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빈곤의 실상과 그 대책에 대한 비판’ -사회적 일자리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일시 : 2004년 5월 31일 오후 6시30분 장소 : 숭실대 사회봉사관 1층 백마당 회의실 주최 :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보건복지 민중연대 ‘사회복지와 노동’ 포럼 -1주제 사회적 빈곤의 실상, 원인, 성격 -강동진,김종건,성은미,유의선,한진,조성은 -2주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계획 비판과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이유 - 김혜진 -3주제 실업운동의 과정과 평가 -유의선 -4주제 여성노동권의 실태, 빈곤화와 사회적 일자리- 정지현 일자리나누기 베일안의 사회적 배제: “여성의 빈곤화” -안현미
또 한번의 타협과 민주노조운동의 좌절! 이 한마다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노동자가 자본이나 정권과 협상을 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혁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떨쳐 일어나 "우리가 작정하면 모든 것을 바꿔낼 수 있다."는 굳은 의지로 자본, 정권과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참 노동자, 민중 세상의 그날을 열어가는 중간과정에 현실적 성과물을 투쟁으로 얻어낼 뿐이다. 노동자운동이 변혁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자본과의 합의속에 노동자 투쟁을 관리한다면 이미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 모순을 은폐하고 관리하는 자본주의 통치기구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이해집단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금 저 교활한 정권에게 노동자운동이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며 정권, 자본과의 노사정 합의주의에 기울고 있는 현 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자본이나 정권과 어떻게 해서 그림좋은 뭔가를 하려 한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노동운동은 하나의 이해관계속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다름아닌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대의는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자본이나 정권과의 그 어떠한 타협이란 불필요한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정당한 요구를 갖고 자본, 정권과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면, 그것을 탄압하는 자본이나 정권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노동자투쟁의 승리는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이나 타결은 그때 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현 시기 가장 치열하게 대자본 투쟁을 전개해 온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팔을 걷어부치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4일 최저임금위원회앞의 노동자대오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최저임금 77만원 쟁취!"를 외치는 그들에게서 노동자연대의 희망을 찾기에 충분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는 누구보다도 처절했다. 우리 모두는 있는 힘을 다해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제도화!"를 외쳤다. 그 대오속의 우리 모두는 투쟁 지도부의 진정성에 무한한 신뢰감을 보냈고, 우리들의 힘찬 투쟁의 함성에 힘을 얻으며, 우리를 대신해 협상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 역시 힘차게 투쟁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의 숫자적 표현이었을 뿐이었는데, 협상 지도부는 단지 하나의 숫자로만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저한의 기준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밀고 당기기식의 협상이 가능한 "정규직투쟁에서의 협상을 위한 하나의 요구안"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타협에 급급해 졸속으로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거스르며 졸속타결을 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타협을 위해 투쟁을 배치하고 노동동지들을 동원했다. 딴딴한 대오의 목적은 저들에게 뭔가를 전시적으로 보여주고 금전적인 성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그래서 노동동지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적 성격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고, 그래서 너무나 정당한, 결국은 저들의 노동자 착취의 본질을 파헤치고 갈아엎어야 할 대상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투쟁이었음에도, 그들은 너무도 쉽게 투쟁의 깃발을 내리고야 말았다. "교섭과 투쟁의 병행" 이라는 전략이 지닌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형이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투쟁을 열심히 한들 그것이 결국은 협상을 위한 보여주기식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없다. 한치앞이 뻔히 내다 보이는데 어떤 어리석은 자본과 정권이 그 투쟁을 두려워 하겠는가! 단기적인 성과물에 급급하지 않고 노동해방의 긴 여정속에 단결된 투쟁을 전개할 때만 저들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무릅꿇을 것이고, 그럴 때에만 현실적인 투쟁의 성과물도 획득할 수 있을 뿐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으로만이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있음이지, 상층부 몇 사람의 능숙한 교섭과 협상으로 마치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이제 걷어버리자. 이번 최저임금 투쟁의 유일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리라. 우리가 협상 지도부의 졸속과 무능을 규탄하는 이유도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이유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 골자는 총선 결과에 따른 정치적 세력관계를 고려한 현상유지였다. 이로써 국회 탄핵안 통과 이후 연쇄적으로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들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탄핵 사태를 거치며 한국 사회는 무엇이 바뀌었나? 한편 탄핵심판 이후의 사회 쟁점은 "성장이냐, 개혁이냐"로 이미 오래 전에 정해두었다는 듯, 모든 언론은 "노(盧)노믹스의 향방"이라는 문제를 꺼내 놓았다. 대통령은 개혁에 치중하겠다는 뉘앙스로 말함으로써 모든 호사가들이 내심 가장 기대했을 법한 화제를 제공했다. 이 역시 과거와 다른 정책전환을 의미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상생의 정치"나 "경제 살리기"로 국면으로 변화했으니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또는 비정상 상태가 마무리되고 정상 상태가 재개되었으니 정상적인 투쟁이 가능하리라 생각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탄핵 기각 후, 무엇이 바뀌었나? 지난 5월 14일 "대통령이 법치와 준법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만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의 위헌, 위법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끝맺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문이 발표되었다.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선거중립 의무의 위반에 더하여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 행위가 헌법과 선거법을 위배한다고 "준엄히" 질타하는 내용이 강조되었다. 다만 파면결정을 내릴 정도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거나 국민의 신임을 결정적으로 저버린 것으로 간주할 수 없으므로 기각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일부는 안도감을 드러냈고, 일부는 불만을 내비쳤지만, 어떤 정치세력도 심각한 이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한 쪽에서는 탄핵안 발의를 강행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과를 거부하고 국회통과를 불사했던 사태치고는 고요한 결말이었다. 물론 지난 총선을 앞둔 정치 책략이라는 사실을 양쪽 모두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한 언론에 비쳐진 국민 다수의 심정도 사태가 무언가 더 악화되지 않고, 모두가 수긍하는 방식으로 조속히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지금까지 격렬하게 주장된 논리를 고대로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면 여전히 어리둥절한 구석이 있다. 무엇이 "헌정파괴"였고, 무엇이 "민주수호"였는가? 하나의 국가기관인 의회의 운영과 판단을 다른 국가기관이 정당성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헌재는 탄핵소추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다. 그렇다면, 국회 탄핵안 통과가 헌정파괴며 탄핵이 원천 무효라고 주장한 편이든, 아니면 헌재의 판결문이든 양쪽 논리의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여기에 진지하게 문제를 계속 밀고 나가는 세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일부의 헌법학자들만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법률조항이 허술하여 비슷한 사태가 다시 반복될 여지가 있으므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들의 의견을 따른다면 이번 사태는 법률의 허술함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고, 법률을 보완하면 다시는 발생할 수 없는 사태라는 결론만을 얻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탄핵 사태의 당사자들과 해결을 위해 지목된 모든 사람들의 이해 관계는 원래부터 일치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미 존재하는 헌정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대통령과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모든 국가기구의 철칙이라는 헌재의 진술이나, 여야 정치세력이 말하는 "상생의 정치"는 그들의 일치점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태가 야기했던 논점은 탄핵안 당사자들의 의도를 훨씬 뛰어넘는 지평 위에 있었다. 국가기구들간의 권력분점을 위한 모델이나 법률적 완벽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나 헌정이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구성되고 운영되는가'라는 문제가 잠시 지평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요건을 엄격하게 하자'따위의 문제는 부차적인 쟁점으로도 부각되지 않았다. 국민발의나 국민소환 등을 통해 인민이 의회를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 있고, 정부, 법원과 같이 "선출되지 않은 자들"을 인민의 지배 아래 두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설립될 수 있다는 생각이 토론될 수 있었다. 물론, 애초에 "민주수호"를 외쳤던 세력이 이 문제를 실로 심각하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헌정파괴니 민주수호니 하며 그 명분을 이용했지만, 결국 원했던 것은 지배세력 내부의 주도 분파의 교체일 뿐이었다(민주화 이행이 아닌 "엘리뜨 이행"?). 그리고 또 하나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지배세력 내부의 어떤 분파도 서로에 대해 "동의에 의한 지배"라는 뜻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국가의 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헌재 판결을 울타리 삼아서 마치 결과를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뿐, 어떤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현상유지에 대한 동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다음 번의 폭발을 위한 시간 벌기일 수 있다. "성장인가, 분배인가"라는 의도된 논점 탄핵 기각 후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항목 중 기막힌 내용은 "성장 우선인가, 개혁 우선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구체적인 문제와 아무런 결부도 되지 않은,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고 대답을 강요하는 여론조사기관의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러한 것이 "미디어 파퓰리즘"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이러한 설문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단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짐작만 가능할 것이다. 전통적인 용어법에 따라 짐작해 보면, 투자촉진과 비용절감, 경제개방과 교육 효율화를 통해 무엇보다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남기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아무런 몫도 없는 사람이나 집단을 위한 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인지 등등. 하지만 이러한 논점이 정부와 정당들의 진정한 쟁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총선 직후 열린 재경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정책회의는 이헌재 부총리가 기존의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이 "입법 활동으로 정부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총선을 바로 마친 정당이므로 무수한 새로운 말들을 쏟아 내었겠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정책전환도 심지어는 그를 위한 어떤 아이디어도 없었다. 