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에 던져진 질문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과 '제국' 기획의 불가능성 최예륜(정책부장) 부시의 재선으로 마무리된 2004년 미 대선 직후, 미군은 이라크 저항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대적인 팔루자 공습을 자행했다. 부시는 11월 10일 연설을 통해 "일부 소수 그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좌절시켜 권력을 잡으려 하고 있다"며 "이같은 민주주의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은 향후 수주간에 걸쳐 공세를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9.11테러 이후 감행된 이라크 전쟁과 공세적 세계군사재편 전략이라는 미국의 일방적 대외정책이 대선을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심지어는 전세계 인민들에게 승인되었다는 식의 태도다. 그러나 무차별폭격 수준의 팔루자 학살 이후, 이라크 내 반미여론은 더욱 고조되고 미군이 창설한 이라크군 4개 대대 중 일부가 미군의 공격지원명령을 거부하는 등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저항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시는 동맹국의 협박을 호소하는 등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2004년 미 대선은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 닉슨의 재선 이래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 그리고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나 총득표수 논란과 같은 사태가 불거지지 않은 깔끔한 승리와 승복의 과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시의 완벽한 승리로 평가된다. 나아가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 부시체제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도가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미국 정치체제가 갖는 근원적 한계가 극대화되는 가운데 민주주의 상징으로서의 미국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징후가 드러난다. 한계에 봉착한 미국 정치 체제의 '민주성'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이 연방국가이며 각 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방헌법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 선거인단 제도로 인해 전체 득표율이 선거결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선거인단 독식제로 민주당, 공화당 이외의 제3세력의 등장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보수성이 유지가능해진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제어하는 가운데 강력한 양당체제를 뒷받침해왔다. 미국적 정치원리의 내부 긴장은 자유주의와 그것을 방어하는 외피로서의 보수주의적 성향{{) 미국의 정치적 변화란 공화주의적 덕성관념과 지유주의적 사익관념의 대립을 현상으로 하면서 주기적으로 개혁의 이념을 형성하였다. 이는 자유주의자, 흑인, 북부 노동자, 소수 인종집단 등의 민주당의 지지연합이 형성되었던 과정, 기본적 자유주의적 전망 하에서 복음주의적 종교집단 등이 주도적으로 도덕적 이슈를 대중화하여 1980년 레이건의 집권으로 결실을 맺은 보수주의 혁명의 과정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는 미국 건국의 정신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아가서는 구래의 정신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한계 내에서 지속되어왔다. }} 간의 대립으로 유지되어왔다. 1933년-1945년 민주당 루즈벨트의 4선 기간동안 확립되고 미국 사회의 '새로운 다수'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뉴딜연합은 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경제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속불가능해였다. 이는 이후의 레이건의 보수주의 혁명과 네오콘의 등장을 뒷받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보수화와 급진화 사이의 경합을 1992년 중도보수를 표방한 클린턴의 등장으로 일단락된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클린턴의 등장은 여성, 소수 인종집단, 북부 노동자 등 이질적인 집단들의 연합이라는 위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더 이상 불가능해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냉전의 해소는 평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미국 대외정책의 외피를 벗겨내고 다자주의적 개입의 틀(UN과 국제법)을 초과하는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초래하였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는 분명한 선거조작과 플로리다의 수백 표가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결정했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자가 패배를 승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플로리다의 상당수의 흑인남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공민권의 박탈을 초래한 '범죄와의 전쟁'은 분명 레이건-부시/클린턴-고어의 합작품이었다. 투표자의 다수가 모든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선거제도는 미국 자유주의의 몰락을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결집으로 은폐하는 미국식 정치체제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공민의 지위로부터 추방되거나 이탈하는 다양한 세력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복지의 종식을 뜻하는 '일하는 복지'와 보편성을 상실한 자유주의의 앙상함은 이러한 미국정치의 '민주성'에 대한 환멸을 안고 이탈하는 세력들을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조직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9.11 이후 군사개입의 확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인 2억 9천만명 중 4천 5백만이 의료보험으로부터 소외되고 8백만 이상이 실업상태라는 조건이 대선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이 내건 의료보호확대와 재정적자 해소 등이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사회의 보수화의 지표라거나 전시에는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정치적, 법적 평등을 자유의 동반자로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결과적 평등은 자유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모순된 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회의와 환멸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시민의 상당수는 이러한 미국 정치체제로부터 등돌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동성애자 결혼반대, 사형제도 찬성, 낙태 불법화 등이 '도덕적 가치'로 인식되는 여론조사기관들의 분류법은 더 이상 미국 정치에 민중적 의제와 쟁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의 몰락이 보수주의자의 결집으로 은폐되는 상황이란 다시 말해 미국 지배계급의 대중의 정치의식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상황이다. 체제의 위기상황은 전쟁과 종교의 상호방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관리될 수 있을 따름이다. 대중의 정치적 참여와 직접적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했던 연방헌법의 이념이 자유주의의 위기 상황과 맞물려 대중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하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이는 '도덕적 가치'로 표상되는 쟁점들을 동원하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며, 케리의 깨끗한 승복이란 이러한 미국 지배계급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9.11 -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에서 요새 아메리카 수호로 9.11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으로 인식하는 특수한 소명의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냉전시대에도 관리 가능했던 전세계 도처에서의 미 패권에 대한 비판과 반전, 반미의 기운은 이제 예측불허의 테러가능성으로 가시화되었다. 