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무장한 세계화 목차> 알랭 족스, 무질서의 제국: 두 개의 좌담, {사회진보연대} 2003년 1·2월호, 3월호 끌로드 세르파티, 21세기 초, 미국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위한 군사 교리, {사회진보연대} 2003년 4월호 메리 켈도어 세계화된 전쟁 경제, {사회진보연대} 2003년 5월호 마틴 쇼, 위험전가 군사주의, 소규모 학살과 전쟁의 역사적 합법성, {사회진보연대} 2003년 6월호 알렉스 드 와알, 아프리카의 전쟁들, {사회진보연대} 2003년 7·8월호 이번이 "무장한 세계화" 기획의 마지막입니다. 시간의 간격이 너무 길어 이렇게 말하는 게 참 쑥스럽지만, 지금까지 기획을 일단 마무리하고 앞으로 이 주제를 더욱 보강할 수 있는 기획을 마련하려는 뜻으로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군사세계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반전-반군사주의, 평화운동의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현재의 긴급한 과제를 풍부히 이해하기 위한 기획을 앞으로 새로이 마련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잔혹한 극단적 폭력이 벌어지는 서로 이질적인 장소와 형태들, 그리고 상호관련성을 "지형학"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필자는 극단적인 폭력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발생하지만, 분명한 누적 효과를 생산하며, 결국 세계를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는 "초국경" (원한의 경계선) 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시민성을 창출할 수 없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정치적" 조건으로 인하여, 죽음의 지대의 인민은 불필요한 "잉여"로 간주되고 , 외부세계는 예방적 "반봉기"라는 관점에서 이 지대에서 벌어지는 상호제거 또는 절멸을 조장하거나 개입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초국경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에 대한 (전쟁과 결합된) 인도주의적 개입 또는 불개입은 서로 시소처럼 반복되지만, 오히려 초국경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한 애초부터 사태의 해결 능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국경의 민주화"를 위한 집단적 실천이 긴급한 과제라고 제안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범유럽적인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제도화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극히 우려해야할 경향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번역 대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tienne Balibar, "Outline of a Topography of Cruelty: Citizenship and Civility in Era of Global Violence", We, the People of Europe?: Reflection on Transnational Citizenship, trans. James Swenson (New Jersey: Prinston University Press, 2004), pp. 115-132. ________________________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 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 에티엔 발리바르 나는 이런 젠 체하는 제목으로 내가 이미 여러 번 다루었던 이론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들의 연계에 관한 탐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잔혹성' (cruelty) 이라는 용어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들을 지칭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그러나 학문적 관련성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는데, 그것들은 의도적인 것이든 체계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 하지만 이러한 구별은 우리가 극단성의 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때 미심쩍게 된다 - '죽음보다 더 나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 잔혹성의 현실적 또는 가상적 위협은 정치에게, 특히 '세계화'라는 맥락에 있는 오늘의 정치에게 정치의 가능성 그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결정적인 실험을 의미한다는 게 나의 가설이다. 나는 정치에 대한 정치 (politics of politics) 또는 2차적 정치라는 사변적 관념을 가리키기 위해 '시빌리티' (civility) [시민적 예절]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에는 실제로 많은 다른 사용법들이 있다). 시빌리티는 공적인 일들에 대한 집단적 참여로서의 정치가 가능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지지 않도록 일련의 조건들을 창조하고, 재창조하며,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빌리티'는 분명히 모호한 용어지만, 나는 그것의 함의가 다른 용어들 예컨대 문명화, 사회화, 도시행정과 질서유지 (police and policing), 공손함 (politeness) 등등 보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빌리티'는 사회 내의 '갈등'과 '적대'에 대한 억압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갈등과 적대가 항상 폭력의 선구자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히려]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극단적 폭력의 상당수는 ―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 사실상 '합의'와 '평화'에 대한 맹목적인 정치적 선호의 결과며, 세계적 범위에서의 법과 질서라는 정책들의 실행에 관한 맹목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러한 쟁점들을 '지형학' (topography) 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할 것이다. 나는 그 용어를 통해서 구체적·공간적·지리적 또는 지정학적인 전망과 - 이를테면 '북반구와 남반구', '중심과 주변', '국경의 이쪽 편 또는 국경의 교차점', '세계적인 것과 지방적인 것' 등과 같은 변화하는 구획들을 고려한다 - 추상적·사변적 전망을 동시에 이해한다. 이는 극단적 폭력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무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들' 또는 '무대들'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장면 또는 무대는 각각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 또는 '허구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상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덜 물질적이거나 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 글은 1999년 11월 제네바 대학의 인도주의적 행동(Humanitarian Action) 대학원 과정의 개강 때 요청 받은 강연에 기초한다. 이 글은 세계화된 세계질서에서의 시민권과 인종분리, 난민과 이주, 대량빈곤과 집단학살 등이 왜 이러한 논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가를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적 시민성 (citizenship)이 시빌리티의 구체적 형태와 전략을 발명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가 위치를 부여하고 연결시켜야 할 결정적인 '코스모폴리탄적인' 쟁점들이다. 나는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전형적으로 유럽적인 것으로, 포스트-민족적 통합과 '유럽의 시민성'의 도입의 부정적 반향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단지 '공동체주의적' (communitarian) 요구와 '동일성의 정치'의 부활뿐만 아니라, 나아가 특히 준-아파르트헤이트적인 사회적 구조와 기관들이 발전이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적 유형을 형성하는 데, 그 유형은 이제 많은 측면에서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배의 구조들을 변혁하려는 집단적 해방운동을 예방하기 위해 극단적 폭력과 대중의 불안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그리고 또한 토마스 홉즈가 {리바이어던}에서 예방적 대항폭력을 염두에 두고 묘사한 국가 형성의 유형을 참조로 해서 ― 나는 세계적인 예방적 반혁명 또는 반봉기의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러한 '정치'는 현실적으로 반정치적이다. 왜냐하면 허무주의적인 방식으로, 그것은 하나의 정체 (polity) 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들 그 자체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전쟁과 일종의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 결합하여 발전하는 것을 목도한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행동과 개입은 정확히 고통을 낳은 바로 그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서, 국경들이라는 전통적 제도가 ― 나는 그것이 현대 시대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주권적' 또는 '비민주적'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로 안전의 통제, 사회적 분리, 생존수단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종종 생과 사의 제도적 분배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적 폭력의 초석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국경의 민주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것은 단지 국경의 개방뿐만 아니라 (이는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는 많은 경우에서 경제적 세력들간의 야만적 경쟁이라는 형태로 부활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귀결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민들 (물론 이주한 인민들을 포함한다) 그 자신이 국경의 기능을 다자적으로, 협상에 의해서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영토적'이지 않고 결코 순수하게 '민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대의기관이 세워져야 한다. 이는 내가 시민성과 시빌리티가 밀접히 결합되는 '인권의 세계정치' (cosmopolitics) 라고 부른 것의 일부다. 