아마도 그 회의의 그림은 현재의 정부와 국회, 정당의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으로 꼽힐만하다. 최근 중국쇼크, 유가 상승,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세간에 떠도는 말들은 더 불어났겠지만, 그러한 그림에서 정부나 국회, 정당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 다만 동일한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성장"이나 "개혁" 중 어떤 담론을 앞세우는 것이 더 낫겠냐는 인기투표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언론에서 말한 "개혁"이 지시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은밀히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바가 있다면, 정부의 기업인이나 언론인에 대한 "괴롭힘", 예를 들어 재벌 비자금 수사나 언론사 세무조사 따위일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개혁"으로 포장하고 싶어했던 바도 그것이었고, 재벌이나 언론사가 속을 썩었던 바도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사회구조의 "선진화"라고 떠벌려지는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지금 민중이 고통을 느끼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문제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다만 가진 자들에 대한 "숙정"이란 식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데에는 다소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편 현재의 "의도된" 논쟁 구도에 변형된 쟁점이 있다면 "성장을 통한 분배냐" 아니면 "분배를 통한 성장이냐"라는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TV토론이나 미디어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준 자리에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치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몹시 불행하게도, "분배가 성장의 견인차다"라는 식의 주장은 원래부터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방식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도적이다. 지배세력의 경제이론은 기업의 투자욕구 자극이나 경제의 개방성, 기술·교육 혁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칠 뿐, 분배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배세력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이론은 반대의 주장, 즉 그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해야하는가? 하지만 그러한 논리를 이어나가다 보면, 즉 분배의 개선을 통해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가 천년만년 지속되지 못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따라서, 지배세력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편은 자본주의 체계 내부에서의 양적인 변화가 (분배 양의 변화를 포함하여) 자본주의 위기를 향한 경향을 바꿀 수 없다는 전혀 다른 관점의 분석을 제시하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다만,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체계 자체의 변혁과 그것을 위한 운동이 그 출발점일 뿐이다. 이제 정상 상태로 복귀했는가? 사회진보연대는 탄핵국면을 거치며 "민주수호"의 구호와 격정이 오히려 민중운동의 황폐화로 귀결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는 물론 진실이지만, 사실 운동의 황폐화는 순전히 탄핵국면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체험할 수 있었던 현실이었다. 정치나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사회운동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환상일 따름이다. 정치 위기는 법률적인 의미에서의 국가기구의 위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동시적으로 가족, 학교, 종교기구, 그리고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위기를 동반된다. 국가가 포섭할 수 없는 집단이나 이슈에 대해 국가기구를 상대하던 사회운동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사회운동은 이념적이며 대중적인 운동 기관들을 형성하는데 계속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노동조합이나 정당이 대중적 정치토론의 장이거나 공동의 삶의 방식을 영유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지 못하고, 일시적인 동원이나 언제라도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잠정적인 대표부의 역할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번 탄핵사태와 같은 지배세력의 정치적 동원을 위한 책략에 대한 취약성의 원인을 제공한다.PSSP
[편집자주] <무장한 세계화 목차> 알랭 족스, 무질서의 제국: 두 개의 좌담, {사회진보연대} 2003년 1·2월호, 3월호 끌로드 세르파티, 21세기 초, 미국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위한 군사 교리, {사회진보연대} 2003년 4월호 메리 켈도어 세계화된 전쟁 경제, {사회진보연대} 2003년 5월호 마틴 쇼, 위험전가 군사주의, 소규모 학살과 전쟁의 역사적 합법성, {사회진보연대} 2003년 6월호 알렉스 드 와알, 아프리카의 전쟁들, {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호 이번이 "무장한 세계화" 기획의 마지막입니다. 시간의 간격이 너무 길어 이렇게 말하는 게 참 쑥스럽지만, 지금까지 기획을 일단 마무리하고 앞으로 이 주제를 더욱 보강할 수 있는 기획을 마련하려는 뜻으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군사세계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반전-반군사주의, 평화운동의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현재의 긴급한 과제를 풍부히 이해하기 위한 기획을 앞으로 새로이 마련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잔혹한 극단적 폭력이 벌어지는 서로 이질적인 장소와 형태들, 그리고 상호관련성을 "지형학"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필자는 극단적인 폭력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발생하지만, 분명한 누적 효과를 생산하며, 결국 세계를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는 "초국경" (원한의 경계선) 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시민성을 창출할 수 없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정치적" 조건으로 인하여, 죽음의 지대의 인민은 불필요한 "잉여"로 간주되고 , 외부세계는 예방적 "반봉기"라는 관점에서 이 지대에서 벌어지는 상호제거 또는 절멸을 조장하거나 개입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초국경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에 대한 (전쟁과 결합된) 인도주의적 개입 또는 불개입은 서로 시소처럼 반복되지만, 오히려 초국경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한 애초부터 사태의 해결 능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국경의 민주화"를 위한 집단적 실천이 긴급한 과제라고 제안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범유럽적인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제도화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극히 우려해야할 경향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번역 대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tienne Balibar, "Outline of a Topography of Cruelty: Citizenship and Civility in Era of Global Violence", We, the People of Europe?: Reflection on Transnational Citizenship, trans. James Swenson (New Jersey: Prinston University Press, 2004), pp. 115-132. ________________________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 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 에티엔 발리바르 나는 이런 젠 체하는 제목으로 내가 이미 여러 번 다루었던 이론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들의 연계에 관한 탐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잔혹성' (cruelty) 이라는 용어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들을 지칭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그러나 학문적 관련성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는데, 그것들은 의도적인 것이든 체계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 하지만 이러한 구별은 우리가 극단성의 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때 미심쩍게 된다 - '죽음보다 더 나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 잔혹성의 현실적 또는 가상적 위협은 정치에게, 특히 '세계화'라는 맥락에 있는 오늘의 정치에게 정치의 가능성 그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결정적인 실험을 의미한다는 게 나의 가설이다. 나는 정치에 대한 정치 (politics of politics) 또는 2차적 정치라는 사변적 관념을 가리키기 위해 '시빌리티' (civility) [시민적 예절]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에는 실제로 많은 다른 사용법들이 있다). 시빌리티는 공적인 일들에 대한 집단적 참여로서의 정치가 가능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지지 않도록 일련의 조건들을 창조하고, 재창조하며,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빌리티'는 분명히 모호한 용어지만, 나는 그것의 함의가 다른 용어들 예컨대 문명화, 사회화, 도시행정과 질서유지 (police and policing), 공손함 (politeness) 등등 보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빌리티'는 사회 내의 '갈등'과 '적대'에 대한 억압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갈등과 적대가 항상 폭력의 선구자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히려]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극단적 폭력의 상당수는 ―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 사실상 '합의'와 '평화'에 대한 맹목적인 정치적 선호의 결과며, 세계적 범위에서의 법과 질서라는 정책들의 실행에 관한 맹목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러한 쟁점들을 '지형학' (topography) 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할 것이다. 나는 그 용어를 통해서 구체적·공간적·지리적 또는 지정학적인 전망과 - 이를테면 '북반구와 남반구', '중심과 주변', '국경의 이쪽 편 또는 국경의 교차점', '세계적인 것과 지방적인 것' 등과 같은 변화하는 구획들을 고려한다 - 추상적·사변적 전망을 동시에 이해한다. 이는 극단적 폭력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무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들' 또는 '무대들'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장면 또는 무대는 각각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 또는 '허구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상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덜 물질적이거나 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 글은 1999년 11월 제네바 대학의 인도주의적 행동(Humanitarian Action) 대학원 과정의 개강 때 요청 받은 강연에 기초한다. 이 글은 세계화된 세계질서에서의 시민권과 인종분리, 난민과 이주, 대량빈곤과 집단학살 등이 왜 이러한 논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가를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적 시민성 (citizenship)이 시빌리티의 구체적 형태와 전략을 발명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가 위치를 부여하고 연결시켜야 할 결정적인 '코스모폴리탄적인' 쟁점들이다. 나는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전형적으로 유럽적인 것으로, 포스트-민족적 통합과 '유럽의 시민성'의 도입의 부정적 반향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단지 '공동체주의적' (communitarian) 요구와 '동일성의 정치'의 부활뿐만 아니라, 나아가 특히 준-아파르트헤이트적인 사회적 구조와 기관들이 발전이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적 유형을 형성하는 데, 그 유형은 이제 많은 측면에서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배의 구조들을 변혁하려는 집단적 해방운동을 예방하기 위해 극단적 폭력과 대중의 불안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그리고 또한 토마스 홉즈가 {리바이어던}에서 예방적 대항폭력을 염두에 두고 묘사한 국가 형성의 유형을 참조로 해서 ― 나는 세계적인 예방적 반혁명 또는 반봉기의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러한 '정치'는 현실적으로 반정치적이다. 