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피스크가 7월 4일자 영국 '인디펜던트' 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Z-NET(www.zmag.org)에 실려 있습니다.
500명 전사 감수하고 파병결정했다니 1. 보도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이 경남도당 이취임식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군인 가운데 5백명이 전사할 것을 감수하고 파병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노무현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했다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권이 병사들을 죽음의 사지로 내모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심지어 그 숫자를 500명으로 추산하고 그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충격적이다. 또한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이 김선일씨가 죽었을때 안타깝고 비통하다고 한 것은 국민을 상대로 기만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2. 노무현 정권은 '평화와 재건'을 주문마냥 읊조리며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 파병한다는 궁색한 이유를 말해왔다. 우리는 1천명 이상의 미군이 죽어나갔고 이라크 민중이 적어도 1만명 이상 희생된 이라크땅에 파병하는 것은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는 이라크 민중학살로 이어지고 한국군 희생으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을 누차 강조해왔다. 3. 또한 쿠르드지역의 상황이 대단히 불안정하고 언제 갈등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것을 정부는 알고 있고 국방부에서도 이 지역의 정세불안이 고조되고 있다고 시인하였다. 따라서 다국적군의 휘하에 들어가서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게될 한국군이 전투에 참가하거나,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거나 작전을 수행하면서 충돌이 발생하고 사상자가 생기게 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4. 노무현정권은 즉각 추가파병을 철회하고 서희제마부대를 철수시켜야 한다. 김선일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병사 500명의 목숨까지 한미 학살동맹과 이라크 침략전쟁의 제단에 바쳐야 한단 말인가? 학살과 파병에 앞장서고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권은 민중의 손으로 반드시 심판받게 될 것임을 노무현정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04. 7. 22 사회진보연대
지난 7월 16일(금)에 있었던 여성위원회 3차 월례포럼 발제문입니다.
여성과 전쟁, 여성운동과 반전운동의 과제 일시; 7월 16일 7시 30분 장소; 사회진보연대 사무실 참석; 20여명 전쟁의 원인에 대해 -발제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옹호하기 위한 군사력 강화가 현시기 전쟁 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 는 전쟁과 ‘빈곤의 여성화’를 부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 이 여성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여성운동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폭력에 직 면케하는 무장한 세계화에 반대하고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 한 운동을 펼쳐야 한다. -WAW; 전쟁의 근본원인은 군사주의이고, 군사주의는 성차별주의에 기반해 있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명분과 국익 에 갇히지 않는 ‘전쟁자체’를 반대할 수 있다. 반전운동이 외치는 반미 가 민족주의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반전에서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발언 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는 전시에 여성을 어머니 vs 창녀라는 이분법을 강화한다. -전쟁을 성차의 문제로만 정의할 수 없지만, 전쟁의 개념을 폭력의 연장선 상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확장해야 할 것이다. -폭력과 전쟁이 혼동되는 것 같다. 모든 차별과 폭력이 전쟁 개념이 될 수 는 없다. 이 때 반전 운동의 과제가 희석될 우려가 있다. -반전은 여/남 모두의 과제이다. 여성이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할 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발언할 수는 있는데, 여성의 독자적인 반전 실천이 있는가의 문제는 남는 것 같다. -전쟁에 대한 여성 고유의 분석이 있다라기 보다는 전쟁이 여성에게 미치 는 효과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김선일을 살려내라’라는 구호에 대해 -살려내라는 구호가 분노를 자아내면서 평화감수성을 해친다고 생각함. 살 려낼 수 없기에 대중들에게 무기력함을 느끼게 할 뿐, 지속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해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 -추모대회에서 촛불을 들게 하는 게 더 무기력하다. 분노를 이용하고 정권 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게 폭력 적이라 생각한다. 촛불이 대중의 불만을 억압하는 게 문제임. -분노에 의한 조직화의 한계를 인정한다. 지금의 반전운동의 조직화 내용 이 앙상하다. 대중적으로 전쟁을 반대할 수 있는 동인을 만들어내는 게 중 요. - 살려낼 수 없는 정부의 책임을 물어,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의 해결책은 파병철회/전쟁반대의 구호가 상징적인 구호라 생각함. 폭력에 대한 입장 -발제문; 역사적으로 소련이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주의 강화를 정당 화했으나 대항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지 못했다. 대항폭력이 사회변혁 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항폭력에 비판하며 등장한 비폭력 평화주 의는 폭력의 근본원인이 무엇이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싸움이 무엇인가 를 제기하는 한에서만 유의미할 것이다. -WAW 내에서도 ‘모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논쟁이 있었음. 