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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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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을 평가한다

임필수 | 정책기획부장
미국대선, 무엇이 문제인가?

이 글이 쓰여지는 11월 26일, 드디어 케서린 해리스 플로리다주 국무장관은 537표 차이로 부시가 승리하였고, 주 선거인단 25명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몇분도 지나지 않아서, 고어 후보측은 재개표 결과가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집계'라며 이의를 신청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클린턴 행정부도 법정공방이 해결될 때까지는 정권인수자금 530만달러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미국 대선의 승자가 직접적인 투표결과라기보다는, 연방대법원 법정의 해석과 판단에 따라 결정될 국면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플로리다주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주요 언론들도 쓰린 오보 사건의 기억때문인지, '당선'이라는 표현은 피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지는 "부시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장애가 남아있으나 고어의 백악관 입성을 막는 난관들이 지금처럼 지난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고 상황을 묘사한다.(물론 워싱턴포스트나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자들은 부시의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어쨌든 상황은 이제 조금씩 종막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결론이 나건간에, 양후보 스스로의 힘으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상처로 남을 게 분명하다. 대선 투표결과가 이처럼 박빙으로 드러나고, 검표과정에서의 정치적·기술적 문제로 인해 위기가 발생한 적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법정 공방으로까지 가게 된 것은 미국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후보건간에, 당선되자마자 레임덕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현재 약간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시의 경우에도, 대중들의 직접적인 투표결과에서는 34만표 가량 패배하였다는 점,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친동생 젭 부시였으며 이 지역의 재검표과정에서 부시측 주정부 인사들의 행동이 석연치 않았다는 점, 사태해결이 늦어지면서 새로운 정부구성이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 상하원에서 양당의 의석수가 팽팽하다는 점 등이 그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이 점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가 단지 불운한 사건들이 우연적으로 겹치면서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살해당한 선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번 선거가 치루어진 정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투표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여론조사를 통해 양후보간의 초조한 박빙승부가 예견되었다. 따라서 각 정당의 기층조직에서 격정적인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플로리다주의 경우에는, 젭 부시 주지사가 '적극행동법안'(Affirmative Action, 소수민족 차별철폐, 여성고용확대 등을 추진)이 파탄나도록 압력을 가하여 흑인들의 분노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이번 투표에 참가한 플로리다주 흑인 유권자의 수는 1996년의 52만명에서 95만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플로리다는 소득수준상에서 미국내 최상층에 속하지만 지역별로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고,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는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플로리다주 재검표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 중, 특히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이 지역 흑인들의 투표가 조직적으로 가로막힌 사건이다. 예컨대, 최대의 관심지역이었던 팜비치 카운티에서 대리투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흑인들이 유권자 명부 뿐만 아니라 규정에도 없는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으면서 투표를 거부당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이러한 인위적인 선거권 침해조작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발생하였으며 단지 이번 재검표 사태로 인해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선거의 기회가 의도적으로 가로막혔다는 점은, 미국인들이 '본원적'으로 합의하였다고 주장되는 '기회균등'의 평등관 ― 기회의 평등은 인정하되, 결과의 평등은 반대하는 '반평등적' 평등관 ―에서 볼 때조차 역사적인 퇴행의 징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이번 선거의 쟁점과 연관하여 볼 때 더욱 시사적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선의 쟁점은 다른 선거와 구분되는데, 대선에서는 연방정부가 고유한 권한을 갖는 조세·재정정책, 외교·안보정책, 사회보장정책 등이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공화 양당간의 첨예한 쟁점이 있었다면 사회보장정책이 꼽혀진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의 사회보장을 둘러싼 논쟁은 단지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국가의 책임"과 같이 '양'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뛰어넘는다. 즉 이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대립으로 쉽게 비화되며, 여기에는 주로 인종주의·성차별주의가 개입된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에서 개인의 선택범위를 넓히자'는 부시의 정책은 사회보장 문제를 시장주의-개인주의적으로 해결하자는 대표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시장의 방식으로 구현되는 사회보장에 접근할 수 없는 개인들을, 노력하지 않는 무능력·무기력한 자로 손쉽게 낙인찍어 버리곤 한다. 즉 인종적·성적 차별의식이 보수주의적 정책논리와 공명하게 된다.(물론 부시는 선거시기에는 극단적인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는 고전적 '지혜'를 따라,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면서 이 점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미국 내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려 있으며 투표에서 선호도에, 보이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종 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박빙의 여론조사 예상 속에서, 실체적인 선거부정으로도 표출되었다는 점은 이번 대선에서의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혹자는 이번 선거를 종종 비유되는 '도둑질'이라기보다는 '조직적인 살인'으로 표현하였다.)


