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0월 1일 한미양국은 공산진영의 군사적 도전을 억제하고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북한에 소련과 중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음에도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해방’하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오랫동안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논리였다. 이는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해서 남한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고, 중국과 소련이 개입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자유한국’을 방어했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이란 결국 냉전 하 남북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 특히 주한미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매우 특수한 의존과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와 억지’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출발한 한미 군사동맹은 점차 그 호전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은 1957년부터 한반도에 핵무기를 반입, 배치했고 1974년부터는 ‘작전계획 5027’을 수립하면서 주한미군 작전개념을 사실상 북침 시나리오에 다름 아닌 ‘전진적 방어전략’으로 대체했다. 탈냉전 이후에도 미국은 역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동북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위협론’과 ‘북핵’을 빌미로 한미일 삼국의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다. 특히 21세기에 전개될 미래전에 대비,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온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대테러 전쟁 전략’에 따라 한미양국은 최근 ‘동맹의 현대화’를 약속한 상태다. SOFA개폐와 전시작전권반환 문제 등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구축이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한 채, 한반도 위기 국면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한미동맹의 현대화 - 그 파장과 의미에 대해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세계화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안보전략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세계화 시대 군사적 개입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 무엇이 국익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 세계화 시대의 국가안보를 재정의하기 위해 다수의 위원회들이 구성되었다. 이중 영향력 있는 하원의원들과 유명한 경제학자들(예컨대 폴 크루그먼)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가 포함되어 있는 ‘미국국익위원회’는 ‘중대한 이익, 중요한 이익, 절 중요하거나 부차적인 이익’ 등으로 미국의 국익의 위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권력 행사가 ‘인류전체의 이익’이나 ‘가상적인 국제공동체’와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닌, ‘국익의 확고한 지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구실 아래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또 미국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주체이고 세계화의 주요 수혜국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옹호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미군이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세계화의 옹호란 ‘상업 및 금융 네트워크, 수송과 에너지, 환경 등 세계의 주요 체계들의 안정과 원활한 작동의 유지’를 의미한다. 즉 세계화에 따라 국가안보 개념은 ‘자국 영토의 불가침권’이라는 전통적 접근으로부터 ‘세계체계들의 생존가능성(원활한 작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1999)에서 채택하도록 만든 계획과 동일한 것이다. 미국은 그 중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수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금융자본가들의 이익에 대해 제기하는 위협을 인지하고 잠재적 요인들에 투쟁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군사전략 역시 개편되기 시작했다. 1997년 미 의회의 국방패널(NDP)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전구전쟁’ 개념이 냉전상황에 근거한 것이며 발생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에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2010-2020년까지 필요한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발전에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방전환」(Transforming Defense).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이 상정하는 전쟁이 광범위하게 분산된 전력배치와 재래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미래전 대비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적인 중국의 위협 부상, ‘불량국가’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점도 비판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군 투입능력의 향상, 첩보■정찰■감시 능력의 중요성, 군사기술혁신(RMA)을 최대한 활용하는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국방전환」은 장래에 개연성이 높은 ‘비대칭적 위협’을 포함한 분쟁의 모든 국면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①미국 본토의 방위, ②동맹강화와 통합전력의 확립, ③군투입능력의 개발, ④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⑤우주와 사이버공간의 활용과 통제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를 거치며 분명하게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안보 전략은 자신들의 사활적인 이익인 ‘자유시장-자유무역’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이러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선제공격 독트린’을 핵심으로 한다. 미국은 이러한 전략에 발 맞추어 미군의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정보수집 및 정찰능력, 첨단 통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 정밀유도무기 등이 중시되고, 기존의 중무장한 지상군은 가벼운 군사장비로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밀타격으로 속전속결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재편된다. 한편 과거 해외주둔이 위험한 지역에 대규모로 거주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기동력 있는 군대들이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 주둔 미군의 개편 탈냉전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1990.4)을 통해 극동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두 개의 ‘냉전형 위협’이 남아 있음을 지적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역의 안정 유지’로 정의하였다. 이때 미군주둔의 유지는 ‘역내 미국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익이 증대했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는 전방전개 미군에 대해 한국, 일본, 필리핀으로부터 상당규모의 미 지상군과 일부 공군병력을 3단계에 걸쳐 감축함으로써 냉전 해소에 따른 국방비의 ‘적절한 조정’ 요구를 충족시켰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5년「접촉과 확대의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여러 문제에 개입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세계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천명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 일명 「나이(Nye) 보고서」를 통해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에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 전략의 분기점을 형성한다. 