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보건의료와 세계화> 기획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공적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특히 초국적 자본이나 투기자본들이 각 국의 공적의료체계를 사유화하고 독점하는 과정과 여기서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의 역할을 살펴볼 것이다. 그 두 번째인 이 글은 영국에서 국영의료서비스가 민영화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 영국 국영의료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s)의 민간자본유치사업(PFI; Private Finance Initiative), 민영화의 첫 단초인가? 왜 민간자본유치사업 인가? 영국 국영의료서비스 병상공급 정책 약사(略史) : 영국의 지역거점병원(District general hospitals) 설립 경과 국영의료서비스를 도입하던 초기의 예상과 달리 병상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이에 대한 대비책 수립이 필요해지면서 국영의료서비스 병상공급의 핵심정책으로 1962년에 전국적으로 인구 100,000~150,000명당 600~800병상규모의 224개의 지역거점병원(District general hospital)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 ‘병원 계획(Hospital Plan)’이 수립되었다. 그 결과 1962-1971년까지 10년 동안 £500백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비용을 들여, 새로운 지역거점병원을 신축하거나, 기존의 병원을 지역거점병원의 기준에 맞게 시설개선이 이루어졌다. ‘병원계획’에 따라 영국의 지역거점병원은 동일한 장소에서 많은 수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하는데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기본 개념에 입각하여 추진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초까지 1/3은 계획대로 신설되었고, 1/3은 기존 병원의 시설개선을 통해 추진되었으며, 계획의 1/3은 예산부족으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1991/1992년 회계 연도 기준으로 영국 전역에 200개가 넘는 지역거점병원이 분포하고 있으며, 인구 150,000~200,000명에 이르는 인구집단에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역거점병원은 영국 병원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들 지역거점병원들은 500개의 임상진료 영역 중 300개 이상을 수행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전체 의료행위의 60%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지역거점병원은 1980년대까지 국영으로 운영되었으나, 1991년의 개혁조치 이후에는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라는 국영의료서비스내의 비영리조직으로 변화되었으며, 지역보건당국(district health authority)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민간자본유치사업 등장 배경 1970년대 중반 경제위기의 심화 이후에 의료시설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단지 1980-1997년까지 국영의료서비스 내에 7개의 의료시설 확충계획만 추진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의료시설에 대한 투자부족은 국영의료서비스 내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된다. 의료시설의 낙후, 대기환자의 급증, 의료시설의 신축과 개․보수의 필요성이 급증하였다. 그러나 정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영국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던 국영의료서비스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지게 되었다. 결국, 1970년 중반부터 지속된 영국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하에서 의료시설에 대한 대규모 정부재정 투자를 대신하여, 대중적 불만을 관리하기 위해, 부족한 의료시설 투자에 정부 재정 대신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국영의료서비스 내에 민간자본유치사업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국영체제로 운영되던 지역거점병원을 비영리병원의 조직체계로 변화시키면서 만들어진 트러스트 체제가 그 실현을 위한 사전 조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의 강화를 목표로 추진되었다.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 설립개요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는 1990년에 제정된 국가보건서비스와 지역보건법(The NHS and Community Care Act)에 의거해서 설립되었다.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는 영국 정부로부터 시설을 임차하여 지역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조직의 형태로 출발하였고, 임차비로 1년마다 총 자산가치의 6%에 해당하는 비용(Capital charge)을 재무성에 지불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병원 시설에 대한 자본투자의 책임이 정부당국에서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로 이전되었다.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가 재무성에 지불한 임대료는 지역보건당국에 재배정되어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가 지불할 수 있는 충분한 비용을 보상해주는 데 활용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트러스트의 설립은 자본의 흐름만 복잡하게 만든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의 설립으로 인해서, 영국 병원에 대한 운영비와 시설투자비용은 국가 재정에서 분리되고, 시설투자는 개별 트러스트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개별 트러스트의 판단에 따라서 의료기관 설립과 운영에 민간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영국의 국가의료서비스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의 대목이다.