왜냐하면 허무주의적인 방식으로, 그것은 하나의 정체 (polity) 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들 그 자체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전쟁과 일종의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 결합하여 발전하는 것을 목도한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행동과 개입은 정확히 고통을 낳은 바로 그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서, 국경들이라는 전통적 제도가 ― 나는 그것이 현대 시대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주권적' 또는 '비민주적'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로 안전의 통제, 사회적 분리, 생존수단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종종 생과 사의 제도적 분배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적 폭력의 초석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국경의 민주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것은 단지 국경의 개방뿐만 아니라 (이는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는 많은 경우에서 경제적 세력들간의 야만적 경쟁이라는 형태로 부활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귀결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민들 (물론 이주한 인민들을 포함한다) 그 자신이 국경의 기능을 다자적으로, 협상에 의해서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영토적'이지 않고 결코 순수하게 '민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대의기관이 세워져야 한다. 이는 내가 시민성과 시빌리티가 밀접히 결합되는 '인권의 세계정치' (cosmopolitics) 라고 부른 것의 일부다. 시민성과 시빌리티: '권리들을 가질 권리'의 문제 두 가지 일련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나는 우리가 인권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라는 더 광범위한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약간의 철학적 도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작업이 필수적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리고 나도 이러한 관점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전체주의의 기원}에 나오는 제국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그녀는 모든 시민적·공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국가 없는' 인민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들에 대한 논의에서 그녀는 정치철학이라는 전망을 이중적인 방식으로 전도한다. 첫 번째, 그녀는 [인간이라는] 종의 단순한 대표물로서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배제의 형태와 극단적 폭력의 상황을 시민성과 정치 체제에 관한 논쟁의 중심으로 재도입한다. 그녀의 목적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인간주의적 기준을 주장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가 오직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발견함으로써만 공적 영역, 즉 인민 운동들의 관리와 사회적 갈등의 통제 (policing)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 (또는 실천(praxis)) 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최근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기원 바로 그 직후부터 정치적 영역 내에서 만인에 대한 평등한 자유의 척도는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몫', 즉 공공선 (commonwealth) [국가 또는 공동체] 내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을 주는 것 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인정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이는 차별 받는 범주들의 배제의 과정이 '도시' 또는 '정치조직'으로의 포함의 과정으로 능동적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 도시에서 이소노미아 (isonomia)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권을 적용시킨 원칙] 가 의미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관점에서, 강한 의미의 '정치'는 아마도 아렌트가 로자 룩셈부르크로부터 물려받은 통념인 '영구 혁명'과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평등한 자유의 법률적 형태는 분명하게 제거되지 않지만 완전히 재가공되어야 한다. 현대의 인간주의와 보편주의라는 원칙의 측면에서, '권리 없는 인간'이라는 통념은 용어 자체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명목상 권리 없는 인간은 없으며, 심지어 아동이나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를 들어 우리가 브라질의 무소유 (propertyless) [무토지] 농민들의 권리 주장 ― 그들의 모토는 '권리 없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justice for rightless) 인데,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위협하는 준군사집단들이 법정에서 심판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 또는 공식적 서류발급을 거부당한 것에 항의하며 무적자 (undocumented) 의 합법적 거주를 요구하는 프랑스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면, 우리는 저항과 폭력에 대한 거부에 기초한 이러한 요구들은 권리들의 창조 과정, 즉 '인민주권' 또는 민주주의라고 인정되는 정치적 헌정질서 (constitution) 를 허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의 부분적이지만 직접적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시민성에 대한 아렌트의 반성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교훈들의 한 가지 측면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은 더욱 더 오늘날 현실에 적합하다. 나는 민주적·민족적 혁명의 시대 이후부터 국제적 갈등의 일반화와 제국주의의 발전에 이르는 민족국가의 역사가 '인권'과 '정치적 권리' (또는 인권과 시민권)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역전시켰다는 점을 보여준 [그녀의] 유명한 논증을 생각하고 있다. 인권 일반은 더 이상 주어진 민족적·주권적 국가의 경계들 내부에서 제정되고 보존되는 정치적 권리들을 위한 단순한 전제이자 추상적 기초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법률적인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지배에 대한 제한으로도 간주될 수 없다.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비극적 경험은 그 반대가 진실이 되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평등한 시민성의 현실적 승인이자 조건인 정치적 권리는 생존, 즉 단순한 생명의 유지와 관련된 가장 초보적인 권리들부터 시작하여, 인권에 대한 정의와 승인을 위한 진정한 토대다. 정치적 동물 (zo n politikon) 그 자체에 새롭고 '비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어떤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되고 결국 실천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승인되고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시민의 능동적인 제도적 권리들이 파괴될 때 ― 예를 들어, 시민성과 민족성이 밀접히 결합되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들과 집단들이 그들의 민족적 소속에서 쫓겨나거나 또는 단순히 억압받는 민족적 '약소자'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 '자연적' 또는 '보편적으로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기본적 권리는 위협 당하고 파괴된다: 우리는 이른바 과소인간 (Untermenschen) 과 과잉인간 ( berrmenschen) 이라고 여기지는 '인간' 사이의 구별이 확립되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를 목도한다. 이는 결코 우연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오늘의 정치에서 공통적인 것이 되고 있는 비가역적 과정의 결과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일신해야 한다는 긴급한 임무를 부과한다. 여기서는 정치의 본질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생명, 교통, 문화의 사회적·자연적 토대 위에 서 있는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의 진정한 개념은 인간들간의 특정한 공동체의 가능성 자체와 이미 관련되어 있다. 즉 그것은 해후를 위한, 다양한 구성 부분들과 집단들 사이의 적대의 표출과 변증법적 해결을 위한 공간을 건설하는 것과 이미 관련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아렌트가 제안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결정적 통념은 헌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법률적·도덕적 요구들로 구성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최소의 준거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최대에 관한 이념이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통념은 인간이 '공통의' 실존 영역 (그리고 따라서 노동, 문화, 공적·사적 발언의 영역) 에 소속되는 것을 최소한 승인하는 것이 이미 권리들의 총체를 수반하는 ― 그리고 가능하게 하는 ― 연속적 과정에 준거를 둔다. 나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봉기적' 요소라고 부른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또는 공화주의적 국가의 모든 헌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국가는 정의상 위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리로 구성될 수 없다 (또는 그것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그것은 데모스 (dm os) [인민, 시민권을 혈통적인 방식이 아닌 이소노미아에 따라 성취한 인민] 의 직접적 참여를 요구한다. 아렌트의 논증은 민주주의적 시민성을 구성하는 평등주의적 또는 봉기적 요소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녀는 또한 그것을 시빌리티의 정치와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개념화한다. 이는 극단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곧 시민성이 부정됨으로써 또한 자동적으로 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인정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단지 이상적인 헌정 모델에 대비하여 역사적 제도들을 평가하는 이론적 기준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오늘의 정치사회들 내에서의 ― 아니, 그들의 일상생활의 핵심에서의 ― 극단적 폭력의 현실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단지 외견상으로만 역설적이다: 칼 슈미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한계 또는 '예외 상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진부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민주주의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체계들의 기능에 침투해 있다. 그것은 그 체계들이 권력에 부여한 이익의 연속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체계의 생명력에 대한 영구적 위협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시민성의 권리에 대한 접근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과 그것에 대한 부정 사이의 ― 더욱 일반적으로는 포함의 (inclusive) 정치적 질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 선택을 사변적 쟁점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구체적인 도전이다. (민주주의적) 정치질서는 내생적으로 깨어지기 쉽거나 불확실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시빌리티의 정치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경들 국경 내부에서 또는 국경을 가로질러 또 다시 '전쟁 상태'로 전화할 것이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국경의 폭력 우리는 아렌트의 논증이 유럽 역사의 '파국'의 경험, 즉 나치즘, 2차 세계대전, 유럽의 유대인·집시·여타 집단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절멸주의 등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것의 '기원'을 민족형태의 제국주의로의 진화에서 밝혀내려고 했지만 동시에 [유럽의] 고유성을 주의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의 민족적 구성이 우리를 덫에 빠뜨렸던 치명적인 순환을 말함으로써 그녀의 생각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권과 '불가능한' 권리를 인식하기 위한 유일한 긍정적 또는 제도적 지평이었으며, 그것이 지지해온 보편적 가치들의 파괴를 낳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동일한 조건 속에서 생활하며 행동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오늘의 정치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민족형태가 단순히 쇠퇴한 것은 아니더라도,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권력의 물질적 분배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의 조건들이 점점 더 초민족적으로 되어간다는 사실을 관찰할 때, 이러한 문제는 첨예해진다. 세계화라는 일반적 틀 내에서 '포스트-민족적' 국가 또는 준-국가 기구가 출현해왔고, 여기서 '유럽 공동체'는 특권적 사례가 되었다. 우선 이러한 과정의 모순적이고 우려되는 몇몇 측면들을 살펴보자. 