시민성과 시빌리티: '권리들을 가질 권리'의 문제 두 가지 일련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나는 우리가 인권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라는 더 광범위한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약간의 철학적 도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작업이 필수적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리고 나도 이러한 관점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전체주의의 기원}에 나오는 제국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그녀는 모든 시민적·공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국가 없는' 인민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들에 대한 논의에서 그녀는 정치철학이라는 전망을 이중적인 방식으로 전도한다. 첫 번째, 그녀는 [인간이라는] 종의 단순한 대표물로서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배제의 형태와 극단적 폭력의 상황을 시민성과 정치 체제에 관한 논쟁의 중심으로 재도입한다. 그녀의 목적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인간주의적 기준을 주장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가 오직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발견함으로써만 공적 영역, 즉 인민 운동들의 관리와 사회적 갈등의 통제 (policing)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 (또는 실천(praxis)) 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최근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기원 바로 그 직후부터 정치적 영역 내에서 만인에 대한 평등한 자유의 척도는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몫', 즉 공공선 (commonwealth) [국가 또는 공동체] 내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을 주는 것 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인정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이는 차별 받는 범주들의 배제의 과정이 '도시' 또는 '정치조직'으로의 포함의 과정으로 능동적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 도시에서 이소노미아 (isonomia)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권을 적용시킨 원칙] 가 의미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관점에서, 강한 의미의 '정치'는 아마도 아렌트가 로자 룩셈부르크로부터 물려받은 통념인 '영구 혁명'과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평등한 자유의 법률적 형태는 분명하게 제거되지 않지만 완전히 재가공되어야 한다. 현대의 인간주의와 보편주의라는 원칙의 측면에서, '권리 없는 인간'이라는 통념은 용어 자체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명목상 권리 없는 인간은 없으며, 심지어 아동이나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를 들어 우리가 브라질의 무소유 (propertyless) [무토지] 농민들의 권리 주장 ― 그들의 모토는 '권리 없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justice for rightless) 인데,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위협하는 준군사집단들이 법정에서 심판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 또는 공식적 서류발급을 거부당한 것에 항의하며 무적자 (undocumented) 의 합법적 거주를 요구하는 프랑스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면, 우리는 저항과 폭력에 대한 거부에 기초한 이러한 요구들은 권리들의 창조 과정, 즉 '인민주권' 또는 민주주의라고 인정되는 정치적 헌정질서 (constitution) 를 허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의 부분적이지만 직접적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시민성에 대한 아렌트의 반성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교훈들의 한 가지 측면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은 더욱 더 오늘날 현실에 적합하다. 나는 민주적·민족적 혁명의 시대 이후부터 국제적 갈등의 일반화와 제국주의의 발전에 이르는 민족국가의 역사가 '인권'과 '정치적 권리' (또는 인권과 시민권)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역전시켰다는 점을 보여준 [그녀의] 유명한 논증을 생각하고 있다. 인권 일반은 더 이상 주어진 민족적·주권적 국가의 경계들 내부에서 제정되고 보존되는 정치적 권리들을 위한 단순한 전제이자 추상적 기초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법률적인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지배에 대한 제한으로도 간주될 수 없다.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비극적 경험은 그 반대가 진실이 되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평등한 시민성의 현실적 승인이자 조건인 정치적 권리는 생존, 즉 단순한 생명의 유지와 관련된 가장 초보적인 권리들부터 시작하여, 인권에 대한 정의와 승인을 위한 진정한 토대다. 정치적 동물 (zo n politikon) 그 자체에 새롭고 '비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어떤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되고 결국 실천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승인되고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시민의 능동적인 제도적 권리들이 파괴될 때 ― 예를 들어, 시민성과 민족성이 밀접히 결합되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들과 집단들이 그들의 민족적 소속에서 쫓겨나거나 또는 단순히 억압받는 민족적 '약소자'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 '자연적' 또는 '보편적으로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기본적 권리는 위협 당하고 파괴된다: 우리는 이른바 과소인간 (Untermenschen) 과 과잉인간 ( berrmenschen) 이라고 여기지는 '인간' 사이의 구별이 확립되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를 목도한다. 이는 결코 우연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오늘의 정치에서 공통적인 것이 되고 있는 비가역적 과정의 결과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일신해야 한다는 긴급한 임무를 부과한다. 여기서는 정치의 본질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생명, 교통, 문화의 사회적·자연적 토대 위에 서 있는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의 진정한 개념은 인간들간의 특정한 공동체의 가능성 자체와 이미 관련되어 있다. 즉 그것은 해후를 위한, 다양한 구성 부분들과 집단들 사이의 적대의 표출과 변증법적 해결을 위한 공간을 건설하는 것과 이미 관련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아렌트가 제안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결정적 통념은 헌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법률적·도덕적 요구들로 구성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최소의 준거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최대에 관한 이념이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통념은 인간이 '공통의' 실존 영역 (그리고 따라서 노동, 문화, 공적·사적 발언의 영역) 에 소속되는 것을 최소한 승인하는 것이 이미 권리들의 총체를 수반하는 ― 그리고 가능하게 하는 ― 연속적 과정에 준거를 둔다. 나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봉기적' 요소라고 부른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또는 공화주의적 국가의 모든 헌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국가는 정의상 위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리로 구성될 수 없다 (또는 그것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그것은 데모스 (dm os) [인민, 시민권을 혈통적인 방식이 아닌 이소노미아에 따라 성취한 인민] 의 직접적 참여를 요구한다. 아렌트의 논증은 민주주의적 시민성을 구성하는 평등주의적 또는 봉기적 요소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녀는 또한 그것을 시빌리티의 정치와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개념화한다. 이는 극단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곧 시민성이 부정됨으로써 또한 자동적으로 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인정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단지 이상적인 헌정 모델에 대비하여 역사적 제도들을 평가하는 이론적 기준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오늘의 정치사회들 내에서의 ― 아니, 그들의 일상생활의 핵심에서의 ― 극단적 폭력의 현실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단지 외견상으로만 역설적이다: 칼 슈미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한계 또는 '예외 상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진부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민주주의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체계들의 기능에 침투해 있다. 그것은 그 체계들이 권력에 부여한 이익의 연속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체계의 생명력에 대한 영구적 위협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시민성의 권리에 대한 접근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과 그것에 대한 부정 사이의 ― 더욱 일반적으로는 포함의 (inclusive) 정치적 질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 선택을 사변적 쟁점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구체적인 도전이다. (민주주의적) 정치질서는 내생적으로 깨어지기 쉽거나 불확실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시빌리티의 정치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경들 국경 내부에서 또는 국경을 가로질러 또 다시 '전쟁 상태'로 전화할 것이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국경의 폭력 우리는 아렌트의 논증이 유럽 역사의 '파국'의 경험, 즉 나치즘, 2차 세계대전, 유럽의 유대인·집시·여타 집단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절멸주의 등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것의 '기원'을 민족형태의 제국주의로의 진화에서 밝혀내려고 했지만 동시에 [유럽의] 고유성을 주의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의 민족적 구성이 우리를 덫에 빠뜨렸던 치명적인 순환을 말함으로써 그녀의 생각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권과 '불가능한' 권리를 인식하기 위한 유일한 긍정적 또는 제도적 지평이었으며, 그것이 지지해온 보편적 가치들의 파괴를 낳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동일한 조건 속에서 생활하며 행동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오늘의 정치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민족형태가 단순히 쇠퇴한 것은 아니더라도,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권력의 물질적 분배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의 조건들이 점점 더 초민족적으로 되어간다는 사실을 관찰할 때, 이러한 문제는 첨예해진다. 