부시와 신보주주의자들에 의해 천명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행복한 제국의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항존하는 '테러'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보호망을 형성하는 요새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부시는 미국은 냉전 시대의 '억지와 봉쇄' 정책은 21세기의 새로운 위헙을 대처하는 데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억지'는 방어할 국가나 국민이 없는 그림자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봉쇄'는 대량살상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해 공격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비밀리에 제공하는 독재자들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방주의를 전제로 예방전쟁 차원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잠재적 적국을 선제공격한다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기관지2002년6월호) 2002.9.17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선제공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국경에 닿기 전에 위협을 식별하고 파괴함으로써 미국과 미국 국민, 국내외에서 이익을 지킬 것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선제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의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다. }} 자본과 국방의 심장부에 가해진 예측불허의 테러는 '우월성과 모범성'을 가진 구원자로서의 나라, 타락한 구대륙과도 전혀 다르고 미개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자가 되어야 할 대단히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적 경험과 체제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의 특수성과 도덕적 우월성 뿐 아니라, 선을 보존 혹은 확장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Entia non sunt multiplicanda sine necessitate"(존재자의 수를 불필요하게 늘려서는 안된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essitate"(불필요하게 다수가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소수를 가정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을 다수로 가정하여 설명하는 것은 헛되다.) 이상의 세가지 명제로 요약되는 오컴의 이론은 합리적 이성을 표방하는 서구적 세계관의 근저를 이루며, 적과 나를 이분화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처럼 전세계를 정확히 이분화하거나 지구상에서 미합중국만을 오려낸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이분법적 개념을 포함한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골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 혹은 개발하고 있는 잠재적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통해 적국의 전체주의적 정권을 붕괴시키고 미국적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정권을 수립해, 주변국가 혹은 잠재적 적국을 민주화한다는 것이다. 신보주주의자의 관념(idea)의 힘이자 이미 공화/민주당 내 흡수된 이러한 입장은 강력한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부시의 재선은 이러한 기반 위에서 수행한 이라크 전을 비롯, 결정된 대외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철저히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도덕적 절대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인이 선택한 '도덕적 가치'란 이러한 소명의식과 미국적 특수성에 도전하는 세력들에 대한 화답이며, 413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채권의 7000억 달러 이상을 사들이는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미국적 보답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북한, 이란, 시리아 등 불량국가에 대한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케리의 패배는 자유주의의 몰락을 저지하고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 강화하는 데 다양한 이익집단(과거의 '새로운 다수'로 표현된 소수인종, 환경, 여성, 동성애 등등의 이슈)의 이해는 포괄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선거 이래 공화당과 보수주의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적 기획의 판정승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세계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민족국가로서의 미국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제국의 신민들에 의한 보편성의 승인은 이제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자국적 이해를 보호하는 것,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새를 수호해내는 것이 미국 그리고 동맹국의 목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수호하기 위한 전 세계 국가들의 과제는 FTA 등의 도입을 통한 관세철폐로 미국 대외무역적자를 감축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하는 데 동참하는 것, 미국을 핵심 타겟으로 하는 테러 위협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지지엄호하고 미국의 이분법에 따라 '우리편'의 수를 늘려 단결하는 것 등이 된다. 한편 이 보호해야 할 요새에는 미국 부의 40%를 소유한 상위 1% 그룹이 존재하며 더불어 전세계 지배엘리트들이 결집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이 요새에 대한 저항과 공격은 물론 모두 테러로 간주된다. 이 요새 수호전략은 테러가능성을 지닌 불량국가들이라는 위협요인을 제거하고 예방전쟁을 항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전파하는 합의적 미국정치체제가 복원되는 길은 요원하며 세계는 동맹국의 암묵적 합의(다자간 틀로 협의한 바 없다 하여도)를 기반으로 한 더욱 야만적인 미국의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전면적인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조직하자.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금융적 팽창이 새로운 헤게모니 출현의 전조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의 헤게모니가 쉽게 지속된다거나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이 무난히 이루어질 전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절대적 군사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개입을 펼치기에는 군사력과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주의적 틀을 강조하는 케리의 주장은 물론 설득력이 전혀 없다. 미국은 이라크라는 미궁에서 저항군에게 깨져나가며 친미정부 수립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이라크와 전세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으며 요새 아메리카를 수호하는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동맹국들의 불만과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라크 전을 수행하기 위한 연합군 운영의 과정에서 미국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각 국의 군대를 말그대로 갖다 쓰고 있다. }} 이러한 상황은 다자주의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군사개입을 상시화 해왔던 이전의 미국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임의적 자위권 발동이라는 선제공격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15억 달러씩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로 표현되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지게 되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부담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는 유동성과 규제철폐 경향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으로 집중되는 금융분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난점이다. 