조항의 기본구조 한미 FTA의 19장은 노동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노동 장(labor chapt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글에서는 두 표현을 모두 사용한다.) 노동 장은 양국 정부가 국제노동기준 준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첫째, 국제노동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의 선언과 그 후속조치에 기술된 대로 자국의 법 및 규정, 그리고 그에 따른 관행에서 다음의 권리를 채택하고 유지한다. 가. 결사의 자유 나. 단체교섭권의 효과적인 인정 다. 모든 형태의 강제적 또는 강요에 의한 노동의 철폐 라. 아동노동의 효과적 폐지, 그리고 그 협정의 목적상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의 금지 마.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의 철폐.” (19.2조 기본노동권 1항) 둘째, 무역, 투자 촉진을 위해 국제노동기준을 저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느 쪽 당사국도 양 당사국간의 무역 또는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19.2조 기본노동권] 제1항을 이행하는 자국의 법률 또는 규정의 적용을 면제하거나 달리 이탈하거나, 또는 적용을 면제하겠다거나 달리 이탈하겠다고 제의하지 아니한다.” (19.2조 기본노동권 2항) 셋째, 국제노동기준이 반영된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노동권에 대한 절차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어떠한 당사국도 이 협정의 발효일 이후, 양 당사국간 무역 또는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작위 또는 부작위의 지속적 또는 반복적 과정을 통하여 19.2조 제1항에 따라 자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노동법을 포함한 자국의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하여서는 아니 된다.” (19.3조 노동법의 적용 및 집행 1항) “각 당사국은 특정한 사안에 있어서 자국 법에 따라 인정된 이해관계를 가진 인이 자국 노동법의 집행을 위한 재판소에 대한 적절한 접근권을 가지도록 보장한다. 그러한 재판소는 행정·준사법·사법 또는 노동재판소를 포함할 수 있다. 각 당사국은 자국 노동법의 집행을 위한 그러한 재판소의 절차가 공정하고 공평하며 투명할 것을 보장한다.” (19.4조 절차적 보장 및 대중 인식 1항, 2항) 넷째, 국제노동기준 준수를 담보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 운영한다. 즉 공중의견제출제도, 정부 간 협의절차, 분쟁해결제도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을 보호한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과 미국 정부는 노동 장을 이행할 목적으로 노동부 내에 접촉선 역할을 하는 부서를 지정한다. (NAFTA의 경우, 행정사무국(NAO)이라고 불렀다.) 접촉선은 노동 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개인, 집단이 제출한 의견을 접수하고 신속하게 검토한다. 이를 공중의견제출제도라고 부른다. 그리고 당사국은 상대방 접촉선을 통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양국은 만족스러운 해결에 도달하기 위해 신속히 모든 시도를 취하며, 어떤 사람이나 기관에 자문이나 지원을 구할 수도 있다. 협의가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협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 노동협의회는 한미 양국의 노동부와 그밖의 적절한 기관, 부처의 고위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노동 장의 이행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이를 정부 간 협의절차라고 부른다.) 노동협의회가 60일 이내에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일반분쟁해결절차가 개시된다. 2) 한미 FTA 노동조항의 특징 ① 국제노동기준의 법제화 조항 우선 ‘국제노동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무가 곧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의무화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핵심 노동기준을 자국 노동법과 관행으로 채택,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핵심 협약을 비준한 경우가 한국보다 더 적기 때문에 한미 FTA 체결이 양국 정부에 협약 비준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 법제화 의무를 규정한 표현이 과거 미국이 맺은 FTA에 비해 더 강해졌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예를 들어 미국-싱가포르 FTA은 “노력해야 한다”(shall strive to~)는 문언 형식을 취해서 국내법 정비는 체결국의 법적 의무라기보다는 일반적 노력의무로 간주될 수 있었다. 반면 한미 FTA는 “해야 한다”(shall~)는 문언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는 “ILO 기본권선언은 ILO 미비준국가인 경우에도 기본권에 관한 원칙을 존중, 증진, 실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는 ILO 회원국으로 당연하게 준수하고 있는 의무이기 때문에 한미 FTA로 인해 추가적인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국내법령을 제ㆍ개정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밝히고 있다(노동부, ‘한미 FTA 노동분야 추가협의 결의’, 2007.6.29). 또한 노동부는 의무 위반으로 분쟁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역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상대국이 입증해야 하므로 실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한국 정부는 기본노동권 법제화 조항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 협약을 비준할 필요도 없고, 국내 노동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다고, 즉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② 무역, 투자를 촉진을 위한 노동기준 저하 금지 조항 이 조항은 협상 과정에서 양국 정부 간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한국 정부는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국내 노동법의 보호수준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미국 정부는 국내 노동법의 기존 보호수준은 저하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현행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국내 노동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데(예를 들어 경제자유구역에서는 무급 주휴를 인정한다), 이 조항이 국내 노동법상 보호수준을 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 조항에 우려를 표명한 또 다른 논리를 보면, 미국은 ‘해고의 자유’ 법리를 채택하고 있으나 한국은 해고에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사용자가 입증하지 않으면 고용관계를 정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은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규제를 면하기 위해 고용관계를 종료시키는 게 수월하지만 한국은 해고가 제한되기 때문에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분쟁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조항에 반대했지만 결국 협정문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 역시도 “기본 노동권이 아닌 사항에 대해서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며, 기본 노동권 관련 사항에 대해서도 기본 노동권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준을 낮추어 적용하는 경우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님”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동부는 “한국 노동법에서만 규율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연차 휴가, 휴일은 협정문 적용대상이 되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또한 “향후 노동협정의 이행을 관장하는 기구인 노동협의에서 양국 노동법을 비교 검토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여 협정문 적용대상의 ‘형평성’을 확보하겠다, 즉 한국에서 임금과 노동시간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하고 있다. ③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 절차적 권리(사법적 권리) 보장 우선 협정이 지시하는 바가 체결국 정부가 모든 노동법이 아니라 협정문에 명시된 국제노동기준과 직접 관련된 노동법에 한해 효과적인 집행 의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 당사국들은 법 내용이나 법 집행 권한, 절차와 관련하여 주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협정 문안에는 “이 장(19장 노동)의 어떠한 규정도 당사국의 당국이 다른 쪽 당사국의 영역에서 노동법 집행활동을 수행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19.4조 절차적 보장 및 대중 인식 2항)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북미노동협력협정에는 ‘사법부의 판결이 수정되거나 재검토되지 않는다’고 명시했고, 미국-호주 FTA도 ‘노동협정상 어떠한 규정도 당사국 사법부의 재판에 대한 심사요구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별도로 두었다는 점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법률 ‘집행’ 개념을 넓게 해석하여 입법과 사법도 포함되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법의 경우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타당한가 여부를 두고 양국 간 주권이 마찰할 소지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미국이 추진하는 노동조항은 사법기관의 구체적 판례가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다만 ‘절차적 권리 보장’, 즉 사법절차의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④ 공중의견제출제도, 정부간 협의절차, 분쟁해결제도 우선 공중의견제출제도는 양국 정부의 행정 조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개별 기업의 행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즉 기업의 노동법 위반 사례가 있을 경우 해당국 정부가 노동법에 따른 시정 조치를 지속적으로 집행하지 않을 경우에 문제를 삼는다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공중의견제출제도, 분쟁해결제도가 새로운 제도이며 도입될 경우 정치적, 행정적 부담이 과다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로 수용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의회비준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고, 결국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그런데 한미 FTA 노동 조항의 분쟁해결 절차는 정부 간 협의를 통한 노동환경 개선을 넘어서 직접적인 무역제재 가능성을 약간 더 확대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첫째, 한국 내에서는 ‘공중의견제출제도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자국의 협정문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이의 제기를 허용하지 않거나(북미노동협력협정은 심의대상 범위를 타당사국 영토에서 발생하는 노동법 관련 사항으로 규정했다) ▲각국의 협정문 이행기관이 먼저 의견을 접수하여 스크린한 후 상대국에 통보, 협의하는 방식을 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한미 FTA 노동 장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가해지지 않았다. 둘째, 북미노동협력협정은 노동기준을 세 영역으로 구분하여 각각 이행절차를 달리하지만, 한미 FTA 노동 장은 그러한 명시적 구분이 없다. 셋째, 2007년 4월 타결안은 노동 장의 모든 의무 불이행을 특별분쟁해결절차에 따르도록 하였지만, 6월 재협상안은 일반분쟁해결절차와 연결하여 일반 상품관련 분쟁과 동일한 해결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특별분쟁해결절차에 따르면 분쟁해결심판기구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무역제재 전에 벌과금을 부과하며(건당 최대 1,500만 달러), 납부된 벌과금은 공동위원회가 설치한 기금에 납부되어 위반국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일반분쟁해결절차를 따르게 되면 시정명령 위반에 대해 바로 무역제재가 가능하다. 위반국의 선택에 의해 벌과금 납부도 가능하나, 이는 제소국에 주는 배상의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한미 FTA 노동 장의 최종 타결 문안이 변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협정문상 의무 이행 강제력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제약이 동반된다는 사실도 확인해야 한다. 첫째, 협정 위반에 대한 제소가 모두 접촉선에 의해 검토되는 것은 아니다. 협정 부속서한에 따라 ▲자국에서 먼저 구제절차를 요청하지 않거나 ▲ILO에서 검토 중인 사안이 결론이 나기 전이나 ▲중복, 유사한 내용을 복수로 공중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검토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이는 북미노동협력협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한미 양국은 무역이나 투자에 끼치는 효과가 입증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우에만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한다는 내용의 미 무역대표부 명의의 서한을 한국 측에 송부키로 하였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노동 장 관련 사안이 실제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북미노동협력협정의 이행 사례와 함의 그렇다면 만일 한미 FTA가 비준, 발효된다면 노동 장은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 아직 한미 FTA가 비준, 발효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를 예측하는 것은 이른 일이다. 하지만 NAFTA의 이행 사례를 검토하면서 노동 장에 대한 평가 시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NAFTA가 발효된 1994년 이후 2005년까지 제기된 공중의견제출제도 사례는 총 34건이다. 위반 국가별로 보면 미국정부 11건, 캐나다 정부 2건, 멕시코 정부 21건이다. 