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국제연대활동, 부르주아 국제회의를 넘어서
1. 들어가는 말
시간과 공간의 역사는 빨라지고 있다. 하루의 시간을 12시간으로 단축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적으로 단축된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나라의 어제의 문제가 오늘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기도 하고, 내일이면 오늘 우리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로 다가가고 있다.
역시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대결공간도 압축되고 있다. 자본축적이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집중되고 있고,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도 그러한 압축적 공간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로 압축된 공간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결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상, 노동자의 투쟁이 하나의 압축적인 공간에서 진행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노동자가 일시에 기계에서 손을 놓는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아주 쉽게 무너지든지 아니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다. 공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공처럼, 세계 노동자 계급의 압축적인 투쟁만이 자본축적의 공간을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전개되는 투쟁을 한 지점으로 압축시켜 자본축적의 한 공간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한 번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은 각종 국제연대회의의 주체로 참여하거나, 그러한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도 민주노총은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SIGTUR) 남아공의 COSATU를 중심으로 한 남반구 노동조합의 연대회의를 의미한다. 2001년 11월 5일부터 일주일 동안 SIGTUR 서울총회가 개최되었다. 약 14개 국가 1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를 개최하였고, 공공연맹은 국제공공노동조합총회(PSI)를 개최하였다. 이 외에도 2000년에는 아셈반대회의, 아시아태평양지역노동자연대(APWSL) 등의 국제연대회의도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해 왔고, 현재도 국제적인 단체의 초청을 받아 각종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노동현장의 주체들에게는 자기와는 무관한 다른 일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했고, 노동운동의 간부들 역시 그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행사를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는 노동자 투쟁의 공간을 압축하고 그 힘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씩이라도 변혁시키기 위한 국제적 연계고리들이다. 문제는 그 연계고리가 실제로 세계 노동자들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내고 있는 가에 대해서는 많은 회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이 부르주아 세력들이 즐겨하는 ‘카니발 형식의 밀실국제회의’와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일반적인 특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의 기조를 시론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계승․강화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지양하기 위한 미래의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다.
2. ‘대리권력체’로서의 부르주아 국제기구
부르주아 세력들은 각종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국가이해’ 혹은 ‘민족이해’로 표출되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상호 조정한다. 물론 그러한 이해조정의 중심 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독점자본이다. 왜냐하면, 많은 국제기구들은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창설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다양한 국제회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새롭게 조정해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략의 첨병으로서의 WTO 혹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는 UN 역시 국제적인 ‘대리권력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구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은 국제기구에 대한 ‘전략적 개입’의 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과잉생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축적위기를 맞이하였고, 부르주아 국제기구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주로 세계 모든 노동자․민중들의 희생에서 찾고 있다. 이는 WTO의 뉴라운드 협상이든지 각 국가 사이의 각종 투자협정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인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금융독점자본 및 시장의 완전 개방 등의 추진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대리권력체’를 활용하여 세계 모든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밀실야합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노동자․민중의 참여는 물론 이해와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단지 각 국가의 대표들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세계 초국적 독점자본과 국내 독점자본간의 상호 이해를 보장할 수 있는 세계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가 그 구조에 편입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선언을 거부하는 국가에게는 다양한 압력이나 보복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부르주아 국제기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국제기구의 폐지․국제기구의 개혁․국제기구의 지속 등이고, 미시적으로는 국제기구 운영변화․국제기구 내부의 세력변화․국제기구 주요 의제변화 등이다.’ 국제기구의 폐지나 급진적 개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체제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국제기구에서 하나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하여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미시적 변화에 주력하자는 의견도 제출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를 온존시키면서 그 내부의 미시적인 변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대한 투쟁의 전선이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반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그러한 전선을 매개로 각 국가의 계급투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미국, 호주, 이탈리아, 한국에서 전개된 각종의 부르주아 국제회의에 대한 반대투쟁은 (사안별로 전개된 한계가 있었지만) 국제기구를 폐지하거나 급진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대표적인 흐름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전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의(SIGTUR)에서도 제기되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개혁과 미시적 변화를 주장하는 대표들도 있었지만,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아공 등의 대표들은 국제기구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국가는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에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대한 전략적 개입전략의 효과가 더 이상 발휘되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 스스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그러한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전개되지 않는 한 스스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투쟁이 국제적인 연대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거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는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계 노동자․민중의 연대기구가 부르주아 진영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3. 