미국 유권자의 분할과 두 개의 국민?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선거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 준하여 공화-민주 양당에 대한 선호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분할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지적한다.(혹자는 이번 투표를 놓고 "두개의 국민들이 투표를 한 것 같다"고 논평하기도 하였다) 실제 투표결과, 고어는 흑인 투표자의 90%를 얻어서 1984년 클린턴의 84%보다 더욱 증가한 반면, 백인 투표의 42%를 얻어 클린턴에 비해 저조한 성과를 얻는데 그쳤다. 플로리다 지역의 경우에도, 주요 유권자집단 ― 65세 이상의 노년층(21%), 은퇴한 유태인(6%), 흑인(10%), 환경보호에 큰 관심을 갖고 플로리다에 정착한 사람들, 보수주의적인 쿠바출신 미국인, 퇴역군인 등 ― 에 따라 선호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많은 분석가들은 최근 미국 사회에서 부(富)의 편중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중에서 연수입 10만달러 이상은 1996년 9%에서 2000년 15%로 증가하였으며, 5만달러 이하는 1994년 63%에서 2000년 47%로 감소되었다.(미국 주가지수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미국 경제의 유례없는 1990년대 장기호황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층과 비수혜층이 선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으로 인해, 이번 대선은 최근 치뤄졌던 어느 선거보다도 양당의 차별성이 부각되고 투표율도 다소 증가하였으며, 또한 투표결과도 양후보간의 근소한 차이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자유주의-보수주의로 집약되는 바, 이번 대선에서 양당이 지지를 호소했던 계급·계층, 이데올로기적 태도 등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으로 반영될 것인가의 문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과거 뉴딜체제가 성립될 당시 형성되었던 민주-공화 정당체계가 취했던 전통적인 정치이미지, 정책적·이데올로기적 태도와의 외형적인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양당은 1980∼1990년대를 거쳐 이미 큰 변화를 겪은 후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거리는?

이번 대에서 확인될 수 있는 공화당-민주당의 대결 양상은, 1970년대 말 이후 국면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면의 분수령이 된 사건은 1980년 대선에서의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으로 꼽힌다.
1980년대 공화당의 레이건-부시의 승승장구를 놓고, 많은 선거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선거판도의 '재편'이냐 아니면 단순한 '이상' 현상이냐, 그도 아니면 선거판도라는 현실 및 개념 자체의 '해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즉 1933∼1945년 민주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4선 기간에 걸쳐 확립된 '뉴딜정당체계' - 여기에는 민주당의 주류화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형성된 공화당의 '反뉴딜 보수주의'도 포함된다 - 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가라는 쟁점이었다. '재편' 논자들은 레이건 당선 이후로 공화당이 중심이 된 새로운 투표연합이 이전까지 지배적이던 민주당의 지지연합 ― 즉 자유주의자, 흑인, 북부의 노동자, 소수 인종집단, 남북 백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다수' ― 을 붕괴시키고 향후 한세대 이상 미국정치를 결정할 다수 그룹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의 당선은 제3후보 로스 페로의 등장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에 의한 것이다)

