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파업 불사 총력투쟁’, 어찌 되었는가?
1. 단체협약, 무엇을 얻었는가
11월 20일 전교조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단체협약안의 타결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협약내용 중 이견이 있었던 사항으로, 교육부가 “교과선택제 등 7차 교육과정 개선 관련, 교육과정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조합활동 보장 관련) 방과후 월 2시간 연수할 수 있게 교육감에게 권고한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협약내용이 미흡하긴 하지만 ‘산적한 교육현안 해결에 보다 책임 있는 모습으로 나서기 위해’ 교육부의 방안을 받아들이고, 이미 계획된 조합원 찬반투표와 26일의 ‘파업을 불사하는 총력투쟁’의 일정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미 의견 접근을 본 협약 내용은 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원 계약제를 최소화한다 ② 교원성과상여금은 수당화 한다는 것들이다. 11/28일자 기관지에서 한 간부는 ‘협약 타결’의 의의를 설명하기를, “심의회 참여결정은 7차 교육과정 싸움을 계속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고, 조합활동 보장은 단체행동이 금지된 것을 투쟁으로 무력화시킨 엄청난 성과”라고 하였다.
전교조 본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심의회'는 과연 우리의 교두보가 되어줄 것이며, 조합활동 보장이라는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다고 춤추며 자축해도 좋은가?
① 교원계약제 : 새로운 정책 수립으로 생겨나는 '계약제'는 '불가피한 경우'에 속한다. 7차 도입에 따른 계약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들의 교직 유연화 방침을 그대로 사후 승인해 준 것이다.
② 성과상여금 : 8만 교원이 '반납 투쟁'을 벌인 기세에 눌려 '직무 수당화' 쪽으로 교육부가 많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과급'의 성격은 그대로 살아 있다. 법개정 없이 차등성과급의 완전폐지는 불가능하다.
③ 조합활동 보장 : 이미 분회가 탄탄한 곳에서는 공공연히 조합활동을 벌여왔다. ‘엄청난 성과 어쩌구’는 낯 뜨거운 생색내기 선전일 뿐이다.
④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참여 허용(?) : 이것은 전교조가 따낸 성과라기보다 교육부 쪽이 오히려 ‘개가’를 올린 것이라 하겠다. 교육부는 지난 6월부터 개혁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여러 단체가 참여하는 심의회 구성을 희망해 왔던 것이고, 그 참여 여부는 단체협약과 무관하게 우리가 쥐고 있던 칼자루였다. 무릇 대다수의 위원회가 권력 집행에 들러리서는 것일진대, 이를 단체협약의 성과로 강변하는 것은 억지스런 궤변일 뿐이다. 전교조 본부는 “심의회가 별 것 아닌 줄은 안다. 그래도 활용할 가치는 있지 않은가. 심의회 안과 밖에서 싸우자!”고 얼버무리는데, 이 변명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전교조의 원안대로 ‘7차 <수정>을 위한 심의회’라고 이름이 붙을 때라야 그나마 ‘활용 가치’가 생기는 것이지, 지금의 심의회는 저들 풍악에 장단 맞추는 구실 밖에 하는 일이 없다.
‘이삭 줍기’에 불과했던 단체협약 타결에 그나마 먹구름이 끼었다. ‘잠정 합의안’이 발표되자, 교장단이 ‘노조활동 보장’에 반발하고 나섰고, 한교조도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교육부 쪽에서 옳다구나, 합의안 날인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위에 소개한 협약내용조차 더 깎아 내리려는 속셈이다. ‘협약 타결, 이미 해냈어요!’ 떠들썩하게 광고했던 본부로서는 낭패였다. 언제 단협 실무위원회에서 마지막 공식 타결이 이뤄질지 12/2일 현재는 알 수 없다. 교육부 관료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하하하, 세월이 어디 좀 먹으랴?” 타결이 늦어질 경우, 그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대의원대회는 느즈막히 내년 2월에나 열릴 가능성도 높다.....