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는 영국 재무성을 독점 자본 투자자(대부자)로 하여 설립된 비영리기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병원의 새로운 시설투자를 하고자 하는 경우 ① 자체 자산매각, ② 정부재정으로부터 임차(이자율 6%), ③ 민간자본의 유입, ④ 비용절감과 서비스 공급 축소 등의 방식만을 활용할 수 있었다. 결국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의 도입을 통해서, 새로운 공공시설에 대한 자본 투자를 부채의 순환체계로 바꾸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표 1). <표1 생략> 국영의료서비스에서의 민간자본유치사업 추진 경과 민간자본유치사업의 개요 1992년 보수당 정권 하에서, 영국의 공공부분 자본투자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 처음 시도되었고,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도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표명하여 현재까지 추진되고 있다. 국영의료서비스에서 초기에는 병원 주차장, 쓰레기 소각장 건립 등에 민간자본이 유입되었지만, 1995년 제반 규정이 바뀌면서 대규모 자본투자를 원하는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에서 민간자본조달 기전 방법으로 민간자본유치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다. 지금은 민간자본의 투자는 병원시설 건립과 서비스 제공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영리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병원시설에 자본을 투자하여 병원 건물과 장비를 구비․관리하고, 그 시설과 장비를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에 20-60년 동안 임대(Lease)하여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가 병원을 운영하면서 국영의료서비스운영 체계 안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민간자본은 그 기간동안 임대료로 병원 건립비용의 일정비율(11-19%)을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에 청구하여 투자재원을 회수하게 되며, 결국 이렇게 새로 건립된 병원의 소유와 운영 형태는 민간소유 공공운영(public management of privately owned hospitals)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 컨소시엄과의 계약과정에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국영의료서비스 소유의 토지와 병원을 매각하는 것도 계약에 포함되기도 하여, 공공소유의 병원이 점차 감소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 재정당국이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의 시설 투자에 대한 추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는 자체적으로 민간자본유치사업을 통하여 시설 투자자금을 조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처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선 과거와 같이 의료기관 설립에 소요되는 초기 투자재원의 부담이 없다는 점과 시설과 장비에 민간이 투자, 관리하게 되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는 주장이 민간자본유치사업을 옹호하는 근거로 제기되고 있으나, 영국 내에서는 정부에서 지불하는 11-19%에 이르는 임대료는 터무니없이 높다는 비판이 비등한 실정이다. 비록, 관리비와 투자원금이 배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영국 재무부 대출이자가 3.5%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임대료가 대단히 높은 것이다. 1998년 초에 15개 프로젝트에 총 12억 파운드(2조4천억 원)에 이르는 투자계획이 발표되었고, 1998년 4월에 10개 프로젝트에 총 23억 파운드(4조 6천억 원)의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향후 이러한 투자 규모는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간자본유치사업의 문제점 공적 재원보다 값비싼 재원조달 방법 기본적으로 민간자본유치사업은 자본투자에 대한 임대료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초기 자본투자(capital charge)와 동일한 방식이나, 재원의 출처가 민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재 민간자본유치사업을 통한 재원이 오히려 과거 공적재원보다 매우 비싼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결과 과거 재정에서 지원 받아 임대료를 지불하던 돈으로 현재는 보다 적은 규모의 민간이 설립한 병원 임대료 밖에 지불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민간시설에 대한 임대료의 기준이 되는 자산가치 평가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다. 그 규모가 대체자산의 2배에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자본투자보다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시설에 대한 사용료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① 사용료로 건축비, 이자, 시설 장비 유지비이며, 임대료의 성격을 지니는 돈과 ② 서비스 비용으로 청소, 전기, 세탁비로 구성되어 있다. 민간자본유치사업가 국가 재정에 요구하는 시설 임대료는 연 건축비의 11.2-18.5%에 이르고 있고, 자본투자가 연 6%임을 비교해봐도 대단히 높게 책정되어 있어, 투자된 민간 자본의 수익성을 철저하게 보장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민간자본은 비싼 자산가치평가를 통해서 공적 재원보다 높은 임대료를 받아가고 있으며,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로서는 동일한 예산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사회 필요에 의한 자원배치 기능의 소실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는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① 자본투자(capital charge), ② 자산매각 대금, ③ 서비스 제공에서의 비용 절감, ④ 기타 영리활동(소매업, 민간보험 환자진료 등)을 통해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 재원을 보충해나가고 있다. - 재정부의 보조금(smoothing mechanism) - 공공 소유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에 지원할 자금의 민간자본유치사업으로 전환 - 임대료 대신 