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9.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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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특집-호성희.hwp

새로운 전통을 찾아서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과제를 정립하기 위하여

호성희 | 편집실장
우리는 7․8월호 특집을 통해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들의 출현에 주목하면서, 그 운동들의 계발적 측면들을 살피고자 하였다. 그 중 세계여성행진은 여성들의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쟁점을 제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이러한 의의는 여성이 겪는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성의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여타의 사회운동들과 결합하면서 공동의 전망을 모색하려는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여성해방과 해방의 조건을 변혁하고자 했던 페미니즘의 또 다른 전통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현재의 세계여성행진으로 대표되는 여성운동의 역사적 위치를 해명하고, 현시기 여성들의 요구와 투쟁에 대해 정식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성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위한 시도>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해설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여기서는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이자 이를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이해하도록 하자. 이를 전제로 여성의 해방을 위한 스스로의 요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도록 한다.
페미니즘의 역사에 대한 통상적인 접근은 다음과 같다. 보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된 투표권 투쟁을 중심으로 남녀 평등 이념을 주창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그 기원으로 간주하여 이를 1세대 페미니즘이라 칭한다. 이어 1960년대 미국에서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비판하고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억압, 특히 여성의 고유한 성욕의 억압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2세대 페미니즘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접근은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사회변혁과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존재했다는 관념을 전제하며,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성적 차이, 특히 여성의 고유한 성욕의 문제가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출현하면서 비로소 제기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18세기 말 프랑스혁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적으로 페미니즘과 사회변혁의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의 관계가 항상 평행적이거나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성적 차이라는 문제 역시 페미니즘 역사의 초기부터 제기되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경제적 독립(노동권)과 성적 자율성(여성권)의 결합을 모색함으로써, 사회변혁에 여성해방을 종속시키지 않으면서도 양자를 관련짓고자 했던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과 ‘성적 차이’에 대한 관념의 출현

성적차이에 대한 관념의 출현은 프랑스 혁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권리’라는 이상을 제기했다. 그러나 1791년 제정된 헌법은 이러한 ‘인권’을 소유권으로 제한했다. 법을 제정할 수 있는 ‘능동적’시민과 이들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시민을 구분한 이 헌법은 타인에게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을 맡기는 사람들(노동자)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여성)들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시키고, 소유뿐만 아니라 남성적 동일성을 기준으로 시민적 주체를 구성하였다. 또한 여기에는 여성의 역할이 가족 내로 한정된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혁명 이상과 그 현실적 제도화 사이의 괴리는 시민적 영역에서 배제된 인민들에게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이에 혁명 이상을 실현하려는 인민들의 저항이 이어졌고, 여성들 역시 ‘여성시민권’을 획득하려는 흐름을 형성하며 이 대열에 참여했다. 비록 당시에는 여성의 인간학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성별화된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혁명적 여성들의 여성 시민권 요구는 남성 동일성에 근거하여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여성들은 자연권으로서 인간의 권리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보편적 평등 이념에 근거하여 여성 시민권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여성의 장소를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제한하려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도시빈민 여성들은 상인과 투기꾼의 이익을 제한하기 위해 소비재의 공정가격과 가격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주부이자 어머니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요구한 것이지만, 이들의 행동은 사적 이익의 자유로운 추구를 보장하는 소유권을 비판하는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즉 사회의 경제적 조직화는 인민의 욕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념이 맹아적으로 내포되어 있었으며, 이 이념은 인민주권의 제한적 제도화에 대한 저항에 다름 아니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

