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주] 미국의 제3세계 간섭정책은 대체로 유사한 모형의 반복이다. 목표물이 되는 정부나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고 그릇된 정보를 거대 미디어기업들을 통해 유포시키고, 국제금융기관이나 다른 나라 정부가 재정 지원을 중단하거나 삭감하도록 압박하고, 그 나라의 반대파들 특히 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파그룹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지원하는 것. 이는 미국의 전형적인 “저강도전쟁” 모형이다. 이러한 전략은 현재의 아이티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부분의 영자 언론은 아리스티드가 2000년 총선 부정 때문에 합법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2000년 당시 미국 정부조차 선거 부정을 주장하지 않았고,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대통령과 입법부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했다고 선언하였다. 아이티의 모든 당사자들은 아리스티드가 92%로 득표율로 당선되었다고 인정했다. 합의되지 않았던 유일한 문제는 다수를 얻었지만 과반수를 넘지 않은 아리스티드 측의 7명의 상원의원에 대한 결선투표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7명은 사임했고, 새로운 선거를 치른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에서의 "권력남용" 문제를 빌미로 부시정부와 유럽의 순종적인 파트너들은 수억 달러의 신용제공과 경제원조를 연기하였다. 미리 보장되어 있었던 미주개발은행의 4억 달러 대부가 봉쇄되었고, IMF, 세계은행, 유럽연합은 신용공급을 삭감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2003년 7월 중반 아이티가 3200만 달러의 외채 연체금을 상환하면서 국고를 비우고 나서야 미국은 3400만 달러가 아이티의 보건, 수도, 도로를 위해 제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돈은 대부분 미국의 개발사업 “계약자”들의 수중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편 아이티의 좌파운동들은 외채상환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을 주장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아이티의 우파 정당, 무장조직, 기업가나 종교 조직을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지원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 글에서 다루고 있다). 게다가 현재 미 국무부에서 카리브와 라틴 아메리카 정책을 입안하는 인물들 중 일부는 이미 레이건 시대부터 요란을 피웠던 이들인데, 특히 존 네그로폰테, 엘리어트 아브람스, 존 포인덱스터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에 대한 더러운 전쟁과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깊게 연루된 인물이다. 최근에는 국가안보위원회의 오토 라이히나 국무부의 노리에가가 가장 눈에 띤다. 2003년 4월 노리에가는 워싱턴에서 열린 아메리카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의 아이티 정책과 베네주엘라와 쿠바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주기구가 채택한 “아메리카 민주주의 헌장”의 20조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를 위반한 나라들에게 취할 일련의 조치가 담겨 있는 “개입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차베스와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고의적으로 분열적이며 대립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쿠바의 선한 국민들은 민주주의 헌장을 배우고 있다는 점은 나의 강력한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아이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강도전쟁”은 쿠바와 베네주엘라,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모든 곳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 앞머리와 본문의 역주는 아래의 글들을 참조했다. Tom Reeves, “Still Up Against the Death Plan in Haiti” (2003.9/10) http://www.thirdworldtraveler.com/Caribbean/UpAgainstDeathPlan_Haiti.html Michel Chossudovsky, “US Sponsored Coup d'Etat” (2004.2.29), http://www.globalresearch.ca/articles/CHO402D.html Heather Williams, "Haiti as Target Practice", (2004.3.1) http://www.counterpunch.org/williams03012004.html * * * 아이티와 미국의 더러운 속임수 - 아리스티드 제거는 거대한 중남미 탈안정화 캠페인의 일부분이다 - 그렉 구마 2004년 3월 1일 출처: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20&ItemID=5069. 필자는 <자유를 향하여>의 편집자이며, <불안한 제국: 억압, 세계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저자다. 이메일: editor@TowardFreedom.com 1915년 미국이 아이티에 처음 군사간섭했을 때, 아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1915년 7월 미국은 아이티 내분을 구실로 군사간섭을 시작했으며, 9월에는 아이티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1934년까지 군사점령을 계속하였다.] 미국의 군사간섭을 직접 취재한 저널리스트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신문은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받아 적을 따름이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말을 따르면, 아이티에 보호령을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악하고 타락한” 혁명을 중단하고, “점진적인 개혁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거대한 노력의 일부분이며, 그의 “국제주의” 정책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윌슨은 이 섬나라를 1차 세계대전의 지리전략적인 볼모로 생각했다. 그는 특히 아이티에서의 정치적 혼란으로 독일이 이 지역에 군사기지를 세우는 이득을 취할 것을 걱정하였다. 또한 그에게는 매우 강력한 경제적 동기도 있었다. 미국에게 아이티는 위협받는 투자자산이었다. 내셔널시티은행은 중앙은행과 철도체계를 통제하였고, 설탕왕들은 기름진 농장을 탈취할 표적으로 생각했다. 투자자와 중개업자에게는 불행히도, 이 나라는 4년 동안 7명의 대통령이 갈렸고, 그들 대부분은 초기에 살해되거나 제거되었다. 북부 농촌지역은 카코스라고 불렸던 반란 운동의 통제를 받았다 (카코스는 이 나라의 새 울음소리를 딴 것이다). 카코스는 대개 다른 잔인한 산적 무리들처럼 묘사되었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자였으며, 이 나라 경제를 지배하는 프랑스와 미국, 소수 물라토의 통제에 저항하였다. 미국 점령의 초기 동안, 카코스는 그들의 “산디노”[니카라과의 게릴라 지도자]인 샤르멘느 페랄트의 지휘를 받으며 저항을 지속했다 (그는 군대의 장교였다가 게릴라 지도자로 변신했다). 페랄트는 1919년 미국 해병대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1980년대 후반 아이티의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1980년대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결국 해방신학자인 장 베르뜨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57년 9월 대통령으로 선출된 (‘파파독’) 뒤발리에는 의회를 해산했고, 1964년 종신대통령이 선포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1971년 그가 죽자 19세의 (‘베이비독’)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력직을 세습했다. 그는 민중저항으로 1986년 해외로 망명했고, 1991년 아리스티드가 당선될 때까지 뒤발리에가의 군사집행자 역할을 했던 톤톤 마쿠트가 사실상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동안 역사는 다시 반복되었다. 1991년 선거 7개월 후 아리스티드는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군사정권은 3년 동안 지속되었고, 1994년 아이티의 곤경[대량난민사태]은 커다란 뉴스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보도는 매우 선택적이었고, 쿠데타 주도 세력에 대한 CIA의 지원이나 아이티 군부의 마약거래 개입 사실은 결코 보도하지 않았다. 미국의 점령에 앞서, 미디어는 아리스티드가 “속임수 봉쇄”라고 부른 것에 대해 의심스럽게도 침묵하였다. [군사구테타와 반대파 인사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은 인권회복과 민정이양을 촉구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이를 무시하자 미국 부시정부는 ‘아이티 경제제제’를 가하고, UN은 1993년 6월 전세계적인 석유, 무기 금수 및 해외 자산 동결조치를 취하였다.] 봉쇄조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짜내었지만, 그러나 외국자본의 각종 이윤 사업들은 면제 대상이었다. 석유 봉쇄가 이루어졌으나, 연료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통해서 쉽게 밀수입되었다. 반면에 아리스티드를 더럽히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미국의 점령이 시작되었다. [1994년 8월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아이티의 민정복귀를 위해 무력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의 사용을 승인한 결의안 940호를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아이티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대응하였다. 1994년 9월 18일, 미군 2만 명을 포함한 30개국에서 파견된 총 2만 2천 명의 다국적군이 아이티에 도착하여 쿠데타 세력을 축출하고 아리스티드 민선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그러나 윌슨이 안정과 민주주의라는 수사로 미국의 경제적 이해와 횡포를 숨겼던 것과 같이, 클린턴은 “민주주의의 지지”를 내걸었다. 그러나 사실 1990년대 점령의 실제 목표는 아리스티드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이티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미디어는 분명한 것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아리스티드와 결코 편한 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으며, 미국은 다음 선거까지 아이티 군부세력과 이 나라를 공동 관리한다는 것을 합의하였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정책결정가와 분석가 대부분은 미국이 본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목표가 아니었고] 단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아이티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아이티에서 일종의 혁명이 진행 중이었다고 말하는 분석가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그들은 아이티의 상황을 항상 카오스로 묘사한다. 상투적인 지식을 따르면, 아이티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거나 민주 제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20세기 초반 19년 간 아이티에 머물렀던 것이다. 