이상이 전교조 올 투쟁의 결산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2. 투쟁 기피론이 마침내 승리하다
전교조 2월 대의원대회에서 채택한 올 사업의 기조는 ‘참교육 실천과 조직확대 사업’이었다. 뒤집어 말해, 이수호 집행부와 여러 지부 간부들은 7차 교육과정과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에 대해 평소에 별다른 위기의식을 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교직 유연화와 자립형 사립고 따위의 방침이 이미 슬금슬금 선보이고 있었는데도! 본부가 불안감에 휩싸인 것은 5월 들어서였다. 이수호 집행부는 ‘단체교섭에서 성과 따내기’를 무척 중시해 왔는데, 아무리 정성껏 교육부 출입문을 두드려 봤자 별다른 소득도 없었던 데다가 굵직굵직한 개편안들을 가을에 확정짓는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니 비로소 본부도 총력투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6.24 대회에서 위원장이 ‘파업’의 운을 떼었고, 8월 본부/지부 연수에서 ‘왜 7차 교육과정을 저지해야 하는가’ 집중 연수가 이뤄졌다. 9월초의 대의원대회에서는 정권의 온갖 밀어붙이기에 맞서 ‘파업을 불사하는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올 초만 하더라도 ‘파업!’은 대다수 조합원들에게 실감나는 구호가 아니었다. “합법화된 것만도 어디냐? 우리의 요구는 가끔 집회를 열어 알리면 되는 일!”이라고 느긋해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우리의 발언권을 키우는 데는 ‘조합원 숫자 늘리기!’가 장땡이다! 교장 권력에 맞서고, 참교육사업 벌여 전교조 이미지 높이는 데만 몰두했을 뿐, 정권이 휘두르는 교육개편안에 정면으로 받아칠 포부와 철학은 부족했다. 파업? 그저 조합비 몇 푼 보태줄 요량으로 가입한 신규조합원들이 앗, 뜨거라 달아날 판인데 어찌 무모하게 거론하는가? 89년 전교조결성투쟁에 버금가는 탄압을 맞아, 줄줄이 오랏줄에 묶이고 밥줄이 끊길 판인데 어찌? 괜히 찬반투표 붙였다가 ‘과반수 미달’이면 무슨 창피 당하려고 감히?
9월 대의원대회의 총력투쟁 결의는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8월 이전만 해도, ‘7차 교육과정(고교 선택제) 도입, 왜 막아야하는가?’ 교육선전이 이뤄진 지부/지회가 몇 군데 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러나 ‘과반수 통과의 의미’는 위원장과 본부/지부 간부들이 앞장설 경우, 다음 대의원대회에서 ‘파업 결의!’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투쟁의 역동성에 애써 눈감는 사람들만이 ‘그것 봐! 다들 안 싸우겠다잖아?’ 미리 ‘숙명’의 못을 박는다.
실제로 10월의 교육계 정국을 돌아볼 때, 지도부의 의지만 결연했더라면 얼마든지 ‘파업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정권이 ‘성과급 지급 강행’의 악수(惡手)를 둬주는 바람에, 교원대중의 분노가 저절로 들끓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반납 투쟁’이 성사되지 않았는가. 저들의 섣부른 ‘자립형 사립고 계획’도 여론의 반발과 전교조 투쟁으로 된서리 맞지 않았는가. 중/초 교원임용 문제로 말미암아 교육부의 권위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심지어 ‘수능 어렵게 출제한 죄’로 부총리가 대국민 사과발언에 나서야하는 판 아니었던가. 물론 여전히 투쟁동력이 미약했던 지부도 여럿 있었지만, 지도부가 ‘희생을 무릅쓰는 각오’를 보였더라면 투쟁의 대열로 끌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이 10/26-27일 연가투쟁을 성황리에 벌이게 한 정세였다.
