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말7초 총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기간 정부에 지속적으로 면세유 지급을 요구해 왔음. 전근대적 지입제가 일반화된 화물운송시장에서 유류세는 전적으로 실제 화물운송을 책임지는 화물노동자(지입차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 노동자운동연구소가 펴낸 보고서는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 ▷ `12년 1분기 경유가격은 `10년 1분기에 비해 2년 만에 26% 상승. ▷ 컨테이너 화물운송업 7개 상장사의 `12년 1분기 영업이익은 `10년 1분기에 비해 57% 증가. 반면, 화물노동자(지입차주) 순수입은 `12년 1분기 `10년 1분기에 비해 11% 감소. ▷ 화물노동자 순수입이 감소한 이유는 기름 값 폭등에도 운임이 오히려 2.5% 감소했기 때문. 반대로 대기업 화물운송업체의 이익이 급등한 것은 화물운송업체가 화주로부터 받는 운임은 올랐음에도 지입차주에 지불하는 운임은 감소했기 때문. ○ 보고서는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 유류세 역시 일방적으로 화물노동자에게만 부과되어 화물노동자들의 생활고를 더욱 부추기고 있으며, 화물노동자 전체가 화물운송업체들이 지불하는 법인세보다도 6배가 많은 액수라고 분석. ▷ 화물노동자의 기름 관련 세금은 순수입 대비 58%에 달함. ▷ 화물노동자 전체가 지불하는 유류세는 연 2조4천억 원. 유가보조금을 공제해도 연 9천억 원에 달함. 반면 운송업체가 지불하는 법인세는 1천5백억원 규모. ○ 보고서는 결론으로 현재 운임 구조를 실제 화물운송을 하고 있는 화물노동자의 최소 수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제도 개선 이전까지 화물노동자에게 면세유를 지급할 것을 주장. 그리고 면세유 지급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화물운송업체와 정유사에 특별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요구. ▷ 정부가 `08년 약속한 표준운임제도(지입차주 최저수입보장제도)를 즉각 실시. ▷ 9천억 원의 세수 감소는 정유사 실효세율을 40%, 운송업체 실효세율을 30%로 조정해 해결 가능.
총선 이후 상황의 변화 민주노총은 2012년 정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10대 요구 쟁취를 위한 정치총파업을 공식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경로로 총선을 설정하였다. 즉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거 지원활동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야권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점하게 되면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행한 역할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제반의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강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구상에서 총파업의 위상은 의회 내 입법을 강제하는 압박성 정치파업이었다. 그런데 소위 ‘1-10-100’(한번에 10개 법안을 100일안에 입법)이라고 불렸던 이 계획은 여러 가지 무리수와 변수를 낳았다. 첫째,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이다. 이는 작년 말에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 국민참여당이 합당할 때부터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민주노총 내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은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를 건설하여 체계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즉 3자 통합이 국민참여당이라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므로 통합된 당을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고 민주노총은 당연히 이 당에 대한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선언운동본부에는 사회진보연대를 포함하여 민주노총 내 대부분의 좌파세력들이 참여하였고 이후에 임시대의원대회 소집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둘째, 민주노총 집행부 스스로의 무리수이다. 3자 통합당인 통합진보당에 대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고 외부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조직하지 않았다. 총선방침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비례대표 투표방침에 대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성원부족으로 논의하지 못하게 되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표결로 통합진보당 투표방침을 관철시켰다. 그것도 조합원 의사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전화여론조사를 하고 그에 응답한 2만 4천여 명 가운데 1만 9천여 명이 통합진보당 지지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례투표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총 내의 분열이 없도록 단결을 실현하는 것이 최대의 정치방침이라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공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셋째, 야권연대 중심의 총선운동과 총선패배라는 결과이다. 애초 야권연대는 반MB를 최대의 전략으로 설정한 바, 그 외의 담론은 묻혀버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박근혜는 MB와 거리를 두면서 반MB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고 민주당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으며 이에 편승한 통합진보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 이전에는 야권연대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비전보다 반MB, 민간인사찰 등의 이슈만 앞세운 야권연대는 별다른 쟁점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선거운동에 매달리며 중앙과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운동을 한 것은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과반을 차지하리라 여겼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권연대에 올인했던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총 내 세력들은 충격에 빠졌다. 넷째, 총선패배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내부 선거부정과 그로 인한 진보진영에 대한 총체적 비난이다. 이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공공연히 행해지던 일들이 국민참여당계의 폭로와 미디어의 확대재생산으로 일파만파 퍼졌고, 그에 따른 통합진보당 내의 내분과 폭력사태는 한 달이 넘도록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압도하였으며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을 고조시켰다. 그 와중에 이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로도 이어져 각 세력 간에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가중시켰다. 결국 총선을 전후한 이러한 상황은 민주노총 내의 단결을 약화시켰고 투쟁동력이라든지 조합원의 신뢰마저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변화된 상황은 원래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권이 총선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승리를 전제로 한 1-10-100 계획은 현실성과 추진력을 잃었기 때문에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10개 법안 쟁취 요구를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재개정’이라는 3대 요구로 변경하였다. 소위 ‘묻지마 야권연대’라는 잘못된 전략, 이를 조직 내에서 관철하기 위한 무리한 과정, 야권연대 승리 및 정치적 압박용을 전제로 한 총파업의 상 등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전략적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 하지만 민주노총 집행부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노총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야권에 기댄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단결을 확대하는 전 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살펴보자. 국내 전체 가계부채는 1000조에 달하고,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매월 적자 상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시급 5757원(월급 약 12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는 468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저임금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매월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가 가져가는 소득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도 59.2%로 낮아졌고 이는 OECD 평균 70%에 턱없이 모자란다. 전체 노동자 1천764만7천명의 25.7%(454만1천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소규모 사업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쉬거나 365일 휴무 없이 운영되는 곳이 태반이다.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업체가 63만4천개(28.3%)에 이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2012년 3월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47.8%(833만 명)이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49.7%에 그치고 있다. 총파업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악한 생존권 말살 상황에 노동자들이 놓여 있다. 화물연대의 경우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기름값의 폭등도 원인이지만 정부가 스스로 약속한 표준운임제도 실시하지 않는 등 노동배제노동탄압민중생존 외면 정책이 주된 원인이다. 건설노조에서 총파업 투쟁에 나선 이유도 고질적인 임금체불로 인해 건설일용노동자, 건설기계노동자 등의 체불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4대강 공사 등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 공사들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은 2011년에 1660억 원에 달한다. 처음으로 교육감을 대상으로 임단협 투쟁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기본급이 똑같은 현실”에 15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놓여있다는 기막힌 상황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 구로디지털단지 전략조직화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에서는 구로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노동 이제그만’ 집중 캠페인을 벌였는데, 유인물을 뿌리기가 무섭게 받아가는가 하면 노동자들에게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태와 노동상태가 노동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를 활용한 민주노조 탄압은 자본측이 공공연히 휘두르는 무기가 되었다. 각 지역의 여러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대학청소비정규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측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공작을 하여 어용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탄압하여 노조에서 탈퇴시켜 어용노조에 가입시킨다. 이렇게 어용노조를 다수노조로 만든 후 민주노조의 교섭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단결하고 연대하여 이러한 탄압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연말 대선을 고려했을 때에도 그러하다. 총선에서 실패한 무조건적 야권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의 정확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 요구로써 노동자 대중을 조직해나가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한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와 힘을 키우는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총파업, 어떻게? 민주노총은 현재 8월 말 정치총파업을 상정하고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 재개정’을 주요 요구로 하고 있다. 8월 총파업의 의의로 민주노총은 노동중심 진보의제와 담론의 주도적 확산, 하반기 이후 주요 의제에 대한 공세적 전선형성을 위한 전환점 마련, 민주노총 발전전망과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추동력 확보의 계기를 들고 있고, 입법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권-양노총 입법 논의기구로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야당-양노총 공동대책위원회(가)’(노동법공대위)를 제안하고 있다. 이 틀에서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 노조법 등에 관한 연속 국회토론회를 열어 이슈화를 꾀하고, 한축으로는 비정규직 철폐 1천만 서명운동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총파업의 목표로는 주요법안 관철, 사내하도급법 등 개악법안 저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력 복원과 사회정치적 위상제고 등이 제시되고 있고 파업의 상은 독자적인 정치파업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파업에 이어 6월 28일 경고파업 집회, 7월 금속노조 시기집중파업으로 8월 총파업까지 투쟁의 기세와 동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이전의 1-10-100에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세력에 대한 압박과 협조를 바탕에 깔고 있고 입법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야권은 총선패배로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정치일정상 하반기에는 급격하게 대선 중심으로 국회가 굴러갈 수밖에 없으므로 입법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론 국회에서 입법이 안되면 대선 공약화를 목표로 하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금 대선에서 야권연대에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민주통합당 쪽에서도 법안 발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대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통합진보당의 내홍으로 민주노총이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대선에서 야권연대 문제는 또다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욱이 총선과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치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싸늘할 대로 싸늘해진 상황이기에 야권연대 혹은 야권을 매개로 한 전술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야권을 고리로 한 입법 압박 중심의 파업이 아니라 다른 상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이 처한 내외부의 조건을 고려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과 연대, 민주노조운동의 총력투쟁전선 구축,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및 노동법개정에 대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 확산 등의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이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과 사기를 고양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북본부에서 이전에 지역차원의 파업투쟁을 성사시키고 가장 큰 성과로 꼽은 것이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간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합원들의 신뢰와 지역 연대투쟁을 복구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파업투쟁 조직화의 문제가 있다. 산별임단투 동력에 기대지 않는 정치파업이므로 이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가 핵심인데 이것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8월 28일부터 파업에 돌입해서 29일에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31일에 10만 상경투쟁을 한다는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조합원을 교육하고 조직해야 하는 간부들도 이런 흐름보다는 대규모 집회투쟁을 한 번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파업사업장들의 시기를 맞추고 최대한 31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해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넘어서려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핵심의제에 관해 이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을 묶어 세워서 연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정리해고로 인한 희생자 문제 해결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투쟁이 중심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화 문제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수많은 사업장에서 복수노조로 인한 민주노조 탄압, 노조 불인정,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쟁들이 현안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 조직화 과정에 있어서 주요한 요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총파업의 요구가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오를 점점 불려나가는 방식으로 파업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총파업 요구가 투쟁현안과 결합되어 생생히 선동되고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대파업의 필요성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선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민주노총이 투쟁전선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화물-건설 파업을 비롯한 산하 많은 노조의 투쟁을 헌신적으로 지지 엄호하고 연대를 조직해서 투쟁의 기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북, 대구, 충북 등 지역본부들에서 지역차원의 총파업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현장선전전, 간부활동가 교육, 간담회, 지역거점 농성 등을 전개하는 노력들도 널리 알려지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 재건과 혁신의 길로 이명박 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4년의 이명박 정권 임기 동안, 민주노총은 총노동전선 구축보다는 야권연대와 선거정치에 더 힘을 쏟아 왔다. 