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도 '엄호'하고, 파병도 '철회'시키겠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분열
지난 7월 3일 집회를 둘러싼 파병반대국민행동 참가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확연했다. 시청집회를 강행할 것이냐 광화문으로 옮길 것이냐,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행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집회를 할 것이냐 아니면 추모 문화제의 기조를 지속할 것이냐 들로 논점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했지만 이들 사이의 간격은 쉽게 좁혀질 것이 못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충돌만큼 이날 집회에 참여한 대중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었다. 어떤 이는 '성난' 만큼 노무현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실망'한 만큼 집으로 빨리 발길을 돌렸다. 분노와 무기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지난 주 광화문의 촛불은 그렇게 끝났다.
한편, 시민단체-들(!) 역시 (우리들과는 정반대방향에서) 최근의 파병반대운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시종일관 파병철회운동 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을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파병철회운동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들 목소리를 잠재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마저 여기에 동요하고 있는데,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 정권과 미국에 대한 분노의 함성을 내자고 하고서도, 시민단체들의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탄핵무효와 파병철회의 짧은 시간, 먼 거리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광화문에는 촛불이 밝혀졌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안 된다', '왜 우리국민이 거기서 죽어야 하느냐'부터 '미국이 만악의 근원이다',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과 외교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을 노무현 정권이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노무현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촛불의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했다.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노무현과 싸워야 하는데, 촛불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대중들의 터져 나오는 발언이 자유발언을 가장한 활동가의 선동에 불과하다며 맘대로 험담하고 외면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로,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 그리고 지금 김선일을 추모하는 촛불사이에는 빗대려야 빗댈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수구 보수 세력의 퇴행성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촛불'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이자, 온갖 감언이설로 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분열시켜온 '노무현' 만큼은 단 한번도 문제삼지 않았다. 탄핵무효의 '촛불'은 오히려 반대방향을 밝혔다. 이 '촛불'은 노무현의 자멸을 지연시키고,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의 올인 전략의 기반이 되어) 역사의 무대위로 복귀할 길을 안내한 '촛불'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심각한 혼란에 빠지고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지도부가 심각한 혼란에 빠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이 알려진 당일은 누구든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알려진 다음날부터는 누구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선동하고 다녔고, 광화문의 촛불에게 자신을 지지하는 '촛불'인지, 자신의 파병강행 결단을 비난하는 촛불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촛불은 이렇게 균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 김선일 피살 이후 광화문의 촛불을 분열시켜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노무현, 국방부, 외교부, 국회, 언론 모두 여기에 충실했던 것이다.
탄핵무효의 '촛불'을 들었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탄핵무효운동의 '촛불'과 파병철회 광화문의 촛불을 구별할 수 없었고, 이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선택'을 강요당한 광화문 추모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의 촛불로 번질 수 없을뿐더러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이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야 한다' 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지지와 탄핵무효운동의 잔흔이 남아있는 광화문의 '촛불'을 당장 놓아야 한다.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파병, 아니 더 나아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새로운 운동이 풀뿌리 번지듯 땅바닥에서부터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 파병반대운동은 자신의 정치적 단결에 성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운동과 연대의 호흡을 다질 수 있고, 그래야만 진실로 대중 스스로 자신의 운동이자 자신의 민주주의를 기초지을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파병철회운동과 노무현 퇴진운동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 앞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파병철회운동이 촛불 속에서 분열하도록 오히려 이를 부추겨 온 것이다. 민언련의 최민희 사무총장은 '백 만 시민이 결집해야 파병철회가 가능'(『시민의 신문』6월 29일자)하다며 이를 선도해왔다. 그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파병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며 파병철회운동이 이들을 아우를 것을 주장했다. 이어 노무현이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겠느냐며, 김선일 피살의 책임소재를 미국으로-만(!) 돌리고, 노무현과 청와대의 정치적 책임소지는 교묘히 회피했다. 파병철회운동의 주타킷이 노무현이 되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되자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서적 불일치'를 느껴 여기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는 또 '노무현 퇴진운동은 이후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을 그릴 수 없다'며,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범개혁진영의 실패로 비쳐지고', 따라서, '이 정부가 개혁적 로드맵을 지키도록 견인하고, 때로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하다'는 충고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단체들 사이에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노무현 규탄/퇴진)을 어떻게 물을 것'이냐, '집회기조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논의를 할 때마다 시민운동단체 책임자-들(!)