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세계사회포럼은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할 것인가? -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전 소 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급속한 발전, 그러나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2001년에 시작되어 세계적 확산과 확대를 급속히 거듭한 세계사회포럼이 지난 1월 31일 다섯 번째 회합을 마쳤다.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 역시 기록을 갱신하였다. 135개국 15만 5천명의 인파가 2,500여개 행사에 참여했다. 2001년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시작한 이래로 참가자 수가 무려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연례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뿐 아니라 일국 차원의 사회포럼은 물론이고, 대륙별 사회포럼, 주제별 사회포럼 또는 "주체별" 사회포럼이 각각 여러 차례 개최되면서 세계사회포럼은 하나의 '과정'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과 브라질 지식인 몇 명이 창안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정'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결과이자 또한 국제주의 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계사회포럼 초기에 노암 촘스키는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인터내셔널"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어떠한 운동이든 성장하고 확산되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날카로움을 잃어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와 성찰, ‘갱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사회포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성과를 안고 태어났으며, 향후 지구적 운동의 질적 발전을 꾀한다는 임무를 자임한 세계사회포럼 또한 냉철한 평가와 성찰을 하고 자기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기 위한 중요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현재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의 부재, 여성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와 대표성의 부족, 특정 세력의 주도권, 재력을 가진 소수 엔지오들의 과도한 권력화, 행동이 결여된 '백화점 식' 행사, '다른 세계'로 표현되는 정치적 지향의 모호함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으며,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내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핵심적으로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1) 1차부터 3차 세계사회포럼이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됐고 4차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된 만큼, 4차 세계사회포럼을 전후로 한 논의는 주로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국제화’, 세계사회포럼 ‘과정’의 확산이었으나,2) 이제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공간인가 운동인가?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에 의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시민사회의 집단과 운동이 […] 상호연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며, “어떤 형태의 포럼이든 그 포럼을 대변하여 어느 누구도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 또한 “포럼 참가자들은 모든 또는 일부 참가자들이 하나의 기구로서 포럼의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선언 또는 행동 제안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든 갈채 방식으로든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즉 세계사회포럼은 ‘공간’이므로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의 명의로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간’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한다는 거시적 지향은 있지만 정치적인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중립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 다분히 정치적인 - 향후 운동의 전략과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하나의 공통된 목소리로 수렴해 나갈 것인가?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규정이 여러 의문을 낳기 시작하자, 세계사회포럼을 ‘공간’이지만 또한 ‘운동’으로 규정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 자율성, 반권위주의, 조직체계에 대한 거부, ‘기존’ 정치세력(특히 정당)과 결별, 수평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 단지 ‘공간’이어야 하며,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규정하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3) 반면,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을 인정하되, 이제는 당파성 내지는 정치적 방향을 가지면서 의견을 모아나가야 하며, 이를 행동으로 표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을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조직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단지 토론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효성을 다했고,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초기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워크샵과 세미나도 이미 여러 번 개최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계기를 통해 국제위원회 내 토론이 한층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04년 인도 세계사회포럼 폐막식에서 사회운동 활동가총회의 투쟁호소문이 낭독되었는데 언론이 이를 마치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처럼 보도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언론의 무지 또는 오해가 아니라 왜 ‘공식’ 폐막식에서 ‘특정 세력’의 호소문이 낭독됐냐는 것이었다. 또한 최소한 이라크 침공이나 WTO 칸쿤 각료회의와 같이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 그리고 국제위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낼 수도 있지 않냐는 제기가 나온 적도 있다. 국제위원회에서 논쟁이 되다가 결국 그러한 문제제기는 이를 ‘금지’하고 있는 원리헌장에 굴복했다. 또한 5차 세계사회포럼에서 제출된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 문서를 둘러싼 논쟁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4) 문서를 작성한 자들이 워낙 유명 인사들인데다가 국제위원들이 여러 명 포함되어 있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간’ 또는 ‘운동’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이 상호 대립적인 개념도 아니거니와 세계사회포럼을 이 둘 간 단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공간론’의 약점은 세계사회포럼을 도구적이며 탈정치적인,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 전락시킨다는 데 있으며, 정치적 전망을 봉쇄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낸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참가자들 간 민주적이고 열려 있는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간’이자, 또한 제국주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한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사회포럼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한층 고조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며,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일궈내는 데 있어서 어떠한 민주적 절차와 조직적 구조를 수립할 것이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이미 생동하고 있는 각국의 투쟁들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모든 운동을 세계사회포럼으로 수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백화점 식 토론을 넘어, 행동으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그 간의 평가 중 하나는 매년 2,000여개가 넘는 워크샵과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는데 논의가 반복되고 있고 어느 곳으로도 수렴되지 않는 채 백화점식으로 나열되고 있으며 토론만 무성하고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 초기에는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상징적이었으며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세계사회포럼도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각 나라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 투쟁과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열린 ‘공간’이지만 가능한 틀 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실천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위원회는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부터 새로운 ‘방법론(methodology)’을 도입했다. 