내용은 오른쪽으로 더 이동하고 투쟁은 약화되었다. 내부의 세력 간 분열도 더 커졌다. 그 와중에 정권과 자본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고 무너진 현장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민주노조운동을 재건하고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안고 있다. 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그러한 결의를 모아내는 과정이자 실천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들썩이게 하자. 서로가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서 상승시키도록 하자.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강화가 동반되지 않는 정당정치로의 집중은 이미 실패한 미래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는 비단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반의 도덕적, 운동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통합진보당의 출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의 폭력을 수반한 첨예한 갈등은 두 개의 커다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등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대대적인 이념, 색깔공세를 야기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에게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혹은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의 절박함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후자는 논의와 모색의 수준을 여전히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한편 민주노총 중집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 철회’ 입장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총 주류세력 세력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다수 세력들은 혁신비대위, 즉 비당권파들의 혁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그렇다면 우리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이번 사태를 정치이념을 둘러싼 당내 분쟁의 문제로 규정한다. 부정선거와 같은 도덕적 문제는 당권경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주파(즉 당권파)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비당권파 세력 간의 당권 경쟁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자주파를 제거하기 위한 유시민, 심상정 류의 공작설로 이어진다. 둘째는 비당권파들의 시각으로,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비당권파가 당권파를 제어하고 통진당을 혁신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바라본다. 셋째는 통합진보당 사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실패를 상징한다는 시각으로, 그 동안 노동자를 돈 내고 표 찍는 동원대상으로 취급해온 정치적 대리주의, 국회의원 당선에만 목매는 선거주의/의회주의 등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누적된 문제가 무리한 자기 정파의 국회의원 확보 경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판단한다. 첫 번째 당권파의 주장은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당권파는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무원칙한 통합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세력이다. 당권파는 국참당과의 통합을 위해 자신의 이념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수정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을 저버렸고, 국참당과의 통합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세력이 크기 때문에 국참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원칙 있는 운동집단인양 공작설을 제기하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당권파는 지배세력과 제도정당정치 시스템을 얕잡아 보고 운동의 가치와 원칙을 가볍게 여겨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입장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에 반대하여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국참당과의 통합안을 일차 부결시켰다가 이후 통합에 찬성했거나, 통합 이후 현실론을 내세워 통진당을 지지한 세력들(비당권파를 포함해 민주노총의 상층부의 다수 세력)의 태도이다. 비당권파들은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국참당 세력과의 공조를 통해 통진당의 이념과 내용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 ‘애국가’ 논란이나 통진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보고서의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철수 입장 재정립, 재벌해체론 재검토 등의 내용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통진당을 더욱 탈운동화, 자유주의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 번째 입장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장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향후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향과 경로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 상당한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최종적 파산 선고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 21의 결성과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후보 출마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자. 일단 민주노동당의 출범 과정은, 한국사회의 구조를 변혁하겠다는 이념과 전략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민주노총의 1996-1997년 총파업 과정에서 제기된 노동자 국회의원의 필요성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을 의회주의 정당으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비판하는 일각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양당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정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초기 당직/공직 겸직 금지를 포함하여 당의 의회주의, 선거중심 정당화를 제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지역과 현장의 투쟁에서 각 지역 당 조직이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운동적 성격이 축소된 반면 의회주의적 노선은 강화되어 왔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 당선을 계기로 당의 선거주의, 의회주의 문제,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소위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 노선 갈등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되어 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채로 민주노총 상층과의 정치협상을 통한 지원 획득(세액공제, 득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당의 인력과 재정이 의정지원에 심하게 편중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경향을 강화해 왔다. 민주노동당은 소위 ‘좋았던 시절’에 신자유주의에 맞선 당의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히 하지 못하고, 대중운동의 활성화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운동 전략을 방기했던 것이다. 특히 2007년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의 경쟁구도로 인해 선거주의, 의회주의 경향이 더욱 확대되었고, 양당에 대한 노동현장의 비판적 여론 또한 확대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 평가 없이 2012년 총대선에서의 반MB 야권연대를 겨냥한 민주노총의 ‘진보대통합’ 계획은 양당의 갈등만 확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반MB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방조와 지원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통진당 출범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통진당 내부의 국회의원 자리와 당권을 둘러싼 과열경쟁, 부정선거 사태로 인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가 전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와 비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미 국참당과의 통합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향후 당권파-비당권파의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구조, 검찰경찰을 동원한 공안탄압, 조중동을 포함한 지배세력의 색깔공세 속에서 통진당은 국민의 눈높이라는 모호한 잣대로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더욱 자유주의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당권파는 비당권파가 통진당을 민주당화시킨다고 비판하지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말이 좋아 선거연합이지 온 국민의 지탄거리로 전락한 통진당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민주통합당과의 선거연합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민주노동당 활동과정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으로 그들을 지지, 묵인해온 것이 현재의 통진당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썩은 살은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개척해야 한다. 민주노총, 철저한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운동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가치와 원칙에서 벗어나 의회주의로 경도된 데에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크다. 민주노동당을 탄생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민주노총이 정치사업을 ‘국회의원 배출’과 ‘정당을 통한 입법사업’에만 국한하면서 조합원들을 돈 내고 표 찍는 수단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학습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노조다운 정치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대중적 투쟁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해지다 보니, 진보정당들도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벗어나 원내정당으로 변모해가는 데 있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 지지에 반대하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우경화된 집권전략으로 경도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지지, 지원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된 노선에 맞춰 반MB 야권연대를 제1의 총선방침으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야당의 하위파트너로 전락시킨 것이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정치방침’과 함께 별도의 안건으로 토론하기로 했던 ‘총선방침’ 건에 대해 토론하지 못했고, 김영훈 위원장은 대의원대회에서 위임하지 않은 ‘총선방침’ 건을 중집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 직후 개최된 중집에서 반대 입장을 가진 중집위원의 항의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조합원 ARS 여론조사를 통해 ‘비례대표 집중투표 정당’을 결정하는 것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게다가 당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상당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는 참여하지 않은 채, 통진당을 지지하는 ‘조사에 응하고 싶은 산별과 조합원’의 명단을 받아서, 그것도 약 22만 조합원 중 2만 3천여 명이 응답한 결과만으로 조직의 방침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사회동향연구소) 대표는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 방침을 결정하여 민주노조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조직 내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411 총선은 민주노총이 제1의 방침으로 삼았던 야권연대의 실패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제는 실종되었고, 전략지역인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는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의 선거구 협상으로 13석을 얻었지만, 곧바로 부정선거 논란과 당내 폭력사태 등으로 전국민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 운동을 평가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정치의식 수준에 대한 진단과 평가나, 이념적 수준에서든 조직적 수준에서든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현 주소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관계(혹은 민주노총의 헤게모니) 수준에서, 그리고 분당(혹은 분열)의 제약에 빠진 진보정당 운동과 법제도의 제약에 빠진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라는 수준에서 외형적인 진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노총은 ①새롭게 제기되는 대중정당 운동의 상에 걸맞도록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대안적 상에도 걸맞도록) 임금, 고용 문제는 기업단위 노조에 맡기고 ‘복지’의제를 중심으로 산별노조운동을 재편하며, ②(통합)진보정당에 대한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 당원 가입, 현장당원 활동체계 구축, 100억 조성, 지도체계 참여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①의 경우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노동자 계급 내에 분할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산별노조총연맹 차원에서 노조운동에 가장 중요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투쟁전략, 노동자의 주체형성 전략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의 경우에도 현재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린 진보정당 운동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전략 없이 조합원을 정당의 자원으로 동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 조합원을 정치의 주체,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적극적인 민주노조 운동의 재건을 위한 구상 없는 조합원 동원 방식은 지금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제2의 정치세력화 방침은 현 시기 정당운동의 목표를 ‘집권’(집권시대 노동운동)으로 상정하고, 당의 집권을 위해 산별노조 운동을 개조하자는 본말이 전도된 구상이다. 