이 내세우는 논지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이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은 차원이 다른 운동'이라며, 운동의 성격과 목표가 달라지는 만큼 '유보해야한다'는 좀더 세련된 논지를 제시한 것말고는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미국과 대등한 관계' 운운하며, 파병만큼은 '국민에게 뜻을 묻겠다'는 말을 해댈 때는 파병철회운동이 정권퇴진운동과 좀 거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3년 방미에서 그가 '북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그리고 비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하며,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고, 추가파병 결정 직후의 APEC 회의에서는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 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피랍되어 있는 김선일이 '나는 살고 싶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채 부탁해도 '피랍 불구, 파병원칙에는 변함 없다'며 차라리 죽을 것을 종용했는데, 아니, 어떻게 이를 보고도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공언하고 다니고 있고, 파병결정으로 자신의 국민이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노무현이다. 이런 그가 국민의 읍소에 깨닫는 것이 있어 스스로 파병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노무현은 지금 정권의 명운(!)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고 있다. 수도이전사업 반발조차 자신에 대한 퇴진운동이라 여기는 노무현에게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는 파병방침이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차원이든, 대중들의 정치적 반란 차원에서든) 철회된다면, 이는 노무현 정권의 자멸을 뜻하는 것이다.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은 이런 상황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리하여 노무현의 한국군 파병 방침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럴 진데 파병철회운동이 노무현지지 운동(노무현 지지자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무슨 '정치적(!) 불일치'인가?
지금 상황에서 파병반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이 지배세력의 단결을 도모해가듯, 정반대방향에서 노무현 지지운동과 결연히 단절하고 파병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노무현 지지'냐 '파병철회냐'식으로 파병반대운동을 뒤흔든다면, 그와 정반대로 전 세계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병/전쟁을 강행할 것'이냐 '민중의 자기 통치의 권리를 강화할 것이냐'로 저들을 뒤흔들어야 한다.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위에 놓여있는 파병반대운동은 스스로 분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이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정서적 불일치'를 앞세우며, 파병반대운동의 최소 단결을 해치면서까지 노무현 규탄의 목소리를 낮출 것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노무현의 테러보복-파병강행방침을 문제삼기는 커녕 되려 노무현을 냉혹히 비판하는 운동을 문제삼는 시민운동은 지금만큼은 전쟁에 반대하는 '파병철회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무현 엄호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 집회에서 분출된 대중의 요구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국민행동내 친 노무현 인사들은 '파병반대'와 노무현 사랑'중에서 선택하라"
전쟁참여정권!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에게 민중의 심판을!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것이 자신의 최종적 지향임을 거듭 확인하였고, 그 자신 스스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만 자신의 정치권력이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복해서 확인해 왔다.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려는 대중들의 무수한 운동을 사그라지게 하기 위해 노무현은 대국민적 도박을 벌여왔고, 매번 거기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왔다. 오늘 파병철회운동이 스스로 단결을 도모하고, 진정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면, 노무현의 얼치기 도박판부터 거두어야 한다. '노무현 지지'와 '파병철회'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도박판을 물리치고,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워야 한다. 우리가 그의 강요에 내몰려 선택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우리의 주장에 쫓기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듯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조정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해야 비로서 가능하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가? 무엇이 파병반대운동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들의 파병/전쟁 참여노력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김선일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고도 반테러/복수 운운하는 노무현정권의 방침이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대중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집회 공간마저 없애고,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대중의 분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의 저지선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의 기만적인 펜대가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이를 제거해야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처럼 노무현 정권을 향한 분명한 비판을 주저하고, 이상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운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강변하듯 지금 파병반대운동의 머뭇거림을 '노무현에 대한 규탄/퇴진'탓이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운동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파병반대 운동은 탄핵무효운동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진심으로 숙고해 보자. 오늘날 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지 진정 살펴보자. 한 인간의 생명마저 져버린 채 전쟁 참여에만 골몰하는, 여론을 호도하며 대중을 기만하면서까지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주범이 아닌가? 저들을 끌어내리려는 민중의 심판이, 그 같은 운동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것이다. 자신을 조직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 따위를 거론하며 어떻게든 기댈 대상을 찾아보겠지만, 자신을 조직하고, 자신이 운동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조직하는 민중운동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가꿀 수 있다. 만일 민중의 힘으로 노무현이 퇴진한다면, 그를 심판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로드맵에서 우리는 '민중의 자기통치, 민중의 정치'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운동이 파병반대운동에서 모색해야 할 결론이다. PSSP
지난 7월 3일 집회를 둘러싼 파병반대국민행동 참가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확연했다. 시청집회를 강행할 것이냐 광화문으로 옮길 것이냐,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행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집회를 할 것이냐 아니면 추모 문화제의 기조를 지속할 것이냐 들로 논점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했지만 이들 사이의 간격은 쉽게 좁혀질 것이 못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충돌만큼 이날 집회에 참여한 대중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었다. 어떤 이는 '성난' 만큼 노무현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실망'한 만큼 집으로 빨리 발길을 돌렸다. 분노와 무기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지난 주 광화문의 촛불은 그렇게 끝났다.