기본권 유형별로 보면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사항 25건, 단체교섭 관련 사항 11건, 파업권 관련 사항 3건, 아동노동 관련 사항 2건, 채용·고용상 차별 관련 사항 5건, 최저근로기준 관련 사항 12건, 산업안전보건 15건이다(사항별 중복 가능). 정부조치 유형별로 나누면 노동법 집행, 절차적 권리보장 관련 사항이 대부분이며, 노동입법에 관한 사항은 1건이다. 처리 결과를 보면 검토 거부 8건, 공청회 개최 16건, 장관급 회의 개최 14건으로 중재패널 단계까지 가거나 집행추징금 또는 무역제재가 가해진 경우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NAFTA는 기본 노동권 사안별로 이행 단계를 달리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럼 몇 가지 사례를 보자. 1) 북미노동협력협정 이행 사례 ① 1994년 멕시코 마킬라도라 소니(MDM) 사례 이 사건은 1994년 1월 NAFTA가 발효된 후 미국 행정사무국이 접수한 세 번째 사례다. MDM은 소니 자회사로 멕시코 마킬라도라에 5개 공장을 운영했다. 1994년 10월 국제노동권기금, 멕시코 전국민주법률가연합, 마킬라도라정의연합, 미국친우봉사회 등 4개 단체는 멕시코 정부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의무를 위반했다고 제소했다. 제소자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시도하자 MDM 회사 측이 위협과 압력을 가하고 결국 해고를 자행했으며, 회사 경영진이 기존 노동조합과 지역 당국과 결탁하여 경영진의 요구에 순응하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선출하려 했으며, 멕시코 당국은 독립노조의 등록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 노동기준에 관한 제소도 있었으나 ‘멕시코 노동법에 따라 멕시코에서 먼저 구제절차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검토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제소자의 요청사항은 ▲미국 NAO가 NAALC 16항 규정에 따라 사건을 검토할 것 ▲미국 NAO가 텍사스 라레도에서 공청회를 열고 증인을 위해 통역과 비자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멕시코가 소니사에 국제협약과 자국 노동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할 것 ▲미국 NAO가 NAALC 22조에 따라 장관급 협의를 열도록 미국 노동부장관에게 권고할 것이었다. NAO는 절차 가이드라인에 따라 접수된 진정 건을 심사대상으로 할 것인지를 60일 내에 결정해야 하며, 공개보고서를 120일 내에 공표해야 했다. NAO 심사의 목적은 MDM사가 멕시코 노동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정부가 NAALC에 규정된 의무, 즉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자국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노동법과 단체협약이 시행되도록 재판소에 적절한 접근권을 가지도록 하며 ▲재판소의 절차가 공정, 평등,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보장하였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특히 북미노동협력협정에서 결사의 자유 사안은 (한미 FTA와 달리) 무역제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장관급 협의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하여 심사가 진행되었다. 미국 NAO는 1995년 2월 13일 멕시코 샌안토니오에서 공청회를 개최했고(NAO는 공청회의 목적이 공중에게 이 사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 뿐, 개인적 권리에 대한 재판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1995년 4월 11일 공개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수령하도록 회사의 압력이 있었고 노조활동에 대한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노동조합 등록절차에 대해서 장관급 협의 대상이 되도록 권고했다. 이는 복직, 체불임금 지급, 교섭명령과 같은 개별적인 권리구제 문제는 당사국 자치의 영역으로 둔 북미노동협력협정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NAO 보고서 발표 후 미국 로버트 라이히 노동부장관은 멕시코 산티아고 오나테 노동사회복지장관에게 장관급 협의를 요청하여, 1995년 6월 26일 장관회의에서 아래와 같은 합의를 도출했다. ▲노동조합 등록과 확인에 관하여 시행체계를 개선하고 공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협동 세미나를 3회 개최한다 ▲노동조합 등록 및 그 시행체계에 관한 연구를 멕시코 노동사회복지부 후원으로 3명의 독립적 노동법 전문가가 실시한다 ▲멕시코 노동사회복지부 공무원이 MDM사 관계자, 기존 노조와 독립노조 관계자 등과 미국 NAO 보고서 내용에 대해 협의한다 ▲이상의 모든 조치 결과에 대해 공표한다. ② 1997년 멕시코 마킬라도라 기업의 임신 검사 사례 1997년 5월 미국과 멕시코의 노동, 인권단체(인권감시, 국제노동권기금, 멕시코민주법률가연합)는 미국 행정사무국에 “멕시코 마킬라도라에서 정부가 용인하는 광범위한 성차별이 자행되고 있다”고 제소했다. 즉 고용주가 여성 구직자에게 임신 검사를 요구하고 양성으로 판정될 경우 채용을 거부하고 임신한 노동자의 경우 퇴직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3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회피하고자 했고, 당국은 이를 때로는 태만히 여기거나 때로는 공공연하게 지지함으로써 북미노동협력협정이 규정한 멕시코 정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1998년 1월 미국 행정사무국은 이를 확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1998년 10월 장관급협의에 참가한 캐나다, 미국, 멕시코 노동부 장관은 몇 가지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정부 공무원이 참가하는 워크숍, 여성 노동자 지원, 성차별 이슈에 대한 국제회의가 포함되었다. 또한 지목된 기업 중 일부는 임신 검사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의회 야당은 임시검사 금지를 명확히 밝히는 입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제소에 참가한 단체가 1998년 12월에 발표한 후속 보고서에 따르면 임신 검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던 기업이 여전히 임신 검사를 지속했다. ③ 1998년 미국 워싱턴 주 사과 산업 사례 1998년 멕시코 노동, 인권 단체는 미국 노동법이 워싱턴 주 사과 산업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제소했다. 즉 농장노동조합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대한 법적 보호가 결여되어 있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며, 보건·안전 관련 위반이 광범위하며(농약의 위험),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와 직업안전보건국(OSHA)과 같은 노동법 집행기관의 예산이 삭감되었으며, 두 개의 주요 사과 포장선적기업 고용주가 노동조합 대표자 선거에 개입하여 위협과 협박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거대 사과 생산업체에 속한 과수원과 창고에 고용된 노동자는 45,000명을 넘었고 대부분은 멕시코 출신이었다. 제소자는 멕시코 정부가 노동협력협정이 규정한 검토, 자문, 평가, 중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안전ㆍ보건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 제재까지 가능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미국 기업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부 기업 지도자는 노동협력협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멕시코의 행정사무국은 1999년 8월 보고서를 발간했고, 장관급협의의 결과로 2000년 5월 18일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성명은 행동계획으로서 정부 간 회의를 워싱턴과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하고, 미국 행정사무국이 워싱턴과 야키마에서 공개포럼을 조직하며,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 삼국이 이주노동자에 관한 지침을 발표하기로 했다. ④ 1998년 캐나다 맥도날드 직장 부분 폐쇄 사례 1998년 10월 퀘벡노동동맹, 국제노동권기금, 전미트럭운전사노동조합(팀스터스)은 퀘벡 세인트허버트의 맥도날드 식당이 노동조합 등록 직전에 폐쇄했다고 제소했다. 퀘벡 법원은 노동조합을 회피하기 위한 부분 폐쇄를 허용했고, 맥도날드는 그 식당이 체인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부분폐쇄를 금지하지만 전면폐쇄는 허용한다.) 따라서 이는 북미노동협력협정에서 사법권이 문제가 된 첫 번째 사안이었다. 1998년 12월 미국 행정사무국은 맥도날드 사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1999년 4월 미국과 캐나다 행정사무국, 제소자, 캐나다 노동부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 퀘벡 정부는 직장폐쇄에 관한 주 노동법을 검토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문제에 관한 법률적 구제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2) 북미노동협력협정에 대한 평가시각 북미노동협력협정에 대해 미국 노동계 내에 일부 긍정적 평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즉 공중의견제출제도와 공개청문회에서 노동기준 미준수가 심의되고 이것이 국내 여론을 불러일으켜 정부의 태도 변화나 기업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멕시코 정부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미국 노동단체가 미국 행정사무국에 제소하거나, 미국의 침해에 대해 멕시코 노동단체가 멕시코 행정사무국에 제소함으로써 노동조합, 인권단체의 연대가 강화되는 계기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노동조합은 그것이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간주했다. 예를 들어 가장 핵심적인 노동기준인 결사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미비하고, 심지어 가장 높은 단계의 이행조치도 실질적인 무역제재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집행추징금은 협정 위반국의 노동법 집행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다.) 위의 MDM 사례에서 NAO의 장관급 협의 보고서도 “모든 법적인 수단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노조를 등록시키기 위한 시도는 실패했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적절한 퇴직금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해고가 독립노조 설립과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다”고 언급하여 이러한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AFL-CIO는 NAFTA와 그 후 체결된 양자 간 FTA가 “단 하나의 노동권 관련 의무, 즉 정부가 자국의 노동법을 집행해야 할 의무만이 분쟁해결 체계를 통해 실제로 강제될 수 있다. 노동 장에 포함된 다른 모든 의무는 명백히도 분쟁해결 체계로 다뤄지지 않으며 따라서 완전히 강제될 수 없다. 당사국은 ILO 기준을 충족해야 할 의무를 지니지 않으며, 협정 하에서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자국의 노동법을 심지어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노동조합 역시 북미노동협력협정이 ILO가 인정하는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여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았다. 3) 한미 FTA 노동 장에 대한 미국 노동조합의 평가 시각 그렇다면 북미노동협력협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때 한미 FTA 노동 장은 어떠한가. 미국 AFL-CIO와 주요 산별노조가 참여하는 노동자문위원회가 2007년 4월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공회의소는 무역촉진권(신속협상권)의 목표를 충족하도록 노동 장을 협상하는 데 시종일관 실패하였다.” 즉 ▲ILO의 핵심 노동기준을 준수할 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국내 노동법이 제공하는 보호수준을 악화시키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 ▲ILO의 핵심 노동기준인 고용 차별에 관해 한국 정부가 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노동관계에 저개발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압, 폭력, 분쟁이 없다는 인식도 잘못된 것이다. 최근 ILO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더라도 한국 정부는 ▲노동조합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체포와 고소를 활용하며 ▲사업장 수준에서 복수노조를 금지하며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며 ▲필수공익사업장에 포함되는 공공서비스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부당한 정리해고가 자행되며 ▲노동기본권을 거부하기 위해 비정규 고용관계를 활용하며 ▲공무원노동조합을 폭력적으로 억압한다. 또한 AFL-CIO가 발표한 한미 FTA 해설 자료에 따르면, 2007년 5월 10일 의회와 행정부는 양자 간 무역협정의 노동 장에 포함되어야 할 새로운 모델에 합의했다. 그 후 새로운 모델은 한미 FTA 심의에 포함되었다. 새로운 모델은 과거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DR-CAFTA)이나 바레인, 오만, 모로코와 맺은 협정에 담긴 노동법 집행 기준보다 약간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우려 사항을 담고 있다. 첫째, 노동기준에 관련하여 오직 1998년에 ILO가 채택한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만을 언급하고 있다. 