세계화라는 일반적 틀 내에서 '포스트-민족적' 국가 또는 준-국가 기구가 출현해왔고, 여기서 '유럽 공동체'는 특권적 사례가 되었다. 우선 이러한 과정의 모순적이고 우려되는 몇몇 측면들을 살펴보자. 사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런 측면이 훨씬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공식적인 '유럽적 시민성'의 발전과 함께 현실의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결정적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 또는 오히려 단기적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적인 유럽 공동체의 건설에 장애물 또는 차단물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전체적으로 유럽의 통일을 막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세계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초강대국에 필적할 수 있는 권력의 축적 또는 지역 권력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 할 지라도, 비스마르크식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성취되는 민족-이상적 (supranational) 공동체의 진정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족적 헌정질서와 비교해볼 때, 민족-이상적 유럽 공동체는 오직 그것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적 잉여 (democratic surplus) 를 창조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두 가지 대칭적 문제를 제기하여 쟁점을 더욱 명확히 해볼 수 있다: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이는 단지 외국인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의 일부 범부들, 주로는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유럽의 부유한 '문명'을 보호하는 국경을 건너 동구나 남반부에서 온 이주 노동자와 임시수용소를 찾는 사람들, 이런 측면에서 발칸 지역은 외부성의 두 형태의 일종의 조합을 보여준다) 권리를 덜 승인 받기 때문일 수 없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어야만 한다. 1993년 마하스트리히트 조약 이후로 유럽 건설의 새로운 전개는 실로 그러하다. 유럽의 모든 민족국가들에서, 시민성 또는 민족성에 대한 불균등한 접근권을 강요하는 차별 구조가 존재하였고, 특히 이는 식민주의의 과거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유럽경제공동체 이후 막 바로 등장한) 유럽 연합의 탄생으로 추가된 사실은 유럽 시민 (civis europeanus) 의 지위가 점차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인적·집단적 권리는 점차 유효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각의 민족 정부와 법에 반하여 유럽재판소 (European Courts) 에 호소할 수 있는 가능성). 이제 결정적 문제가 시작된다: 누구를 위한 새로운 권리인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유럽의 인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좀더 제한된 유럽 인민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고 인민 (Volk) 과 주민 (Bev lkerung) 사이의 구별을 둘러싼 딜레마를 확장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유럽의 모든 나라들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으며, 독일의 논쟁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럽 헌법을 위한 상징적·법적·물리적 기초로서 유럽 인민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곤란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마하스트리히트 조약은 하나의 입헌 민족국가에서 이미 시민성 (즉 민족성) 을 소유한 사람들, 오직 이 사람들만이 자동적으로 유럽적 시민성을 보장받는다고 진술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내에서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 이미 하나의 방향을 결정한다. 유럽에서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양적·질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프랑스의 정치학자 까뜨린느 위똘 드 웬뎅은 이들을 '16번째 회원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포함의 기획을 배제의 프로그램으로 즉각적으로 변형한다. 이는 세 가지 변태로 요약될 수 있다. 1. 외국인 (foreigner) 에서 [이질적인] 이방인 (alien) 으로 (이는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2등 계급의 거주자들을 의미한다). 2. 보호에서 차별로 (오스트리아의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이는 민감한 쟁점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는 정도와 언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의 일반적 문제다: 정치적 시민성이 허용되지 않은 이주 노동자의 일부가 약간의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즉 그들이 '사회적 시민성'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복지와 사회보장 또는 이와 유사한 것들에서 추방하는 것은 보수주의 세력에게 결정적인 정치적 쟁점이자 강박이 된다 ― 프랑스의 민족전선 (National Front) 은 이를 '민족 우선' (national preference) 이라고 부르지만, 민족적 제도들 내에 이미 그러한 우선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유럽 우선'이 될 수 있다). 3. 문화적 차이에서 인종적 낙인으로. 이는 포스트-식민적 그리고 포스트-민족적 '새로운 인종주의'의 창조 과정의 중심에 있다. 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유사한 것을 제안하는가? 이는 단지 쓸데없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정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아프리카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이제 유럽에서 (그리고 아마도 다른 곳에서) 재출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 '제국의 역습'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고? 우리는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다른 역사적 사례들과의 비교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은 '짐 크로우' [흑인 일반, 또는 흑인차별주의] 체계를 완전히 망각한 적이 결코 없으며, 보수적 정책이 의제에 오를 때, 주기적으로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독일 동료인 헬무트 리트리히 (Helmut Detrich) 는 유럽의 '동쪽 국경'에서의 난민과 이주자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는데, 그는 유럽제국의 새로운 배후지 (Hinterland)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하나의 또는 다른 체계에 의해 창조되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라는 문제는 제쳐놓고 대신에 그 구조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아프리카, 아시아 또는 유럽의 여타 지역 출신의 이주자들이 과거에 생활하던 지역의 상황과 남아프리카적 의미에서의 자치구 (homelands) [남아공 흑인 반투족의 자치구] 사이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적 사례로부터 최소한 교훈을 빌어 오기 위해 두 가지 보충적 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국경의 한쪽 편에서 그들의 생활을 '재생산'하고 또 다른 쪽 편에서 '생산'하며, 따라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부자도 아니고 외부자도 아니거나 또는 (우리들 다수에게) 공식적으로는 외부자로 간주되는 내부자인 중요한 노동자 집단의 상태가 '안전' 통제의 규모와 그 폭력을 점차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 통제는 상당히 오래된 '인종적 프로파일링' (profiling) 을 신원확인과 기록의 현대적 기술과 결합하면서 사회의 모든 곳으로 확산되고 '유럽적' 영토 전역에서 경계선들을 세분화한다. 쉥겐 (Schengen) 협정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EU 회원국간의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수속을 없애기 위해 1986년 룩셈부르그의 쉥겐에서 체결된 협정]. 두 번째 보충적 근거는 이주자 가족 (그리고 그들의 구성, 그들의 생활방식) 의 존재는 이주 정책과 여론의 진정한 강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 가족은 분리되어야 하는가, 통합되어야 하는가 (즉 재통합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국경의 어느 편에서, 어떤 종류의 가족이 (전통적 또는 현대적), 어떤 종류의 친척들과 (부모 또는 자식), 어떤 종류의 권리를 갖고?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가족 정치, 또는 더 일반적으로 계보의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 인종주의의 결정적인 구조적 생산양식이다. 