국방비는 점점 늘어날 것이며 반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보장비용의 지속적 삭감이 요구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기업 감세정책과 의료보호 축소가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대외정책과 맞바뀌어진 점은 그러한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초국적 기업을 통한 세계시장의 장악과 이를 통한 세계적 부의 집중으로 문제를 헤게모니를 유지해왔던 미국이 이와 관련해 내놓을 수 있는 계획은 많지 않다. 더욱 더 파괴적이고 반민중적인 시장개방 압력과 각종 FTA체결을 가속화하는 한편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민영화와 사회보장비용의 감소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이는 물론 미국 내에서의 노동자, 빈민들의 저항과 전 세계 개도국 정부 혹은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에게는 한층 가열차고 더욱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반전반세계화 투쟁이 요구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왜 부시의 재선을 막지 못했을까라는 평가보다는 2004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몰락과 야만의 징후를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 내에서 공민의 지위(선거권을 비롯하여 제반 사회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미국 시민들의 불만과 미국 내 사회운동의 반전을 비롯한 투쟁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의 반미란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보다 냉철한 비판과 폭넓은 저항의 조직화라는 과제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미 대선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지금, 반전반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모든 사회운동의 쟁점들의 연대를 통해 저항의 세계화를 이루어야 할 의무가 요구되고 있다. PSSP
죽음의 위기는 계속된다. -현지에서 본 미국 대선- 차주범 (뉴욕청년학교 프로그램코디네이터) {{{{* 편집자 해설 : 뉴욕청년학교(Young Korean American Service & Education Center, YKASEC www.ykasec.org)는 1984년 설립이래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정치·사회적 권익증진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단체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 한국인들을 '이주노동자'로 보고 노동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학교는 올해 100명 이상의 뉴욕시내 외국 이주민들과 함께 미국 내 반(反)이민자 법안 폐지를 촉구하고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을 위해 보름간 단식농성을 이끌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 미 연방의회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선제공격 옵션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정착 결의안'을 상정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미국 시민권자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한겨레 2004. 10. 26일자) 필자는 10년 동안 청년학교와 뉴욕청년연합에서 일해왔으며 평화와 진보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이다. }} }} 들어가는 말 지난 8월 29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메디슨스퀘어 가든을 중심으로 뉴욕시 맨하탄 한복판은 25만 여명의 시위군중으로 넘쳐 났다. World Say No to Bush Agenda라는 주제로 미 전국 각지에서 모인 반전, 평화, 여성단체 등 진보단체의 활동가들과 개인들이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던 것이다. 시위주제가 부시를 직접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책에 대한 반대였던 이유는 그날 시위의 주체단체 및 다수의 참가단체들이 비영리 법인단체였기 때문이다.(미국에서 세금감면을 받는 비영리 법인단체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무더웠던 막바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사실상의 반 부시 시위였던 그날, 25만 명의 참가자들은 두어달 남은 미 대선이 마치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추진과정처럼 일방적인 부시의 페이스로 종결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그날 시위를 계기로 부시에 반대하는 평화, 진보주의자 들의 주장은 미디어를 타고 전국적으로 선전되었으며 친 부시와 반 부시의 대립선이 확실하게 설정되는 듯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선거가 끝난 후 판명되었지만, 이번 미 대선은 그날 모인 시위군중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민주당의 아성 뉴욕에서 반 부시의 함성이 하늘을 진동시킬 때 땅에서는 접전 주들(Swing States)을 중심으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의 치밀한 노력 하에 부시의 승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부시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선 아주 착잡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이번 대선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코리아반도의 평화정착과 이땅 미국에서 평등한 이민자의 삶을 보장 받길 원하는 우리 코리안아메리칸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향후 부시행정부가 더 나아가 미국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부시는 왜 이겼을까? 이번 미 대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도덕이 도덕을 앞세워 승리한 선거 언론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평론가 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아들 부시가 처한 선거환경과 아버지 부시가 직면했던 상황을 곧잘 비교하곤 했다. 즉 전쟁까지 일으키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요 선거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는 부시에 대항해 케리가 얼마나 경제, 복지 등 당면한 민생문제를 잘 부각시켜 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992년 선거에서 당시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It's Economy Stupid! 라는 확실한 구호를 앞세우면서 경기침체로 인해 괴로워하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선거 직후 실시한 CNN, ABC 등 주요 메이저 방송국의 합동 출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냐는 질문에 이라크전쟁도 아니고 경제도 아닌 도덕성(Moral Values)이라고 투표에 참가한 전체 유권자 중 22%가 답을 해 경제(20%), 테러리즘(19%)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렇게 대답한 유권자 중 80%가 압도적으로 부시를 지지했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이란 주요 선거 이슈의 하나 였던 낙태, 동성결혼문제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낙태, 동성결혼이 도덕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도덕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엔 속사정이 있다. 