현재 진보정당의 우경화는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의 취약함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재건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마저 포기한 당 운동에 대한 의존을 더욱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와 폭력사태는 노동조합 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운동성을 상실한 사이비 진보정당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당권파에 대한 비난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하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철회가 선언되어야 한다. ‘조건부지지 철회’라는 모호한 기대를 접고, 그동안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당면한 총파업 전선 구축과 민주노총의 전면적 혁신에 착수해야 하며, ‘민주노조 답게’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다양한 모색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철회’ 입장이 보여주듯이 민주노총 집행부와 산별노조연맹 대표자 다수는 통합진보당의 혁신비대위가 중앙위 결정사항을 관철시키고 일정하게 당을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선거에서 구 당권파와 손잡은 강병기 후보가 당선되거나 혹은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제명되지 않고 일정한 세력을 과시하는 상황이 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신승철 전 사무총장, 정용건 민주노총 부위원장,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이 노동포럼을 결성하여 민주노총의 재편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구 당권파를 비판하면서 통합진보당 내부의 혁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통합진보당의 개조와 혁신 가능성에 회의적이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통합진보당의 출범에 반대하여 직간접적으로 ‘3자통합당 배타적지지 반대,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선언운동본부)에 결합했던 세력들의 경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과 박유기 전 금속노조 위원장이 제안하여 결성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제안자모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 그리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전태일 노동대학)이 노동자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주요 세력이다. ‘제안자모임’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바탕으로 작년 12월부터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노동운동 내 중앙파로 알려진 ‘공공현장’ 활동가들과 금속의 ‘현장노동자회’(현노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내부의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 진보신당 일부 당원을 포함하여 200여 명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제안자모임’은 진보신당 내 일부 그룹,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 연구자 모임(진보교연)’ 등과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은 향후 노동자정당 건설과정에서 진보신당이 함께 해야 하지만, 진보신당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현장이 중심이 되고 진보신당은 이러한 흐름을 지지,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노위’는 그 동안 추진해온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 직접 조직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좌파 현장 활동가들의 주체적 당 건설 논의와 실천의 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결정했다. ‘사노위’는 통진당 우경화 이후 좌파 현장 활동가들이 당 건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당노선과 세력범위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사회주의 정당 노선만이 아니라 반통진당 좌파통합정당 입장의 활동가들까지 참가하는 공동의 토론장이 형성되고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노위’의 현장 재조직화 사업은 ‘노동전선’의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지역산별 활동가 정치토론 계획과 결합하여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전선’은 당의 노선과 관련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지역과 산업 별 현장정치토론을 진행하고, 이후 9-10월 활동가대회를 개최하여 변혁적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모임을 결의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전선’은 가능한 많은 세력이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노선을 뒤로 하고 세력을 합치자는 식의 ‘좌파통합정당론’을 경계하며 미래지향적이고, 노선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은 지난 해 부터 “3자 야합당”(통합진보당) 건설에 반대하면서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조해왔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토론 등을 강화해왔다. 지난 6월 1일 1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사태와 노동자 정치운동의 진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태일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는 발제문을 통해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목표로 변혁적 대중정당’(지향하는 이념은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현 단계 변혁의 과제는 낮은 수준의 반제/반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으로!), ‘민중투쟁 전선체와 함께 투쟁하는 정당, 사회운동적 정당’, 당 건설 경로로서 ‘진보정치세력들의 통합과 외연확대(이른바 재구성)가 아니라 진보정치운동의 급진화’, 산업별/지역별로 현장으로부터 주체형성을 통한 ‘정치적 투쟁정당’ 건설 등을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위의 주요 세력들의 행보와 더불어 정파를 뛰어넘는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 흐름과 각 세력 간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행 기아자동차노조 전 수석부위원장과 김일섭 대우자동차노조 전 위원장, ‘변혁산별’ 및 금속 비정규투쟁본부 활동가 등 금속노조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변혁정치모임)이 제안되어 5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모임을 개최했다. ‘변혁정치모임’은 무너진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현장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초기 금속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가를 제안했으나, 다른 산별까지 참가자를 확대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에는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와 같이 민주노총의 범좌파 세력 현장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변혁정치모임은 지역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활동가들이 현장실천과 정치세력화 운동을 새롭게 모색하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만큼 현장활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과 정당건설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어, 이후 모임의 전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원심력이 작동할 우려도 큰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위 노동자정당 건설 세력들과 변혁정치모임에 참여하는 개별 인사들 간에 상호 협력을 위한 집담회가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담회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각 세력들의 공동행보, 즉 공동의 기구 건설 등이 제안되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각 조직의 논의수준, 정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안자모임’의 경우 통진당 사태 이후의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의 기구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나, ‘노동전선’의 경우, 당 건설 관련 내부 조직화 미비와 상층 중심의 조직건설에 대한 비판적 입장, 당 노선에 대한 입장 확인의 필요성 등을 근거로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태일 노동대학’의 경우도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하여 ‘변혁정치모임’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당 건설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담회는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틀인 ‘변혁정치모임’을 통한 현장 논의 활성화와 이후 공조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주제를 잡고 공동의 토론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른 한편 진보신당 창준위의 경우 전국위원회를 통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창당 법적 시한인 10월 전 창당을 목표로 하며, 여건이 충분치 않을 경우 형식적인 독자 재창당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관련하여 당 내 일각에서는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9월 말로 시한을 정해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그 동안의 진보신당 활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부재한 것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정당 추진 흐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보신당이 일관된 의지를 갖고 지지, 지원해야 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어디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번 통진당의 부정선거, 당내 폭력사태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그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해 조만간 불어닥칠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정권과 자본의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변혁적인 정치세력 결집도 필요하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의 주요 정파들이 대부분이 통진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당 건설을 추진하는 세력들 간의 역사적인 상호 불신, 당의 성격과 노선, 추진 경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뚜렷한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 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는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대리주의, 의회주의와 선거주의에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답게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현장 활동(학습과 투쟁, 정치적 실천)을 소홀히 하고, 노조를 진보정당운동의 동원부대로 전락시킨 것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민주노총이 투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굳건히 하지 않을 때, 진보정당은 노조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당의 우경적 노선전환과 원내 정당화 경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이념적, 조직적으로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는 분별 정립하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투쟁력과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노동자정당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하고, ‘계급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 평등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노동조합운동’과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계급동맹의 실현을 위한 전선운동’을 포함하는 운동 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중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강화시키는 계획 없이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으로부터 출발해야 따라서 현재와 같은 노동운동 주요 정파의 정당 건설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민주노조 혁신/재건을 위한 활동의 상대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상반기부터 진행된 ‘3자 통합당 반대 선언운동본부’ 활동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당 건설에 대한 선언운동본부 내부에 이견이 부각되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전국지역 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공동활동,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각 정파의 주요 관심사가 모두 당 건설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현재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어느 정파도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공동실천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건설 논의가 중심이 되면서 구체적인 현장, 지역의 공동실천 논의는 상대화되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가 당 건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당의 성격과 노선, 건설경로 등에 대한 이견으로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공동 논의와 실천조차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통진당 사태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의 진보정당, 노동자정당 운동에 대한 실망과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견지하는 노동자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의 교훈이 말해주듯이 민주노조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노동자정당 건설 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지역, 현장의 운동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노동자정당 건설을 중심으로 역량을 배치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역량은 그 만큼 취약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건설이 민주노총의 활동을 강화시키지 못했듯이 노동자정당 건설이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 세력들이 현재의 지역과 현장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당 건설로 역량을 집중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의 활동력을 더욱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에서의 지속적인 패배,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혁신의 지체,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 복수노조/타임오프를 필두로 한 제도적 개악과 노조 탄압 공세 속에서 현장은 패배주의와 실리주의가 확대되어 왔다.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1기 권영길권영목 집행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 이후 2기(이갑용고영주 집행부, 2기 보궐 단병호이수호 집행부), 3기(단병호이홍우 집행부)를 제외하면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코포러티즘) 노선이 집행부를 주도해왔다. 이들의 노선은 ‘진보정당을 통한 의회진출과 제도화’, ‘산별노조를 통한 교섭의 제도화’, ‘사회적 교섭과 노사협조주의’라는 전략으로 표현되었고, 현장의 투쟁력과 역동성을 조직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섭 틀’의 구성과 선거에서의 득표에만 집착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파 혹은 범좌파 세력들 또한 민주노총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일관된 정치적 실천과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해온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특히 최근 민주노총 다수 정파인 전국회의의 ‘집권시대 노동운동’ 노선은 노동조합을 통합진보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수단으로 사고하며, 2012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집권을 위한 동원부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향후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지지를 둘러싼 갈등, 민주노총 내 정파별 조직화 경쟁, 산별노조의 무기력으로 인한 조직이탈 흐름(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국민연금지부를 포함한 6개 노조의 통합추진위 결성), 민주노총 직선제 과정에서 예상되는 선거부정 사태 등으로 인해 내부적 갈등의 격화와 정권/자본의 외부적 탄압이 겹쳐져 급격하게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위기국면을 대비하면서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전국회의와 같은 우경화된 노선에 비판적인 민주적변혁적 세력들이 전국적-지역적 차원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활동과 공동논의, 나아가 전국적인 활동가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 조직 따라서 노동운동 내부의 변혁적 현장실천과 변혁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조의 혁신과 재건을 중심적인 논의과제로 하여 지역과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을 확대해야 하며,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은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지역과 현장의 공동 실천을 기본으로 하면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의 전략 논의 ▲2012년말 민주노총 선거(직선제 예정) 공동대응 ▲2012년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중심으로 공동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재건을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 노선, 활동방향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요 과제에 관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적 진단과 사회변혁을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 총노동전선 구축을 위한 민주노총-산별노조연맹 투쟁의 혁신, 생존권 보장과 사회변혁을 위한 제도적 요구와 그 실현을 위한 투쟁 전략,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새로운 전략, 현장 활동과 투쟁력 강화를 위한 민주노조 조직혁신 방안, 노조 민주주의의 강화와 투쟁기풍/조직문화의 혁신, 자주적인 재정확보와 재정 배분의 혁신방안,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평가와 새로운 전략,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조합원 교육/소모임 활동의 강화와 지역, 현장 일상 활동의 복원, 지역, 현장 활동 강화를 위한 활동가조직의 혁신과 소통, 연대의 강화 등. 