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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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지영 | 정책부장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이하 WSSD)의 개막과 끝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이 열렸다. 전 세계 189개국 정부 및 NGO 대표단 6만여 명이 참석한 이 회의는 시작 전부터 '지구촌 최대의 환경회의'라 불리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아프리카 남단의 한 나라가 9일동안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매일같이 거리에서 NGO들의 반세계화 시위가 열렸다. 규모도 규모지만, 회담이 다루는 내용도 마치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만큼이나 광범위했다. 회담 시기 진행된 회의만 해도, 지방정부회의, 기업가회의, 남성·여성회의(Gender Summit), 청소년회의, 의사회의, 원주민회의, 노동계회의 등 본회의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의제별, 분야별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대의 규모와 광범위한 내용이 무색하게 이번 회담은 시작부터 삐그덕 거렸다. 세계 최강국이자 환경오염 및 불평등의 가장 큰 책임자인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불참을 선언했으며, 따라서 이번 회담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강제력을 가질 것인지가 불투명해졌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미국과 유럽연합, 개도국들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에너지와 농업보조금 등의 문제로 팽팽하게 맞서기도 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휴렛 패커드, 도요타 등 세계 유수의 초국적 기업들은 회의에 후원상품 제공하랴, 기업 설명회 개최하랴 회의 내내 가장 바쁜 사람들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각 국 정부 대표들은 주로 회의가 '성공적'이었으며, '옳은 방향을 지향한 진보(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라 평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 직접 참가해 의견을 개진했던 여러 NGO들은 '최고의 실패작', '부끄러운 협상을 한 세계정상회의(the World Summit of Shameful Deals, WSSD)' 등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대체에너지 사용비율 목표치 설정시한이 누락된 점 등 이행계획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이행 시안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회의는 미국의 책임회피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협상, 초국적 기업들의 기업 홍보가 난무하는 추악한 자리였음이 공통된 평가인 듯 싶다. 그렇다면 이것이 새삼스러운 일인가?
WSSD, 더욱 악화되는 지구환경의 역사
20세기 말, 지구 자연환경 훼손이 더 이상 인간 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학계의 발표에 따라 1972년 스톡홀름에서는 유엔 주최의 유엔인간환경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공해와 오염의 문제를 범 지구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스톡홀름선언을 채택했으며, 유엔기구로 '유엔환경계획(UNEP :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스톡홀름 회의 이후 대기 및 해양오염, 기후변화, 오존층과 산림의 파괴, 생물의 다양성 파괴 등 지구환경문제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1992년, 스톡홀름 회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유엔환경개발회의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100여 개국의 정상을 포함, 178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이 회의는 지구온난화, 대양오염, 산림보호, 동식물보호, 기술이전, 인구조절, 환경을 고려한 자연개발 등 7가지 주요 의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환경과 개발에 관한 27개의 원칙을 담은 리우 선언을 발표하고, 지구온난화 방지와 생물종 보호를 위한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 산림원칙선언 및 지속가능발전 행동프로그램으로 의제21(Agenda21)을 채택했다. 의제21은 지속가능발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경제·환경 3가지 핵심 분야별 구체적 실천계획을 담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참가국의 대표단들은 이 회의 자체만으로 커다란 성과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 후 10년, 지구의 환경문제는 점점 나빠지고 있을 뿐이다.
WSSD는 리우 회의 이후 10년을 평가하고, 의제21 및 리우선언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회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스톡홀름 회의와 리우 회의의 뒤를 잇고 있는 WSSD 이후 10년은 또 어떨까? 이전 두 회의가 모두 그랬듯, 실질적인 성과는 별로 없이 '환경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또 다시 WSSD 10주년 기념 국제회의나 열고있지는 않을까? 이 말이 단순한 비아냥거림은 아니다. WSSD 선언이 아무런 실천 계획도 수립하지 못한 채, 정치적 수사로만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패는 뻔한 것이었다.