민간자본유치사업에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 자산 매각권 부여 - 인력에 지출되는 국영의료서비스 트러스트 예산을 민간자본유치사업 임대료 지출로 전환 민간자본유치는 오히려 이전 보다 많은 돈을 국가재정에서 지불하게 하고, 예전에 공공시설 확충과 서비스 제공에 지출되던 비용의 일부분이 민간자본 임대료로 전환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에 트러스트의 예산규모가 동일한 경우라면 이러한 경향이 점차 확대될수록 비용절감을 이유로 인력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공공병원에서 공급되는 서비스의 절대 양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국민에게 필요한 만큼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자 하였던 국영의료서비스의 설립 목적은 이뤄지기 어려워지고, 초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정부가 이전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민간자본유치사업의 도입은 국영의료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였던 지역사회 필요에 근거한 의료자원의 공급과 배치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영의료서비스 민영화의 핵심 기전 민간자본유치사업을 통한 자본의 높은 비용으로 인해서 국영의료서비스의 서비스 공급역량과 인력이 축소되고 있다. 특히, 장기요양서비스, 치과서비스, 안과서비스(Optical service), 비응급수술과 관련한 공적 제공이 감소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예산 부족과 서비스 공급역량의 축소를 만회하기 위해서 국영의료서비스 일차의료트러스트(primary care trust)는 국영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가입 자격을 재조정하고 있으며, 지불능력을 갖춘 민간보험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입하려 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국영의료서비스 시설과 비-국영의료서비스시설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민간자본에게 새로운 수익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앞으로 제한 없이 지속된다면, 국영의료서비스의 민영화, 민간보험과 민간공급체계로의 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PSSP <참고문헌> 1. Declan Gaffney, Allyson M Pollock, David Price, Jean Shaoul.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NHS capital expenditure and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expansion or contraction? BMJ 319: 48-51, 1999 2. Declan Gaffney, Allyson M Pollock, David Price, Jean Shaoul.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PFI in the NHS-is there an economic case? BMJ 319: 116-119, 1999 3. Declan Gaffney, Allyson M Pollock, David Price, Jean Shaoul.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Planning the "new" NHS: downsizing for the 21st century BMJ 319: 179-184, 1999 4. Declan Gaffney, Allyson M Pollock, David Price, Jean Shaoul.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The politics of the private finance initiative and the new NHS BMJ 319: 249-253, 1999
새로운 이주자들 자고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의 진정한 기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살기 힘들면 울고 웃던 정든 땅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향해 가던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구조적 약자들이었다.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 땅의 선조들이나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로 팔려갔던 흑인들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면 새로운 땅으로 자신의 삶을 건 도박을 걸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아일랜드인, 이태리인들이며 머나먼 땅 호주로 새 생활을 시작했던 영국의 죄수들 그리고 100년 전 머나먼 태평양을 넘어서 하와이에서 멕시코에서 농노와 같은 삶을 감내해야만 했던 애니깽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조금 더 가까이는 7,80년대 중동으로 건너가서 熱沙의 땅에서 피땀을 바쳐야 했던 한국의 노동자들과 바로 지금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건너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역시 살기 힘들어서 떠나온 이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국 땅을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국을 버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른바 배제된 땅 혹은 버려진 땅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두뇌유출(Brain drain)의 물결이 이제는 한반도의 남녘 땅에도 미쳐 새로운 이주자들을 낳고 있으니 그 표상이 바로 '원정출산'이다. 글로벌 휴먼 Globalhuman.co.kr 그럴듯한 세계화론자들의 모임을 연상케 하는 이 홈페이지 주소의 실체는 다름 아니라 미 원정출산 전문 업체다. 최근 미국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각광받고 있다는 캐나다 쪽에 업체들의 이름은 <해피캐나다> <캐나다드림>이다. 제법 우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구호를 앞세운 원정출산 업체들은 이렇듯 인터넷 상에서 친근하게 접선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의 선입견과는 달리 원정출산은 이미 은밀한 브로커나 가까운 친지를 통할 필요도 없이 공개적으로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얻고 추진할 수 있게 될 만큼 일반화(?)