그런데 부시정권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2002년 7월 발표된 「미중안보 검토보고서」(U.S.-China Security Review)는 부시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중국의 해상수송로 위협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공군력과 해군력을 전진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미 괌 기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조치들은 중국이 2020년을 목표로 남중국 해역에 항공모함을 배치할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북아에 집중된 미군 전력을 동남아로까지 확산하고 ▴괌을 아시아 중추기지로 활용하여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키나와와 필리핀 베트남에 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근거지 증설 등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미일 양국은 중국 위협론을 빌미로 군사동맹을 재정비, 강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양국은 군사협력을 보다 조직화하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부담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1978년 합의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1995년 이후 재검토하기 시작하여 1997년 새로운 지침을 완성했다. 연달아 1998년에는 새로운 미일군사협력강화의지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주변사태법안’으로 불리는 일련의 법안들이 의회에 상정됐다. 또 일본은 2001년 ‘반테러특별조치법’, 2003년 ‘유사법제안’을 각각 통과시킴으로써 동맹국인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표명했다. 이는 아태 지역과 기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미일간의 항구적 동맹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또 미국이 MD 체계를 신속히 추진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이른바 ‘북한 위협론’은 한반도 위기와 직결되고 있다. 최근 부시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 유지를 위해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될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MD 추진이 안착될 때까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 또한 미국은 MD 관련 무기구입을 일본, 한국, 대만 정부에 종용함으로써,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한미동맹의 현대화 따라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재조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 2002년 12월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안보연례협의회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한국의 이준 국방장관에게 미군의 구조개편작업이 본격화되면 주한미군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동시에 미국의 전략가들은 ‘세계 전역에 보다 신속하고 가깝게 군사력을 전개(배치)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능력 개선은 한반도 방위에 더 적은 미국 군사력만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남한 방위에서 한국군이 미군의 역할을 대체,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한미동맹’의 응축된 문제점들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연이어 불거졌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성이라는 내적 모순은 ‘촛불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범위한 반미시위를 낳았다. 또 성범죄와 미군기지 등 대규모■장기 주둔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제반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면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갔다. 그러자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 경우 미군의 전방 주둔을 비롯한 동맹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고서들은 ①북한위협에 대한 남한의 안보우려 급감, ②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인한 남한의 민족적 자존심 강화, ②냉전의 해소 - 특히 냉전과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 가 현재 반미의식의 원천이라고 분석하면서 남한 내에서의 ‘반미감정’을 순치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재확립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은 미국과 남한의 보수세력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미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주한미군 감축안을 안보논리로 활용하여 ▴남한의 대북제재 동참 ▴방위비 분담 증액 ▴MD 참여 등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동맹’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작업도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외교게임’의 논리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햇볕정책의 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노무현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선택지가 협소했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다. 2차례에 걸친 파병 요청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그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결국 방미 과정에서 분단의 안정화를 통해 동북아중심국가로 웅비한다는 구상을 내포한 노무현 신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북핵’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공동 목표 속에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동참했다. 이와 함께 일련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협의’를 통해 꾸준히 추진된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크게 '선제타격능력의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요새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기존의 군사력을 기동화, 첨단화, 경량화하고 이를 위해 미군기지를 핵심(Hub) 기지 중심으로 재편하며, MD 체제를 구축하여 보다 공세적인 군사행동으로 인해 되돌아 올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004년 요구한 예산안의 상당부분이 MD체제의 도입을 위한 무기도입과 한국군의 기동화, 첨단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포함한 주한미군 및 한국군의 전력 개편은 군사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이며 그것도 더욱 패권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에서의 남한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역내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또 미2사단의 후방배치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보는 것도 가능하다. 즉각적인 선제공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술적인 선택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압박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의에서 한미양국은 ▴한미 연합전력 강화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전력증강에 향후 3년 간 1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하고 ▴한국군 역할 증대에 따른 신무기체계도입을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용산 미군기지 대체부지 선정 및 이주 비용을 한국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남한의 국방비 증액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4차 회의가 진행된 현재까지 전시작전반환권 문제논의가 유보된 것을 비롯, 한미동맹 관련 주요 협의 사항이 되어야 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 개폐 논의는 아예 상정되지도 않았다. 