둘째, 노동법에 대한 정의에 연방정부의 법과 주정부의 법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지 않고 있다. (즉 협정이 적용되는 대상에 주정부 법이 배제된다면 노동권 보장 효과가 크게 축소될 수 있고, 양국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셋째, 제소자가 투자와 무역 관련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 2010년 9월 28일 민주노총과 AFL-CIO가 공동으로 발표한 「한미 FTA 노동자 공동성명서」도 “한미 FTA는 노동과 환경 조항에 있어서 약간의 중요한 진전이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며, 이전 협정들이 기반하고 있는 똑같은 실패한 무역모델을 여전히 전반적으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는 정부 협상가들이 “2007년 무역협정 모델의 노동·환경 조항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투자, 정부조달, 서비스(금융서비스 포함) 등 기타 중요한 장에 관한 노동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다뤄야만 한다”면서 “만약 우리가 제기한 우려를 다루는 전면적인 재검토와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및 연맹과 협력하여 한미 FTA를 강력히 반대하도록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서는 현재 155명의 미국 하원 의원이 지지한 ‘무역개혁·책임·발전·고용법’(TRADE Act)에는 필수공공서비스 민영화 또는 탈규제 금지, 외국인 투자 및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허용,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적용배제, 투자와 투자자에 대한 엄밀한 개념 정의 등의 원칙이 담겨있고 이것이 한미 FTA 전면 재검토·재협상의 최소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노동조합의 무역, 노동-환경기준 연계 전략 이처럼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민주노총과 AFL-CIO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AFL-CIO는 무역협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강제력 있는 노동권’을 촉진하는 협상이 포함되어야 한다며 무역과 노동ㆍ환경기준의 연계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AFL-CIO는 미국 정부가 추진했던 FTA 각각에 대해서는 그 한계를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반면 민주노총은 “한미 FTA가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구조조정 압력과 사회양극화를 촉진하여 노동기본권 행사를 근본적으로 제한할 것이라는 점에서 노동권을 한미 FTA와 연계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권과 환경권은 한미 FTA의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즉각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며 “한미 FTA 협상에 끼워서 보편적 노동권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무역과 노동ㆍ환경기준 연계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연계 전략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듯 보인다. 즉 연계 전략이 FTA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노동권 개선에 실효성이 없으며 노동권 개선이 반드시 무역과 연계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FTA 각각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를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전략이 앞으로도 유효한 것이냐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AFL-CIO의 무역 정책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수립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이론적 근거를 살펴본 후 간략한 평가를 내리겠다. 1) AFL-CIO 무역정책의 역사적 배경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노동조합의 재활성화 전략에 핵심은 조직화, 협상력 강화, 내부적 재구조화였다. 하지만 국제상업이 확장되면서 국제무역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AFL-CIO의 스위니 새 지도부는 미국 노동조합의 변화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과거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에서 1962년 무역확대법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미국 노동조합은 초당파적인 자유무역동맹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했다. 노동조합은 국제무역의 이익을 향유했고 노동조합 지도부는 무역자유화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는 보호자라고 보았다. AFL-CIO는 외국 노동조합에 개입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곧 반공노조를 후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AFL-CIO는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지닌 급진적 노동조합과 관계를 단절하곤 했다. 따라서 과거에 AFL-CIO가 세계무역에서 노동권을 말하는 것은 공허할 따름이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미국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노동집약적이며 해외수입품과 경쟁해야 하는 산업부문에 속한 비숙련, 저숙련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부터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에 미국 노동조합의 주요 관심사는 수입품 유입을 틀어막거나 해외시장(대표적으로 일본)을 비틀어 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동안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대통령 닉슨과 카터, 초민족기업, 수출의존적 농업 지역이나 선벨트 지역 출신 공화당 의원의 일치된 노력으로 인해 노동조합은 패배를 거듭했다. 노동조합은 1988년 총괄무역경쟁력법을 입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노동조합이 강력히 지지한 ‘게파트 수정안’은 일본처럼 미국에 대해 만성적으로 대규모 무역흑자를 누리는 국가에 대해 쿼터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는 대개 삭제되거나 약화되어 슈퍼 301조로 대체되었다. 1970-80년대 동안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계속 침식되었다. 북부 도시에 기반을 둔 산업노동력이 쇠퇴하면서 노동조합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반면 1980년대 기업의 정치행동위원회가 제공하는 정치자금 액수는 폭증했다. 1990년대에 이르자 노동조합의 관심은 개발도상국과 무역ㆍ투자자유화 문제를 둘러싼 싸움으로 이동했다. 그 첫 번째 싸움은 NAFTA였다. 노동조합이 볼 때 NAFTA의 핵심 문제는 무역이라기보다는 투자였다. 초민족기업이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멕시코로 산업체를 이전하겠다는 위협 때문에 노동조합이 임금과 노동규칙에 관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992년에 부시 행정부가 체결한 NAFTA에는 노동, 환경조항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선거운동을 거치며 변화가 발생했다. 부시의 경쟁자인 클린턴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신민주당’을 추구하면서도 민주당의 핵심 유권자 집단인 노동조합이 소외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민주당 내부가 NAFTA 찬반론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클린턴은 양다리를 걸치는 태도를 취하다가 최종적으로 핵심 노동기준과 환경문제, 수입품의 급증 문제를 부속협정으로 다룬다는 조건으로 협정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은 클린턴의 제안에 비판적이었지만, 실제로 부속협정에 기대를 품기도 했다. 1993년 5월 클린턴 행정부는 정부가 자국의 노동ㆍ환경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지를 책임지는 독립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안은 기업, 미국 공화당과 멕시코, 캐나다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노동조합은 협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클린턴 정부는 결국 제안을 철회하고 독립위원회보다 훨씬 약화된 형태로 노동기준의 강제 메커니즘이 성립되었다. AFL-CIO는 노동 부속협정에 충격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NAFTA에 계속 반대 입장을 펼쳤고 노동조합들은 워싱턴과 기층에서 NAFTA 반대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초기 국면에서는 NAFTA 반대 투쟁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1993년 11월에 하원과 상원에서 234 대 200, 61 대 38로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노동조합은 의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클린턴은 1996년 재선에 성공한 후 새로운 FTA를 추진하고자 했다. 이제 그는 기업과 공화당의 지지를 얻어서 새로운 신속처리권한을 얻고자 노동·환경기준이 포함되지 않은 ‘깨끗한 협정’을 고려했다. 하지만 1997년 2월 스위니 집행부는 협정 대상국의 임금과 노동기준을 향상시키는 조항을 포함하지 않는 모든 NAFTA 확대 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클린턴 정부가 신속처리권한을 갱신하려는 것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신속처리법안에 반대하는 캠페인 동안 미국 노동조합은 큰 변화를 추구했다. 스위니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국제주의자냐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국제주의가 어떤 가치의 복무할 것이냐다.” AFL-CIO는 세계 경제통합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전환했다. 동시에 AFL-CIO와 민주당 자유주의 집단이 맺은 정치적 동맹은 세계화가 수출 대기업과 초민족기업의 이익보다는 미국과 세계의 일반적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게파트 의원은 이를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세계화를 위한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노동자운동은 개발도상국의 노동ㆍ환경 기준을 요구했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생활수준을 높이고, 빈곤국에서 미국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중간계급을 확대하며, 미국의 일자리, 임금, 환경을 침식할 수 있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예방하자는 것이었다. 미국 노동조합은 신속처리법에 반대하기 위해 NAFTA 반대투쟁 당시보다 더 적극적으로 환경운동, 인권운동, 소비자안전운동과 협력했다. 1998년 시애틀 투쟁은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NAFTA와 신속처리권 반대 투쟁으로 경험을 구축한 WTO 반대 활동가들의 극적인 가두시위 때문이었다. 2) 무역과 노동ㆍ환경기준 연계의 논리적 근거 AFL-CIO는 미국진보연구소가 발표한 「노동권은 훌륭한 무역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논리적 정당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논리를간략히 살펴보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무역적자 증가에 직면해 있다(2004년 중반 이후 GDP의 5% 이상). 즉 미국은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하고 있으며 소비를 위해서 국내 자산을 매각하고 있고(재무부 채권, 은행, 건물, 기타 실물자산), 2007년 말 미국은 2.4조 달러의 순대외부채를 지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 생활수준의 하락을 초래하는데 경제 다른 부분에 대한 투자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몇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생산비용의 기능이다. 해외 생산자가 노동, 환경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일자리 상실, 불평등 증가를 야기할 것이고 미국에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를 증가시킬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이 해외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반면 생산자가 노동, 환경 비용을 책임진다면, 그 부담을 사회에 전가시키지 않게 되고 이는 생산자가 생산품과 서비스의 질에 기초하여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더 좋은 노동기준은 해외 국가에서 노동자 소득과 수당의 증가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동반할 것이다. 고용주가 현존하는 노동을 활용하는 새롭고 더 좋은 길을 발견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더 빠른 생산성 증가, 더 빠른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해외 국가의 노동생산성 증가나 환율 변화도 미국의 무역적자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담당자는 미국 경제의 혁신에 투자해야 하고, 해외 국가의 인위적인 환율 개입을 억제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무역 상대국, 특히 저개발국가의 더 좋은 노동기준은 미국의 수출과 수입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해외 노동자의 소득을 신장시킴으로써 미국 수출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할 수 있다. 이것이 세계경제 성장을 위한 ‘선순환’ 전략이다. 선순환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필요부가결한 부분은 ‘강제력 있는 노동권’(enforceable labor rights)을 촉진하는 것이며 이는 무역협정의 한 부분으로서 노동권에 관한 협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3) 무역, 노동기준 연계 요구에 대한 평가 1960년대 유럽 공동시장의 사례처럼 자본주의 성장기에 자본주의 발전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간 경제통합은 상호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성 수준이 높은 국가와 생산성 수준이 낮은 국가 사이의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무역은 반드시 불평등교환 즉 가치의 이전이 발생한다. 생산성 수준의 격차가 큰 국가 사이에서 상품 교환은 서로 다른 노동시간이 투여된 상품의 교환을 뜻하고, 그러한 교환은 곧 노동시간당 임금 격차를 의미한다. 즉 국가 간의 노동시간당 임금 격차가 국제무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교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또한 생산성 수준의 격차가 큰 국가 사이의 상품 교환이란 비교우위에 따른 생산특화를 통해서 세계적 수준에서 절약된 노동시간이 생산성이 높은 국가에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생산성 수준이 높은 국가는 이윤율이 높고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을 특화하고 생산성 수준이 낮은 국가는 이윤율이 낮고 느리게 성장하는 부문을 특화하게 됨으로써 국가 간에 ‘상대적 저발전’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국가 간 임금격차를 축소한다는 것은 불평등교환 즉 가치의 이전을 축소하고 국가 간에 상대적 저발전이란 문제를 축소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국가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려는 노력은 국제무역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불평등교환을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제적으로 노동 기준을 강화하고 최저임금, 노동시간, 직업안전보건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국제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21세기 세계 자본주의는 무역 네트워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중심부 국가에서 주변부 국가로) 자본의 일방적 이전 즉 초민족기업의 직접 투자나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서 부를 영유하며, (주변부 국가에서 중심부 국가로) 노동의 일방적 이전 즉 이주노동자 수입을 통해서도 부를 영유한다. 