된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정출산은 어느덧 조기유학, 기러기아빠와 함께 더 이상 새롭지도 그렇지만 여전히 달갑지 않은 단어들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뉴스의 한 꼭지씩을 꾸준하게 채워주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작년 L.A TIMES 5.25일자에 따르면 한 해 5000여명의 한국인 산모들이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오고 있으며 서울 강남의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는 산모들의 출산은 대개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이 '매력적인'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미화로 만 오 천불쯤은 아낌없이 써야한다고 하니 원정출산은 이제 한국에서 상류층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원정출산이 우리나라에 특수한 상황만은 아닌데 실례로 최근 우간다의 대통령은 딸과 며느리의 독일 원정출산으로 정치적 공격에 직면하고 있는 외신이 보도된 바도 있다. 바햐흐로 한반도 남쪽에서도 신유주의 세계화 된 나라에서 '글로벌 휴먼'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서 '원정출산' 더 나아가 '두뇌유출'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한 산모가 무리한 원정출산으로 유산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이들이 떠나는 데는 모두 다 아는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원정출산의 속내는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합중국에서의 출산을 통해 자녀가 영주권을 획득하면 중심부 국가의 교육/의료 혜택을 조기 유학 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줄 수 있으며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병역면제라는 획기적인 생일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상시적인 한반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가족의 이민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미 언론에서는 이를 빗대어 가족이민을 보장받을 수 있게끔 미국에서 출산하는 한국인 유아들을 가리켜 '닻 아기(anchor baby)라고 부른다. 한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에서는 예비신부의 40%가 원정출산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한 대학신문의 자체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학생의 44%가 자신이 이중국적자일 경우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택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와 원정출산의 배경은 한국사회에 결여되어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무엇인지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원정 경기 승률이 더 높아진 동방예의지국 본디 원정이라 함은 타지의 기후와 식·습관 그리고 언어의 문제로 많은 불안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현대 사회에서 원정이라는 의미가 가장 어울리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특히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거나 단체 경기일 경우에는 홈경기의 승률(기록)이 원정 경기보다 단연 높다. 주지하다시피 기형적인 엘리트 스포츠의 강국 한국은 바로 이의 가장 좋은 표본이자 수혜자였다. 88년 서울 올림픽 4위이나 2002 한-일 월드컵 4강이라는 사기성 농후한 성적 역시 단연코 홈 어드밴티지 덕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홈 어드밴티지는 스포츠 게임에서나 적용되는 수사가 되어버렸다. 이제 홈그라운드에서 죽치고 있어봤자 주어지는 것은 어드밴티지가 아니라 페널티뿐이다. 원정(출산)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원정지에서의 정착의 가능성 뿐 아니라 홈에서의 성공 또한 보장할 수 있는 길까지 포괄하니 명실상부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겠다. 결국 이 땅에서 진정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는 이제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는 스포츠 게임도 아닌 운에 더 승부를 걸어야 하는 도박판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갈수록 요원해졌으며 오로지 매주 주말마다 각종 복표에만 자신의 유일한 운을 걸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상류계층의 탈출을 그 자체로 욕하고 나무란다고 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교육비 세계 1위의 나라에서 강남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해외로 이주하는 것이 더 저렴한 기이한 나라에서는 그들의 새로운 이주는 남한사회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기에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의 강렬한 21세기 판 '맹모삼천지교'만으로 해석할 일도 아니며 도덕성 실종을 개탄할 일도 아니다. OECD국가 중에서 사교육비 1위 도시생계비 8위 아파트 및 사무실 임대료 8위, 물가상승률 12위, 신용카드 발급 4위의 나라에서 여유로운 자들의 개인적인 방식의 문제해결 방식을 지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당치도 않은 원정출산을 둘러싼 저들의 해법 이미 많은 장관들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이중국적이 문제시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대법관 출신의 대쪽이라 자처하던 '昌'역시 97년 아들의 병역 의혹에 이어 2002년 대선에는 손녀딸이 하와이 원정출산이 강한 감표 요인이 되었으니 위정자들 역시 이러한 위기를 범상한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하기에 연일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몇 몇 우파 지식인들의 분석과 진단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메리카 드림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가봤자 미국의 '이등국민' 밖에 안 된다며 냉소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이도 있고 한국에서 그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노불리스 오브제'의 실종을 성토하는 지식인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은 대세이니 너무 보수적인 입장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며 제법 코스모폴리탄을 읊조리며 소심하게 원정출산을 비호하는 이도 있다. 