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사형선고 사회보호법을 폐지하라
지난 4일 경북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서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던 37세의 강모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복막염이었는데,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진행되었고 세균이 혈관으로 퍼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망원인이 단식농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긴 했지만, 감호소 측의 무성의한 대응과 소내 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을 선명하게 들어내며 청송 보호감호소를 다시 한번 세상의 관심 속으로 끌어낸 사건이었다.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12일간 청송 제1보호감호소와 제2보호감호소의 감호자 900여명은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이번 단식농성은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것 중 다섯 번째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추진되는 ‘법무부 개선안’에 항의하는 감호자들의 간절한 호소는 계속되었다.
사회보호법의 역사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사회정화'라는 미명 하에 '불량배 일제검거에 관한 계엄포고 13호'를 발동했다. 전국에서 6만7백 여명이 검거됐고, 이중 4만 여명이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돼 '순화교육'을 받았다. 잘 알고 있듯이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 안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주부, 교사 등 불량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심지어 15살짜리 학생도 있었다. 이듬해 1월 계엄은 해제되었으나 신군부는 80년 12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사회보호법을 제정, 이들에게 보호감호처분을 부과하여, 총 7,478명이 재판절차나 어떠한 사전통지도 받지 못한 채, 보호감호라는 명분 하에 다시 군부대에 수용되었다. 이들 중 정부 기록만으로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세상으로 나왔다.
사회보호법은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로 분류되는데, 보호감호는 일반적으로 상습범 중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최장 7년 동안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집행한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인 및 마약․알코올 등 약물중독자로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집행하는데 그 기간이 명백하지 않고 ‘감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치유된 때’로 규정하고 있다. 보호관찰은 피보호감호자(이하 감호자)에 대한 가출소 및 피치료감호자에 대한 가종료 후 3년 동안 일상생활에 대한 신고의무와 준수사항을 부과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사회보호법 제1조는 “죄를 범한 사람들 중에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 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별도의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로 이 법의 목적과 취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호법은 지난 23년 간 그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도소보다도 더 열악하게 운영되어 왔다. 난방시설 하나 없이 겨울을 나야 하고, 귀휴나 사회견학도 감호자들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직업훈련을 통해 딴 자격증은 사회에 나와보면 무용지물이고, 종이봉투를 만들거나, 위생장갑의 개수를 세어서 포장하는 단순 작업이 전부일 때도 있다. 감호를 통해 사회복귀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영원한 사회의 부적응자로 만들고, 거기에 ‘감호소출신’이라는 주홍글씨까지 새겨주기만 할 뿐 감호자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전과가 있다는 과거 때문에, 상습성이 보여 미래에 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단돈 14,000원을 훔치고 징역 4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은 50세 아저씨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돈을 훔친 행위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왜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문제점과 ‘왜 출소 후에 많은 이들이 다시 재범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사회 구조적 모순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이들을 가두어 두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 인양 구는 정부의 정책에 화가 나기 때문이다.
청송 보호감호소의 피보호감호자들은 이미 법에서 정한 형벌을 다 마치고 다시 7년이란 세월을 갇혀 살아야하는 명백한 이중처벌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낙오자․범죄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법무부의 보호국 관계자들은 ‘사회호보법은 형벌이 아닌 감호자들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습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이들에게 ‘재범’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인 청송보호감호소에 수년간 가두어 두는 것을 ‘형벌’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어떤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호감호제도는 너무나도 명백한 이중처벌이다.
우리는 그동안 인권의 무덤이라고 하는 청송보호감호소의 문을 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26개의 인권․사회 단체가 모여 ‘사회보호법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만들어 법무부장관과 국가인권위 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사회보호법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177인 선언’, ‘활동가 517인 선언’ 등을 진행하였다. 특히 대한변협,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등의 폐지 권고를 이끌어내며, 십 몇 명의 국회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 긍정적인 의견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 9월 사회보호법폐지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으며, 한나라당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은 ‘사회보호법 폐지법안’과 공대위의 논의 결과물인 ‘심신장애인의 범죄에 대한 치료보호 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될 계획이다. 밥을 굶는 것만이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절규하는 청송의 간곡한 외침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들어주어야 할 때이다.PSSP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12일간 청송 제1보호감호소와 제2보호감호소의 감호자 900여명은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이번 단식농성은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것 중 다섯 번째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추진되는 ‘법무부 개선안’에 항의하는 감호자들의 간절한 호소는 계속되었다.