부르주아 국제회의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노동자 국제연대기구는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기구에 대한 대응, 세계 노동운동의 연대의 강화, 그리고 국제적인 노동운동의 주체형성 등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해가 보장될 수 있는 세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자 국제연대기구는 최소한 두 가지 지점에서 이러한 국제회의와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노동자 계급과 민중의 권리를 유지하거나 강화시키려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회의의 공개성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의제 자체가 부르주아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민주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의(SIGTUR) 서울총회의 주요 의제가 남반구 노동조합의 연대와 힘의 강화였지만, 그러한 의제의 실질적인 내용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였다. 그리고 참여한 모든 국가의 대표들은 초국적 독점자본의 세계화 전략은 인류를 파멸하는 유령으로 간주하였으며, 그것을 물리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투쟁의 필요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기구 역시 많은 문제점이 있다. 국제연대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그 결과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운동의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연대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매개는 국제회의이고, 그것을 통해 국제적인 노동운동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주체들이 형성되어야 한다. 행사를 주최하는 국가는 물론이고 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국제연대회의가 노동운동 간부들만의 만찬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많은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노동운동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형식적이거나 관료적인 행사로 진행되고 있고, 또한 각 국가의 노동자들 역시 국제연대회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
이러한 원인을 네 가지 차원에서 진단할 수 있다. 첫째는 국제연대활동이 각 국가의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연대회의에 필요한 재정이 관료적 노동운동이 발전된 국가나 그러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국가가 부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미 책정된 예산의 사용이라는 관료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다른 국가의 노동운동을 포섭하고 개량화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제연대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의 계급적 이해의 통일성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부르주아적인 국제회의의 오류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셋째는 국제연대의 성과가 각 국가의 노동운동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연대의 성과가 각 국가의 노동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는 국제연대가 자본가 계급에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형식화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래서 노동자 국제연대가 노동운동의 주요한 활동이라면, 이 활동 역시 노동자 계급의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와 유리된 채 전개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간부들의 참여와 토론의 활성화, 그것을 통해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체화, 그리고 국제연대회의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파급력의 강화 등을 추구하여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선언주의적이고 국가이기주의적인 경향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자국의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회의에서 채택된 각종의 결의문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실질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도 역시 네 가지 차원에서 진단할 수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국가의 노동운동도 불균등하게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즉 각 국가 노동운동의 주체적 조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국적 독점자본이 세계 모든 국가에 침투하기 이전에는 노동운동의 주요 갈등이 국내 자본과의 관계에서 발생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 국가의 노동운동은 국가이해 및 민족이해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국제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이 ‘성명서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파업의 정치’와 ‘투쟁의 정치’를 지향하지 않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결의를 현실화해야 할 조건이 있음에도, 그 조건을 ‘파업의 정치’나 ‘투쟁의 정치’로 전화할 실질적인 기제(mechanism)가 없다는 것이다. 넷째는 각 국가의 노동자 계급을 하나로 통일시켜 내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할지라도,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당근이 실질적으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는 주요 의제를 중심으로 한 연대의 고리를 형성하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세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각 국가의 대표들은 각 국가의 특수한 상황과 조건만을 강조하거나 그 회의의 결과를 선언하는 수준에 머물려 한다. 물론 그러한 상황과 조건을 모든 운동의 출발 지점이라고만 강조한다면, 문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이 각 국가의 노동운동을 대표하고 있고, 국제연대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 노동자 계급은 다양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를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기구나 세계 초국적 독점자본의 착취구조에 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진지로 인식하고, 국제적 연대투쟁의 출발로 간주하여야 한다.
4. 닫는 글
각 국가 노동운동의 국제연대활동은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와의 연대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각종 국제연대회의가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국제연대회의에서 형성되는 조직간의 혹은 개별주체간의 연계시스템(network)은 국제연대활동의 실질적인 토대로 작용한다. 그래서 세계 모든 노동운동진영은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국가 노동운동의 국제연대활동이 국내의 노동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활동은 아류 부르주아 국제회의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부르주아 국제회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부르주아 국제회의는 그들간에는 나름대로의 구속력을 가지고 자본축적의 위기를 조정해 나가고 있으며, 세계 모든 국가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계급적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이 부르주아 국제회의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 계급의 국제연대회의가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회의와는 많은 지점에서 차별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부르주아 세력을 쫓아가는 형식과 내용이 아니라 노동자․민중만이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살려나가는 형식과 내용이 추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경향성’과 ‘선언주의적이고 국가이기주의적인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성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특히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약화시키기 위한 통제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세계 노동자 계급 내부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국제적인 ‘파업의 정치’와 ‘투쟁의 정치’를 공동으로 경험해야 하고, 그러한 정치의 성과를 각 국가의 노동운동의 성과로 전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연대활동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말의 정치’와 ‘성명서 정치’가 극복해야 하고, 특히 각 국가의 노동조합운동 내부에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는 조합주의적 경향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는 각 국가 내부의 노동자 계급정치와 국제적인 노동자 계급정치를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역사는 빨라지고 있다. 하루의 시간을 12시간으로 단축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적으로 단축된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나라의 어제의 문제가 오늘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기도 하고, 내일이면 오늘 우리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로 다가가고 있다.