그러나 전교조 본부는 투쟁의 분위기가 한껏 치달은 연가투쟁 시기에 결정적으로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다. 여의도 집회 날, 광화문에서는 교대생들이 경찰의 진압에 맞서며 SOS를 보내왔는데 전교조 지도부는 그 싸움에 거들어 나서기를 슬며시 외면했다(교대생과 초등 조합원들의 울분, 오래갈 것이다). 언론에서는 ‘교대생들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판정을 내렸는데 전교조 지도부는 ‘정부쪽 방안을 받아들이겠노라’ 미련 없이 후퇴해버렸다. 집회 날 위원장은 ‘다음 싸움계획을 어떻게 잡을지’ 아무런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파업을 벌일 뜻’이 없다는, 이것으로 싸움을 접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던 것이다. (가당찮은 것은, 그러다가 협약 타결이 여의치 않자 ‘파업 찬반투표를 붙이겠다는 둥, 26일 파업 예정이라는 둥’ 공수표를 남발하여 조합원들에게 배신감만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가투쟁 뒤부터 11/4 대의원대회까지 온통 ‘교섭’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대의원대회는 총력투쟁에 관한 모든 사항의 결정을 위원장에게 위임하고, 단체협약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최저 방안’을 정했다. 다시 말해, 이 대회를 고비로 ‘총력투쟁’의 기조는 삽시간에 증발하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제만 남게된 것이다. 뒤이어 배치된 이른바 ‘선봉 투쟁’도 그 일을 거드는 효과만 노렸을 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7차 교육과정 반대를 외칠 때에는 감히 전교조를 음해하지 못하던 기성 언론이 ‘조합활동 보장’ 하나 달랑 얻은 것도 못마땅하여 서슴없이 헐뜯고 나섰다. 전교조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교육계 현안’은 어느새 ‘정년 연장 문제’로 급변하여 보수 여론의 험한 삿대질에 교원들의 사기만 쓸쓸히 땅바닥에 추락해버렸다. 전교조가 투쟁을 손 놓아버릴 때 들이닥칠 현실은 바로 이것 아닌가.
3. 새로운 걸림돌, 교섭주의
전교조 안에는 ‘법외 노조’ 시절부터 대정부 정치투쟁을 탐탁해 하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한켠에 늘 있어왔다. 노동조합은 사용주(使用主)와의 대결 속에서 대중성을 획득하는 것이거늘, 자질구레한 일상활동이나 교육사업 속에서 대중이 모여들기만을 기다리는 소심함이 지나치다 보면 ‘대중이 함께 하는 투쟁 아니면 나서지 않겠다’며 ‘대중’을 신격화하는 삐뚤어진 논리마저 생겨난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심성을 추적해 보면 ‘김대중 정권 외에 다른 대안이 어디 있겠느냐’는 정치적 기회주의와 ‘신자유주의 개혁도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현실추수주의 논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전교조 안에는 ‘참교육!’의 깃발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때 ‘자율/다양성’ ‘청소년문화, 그대로 받아들이기(학교붕괴, 묵묵히 인정하기)’ ‘수행평가’ 따위가 조합원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교육공공성을 스스럼없이 허물고, 교육불평등의 흐름을 그대로 승인하는 교육학에서 어찌 ‘학문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으랴? 신자유주의 개혁사조에 대해 통찰력도 못 가진 사람들이 무슨 ‘참어쩌구’ 염불을 왼단 말인가?
전교조 안에서 노골적인 김대중 지지파들은 대부분 앞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현정권이 내거는 개혁 구호는 조합원들에게 헛된 기대를 낳아 아직도 신자유주의 반대 싸움을 머뭇거리게 한다. 전교조가 늘 올곧은 길로 가리라고 어찌 장담하랴? 95년 일본 정부는 ‘합교론’을 발표했다. 앞으로 초등학교에서 국어/수학/도덕/역사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죄다 사교육시장에 맡기겠다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방안인데, 눈살 찌푸릴 것은 일교조 위원장이 이 방안을 기꺼이 찬성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전교조도 일교조처럼 신자유주의 정권의 친위대로 나서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랴?
전교조의 새로운 주류는 노골적인 김대중 파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반대!’도 수긍한다. 다만 그들은 투쟁을 몹시 꺼려하고 교섭을 아주 선호할 따름이다. 투쟁의 ABC도 익힌 적 없으니, 그들이 이끌 때까지는 차라리 지부별로 사업할 일이지, 전국집중 총력투쟁은 벌이지 않는 게 낫다. 10월말 연가투쟁 때의 기세와 ‘교섭 타결’을 애걸하는 지금의 본부 교섭팀의 수굿한 면모를 견주어볼 때, 그 기막힌 대조를 읽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교섭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이 난국을 바로잡을 타개책은 무엇인가? 대의원대회에서 냉정하게 그 인준 요청을 퇴짜 놓는 일이다. “이번 교섭에서 무슨 성과를 얻었는가? 타결과 부결 중에 어느 쪽이 투쟁의 불씨를 살리는 길인가?” 전교조 대의원들이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는 전교조에게 희망을 걸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온당한 인식, 이것이 모든 행동의 첫 걸음이므로.