물론 민족적인 것이 다민족적 공동체가 될 때에도 이는 진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인종분리를 폐지하는 유럽, 즉 민주주의적 유럽은 결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사실상 상황은 훨씬 더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두 가지 방향의 경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마지못해 인정되는 역사적 교차점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데, 이는 다음 논지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즉 이러한 쟁점들이 전형적으로 하나의 세계적-지역적 ('세계-지역적'(glocal)) 문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부착된 유럽적 시민성' (또는 법률-지위적·귀속적 시민성) 의 모순적·진화적 모형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화의 현실적·가상적 효과에 대한 반작용이다.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역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효과의 단순한 투영이다. 세계적인 예방적 반봉기: '국경 없는 폭력' 나는 이제 내가 말했던 중심 주제인 '세계적 반봉기'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국경의 폭력이 아니라 국경 없는 또는 국경을 넘어선 폭력이다. 나는 로잔 대학의 피에르 드 세나르클랜이라는 스위스 전문가가 출판한 인도주의적 행동에 대한 최근 저작을 인용할 것이다. 그는 오늘의 폭력에 대한 공식적 정의의 중요성과 '인도주의적인 개입'의 범위와 의미를 확대하기 위한 정당화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1981년, UN 총회는 새로운 국제 인도주의적 질서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 직후, 총회는 저명한 인사들을 모아놓은, 국제적인 인도주의 문제들에 관한 독립위원회의 창립을 지지하였다... 위원회의 1986년 보고서는 환경파괴, 인구변화, 인구이동,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북반구-남반구의 양극화, 테러리즘, 마약 등과 같은 이 시대의 주요한 정치적·사회적 도전을 인도주의적 기획 내부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 "우리는 인도주의를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을 규정하기 위해 참고해야할 틀로서 그리고, 해결을 위한 처방으로서 고려해야 한다." 이후 저자는 1989년 이후 "양대 진영"이라는 냉전 체계의 붕괴가 어떻게 초강대국들 사이의 대치로 인해 정치적 폭력에 부과되었던 한계를 무너뜨리고, '전쟁'과 '평화' 사이의 경계선을 흐리게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냉전의 빠른 종말의 서곡이었던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예견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국제적 구조의 변형과 그에 따르는 폭력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50건 이상의 새로운 군사분쟁이 있었고, 이러한 분쟁들은 본질적으로 내전이었다. 이 중 특정 분쟁들―르완다, 유고슬라비아, 체첸 또는 알제리의 분쟁들―은 폭력과 잔혹성, 파괴의 광범위함, 그리고 분쟁이 야기한 인구이동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국제사회는 단 한번도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이렇게 많은 전쟁을 대면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대량폭력과 극단적 폭력의 다면적 현상이 일반적으로 국가들 사이의 내부적·외부적 세력관계를 포함하는 정치를 대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우리는 정치와 폭력 ― 합리적 조직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기파괴를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 ― 의 영역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할 수도 있다. 정치와 폭력은 점차 상호 침투해왔다.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정치의 필수적 보충물이 되어버린 바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정치와 폭력의 상호 침투가 일어난다. 나는 이 같은 변이의 모든 측면을 논의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정치 그 자체의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질문을 간략히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극단적 폭력 (또는 극단적인 것의 폭력) 의 확산에 직면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 문제는 '과거의 전쟁과 새로운 전쟁'이라는 쟁점에서부터 왜 그리고 어떻게 역사 속에서 벌어진 '집단학살들을 비교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전례가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극단적 폭력의 새로운 가시성일 것이다. 특히 매체의 포괄 범위와 텔레비전 방송과 이미지 변형 등의 현대적 기술이 ― 마침내 우리가 사상 최초로 걸프전 동안 거대한 규모로 '가상 현실'이 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 극단적 폭력을 하나의 쇼로 변형하고,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이 쇼를 펼쳐놓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가시성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기술의 효과가 (앙골라나 시에라리온에서 수백 명의 불구가 된 아이들의 모습과 같은 진정으로 끔찍한) 어떤 폭력적 과정들 또는 끔찍한 장면들은 드러내 보이고 (바그다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똑같이 끔찍한) 다른 것들은 덮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단적 폭력에 대한 [매체의] 보도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법적·도덕적이지만 거의 정치적이지 않은 개념의 무차별적 사용을 통해 냉전 동안의 '공포의 균형'이 '희생자들 사이의 경쟁상태'로 정치적으로 이행했다는 매우 단순한 관념을 믿게 만들 때, 우리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작용한다는 의심을 품는다. 결국 우리는 일상적 공포의 이미지들에 대해 말하고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특히 인류 중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보호받는 지역 내에서 매우 양가적인 효과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동정심과 함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이처럼 인류가 질적으로 다른 문화 또는 문명으로 실제로 분할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화 또는 문명은 오직 그들간의 '충돌'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념을 강화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곤란함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현실은 '전례 없는' 어떤 것이라는 통념의 이면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아마도 수많은 절멸의 이질적 방법들 또는 과정들 (나는 이를 통해 어떤 개인들이 객관적 또는 주체적 집단들에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개인들로 구성된 대중을 제거하는 것을 지칭하고자 한다) 이 스스로 '세계화'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즉, 그것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점차적으로 하나의 '연쇄'를 형성하며, 20년 전 E. P. 톰슨 (E. P. Thompson) 이 '절멸주의'라는 이름으로 예상했던 것에 완전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일련의 연속된 과정들 속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은 포함해야 하는데, 정확히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것들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원인'을 갖고 있지 않지만 누적된 효과를 생산한다. 1. 전쟁 ('내전'과 '외국과의 전쟁' 양자 모두, [하지만] 유고슬라비아나 체첸과 같은 많은 사례들에서 이런 구별은 쉽지 않은 일이다). 2. 인종적 또는/그리고 종교적 '정화'(cleansing)의 이데올로기를 동반하는 [보통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공동체에서의 폭동. 3.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경제의 파멸로 야기된 기근과 다른 종류의 '절대' 빈곤. 4. 외관상 '자연적인' 대재앙들. 그러나 그것들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구조들로 과잉결정 되었으므로 실제로는 대규모의 살인이다. 여기에는 발전된 시민적 보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세계적 유행병 (예를 들면, AIDS의 분포와 치료 가능성은 유럽·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뭄, 홍수 또는 지진 등이 포함된다. 결국 나는 다양한 종류의 극단적 폭력의 '세계화'가 '세계화된' 세계를 점차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고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들 지대 (심지어 그것들은 하나의 나라 또는 도시의 경계 내에서 복잡하게 중첩되고 빈번하게 재생산된다) 사이에, 결정적이고 깨지기 쉬운 초국경 (super-border) 이 존재한다. 이는 인류의 통일과 분할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 현대 유럽의 세계 정복 초기에 존재했던 '친선의 경계선' (amity line)과 유사한 세계적·지역적 '증오의 경계선' (enmity line) 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영원한 쇼의 대상이자 동시에 개입과 불개입을 위한 뜨거운 지역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초국경이며 증오의 경계선이다. 우리는 현재의 국제 정치에서 가장 우려되는 측면이 '인도주의적 개입'인지, '일반화된 불개입'인지, 아니면 후자 이후의 전자인지 토론할 수 있다. 우리는 극단적 폭력을 시장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경제') 관점에서 '합리적'이거나 '기능적'이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 사실 나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 회피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또한 지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도전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매우 명백하지만 자주 범하는 그릇된 추리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결과와 목표 또는 목적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체계들을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가? 다른 한편, 우리는 자본주의와 같은 어떤 구조의 내재적 목적 또는 '논리'에 대한 반성을 회피할 수 있는가?) 