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을 돌아보며 부시의 재선 확정으로 마무리된 2004년 미 대선 직후인 지난 11월 4일, 미군은 저항세력의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었다. 일주일 새 최소 600여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사망했으며, 1천2백여 명이 부상당했다. 심지어 휴전협정이 맺어진 11일에도 이라크인 11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공격은 무차별총기난사 수준이다. 부시는 10일 연설을 통해 "일부 소수 그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좌절시켜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향후 수주간에 걸쳐 공세를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 시민의 1/4 가량의 선택을 통한 재선이 마치 9.11테러 이후 일관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전 세계의 공인이라고 선언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의 부시정부의 초조함이 드러난다. 이번 팔루자 공습을 계기로 이라크 내 반미여론이 고조되고 미군이 창설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일부는 미군의 공격지원명령을 거부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부시는 동맹국의 힘을 협박 어린 호소로 요구하고 있다. 2004 미 대선은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 닉슨의 재선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나 총득표수 논란 같은 사태가 불거지지 않은 깔끔한 승리와 승복이었다는 점 등에서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와 부시체제로의 강력한 결집이라는 양상을 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력한 양당체제를 유지해오며 한편으로는 지배엘리트간의 합의와 견제로 지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다양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보편주의의 담지를 포함하는 미국정치체제가 돌이키기 힘든 균열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번 대선이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정치체제의 '민주성' 미국의 자유주의와 그것을 방어하는 외피로서 보수주의적 성향간의 불균형은 미국적 정치원리의 내부 긴장관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을 관리하는 가운데, 지방분권화와 중앙집중적 성격의 조화를 목표로 창안된 미국의 선거제도는 강력한 양당체제를 뒷받침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는 공화주의적 덕성관념과 자유주의적 사익관념의 대립을 현상으로 하면서 주기적으로 개혁의 이념을 형성하였으며, 미국 건국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아가서는 구래의 정신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한계 내에서 지속되어왔다. 80년대 '스태그 플레이션'과 경제불황 등으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뉴딜연합이 해체된 이래 민주당 내 급진화와 보수화 사이의 경합은 1992년 클린턴의 중도보수로 일단락되었다. 유색인종, 여성, 소수자들의 권리라는 자유주의적 쟁점을 포괄하는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으로서 과거의 민주당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냉전의 해소와 함께 평화, 인도주의적 개입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선봉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자주의적 개입의 틀(UN과 국제법)을 초과하는 일방주의적 대외정책 구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과정에서 미국적 보편주의의 균열은 가속화되었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는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자의 패배의 승복으로 일단락되었다. 레이건-부시/클린턴-고어의 합작품인 '범죄와의 전쟁'은 흑인남성의 상당수를 범죄자로 낙인찍어 공민권의 박탈을 초래했다. 투표자의 다수가 모든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몰락을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결집으로 은폐하고 있을 뿐이며, 공민의 지위로부터 추방되거나 이탈되는 광범위한 세력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지의 종식을 뜻하는 '일하는 복지'와 보편주의적 성격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앙상함은 미국정치의 '민주성'의 환멸로부터 이탈하는 광범위한 세력들을 더 이상 조직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9.11이후 군사개입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인 2억9천만명 중 4천5백만 명이 의료보험으로부터 소외되고 8백만이 실업상태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내건 의료보호확대와 재정적자 해소 등은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하였다. 이를 정치적, 법적 기회의 평등을 자유의 동반자로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결과적 평등은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미국 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회의와 불만으로 파악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동성애자 결혼반대, 사형제도 찬성, 낙태 불법화 등에 있어 종교적 가치로 환원되는 '도덕적 가치' 중심의 표-조직화는 미국 정치체제의 '민주성'이라 일컬어지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균형의 균열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자유주의의 몰락(지지기반의 회의와 환멸)의 상황에서 적어도 보수주의라는 외피의 옹호만이 강조되는 것은 미국 지배계급이 대중의 정치의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체제의 위기상황을 전쟁과 종교의 상호방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관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9.11이후 확장된 미국의 소명의식과 특수주의. 9.11은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한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사고의 변형을 낳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본과 국방의 심장부에 가해진 예측불허의 테러는 '우월성과 모범성'을 가진 구원자로서의 나라, 그 점에서 미국이 타락한 구대륙과도 전혀 다르고 미개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자가 되어야 할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적 경험과 체제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천명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행복한 제국의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항존하는 '테러'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망을 형성하는 요새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더불어 이는 자신과 타자에 대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개념의 강화를 의미한다. 이라크전은 이러한 변화의 첫 수순이었으며, 부시의 재선은 결정된 대외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도덕적 절대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인이 선택한 '도덕적 가치'란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화답이며, 41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채권을 6984억 달러가 넘게 사들이는 각 국의 중앙은행에 대한 미국적 보답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북한과 이란 등 불량국가에 대한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케리의 패배는 자유주의의 몰락을 저지하는 길이 다양한 이익집단(흑인, 환경, 여성, 동성애자)의 이해를 포괄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것을 1980년대 선거이래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적 기획의 판정승이라 결론짓기보다는 세계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국가로서 미국의 선택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제국의 신민에 의한 보편성의 승인은 이제 미국의 목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자국적 이해를 보호하는 것,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새를 수호해내는 것이 미국과 여타의 종속국과의 관계가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수호하는 전 세계 국가들의 과제는 FTA 등의 도입을 통한 관세철폐로 미국대외무역적자를 감축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보호해야 할 요새에는 미국 부의 40%를 가진 상위 1%가 존재하며 이에는 전세계 지배엘리트들이 포함되어있음은 분명하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이 요새에 대한 저항과 공격은 물론 모두 테러로 간주된다. 