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
한국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던 올해 세계대회
8월 3~4일 히로시마 국제회의
8월 4일 히로시마 세계대회 개회총회
8월 5일 ‘비핵평화의 일본과 아시아’ 워크숍
8월 5일 반핵평화 펜라이트 행동
8월 6일 히로시마 데이 집회
[%=사진29%]8월 7일 한일 피폭자·피폭2세 교류회
8월 8일 ‘일본 시민과 해외 대표의 교류’
8월 9일 나가사키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
8월 9일 나가사키 데이 집회
연대의 의미가 깊어진 올해 세계대회
2026 합천 비핵·평화대회
지난 8월 4~6일 경남 합천군에서 '비핵·평화대회'가 열렸다. 사회진보연대는 참가단을 조직해 대회에 참가했다. 《드림투데이》의 황해윤 기자가 대회에 동행취재해, 기사를 7회 연재했다. 《드림투데이》의 허락을 받아, 그중 3개를 게재한다. 나머지 기사는 《드림투데이》에서 읽을 수 있다. [%=사진1%] 2026 합천 비핵·평화대회 [%=사진2%] 사회진보연대 참가단 ***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3) 피폭자 70%가 합천 출신…15년째 비핵·평화대회 81년 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오늘의 하늘처럼 그 때의 하늘도 맑았고 사람들은 여느 때 처럼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곧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오전 8시 15분, 우라늄 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폭심지 반경 2km 이내는 즉시 초토화되었으며, 당일 즉사자만 수만 명에 달했다. 며칠 뒤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 플루토늄 폭탄 ‘팻맨’이 나가사키에 투하됐고 히로시마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1945년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피폭 문제는 현재까지 ‘이곳’ 한국에서도 세계 곳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외침이 히로시마도, 나가사키도 아닌 경상남도 합천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전두환의 고향으로 낙인 찍힌 ‘합천’이 15년째 비핵·평화대회를 이어가며 스스로를 ‘평화의 도시’로 다시 쓰고 있다. [%=사진3%] [%=사진4%] 4일 위령각에서 시작된 비핵평화 행진 모습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합천 일원에서 ‘피폭 81년! 제15회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Hapcheon Anti-Nuclear & Peace Festival 26)’가 ‘대물린 피폭! 법적 인정과 치유의 어울림’을 주제로 열렸다.국내 원폭 피해자, 증언을 위해 찾은 아시아 태평양 피폭자, 일본 와세다대·영남대 학생들, 한일반핵평화연대 등 반전, 평화, 비핵을 지지하는 국내외 참가자 150여 명이 함께 했다. 한국은 일본에 이은 세계 제2의 피폭국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전체 피폭자 중 조선인은 10% 이상을 차지했다. 히로시마 당시 인구 42만 명 중 무려 14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군수공장 노동자·징용자·군인 등으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60~70%가 합천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귀국한 피폭자들이 모여 살면서 이곳은 국내 원폭 피해의 중심지가 됐다. 합천은 이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된다. 나가사키에도 상당수의 조선인 피폭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방치됐다. 귀국한 피폭자들이 합천에 모여 살면서 이곳은 국내 원폭 피해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합천이 품고 있는 기억은 하나가 아니다. 이곳은 또 다른 이름으로도 오랫동안 불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 합천 시민사회는 그 오래된 이미지를 스스로 벗어나려 하고 있다. ‘피폭 81년, 제15회 합천비핵·평화대회’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대물린 피폭! 법적 인정과 치유의 어울림’. 원폭 피해를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행사 첫날인 4일 오후 5시, 위령각에서 시작된 비핵평화 행진은 합천읍을 지나 원폭자료관으로 이어졌다. 손팻말을 든 시민들과 피폭자, 일본과 국내 평화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걸었다. 내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발걸음은 단단했다. [%=사진5%] 위령각 합천의 비핵평화운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12년 시작된 합천비핵·평화대회는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원폭 피해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과 피폭자 지원 확대, 비핵평화공원 조성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사진6%] 원폭 피해자들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행사장 안에서는 원폭 피해자들의 그림과 사진, 기록물이 전시됐다. 원폭 피해자는 1945년 현장에서 피폭당한 이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세 3세 후손들까지 유전적 영향과 각종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2016년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이 제정됐지만, 후손들은 여전히 법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김선민(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피해자 자녀(2·3세)의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이번 대회가 ‘대물린 피폭’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인 피폭 2, 3세들의 법적 피해자 인정과 국내외적 의미를 논한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글로벌 피폭자와 국제연대라는 주제를 통해 잊혀져가는 기억을 미래세대의 과제로 이어가며 반핵평화운동의 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특히 국경과 세대를 넘어 청년들의 ‘기억의 연대’ 만남을 통해 ‘글로벌 피폭자 연대’의 주역이 되어 반핵평화운동의 흐름을 지속해 나가자는 호소는 ‘합천의 기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뜻깊은 시작이 될 것이다.” 한국원폭2세환우쉼터 합천평화의집 이남재 원장의 인사말이다. [%=사진7%] 합천 비핵평화대회 둘째 날인 5일, ‘피폭 2, 3세 법적 피해자 인정과 국내외적 의미’를 주제로 한 국내외 학계 인사들의 발제와 멀리 미국, 카자흐스탄, 일본을 비롯해 국내 피폭자들의 증언 등이 이어졌다. 