성폭력 시 정당방위라는 폭력은 나쁘지는 않지 만, 폭력이 운동방식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함. 권력구도가 바뀌어야 해결 될 문제라고 생각함. -비폭력 평화주의는 개인에게 순교마저 강요하는데, 적의 관용이 없으면 죽임을 당하는 최악의 폭력을 부를 수도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는 정치적 순응주의로 귀결되기도 한다. 전쟁의 성격 -발리바르의 ‘전쟁은 인격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인간을 부정함으로써 인 간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권리 주장을 무력하게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사 례이다’ 라는 정의가 전쟁 일반에 부합하는지... 레닌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전쟁을 계급투쟁의 장으 로 사고했음. 전쟁의 성격 규명 자체가 반전의 함의가 될 것인데, 전쟁을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나. 전쟁 자체가 진화하는지, 전쟁 개념이 진화하 는지 모호하다. ‘적의 여성화’ -전쟁에서 ‘지배-복종 관계의 코드로서 성적차이를 차용하는 적의 여성 화’가 일반화될 수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불행한 비극? 불가능한 희극!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분열 지난 7월 3일 집회를 둘러싼 파병반대국민행동 참가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확연했다. 시청집회를 강행할 것이냐 광화문으로 옮길 것이냐,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행진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집회를 할 것이냐 아니면 추모 문화제의 기조를 지속할 것이냐 들로 논점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했지만 이들 사이의 간격은 쉽게 좁혀질 것이 못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충돌만큼 이날 집회에 참여한 대중들의 반응도 극단적이었다. 어떤 이는 '성난' 만큼 노무현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이는 '실망'한 만큼 집으로 빨리 발길을 돌렸다. 분노와 무기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지난 주 광화문의 촛불은 그렇게 끝났다. 한편, 시민단체-들(!) 역시 (우리들과는 정반대방향에서) 최근의 파병반대운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시종일관 파병철회운동 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파병철회운동내의 '노무현 규탄/퇴진' 주장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들 목소리를 잠재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마저 여기에 동요하고 있는데,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 정권과 미국에 대한 분노의 함성을 내자고 하고서도, 시민단체들의 이런 비판이 제기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탄핵무효와 파병철회의 짧은 시간, 먼 거리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광화문에는 촛불이 밝혀졌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안 된다', '왜 우리국민이 거기서 죽어야 하느냐'부터 '미국이 만악의 근원이다', '김선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과 외교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을 노무현 정권이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는 노무현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촛불의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했다.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노무현과 싸워야 하는데, 촛불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대중들의 터져 나오는 발언이 자유발언을 가장한 활동가의 선동에 불과하다며 맘대로 험담하고 외면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의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로,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 그리고 지금 김선일을 추모하는 촛불사이에는 빗대려야 빗댈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의 촛불과 탄핵무효의 '촛불'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수구 보수 세력의 퇴행성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촛불'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이자, 온갖 감언이설로 민중운동을 지속적으로 분열시켜온 '노무현' 만큼은 단 한번도 문제삼지 않았다. 탄핵무효의 '촛불'은 오히려 반대방향을 밝혔다. 이 '촛불'은 노무현의 자멸을 지연시키고, (아니, 정확히는 노무현의 올인 전략의 기반이 되어) 역사의 무대위로 복귀할 길을 안내한 '촛불'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심각한 혼란에 빠지고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지도부가 심각한 혼란에 빠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선일 피랍 사실이 알려진 당일은 누구든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을 들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알려진 다음날부터는 누구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며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선동하고 다녔고, 광화문의 촛불에게 자신을 지지하는 '촛불'인지, 자신의 파병강행 결단을 비난하는 촛불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광화문 촛불은 이렇게 균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든 강제적인 수준에서든 대중의 명확한 인식과 정치적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이에는 변함이 없다. 김선일 피살 이후 광화문의 촛불을 분열시켜야 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노무현, 국방부, 외교부, 국회, 언론 모두 여기에 충실했던 것이다. 