이 때, 현실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력을 갖춘 신보수주의적 쟁점은 이라크, 북한, 이란 등과 같은 위협요인을 미리 제거하고 예방전쟁을 항구적으로 전개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더 나은 미래(위협요인의 제거의 수순을 밟아나가는)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전파하는 합의적 미국정치체제가 복원될 것은 요원하며, 세계는 더욱 야만적인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적 팽창이 새로운 헤게모니 출현의 전조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가 쉽게 지속된다거나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이 무난히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절대적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개입을 펼치기에는 군사력과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의 이라크전이 동맹국의 동의를 광범위하게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케리의 비판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이라크저항군에게 무참히 깨져나가며 친미정부 수립과정에서 미궁에 빠진 미국에 대한 이라크와 전 세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으며 요새 아메리카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동맹국들의 불만과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9.11이라는 역사를 돌려놓기 전까지, 그리고 다자주의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주의적 군사개입을 상시화했던 미국의 역사를 돌려놓기 전까지는 해결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게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이를 오래 지탱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유동성과 규제철폐의 경향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으로 집중되는 금융분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있어 분명한 난점이다. 더구나 선거에서 드러나듯 요새 내에서의 공민의 지위마저 협소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보편주의의 상실은 미국 내 인민들 그리고 전 세계 인민들과 민족국가들의 끊임없는, 그리고 보다 확장된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미대선 직후 개설된 'sorry everybody(모두에게 미안)' 라는 싸이트에는, 노력은 했지만 부시를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들이 '아메리카의 절반의 이름'으로 게재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몰락의 징후를 분명하게 보여준 이 대선의 결과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은 아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미국의 폭력과 야만의 선택에서, 이전의 반전반세계화 그리고 반미투쟁의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반미란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보다 냉철한 비판과 폭넓은 저항을 조직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또한 모든 사회운동적 쟁점의 연대를 통한 저항의 세계화라는 과제 즉, 전 세계 인민의 보편적 민주주의의 창출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반부시로 수렴되는 구호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팔루자 학살 중단하라! 자이툰부대 철수하라! 1. 미국의 팔루자 학살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군과 이라크정부군 2만여명이 팔루자 외곽을 봉쇄했고 베트남전과 인천상륙작전 이래 최대규모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한다. 미군 스스로도 이라크 전쟁에서 ‘최대의 사상자’를 낼 공습이라고 시인한 바 있다. 그들은 내년 1월 27일 이라크 총선을 앞두고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것은 한마디로 학살 만행이다. 인구 30만의 팔루자 시민들이 대부분 저항에 가담하고 저항을 지지하는 상황이므로 미군의 말대로 저항세력을 소탕한다는 것은 수천수만의 팔루자시민들을 죽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지난 4월의 팔루자 학살을 기억하고 있다. 하룻밤새에 천명이 죽어나가고 축구장이 공동묘지로 변해 시신을 묻을 곳조차 없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이 주로 희생을 당했다. 미군은 시를 봉쇄하고는 탈출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쏴댔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마치 80년 5월 광주와도 같았다. 지금 임시정부가 6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팔루자에는 24시간 통금령을 내렸으며 15세-55세 모든 남자들의 바깥 출입을 통제했다고 하는 것은 도시를 아예 ‘싹쓸이’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3. 무고한 민중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미군과 임시정부의 공격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총칼과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살 수 없다. 미군 지배하의 총선은 기만일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공격은 그들이 주도하고자 하는 총선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학살과 폭력으로 얼룩진 상황에서 미군과 임시정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총선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라크 민중들은 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4. 자이툰부대도 이번 사태를 맞아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장관은 자이툰부대가 공세적 작전에 투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모든 외국군대가 이라크의 적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언제든지 공격받을 수 있으며 한번 교전이 생기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누누이 지적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평화와 재건이란 거짓말일 뿐이다. 미군의 학살전쟁에 동조자로, 전쟁범죄의 공범으로 복무하는 것을 중단하고 자이툰부대는 철수해야 한다. 5. 우리는 지난 4월 팔루자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라크 민중들이 종파를 초월하여 팔루자를 구하기 위해 대행진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미군의 학살에 치를 떠는 세계 모든 세력도 이에 연대할 것이다. 미군과 임시정부는 팔루자 공격을 당장 중단하라! 미군과 모든 연합군은 이라크를 떠나라! 자이툰부대는 즉각 철수하라! 이를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자.
