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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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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전선론의 한계와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형성과제

홍석만 | 편집실장
<b>들어가며</b>

바야흐로 김대중 정권의 민중에 대한 탄압은 군사정권의 폭정에 버금갈 만큼 확대되고 있다. 경찰력을 동원한 폭력뿐 아니라 자본과 정권의 비호아래 구사대에 의한 노골적인 테러행위가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이 때에 노동자들의 정권퇴진투쟁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당한 현실인식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천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폭력테러가 자행되고 이에 대항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6.15합의이행촉구와 김정일 위원장 서울방문을 위해 나란히 걸어놓은 두 정상의 걸개그림 밑에서 자주민주정부 수립을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의 정권퇴진투쟁 선언 이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격화되고 그만큼 자본과 정권의 폭력적 탄압도 그 정도를 더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통일운동진영은 정권퇴진투쟁에 대해서 상당한 우려를 표하며 정권퇴진투쟁이라는 좌편향적 투쟁을 지양하고 그 대신 6.15합의이행투쟁을 보다 대중적으로 전개해 나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립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3월 30일, 민중대회의 투쟁과정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민중대회 참가대오가 김대중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사거리로 어려운 행진을 계속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통일운동진영은 기수를 명동성당으로 돌려 정리집회를 진행하였다. 그 이후 이 대립은 현재까지도 지속되어 급기야 상설공동투쟁체인 전국민중연대(준) 대표자 회의에서 6월 민중대회의 개최시기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정권퇴진투쟁과 6.15합의이행 투쟁의 대립 속에서 많은 운동진영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 때문에 운동진영은 홍해 앞 바다가 갈라지듯 정세인식에서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통일운동진영이 주장하는 민족민주전선과 자주민주정부론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현재 정세인식의 근본적인 차이와 이 노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형성의 의미와 과제들을 되돌아 보고자자 한다.


<B>자주민주정부와 김대중 정권</B>

전선의 문제에서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규정 하에, 핵심적으로 어떤 세력과 연대하는가가 관건이다. 자주민주정부에 대한 주장을 다소 거칠게 보자면 한국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주적은 미제국주의이기 때문에 반미자주화 투쟁을 전면화하여 김대중정권을 포함한 제 중간계급과의 연대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자주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동맹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자주민주정부의 수립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만약 수립되더라도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가 동맹관계속에 이미 내재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주민주정부론에서 가장 핵심은 제 중간세력과 김대중정권을 동맹세력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통일운동진영이 정권퇴진투쟁에 나서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통일운동진영을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기에 이들을 동맹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가?

통일운동진영이 김대중(정권)을 동맹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난 15년간 지속되어 온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7년 6월항쟁 전후 한 시기에 통일운동진영은 과도정부-거국중립내각-자주민주정부로 이어지는 권력대안을 제출하였다. 사실 현재의 자주민주정부와 구성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이 구상은 실제는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로 구체화되었다. 1987년 11월 26일 전대협은 공식적으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고 대부분의 통일운동진영이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1987년 이후 치러진 대선에 통일운동진영은 항상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는데, 1992년 전국연합은 김대중 후보와 정책연합을, 1997년 대선에서는 전국연합의 공식적 입장표명은 없었다하더라도 대부분의 통일운동진영은 김대중 당선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결국, 이들은 아무리 거창한 논리와 말을 들이댄다손 치더라도 무려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김대중에 대한 지지세력으로 남아 있다.
마침내, 1997년 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30년 가까운 세월동안의 대권경쟁을 거쳐 끝내 당선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정권을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현재의 김대중 정권이 도대체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지난 15년 동안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한 지지운동을 전개한 책임이 있다면 통일운동진영은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대한 책임을 졌어야 한다. 그러나 통일운동진영이 과거를 반성한 목소리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러면, 그렇게 목놓아 외치던 김대중의 의한 민주정부가 수립되고 그 정권이 민중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통일운동진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가?