사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런 측면이 훨씬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공식적인 '유럽적 시민성'의 발전과 함께 현실의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결정적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 또는 오히려 단기적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적인 유럽 공동체의 건설에 장애물 또는 차단물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전체적으로 유럽의 통일을 막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세계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초강대국에 필적할 수 있는 권력의 축적 또는 지역 권력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 할 지라도, 비스마르크식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성취되는 민족-이상적 (supranational) 공동체의 진정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족적 헌정질서와 비교해볼 때, 민족-이상적 유럽 공동체는 오직 그것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적 잉여 (democratic surplus) 를 창조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두 가지 대칭적 문제를 제기하여 쟁점을 더욱 명확히 해볼 수 있다: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이는 단지 외국인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의 일부 범부들, 주로는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유럽의 부유한 '문명'을 보호하는 국경을 건너 동구나 남반부에서 온 이주 노동자와 임시수용소를 찾는 사람들, 이런 측면에서 발칸 지역은 외부성의 두 형태의 일종의 조합을 보여준다) 권리를 덜 승인 받기 때문일 수 없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어야만 한다. 1993년 마하스트리히트 조약 이후로 유럽 건설의 새로운 전개는 실로 그러하다. 유럽의 모든 민족국가들에서, 시민성 또는 민족성에 대한 불균등한 접근권을 강요하는 차별 구조가 존재하였고, 특히 이는 식민주의의 과거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유럽경제공동체 이후 막 바로 등장한) 유럽 연합의 탄생으로 추가된 사실은 유럽 시민 (civis europeanus) 의 지위가 점차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인적·집단적 권리는 점차 유효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각의 민족 정부와 법에 반하여 유럽재판소 (European Courts) 에 호소할 수 있는 가능성). 이제 결정적 문제가 시작된다: 누구를 위한 새로운 권리인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유럽의 인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좀더 제한된 유럽 인민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고 인민 (Volk) 과 주민 (Bev lkerung) 사이의 구별을 둘러싼 딜레마를 확장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유럽의 모든 나라들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으며, 독일의 논쟁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럽 헌법을 위한 상징적·법적·물리적 기초로서 유럽 인민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곤란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마하스트리히트 조약은 하나의 입헌 민족국가에서 이미 시민성 (즉 민족성) 을 소유한 사람들, 오직 이 사람들만이 자동적으로 유럽적 시민성을 보장받는다고 진술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내에서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 이미 하나의 방향을 결정한다. 유럽에서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양적·질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프랑스의 정치학자 까뜨린느 위똘 드 웬뎅은 이들을 '16번째 회원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포함의 기획을 배제의 프로그램으로 즉각적으로 변형한다. 이는 세 가지 변태로 요약될 수 있다. 1. 외국인 (foreigner) 에서 [이질적인] 이방인 (alien) 으로 (이는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2등 계급의 거주자들을 의미한다). 2. 보호에서 차별로 (오스트리아의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이는 민감한 쟁점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는 정도와 언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의 일반적 문제다: 정치적 시민성이 허용되지 않은 이주 노동자의 일부가 약간의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즉 그들이 '사회적 시민성'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복지와 사회보장 또는 이와 유사한 것들에서 추방하는 것은 보수주의 세력에게 결정적인 정치적 쟁점이자 강박이 된다 ― 프랑스의 민족전선 (National Front) 은 이를 '민족 우선' (national preference) 이라고 부르지만, 민족적 제도들 내에 이미 그러한 우선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유럽 우선'이 될 수 있다). 3. 문화적 차이에서 인종적 낙인으로. 이는 포스트-식민적 그리고 포스트-민족적 '새로운 인종주의'의 창조 과정의 중심에 있다. 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유사한 것을 제안하는가? 이는 단지 쓸데없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정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아프리카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이제 유럽에서 (그리고 아마도 다른 곳에서) 재출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 '제국의 역습'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고? 우리는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다른 역사적 사례들과의 비교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은 '짐 크로우' [흑인 일반, 또는 흑인차별주의] 체계를 완전히 망각한 적이 결코 없으며, 보수적 정책이 의제에 오를 때, 주기적으로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독일 동료인 헬무트 리트리히 (Helmut Detrich) 는 유럽의 '동쪽 국경'에서의 난민과 이주자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는데, 그는 유럽제국의 새로운 배후지 (Hinterland)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하나의 또는 다른 체계에 의해 창조되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라는 문제는 제쳐놓고 대신에 그 구조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아프리카, 아시아 또는 유럽의 여타 지역 출신의 이주자들이 과거에 생활하던 지역의 상황과 남아프리카적 의미에서의 자치구 (homelands) [남아공 흑인 반투족의 자치구] 사이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적 사례로부터 최소한 교훈을 빌어 오기 위해 두 가지 보충적 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국경의 한쪽 편에서 그들의 생활을 '재생산'하고 또 다른 쪽 편에서 '생산'하며, 따라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부자도 아니고 외부자도 아니거나 또는 (우리들 다수에게) 공식적으로는 외부자로 간주되는 내부자인 중요한 노동자 집단의 상태가 '안전' 통제의 규모와 그 폭력을 점차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 통제는 상당히 오래된 '인종적 프로파일링' (profiling) 을 신원확인과 기록의 현대적 기술과 결합하면서 사회의 모든 곳으로 확산되고 '유럽적' 영토 전역에서 경계선들을 세분화한다. 쉥겐 (Schengen) 협정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EU 회원국간의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수속을 없애기 위해 1986년 룩셈부르그의 쉥겐에서 체결된 협정]. 두 번째 보충적 근거는 이주자 가족 (그리고 그들의 구성, 그들의 생활방식) 의 존재는 이주 정책과 여론의 진정한 강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 가족은 분리되어야 하는가, 통합되어야 하는가 (즉 재통합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국경의 어느 편에서, 어떤 종류의 가족이 (전통적 또는 현대적), 어떤 종류의 친척들과 (부모 또는 자식), 어떤 종류의 권리를 갖고?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가족 정치, 또는 더 일반적으로 계보의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 인종주의의 결정적인 구조적 생산양식이다. 물론 민족적인 것이 다민족적 공동체가 될 때에도 이는 진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인종분리를 폐지하는 유럽, 즉 민주주의적 유럽은 결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사실상 상황은 훨씬 더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두 가지 방향의 경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마지못해 인정되는 역사적 교차점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데, 이는 다음 논지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즉 이러한 쟁점들이 전형적으로 하나의 세계적-지역적 ('세계-지역적'(glocal)) 문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부착된 유럽적 시민성' (또는 법률-지위적·귀속적 시민성) 의 모순적·진화적 모형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화의 현실적·가상적 효과에 대한 반작용이다.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역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효과의 단순한 투영이다. 세계적인 예방적 반봉기: '국경 없는 폭력' 나는 이제 내가 말했던 중심 주제인 '세계적 반봉기'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국경의 폭력이 아니라 국경 없는 또는 국경을 넘어선 폭력이다. 나는 로잔 대학의 피에르 드 세나르클랜이라는 스위스 전문가가 출판한 인도주의적 행동에 대한 최근 저작을 인용할 것이다. 그는 오늘의 폭력에 대한 공식적 정의의 중요성과 '인도주의적인 개입'의 범위와 의미를 확대하기 위한 정당화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1981년, UN 총회는 새로운 국제 인도주의적 질서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 직후, 총회는 저명한 인사들을 모아놓은, 국제적인 인도주의 문제들에 관한 독립위원회의 창립을 지지하였다... 위원회의 1986년 보고서는 환경파괴, 인구변화, 인구이동,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북반구-남반구의 양극화, 테러리즘, 마약 등과 같은 이 시대의 주요한 정치적·사회적 도전을 인도주의적 기획 내부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 "우리는 인도주의를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을 규정하기 위해 참고해야할 틀로서 그리고, 해결을 위한 처방으로서 고려해야 한다." 이후 저자는 1989년 이후 "양대 진영"이라는 냉전 체계의 붕괴가 어떻게 초강대국들 사이의 대치로 인해 정치적 폭력에 부과되었던 한계를 무너뜨리고, '전쟁'과 '평화' 사이의 경계선을 흐리게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냉전의 빠른 종말의 서곡이었던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예견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국제적 구조의 변형과 그에 따르는 폭력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50건 이상의 새로운 군사분쟁이 있었고, 이러한 분쟁들은 본질적으로 내전이었다. 이 중 특정 분쟁들―르완다, 유고슬라비아, 체첸 또는 알제리의 분쟁들―은 폭력과 잔혹성, 파괴의 광범위함, 그리고 분쟁이 야기한 인구이동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국제사회는 단 한번도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이렇게 많은 전쟁을 대면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대량폭력과 극단적 폭력의 다면적 현상이 일반적으로 국가들 사이의 내부적·외부적 세력관계를 포함하는 정치를 대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우리는 정치와 폭력 ― 합리적 조직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기파괴를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 ― 의 영역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할 수도 있다. 정치와 폭력은 점차 상호 침투해왔다.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정치의 필수적 보충물이 되어버린 바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정치와 폭력의 상호 침투가 일어난다. 나는 이 같은 변이의 모든 측면을 논의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정치 그 자체의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질문을 간략히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극단적 폭력 (또는 극단적인 것의 폭력) 의 확산에 직면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 문제는 '과거의 전쟁과 새로운 전쟁'이라는 쟁점에서부터 왜 그리고 어떻게 역사 속에서 벌어진 '집단학살들을 비교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전례가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극단적 폭력의 새로운 가시성일 것이다. 