환경을 미끼로 벌이는 정치적 협상
"참가국들이 환경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정치적 타결을 하는 바람에 국내 산업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동아일보의 보도는 이번 WSSD가 정치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벌였던 각종 협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엔이 2000년에 WSSD 개최를 상정한 이후, 4차례 진행했던 준비회의(Prepcom)에서 큰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발전'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미 지난 수세기 지구의 자연자원을 마치 제것인양 사용하며, 고도 발전을 구가했던 선진국과 이런 선진국의 약탈 속에서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저발전국 사이에 대립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개도국 모임인 77그룹은 선진국들에게 폭넓은 시장접근, 농업보조금 삭감, 개도국에 대한 원조 확대를 요구하며 '환경'을 미끼삼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협상에 나섰다. 즉, 이미 온갖 자연자원을 착취해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지금에 와서 '환경보존'을 이유로 개도국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다른 조치들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지난 해 WTO 협의에서 다뤄진 내용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러한 갈등은 회의 내내 여러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계속 되었다. 빈곤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입장 차이, 대체에너지 사용을 둘러싼 산유국, 개도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 사이의 첨예한 의견 대립 등이 회의 기간 내내 언론을 장식했다. 결국 회담은 세계화와 공적개발원조 제공 문제, 대체에너지 공급 비율 확대와 빈곤 퇴치를 위한 연대기금 조성 등과 같은 주요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정하여 최소한의 정치적인 내용만을 담을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거대 기업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선전장
전세계 많은 언론들은 이번 WSSD가 세계적인 초국적 기업들의 '잔치'가 되었으며, 이들은 그 어느 국제회의에서보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제3세계 국가들의 환경 및 자원 착취의 선봉이라 비난받아왔던 초국적 기업들은 '친환경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분히도 노력해왔다. WSSD는 어떻게 하면 환경운동단체들의 거센 비난을 피해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만들까를 고심하는 초국적 기업들에게 아주 좋은 홍보의 장을 제공했다. 유엔의 수전 마컴 대변인은 인권개선과 환경친화적 경제성장이라는 "우리의 기본가치에 기업들이 동참해주길 바란다"면서 "그들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이 깔아준 이 좋은 자리를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그들은 WSSD의 정보통신 장비, 운송수단, 기술 부문을 제공했고, WSSD 기간 내내 회의장 근처에 전시관을 열어 놓고 기업 홍보에 열을 올렸다.
초국적 기업들은 엄격한 환경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거나 하천정화, 나무심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녹색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색내기조차 제1세계에 속해있는 자국에서나 보여주는 일이다. 거세지는 자국 환경운동단체들의 압력에 못이겨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들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국의 엄격한 환경기준을 피해 대량의 산업 폐기물과 유독물질을 제3세계 국가들에서 처리하는 것이 이들의 실제 모습이다. 이들은 또한 제3세계 국가들에 공장을 세워 마구잡이로 벌채와 개간, 자원착취를 진행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여러 기업들은 필리핀 목재 채취량의 70%(이 대부분이 불법이다)를 차지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이 환경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WSSD는 거대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한 판에 불과했던 것이다.
WSSD, 예정된 실패
이미 지구인구의 절반 이상이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한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배제된 땅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로 죽어가고 있다. 남미와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약간 나을 뿐이지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력 산업 민영화, 탄광 개발, 댐 건설, 해양자원 개발 등의 이름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 투자하는 초국적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하고, 무자비하게 환경을 파괴한다. 이들은 산림을 파괴하고, 농지를 훼손하며, 야생동식물의 서식처를 박탈한다.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은 강물, 바다, 공기를 오염시킨다. 제3세계 국가들 대부분이 외채에 허덕이거나 저개발 상태이므로, 초국적 기업들이 자행하는 이 모든 파괴와 오염은 외국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규제에서 제외된다. 제3세계 국가가 초국적 기업들의 환경 파괴를 두둔하고 보호해주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다(제3세계 엘리트들에게 제공되는 리베이트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속에서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삶의 터전이 황폐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은 제3세계 민중들이다. 또 한 가지. 전 세계 20%도 안 되는 사람들이 지구 자원의 80%를 소비한다. 전 세계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조차 소비하지 못하고 산다. 전자가 북반구,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전 세계 20%의 사람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이산화탄소, 폐수, 각종 쓰레기의 대부분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망상이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의미도 참가국들마다, 참가주체마다 상이하게 해석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과 선진국들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자본의 팽창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발전 모델을 의미하며, 이번 회담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초국적 기업들과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희망을 걸었던 수많은 민중들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결국 전 인류가 함께, 미래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하며 발전하는 길을 모색한다는 '지속가능성'의 의미 따위는 이익에 눈 먼 자본의 논리 앞에 너무나 무기력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아있는가? 환경과 지구를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많은 국가들과 초국적 기업에게서 답을 바랄 수 있겠는가? 결국 해답은 민중들 스스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연대하고 싸우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