통일운동진영은 김대중 정권의 현재 성격을 명확히 친미예속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과거와는 달리 김대중이 친미세력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인데,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 유학과 영국체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악습을 배웠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대선과정에서 미국의 지원 하에서 자민련과 손을 잡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최근 부시와의 정상회담과정에서 그 예속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한다.(광범한 민족민주전선에 기초한 자주민주정부의 수립, 박세길 민 2001. 1월호)

과거에는 어찌되었건, 현재 김대중 정권이 친미예속정권이자 반민중적인 정권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런데 왜 또다시 김대중 정권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김대중정권이 친미예속성과 반민중성을 지닌 반면 개혁성과 북에 대한 화해·협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이회창 세력이나 조선일보와 같은 친미보수세력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성격이라는 것이다. (두 개의 전선, 승리를 향한 일보전진, 최성원)

그러나, 여기서 이들의 주장은 자기모순에 빠진다. 김대중정권의 화해와 협력성은 6.15합의로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 반미자주화에 함께 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것인데, 문제는 김대중정권이 갖고 있는 화해 협력성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정권의 화해와 협력성, 6.15합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관계의 본질로 작용하고 있는 북미의 관계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규정받는다고 주장한다.(최성원, 윗 글) 결국, 북·미 관계변화가 화해 협력성을 이끌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어떠한 정권이 집권했더라도 이 화해와 협력성은 마찬가지로 유지될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군사정권이 집권하건, 김대중이건 이회창이건 그 정권은 동일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친미보수세력들이라는 이회창 세력을 반대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북의 승리적, 주체적 투쟁의 성과이건 아니건 간에 부시정권도 페리프로세스의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이들 주장대로 부시정권하에서 클린턴정권때보다 북미관계조차 더 진전된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에 예속되어 있는 이남의 정권이 이회창이건, 김대중이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결국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현재 이회창 정권이 들어서게 되더라도 북미관계에 따라 6.15합의와 같은 화해·협력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에서 이회창이 집권하건 누가 집권하건 현재의 지배세력들은 지금의 김대중정권과 유사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공통점은 북에 대한 화해와 협력성이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들 세력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심지어 현재 재벌정책에 있어서 상호대립 하는 듯 보이고 정치적으로 갈등하고 있다하더라도 이것은 자본간 경쟁에 따른 지배분파간의 싸움일 뿐 민중운동진영이 이에 대한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약 이회창과 현재의 한나라당 심지어 김영삼이 다시 집권한다하더라도 현재의 재벌정책, 구조조정정책, 대북정책 등 거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노동자 민중 투쟁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서로의 공존공생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b>중간계급에 대한 인식의 문제</b>

그렇다면 통일운동진영은 연대의 범위를 왜 이렇게 설정하는가? 그 이유는 한반도의 주요모순을 '제국주의세력 대 민중'으로 바라보고, 제국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이에 따라 반미자주화를 중심으로 연대전선을 형성하고 그 세력권 안에 제 중간세력은 물론 김대중 정권까지 포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 군사적 전략이 무엇이고 이것이 한반도에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 또한, 연대의 범위가 그와 같이 형성되는 것이 정당한가하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 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 특히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미국은 경제적으로 제3세계의 신흥시장을 개발육성하면서 금융적인 지배를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군사적인 측면에서 일정한 비율로 성장하던 미국의 군사력은 적대적 파트너들의 몰락으로 상대적으로 더 팽창된 힘을 구가하며 동북아시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 그들 표현대로 친미예속정권인 김대중정권은 제국주의 세력의 철저한 집행자로서 경제적으로는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적 메커니즘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햇볕정책을 통해 정치, 군사적으로도 제국주의적 종속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소위 보수세력은 한국사회에서 제국주의의 주도세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 즉, 제국주의의 가장 기초적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간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운동진영의 경우, 그 주류세력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일 주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기업지배소유구조를 전환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금융자산가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시민운동의 주류적 경향을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정책적으로 대립되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제국주의 지배전략속에 시민운동적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간과하고 김대중도 손들고 나오는 6.15합의이행을 잣대로 시민운동진영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인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통일운동진영은 동요하는 중간세력을 마치 6.15합의 이행투쟁을 통해서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며, 제국주의 지배전략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b>민주기지론에서 민주기지수호론으로</b>