평화운동의 미래 현재 많은 전략가들은 동북아 역내에서 미군이 사라진다면 아태 전략 구조에 주요한 공백이 생기고, 이 공백은 심각한 군비 경쟁, 한반도 통제와 해양■항공로 통제를 둘러싼 경쟁, 심지어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한미군 주둔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북한이 재래식 전력을 유지할 능력이 소진되자 전략적 중점을 핵과 미사일 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미국 본토를 위한 미사일방어체계와 함께 한국과 일본에 배치된 미군도 전역 미사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고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지난 50년 간 한미일 삼각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이미 역내에서 과도한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신화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MD 계획과 북한에 대한 ‘선제핵공격 옵션’은 분명 ‘과잉억지’와 ‘긴장고조’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미군의 동북아 주둔이 안정을 창출한다는 현실주의적 ‘세력균형론’과 힘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대결구도를 창출함으로써 적을 굴복시켜 평화를 달성한다는 군사적 사고를 지양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은 북한과의 협상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서 미군사력의 존재는 미국과 한국의 자세를 유연성 없이 만드는 토대로 작용한다. 첨단전쟁능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또는 첨단전쟁능력을 끌어들일 전진기지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하며, 따라서 유일한 생존전략으로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유혹’을 조장한다. 셋째, 주한미군의 존재가 남한 군사당국으로 하여금 그릇된 안보의식을 제공함으로써 남북 당사자들에 의한 한반도 군비통제 및 군축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둔감하게 만든다. 남한군이 북한군에 비해 전력상 열세에 놓여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허구임이 밝혀졌다. 일례로 현재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국내총생산을 능가할 정도이며 전력 측면에서도 남한은 80년대를 경과하며 북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과 동아시아로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에 따른 남한의 국방비 증가와 전력 강화를 반대하는 평화군축운동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주축으로 하는 반전-반미운동의 흐름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평화군축운동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PSSP
지난 8월 11일 '출산안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호적법 제 49조의 규정에 의한 출생 신고 시 세 번째 자녀부터는 양육에 필요한 비용을 해당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출산 비용에 대해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조세를 감면해주고 아동수당도 지급한다. "최근의 출산율 급감세가 계속된다면 전체 인구는 2024년부터 감소하면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 등 각종 부작용이 심각해질" 전망이라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 이 법안의 취지라고 한다. '건전한 결혼문화 정착과 출산안정에 관한 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아래 출산안정정책심의회도 두기로 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쯤 되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아기를 낳을 만 할 것인가' 우리는 회의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급격한 출생률 하락에 정부는 급기야 셋째 자녀 양육비 지원이라는 처방까지 내놓은 마당이지만 아이 한 명을 양육시키는데 한 달 평균 40-50만원이 소요되는데, 이에 훨씬 미치지도 못할 정부의 양육비를 받겠다고! 누가 100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인가. 그다지 실효성 없는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서 오히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출산율 저하에 대한 책임을 여성들이 이기적으로 편의만을 생각하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돌리면서 다시금 가족과 그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출산안정법안' 이 진정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정책이 자체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출산파업'이라고까지 불리는 우리나라의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폭로하면서 정부의 대책의 한계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출산 장려 정책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급박한 사정 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의 지속적인 감소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7월 10일 세계 인구의 날(11일)을 맞아 발표한 '세계 및 한국의 인구현황’에 따르면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갖게 되는 평균 출생아 비율인 합계출산율이 1970년 4.53명이었던 것이 2000년 1.47명, 2002년 1.17명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반면 의학 발달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9년 14.4%, 2026년 2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이러한 추세라면 2019년이면 '고령사회', 2026년엔 '초고령사회' 에 진입할 전망이다. 고령화와 아울러 출산율 저하는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 부족으로 이어져 노동인구 부족, 노인부양 부담 증가, 연금기금의 고갈 등의 측면에서 사회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응을 마련하는 것은 자본과 정부측의 사활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력 부족이라는 추세에 정부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가하는 것,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제기하는 것 등으로 지속적으로 대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민연금 개정 방안에서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애초 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고령화와 기금 부족의 이유를 들어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부의 대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동력 부족에 대한 여성인력 활용방안에 있어서의 자본과 정부의 대응은 자본의 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한 여성노동력 착취 방안에 다름 아니었다. 출산율 하락과 노령화가 자본과 정부의 사회재생산의 위기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여성 자신에게도 그 자체로 위기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 자녀를 적게 낳는 것보다는 여성이 왜 출산을 줄여야하는 궁여지책을 쓸 수밖에 없는지 그 속내를 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야기한 여성의 이중노동 증가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다 실상 출산율 저하는 남한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목격되는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다.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에의 욕구와 가치관의 변화 등과 맞물려 여성들의 초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거나 -20대 미혼율은 90년 50.8%에서 2000년 63.2%로 급증했다- 독신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결혼한 여성이 상대적으로 출산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남한이 세계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해야한다. 