특히 매체의 포괄 범위와 텔레비전 방송과 이미지 변형 등의 현대적 기술이 ― 마침내 우리가 사상 최초로 걸프전 동안 거대한 규모로 '가상 현실'이 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 극단적 폭력을 하나의 쇼로 변형하고,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이 쇼를 펼쳐놓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가시성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기술의 효과가 (앙골라나 시에라리온에서 수백 명의 불구가 된 아이들의 모습과 같은 진정으로 끔찍한) 어떤 폭력적 과정들 또는 끔찍한 장면들은 드러내 보이고 (바그다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똑같이 끔찍한) 다른 것들은 덮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단적 폭력에 대한 [매체의] 보도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법적·도덕적이지만 거의 정치적이지 않은 개념의 무차별적 사용을 통해 냉전 동안의 '공포의 균형'이 '희생자들 사이의 경쟁상태'로 정치적으로 이행했다는 매우 단순한 관념을 믿게 만들 때, 우리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작용한다는 의심을 품는다. 결국 우리는 일상적 공포의 이미지들에 대해 말하고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특히 인류 중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보호받는 지역 내에서 매우 양가적인 효과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동정심과 함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이처럼 인류가 질적으로 다른 문화 또는 문명으로 실제로 분할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화 또는 문명은 오직 그들간의 '충돌'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념을 강화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곤란함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현실은 '전례 없는' 어떤 것이라는 통념의 이면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아마도 수많은 절멸의 이질적 방법들 또는 과정들 (나는 이를 통해 어떤 개인들이 객관적 또는 주체적 집단들에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개인들로 구성된 대중을 제거하는 것을 지칭하고자 한다) 이 스스로 '세계화'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즉, 그것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점차적으로 하나의 '연쇄'를 형성하며, 20년 전 E. P. 톰슨 (E. P. Thompson) 이 '절멸주의'라는 이름으로 예상했던 것에 완전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일련의 연속된 과정들 속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은 포함해야 하는데, 정확히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것들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원인'을 갖고 있지 않지만 누적된 효과를 생산한다. 1. 전쟁 ('내전'과 '외국과의 전쟁' 양자 모두, [하지만] 유고슬라비아나 체첸과 같은 많은 사례들에서 이런 구별은 쉽지 않은 일이다). 2. 인종적 또는/그리고 종교적 '정화'(cleansing)의 이데올로기를 동반하는 [보통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공동체에서의 폭동. 3.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경제의 파멸로 야기된 기근과 다른 종류의 '절대' 빈곤. 4. 외관상 '자연적인' 대재앙들. 그러나 그것들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구조들로 과잉결정 되었으므로 실제로는 대규모의 살인이다. 여기에는 발전된 시민적 보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세계적 유행병 (예를 들면, AIDS의 분포와 치료 가능성은 유럽·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뭄, 홍수 또는 지진 등이 포함된다. 결국 나는 다양한 종류의 극단적 폭력의 '세계화'가 '세계화된' 세계를 점차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고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들 지대 (심지어 그것들은 하나의 나라 또는 도시의 경계 내에서 복잡하게 중첩되고 빈번하게 재생산된다) 사이에, 결정적이고 깨지기 쉬운 초국경 (super-border) 이 존재한다. 이는 인류의 통일과 분할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 현대 유럽의 세계 정복 초기에 존재했던 '친선의 경계선' (amity line)과 유사한 세계적·지역적 '증오의 경계선' (enmity line) 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영원한 쇼의 대상이자 동시에 개입과 불개입을 위한 뜨거운 지역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초국경이며 증오의 경계선이다. 우리는 현재의 국제 정치에서 가장 우려되는 측면이 '인도주의적 개입'인지, '일반화된 불개입'인지, 아니면 후자 이후의 전자인지 토론할 수 있다. 우리는 극단적 폭력을 시장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경제') 관점에서 '합리적'이거나 '기능적'이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 사실 나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 회피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또한 지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도전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매우 명백하지만 자주 범하는 그릇된 추리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결과와 목표 또는 목적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체계들을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가? 다른 한편, 우리는 자본주의와 같은 어떤 구조의 내재적 목적 또는 '논리'에 대한 반성을 회피할 수 있는가?) 매우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난점은 대량폭력의 연쇄 ― 예컨대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한 전제조건들의 창조를 빈민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묘사하면서 시초 축적 (primitive accumulation) 이라고 부른 것과 비교될 수 있다 ― 의 출현에 기원을 둔 두 가지 대립적인 '세계적 효과'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 효과들 중 하나는 수백만 명의 잠재적 노동자들의 물질적·도덕적 불안전 (insecurity) 을 일반화하는 것, 즉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화 또는 재프롤레타리아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불안전이 '프롤레타리아적 조건'의 핵심에 위치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다소간 벗어났던 프롤레타리아 상태로의 복귀를 결정적으로 포함하는 프롤레타리아화의 새로운 국면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과 또한 인류의 이동성이 증가된 것과 동시대적이며, 그리고 그 때문에 이는 국경을 가로질러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과정은 또한 몇 개의 정치적 변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1. '북반구'에서 그것은 내가 '민족적 사회적 국가'라고 부르는 복지국가가 창조한 사회정책과 사회적 시민성의 기관들의 부분적 또는 심층적 해체를 포함하여, 따라서 복지에서 근로연계복지 (workfare) [노동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가가 공적인 부조를 베푸는 것]로의 폭력적 이행과 사회적 국가에서 징벌 국가 (penal state) 로의 폭력적 이행을 포함한다 (루익 와깡이 최근의 에세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증한 것처럼, 미국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2. '남반구'에서 그것은 '발전주의적' 프로그램과 정책들의 파괴와 전도를 포함한다. 발전주의는 대체로 희망했던 [경제적] '도약'을 낳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지만 빈곤화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3.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범주를 빌려오면, '반주변부'에서 그것은 '현존 사회주의'라고 불렸던 독재 구조의 붕괴와 연관되었다.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는 결핍과 부패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다시금 특정한 한계들 내에서 부와 빈곤의 양극화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동력의 재프롤레타리아화로 귀결되는 이 모든 과정들의 공통적인 형식적 특성은 그것들이 국가장치 바로 그 내부에서 [역사를 만드는] 기층 민중 (subaltern) 의 대표 형태와 가능성을, 또는 당신이 이 표현을 더 선호한다면, 다소 유효한 대항권력의 가능성을 억압하거나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주목함으로써 우선 주로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과정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다른 장면, 즉 대량폭력이 야기한 다른 종류의 결과들을 살펴볼 때, 정치적 측면은 훨씬 더 결정적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원인과 결과의 메커니즘은 지극히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이 현실적이다. 나는 훨씬 더 파괴적인 경향, 즉 복지나 전통적 생활양식에 대한 파괴의 경향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 그 자체에 대한 그리고 결국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파괴적 경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생을 명령하는' 정치와 '죽음을 명령하는' 정치라는 두 가지 종류의 정치를 대비시키곤 했던 미셸 푸코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가 인류의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던 곳에서 펼쳐지는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다양한 형태들의 누적된 효과에 직면하여, 우리는 현재의 생산 및 재생산 양식이 제거를 위한 생산의 양식이자, 생산적으로 활용되거나 착취되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이미 불필요한 잉여 (superfluous) 가 되는 인구의 재생산 양식이 되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인구는 '정치적' 또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 제거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른다―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사회학자들은 도발적으로 이들을 세계 도시 밖으로 '내던져진' '쓰레기 인간' (poblacion chatarra) 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또 다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한 것의 합리성은 무엇인가? 또는 우리는 비합리성의 완벽한 승리를 대면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왜냐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축적 규모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합리적이다 ― 또는 더 적절히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상 역사는 단순히 순환적인 방식으로 즉 축적의 연속적 국면들의 순환 유형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에 경제적·정치적 계급투쟁이 출현했고, 그 결과로 착취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세력 균형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말하자면, 체계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체계는 (그리고 아마도 그 체계의 이론가와 정치가의 일부는) 계급투쟁이 없는 착취는 없고, 착취 받는 자들의 조직과 대표가 없는 계급투쟁은 없으며, 정치적·사회적 시민성을 향한 경향이 없는 대표와 조직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현재의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의 일부에서 실현된 '민족적 사회적 국가'에 상응하는 '세계적 사회적 국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내 뜻은 정치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세계적 사회적 국가'를 향한 모든 움직임에 대한 [현재 자본주의의] 정치적 저항이 존재하며, 게다가 그러한 저항은 매우 폭력적이다. 기술혁명은 현재적 또는 잠재적 노동력의 탈프로레타리아화를 위해 긍정적이지만 불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바로 이 때, 직접적인 정치적 억압 또한 불충분할 것이다. 가능한 한 '수동적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능동적으로' 제거 또는 절멸이 일어나야 한다: 상호 제거가 '최상'이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조장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세계적 폭력의 경제'가 기능적이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그것의 내재적 목표는 실로 모순적이다) 목적론적 (teleological) 의미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세 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동일한' 인구가 광범위하게 목표물로 삼아진다 (또는 역으로 목표물로 규정되지 않은 인구는 점점 동화되며, '동일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된다). 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외연적 의미가 아니라 내포적 의미에서 질적으로 '탈영토화된다'. 그들은 항구적인 제거의 위협을 받으면서 도시의 변두리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역으로 그들이 그들의 본국 내부로 고정될 때에도 그들은 '유목민'처럼 생활하고 또 그렇게 인식된다. 