<성명>정부여당은 테러방지법 재추진 즉각 중단하라. 또다시 왜 테러방지법인가? 열린우리당은 국무총리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 대테러 활동 및 테러 행위에 의한 피해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테러방지법)을 추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김선일 씨 죽음 이후 테러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이 미비함을 언급하며 제정 의지를 밝힌 바 있으나, 역시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난이 일자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또 지금인가. 2001년 911 테러 직후,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법안 발의하였다. 인권사회단체는 물론 정부치권 내에서도 존재하는 국정원의 국정원 권한 강화라는 비판에 스스로 꼬리를 내린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재추진 시도되었다가 김선일씨의 죽음이후, 그리고 지금 다시 제정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추진 의지는 미 대선으로 세계인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핑계로 다시금 부활하였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세계화 질서에서 보다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정부 입장에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3위 규모의 이라크파병을 지속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에 동참하는 행위는 배제와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된 전세계 인민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동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민중들의 의사를 배반하고 강행한 파병이 불러오는 위험을 테러행위와 테러동조 탓으로 돌리려는 발상이다. 미국이 세계적 금융질서 재편에 따르는 위험을 전세계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자기검열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부여당의 발상에서 테러방지법은 끊임없이 태동하려는 것이다. 민중통제를 정당화하는 정부여당의 기만성을 규탄한다. 정부여당은 대테러센터를 국정원 산하가 아니라 총리실 산하로 두고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두기로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라며 쟁점 하나는 교묘히 피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테러위원회에 국정원장이 각계부처 장관과 함께 참석할 뿐만 아니라, 대테러관련 업무에 있어 국정원이 핵심적 기능을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미 지난달 대북/테러 관련 정보수집체제를 국정원 중심의 정보공동체 추진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테러방지법의 문제는, 국내 외국인, 외국인과 접촉한 사람에 대한 금융거래, 통신 내용 확인 등을 해당기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등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민중들에 대한 감시, 통제를 제한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반한외국인으로 규정되어 구속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법안으로 명시될 경우 111신고전화 한통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부당한 수사와 탄압을 자행하는 인권유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지난 56년간 민중의 사상과 이념을 검열해 숱한 인권유린을 자행해왔던 국가보안법보다도 전면적인 민중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의 추수에 따른 위험을 전인민에 대한 통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여당의 반민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재 국회를 파행으로 이끄는 한나라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여 국회를 정상화하고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이 조금 더 개혁적일 수 있도록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방지법과 비정규노동법개악안, 파병연장동의안, 각종 FTA 비준 등 민중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몰 각종 반민중적 법안들의 수임자가 바로 정부여당인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과연 오늘날의 민중의 적이란 개혁을 발목잡는 한나라당 뿐인가? 돌출적인 개혁과제의 나열로 쟁점을 호도하고 민중들의 정치변화의 열망을 팔아먹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점점 노골화하는 노무현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요구된다. 이러한 투쟁만이 테러예방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통제와 억압, 또다른 악법의 굴레를 내팽개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테러방지법 제정 즉각 중단하라! 이라크파병군을 즉각 철수하라! 2004. 11. 8.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에서 나온 '총파업 승리! 조합원/간부 교양자료집'입니다. - 민주노총 4대 요구 - 재앙이 시작된다 : 한일 FTA -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 / 도하개발의제 - 비정규 노동자도 인간이다 - 파병은 미친짓이다 - 국가보안법 - 하반기 입법과제 - 하반기 총파업 투쟁 이렇게 합시다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의 교육 교안입니다. 미군의 동북아 지역군 재편과 한반도 정세라는 제목의 교안입니다. 1편은 미군의 동북아 지역군 재편과 한반도 정세 2편은 한반도 정세 및 미군의 재편의 교육내용입니다.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동 6월 24일 김선일 씨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은 오랜 시간동안 격렬하게 파병을 철회하라는 요구로 싸워왔다. 그러나 파병은 강행되었다. 8월 28일 자이툰 부대의 본진 파병이 완료되었을 때, 종묘에 모인 파병반대 집회 대오에서는 “노무현을 심판하자”, “노무현은 전쟁 범죄자다” 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파병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당시, 구호를 외치면서 아픈 가슴을 쓸어내릴 도리밖에 없었지만, 더 이상 노무현 정권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이는 단죄되어야 한다는 그 사실! 대중적인 파병반대 집회가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그 날, 그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생각은 모두 다 이러했을 것이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그렇게 결코 가라앉을 수 없는 분노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8월 초 인권단체 평화권 모임의 몇 명의 활동가들은 개인의 명의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민중재판운동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1만 명의 기소 인을 조직하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를 그리고 이 더러운 침략전쟁에 동참한 노무현 정권을 법정에 세울 것, 그리고 그들을 이 나라 사법부가 아니라 수많은 이 땅 민중들이 설립한 민중 법정에서 심판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 운동은 지난 몇 달간의 파병반대운동의 흐름들 속에서 지역과 현장 그 구석구석 자신의 삶 속에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풀뿌리 민중 운동의 가능성에 기대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은 12월까지 1만 명의 기소인들을 모아서 그들의 다채롭고 진지한 평화행동들을 추동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을 무기삼아 이 나라 정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자 하는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몇 명의 활동가들이 선뜻 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길고 지난했던 지난 운동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분출되었던 그리고 미약하지만 끈질기게 진행되었던 풀뿌리 민중들의 행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민중재판운동은 ‘발기인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9월 20일 7시,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50일 넘게 단식을 하며 전국을 순례한 한 성직자와 동화작가,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걱정하며 찾아온 사람들, 노동조합에서 이 운동을 한번 해보고자 모인 사람들, 평화를 노래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예술인들, 집단적으로 결합한 사회단체 활동가들, 멀리 지역에서 이 곳을 물어물어 찾아온 시민들... 