여성들의 삶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부담' 과 '육아와 자녀교육' 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동반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공적 서비스의 축소라는 파괴적인 양상에 남한의 여성들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여성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수요와 노동인구의 감소에 따른 여성인력 활용 방안 필요성이 높아지고, 경제위기 때문에 가계의 생존을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으로의 유입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재생산의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의료, 교육 서비스와 복지의 축소로 더욱더 여성의 이중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육 문제도 양육의 사회화가 아니라 좋은 서비스의 사립 시설을 육성하는 '상품화'를 통해 사적 부담만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나마 사적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위 '친정/시어머니' 의 도움을 받는 것인데, 이마저 연로한 나이에서까지 여성은 무급노동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매우 씁쓸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성들은 자녀수를 줄여서 교육비, 의료비 등의 부담을 줄여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는 세계 최저 출산율 1.17이라는 지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여성 관련 정책 비판 자본축적과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정부는 여성의 고용조건과 양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들을 제시해왔다. 김대중 정권은 99년 성희롱과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제정, 2001년 모성보호법 개정 등을 통해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법 제도적 틀을 갖추었고, 이러한 흐름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1.47이었던 합계출산율은 김대중 정권의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1999년 1.42, 2000년 1.47, 2001년 1.30, 2002년 1.17로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더 이상 이러한 정책들로는 여성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본의 위기 비용 전가를 흡수하는 완충제 역할을 해온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전략이 여성운동계의 요구 투쟁의 성과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가정과 직장의 양립' 이 매우 어려운 현실의 상황에서 그나마 한계적인 지원일지라도 나은 것 아니냐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령 정부 정책의 성과로 출산율이 일정선까지 오른다면 정부에서는 출산장려정책이라는 혜택을 언제고 다시금 철수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해본다면 이러한 정책이 결코 여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견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대응책의 한계는 여성의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전제하고서 그 하에서 '여성이 두 가지 역할 모두를 펑크 내지 않고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로만 논의가 한정된다는 데 있다. 가사노동이 가족 내에서 여성의 역할로만 부담 지워지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고서는 여성들의 상황은 전혀 변화될 수 없다. 첫 번째 자녀부터 양육비를 지원해주는 것마저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양육의 사회화가 아닌 질 좋은 사립 시설로 대체되는 상품화 또한 그에 따르는 비용부담이 온전히 가족과 여성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한계적인 것이다. 출산의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는, 자본의 위기 대응 비용을 더 이상은 감내할 수 없는 극한적인 상황에까지 여성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지금의 현실에 '가정을 지켜라', '가사노동을 더 잘 수행해라' 라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으로나 사탕발림과도 같은 정책들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이다. 여성노동권을 쟁취하고,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경제위기나 구조조정이 강제한 노동의 불안정화는 소득 감소와 실업률의 증가를 초래했고,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들이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들이 가계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서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가정에서의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에 대한 병행이 주는 이중부담의 과중, 공적 서비스 축소로 인한 재생산비용 부담, 고용 및 임금에서의 성차별 등으로 여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더 이상은 감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여성들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위기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출산율에 대해 정부측에서 정책들을 내놓는 것과 이것이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것만 보더라도-과거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오늘날의 '셋째 아이까지 낳아 양육비 받자' 등등-출산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역할을 수행하는 성질의 것임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여성이 그러한 중요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는 주체라는 것 또한 명확하다. 그러나 이러한 출산과 양육의 사회적인 성격에도 다시금 여성이 각각이 속한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알아서 수행해야하는 개인적인 더구나 여성의 일로만 취급되고 있다. 여성은 노동과 출산과 양육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향유하지 못한 채 의무만을 수행하기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재생산의 위기를 저임금, 장시간 여성노동 착취와 재생산 노동의 상품화로 지연시키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여성 노동권 쟁취,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진정 여성이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구가 제기되어야 한다.PSSP
6자회담이 끝났다. 한-미의 언론들은 각 국이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과정의 계속 추진을 원했다는 점을 들어 대체로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이 ‘탁상공론에 불과’했으며 ‘북의 무장해제를 위한 마당으로 되고 말았다’는 비관적인 평가를 제출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북한의 핵계획 포기를 일괄타결 하고자 했던 의도가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이르기까지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사실상 페리 프로세스의 중단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이 북한의 ‘핵 공갈과 그에 따른 착취’라는 악순환만 조성했다고 간주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행정부 4년 동안 이루어진 북미 협상의 교훈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미국에 먹혀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결론지으면서 앞으로 북미 협상에서 절대로 보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미 양자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거부하고 대신 ‘다자적 압력구조’를 활용, ‘북핵문제’를 국제문제화하고 북한을 고립․굴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대북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북한과는 외교 수단을 통한 핵문제 해결이 난망하기 때문에 봉쇄 정책이 필요하며, 나아가 북한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신빙성을 얻어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접촉정책’과 남한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소위 ‘온건파’들의 정책방향이 점차 ‘봉쇄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과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되 만일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군사적 제재를 포함한 ‘의미심장한 제재’를 취하거나 핵이나 마약 등의 수출을 막기 위해 봉쇄정책을 부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북한의 궁극적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 제재와 같은 비군사적 방법으로 체제교체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에 열린 북중미 3자회담에서도 미국은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포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 교체’와 ‘북핵문제 유엔 상정’ 등을 운운하며 대화 거부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오히려 미국은 3자회담 직후 한미, 미일 정상회담 등 국제 외교무대를 적극 활용, 북한에 대한 다자간 압력틀을 강화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봉쇄에 돌입했다. 