즉, 그들의 실존 그 자체, 그들의 양, 그들의 운동, 권리와 시민성에 대한 그들의 잠재적 요구가 '문명'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결국, '극단적 폭력'은 '세계적 체계'를 형성하는가? 폭력은 고도로 '비정치적'일 수 있다―이는 내가 제안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폭력의 다양한 형태가 서로를 강화한다면, 그리고 그 다양한 형태들이 그 자신의 연속과 잠식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한다면,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들이 잔혹성과 절멸의 확산을 예방하거나 그 효과만을 제한하려는 행동들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 (주의) 적 파국'의 연쇄를 확립한다면, 폭력은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거나 또는 '체계적인'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목적 없는 목적론은 내가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예방적 반혁명'으로 또는 아마 더 나은 표현으로 '예방적 반봉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은 외양상으로만 '홉즈적'인데, 왜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대항하여 사용되는 무기는 또 다른 종류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르 몽드}는 최근에 콜럼비아를 국가와 마피아에 의해 수행된 '사회에 대한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했다). 이는 반정치로서의 정치이지만, 폭력의 이질적 형태들 사이에 수많은 연관으로 인해 하나의 체계로 나타난다 (국가예산에 필수적인 무기거래는 부패를 동반하며, 부패는 범죄행위를 동반하며, 마약·장기매매·현대적 노예무역은 독재를 동반하고, 독재는 내전과 테러를 동반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형상을 그리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폭력을 혼돈하게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정치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인도주의적 개입은 종종 여기에 참여한다), 방송과 개입 양자 모두를 수익성 있는 사업의 원천으로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경제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깨지기 쉬운 경계선을 갖는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 사이의 분할에 대해 말하였다. 그것은 세계화의 '전체주의적' 양상에 대해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분명히 그것만이 아니다. 인류가 경제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문화적으로 '통일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인류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생-정치적으로' (bio-politically) 분할되었다. 시빌리티의 정치 (또는 인권의 정치) 는 파괴된 통일성에 대한 가상적 대체물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모든 곳에서 그리고 특히 국경 자체에서 평등이라는 쟁점을 정치적 행동의 지평으로 재도입하는 일련의 주도성이 될 수도 있다. 결론 '진정한' 결론은 없을 것이고, 단지 몇몇 민감한 쟁점에 관한 직접적 반성과 토론의 시도들만이 있을 뿐이다: '대항폭력'이라는 쟁점, 국제법이라는 쟁점, '시민성'에 대한 접근이라는 쟁점, 그리고 내가 '봉기'라고 부른 것 등.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시빌리티 전략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전략들의 실현 가능한 토대와 실행에 관한 논의는 또 다른 에세이에서 다룰 문제다. 나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연계 속에서 현실적 측면과 가상적 측면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다른 것에 비해 특권화하는 태도를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정치적 행위에 관한 고전적 개념들이 항상 행해왔던 것이다: 고전적 개념들은 주로 공동체들과 공동체적 감정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리고 나는 모든 역사적 공동체들이 일차적으로 '상상된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에 확실히 동의한다), 또는 더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즉 사회적 구조들, 특히 지배와 착취의 구조를 변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전형적인 사례다). 나는 오늘의 정치에서 극단적 폭력이라는 쟁점의 핵심적 특징은, 이러한 이중적 양상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상들의 요구와 제약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기 위해 실천적·구체적으로 노력함으로써, 그러한 이원성의 지양을 탐색하고 발명하는 것을 훨씬 더 긴급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를 들어, 나는 국제법이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시빌리티의 정치의 토대가 국제법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만족하지 않는다. 예컨대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 [국제법] 이면에 있는 교통 (communication) 의 윤리에 대한 강조를 덧붙이면서 일관되게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교통'의 관문들이 때로는 강제에 의해서, 때로는 폭력적 방식으로 열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잠겨진 채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여기서 국제법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반대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는 대량폭력의 반혁명적 또는 반봉기적 특징은 혁명이라는 관념의 갱신으로서 '반-반봉기' (counter-counterinsurrection) 를 요청한다고 제안할 수 있으며, 이를 옹호하는 충실한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 이 때 아마도 진정한 '세계혁명'은 폭력과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최근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 등을 연계시키는 바로 그 세계적 구조에 대항하는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은 정치적 수단과 목표가 바로 그 [자본주의, 제국주의, '제국'과 똑같은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대칭성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최초의 혁명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하려한 이래로, 정치적 수단과 목표는 극단적 폭력이 해방의 정치의 핵심에 구축되는 데 일조했고, 20세기가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 부른 것이 되는 것에 일조했다. 국가나 경제뿐만이 아니라 혁명 그 자체가 '문명화'되거나 '시민적' (civil) 이게 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많은 곳에서 그러한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적극적으로 탐색되고 있지만 분명히 발견되거나 제시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좀 더 조심스럽고 아마도 아포리아에 가까운 방식으로 네덜란드 정치학자 헤르만 판 군스테렌의 최근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자 한다. 나는 모든 정치적 공동체들 ― 여기에는 근린에서부터 도시, 국가, 대륙, 지구 그 자체에 이르는 (가야트리 샤크라보티 스피박은 이런 맥락에서 행성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또는 '영토'에서 '네트워크'에 이르는 가상적 공동체들이 포함된다 ― ( [위대한 결말을 암시하는] '숙명' (destiny) 과는 반대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비극적으로 투쟁할 수는 있는] 운명 (fate) 의 공동체라는 판 군스테렌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이미 차이와 갈등을 포함하며, 그 곳에서 이질적인 인간과 집단들은 역사와 경제에 의해 '함께 내던져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이익이나 문화적 이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수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파괴 (또는 외부 세력에 의한 공멸) 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완전히 분기될 수도 없다. 인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비판 (그리고 또한 1796년 칸트의 에세이 '영구 평화를 향하여'의 정식, '그들은 ... 결국 서로 가까이 있는 것을 참아야 한다')에서 영감을 얻어서, 판 군스테렌은 모든 집단의 모든 개인에게는 그 또는 그녀가 '시민'으로 인정되는 적어도 하나의 '장소'가 세계 내에 존재해야만 하고, 따라서 인권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메타정치적 (metapolitical) [정치에 대한 정치라는 차원의] 원칙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을 넘어 단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이 원칙은 다른 의미에서는 단지 우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장소는 어디인가? 공동체가 '운명의 공동체'라면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급진적인 것이다: 개인들과 집단들이 속한 어느 곳이라도 그러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어디든 그들이 '우연히' 살게되고, 그래서 일하며 아이를 기르고, 친척을 부양하고, 모든 종류의 '친교'를 위해 동료를 찾는 모든 곳이 그러한 장소다. 오늘날의 세계화되고 잔혹한 세계의 '지형학'에 대해 내가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권에 대한 승인과 제도는 실천적으로 인권의 발전을 명령하며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배타적 소속 (membership) 을 넘어 조직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국경 위에' 위치해야 하는데, 우리의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실제로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한 요구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판 군스테렌은, 내가 '시빌리티'의 관점이라고 부른 것에 입각해 볼 때 중요한 문제는 단지 시민성과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소속의 자격이 아니라 항구적 접근권이라는 (또는 그가 쓴 것처럼 '형성 중인' 시민성이라는) 관념을 타당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법적 지위라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시민적 과정이다. PSSP
슬픈 역사 한국철도 철도가 근대사회 건설의 동력으로 힘차게 뻗어나갔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과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한탄위로 철도가 건설되었다. 철도의 역사는 한국 민중과 철도노동자들의 고난의 역사다. 국토의 선로마다 침목 하나하나마다 노동자 민중의 피가 배어 있는 고통의 역사다. 부설권을 놓고 열강의 쟁탈전으로 첫 장을 연 철도는 청일전쟁이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일제국주의에 의해 기적을 울리게 되었다. 민중들은 철도건설부지라는 명목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조선민중은 힘없는 왕조에 대한 자포자기와 주권 잃은 백성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분을 억누른 채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철로에 피와 눈물을 뿌릴 뿐이었다. 식민지 수탈의 도구로 시작된 철도는 조선의 농산물과 지하자원을 일본으로 강탈하는 주요 수단이었으며 대동아전쟁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병참노선이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객화차 지붕까지 가득 채운 피난민들은 철도와 함께 시작한 고난의 우리 근대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 철도 철도는 도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60, 70년대 민중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었으며 산업발전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도로망이 발전하고 자동차 운송이 확대되면서 철도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도로교통위주로 투자가 집중되었고 자동차는 한국산업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투자가 줄고 이에 따라 시설이 낙후되었으며 이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은 철도를 상시적 적자상태의 애물단지로 만들었다. 해방당시의 철도 총노선의 길이나 오늘날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철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도로교통위주의 정책이 한계를 보임에 따라 대안은 다시 철도로 모아지고 있다. 아무리 도로를 새로 뚫어도 정체는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국토 파괴는 물론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까지 새로운 국가적 문제가 수두룩하게 쌓이고 있다. 이런 사정 속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철도 수송력을 증대시켜야한다는 문제 제기로 신설건설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고속전철건설로 논의가 모아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고속철도 나라의 기간 교통망을 건설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난데없이 공사비 5조8462억원을 들여 1998년 완공을 목표로 경부고속철도를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92년 4월 오색연막이 하늘로 퍼지는 가운데 천안-대전 구간의 기공식이 열렸다. 