매우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난점은 대량폭력의 연쇄 ― 예컨대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한 전제조건들의 창조를 빈민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묘사하면서 시초 축적 (primitive accumulation) 이라고 부른 것과 비교될 수 있다 ― 의 출현에 기원을 둔 두 가지 대립적인 '세계적 효과'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 효과들 중 하나는 수백만 명의 잠재적 노동자들의 물질적·도덕적 불안전 (insecurity) 을 일반화하는 것, 즉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화 또는 재프롤레타리아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불안전이 '프롤레타리아적 조건'의 핵심에 위치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다소간 벗어났던 프롤레타리아 상태로의 복귀를 결정적으로 포함하는 프롤레타리아화의 새로운 국면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과 또한 인류의 이동성이 증가된 것과 동시대적이며, 그리고 그 때문에 이는 국경을 가로질러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과정은 또한 몇 개의 정치적 변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1. '북반구'에서 그것은 내가 '민족적 사회적 국가'라고 부르는 복지국가가 창조한 사회정책과 사회적 시민성의 기관들의 부분적 또는 심층적 해체를 포함하여, 따라서 복지에서 근로연계복지 (workfare) [노동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가가 공적인 부조를 베푸는 것]로의 폭력적 이행과 사회적 국가에서 징벌 국가 (penal state) 로의 폭력적 이행을 포함한다 (루익 와깡이 최근의 에세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증한 것처럼, 미국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2. '남반구'에서 그것은 '발전주의적' 프로그램과 정책들의 파괴와 전도를 포함한다. 발전주의는 대체로 희망했던 [경제적] '도약'을 낳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지만 빈곤화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3.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범주를 빌려오면, '반주변부'에서 그것은 '현존 사회주의'라고 불렸던 독재 구조의 붕괴와 연관되었다.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는 결핍과 부패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다시금 특정한 한계들 내에서 부와 빈곤의 양극화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동력의 재프롤레타리아화로 귀결되는 이 모든 과정들의 공통적인 형식적 특성은 그것들이 국가장치 바로 그 내부에서 [역사를 만드는] 기층 민중 (subaltern) 의 대표 형태와 가능성을, 또는 당신이 이 표현을 더 선호한다면, 다소 유효한 대항권력의 가능성을 억압하거나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주목함으로써 우선 주로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과정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다른 장면, 즉 대량폭력이 야기한 다른 종류의 결과들을 살펴볼 때, 정치적 측면은 훨씬 더 결정적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원인과 결과의 메커니즘은 지극히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이 현실적이다. 나는 훨씬 더 파괴적인 경향, 즉 복지나 전통적 생활양식에 대한 파괴의 경향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 그 자체에 대한 그리고 결국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파괴적 경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생을 명령하는' 정치와 '죽음을 명령하는' 정치라는 두 가지 종류의 정치를 대비시키곤 했던 미셸 푸코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가 인류의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던 곳에서 펼쳐지는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다양한 형태들의 누적된 효과에 직면하여, 우리는 현재의 생산 및 재생산 양식이 제거를 위한 생산의 양식이자, 생산적으로 활용되거나 착취되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이미 불필요한 잉여 (superfluous) 가 되는 인구의 재생산 양식이 되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인구는 '정치적' 또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 제거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른다―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사회학자들은 도발적으로 이들을 세계 도시 밖으로 '내던져진' '쓰레기 인간' (poblacion chatarra) 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또 다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한 것의 합리성은 무엇인가? 또는 우리는 비합리성의 완벽한 승리를 대면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왜냐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축적 규모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합리적이다 ― 또는 더 적절히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상 역사는 단순히 순환적인 방식으로 즉 축적의 연속적 국면들의 순환 유형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에 경제적·정치적 계급투쟁이 출현했고, 그 결과로 착취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세력 균형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말하자면, 체계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체계는 (그리고 아마도 그 체계의 이론가와 정치가의 일부는) 계급투쟁이 없는 착취는 없고, 착취 받는 자들의 조직과 대표가 없는 계급투쟁은 없으며, 정치적·사회적 시민성을 향한 경향이 없는 대표와 조직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현재의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의 일부에서 실현된 '민족적 사회적 국가'에 상응하는 '세계적 사회적 국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내 뜻은 정치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세계적 사회적 국가'를 향한 모든 움직임에 대한 [현재 자본주의의] 정치적 저항이 존재하며, 게다가 그러한 저항은 매우 폭력적이다. 기술혁명은 현재적 또는 잠재적 노동력의 탈프로레타리아화를 위해 긍정적이지만 불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바로 이 때, 직접적인 정치적 억압 또한 불충분할 것이다. 가능한 한 '수동적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능동적으로' 제거 또는 절멸이 일어나야 한다: 상호 제거가 '최상'이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조장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세계적 폭력의 경제'가 기능적이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그것의 내재적 목표는 실로 모순적이다) 목적론적 (teleological) 의미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세 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동일한' 인구가 광범위하게 목표물로 삼아진다 (또는 역으로 목표물로 규정되지 않은 인구는 점점 동화되며, '동일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된다). 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외연적 의미가 아니라 내포적 의미에서 질적으로 '탈영토화된다'. 그들은 항구적인 제거의 위협을 받으면서 도시의 변두리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역으로 그들이 그들의 본국 내부로 고정될 때에도 그들은 '유목민'처럼 생활하고 또 그렇게 인식된다. 즉, 그들의 실존 그 자체, 그들의 양, 그들의 운동, 권리와 시민성에 대한 그들의 잠재적 요구가 '문명'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결국, '극단적 폭력'은 '세계적 체계'를 형성하는가? 폭력은 고도로 '비정치적'일 수 있다―이는 내가 제안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폭력의 다양한 형태가 서로를 강화한다면, 그리고 그 다양한 형태들이 그 자신의 연속과 잠식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한다면,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들이 잔혹성과 절멸의 확산을 예방하거나 그 효과만을 제한하려는 행동들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 (주의) 적 파국'의 연쇄를 확립한다면, 폭력은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거나 또는 '체계적인'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목적 없는 목적론은 내가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예방적 반혁명'으로 또는 아마 더 나은 표현으로 '예방적 반봉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은 외양상으로만 '홉즈적'인데, 왜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대항하여 사용되는 무기는 또 다른 종류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르 몽드}는 최근에 콜럼비아를 국가와 마피아에 의해 수행된 '사회에 대한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했다). 이는 반정치로서의 정치이지만, 폭력의 이질적 형태들 사이에 수많은 연관으로 인해 하나의 체계로 나타난다 (국가예산에 필수적인 무기거래는 부패를 동반하며, 부패는 범죄행위를 동반하며, 마약·장기매매·현대적 노예무역은 독재를 동반하고, 독재는 내전과 테러를 동반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형상을 그리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폭력을 혼돈하게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정치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인도주의적 개입은 종종 여기에 참여한다), 방송과 개입 양자 모두를 수익성 있는 사업의 원천으로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경제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깨지기 쉬운 경계선을 갖는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 사이의 분할에 대해 말하였다. 그것은 세계화의 '전체주의적' 양상에 대해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분명히 그것만이 아니다. 인류가 경제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문화적으로 '통일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인류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생-정치적으로' (bio-politically) 분할되었다. 