11월 20일 전교조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단체협약안의 타결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협약내용 중 이견이 있었던 사항으로, 교육부가 “교과선택제 등 7차 교육과정 개선 관련, 교육과정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조합활동 보장 관련) 방과후 월 2시간 연수할 수 있게 교육감에게 권고한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협약내용이 미흡하긴 하지만 ‘산적한 교육현안 해결에 보다 책임 있는 모습으로 나서기 위해’ 교육부의 방안을 받아들이고, 이미 계획된 조합원 찬반투표와 26일의 ‘파업을 불사하는 총력투쟁’의 일정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미 의견 접근을 본 협약 내용은 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원 계약제를 최소화한다 ② 교원성과상여금은 수당화 한다는 것들이다. 11/28일자 기관지에서 한 간부는 ‘협약 타결’의 의의를 설명하기를, “심의회 참여결정은 7차 교육과정 싸움을 계속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고, 조합활동 보장은 단체행동이 금지된 것을 투쟁으로 무력화시킨 엄청난 성과”라고 하였다.
전교조 본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심의회'는 과연 우리의 교두보가 되어줄 것이며, 조합활동 보장이라는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다고 춤추며 자축해도 좋은가?
① 교원계약제 : 새로운 정책 수립으로 생겨나는 '계약제'는 '불가피한 경우'에 속한다. 7차 도입에 따른 계약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들의 교직 유연화 방침을 그대로 사후 승인해 준 것이다.
② 성과상여금 : 8만 교원이 '반납 투쟁'을 벌인 기세에 눌려 '직무 수당화' 쪽으로 교육부가 많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과급'의 성격은 그대로 살아 있다. 법개정 없이 차등성과급의 완전폐지는 불가능하다.
③ 조합활동 보장 : 이미 분회가 탄탄한 곳에서는 공공연히 조합활동을 벌여왔다. ‘엄청난 성과 어쩌구’는 낯 뜨거운 생색내기 선전일 뿐이다.
④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참여 허용(?) : 이것은 전교조가 따낸 성과라기보다 교육부 쪽이 오히려 ‘개가’를 올린 것이라 하겠다. 교육부는 지난 6월부터 개혁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여러 단체가 참여하는 심의회 구성을 희망해 왔던 것이고, 그 참여 여부는 단체협약과 무관하게 우리가 쥐고 있던 칼자루였다. 무릇 대다수의 위원회가 권력 집행에 들러리서는 것일진대, 이를 단체협약의 성과로 강변하는 것은 억지스런 궤변일 뿐이다. 전교조 본부는 “심의회가 별 것 아닌 줄은 안다. 그래도 활용할 가치는 있지 않은가. 심의회 안과 밖에서 싸우자!”고 얼버무리는데, 이 변명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전교조의 원안대로 ‘7차 <수정>을 위한 심의회’라고 이름이 붙을 때라야 그나마 ‘활용 가치’가 생기는 것이지, 지금의 심의회는 저들 풍악에 장단 맞추는 구실 밖에 하는 일이 없다.
‘이삭 줍기’에 불과했던 단체협약 타결에 그나마 먹구름이 끼었다. ‘잠정 합의안’이 발표되자, 교장단이 ‘노조활동 보장’에 반발하고 나섰고, 한교조도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교육부 쪽에서 옳다구나, 합의안 날인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위에 소개한 협약내용조차 더 깎아 내리려는 속셈이다. ‘협약 타결, 이미 해냈어요!’ 떠들썩하게 광고했던 본부로서는 낭패였다. 언제 단협 실무위원회에서 마지막 공식 타결이 이뤄질지 12/2일 현재는 알 수 없다. 교육부 관료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하하하, 세월이 어디 좀 먹으랴?” 타결이 늦어질 경우, 그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대의원대회는 느즈막히 내년 2월에나 열릴 가능성도 높다.....