민중재판운동은 1만 명의 기소인 전원이 참가하는 ‘기소인 총회’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고 사업계획을 의결하는데, 이날 1만 명의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킬 것을 최초로 결의한 기소인(발기인)들이 모여 ‘기소인 총회’를 발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300여명의 발기인들은 운동의 공식적인 시작을 선포하고 앞으로 두 달여 간의 시간 동안 민중재판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첫째, 9월 20일부터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기소를 위한 1만 기소인 운동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 둘째, 11월 말 자신이 속한 지역 및 부문에서 민중재판 발의를 위한 기소인 총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셋째, 1만 기소인의 이름으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소를 설립하고 12월에 민중재판을 성사할 것! 민중재판운동,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1만 기소인의 운동 10월 현재까지 기소인은 523명이다. 1만 명의 기소인을 모으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이 운동이 현재 운동사회 내에서 그리 큰 파장을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1만이라는 목표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기소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기소이유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기소인으로 조직해야 한다. 기소인이 된다는 것은 지금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주변을 전쟁 종식과 철군에 대한 토론으로 채워나갈 것을 결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가진 기소인을 1만 명을 모으고자 한다. 기소인들은 11월 말에 그/녀들 스스로 대한민국 사법부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민중재판소’를 설립해야 한다. ‘지역, 부문별 총회’란, 통념상 엄격한 규약에 의해 규정받는 권위적인 회의 체계로 여겨지지만, 이는 유사하게 묶일 수 있는 기소인들이 다양하게 모여 민중재판소 설립에 대한 뜻을 모으는 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이며 특정한 형식적 규정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아니면 그냥 친목 모임에서 그동안 조직한 기소인들과 함께 반전과 관련한 토론회나 강연회를 개최하여 각자의 다양한 기소 이유서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든다던지, 아니면 직접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기소이유서들을 발표하고 기소인을 모집하는 운동을 벌인다던지 등등 다양한 형식이 ‘기소인 총회’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내용은 기소인 누구누구의 이름으로 12월에 민중재판소를 설립한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일이다. 어떤 지역은 정식화된 강당에서 총회를 개최하면서, 어떤 이들은 어느 동네 길거리에서, 또 어떤 집단은 공장이나 학교 안에서 “전쟁범죄정권 노무현을 심판대에 세우자”는 동일한 의지를 선언할 것이다. 전국 곳곳,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모아져, 그 힘으로 ‘민중재판소’가 설립된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민중재판이 12월 8일부터 3일 동안 저녁 시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다양한 이들의 증언으로 부시·블레어·노무현의 전쟁범죄가 고발되고 1만명의 기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12월 11일 최종판결은 기소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평화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당신의 기소 이유서를 쓰자. 1만 기소인들이 자발적으로 평화행동을 발굴하고 이를 더욱 확장하는 역할이 민중재판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다양한 행동들이 가능하겠지만 이 중 ‘기소이유서(기소장) 쓰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부시와 블레어, 그리고 노무현을 민중들이 세운 법정에 기소하는 일은 단지 몇 명 시민들의 서명만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기소인들이 각자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절감하고 있는 저들의 전쟁범죄 사실을 폭로한다. 노무현 정권의 전쟁범죄사실은 단지 국제법상 어느 어느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로 규정될 수 없다. 노동자의 삶에서, 여성의 삶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파병이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발언하는 것, 그 다양하고 절박한 자신의 기소이유들이 바로 부시 블레어 노무현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인터넷 상(gopeace. or. kr)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기소인이 될 것을 신청하면 기소인 모두는 11월 말 민중재판소가 설립되는 시점까지 자신의 기소이유서를 작성할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주어진 시간동안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하여 전쟁과 파병에 대한 자신의 입장, 노무현 정권을 민중이 심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다. 모든 기소 이유서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12월 8일부터 진행될 재판에서 기소 자료로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참혹하고 야만적인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인권과 평화를 기치로 한 수많은 인민들의 반전평화운동뿐이다. 그러나 이 절박한 운동의 공간은 몇 몇 영향력 있는 반전운동단체들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반전운동의 대중화, 급진화는 몇 명의 운동주체들의 의지로는 결코 만들어 질 수 없다. 수백만, 수천만 대중의 입에서 반전이 말해져야 한다. 그들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반전평화”는 도도한 민중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바로 이 ‘당연한’ 원칙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민중재판운동이 처한 조건 9월 20일, 발기인 총회는 야외에서 집회와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지만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실내에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의도치 않게 ‘총회’라는 체계와 형식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는데 발기인의 의지와 결의를 모아내야 하는 행사를 어떤 회의체계를 빌어서 한다는 조금은 낯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어떤 운동에 동의에 하는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업계획 및 각종 운동의 방식들을 결정하는 방식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총회’라는 자리를 의식적으로 만든 이유는 기존에 반전운동이 조직되는 일반적인 방식을 탈피해보자는 실행위원회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반전운동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운동들이 단체 및 부문의 대중조직들을 대상으로 조직되고 있고, 주요 사업계획의 경우, 단체나 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회의체계를 통해 승인된다. 이번 민중재판운동은, 어떤 운동단체들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참가하고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운동체계의 형식을 바꿔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 대표자의 권위에 기대 운동에 힘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발언권과 의결권으로 그리고 최대한 개개인들을 조직함으로써 비로소 운동이 힘을 얻는 방식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상황은 쉽지 않다. 