이날 주제 발제자로 나선 김경인 박사(전남대학교 강사)는 “피폭 2·3세 인정 문제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피해를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는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일”이라며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로서의 책임을 먼저 인정하고 그 후손 또한 명실상부한 원폭피해자임을 인정하고 일제강점과 전쟁과 원폭에 대한 책임을 미국과 일본에 강력하게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천에서 원폭피해 1세와 2세 구술 생애사를 기록해 온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이은정 교수도 발제를 통해 원폭 피해 1세와 2세들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 언급했다. 이 교수는 “원폭 피해자의 고통은 단순히 신체적 고통이나 질병에 국한되지 않고 전쟁, 식민 지배 귀한 이후의 차별, 빈곤, 사회적 차별과 같은 구조적 폭력에서 비롯된 사회적 고통임에도 지금까지 법과 정책은 이러한 고통을 의학적 진단, 치료, 의료비 지원으로 치환해 왔다”면서 “이는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질병이나 증상으로 국한시켜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하고 역사적 정치적 책임을 비가시화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폭은 1945년 8월에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한 가족의 80년의 삶 전체를 관통해 온 역사적 조건”이라면서 “부모 세대의 피폭 이후 형성된 빈곤, 교육 기회 상실, 건강 취약성, 사회적 낙인과 같은 삶의 조건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또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국가 지자체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구술 채록 아카이빙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온 반면, 원폭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기록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면서 “이들의 피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피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이게 할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기록의 과제를 던졌다. [%=사진8%]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자들 비핵평화대회에 함께한 시민들은 원폭 피해를 지역의 상처로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핵 없는 세상과 평화를 이야기했다. 피해의 기억을 세계 시민의 언어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2026합천비핵평화선언’을 채택했다. 국가폭력과 민주화의 기억을 품은 도시 광주, 핵폭력의 기억을 품은 합천. 두 도시는 서로 다른 역사를 겪었지만, 기억을 지우지 않고 공공의 가치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고, 증언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다음 세대에게 기억을 전하려는 시민들이 있다. 5·18 광주가 “인권의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진상규명과 유공자 인정을 요구해온 과정과, 합천이 원폭 2, 3세의 법적 지위를 요구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왔지만 겹치는 질문을 던진다. “전엔 한국의 피폭자 피해 문제에 대해 잘 몰랐다. 피폭 문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고, 이런 이야기들을 제 3자의 경험자로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합천을 찾은 한 광주 참가자의 소감처럼, 사회적 낙인을 뚫고 피폭 문제를 공론화하고 더 나아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합천의 목소리에 광주는 어떤 응답을 해야할까.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8) “피해자 낙인만, 지원 없어… 억울해서 숨어 살았다” [%=사진9%] 피폭자의 아픔을 표현한 조선남의 시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구나, 너를 위하여’ 앞에 선 한정순 회장. 그는 이 시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라는 낙인만 있었지, 인정도 지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숨어 살았습니다.” 한정순 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말을 시작하기 전 여러 번 숨을 골랐다.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폭 2세다. 부모 모두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원폭 2세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특히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자꾸 넘어지고,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었어요. 병원에 가도 병명이 안 나왔습니다. 그냥 ‘약하게 태어났나 보다’ 하고 살았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공장에 들어갔다. 13시간씩 서서 일하는 노동이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병원은 여전히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고 했다. 결혼 후 첫아들이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그 순간부터 삶은 무너졌다고 했다. “내 아픔보다 아이가 더 큰 고통이었어요.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뿐이었죠. 그때도 원폭과 연결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보고, 아픈 몸으로 버티고,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결국 가정은 유지되지 못했다. 그는 “그 시절은 지옥이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리 통증이 심해 걷지 못하게 됐고,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기어 다녔다. 손바닥이 다 까져 피가 났고, 어린 둘째는 “엄마, 여기에도 피가 있어”라며 뒤를 따라다녔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고 했다. 부모는 피폭 경험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는 그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혹시 원폭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화를 내셨어요. ‘원폭 맞은 나도 괜찮은데 왜 너희가 그러냐’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사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히로시마에서 임신 중 피폭을 당했다. 