방법론이란 사회포럼이란 행사를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절차이자 또한 진행방식이다.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은 개최국의 조직위원회가 지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직위원회가 방향과 연사를 모두 결정하는 대규모 ‘중앙’ 행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있으며 참가자들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자,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중앙‘ 행사의 비중을 대폭 줄였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에는 공식 ’중앙‘ 행사가 아예 없었고 오로지 참가자들이 신청한 2,500개 행사로만 진행되었다. 또한 조직위원회가 주제를 정하지도 않았다. 5차 세계사회포럼의 11가지 주제는 작년 5월부터 두 달 간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해졌다. 참가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고취하고, 참가자 중심의 세계사회포럼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한편, ‘반복적 논의와 행동의 결여’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각 주제별 다양한 행사들을 가능한 한 통합하고 논의내용을 수렴해나가며 최종적으로 공동의 행동전략을 만들어나갈 것을 독려했다. 예를 들어,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단위들과 함께 반전총회, 여성총회, 외채반대 총회, 자유무역 반대 총회 등을 진행한 후 마지막 날 사회운동총회에서 각 주제별 회의에서 나온 여러 행동계획을 하나의 투쟁호소문5)으로 모아냈다. 이런 ‘방법론’은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이 보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다. 이런 면에서 긍정적이며 또한 ‘공간이냐 운동이냐’라는 논쟁에 대한 미약하게나마 ‘화해’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도 여전히 2,500개 행사의 ‘백화점’이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실천계획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또한 여성이나 인종 문제는 부문 의제가 아니므로 11가지 주제를 모두 관통하는 횡적 주제라고 결의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국제위원회는 아직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평가하지 않았다. 국제위원회는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한 첫 실험이었으므로 앞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단지 새로운 ‘방법론’, 즉 더욱 효과적인 ‘운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즉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수립하는 데 세계사회포럼이 어떠한 식으로 복무할 것인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훌륭한 방법론을 도입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운동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세계사회포럼? 최근 국제위원회 내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은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다.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은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개최되는 동일한 시기에 개최되었으며, 아울러 국가별, 소대륙별, 대륙별 사회포럼들이 그 사이에 개최되고 있어 사실상 매년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개의 사회포럼‘들’이 개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현재의 1년에서 2년 혹은 3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이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나왔고,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지난 파시그나노 회의에 이어 이번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까지 이어졌다. 이 논쟁에는 2006년도 개최지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국제위원회는 2004년 인도 개최와 2005년 브라질 개최를 동시에 결정했고, 준비시간이 필요한 아프리카는 2007년에 개최하기로 했다. 문제는 2006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여성행진이나 비아깜페시나, 그 외 대중운동을 우선시하는 단위들은 이토록 많은 사회포럼들이 결국 현장에서의 조직화, 각 급 사회운동들의 투쟁에 질곡이 되고 있다는 제기하면서 세계사회포럼을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대해, 세계사회포럼이 세계경제포럼과 동일한 시기에 매년 개최되지 않으면 ‘정치적 공백’이 생기며, 이것은 곧 세계사회포럼의 패배를 의미하므로 매년 개최해야 한다는 반박이 나왔다. 결국 최근 포르투알레그레 회의는 주기에 대해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2006년 세계사회포럼은 여러 대륙 또는 지역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중재안으로 논쟁을 봉합했다. 세계사회포럼 주기에 대한 논쟁은 표면적으로 활동 상 ‘여력’의 문제로 제기되었지만, 이 논쟁 이면에는 역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견과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늘리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인정하지만 결국 반전·반세계화 투쟁은 각 국가와 지역 등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한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가 중요한 힘이자 세력이므로 이를 중심에 두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사회포럼이 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정 중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주로 사회운동 단위들이 제기하고 있는 2-3년 주기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이 비록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될지언정, 그 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장을 이용해 전 지구적 공동 투쟁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이런 결의를 각 지역과 국가의 ‘거리’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시간’과 ‘여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주로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를 통해 정당성과 생명력을 유지해나가는 엔지오들이다.6)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 내로 활동을 국한시키지 않으려는, 그럼으로써 세계사회포럼의 위상을 그만큼 ‘깎아내리려는’ 사회운동들을 경계하고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 위 세 가지 논점은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방법론이 이를 향한 진일보라 생각하면서 매년 개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세계사회포럼은 엄밀한 ‘공간’일 뿐이며 매년 개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위 쟁점을 관통하는 공통된 축은 바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고민이며, 사회운동들과 몇몇 주요 엔지오들 간 긴장 관계, 그리고 운동의 전술과 지향의 상이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새로운 전망과 대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목말라하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현 상태를 반영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WTO 각료회의가 무산과 재개를 반복하고,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이라크 침공을 전후로 제국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폭함과 그 속에 내재된 모순의 극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지고 있다. 반전·반세계화 운동은 그 동안 광범위한 저항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 만큼 대안과 전략의 차이가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며, 세계사회포럼이 이 속에서 어떠한 위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위원회 내 논쟁,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이후 전망에 대한 논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냐 ‘운동’이냐를 못 박아 규정하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방법론’을 채택할 것인가, 또는 주기를 몇 년으로 할 것인가도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논쟁의 이면에는 일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격변하는 현재의 정세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사회포럼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실천에 대한 모색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운동의 전략과 대안을 생산해낸다는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체되어 있다. 