땅 한 평 매입도 없이 12월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단지 배치된 행사였다. 이후 대구-밀양-부산을 잇는 노선이 착공되고 몇 달만에 대구-경주-부산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가 철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에서 나온 게 아니라 선거대책본부의 득표력 계산에 따라 경주, 포항, 울산 지역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 계산으로 결정되었다. 대전과 대구 역사에 대한 지하와 관련된 논란 역시 선거를 전후로 해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예산낭비는 물론이고 설계가 변경되는 등 많은 문제가 노출되었다. 일본, 독일 , 프랑스 업체의 선정과정과 차량 및 기술 도입과정에서 엄청난 액수의 리베이트가 요구되었고 실제로 정치권의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돈의 실체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정책실패에 따른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떠오른 광명역사 문제만 해도 철도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이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1200억의 공사비를 들여 만든 광명역사는 애초에는 남서울역이 정식 명칭이고 도심 집중화를 방지하고 수도권의 균형발전이란 대의 속에 고속철도의 시발역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역과 용산역이 고속철도의 출발역을 맡게 됨으로써 광명역의 역할이 모호해졌으며 뾰족한 대책도 없는 현 시점에서 수천억원의 건설비가 그저 낭비되었을 뿐이다. 단지 건설에만 신경 쓴 나머지 설계단계에서부터 막가파식 조급성을 그대로 나타냈다. 변변한 지질조사도 없이 폐탄광에 노선을 설계하는 바람에 터널공사를 중단하고 노선을 변경하거나 당장 쓸 일도 없는 차량을 도입해와 몇 년씩 먼지만 뒤집어쓰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고속철도개통에 따른 남겨진 문제 세계에서 다섯 번째라는 환호 속에 고속철도는 개통되었다. 꿈의 철도, 교통혁명이라는 찬사 속에 고속철도가 달리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정말 철도가 달라지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들의 바램을 무참히 깨뜨렸다. 고속철도 개통이 되면 철도이용이 더욱 쉬워지고 편리해지리라는 것은 일반국민들의 평범하고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통근열차타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고속철도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는 지역의 철도이용은 더욱 어려워졌다. 청량리-춘천 간 열차 수가 왜 줄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익산에서 4,50분씩 짐보따리를 들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왜 꿈의 철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고속철도가 달리기 시작했을 뿐, 완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속철도의 영남구간인 대구-부산노선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선을 이용하는 한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일반노선의 열차 증편 효과를 제대로 얻을 수 없다. 원래 프랑스에서 도입된 테제베열차의 장점은 고속신선과 기존선을 연계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계에 다다른 기존선의 선로용량을 고속신선으로 대체하여 수송능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열차 빈도수가 적은 노선에서는 기존선을 이용하여 신선건설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고속철도이용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경부축의 선로용량이 이미 수 년 전부터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에 고속철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일반철도의 감축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의 숨겨진 문제는 인력 문제다. 고속철도가 개통되기 전에도 철도의 근로조건은 휴일하루 없는 전근대적인 체제였다. 김영삼 정부시절 추진된 국유철도체제의 경영합리화 방안은 "국유철도특례법"의 이름으로 철도현장에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몰아치게 하였다. 철도청의 경영합리화는 계획이상으로 실행되었다. 철도청은 1996-2001년까지 감축인원 목표인 7,307명보다 432명이 늘어난 7,739명을 확대감축 하였다. 전체 철도 인력의 1/3해당하는 8천명에 가까운 인력이 감축되었고 안산선, 분당선, 경인복선의 연장개통 등으로 철도 현장의 업무는 급증하였다. 철도현장의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한해에도 수 십 명씩 목숨을 잃어가며 현장을 지켰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인력충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일반철도의 인력으로 고속철도 운영까지 하게 되었다. 고속철도의 특성상 일반철도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노동자들이 훈련을 거쳐 선발되었고 이렇게 선발된 인원은 일반철도의 인력부족을 가중시켰으며 고속철도부분의 인력부족 현상도 심화시켰다. 철도현장의 인력부족현상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반열차의 운행을 늘리고 싶어도 현장에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안전한 철도를 위해서도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철도인력충원을 요구해야 한다. 원칙도 없고 대안도 없는 친 자본 언론의 무책임한 공세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언론은 고속철도의 장미 빛 미래를 찬양하며 다가올 교통혁명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언론의 기본 사명인 감시와 비판의 정신은 내팽개친 채 온통 장미 빛 미래를 예찬하다 고속철도 개통이후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자 목소리 높여 철도를 비난하고 있다. 고속철도 도입과 건설과정에서 언론이 제 역할 을 충분히 했다면 수많은 과오들을 바로잡았을 수 있었음에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권에 결탁해 변죽만 올린 언론의 폐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총선 때 고속철도에 대한 공격이 일부언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여권의 정책에 대한 흠집 내기로 이용되었던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론은 시간 있을 때마다 철도의 경영적자 운운하며 철도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철도가 국유체제이기 때문에 돈 되는 사업은 외면하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속철도 개통이후 지방의 지역 간 열차들이 줄자 서민들의 교통권을 외면하는 철도당국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고속철도 운행으로 줄어든 열차의 상당수는 기존 수구적 친자본 언론들의 논리대로라면 진작에 없어져야 했을 열차들이다. 실제로 이들 열차를 운행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확대되어 철도의 경영수지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철도에서 흑자를 내는 노선은 수도권 전철과 경부선뿐이다. 그럼에도 전 지역에 열차를 운행하는 것은 필수 서비스로서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언론이 불같이 들고일어났던 서민들의 교통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익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철도노조는 끊임없이 철도의 공익적 기능 수행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해왔다. 단순한 적자 논리로 철도를 바라보지 말고 철도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얻는 유형, 무형의 이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혼잡비용, 환경오염비용,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 국토이용의 효율성 등 철도를 이용해서 얻는 사회적 이득은 단순한 수치상의 적자를 상쇄하고도 남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철도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는 건교부 과거 수년간 정부는 철도정책의 주무부서인 건교부를 앞세워 철도민영화를 추진해왔다.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영과 경쟁의 마인드가 있는 민영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산업이 낙후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무원칙과 무대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민영화의 폐해로 철도산업이 파탄지경에 까지 이르렀던 영국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정부의 철도정책은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고속철도 건설부채의 철도에로의 전가이다. 정부는 구조개혁과정에서 시설투자의 국가책임을 강조해왔지만 고속철도 건설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이에 대한 채무를 철도 운영수입으로 충당시키려 하고 있다. 내년에 새로 출범하게될 철도공사는 엄청난 고속철도 건설부채를 떠 안고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채의 실상이 앞서 밝혔듯이 온갖 정책의 난맥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몇 배씩 늘어난 상황이고 이는 정부의 책임임에도 철도공사에 떠 넘겨졌다. 이로써 철도공사는 끊임없는 적자경영과 이에 따른 구조조정, 민영화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세계화와 그 불만'이라는 책을 쓴 전 세계은행 부총재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만약 어떤 정부가 썩어 있다면 민영화로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을 근거는 거의 없다. 결국 그 기업을 잘못 경영한 바로 그 부패 정부가 민영화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트로이 목마 - 철도사업법 철도노동자의 두 번에 걸친 파업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철도민영화는 철회되었지만 건교부의 정책적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민영화 정책을 그대로 반영한 철도사업법을 정부발의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철도사업법의 내용은 단순히 철도산업을 재편하는 수준을 넘어 철도를 해외자본에 팔아먹을 수 있는 기초까지 만들고 있다. 한국경제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일FTA협상체결에 있어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철도산업진출에 대해 법적으로 그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사업법에 따르면 고속철도, 일반철도, 도시철도, 국제철도 노선, 이렇게 4종류로 지정·고시하여 향후 분할 민영화의 기본 조건을 만들고 특히 국제철도 부분에 대한 진입장벽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국내철도는 국제철도 여객운송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해외자본 진출을 가능케 하고 있다. (부칙 4조에서 한국철도공사는 국제철도여객운송사업과 국제화물철도 운송사업에 대한 면허를 제한하고 있다) 2003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시장개방 양허안 자료에 따르면 여객 및 화물운송업, 철도운송장비 유지·보수분야 등에서 외국이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교부가 앞장서 한국철도에 일본으로 대표되는 국제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나라의 혈맥인 철도를 팔아먹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꼴인 것이다. 한국철도가 유라시아 철도의 시점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시점에서 구한말 열강들이 조선의 철도 부설권을 놓고 경쟁했듯이 외국자본의 철도개방요구는 날로 커질 것이다. 철도 사업법은 이 밖에도 여객과 화물을 사업별로 분할하고 차량의 정비 및 관리, 임대 등 산업 내 분할을 통해 민영화를 전제로 한 철도산업의 재편을 기도하고 있으며 노동자 파견 및 비정규직 확대를 촉진하는 광범위한 외주업체의 양산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노동의 유연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 7월 입법예정으로 법제처에 계류되어 있는 철도사업법의 위험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우리사회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교육, 의료개방의 물결에 이어 국가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화란 미명 하에 국제자본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시장개방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공공성 강화란 말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서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투쟁으로 자리 매김 될 때이다. 마음을 열고 사회적 연대의 횃불을 올려야 할 것이다. PSSP <참고자료> 영국철도 민영화가 준 교훈 편집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 '비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자본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하곤 했다. 