해방 뒤 귀국했고, 그때 품고 있던 아이는 돌이 지나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후 태어난 여섯 남매는 모두 크고 작은 질환을 안고 살아왔다. 한 회장과 셋째 언니는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고, 다른 형제들은 뇌경색, 심근경색, 협심증, 치아 질환 등을 겪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병과 원폭의 연결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2004년 KBS 다큐멘터리를 본 뒤였다. 이어 원폭 2세 환우 고 김형률 씨를 만나면서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원폭 때문에 이렇게 아픈 사람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회장은 현재까지 양쪽 다리 인공관절 수술을 포함해 12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원폭 2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원인은 알 수 없고, 병명은 늦게 나왔고, 국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무 억울했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치료받을 권리, 인정받을 권리입니다.” 그는 많은 원폭 2세와 3세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피해자라는 낙인만 찍히지, 어떤 혜택도 인정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나서겠습니까. 하지만 인정이 시작되면 숨어 있던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2008년부터 원폭2세환우회 회장을 맡아 온 그는 “싸울 때는 너무 외롭다”고 말했다. 국회를 찾아가고,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후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배우지도 못했고, 아픈 사람들이에요.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연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2024년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광주에서 만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같은 나라, 같은 이웃끼리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폭의 고통을 겪었지만, 광주의 아픔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광주와 합천이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광주도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고, 우리도 전쟁과 핵폭력의 피해자입니다. 피해자의 마음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회장은 지금도 장애를 안고 누워 있는 아들을 돌보고 있다. 원폭은 부모 세대의 기억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부모는 침묵했고,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평생을 아팠습니다. 이제는 이 이야기를 남겨야 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또 사라질 테니까요.”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6) 세계 33개국 중 첫 사례… 합천서 국제연대 다짐 [%=사진10%] 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간담회. “No More Hiroshima! No More Nagasaki! No Nukes! Peace! Remember Hapcheon!”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간담회 참석자들. 원폭 피해자 2·3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결의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과되면 전 세계 33개 피폭국 가운데 2·3세까지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간담회에서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이 이 같은 상황을 전했다. ‘세계피폭자와 연대를 위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카자흐스탄과 미국, 일본의 피폭 당사자와 국내외 대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국내 원폭 피해자는 10만 1981명이 등록돼 있고, 이 중 70%가 합천 출신이다. 이미 5만 7237명이 사망했고, 현재 생존자는 1480여 명에 그친다. 2016년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법이 제정되고 2011년부터 2025년까지 7개 광역지자체가 피폭 1~3세를 대상으로 한 조례를 만들었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법적 피해자 인정은 1세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 원장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 결과가 다른 32개 피폭국에도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 피해자 2세 마이라 아베노바(교사), 미국 뉴멕시코주 아코마 푸에블로 원주민 원로 페투츠 길버트,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당사자 이치요, 요시자키 사치에 등이 참석해 각국의 피폭 경험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뉴멕시코, 옛 소련의 카자흐스탄, 중국의 신장위구르, 영국의 호주, 프랑스의 알제리·폴리네시아 등 핵실험이 주로 옛 식민지나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이뤄져 왔다는 점을 짚으며, 피폭 문제를 개별 국가의 사안이 아닌 국제적 연대로 풀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사회를 맡은 이대수 목사(아시아평화시민넷 대표)는 국제 반핵운동이 거둔 성과를 소개했다. 1989년 옛 소련 해체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카자흐 핵실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고, 미국 네바다 핵실험 피해자들도 이에 호응해 이른바 ‘네바다-세미팔라틴스크 선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체결의 동력이 됐다며, 이를 “전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가장 큰 성공”으로 평가했다. 그는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이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정작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올해 핵무기 투하 81주년을 맞아 투하 100주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각국 시민사회가 정부에 조약 가입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담회 후반부에서는 한일 젊은 세대 사이의 긴장이 표면화됐다. 