따라서 미국식 FTA 모델이 추구하는 투자자유화, 금융자유화, 지적 재산권 확대를 제한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조합 운동이 적극적인 연대와 공동행동을 모색한다는 것은 현재 정세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투자자유화와 초민족기업의 소유권 개념의 확대, 금융자유화, 지적 재산권 확대에 대항하는 투쟁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단으로 FTA를 체결한 상대국의 무역제재를 활용한다는 전략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면 현재 한국정부가 노동권을 탄압한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정부에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요청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이는 노동과 자본의 투쟁이 민족국가 간 분쟁으로 전환됨으로써 보호주의, 국수주의적 대립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이는 노동권 강화를 위한 투쟁을 오히려 고립시키거나 노동자 국제연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도 있다. 중심부 국가와 주변부 국가 간 불평등교환을 축소하고 노동조건의 하향경쟁을 제한하는 노동기준 강화를 목표로 노동자 국제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대중운동을 형성한다는 것과 그 수단으로 정부 간 무역제재에 호소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결론 한미 FTA가 체결된 후 한국정부는 노동 장이 도입되었다고 실질적으로 변화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노동 장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것을 의무화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핵심 노동기준을 자국 노동법과 관행으로 채택, 유지하도록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한미 FTA로 인해 추가적인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국내법령을 제ㆍ개정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무역, 투자 촉진을 위해 국제노동기준을 저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도 동일하게 간주했다. 한국정부가 앞장서서 노동 장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선전하고 있는 꼴이다. 이를 반영하여 한국 기업을 대변하는 경총도 노동 장 때문에 큰 문제가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NAFTA에 노동조항이 처음 포함된 이후 미국 정부는 FTA에 대한 지지를 모으기 위해 점진적으로 노동조항에 변화를 가했다. 특히 한미 FTA의 노동 장은 위반 사안을 일반분쟁해결절차로 다루기로 했다는 점에서 형식적 변화를 지닌다. 하지만 노동부는 의무 위반으로 분쟁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역 또는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상대국이 입증해야 하므로 실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단언했다. 또한 공중의견제출제도의 경우, 북미노동협력협정 사례에서 노동원칙 사안별로 이행절차를 구분한 것처럼 그에 가해진 제약이 다소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과되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공중의견제출제도가 활발히 활용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 당시는 노동조항이 NAFTA 체결의 전제조건이라는 대선 공약이 있었으므로 클린턴 정부로서는 그 유효성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양국 정부(노동부)가 이러저러한 근거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공중의견 검토를 거부하거나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즉 기본 노동권 보장은 FTA 노동 장의 형식적 완결성이 아니라 정부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정부는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 임금과 노동시간을 비롯한 규제 수준을 앞으로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만약 한미 FTA가 비준, 발효된다면 NAFTA 사례처럼 양국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위해 노동 장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앞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미 노동자연대의 필수조건은 노동 장이 제공하는 제도가 아니라 노동자 국제연대의 필요성, 긴급성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인식이다. 예를 들어 한국 대기업의 미국 현지진출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공장 간 생산물량 경쟁이 아니라 노동권 강화를 위한 연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대중적 인식과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국제노동기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는 두말할 나위 없이 긴급하다. 이는 국제무역이 동반하는 불평등교환, 즉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부의 이전을 축소하고 주변국의 상대적 저발전을 완화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조합은 초민족기업의 소유권을 강화하고 그들에 부를 집중시키는 수단인 투자자유화, 금융자유화, 지적 재산권 강화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 하지만 그 수단으로서 무역제재 강화에 호소하는 미국 노동조합의 무역, 노동기준 연계 전략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어떤 의도에 따른 것이든 보호주의, 국수주의적 반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오히려 노동자 국제연대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미 FTA 저지 투쟁은 한국정부의 동시다발 FTA 추진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그동안 축적한 투쟁과 토론을 바탕으로 FTA 모델에 일반적 인식, 그에 대응하기 일반적 목표와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체결국 간 손익계산 논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역자유화, 투자자유화의 본질에 대한 통일적 인식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정부와 기업의 공격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일반적 목표와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재정위기와 구제금융의 악순환에서 증폭되는 유럽연합의 위기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유럽연합(EU)에 지원을 신청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재정위기를 겪어오던 포르투갈이 결국 2011년 4월 6일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7-9일 헝가리에서 개최된 비공식 EU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포르투갈에 약 800억 유로(약 125조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작년 5월 그리스(1,100억 유로)와 11월 아일랜드(850억 유로)에 이어 구제금융을 받는 세 번째 유로존 국가가 되었다. [%=사진1%] 포르투갈 재정위기의 전개 사실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포르투갈은 2008-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한 반면 경기부양을 위해 세출이 증가하면서 재정적자 비율이 2008년 GDP 대비 -2.9%에서 2009년 -9.3%로 확대됐다. 정부부채 비율도 같은 기간 GDP 대비 65.3%에서 76.1%로 상승했다. 2010년 재정적자 비율이 -7.3%로 다소 개선되었으나 정부부채 비율은 82.1%로 악화됐다. 2010년 말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11%를 기록했다. 그 결과 2011년 경제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포르투갈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됐다. 11월 말부터 포르투갈 국채 신용등급은 아일랜드와 동일한 '요주의 대상'으로 떨어졌다. 올해 2월에는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한계치(그리스와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수치)인 7%를 넘어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포르투갈의 자금조달비용을 낮추기 위해 그 동안 일시 중단했던 회원국 국채 매입을 2월 중순부터 재개하였으나 국채금리 상승세는 지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23일 포르투갈 소크라테스 내각이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마련한 긴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자 국채금리가 또다시 급등했다. 그 직후 개최된 3월 24-25일 EU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금융안정화기구(EFSF) 개혁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안에 총 200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갚아야 하는 포르투갈은 결국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구제금융안은 다음 달 EU 경제ㆍ재무장관이사회(ECOFIN)에서 승인될 예정이다. 안이 확정되면 작년 그리스 위기 이후 조성된 7,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금융안정기금(EFSF)에서 2/3를, IMF가 1/3을 지원하게 된다. 포르투갈 재정위기의 원인 포르투갈의 경우 2010년 긴축재정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은 2010년 공공부문 임금 삭감(5%)과 민영화, 신규채용 및 연금 동결, 부가세율 인상, 국민연금 축소, 공기업 및 지방정부 재정지원 축소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지만 결국 재정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포르투갈 경제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EU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노동생산성은 EU 27개국 평균치의 70%에 불과하다. 그 원인으로는 미흡한 인적자본 축적, 낮은 연구개발 투자, 임금의 하방경직성 등이 거론된다. 또 포르투갈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2000년대 들어 경상수지 적자는 GDP 대비 10%에 달하고 있다. 장기에 걸친 경상수지 적자를 대외차입으로 보전함으로써 외채가 급증한 결과, 민간부문을 포함한 2010년 총외채는 그리스나 스페인보다 높은 GDP 대비 213%에 달한다. 유로존의 모순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사태의 현상을 열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일랜드와 남부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유로 단일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이 세계 금융위기라는 정세적 요인과 결합, 폭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유로존 탄생 이후 이들 주변국의 국채금리는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수렴했고, 그 결과 금융자본이 대거 유입되어 산업의 금융화와 서비스화를 촉진했다. 독일 등 유럽연합 중심국에 비해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위에 놓인 이들 주변국의 제조업은 붕괴했다. 그 결과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성장잠재력이 고갈됐다. 반대로 중심국은 주변국에 대한 무역흑자와 자본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단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전체 부채 증권의 약 50%를 보유하고 있다. 구제금융이라는 것도 실은 자국 금융자본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다음은 스페인? 이제 초점은 스페인으로 모아지고 있다. EU의 2010년 말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2009년 -11.1%, 2010년 -9.3%, 2011년 -6.4%로, 정부부채는 같은 기간 53.2%, 64.4%, 69.7%로 예상된다. 이는 지금까지 구제금융을 신청한 3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이지만,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스페인의 경우 무역적자가 만성화되어 그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금융위기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저축은행이 대거 부실화된 것이 커다란 위험요소다. 스페인의 공식 실업률은 20%를 상회하며 청년 실업률은 무려 40%를 상회한다. 물론 둘 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를 공략 대상으로 삼는 금융자본의 투기행태도 위기를 촉진할 수 있다. 