이 논쟁들이 어떠한 결론으로 마무리 되든,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이러해야 한다. 즉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의 성과와 성장 곧 몇 명이 모여서 몇 개의 행사를 하느냐, 또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포럼‘들’이 개최되느냐가 아니라, 이런 사회포럼들이 진정 투쟁을 조직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는가, 전략과 대안을 논의하는 데 적합한 회합인가,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적절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PSSP 1)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는 세계사회포럼의 기본적인 운영, 개최 주기, 개최지 등을 다루는 의사결정 단위로, 세계 여러 부문에 걸쳐 150여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위원회 회의는 1년에 두세 번 개최된다. 최근 개최된 회의로는 2004년 4월에 열린 이탈리아 파시그나노 회의와 5차 세계사회포럼 개막 직전인 올해 1월 24-25일에 열린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가 있다. 2)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 과정과 이를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논쟁은 다음 글 참조: 전소희, 세계사회포럼의 성장통, 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 호. 3) 세계사회포럼이 ‘공간’이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세계사회포럼의 발의자이자 현재 세계사회포럼 국제사무국 브라질부문 일원인 치코 위테커이다. 다음 글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간론’을 볼 수 있다. Chico Whitaker, “The WSF as Open Space”, www.choike.org 4)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consensus)'란 5차 세계사회포럼 때 진행된 한 토론회의 결과로 나온 문서이다. 이 문서는 ‘G19'란 별칭을 얻은 19명의 인사들이 발의했는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12가지 의제를 서술하고 있다. 19명은 세계사회포럼 모든 참가자들이 이 문서에 연명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 문서가 반대를 넘어 ‘다른 세계’에 좀 더 근접해지기 위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문서는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참가자들 간 공동의 의제와 행동을 수렴해나가기 위한 시도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12가지 의제는 그 동안 이미 제기되어온 의제로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저명인사들 중심이라는 점(그래서 G19라 불린 것이다), 조직적·운동적 결의가 바탕이 되었다기보다 개인적 명망성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 19명 중 18명이 남성이라는 점 등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19명 대부분 국제위원회 위원이기에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 문서를 발의한 19명은 2명의 노벨 수상자를 포함하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베르나르 까쌩, 이그나시오 라모네, 에미르 사데르, 엠마누엘 월러스타인, 월든 벨로, 타리크 알리, 아돌포 에스끼벨 등이다. 문서 내용 및 관련 기사는 www.ipsterraviva.net에서 볼 수 있다. 5) “사회운동의 호소문: 전쟁, 신자유주의, 착취와 배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국민행동 홈페이지에서 번역본을 찾아 볼 수 있다. htttp://antiwto.jinbo.net 6) 물론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1년으로 유지하자는 주장에는 여러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두드러진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세계사회포럼은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할 것인가? -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을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쟁점 전 소 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 급속한 발전, 그러나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2001년에 시작되어 세계적 확산과 확대를 급속히 거듭한 세계사회포럼이 지난 1월 31일 다섯 번째 회합을 마쳤다.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 역시 기록을 갱신하였다. 135개국 15만 5천명의 인파가 2,500여개 행사에 참여했다. 2001년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시작한 이래로 참가자 수가 무려 10배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연례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뿐 아니라 일국 차원의 사회포럼은 물론이고, 대륙별 사회포럼, 주제별 사회포럼 또는 "주체별" 사회포럼이 각각 여러 차례 개최되면서 세계사회포럼은 하나의 '과정'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행사'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과 브라질 지식인 몇 명이 창안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정'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한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결과이자 또한 국제주의 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계사회포럼 초기에 노암 촘스키는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인터내셔널"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경험하듯이 어떠한 운동이든 성장하고 확산되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지고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날카로움을 잃어가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와 성찰, ‘갱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사회포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성과를 안고 태어났으며, 향후 지구적 운동의 질적 발전을 꾀한다는 임무를 자임한 세계사회포럼 또한 냉철한 평가와 성찰을 하고 자기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기 위한 중요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현재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의 부재, 여성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와 대표성의 부족, 특정 세력의 주도권, 재력을 가진 소수 엔지오들의 과도한 권력화, 행동이 결여된 '백화점 식' 행사, '다른 세계'로 표현되는 정치적 지향의 모호함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으며,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내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핵심적으로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1) 1차부터 3차 세계사회포럼이 포르투알레그레에서 개최됐고 4차 세계사회포럼이 인도에서 개최된 만큼, 4차 세계사회포럼을 전후로 한 논의는 주로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국제화’, 세계사회포럼 ‘과정’의 확산이었으나,2) 이제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공간인가 운동인가?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에 의하면, 세계사회포럼은 “시민사회의 집단과 운동이 […] 상호연계를 형성하기 위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며, “어떤 형태의 포럼이든 그 포럼을 대변하여 어느 누구도 모든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없다.” 또한 “포럼 참가자들은 모든 또는 일부 참가자들이 하나의 기구로서 포럼의 입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선언 또는 행동 제안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든 갈채 방식으로든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즉 세계사회포럼은 ‘공간’이므로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의 명의로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간’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한다는 거시적 지향은 있지만 정치적인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중립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 다분히 정치적인 - 향후 운동의 전략과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하나의 공통된 목소리로 수렴해 나갈 것인가?