19세기 초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자본의 소유가 아니라 노동의 소유라는 더 보편적인 지반 위에서 공동체를 재구성하고자 했고 이러한 노동자 연합을 위한 조건으로서 ‘노동권’이라는 관념을 제출했다. 노동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로서 노동권이라는 관념은 여성의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로서 ‘여성권’이라는 관념을 도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특히 생시몽주의 여성들은 이러한 여성권을 성적 차이의 권리, 즉 모성과 성욕에 대한 여성의 권리로 구체화했다. 생시몽주의 여성들은 여성권을 노동권과 더불어 공동체의 기초를 이루는 보편적 권리로 만들고자 했고, 따라서 여성권에 기초하여 남성과 동등하게 공동체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1) 여성의 노동권
1830-40년대는 여성 노동자의 상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하는 시기였다.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계급은 주기적인 경제위기로 위협받았고 대부분의 노동자 가족의 경우 생존을 위해 여성과 아동의 노동이 필수적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공장과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노동 또한 유급노동과 병행해야만 했다. 여성의 모성에 대한 책임이 가계의 보충적인 임금으로서 여성의 낮은 임금과 불안전한 고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급되었지만, 여성의 재생산 역할이 작업장에서 여성 노동자를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작업장에서 여성은 모성을 위협받는 조건 속에서 노동했고 장시간 노동은 어머니로서 그녀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낮은 임금과 제한적인 취업 기회가 여성에게 가져다 준 곤경은 이 시기 성매매의 급증으로 드러났다. 여성 노동자 중 상당수가 취업 기회의 결여와 궁핍, 불충분한 임금의 불가피한 귀결로 성매매에 의존해야 했다.
생시몽주의 여성들은 모든 여성의 예속의 근저에는 사회 조직화의 결함으로 인한 자원의 결여가 있다고 보았다. 여성을 위한 권리들은 여성의 빈곤이라는 쟁점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허해 보였다. 여성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빈곤을 제거하고 모든 여성에게 교육, 최저한의 생활수준, 그리고 노동할 권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경제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여성의 노동할 권리와 스스로 부양할 권리를 주장했다.

2) 모성과 성욕에 대한 여성의 권리
여성의 자율적인 개인성을 확립하고자 하면서 생시몽주의 여성들은 모성을 핵심적인 것으로 사고했다.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여성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처럼 구조적 폭력이었다. 가족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는 관습은 무구한 실천이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편․아버지의 이름을 부과하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폭력이고, 그 효과는 모성의 사회적 가치, 독립적인 주체로서 여성의 동일성을 삭제하고 여성에게서 그녀의 아이들뿐 아니라 그녀의 개인성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즉 그녀의 노동의 결과, 주권적 지위,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유의 증거를 강탈하는 것이었다.
모성은 단지 자기 구성적 자질일 뿐 아니라 사회적 노동이었다. 여성은 인류의 어머니였다. 모든 노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존재의 생산, 즉 출산이었다. 출산은 단지 생물학적 반사작용이나 본능적 성욕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모든 노동처럼 모성은 생존하고 재생산하고자 하는 종의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노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해방되는 것처럼, 여성들은 모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그것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질 때 해방될 것이었다. 여성들이 다른 누군가의 욕망의 수단도, 다른 누군가의 소유도 아니게 될 때, 여성은 자신의 노동의 조건과 결과를 완전히 통제하게 될 것이었다.
여성의 성욕에 대한 권리는 쾌락에 대한 권리라기보다는 성적 관계로부터 철수할 수 있는 권리, 즉 독신의 권리를 의미했다. 이렇듯 생시몽주의 여성들이 성적 급진주의를 기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여성들, 특히 노동자계급 여성들이 겪는 일상의 경험들, 예컨대 실업과 저임금, 미혼모의 급증과 관련되었다. 또한 불완전한 출산통제, 출산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과 성병의 만연 등은 여성이 성욕을 향유할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였다. 생시몽주의 여성들은 성적 해방을 경제적, 법적, 지적 해방과 연결시켰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여성해방사상은 일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사고하고 나아가 여성권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부과된 역할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필수적이며, 이는 노동권의 획득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또한 여성이 노동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종속을 재생산하는 가족제도 및 가족이데올로기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자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동권과 여성권이 각기 구별되는 독자적인 권리지만 서로 결합되지 않으면 어느 것도 실현할 수 없는 권리라는 자각에 다름 아니었다.