탄핵무효의 '촛불'을 들었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탄핵무효운동의 '촛불'과 파병철회 광화문의 촛불을 구별할 수 없었고, 이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선택'을 강요당한 광화문 추모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의 촛불로 번질 수 없을뿐더러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이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야 한다' 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의 촛불이 파병철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지지와 탄핵무효운동의 잔흔이 남아있는 광화문의 '촛불'을 당장 놓아야 한다.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파병, 아니 더 나아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새로운 운동이 풀뿌리 번지듯 땅바닥에서부터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바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 파병반대운동은 자신의 정치적 단결에 성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운동과 연대의 호흡을 다질 수 있고, 그래야만 진실로 대중 스스로 자신의 운동이자 자신의 민주주의를 기초지을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파병철회운동과 노무현 퇴진운동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 앞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파병철회운동이 촛불 속에서 분열하도록 오히려 이를 부추겨 온 것이다. 민언련의 최민희 사무총장은 '백 만 시민이 결집해야 파병철회가 가능'(『시민의 신문』6월 29일자)하다며 이를 선도해왔다. 그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파병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며 파병철회운동이 이들을 아우를 것을 주장했다. 이어 노무현이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겠느냐며, 김선일 피살의 책임소재를 미국으로-만(!) 돌리고, 노무현과 청와대의 정치적 책임소지는 교묘히 회피했다. 파병철회운동의 주타킷이 노무현이 되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되자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서적 불일치'를 느껴 여기서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는 또 '노무현 퇴진운동은 이후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을 그릴 수 없다'며,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범개혁진영의 실패로 비쳐지고', 따라서, '이 정부가 개혁적 로드맵을 지키도록 견인하고, 때로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하다'는 충고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단체들 사이에서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책임(노무현 규탄/퇴진)을 어떻게 물을 것'이냐, '집회기조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논의를 할 때마다 시민운동단체 책임자-들(!)이 내세우는 논지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이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은 차원이 다른 운동'이라며, 운동의 성격과 목표가 달라지는 만큼 '유보해야한다'는 좀더 세련된 논지를 제시한 것말고는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기 '미국과 대등한 관계' 운운하며, 파병만큼은 '국민에게 뜻을 묻겠다'는 말을 해댈 때는 파병철회운동이 정권퇴진운동과 좀 거리를 두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3년 방미에서 그가 '북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그리고 비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하며,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고, 추가파병 결정 직후의 APEC 회의에서는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 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피랍되어 있는 김선일이 '나는 살고 싶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채 부탁해도 '피랍 불구, 파병원칙에는 변함 없다'며 차라리 죽을 것을 종용했는데, 아니, 어떻게 이를 보고도 파병철회운동과 정권퇴진운동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공언하고 다니고 있고, 파병결정으로 자신의 국민이 비참하게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노무현이다. 이런 그가 국민의 읍소에 깨닫는 것이 있어 스스로 파병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노무현은 지금 정권의 명운(!)을 걸고 파병을 강행하고 있다. 수도이전사업 반발조차 자신에 대한 퇴진운동이라 여기는 노무현에게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는 파병방침이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차원이든, 대중들의 정치적 반란 차원에서든) 철회된다면, 이는 노무현 정권의 자멸을 뜻하는 것이다.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은 이런 상황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리하여 노무현의 한국군 파병 방침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럴 진데 파병철회운동이 노무현지지 운동(노무현 지지자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무슨 '정치적(!) 불일치'인가? 지금 상황에서 파병반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열린 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이 지배세력의 단결을 도모해가듯, 정반대방향에서 노무현 지지운동과 결연히 단절하고 파병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노무현 지지'냐 '파병철회냐'식으로 파병반대운동을 뒤흔든다면, 그와 정반대로 전 세계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병/전쟁을 강행할 것'이냐 '민중의 자기 통치의 권리를 강화할 것이냐'로 저들을 뒤흔들어야 한다. 