아이티인들은 1915년 당시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어떤 회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1990년대에도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1994년 9월 선거에서 로스 페로는 “노우나싱”(Know-Nothin)[무지당(1853~1856년)의 당원, 미국 태생 시민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타일로 대중적 편견을 널리 퍼뜨렸다. 그는 “아이티인들은 독재자를 좋아한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페로는 미국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했는데, 그 함의는 그가 아이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시정부는 2003년 말 아리스티드에 반대하는 무장봉기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또한 2월 29일 그를 납치하여 아프리카로 보내었다. 이 때 부시정부는 그와 유사한 대중적 편견에 의존했다. 그 후 물러난 대통령은 그의 사임이 미국 대사관 관리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물론 그는 결코 미국이 선호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탈안정화 정책이라는 환경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고, 그의 무능력은 “아이티 스타일”의 “정권 교체”를 위한 최고의 구실을 제공하였다. 2월 초 “반란”을 일으킨 준군사조직 군대는 국경을 넘어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부터 건너왔다. 이들 잘 훈련되고 훌륭한 장비를 갖춘 부대는 <아이티 진보전선>(FRAPH)의 전 멤버들을 포함하였다. <아이티 진보전선>이라는 이름은 아리스티드의 첫 번째 정부를 전복한 1991년 군사 쿠데타 이후 대중학살과 정치암살에 연루된 “죽음의 군대”의 이름을 부드럽게 바꾼 것이었다. [군사쿠데타 기간 동안 최소한 3000명이 죽고 수천명이 추방되었다]. 스스로 <민족해방재건전선>(FLRN)이라고 선언한 조직 역시 활동적이며 기 필리프가 이끌고 있다. 그는 과거 경찰 수장이었고 아이티 군대의 멤버였다. 그는 쿠데타 기간 동안 다른 수십 명의 아이티 군대 장교들과 함께 에콰도르에서 미국 특수부대의 훈련을 받았다. 고나이베와 깝 아티안 공격을 이끌었던 다른 두 명의 반란 지휘자인 엠마뉴엘 “토토” 콘스탄트와 조델 샹블렝은 뒤발리에 시대의 톤톤 마쿠트 군대의 집행자였으며 <아이티진보전선>의 지도자였다. 무장 반란자들과 민간인 지지자들 모두는 명백히 최근의 음모에 연루되었다. G-184 지도자인 앙드레 아파이드는 아리스티드를 전복했던 그 주간에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과 접촉했다. 필리프와 콘스탄트는 CIA와 연계되어있고, 미국 관리와 접촉했다. [현재 아이티의 대표적인 민간인 “반대파” 그룹은 <민주주의 집합점>(Democratic Convergence, DC)과 <G-184>(184 시민사회조직그룹)다. DC는 15개의 반-아리스티드 정당 연합이며, 서로 적대적인 아이티 지배계급의 분파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빈약하다 (이들은 선거에서 2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집합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부>(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와 연계된 <국제공화당기구>(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IRI)가 매년 제공하는 300만 달러의 기금 때문이다. NED는 1983년 레이건 정권 당시에 창설된 것으로, CIA가 정치인을 은밀히 매수하고 거짓 민간인조직을 창설했다는 비난이 일면서, CIA를 대체하여 정당들과 NGO 부문에서 중요한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G-184를 이끄는 앙드레 아파이드는 미국 시민이며 아이티에 4000명 규모의 공장을 소유했고 1991년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다. G-184는 엘리트기업가조직과 종교조직 등의 우산조직의 성격을 띠었고, 역시 IRI나 유럽연합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시애틀타임즈에 따라면 2월 20일 미국 대사 제임스 폴리는 미군 남부사령부로부터 4명의 군사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을 불렀다. 공식적으로 그들의 직무는 “미국 대사관과 인사들에 대한 위협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방 조치”로서 3척의 미 해군 군함을 아이티로 출발시킬 준비에 돌입했다. 한 척에는 수직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와 공격용 헬리콥터가 탑재되어 있었다. 또한 최소한 2000명의 해병도 배치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아리스티드가 납치되면서, 워싱턴은 그들의 대리인인 준군사조직 부대를 무장해제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고, 이제는 “과도기” 동안 정치적 역할을 맡을 세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달리 말해, 부시정부는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제거 후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에 대한 학살을 막기 위한 준비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다루면서 미디어 기업들은 CIA가 개입한 역사와 역할에 대해 눈감고 있다. 그 대신에 이른바 “반란 지도자”, 곧 1990년대 죽음의 군대의 지휘관들을 반대파의 합법적인 대변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효과적으로 아리스티드를 속죄양으로 삼아, 그를 “사회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유일한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는 그레이 데이비스를 물러나게 하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당선시킨 2003년 캘리포니아 소환선거와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사회경제적 위기는 대부분 1980년대 이후 IMF가 강제한 경제개혁에 기인한 것이다. 아리스티드가 1994년 아이티로 돌아올 때 그에게 강요된 조건은 IMF의 경제 “요법”의 수용이었다. 그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어쨌든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악마로 묘사되고 있다. [아이티의 IMF 경제개혁은 뒤발리에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 아리스티드는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려했지만,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후 이전에 세계은행의 관리였고 1983년 뒤발리에 집권시 총리를 맡았던 마흐 바쟁이 다시 총리로 복귀하였다. 1994년 아리스티드가 돌아온 후 1996년까지의 남은 임기 동안, “긴급경제복구계획”이 진행되었다. 긴축재정과 공적서비스 삭감이 강요되었고, 엄격한 외채상환이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 IMF의 새로운 융자를 위한 조건이 되었다. 한편 1996년 클린턴 정부와 체결한 협정으로 쌀, 설탕, 옥수수 등 미국 농산품 관세가 철폐되면서 농산물이 덤핑으로 수입되었고, 인구의 75%가 농업에 종사하는 아이티 현실에서 농민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한편 클린턴정부는 2003년 11월 아이티 대선을 두 주 앞두고 발전기금 제공을 중단시키고, 아이티 정부에게 IMF와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을 강요했다. 당선된 아리스티드는 최저임금의 상승, 학교건립과 문맹퇴치 등을 약속했지만, 정부예산, 공공부문, 공적 투자, 사유화, 무역과 통화정책 등에 걸쳐 이미 IMF와 체결된 합의로 인해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된다.] 캐나다의 경제학자 미셀 초수도프스키가 설명한 것처럼, 부시의 목적은 “아이티를 민주주의의 외양으로 완전한 미국의 식민지로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목표는 포르토프랭스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미군이 아이티에 영구 주둔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카리브 지역을 군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것을 원하는가? 이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는 카리브 지역의 관문이며, 쿠바-북서아메리카와 베네주엘라-남아메리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다. 이 섬에 미군이 주둔하면 쿠바와 베네주엘라 모두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데 큰 이점이 있으며, 더 광범위한 지역 군사작전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아이티의 야만적인 스파이들의 사례처럼, 미국은 정보기관들이 “한번에 될 일을 두 번에 하는 일”이라고 부르는 비밀작전[대리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모집된 베네주엘라인들이 과거 <안보협력을 위한 북반구기구>(WHISC)였고 지금은 <미국 아메리카군사학교>(SOA)로 이름이 바뀐 곳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군 남부사령부가 관할하며 페루 북부 정글에 있는 이퀴토스 훈련소로 옮겨진다. 미국 지도자는 베네주엘라의 휴고 차베스 대통령을 달갑게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차베스는 부시 정부를 격노하게 하고 있다. 2002년 4월 미국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쿠데타였다. 그러나 친미적인 페드로 카르모나 에스타냐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폐기한 후 단 이틀만에 권력에서 물러났고, 차베스는 복귀하였다. 차베스는 줄곧 미국 정부와 CIA가 베네주엘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베네주엘라 사태의 배경은 그 나라가 세계 4위의 석유수출국이며 미국의 세 번째 석유수입처라는 점이다. 베네주엘라는 필립스 페트롤륨과 엑손모빌의 주요한 달러박스이며, 세브론 텍사코와 옥시덴탈 페트롤륨도 주요한 이해관계자다. 아이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문제며, 이는 더욱 격렬한 폭력 사태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아루바(네덜란드령 앤틸리스제도)의 미 공군과 해군 분견대는 병참과 물자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 해군 병원선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신호가 처음 나타나면 북부 해안에 배치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이티 사태는 이라크나 미국 경제 문제에 관한 미국 시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하는 미국 정부에게 유용한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비밀 작전이 실제로 아이티의 불안을 자극하고 심지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제거하였다는 책임은 간단히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PSSP