둘째, 2012년 말 민주노총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가 부정선거 사태로 치달을 경우 민주노총의 심각한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직선제 실시 준비상태 등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며, 직선제가 실시될 경우 변화된 선거제도를 고려한 구체적인 선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를 어떤 세력이 운영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또 다시 진보정당운동(그것도 사이비 진보정당인 통진당)에 종속된 노조운동 노선, 사회적 합의주의-노사협조주의 노선이 민주노총의 집행부를 운영할 경우, 향후 경제위기 정세에서 민주노총은 더욱 무기력해질 것이다. 셋째, 2012년 12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통진당 지도부 선거 결과 및 향후 당권 경쟁의 결과 등 일부 변수가 있더라도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노선대로라면 대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노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을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통합당의 지지부대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대선방침은 최소한 이러한 민주노총의 무원칙한 반MB 야권연대 방침을 저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답게 민주노총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대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여론화하고 대선 후보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선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대선에서 독자후보 전술 등은 변혁적 정치세력들의 논의와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논의를 거쳐 가능성을 검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정당 건설은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논의와 공동실천, 전국적 활동가조직으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변혁적 정치세력 간의 논의의 성과를 교류하고, 주객관적인 역량을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당 건설 추진경로를 밟아야 한다. 변혁적인 노동자정당, 사회운동적인 노동자정당은 노선의 선명함과 주체들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민주노조 운동, 대중운동의 역량과 투쟁력이 취약한 조건에서 조급하게 노동자정당을 추진한다면 정당으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이 거의 없거나, 통진당처럼 자유주의화/우경화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하라 총선이 ‘야권연대’의 패배로 끝났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고통 받은 국민들 눈에 야권연대가 그다지 차별성이 없어 보인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새누리당마저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권연대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보장에 관해 차별성과 진정성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들이 앞다투어 야당들과 수십 개의 정책협약을 체결했지만 정작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는 핵심의제가 되지 못했다. 노동계의 요구를 빌린 정책과 공약은 난무했지만 정작 이러한 요구가 부각된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로 여소야대 정국 창출이 곧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논리가 득세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도시라 하는 울산과 창원에서도 노동자들은 야권연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공약과 실제의 차이를 느끼고 있고, 투쟁의 힘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어느 공약 하나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논평처럼 “더 많은 투표 참여”, “흔들림 없는 야권연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의 요구를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은 모두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은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각 정당의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각 정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입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1차 추진법안으로 발의했다. 같은 날 민주통합당도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비롯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여야 각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비중있게 내놓을 수밖에 없고, 19대 국회에서 우선 다루어야 할 법안으로 발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일하는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되는 것들이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은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을 지금보다 한층 더 확산시키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자신들이 한사코 반대했었던 기간제 사용사유제한을 포함한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기간제 고용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두 정당 모두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불법파견과 사용자책임 회피에 면죄부 현행법상 타인의 노무를 활용하는 계약형태는 도급과 파견 두 가지 밖에 없다. 원청이 수급인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해 지배력을 가지면 근로자파견이요 그렇지 않다면 민법상 도급이 되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면 원청이 그에 합당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고, 도급 관계라면 원칙적으로 원청은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내하도급법안은 파견도 도급도 아닌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지대를 설정하고,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경감시켜 주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사내하도급’은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및 「직업안정법」 위반의 불법적 간접고용이라는 사실이 십 수 년간 지적돼 왔다. 그동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제조업을 비롯한 청소경비업, 요식숙박업, 유통업, 정보통신업, 금융업, 공공서비스부문의 ‘용역계약’이 사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다. 이러한 법적 판단의 정점에 있는 것이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이다. 사내하도급법안은 이처럼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사내하도급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안: 간접고용은 허용하되 파견노동자는 보호한다? 김대중정권이 파견법을 제정했고, 노무현정권이 그 파견허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제조항을 직접고용 의무조항으로 사문화시켰다는 사실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민주통합당의 파견법 개정 공약은 사람장사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본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현재 ‘지침’으로 되어 있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파견법에 명시하고, 불법파견시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키자는 것이 민주통합당 공약의 골자이다. 문제는 2006년 파견법 개악으로 인해 ‘불법파견’으로 규제할 영역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상 세세분류로 197개의 직업에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2년마다 노동자를 교체할 경우 상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상의 허용업무 이외의 업무에 있어서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나 ‘일시적간헐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으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건설공사현장의 업무, 의료인의 업무 등 소수 금지업무를 제외하고는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잘 구분해내고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를 하겠다는 공약은 사실 그다지 쓰일 데가 없다. 비유하자면 형법상 범죄의 목록을 대폭 줄여 놓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다. 과거를 돌아보기: 2004~2006년 기간제법 제정파견법 개악 국면 2004년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90년대 말 이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 과정에서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입법 대안’으로서 교육선전의 차원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면의 전환은 2004년 9월 정부가 기간제단시간 고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시점에 일어났다. 2000년 이래 매년 예고되었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이 드디어 가시화되었고,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이하 전비연)는 즉시 열린우리당 항의점거농성을 조직하여 정부 법안의 본질을 고발하였다.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의 선도 투쟁에 화답하여 민주노총이 2004년 하반기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비정규직 권리입법요구는 중심 투쟁 요구가 되었다. 그런데 투쟁 국면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와 동시에 내부에 잠복되어 있던 쟁점들도 드러나게 되었다. 파견법 철폐는 여전히 민주노총의 공식적 입장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제기되지 않았다. 대신 현행 파견법 유지냐 개악이냐가 실제적인 공방의 지점이 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오르지도 못했다. 2005년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동요는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2005년 4월에 열린 노사정대표자교섭에서 양 노총이 수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동요는 본격화되었다.(표1 참고) 기간제 고용에서 사유제한원칙을 사실상 포기하고, 파견법 철폐가 아닌 현행 파견법 유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교섭석상에서 제안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비연은 민주노총 비정규실장과의 간담회에서 분명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러나 경총의 견해 번복 및 정부의 강경한 입장으로 말미암아 4월 교섭 자체가 파탄나면서 이 문제는 내부적으로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표 1] 2005. 4. 30 민주노총 비정규실과 간담회시 비정규실에서 제출한 노사정 교섭자료 해결되지 못한 쟁점은 2005년 11월 노사대표자교섭이 재개되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민주노총이 이른바 ‘4월 교섭내용’에 기초하여 교섭할 것을 주장하면서부터다. 4월 교섭당시 제기하였다가 교섭결렬로 사라졌다던 양 노총 수정안이 노동계의 공식요구로 재등장하였던 것이다. 전비연과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단위들이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민주노총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분명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11월 교섭이 파국에 이르고 한국노총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최종안을 발표하면서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원래의 권리입법요구가 민주노총의 입장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미 논의구도는 기울어졌고 이목희 의원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2005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논의가 진행되면서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 사용사유를 대폭 확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비정규직 주체들을 중심으로 수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2월 8일 법안심사소위 논의까지 거치면서 정부여당의 법안은 ‘몇 가지 쟁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통과되었다. 이어진 2006년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법사위 통과, 본회의 통과는 그 때마다 운동진영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했지만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2008년 개원한 18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은 파견법 폐지안 발의조차 하지 않았다. 2000년 이래 민주노총의 공식적 요구는 계속 ‘파견법 폐지간접고용 철폐’였으나 이는 한 번도 공세적으로 제기된 바 없다. “지금시기 파견법 철폐는 불가하다”는 노동운동 진영의 자기검열 속에 처음부터 ‘현행 파견법 유지’가 주장되었고, “지금 특수고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섭틀을 깨자는 것”이라는 주장 속에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는 교섭의 의제로 오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와 불법파견시 직접고용의제 문제에서조차도 양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양보안을 제출하였다. 이처럼 운동진영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던 권리입법요구에 대해 정부가 무시하고 사회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적극적 개입이나 공동의 투쟁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올해의 상황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임금과 해고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항상 노동자들의 저항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통해 일정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획득한 것이 ‘정규직’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와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법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들어 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이 활용한 것이 비정규직 고용형태이다. 