현재 공기업이 적자에 시달리고 국민들에 대한 낙후된 서비스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경쟁 없는 시장 때문이고 그 안에 안주하는 노동자들의 나태함, 경영의 관료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기막힌 것은 이 모습과 논리가 지난 영국의 민영화 논쟁과 참으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국인 영국은 이미 많은 공기업을 비롯한 기간산업을 민영화했다. 하지만 민영화가 해법이 아님을 영국 철도의 민영화 폐지를 통해 영국은 보여주고 있다. 영국철도는 2002년 10월3일 다시 공공소유로 전환되었다. 민영화가 대안이라고 줄곧 주장하던 영국마저 왜 다시 민영화를 철회하였는가.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영국철도에 대한 자료로 '탈선-영국 철도 대란의 원인, 경과 그리고 해법'(앤드루 머리(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 공보 담당관)지음, 오건호(민주노총 정책부장) 옮김, 이소출판사, 2003)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영국철도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공공소유가 되었는지 상세히 증언하고 있다. 철도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영국에서였다. 처음 철도는 민간기업들이 운영하였는데, 그 수는 1881년 무려 351개에 달했고 이후 회사간 통합으로 20세기 초에는 100여 개로 줄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철도의 통합적 운영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경험을 통해 철도의 국유화 주장이 일어났다. 결국, 민간철도 회사조차도 철도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해져 경영이 어려워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조합과 노동당의 제기, 그리고 노동당의 수권으로 결국 철도산업은 국유화되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영국에서 도로교통은 급속히 성장한 반면, 철도산업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결국 적자 철도 노선들이 도로교통에 밀려 사라지거나 비용손실이 크다는 이유로 폐쇄되면서 전체 화물과 여객 수송에서 철도산업이 차지하는 비율도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이 적자의 해결책으로 민영화방안이 제출되었다. 민영화를 당론으로 확정한 보수당이 수권하게 되고 1993년 철도 민영화 법안이 입법 완료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1994년 민영화 예비조직으로 전환, 1995년 민간기업으로 팔리기 시작하면서 1997년 4월에 철도 민영화가 완료되었다. 철도 공사의 주요사업들은 50여 개의 민간 기업으로 나누어져 매각되었고, 소규모 철도 수리 회사, 주변 회사들을 합치면 기존 철도 공사의 기능은 100여 개의 민간 기업으로 분할되었다. 물론 1993년 철도 민영화 법에 의해 철도 산업을 규제하는 철도 규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도 이후 터져 나오는 철도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민영화를 진행하면서 정부의 최대고민은 과연 어떤 기업이 적자상태에 놓인 철도를 살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증액하여 민간기업의 이윤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실제 많은 나라에서 철도는 적자로 운영되고 50%이상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데 영국의 경우 20%정도를 보조금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금으로 요금이 비쌌던 영국 철도가 민영화 된 이후, 거의 2배에 이르는 보조금을 철도산업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는 민영화 입장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더 많은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혈세와 민영화를 통해 이득을 본 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철도를 사들인 레일트랙이었다. 레일트랙은 민간주식회사로서 단기 이윤에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레일트랙으로서는 주식 시장에서 레일트랙의 기업 가치를 제고시키고 주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는 철도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인 철도 투자가 방기되는 것을 의미했고 최소한의 시설 유지 보수 작업에 소홀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 기업의 극단적인 이윤추구는 노동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제어할 수 없었는데, 결국 이는 영국철도의 대형참사를 몰고 왔다. 1997년 런던 서부의 사우스 올에서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레이트 웨스턴 급행 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자동 보호 장치의 미설치였다. 하지만 레일 트랙은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10월 런던 패딩턴 역 근방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가 충돌하여 31명이 생명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역시 신호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도, 국민들도 자동 보호장치의 설치를 적극 요구했다. 하지만 민간기업 레일트랙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세번 째 사고가 발생하는데 2000년 10월 햇필드 근방에서 달리던 열차가 전복되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레일트랙과 하청계약을 맺은 유지보수 회사가 균열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방치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국적인 선로보수작업과 시설 개선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영국 철도 대란으로 이어졌다. 민영화 이후 철도는 예전보다 정시성이 떨어졌고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북이 걸음이었다. 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요금이었는데, 예를 들어 약 세 시간이 안 걸리는 런던/맨체스터 자유왕복표는 무려 44퍼센트가 인상되어 141파운드(28만원)이나 되었다. 어차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승객이 있다고 했을 때, 승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영국사회가 철도 민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요금 인상, 서비스 후퇴, 시설 황폐화였다.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의 고통을 안아야 했다. 물론 이를 통해 이득을 얻은 계층은 철도산업을 인수한 자본과 이들에 빌붙어 사는 정치세력이다. 신자유주의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것이다. 현재 영국철도는 공공소유가 되어 '비(非)이윤 기구'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공단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공공 철도 총회를 두고 있다. 사기업의 주주 총회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 이 총회는 승객, 시민, 노조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익 회원60명 그리고 철도 산업 관련 업계 회원40명 등 총 100명으로 구성된다. 영국 철도가 민영화를 폐지하고 공공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민영화의 폐해도 있었지만, 분노한 국민들과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철도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역에서, 철로에서,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시 간선 노선 차장, 교외 철도 노선 계약 업무 관리자, 화물 열차 회사 기관사, 도시 간선 노선 기관사, 지역노선기관사, 노스 웨스트 노선 신호수, 사우스 웨스트 선로 보수 노동자, 런던 교외 노선 기관사, 안전 감독관, 런던 역사 플랫폼 역무원, 매표원, 도시 간선 열차 운행사 재무 관리자, 선로 유지 보수 회사 신호 제어사, 이스트 미들랜드 노선 신호수 등. 그 노동자들은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민영화로 인해 잃은 목숨과 주주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빠져나간 국민들의 세금, 그리고 노동유연화를 통해 직장을 잃거나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삶과 엄청난 요금과 안전에 대한 불안함으로 철도에 올랐을 승객들의 손해는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논란에 부쳐 국민연금 8대 비밀 - 국민연금 폐지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5월 초부터 인터넷 상에서 ‘국민연금 8대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이 유포되었다. 노령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등 수급권에 대한 일부 타당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여기에 ‘납세자연맹’ 등 일부 시민단체들이 가세하면서 바야흐로 국민연금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는 ‘촛불시위’에 이른 상황이다. 이에 복지부는 부랴부랴 폐지론을 진화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단기처방을 내놓았고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연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애초 국민들이 가장 큰 불만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1)적은 급여 (현재 40년 납부해야 평균소득의 60% 지급. 정부 개악안대로 하면 2070년에는 평균 34만원이 됨. 이는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수준) 2) 체납자에 대한 강제징수 (실업, 신용불량 등으로 인해 체납하는 경우 가압류 등을 통해 강제징수함) 3) 각종 제한조치 (배우자 사망시 연금은 자기연금과 배우자 연금중 많은 것 택일. 60세 이상 노인이 경제활동으로 소득이 있으면 이를 감액 등) 이다. 정부의 연금 개악 조치 정부는 작년에 연금 개악안을 발표하고 올해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는 연금 납부액을 월 9%에서 15%로 인상하고 급여액을 60%에서 40%로 낮추는 것이다. 소위 ‘저부담-고급여’를 ‘적정부담-적정급여’로 개선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노후소득의 보장과 거리가 멀다. 정부는 2047년이면 연금재정이 고갈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재정추계는 턱없이 낮은 출산율 등에 근거하고 있어서 신뢰할 수 없고 이를 근거로 해서 보험료를 두배 가까이 늘리고 지급액을 20%나 줄인다는 것은 연금을 ‘용돈’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전국민적으로 분출하자 정부는 땜질식으로 ‘압류 등을 통한 체납 처분을 가급적 하지 않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러한 개악안은 그대로 통과시키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연금 개혁의 본질 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천문학적인 연금 적립액이다. 국민연금은 세계 10대 기금의 하나이며 향후 5년 내에 미국의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등 유명펀드를 누르고 최대 기금이 된다고 한다. 2025년경에는 기금 규모가 약 1256조원으로 GDP대비 48.7%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는 것은 거대한 연기금을 자본시장을 부양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즉 자본의 이윤율이 낮아진 신자유주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금융부문의 팽창으로 이윤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자본의 이해에 따라 자본시장의 거대한 자금원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 자체가 불안하고 세계적인 경기변동에 따라 널뛰기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천문학적인 투자손실로 이어져 그 피해가 민중에게 돌아올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지난 4월 현재 120조원 규모인데 이중 금융자산에 105조, 공공예탁금에 13조, 복지부문에 4076억, 기타 3108억을 투자하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는 91%인 96조원이 채권에, 8%인 8조원이 주식에, 벤처 등 대체투자에 2517억이 투자되고 있는데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고 해외 자본시장 투자도 추진되고 있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자금 적립은 국내외 금융시장 투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불안정한 금융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사실 국민연금 폐지론은 ‘민간 사적보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국내 사적 연금보험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외국계 보험사도 대거 진출한 상황이어서 이들은 언제든지 국민연금을 약화시키고 사적 연금을 전면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자본의 이윤논리에 노후소득을 저당 잡힐 수는 없다. 문제는 노동자 민중에게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자체에서 배제되고 있는 비정규직 등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예산조정, 직접세 확대, 법인세 강화, 자본거래세 등을 통해 저소득 불안정노동층 및 저소득자와 농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연금급여액을 노동자들의 평균 총임금의 70%를 하한선으로 하는 급여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덧붙여 사적연금의 확장도 반대되어야 한다. 연금의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안정적이고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연금 개악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