노무현의 강요된 '선택'위에 놓여있는 파병반대운동은 스스로 분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이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대중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정서적 불일치'를 앞세우며, 파병반대운동의 최소 단결을 해치면서까지 노무현 규탄의 목소리를 낮출 것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노무현의 테러보복-파병강행방침을 문제삼기는 커녕 되려 노무현을 냉혹히 비판하는 운동을 문제삼는 시민운동은 지금만큼은 전쟁에 반대하는 '파병철회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무현 엄호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 집회에서 분출된 대중의 요구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국민행동내 친 노무현 인사들은 '파병반대'와 노무현 사랑'중에서 선택하라" 전쟁참여정권!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에게 민중의 심판을!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것이 자신의 최종적 지향임을 거듭 확인하였고, 그 자신 스스로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만 자신의 정치권력이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복해서 확인해 왔다.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려는 대중들의 무수한 운동을 사그라지게 하기 위해 노무현은 대국민적 도박을 벌여왔고, 매번 거기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왔다. 오늘 파병철회운동이 스스로 단결을 도모하고, 진정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려 한다면, 노무현의 얼치기 도박판부터 거두어야 한다. '노무현 지지'와 '파병철회'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도박판을 물리치고,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워야 한다. 우리가 그의 강요에 내몰려 선택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우리의 주장에 쫓기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파병반대운동의 단결과 대중적 확장은 민중운동의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듯 어정쩡하게 타협하여 조정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정치적 단결과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무엇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가? 무엇이 파병반대운동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는가? 노무현과 그의 행정수반들의 파병/전쟁 참여노력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김선일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고도 반테러/복수 운운하는 노무현정권의 방침이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대중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집회 공간마저 없애고, 청와대와 미대사관을 향해 대중의 분노가 폭발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의 저지선이 우리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 더러운 입놀림과 언론의 기만적인 펜대가 우리의 대중적 확장을 가로막았다. 이를 제거해야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처럼 노무현 정권을 향한 분명한 비판을 주저하고, 이상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야 말로 파병반대운동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들이 강변하듯 지금 파병반대운동의 머뭇거림을 '노무현에 대한 규탄/퇴진'탓이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파병반대운동을 질식시키는 것이다. 파병반대 운동은 탄핵무효운동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진심으로 숙고해 보자. 오늘날 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지 진정 살펴보자. 한 인간의 생명마저 져버린 채 전쟁 참여에만 골몰하는, 여론을 호도하며 대중을 기만하면서까지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이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주범이 아닌가? 저들을 끌어내리려는 민중의 심판이, 그같은 운동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것이다. 자신을 조직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진보진영의 로드맵' 따위를 거론하며 어떻게든 기댈 대상을 찾아 보겠지만, 자신을 조직하고, 자신이 운동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조직하는 민중운동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가꿀 수 있다. 만일 민중의 힘으로 노무현이 퇴진한다면, 그를 심판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로드맵에서 우리는 '민중의 자기통치, 민중의 정치'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운동이 파병반대운동에서 모색해야 할 결론이다.
가디언 지에 6월 23일 실린 글입니다. 이라크 치안, 연합군의 변화, 정부구성, 유엔결의안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민중사회운동회의 기간에 열린 '동아시아 반전 평화운동의 전망과 과제' 워크샵 자료입니다.