통일운동진영은 민족의 자주성이라고 하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수탈을 받고 있는 남측에서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내는 것 뿐아니라 북측에 대한 제국주의세력의 정치·군사·경제적 고립·압살책동도 제거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최근의 견해는 남에서의 제국주의 축출보다도 북에 대한 제국주의세력의 고립, 압살책동을 먼저 분쇄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국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첫째, 북에 대한 지지·지원투쟁이 자주강령실현의 최우선적 과제라는 것과 둘째, 전민족적 통일전선 즉 '민족통일전선'은 남과 북 해외의 다양한 세력들의 결집인 바, 그것은 북의 정치역량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력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민족통일전선에서 북의 정치역량이 발휘된 것이 바로 6.15합의라고 볼 수 있고 이를 중심으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성원, 윗글) 따라서 오늘날 민족민주전선에 있어서 연대의 시금석이 '반미' 또는 '6·15합의'에 대한 태도인가 하면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비록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기준은 북에 대한 태도 즉, 북에 대해 화해·협력적 태도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 연대의 기준이 되고 있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록 친미예속정권(친미세력)이라고 하더라도 북에 대해 화해·협력할 수 있는 세력이면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즉,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축출에 대해서 남에서의 과제보다도 북의 반제자주역량에 대한 수호를 더 우선시 하는 태도로의 변화는 반제투쟁에 대한 상당부분 후퇴한 맥락 속에서 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북의 대남 정책은 북의 반제혁명역량으로 남한을 해방한다는 '민주기지노선'으로 출발하였다. 1960년대 중반 남조선혁명론과 조국통일론이 등장하면서 남의 독자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지만 큰 기조상의 변화는 없었다. 그 결과 60년대 후반 많은 수의 무장 게릴라 투쟁을 전개하지만 그 대가로 돌아 온 것은 이남에서 혁명세력의 말살과 반동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이남에서 반제민족부르조아세력이 주도하는 자주민주정부가 수립되면 1국가 2체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창설하는 노선으로 변화하였다. 이에 따라 반제축출에 대한 남측의 다소간 독립적인 과제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통일운동진영에서 얘기하는 민족민주전선과 자주민주정부론을 살펴보면 그 과제가 앞서 지적한 바대로 북의 반제역량에 대한 수호로 상당히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특히 6.15합의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의해 심지어 노동자에 대한 식칼테러와 납치 감금 폭행을 일삼았던 재벌 총수를 민족자본가로 인식하고 그의 죽음까지 애도하고, 김대중정권에 대해서도 북에 대한 화해 협력성을 강조하며 견인과 연대의 대상으로 설정하게 된다.

결국, 현재 민족민주전선론과 6.15합의 이행투쟁은 그것이 한반도 전체에서 제국주의세력의 축출을 수행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현재 존재하는 '민주기지'를 수호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민족민주전선은 6.15합의세력 또는 북에 대한 화해·협력세력의 결집이라는 과제 속에서 제국주의 세력에 다름 아닌 김대중 정권과 시민운동의 주류적 경향에 대해서도 연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b>6.15합의와 정권의 반동성</b>