시빌리티의 정치 (또는 인권의 정치) 는 파괴된 통일성에 대한 가상적 대체물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모든 곳에서 그리고 특히 국경 자체에서 평등이라는 쟁점을 정치적 행동의 지평으로 재도입하는 일련의 주도성이 될 수도 있다. 결론 '진정한' 결론은 없을 것이고, 단지 몇몇 민감한 쟁점에 관한 직접적 반성과 토론의 시도들만이 있을 뿐이다: '대항폭력'이라는 쟁점, 국제법이라는 쟁점, '시민성'에 대한 접근이라는 쟁점, 그리고 내가 '봉기'라고 부른 것 등.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시빌리티 전략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전략들의 실현 가능한 토대와 실행에 관한 논의는 또 다른 에세이에서 다룰 문제다. 나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연계 속에서 현실적 측면과 가상적 측면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다른 것에 비해 특권화하는 태도를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정치적 행위에 관한 고전적 개념들이 항상 행해왔던 것이다: 고전적 개념들은 주로 공동체들과 공동체적 감정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리고 나는 모든 역사적 공동체들이 일차적으로 '상상된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에 확실히 동의한다), 또는 더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즉 사회적 구조들, 특히 지배와 착취의 구조를 변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전형적인 사례다). 나는 오늘의 정치에서 극단적 폭력이라는 쟁점의 핵심적 특징은, 이러한 이중적 양상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상들의 요구와 제약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기 위해 실천적·구체적으로 노력함으로써, 그러한 이원성의 지양을 탐색하고 발명하는 것을 훨씬 더 긴급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를 들어, 나는 국제법이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시빌리티의 정치의 토대가 국제법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만족하지 않는다. 예컨대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 [국제법] 이면에 있는 교통 (communication) 의 윤리에 대한 강조를 덧붙이면서 일관되게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교통'의 관문들이 때로는 강제에 의해서, 때로는 폭력적 방식으로 열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잠겨진 채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여기서 국제법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반대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는 대량폭력의 반혁명적 또는 반봉기적 특징은 혁명이라는 관념의 갱신으로서 '반-반봉기' (counter-counterinsurrection) 를 요청한다고 제안할 수 있으며, 이를 옹호하는 충실한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 이 때 아마도 진정한 '세계혁명'은 폭력과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최근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 등을 연계시키는 바로 그 세계적 구조에 대항하는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은 정치적 수단과 목표가 바로 그 [자본주의, 제국주의, '제국'과 똑같은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대칭성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최초의 혁명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하려한 이래로, 정치적 수단과 목표는 극단적 폭력이 해방의 정치의 핵심에 구축되는 데 일조했고, 20세기가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 부른 것이 되는 것에 일조했다. 국가나 경제뿐만이 아니라 혁명 그 자체가 '문명화'되거나 '시민적' (civil) 이게 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많은 곳에서 그러한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적극적으로 탐색되고 있지만 분명히 발견되거나 제시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좀 더 조심스럽고 아마도 아포리아에 가까운 방식으로 네덜란드 정치학자 헤르만 판 군스테렌의 최근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자 한다. 나는 모든 정치적 공동체들 ― 여기에는 근린에서부터 도시, 국가, 대륙, 지구 그 자체에 이르는 (가야트리 샤크라보티 스피박은 이런 맥락에서 행성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또는 '영토'에서 '네트워크'에 이르는 가상적 공동체들이 포함된다 ― ( [위대한 결말을 암시하는] '숙명' (destiny) 과는 반대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비극적으로 투쟁할 수는 있는] 운명 (fate) 의 공동체라는 판 군스테렌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이미 차이와 갈등을 포함하며, 그 곳에서 이질적인 인간과 집단들은 역사와 경제에 의해 '함께 내던져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이익이나 문화적 이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수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파괴 (또는 외부 세력에 의한 공멸) 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완전히 분기될 수도 없다. 인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비판 (그리고 또한 1796년 칸트의 에세이 '영구 평화를 향하여'의 정식, '그들은 ... 결국 서로 가까이 있는 것을 참아야 한다')에서 영감을 얻어서, 판 군스테렌은 모든 집단의 모든 개인에게는 그 또는 그녀가 '시민'으로 인정되는 적어도 하나의 '장소'가 세계 내에 존재해야만 하고, 따라서 인권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메타정치적 (metapolitical) [정치에 대한 정치라는 차원의] 원칙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을 넘어 단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이 원칙은 다른 의미에서는 단지 우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장소는 어디인가? 공동체가 '운명의 공동체'라면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급진적인 것이다: 개인들과 집단들이 속한 어느 곳이라도 그러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어디든 그들이 '우연히' 살게되고, 그래서 일하며 아이를 기르고, 친척을 부양하고, 모든 종류의 '친교'를 위해 동료를 찾는 모든 곳이 그러한 장소다. 오늘날의 세계화되고 잔혹한 세계의 '지형학'에 대해 내가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권에 대한 승인과 제도는 실천적으로 인권의 발전을 명령하며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배타적 소속 (membership) 을 넘어 조직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국경 위에' 위치해야 하는데, 우리의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실제로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한 요구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판 군스테렌은, 내가 '시빌리티'의 관점이라고 부른 것에 입각해 볼 때 중요한 문제는 단지 시민성과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소속의 자격이 아니라 항구적 접근권이라는 (또는 그가 쓴 것처럼 '형성 중인' 시민성이라는) 관념을 타당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법적 지위라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시민적 과정이다. PSSP
특집은 6월을 뜨겁게 달굴 WEF반대투쟁과 아시아 민중·사회운동회의를 소개하고, 그 쟁점을 소개하고 있다. 박하순은 현 시기 경제상황을 분석하면서 현재의 위기는 금융세계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문제의 해결은 위기의 지연이 아닌 전혀 다른 대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다나카 태츠지는 지금까지 일본의 운동을 평가하면서 현재 작지만 소중한 성과인 "탈WTO 풀뿌리 캠페인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탈WTO풀뿌리 캠페인 2기"를 중심으로 일본에서의 사회운동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적 운동을 제안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아시아 차원의 공동행동을 제안한다.
들어가며 1999년 미국 시애틀 제3차 WTO 각료회의는 전 세계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결집된 투쟁에 부딪혀 좌초됐다. 이 소위 "시애틀 싸움"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투쟁의 흐름이 고조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운동의 고조를 볼 수 없었으며, 세계적인 운동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본만 혼자 모기장 밖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됐다. 실제로, 일본에서 WTO에 맞선 '대안 세계화 운동'은, GATT 우루과이 라운드 쌀 자유화 저지 투쟁 이후로 대규모적인 행동을 만들어 가는 데 실패해 왔었다. 또 하나의 세계화 공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이라크 침략과 점령에 대한 투쟁의 경우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반전투쟁과 비교하면 현격히 차이가 났다. 이런 속에서 WTO에 저항하는 운동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흐름이었던 대안 세계화 운동은 2003년에 칸쿤 WTO 각료회의 개최를 앞두고서야 세계적 흐름에 합류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설립된 것이 "탈WTO 풀뿌리 캠페인 실행위원회(이하 탈WTO 캠페인)"이다. 