‘여성권’과 ‘노동권’의 분열의 계기- 가족임금

19세기 초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노동권과 여성권을 공동체의 구성원리가 되는 보편적 권리로 제시했지만, 이후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이 분리되는 과정속에서, 그리고 노동자운동 자체의 변혁성이 후퇴하는 과정속에서 노동권과 여성권은 분리되었다.
노동권과 여성권의 분리는 노동자운동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라는 부르주아적 가족 모델을 적극 수용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 이래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현저히 증가하자 대부분의 남성노조활동가들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면서 여성의 노동권을 제한하였다. 이를 위해 그들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수용하면서 한편으로 여성 고용에 항의하는 파업을 전개했고 다른 한편으로 ‘보호입법’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또한 그들은 공사분할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여성이 가혹한 노동시장에 내몰리지 않고 그녀의 고유한 영역(바로 가족)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족임금’ 전략을 노동자운동의 목표로 내걸었다.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분리는 변혁운동이 점차 쇠퇴하는 동시에 자유주의적 개혁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페미니즘의 주류를 형성함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 1세대 페미니즘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규정되는 것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콜론타이의 견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주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계급적 한계를 비판하면서 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계승하여 노동권과 여성권의 재결합을 모색한 콜론타이의 시도 또한 존재한다. 콜론타이는 여성 억압의 원인이 가족에 있다고 보는 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통적 견해 계승했다. 기존의 가족이 변혁되지 않는 한 여성의 진정한 경제적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콜론타이는 가족의 변혁을 사회변혁의 강령으로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변혁하려는 시도는 가사노동과 양육의 사회화와 더불어 자유결합에 대한 추구로 구체화되었다.

1) 투표권 운동에 대한 비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주류를 이루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투표권 투쟁이 주요한 쟁점이 되었다. 콜론타이는『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글을 통해 투표권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며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진정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했다. 당시 투표권 운동은 모든 여성운동을 압도했고, 사회주의 페미니즘 역시 이 운동을 수용하게 된다. 1910년 2차 국제 여성노동자대회에서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은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조직하자는 의견을 제출하는데, 이 회의에서는 “여성을 위한 투표는 사회주의를 향한 우리의 투쟁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해 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매년 모든 나라에서 한 날 ‘여성의 날’을 조직할 것이 결의되었다. 각 국에서 여성이 날을 조직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콜론타이는 여성들이 투표권이 도입된 이후에도 여성들의 고유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선도한 1917년 2월 혁명이 여성의 역할에 있어서 변화를 이끌어 냈음을 주목하며, ‘여성의 날’을 투표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날에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즉 소비에트의 승리와 공산주의를 향한 국제적인 투쟁의 날로 그 위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표권 투쟁은 부르주아적 한계로 인해 여성해방의 두 측면인 노동권과 여성권의 획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여성운동이 이 쟁점으로 환원됨으로써 투표권의 획득이 곧 여성해방의 달성인 듯한 오해를 야기했으며, 현실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여성의 종속은 은폐되었다. 투표권운동이 남녀관계의 변화를 위해 어떤 적극적인 기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점차 분명하게 인식되면서 이 운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2)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여성의 경제적 독립
콜론타이는 투표권에 대한 부르주아 페미니즘적 요구의 협소함을 공격했고, 이러한 쟁점으로 여성노동자를 동원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시도에 대하여 반대했다. 그녀는 여성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서 가족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다. 그녀는 ‘가족이 파괴되지 않는 한 여성들의 진정한 경제적 독립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고 질문하면서 개별 가족을 대체하는 보편 가족으로서 공동체를 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1918년 제1차 전러시아 여성 노동자․농민대회에서 콜론타이는 사회주의 하에서 가족의 미래를 다루는 중요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공산주의와 가족』이라는 팜플렛으로 출판되었다. 그녀는 단순한 모성 보호가 아니라 개별적인 가사 노동의 철폐(공동식당과 공동부엌의 조직)와 자녀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했다. 또한 이중적인 도덕기준과 성매매에 대한 투쟁도 선언했다. 콜론타이는 노동자 계급 여성들이 혁명과 더불어 더 이상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 것을 촉구했다. 그녀는 10월 혁명 직후 포고된 이혼의 권리가 여성 해방의 역정을 도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1920년대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사적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갖는 한계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레닌은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여성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응당 공동체의 가사노동을 담당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가사노동의 사회화 자체로서는 고착화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타파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러한 대답이 갖는 모순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공산주의와 여성의 요구의 양립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었다.