발단은 사회자 김경묵 와세다대 교수(문화학술원)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 와세다대·인제대·영남대 학생 60여 명이 참가했지만, 배운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학생은 5%도 안 될 것이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학생은 히로시마대 유학 경험을 언급하며, 현지 친구가 올린 피폭 관련 행사 게시물에 자신은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본에 미국이 원폭을 떨어뜨린 게 옳다고 생각하냐” “한국인이니 일본이 싫지 않냐” 같은 양자택일식 질문이 돌아올 수 있어, 복잡한 역사 문제를 섣불리 꺼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참석자들 사이에 감정이 오갔다. 한 와세다대 학생은 한국 참석자들의 일본 책임 추궁 발언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밝히며,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데 대한 거리감을 드러냈다. 재일교포 3세인 이치요 씨는 일본 내에서 식민 지배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왜 한국인인데 피폭자가 있느냐”고 순수하게 묻는 일본인 친구가 있을 정도라며, 젊은 일본인들이 역사를 더 공부해야 한다고 짚었다. 동시에 그는 나가사키 피폭 1세 요시자키 사치에 씨가 추도사에서 자신이 직접 책임질 부분이 아님에도 사죄의 뜻을 밝혔던 것을 언급하며, 그 말이 있었기에 참석자들이 마음을 열고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김경묵 교수는 “한일 젊은이들이 서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 어떤 화해를 하겠느냐”며 이번 마찰이 오히려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전남대 철학과 학생 유태현 씨는 불쾌함을 표한 와세다대 학생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함께 전하며, 언어와 입장이 달라도 이를 이겨내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학년인 다른 와세다대 학생은 자신도 일본의 가해자성에 대해 배우고 있으며 관련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그 부담을 항상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서로 다른 역사관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논쟁을 지켜본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학생은 와세다대 학생의 불편함이 “일본인인 너희가 더 알아야 한다”는 말로 서둘러 봉합됐다며,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질문으로 발전시키는 자리가 앞으로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남재 원장은 이번 대회의 과제로 원폭 2·3세의 법적 피해자 인정, 피폭자 심리 치유 지원, 국제연대 확대 세 가지를 꼽으며 “피해자들이 있는 한 우리 또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간담회는 “No More Hiroshima! No More Nagasaki! No Nukes! Peace! Remember Hapcheon!”이라는 구호로 마무리됐다. *** 나머지 기사도 읽어보십시오.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광주 피폭 1세 생존자 박윤규 어르신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52명 구술사로 본 3대 걸친 가난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원폭 2·3세 인정법, 찬성 단 3건뿐 *** 국제적인 핵 군비 경쟁이 다시 본격화되는 지금, 사회진보연대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단은 핵무기가 결국 민중을 겨냥한 무기이며, 그 피해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를 이어 지속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또한 핵무기 철폐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는 원폭 피해의 산 증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목소리를 내는 한편, 시민사회가 그 기억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피폭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있는 지금, 원폭 피해자 2·3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특별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폭 피해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이어받아, 합천에서부터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자.‘전두환 고향’ 낙인 벗고, 합천 ‘평화도시’ 거듭나
‘대물린 피폭’ 2·3세 법적 인정·특별법 개정 촉구
‘인권 도시’ 5·18 광주, 어떻게 연대할까? 과제오래된 비극 위 피어난 ‘평화의 이름’
독재 그늘 벗고 국경 넘은 연대의 장
“원폭 고통도 세습되나요?” 핏빛 외침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원폭2세환우회장
부모 피폭 숨김과 대물림된 병마 속 이중고
법적 피해 인정과 치료받을 권리 보장 촉구“어머니는 피폭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광주 처음 갔을 때, 너무 가슴 아파”
원폭 2·3세 인정법, 통과 임박
평화정착을 위해 국제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6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서명 직후 MOU 전문을 공개했다. MOU의 주요 내용은 ▲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 종료 ▲ 60일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면제 ▲ 상호합의에 따라 농축 우라늄 처리 합의 ▲ 60일간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 등이다. 이번 MOU는 약 1.5페이지 분량의 매우 개괄적인 문서로, 전쟁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기 위한 '임시 가이드라인'인 만큼 법적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향후 협상 과정에서 세부 내용이 변경되거나 추가될 수 있으며, 언제든 파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러 복잡한 쟁점을 60일이라는 기한을 두고 다루는 만큼,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60일 이내에 최종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란 전쟁이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에서 이번 이란 전쟁의 핵심 쟁점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란 핵물질 문제,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대리세력) 문제를 짚은 바 있다. 