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규정이 여러 의문을 낳기 시작하자, 세계사회포럼을 ‘공간’이지만 또한 ‘운동’으로 규정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 자율성, 반권위주의, 조직체계에 대한 거부, ‘기존’ 정치세력(특히 정당)과 결별, 수평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 단지 ‘공간’이어야 하며,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규정하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3) 반면,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다양성을 인정하되, 이제는 당파성 내지는 정치적 방향을 가지면서 의견을 모아나가야 하며, 이를 행동으로 표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세계사회포럼을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조직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단지 토론만을 위한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은 유효성을 다했고,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세계사회포럼 초기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워크샵과 세미나도 이미 여러 번 개최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계기를 통해 국제위원회 내 토론이 한층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04년 인도 세계사회포럼 폐막식에서 사회운동 활동가총회의 투쟁호소문이 낭독되었는데 언론이 이를 마치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처럼 보도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언론의 무지 또는 오해가 아니라 왜 ‘공식’ 폐막식에서 ‘특정 세력’의 호소문이 낭독됐냐는 것이었다. 또한 최소한 이라크 침공이나 WTO 칸쿤 각료회의와 같이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 그리고 국제위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낼 수도 있지 않냐는 제기가 나온 적도 있다. 국제위원회에서 논쟁이 되다가 결국 그러한 문제제기는 이를 ‘금지’하고 있는 원리헌장에 굴복했다. 또한 5차 세계사회포럼에서 제출된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 문서를 둘러싼 논쟁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4) 문서를 작성한 자들이 워낙 유명 인사들인데다가 국제위원들이 여러 명 포함되어 있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간’ 또는 ‘운동’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이 상호 대립적인 개념도 아니거니와 세계사회포럼을 이 둘 간 단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공간론’의 약점은 세계사회포럼을 도구적이며 탈정치적인,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 전락시킨다는 데 있으며, 정치적 전망을 봉쇄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 명의로 성명서를 낸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참가자들 간 민주적이고 열려 있는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간’이자, 또한 제국주의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적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한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사회포럼이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한층 고조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며,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일궈내는 데 있어서 어떠한 민주적 절차와 조직적 구조를 수립할 것이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이미 생동하고 있는 각국의 투쟁들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모든 운동을 세계사회포럼으로 수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백화점 식 토론을 넘어, 행동으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그 간의 평가 중 하나는 매년 2,000여개가 넘는 워크샵과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는데 논의가 반복되고 있고 어느 곳으로도 수렴되지 않는 채 백화점식으로 나열되고 있으며 토론만 무성하고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 초기에는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상징적이었으며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세계사회포럼도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각 나라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 투쟁과 거리가 생기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열린 ‘공간’이지만 가능한 틀 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실천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위원회는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부터 새로운 ‘방법론(methodology)’을 도입했다. 방법론이란 사회포럼이란 행사를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절차이자 또한 진행방식이다.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은 개최국의 조직위원회가 지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직위원회가 방향과 연사를 모두 결정하는 대규모 ‘중앙’ 행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져 있으며 참가자들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자,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중앙‘ 행사의 비중을 대폭 줄였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에는 공식 ’중앙‘ 행사가 아예 없었고 오로지 참가자들이 신청한 2,500개 행사로만 진행되었다. 또한 조직위원회가 주제를 정하지도 않았다. 5차 세계사회포럼의 11가지 주제는 작년 5월부터 두 달 간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해졌다. 참가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고취하고, 참가자 중심의 세계사회포럼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한편, ‘반복적 논의와 행동의 결여’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각 주제별 다양한 행사들을 가능한 한 통합하고 논의내용을 수렴해나가며 최종적으로 공동의 행동전략을 만들어나갈 것을 독려했다. 예를 들어,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반전, 반세계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단위들과 함께 반전총회, 여성총회, 외채반대 총회, 자유무역 반대 총회 등을 진행한 후 마지막 날 사회운동총회에서 각 주제별 회의에서 나온 여러 행동계획을 하나의 투쟁호소문5)으로 모아냈다. 이런 ‘방법론’은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이 보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다. 이런 면에서 긍정적이며 또한 ‘공간이냐 운동이냐’라는 논쟁에 대한 미약하게나마 ‘화해’의 실마리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5차 세계사회포럼도 여전히 2,500개 행사의 ‘백화점’이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실천계획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또한 여성이나 인종 문제는 부문 의제가 아니므로 11가지 주제를 모두 관통하는 횡적 주제라고 결의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국제위원회는 아직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평가하지 않았다. 국제위원회는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한 첫 실험이었으므로 앞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단지 새로운 ‘방법론’, 즉 더욱 효과적인 ‘운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즉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수립하는 데 세계사회포럼이 어떠한 식으로 복무할 것인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훌륭한 방법론을 도입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운동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세계사회포럼? 최근 국제위원회 내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은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다.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은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개최되는 동일한 시기에 개최되었으며, 아울러 국가별, 소대륙별, 대륙별 사회포럼들이 그 사이에 개최되고 있어 사실상 매년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개의 사회포럼‘들’이 개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현재의 1년에서 2년 혹은 3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이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나왔고,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지난 파시그나노 회의에 이어 이번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까지 이어졌다. 이 논쟁에는 2006년도 개최지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국제위원회는 2004년 인도 개최와 2005년 브라질 개최를 동시에 결정했고, 준비시간이 필요한 아프리카는 2007년에 개최하기로 했다. 문제는 2006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여성행진이나 비아깜페시나, 그 외 대중운동을 우선시하는 단위들은 이토록 많은 사회포럼들이 결국 현장에서의 조직화, 각 급 사회운동들의 투쟁에 질곡이 되고 있다는 제기하면서 세계사회포럼을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대해, 세계사회포럼이 세계경제포럼과 동일한 시기에 매년 개최되지 않으면 ‘정치적 공백’이 생기며, 이것은 곧 세계사회포럼의 패배를 의미하므로 매년 개최해야 한다는 반박이 나왔다. 