1. 이라크 임시헌법 합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raqi Governing Council)는 미국의 주권이양이 이루어질 6월 30일 이후 임시정부의 법적 통치기반이 될 임시헌법 초안에 합의했다고 3월 1일 발표했다. 임시헌법은 60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표현?언론?집회?종교의 자유 △군부에 대한 민간통제 △이라크 국민의 권리 보호 △임시의회 의석의 25% 여성할당 △이슬람법(샤리아)의 지위 △연방주의 △2005년 1월 31일 이전 선거실시 등이다. 이슬람법의 역할은 제한되었다. 국교로 되었지만 동시에 종교의 자유도 인정되었고, 입법의 ‘유일한’ 근간이 아니라 다른 것 가운데 ‘하나의’ 근간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관리들은 즉각적으로 이라크 점령행정처의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이 이라크 임시헌법을 승인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이라크 정부의 기본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파웰 국무장관조차 TV에 출연하여 “데드라인에서 하루가 늦었을 뿐 굉장한 성과”라고 말했다. 과도통치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독립민주운동(IIDM)의 지도자 아드난 파차치도 “이라크 역사에서 잊지 못할 위대한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은 남는다. 과도통치위는 민병대 무장해제, 임시정부의 구성, 선거 체계 등과 같은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이후 구성될 임시정부로 넘겼다. 쿠르드 족과 관련해서는 북부 쿠르드 지역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법부와 입법부를 둘 수 있게 하는 등 자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이 정해지고 후세인 정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면서 광범위한 자치를 누려온 쿠르드족은 석유 수익에 대해 일정 비율의 고정된 배분을 할 것과 쿠르드족이 다수인 북부 지역에서 영토를 확장할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향후 갈등의 소지가 크다. 또한 임시헌법은 이라크 내에 대규모로 존재하고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민병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쿠르드 민병대인 페시 메르가(pesh merga), 시아파 민병대인 바드르 브리게이드(Badr Brigade), 메히드 아미(Mehidi Army)등 민병대의 규모는 크다. 이들을 그냥 놓아두면 서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정부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이나 시아파는 이 충성스러운 무장병력을 해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임시헌법은 2005년 1월 31일 이전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되면 275명의 의원이 생기고 그들이 대통령과 두명의 부통령을 뽑게 된다. 다시 이 세명이 총리를 뽑는다. 하지만 선거 이전까지는 7월 1일부터 미국이 주권이양을 하기 위해 만들게 될 임시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통치하게 된다 총선 실시 이전 임시정부 구성에 대한 미국의 계획은 전국 18개 주에서 지역위원회를 꾸리고 이 위원회가 각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을 임명하여 이들이 다시 임시의회 의원을 임명하고 이 의원들이 임시정부 수반과 각료를 임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04년 7월 1일에 주권을 임시정부에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이 임시정부는 총선이 실시될 때까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이라크를 통치하게 된다. 이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은 1월 22일자 캐나다 <글로브 앤 메일>에 기고한 글에서 ‘임명된 자들에 의한 지배(Appointocracy)'라고 비판했다. 즉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임명된 부시가 임명한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임명에 임명을 거듭하여 임명된 임시정부에 주권을 이양하면 미국은 ’임명된 자들에 의한 지배‘라는 영광스럽고 새로운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비꼰 것이다. 한편, 협상과정에서 이슬람법의 영향력, 쿠르드 자치구의 권한, 여성의 지위 문제 등을 높고 이견을 조정하지 못한 바 있고 시아파 위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는데, 임시헌법을 발표할 때에도 쿠르드 대표와 시아파내 두 세력의 대표가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내재된 갈등은 확인되었다. 더욱이 임시헌법이 합의된 바로 다음 날 시아파 종교기념일인 아슈라(애도의 날)에 바그다드와 카르발라에서 동시에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임시헌법을 부정하고 종족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시한을 하루밖에 넘기지 않았지만 미국이 중심적으로 작업하고 조정하여 타협된 임시헌법은 갈등의 봉합이라고 보여지며 그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주권이양과 임시정부 구성으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일정에서 갈등은 더욱 다양하고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2. 이라크내 종족 갈등의 양상 7월 1일자로 주권이양 시점이 다가오고 임시정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종족간의 이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월 19일 바그다드에서는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를 최고지도자로 두고 있는 시아파가 직접선거를 촉구하여 “선거 찬성(Yes, yes to election), 임명반대(No, no to selection)"라고 외치며 10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인구의 60%인 약 1500만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금까지 언론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2천5백만 이라크 인구 가운데 시아파가 60%정도, 수니파가 35% 정도여서 소수파인 수니파가 후세인 치하에서 권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해 왔는데, 최근에는 이라크의 한 잡지가 3차례 통계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라크 인구구성이 수니파가 53%, 시아파가 40-45%, 비이슬람이 2% 정도라는 보도를 한 바 있다. 시아파로서는 직접선거는 곧 집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중들은 경제적 권리와 투표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전운동가이자 뉴레프트리뷰 편집위원인 타리크 알리에 따르면 두명의 주요 지도자인 알리 알 시스타니와 모크타다 알 사드르가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알 사드르는 점령과 연방주의 양자가 이라크를 발칸화하고 서구에 석유통제권을 내주는 첫걸음이라고 보아 이에 대해 적대적이고 알 시스타니는 협조적인데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점령군과 대화하는 것보다는 UN과 대화하려 한다고 한다. 알 시스타니가 직접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둘 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실시를 요구했다. 키르쿠크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투르크멘족은 지난 2월 25일 바그다드에서 수천명이 정치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투르크멘족의 권리를 무시하는 헌법반대”를 외치며 스스로가 2500만 인구 가운데 약 13%인 300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27일에는 바그다드 미군사령부 앞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미군 차량의 통행을 막으며 단식투쟁을 하였고 28일에는 키르쿠크에서 ‘전국투르크멘운동’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상점과 음식점 문을 파업을 벌여 이를 지원했다. 쿠르드족 역시 이날 북부 쿠르드족 지역의 주민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170만명의 탄원서를 미 행정처와 과도통치위에 제출하였다. 이들 ‘이라크 쿠르디스탄 주민투표를 위한 운동’은 이라크 북부 지역에 사는 모든 종파의 16살 이상 주민들을 상대로 쿠르드족 지역을 연방제 국가의 일부로 하느냐, 독립하게 하느냐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이 석유통제권과 민병대 지휘권 유지를 전제로 연방제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라크 내 종족갈등은 한국군 파병예정지인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 지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원유매장량의 6.7%가 몰려 있다는 이곳에서는 서로가 다수라고 주장하는 아랍계, 투르크멘족, 쿠르드족의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다. 1월 26일에는 키르쿠크시 서남쪽 외곽에 자리잡은 미군 캠프에 3차례의 중화기 공격이 가해졌고 25일에도 미군 캠프에 4발의 카튜샤 로켓 공격이 가해졌다. 29일에는 경찰차가 공격받아 경찰관이 사망했고 30일에는 검문소가 로켓추진 수류탄 공격을 받아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월 1일에는 쿠르드족 관할 지역인 북부 도시 아르빌에서 쿠르드계 정당 당사를 겨냥한 2건의 동시 자폭 테러로 109명이 숨지기도 했다. 23일에는 차량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10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다. 28일에는 시아파 2000여명이 키르쿠크 시가지에서 “키르쿠크는 어느 민족의 것이 아니라 주민 모두의 것”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29일에는 쿠르드족이 이라크투르크멘전선(ITF) 사무실에 난입하여 집기를 부쉈다. 폭력사태가 확산되고 충돌이 커지자 경찰은 29일부터 저녁 6시 이후의 야간통행을 금지했다. 이러한 종족갈등은 미군 점령 이후 격렬해졌다. 미군 점령은 후세인 이후의 정치체제를 이라크인들이 자주적으로 구성하지 못하게 했다. 이라크 민중들에 의한 정치체제 형성은 거세되고 미 점령당국이 종족과 분파를 안배하여 인위적으로 과도통치위원회를 구성 과도통치위는 시아파 13명, 수니파 5명, 쿠르드족 5명, 투르크멘 1명, 아시리아 1명 등 25명으로 구성되었고 과도내각도 이와 동일한 인원 비율로 이루어졌다. 함으로써 갈등은 상존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구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점령을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점령 자체로부터 초래된 것이며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미국은 갈등만 키워온 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이라크는 내전(內戰)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각 언론들이나 정부관계자들이 말하게 된 것이다. 3. 이라크 석유자원에 관한 점령군의 계획 작년 5월 22일 UN안보리의 ‘대 이라크 UN제재 해제결의안’에 따라 미 점령당국은 거의 모든 석유수입이 위탁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의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이 이라크 재건 기금 사용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점하고 석유자원을 착취하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작년 6월에 석유생산이 재개된 이래 이라크는 현재 하루 2백 30만배럴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후 전쟁 이전 수준(2백 5십만배럴)을 회복하여 올해 말까지 3백만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편 미국은 애초에 이라크 국유기업 사유화 계획에 따라 석유산업도 사유화하고자 하였다. 이라크 산업을 100퍼센트 외국에 개방한다는 브레머 훈령 39조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미국이 임명한 과도통치위원회조차 석유 사유화에 반대하고 있고, 자칫하면 국민적으로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계획을 수정하여 이라크 석유산업의 점진적인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경제에 대한 미국의 기본계획은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따른 전면적 사유화와 개방된 시장경제이다. 