최근 ECB가 중심부 국가의 통화긴축 압력에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스페인의 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구제금융 금리가 ECB의 기준금리에 연동되므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구제금융국의 디폴트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비민주성 유럽 5위 경제국인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 그 규모는 포르투갈보다 4배 많은 3,000억 유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에 하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현재 EU가 조성한 재원으로는 구제금융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말부터 EU 차원의 공동국채(E-Bond) 발행이 일종의 대안으로 제기되었지만, 엄격한 재정규율을 주장하는 독일의 반대로 의제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중심국 우파들은 '살찐 돼지들(PIGGS)'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우리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을 수 없다는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분명, 재정위기와 구제금융의 악순환이 경제적 이유에서든 정치적 이유에서든 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으로서 EU가 진정한 '연방국가'로 거듭나는 것도 요원하다. 현재 유럽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해법은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중요한 사실은 EU와 각국의 지배계급이 유럽 민중을 자신의 삶과 직결된 정치적 논의로부터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유럽 민중의 삶과 미래와 직결된 EU의 화폐·재정 정책은 유럽의회의 현안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 구제금융 지원 계획도 유럽 민중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결정이었다. 지배 엘리트에 의한 민주주의의 부정, 또는 혹자의 표현대로 '국가 없는 국가주의'야말로 EU의 근본적 결함이다. 또 다른 세계를 위한 투쟁만이 대안이다 2010년 이후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은 긴축재정이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술책이라며 자국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또한 구제금융이 중심부 국가와 금융자본의 이해를 위해 (주변부)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안이라며 EU와 IMF를 비판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양대 노총인 노동자전국연맹(CGTP-Intersindical)과 노동자총연합(UGT)도 작년 11월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사상 최대 동맹 총파업을 전개한 바 있다. EU가 구제금융 제공 조건으로 포르투갈에 더욱 강력한 긴축정책을 부과한 다음 날, 헝가리에서는 유럽노조연맹(ETUC) 소속 노동자 5만여 명이 연대시위를 벌였다. 소중한 성과다. 관건은 이런 흐름을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변혁하기 위한 국제적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역으로 EU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유럽 민중들을 세계화의 위험에 더 큰 강도로 노출시켜 상호 파괴적 경쟁을 야기할 것이다. 지금 당장 확실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유럽 민중의 발의를 발판으로 삼아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하는 것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노동자운동연구소입니다. 이번 주 정기보고서로 전자산업 관련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하여 공급사슬 내에 주요하게 위치해 있는 중소기업들을 분석하고 노동조건 특징을 조사했습니다. ---------------------------------------------------------------------- 주요 목차 1.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전자 산업의 노동자들 2. 한국 전자 산업의 현황과 특징 3. 주요 제품의 공급 사슬과 노동조건 4. 결론 ---------------------------------------------------------------------- 4. 결론 산업의 지리적 이동과 노동운동, 한국,브라질 노동운동의 적극적 역할, 중국, 동유럽 노동자들의 확대되는 자발적 투쟁이 관건 - 20세기 자본주의 황금기(전후 ~1970년) 이후 자동차 산업과 노동운동 동반 성장 · 전후 유럽과 일본의 금속노조 운동은 미국에서 유럽과 일본으로 생산지를 이동/확대해 온 자동차 산업과 깊은 연관. · 1980년대 유럽, 일본에서 다시 한국, 브라질, 남아공 등 반주변부 국가로 자동차 생산지가 이동/확대해 나가며 이들 지역에서 대규모 금속 노동운동 출현(실버, 2005). -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성장한 전자산업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노동운동 쇠퇴와 함께 함. · ‘80년대 전자전기 가전기기로 백색가전 산업 성장, ’90년대 개인용 컴퓨터 보급으로 IT 관련 산업 생산-소비 확대, 2000년대 무선통신 기기 보급으로 전자 산업 정점. · 하지만 이러한 산업적 부흥기에 노동운동은 반대로 80년대 부터 쇠퇴. 80년대 일본, 90~2000년대 초반 한국, 최근 중국으로 이어지는 생산지 이동/확대에서 새로운 산업적 노동운동이 출현하지 못함. · 자본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전자 산업은 그 시작부터 생산지의 국제적 이동과 국제적 부품 조달, 철저한 기업내 노조 탄압 등으로 노동에 절대적으로 불리했었음. - 한국, 중국, 북남미에서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 관건 · 삼성전자, LG전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현재 대규모 전자 제품이 생산되는 곳은 반도체, LCD패널은 한국, 휴대폰은 한국, 중국, 베트남, 브라질, 가전제품은 중국, 멕시코, 브라질, 폴란드, 헝가리 등 임. · 한국, 브라질의 경우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운동 전통이 존재하는 곳이며, 중국과 동유럽은 최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이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 · 결국 국제적 차원에서 전자 산업 노동운동이 부흥한다면 한국 브라질의 노동운동의 성장, 중국 동유럽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 확대가 관건일 것. 공급 사슬에서 파급력을 갖춘 기업과 공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지역 조직화 운동 병행 - 8~90년대 현대차와 더불어 중규모 이상의 자동차 부품사가 동시에 건설되었던 예 · 한국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 민주노조 건설 운동이 재벌 대기업 완성차 업체와 더불어 경주, 마창, 경기 지역 자동차 부품사에서 대규모로 진행된 사례와 비슷한 경로 고려 가능 - 공급 사슬 내 노조 건설이 상대적으로 가능하고 교섭력이 확보되는 고리를 찾아야 함 · 무노조 전략인 삼성전자, 어용노조를 통한 협조적 노조 전략인 LG전자의 민주노조 건설이 당장 쉽지는 않을 수 있음. · 하지만 공급 사슬 내에서 원청에 대한 교섭력을 갖추고 노동자들이 큰 규모로 존재하는 기업들 다수 존재. 핵심 위탁 조립업체부터 핵심 모듈 공급 업체까지 다양. · 산업적 파급력을 갖춘 부분에 대한 전략적 고려들이 이루어져야 함. - 더욱 중요하게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산업내 공급하는 핵심 지역인 공단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화 전략 필요 · 삼성전자, LG전자가 이중적 생산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반월/시화, 구미, 구로 등 전자전기 기업 밀집 단지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 ·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 노동 조건에서 대규모로 이동해 다니는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운동이 있어야만 전자 산업 내 노동시장 통제 가능. <끝>
광업·제조업 조사 원자료를 통해 본 반월시화 공단의 제조업 기업 특징 - 통계청 「광업·제조업 조사」는 매년 10인 이상의 전국 광업 제조업 사업체에 대한 통계로 매출액, 종사자수, 제조원가, 유형자산 등을 조사. - 「광업·제조업 조사」 2009년 원자료를 이용하여 반월 시화 공단과 인근 지역(안산시 단원구, 시흥시 정왕1~4동, 본동) 3,136개 기업의 특징을 분석, 이후 노동조합의 조직화 전략 수립에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자 함.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2008~2010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쟁점 2010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듯 보인다. OECD 국가들을 보면 2008년 0.3%, 2009년 -3.4%까지 하락한 평균 경제성장률은 2010년 2.8%로 반등했다.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지속 기간을 단축시킨 1등 공신 중국은 2010년 1분기 11.9% 성장한데 이어 4분기까지도 8% 내외 성장을 하며, 올해도 8% 내외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역시 2011년 4~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도처에 새로운 경제위기 가능성들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화폐 달러에 대한 발권력을 이용해 가까스로 회생한 미국은 여전히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더 많은 수량완화 정책으로 연명하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 역할을 한 대형 은행들은 미국 정부가 풀어놓은 달러로 신흥시장에서 자산 투자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은 그리스,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이 부도 직전에 내몰렸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도 연쇄 부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유로화의 위기로 인해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줄도산하며 제2의 세계 경제위기가 발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이야기되고 있다. 회복과 동시에 새로운 위기 가능성들이 커지는 현재까지 전 세계 노동자들은 지난 2년간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고통 받았다. 일부 신흥시장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질임금이 삭감되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최근 명목임금을 올린 국가들의 경우에도 작년 하반기부터 치솟기 시작한 물가로 인해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미국의 두 자릿수 실업률이 대표하듯이 가시적 경제성장률 상승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에서 고용 회복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한편 이번 경제위기는 분할과 배제가 신자유주의의 핵심 노동 정책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노동자 전반에 고용과 임금 위협이 있었지만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고통이 더욱 심각했다. 작년 12월에 IL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경제위기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소득분배율(한해 생산한 순부가가치에서 노동자 임금이 차지하는 몫)이 크게 줄었는데 분배율을 낮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저임금 노동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재벌 대기업의 하청 업체로의 비용 전가와 그에 따른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와 실질임금 삭감, 실직과 생활고로 인한 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자살까지 그 형태도 다양했다. 이러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는 보수 진영에서조차 복지를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올해 무엇보다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노동자 운동이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 즉 노동자 간 임금, 노동조건의 격차를 뛰어넘어 단결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전략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외양적 회복세와 달리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제 어떠한 계기로 다시 2008년과 같은 상황이 도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와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되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위기 시기는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할 기회의 시간이 되는 반면 노동자 계급에게는 노동자들끼리 일자리를 둘러싸고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해야만 하는 절망의 시간이 된다. 노동자 간 단결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임금 격차 문제를 중심으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고 국외 노동조합이 이와 관련하여 작년 핵심적으로 진행한 임단협 투쟁 사례들을 살펴보며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본다. 금속노조가 3월 말부터 조기 임단투에 돌입하는 만큼 본 글의 분석은 자동차 산업과 금속노조에 초점을 맞춘다. 국외 자동차 산업 임금 동향 먼저 국외 임금 동향을 짧게 살펴보자. 주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에 관해 알아본다. 위 그림은 자동차 산업(산업분류 C34) 노동자들의 임금 변화율 추이를 보여준다. 세계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 모든 국가에서 임금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한국과 미국의 경우 반대로 변화율이 큰 것이 특징이다. 임금 유연성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크다는 증거다. 위 그림은 자동차 산업 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을 장기 평균치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지만 십여 년 내에서는 경기 변동, 계급투쟁 조건에 따라 국가, 산업, 기업 수준에서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정부의 산업 정책 혹은 산업 내 노자 간 투쟁 양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몇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2007~2008년 시점에서 유럽 두 나라와 미국, 한국의 차이가 분명하게 난다는 것이다. 