최근 김대중 집권에 대한 평가에서 제반의 모든 정책들은 전부 실패했는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점수를 쳐주고 있다. 즉, 민생문제는 낙제점이지만 통일문제는 합격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민족민주전선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민중생존권에 대해서는 반민중적이지만 통일문제에 대해서 김대중정권은 협력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이러한 이중잣대는 정권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배에 있어서 제국주의의 전략을 바로 보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관점이 결여되어 있고, 올바른 분석을 하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정세인식에 있어서 치명적인 우를 범할 가능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그 이유는 김대중 정권이 남북관계 문제는 어느 정도 잘 풀어나간다는 분위기가 확산될수록 정권의 반민중적 반민주적 성격의 노골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합의와 동시에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에 대해 직접적, 물리적 공격을 자행했다. 2000년 여름 롯데호텔노동자와 사회보험노동자들에 대한 정권의 폭력진압이 있었고 사실상 김정일 위원장이 선물해 준 것이나 다름없는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정권의 폭력성은 극에 치달았다. 그 결과 지난 4월 대우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어졌던 것은 누구 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7.4남북공동선언 직후 박정희 군사독재가 유신독재를 완성해 갔던 것과 유비해서 살펴본다면 더 확정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은 유신독재체제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했다. 대내적으로 1970년 정인숙 살해사건 및 전태일열사 분신으로 민중투쟁이 활성화되고 이 과정에서 1971년 4월 대선과 같은 해 5월 총선에서 야당의 약진 이후 부정선거 규탄투쟁이 전개되는 등 박정희 군사독재는 정권유지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대외적으로도 1970년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1972년 5월 미국 닉슨의 중국과 소련 방문, 미국의 주한미군 병력일부철수 계획 발표와 중·일 수교의 분위기 등 세계정세의 급변에 따른 초조감속에서 박정희 군사독재는 북한과 7·4남북공동선언을 맺게 된다. 이러한 7·4남북공동선언은 그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저지른 만행들이다. 불과 석달 후 박정희 군사독재는 군부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마비시키고 야당은 물론 여권 안의 반대파들까지 정치활동을 원천 봉쇄시키는, 쿠데타에 준하는 조치를 내린다. 그것이 이른바 10월유신인 것이다.

결국 7·4남북공동선언은 대내외적인 군사독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한 방편으로 나아가 파쇼적 억압체제의 강화인 유신독재를 낳게 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1989년 들어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또한 범죄와의 전쟁선포라는 미명아래 조성된 공안탄압속에서 1990년 새해 벽두 민자당 3당 합당으로 완성된 보수야합은 1990년 하반기 이른바 남북고위급 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반민중적 보수연합을 인정받고 결국 1991년 노태우 군사파쇼와의 남북UN동시가입을 성사시켜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 그 대가가 바로 남북 상호간에 지켜지지도 않았던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휴지조각이다.

이처럼 우리가 진실로 우려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지배가 약화되지 않고,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투쟁이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정권의 반동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권이 현재 그런 외길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 민중은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B>미자주화인가, 반신자유주의인가</B>

전선의 형성과 모순의 표출에 있어서 통일운동진영은 계급 모순에 따른 계급적 요구를 우선적으로 내거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요구인 반미자주화 나아가 조국통일투쟁을 전면화 시킴으로써 역량의 극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계급모순에 의한 계급적 요구들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되며 자주라는 민족적 강령에 소위 '내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최성원, 윗 글) 이에 따라 기층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도 이 투쟁이 계급적 요구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민중생존권 파탄의 원흉인 미국에 대한 반대를 투쟁의 중심에 확고히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민중생존권 투쟁의 주된 타격방향은 미국이고 이것은 자주화에 대한 요구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전국연합2001년 통일수련회 자료집) 결국, '반미자주'로의 내포는 모든 계급계층운동의 수렴점임과 동시에 연대의 조건이 된다. 가령,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미군독극물방류와 미 군사기지 환경파괴문제를 통해서만 이들과의 연계와 결속을 모색하고,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미군의 여성살해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며, 시민운동 역시 6.15합의에 대한 입장과 국가보안법철폐에 대한 태도변화를 주요한 연대의 고리로 파악하고 있다. (박세길 윗 글)