이번 선거의 전체 유권자 중 1/4가량(23%)이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자 들이었는데 그들이 부시에게 몰표를 던진(78%)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치를 세속적인 행위로 치부하면서 투표참가를 꺼리고 부시의 과거전력(알코올중독 등)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적극적으로 부시를 지지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번엔 부시에게 투표하기 위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선거 전후에 부시의 실질적인 브레인으로 주목 받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을 비롯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이 수년 동안 이들을 대상으로 '도덕적'이슈를 부각시키고 투표장으로 유도한 결과가 빛을 발한 것이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부시행정부의 행적을 살펴보면 부도덕으로 점철되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라크 전쟁이야말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기극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부도덕한 부시정권이 다른 도덕(?)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이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애국주의(사실은 인종주의)의 정점을 보여준 선거 9.11을 기점으로 해서 부시행정부(네오콘)는 그들의 패권주의적 자세를 노골적으로 견지하면서 두 번의 전쟁을 연달아 일으켰다. 부시행정부는 현재 미국 안에서도 전쟁을 진행중이다. 테러리스트를 근절한다며 중동을 초토화하는 한편 같은 명분을 국내에서도 발현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부시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날림으로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Patriot Act)을 필두로 행정부와 의회는 각 정부기관 간의 유기적인 정보교환 체계를 만들어 이민자를 단속하고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정책추진의 근거는 이른바 '국가안전'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9.11은 미 정치권과 일반국민에게 국가안전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해 주면서 다양한 정책을 만들게끔 했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염려스러운 현상을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을 휩쓸고 있는 애국주의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미 정치권과 백인들의 '그들만의 애국주의'이다. 이민자 그룹을 테러리스트와 동일한 집단으로 치부하면서 필요이상의 규제와 단속으로 이민자들의 일상생활을 억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미 미국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였던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탄압이 테러리스트 근절이라는 명분 하에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현실이 닥친 것이다. 요즘의 미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마치 90년대 중반의 상황을 보는 듯 하다. 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당시 미국경제의 침체의 원인을 미국사회를 좀먹는-경제적 기여는 없으면서 정부수혜만 받는-이민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사회보장혜택 축소 등의 정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였던 적이 있었다. 근래에는 국가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이민자를 지목하면서 다시금 세찬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 정치권의 잘못을 공공의 적(이민자)에게 대신 떠 넘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국에서 5.18 민중항쟁의 피냄새가 다 가시고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가는데 대략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9.11의 피냄새가 사라지기 위해선 향후 최소한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이러한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반 공화당 진영에 경고카드를 보여준 선거 미국 선거도 한국 선거와 다름없는 승리공식이 있다. 자신의 지지층을 잘 결집시켜 동원하고 거기에 부동층을 조금 보태면 승리하는 것이다. 부시는 이점에 있어서 확실히 성공했고 케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를 비롯해 소득 5만 달러 이상 계층, 백인, 총기소지자 등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평소 선거 때 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부시의 재선을 자축하고 있는 부시 지지그룹 들은 아마도 이번에 그들이 미국을 구원했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는 테러의 위협과 동성결혼, 낙태로 어지러운 미국사회를 구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미국이 테러씩이나 당해야 했는지 사려 깊게 따져 보는 노력 대신 적(?)들을 향한 증오심과 테러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인 그들은 부시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부시는 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확실한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부시가 미국이 너무 일방주의 정책을 펼쳐 다른 국가의 신망을 잃고 있다는 케리의 공격에 왜 우리가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데 다른 나라의 허락을 얻어야 하냐?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부시와 그 지지그룹이 갖고 있는 기본인식을 선명하게 나타내 주었다. 이렇게 부시와 그 지지그룹은 기만적이지만 동시에 선명한 정치구호로 무장되어 있었던 반면에 케리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그룹은 이번 선거에서 약간 무능력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부시진영의 테러근절, 도덕성 회복을 기치로 하는 저돌적인 공격에 맞서는 논리개발과 민주당 지지그룹을 매혹시킬 만한 정책개발에 미흡했다. 앞서 인용한 출구조사에서 케리를 지지한 유권자 중 무려 70%가 케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부시가 싫어서 투표했다는 대답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케리진영의 선거전략이 갖는 무능함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그룹은 노조였다. 이번 선거를 맞이하면서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조직내부의 논란 속에 지난 수 년간 자신들의 1년 예산에 맞먹는 수천만 달러의 돈을 쓰면서 케리에 올인 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보수화로 치닫고 있는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미 대선은 공화당에게 있어서 한가지 이유로 기념비적인 선거로 남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간의 선거역사상 최초로 투표에 참여한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동수를 기록한 것이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정당에 등록할 수 있는 현 미국의 선거제도에 따라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당에 가입해 있는 상태인데 항상 민주당원의 투표참가율이 공화당원의 그것을 많게는 2백만 표 정도의 차이로 압도해 왔었다. 이번에 그 현상이 깨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에게 선거시 조직동원에 있어서 공화당에 비해 유리하다는 안일한 관념을 앞으로는 깨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애국주의의 흐름을 탄 공화당 지지그룹의 대동단결에 맞서는 민주당과 지지그룹의 분발을 촉구하는 선거였다. 