그리고 주한미군 전력 증강을 시도하고 스트라이커 부대를 편성하는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력시위를 전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또 미국은 대규모 탈북-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기획하고 ‘작전계획 5030’을 발표하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한 상태다. 남한과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에 적극 호응하면서 각각 ‘자주국방론’과 ‘보통국가화’를 병행 추진했다. 미국의 진심이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주변국들이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가운데 특히 중국을 설득시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다자간 협의틀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다자회담의 틀로 북을 유도한 것을 외교적 승리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북한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협상이 성사되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향후 외교 무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이 경우 국제적인 대북 제재(특히 경제적 제재)를 유도하기에도 훨씬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광범위한 이슈와 의제들을 함께 제기하며 핵개발을 지렛대 삼아 미국으로부터 직접 체제보장을 받아내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분산시키고자 했다(럼스펠드 미 국무부 장관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확대하라”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으로 한정되지 않는 많은 이슈를 동시에 제기할 것을 주장했다). 예컨대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랜드 연구소의 마이크 모치츠키 등은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막는 방법이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관련 5개국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경제위기를 거론한 것은 경제난을 매개로 하여 대북 식량․경제지원 등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서 북한과 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책략일 뿐이다(이들은 이를 일컬어 ‘(전쟁 없는) 체제 교체’와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덧붙여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소요되는 비용(경제협력 및 지원과 인도적 차원의 식량 및 에너지 지원 등)을 주변국들에게 분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다자회담의 부수물이었다. 따라서 6자회담은 한반도 관련 6개국이 ‘대화와 타협’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외피에도 미국이 ‘진심’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객관적으로 완화되지 않는 한 사실상 ‘추가적 조치’를 단행하기 위한 단계적 수순에 불과했다. 그러나 회담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도 미국은 보란 듯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 등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도발을 지속했고, 심지어 제임스 울시 前 CIA 국장, 존 볼톤 국무부 차관 등 대북강경세력은 최근 북한과의 협상을 일체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며 차라리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결국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일괄타결 제안을 무시하고 북한의 선핵포기를 거듭 요구했고, 그 후 재래식무기, 테러, 인권, 납치, 마약문제 등을 협상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 도중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생략하고 북한의 핵관련 발언만을 미 언론에 흘림으로써 회담을 경색국면으로 몰아갔다. 이에 북한이 “기존의 선핵포기 주장보다 더 후퇴한 날강도적인 요구조건”이라고 크게 반발하며 ‘핵억제력’을 불가피한 조처로 제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북한의 위협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며, 북한은 모든 회담에서 그런 위협을 해왔고 이번에도 그런 말들을 하리라고 예상했었다’라는 조엘 위트 ‘전략 및 국제 연구센터(CSIS)’ 선임연구원의 언급은 결국 이번 6자회담의 ‘결렬’이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미국의 강경 대응과 위기의 심화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핵 포기 전까지는 어떤 대북 지원도 있을 수 없다는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정치적 강제 없는 합의’로 보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핵포기의 대가로 대북 체제 서면보장과 경제지원 등을 약속하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했다. 또 미국은 6자회담이 끝나자마자 9월 3, 4일 프랑스에서 11개국이 참가하는 PSI 3차 회의를 열고 이번 달 중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회담 재개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핵이나 마약, 미사일 등을 수출하는 ‘악의 축’ 북한을 봉쇄하기 위해 ‘의심선박’에 대한 해상검색과 나포를 강화하겠다는 PSI는 사실상 준군사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6자회담 문항을 위반한 조처로서, 사실상 후속회담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제공키로 한 한국형 경수로가 플루토늄을 ‘몰래’ 재처리하기가 어렵지만, 북한이 ‘드러내 놓고’ 재처리할 경우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빌미로 경수로 사업의 전면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는 현실적으로 군사적 수단과 경제 지원을 ‘채찍과 당근’처럼 활용할 수 있는 한미일 3각 동맹의 역할분담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경제적 제재를 위해서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 한편 남한의 대북 현금지원의 불투명성을 문제삼고 일본으로부터의 대북 송금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북한에 뇌물을 주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각종 경제사업이나 식량지원 등에 엄격한 조건을 붙이고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미국은 자신의 대북 선제공격을 남한 정부가 두려워한 나머지, 대북 압박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을 지극히 염려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일 3국이 통일된 입장을 취하지 못했는데, 동맹국이라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재차 고삐를 다잡고 있다. 