역시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대결공간도 압축되고 있다. 자본축적이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집중되고 있고,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도 그러한 압축적 공간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로 압축된 공간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결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상, 노동자의 투쟁이 하나의 압축적인 공간에서 진행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노동자가 일시에 기계에서 손을 놓는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아주 쉽게 무너지든지 아니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다. 공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공처럼, 세계 노동자 계급의 압축적인 투쟁만이 자본축적의 공간을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노동자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전개되는 투쟁을 한 지점으로 압축시켜 자본축적의 한 공간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한 번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은 각종 국제연대회의의 주체로 참여하거나, 그러한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도 민주노총은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SIGTUR) 남아공의 COSATU를 중심으로 한 남반구 노동조합의 연대회의를 의미한다. 2001년 11월 5일부터 일주일 동안 SIGTUR 서울총회가 개최되었다. 약 14개 국가 1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를 개최하였고, 공공연맹은 국제공공노동조합총회(PSI)를 개최하였다. 이 외에도 2000년에는 아셈반대회의, 아시아태평양지역노동자연대(APWSL) 등의 국제연대회의도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해 왔고, 현재도 국제적인 단체의 초청을 받아 각종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노동현장의 주체들에게는 자기와는 무관한 다른 일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했고, 노동운동의 간부들 역시 그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행사를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는 노동자 투쟁의 공간을 압축하고 그 힘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씩이라도 변혁시키기 위한 국제적 연계고리들이다. 문제는 그 연계고리가 실제로 세계 노동자들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내고 있는 가에 대해서는 많은 회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이 부르주아 세력들이 즐겨하는 ‘카니발 형식의 밀실국제회의’와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일반적인 특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의 기조를 시론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계승․강화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지양하기 위한 미래의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다.
2. ‘대리권력체’로서의 부르주아 국제기구
부르주아 세력들은 각종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국가이해’ 혹은 ‘민족이해’로 표출되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상호 조정한다. 물론 그러한 이해조정의 중심 축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독점자본이다. 왜냐하면, 많은 국제기구들은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창설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다양한 국제회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새롭게 조정해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략의 첨병으로서의 WTO 혹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는 UN 역시 국제적인 ‘대리권력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구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은 국제기구에 대한 ‘전략적 개입’의 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과잉생산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축적위기를 맞이하였고, 부르주아 국제기구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주로 세계 모든 노동자․민중들의 희생에서 찾고 있다. 이는 WTO의 뉴라운드 협상이든지 각 국가 사이의 각종 투자협정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인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금융독점자본 및 시장의 완전 개방 등의 추진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대리권력체’를 활용하여 세계 모든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밀실야합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노동자․민중의 참여는 물론 이해와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단지 각 국가의 대표들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세계 초국적 독점자본과 국내 독점자본간의 상호 이해를 보장할 수 있는 세계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가 그 구조에 편입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선언을 거부하는 국가에게는 다양한 압력이나 보복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부르주아 국제기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국제기구의 폐지․국제기구의 개혁․국제기구의 지속 등이고, 미시적으로는 국제기구 운영변화․국제기구 내부의 세력변화․국제기구 주요 의제변화 등이다.’ 국제기구의 폐지나 급진적 개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체제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국제기구에서 하나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하여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미시적 변화에 주력하자는 의견도 제출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를 온존시키면서 그 내부의 미시적인 변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대한 투쟁의 전선이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반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그러한 전선을 매개로 각 국가의 계급투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미국, 호주, 이탈리아, 한국에서 전개된 각종의 부르주아 국제회의에 대한 반대투쟁은 (사안별로 전개된 한계가 있었지만) 국제기구를 폐지하거나 급진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대표적인 흐름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전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의(SIGTUR)에서도 제기되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의 개혁과 미시적 변화를 주장하는 대표들도 있었지만,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남아공 등의 대표들은 국제기구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국가는 자본축적의 위기상황에서 부르주아 국제기구에 대한 전략적 개입전략의 효과가 더 이상 발휘되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제기구 스스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그러한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전개되지 않는 한 스스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투쟁이 국제적인 연대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거대한 부르주아 국제기구는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계 노동자․민중의 연대기구가 부르주아 진영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3. 부르주아 국제회의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노동자 국제연대기구는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기구에 대한 대응, 세계 노동운동의 연대의 강화, 그리고 국제적인 노동운동의 주체형성 등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세계 노동자․민중의 이해가 보장될 수 있는 세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자 국제연대기구는 최소한 두 가지 지점에서 이러한 국제회의와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노동자 계급과 민중의 권리를 유지하거나 강화시키려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회의의 공개성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의제 자체가 부르주아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민주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의(SIGTUR) 서울총회의 주요 의제가 남반구 노동조합의 연대와 힘의 강화였지만, 그러한 의제의 실질적인 내용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였다. 