이미 백텔, MCI, 핼리버튼 등은 이라크의 수도, 전화, 유전에 진출해 있고 더 많은 기업들의 이라크 시장진출이 이뤄질 것이다. 이라크의 사유화와 시장경제 유도를 통해 미국은 주변 중동국들도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내고 궁극적로 중동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고자 한다. 작년 6월 요르단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회의에서 미국은 중동지역의 평화확보와 자원개발을 목적으로 2013년까지 미-중동자유무역지대(MEFTA)를 구축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로드맵'을 밝힌바 있다. 일례로 점령행정처의 석유 고문인 로버트 맥키는 “이라크가 하루아침에 사유화로 나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는 국가통제로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사유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때 팔게될 것은 정제와 수송 같은 부분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문 경영진을 국유 석유회사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즉, 미국으로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석유자원의 착취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해서 관리 통제 가능한 국유기업을 장악하는 것이 그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향인 것인다. 덧붙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를 대체할 안정적 공급처로 이라크를 선택한 것이다. 이라크 석유산업을 재건하고 더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는 과도통치위원회 미국의 후원아래 국제은행들로부터 14억달러를 빌리는 계획으로 드러나고 있다.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금이 담보가 될 이 대출은 이라크 전후 최초의 국가채무이다. 물론 그 국제은행들은 미국 주도의 컨소시움이다. 2월에 과도통치위의 재정위원회는 미국 정부기관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 씨티그룹, BNP 파리바, 크레딧스위스 등으로 이루어진 컨소시엄과 대출에 대해 협상했고 전직 금융가인 아흐메드 찰라비(이라크국민회의)가 이끄는 재정위원회는 과도통치위에 대출계획 승인을 제출했다. 미국은 석유산업을 착취해서 이득을 취하고 석유산업 재건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대출해줌으로써 금융이익을 얻는 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이라크의 부채는 대략 4000억 달러로 알려지고 있다. 1200억 달러를 상업은행과 정부들에 빚지고 있으며, UN의 ‘배상 위원회’(Compensation Commission) 밑에 놓인 2000억 달러의 ‘배상’ 요구가 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에 관련된 1000억 달러의 배상 요구가 있다. 이 부채에 대해 이라크는 2004년까지 지불유예를 인정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전후 재건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는 걸림돌이기 때문에 작년부터 채무국들에 대해 부채탕감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지난 2월 28일 국제 이라크공여국 회의에서 채무국들은 1200달러 가운데 약 60%인 720억달러를 탕감하기로 했다. 4. 이라크의 미래는? 요컨대 이라크 상황은 다음과 같다. 임시헌법은 합의되었지만 불완전하고 주권이양 계획은 비민주적이다. 미군 점령이 야기한 종족과 분파 사이의 무력 갈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제는 재건되지 않고 있고 실업률 50%를 상회할 만큼 기록적이다. 초국적기업은 각종 기간산업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석유산업과 그 수익은 미국의 통제와 관리 아래에 있다. 그러나 많은 대중들은 민주주의와 보다 나은 삶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는 앞으로 점령과 제국주의 경제착취가 종족적 갈등, 대중의 불만과 혼합하여 내전 상황으로 갈 수도 있고, 대중의 요구가 성장하고 점령통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이 이를 포기하여 새로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테러와의 전쟁 시작 이후 미국이 침략한 아프간은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고통 끝에 지난 1월에 부족간의 합의로 새 헌법을 만들고 국가건설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투는 계속되고 탈레반은 세력을 넓히고 있으며 수도 부근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군벌들이 치안을 담당할 만큼 치안이 불안하다. 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기는 계속되고 있어서 ‘실패한 국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라크가 가야 하는 길은 아프간처럼 혼돈이 지속되어 끝없는 고통속으로 빠지는 길도 아니고 정치와 경제가 미국에 의해 통제되는 친미정권의 길도 아니라는 것이다. PSSP
초국적 감시망의 설계 : ECHELON 그리고 US-VISIT 조지 오웰이 묘사했던 전체주의 사회-오세아니아-는 기계의 전지전능함만이 신뢰의 척도로 인정받는다. 그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기초한 공동체는 거부된다. 오직 Big Brother로 상징되는 전체만이 지고의 선이 되며 개인은 실종된다. 모든 기록의 날조와 재구성을 통해 인간의 사상은 통제되고 기억까지 재구성된다. 이러한 전체주의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조장하는 동력은 바로 정보의 독점이다. 전체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김없이 감시하고 관리함으로써 윈스턴 스미스는 Big Brother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감시와 통제는 조지 오웰의 상상력을 가뿐하게 초월한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오세아니아의 국경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의 Big Brother 미국은 국경이라는 인위적 경계선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60억 인류의 두개골 안쪽까지 점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전 지구를 아우르는 초국가적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우주공간을 돌고 있는 인공위성과 세계 각처에 설치된 에셜론(ECHELON) 감시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통신의 90%를 도청하며, 전화와 팩스 등 각종 통신수단의 대부분을 감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1999년 영국 BBC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기 훨씬 이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으며,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집해왔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통신정보절도행위에 더하여 이제 전 세계 인류의 개별적 신원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소위 US-VISIT라는 조치는 미국을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US-VISIT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출입국자에 대한 신원정보만을 수집하고 있지만 장기적 정책으로는 2005년부터 시행하려는 세계적 차원의 생체여권사용을 통해 미국에 출입하지 않는 외국인들의 신원정보까지도 광범위하게 수집하려 하고 있다. 이미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에 대해 올해 8월부터 한국인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발급받는 비자에 생체정보를 넣겠다고 하였으며, 현재 US-VISIT에 의해 생체정보수집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비자면제국의 국민에 대해서도 2005년까지 생체여권을 발급받지 않으면 출입국과정에서 생체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US-VISIT의 목적은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의 안전보장이다. US-VISIT를 통해 수집된 외국인의 생체정보는 테러범 및 국제범죄조직의 조직원을 색출하는데 사용되며,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상황을 임의로 확인하는데 이용된다고 한다. 또한 생체여권의 경우 기술표준의 확정을 통해 생체여권에 기재된 모든 개인정보는 데이터베이스의 공유를 통해 언제든지 확인될 수 있다. ECHELON으로 통신망을 장악한 미국은 감시의 범위를 아예 개인에게까지 확장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감시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원죄, 감시를 통한 원죄의 치유? 정보의 일방향적 독점이 권력관계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종속적 위계질서를 형성한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는 물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정보의 독점을 통한 종속관계의 형성은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배질서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60억 세계 인류의 개인정보가 미국정부로 집중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US-VISIT의 구축은 국가 간 종속관계의 정점에 미국을 올려놓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그리고 미국 아닌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류는 자의와는 전혀 별개로 미국에 의해 구축되는 구조 안에 존재해야만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US-VISIT의 진의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테러를 방지하고 자국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생각했다면 먼저 왜 전 세계가 미국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부터 검토했어야 한다. 건국과정에서 저지른 원주민 학살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건설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행해 온 제국주의적 만행에 대해서 스스로의 반성이 있어야 했다.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미국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더러운 전쟁’을 저질렀으며, 테러와 폭동을 사주하고 군부독재를 옹호하고 쿠데타를 지원했다. 무력 동원으로 외국의 정권을 전복한 일도 예사로 저질렀다. 자국 자본의 이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무고한 어린이들 머리 위로 폭탄을 퍼부었으며, 중동장악의 교두보인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삶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세계적인 반미적대감은 바로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만행에 대해 인류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적된 분노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물리적 저항이 세계 각처에서 빈발하게 되었다. 