이민자 커뮤니티의 조직화 필요성을 일깨운 선거 4년 전 선거에서 부시는 각 주별로 집계되는 선거인단 수에선 이겼지만 전체 투표수에선 고어보다 50만 표 가량 뒤짐으로서 반쪽승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전체 투표수에서도 약 350만 표 차이로 깨끗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350만 표는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앞서 얘기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대략 200만 표 정도를 더 부시에게 얻어준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약 100만 표는 민주당원이면서도 공화당을 지지했거나 하는 경우를 빼고 대부분 히스패닉(Hispanic) 이민자 그룹에서 나온 표이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는 히스패닉 유권자 중 44%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것은 지난 선거 대비 약 10%가 성장한 것으로 히스패닉 계열 이민자 단체들도 깜짝 놀란 결과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부시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인 텍사스에서 주지사로 재직할 당시부터 부시는 히스패닉에 대한 남다른 친분을 표시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부시는 스페인어로 된 광고제작에 막대한 돈을 쓰는 한편 우리가 남이가? 우린 예전부터 무지 친했지?라는 메시지를 날리며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하였다. 아울러 정책적인 측면에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만한 행위도 곁들였다. 현재 미국은 전국적으로 약 천만 명이 넘는 서류미비자(불법체류자)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큰 논란의 불씨로 존재하는 상태이다. 부시는 금년 초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임시노동허가 프로그램(Temporary Workers Program)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류미비자 들에게 한 번의 연장이 가능한 3년간의 임시 취업허가를 내주고 체류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우선 추방 대상자가 되어)는 것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 단체들은 부시의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항구적으로 정착하며 살아야 하는 서류미비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를 표명하였다. 사실 부시의 정책은 선거를 앞두고 히스패닉들(미국에서 수 년간 합법적으로 일하고 돌아가길 원하는)의 환심을 사기위한 일종의 정치적 액션이었다. 이 액션이 히스패닉 커뮤니티의 호감을 얻은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민자 그룹은 민주당에 대한 확실한 지지성향을 보여주곤 하였다. 그것은 전국의 이민자 단체들이 선거 때 마다 커뮤니티를 조직화하고 교육해 온 노력에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반 이민자정책에 대한 반발이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이민자 커뮤니티가 무조건적인 민주당의 지지그룹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사실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경우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화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었다. 오는 2050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미국은 유색인종의 인구가 백인을 추월하게 된다. 그전까지 이 미국사회는 기득권자인 백인 지배세력과 유색인종 간의 치열한 정치적, 사회적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이번 미 대선은 앞으로 이민자 단체들이 일상 생활정치 차원에서 그리고 선거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일깨운 선거였다. 나오는 말 연대의 정신으로 '생명운동'에 나서자 케리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미국사회와 세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겠지만, 전세계 민중들의 끔찍한 재앙, '악의 중심' 부시가 재선된 이번 미 대선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향후 4년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우리에게 '고난의 행군'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와 패권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의 세계지배 정책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나는 그것을 '생명운동' 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정치, 군사, 경제적 현상을 건조한 사회과학적 용어를 동원해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말해 '죽음의 행렬'이라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죽어가고 있으며 생존권의 보장을 위해 전세계 노동자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가공할 군사력을 무기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부시행정부에 맞서서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일국의 차원을 넘어 전세계적인 민중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뉴욕의 단체 사무실에 앉아 나는 한국 국회앞 타워크레인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PSSP
미국 대선과 사회운동 정영섭 (반전팀) 11월 3일 아침 부시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사회운동 진영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허탈해했다. 그들은 그 '악몽과도 같은 체제'가 끝나있기를 희망하면서 눈을 떴으나 현실은 4년 전보다 악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시는 4년 전보다 큰 격차의 승리를 거두었고 많은 이들에게 '4년 더(four more years)'라는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미국인들이 전쟁과 종교광신주의, 국가 테러리즘에 손을 들어주었다며 한탄하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위안거리를 찾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성장, 민중의 힘이 대통령의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젊은층의 행동이 커진 것, 자유무역 정책에 대한 반대활동 등을 말하면서 '캐나다로 이주해서는 안될 10가지 이유'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사라 앤더슨, www.CommonDreams.org 2004. 11. 4 }} Nation誌와 같은 언론에서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반전운동의 부활이며 이라크로부터의 철수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하여 모두가 꿋꿋이 서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전반적으로 볼 때 미국 진보진영은 크게 실망하면서도 최근 몇 년간 성장해온 운동의 동력이나 그 성과에 다시 주목하고 향후 운동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한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反부시 캠페인의 한계 미국 반전운동 진영은 대체적으로 반부시 캠페인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만 아니라면 아무라도(Anybody But Bush)'가 그 캠페인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마치 주문처럼 "누가 이기든 우리는 여전히 이라크 점령을 지속시키는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즉, 케리 역시 마찬가지로 전쟁과 점령을 지속하려 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부시를 패배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케리 지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선거캠페인이 벌어졌다. 노동운동을 비롯하여 반전운동의 활동가들은 새로운 유권자들을 등록시키거나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호별 방문을 하거나 선거모니터 요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반부시 선거운동은 전례없이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었고 오히려 김빠진 케리진영의 유일한 활력이었다. 그리하여 운동진영이 총력으로 조직하여 공화당 전당대회 전날인 8월 29일 뉴욕에서 개최한 부시 반대 시위에는 무려 50만 명이나 참여하여 부시행정부의 전쟁과 복지삭감, 노동 공격에 대해 반대를 표시했다. 그러나 케리의 정책은 운동진영의 열망과 활동과는 상관없었고 그에 정반대 되는 것이었다. 