작년부터 시작하여 2004년의 절반을 훨씬 넘긴 시점까지 반전 대중운동을 주도해왔던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의 운동이 8월 이후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은 반전평화운동을 견결히 이어가는 운동의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제안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7, 8월 동안 형성된 국민행동의 운동방향을 둘러싼 쟁점이 갈등적으로 남아있던 상황에서 민중재판운동의 흐름 역시 당시의 운동주체들의 상황과 조건을 반영하며 협소하게 제안될 수밖에 없었다.파병반대 비상 국민행동 차원에서 민중재판운동을 어떤 수위로 받아들일 것인지의 논의가 계속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가운데, 국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대중조직들(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로 하여금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지 못하였다. 또한 당시 민중재판운동 실행위원회 내에서는 개인/단체 가입에 대한 논란이 채 정리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운동진영은 8월 파병강행 직후, 반전운동의 흐름을 민중재판운동으로 새롭게 재조직하여 투쟁을 견결히 이어나갈 수 있는 긴장감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실행위에서 논의한 결과, 민중재판 운동 가입은 단체에 기반을 두지 않는 개인들의 기소인 가입 방식으로 결정하였고, 이 운동을 독려하고자 하는 단체들은 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택해졌다. 그러나 민중재판운동은 여전히 이 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많은 단체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운동사회 내에서 반전운동을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데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민중재판운동이 2004년 하반기 전개되고 있는 민중들의 투쟁(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등)과 연대하며 보다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층 대중조직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추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중재판운동은 한국사회의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민중과 밀착된 새로운 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발굴하고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운동사회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 운동의 방식을. 이렇듯 다시 새롭게 운동의 그릇을 만들어 가려는 민중재판운동주체들의 노력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의 방식이란 것은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나 즉각적인 반정립의 문제가 아니다. 풀뿌리 민중의 삶의 현장과 보다 밀착된 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그 동안 공간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 운동의 공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자칫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세운 어떤 조건들이 여타의 다른 운동주체들의 운동공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왜 민중재판운동인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전쟁범죄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민중재판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풀뿌리 민중들의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 했었다.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이 땅의 지배계급은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라는 정당성을 그들 스스로 파괴하였고 이 나라를 구성하는 입법부, 사법부 그 어디도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민중이 그 스스로의 평화를 발언할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때문에 이제 해야 할 일은 어찌 보면 너무도 명확하다. 저들의 파병이, 전쟁 참여가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규정하는 일이다. 민중의 평화, 민중의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생명이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이 땅의 민중들은 이라크 인들이 평화를 누릴 권리가 바로 자신의 삶의 권리와 동일한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울리고 있는 이라크 인들의 생존을 위한 절규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소 이유서를 쓰고 있는 한국의 민중들의 반전의 목소리이다. 노무현 정권이 파괴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것이다. 파병을 감행함으로써 이라크 민중의 생명을 짓밟았으며, 동일한 입장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한 이 나라 민중들의 목소리를 짓밟은 것이다. 이렇게 파괴된 민주주의를 민중 스스로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 질문에 똑똑히 답해야 한다. 죽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왜 빼앗기고 있는가? 부당한 죽음 앞에 평화를 말할 권리를 지금 누가 빼앗고 있는가? 2004년, 전범민중재판운동은 이 땅 풀뿌리 민중 하나하나의 목소리로 이에 답해 나갈 것이다. PSSP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 소식지 5호 '삶의 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9월 20일,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는 전범민중재판운동 발기인 총회가 열렸다. 이곳에 모였던 대략 100여명 정도 되었던 사람들 중, 이 사업이 누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 어떤 모양새를 갖추며 진행될지를 잘 알고 온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파병 군대 철수하라며 50여 일을 곡기를 끊고 단식순례를 진행한 성직자와 동화작가,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들을 지원하며 함께 했던 지역주민들,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음악과 춤으로 전쟁반대를 외치는 아마추어 문예인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후 1년 반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전쟁을 반대한다, 점령군은 철수하라, 파병을 반대한다, 김선일을 살려내라, 파병군대 철수하라" 등의 외쳐졌던 수많은 구호들만큼 많은 변화와 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광화문은 텅 비어 있고, 언론에서는 출국부터를 쉬쉬했던 자이툰 부대의 행적이 그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 지난날 '배달의 기수'와 같은 형식으로 다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이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무엇이 이들을 전범민중재판 발기인 총회라는 정체도 잘 알 수 없는 행사에 모이게 했을까. 더러운 침략 전쟁이 당장 중단되어야 하며, 거기에 힘을 보태는 한국군대가 하루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자 의지이다. 그러나 그 날 참가자들의 다소 이질적인 이력으로 보나, 전쟁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현해온 방식을 보자면, 아마도 모인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각자의 동기와 배경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 그 자체라는 신념에 기대어 지금 우리들의 만남과 행동은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김재복 수사. 이 전쟁이 하루만 일찍 끝나면 20명, 한 달만 일찍 끝나면 1,000여명 이라크 민중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동화작가 박기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아프게 두 눈뜨고 살겠다는 시민. 