이들은 미일중러 등 주변국들이 공통적인 한반도 정책을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그 정책에 반대하면서 북한의 호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은근히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미 남한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전략에 더욱 깊숙이 편입되고 있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와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함께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의미한다. 일본 역시 미국의 MD 계획에 적극 부응하면서 재무장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만일 미국이 대북 봉쇄에 초점을 두고 사실상 북한의 핵을 ‘무시’하는 정책을 취할 경우 이는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설사 북미간의 교착상태가 일시적인 협상국면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그대로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공고화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낳고 이로 인한 군사력의 편중은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수들 따라서 한반도와 동북아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장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한다면 북한의 핵보유선언과 핵실험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당초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미 의회 산하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도 6자회담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국의 봉쇄정책의 성공과 한반도에서의 실제적인 군사 분쟁의 가능성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우선 북에 대한 선제공격을 미국의 단기적 정책 목표로 선언하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잃게될 뿐 아니라 남한을 자칫 ‘반대편’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 6자회담을 주선하고 ‘주최국 요약’을 발표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온 중국의 수석대표 왕이 부부장이 ‘미국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핵위기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며 미국이 대북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또 경제 불황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의혹 등이 겹치면서 부시 행정부가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걸림돌이다. 무엇보다 최근 이라크 재건 과정이 난항을 겪음에 따라 ‘대테러정책’ 등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군사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강경파-온건파, 혹은 국무부-국방부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도 변수다. 가령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리스트 편에 설 것인가’를 중심으로 세계를 분리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녀는 9․11 이후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 이슬람 온건파와 유럽을 소외시켰다며 범대서양 동맹을 회복하고 미국을 정점에 둔 다자주의로 복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부시 독트린’ 등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책실현의 경로와 방법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백악관이 2002년 공개한 ⌈대량살상무기 대응 국가전략(NSCWMD)⌋ 보고서는 ꋲ잠재적인 적들에게 대량살상무기의 부품이 이전되는 것을 막고, ꋲ부품이 조립되기 전에 파괴할 수 있도록 군사력과 비밀병력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실시하며, ꋲ적들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복을 단행한다고 적고 있다. 9․11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과 그 우방에게 위험스러운 세력에 대해 ‘선제예방’과 ‘방어적 개입’을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탈냉전 이후 당파를 초월한 미국의 중장기적 대외전략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합세하면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맹동’을 자제할 수는 있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불과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은 당분간 한미일 3국의 군사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대북 봉쇄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용’으로 회담을 낭비할 여지를 좁히면서도 북한을 협상국면에 유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과의 파트너쉽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공갈’이 비가역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면 핵개발을 중단 혹은 포기시키는 선에서 당분간 상황을 유지하고 추후를 도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의 일이다.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 결국 현재 한반도의 위기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제어하기 위한 현실적 힘으로서 국제적 반전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재건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정치적 위험’을 국제적 반전운동이 어떻게 영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9월에 칸쿤에서 펼쳐질 WTO 반대 투쟁은 반세계화와 반전이 서로의 결합선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남한이 미국의 군사전략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들 - 주한미군 전력 증강 및 재배치,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과 국방예산 증액 등 - 에 긴밀히 대응하면서 반전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미국의 호전성에 대한 반전평화의 정당성의 우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직, 모든 문제는 열려 있다.PSSP
지난 7월 7일 한나라당의 소위 개혁파 의원 5명이 탈당을 결행했다. 그들은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 정책정당 건설'에 온 몸을 던지겠다며 탈당의 辨을 밝혔다. 또 ‘盧兒의 방주’라 불리는 개혁국민정당 역시 같은 날 전당대회를 통해 개혁신당 추진을 당론으로 정하고 ‘개혁신당추진 연대회의’를 결성하였다. 한편 이미 지난 3일에는 강원용 목사, 송월주 스님, 함세웅 신부 등 각계의 소위 원로 10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지역주의 극복, 민주개혁을 위한 새 정치 주체 결집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올 초부터 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었으나 소위 신/구주류의 갈등으로 봉착국면에 빠진 ‘개혁신당’ 추진 논의가 민주당 외곽에서의 엄호사격을 통해 재개된 것이다. 재개된 신당창당 논의와 그 구체적 양상 작년 대선 당시 노무현은 ‘반창연대’로 상징되는, 대단히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이데올로기의 일시적 결합에 의해 당선될 수 있었다. 게다가 노무현은 집권 여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당-조직의 안정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채 노사모라는 일종의 정치 ‘팬클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집권 이후 정국운영의 안정화와 국민동원을 위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지기반의 형성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특히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 프로그램에 시동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최근 논의되는 정치개혁은 ‘인적 청산’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2000년 총선 당시와는 달리 제도개혁 역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정치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해온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가 추진한 안(案)을 살펴보면 이 번 정치개혁은 정당개혁(지구당 민주화, 진성당원제, 상향식 공천), 선거개혁(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시민의 정치참여 보장, 선거연령 인하), 정치자금의 개혁(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의 공개와 투명성 확보)이라는 세 가지 틀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개혁의 요구는 그 명분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보다 수월한 정계개편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지금의 정계개편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개혁세력의 결집을 범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들은 87년과 대비하면서 2002년을 ‘만회혁명’이라고 명명하며 87년 직선제 쟁취와 97년 수평적 정권교체 그리고 2002년의 대선 미라클에 이어서 2004년 총선에서는 지역감정의 굴레를 타파하겠다는 논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주되게 변화의 동력이 되어야할 386들의 정치 참여와 진출을 동반해야 한다. 