비판적 지지라고 표현될 만한 수준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반전활동가들 다수는 전쟁을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노조활동가들은 자유무역에 찬성하는 이를 위해 노력했으며 권리로서의 의료보장을 평생 대변한 이들도 5000억 달러를 사적이고 이윤지향적인 민간의료보험에 부어넣으려는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마크 두직, 「선거 이후 : 다음은 무엇인가」, www.zmag.org, 2004. 11. 22 }} 반부시 캠페인에 적극적이었던 미국의 대표적인 반전운동 연대체인 '정의평화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은 선거 직후 '한탄하지 말고 조직하라'는 제목의 입장을 내어서 스스로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우리의 오랜 희망은 이 풀뿌리운동의 발전에 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물론 부시정책을 패배시키지 못했고, 우리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좌절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운동은 권력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우리는 언제나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우리의 운동이 대선 결과에 즉각적으로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래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정의평화연합, 「한탄하지 말고 조직하라」, www.unitedforpeace.org, 2004. 11. 3 }} 선거에서는 패배하였지만 반전운동을 더욱 강화하자는 얘기다. 또 하나의 반전운동 연대체인 'A.N.S.W.E.R(Act Now to Stop the War and End Racism)'는 케리 비판에 보다 비중을 두면서 많은 진보단체들이 케리에 영합한 것을 비판하였다. 계급을 대표하는 것에 있어 부시나 케리는 동일하고 그들은 오히려 암묵적인 단결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전쟁의 가속화와 국내에서의 억압에 직면하여 반전운동의 전망은 무엇인가? 우리가 너무 약했다고 선언해야 하나? 반전운동은 평화를 위한 투쟁과 국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투적인 운동을 결합시켜야 한다. 노조를 지키고 의료보장과 연금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에 대항해 투쟁을 시작하는 노동자운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반전운동은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반인종주의 운동과도 단결해야 한다...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집단적 행동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민중들에 의해서 국제적 운동은 강화된다."고 하였다.{{) ANSWER, 「미국의 진정한 분열」, www.answercoalition.org, 2004. 11. 5 }} 운동 자체의 변화 발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 반전운동은 반부시 운동으로 드러났고, 이는 냉철히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 정치구조가 진입장벽이 높은 양당제로서 제3후보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지만, 부시정권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부시와 비슷한 정책을 가진 케리 지지로 동원해내려는 전술 자체는 전제부터 치명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헤게모니국가인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대한 대대적인 대중투쟁의 발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할 때, 그러한 방향에서 실천을 해야 했다. 미국 노동운동의 현실 AFL-CIO(미국노동조합산업연맹)로 대표되는 미국 노동운동 역시 전례없는 민주당 지지운동에 역량을 동원했고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AFL-CIO는 5,000명의 유급직원, 225,000명의 자원봉사자를 동원했고 수백 개의 전화선거운동센터에 활동가를 보냈으며 6백만 가구를 방문했고 3천2백만 장의 유인물을 돌렸다. AFL-CIO는 4천5백만 달러(약 460억 원)를 썼고 SEIU(미국서비스노조)는 6천5백만 달러, AFSCME(미국공무원노조)는 5천만 달러를 썼다. 다른 노조들도 수백만 달러 이상을 썼고 수많은 활동가들을 케리 선거운동에 내보냈다.{{) 마크 그루엔버그, 「케리 패배 이후의 존 스위니」, www.zmag.org, 2004. 11. 6 }} AFL-CIO는 1억달러 이상을 민주당에 기부했다고도 한다.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전체 투표의 1/4 정도인 2천7백만 표를 투표했고, 이 가운데 케리-부시 비율은 65%대 33%로 거의 두배 차이가 났다. 선거 이후 AFL-CIO의 존 스위니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조합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이 노조의 이슈를 더 중요시하도록 하고 활동가들과 조합원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우군의 위치에서 최대의 기여를 했다고는 하지만, AFL-CIO 자체적으로도 조직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기여를 지속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케리가 노조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당은 계속 멀어지고 있다. 노조와 민주당의 동맹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노동운동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실패한 케리 선거운동에 바친 것이다. 한편, 민주-공화 양당에 독립적인 노동운동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유의미한 시도가 '백만노동자행진(Million Workers' March)'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ILWU(국제항만노조) 10지부에서 제안된 이 운동은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 노동자들에 의한 행동을 조직하자는 의미로 제기되었고 흑인과 라틴 등 유색 노동자조직과 일부 반전운동 조직에 의해 주로 지지받았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전쟁과 복지삭감, 일자리축소, 노조공격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AFL-CIO 지도부의 탄압을 받았다. AFL-CIO, 팀스터(트럭운수노조), 미국서비스노조, 국제항만노조의 위원장들이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서 백만노동자행진에 반대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백만노동자행진 선언과 향후 방향」, www.millionworkersarch.org, 2004. 11. 6 }}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백만노동자행진의 시위는 대규모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국 전역에서 모인 1만명 정도가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AFL-CIO의 관성과 전략을 비판하고 이후에도 백만노동자행진 운동을 지속할 것을 밝히면서 기층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운동적으로 유의미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AFL-CIO 지도부의 반대 지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노동운동이 수십 년 간 민주당과의 동맹에 의존해 왔던 것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조합원들만의 이해를 대변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온 미국의 비즈니스 노조주의가 이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직면하여 조직률 자체가 하락하여 영향력마저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당과의 동맹으로는 노동자의 이해도 대변해내기 힘들다.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위해 운동하고 투쟁하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은 어디로 대선 이후 정의평화연합과 ANSWER를 비롯한 미국의 반전운동은 1월 20일 부시 취임식에 맞춘 시위와 3월 20일 이라크 침공 2주기에 맞춘 국제적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대선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시위를 통한 운동 동력의 재조직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선이 미국만의 대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과 부시 2기에 대한 저항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반전운동 스스로도 얘기하듯이 반부시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처음으로 경험한 정치적인 적극성이 향후 운동의 동력이 보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에서도 역시 새로운 흐름이 더욱 활발히 나타나고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인 전쟁과 신자유주의 하에서 미국이라는 헤게모니 국가에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은 기존의 양당체제 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를 초과해야 하며 세계 각 국의 운동과 연대하여 지배체제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PSSP