해당 글에서는 위 3가지 주요 쟁점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분쟁과 갈등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종전 양해각서의 핵심 쟁점을 들여다보고, 중동 지역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MOU 제1조는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작전 종료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합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국방군과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현재까지도 군사적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게 휴전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이란이 헤즈볼라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이란을 다시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헤즈볼라를 비롯한 이란의 대리세력과 이스라엘 간 군사 충돌이 지속되는 이유는, 이러한 분쟁이 국제법상 명확한 규율이 확립되지 않은 회색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UN 헌장 제51조는 국가가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형태의 무력사용(grave forms of the use of force)'에 해당하는 '무장공격(armed attack)'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가 무력사용을 넘어서는 무장공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무력사용의 주체가 비국가 무장조직인 경우에는 국가귀속 여부를 둘러싼 문제가 추가로 제기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판례를 통해 자위권은 원칙적으로 국가 간 관계에서 행사되는 권리라고 보아 왔다. 또한 ICJ는 1986년 니카라과 판결에서 후원 국가가 비국가 무장조직을 '실효적으로 통제(effective control)'한 경우에만 해당 무장조직의 행위를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한 자금·무기 지원이나 훈련 제공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으며, 후원 국가가 개별 군사작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통제했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해 실제로 요건을 충족시키기 매우 어렵다. 그 결과, 비국가 무장조직의 공격을 후원 국가의 무장공격으로 볼 수 있는지, 나아가 이를 근거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국제법상 회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란은 이러한 국제법의 회색지대를 활용해 대리세력을 지원해 왔다. 헤즈볼라를 비롯한 이란의 대리세력 역시 이러한 법적 공백을 이용해 이스라엘과 주변국을 대상으로 군사공격과 테러를 감행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대리세력의 행위가 이란에 귀속되지 않더라도, 무장조직이 있는 영토국이 해당 무장조직을 억제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레바논과 시리아 등에 대한 반복적인 군사작전을 정당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군사작전이 UN 헌장상 자위권 행사 요건과 국제인도법상 비례성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싸고 국제법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리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전선에서의 적대행위를 멈추는 것 외에도 무력충돌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자위권과 관련한 국제법의 공백을 메워 회색지대를 이용하는 행위에 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자위권 발동 요건인 무력사용과 무장공격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구별하고, 비국가 무장조직의 활동을 방지·예방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 이란 양자 간 협상이 아닌 국제사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다. MOU 제5조는 60일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면제하고 있다. 그러나 60일 이후 어떠한 형태의 비용 부과가 허용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제5조에는 "이란은 오만과 대화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미래 행정 및 해상 서비스 체계를 정의할 것"이라는 대목도 있다. 따라서 제5조를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를 사실상 허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어떠한 통행료도 받지 않고 있다고 통보했으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협상은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월 26일 종전 협상단 대표인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은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권은 자신들의 조치가 국제법상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즉 해협 통과 자체에 대한 통행료가 아니라 선박에 제공하는 보안·항행안전·환경관리 서비스의 대가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이란은 튀르키예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수수료를 징수하는 사례를 제시한다. 튀르키예는 1936년 몽트뢰 협약에 따라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상대로 등대·구난구조·의료검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톤당 4.42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즉, 이란은 해협 통과에 대한 통행료와 항행 서비스 제공에 대한 수수료는 국제법적으로 구별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정부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 우선 1936년 몽트뢰 협약은 국제법상 일반조약이 아닌 특별조약으로, 보편적 기준이 아닌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구체적이고 예외적인 조약이다. 당시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은 이탈리아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고자 튀르키예와 다자주의 조약인 몽트뢰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평시에 해협을 지나가는 모든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하되, 등대, 구난구조, 의료검역 등 항해 안전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제한적으로 부과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해협 통과 자체를 제한하거나 특정 국가 선박을 차별할 수 없으며, 현재까지도 이러한 원칙 아래 해협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영해로만 구성된 다르다넬스와 보스포루스 해협과 달리,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의 영해가 맞닿은 국제해협으로, 일반국제법인 유엔해양법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유엔해양법협약은 국제해협에서 모든 선박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한다. 