이것을 미국은 테러라고 규정하였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 세계를 감시하는 감시망 구축을 설계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대응책이 아니다. 폭력에 의해 발생한 대응폭력을 감시로 억제하겠다는 발상은 논리적으로도 성립 불가능하다. 감시로 억누를 수 있는 범주의 분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정부가 이를 간과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감시로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발상을 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내부에서조차 US-VISIT가 테러를 방지하고 자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발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테러가 발생하는 양상에 의하면 US-VISIT가 설혹 예방에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는 있으나 이미 발생한 테러에 대한 사후조치로는 거의 무용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한 감시망의 활성화를 위한 정보기관의 권력강화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이 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자국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그토록 자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인권단체는 특히 이 조치가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 증대를 가져오고 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테러방지와 관련한 부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체정보수집 자체는 외국인의 인권침해는 물론 자국민의 인권침해까지 유발하고 있다. 당장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을 출입하는 미국인에 대해 똑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무분별한 생체정보의 수집이 인권침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국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다. 미국 내에서 생체정보의 수집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으며, 연방이나 주정부 차원에서 미국시민에 대한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목적의 일괄적인 생체정보수집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생체정보가 인간의 신원을 파악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서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한 번 유출되어 부당한 용도로 사용될 경우 정보주체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위해까지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비롯하여 국내에서 비등하는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가 굳이 생체정보수집을 내용으로 하는 US-VISIT를 실시하는 목적은 결국 그들이 주장하는 바,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들의 안전보장”이라는 목적과는 전혀 별개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배전략의 현실화 : 모든 인류의 복종을 위해 그들의 이해는 다른 것이 아니다. US-VISIT를 강제하는 미국정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전 지구적 감시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자국의 이해를 세계에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구적 정착,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촘스키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미국이 이야기하는 ‘안보위협’은 바로 “미국 투자가들의 권리를 저해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더욱 적절하게 미국이 이야기하는 ‘실용주의’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세계인권백서를 발간하는 미국정부의 ‘인권’에 관한 기준은 철저하게 “실용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자국국민들의 “인권”을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보장하면서 “안보위협”을 제거하고자 US-VISIT를 시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실용주의”에 따라 자국이 원하는 대로 세계를 지배하고자하는 목적으로 “미국 투자가들의 권리를 저해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것을 뜻하고 US-VISIT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이것인 것이다. 결국 “테러의 방지와 자국국민들의 안전보장”이라는 것은 미명에 불과하고, US-VISIT의 근본적인 목적은 미국의 세계지배, 미국식 자본의 세계경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완성하고자 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한편으로는 어린아이의 머리 위에 폭탄을 떨어트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류의 개인정보를 자신들의 관리체계 안에 포섭하겠다는 것이다. 9·11이 가져왔던 충격과 공포는 미국으로 하여금 소위 ‘악의 축’에 대한 징벌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악의 축’을 길러낸 ‘악의 제국’인 자신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자국민들의 고통을 이유로 본격적인 패권주의의 전개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 과정에서 세계 인류의 인권은 실종되고 군수산업과 석유재벌을 위시한 자국 자본의 이해가 ‘인권’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인류 개개인에게 강요되고 있다. US-VISIT는 그 시작일 뿐이며, 모든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인프라의 구축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이를 통해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이처럼 개인의 인권조차도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생체여권의 발급과 US-VISIT를 단순한 통관절차의 강화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수집된 개인정보는 언제 각각의 개인들에게 탄환이 되어 돌아갈지 모른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되었던 반정부인사들에 대한 살인과 폭행의 배후에는 미국이 제공한 수 천 명의 명단과 신상정보가 있었다. 그들이 수집하는 생체정보가 후일 어느 광포한 정권에 제공되어 인도네시아의 악몽을 재현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은 얼마든지 그런 일을 재현할 수 있는 국가이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미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적으로 구축하려는 개인생체정보수집체계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과 저항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PSSP
[성명] 노무현정권는 계속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 강제연행을 즉각 중단하라. 지난 2월 15일 노무현 정부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만나러 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 샤말 타파 대표를 불시에 강제 연행되는데 이어, 이에 항의하는 2월 17일 출입국관리소 앞 집회를 출입국관리소 직원 80명과 경찰이 침탈하여 네팔인 굽타 씨가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월말까지 단속추방을 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법무부장관이 이주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과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이 언제였던가? 이번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부가 보였던 ‘대화와 양보’의 목적이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자체를 와해시키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누가 이주노동자들을 이 나라로 받아들였는가? 누가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들었는가? 바로 한국의 정부였다. 명백하게도 이번 사건을 비롯하여 고용허가제 발표 이후 벌어진 모든 일의 책임은 한국의 정부에게 있다. 과거 경제 부흥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그들이 처한 체불임금 문제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한 어떠한 해결도 없이 무작정 정부의 방침이니 나가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 천만 원, 이천만원씩 소개비를 내고도, 임금체불과 임금횡령,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산업재해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도 묵묵히 일해 왔었다. 정부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못할망정, 되려 범죄자로 만들고 폭력을 행사하고 잡아가두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신자유주의와 정권의 횡포로 고통 받고 있고, 이에 맞서 싸우려는 모든 민중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보여주는 배제와 폭력은 단지 ‘외국’이주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현실이 민중들에 대한 분할과 배제, 폭력의 정치가 ‘국적’을 불문하고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비인간적인 비정규직 차별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농업과 자신의 삶을 파탄 내는 개방에 맞서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들에게 붙여지는 ‘폭도’와 ‘사회 불안정 세력’의 딱지를 보라. ‘참여정부’에게 고통 받는 민중, 저항하는 민중은 참여의 주체일 수 없고 ‘2등 국민, 2등외국민, 또는 외국인’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여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는 강제 연행된 이주노동자들을 즉각 석방하고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을 토끼 몰이식으로 잡아들이는 작태를 즉각 멈춰야 한다. 또한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사면하여 합법화하고 사업장 이동이 보장되는 제도의 개선에 즉각 나서야 한다. 만일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 다면, 사회진보연대는 제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노무현정권의 이주노동자 탄압에 맞서 힘차게 연대투쟁을 진행 할 것이다. -2월 17일 사회진보연대-