3) 자유결합과 ‘새로운 도덕’
콜론타이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담당할 때, 남녀간의 새로운 유대가 어떠한 기초 위에 놓여져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즉 공산주의에 적합한 사랑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듯 사랑의 문제에 주목한 것은 여성 억압이 원인이 단지 경제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차원에도 걸쳐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으로부터 여성의 소외는 여성으로 하여금 사랑만을 욕구하고 갈망하게 만들었고,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방해했다.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여성조차 사랑에 종속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사랑을 제외하고는 여성에게 의미 있는 일이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 역사의 부담에서 여성이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콜론타이는 경제적 관계의 변혁과 마찬가지로 성적 관계의 변혁에도 ‘사랑의 학교’라는 이행기가 요구된다고 보았다. 사랑의 학교를 통해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독립성을 획득하고 더 이상 사랑을 삶의 본질로서 간주되지 않게 될 것이다.
『날개달린 에로스: 청년노동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서 사랑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질문했다. 콜론타이는 성적 관계의 역사적 발전을 개관하면서 이러한 발전의 결과 프롤레타리아가 동지적 사랑을 이상으로 한 성적 관계를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남성과 여성의 배타적인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형태의 사랑은 초역사적으로 옹호되어 온 가치가 아니라, 사적 소유에 대한 상속, 노동력 재생산 시스템으로서의 가족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장려하는 형태의 사랑일 뿐이고, 경쟁심과 이기심을 기반으로 하는 부르주아 도덕관념 내에서의 사랑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지애를 바탕으로 한 사랑’으로 전화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있다. 남녀간의 우정은 모두 에로틱한 것이고 따라서 에로스가 문제가 되는데, 이는 갈등을 유발하는 ‘소유욕’과 ‘질투심’을 내포한다. 따라서 소유욕과 질투심이 없는 ‘우정과 에로스’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개별 남녀간의 관계에서 실현될 수는 없고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사회변혁의 전제 없이 성해방을 꿈꾸는 부르주아적 자유결합을 비판하면서 제기된 것이었다. 이혼의 자유를 허용하는 가족개혁은 여성들이 가족생활의 부담에서 해방되었지만, 자녀 양육의 부담은 홀로 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노동자들 사이의 동지적 사랑은 이러한 위험성을 공동체 내에서 통제해야 했고, 이러한 새로운 도덕이 노동 공동체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발전시키는 원리가 되어야 했다. 또한 이러한 윤리가 공산주의적 토대에 근거한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 과정에서 출현해야 했다. 이것이 콜론타이가 구상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였다.

이탈리아 노조페미니즘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을 위한 최근의 시도는 70년대의 이탈리아 노조페미니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자유주의가 취약했고, 이에 따라 자유주의 페미니즘적 전통도 부재했다. 우선 미국에서 신페미니즘(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수입되었고, 68년 간통제 폐지, 70년 이혼 합법화를 계기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에 조류가 변화하여 노조페미니즘이 전개되고 프랑스에서 수입된 이리가레의 이론이 영향을 미치면서 성적차이의 페미니즘이 발달하게 된다.
알렉산드라 메코치는 이탈리아에서의 노조내에서 형성된 페미니즘에 관한 연구에서, 노조내의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표상과 자기조직화를 주목한다. 이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페미니즘적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들간의 상호 신뢰와 스스로 대표하는 것을 옹호하는 집단적인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이 접목되어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초기에는 성차별에 대한 투쟁으로 전개되었고, 다음에는 성적 차이와 자율적 여성주체에 대한 긍정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은 양성 사이의 사회적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성적 차이를 활성화시키는 정치적 운동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노조 내에서 형성된 이러한 페미니즘은 분화된 세 노총의 행동 통일을 이끌어내었으며, 나중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도록 작동한다. ‘여성을 위한 150시간 코스’라는 이름의 활동을 매개로 3개 노총의 여성활동가들은 결집하여 노조 내에서 적극적인 참여와 변화를 위한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타자에 의해 전반적인 정책이 결정되도록 뒷받침 해주는 입장만을 유지해오던 관행을 깨뜨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50시간 과정은 여성노조활동가들과 노조 외부의 페미니스트 그룹간의 성, 건강, 낙태, 여성노동의 문제 등과 같은 가장 분명한 여성주의적 주제들에 대해 공동의 활동과 경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여성권의 목록: 이탈리아 공산당 여성헌장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이 기반이 되어 이탈리아 공산당은 83년 최초로 페미니즘을 수용할 것을 약속하고 86년에는 여성헌장을 기초한다. ‘여성으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이라는 부제의 이 헌장은 이리가레의 성적차이의 이론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이리가레는 성적 차이를 토대로 하는 성별화된 권리, 즉 여성권을 7-8가지의 목록으로 제시한다. 여성에 대한 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착취에 대한 반대로서 ‘인간적 존엄성’을 전제로 한다면, 핵심은 처녀성과 모성을 시민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권리’로 해석할 수 있는 여성권은 법적으로 보장되고 규정되는 것을 초과하여 ‘특수하게 여성적인 위험’을 고려하면서 여성의 고유한 역능을 실현하는 권리이다. 존재론적으로 또 인간학적으로 본질적인 여성권, 즉 인간의 권리로 환원될 수 없는 여성만의 독자적인 권리는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존중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이다. 남편의 자식, 특히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존중은 가족의 자본을 재생할 의무이고, 처녀의 순결에 대한 존중은 남성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보존할 의무이다. 이에 반해 여성권으로서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는 의무 없는 권리, 즉 봉기적인 시민권이다. 이러한 여성권은 이제까지의 시민권과는 달리 ‘자유와 평등’의 권리라기보다는 자유의 조건으로서 ‘평등속에서 차이’의 권리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과제를 정립하기 위하여>