물론 새삼스럽게 다시 '昌'을 안주 삼아 '그러면 안 된다'고 제법 준엄하게 훈계하는 무능한 도덕론자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쯤에서 右국충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야기란 국부유출과 국익을 염려하며 중산층들이 한국을 뜨지 않으려면 '자립형 사립고'를 필두로 한 '학원특구' 얘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신자유주의식 문제풀이 방식뿐이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요, 동문서답이다. 한 편에서는 그나마 성공하고 부유한 자들조차 가지고 있는 주어진 부와 안락을 대물림하기 위하여 원정출산을 도모하게 하는 나라,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던 또 다른 이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분신, 자살이라는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 나라에서 무슨 망언인가 ! 두 가지 방식의 BYE KOREA가 같은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다. 누구는 태평양을 넘어 영주권을 획득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같은 바다를 넘어 이국의 언어로 죽음을 선언해야 하는 나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이렇게 암울한 풍경의 대/한/민/국에서, 파국의 한반도號에서 남겨진 길은 하나는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탈출뿐이니 있는 자는 떠날 것이고 없는 자의 선택은 잿빛이라 영락없는 '타이타닉'의 재림이다. 두뇌유출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하지만 현재의 새로운 이주의 형태들이 한국사회의 크나큰 적신호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진단은 섣부른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저임금의 이주노동자와 형태만 달리 할 뿐 이미 소위 '고급두뇌'를 가진 상류계층의 이주 역시 5%만을 위한 세계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또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두뇌유출이 활발히 진행된 많은 나라에서는 그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데 러시아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모두 50만 명의 러시아 과학자들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아랍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2003년도 아랍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1995-1996년 사이에 아랍지역 학사 학위 소지자 30만 명중 약 25%가 국외로 이주했고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박사학위 소지자 1만5천명이 이주했다는 것이다. 또 호주의 교사들은 영국으로 미국으로 이주하며 필리핀의 간호사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국의 경제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두뇌유출이 착취 그 이상의 의미를 남쪽 나라들에게 던져는 주겠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에 대처하여 유학을 장려한다는 시책이 발표되자 두뇌유출을 정부가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정몽준은 장기적으로는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의 관점에서 사안을 인식해야한다고 소견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이 문제 자체는 체제의 대단히 위기를 즉각적으로 도래시킨다기보다는 이미 붕괴한 민족-국가 모델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며 부와 기회의 양극화를 더욱 극단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즉, 배제와 갈등의 방식은 더욱 정교해지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전선을 형성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그리 녹록치 않은 문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다. 동시에 지난 35년 동안 2배나 증가하여 1억7천500만 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왜 '정치의 장소'인지를 상기하게끔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겨진 자들의 몫 이민 상품이 홈쇼핑 채널에서 매진되고 다시 7, 80년대의 방식으로 죽음을 택하는 노동자가 있는 나라에서 남겨진 자들의 몫이 과연 무엇인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여 서러운 이들이건 '열사정신계승'을 외치는 자들이건 간에 비록 그/녀들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해결 방식은 다르더라도 지금 동일한 문제가 그들 앞에 던져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복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열사들의 죽음과 조국을 떠난 자들이 남기고 간 질문에 대해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이들의 권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대답을 바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PSSP