사회보호법의 역사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사회정화'라는 미명 하에 '불량배 일제검거에 관한 계엄포고 13호'를 발동했다. 전국에서 6만7백 여명이 검거됐고, 이중 4만 여명이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돼 '순화교육'을 받았다. 잘 알고 있듯이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 안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주부, 교사 등 불량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심지어 15살짜리 학생도 있었다. 이듬해 1월 계엄은 해제되었으나 신군부는 80년 12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사회보호법을 제정, 이들에게 보호감호처분을 부과하여, 총 7,478명이 재판절차나 어떠한 사전통지도 받지 못한 채, 보호감호라는 명분 하에 다시 군부대에 수용되었다. 이들 중 정부 기록만으로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세상으로 나왔다.
사회보호법은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로 분류되는데, 보호감호는 일반적으로 상습범 중 재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최장 7년 동안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집행한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인 및 마약․알코올 등 약물중독자로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집행하는데 그 기간이 명백하지 않고 ‘감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치유된 때’로 규정하고 있다. 보호관찰은 피보호감호자(이하 감호자)에 대한 가출소 및 피치료감호자에 대한 가종료 후 3년 동안 일상생활에 대한 신고의무와 준수사항을 부과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사회보호법 제1조는 “죄를 범한 사람들 중에서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 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별도의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로 이 법의 목적과 취지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호법은 지난 23년 간 그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도소보다도 더 열악하게 운영되어 왔다. 난방시설 하나 없이 겨울을 나야 하고, 귀휴나 사회견학도 감호자들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직업훈련을 통해 딴 자격증은 사회에 나와보면 무용지물이고, 종이봉투를 만들거나, 위생장갑의 개수를 세어서 포장하는 단순 작업이 전부일 때도 있다. 감호를 통해 사회복귀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영원한 사회의 부적응자로 만들고, 거기에 ‘감호소출신’이라는 주홍글씨까지 새겨주기만 할 뿐 감호자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전과가 있다는 과거 때문에, 상습성이 보여 미래에 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단돈 14,000원을 훔치고 징역 4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은 50세 아저씨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돈을 훔친 행위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왜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문제점과 ‘왜 출소 후에 많은 이들이 다시 재범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사회 구조적 모순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이들을 가두어 두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 인양 구는 정부의 정책에 화가 나기 때문이다.
청송 보호감호소의 피보호감호자들은 이미 법에서 정한 형벌을 다 마치고 다시 7년이란 세월을 갇혀 살아야하는 명백한 이중처벌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낙오자․범죄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법무부의 보호국 관계자들은 ‘사회호보법은 형벌이 아닌 감호자들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습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이들에게 ‘재범’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인 청송보호감호소에 수년간 가두어 두는 것을 ‘형벌’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어떤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보호감호제도는 너무나도 명백한 이중처벌이다.
우리는 그동안 인권의 무덤이라고 하는 청송보호감호소의 문을 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26개의 인권․사회 단체가 모여 ‘사회보호법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만들어 법무부장관과 국가인권위 위원장 등을 면담하고, 사회보호법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177인 선언’, ‘활동가 517인 선언’ 등을 진행하였다. 특히 대한변협, 한나라당 인권위원회 등의 폐지 권고를 이끌어내며, 십 몇 명의 국회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면담, 긍정적인 의견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 9월 사회보호법폐지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으며, 한나라당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은 ‘사회보호법 폐지법안’과 공대위의 논의 결과물인 ‘심신장애인의 범죄에 대한 치료보호 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될 계획이다. 밥을 굶는 것만이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절규하는 청송의 간곡한 외침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들어주어야 할 때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