물론, 탈WTO 풀뿌리 캠페인도 일본 내 현실 운동 상황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직 큰 운동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일련의 활동을 통해서 시민, 노동자, 농민 등을 결집시키는 공동행동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탈WTO 캠페인 운동이 나름대로 역동적인 운동체로 약진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고이즈미 자민당 정권이 WTO, FTA를 이용하여 다방면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규제완화 공격 ― 즉 임금·고용 구조조정, 공공서비스 민영화, 사회보장 관련 국민부담 강화, 농업 등 1차 산업과 지방 경제에 대한 외면 정책, 대규모적인 환경파괴 등―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에 저항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객관적인 정세파악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규모의 FTA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이 교섭에 대해 '일본 경제계의 요구'를 제일의 목적으로 하여 '일본이 주도하는 형식으로' 지역 경제 시스템 재구축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2002년 10월 일본정부 'EPA/FTA 전략') 그러나 이와는 달리 탈WTO 풀뿌리 캠페인의 목표는 이렇듯 일본계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 재구축이 아니라, 생활하는 사람들이 공생,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아시아 경제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탈WTO 풀뿌리 캠페인의 활동 경과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올 6월 아시아 사회·민중운동 총회를 향한 일정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1, 과거 농민들의 싸움, 그리고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저항하는 지구적 활동 일본에서는 90년대 초, GATT 우루과이라운드의 농산물 자유화, 특히 쌀 자유화에 저항하여 농민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싸움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에서는 GATT-WTO체제에 대항하는 대규모적인 운동이 사라져 버렸다. 경제의 세계화가 계속되면서 99년부터 다음 해에 걸쳐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반대하는 운동에 NGO, 노동조합, 농민단체, 생활협동조합 등 소비자 단체가 다수 참가하였고, '시애틀 싸움'에 고무 받기도 하였으나 그 후로 대안 세계화 운동은 고조되지 못했으며, WTO, 한일투자협정 등에 대항하는 여러 운동도 소규모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멕시코 칸쿤 WTO 5차 각료회의를 맞이해, 같은 해 2월 동경에서 WTO 비공식 각료회의가 개최됐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활동해온 단체들이 모여서 "WTO는 누구를 위하여? 동경행동" 실행위원회를 조직하여, NGO, 노동조합,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등 기존 운동단체 내외를 뛰어넘어 28개 단체가 결집하였다. 2월 14일 강병기(한국, 전국농민회총연합)씨, 월덴 베로(focus on the global south)씨 등이 참여한 심포지움에는 500명이 넘는 참가자가 결집하여 오랜만에 활기 찬 모임을 가졌다. 실행위원회는 비공식 각료회의가 열린 15, 16일에도 시위 등 계속적인 행동을 전개했다. 2. 탈WTO 풀뿌리 캠페인의 설립과 칸쿤 행동 비공식 각료회의에 대항하는 행동기관이던 "WTO는 누구를 위하여? 동경행동"실행위원회는 일단 자기역할을 끝냈지만 이를 마무리하는 총괄회의에서 9월 칸쿤 WTO 5차 각료회의를 겨냥한 공동행동 기구를 설립할 것을 확인했다. 그 제안 골자는 다음과 같다. WTO 등 경제 세계화 추진은 일본에 "부"를 가져오지만, 다른 측면에서 국내 기업의 임금, 고용 구조조정 강화, 격증하는 중소영세기업 도산, 증가하는 홈리스(homeless) 문제, 그리고 농림어업 쇠퇴 등 산더미처럼 많은 문제를 심각하게 일으키고 있다. 우리들은 직장에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맞서 서로의 현실과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전 세계에 이를 선전하여 WTO에 맞선 민중 운동과 풀뿌리 수준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강자를 위한 경제질서인 WTO를 넘어 약자가 주체적으로 생명과 생활을 지키기 위한 경제와 교역의 대안을 만들어간다. 구체적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지역, 직장 문제와 WTO문제를 연결시켜서 풀뿌리 교류를 도모하면서 9월 칸쿤 각료회의를 향한 운동을 전개한다. 이들 제안을 토대로 28개 단체가 참가하여 "탈WTO 풀뿌리 캠페인 실행위원회"를 4월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WTO 칸쿤 행동의 일환으로 결성한 "지구적 평화 행진(global peace march)" 실행위원회를 합쳐 WTO에 대항하기 위해 50개 단체가 참가하게 되었다. 주되게는 전(全)일본농민조합연합회,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전노협), 일본 국제 발런티어 센터, 일본소비자연맹, 아탁 일본지부(ATTAC Japan)등 농민단체, 노동조합, NGO, 소비자단체, 대안세계화 단체들이다. 탈WTO 풀뿌리 캠페인은 작년 9월까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하나는 칸쿤 각료회의의 초점이 '농업교섭'인 것을 염두 하여 주로 지역 농민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교류를 진행하면서 8월말부터는 태국 농민 우본 유워(대안 농민 네트워크)씨를 초빙해 '탈WTO 아시아 농민과 연대'라는 전국 캠페인을 벌였다. 둘째로 대(對) 정부(외무성 등) 요청행동을 했다. 셋째로 9월 칸쿤 각료회의 현지에 대표단을 파견하였으며, 9월 13일에는 동경을 비롯한 전 세계 각지에서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는 지구적 평화행진 global peace march(GPM)"을 동시다발로 진행하였다. 특히 GPM에는 많은 반전평화단체도 동참하여 대안 세계화 운동과 반전평화운동이 결합됨으로써 800명이 참가했다. 의제의 중대성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은 수였지만, 농민단체들의 행동을 논외로 한다면 WTO 관련 모임으로서는 최대의 규모였다. 이렇게, 약 반년에 걸친 탈WTO 풀뿌리 캠페인은 일정한 성과를 가지고 10월 총괄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운동의 성과로는 시민, 노동자, 농민, NGO 등을 결집시키는 운동의 싹을 만들었다는 점과 칸쿤 현지행동, 9.13 GPM 등 세계적인 운동과 결합하면서 칸쿤 회의를 무산시키는 운동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생활이나 일하는 현장으로부터 풀뿌리 운동이 아직 초기단계에 있다는 점과 WTO, 세계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벌일 것인가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는 이론적, 실천적 행동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3, 제2기 탈WTO 풀뿌리 캠페인, 한일FTA를 반대하며. 탈WTO 풀뿌리 캠페인 총괄회의에서 이후 과제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하였다. 칸쿤 후 FTA가 또 하나의 초점으로 떴지만, 한일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아시아 수준에서 운동을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 반전과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을 강화하는 것. 특히 고이즈미 자민당 정권은 소위 일본형 네오콘(neo-conservative)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규제완화 등 세계화를 철저히 진행하고, 실제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준비를 위한 유사법제화(有事法制化)와 헌법개악을 꾀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하나의 세계"를 알기 쉽게 제시하고, 제안하는 이론적 활동. 특히 아시아 수준에서 민중들이 진행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와 공정한 무역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 이상의 과제를 추구하기 위해 2004년 12월까지 탈WTO 풀뿌리 캠페인 제2기를 만들어 계속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제2기 캠페인의 첫걸음은 2003년 12월에 한일 FTA 정부간 교섭이 서울에서 개시되는 것에 대항하여 벌인 행동이었다. 행동은 한일 FTA 문제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이의 있다! 한일자유무역협정" 캠페인과 공동 주최로 진행했다. 동시에 한국의 반(反)세계화 단체인 KoPA와 함께 최초로 "한일 FTA 정부간 교섭 개시에 반대하는 한일공동성명"을 올렸다. 이것은 이틀 간의 아주 단기간 행동이었지만, 일본 쪽에서 53개 단체 ― 노동단체, 농민단체, 소비자단체, 반전평화단체, 환경NGO, 그리고 재일교포단체 등―가 참여하여, 국내에서 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 때부터 두 달에 한 번 열릴 정부간 교섭에 맞춰서 한일 사회운동단체가 공동행동을 하기로 했다) 한일FTA 2차 교섭은 2월, 동경에서 열렸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의 있다. 한일자유무역협정교섭 2.23 1일 공동행동"이 벌어졌다. 이 행동에 KoPA 실행위원인 최준영씨를 모시고, 일본정부와 일본 경단련(經團連)에 대한 제의 활동과 심포지움 등을 전개했다. 4월, 서울에서 열린 3차 정부간 교섭에 맞서 일본에서는 "이의 있다, 한일자유무역협정" 캠페인 중심으로 이른 아침에 외무성 앞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4, 6월 서울 아시아 사회·민중운동총회에 대한 제언 1)일본 사회운동의 임무와 중요성 WTO각료회의가 칸쿤에서 좌절된 이후, 특히 아시아에서는 FTA 교섭이 밀려들고 있다. 중국이아세안(ASEAN)과 FTA 교섭을 2001년 가을에 재빨리 합의했다. 중국에 뒤 처진 일본정부는 일본 다국적기업의 위기감을 토대로 동아시아에서 FTA를 일본이 주도하는 지역경제의 재구축이라는 방향으로 진행하려 하고 있다. 비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걸어온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지역에 FTA를 제의하는 것은 일본 다국적기업이 "가장 큰 추가적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환영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 사회운동, 대안 세계화 운동의 중요한 임무는 일본 다국적 기업이 더 자유로운 형태로 동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FTA추진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이번 아시아 사회·민중운동총회에서 확인하고 싶다. 2) 동아시아 수준에서 FTA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행동 구체적으로는 현재 앞 서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에 대한 공동행동을 동아시아 수준까지 확대하여, 각 국에서 공동성명(요구)을 발표하면서 동시 행동을 추구해 나가고 싶다. 이를 위한 네트워크를 이번 아시아 사회·민중운동총회에서 구축하여 공동행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생각이다. FTA의 중심이 되는 것은 "투자의 자유화"이지만, 투자를 받는 국가, 지역에 대해서 노동운동을 억제하는 조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일간 진행하고 있는 "비관세처지(NTM) 교섭" 내용에서도 그렇지만, 필리핀-일본간 등에서도 "비지니스 환경 정비위원회"를 설치하여 노동운동의 억제를 도모할 계획인데. 필리핀에서는 이미 필리핀 도요타사가 노조 파괴를 위해 다른 일본계 기업과 함께 필리핀 정부에 투자 철수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례가 있다. 