그리고 참여한 모든 국가의 대표들은 초국적 독점자본의 세계화 전략은 인류를 파멸하는 유령으로 간주하였으며, 그것을 물리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투쟁의 필요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기구 역시 많은 문제점이 있다. 국제연대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그 결과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운동의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연대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매개는 국제회의이고, 그것을 통해 국제적인 노동운동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주체들이 형성되어야 한다. 행사를 주최하는 국가는 물론이고 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국제연대회의가 노동운동 간부들만의 만찬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많은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노동운동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형식적이거나 관료적인 행사로 진행되고 있고, 또한 각 국가의 노동자들 역시 국제연대회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
이러한 원인을 네 가지 차원에서 진단할 수 있다. 첫째는 국제연대활동이 각 국가의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연대회의에 필요한 재정이 관료적 노동운동이 발전된 국가나 그러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국가가 부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미 책정된 예산의 사용이라는 관료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다른 국가의 노동운동을 포섭하고 개량화 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국제연대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의 계급적 이해의 통일성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 국제연대회의가 부르주아적인 국제회의의 오류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셋째는 국제연대의 성과가 각 국가의 노동운동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연대의 성과가 각 국가의 노동운동에 끼치는 영향력이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는 국제연대가 자본가 계급에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형식화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래서 노동자 국제연대가 노동운동의 주요한 활동이라면, 이 활동 역시 노동자 계급의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와 유리된 채 전개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간부들의 참여와 토론의 활성화, 그것을 통해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체화, 그리고 국제연대회의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파급력의 강화 등을 추구하여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선언주의적이고 국가이기주의적인 경향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자국의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회의에서 채택된 각종의 결의문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실질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도 역시 네 가지 차원에서 진단할 수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국가의 노동운동도 불균등하게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즉 각 국가 노동운동의 주체적 조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국적 독점자본이 세계 모든 국가에 침투하기 이전에는 노동운동의 주요 갈등이 국내 자본과의 관계에서 발생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 국가의 노동운동은 국가이해 및 민족이해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국제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이 ‘성명서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파업의 정치’와 ‘투쟁의 정치’를 지향하지 않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결의를 현실화해야 할 조건이 있음에도, 그 조건을 ‘파업의 정치’나 ‘투쟁의 정치’로 전화할 실질적인 기제(mechanism)가 없다는 것이다. 넷째는 각 국가의 노동자 계급을 하나로 통일시켜 내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할지라도,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당근이 실질적으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는 주요 의제를 중심으로 한 연대의 고리를 형성하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세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각 국가의 대표들은 각 국가의 특수한 상황과 조건만을 강조하거나 그 회의의 결과를 선언하는 수준에 머물려 한다. 물론 그러한 상황과 조건을 모든 운동의 출발 지점이라고만 강조한다면, 문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이 각 국가의 노동운동을 대표하고 있고, 국제연대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 노동자 계급은 다양한 노동자 국제연대회의를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기구나 세계 초국적 독점자본의 착취구조에 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진지로 인식하고, 국제적 연대투쟁의 출발로 간주하여야 한다.
4. 닫는 글
각 국가 노동운동의 국제연대활동은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와의 연대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각종 국제연대회의가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국제연대회의에서 형성되는 조직간의 혹은 개별주체간의 연계시스템(network)은 국제연대활동의 실질적인 토대로 작용한다. 그래서 세계 모든 노동운동진영은 국제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국가 노동운동의 국제연대활동이 국내의 노동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활동은 아류 부르주아 국제회의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부르주아 국제회의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부르주아 국제회의는 그들간에는 나름대로의 구속력을 가지고 자본축적의 위기를 조정해 나가고 있으며, 세계 모든 국가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계급적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연대활동이 부르주아 국제회의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 계급의 국제연대회의가 부르주아 세력의 국제회의와는 많은 지점에서 차별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부르주아 세력을 쫓아가는 형식과 내용이 아니라 노동자․민중만이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살려나가는 형식과 내용이 추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 국제연대회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경향성’과 ‘선언주의적이고 국가이기주의적인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성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특히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약화시키기 위한 통제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세계 노동자 계급 내부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국제적인 ‘파업의 정치’와 ‘투쟁의 정치’를 공동으로 경험해야 하고, 그러한 정치의 성과를 각 국가의 노동운동의 성과로 전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연대활동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말의 정치’와 ‘성명서 정치’가 극복해야 하고, 특히 각 국가의 노동조합운동 내부에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는 조합주의적 경향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는 각 국가 내부의 노동자 계급정치와 국제적인 노동자 계급정치를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