한편, 시민단체-들(!) 역시 (우리들과는 정반대방향에서) 최근의 파병반대운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시종일관 파병철회운동 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을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파병철회운동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들 목소리를 잠재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마저 여기에 동요하고 있는데,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 정권과 미국에 대한 분노의 함성을 내자고 하고서도, 시민단체들의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탄핵무효와 파병철회의 짧은 시간, 먼 거리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광화문에는 촛불이 밝혀졌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안 된다', '왜 우리국민이 거기서 죽어야 하느냐'부터 '미국이 만악의 근원이다',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과 외교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을 노무현 정권이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노무현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촛불의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했다.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노무현과 싸워야 하는데, 촛불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대중들의 터져 나오는 발언이 자유발언을 가장한 활동가의 선동에 불과하다며 맘대로 험담하고 외면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로,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 그리고 지금 김선일을 추모하는 촛불사이에는 빗대려야 빗댈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수구 보수 세력의 퇴행성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촛불'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이자, 온갖 감언이설로 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분열시켜온 '노무현' 만큼은 단 한번도 문제삼지 않았다. 탄핵무효의 '촛불'은 오히려 반대방향을 밝혔다. 이 '촛불'은 노무현의 자멸을 지연시키고,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의 올인 전략의 기반이 되어) 역사의 무대위로 복귀할 길을 안내한 '촛불'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심각한 혼란에 빠지고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지도부가 심각한 혼란에 빠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이 알려진 당일은 누구든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알려진 다음날부터는 누구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선동하고 다녔고, 광화문의 촛불에게 자신을 지지하는 '촛불'인지, 자신의 파병강행 결단을 비난하는 촛불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촛불은 이렇게 균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 김선일 피살 이후 광화문의 촛불을 분열시켜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노무현, 국방부, 외교부, 국회, 언론 모두 여기에 충실했던 것이다.
탄핵무효의 '촛불'을 들었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탄핵무효운동의 '촛불'과 파병철회 광화문의 촛불을 구별할 수 없었고, 이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선택'을 강요당한 광화문 추모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의 촛불로 번질 수 없을뿐더러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이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야 한다' 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지지와 탄핵무효운동의 잔흔이 남아있는 광화문의 '촛불'을 당장 놓아야 한다.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파병, 아니 더 나아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새로운 운동이 풀뿌리 번지듯 땅바닥에서부터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 파병반대운동은 자신의 정치적 단결에 성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운동과 연대의 호흡을 다질 수 있고, 그래야만 진실로 대중 스스로 자신의 운동이자 자신의 민주주의를 기초지을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파병철회운동과 노무현 퇴진운동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 앞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파병철회운동이 촛불 속에서 분열하도록 오히려 이를 부추겨 온 것이다. 민언련의 최민희 사무총장은 '백 만 시민이 결집해야 파병철회가 가능'(『시민의 신문』6월 29일자)하다며 이를 선도해왔다. 그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파병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며 파병철회운동이 이들을 아우를 것을 주장했다. 이어 노무현이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겠느냐며, 김선일 피살의 책임소재를 미국으로-만(!) 돌리고, 노무현과 청와대의 정치적 책임소지는 교묘히 회피했다. 파병철회운동의 주타킷이 노무현이 되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되자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서적 불일치'를 느껴 여기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는 또 '노무현 퇴진운동은 이후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을 그릴 수 없다'며,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범개혁진영의 실패로 비쳐지고', 따라서, '이 정부가 개혁적 로드맵을 지키도록 견인하고, 때로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하다'는 충고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단체들 사이에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노무현 규탄/퇴진)을 어떻게 물을 것'이냐, '집회기조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논의를 할 때마다 시민운동단체 책임자-들(!)