지난 1월 14일 민주노동당에서 진행된 세계사회포럼 참가자 교양대회 자료입니다. 지난 전에 올린 5차 세계사회포럼 자료모음과 약간 중복되는 내용이 있긴 합니다만 세계사회포럼에서 채택된 전세계사회운동의 호소문 등의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라크 총선 - 문제적인 미국 조직들이 이라크 선거 배후에서 작동한다 - 리사 애쉬케나즈 크로키 & 브라이언 도미닉, 뉴스탠다드, 2004. 12. 13 (Lisa Ashkenaz Croke and Brian Dominick; The New Standard; December 13, 2004) * 미국이 기금을 대는 조직들이 이라크 선거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파헤친 글입니다.
한일 FTA 협상 저지 투쟁으로 하나 된 한일 노동자-민중 지난 11월 초 일본 동경에서 한일 FTA 6차 협상이 열렸고, [자유무역 WTO 반대 국민행동],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으로 꾸려진 [반세계화 공동투쟁 기획단]은 약 90여 명의 '한일 FTA 6차 협상 저지 일본원정투쟁단'을 조직했다. ['이의있음! 한일 FTA' 캠페인], [아탁 재팬],[젠토이츠노조], [평화포럼]등 일본의 사회운동은 한국 원정투쟁과 함께 공동 활동을 펼치기 위해 '11월 한일 FTA 저지 공동행동 실행위원회'를 구성했다. 2002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1차 협상 당시에는 '한일 민중 공동성명서'를 긴급하게 조직하여 양국 정부에 초국적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며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짓밟는 한일FTA 협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간 협상은 2개월에 한번씩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진행되었는데, 이때마다 양국 사회운동들은 협상장 앞 시위를 조직했고, 참여 인원은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 지난 8월 경주에서 열린 5차 협상에는 약 500여명이 모이게 되었다. '한일 FTA 산관학 합동 연구회' 등 한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한일 FTA 체결로 관세가 철폐되면 현재 관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이 더욱 큰 타격을 입게 되고, 한국의 대일무역적자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전경련 등은 정부에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유보하거나 시기를 늦춰줄 것과 중소기업체들의 피해산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등 국내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양국 민중에게 놓인 한일 FTA의 문제가 이들처럼 양국 사이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었다면 양국 민중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양국 민중은 한일 FTA가 국경과는 상관없이 투자의 범위와 영역을 확대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초국적 자본에 최적의 환경을 선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한일 FTA 협상에서 교육, 의료를 비롯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자유화가 WTO 도하개발의제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무역장벽으로 취급하고 있는 점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권, 환경권,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등 민중들의 제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한일 FTA를 저지하는 투쟁에 양국의 민중들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연대의 시작, 서로에 대한 이해로 한일 민중들의 만남. 이토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행동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긴 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행동을 펼치는 것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동 활동 기간은 고작 3일이었기 때문에, 원정투쟁단의 활동 목표는 한일 FTA 체결에 대한 양국 민중의 반대의 목소리를 양국 협상단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돌아온다는 정도로 소박하게 설정되었다. 그러나 원정투쟁단과 일본실행위의 조건은 너무도 달랐고,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한국의 원정투쟁단에게 동경은 언어도 다르고 지리도 낯설고 스스로의 행동이 어떤 효과를 낳을지 예측하기 힘든 매우 생경한 곳이었다. 일본의 실행위 역시 이런 대규모의 원정투쟁과 공동 활동을 펼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정투쟁단은 한정된 시간동안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행동을 하고자 했으나,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동경에서 벌어지는 어떤 상황에 대해 즉각적으로,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일본의 실행위는 원정투쟁단이 가지고 있는 의지를 모조리 발휘하고, 그럼으로써 침체된 일본의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하고 있었으나, 스스로의 역량이 마음만큼 이를 지원하기에 충분하다고 자신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공동 활동이 최대한의 성과를 남기도록 하기 위해, 원정투쟁단과 일본 실행위는 서로가 처한 조건,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3일간 진행된 투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이를 훌륭하게 해냈고, 서로서로를 진정한 동지로 가슴에 담았다. 외무성 앞 연좌농성, 경단련 항의방문, 시부야 거리집회… 원정투쟁단의 기본적인 활동계획은 협상이 진행되는 일본외무성 앞에서 연좌농성을 진행하며 협상중단을 요구하는 것과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한일FTA가 정하는 '비관세 무역장벽'에 포함시켜 없앨 것을 주장하는 일본경제단체연합 앞에서 항의시위를 전개하는 것, 양국 정부가 협정문안을 합의하고 나면 비준절차가 이루어질 국회 앞,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한일 FTA의 반민중성을 알려내는 것들로 구성되었다. 동경 시내 중심지인 시부야 공원 근처에서 거리시위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러나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투쟁형태인 외무성앞 연좌농성도 일본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최근 20년 동안 일본에서는 한번도 이런 형태의 투쟁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원정투쟁단이 일본에 도착하기 직전, 코우다라는 일본청년이 이라크에서 납치되어 참수 당한 사건이 있었고, 일본 정부는 바로 그 즈음을 대테러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있어서 정부 건물 주변 경비가 강화된 상태였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전날 밤, 연좌농성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일본실행위가 마련한 방안들을 공유하고, 한일FTA 체결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하겠다는 의지들을 확인하며 다음날을 예비했다. 20년 만에 처음인 정부청사 앞 연좌농성이 어떤 양상을 그릴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협상이 개시된 11월 1일, 이른 아침부터 외무성 근처의 히비야 공원에는 원정투쟁단을 포함하여 250명 가량이 모여들었고, 간단한 결의대회를 진행한 후 외무성 앞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경시청소속 기동대(그러나 차림새는 한국의 전경과는 매우 다르다. 