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06
- 요약문이 있습니다.
- 요약보기
- 바로가기
대한상의 노동정책 건의와 매일경제의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 기획기사를 보며
그들의 요구
여야 정당들의 대통령 후보가 노동자의 표를 얻고자 하기에 차마 이야기 할 수 없는 정책들을, 그들을 대신하여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조직이 있다. 대한상의, 경총, 전경련 등의 자본가 단체들과 매일경제신문 등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이회창, 노무현이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비밀을 누설함으로서, 대통령 후보들이 당선 후에 수행해야 할 '자본가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지난 11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는 파업기간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시 형사처벌 규정 삭제,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적용 등의 내용이 담긴 노동정책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이 내용들은 이미 10월 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대선공약 경영계 정책건의서, 경쟁력 있는 국가건설을 통한 국민 삶의 질적 개선」라는 문건을 통해 공개한 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한 것으로, 김대중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 후보들에게 다음 정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었다. 정책건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금년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각 후보의 공약은 단기적 인기를 얻기 위해 정치논리에 치중된 공약이 되어서는 안되며, 시장경제원리를 철저히 준수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 … 유념해야 함."
또한 이에 앞서 매일경제 신문은 한국 노동운동을 21세기 한국 사회의 비합리적 반사회적 모습으로 규정한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기획기사를 11회 분량으로 11월 26일부터 연재하였다. "한국 국가 이미지가 노사관계 후진국으로 고착될 위기에 처했다. … 주한상공회의소는 한국경제가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 걸림돌로 노사관계 후진성을 매년 꼽는다" 로 시작하는 기획기사는 노조 전임자 문제, 노조의 비도덕성, 노-노 갈등, 명분없는 파업, 잘 사는 노동자만을 위한 이익단체 민주노총, 노조간부의 정책 부족-비합리성, 노조 없는 기업의 성장가능성 등등 한국 노동자운동의 문제점을 현장 인터뷰를 중심으로 (원인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해석하였다. 그리고 기획기사는 결론으로 "강력한 노조와 이를 부추기는 노동관련법 … 이 한국 기업의 최대 약점이다. … 노동자가 아니라 노조 문제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강력한 노조를 부추키는 노동관련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파업기간 대체근로 허용,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적용 등 경총이 제안하고 대한상의가 강조한 그것을 즉각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경제는 대통령선거가 시작되는 묘한 시점에 자본가 단체들의 정책을 중립적인 듯 보이는 기사 형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노동유연화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무릎꿇게 하라!
김대중 정권 5년간의 노동정책, 그리고 자본가들의 다음 목표
우리는 15대 대선을 앞두고 자본가 이데올로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통해 차기 정권에서 어떠한 노동정책을 펼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영삼 정권은 정권 말기에 국회 날치기를 통해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를 법제화하고 노동유연화 정책의 골간을 마련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이를 경제위기라는 상황을 명분으로, 그리고 노사정위라는 사회적합의기구를 형식으로 하여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김대중은 노동유연화를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는 노동시장, 노동과정, 노동력재생산에 걸쳐 체계화 제도화하는데 성공한다. 용역 외주화 아웃소싱 등의 노동력 외부화,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한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전환, 임시직 계약직 일용직 등을 통한 신규채용 전략을 일반화하였으며, 연봉제 성과급제 스톡옵션 등을 통해 임금을 유연화하였고 변형근로시간제를 확대 적용하여 실질적인 장시간 노동 구조를 정착시켰다. 또한 BK21, 7차 교육과정으로 대표되는 교육 서열화, 학생에 대한 핵심/주변 분할 체제를 정착시킴으로서 노동유연화 구조에 걸맞는 노동자 재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생산적 복지 정책을 통해 실업 빈곤을 관리하며, 이 밖에도 주식시장의 활성화, 카드 가계대출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금융 시장에 종속시킴으로서 노동 유연화 정책에 대한 2중 3중의 보호막을 구축했다.