결국 최근 포르투알레그레 회의는 주기에 대해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2006년 세계사회포럼은 여러 대륙 또는 지역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중재안으로 논쟁을 봉합했다. 세계사회포럼 주기에 대한 논쟁은 표면적으로 활동 상 ‘여력’의 문제로 제기되었지만, 이 논쟁 이면에는 역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견과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늘리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인정하지만 결국 반전·반세계화 투쟁은 각 국가와 지역 등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우선순위를 두고자 한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가 중요한 힘이자 세력이므로 이를 중심에 두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사회포럼이 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정 중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주로 사회운동 단위들이 제기하고 있는 2-3년 주기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이 비록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될지언정, 그 틀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사회운동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장을 이용해 전 지구적 공동 투쟁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이런 결의를 각 지역과 국가의 ‘거리’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시간’과 ‘여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1년 주기를 유지하자는 측은 주로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를 통해 정당성과 생명력을 유지해나가는 엔지오들이다.6)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이라는 틀 내로 활동을 국한시키지 않으려는, 그럼으로써 세계사회포럼의 위상을 그만큼 ‘깎아내리려는’ 사회운동들을 경계하고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회포럼이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 위 세 가지 논점은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세계사회포럼을 ‘운동’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방법론이 이를 향한 진일보라 생각하면서 매년 개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세계사회포럼은 엄밀한 ‘공간’일 뿐이며 매년 개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위 쟁점을 관통하는 공통된 축은 바로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전망’에 대한 고민이며, 사회운동들과 몇몇 주요 엔지오들 간 긴장 관계, 그리고 운동의 전술과 지향의 상이함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새로운 전망과 대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목말라하는 반전·반세계화 운동의 현 상태를 반영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WTO 각료회의가 무산과 재개를 반복하고,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이라크 침공을 전후로 제국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폭함과 그 속에 내재된 모순의 극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지고 있다. 반전·반세계화 운동은 그 동안 광범위한 저항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 만큼 대안과 전략의 차이가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며, 세계사회포럼이 이 속에서 어떠한 위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위원회 내 논쟁, 즉 세계사회포럼의 정체성과 이후 전망에 대한 논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냐 ‘운동’이냐를 못 박아 규정하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방법론’을 채택할 것인가, 또는 주기를 몇 년으로 할 것인가도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논쟁의 이면에는 일국적 수준에서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격변하는 현재의 정세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사회포럼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실천에 대한 모색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운동의 전략과 대안을 생산해낸다는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체되어 있다. 이 논쟁들이 어떠한 결론으로 마무리 되든,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이러해야 한다. 즉 세계사회포럼 그 자체의 성과와 성장 곧 몇 명이 모여서 몇 개의 행사를 하느냐, 또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포럼‘들’이 개최되느냐가 아니라, 이런 사회포럼들이 진정 투쟁을 조직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는가, 전략과 대안을 논의하는 데 적합한 회합인가,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적절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PSSP 1) 세계사회포럼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는 세계사회포럼의 기본적인 운영, 개최 주기, 개최지 등을 다루는 의사결정 단위로, 세계 여러 부문에 걸쳐 150여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위원회 회의는 1년에 두세 번 개최된다. 최근 개최된 회의로는 2004년 4월에 열린 이탈리아 파시그나노 회의와 5차 세계사회포럼 개막 직전인 올해 1월 24-25일에 열린 포르투알레그레 회의가 있다. 2) 세계사회포럼의 국제화 과정과 이를 둘러싼 국제위원회의 논쟁은 다음 글 참조: 전소희, 세계사회포럼의 성장통, 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 호. 3) 세계사회포럼이 ‘공간’이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세계사회포럼의 발의자이자 현재 세계사회포럼 국제사무국 브라질부문 일원인 치코 위테커이다. 다음 글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간론’을 볼 수 있다. Chico Whitaker, “The WSF as Open Space”, www.choike.org 4) ‘포르투알레그레 컨센서스(consensus)'란 5차 세계사회포럼 때 진행된 한 토론회의 결과로 나온 문서이다. 이 문서는 ‘G19'란 별칭을 얻은 19명의 인사들이 발의했는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12가지 의제를 서술하고 있다. 19명은 세계사회포럼 모든 참가자들이 이 문서에 연명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 문서가 반대를 넘어 ‘다른 세계’에 좀 더 근접해지기 위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문서는 그 동안 세계사회포럼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참가자들 간 공동의 의제와 행동을 수렴해나가기 위한 시도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12가지 의제는 그 동안 이미 제기되어온 의제로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저명인사들 중심이라는 점(그래서 G19라 불린 것이다), 조직적·운동적 결의가 바탕이 되었다기보다 개인적 명망성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 19명 중 18명이 남성이라는 점 등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19명 대부분 국제위원회 위원이기에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 문서를 발의한 19명은 2명의 노벨 수상자를 포함하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베르나르 까쌩, 이그나시오 라모네, 에미르 사데르, 엠마누엘 월러스타인, 월든 벨로, 타리크 알리, 아돌포 에스끼벨 등이다. 문서 내용 및 관련 기사는 www.ipsterraviva.net에서 볼 수 있다. 5) “사회운동의 호소문: 전쟁, 신자유주의, 착취와 배제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국민행동 홈페이지에서 번역본을 찾아 볼 수 있다. htttp://antiwto.jinbo.net 6) 물론 세계사회포럼의 주기를 1년으로 유지하자는 주장에는 여러 다른 맥락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국제위원회 회의에서 두드러진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하겠다.