모든 나라들의 임금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우 경제위기 시점에서 오히려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매출 감소로 인한 부가가치 감소분에 비해 자본의 이윤에서 지출이 좀 더 발생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한국과 미국의 경우 임금이 크게 감소하자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본이 위기에 대한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더 크게 전가했다는 의미다. 한국은 2008년부터 현대기아차가 오히려 큰 이익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모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경우 특히 하청 기업에서 큰 임금 감소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유럽 노조들이 미국과 한국에 비해 좀 더 단결된 교섭과 투쟁을 벌여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비용 전가를 상대적으로 좀 더 효과적으로 막아냈다는 점이다. 기업별 교섭과 투쟁이 지배적인 한국의 상황을 반추해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위기를 빌미로 각종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하청 기업은 이를 그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납품관계가 원청에서 멀어질수록 더 크게 하락했다. 미국의 전미자동차 노조는 2008~2009년 사실상 무쟁의 선언을 하며 자본에게 투항했고, 한국의 노동조합들 역시 제대로 된 중앙교섭도 전국적 투쟁도 만들지 못했다. 독일 금속노조와 같은 사회 협약 중심의 대응이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기업별 대응은 최악의 방식으로 노동자 간 분열을 만들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할 수 있겠다. 한국 자동차 산업 임금 추이 한국 산업 구조의 특징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철저하게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 하청 계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그러한데, 현대기아차를 정점으로 한 하청 체계는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 격차로도 직결되어 나타나며, 또한 기업별 교섭 투쟁이 지배적인 노동자운동과 공명하며 노동자 간 격차를 공고히 한다. 1)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 아래 그림은 고용노동부가 조사하는 사업체 노동력 조사 자료를 근거로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의 임금 격차를 기업 규모에 따라 나타낸 것이다. 규모별 임금, 노동시간 등을 볼 수 있는 사업체 노동력조사는 여러 자료를 담고 있지만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점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공장인 모비스의 노동자는 300인 미만 하청 업체에 모두 고용되어 있기 때문에 통계에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기 시계열에서 사업체 규모별 임금 및 임금 격차 추이를 살펴볼 수는 있다.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대기업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임금 격차가 점차 벌어졌다. 위의 [그림 4]에서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다. 실선은 300인 이상 사업장 대비 임금 비율을 나타내며, 막대그래프는 액수 차이를 나타낸다. 2~3차 하청 업체라 볼 수 있는 30~99명 기업 노동자의 경우 1993년만 하더라도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임금의 65% 정도의 임금을 받았지만 2005년대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5%의 임금을 받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성장한다고 해도 소위 낙수효과 같은 분배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1997~1998년의 경우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공장 사업장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동반한 임금 삭감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2008~2009년에도 볼 수 있다. 임금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는 것은 경제위기의 한 파고가 넘어갔을 때부터 발생하는데, 1999년 이후부터 2004~2005년까지 임금 격차가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기 과정에서 하청 시스템을 정비하고 동시에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더욱 가혹한 수탈 체계를 갖추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경제위기 이후 100~299인 사업장과 30~100인 사업장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에서 더욱 확연히 확인할 수 있다. 중규모 1차 하청 업체의 하청이 다수 있는 이들 사업장은 원청을 따라가는 중규모 기업들에 의해 한 차례 더 수탈을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던 양자 사이에 큰 격차가 벌어진 것은 1998년 외환위기를 겪고 난 이후부터이다. 한편 100~299인 사업장은 원청과 교섭력이 그나마 좀 더 있고, 금속노조의 주력 노조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부분이라 임금 방어가 어느 정도 되나, 100인 이하 사업장들의 경우 무노조 사업장에 원청과의 가격 교섭력도 더욱 떨어지는 기업들이라 구조조정에 매우 취약하다. 경제위기 → 일시적인 임금 격차 축소 → 구조조정과 하청 수탈 강화 → 더욱 큰 임금 격차 대기업 중소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내에서도 원하청 관계에 따라 위와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확대 발생된다. 그리고 2008~2009년 경제 위기 이후 과정에서 위와 같은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작년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재벌 대기업들은 납품 단가 인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하청 기업에 최저임금 위반도 불사하라고 위협하고 있다. 2) 임금 특성별 격차 한국 제조업 노동자들 대부분은 저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참아낸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내에서 선두를 내어준 일이 거의 없다. 금속노조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임금에서 초과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가까이 된다.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구로나 반월 공단에서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이 지역의 비정규 생산직 노동자들은 임금의 30~40% 가까이를 초과근로수당으로 채우며,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저임금에 시달린다. 위 그림은 임금 각 항목 별로 월총액 임금인상률에 미친 기여도를 나타낸 그림이다. 예를 들어 임금인상률이 10%이고, 정액임금기여도가 5%라고 하면, 다른 부분의 인상 없이도 정액만 올랐어도 임금인상률이 5%는 된다는 이야기다. 위 그림들을 보면 기업 규모별로 기여하는 항목이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0~99인 사업장의 경우 1998년 이전까지는 초과급여나 특별급여에 비해 정액급여(통상급여)가 많은 기여를 했으나 1998년 이후부터는 정액임금이나 특별급여에 비해 초과근로수당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정액급여와 특별급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액급여 항목 중 기본급 비중이 낮은 한국 임금 구조의 특성 상 특별급여와 함께 성과급 성격의 통상수당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소규모 기업에서의 초과근로수당, 중대 규모에서의 각종 성과급이 임금 상승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매우 취약한 임금 형태이며, 동시에 원하청 간의 연대를 가로 막는 임금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원청은 기업에서 내리는 인센티브에 목을 맬수록 하청에 대한 수탈에 눈감을 수밖에 없고, 수탈당하는 하청 기업 노동자들은 더 많은 노동시간을 통해 임금을 보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외 금속 노조 임단협 투쟁 사례 국외의 많은 노동조합들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더욱 확대되는 임금 격차를 막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 장에서는 캐나다, 남아공, 이탈리아 등 국외 금속노조의 2010년 임단협 핵심 쟁점과 투쟁을 살펴보고, 2011년 한국 금속노조 임단협 투쟁에서 고민해볼 만한 교훈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자동차 부품사 노동조합의 공동 투쟁: 캐나다 자동차 노조(CAW) 캐나다 자동차 산업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겪었다. 2007년 250만 대 규모에 달하던 생산량은 2009년 150만 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캐나다 정부는 GM을 비롯하여 여러 자동차 업체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 위기는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더욱 가혹했는데, 부품사 노동자들의 25%에 해당하는 2만 1천 명이 해고되었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실질 임금 하락을 겪었다. 부품사 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빌미로 단협 개악도 기도했는데 ‘임금 및 연금 삭감’, ‘신규 채용자에 대한 차별적 임금 체계 구축’, ‘노조 동의 없는 공장 이전 계획’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2010년 캐나다 자동차 생산은 2009년에 비해 약 30% 가까이 회복되었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오히려 더욱 공세적으로 노조를 압박하며 양보를 요구했다.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 자동차 노조는 2010년 하반기부터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 공동행동(Auto Parts Workers United)을 전략적으로 추진했다. 부품사 노조의 공동 투쟁은 10월 27일 부품사 노동자 현장 총궐기를 시작으로 250여 부품사 노조 간부 합동 수련회, 공동 임단협 의제 선정, 부품사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 전략 토론, 2011년 부품사 노동조합 임단협 컨퍼런스 등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부품사 노조들의 공동 전략은 10월 27일 부품사 현장 총궐기의 날, 2만 부품사 조합원뿐만이 아니라 약 2만 명 이상의 비조합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캐나다자동차노조 소속 부품사 조합원들은 10월 27일 약 100개 사업장에서 집회를 개최한 이후 온타리오 지역에서 약 1만 5천 명 조합원들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공동행동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가장 구조조정에 적극적이었던 두 사업장에서 전미자동차노조가 11월 말에 승리적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 매그나 인테그람 시트 공장(캐나다자동차노조 444 지역지부)의 경우 10월 27일 보여준 공동 투쟁을 통해 납품처인 크라이슬러 미니밴 공장을 세울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한 사례. 매그나 인테그람을 비롯하여 인근 지역 부품사가 공동 파업에 돌입할 경우 윈저 지역의 크라이슬러 공장은 당장 조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 444 지역지부는 2010년 성과급 지급과 2012년 4/4분기에 2년간의 생계비 인상분을 반영하여 임금을 인상하기로 합의하였고, 기존에 60세부터 지급되던 퇴직연금을 55세부터 30년간 지급하기로 합의함. * 온토리오의 마틴리(Martinrea) 샤시 공장(캐나다자동차노조 127 지역지부) 역시 공동행동의 힘을 통해 승리적인 단협을 체결한 사례. 캐나다의 3대 부품사 중 하나인 마틴리는 9월에 시급 기준으로 약 21 캐나다 달러 이상의 임금 삭감안을 노조에 제시. * 127 지역지부는 10월 27일 공동행동에 전조합원이 참여하며 사측 요구안의 철회를 요구. 지엠, 포드, 크라이슬러, 도요타 등에 납품을 하고 있는 마틴리는 공동행동 규모에 놀라 노조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며, 2008년 위기 이전 노동 조건을 복구. 더불어 캐나다 자동차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일체의 아웃소싱과 공장 폐쇄를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 부품사 공동 투쟁은 2011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대형 부품사 외에도 소규모 부품사들의 임단협이 계속되고 있으며, 부품사 공동 임단협 교섭 수준을 계속 높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2) 고물가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와 임금격차에 대한 대응: 남아공 금속노조(NUMSA)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8~2009년 2년간 물가가 18% 인상되었고, 이러한 큰 물가 인상으로 인해 남아공 노동자 대부분은 심각한 실질 임금 감소를 겪었다. 이에 남아공 금속노조는 2010년 20% 임금 인상, 야간 근로 수당 및 주말 특근 수당의 인상 등을 공동 임단협 요구안으로 상정하여 투쟁했다. 그리고 실질임금 감소로 인한 고통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서 더욱 심하게 드러나고, 이에 따라 노동자간 임금 격차 문제도 더욱 첨예하게 등장했다. 이에 남아공 금속노조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데 더욱 노력했고 몇 가지 성과를 쟁취했다. 여러 업종의 교섭이 있었는데, 타이어산업고용주협회와의 업종 교섭이 특히 승리적으로 평가받았다. 2주가 넘는 공동 파업과 거리 시위를 통해 남아공 금속노조는 타이어 업종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교섭을 타결했는데,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단계적 임금 인상 정책이 특징이다. * 3년 이상 고용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은 해당 임금 단계 표의 최고치 임금으로 2011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함. * 2011년 7월 이후에는 전 산업 임금 인상 평균보다 높은 수치로 임금 인상. * 단기계약직 노동자에게 정규직과 같은 혜택 제공. 