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장의 후임 인사가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권 막바지의 대규모 낙하산 인사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알리오)에 따르면, 전체 공공기관 340곳 중 197곳(57.9%)에서 기관장이 교체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로 불리는 기관장 나눠 먹기 인사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 낙하산 인사
한국에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관직은 7천여 개가 넘는다. 고위공무원, 특정직 공무원부터 각종 정부 위원회의 상임, 비상임 위원, 심지어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주요 공기업, 준정부기관장에 대해서도 인사권을 직접 행사한다. 한국은행, KBS, 서울대병원, 산업은행 등 별도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관에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고위직이 상당히 많다.
한국 대통령의 인사 관행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의 공공기관 인사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민간인이 일하는 조직이다. 2020년 현재 공공기관은 340개에 이른다. 임직원은 41만 명에 이르며, 예산은 정부 예산의 1.5배에 달한다. 공공기관에는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비상임이사 등의 임원을 임명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이 인원이 4천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공공기관은 정부가 통제하지만, 형식적으로 민간기관이기 때문에 행정기관과 달리 임원에 민간인을 상당히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다. 공공기관운영법에 의해 지정된 공공기관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규모 등 문제로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의 공공법인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이 인정하는 기관, 혹은 사실상 정부(부처)가 개입하여 공공기관처럼 운영하는 곳도 상당수 있다. 이런 기관들은 더욱 제도적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정치 권력에 영향을 받는다. 낙하산 인사는 제도의 이러한 틈새를 집권세력이 이용하는 관행이다.
법·제도로 정해져 있는 공공기관의 임원 임명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공공기관 임원은 외부인사를 포함하여 기관별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주무기관의 장 혹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실제 제도가 운용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공공기관 임원은 대부분 정치적 영향에 따라 임명된다. 기관 내부의 인사가 내부 승진으로 임명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민간의 중립적인 전문가보다는 중앙부처 퇴직공무원이나, 관련 경력이나 전문성이 없는 정치인 출신이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체 공공기관의 약 1/3 정도가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다(참고로, 사회공공연구원은 지난 정부에 대해서는 약 40% 이상을 낙하산 인사로 분류하고 비판한 바 있다). 이 수치는 올해 이번 정권 마지막 인사를 통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의 파행적 경영
낙하산 인사는 당연히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을 저하한다. 전문성도 없으면서도 고위임원 자리를 선거 승리의 노획물로 가져가는 것이니 말이다. 심지어 낙하산 인사는 여당이 선거에서 지지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용도로도 이용되는데, 수천 명의 낙하산 인사들이 총대선, 지방선거 등 선거 시기만 되면 특정 후보의 캠프에 합류해 다른 자리를 노리기 때문이다. '문파', '대깨문' 등으로 불리는 이번 정권의 열정적 지지자 중 상당수는 이런 이들이다.
낙하산 인사는 정권의 무리한 정책을 공공기관에 떠맡기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이었다. 당시 사업예산 22조 원 중 8조 원이 수자원공사에 떠넘겨졌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벌이면서 광물자원공사를 비롯한 다수의 공공기관에 10조 원이 넘는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사업 행태가 가능하게 하려면 해당 공공기관의 장이 정권에 충성하는 인사가 되어야 한다.
이번 정권에서도 이전 정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국책 사업이 전개된다. 사업 내용만 조금 다를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판 뉴딜"이다. 공공기관은 40개 프로젝트로 ‘한국판 뉴딜’ 뒷받침한다. 야당 분석에 따르면 주요 공공기관이 5년간 180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정부 지원은 40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미 폭로되고 있듯 한국판 뉴딜의 핵심 중 하나인 에너지 사업에서 정권과 유착한 인사들의 특혜, 비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4대강 사업의 비극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의 천문학적 사기 행태에 다수의 공공기관이 이용된 사건 역시 시사적이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을 비롯해 농어촌공사, 남동발전, 마사회 등 다수의 공공기관이 천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았다. 이러한 투자는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윗선'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정권의 '낙하산'으로 경영진에 임명된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의혹이 있다.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실제 사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상호는 '노사모 미키루크'로 친문 인사로 유명하며 대선에서 현장조직을 담당했다). 자신이 감사로 있는 전문건설공제조합이 김 전 회장의 자산운용사 인수에 투자하도록 하고 대가를 받기도 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공공기관운영법이 규제하는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사실상 국토교통부가 운영에 개입하는 공공적 기관이다. 아무런 관련 경력이나 전문성도 없이 낙하산 인사를 통해 꿰찬 자리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가담한 것이다.