불법체류자 등록마감 이후 강제추방 단속을 앞두고 얼마 전에 발표된 고용허가제는 언론매체들에 의해 이주노동자들이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우리의 이웃으로서, 노동자로서 인정받고 일할 수 있게 하는 법으로 칭송받고 있다. 9월부터 시작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등록 기간이 지난 10월 31일 마감되었다. 이제 지난 3월 31일을 기준으로 체류기간이 4년을 넘은 이주노동자와 정부의 '선택적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내달 15일까지 자진출국을 강요받고 있다. 다시말해 약 14만의 이주노동자들은 20일부터 진행되는 출입국관리소, 경찰, 노동부의 강력한 합동 단속 실시에 의해 인간 사냥의 재물이 될 일만 남겨져 있다. '노예법' = '산업연수생제도'는 계속된다. 이주노동자들의 새로운 인력관리제도인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이 지난 7월31일 국회를 통과해 내년 8월부터 시행된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와 병행 실시된다. 지난 91년부터 한국정부는 산업연수제도를 명분으로 각 국에서 노동자들을 수입해왔다. 산업연수생들은 산업연수라는 명목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3D업종에서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으며, 사업장을 선택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여 산업연수생 제도는 '노예법'으로 통칭되어왔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주민 정책에 대해서 산업연수제도를 강화 혹은 변형하면서 그 기본 틀을 유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이미 40만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법외신분으로도 노동하고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정권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값싼 노동력 유입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자본과 정부는 여러 차례의 단속추방과 자진 등록 등을 시도했지만 결국, 제도적 장치의 재편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도입된 것이 지금의 고용허가제이다. 결국 이도 산업연수생제도의 값싼 변형의 일종인 것이다. 그나마도 최소한의 노동자성도 인정하지 않는 산업연수생제도와 병행 실시되는 것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없는 고용허가제 그렇다면 이제 내년 8월부터 실시될 고용허가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는 1년 단위 계약직이고 최장 3년까지 연장(1+1+1 시스템)할 수 있다. 한 번 계약을 맺은 공장에서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이주노동자는 단체 행동 등을 했을 경우 추방되거나 계약이 갱신되지 않는다. 고용허가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도입규모 및 국가 등 주요정책 결정 (03.10월까지) -도입업종·규모, 송출국가(자국의 노동자를 타국으로 이주시키는 국가)등 ② 인력송출양해각서(MOU) 체결 (한국정부↔송출국가 정부) (04.3월까지) ③ 취업희망 이주노동자 명부 작성(송출국가 정부 ↔ 한국 정부)(03.9월부터 진행) ④ 부족인력확인서 발급 등 고용허가 (기업 ↔ 노동부) ⑤ 이주노동자 선정(기업 ↔ 노동부) ④에서 송부 받은 외국인을 복수 추천 ⑥ 근로계약 체결 (기업 ↔ 외국인노동자) ⑦ 이주노동자 입국 (기업 ↔ 외국인노동자) 정부는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의 차이는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권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는 보기 좋은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로서 이주노동자는 입국당시 계약한 사업장의 고용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어떠한 요구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가 아닌)노예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문제는 노동허가의 기간에 있다. 고용허가제는 노동기간을 1년간 허가하고 매 1년씩 2년간 연장할 수 있게 하였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연장신청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노동자성은 인정될 수 없으며, 노동권의 보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기간이 3년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로테이션 시켜 저임금을 유지하고자 하는 산업연수생제의 의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통과 이후 정부는 고용허가 제도 실시에 앞서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마련했다. 법무부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체류한지 3년 미만 된 이주노동자가 약15만 명, 3년 이상 4년 미만의 이주노동자가 약 5만 명, 4년 이상된 이주노동자가 약10만명정도 된다고 추산(작년 3월 자진등록신고에 기반한 예측치)하고 있다. 정부는 3년 미만자에게는 향후 최장 2년 체류연장을 보장하고 3년 이상 4년 미만된 이들에게는 고용주의 취업확인서를 가지고 자진 출국한 뒤 본국대사관에서 사증을 받아 3개월 이내에 재입국하면 취업비자를 주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4년 미만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9, 10월 두 달간 등록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3년 이상 이주노동자를 모두 내쫓겠다는 의도 이상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3개월 동안 기다려줄 고용주도 없을 것이며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시 출국하는데는 또 다른 송출비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0만이 넘는 4년이상자의 경우 아무조치 없이 내달 20일부터 시작될 인간사냥에 내몰리게 된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3년 미만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하의 벌금형이 법제화되어 대다수의 4년 이상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날 것이 예상된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해고가 빈발하고 있다. 대다수의 이주 노동자들이 기숙사 생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할 때 이는 사형선고에 다름 아니다. 이미 노동부 경찰등 합동 조사단이 구성되어 사업주 계도(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말라) 사업 및 정보 수집 등을 대규모로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강제단속 추방은 곧 닥쳐올 것이다. 