명운을 건 노무현 정권의 파병 강행 방침 고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노무현 정권은 더욱 강력하게 파병강행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매일같이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로 반인륜적 테러를 근절하겠다"고 말하였으며, 열린우리당은 "테러는 굴복대상이 아니라 응징대상"이라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나서서 복수와 응징을 선동한 것이다. 파병을 강행하는 모든 세력이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열린우리당류와 조선일보류의 입장의 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6월 22일 저녁 인터넷에 올린 사설에서 "이번 사건으로 파병의 원칙과 정신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추가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유시민이 '사람 한 명 잡혔다고 파병방침을 바꿔야 하나'라고 말한 것은 정확히 동일한 태도다. 어차피 파병강행의 한 배를 탄 이상, 그들이 구사하는 논리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응징/복수의 선동이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제는 외교부(그리고 국정원와 NSC) 등에 한정해서 책임을 전가하여 노무현 정권과 파병강행 세력들은 유야무야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확인해야 할 점은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명운을 걸고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의 파병 "올인" 전략은 기본적으로 그 이전의 반동적 정치 행태와 하나 다를 바 없다. 자신을 지지하던가 나라가 망하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대한 국민협박극의 재연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지지자들은 죽든 살든 파병 강행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도심 한가운데서 열차폭탄 테러를 당한 스페인에서도 정권이 바뀌고서야 철군이 되었듯이, 파병반대 투쟁을 위한 우리의 싸움 역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 피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23일 새벽 김선일 씨의 죽음을 알리는 공식 발표가 있은 후,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결코 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추가 파병을 재검토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고 김선일 씨를 살해한 것은 반인륜적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무고한 민간인" 살해를 테러로 규정한다면 저 전장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이라크인에 대한 미군들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과 고문은 미국이 주체가 되어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국가적 테러가 아니고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무고한 미국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하던 부시 대통령처럼 테러세력을 응징하겠다고 단호히 천명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함께 (테러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이라크 무장 세력에 대한 '복수'로 화하고 있다. 고 김선일 씨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분노를 분출한 대상을 찾고 있다. 무장 세력에 대한 적의가 오히려 전쟁의 피해자인 무고한 이라크인, 이슬람 전체로 확장되어 인종적 증오를 부추기고, "이라크 복귀와 재건"을 목적한다는 파병은 오히려 '복수'를 위해 지지되면서 이라크 전쟁 참여의 명분마저 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의 근거로 '국익'의 논리가 활용된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와 동일시되며 그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은 '우리'에서 배제된다. 인종이 배제의 경계가 되어, 배제된 자들의 존재와 고통에는 무관심하게 된다. 고 김선일 씨의 죽음에 분노한다면 미국의 침략전쟁에 의해 살해되는 이라크인들의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도 분노해야하며, 전쟁과 폭력을 가져오는 세계적 구조에 대해서도 분노해야 한다.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감고 파병을 한들 그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인가. 9.11 테러라는 공포를 눈앞에서 겪은 미국인들 대다수는 부시 정권의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으나 전쟁 개시 후, 테러라는 폭력에 이라크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으로 맞대응한 결과는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살해와 미군들의 죽음, 그리고 이로 인한 폭력의 증가 뿐이다. 팔루자에서 행해진 미군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이나 이라크 포로 고문과 성폭행에서 명백하게 볼 수 있듯이 미군에게 인종의 차이는 차별이 되어 인종적 증오에 기반한 폭력이 행해졌다.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을 낳은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금 한국이 교훈 삼아야 할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명분없는 이라크 침략 전쟁이 이라크인들과 전세계인들에게 가져오고 있는 폭력을 보라. 그러한 전쟁에 세계 3위 규모의 파병국으로 동참하려는 것이야말로 폭력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며, 그들이 말하는 '테러'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의 진정한 원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 당위성을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파병은 이라크와 아랍국가에 대한 적대 행위가 아니다. 이라크 복귀와 재건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미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희. 제마 부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고 말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드는 작태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이라크 민중들은 이미 한국군 파병이 재건이나 평화유지가 아닌 침략군 미국의 대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이라크가 드디어 주권국가로 자리잡을 것이라 미국이 선전하는 6월 30일 주권이양을 앞두고도 이라크 상황이 안정되고 있지 못하다. 종교 무장단체들은 과도통치위원 살해를 기도하거나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 미국에 의한 임시정부 구성을 방해하려 하고 있다. 급기야 저항세력의 대규모 공세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주권이양은 6월 30일에서 28일로 앞당겨졌다. 