의료 보조금, 노후 수당, 퇴직금 등 정규직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수당 및 보조금 제공. * 타이어 업종 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동종 업계에서 타 업체보다 동일 직종의 임금이 낮은 아폴로사와 레이디스미스사에 대해 단계적인 추가 임금 인상. 2단계 임금군 노동자들은 2010년 7월까지, 3단계 임금군 노동자는 2011년 7월까지 임금 인상. 또한 총액 기준으로 2010년 7월부터 2014년 7월까지 54% 이상 인상. 완성차 노조들 역시 위와 비슷한 내용으로 타결했다. 고물가에 수출 감소까지 겹쳐 교섭 환경이 매우 불리했으나, 완성차 노조들은 7일간의 공동 파업을 통해 아래와 같은 합의를 달성한 것이다. 특히 이 협약의 경우 물가인상에 대해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 2010년 7월 이후 10% 임금 인상. 2011년 9%, 2012년 9% 임금 인상. 단 물가 인상이 이 이상일 경우에는 물가 인상분만큼 임금 인상. * 2011년 7월 이전에 공장 단위 고용안정기금을 조성. 1 노동자 1 노동시간당 10센트를 적립하고 기존 고용안정기금의 60%를 공장단위 기금으로 전환. * 단기계약직에 대한 처우 개선. 동등한 직업 훈련 기회 제공, 퇴직금 상해수당 등에 대한 동등한 제공. 의료 보조금 지급. 부당한 계약 해지 금지. 한편 남아공노총(COSATU)은 2010년 10월에 남아프리카국민전선(ANC)의 성장 노선을 폐기하고 사회주의 구조 개혁을 위한 경제 성장 노선을 전면화할 것을 선언했다. 남아공노총은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성장·고용·재분배 전략(GEAR) 노선을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으로 규정하고, 2010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새로운 경제 성장 노선의 핵심으로 완전 고용 정책을 제시했다. ‘완전고용을 위한 성장 경로’로 이름 붙여진 이 경제 노선은 산업 정책, 지방 균형 발전, 노동 시장 규제, 기술과 인적 자원 개발, 거시 경제 정책, 교육, 건강, 주거, 사회안전망 등에 걸쳐 기존과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민간 부분 고용 및 산업 정책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남아공금속노조는 노총의 구조 개혁 노선을 산별 업종별 단협을 통해 현실화하고자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남아공 금속노조는 2011년 좀 더 큰 틀에서의 구조 개혁을 위한 투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3) 교섭의 분권화와 금속노조의 대응: 이탈리아 제1 노총 금속노조(FIOM-CGIL) 최근 이탈리아 제1금속노조(FIOM)는 피아트사의 일방적 공장 폐쇄와 노동조건 개악 기도에 맞서 몇 차례의 총파업을 펼쳤다. 피아트는 2009년 미국 크라이슬러사를 인수하며 작년부터 글로벌 구조조정을 계획했다. 북미 동유럽의 크라이슬러 공장과 이탈리아 동유럽의 피아트 공장들을 최적화된 형태로 구조조정하는 것이 목표이다. 피아트 사측은 작년 초부터 시칠리아 공장 등 남부지역 공장 일부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토리노 공장 등 북부 지역 공장에까지 공장폐쇄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에게 산별협약 파기, 연 잔업시간 대폭 확대, 조립 라인 노동강도 강화, 복지 수당 축소 등을 조건으로 공장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한편 작년 말 제2, 제3금속노조(FIM, UILM)가 사측의 요구안을 받아들이며 공동 투쟁 전선이 붕괴했다. 현재 제1 금속노조가 지역사회단체들과 함께 토리노, 볼로냐 등에서 파업과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톨릭계, 사민주의계 금속노조인 제2, 제3금속노조의 이탈은 이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2009년 말 두 노조는 세 노조가 함께 체결한 산업별 전국협약(CCNL)을 파기한 것이다. 2008년 체결된 협약의 2010~2011년 연장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 내용은 두 노조가 제1금속노조(FIOM)가 제시한 임금 인상안과 중앙집권적 교섭권 유지를 거부하고, 정부가 제시한 좀 더 낮은 임금인상과 기업별 분권화된 교섭권을 받아들인 것이다. 제1금속노조는 8등급 임금군의 평균 130유로 인상을 요구했지만, 나머지 두 노조는 5등급 임금군의 113유로 인상을 요구했다. 제1금속노조에 따르면 두 노조의 임금 인상 수준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낮은 임금 인상 요구이다. 또한 이 두 노조는 기업 단위 노동 시간 유연화와 임금 격차를 폭넓게 허용하는 전국협약을 제시했다. 제2, 제3금속노조의 상급단체 제2노총과 제3노총(CISL과 UIL)은 2010년 초에 기업단위 교섭, 개별 노동자의 근로계약에 대해 산별단체협약을 뛰어넘은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노동법 개악에도 찬성했다. 이로 인해 3개 노총간의 공동대응도 파탄이 난 상황이다. 제1금속노조는 이러한 조건에서 2010년 초부터 자체 전국협약안을 전국적으로 선전 선동하며 독자적 투쟁들을 만들어 나갔다. 전국협약안에 대한 기업교섭대표단(RSU) 투표에서 요구안에 대한 총투표 결과 제1금속노조 안 41만, 나머지 27만 투표로 더 많은 노동자가 제1금속노조를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제1금속노조는 이러한 투쟁을 통해 2010년 말 2011년 초 RSU 선거에서도 제2, 제3금속노조를 꺾고 대부분 승리하며 대중적 지지를 확대하고 있다. 2010년 말에는 나폴리, 리에티, 피사 등 지역에서 압도적 승리를 기록했다. 2011년 초반 임단투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피아트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노자 간의 대결만이 아니라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대한 타협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제2, 제3노총을 다시 노총 공동 투쟁으로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피아트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 금속노조의 대응 2009~2010년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상당한 실질임금 삭감을 경험했다. 한국 역시 2009년부터 2010년 전반기까지 실질임금이 삭감되었다. 또한 이러한 임금 삭감은 고용 불안정성이 큰 노동자에게 더욱 크게 이뤄졌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 시기 자본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하청 업체로의 비용 전가, 비정규직 계약 해지, 노동조합에 대한 양보교섭 강요, 노동시간 유연화 등을 추진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도 역시 동일하다. 한국의 경우 ① 재벌 대기업들의 하청 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압박과 이로 인한 하청 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 ② 물가인상으로 인한 실질임금 삭감과 임금격차 확대, ③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노조법 개악, ④ 단기근로 확대 변형근로시간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고용전략2020 등이 추진되고 있다. 1) 하청업체로의 비용 전가 문제 부품사 또는 하청 업체로의 비용 전가에 맞선 투쟁의 좋은 예는 캐나다자동차노조(CAW)의 2010년 부품사 공동 투쟁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공동 투쟁은 여러 승리를 만들어 내었다. 한국 금속노조에서도 중앙 교섭, 지부 집단 교섭 등을 통해 중앙교섭, 지부교섭에 참여하는 자동차 부품사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 투쟁이 매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금속노조의 공동 투쟁은 완성차 지부의 교섭 참여 문제, 파업 참여 문제로 공동 투쟁의 결과가 수렴되며 부품사 혹은 하청 업체들의 공동 투쟁이 부차화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캐나다의 예는 완성차 업체의 참여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품사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에 산별노조의 아낌없는 지원과 의미부여를 쏟아 붓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시사점을 남겨준다. 캐나다자동차노조 역시 부품사 공동 투쟁에 완성차 노조를 참여시키는 것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부품사들의 공동투쟁으로 의미 있는 협약들을 쟁취했다. 2) 물가인상으로 인한 실질임금 삭감과 임금격차 확대 물가인상과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한 대응 사례는 남아공금속노조(NUMSA)가 좋은 예를 보여준다. 제조업에서도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던 타이어업종의 노동자들이 수 주간의 총파업을 통해 물가인상에 대한 보상, 단기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동일 수당 제공, 업종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쟁취했다. 2011년 1월 현재 한국 물가 인상률은 전년 동월비 4.1% 대이고, 생계비와 직결되는 생활물가 인상률은 4.7%에 이른다. 현재 국제유가를 고려할 때 올해 물가인상률은 4% 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 몇 년간 사실상 실질 기본급은 동결 또는 삭감되고 있다. 금속노조 기본급 인상 요구안은 경제위기가 가장 심했던 2009년을 제외하면 대체로 13만 원 수준에서 제시되었으나, 실제 인상은 매년 5만원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앞의 임금인상 기여도를 감안하면 사실상 중대형 사업장 임금의 대부분은 성과급과 초과근로수당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당 부분이 실질임금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교섭력이 낮은 사업장, 개별 기업의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사업장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올해는 2008년과 비슷한 물가인상이 예상된다고 할 때, 산별 차원의 임금 요구(현재 금속노조에서는 지부 임금 요구안)에서 2011년 물가인상 +a 등의 실질임금 인상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보인다. 두 자리 수의 물가인상이 있었던 남아공의 경우 고물가를 대비한 물가인상분에 대한 단서 조항을 두었다. 3) 개악노조법 등 산별노조 무력화에 대한 대응 일찍부터 복수노조 조건에서 투쟁해온 이탈리아 제1금속노조(FIOM)는 역사적으로 노조 간 공동 투쟁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제2, 제3 금속노조의 2009년 공동 전국교섭 파기와 베를루스코니의 노조법 개악에 대한 투항은 제1금속노조에게 여러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제1금속노조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피아트 투쟁부터 전국교섭안에 이르기까지 단호한 투쟁과 지역연대 투쟁으로 대중적 지지를 넓혀 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RSU 선거에서 제1 금속노조가 선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탈리아 복수노조와 한국의 복수노조가 같은 조건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이탈리아의 경우 산별교섭이 법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RSU의 경우 전국단위 산별노조의 지분이 상당부분 보장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RSU가 금속 산별노조들의 관장 하에 있다. 한국의 경우는 산업별 교섭도, 산업별 노조의 참여 지분도 보장받지 못하며 철저하게 기업별 교섭으로만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시사점을 얻자면 복수노조 시대의 금속노조 전략은 전국적 투쟁 전선과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기초한 단호한 요구안을 꾸준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약품접근권 파괴하는 인도-EU FTA 유럽의 새로운 FTA정책과 지적재산권 2월 17일 유럽의회는 한-EU FTA를 통과시켰다. 또 3월에는 인도-EU FTA를 체결할 예정이다. 유럽연합은 상대국에 따른 매우 신축적인 교역협상을 맺던 과거의 FTA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모두 철폐하려는 새로운 FTA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한국과 인도다. 유럽연합은 FT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최우선사항이고, 특히 효과적인 지재권 집행이 최고 관심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1) 위조방지무역협정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도록 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제네릭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복수국가간무역협정이 위조상품 유통 문제의 해결을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위조방지무역협정(ACTA: Anti-Couterfeiting Trade Agreement)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소수 선진국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으며, 2008년 6월부터 한국 정부도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ACTA는 소수 선진국들이 지재권 강화를 통해 얻는 흑자폭을 더 늘리기 위한 국제규범을 만들겠다는 것이지, 위조상품의 유통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위조상품은 현행 국제조약에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ACTA는 수출국이나 수입국의 지재권을 침해하지 않더라도 환적(in-transit, 운송중인 화물을 옮겨 실음) 국가에서 지재권 침해가 문제될 여지가 있으면 세관의 압류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08~2009년에 유럽을 거쳐 브라질로 가는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유럽에서 위조품으로 취급하며 압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의약품은 수출국(인도)과 수입국(브라질)에서 지재권 침해 문제가 없는 의약품인데, 네덜란드에서 환적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세관에 의해 압류당하였다. 이는 유럽이 요구하는 지재권 집행조치와 ACTA의 전초전으로서 전면 실시될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인도와 브라질은 2010년 5월 12일 네덜란드와 유럽연합을 상대로 WTO에 제소한 상태이다. 2) 자료독점권 유럽이 의약품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의약품에 대한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허권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독점권이다. 153개국이 가입한 트립스 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따라 최소 20년의 특허보호기간이 보장된다. 