연안국은 통과통항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이를 조건으로 통행료를 부과할 권한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란은 MOU 제5조를 근거로 오만과의 별도 협의를 통해 새로운 해협 관리 및 해상 서비스 체계를 마련해 서비스 수수료라는 형식으로 비용 부과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협의 없이 특정 서비스 이용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이를 근거로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통과통항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다. 이처럼 이란이 수수료 부과를 명목으로 사실상 통행료를 고집하는 배경에는 현행 유엔해양법협약에서 양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이 자리하고 있다. 현행 유엔해양법협약은 국제해협에서 통행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분명히 하지만, 연안국이 항행안전을 명목으로 우회적인 비용을 어디까지 정당한 대가로 부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연안국이 서비스 수수료를 명목으로 사실상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명확한 해석기준과 규범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국제해협에서도 이란과 같이 사실상의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이며, 이는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따라서 이는 미국과 이란의 협상으로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국제사회 차원에서 이란의 시도에 단호히 반대하고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MOU 제8조는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겠다고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제8조에 따르면 양국은 농축 물질 비축량의 처분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으며 최소한의 방법론으로 이란 영토 내에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독 하에 희석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IAEA 핵 사찰을 수용했다고 주장하며 사찰단이 적당한 시기에 이란 핵 시설 관련 현장에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핵 사찰 재개를 부인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이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에서 주장했듯이, 그간 이란은 여러 차례 IAEA의 사찰과 감독을 회피했다.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핵물질을 축적해 왔으며, 여러 미신고 시설에서 핵 활동을 벌여 왔다. 핵물질과 유관 시설만 늘린 것이 아니라 원심분리기 기술과 같은 기술 역량도 크게 향상시켰다. 2025년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관련 시설 상당수가 파괴되었지만, 관련 지적·인적 기반은 남아 있다. 따라서 종전 합의의 핵심 과제는 이란이 향후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국제사회 차원에서의 높은 수준의 사찰과 감독이 필요하다. 실효성 있는 핵 사찰과 감독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우선 이란이 IAEA 추가의정서를 정식으로 비준해야 한다. 이란은 과거 추가의정서에 서명(조인)했으나, 의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아 국제법적 구속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검증이 제한적이었다. 이란 핵 합의(JCPOA)는 이란이 2023년까지 비준 절차를 마치고 그 이전까지는 의정서에 준하는 사찰을 수용하도록 규정했으나, 2018년 미국의 일방적 탈퇴와 2021년 이란의 합의 위반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고 검증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했던 JCPOA를 넘어 국제법상 구속력이 확실한 IAEA 추가의정서를 비준해 핵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란은 이번 종전 협정에서 정말로 핵개발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미국은 반드시 이를 확약받아야 한다. 이란의 IAEA 추가의정서 비준을 통해 국제적으로 이란 핵 활동을 자세하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NPT 체제하에 IAEA 검증체계에 협조하지 않거나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경우, 국제사회가 일관되고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NPT 회원국인 이란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이처럼 종전 협상의 핵심 쟁점인 대리세력 문제,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통항권, 이란 핵 검증 체계는 모두 미국과 이란이 60일의 양자 협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종전 협상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최종 합의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채 임시방편에 그친다면, 이미 취약해진 국제질서는 더욱 흔들릴 것이며 그 부담은 국제사회 전체가 떠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종전 협상 결과 자체뿐 아니라, 이번 전쟁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주요 당사국들이 국제법과 국제규범의 공백 및 해석의 여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만큼, 국제사회는 이러한 공백을 보완하고 국제규범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사진1%]
대리세력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가 아닌 '수수료'는 부과될 수 있는 것인가?
이란 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제사회가 함께 숙고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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