비정규직은 단결하고 저항하기 어렵기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되고, 현행 노동법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무권리 상태를 묵인해 왔다. 1998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대중적으로 진행되면서,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 못지않게 전면에 떠올랐던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였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자행되는 계약해지폐업 등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1996~97 총파업 및 1999년 합법화로 일정한 제도적 발언력을 확보해가고 있었던 민주노총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도 노동조합 때문에 해고 또는 폐업을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큼 비동시대적 요구로 보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 인정’ 혹은 ‘노동기본권 보장’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의 문제는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자본의 전략의 핵심적 지점과 충돌하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된 데에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요구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을 통해 노동자의 내부 분할을 확대하고 단결을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이 깔려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집중되어 있는 공기업 및 대기업의 경우 조직노동자를 고립시키고 소수화시키려 했던 사용자의 태도가 비정규직 확산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화가 시작된 곳도 특수고용 부문을 제외하면, 이미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곳부터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기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소외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은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질 사용자(원청)에게 요구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실질 사용자는 이들의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법상 책임을 거의 완벽히 피해갈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포기하도록 갖은 탄압을 하고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면하고, 단체교섭 요구에도 ‘합법적으로’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업무방해죄손해배상 등으로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실질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 왔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승계 내지 직접고용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올해만 따져도 인천공항 세관 노동자들이,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이, 베스킨라빈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합의서를 통해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동법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병가라도 쓸 수 있었던 것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단체협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노조로 단결했기 때문이고,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운임제를 시범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연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공통적으로 비정규직 활용은 허용하면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단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떠한 차별해소책도 실효성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미 1989년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이 최악인 사회이다.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7%만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요구: “노동자에게 권리를! 사용자에게 책임을! 노조법 2조 개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와 간접고용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모두 다 필요하지만, 핵심은 이런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고 조직화와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들을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간접고용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핵심요구로 제기한다. 근로계약을 맺고 있건 아니건 실제 노동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 노동조합이 이들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기계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건설노조의 예를 들어 보자. 건설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안착시키는 것도,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해결하는 것도 오직 노조의 힘이다. 덤프 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지만 건설노조의 투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대료(임금) 지급을 원청 및 발주처가 보장하도록 하는 조례를 확산시키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런 투쟁을 바탕으로 조직을 굴삭기, 펌프카, 크롤라크레인 등 다른 건설기계직종으로 확대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륭분회,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인천공항 세관분회, 서울일반노조 한일병원분회 등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이 원청과의 교섭으로 요구를 쟁취했다.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역시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할 때 정부와 자본이 활용하는 무기는 이들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활동을 할 수도 없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며, 설사 단체협약이 체결되더라도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바지사장’을 제치고 실제 사용자인 원청을 상대로 투쟁할 때 이들은 역시 “원청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투쟁을 통해 이런 주장들을 격파해 왔는데, 이제는 입법화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할 시점이다. 이 두 가지의 요구는 노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자는 요구로 집약된다. 여야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올해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3권 보장과 산재보험 동등적용을 핵심요구로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홍익대, 전주대 등 용역노동자를 조직한 노조들이 투쟁 중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다시금 정규직화 투쟁을 준비 중이고, 조선업 하청노동자들도 임금삭감산재은폐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렇게 각각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을 지지엄호하면서 또한 결집시키기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요구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노총 소속의 특수고용간접고용 노조를 위시한 비정규직 노조단위가 결집하여,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조직해 가자.
가깝고도 먼 당신, 유통서비스 노동자 지난 6월 19일, 상암 월드컵경기장 옆 공터에서는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의 다섯 번째 생일이 열렸다. 지난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이랜드노조 파업 이후 5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처음으로 외박을 하며 동지애를 느끼고 노동자로서의 해방감을 느꼈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게 해방구를 만들어줬던 상암동 마트는 여전히 물건을 사러오는 손님들로 붐비고 있고, 여전히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는 2007년 투쟁 이후 유통서비스 부문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2007년 투쟁에서는 ‘비정규직법에 의한 해고’ 문제가 가장 시급했으므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어떤 고충을 가지고 노동하고 투쟁하고 있는지 부각되지는 않았고, 우리도 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는 지하철역 한 정거장 간격으로 대형할인마트가 있고, 터미널과 주요 철도역에는 백화점이 있으며, 길거리에서는 발에 차이는 돌맹이만큼 자주 편의점을 만나고, 집에 가서 TV만 틀면 한 채널 건너 홈쇼핑이 펼쳐진다. 이렇게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우리 주변 가까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그들을 잘 알지는 못한다. 우리가 투쟁을 통해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존재를 인식한지 5년이 지난 지금, 유통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후 활동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의 최근 쟁점 최근 유통서비스업의 쟁점은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이다. 유통서비스업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백화점’과 마트라고 불리는 ‘대형(소매)할인점’이다. 백화점의 가장 큰 문제는 장시간노동이며, 대형할인점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기간(基幹)노동력화이다. 하지만, 두 영역 모두 공통점으로 서비스노동이라는 점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쉴 권리 없이 일한다는 점에서 건강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진짜 웃을 수 있는 일터 만들기 ① 감정노동의 문제 살펴보기 6월 19일 홈플러스노조 월드컵 지부 출범 5주년 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는 “감정노동수당 쟁취하자”였다. 감정노동수당 월 10만원 쟁취가 올해 노조 임단협에서도 주요 요구로 다뤄지고 있는데, 물론 한계도 있지만 의미도 있다. 현재 감정노동수당은 서비스업계에서 비행기 승무원부터 시작하여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에게까지 보편화되어 있다. 비슷하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대형할인마트 직원들도 감정노동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노동이라는 직무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서비스직종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탈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의 주된 업무가 상품판매와 고객 상담이기 때문에 일의 성격상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유통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월별 판매 목표에 따른 실적부담 역시 감정노동을 가중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인다. 판매량에 대한 실적 이외에도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체크하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라 불리는 일상적 감시체계가 존재하므로 감정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일상의 감시는 노동자들의 피를 말린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또 그 감정노동을 평가받는다. 소위 고객평가단이라는 감시원들이 언제 어디서 평가하고 감시할지 몰라서 항상 긴장해야 한다. 게다가 이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 애매하다. 친절이라는 다소 주관적인 감정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고작 기준이 있는 것은 인사 여부 정도이다. 대형할인점의 경우 어느 매장이나 ‘맞이인사, 전송인사’가 기본 평가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인사 여부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주관적이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모든 매장의 CS평가(고객서비스 평가) 순위를 매겨놓는다. 순위가 하위권인 매장은 직원교육이 강화되거나 다소 엄격한 규율이 생긴다. 전국의 모든 매장뿐 아니라 각 파트별, 개별 직원별 고객평가 내용이 게시되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의 내용은 모두 고객평가단이라는 사람들에 의한 주관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유통서비스업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사업장내 성희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유통서비스업에서 성희롱은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고객으로부터 발생한다. 대부분이 언어적 성폭력인데, 현재 유통서비스업 대부분 이에 대한 조처가 거의 전무하다. 관련 법률을 재정비하거나 사용자의 적극적인 대응지침 마련이 필요하나 친절을 강조하는 사업장 분위기상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② 감정노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감정노동의 문제는 유통서비스 노동자라면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대부분 개별적인 방법에 머무른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음주와 흡연이다. 2010년 서비스여맹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노동자 삶의 질’ 조사에서도 여성응답자의 흡연율은 한국 여성 평균인 7.1% 보다 5배 높은 35.2%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개인적인 방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형할인점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수당 10만원’ 쟁취를 임단협 요구로 내건 것이다. 이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사회화시키는데 있어 분명 의미있는 활동이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실 하루 종일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때로는 ‘진상고객’을 상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는 단지 월 10만원의 수당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의 문제가 아니다. 간 쓸개 다 내놓고 인격을 내다파는 것 같은 노동에 시달리는 유통서비스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는 출발점으로서 감정노동 수당 10만원 쟁취는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지속적인 개선이다. 영업시간 제한을 둘러싼 쟁점 ① ‘영업시간 제한’은 노동자의 건강권(쉴 권리) 문제 최근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로 유통업계가 시끌벅적하다. 급기야는 일요일 의무휴업으로 매출이 줄었다며 소송을 낸 대형마트 측에 행정법원이 손을 들어준 일이 발생했다. 서울행정법원이 대형마트, SSM의 영업시간 제한을 규정한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미 유통서비스 시장을 독식한 재벌기업들의 집착으로 아마도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일요일 의무휴업이 시행된 배경에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있다. 유통산업 발전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노동자 건강권,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자체장이 대규모 점포에 대해 영업시간을 제한(오전 0시~오전 8시)하거나 의무휴업일(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을 지정해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입법발의 된 유통산업근로자보호와대규모점포등주변생활환경보호등에관한특별법에서는 대형유통매장은 공휴일과 일요일엔 휴업해야 하고 백화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만 영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은 대부분 중소영세상인,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전개가 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고 짚어봐야 할 문제는 유통노동자의 건강권의 문제다. 세계 최대의 장시간노동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엄청난 노동시간에 허덕이고 있다. 2010년 OECD국가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평균 1,749시간인데, 한국의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2,109시간 일하는 그리스와 함께 유일하게 2,000시간이 넘는 나라로 악명이 높았다. 유통서비스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② 유통서비스 노동자는 외계인?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싶은 유통노동자 유통서비스업에서 영업시간 제한은 크게 세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일요일 의무휴업 문제로 대두된 주말 영업시간 제한 문제와 둘째로는 연말 명절 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 셋째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한다면 ‘휴일노동,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 이라 명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일요일 의무휴업의 문제를 보자. 