인도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에서 세계사회운동 활동가 총회를 통해 나 온 호소문입니다. 아직 번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번역하여 올리겠습니다. 3.8 여성의 날과 4월 17일 세계 농민의 날에 여성들과 농민들의 단결을 호 소한다는 것과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략 1주기를 맞이하여 세계적인 투쟁을 조직하자는 것, 그리고 홍콩에서 열릴 WTO 각료회의에 맞선 투쟁 을 조직하자는 것 등이 담겨있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이 4회에 접어들면서 많은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장소를 아시아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논의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였기에, 이번 호에서는 아쉽게도 다양한 쟁점과 과제를 소개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풍부히 하고, 스스로 표방하는 '다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촉발되기를 희망한다. 빈곤의 한 가운데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지난 1월 16일~21일 4차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다. 이번으로 4회를 맞이한 세계사회포럼은 시작된 이래로 3년 동안 개최지였던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를 떠나, 대륙을 옮겨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그동안 열린 국제위원회(IC) 회의 등에서 세계사회포럼의 효과를 전 세계로 확산하자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출된 데에 따른 것이다. 세계의 지배 엘리트들이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 모여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어떻게 회복시킬지를 논의하고 있는 동안, 전 세계의 민중들은 세계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그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사회포럼의 제반 사항을 총괄한 인도조직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인도의 200여 개 사회운동 단체들이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준비했으며, 조직위원회에 등록되어 진행된 행사만 해도 1200개, 참가자는 10만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총 30억원 정도의 금액이 후원금, 참가등록비, 연대기금 등으로 모금되었고 행사를 진행하는 데 총 36억원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최초로 리눅스를 이용한 디지털 통역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힌디어, 한국어를 비롯한 13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여 총200여명의 통역을 위한 자원활동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 열린 이번 4회 세계사회포럼은, 이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던 세 차례의 세계사포럼과 비교해보면 규모나 준비정도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그러나 에어컨 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깨끗이 정돈된 대학교 등 행사장 주변에서는 빈곤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브라질과는 다르게, 인도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더욱 심화된 빈곤의 참혹함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거리를 학교 삼아 구걸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 아이들에서부터 먼지로 가득한 고가도로 밑에서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하는 가족들까지. 이 빈곤의 한 가운데 위치한 용도 폐기된 박람회장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손길을 더해 만들어낸 허름한 행사장은 우리가 맞서야 할 세계의 적나라한 모습 그 자체였다. 참가자들의 구성 또한 크게 달라졌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구성하는 계급 중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고, 법적으로도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people)'라 분류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극심한 노동착취와 학대에 시달리고 있는 달릿 (Dalits) 계층이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참가 단위였다. 성매매를 직업으로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성노동자(Sex worker)'라 호명하며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 또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티벳을 해방된 공간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독립을 요구하는 티벳의 승려들도 대규모로 참석했다. 행사장 곳곳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의 면면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는 현재 아시아 대륙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이 실로 다면적이며, 복합적임을 드러냈다. 반전-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활성화가 주요 논의 과제 이번 포럼에서 가장 부각된 의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계기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운동을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인지 하는 문제와, 99년 시애틀 3차 각료회의에 이어 지난 9월 5차 칸쿤 각료회의를 또 한번 무산시킨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여러 종류의 회의를 통해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지난 해 5월 자카르타에서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에 저항하는 지구적 반전운동의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자카르타 평화 회의'에 참석하여 "자카르타평화선언문"을 채택했던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마련한 '세계반전운동총회(A General Assembly of the Global Anti-war Movement)'이다. 이 회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각자의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작년 2월 15일과 9월 27일 두 차례 진행되었던 국제공동행동과 미국과 남미, 유럽, 아시아, 중동지역 등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전운동의 현황이 보고되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1년이 되는 오는 3월 20일, 다시 한번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 공동행동을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한국의 활동가들은 한반도에서 냉전 상황이 지속되고 북미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반미반전투쟁이 동아시아 반전운동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일본의 참가자들과 함께 한일 양국 정부의 파병결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지난 9월 멕시코 칸쿤 WTO 5차 각료회의 저지투쟁에 대한 평가와 향후 투쟁을 어떠한 방향에서 전개할지에 관한 논의도 다양한 회의를 통해 전개되었다. 각료회의가 무산된 것이 사회운동의 진정한 승리인가,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농업보조금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의견그룹을 형성하여 무산을 이끌어낸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G22)와 사회운동이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 제기되고 토론되었다. 그리고 올 10월에 개최되는 것으로 예상되는 WTO 차기 각료회의를 겨냥하여 일국적 차원의 투쟁, 국제적 차원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함이 확인되었다. 특히 WTO 각료회의 무산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는 지역 혹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노동권을 박탈하고 토지와 종자에 관한 농민들의 권리를 파괴하면서,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소유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보고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 또한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더불어, 세계적인 빈곤의 심화와 함께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가, 노동의 불안정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와 인권유린, 농민들의 빈곤과 토지와 종자에 대한 권리의 박탈, 빈곤에 노출된 민중들에 대한 배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카스트 등의 신분제 등 역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아캄페시나(Via Campesina, 국제농민조직)가 조직한 '국제농민총회', 여성포럼 등 부문별 회의를 통해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전반적으로, 중요하게 제기된 문제는 전 세계 민중들의 삶과 노동을 파괴하고 이들을 극단적인 빈곤으로 내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적인 저항에 직면하여, 이러한 저항을 억누르고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주의를 동원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반전운동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 상호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전쟁반대', 'WTO 반대투쟁' 등이 개별적인 이슈가 되어 각 운동세력이 이러한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서, 이러한 이슈에 따라 운동이 분할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양상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에 걸 맞는 총체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었다. 세계사회포럼의 미래 세계사회포럼은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스스로 삶의 대안을 모색해가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를 통해 새롭게 분출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며 연대의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세계사회포럼은 전 세계 민중들의 진정한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더 많은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 사회포럼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쟁점으로,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세계사회포럼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들이 이번 포럼의 중요한 논의과제였다. 