반면, '이상' 논자는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은 일시적인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해체' 논자는 특정 지역이나 가족이 '대를 이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해체되면서,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투표하거나, 아니면 투표하지 않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은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충분히' 준비된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하였다. 먼저 이를 주도한 '신우익' 세력들은, 민주당이 연방정부를 비대하게 만들고 연방정부의 정책개혁을 보족하기 위해 각종 사회과학대학·연구소들을 창립함으로써 이와 연루된 수많은 정부관료-지식인 집단들을 형성하였다고 보았다.(그리하여 아이젠하워-닉슨과 같이, 공화당이 대통령직을 장악해도 이들 집단의 압력에 번번이 주저앉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축으로는 '反엘리트주의'를 이용하여 민주당에게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가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축으로는 1950∼1960년대의 뉴레프트를 혐오하거나 이로부터 전향한 보수주의 지식인들을 조직하여 리버럴에 대항할 새로운 이념집단을 형성하고자 하였다.(이때 미국기업연구소, 헤리티지재단, 후버연구소 등 신보수주의 싱크탱크들이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된다)
또한 미국 기업들은 특정정당(대부분 공화당) 또는 특정파벌에게 준영속적으로 지지를 보내거나, 각각의 기업집단의 미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개별적으로 경쟁적인 로비활동을 펼치는 기존의 관행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준정부기구'(데이비드 록펠러가 주도한 3자위원회)나 '기업정치활동위원회'를 통해 미국 정치 정치전반에 압력를 가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기업보수주의'의 발호) 이때 대기업들의 강력한 연합체인 '실업가원탁회의'나 중간규모 고성장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실업가협회' 등이 결성되었고, 이들은 노동조합이나 소비자·환경보호운동을 약화시키고 정부규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공동의 행보를 취하였다.

그리고, 이 때부터 미국 기업들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정치자금의 액수는 노동조합이 민주당에 제공하던 액수를 훨씬 초과하게 된다. 결국 조세삭감, 탈규제, 노동신축화, 해외시장에 대한 개방 요구 등 레이거노믹스의 특징은 미국 기업가집단들의 즉자적인 요구와 조응한 것이었다.(특히 1980년 레이건 집권의 견인차 역할을 한 공화당내의 '신우익'이 기반을 둔 자본가 분파는, 대기업자본가보다는 주로 선벨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1차·3차산업에 집중된 개입기업 자본가동맹이었다. 이들은 지방의 토지·자원투기, 과도한 군사화, 제3세계에 대해 약탈적 태도를 갖고 있으며, 통화재팽창을 함축하는 '공급중시 경제학'의 절대적 지지자들이었다)

덧붙여, 신우익은 낙태, 동성애, 포르노, 마약, 청소년 범죄 등 미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에 대하여 미국 내 번창하는 복음주의적 종교집단을 비롯한 보수적인 '단일이슈운동' 집단들과 손을 잡고 대중적인 침투 경로를 마련하게 되었다. '강제버스통학제도'(인종적 융합을 도모할 목적으로, 아동을 다른 지구의 학교로 버스를 태워 통학하게 하는 제도) 반대, 남녀동등권 헌법수정안 반대, 동성애권 반대, 낙태 반대 등의 단일이슈운동은 블루칼라노동자를 포함해 중하층, 농촌, 남부의 지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인 카톨릭-아일랜드-이탈리아계로 지지기반 확대를 촉진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 신우익운동의 성장은 드디어 198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출신 레이건의 집권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1980년 선거에서 최초로 공화당의 선거운동원수가 민주당을 능가하게 된다. 즉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더욱 '대중적인' 정당이 된 것이다) 물론, 기업보수주의와 구래의 보수주의적 '경제철학'들을 섞어놓은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대중적으로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지도 못하였다.(레이건의 경제정책 실패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고, 레이건 정부의 뒷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이 갖는 이념적·조직적 응집력은 1980년대 선거정치를 관통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근간이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민주당의 분열과 봉합; 지지연합의 쇠퇴?