정치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에 참여하는 NGO들도 정치개혁에 있어서 세대교체를 통한 ‘의회개혁’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러한 구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인적 청산’을 동반한 정계 개편은 불가피해 보이는데, 이는 도덕성을 가장 큰 무기로 해야 하는 정권의 지지기반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노무현이 당선된 배경은 분명 이질적이고 다층적인 원인이 있지만 도덕성이라는 쟁점은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다. 따라서 지난 5년 동안 DJ정부 시절에 창궐한 ‘금융화’에 기생한 부패와 비리(세력)라는 폭탄을 안고 정권을 운용하는 것은 너무 위태롭고 위험한 선택이다. 주지하다시피 금융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구조조정과 부패비리는 밀월관계이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에서 목격했듯이 금융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시행되는 주식시장의 부양과 각종의 금융규제 완화등의 일련의 조치들은 부패와 비리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물론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부패와 비리가 단순히 몇 몇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만 설명될 수 없는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면서 인적 청산의 방식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인적 청산의 방식으로도 풀기 어려운 정치자금의 딜레마가 노무현에게 존재한다. 이는 이미 정대철 사태로 인하여 정권에 그 적신호가 켜진 상황인데 노무현의 ‘대선자금 고해성사’에 관한 언급은 문제의 확대를 막기 위한 조처겠지만 미봉책을 넘어선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그 어떤 지배정치인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기에 정치자금의 투명화라는 이름으로 양성화를 도모하는 정치개혁 추진의 또 하나의 배경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세력의 조건과 한계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계개편의 핵심에는 정치의 선진화, 정상화라는 미명으로 추앙받는 ‘안정적인 양당체제’로의 재구조화를 위한 신자유주의 세력(민주당)의 능동적인 기획이 자리하고 있다. 즉 일련의 정치개혁의 수렴점이자 양당체제 구축의 목적은 남한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랜 숙원인 실질적인 전국정당 건설을 통한 전국적이고 안정적인 지배구조의 확보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전국정당화를 위해서는 우선 지난 20여년간 지배정치의 한 정점에 있던 경향인 ‘지역주의’를 부차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2000년대의 지역주의가 드러나는 양상이 가지는 8-90년대의 그것과 다른 지점을 차분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더 이상 산업화의 수혜지역인 영남과 소외지역으로서의 호남이라는 대립항은 유효하지 않다. 금융세계화 속에서 초국적 금융네트워크로 편입 가능한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동시에 이미 배제되어 있다. 하기에 지금의 지역주의는 이전과 같은 초보적인 수준에서라도 이념적인 지지와 인물에 대한 지지, 그리고 압축적 산업화과정에서의 ‘기억’에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지역별 불균형한 발전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경제자유구역이나 ‘지역특화 발전특구’, 또는 새만금의 사례에서 나타난 지역주민의 발전논리와 결합). 결국 지역 발전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한, 지역주의의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는 더욱 퇴행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또 양당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포섭을 통한 안정적인 공조체제의 형성이 관건적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초기부터 노사정위의 실질화와 비정규직 보호방안 등 일련의 사회타협적 정책을 전향적으로 제시하며 노동자계급을 포섭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NEIS, 철도노조 그리고 화물연대 파업에서 보여지듯이 '대화와 타협'이후 발생하는 보수주의적 반발을 ‘또 한번의’ 대화와 타협으로 무마하기 위하여 모든 합의를 스스로 파기하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실리를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기조차 힘든 바, 이는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로 드러나고 있을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신당창당론자들이 외치는 정치개혁 프로그램 역시 성공하기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노사모라는 ‘무정형의 팬클럽’이 당적 조직으로 재편되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했으며 여론의 반응 역시 그다지 탐탁치 않다(‘희망돼지의 진실’ 파동, 범 개혁세력 결집론에 근거한 신당 창당에 대한 부정적 입장(한겨레 리서치, 51.8%)). 결국 노무현 정권이 신당창당과 정계개편을 통해 안정적인 지지연합을 구축해낼 수 있을지는 전혀 불투명한 것이다. 신당창당, 노무현 정권의 딜레마 참여정부의 지지율이 벌써 40%대로 추락했다.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직후의 지지율이 70%였음을 떠올린다면 불과 3개월 후인 지금의 지지율은 집권 초반이라는 상식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히 이례적이다. 파병논란과 방미 결과, 파업사태 대응에서 드러난 노무현 신정부의 갈지자 행보는 응당 노무현의 ‘이질적’ 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으며 급락한 지지율은 이를 증명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은 발생하는 쟁점적인 사안들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구조적인 불안정성(무능력)을 드러낸다. 현재 노무현 정권의 유일한 선택은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갈등의 주된 당사자들의 지위를 이익단체로 주변화 시켜내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가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위 현안 문제에 관한 ‘원칙부재의 국정 운영’은 노무현 정권의 아마추어리즘 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제약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운영의 불안정성은, 소위 ‘개혁 알리바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악용되는데, 현재의 국면을 노무현 정권의 취약한 지지기반에 근거한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반수구연합’이라는 기획으로 드러난다. 현재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연합의 재구축을 도모하고자 하는 신당창당/정치개혁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연합을 재결집시키기 위한 시도는 그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위기와 경제위기라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민족적 자본과 미국의 이해에 철저히 종속된 남한의 구조적 조건은 특히 노무현 정권의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정계개편의 최대 화두로 내세우는 ‘이념적 분별정립’은 허구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현재의 정계개편 논란이란 결국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에 대한 핵심적 지지기반을 구축하여 개혁의 불가피성, 지속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고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개혁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재결집,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재생산되는 정치-행정-사법구조의 혁신 또는 지배세력의 도덕성 재확립은 그 부수물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적 보완이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잘 살펴야 하는데, 객관적인 경제상황을 고려한다면 고용확대나 빈곤축소의 외형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신정부의 정계개편 논란에 잠복된 진정한 쟁점을 폭로, 비판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일 것이다.