올해는 특히 '정당과 군사조직 배제의 원칙'과 초국적 기업과 결탁한 재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는 문제 등을 제기하며 세계사회포럼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포럼이 조직되기도 했다. '뭄바이 레지스턴스 2004'등 세계사회포럼에 대항하는 포럼을 조직한 세력들은, 스스로를 '조직'이 아닌 '공간'으로 표상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이 '중심이 없고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한계적일 뿐만 아니라 포드 재단 등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은 NGO들의 발언력이 강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어떤 세력들은 '브라질 노동자당(PT), 인도 공산당(CPI) 등 정당은 이미 세계사회포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을 배제한다면 세계사회포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고 단언하고 있다. 물론 초국적 기업과 결탁한 재단이 지원하는 기금이 많은 사회운동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동하는 세력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NGO들의 활동은 비판의 대상이 충분히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앞에 '정당 참여'를 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오늘날 정당운동이 선거정치를 매개로 대중운동을 분할하며, 이러한 대중운동들 간에 공동의 인식을 확보하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비껴 가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가 그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처방이 더 많은 민중들을 배제하고 극심한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때, 전 세계의 사회운동들에게 던져진 문제는 '정당을 참여시킬 것인가 배재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하게 분출하는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동의 지반을 창출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급속히 분출한 운동들을 진전시키고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는 사회운동들 사이에서 인위적인 중심을 세우기보다는, 이들 간의 공동의 인식을 확보하기 위한 직접적인 교통과 연대의 기회를 더욱 넓혀가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이러한 교류와 소통을 위한 진정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들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의 포럼은 '건물 안에서의 포럼'과 '건물 밖에서의 포럼'으로 나뉘었다고 묘사된다.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 토론과 세미나를 중심으로 한 포럼과 건물 밖에서의 시위와 각종 퍼포먼스 형식의 포럼을 각각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포럼 안에서 이루어진 행사들의 형식이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어와 지식의 차이를 뛰어 넘어 의사를 표출하고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첨단 통역장비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견해를 청취하는 것 역시 주로 통역이 제공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아시아 참가자들은 건물 안에서의 토론보다는 건물 밖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쪽을 선호했다. 남미와 견주어 볼 때 훨씬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아시아로 그 장소를 옮기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장애인들의 참석 문제도 문제가 되었다. 3회 사회포럼까지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다가 이번 포럼에는 300명의 장애인들이 참석했다. 장애인 참가자들은 포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과 수화 통역, 점자로 된 자료 등을 제공할 것을 조직위원회에 요구했으나, 이는 시행되지 않았다. 행사장 앞에는 "왜 당신도 장애에 무관심한가?" 하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렸고, 장애인의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할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도 몇 차례 진행되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이와 결합한 군사주의에 맞서 민중들이 주도하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에만 국한되는 쟁점이 아니다. 날로 거세지는 신자유주의의 폭력과 야만에 맞서 투쟁하는 전 세계 민중들의 미래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들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운동들이 지향해야 할 '다른 세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다양한 운동들이 공동의 지반을 넓히고, 연대를 강화할 것인가? 차이를 차별과 배제로 구조화하지 않는 운동의 윤리와 교통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러한 쟁점들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모든 운동들에게 던져진 문제이며, 바로 우리, 남한 운동들도 깊이 숙고해야할 과제다.
4회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신 존경하는 세계평화애호가들과 인도와 세계 각 국에서 오신 언론인 여러분, 오늘 제가 ‘한반도의 군사주의, 전쟁과 평화의 주제’, 특히 북한 핵문제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제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저의 이 견해는 남한의 운동권의 전체적인 통일된 의견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반미자주,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서 투쟁해 온 한 사람으로서 남한의 투쟁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2년 6월 13일 미군이 장갑차로 한국의 두 여중생을 치어 죽인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당시 12살에 불과했던 심미선, 신효순 두 여중생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다가 미군 장갑차에 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두 여중생을 무참하게 죽인 주한미군은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Mark Walker)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Fernando Nino) 병장으로 그들은 모두 미 2사단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두 여중생을 죽여 놓고서도 두 미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여 한국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에 한국 국민들은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살인미군 처벌, 한국 국민에 대한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공개 사과, 살인미군의 한국 법정에서의 재판, 한미소파 개정 등 네 가지를 미국 정부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요구를 모두 거부하였습니다. 살인미군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에 넘길 것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요구를 무시한 미군 당국은 2002년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군 판사와 미군 검사, 미국 변호사, 미군 배심원으로 이뤄진 자신의 군사법정에서 두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미 군사재판은 두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재판 놀음이었습니다. 장갑차 운전병은 관제병에게 차를 세우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증언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반면 관제병 니노는 자신의 통신장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증언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들은 무죄평결을 받은 후 신병 상의 안전 이유 등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전출되었습니다. 이러한 무죄평결은 한국의 주권 부재를 절감케 했고 남한에서 반미 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보는 한국인들은 이것이 모두 주권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군사훈련 중에 발생한 사건을 한국 법정에서 다를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는 불평등한 한․미 소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국 정부의 군사주권의 부재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혔는데 이는 또한 불평등한 한미 관계와 한국 측의 군사주권의 부재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분노의 표현이자 우리 한국인들의 민족자주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정전 상태에서 50년이 넘는 생은 한미간의 관계가 불평하게, 북미 간의 적대적인 관계가 지속되게 했다고 믿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집권은 민족자주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이와 같은 염원이 뒷받침된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뒤로도 종속적인 한미관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이라크 파병을 요구하였고 한국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라크 추가 파병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정부는 한국정부로 하여금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한국 국민들의 민족자주와 평화투쟁을 탄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한국 정부 당국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자주와 평화를 위한 촛불기념탑마저 철거하는 폭거를 자행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여러분들께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이라 불리는 한미동맹의 재조정에 관한 한미 당국간 회의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동북아시아에서 역할 확대, 한미연합전력증강,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미국이 대 북한 선제 공격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한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남한 민중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미국의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줄기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남한 