이에 반해 다양하면서도 이질적인 집단들로 구성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은 '스태그플래이션'과 경제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더욱 삐그덕거리게 되었다.(1978년 카터정부의 사회복지비 지출거부는 그 분수령이 되었다) 공화당의 정당조직이 일종의 기업처럼 상근직원과 전문가들을 중심에 두었다면, 민주당의 기층 조직은 사회운동적 성격이 강하며 자원봉사자 위주의 지원활동에 크게 의존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을 갖는 민주당은 정치적 지도력의 약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8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급진화'와 '보수화'라는 반응이 동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이 흐름들이 나타난 데에는 '직접예비선거'의 도입이라는 계기가 존재했다. 직접예비선거제도는 민주당내의 급진파('New Politics')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1968년 민주당 전국당대회에서 보스들과 로비스트들이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후보를 결정했던 사실을 쓰린 경험으로 삼게 되었다. 따라서, 민주당 전국당대회에 파견할 주대표의 선출과정에서 각주의 인종, 성, 연령분포가 정확히 반영되어야 하며, 각주에서의 대표 선출과정이 공개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그렇지만 당시 미국 AFL-CIO의 '보수파' 지도자 미니는 당내 흑인 및 여성대표가 늘어나고 자신들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감소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반대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민주당에서 직접예비선거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민주당 내의 각각의 분파·경향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당내에서 기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다른 세력과의 연합에 연연하지 않고, 분명한 이념과 정책을 갖고 당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이는 물론, 전국적인 정치에 경험은 없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그를 바탕으로 자금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들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198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제시잭슨 후보의 등장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당시 AFL-CIO는 민주당후보 중에 승산이 있는 자에게 대량으로 역량을 집중투입하여 차기 민주당정부에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골몰하였다. 이들은 결국 먼데일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그의 선별적인 '보호주의'와 자본-노동의 협조하에 동북부 공업기반을 재건하는 정책을 지지하게 되었다.(이는 '노동단결'이라는 외형을 띄었지만, 실제로는 흑인민권운동, 여성운동 등과의 '진보동맹'을 기각하는 의미를 내포하였다) 이에 반해 잭슨 진영은 레이건 대통령 치하에서 더욱 악화되는 흑인들과 하층노동자들의 생활에 주목하면서, 과감한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제안을 내놓게 되었다.

그렇지만 1984년 레이건-먼데일의 대결에서 레이건이 더욱 큰 표차이로 재선에 성공하게 되었고, 이를 기화로 오히려 당내 우파의 목소리는 더욱 큰 힘을 얻기 시작했다. 즉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뉴딜연합'(New Deal Coalition)은 지탱할 수 없었다. 1960년대 혼란기에 성장한 이익집단들(흑인, 청년, 여성, 스페인계)이 당내에서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차단하고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신흥중간계층을 포괄하는 새로운 지지기반을 획득해야 한다'는 류의 주장들이 더욱 확산된 것이다.("우리가 여전히 공정한 정당이기 위해서는 이제 기업인과 의사와 약사, 주식투자자와 전문인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민주당이 되기를 원하는데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1988년 경선에 나선 민주당 후보들은 기업가 집단들 내부에서 지지세력을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고, 결국 대선에서는 기존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의미있는 '뉴딜적' 정책을, 더 이상 제시할 수 없게 된다.
1992년, 12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사활적인 목표로 내걸고 아칸소 주지사출신 클린턴은 당내 중도보수파를 자처하면서 등장한다. 클린턴의 등장은 새로운 방향전환을 위한 민주당의 각고의 노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 및 관련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 고속전철이나 '정보고속도로'와 같은 첨단산업기반 구축에 대한 약속 등을 통해 자본가집단 내 일부 분파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또한 자유무역을 지지하되,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취하거나 환경보호정책을 무시할 경우 미국이 강력한 '무역보복'을 취함으로써 미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정책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산업자본 및 노동조합의 호의를 얻으려는 정책을 선보이게 되었다.