이 방식은 주적인 제국주의 또는 미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가장 폭넓은 연대를 실현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내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계급모순의 전면화를 통해서는 변혁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반미자주'를 매개로 한 연대, 민족모순의 표출을 통한 연대가 제 계급계층과 연대의 폭을 더 넓게 확장하게 하는 것인지는 현실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 생각에는 계급모순은 협소하고 민족모순에 따른 연대는 더 넓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현실이 그러한가? 오히려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반미자주를 통한 연대보다도 자본주의적 모순의 가장 첨예화된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모순과 갈등에 따른 연대전선의 형성이 더 넓고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가족을 재구성하여 여성의 사회적 억압을 더욱 첨예한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여성노동의 악화는 물론 노동계급의 빈곤화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간 경쟁이 지구적인 차원으로까지 격화되면서 전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본의 환경파괴가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환경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고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러한 연대가 비단 여성과 환경운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공교육의 몰락과 피폐화, 제국주의 경체침탈로만 설명될 수 없는 농촌파괴와 그 속에서 농민생존권의 몰락 등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재편과정에서 민중들의 연대의 고리는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계급적 요구를 내포하되 민족적 요구를 통해서만 관철시키고, 그것도 반미자주로 모일 수 있는 요구를 통해서만 연대를 실현하자는 주장은 주체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전선을 더 협소하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현재 민중운동진영이 계급동맹에 대해서 좁은 범위만 사고하고 있거나, 아니면 동맹자체를 무시하거나 필요 없는 것으로 매도하고는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국주의 지배와 한국사회변혁에 대한 인식이 다르며, 중간세력에 대한 동맹의 방식이 차이가 나는 것이지 무조건 이를 거부하는 것도, 계급동맹의 계획과 원칙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민중운동진영은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심화확대를 위해 무엇보다도 전략적 동맹이라 할 수 있는 노농빈의 계급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1차적으로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중간계급들과 전선의 교란요인들로 인해 전선의 성격이 아직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전술적 통전의 형성은 매우 불안정 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략적 동맹을 든든히 하고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강화를 통해서 중간계급운동과 시민운동의 급진화를 이루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b>반제투쟁의 계급적 기초는 어떻게 형성되는가</b>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제국주의 지배전략에 대한 무지와 무계획에 기인한 잘못된 방침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제국주의 지배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반미자주화투쟁과 나아가 조국통일촉진투쟁을 노동자 민중의 반제자주의식을 고양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전선은 오늘의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직접적인 투쟁 과제로 삼고 있으며, 그 확장을 위해 국제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비판은 전혀 정당하지 못하다.

한국에서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배의 관철은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과정과 그 궤를 같이하고, 제국주의적 종속은 더욱 심화되고 노골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 독점자본의 금융적 재편, (IMF 외환위기와 진행양상이 말해주듯이) 금융세계화에 따른 종속의 심화와 제국주의적 지배방식의 전면화에 따라 반제투쟁이 오히려 직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노동자 민중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하여 반제투쟁의 의식을 더욱 고취시켜 왔다. 반면, 반미자주화투쟁 또는 조국통일투쟁을 통해서 노동자 민중의 반제의식이 고취되거나 확산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미자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은 그동안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이해에 기반하지 않고 달력 일정에 따라 진행되면서 대중과 정세와 유리된 채 좌, 우편향적인 투쟁을 노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민중이 반제투쟁에 대해서 스스로 각인되어 왔던 최근의 역사만을 살펴봐도 노동자 민중이 과연 무엇을 통해 반제의식이 고양되고 투쟁에 나서게 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1986년의 IMF·IBRD 서울총회 반대투쟁은 비록 학생들의 주도하에 전개되었지만 반미반제투쟁의 최초의 대중적 투쟁이 되었고, 1989년 이후 우르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을 통해서 농민들의 반제의식에 대한 각성이 지극히 높게 고취되었다. 그리고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반미반제의식에 대한 민중적 자각과 각성은 더 없이 크게 이루어진다. WTO체제와 관련된 국제적인 규모의 반세계화 투쟁과 연대와 최근 투자협정, ASEM반대투쟁 속에서 반제의식에 대한 계급적 각성과 자각이 대폭 확대되어 왔다. 이처럼 노동자 민중의 반제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고양되었으며 이것이 공기업 민영화 반대와 해외매각 반대로, 개방농정반대와 투자협정반대로 그리고 노동자, 농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자 민중의 이러한 투쟁은 경제주의적 편향에 노정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온당치 않은 비판이다. 노동자 민중의 반제투쟁은 마치 노동조합에서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전화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갖는다. 즉, 반제투쟁에 있어서 경제투쟁이 따로 있고 정치투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투쟁을 통해서 정치투쟁으로 상승 발전한다는 점이다. 노동자 민중의 IMF반대투쟁이 단순히 경제투쟁에 머문 것이라면 현재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의 국제적 연대로까지 상승할 수 없었고, 최근 NMD, TMD반대 등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 군사적 반대투쟁으로까지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 민중은 오로지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해서 제국주의 지배의 모순을 인식하게 된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통일운동진영은 민족민주전선과 민족통일전선의 확대를 주장하며 노동자 민중의 반제국주의에 대한 계급적 요구를 자주화 강령에 종속시켜 냄으로써 오히려 노동자 민중의 반제의식에 대한 정치적 각성을 왜곡하고 이를 가로막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기초에 기반한 반제투쟁은 비록 그것이 경제적인 수준에서 초보적인 반제의식에 기반해 있다하더라도 이의 정치적인 방향 역시 반미자주화라는 민족모순의 해결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제투쟁의 계급적, 정치적 방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노동자 국제주의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러한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 제국주의 세력과 투쟁하는 것이 반제투쟁의 올바른 정치적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러한 반제투쟁들은 국내독점자본과 정권 그리고 제국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제기되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기초 속에서 제시되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반제투쟁은 이처럼 조국통일촉진투쟁과는 인연이 없으며, 계급적 이해에 기반한 제국주의 반대투쟁이야말로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투쟁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이다.