많은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의 축소다. 일요일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유통서비스 노동의 특성상 유통노동자로 일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가던 등산도 갈 수 없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종교 활동을 하기 힘들며, 여러 경조사가 대부분 주말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지인이나 친인척의 결혼식조차 참석하기 힘든 것이 유통노동자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축소된다.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놀 때 놀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기도 한다. 일례로 메이데이에 근무를 하지 않거나 선거일에 근무하지 않는 일반적인 노동자들과 달리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할 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 둘째로는 연말명절세일 기간 등 특정일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이다. 이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아주 고질적이다. 백화점의 경우 세일기간이 되면 이미 일상적이었던 장시간 노동이 더욱 늘어난다. 유통업체간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백화점과 할인점의 영업시간 연장이 거의 관행화되고 있어, 입점업체 판매사원들은 장시간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상적으로 백화점 화장품 판매사원들은 대부분 아침 8시30분에서 9시 사이에 출근하여, 저녁 8시 정도에 퇴근하지만, 백화점 세일기간이나 주말(금, 토, 일)은 영업시간 연장으로 인해 퇴근이 1시간 이상 연장된다. 게다가 근래에는 백화점의 주 1회 정기휴무마저 거의 사라지고 매장의 인력부족과 맞물려서 백화점 판매사원들은 자신의 휴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직의 75.7%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명절 바로 전날 늦은 밤까지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는데, 대부분 40-50대 기혼여성이 많아, 근무하고 바로 다음날 명절 가사노동까지 겹쳐 그야말로 2중의 고통 속에 놓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절 당일에도 휴업하지 않는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가 있어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세 번째는 평일의 야간 영업시간 문제이다. 이제는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한 때 24시간 영업이나 12시까지 영업하는 매장이 꽤 많았다. 이 심야노동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고, 또 야간까지 일하느라 차가 끊기게 되더라도 그 비용 역시 고스란히 노동자의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단결권마저 보장해주지 않는다. 퇴근 후의 회식이나 모임 등 노동자들의 단체 활동 등에도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이러한 문제점을 알리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연장영업반대’, 백화점의 경우 ‘주 1회 정기휴점제’로 그 요구안이 제출되고 있다. 유통서비스업의 시장구조와 노동자 현황 유통시장에서 감정노동의 문제나 영업시간 규제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통 산업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노동시장 역시 급속한 변화를 겪어왔다. 유통서비스 산업 역시 초민족 자본의 유입과 확장, 인수합병 등의 과정 속에서 고용 불안이 일반화되고 심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국내 유통서비스 산업에서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전개되었으며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유통산업 구조조정과 재벌 독식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확대된 한국의 유통시장은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세계 1-2위의 다국적 유통그룹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들어오면서부터 두 차례의 큰 변화를 맞는다. 첫 번째는 1998년 경제위기 전후 유통업체의 도산 등으로 인한 국내 유통업체 간 1차 재편이고, 두 번째는 2000년대 중반에 외국 업체들(월마트와 까르푸)이 철수한 이후 국내 업체들 간의 인수합병(M&A)이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은 재벌그룹이 장악한 지금의 형태로 재편된다. 국내 주요 유통업의 시장 점유율 현황을 보면, 백화점 Big 3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61%, 2003년 74%, 2005년 78%, 2007년 78%, 2009년 81%로 계속 증가하고 있고, 면세점 Big 2 (롯데, 신라 면세점)의 2012년 4월 현재 시장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대형할인마트 Big 3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시장점유율은 2001년 52%, 2003년 62%, 2005년 67%, 2007년 76%, 2009년 80%로 나타났다. 결국 현재 유통업의 대부분은 몇몇 소수 재벌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벌 대기업에서 골목 상권을 겨냥한 기업형 수퍼마켓(SSM) 형태의 확장과 창고형 할인매장(도매 할인점)까지 등장하여 유통서비스업의 재벌 독식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유통서비스 노동자 현황 ① 왜 여성노동자의 문제인가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유통서비스업에는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비정규직의 일자리다. 단순히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수가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여성화를 이루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고 있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소수의 관리자와 기간노동력화한 다수의 비정규직’ 패턴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이 다수의 비정규직이 여성노동자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형할인마트의 고용형태를 보면 계산과 판매판촉 부분에서 성별 직무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계산, 판매, 식품, 안내 및 고객서비스 등은 여성들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고, 유통업 정규직 남성은 매장관리나 구매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유통업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별반 차이가 없는 노동(8시간 근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불안정하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혼여성노동력의 급속한 유입으로 노동력이 남아도는 가운데, 기업은 굳이 높은 임금을 주지 않고,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일하려는 의사를 지닌 이 기혼여성들을 비정규직군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 할인점의 경우 대다수가 기혼 여성인데, 가사노동이나 육아와 병행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적합한 것처럼 포장된다. 이에 점점 유통 서비스업 자체가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구성되고 있다. 또한, 유통업이라는 산업적 성격은 특정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며 노동력의 대체가능성이 높은 직종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노동시장 밖에 머물도록 구조화된 기혼여성의 고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② 불안한 고용은 이제 그만!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대다수의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채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그들이 일하고 있는 해당 유통업체(백화점, 대형할인점)의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생산되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용역업체와 원청 간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백화점, 대형할인점에 가면 진열대에서 상품을 선전하고 홍보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보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상품 제조업체에서 판매를 위해 매장에 파견한 사원들로 유통업체의 직원들은 아니다. 백화점의 경우 직영매장, 수수료 매장, 임대 매장이라는 형태로 구분되어 근무하고 있고, 대형할인점의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를 판촉노동자라고 하는데 판촉노동자는 유통업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정규직 형태이다. 판촉노동자는 입점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유통회사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다. 상품 판매업무를 입점업체에 맡겨서 판매 관련 인건비를 입점업체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유통회사 판매직은 대부분 판촉노동자로 구성된다. 판촉노동자는 근무는 유통업체에서 하고, 임금은 상품제조업체에서 받기 때문에 소속업체와 사용업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파견노동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소속업체가 인력파견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고, 상품을 제조하거나 중개하는 업체라는 점에서 근로자파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논리상으로 파견노동자와 다르나 판촉노동자는 파견노동자가 겪는 이중의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다. 노동시간, 휴일 휴가 사용, 근로감독 등에 있어 대형 할인점의 영향력이 더 크지만, 소속은 상품제조업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외 근로 산정 같은 급여 문제나 승급, 투입매장 선정 같은 인사문제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관리한다. 이러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형 할인점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유통업은 산업구조변화와 노동유연화에 의해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업종 중 하나이다. 고용현황을 보면 정규직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계약직, 파트타임)과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및 촉탁 형태) 노동자들이 더 많다.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기존의 정규직 업무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유통업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계산, 판매판촉 업무를 기간제 및 파트타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유통업체에서도 파견업이 허용된 직종의 경우 대부분의 직무는 간접고용으로 전환되었다. 청소, 경비, 주차안내 등의 업무는 거의 간접고용이다. 최근 건강권(감정노동), 노동시간(영업시간규제) 문제를 중심으로 유통서비스노동의 문제점을 폭로해 왔다면 고용불안(간접고용화)에 대한 쟁점 또한 이후에 이슈화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아우르고 작업장 내에서 서로의 조건을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또한 남아 있는 문제이다. ③ 건강하게 일할 권리 ▶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앞서 언급한 ‘감정노동’의 문제와 ‘영업시간제한’의 문제 말고도 유통업에는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애초에 의자 놓기 캠페인이 나온 이유도 유통노동자의 건강권 때문이었다. 유통노동자는 제대로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하는데, 장시간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나 관절염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어서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다. 2008년부터 진행되어 온 의자놓기 캠페인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가 제공되는 비율은 30%로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 근무하면서 의자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회사의 압력 또는 눈치로 거의 의자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경우가 많아 여전히 풀어야할 문제로 남겨져 있다. 이에 대해 2011년 ‘서비스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한 캠페인단’은 대형 유통업체가 여성 노동자에게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의자를 제공하는지 감시하고 고발하는 ‘의자 감시단’을 발족하여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또한 서울시가 올해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통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들이 2시간이상 서서 일하지 않고,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 휴게 공간, 휴게 시간 부족 쉴 공간은 물론 쉴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통 점심시간 외에 하루에 한 번 30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는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이는 무척 짧은 시간이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쉬려고 작업하던 것 정리하고 휴게공간까지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피려고 하면 금방 30분이 가버린다. 고작 의자에 앉아 쉬는 시간은 5분 남짓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업장 휴게실은 왜 그리 멀리 있는지 잠깐 쉬고 다시 일하러 작업장에 돌아가려면 잠깐 쉬고 나올 수밖에 없다. 휴게 공간도 부족하여, 유통서비스 노동자가 가장 많고 가장 피로한 주말의 경우 휴게실에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휴게시간과 휴게공간으로 탈의실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계단 등에서 쉬는 경우도 많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기본적으로 적정한 규모와 거리 등이 모두 보장된 제대로 된 휴게공간과 휴게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④ 저임금 노동 유통업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07년 8월 기준으로 93만 원(남성비정규직 120만 원, 여성정규직 145만 원, 남성정규직 216만 원)으로 소매업 전체 평균 임금 117만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유통서비스 노동자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서비스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미진하지만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많이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가깝고도 먼 당신이 아닌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 역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고민들 ① 조직화의 계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일상적인 현장 투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은데, 유통서비스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갑작스런 해고가 아니면 일상적인 어려움으로 투쟁이 조작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노동조건의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고용문제가 아닌 근무조건의 불합리나 임금체불 같은 문제에 있어서 투쟁을 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있는 경우 이러한 일상의 투쟁을 만들기가 다소 용이하지만, 노조가 아예 없는 경우는 쉽지 않다. 2000년 이랜드노조의 경우 단기계약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도 조합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규약을 개정하여 함께 파업에 동참하고 약 20여명의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냈다. 일단 노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이러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고, 정규직노조는 있으나 규약에 비정규직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② 지역조직화의 가능성 지역운동의 가능성도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유통서비스노동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지역 구성원으로서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도시의 경우) 지역별로 존재하는 대형 할인점의 경우 지역 운동 단위들이 지역의 성원으로써 결합하고 지역의 이슈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2001년 까르푸 일산점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활동이 미진한 기존 노조를 재조직화하여 노조를 정비했고 지역의 운동 단체와 함께 활동을 펼쳤다. 2007년 비정규직법으로 파업에 들어간 홈플러스 노조(구 홈에버 상암점) 월드컵지부의 경우도 마포 서대문 등의 지역의 운동단체와 주민들의 지지와 연대로 투쟁을 만들어 갔다. 