경제 봉쇄로 가뜩이나 열악했던 이라크의 의료 수준을 최악으로 끌어내려 생목숨을 꺾고 있는 이 전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료인. 그리고 표현되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침략전쟁 가담하는 노무현을 규탄한다', '이라크 전쟁범죄 노무현을 심판하자' 다같이 외쳤던 구호들. 이런 다양한 의지와 소망이 모여든 자리였던 만큼, 행사는 총회형식을 가지는 보통의 행사에서 보이는 이러 저런 토론과 의견이 바쁘게 개진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하기도 했다. 아마 이러한 분위기가 서로 다른 이유로 적응이 안 되는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사업에 다소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연장에서 이 사업의 '대중적 성공' 여부에 대해서도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에서 벌어졌던 반전투쟁의 부침, 그것의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로서 불거진 이런저런 논쟁과 주장들을 반면교사 삼는다면, 이 사업에는 앞선 운동들이 생산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 평화와 인권의 파괴에 대한 분노는 반전운동을 이끄는 기저로서 어떤 절대선 혹은 보편적인 인민의 권리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즉각적으로 대중들의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생산되지 못한 많은 것들은 책임자 노무현에 대한 분명하지 않은 태도에 가로막힌 반전운동, 여성에 대해 배제적인 반전운동,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반전운동, 그리하여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반전투쟁이라는 비판, 논쟁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만들었던 반전운동은 몇 차례의 극적인 계기를 지나 지금은 적절하지 못한 휴지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 제안된 전범재판운동은 참여하는 사람 누구나가 기소인이 되고 각자의 기소장을 작성하는 사업의 주요 원칙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이들이 자신의 운동과 삶의 조건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권리에 근거해 이 운동의 의미를 구성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주동자 노무현-부시-블레어에 대한 민중의 심판을 우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범민중재판은 그 자체 들불이 되기보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반전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학교가 되어 성찰과 사고의 전환의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전범민중재판은 실제로 공간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공간이 되고,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함으로써 전쟁에 가담하는 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도 탄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회복지에 쓰여야 할 돈이 침략전쟁으로 세나가고 있는 현실을 빈민, 장애인들과 함께 비판하고, 전쟁이 파괴하는 여성들의 고유한 권리를 함께 주장하고 운동 속에서도 소외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조건과 공간을 만드는 것을 지향하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기능성이 실제 실현되고 전범민중재판이라는 운동의 흐름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이 해야 할 몫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이 이 운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고, 또한 그러한 노력은 전범민중재판이라는 하나의 사업을 그럴 듯하게 성사시키기는 것을 넘어서는 성찰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이다 싶다. 그랬을 때, 전범민중재판이 법이라는 국가제도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이벤트나 선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텅 빈 광화문을 더 크게 열 수 있을 것이다. PSSP
9.17-19 베이루트 전략회의 참가기; 베이루트 국제회의의 배경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전운동은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내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뉴욕타임즈조차 “미국과 다른 또 하나의 수퍼 파워”라고 평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03년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 원문은 http://www.focusweb.org/beirut/b-index.htm 참고 를 이끌어냈다.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는 ‘단결 선언’, ‘이라크에 대한 입장과 행동계획’,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행동계획’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반전운동의 기본 입장과 운동계획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반전운동 총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 국제행동을 하자는 호소가 광범위하게 제안되고 합의되었다. 이번 베이루트 회의는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라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반전(반세계화)운동 전략회의를 열자는 문제의식 하에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회의의 문제의식은 제안문에서도 말하는 바, “중동 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련된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의 주요 조직자인 ‘남반구 포커스’의 월든 벨로 교수는 연설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기 베이루트에 모였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점점 더 깊숙이 베트남과 같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 2003년 3월 20일 침공 이후 미군 병사들의 사망 숫자는 9월 첫째주에 1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직도 시오니스트 장벽[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 비율로 건설 중이다....오늘, 기업 주도 세계화의 최고 기구인 WTO는 지난 달에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무장해제를 촉진시키도록 고안된 ‘제네바 기본골격’ 합의를 가지고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베이루트 국제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조직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MST(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캐나다자동차노조, 팔레스타인노조, 청년단체 등 풀뿌리 대중조직부터 각국의 반전단체들(영국, 호주, 그리스, 남아공 등의 반전연합, 미국의 정의평화연합),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 평화운동 단체들, 반세계화운동 단체들, 이태리공산주의재건당, 그리스녹색당, 레바논공산당, 헤즈볼라 등 정치조직들, 연구단체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었고, 나라별로 보아도 태평양의 피지에서부터 동티모르,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노르웨이까지 참가 범위가 실로 광범위했다. 무엇보다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등 현지 중동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거의 과반수에 이르렀다. 아랍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처음으로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의규모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는데 그만큼 국제적으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데 관심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은 결합되고 있는가? 