민중들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한국부담 반대,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주한미군 사격장 신설 반대, 한미연합훈련 반대, 한국 국방비 삭감 촉구, 전시작전권 즉각 환수,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등의 요구를 내걸고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남한 민중들은 민족자주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지향과 염원을 꺾어버리기 위한 미국의 비열한 책동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이라크로 보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최근 남한의 반미감정은 두 여중생의 죽음으로 더욱 불타올랐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 북한 전쟁위협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남한 민중은 같은 동족인 북한을 공동의 운명체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의 지형상,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도 함께 파멸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그래서 더욱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깡패국가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요구하는 등 북한을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의 하나로 삼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선 북한 핵포기 후 안전보장’을 떠들면서 북의 일방적 굴복을 강요하고 있고 경수로 건설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6자 회담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6자 회담을 북한에 대한 압박의 장으로 밖에 여기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지금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부시입니다. 지난 해 5월 미국 공화당의 웰던 의원이 북한을 방문할 때 제시했던 안은 하나의 해결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웰던의 구상은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불가침 약속'을 동시에, 단계적으로 진행하여 일괄타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합리적 안마저 거부하였습니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을 가해서는 안 되며,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무조건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강요 등의 내정간섭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한국인들의 주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부시 행정부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정책을 포기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해제하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여야 하며 두 나라들 사이에 외교관을 교류하여 합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국가적 주권을 인정하고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문서로 약속한다면, 북한 핵문제는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준수하고 NPT의 복귀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미국의 조치야말로 북미간의 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한국의 평화와 통일로 이어질 것이며 동아시아를 교류와 번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국 언론인인 셀리그 헤리슨(Selig Harrison)은 대북 경제제재가 미국 대선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부시가 만일 재선되면 그 후인 2005년 4월에 전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조지 부시가 대선에서 낙선되는 것이 미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도 유익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해소는 오늘 한국 민중들의 가장 절박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은 꼭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의 문제입니다. 세계의 평화 애호 민중들이 미국의 대한반도 전쟁책동을 중지시키고 부시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도록 연대하고 함께 싸워나가도록 합시다. 또한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이 불의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더욱 강고한 투쟁을 벌이도록 합시다. 세계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첫째는 전쟁은 문제해결의 수단으로서 포기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최전방 군부대 앞에 ‘내일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늘 전쟁을 준비하라!’는 구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전쟁의 불가피성이나 필요악을 정당화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불가피한 것도 필요악도 아닙니다. 오늘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인류의 사멸이냐 생존이냐를 가르는 문제입니다. 오늘의 전쟁은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피하는 길이 곧 인류가 사는 길입니다. 둘째로 전쟁 비용이 평화비용보다 더 싸다는 군사주의적 사고를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평화가 전쟁에 비해 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은 전쟁주의자나 군사주의자의 사고입니다.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것은 무기를 팔아서 자기의 배를 채우고, 다른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자기 나라의 국익을 도모하려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사고입니다. 군수산업이 미국의 정치․경제․외교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은 하이태크놀로지와 거대한 자본을 갖고서 무기생산으로 돈벌이를 하는 미국의 군수산업 구조에 그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신의 군사주의노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관계에서 힘의 균형, 공포의 균형만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구축과 선제공격을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 평화의 위기는 바로 이와 같은 부시정권의 일방적이고 패권적인 군사주의 노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에는 패권적 군사주의 논리가 팽배합니다. 지금 미국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지구화’를 또한 제창하고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은 이러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논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세계에 넘치는 무기장난감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군사주의적 사고에 물들게 합니다. 따라서 총․칼․탱크와 같은 무기장난감을 점차 줄이고 없애나가야 하며 대신 평화적 정서를 갖게 하는 장난감을 더 많이 보급함으로써 어려서부터 평화의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인간 경시 풍조를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전쟁은 병사란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온 천하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유대 격언에는 ‘어떤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먼저 그를 지으신 조물주를 저주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노래 가운데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사람은 ‘목적적인 존재’이지 결코 ‘수단’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 발 자욱 더 발전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동학’(東學)에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가 아주 중요시해야 하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박애, 평등, 자유’ 이 세 가지를 내세웠고, 성서는 ‘사랑, 믿음, 희망’은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다’ 고 말합니다. 나는 ‘생명, 선, 평화’,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생명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보다 생명, 희망보다 평화, 믿음보다 선이 더욱 절실하다고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없는 나라나 개인이라도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꿇어 엎드려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서서 자유인으로 죽겠다’고 한 말은 주후 70년의 유대․로마 전쟁에서 죽음으로 마감한 한 유대인 사제의 설교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철학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의 연설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성을 짓밟고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 또한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권을 짓밟는데 동참하는 것이므로 한국 민중들은 그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해 둡니다.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한 미국의 대 북한 전쟁위협, 나아가 우리 민족전체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맞서 단호히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중들은 주권국가의 자주성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맞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든 세계평화애호 민중들과 힘을 합칠 것입니다. 불의한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결코 안 됩니다. 군사주의, 반테러리스트 전쟁, ‘신자유주의 지구화’ 등의 제국주의적 사상 없이 평화는 쟁취될 수 있습니다. 이라크나 세계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한 전쟁 없이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부시와 제국주의 없는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 고맙습니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