지난 7월 1일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현재 서울시의 ‘시민들을 위한 환경공간 만들기’란 청계천 복원공사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빈민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복원공사로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도 계획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의 개발과 공사만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16만대가 다니던 청계고가를 철거하면서 생기는 교통 체증의 문제를 ‘대중교통중심으로 전환’ 대책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으로 제시한 도봉로-미아로 구간에 중앙버스전용차로제와 외곽-지역-외곽순환버스 시스템은 당장에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한에서 유지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로 진입하는 차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결국 교통체증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해결하는 방식은 도심 진입에 대한 높은 요금을 부과하여 도심 진입을 제한하거나, 불편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교통정책을 펼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다. 또한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3천 노점상, 30만 영세상인 등의 청계천 빈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서울시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언론을 통해 청계 상인들의 장지동 이전을 합의한 듯 이야기하지만, 5년 이후에나 입주가능하고 상권이 형성되는데 최소한 5년이 걸려 당장의 생존대책도 없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영세상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더군다나 노점상들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청계천을 복원한다하더라도 청계천에 흐를 물은 거의 없거나 하수뿐이라는 현실이다. 하루 3000만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 한강 상류의 물을 청계천에 흐르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깊이는 불과 3㎝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환경친화적 청계천 복원 계획의 실상은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미관(美觀) 계획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많은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복원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계천을 따라 2㎞ 지역은 개발이후 첨단금융단지, IT단지, 패션단지가 형성될 예정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개발비는 민간자본으로 투자되고, 그를 회수시켜주기 위한 특혜가 주어질 것이다. 인근 재개발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은 노동기본권을 대폭 후퇴시키고 기본적 환경규제마저 완화하면서 자본이 자유롭게 돈을 챙기게 하겠다는 경제자유구역 제도와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금융단지, IT단지’라는 슬로건으로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청계천 복원의 기본적인 목표는 이명박이 표방하는 ‘서울 시민들을 위한 환경공간 만들기’가 아니라 ‘금융자본을 들이고 그들을 위한 살만한 공간 만들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시민들의 교통체증의 불편을 증가시키고 빈민들의 생존권을 압살하면서 자본을 위해 강행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 공사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서울시가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환경공간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의 대책을 마련하고, 충분한 계획을 세우고서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03년 7월 15일 사회진보연대
평택 경찰과 검찰은 에바다 정상화를 가로막지 말라! 평택 경찰과 검찰이 에바다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다. 지난 6월 7일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 에바다 구재단측은 농아인을 비롯한 폭력배 40여명을 농아원에 난입시켜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며 집단폭력을 자행하였다. 이에 20여명 밖에 안되는 이사회 경비대원과 함께 싸우던 노동자 2명이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 어이없는 폭력배들의 난동에 대해 평택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조차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20명을 연행하여 조사하던 중 18명은 6월 7일 당일날 오후 풀어주기까지 했다.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폭력행동을 주도한 에바다 졸업생 양경수, 추재진 2명에 대해서도 8일 오후 불구속을 풀어주고 말았다. 이 폭력사태의 주동자들은 2002년 3월 해아래집 야밤 집단 기습사건과 남정수 이사회 전사무국장과 권오일교사에 대한 폭행사건, 7월 에바다 농아원 불법진입 및 이사 등에 대한 집단 폭행사건의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범죄는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2항을 상습적으로 어기며 야간집단폭행, 야간주거침입, 흉기휴대에 해당하는 범죄로 7년이상의 장기징역에 처하는 중대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평택경찰과 검찰측은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의 이 상식이하의 범죄행위들을 계속해서 묵인해주고 있으며, 에바다의 정상화를 도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 각종 폭력사건의 배후에 구재단이 깊은 관련이 있음이 사건현장에서도 분명히 확인되었건만, 평택검·경찰은 수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이러한 폭력사태에 에바다를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 범죄의 배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에바다 구 재단측과 평택검·경찰측과의 검은 유착관계를 그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법과 정의가 부재하고 불법과 폭력, 비리가 판치고 있었던 에바다 복지회를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회복지시설로 만들려 했던 지난 7년여 동안의 에바다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눈물겨운 투쟁의 성과를 무로 돌리려하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이 나라 경찰과 검찰이다. 결국 이 폭력사태를 경찰과 검찰이 눈감아주는 것은 폭력배들과 구 이사회 관계자들을 더욱 가혹한 폭력에 의존하여 불법을 저지르도록 부축이는 것이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와 같은 법 집행에 대해 엄중히 항의한다. 대한민국 경찰청과 검찰청은 이러한 평택 검·경찰의 행태에 대해 특별 감사반을 편성하여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지금까지 자행된 에바다 폭력사태들과 관련한 모든 수사 관련 기록을 재검토하고 법에 어긋난 평택 검·경찰의 태도를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길 바란다. 또한 계속 지연되고 있는 에바다의 완전정상화를 위해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하루라도 빨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모든 사회단체 및 제 민주세력들은 함께 연대하여 평택 검·경찰과 당국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하는 바이다. 2003년 6월 9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