이상이 전교조 올 투쟁의 결산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2. 투쟁 기피론이 마침내 승리하다
전교조 2월 대의원대회에서 채택한 올 사업의 기조는 ‘참교육 실천과 조직확대 사업’이었다. 뒤집어 말해, 이수호 집행부와 여러 지부 간부들은 7차 교육과정과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에 대해 평소에 별다른 위기의식을 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교직 유연화와 자립형 사립고 따위의 방침이 이미 슬금슬금 선보이고 있었는데도! 본부가 불안감에 휩싸인 것은 5월 들어서였다. 이수호 집행부는 ‘단체교섭에서 성과 따내기’를 무척 중시해 왔는데, 아무리 정성껏 교육부 출입문을 두드려 봤자 별다른 소득도 없었던 데다가 굵직굵직한 개편안들을 가을에 확정짓는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니 비로소 본부도 총력투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6.24 대회에서 위원장이 ‘파업’의 운을 떼었고, 8월 본부/지부 연수에서 ‘왜 7차 교육과정을 저지해야 하는가’ 집중 연수가 이뤄졌다. 9월초의 대의원대회에서는 정권의 온갖 밀어붙이기에 맞서 ‘파업을 불사하는 총력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올 초만 하더라도 ‘파업!’은 대다수 조합원들에게 실감나는 구호가 아니었다. “합법화된 것만도 어디냐? 우리의 요구는 가끔 집회를 열어 알리면 되는 일!”이라고 느긋해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우리의 발언권을 키우는 데는 ‘조합원 숫자 늘리기!’가 장땡이다! 교장 권력에 맞서고, 참교육사업 벌여 전교조 이미지 높이는 데만 몰두했을 뿐, 정권이 휘두르는 교육개편안에 정면으로 받아칠 포부와 철학은 부족했다. 파업? 그저 조합비 몇 푼 보태줄 요량으로 가입한 신규조합원들이 앗, 뜨거라 달아날 판인데 어찌 무모하게 거론하는가? 89년 전교조결성투쟁에 버금가는 탄압을 맞아, 줄줄이 오랏줄에 묶이고 밥줄이 끊길 판인데 어찌? 괜히 찬반투표 붙였다가 ‘과반수 미달’이면 무슨 창피 당하려고 감히?
9월 대의원대회의 총력투쟁 결의는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8월 이전만 해도, ‘7차 교육과정(고교 선택제) 도입, 왜 막아야하는가?’ 교육선전이 이뤄진 지부/지회가 몇 군데 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러나 ‘과반수 통과의 의미’는 위원장과 본부/지부 간부들이 앞장설 경우, 다음 대의원대회에서 ‘파업 결의!’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투쟁의 역동성에 애써 눈감는 사람들만이 ‘그것 봐! 다들 안 싸우겠다잖아?’ 미리 ‘숙명’의 못을 박는다.
실제로 10월의 교육계 정국을 돌아볼 때, 지도부의 의지만 결연했더라면 얼마든지 ‘파업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정권이 ‘성과급 지급 강행’의 악수(惡手)를 둬주는 바람에, 교원대중의 분노가 저절로 들끓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반납 투쟁’이 성사되지 않았는가. 저들의 섣부른 ‘자립형 사립고 계획’도 여론의 반발과 전교조 투쟁으로 된서리 맞지 않았는가. 중/초 교원임용 문제로 말미암아 교육부의 권위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심지어 ‘수능 어렵게 출제한 죄’로 부총리가 대국민 사과발언에 나서야하는 판 아니었던가. 물론 여전히 투쟁동력이 미약했던 지부도 여럿 있었지만, 지도부가 ‘희생을 무릅쓰는 각오’를 보였더라면 투쟁의 대열로 끌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것이 10/26-27일 연가투쟁을 성황리에 벌이게 한 정세였다.