또한, 기존의 정규직 노조가 없는 경우 지역일반노조의 형태로 조직되기도 한다. 2005년 투쟁했던 이마트 수지점 계산원의 경우 경기일반노조로 조직된 사례이다. 물론 무노조를 자랑하는 삼성 계열 회사인 까닭에 사측의 노조 탄압은 심각했다. 2004년 12월 21일 계산원 22명이 경기일반노조에 가입하고 분회 창립총회를 했지만, 사측의 회유 협박 등 극심한 노조탄압으로 창립총회 3일 만에 18명이 탈퇴서를 제출했고 남은 4명이 힘겹게 싸웠다. ③ 업체별 조직화의 사례 현재 할인점 판촉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한 사례로는 동원F&B 노동조합이 있다. 백화점 입점 업체로는 화장품 업체가 대부분인데,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클라란스코리아 노동조합 등이 있다. 대형할인점에 유일하게 노조가 결성된 곳은 동원F&B 노조이다. 동원F&B 노조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결성된 기업별 노조이다. 그래서 유통업체에 노조가 결성되어도 다수를 형성하는 판촉노동자는 다른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조직대상에서 제외된다. 동원F&B 노조처럼 소속업체 노조를 결성한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조합원이나 조직 대상자들이 전국 곳곳의 유통업체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형할인점에서 한 상품제조업체당 판촉노동자들은 1~3명씩 각 매장별로 흩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조합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단 유통업체 매장에 배치되면 상품제조업체보다는 유통업체의 지휘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판촉 노동자의 소속감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소속업체 노조로 조직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된다. 또한 이직이 잦고, 판촉 노동자의 대다수가 40-50대 기혼여성이어서 노조 활동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입점업체 종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유통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가입률이 높지는 않다고 한다. 백화점 노동자들의 경우 입점업체로 구성된 노조로 더 많이 조직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 샤넬 노동조합 등과 같은 백화점 화장품 입점 업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백화점 입점업체 중에서도 유독 화장품 업체의 노조 설립이 활발한 이유는, ‘숍마스터’라는 소사장이 매장 직원 1~2명을 고용하고 규모도 영세하며 직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의류업체와 달리, 업체의 규모가 크고 직원들도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2004년 샤넬 노동조합 처음 생겨난 이후, 로레알클라란스시세이도 등 유명 업체들에서 해마다 1곳 정도 노조가 결성되어 현재 노조가 결성된 화장품 업체는 8곳에 이른다. 한편, 백화점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대형할인점 판매직 보다는 다소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백화점 입점업체로 구성된 이러한 노조들은 조합원 교육과 각종 집회 참여 등의 집단활동으로 노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손님은 왕! 그럼 노동자는? - 사회적 시선 바꾸기 소비자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더라도, 유통서비스 분야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역할이라는 부분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등의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전환이다. 서비스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노동자가 생산한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서비스상품을 바로 판매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노동자는 사용자만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제3의 관계가 생긴다는 점에서 제조업 노동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감정노동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인데, 감정노동에 대한 법제화, 감정노동에 대한 사용자들의 각성, 개선책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건전한 소비 의식도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벗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지역사회 시민의 정체성으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를 대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야 감정노동의 쇠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고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의 관행, 그리고 이윤을 위해 이를 더욱 부추기는 자본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제는 ‘손님은 왕’이라는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가령, 단협에 노사공동 캠페인을 반영하고 소비자 인식전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가 유통서비스노동자에게 고객응대 매뉴얼을 통한 서비스 교육만 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용 매뉴얼을 만들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하고 삐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는 방식의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지 않도록 지역사회 운동이나 언론 등을 통한 사회 전반의 건전한 문화 형성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 또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서비스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을 하거나 이러한 현실을 알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에어 샤워를 하고 새하얀 방진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손에는 티끌 하나 없는 반도체가 반짝인다. 뉴스에서 매연과 분진 없는 공장의 모습으로 소개되는 반도체 산업은 ‘청정 산업’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였다. 그뿐인가. 작은 판 안에 복잡한 회로가 가득한 그 모습은 반도체 산업이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며, 21세기를 지배할 최첨단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가한다. 사람들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를 계속 선도해 나갈 것이라 믿고 있고, 국가경쟁력을 상승시킬 것이라 기대하며 반도체 산업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이런 반도체 산업의 ‘깨끗한 첨단산업’이라는 이미지는 허상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에게는 돈을 벌어다 주는 첨단기술이지만, 민중은 ‘환경’ 문제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고 그 뒷수습은 국가세금으로 해결된다.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지나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오염으로 가득하다. 반도체 산업은 노동자의 건강 침해와 지역 환경 파괴, 그리고 반도체 폐기물을 야기하는 더러운 산업이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은 해당 지역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1970~80년대 미국, 1990년대 대만에서 발생했던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성 암 문제는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처음 6명이었던 전자산업 직업병 제보자는 현재 160여 명으로 늘어났고, 정부와 삼성의 직업병 은폐와 회유에 맞선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해외 전자산업 문제와 그에 맞선 투쟁 미국에서 시작된 전자산업에 의한 건강문제와 환경 파괴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산업은 독립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부터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나 노출 양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의 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미리 인지되지 않았고, 인지된 위험도 감춰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노동자에게 작업 중 사고가 나거나 질병이 생겨나면서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노동보건, 환경보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피해자들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지역사회의 노동, 보건, 환경 운동가들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부터 지역사회의 노동보건운동 소그룹 전자산업안전보건위원회(ECOSH)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건강 문제를 제기해왔다. 1980년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전자 제조업 사업장에서 최초로 건강유해성 평가를 실시한 것도 이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또한 주 정부의 조사도 이끌어냈다. 조사 결과는 이 지역의 지하수가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TCE)등의 유해화학물질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그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생식독성에 노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2001년 이후 10년에 걸쳐 스코틀랜드 그리녹에 있는 내셔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암 위험에 대한 역학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역학연구에 정부가 나서게 된 계기도 미국과 유사하다. 그리녹 시에서 노동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암 피해자들의 모임을 꾸리고 지원한 스코틀랜드 노총과 피해 당사자들의 끈질긴 투쟁 때문이었다.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반도체 제조에 벤젠, 클로로포름, 디클로로메탄 등 발암물질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반도체 회사들도 여론의 압박에 자체적인 조사를 시작했지만 명확한 결론도 없는 기만적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다. IBM이나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 등이 지원한 연구는 일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결과만을 도출했고, 지원하던 연구 기금을 통제해 추가적인 평가를 불가능하게 했다.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노동자의 질병과 작업환경 사이의 연관성이 확인되면 산업재해 대상이 되고, 기업도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도체 회사들이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1985년 IBM 연구소에서 일한 한 노동자가 동료 10명 가운데 8명에게 림프종이나 뇌종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것에 대해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부터 전자산업과 암 발생과의 관련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반도체 기업들은 제한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업장에서 암과 같은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해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IBM은 1969년부터 2001년까지 IBM 종사자 가운데 사망한 3만여 명 노동자의 인적 사항과 사망 보험금을 수령한 이들의 내용이 담긴 ‘기업 사망자료’를 축적해 왔지만 이 자료의 존재 자체를 숨겨왔다. 하지만 직업병 피해자들은 회사가 불법적으로 독성 화학물질을 노출시켰고, 유해한 작업 환경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 사망자료’가 소송 중 법원의 결정으로 2004년에 공개되었고, IBM 노동자들의 암 사망률은 미국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력한 증거였던 ‘기업 사망자료’를 판사가 배제하면서 IBM이 승소했다. 그러나 IBM의 직업병 은폐 의혹이 계속 불거졌고, 의혹을 취재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소송 과정에서 줄곧 노동자들이 일하는 클린룸의 안전성을 주장했던 IBM은 이후 대부분의 작업을 자동화했고, 염화메틸렌, 글리콜 에텔 등 각종 화학물질의 사용도 금지했다. 암을 앓는 250여 명에게는 산재보험금이 지급됐고, IBM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 대부분에 대해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했다. IBM 노동자들의 건강과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고, 현재 IBM에게 지역 환경오염의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이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로 확대되어 온 전자산업 문제 노동자들과 지역 사회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은 성장을 거듭하며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시장접근성과 물류 환경 등의 특성을 살리면서 공급망을 구축했다. 아시아 전자산업은 1970~198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전자회사들이 홍콩, 싱가폴,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들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본격화 됐다. 생산설비를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고 생산라인을 하청화하면서 미국에서 제기됐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환경문제도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집중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IBM에서 대량 발생되었던 백혈병 등 반도체 산업관련 직업병도 산업의 이전에 따라 한국을 거쳐 중국의 폭스콘 등에서 차례로 재현되고 있다. 홍콩, 대만, 중국 등의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을 들여오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유무역구역에 공장을 세우고, 인건비를 낮추며, 세금혜택을 주며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고, 태국과 필리핀 등의 국가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초국적 IT기업들이 미국에서는 금지된 화학 약품 사용을 아시아에서 계속 사용했지만 이 국가들은 직업병 발생과 환경오염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다. 전자회사 RCA는 1960년대 미국 인디애나 공장에서 심각한 환경오염과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해외로 공장을 옮겨, 1970년대에 대만으로 진출했다. 대만에서는 산업단지 내 공장들이 ‘합법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도록 법 제도와 환경영향평가 완화를 허용해주었다. 그 후 20년이 지나서야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학자들에 의해 RCA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장 주변 지하수는 식수안정기준치의 1000배가 넘는 TCE로 오염되어 있었고, 공장 기숙사에 거주한 RCA 노동자들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각종 암에 걸렸고, 2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 RCA는 1996년부터 대만 환경보호국 관리 하에 공장 부지와 지하수 정화작업은 시행했지만 노동자들의 암 발생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환경보호국 또한 마찬가지 행태를 보였다. 결국 1998년에 RCA 공장 주변 지역이 정화 불가능한 영구오염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수천 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이 10년 이상 진상 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대만 RCA 노동자들은 여러 연대체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위한 희생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대만 정부에 항의하며 환경과 산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RCA는 대만을 떠나 더 값싼 노동력이 있고 국가 차원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법적 규제나 관리 감독이 느슨한 태국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한편 대만 자본은 2000년부터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워왔다. 1990년 대만은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80%의 노트북을 제작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전세계 노트북 생산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이 상당 부분은 대만 기업의 투자로 이뤄진 결과이다. 