회의 첫날 각 대륙의 운동 상황 보고를 들었는데 주로 반전과 반세계화 운동의 양상은 각 나라에서 공통적이었다. 독일의 경우 최근 ‘월요일 시위 (Monday Demonstration)’ 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의 복지삭감, 사유화, 탈규제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반전이슈와 연결되고 있다고 한다. 남아공에서는 반전연합을 결성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국적기업 반대, 미제국주의 반대, 이라크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요 이슈로 하고 있다. 또한 반전활동가들이 대부분 반세계화활동가로서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의 침략에 저항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플랜 콜롬비아’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는데, 푸에르토리코 같은 곳에서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승리하기도 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국가 안팎에서 전쟁과 세계화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공화당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즉 사회복지를 삭감하고, 선제공격을 채택하는 것 등이다. 미국 내에는 6000여개 군사기지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20개 국가에 1000여개 기지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제한다. 한편 대선에서는 부시가 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과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운동과 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각 국의 운동 상황 보고에서 반전 반세계화운동이 서로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인식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와 전쟁 문제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결합된 것이며 꾸준히 이를 결합시키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일례로 ‘군사주의와 세계화’ 그룹 토론에서 행동과제를 논의할 때 군사주의 부분과 세계화 부분 두 팀으로 나눠서 토론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대다수가 이에 반대하여 행동과제를 합쳐서 논의하기도 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맞춰진 초점 둘째 날인 18일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주제는 1) 전쟁을 저지하지 못해서 운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가? 2) 우리가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나? 3) 우리의 행동, 정치, 조직의 한계는 무엇인가? 4) 각기 다른 운동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힘인가 한계인가? 5) 우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6) 미 대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7) 체첸이나 콜롬비아, 다르푸르(수단) 같은 곳의 갈등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온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우리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점령이 실패하고 있다. 2) 반전운동이 사회복지 삭감 항의 등 반신자유주의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독일의 월요일 시위나 미국의 50만 시위) 3)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에 조건 없이 지지 연대해야 한다.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이라크만의 것이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투쟁이다. 4) 운동의 다양성을 강점으로 확대해야 한다.(인종, 성적차이, 인권, 민주주의 등등)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 5) 미디어의 역할을 고발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6) 부시가 이라크에서 패배해도 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패이므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7)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 확장되어야 한다. 8) 전쟁범죄에 대한 침묵을 폭로하면서 대중을 조직할 수 있도록 국제 이라크전범 법정을 확대하자. 9) 국제 행동의 날에 집중하고 이라크 민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10) 아랍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 투쟁도 중요하다. 아랍 운동들간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11) 미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다. 부시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적 시위가 대선에 즈음해서 필요하다. 12)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13)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 개최할 때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자. 한편 20-30명의 이라크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성직자) 아이만 모하메드가 “현재 이라크는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종교 시설마저 파괴되고 있다. 저항이 미군 등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해에 해가 되면 테러리즘인 것이다. 안전은 그들만의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을 쫓아내지 못한다. 이라크 저항은 순수한 저항이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 참가단의 주요 제안은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고 연대해달라는 것이었고, 내년에 헌법 제정 회의할 때,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라크 여성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주로 분리장벽 철폐운동이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점점 팔레스타인 지역은 축소되어 왔고 현재 가자, 라파, 예루살렘, 나블루스 등에서 장벽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인접 국가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도 가혹하다. 거의 생존 이하의 조건에서 살고 있고 이들은 미숙련 하층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분리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제안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는 회의 시작 전날 베이루트 시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사브라&샤틸라라는 곳에서 22년 전에 이스라엘이 25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추모하는 영화상영이 있었고, 회의 첫째 날에는 그곳에서 추모행사도 개최되었다. 이라크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 회의 3일째인 19일은 원래 오전에 선언문 초안을 논의하고 오후에 최종 선언문을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전에는 브라질노총의 활동가가 2005년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포럼 순서가 끝난 이후에는 1)이라크 점령 반대 2)팔레스타인 저항 3)경제적 군사적 세계화 등 세 그룹으로 나눠서 행동계획을 논의했다. 이라크 관련 행동제안은 점령감시센터(Iraq Occupation Watch Center) 재개(이는 여러 문제로 인해 4월에 중단되었음), 10월 13-14일 일본에서 열리는 재건기금 마련 회의를 반대하는 성명서 조직, 전쟁기업 반대 캠페인, 저항세력에게 식량과 의약품 지원, 이라크 전범 국제 민중법정, 외국용병 철수 캠페인, 10월 17일 국제행동, 국제적 이라크법률가위원회 구성, 2005년 이라크 헌법제정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는 것 등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는 분리장벽 반대 캠페인, 이스라엘 보이콧 캠페인, 국제방문단 조직, 11월 9-16일 국제행동,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춘 국제행동, 내년 5월 15일 국제행동 등이 제안되었다. 