나아가, 건강, 환경, 안전을 위한 사회적 규제조치의 완화를 허락해서도 안 된다. 또, 동아시아 수준의 네트워크는 중국 노동자, 농민을 제외하고서는 완성되지 못할 것이고, 운동성도 떨어질 것이다. 이번 아시아 사회·민중운동총회에서 중국 노동자, 농민들에게도 네트워크 참여를 호소하자. 3) 우리들의 구상, "또 하나의 동아시아 경제, 무역" 플랜을.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활발한 무역이나 투자가 다국적기업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1999년에는 "아세안(ASEAN) + 3(일본, 한국, 중국)"으로 정치적 뼈대가 만들어져 '지역' 협력이 시작되었다. 또, 97, 98년과 같은 아시아 통화·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2002년에는 '첸마이 이니셔티브'라고 불리는 역내(域內) 금융협력의 뼈대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FTA 건설 러시(rush)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 창설이 예견되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하는 쪽은 그만큼의 축적을 지금까지 해왔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흐름에 대해 단순히 반대하는 것으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한 반대는 각 국의 운동들이 '국익(國益)=민족주의'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동아시아 경제, 무역'에 대한 제시가 반대운동과 더불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동아시아 경제, 무역'을 위해서는 취급하는 상품의 원료생산부터 제조, 가공, 유통, 판매까지 온갖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이 지켜지고, 생산자,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가격, 임금이 지불되는 것, 환경이나 지역 자원, 지역문화가 파괴되지 않는 것 ― 이런 지속 가능한 경제 무역 시스템이 필요하다. 농업, 식량에 있어서는 먼저 식량 자급을 기초로 하여 아시아 각국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하고, 국내에서도 농업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농업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안전성과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식품기준이 요구된다. 이상과 같은 경제 무역 시스템을 원칙으로 '또 하나의 동아시아경제 무역' 플랜을 제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유효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번 아시아 사회·민중운동총회에서 경제와 무역관계 워크샾을 통해 의식적인 대안 마련과 토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구상을 축적해 나가자.PSSP
6월 13일 신자유주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각 국의 정·재계 지배 엘리트들이 서울에 대거 몰려온다. 아시아의 성장 트렌드, 도전요인, 기회요인을 다뤄보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대단히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데, 이 참에 세계적인 정·재계 석학들과 관료들에게 문화강국, IT강국으로서 한국의 면모와 동시에 한반도 평화에 기반을 두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파병문제에 대한 대대적인 입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과 고문이 드러난 뒤 파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드세졌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야당 일각의 파병 재검토 논의를 일축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당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마저 아예 거부해 버렸다. 오늘 지배세력이 처한 이 같은 현실은 한국자본주의 위기탈출전략의 빈곤함과 자신이 기반을 두고 있는 통치이데올로기의 (위선이라는 의미에서)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극복이냐 개혁이냐'는 식의 (허구적인) 논란을 전개하고도 그들은 위기감에 빠져있는 대중을 휘어잡지 못하였고(6·5 재보선 선거에서 28.4%의 투표율은 이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탄핵국면에서 수구보수세력이라 비난했던 것에 비추어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지배엘리트들에게 한류현상의 대표주자를 앞세워 선정적인 가무를 제공하고, 화려한 리셉션과 함께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며 대통령 자신이 직접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을 두고, "수출로 번 돈, (해외자본의) 배당 이자로 까먹는다"는 언론의 호들갑을 기억하고 있는 대중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여기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우기기는 결국 열린우리당의 '민주수호'라는 구호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으니, 대중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도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상이 어쩌면 노무현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도 아닌데,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곧바로 행동으로 조직되지 않는 데다, 활동가들 역시 예전처럼 대중의 반역이 확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한 범국민 청원운동이 애초 목표에 훨씬 미달하는 수준에서 멈칫거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WEF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 역시 6월 임단투 투쟁(특히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파업투쟁)에 기대어야 겨우 진행할 수 있는 현실도 이를 잘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6월 12일 파병철회투쟁에서 광화문에 2만이 모인들, 6월 13일 WEF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 2만이 모인들 그 의미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중의 좌절과 분노가 심연의 바다 속에서 요동치는데도 그것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또 우리 스스로가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을 질책하고 한탄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감에서 이를 어떻게 딛고 일어설 것인지가 초점이 된다는 점이다. 이를 대중운동이 어떻게 다시금 급진화 할 수 있겠는가와 비교해보면, 사실 이는 앞서의 의문과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이런 모호한 질문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자폐증으로 몰아 넣을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예 다르게 질문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이 같은 상태가 대중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심연의 분노와 정확히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가 만일 한국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무현이 내놓은 대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노무현의 통치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우리를 기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고 있다면, 그만큼 대중들도 관찰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중의 급진화는 곧 우리 자신의 급진화를 의미한다. 능동적인 대중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만일 WEF에 저항하는 대중을 조직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조직한다는 뜻일 터이며, 우리가 파병을 철회하기 위한 대중의 범국민적인 청원운동을 조직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청원운동에 나선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론부터 서둘러 말하자. '6월 12일, 13일 파병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자!' 정확히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6월 12일, 13일 파병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자!'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내는 싸움에 나서는 주체는 바로 우리라는 사실 말이다.
디지털 말에 실렸습니다. (편집자 주)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과 저항세력간의 교전이 진행 중인 가 운데 미국 뉴욕의 빙햄프턴 대학 제임스 페트라스 교수가 지난 4월 7일 발 표한 「이라크 저항운동을 지지하자」를 번역·소개한다. 그동안 시민·사 회운동과 남미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켜온 페트라스 교수는 팔루자 교전을 '민족해방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무기력 을 질타하고 있다.
이라크의 사회세력들이 전국적 회합을 가지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문서는 지난 5월 8일 바그다드에서 열린 이라크 전국회의에서 승인된 최종 선언입니다. 이것은 사회조직과 모든 종교조직뿐 아니라 아랍족과 쿠르드족, 민족주의 자, 바트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광범위한 이라크의 정치 사회 조직들을 대 표하는 이들에 의해 지지된 발의이며 여기에 2000명 이상이 참여했습니 다. - global anti war movement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입수한 것입니다. (global anti war movement는 2003년 자카르타 평화회의, 2004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을 거치면서 형성된 세계 반전운동 진영 네트워크입니다.)
* 출처: 한겨레 2004년 4 - 5월 < 중동 깊이 보기 >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의 뿌리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법은 어디에 3. 사우디 ‘와하비즘’과 위기의 왕권 4. 사우디 경제와 청년실업 5. 이란의 개혁 열망과 한계 6. 이란 여성의 사회참여 7. 걸프지역 왕정과 민주개혁 8.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9. 예멘, 통일 이후 10. 좌담/ 중동과 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