현재 대만 IT기업들은 생산은 중국에서, 연구개발은 대만에서 진행하는 형태의 분업을 도입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애플 하청업체인 폭스콘이나 윈텍 등에서는 수십만 명을 고용해 근로계약서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폭발사고, 공장 인근 지역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 삼성반도체의 상황도 미국의 IBM 공장, 영국의 내셔널 반도체 공장, 대만의 RCA 공장, 중국 폭스콘 공장 등에서 발생한 문제들과 흡사하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故황유미)의 진상을 밝히고자 한 아버지의 노력을 시작으로 국내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2007년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2만 7천 명의 직원 중 6명의 백혈병 환자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실제 암발생률은 대한민국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고 주장했다. 2008년 초 대책위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상규명과 산재인정을 위해 여러 활동들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제보자는 늘어났고, 현재 반올림에 접수된 백혈병,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경화증, 루게릭 등 희귀암과 중증질환 등의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자는 160여명이고, 6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삼성 직업병 제보자는 140여명이고, 지난 6월 2일 故윤슬기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56번째 삼성 직업병 피해노동자가 발생했다. 미흡한 역학조사와 산재 불승인 2007년 6월 故황유미씨의 산재신청을 시작으로 반올림과 삼성반도체 피해노동자 및 유족들은 집단 산재신청 등을 진행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암 질환으로 22명(삼성 노동자만 21명)의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었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인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산재 판정 기관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며,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하게 된다. 2007년에 삼성반도체에서 여러 건의 백혈병이 발생하고, 산재인정투쟁이 진행되면서 삼성 백혈병 논란 사건과 관련한 역학 조사는 세 차례 실시되었다. 2007년 사망자 개개인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실시한 지난 10년간 전체 국내 반도체 종사자 23만 명의 림프조혈계 암 발병 위험에 대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2009년 국내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하이닉스엠코테크놀로지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작업환경 역학 조사’가 그것이다. 첫 번째 역학조사는 업무와 백혈병 질병 연관성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2008년 12월에 발표된 두 번째 역학조사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의 암 발생률은 일반인보다 높게 나왔고, 비호지킨 림프종·백혈병 발병률의 경우는 일반인에 비해 1.31~5.16배까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연관성이 낮다고 결론을 냈다. △백혈병은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증가를 찾을 수 없었고, △반도체 공정 작업 현장에서 백혈병 유발 가능 물질인 벤젠·전리방사선은 검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으며, △높게 나온 비호지킨 림프종의 경우 원고 가운데 한 명은 남자이므로 업무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역학조사를 할 당시 삼성이 작업장의 물량을 줄이고 화학물질을 치우는 등 대대적인 청소를 함으로써 조사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반박했다. 또한 반올림은 노후 라인에서 발병률이 높을 가능성이 훨씬 많은데도 전체 노동자를 표본으로 설정하여 일반인의 발병률과 비교해 별 다른 특징이 없는 것처럼 결과를 나오게 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2009년 5월 근로복지공단은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작업환경이 백혈병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미흡하다’며 전원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2009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이의신청 즉 심사청구를 하였지만 전원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행정소송을 둘러싼 삼성의 회유와 은폐 2010년 1월, 피해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산재 불승인’에 불복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행정소송의 형식적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었지만, 실제로는 세계 초일류 기업임을 자부하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벌이는 법적 투쟁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소송 초기부터 삼성전자 측 변호사들에게 소송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실제 삼성전자가 피고 보조참가로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세 번째 역학조사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작업환경 역학 조사’ 결과가 2010년 9월 발표되었는데, 이 조사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되었다. 조사결과에는 삼성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감광제에서 0.08ppm에서 8.91ppm의 벤젠(국내 벤젠 노출 기준은 1ppm 이하로 규제)이 검출되었고, 각종 유기화합물질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삼성전자가 2008년 국정감사장에서 벤젠은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바로 삼성이 의뢰한 조사 결과에서 벤젠이 검출된 것이다. 지난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도 벤젠은 검출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발암성과 연관성이 낮다는 근거로 작용해 산재 불승인 결정이 난 것이었다. 2011년 2월에 반올림이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반도체사업장 역학조사 자료 및 화학물질 정보 등 정보공개 신청을 했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은 인바이런사 재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으로부터 연구비용을 받은 인바이런은, “사업장은 잘 관리되고 있다”, “노출재구성 연구 결과에서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떠한 과학적 인과 관계도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바이런의 발표는 주장과 결론만 있을 뿐 데이터가 없는 보고서이며, 인바이런은 폐암 환자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대변하고, 고엽제 관련하여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의 건강 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던 컨설팅 회사이다. 삼성은 피고 보조참가로 소송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산재를 은폐하려 했다. 삼성은 故박지연씨 가족에게 산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보상해주고 집까지 고쳐주겠다고 했다가 산재신청을 하자 수차 퇴사 권고를 하였다. 故황유미씨의 아버지에게도 거액의 금품으로 회유하여 산재신청 시도를 차단하려 하였다.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주들이 낸 보험료로 정부가 운용하고, 필요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주어진다. 때문에 삼성은 작업 공정 과정에서 산재가 발생한 것을 인정하고 정부 보상받는 걸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 왜 삼성이 이를 방해할까. 삼성전자는 무재해 기록 때문에 보험료율을 50% 감면 받고 있어 연간 143억 원 정도를 절감했다. 하지만 반도체 피해자들 중 한명이라도 공식 산재 인정이 되면 절감됐던 보험료를 다시 내야한다. 진짜 재해가 없어서 보험료를 감면받은 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몇 억 원씩 주겠다며, 산재 신청을 못하게 회유하고 은폐해왔던 것이다. 행정소송 일부 승소와 최초 산재 승인 2011년 6월 백혈병 행정소송 1심에서 故황유미, 故이숙영씨의 백혈병 사망을 산재로 인정 받게 된다. 하지만 故황민웅, 송창호, 김은경씨는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故황유미, 故이숙영에 대해서는 “반도체 공장에서 세척작업을 해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 측 2명은 직업병으로 인정하였지만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정황상 추정해 판단할 수 있다면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존 판례의 취지를 볼 때, 3명의 삼성백혈병 노동자들에게 기각 판정을 한 것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었으나 부분적으로 직업병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공단은 항소심을 제기했고 계속되는 재판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한편 2011년 8월 고용노동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보건관리 강화’를 위해 실천방안 요구 및 이행 모니터링 계획을 밝혔다. 이는 故황유미씨가 세상을 떠난지 4년 5개월, 행정법원 1심에서 산재로 인정받은 지 약 2개월 만에 발표된 노동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책임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책임질 노동부는 삼성에게 직업병 재발방지 계획 등을 떠맡기고 뒤에서 모니터링만 하겠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삼성 백혈병’으로 표현되는 반도체 및 전자산업의 유해성을 ‘삼성 반도체’만의 문제로 한정시켜서는 안 되며, 전체 전자산업 직업병에 대한 재발방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12년 2월 정부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장서 1급 발암물질이 발견되었다고 처음 인정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등 국내 반도체 공장을 대상으로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를 수행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 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공장 설비가 현대화된 이후에도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 측의 주장처럼 그동안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이 끊임없이 개선됐다면,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노후화 된 수동라인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측정된 부산물의 양이 모두 노동부에서 지정한 노출 기준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고, 고용노동부도 측정된 노출량은 극미량이어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가 제기한 기준치는 관리 기준치일 뿐, 발암물질에는 역치가 없기 때문에 노출허용 기준 미만에서도 충분히 희귀병이 발병할 수 있다. 2012년 4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김지숙씨의 산재신청이 처음으로 승인 처분을 받았다.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은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를 근거로 불승인을 남발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반올림 활동가들은 갖은 탄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고, 연대가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 아직은 한 명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공식 기록으로 남아야 정책을 통해 산업에 대한 예방과 규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공식 블로그에 매일 ‘물타기’ 정보를 올려왔던 삼성반도체는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산재 인정 다음 정부가 해야 할 것은 그동안 시행했던 여러 조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정보가 공개돼야 전·현직 노동자들, 시민들이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사회적 조치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자신의 직업병이 어떻게, 어떤 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했는지 입증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현재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국가차원의 신뢰성 있는 진상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산업재해 및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제도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삼성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를 인정하고, 유족들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또한 과거 작업환경과 질병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제적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 이처럼 거대 반도체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저지른 환경오염과 노동자 건강문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영국,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한국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기업을 감독하거나 제어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해주고,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문제제기에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정부의 모습 또한 유사하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이러한 태도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반도체 등 전자산업의 성격에 기인한다. 전자산업에서 기술개발 이후 생산과정은 노동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에, 고도로 유연화 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에서 생산직 노동력의 다수는 젊은 여성들이다. 연령과 성별의 위계에서 하위에 위치한 이들은 자신의 작업환경에 대한 고민이나 불편함, 건강상의 문제점 등을 드러내거나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아시아 개도국 대부분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법이 상대적으로 부실하고 법의 집행 역량도 취약한 실정이다. 각 정부가 새로운 성장 동력인 IT 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보장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로버트 노이스 인텔 공동 설립자는 “노동조합이 없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만약 우리가 노동조합을 허용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파산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무노조 무파업’에 있다는 외국 기업주들의 이야기는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는 삼성과 닮아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규제가 없고,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계속적으로 이동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며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짓밟고 있지만, 기업은 물론 해당 국가에서도 이를 은폐하고 무마하기 바쁘다. 기업들은 이윤을 쫓아 규제가 약한 곳을 찾기 위해 국경을 넘나든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한 지역이나 한 국가에서 해결한다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은 ‘세계화’하여 민중들의 삶과 건강을 파괴하고 있으며, 국경을 이동하면서 더욱 치밀하고 강도 높게 파괴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어느 개인, 특정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노동자 민중들의 공통적 이야기다. 또한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국경 없는 자본은 국경 없는 직업병과 환경파괴를 만들었다. 이는 자본의 이윤창출 욕구와 신자유주의 구조 하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또한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와 공동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아시아감시정보지원센터(Asia Monitor Resource Centre, AMRC),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캠페인(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 ICRT),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Supporters for Health and Right of People in Semiconductor Industry, SHARPS), 대만 지구공민기금회(Citizen of the Earth Taiwan, CET) 등의 전자산업 관련 환경/노동보건/노동운동 단체들은 전자산업의 노동안전보건, 환경안전보건 행태를 변화시키고,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 중이다. 국경 없는 직업병과 환경파괴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임을 폭로하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