이제 자본은 향후 노동유연화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진 셈이다. 실재 경총의 노동유연화 요구를 보아도 정리해고 요건 완화, 근로계약기간 상한선 확대, 의무고용규제 개선 등 기존 정책의 각론을 고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지난 5년간 노동유연화의 기초가 다져졌으니, 이를 더욱 확대해나가는 핵심 걸림돌은 이제 노동운동의 저항이다. (경총의 공약제안의 첫 번째 목차는 "산업평화 달성-유지를 위한 노동법 제도의 합리적 개선"이다. 그리고 정권 초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이념적 지표를 선동하는 데 앞장섰던 매일경제가 지금 제시하는 것은 비합리적 반사회적 노동운동에 대한 처방이다.) 차기 정부에 대한 이들의 가장 강력한 요구는 대한상의가 선언하였듯이 이제 법적 제도적으로 노동운동을 '처벌하라'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술책
아군의 취약점은 적군의 가장 좋은 공격 지점이 된다. 자본가들의 첫 번째 표적이 되는 것은 현재의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노동자들간의 괴리이다. 매일경제 기획기사는 이에 대해 '노조전임자' 문제로 시작한다. "2000년 기준 노조원 212명당 전임자 1명이 있을 정도로 일하지 않는 전임자가 판을 친다. …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무국장 수뢰사건으로 총사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관료화된 노조가 비윤리적인 자본가보다 못하다" 그리고 곧이어 노동조합의 파업 현실을 폭로한다. "50%를 간신히 넘는 투표율로 찬반투표를 가지고 파업에 들어갔다가 조합원들은 모두 떠나고 노조 간부들만 남아 파업을 계속하는 우리나라의 실정"
이에 대한 경총은 '근로자의 단결하지 아니할 권리와 단결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유니온 샾 조항을 삭제하라'는 것이며, '파업찬반투표 용지에 파업으로 인한 임금상실 가능성 및 불법파업시 책임발생 가능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삽입된 법정투표용지를 사용하도록 하며, 노조원이 공정하고 소신있게 의사표현 할 수 있도록 우편투표화가 이루어져야 함' 이라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표적은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 반대의 정치적 목표 아래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매일경제 기획기사는 먼저 단결을 주장하며, 그에 배반하는 노동운동의 내적 모순을 지적한다. "하도급 노동자는 정규직 방패막이 … 울산 현대자동차 하도급 노동자로 근무했던 C씨는 회사가 어려워져 인력을 감축해야 할 때 정규직 대신 해고될 만큼 하도급 노동자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 …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폭행 … 캐리어 비정규직은 정규직한테 집단폭행 당한 아픔이 있다" 그리고 이어 민주노총의 전국적 투쟁 뒤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뒤따른 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수많은 주장과 요구는 일반국민은 물론 노동자들에게도 외면당했다. …대안없는 민영화 반대 … 결국 노조원 350명이 해고되고 복귀자는 모든 손해배상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면서 끝났다. "
이에 대해 경총은 '단체교섭사항의 명확한 규정',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3자 개입의 합리적 제한' '폭력 사용 개연성이 큰 개인 및 단체의 집회 참가 제한, 시위방법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집시법 개정'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들은 노동운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매일경제는 인용을 통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파업문화를 장기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사적 접근보다 손배소 가압류 등 민사적 접근이 유리하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개선 방향으로 LG 전자, 미국자동차연합노조, 독일금속노조 등을 예로 들며 회사와 협력하여 구조조정과 효율화에 매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경총은 좀 더 노골적으로 '직권중재 가능한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국적 민중연대 전선의 강화를, 다시 한 번 전민중적 민주화 투쟁을
지난 시기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허황된 협박 같았던 자본가들의 정책 제안이 결국 현실에서 시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기업존속이 위태롭거나 또는 법원의 쟁의행위금지 가처분이 있거나 공익이 제한될 때 이를 허용하고, 대체인력 투입을 방해할 경우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대한상의 회장이기도 한 두산중공업 사용주는 매일경제가 '노동자들의 지지 없는 산별건설' '산별교섭을 이유로 한 명분 없는 파업'이라 하고, 경총이 제안한 "산별노조 산별교섭을 이유로 한 연대 동정파업의 금지" 정책을 현실화시켜 임단협에서 '집단교섭 삭제'를 관철시킴으로서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의 산별노조를 통한 투쟁을 무력화시켰다.
축적 위기에 빠져 구조조정을 반복 획책하는 자본가에게 노동유연화의 확대 강화는 사활을 건 과제이며, 이러한 절박함만큼 저들은 더욱 집요하고 철저하게 노동운동을 괴멸시키려 할 것임이 자명하다. 2002년 발전노조투쟁과 11월 총파업에서 볼 수 있었듯이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이 더욱 거세저가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이 분노를 관리하기 위해서 더욱 노동운동을 분할 탄압하며,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 모아나가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특히 이번 대한상의의 선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탄압은 정치적 대응으로서의 공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닌, 법적 제도적, 그리고 노동운동을 고립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대응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저들이 획책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응과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인 '노동권'을 말살시키는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싸움은 고용 임금 등의 생존권 요구를 넘어 노동자 민중이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를 지켜낼 수 있는가, 시민의 최소한의 존엄을 사수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고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운동', '노동조합'이라는 대상을 싸우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이 가리키고 있었던 '노동에 대한 권리'에 집중적으로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관리하겠다는 저들의 정책이 결국 시민의 저항 일반- 바로 정치-을 제한하는 것임은 그들의 정책이 결국 집시법 개정, 3자 개입 금지, 단체협약 제한 등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이 획책하는 노동권 말살 정책에 대한 싸움은 한국 사회 모든 시민들의 투쟁이다. 차기 정권이 노무현이 되던 이회창이 되던 정부의 정책 변화는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금융 세계화 시대 자본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며,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결국 공장 문 앞에서 멈추어 섰듯이 신자유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모든 정권의 필연적 선택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의 역할은 보다 분명하게 모든 국민들 앞에 등장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본가들의 태도 역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후보를 찍을 것인가'에 쏠려있는 지금, 과연 어느 누가 이 민주주의의 파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차기 정권이 누가 되던지 수행해야 할 협약을 제시하고 있는 자본가들의 행동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노동권을 사수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전국적 연대, 전민중적 저항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닐까 한다. 이제 자본가의 대노동 전쟁은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s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