또, 이미 쇠퇴하고 있는 뉴딜연합을 고려하여 실업과 사회보장 제도를 정비하되, "무조건 식권을 나누어주는 정책은 중단한다"고 말하며 보수주의적 정책을 선별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러한 클린턴의 공약은 그의 당선을 통해 민주당의 새로운 노선으로 인정받았고, '신민주당'의 흐름은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00년 대선과 미국의 민중운동

어떤 논자는 이번 대선결과를 놓고, 고어의 궁극적인 승리 또는 패배는 ― 고어가 애써 그들의 이슈를 무시한 ― 흑인 투표자에 기인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Clarence Lusane, 'Ballots or the Bushes', Th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앞서 밝힌 것처럼 고어에 대한 백인 지지율은 감소한 반면, 흑인 지지율은 90%까지 상승하였고, 특히 격전지였던 미시건과 플로리다는 각각 96%와 95%로 나타났다. 즉 고어가 승리한다면 이는 흑인 투표자의 기여가 큰 '효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또다른 재미있는 수치를 제시한다. 즉 고어가 클린턴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중죄를 선고받은 흑인들의 공민권(선거권)을 박탈(disenfranchisement)하는 정책을 구사하고, 또한 흑인들이 지속적으로 중죄를 받게 되는 정책을 계승하여, 엄청난 수의 잠재적인 흑인 투표자를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특히 레이건-부시를 잇는 클린턴-고어의 '범죄와의 전쟁' 즉 검거위주의 마약정책이 직접적인 현안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흑인들을 '범죄자'로 양성하는 클린턴-고어 정부의 정책 전반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사회에는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재적 혹은 영구적으로 공민권이 박탈되어 있으며, 이중 140만명이 흑인이다.(이는 전체 흑인성인남성의 13%를 차지한다) 플로리다주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한데, 흑인성인남성의 31.2%가 공민권이 박탈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운동 시기에 다시 드러난 것처럼, 부시이건 고어이건, 이처럼 파멸직전 상황에 놓여있는 흑인 및 유색인종에 대해 진정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재검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고어 후보는 앞서 언급된 선거부정, 즉 흑인 선거권의 '정치적' 박탈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어 이슈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현실은 1990년대 민주당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의 결합이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민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 즉 금융세계화의 단물을 얻은 수혜자들이 민주당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탈하는 현상을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두 번째로 출마한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 후보의 선거운동에 대해, 사회운동적 성향을 갖는 민주당의 기층당원들이 적지 않은 동요를 보였다는 점도 그 징표가 될 것이다.

또한 양당의 정책이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수렴된다는 고려할 때, 오히려 민주당이 공화당의 공세에 지속적으로 취약함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 정치구조의 견고함이 단번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정치제도의 보수성,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양당체계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검표 사태를 통해 언급된 바와 같이, 대통령간선제-(강력한 힘을 갖는 상원을 포함한)양원제-(대중의 영향력이 차단된)사법부, 각각의 임기가 서로 엇갈리게 만들어서 정책상의 급격한 변화를 막도록 한 것 등 다양한 장치들은 기존 양당구조를 온존시키는 제도적 틀로 기능하고 있다. 게다가 직접예비선거를 계기로, 급속하게 확산된 선거의 '매스미디어화'도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후보지명의 현장이 막후 협상실에서 TV스튜디오로 변화되면서, 투표자들을 동원해내기 위한 미디어 기술들도 급격하게 발전되었다. 또 TV광고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선거자금이 필요해진 것은 물론이다.(1980년대 민주당이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이 흐름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양당의 경쟁관계 하에서 선거의 미디어화, 선거자금 모금전쟁은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현실이 변화 가능성을 점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의 민중운동 및 사회운동이 어떻게 대응전략을 잡아나갈 것인가에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미국에서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민주주의의 쟁점'이 여러 측면에서 보여졌으며(빈곤의 흑인화, 빈곤의 여성화), 플로리다 사태가 남아있듯이 투쟁의 불씨와 쟁점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AFL-CIO는 고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구래의 코포라티즘적인 전략을 고수하는데 그치고 말았고 이 경향은 쉽게 포기되지 않을 듯하다. 혹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사회의 변혁을 주도할 세력이 반드시 백인으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편견은 깨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마이크 데이비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창작과비평). 이 말에 담긴 진실성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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