이라크 국민들이 임시정부를 온전한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국민의 92%가 미국을 점령군으로 여기며 외세의 점령에 저항하고 있다. UN 결의안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6월 30일자로 끝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상, 미국의 수중에 이라크를 통제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상 이라크는 주권이양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점령국으로 남게 된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따르면 138,000명의 미군과 20,000명 이상의 연합군이 여전히 이라크를 점령할 것이고 미국이 이라크의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노무현이 설파하는 이라크 재건은 이라크 민중이 원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미국의 이라크 전후 안정화 구상을 도와주는, 전후 처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추모'를 노무현에 대한 규탄으로! 지난 26일 파병반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주최한 범국민추모대회가 있은 후, 국민행동 홈페이지에는 당일 집회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고 김선일 씨 살해 사건에 대한 분노를 갖고 추모대회에 참가한 집회 참석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경찰이 허가하는 폴리스라인 안에서 마치 '문화공연'을 관람하듯 정렬하여 앉아 촛불을 드는 것 뿐이었다. 집회에 참가한 후 오히려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는 불만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추모 중심의 촛불에 머물러서는 파병을 철회시킬 수 없다. 파병을 철회시키기 위해 노무현 정권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를 주저하는 이들이 있다. 추모대회를 앞두고 열린 국민행동 운영위원회에서 당일 집회 기조와 향후 노무현에게 어떤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몇몇 단체는 "집회는 대중적으로 성사되기 위해 추모의 분위기를 지속해야 한다. 청와대를 향해 무리한 행진을 시도하는 것은 민중운동의 고답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결국 또다시 파병철회 집회를 고립하게 한다", "이 사태의 배후는 이라크 전쟁을 벌인 미국이고, 따라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높여야 한다. 전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는데 파병반대 운동에는 노무현 지지세력도 있어서 현 상황에서 노무현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하면 이들이 이탈하게 되고 파병반대 운동이 대중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노무현 비판보다는 미국 비판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하며 노무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였다. 당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노무현 정권 규탄의 목소리가 분분한데 급기야 사회자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님, 귀기울여 들어주십시오"하며 파병 철회를 간청하는 발언까지 나오고야 말았다. 불과 2개월 전에 같은 장소에서 촛불을 들고 탄핵 무효를 외쳤던 운동진영과 시민들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파병을 철회하고자 한다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우회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한 자기 반성과 변화가 없이 촛불 들고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간청하는 방식으로는 파병철회를 해낼 수 없다. 파병철회는 파병의 주체인 노무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이뤄질 수밖에 없다. 파병 철회 투쟁의 장은 노무현 지지세력들로 하여금 촛불을 내리고 노무현 퇴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촛불 추모집회를 통해 결집을 했다면 이제는 파병정권,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촉발하고 행동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파병 철회, 노무현 정권 반대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7월 3일, 범국민적 행동으로 파병철회 투쟁을 더욱 고양시키자 ! "파병은 미친 짓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여느 때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다. 이럴 때일수록 파병반대, 한미동맹 폐기를 위한 노무현 정권 규탄의 실내용이 예각화되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반대, 파병철회 투쟁은 금융세계화가 관철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과 저항을 관리하기 위해 미제국주의가 휘둘러온 군사패권의 총부리를 거둬내는 싸움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하는 것이야말로 핵심적인 투쟁과제이다. 신자유주의 질서재편과 금융세계화, 거대한 군사력을 독점한 국가의 조직적인 폭력은 더 많은 불평등과 더 많은 증오를 불러오고 있다. 이는 절대 민중의 평화로운 미래일 수 없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의 대(對) 테러회의를 설치하고, 이 회의 산하에 테러대응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테러방지법 입법을 저지시켜낸 민중운동진영의 투쟁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국가의 중대사안인 파병을 결정해버린 채 국민 대다수의 반전 의사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강행하려들고, 심각한 인권 침해를 불러오는 테러방지법 마저 제정하려는 노무현 정권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무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재차 파병을 강행하려드는 파병정권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을 우리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전쟁 참여라는 한미동맹의 끈을 잘라버려 미국의 침략전쟁을 중단시킬 때까지, 노무현 정권의 파병결정을 철회시켜낼 때까지 강력히 투쟁할 것이다. 7월 3일, 투쟁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는 '범국민 추모의 날' 집회가 시청 앞에서 개최된다. 