공공기관노조들의 암묵적 담합과 부작용
공공기관노조들은 지난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하지만 비판 속에 실리적 계산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성 없는 정치인 출신의 낙하산 인사는 기관장 자리를 한때 거쳐 가는 정치적 경력 정도로 생각한다. 노조는 신임 기관장이 정치적 부담에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겉으로는 낙하산 인사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속으로는 노조의 현안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집권 여당과 밀착한 힘 있는 정치인 출신의 기관장은 중앙 정부를 상대로 해당 기관의 현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 해당 기관의 노조에 암묵적으로 지지를 받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이런 보여주기식 낙하산 인사 반대 투쟁도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이번 정권의 낙하산 인사들이 노조에 적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였다. 노동운동 언저리를 경험한 인사들도 많아 낙하산 반대 투쟁이 벌어지기 전에 노조를 접촉하고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노조가 현안 해결을 제시하면 기관장은 이를 미리 약속하는 방식으로 낙하산 인사 이슈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담합이 노조에 행복할 결말로 이어졌을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단적으로 낙하산 인사들은 자신이 실현할 수 없는 사항을 약속하는 사례가 많았다. 노조가 경영진의 부도수표를 받았다가 사달이 나는 것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수차례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철도공사와 코레일네트웍스 등 자회사 노사관계가 그런 사례다. 지난해 노조의 투쟁은 모두 4조2교대 도입, 시중노임단가를 반영한 인건비 정상화 등 전임 사장들이 한 노조와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노조로서는 당연한 요구이지만, 낙하산 사장들은 당장 눈앞에 노사관계 갈등을 회피할 목적으로 합의했을 뿐이라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철도공사는 전대협2기 의장을 지냈던 오영식 전 의원이, 코레일네트웍스는 정세균 총리의 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인 강귀섭 씨가 사장이었다. 이들은 각각 강릉선 KTX 탈선사고와 비리 문제로 사퇴하였다.
한국판 엽관제, 공공기관노조가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낙하산 인사를 규제하기 위한 제도개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과 함께 낙하산 방지를 위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압도적인 의석을 갖은 이후에는 낙하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은 더는 추진되고 있지 않다. 민주당 출신이거나 민주당에 가까운 시민운동 출신들을 낙하산으로 임명해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지난 정권에는 적극적으로 낙하산 중단을 촉구했던 민변 출신조차 여러 기관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가는 상황이다.
대통령제에서 주요 공공기관장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에서도 보장되는 것이긴 하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필요성을 넘어서 인사권을 남용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었다. 물론, ‘내로남불’의 세계관을 가진 민주당은 낙하산 인사에서도 이전 정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낙하산 인사로 불리는 대통령 지지자에 대한 관직 나눠주기는 엽관제(猟官制, spoils system)로 불린다. 선거에 이긴 집권세력이 관직을 일종의 노획물로 나눠 가지는 관행이다. 18~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군주가 아니라 선출된 대표자가 관직을 통제한다는 의미로 한때 긍정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능력에 따른 관직 채용이 발전한 20세기 이후에는 엽관제 관행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자제된다. 관직을 선거 승리의 노획물로 무분별하게 나눠 먹는 것은 후진국의 대표적 부패 행태이다.
공공기관 임원 자리는 공공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떡고물을 나눠 먹기 위한 수단이 됐다. 공공기관 노조는 이런 지대추구에 함께 하는 담합에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상황에서 만약 노조마저 이들의 지대추구 동맹에 합류한다면, 공공기관 노조가 자신의 기관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공공성을 훼손하는데 일조하는 선택이 된다. 노조는 민주당 정권의 "내로남불" 행태를 비판하고 이들과 단절해야 한다. 공공기관노조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실용적 투쟁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선도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기관노조를 대표하는 공공운수노조 새 집행부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