경제적 군사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미국)군사기지 반대 캠페인,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이를 위한 대중교육과 캠페인, 국제금융기구(IMF, IBRD)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제안되었다. 이후 선언문 초안과 행동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 대표단과 제안된 바그다드 국제회의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이번 회의에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에서는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시 반전운동의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열자'고 제안했고 월든 벨로 등등이 이를 지지했는데, 영국 등의 참가자들이 이를 반대했다. 조지 갤로웨이 의원(영국 하원의원인데 반전 운동 때문에 노동당에서 제명당했다고 함) 등이 제기한 내용인즉슨 지금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이 대표성이 없는 작은 집단이라는 것이고, 이라크 내에서 모종의 정치적 기획을 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라크 대표단을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가는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 모두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루자, 사마라, 쿠파, 바그다드 등에서 왔고 저항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또한 여러 활동가들이 ”이라크 대표단에게 조건을 부과할 수는 없다“, ”대표단의 정당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그들도 저항의 일부이다.“, ”운동은 단결해야 한다. 이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지 않고 저 타입의 저항은 지지하는가? 이라크 안팎에서 정치세력을 단결시키고자 하는 행동을 지지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고 월든 벨로는 ”이라크 대표단들은 점령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 동물 아닌가? 그들도 이 회의에서 지지받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오더라도 지지할 것이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이라크에 가서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점령에 반대하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몇 번의 인신공격성 발언들(누가 더 사담 후세인과 친했냐는)도 오갔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광범위한 부분이 추진하여 요청하면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작은 부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지지할 수 없다“는 제기도 이어졌다. 급기야 이라크 대표단들이 회의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라크에서 국제회의를 열자는 제안과 관련해서 문구가 세 가지 제안되었는데 이것도 논란을 거듭하다가 '통과시키지 말고 선언문과 따로 분리하되 서명할 곳은 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만이 합의된 것으로 되었고 앞서 많이 제안된 행동계획은 합의되지 못한 채 남게 되어 향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지지 연명을 받기로 하였다. 이 문제는 사실 복잡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현재 저항의 확대로 인해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이라크 내에서는 대다수가 총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임시정부는 부분적인 총선도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지만 일부지역만의 총선은 그야말로 이라크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애가 탄 미국과 임시정부가 총선 이전에 전국적인 통제력을 장악하기 위해 저항세력에 대한 ‘10월 대공세’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총선일정 자체가 극히 불투명하고, 또한 미군과 임시정부 치하에서의 총선을 소위 민주주의 과정으로 볼 수도 없고 총선이 치러지는 것을 인정할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과거 미군정하 해방공간 상황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라크 저항세력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조직적 연계가 있는지, 전국적으로 단결을 모색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서 국제 반전운동이 이들과 어떻게 연대를 맺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이라크 저항에 대한 ‘조건없는 지지’가 대부분 동의되기는 했지만 일부 반대도 있었다. 즉 납치, 자살폭탄 등과 같은 극단적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에 대해 월든 벨로는 연설문에서 “2003년 2월 15일 국제시위에 비해 2004년 3월 20일 시위의 규모가 훨씬 줄어든 것은 국제 평화운동의 중요 세력들이 이라크 저항을 정당화하는데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족해방이나 독립을 위해 ‘깨끗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이를 옹호하였다. 베이루트 회의가 남긴 것들 전체적으로 회의를 대략 평가해 보자면 첫째, 아랍지역 조직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아랍 운동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 등에서 참여하여 운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인적 교류를 맺은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특히 이슬람 자체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미국과 지배 언론의 영향력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혐오증)’의 형태로 대중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문제의식을 듣고 아랍지역의 운동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즈볼라 중앙위원인 알리 파야드는 레바논 남부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필자에게 “내년 1월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에서 만나자”라고 하였다. 둘째, 이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조건 없이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과 직접 토론함으로써 구체적인 과제들을 활발하게 제안할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과제와 행동계획이 잘 조직되어 제출되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국제적 지역적 수준에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셋째, 회의 공간의 지리적 특성상 때문인지 다소 팔레스타인, 이라크 문제만 부각되어 전체적인 군사주의의 다양한 문제, WTO-세계화 문제는 미흡하게 다뤄진 측면이 아쉬운 점이다. ‘전략회의’라는 명칭에 걸맞게 현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토론, 전망 제시가 이뤄지져야 할 것이다. 넷째, 이라크에서의 국제회의 개최여부에 대한 논란 때문에 선언문만 합의되고 행동계획이 합의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대표성 문제와 국제회의 개최여부만 논쟁됨으로써 다른 행동계획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한 활동가는 쟁점을 드러내놓고 토론한 것도 유의미하다고 평가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쉬움은 크다. 이번 회의를 놓고 평가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강조되어야 할 것은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이 미국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몰락하고 또 다른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장기적인 이행기라고 한다면 아래로부터 민중들의 행동, 연대,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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