고 김선일 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파병에 반대하는 모두가 시청 앞으로 결집하여 범국민적 행동으로 파병철회 투쟁을 더욱 고양시키자 ! ------------------------------------------------------ <성명서>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 중단하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테러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진정한 평화이다. 테러방지법이 없어 테러가 발생하는가 정치권 일각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재추진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28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의해 입법결의되고 7월중 17대 국회에서 입법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 테러방지법안은 국가정보원이 2001년 11월 입법예고했으나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공동행동 등 인권/사회단체의 저항으로 무산된 바 있다. 김선일 씨 피살사건 이후 정부 각 부처와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김씨의 피랍 및 피살과정에서 정부의 정보수집과 협상력 부재 등으로 외교안보 시스템 및 국가위기관리 기능이 미약함을 지적해왔다. 이라크 내 미국 CIA요원은 3000명에 육박하는데 국정원 직원은 단 두명 뿐이었다거나, 능숙한 협상력을 위한 안보체계의 작동의 미숙함 등을 개탄하며 안보시스템 강화, 테러대책 강화를 주장해오며 이 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 씨의 죽음이 이라크 내 정부 수집력 부족과 테러에 대한 신속대응력 부재에서 기인하는가? 알자지라 방송보도 이전에 이미 가나무역의 사장과 미군, 대사관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은폐하고 침묵했던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알 자르카위가 24시간이라는 협상시한을 걸고 파병철회를 촉구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파병은 강행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일말의 가능성을 부정했던 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 아니었던가? 피랍사실을 은폐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은 채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가 이제와서 정보력과 대응력 부족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테러예방을 내세운 국민 통제, 인권 말살법안 테러방지법 테러방지법 입법 추진을 준비중인 일부의원들은 국정원의 해외정보 수집기능을 강화해주는 최소한의 기능조차 법안으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 이번 사건해결에 어려움을 줬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정원의 영역 확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테러방지법 반대투쟁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국정원 산하의 대테러센터를 설치하여 특수부대, 군 병력 동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정원 강화가 그 본질이라는 점이었다. 국가정보수집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국정원의 본래 기능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정부가 머리를 짜내 내놓으려는 안은 대통령 직속의 대테러회의를 설치하고 이 회의 산하의 테러대응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정원 강화 음모라는 비난을 빗겨가기 위한 제스츄어에 불과하다. 불법감청을 통한 사찰, 근거 없는 계좌추적, 국내 외국인과 외국인과 접촉한 내국인에 대한 감시 등의 인권침해적 속성과 국정운영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말살하는 감시와 통제라는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테러방지법 제정 재추진 중단하고 이라크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2001년 9.11테러 직후부터 시작하여, 2002년 월드컵 준비 등을 명분으로 추진이 시도되어왔다. 그리고 지금 김선일 씨 사건을 계기로 다시 제정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으로 인한 국민적 공포를 안보공백, 국가시스템의 문제로 해결하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는 이슬람 무장단체 등의 테러의 위협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테러 응징을 명분으로 내세워 수많은 이라크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극도의 공포라는 벼랑으로 몰고 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자체가 거대한 공포이다. 그리고 미국의 말을 듣는 것이 국익이라며 넘쳐나는 피와 거대한 공포를 불러오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으로 동참하는 노무현 정부가 공포스러운 것이다. 급기야는 파병강행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리고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행태가 공포스러운 것이다. 극악무도한 이라크 침략이라는 거대한 공포에 휩싸인 이라크 인민을 테러용의자로 지목해 또다른 폭력과 공포, 증오를 부추기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테러방지법 입법 추진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김선일 씨의 마지막 말은 "테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달라, 이들에게 복수해달라"가 아니라 분명히 똑똑히 "부시, 노무현! 이라크 전쟁을 중단하고 군대를 이라크에 보내지 말라! 제발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그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맴돌고 있는 지금, 또다른 증오와 폭력을 부르는 전쟁과 파병을 강행한 채 테러의 위험에서 빗겨나기 위해 누군가를 배척하고 감시하는 국가권력을 확대하는 것을 전세계 인민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인민들의 요구는 테러로부터의 보호가 아니라 테러를 부추기는 더 큰 국가적 테러와 폭력이 종식되는 진정한 평화일 따름이다. 정부와 여야정당은 테러방지법 입법 추진을 당장 중단하고 이라크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