자료독점권은 의약품 판매승인을 받을 때 제출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임상시험자료를 제네릭 제약회사가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제네릭 판매를 지연시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는 혹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판매독점권이 생기게 되어 제네릭 생산과 수출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공적 사용도 못하게 된다. 유럽은 미국과 경쟁적으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유럽의 초국적제약사들이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상황과 보건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네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약품단일시장을 완성하기위해 2001년부터 유럽약사법의 포괄적 개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은 자료독점기간에 집중되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물질특허가 의약품독점을 보장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여겨 이를 보상하기 위해 1987년에 자료독점권을 도입했다. 트립스 협정 이후 유럽 각국은 대부분 20년 동안 특허권을 보호하고 있으나, 자료독점기간과 관련해서는 그리스의 6년에서부터 프랑스의 10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폴란드 등의 신흥 유럽회원국들은 대부분 6년의 자료독점기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흥 회원국들은 자료독점기간을 확대하면 그들 국가의 보건의료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2003년 12월 유럽의회는 8+2+1 공식을 따르는 자료독점기간을 결정했다. 8+2+1이라는 공식은 8년의 자료 독점, 2년의 마케팅 독점, 그리고 추가적 1년은 새로운 적응증에 대한 자료 독점기간을 뜻한다. 8년이 경과한 후 2년 동안 자료공개를 허용하여 제네릭을 생산하고 그 판매허가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판매하지는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만약 8년의 자료독점 기간 내에 새로운 치료적응증(new therapeutic indications)을 허가받으면 자료독점기간은 1년 더 확대될 수 있다. 즉 판매독점기간은 최대 11년이다. 8+2+1의 기간이 끝나야 제네릭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유럽의 새 약사법은 2005년 11월부터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료독점권의 확대와 통일화를 이룬 유럽연합은 미국의 자료독점권보다 더 강력한 공식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신흥제약시장과 미국, 유럽 제약회사들의 위기감 사(제약산업 전문 리서치)에 따르면 2009년 세계의약품 시장 규모는 8,370억 달러(약 1,068조 원)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2008년 456억 달러)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IMS Health는 향후 10년간 의약품시장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09년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북미는 38.5%, 유럽 29.8%, 일본 10.8%,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12.7%, 남미 5.5%, 기타 3.4%를 차지했다. 북미, 유럽, 일본이 79%를 차지한다. 한편 북미, 유럽, 일본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2007년 86.4%). 그 이유는 미국, 유럽, 일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특허만료, 신약승인 건수 감소, 약제비 절감을 위한 의료정책 등으로 1~2% 성장에 그친 반면, IMS 헬스가 일명 ‘파머징 마켓(Pharmerging Market, 신흥제약시장)’이라고 부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태국 등 17개국의 의약품시장이 급속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곳으로 중국과 인도를 주목하고 있는데, 중국은 2020년 세계 두 번째 의약품 시장으로 부상, 인도는 2015년 세계 10위권 내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시장변화에 따라 초국적제약기업들은 독점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고, 신흥제약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초국적제약회사는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80%이상을 차지해왔던 북미, 유럽, 일본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의 가격으로 결정한 후 다른 국가에도 그만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그 약을 사 먹을 수 없다 해도 제약회사에겐 그만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을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초국적제약기업들은 특허권보다 자료독점권을 얻기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특허보다는 자료독점권을 통해 독점을 획득해왔다. 자료독점권은 특허권에 비해 독점기간이 짧지만, 그 효과가 같고 훨씬 간편한 절차를 거쳐 쉽게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의 환자개인 내지 공공의료가 파탄날 지경까지 이윤을 뽑아내고, 제네릭이 수출되거나 수입되는 것을 막아왔다. 개발도상국에도 FTA와 트립스-플러스 조항(트립스 협정보다 더 높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함)을 강요하면서 특허권과 자료독점권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제네릭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의 약국‘인데 인도에서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려 한다면 전 세계 민중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세계의 약국’과 의약품접근권 투쟁 작년 1월에 인도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처지는 많이 달랐지만 서로를 만나게 했던 키워드는 글리벡, 에이즈, FTA였다. 인도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초국적제약사 노바티스와 소송이 진행 중이고, 유럽과 FTA협상 중이었다. 우리는 2003년에 글리벡 강제실시투쟁과 2009년 에이즈치료제 ‘푸제온’ 강제실시투쟁을 한 경험이 있고, 한-미 FTA를 체결한 상태, 한-EU FTA는 협상 중이었다. 필자는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는 인도가 2005년에 트립스 협정을 수용한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실은 필자는 ‘글리벡’ 강제실시 투쟁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복제약)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안도했었지만, 인도의 역할이 ‘세계의 약국’ 수준인 줄 실감하지 못했다. 에이즈운동을 하게 되면서 전 세계 3300만명이 넘는 에이즈감염인들이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지, 인도의 제네릭이 에이즈감염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인도는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에이즈치료제의 90%를,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를 공급하고 있다. 북미, 유럽, 일본, 한국 등 소위 선진국과 몇몇 중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도산 에이즈치료제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는 에이즈치료제 외에도 항생제, 항암제, 혈압약, 당뇨약 등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시장의 20%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도 제네릭의 의미란 무엇인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글리벡 투쟁 당시에 인도에 글리벡과 똑같은 제네릭을 글리벡에 비해 1/20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글리벡 투쟁의 정당성 그 자체였고, 희망이었다. “우리가 연간 약 1500달러를 내면 약을 먹을 수 있는데 왜 3600만원을 내야 하느냔 말이야. 노바티스가 돈이 없어 글리벡을 먹지 못하는 한국의 환자들을 내팽개친다해도(실제로 공급거부를 했었다) 우리에게는 인도약이 있단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요구했지만 특허청은 우리의 요구를 기각했다. 기본권이자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제약사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그 결과 우리는 1년에 1000억 원가량을 노바티스에 지불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낼 수 없는 개발도상국에게 인도 제네릭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 특허법의 역사와 더불어 활동가들이 특허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허강화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는 의약품 수요의 약 85%를 외국계 제약회사에 의존하고 있었고, 약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1972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제조공정을 달리하여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인도는 트립스협정에 따라 2005년에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재도입하게 되었지만 전 세계의 환자, 활동가들이 연대투쟁을 벌여 공중보건과 생명을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인도특허법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초국적제약사들의 영구독점전략인 ‘에버그리닝’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인도특허법 섹션(section) 3(d)에 담겼는데, 1995년 이전에 개발된 약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치료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사용, 새로운 제형, 새로운 혼합품일지라도 특허를 얻지 못하도록 하였다. 제약자본은 특허가 강화되어야 혁신적인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실은 치료효과가 그다지 향상되지 않은, 사소한 변형을 했을 뿐인 자신들의 신약을 ‘혁신약’이라고 부르며 독점권을 얻기 위해 특허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도가 ‘세계의 약국’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도특허법이 자료독점권이나 특허-허가 연계와 같은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담고 있지 않고, 무분별하게 특허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약국’을 없애려는 인도-유럽 FTA 그러나 초국적제약기업은 인도특허법에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포함시키려고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6년 1월에 글리벡 특허가 거절되자 인도특허법 섹션 3(d)가 트립스협정에 위배된다고 2006년 5월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2007년 8월과 2009년 6월에 각각 노바티스의 소송을 거절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노바티스는 섹션 3(d)조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2009년 8월에 대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한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허가를 받자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도입하고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대법원까지 끌고간 바이엘사의 소송은 2010년 12월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법원은 특허제도와 의약품규제제도는 별개이고, 인도법 하에서는 의약품규제기구가 특허약의 제네릭 판매허가를 막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시플라사의 판매허가 여부는 바이엘사가 이미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로슈사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특허-허가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2008년에 시플라사가 타세바와 같은 제네릭을 시판하자 로슈사는 특허-허가연계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시플라사는 특허무효소송으로 맞대응했다. 2009년 4월에 고등법원은 시플라사의 판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고, 2009년 8월에 대법원은 로슈의 소송을 기각했다. 현재 특허소송은 진행 중이다. 인도에 있는 초국적기업들의 연합인 OPPI(Organisation of Pharmaceutical Producers of India)는 자료독점권, 특허-허가연계, 섹션 3(d)의 개정을 촉구하는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런 초국적제약기업의 요구를 한방에 관철시키려는 것이 인도-EU FTA이다. 인도정부와 유럽연합은 의약품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에 대한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고 3월에 체결을 할 예정이다. 지재권조항에 대한 대립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번 FTA에 유럽식 자료독점권을 비롯하여 트립스-플러스 조항을 다 포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자료독점권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세계의 약국’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초국적제약회사가 노리는 것은 인도의 특허요건에 미달하는, 임상적 효과가 더 낫지도 않은 약들에 대해 더 수월한 방식으로 독점을 획득하여 제네릭의 생산을 막고 비싼 약값을 받으려는 것이다. 자료독점권은 인도처럼 특허요건이 엄격한 나라에서 특허가 없는 약에조차 독점을 획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글리벡 외에도 에이즈치료제 ‘칼레트라’, ‘비레드’ 등이 섹션 3(d)에 따라 특허가 거절되었고, 제네릭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특허가 거절된 약들에 자료독점권이 주어진다면 자료독점기간동안 제네릭 판매,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이 말은 120개국이 넘는 개발도상국의 민중에게 죽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