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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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7-8.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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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오늘여성-박지영.hwp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서울대 농활대 철수와 관련 논쟁을 보면서

박지영 |
7월 초 어느 날, <농활 서울대생, 농민 '성폭력' 시비로 철수>라는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숨이 아주 잠시 멈췄다. 기사 내용을 보기도 전에 성폭력 사건이라는 말만으로도 나는 긴장했다. 이 일로 벌어질 논쟁을 세세하게 예측하지는 못하지만, 여성 비하성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전후맥락이 서술되지 않은 채로 ‘서울대 농활대가 아가씨, 아줌마라는 말을 성폭력 사건이라 규정하였는데, 농민회와 의견차이로 농활을 철수하였다.’는 기사가 나간 후 각종 포털 사이트와 서울대총학생회 게시판 등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글들이 쇄도했다. 성폭력과 관련이 없는 ‘이러니까 서울대폐지론이 나오는 거다!?라는 식이거나, 의도적으로 성폭력사건을 희화화시키는 ?아줌마가 성폭력이면 아저씨도 성폭력이다!’는 식의 글들이었다.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의견을 나누는 사이트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논쟁하는 글들이 등장하였는데, 가장 큰 논점은 ‘그래도 연대하러 갔으면 연대의 자세로 임해야지 철수는 아니다.’였다. 인터넷 게시판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비난하고 공격할 상대를 고르는 이들의 글에 대하여 특별히 의견을 밝혀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서울대 농활대 철수 후 존재하는 쟁점에 대하여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진행하였던 반성폭력운동의 성과가 무엇인지, 어떤 지점이 평가되어야 하는지,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 vs 연대활동

농활 철수를 둘러싸고 우려되는 논점은 ‘페미니즘’과 ‘연대활동’, 둘 중 택일하라는 구도이다. 몇 년 동안 여성활동가들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연대활동의 운영원리에 페미니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동의지반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렇듯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연대활동이 가지는 정세적인 의미와 페미니즘을 부당대립시킨다. 그런데 그 정세적인 의미란 것이 무엇인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박탈되는 식량주권을 쟁취하는 것?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노동권을 쟁취하는 것? 이것과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가 대립되는 것인가? 아니면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것인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젠더화된 형태로 우리를 옥죄어 오는데, 우리는 농민, 노동자를 중성화시키려고만 하지 않는가?
연대활동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논의할 때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다른 지반이 형성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론적으로, 머리 속으로 동의되었던 페미니즘이 현실 대중운동 과정에서 체득할 시간과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성폭력이 여성에게 무엇을 억압하고, 박탈하는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반성폭력운동으로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운동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반성폭력운동이 결국 성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면 현실 곳곳에 존재하는 여성의 부재, 억압, 착취를 인식하고 이를 전변시켜낼 수 있는 다종다기한 운동이 펼쳐질 때? 말뿐이 아닌? 성별권력관계를 체득하고, 이를 재편할 최소한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노동권쟁취를 위한 연대는 더욱 확장되어야 하며, 반전, 환경, 정보통신운동 등등에서 페미니즘적 성찰과 실천 또한 의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특별법 제정 10년, 왜 성폭력은 계속 발생할까

공교롭게도 서울대 농활대의 철수 보도가 나간 그 날 “성폭력특별법 시행 10주년 기념토론회-反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과제”가 진행되었다. 10년 동안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반성폭력운동을 삼았고, 구체적인 활동으로 성폭력특별법 제·개정활동을 펼쳐왔다. 직접적으로 여성단체에 소속되지 않는 여성활동가들과 대학내 여성활동가들 또한 반성폭력 운동에 많은 역량을 투여하면서, 반성폭력 규약/학칙 제정운동을 벌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성폭력 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는 현실은 기간의 반성폭력운동에 대한 평가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 동성사이에서의 성폭력문제 등으로 반성폭력운동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이전의 성폭력개념이 왜 여성에게 성폭력이 발생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못하여 성별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다. 성폭력의 개념화를 어떤 것을 목적으로, 어떤 변화를 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한편 성폭력사건 해결과정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 성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과정’이-규약/학칙으로 정리되었든 아니든-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반성폭력운동 과정에서 구성되어 존재하는 ‘해결과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기간의 반성폭력 운동이 여성들을 주체화하고 조직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펼쳐졌는지에 대하여도 충분히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서울대 농활대의 철수로 인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일련의 과정에 대한 차분한 평가도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대 농활대의 구성원들은 구체적인 방식에 대하여 논의를 열어놓으며 ‘여성주의'에 대한 요구는 현장활동을 재구성하는데 있어 하나의 유의미한 방향성 중에 하나라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한편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넘어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기 위하여 ‘공론화’가 필요한데, 농민회에서는 발생했던 사건을 공유하는 것, 다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농민들과 토론하고 노력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나는 성폭력 사건으로 농활철수를 결정한 서울대 농활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그 판단을 존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이냐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것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다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까지의 반성폭력운동에서 더 진전시켜야 하는 고민이 무엇인지가 이 시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지금 서울대 농활대 사건으로 논쟁의 최정점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있는 여성활동가들, 반성폭력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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