이 내세우는 논지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이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은 차원이 다른 운동'이라며, 운동의 성격과 목표가 달라지는 만큼 '유보해야한다'는 좀더 세련된 논지를 제시한 것말고는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미국과 대등한 관계' 운운하며, 파병만큼은 '국민에게 뜻을 묻겠다'는 말을 해댈 때는 파병철회운동이 정권퇴진운동과 좀 거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3년 방미에서 그가 '북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그리고 비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하며,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고, 추가파병 결정 직후의 APEC 회의에서는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 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피랍되어 있는 김선일이 '나는 살고 싶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채 부탁해도 '피랍 불구, 파병원칙에는 변함 없다'며 차라리 죽을 것을 종용했는데, 아니, 어떻게 이를 보고도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공언하고 다니고 있고, 파병결정으로 자신의 국민이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노무현이다. 이런 그가 국민의 읍소에 깨닫는 것이 있어 스스로 파병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노무현은 지금 정권의 명운(!)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고 있다. 수도이전사업 반발조차 자신에 대한 퇴진운동이라 여기는 노무현에게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는 파병방침이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차원이든, 대중들의 정치적 반란 차원에서든) 철회된다면, 이는 노무현 정권의 자멸을 뜻하는 것이다.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은 이런 상황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리하여 노무현의 한국군 파병 방침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럴 진데 파병철회운동이 노무현지지 운동(노무현 지지자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무슨 '정치적(!) 불일치'인가?
지금 상황에서 파병반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이 지배세력의 단결을 도모해가듯, 정반대방향에서 노무현 지지운동과 결연히 단절하고 파병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노무현 지지'냐 '파병철회냐'식으로 파병반대운동을 뒤흔든다면, 그와 정반대로 전 세계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병/전쟁을 강행할 것'이냐 '민중의 자기 통치의 권리를 강화할 것이냐'로 저들을 뒤흔들어야 한다.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위에 놓여있는 파병반대운동은 스스로 분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이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정서적 불일치'를 앞세우며, 파병반대운동의 최소 단결을 해치면서까지 노무현 규탄의 목소리를 낮출 것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노무현의 테러보복-파병강행방침을 문제삼기는 커녕 되려 노무현을 냉혹히 비판하는 운동을 문제삼는 시민운동은 지금만큼은 전쟁에 반대하는 '파병철회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무현 엄호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 집회에서 분출된 대중의 요구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국민행동내 친 노무현 인사들은 '파병반대'와 노무현 사랑'중에서 선택하라"
전쟁참여정권!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에게 민중의 심판을!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것이 자신의 최종적 지향임을 거듭 확인하였고, 그 자신 스스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만 자신의 정치권력이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복해서 확인해 왔다.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려는 대중들의 무수한 운동을 사그라지게 하기 위해 노무현은 대국민적 도박을 벌여왔고, 매번 거기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왔다. 오늘 파병철회운동이 스스로 단결을 도모하고, 진정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면, 노무현의 얼치기 도박판부터 거두어야 한다. '노무현 지지'와 '파병철회'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도박판을 물리치고,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워야 한다. 우리가 그의 강요에 내몰려 선택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우리의 주장에 쫓기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듯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조정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해야 비로서 가능하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가? 무엇이 파병반대운동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들의 파병/전쟁 참여노력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김선일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고도 반테러/복수 운운하는 노무현정권의 방침이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대중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집회 공간마저 없애고,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대중의 분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의 저지선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의 기만적인 펜대가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이를 제거해야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처럼 노무현 정권을 향한 분명한 비판을 주저하고, 이상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운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강변하듯 지금 파병반대운동의 머뭇거림을 '노무현에 대한 규탄/퇴진'탓이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운동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파병반대 운동은 탄핵무효운동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진심으로 숙고해 보자. 오늘날 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지 진정 살펴보자. 한 인간의 생명마저 져버린 채 전쟁 참여에만 골몰하는, 여론을 호도하며 대중을 기만하면서까지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주범이 아닌가? 저들을 끌어내리려는 민중의 심판이, 그 같은 운동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것이다. 자신을 조직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 따위를 거론하며 어떻게든 기댈 대상을 찾아보겠지만, 자신을 조직하고, 자신이 운동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조직하는 민중운동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가꿀 수 있다. 만일 민중의 힘으로 노무현이 퇴진한다면, 그를 심판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로드맵에서 우리는 '민중의 자기통치, 민중의 정치'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운동이 파병반대운동에서 모색해야 할 결론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