5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발견한 대안세계화를 위한 '운동'들 투쟁을 세계화하자! 희망을 세계화하자! - 5회 세계사회포럼에서 발견한 대안세계화를 위한 ‘운동’들 최 예 륜 | 정책편집부장 도시는 뜨거웠다. 이제 막 무더위의 초입으로 돌입하는 계절 탓이기도 했겠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전통적 집권지였다가 최근 실각한, 그리고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여 세계 사회운동들을 모아 대안을 토론하고 조직하겠노라는 야심찬 계획을 포용한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는 그만큼 뜨거웠다. 땅 위에서 이글거리는 잠재력과 에너지가 넘실대는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2월 26일, 20만의 행진은 시작되었다. 브라질, 룰라 2004년을 제외하고 네 번째 세계사회포럼을 맞는 포르투 알레그레 시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회운동들을 맞이하는 것이 무척 익숙해보였다. 15만 명 이상의 참가자를 포괄한 규모면에서도 그렇고 세계 사회운동의 논쟁과 토론의 과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FTAA(미주지대 자유무역협정, ALCA)를 비롯하여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펼쳐온 룰라정부에 대한 선명한 입장차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논쟁지형과 PT뿐만 아니라 남미 범좌파 정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짐작케 하는 실마리가 제공되었다. 개막행진을 준비 중인 무대 한켠에서는 PT의 당원들이 PT의 깃발과 ‘100% Lula’라고 적힌 붉은 티셔츠를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행진은 P-Sol(사회주의와 자유당, PT에서 출당한 좌파), PSTU(사회주의노동자당), PCB(브라질 공산당, 레닌주의 계열), PCDoB(브라질 공산당, 마오주의 계열) 등의 좌파정당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이들은 룰라가 다보스 포럼에 참가하고 FTAA에 찬성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P-Sol의 경우는 행진 내내 “배신자”, “룰라는 신자유주의자다” 등 룰라와 PT 주류세력에 대한 조롱이 담긴 구호들을 외치며 자신의 입장을 선명히 드러내기도 했다. 27일 오전 10시 짐나시오 지간티뉴(Gimnasio Gigantino) 체육관에서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의 연설이 진행되었다. 룰라는 자신이 다보스와 세계사회포럼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며, 빈곤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발언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다음날 다보스포럼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우려가 담긴 열정적인 지지와 한편으로는 엄청난 야유가 교차했다. 연설 진행 중인 체육관 밖에서는 룰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집회가 P-SoL, PSTU 등의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많은 수의 사람이 참가한 가운데 제임스 페트라스 콜럼비아 대학 교수가 초청돼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다보스 포럼에서 샤론스톤이 탄자니아를 돕기 위한 1만 달러를 내놓으며 모금을 제안하고 그 자리에서 10만 달러가 걷혔을 때 빌게이츠와 함께 그 자리에 앉아있던 룰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 당시 선언했던 빈곤 퇴치를 위한 “제로 빈곤 프로그램”과 토지개혁 등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고 있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룰라는 집권 초기에 브라질 외환위기 이후 브라질의 경제를 짓누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억압을 탈피하고 심각한 경제난과 빈곤,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는 2002년 선거캠페인을 앞두고 대선과정에서 MST(무토지 농민운동) 등이 제안한 FTAA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거부했다. 대신에 PT는 FTAA를 ‘개선’하기 위한 협상을 요청했다. PT당은 IMF와의 협약을 수용했고, 긴축재정, 외채지급을 위한 흑자 예산 유지, 공공지출 감축, 사적 기업에 대한 존중과 같은 IMF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PT는 집권 2년여 간 신자유주의 교리를 충실히 이행하는 정책을 펼친다고 끊임없이 비판 받았다. 룰라 정부는 집권 1년 동안만 경제 엘리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저임금을 69달러에서 67달러로 삭감하고(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카르도수 정권의 가혹한 수준보다 낮은 수준), “제로(Zero)빈곤”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던 예산도 1000만 달러 이상 삭감하였다. 또한 조세와 연금 ‘개혁’을 단행해 외국투자가들에게 장기 세금 면제 혜택을 부여하는 반면, 임금 노동자, 연금 급여자들의 세금을 대폭 늘렸다. 공공부문의 연금 사유화 조치를 시행하고 기업이 노동자 고용계약 변경을 통해 비정규직을 대거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룰라정부는 FTAA 체결을 위한 미국의 듬직한 협조자를 자임하고 있다.1) 애초에 사회운동들의 광범위한 연합체에 가까웠던 PT당은 여러 사회운동들(군사 정권 하에서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웠던 노동자, 농민, 여성, 흑인, 원주민, 빈민, 학생, 예술가, 지식인, 언론인, 인권단체, 종교단체 등)이 광범위하게 결집하면서 풀뿌리 운동 조직형태를 띄었다. 따라서 인민의 자율성과 계급성을 강조하고 총회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의 논의형식을 통해 사회운동 각각의 자기요구와 쟁점이 확장되도록 했는데, 이러한 성격은 집권을 향한 대선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탈각되어왔다. 정치적 활동이 감소하고 제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당 활동가들의 활동도 선거일정으로 좁혀졌으며, 특히 의석수에 있어서나 그 영향력에 있어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각종 선거연합이 중심에 놓인 정치적 행보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처음 선거에 참여할 때 PT는 “선거란 기껏해야 정책이 결정되는 중심부를 건드리지 못하고 시나 주 수준에서 정부 구조에 대한 기존의 통계를 변경하는 데 그칠 것이다”라고 선거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그 한계는 이후 당선된 의원들이나 시장들의 알리바이가 되곤 했다. 이들이 겪은 현실적인 난점은 PT의 의지를 뛰어넘는 것이었는데, 브라질 전반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 극심한 경기 침체가 지속되었다. 카르도수의 집권 과정에서 시장개방, 공기업 민영화, 공공지출 감축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심화되었으나 경제성장률은 20세기 중 가장 낮은 수치였으며 교육, 의료 등의 사회예산은 삭감되고 실업률은 증가하였다. 외국 자본이 물밀 듯 들어왔지만 주로 수익성 높은 공기업을 노리는 것이었고, 발생한 이윤은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본국으로 송금되며 제한 없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MST(무토지 농민운동)와 같은 사회운동들은 토지점거 등의 직접행동을 통해 저항을 조직했지만, CUT(브라질노총)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점차 현실에 안주하고 대중과 괴리되어갔다. CUT의 많은 지도자들이 의회에 선출되거나 입각했지만, 예산을 제한당하거나 친기업적인 경제 정책 하에서 실질적인 개혁은 불가능했다. PT당과 CUT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경제위기 해결(외채해결과 외환보유고 확대) 이전에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삶의 파괴와 권리의 박탈을 감내하라는 논리에 편승하면서 인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점차 제한된 상황과 조건을 알리바이로 IMF의 요구를 수용하고, 미국에 협력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차선임이 강조되었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은 남미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경제규모를 가진 브라질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반대와 그를 위한 열렬한 환호를 업고 출범한 PT당이 이러한 변화과정을 밟아온 것은 ‘대통령 룰라의 배신’이라는 문제를 초과한다. 민중들의 열망을 조직해낸 룰라 역시 민중들의 열망을 조작하고 관리하는 지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기반으로 한 정치의 변혁이 경제적 구조의 변화 전략 없이 어떻게 인민들로부터 괴리되는지를 보여준다. 애초에 아래로부터 형성된 PT당이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가 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운동들과의 긴장감을 놓치고, 반발과 분열2) 속에서 민주적 조직운영원리를 포기하고 있는 상항을 보아야 한다. 한편 포럼 마지막 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는 엄청난 열광 속에서 연설했다. 룰라가 개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기아와 빈곤에 맞선 국제적 행동”을 호소하겠노라고 말할 때, 차베스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로서 극복될 수 없으며 사회주의, 평등과 정의를 수반한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차베스의 연설 당시 분위기가 마치 2003년 룰라가 대통령 당선 직후 세계사회포럼에서 연설했던 것과 비슷한 열기였다고 전한다. 청중들의 일부는 “차베스 예스! 룰라 노!”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차베스에 대한 환호와 룰라에 대한 야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대안세계화를 향한 우리의 현재적 조건과 과제에 대한 암시다. 현재의 불공정한 자유무역체제에 대해 룰라정부는 개도국 간의 협정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한편, 선진국 혹은 강대국들과의 협약 등을 맺는 등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 반면 차베스는 FTAA(ALCA)에 맞선 대항블록으로서 미주 볼리바르 대안(ALBA)을 강조하고,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전 세계적인 민중들의 투쟁을 강조하였다. 차베스 정부가 석유산업의 일부국유화를 통해 토지개혁 재정을 확보하고, 소환투표와 쿠데타를 뚫고 볼리바르 혁명을 추진한 데 대한 열광은 미제국주의의 또 다른 식민주의에 맞선 저항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금융화와 그에 동반되는 노동의 불안정화, 빈부격차 확대, 광범위한 이주의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 심각한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모색되어야 하는 것은 지역적, 나아가 전 세계적 연대와 변혁·개조의 전략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세계 3위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배짱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그리고 민족국가를 매개로 관철되는 광범위한 자유무역과 금융세계화는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의 대응과 정책입안만으로는 해결불가능하다는 근본적인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안세계화를 위한 권력 형성의 문제. 