그러나 전교조 본부는 투쟁의 분위기가 한껏 치달은 연가투쟁 시기에 결정적으로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다. 여의도 집회 날, 광화문에서는 교대생들이 경찰의 진압에 맞서며 SOS를 보내왔는데 전교조 지도부는 그 싸움에 거들어 나서기를 슬며시 외면했다(교대생과 초등 조합원들의 울분, 오래갈 것이다). 언론에서는 ‘교대생들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판정을 내렸는데 전교조 지도부는 ‘정부쪽 방안을 받아들이겠노라’ 미련 없이 후퇴해버렸다. 집회 날 위원장은 ‘다음 싸움계획을 어떻게 잡을지’ 아무런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파업을 벌일 뜻’이 없다는, 이것으로 싸움을 접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던 것이다. (가당찮은 것은, 그러다가 협약 타결이 여의치 않자 ‘파업 찬반투표를 붙이겠다는 둥, 26일 파업 예정이라는 둥’ 공수표를 남발하여 조합원들에게 배신감만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가투쟁 뒤부터 11/4 대의원대회까지 온통 ‘교섭’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대의원대회는 총력투쟁에 관한 모든 사항의 결정을 위원장에게 위임하고, 단체협약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최저 방안’을 정했다. 다시 말해, 이 대회를 고비로 ‘총력투쟁’의 기조는 삽시간에 증발하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제만 남게된 것이다. 뒤이어 배치된 이른바 ‘선봉 투쟁’도 그 일을 거드는 효과만 노렸을 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7차 교육과정 반대를 외칠 때에는 감히 전교조를 음해하지 못하던 기성 언론이 ‘조합활동 보장’ 하나 달랑 얻은 것도 못마땅하여 서슴없이 헐뜯고 나섰다. 전교조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교육계 현안’은 어느새 ‘정년 연장 문제’로 급변하여 보수 여론의 험한 삿대질에 교원들의 사기만 쓸쓸히 땅바닥에 추락해버렸다. 전교조가 투쟁을 손 놓아버릴 때 들이닥칠 현실은 바로 이것 아닌가.
3. 새로운 걸림돌, 교섭주의
전교조 안에는 ‘법외 노조’ 시절부터 대정부 정치투쟁을 탐탁해 하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한켠에 늘 있어왔다. 노동조합은 사용주(使用主)와의 대결 속에서 대중성을 획득하는 것이거늘, 자질구레한 일상활동이나 교육사업 속에서 대중이 모여들기만을 기다리는 소심함이 지나치다 보면 ‘대중이 함께 하는 투쟁 아니면 나서지 않겠다’며 ‘대중’을 신격화하는 삐뚤어진 논리마저 생겨난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심성을 추적해 보면 ‘김대중 정권 외에 다른 대안이 어디 있겠느냐’는 정치적 기회주의와 ‘신자유주의 개혁도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현실추수주의 논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전교조 안에는 ‘참교육!’의 깃발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때 ‘자율/다양성’ ‘청소년문화, 그대로 받아들이기(학교붕괴, 묵묵히 인정하기)’ ‘수행평가’ 따위가 조합원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교육공공성을 스스럼없이 허물고, 교육불평등의 흐름을 그대로 승인하는 교육학에서 어찌 ‘학문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으랴? 신자유주의 개혁사조에 대해 통찰력도 못 가진 사람들이 무슨 ‘참어쩌구’ 염불을 왼단 말인가?
전교조 안에서 노골적인 김대중 지지파들은 대부분 앞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현정권이 내거는 개혁 구호는 조합원들에게 헛된 기대를 낳아 아직도 신자유주의 반대 싸움을 머뭇거리게 한다. 전교조가 늘 올곧은 길로 가리라고 어찌 장담하랴? 95년 일본 정부는 ‘합교론’을 발표했다. 앞으로 초등학교에서 국어/수학/도덕/역사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죄다 사교육시장에 맡기겠다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방안인데, 눈살 찌푸릴 것은 일교조 위원장이 이 방안을 기꺼이 찬성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전교조도 일교조처럼 신자유주의 정권의 친위대로 나서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랴?
전교조의 새로운 주류는 노골적인 김대중 파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반대!’도 수긍한다. 다만 그들은 투쟁을 몹시 꺼려하고 교섭을 아주 선호할 따름이다. 투쟁의 ABC도 익힌 적 없으니, 그들이 이끌 때까지는 차라리 지부별로 사업할 일이지, 전국집중 총력투쟁은 벌이지 않는 게 낫다. 10월말 연가투쟁 때의 기세와 ‘교섭 타결’을 애걸하는 지금의 본부 교섭팀의 수굿한 면모를 견주어볼 때, 그 기막힌 대조를 읽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교섭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이 난국을 바로잡을 타개책은 무엇인가? 대의원대회에서 냉정하게 그 인준 요청을 퇴짜 놓는 일이다. “이번 교섭에서 무슨 성과를 얻었는가? 타결과 부결 중에 어느 쪽이 투쟁의 불씨를 살리는 길인가?” 전교조 대의원들이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는 전교조에게 희망을 걸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온당한 인식, 이것이 모든 행동의 첫 걸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