위에서 살펴본 페미니즘의 전통은 페미니즘 역사의 통상적 접근에서 삭제되었고, 일면 단절적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세계여성행진의 커다란 방향성 속에서 이어져오고 있다. 페미니즘의 전통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발견했던 중요한 사실 중에 하나는 이러한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을 위한 시도들이 활발했던 시기는 운동의 고양기였고, 그것이 분리되는 것은 운동의 쇠퇴기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노동권’관념의 부활뿐 아니라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이라는 관념의 부활이 필수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해방의 사회적 조건을 사고함으로써, 여성운동을 사회변혁운동의 일부로 다시 위치 지우게 하는 여성운동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는 ‘어떠한 여성운동인가’라는 쟁점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여성권과 노동권은 여성해방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각각은 구별되는 권리이지만 결합할 때만 양자 모두가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여성권’과 ‘노동권’에 대한 요구는, 오늘날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전지구적인 투쟁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구조화된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여성에게 더욱 불리한 효과를 안겨다 준다. 여성은 ‘재생산의 일차적 책임자’이자,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유연한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이는 ‘빈곤의 여성화’로 결과한다. 성적 차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양산하며 공동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결국 이러한 성적 차별에 근거한 여성 노동의 특질은 노동자 계급 전반에게 확산된다. 이에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중요한 의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투쟁에서 여성들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추상적 권리의 수준에서나마 여성의 요구를 밝히고,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조건과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 우리는 앞서 살펴본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콜론타이의 시도에서 발견된 여성권에 대한 자각, 그리고 성적차이의 페미니즘이 제기하고 있는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권,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과 성적차이의 페미니즘을 통해 지시되고 있는 여성권과 노동권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을 하나의 나침반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이중적 억압의 해소

가족 내에서의 재생산노동의 전담과, 노동력의 출혈판매는 각각이 서로의 조건이 되어 악순환 되면서 여성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즉 가족 내에서의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기 위해서 여성은 열악한 조건에서의 노동시장 진입을 감내할 수밖에 없으며,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던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러하듯 여성들에게 이중적으로 억압적인 상황은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함으로써, 기혼여성 뿐 아니라 미혼여성들에게도 노동시장 내에서의 차별적 지위를 강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의 문제 등과 맞물려 가족 구성 및 결혼에 대한 자발적 선택의 조건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 ‘가족이 덜 필요한 사회’로의 진전
․ 육아의 사회화
․ 가사노동의 사회화
․ 여성의 책임 하에 가족단위로 부과되었던 제반 역할들의 사회화