<b>길을 여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강화에 있다</b>

민족민주전선과 자주적 민주정부론은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제국주의 지배 구조와 그 세력들에 대해서 과학적인 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전략은 북에 대한 화해 협력을 통일전선의 기준으로 삼고 북의 반제자주역량에 대한 방어투쟁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반제투쟁이라는 과제에 대해 소극적·방어적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반제역량과 결합하는데에도 노선상의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북에 대한 화해 협력적 태도를 지닌 모든 세력을 반미자주역량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그런 방식으로 자주민주정부가 수립되더라도 통일운동진영의 추구하는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이라는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노동자 민중이 요구하는 전선의 형태는 그 계급적 요구를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집약적으로 표출하는 것이야 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시한 민족민주전선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을 강화를 통해 제 계급계층과의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 요구된다.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형성은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노농빈의 전략적 동맹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가 기본계급대중에 대한 연대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하는 점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 과제 또한 쉽지 않은데, 자본과 정권의 노동분할전략에 대한 극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노농빈에 대한 연대의 동맹적 질서를 확장하는 문제로 사고할 수 있다. 우리는 본지를 통해 민중연대의 당면한 과제가 이 질서의 초보적 단위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확장에는 주류적 시민운동진영에 대한 폭로와 타격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김대중정권과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 동요하는 이들 중간계급운동은 6.15합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김대중정권에 대한 태도로써 그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도록 하고 시민운동의 급진화를 통해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확대에 복무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김대중정권퇴진 등 정치전선의 시급한 복구를 통해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전망을 열어나가기 위한 계획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통한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확대는 반제투쟁의 확대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으로의 확산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반제투쟁의 전국적, 국제적 확산을 위해서는 노동자 국제주의 질서에 대한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제3세계 비동맹진영의 해체에 따라 구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 국가들의 세계자본주의경제체제로의 급속한 편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은 해체된 국제적 연대를 복원하는 맹아로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투쟁은 첫째, 그것이 국가단위보다도(이를 포함한) 풀뿌리 조직들의 국제적인 동맹을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한계와 발전 가능성을 점검하고 둘째, 이를 통한 노동자 국제주의의 새로운 복원만이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제국주의의 경제적 지배체제에 저항하고 정치, 군사적 반대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반제투쟁의 확산과 국제주의의 복원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통해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을 확대 강화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한 반제투쟁을 열어나가는 것. 이것이 최선, 최고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정치 민중생존권
태그
대안세계화 사회운동포럼 소통 연대 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