세계사회포럼은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토론하고 과제를 공유하는 하나의 공간이자, 3.20 국제반전공동행동 등의 반전운동 , WTO, G8정상회담 등 자유무역논의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을 결의하고 조직하는 하나의 운동으로서 기능해왔다. 그리고 지역, 대륙간 사회포럼 등, 사회운동 네트워크와 다각도의 연대망 형성에 대한 필요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였으며 질적,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관성화 되었다거나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평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셰쳐의 선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사회화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말에 ”어떻게“라는 단어가 결합됨으로써 시작된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반세계화 운동이 현존하는 세계를 변혁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 건설하기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해있다는 것이다. 5회 세계사회포럼은 백화점식 토론과제 나열을 넘어서 실제로 결의와 행동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11개의 주제에 따라 천막을 설치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행동의 결의가 이어지도록 하였다. 이른바 ‘G19’로 불린 저명인사들의 컨센서스3) 발표를 둘러싼 논쟁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제안은 첫째, 분야별·부문별 행동결의와 선언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그들의 제안 내용은 대안세계화를 위한 필수적 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그들이 대중운동 조직자나 활동가로서보다는 지식인 내지는 저명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4)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나친 반응보다는 하나의 제안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이후 운동을 조직하고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안과 계기를 중심으로 한 주체들의 투쟁이다. 다양한 주체들의 제안과 토론, 결의가 이후 더욱 다양한 계급주체들과 연계 맺으면서 사회운동의 변화와 확산을 가져오는 계기로서 작동하기 위해 한탕주의를 넘어서 그리고 포섭과 배제가 아닌 상호승인과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세계사회포럼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포럼에서 진행된 워크샵과 회의들에서는 대안세계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라틴 아메리카-유럽연합; 통합인가 지배인가? 군사화, 인권과 대중투쟁”이라는 워크샵에서는 유럽통합과 라틴 아메리카 연대의 과정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과 쟁점들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유럽의회의 한 발제자는 유럽 내 반전평화운동의 일부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통합과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과 군사력 확장에 맞서는 NATO의 재구성, 핵무기 필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유럽연합의 헌법조약 승인을 위한 각국별 국민투표의 과정에서 유럽좌파의 통합 움직임과 새롭게 형성되는 ‘유럽’을 민주화하고 인민의 권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들을 소개했다. 한편 콜롬비아의 발제자는 친미정권이 테러예방이라는 명목으로 베네수엘라 이주자들을 납치·감금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를 통해 혁명적 정권들에 대한 내정간섭의 위협을 확장하고 있으며, 이에 맞선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연대가 절실함을 주장하였다. 베네수엘라에서는 FTAA에 대한 국민투표를 준비 중이며 페루에서는 국영기업이 전면 사유화되는 가운데 FTA 국민투표가 조직되는 등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이탈의 시도들이 소개되었다. 이 가운데, 이러한 저항이 일국적 차원을 뛰어넘어 지역적 통합을 통한 네트워크 형성, 나아가 경제, 금융, 군사질서의 재창조로 이어져야 함이 역설되었다. 지난해 12월 8일 남미 12개국 대표들은 기존의 두 지역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안데스 공동체(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칠레, 가이아나, 수리남까지 더해 남미 대륙 전체를 묶는 ‘남미국가공동체’를 출범시켰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정상들은 세 나라 모두 채무를 지고 있는 국제통화기금과 공동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 국가는 자원, 에너지, 방위산업 등의 분야에서 공동 전략을 모색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들이 대미종속성을 벗어나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경제공동체의 형성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더욱 많은 토론과 사회운동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정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탄압과 군사질서재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들도 진행됐다. WTO와 IMF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경제위기와 무한전쟁을 동반하며 오늘날의 전쟁과 군사주의는 “새로운 전쟁”(영토 확장 전략, 식민지 수탈을 근간으로 하는 과거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질적으로 다른)으로 비화된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미군기지의 재편과 군사적 하위파트너 확립, 최첨단 무기개발, 군수산업의 변모 등 전략적 고도화와 함께 금융적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테러예방과 안보질서 확립의 차원에서 엄단할 수 있는 광범위한 힘을 지향한다. 따라서 오늘날 대안세계화의 논의에 있어 안보와 테러개념에 대한 재전유,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대항 전략의 모색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미군기지반대운동과 테러방지에 대항하는 인권을 중심으로 한 안보 등을 토론하는 워크샵들도 조직되었으며, 무엇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등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을 통한 전쟁과 점령이 지속되는 지역에서 인민의 해방의 기획이 어떠한 경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들이 이어졌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한 민중의 세계화, 경제협력의 방안들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한 편에서는 “국가권력 장악 없이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반세계화에서 대안세계화로“라는 주제로 인민들의 자율주의와 자치를 강조하는 강연이 진행되기도 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 금융거래과세도입 등등 폭주하는 패권적 국가들의 연합과 기업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우리의세상은상품이아니다(OWINFS), 남반구포커스, 세계화에대한국제포럼(IFG) 등의 주최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안” 세션에서는 변화의 전략을 위한 파트너십(제휴와 연대전략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으로 파악됨)에 관한 토론들이 진행되었다. 민중의 요구가 반영된 무역체제가 가능할 것인가 내지는 각국의 정부에 대한 통제 혹은 제휴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남반구포커스의 니콜라는 농업인구가 절반이 넘는 인도네시아에서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을 전개하면서 “농업을 WTO협상에서 제외하라!”는 요구를 갖고 정부관료로 구성된 WTO포럼에 개입하여 쌀수입금지 시행령을 관철시킨 사례를 소개하였다. 또한 남아공활동가인 키트(발전경제에대한대안적정보센터, AIDC 연구원)는 전략적 제휴에 있어 남반구 빈국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녀는 우루과이 라운드 이전부터 존재했던, WTO에서 벗어난 빈국간의 무역협상체계인 GSTP의 사례를 들며 이 빈국간의 무역체계가 자유무역협정으로 가지 않기 위한 민중들 사이의 연대와 요구가 확장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세계 민중의 고통은 북반구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진 분임토론에서 각국의 참가자들의 발표 내용은 다양했다. 정치제도의 민주화, 공공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통제와 감시, 농업이 자유무역의 흐름에 포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동투쟁, 민중교육의 확대-교육의 상품화 반대, 다자간 무역체계의 권력 불균등성을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 장치, 공공-민간 부문의 연대 등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조된 것은 민중의 정치적 의식 고양, 민중적 통제가 가능한 민주주의의 확장이었다. 민중의 권리 확장을 위한 다양한 부문, 영역의 사회운동의 투쟁을 통해, 이러한 각각의 과제와 요구가 상호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운동들이 상호 개조되면서 새로운 인민의 보편성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창조와 건설은 물론 인민의 자기결정이 전개되는 ‘정치’의 과정을 통해 시작될 것이다. 