헬멧, 방패, 곤봉 아무것도 없었다)는 외무성 앞길을 막아섰다. '니칸 FTA 쿄쇼 야메로!(한일 FTA 협상 중단하라!)', '한일FTA 중단하라!' 한국어와 일본어 섞어가며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중, 한국 정부 협상단을 실은 버스가 외무성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위 참석자들이 외무성 앞으로 다가가 항의하며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원정투쟁단은 대열을 가다듬고 길 건너편 신호등의 파란 불이 들어오는 것을 신호로 하여 스크럼을 짠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경찰을 밀어내려고 하였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경찰들은 스크럼을 짜고 있는 원정투쟁단원들의 목을 조르며 인도로 밀어 넣으려 했다. 순식간에 일본의 참가자들이 원정투쟁단 사이를 헤치고 경찰 앞으로 다가섰다. 원정투쟁단원들은 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일본 참가자들의 행동이 경찰과의 충돌을 막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원정투쟁단을 경찰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일민중 공동기자회견부터 유라쿠쵸 마리온 이라는 번화가 선전전까지, 이날의 활동은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하루 일정이 끝난 후, 다음날의 투쟁 수위를 둘러싼 일본 실행위와 원정투쟁단 상황실간의 격렬한 논쟁이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일본 실행위는 이날 아침 외무성 앞에서 벌어진 격렬한 몸싸움으로, 경찰의 대응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일본의 법에 의하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이 따를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따라서 다음날까지 연좌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며, 계획을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원정투쟁단 상황실은 한계적인 조건임을 감안하더라도 연좌시위를 지속하는 것이 투쟁단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는 입장을 폈다. 장시간의 토론 끝에 서로의 조건과 의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다음날 현장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상황을 공유한 원정투쟁단은 다음날의 투쟁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조별로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했고, 이를 지켜보는 일본 실행위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토론에 합류하여 마음은 원정투쟁단의 의지만큼 함께 투쟁하겠지만 몸은 경찰 앞에서 원정투쟁단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뜻을 전달하는 일본 활동가도 있었다. 날이 밝자 히비야 공원은 또다시 외무성앞 시위를 전개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외무성으로 향하기 직전 일본실행위는 원정투쟁단 상황실에 긴급한 메시지를 전했다. '구속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정투쟁단이 정하는 수위의 투쟁을 함께 하겠다. 그러나 원정투쟁단이 경찰에 의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일본인들이 앞장서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외무성으로 향하는 원정투쟁단의 발걸음은 힘이 넘쳤다. 전날과 달리 방패며 곤봉으로 무장한 채 외무성을 감싸고 있는 경찰을 바라보는 일본 참가자들의 눈빛에도 힘이 넘쳤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은 채 더욱 목소리를 높여 항의의 뜻을 전했다. 안타깝게도 이날 시위에서 경찰의 진압으로 두 명의 원정투쟁단원이 부상을 입고, 전일본운수노조연대 소속 노동자 한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국회 앞 시위, 경단련 항의시위, 마루노우치 경찰서 앞 항의시위, 일본외무성 항의면담까지 힘찬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부야 거리시위에는 전노협, 이주노동자들이 주된 조합원인 카나가와시티 유니온을 비롯 500여명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든든한 동지를 얻었다는 기쁨에 지칠 줄을 몰랐다. '원정투쟁단이 침체된 일본 운동에 활력이 되어주길…' 일본의 3개 노총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니고 있는 렌고(聯合)는 한일 FTA의 필요성을 긍정하지만, '일본'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공산당 계열의 젠노렌(全勞聯)은 한일 FTA가 반민중적이라는 입장은 공감을 하지만, 실행위에 결합하고 있는 여타 일본 단체들과의 관계상 원정투쟁단과 직접 공동투쟁을 벌이기는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원정투쟁단과 행동을 함께한 일본실행위를 구성하고 있는 단체들은 가장 작은 규모의 노총인 젠로쿄(全勞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는 젠토이츠(全通一)노조 등과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강화하여 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풀뿌리 사회운동들이었다. 시위 참가자들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동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침체된 일본운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국철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해고된 조합원들이, 민영화를 수용하며 사측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새롭게 구성된 노동조합의 외면 속에서 18년간 원직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며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활동을 제어하는 어용노조에 맞서,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14명의 인원으로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는 모습…. '복지는 국가가 책임 질 테니 노조는 투쟁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노동운동이 받아들인 후의 모습이라고 했다. 일본의 운동은 원정투쟁단에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정투쟁단은 침체된 일본 사회운동에 활력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바램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마무리하며 6차 협상이 끝난 직후, 한국 정부는 한일 FTA 협상을 내년 중으로 타결한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으나,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한중 FTA, 한미 FTA 체결을 함께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국내자본이 입을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협상안을 일본 측이 쉽게 수용하지 않은 탓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 협상단은 원정투쟁단의 항의면담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국내자본의 요구대로 관세철폐 등 무역자유화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는 있을지언정, 초국적 자본의 이해보다 민중의 권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양국민중의 요구는 청취조차도 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원정투쟁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진행했던 '한일FTA 저지 전략 워크샵'에서는 한일 양국 민중의 연대투쟁을 이번 원정투쟁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가자는 의견이 오고갔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릴 WTO 6차 각료회담 저지투쟁에도 한국과 일본의 사회운동이 아시아지역 사회운동의 합력을 모아내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3일 동안 다져진 서로에 대한 신뢰와 동지애가 그 바탕이 될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