현재의 가족의 위기에 대한 국가차원의 대응은 육아, 출산에 대한 지원(금)의 확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결국 여성들이 처한 이중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며, 여성노동력의 활용과 가족의 재생산 기능 유지․강화라는 자본의 요구에 대한 대응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원은 또한 늘 철회될 수 있다. 여성이 공적 영역(노동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여성들의 권리실현의 토대를 형성하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증가하는 이중적 착취를 철폐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서만이 온전한 ‘여성권’의 실현을 위한 조건 형성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자발적 모성과 성욕에 대한 권리를 핵심으로 하는 여성권의 실현을 위해 역사적 가족형태가 강요되지 않는, 새로운 남녀관계와 공동체를 출현시키기 위한 조건과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철폐
․ 성별분업의 폐지와 그에 따른 노동시장 진입에 있어서의 차별 해소
․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반대
․ 여성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 반대

가족형태를 전제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성별분업화된 노동시장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데 어려움을 야기한다. 또한 결혼, 가족과 연결되어 여성들이 가진 불리한 조건은 여성노동력이 단순․미숙련 업종에만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며, 남성 노동에 대해 대체노동의 성격을 가지끔게 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산업구조와 경제에 따라 항상적인 고용불안, 불안정한 고용형태, 실업과 취업이 반복되는 등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와 여성노동력에 대한 초과착취를 야기한다.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반대

․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있어서의 차별반대
․ 빈곤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에 의해 사회복지라는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적 지원은 그 본래적 기능이 자본주의 경제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인구관리 차원에서의 잉여의 제공이다. 따라서 이는 자본의 재편전략에 따른 민족국가 차원의 경제정책의 변화에 종속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동력 관리를 목적으로 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이 가족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현재와 같은 사회구조 내에서는 가족의 구성, 즉 결혼 여부에 따른 사회적 지원의 차별이 구조화될 수 밖에 없고, 이는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이중적(가족 내에서의 착취, 사회적 차별) 차별이 가해짐을 의미한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가족의 위기 상황은 ‘정상가족’에 미달하는 가족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여성들, 빈곤한 여성들의 급증을 의미하는 바, 이들의 노동시장 내에서의 차별적 지위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더욱 강화되어야만 한다.

여성의 성적착취에 대한 반대
․ 성폭력 근절
․ 성매매를 비롯한 여성 신체/이미지에 대한 일체의 상품화와 거래의 반대
․ 여성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기능적 착취의 반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과정에서 3차산업이 급증해 왔으며, 한국의 경우 이중에서도 유흥업, 접객업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팽창해 왔다. 이는 여성의 빈곤화 경향과 맞물리면서 많은 여성들을 성산업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성매매와 경계조차 모호한 여성신체/이미지의 상품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서비스산업은 팽창하고 있다. 한편 가족의 위기에 따른 출산률 저하의 대응책으로 국가는 출산율 저하의 책임을 여성들의 ‘출산기피’에 전가하며 출산을 강제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야말로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출산기계로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이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실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성들에 대한 구조적 폭력으로서의 이러한 성적착취의 강화는 성폭력을 재생산하는데, 이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

․ 여성의 이미지를 전쟁의 정당화에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 여성에 대한 성적착취, 전쟁을 반대한다.
․ 여성의 해방은 전쟁이 아닌,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한다.

주변부 식민지의 분할․재분할을 목표로 했던 제국주의 전쟁과는 다른, 금융세계화를 위한 통치성의 유지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새로운 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있어서도 새로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1999년의 코소보 전쟁 당시의 ‘강간캠프’ 등의 예에서 드러나듯 전쟁에서의 강간은 더욱 집단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전쟁이 대상이 되고 있는 주변부 국가들 내의 여성억압의 문제, 그리고 모성, 처녀성 등의 다양한 여성의 이미지가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이렇듯 여성의 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이 새로운 전쟁을 통해 제도화됨으로써 전쟁은 현시기 여성에 대한 폭력의 중요한 측면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극단적 폭력은 여성의 보편적 해방과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반대는 인간의 보편적인 해방과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의 요구임과 동시에 여성이 스스로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주체화되는 과정을 가로막는 폭력에 대한 반대의 의미에서 여성의 해방을 위한 요구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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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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