각 개인들이 근본적인 권리들을 서로에게 부여함으로써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인민’으로 재탄생하는 과정, 즉 주체들의 상호 해방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 말이다. 현실에서 이런 사회적 관계의 변혁이란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다. 경제적 관계의 변혁을 포함한 사회적 관계를 변혁하려는 기획이 어떠한 형태로 가능한가에 대해 오늘의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세계 인민들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새로운 국제주의 혹은 대안세계화를 향한 우리의 투쟁5) 한국에서는 5회 세계사회포럼에 KoPA(WTO/투자협정 반대 국민행동)와 민주노총 참가단, 그리고 아래로부터의세계화 등 150명이 참가하였다. KoPA 참가단은 “반전/반세계화 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를 조직하고 한국사회운동을 알리는 신문을 배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에서는 동남아시아 지진해일 이후 절망과 고통에 빠진 농민, 도시빈민들에게 마수를 뻗치는 초국적자본에 맞서 민중들의 연대로 공동체와 사회의 재건을 꾀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다양한 투쟁사례보고와 결의의 발언들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 3월 8일 여성의 날 투쟁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전쟁과 군사주의를 종결하기 위한 3.19-3.20 국제반전공동행동에 대한 뜻을 모았으며, 세계농민의 날, 세계노동절, APEC정상회담과 WTO각료회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통합, 광범위한 연대를 통한 대안세계화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지역에서의 연대는 그 의제조차 뚜렷이 설정하기 힘든 조건에 놓여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민중들을 호도하는 발전주의의 환상과 그 이면에 빈곤과 기아가 공존하는 아시아 지역에는 다양한 쟁점들과 투쟁의 의제가 존재한다. 아직 아시아지역에서는 라틴 아메리카나 유럽처럼 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국경의 민주화와 급진적, 민중적 대안의 요구를 동시적 효과로 낳는 위로부터의 통합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광범위한 이주, 자본 이전 등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세계화’에 있어 아래로부터 주체들의 권리와 요구를 중심으로 쟁점을 제기하는 방식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6) 물론 이는 인민의 ‘정치’의 이념, 즉 대안세계화의 정치이념과의 결합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운동은 인민의 요구를 발굴, 확장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양한 대중운동의 주체를 형성해내고 요구를 급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변혁을 위한 기본전제는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화에 대한 급진적 문제제기와 투쟁이다. 이를 위해 아직 태동 중인 운동들이 기존의 운동 질서(당-노조로 대표되는)에 질식되거나 흡수되지 않는 방식의 수평적인 연대의 확장과 인민의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2006년의 세계사회포럼은 각각의 대륙과 지역에서 더욱 깊고 넓게 뻗어나가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활동가들이 한군데 모여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별 포럼을 진행하고 2007년에 아프리카에서 다시 만나자는 결의가 모아졌다. 이는 대안세계화 운동이 세계사회포럼 등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적, 구체적 운동들을 현실화하자는 결의의 표현이다. 우리는 위선의 얼굴을 하고 ‘상호 호혜로운 세계화(equatable globalization)’라는 허구적인 쟁점으로 세계 인민들을 호도하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에 맞서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독점과 불평등을 매개로 하는 자본의 사회화, 세계화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고 인민들의 자기해방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와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운동’들을 조직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PSSP 1) 룰라는 선거유세를 통해 당시 대통령 카르도수가 국제통화기금(IMF)과 맺은 재정 흑자 유지 약속(국내총생산의 3.75%로 유지)을 반드시 지켜낼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선거연합을 형성했던 중도 좌파 안토니 가로티뉴 후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FTAA와 카르도수 정부가 맺은 국제통화기금과의 약속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줄 것”을 요구하면서 룰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룰라 정부는 취임 이후 IMF와의 약속을 '필요 이상'이라 할 정도로 지켰다. 재정 흑자 목표를 국내총생산(GDP)의 4.25%로 높였고, 중앙은행은 콜금리를 18%에서 26.5%까지 올리며 인플레이션 악령을 다스려 나갔다. 지난 4월 말 그 보답이 룰라의 손에 쥐어졌다. 10억 달러의 해외채권을 성공적으로 판 것이다. 2007년 1월이 만기인 이 채권을 사겠다고 몰린 국제자금은 거의 100억 달러에 달했다. IMF 총재도 "브라질은 지난 수년간 외국인 투자자금을 외환보유액으로 축적하는 등 외부 충격에 잘 대비해 왔다"고 말하며, 룰라가 당초 거대 농장주들이 놀리는 땅을 정부 예산으로 사들여 2006년까지 53만가구의 빈농에게 나누어주려 했던 정책에서 토지분배 농가수를 4만9000가구로 축소한 것을 건전한 재정 관리를 위한 정치적 불이익의 감수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최근 기업들에 30억 달러의 저리 대출을 약속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안에는 반대했다. 월가를 비롯한 선진국 자본가들이 후한 점수를 안줄 재간이 없다. 2) 35만명의 땅 없는 농민들이 토지점거 등을 통해서 정착시켰던 성공적인 사회, 정치적 대중운동의 흐름을 농업 개혁 입법화에 대한 희망을 갖고 룰라 당성을 위한 선거운동으로 대체한 MST는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다양한 의견그룹이 있지만 상당수의 MST회원은 빈곤의 확산, 실행되지 않고 있는 토지개혁의 상황에서 룰라정부에 등을 돌리고 다시금 직접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3) 전소희, “세계사회포럼 - 진정 지구적 반전·반세계화 운동에 복무할 것인가?”,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5.3·4월호 참조 4) 6. 세계사회포럼의 회의들은 하나의 기구로서 세계사회포럼을 대표하여 협의하지 않는다. .... 8. 세계사회포럼은 지역적 수준에서 국제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대안세계를 건설하려는 구체적 행동에 참여하는 조직과 운동들은 탈중심화된 방식으로 상호연결시키는 다원적이고 다원화된, 비종파적, 비정부적, 비정파적 구조(context)이다. 9. 세계사회포럼은 성, 인종, 문화, 세대, 신체적 능력의 다양성만이 아니라, 포럼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조직과 운동들의 활동과 참여방식의 다양성에 대해, 다원주의에 대해, 이들이 원리헌장을 준수하는 한 열린 포럼이다. 당의 대표단이나 군사조직은 포럼에 참석할 수 없다. 헌장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정부지도자와 입법부 의원들은 개인자격으로 참석하도록 초청할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 원리 헌장 중) 5) ...저항의 세계화가 기계적으로 반체계적 요구나 대안적 기획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공적 공간의 빈혈에 균형을 맞추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시민사회’라는 통념은 매우 다의적이다. 세계은행은 태국 빈민포럼의 투사들이나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이 부여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시민사회에 부여한다. 세계화된 자본이나 초민족적 기구들은 세계적 ‘시민사회’를 자신들의 계급적 전략의 본질적 요소로 간주한다. 그들은 세계적 시민사회를 ‘기업의 세계’, 사회적 재생산 역할을 자임하는 거대 기구, 그리고 체계의 결핍요소를 보충하는 것으로 호명된 조직들 사이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새로운 범-정부적(para-gouvernementales) 관료기구를 신성화하고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지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특정조직을 포섭함으로써 배제된 집단과 취약 계급의 사회적 요구를 일정한 방향으로 호도한다. 여기서 ‘시민사회’는 제도적 합의 내에서 갈등을 탈정치화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민중운동이나 부활한 민중운동은 시민사회를 시장화에 맞선 공간으로 제시하면서 그 자신의 내용을 제공할 수 있다. 프랑소아 위타르(François Houtart)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라고 부른 것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는데, 그 속에서 공공재와 공적 서비스에 대한 대안적 논리를 발견한 피억압 집단들의 의식이 표현되고 있다... (다니엘 벤사이드, 새로운 국제주의: 제국적 전쟁과 세계의 사유화에 맞서,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3.12) 6) ...개인이나 공동체의 교통양식의 원인은 개인을 초과하며, 그의 효과로 개인이나 공동체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교통이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교통을 통해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된다...이런 의미에서 초민족적 시민성이나 지역적 시민성이 아시아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윤소영, 「대안세계화운동」,『역사적 마르크스주의 : 이념과 운동』, 공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