강고한 연대로 강제단속추방에 맞서자! 지금 강제 단속추방에 맞서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는 "단속추방분쇄! 40만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5년 이상 노동비자 쟁취! 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 철폐! 노동3권 보장!"을 투쟁과제로 잡고 있다. 각 지역을 순회하는 선전전 등을 통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있다. '이대로 끌려나가느니 맞서 싸우다 가겠다'라는 결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말마다 진행된 집회와 문화제 등에서도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으며, 비정규직 대회 등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이땅의 노동자로서 주체적으로 싸웠다. 이 과정에서 2동지가 연행되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물론 아직 이주노동자운동에서 조직된 이주노동자의 수는 전체이주노동자의 수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고용허가제의 모순을 단속추방분쇄를 위한 연대투쟁 속에서 폭로해가면서 40만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에서도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분쇄를 위한 대책본부(가)'를 구성하고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연수생제도가 온전히 유지될 수 없었듯 현재의 고용허가제나 병행실시로 살아남게 된 연수생제도도 유지될 수 없음을 이주노동자들과 제 노동운동, 사회단체들의 연대 투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단속추방이 시작될 내달 15일을 전후하여 많은 투쟁들이 기획되고 있다. 9일 노동자대회에 앞서 13시 강제추방 분쇄 투쟁본부 발족식 및 투쟁결의대회가 진행될 것이다.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부당노동행위 고소고발, 부당해고 무효 확인소송 등도 일제히 진행될 것이다. 그 외 추방을 결의한 이주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들이 계획되고 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강제 추방 실시 이후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될 이주노동자들을 지지엄호 하기 위한 사회적 지지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산업연수제도는 폐지!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부당노동행위의 중단과 노동기본권 보장! 강제추방 철회!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이 요구들을 가지고 추운 겨울 진행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 인간 사냥에 맞선 투쟁을 준비해 나가자.
2003. 9. 8일- 9일 5차 WTO 각료회의 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여성포럼'에서 채택된 선언문입니다. --------------------------------------------------------------------- 무역협정과 여성의 권리 국제 여성 포럼 선언문 2003년 9월 8일~9일, 멕시코 퀸타나로 칸쿤 이번 포럼에 참석한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벨기에, 볼리비아, 브라질, 불가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칠레, 덴마크, 엘살바도 르, 에콰도르, 프랑스, 독일, 영국, 과테말라, 가이아나, 인디아, 아일랜 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자메이카, 일본, 한국, 멕시코, 몽골, 네덜란 드, 팔레스타인, 파라과이, 페루,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세 네갈, 스위스, 태국, 터키, 우간다, 미국, 베네수엘라의 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세계무역기구(WTO)의 5차 각료회의는 세계 각지에서 전쟁과 군사주의 화, 일방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전지구적 맥락 속에서 열리고 있다. 2. 세계의 경제 강대국들과 다국적기업들은 지역 및 양자간 협정들을 통 해 개발도상국들에게 이행조건을 부과하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들을 고안해 왔다. 이러한 협정들은 지역사회와 원주민들, 그리고 특 히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불이익을 양 산하고 있다. 3. WTO 협상과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인권선언과 여러 국제협약 상에 명시되 어 있는 여성의 인권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위협한다. 4. 이 세상 대부분의 약자들은 이러한 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그들이 처하 게 되는 불평등한 위치로 인해 법적인 보호막조차 빼앗겨 버린 셈이 되었 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제도적인 강제성을 띠게 되었지만, 세계의 경제 강대국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협정은 일단 체결되면 되돌리기가 매우 힘들다. 5. 5차 각료회의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제들은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삶의 질에 매우 가혹하고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v 농업은 국가 발전을 위한 근본적 활동이며 또한 삶의 양식이다. 수천 만 명 사람들의 삶을 영위케 하는 수단인 것이다. 또한 농업은 식량안보 와 주권의 기반이며, 수천 년에 걸쳐 여성들에 의해 제공되고 보존되어온 지식과 자원들과 관련되어 있다. v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는 재생산의 사회적 비용을 여성에 전가한다. 보 건, 교육, 물 등과 여타 공공서비스는 정부가 공공 책임을 지는 것으로 서, WTO 협정을 통해 단순히 상품으로 전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v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자연자원과 원주민 여성들의 전통 적 지식에 대한 지역사회의 권리를 강탈한다. 또한 유전자 자원과 생물 다 양성에 대한 사유화를 촉진시키고 개발도상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저해한 다. 그리고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이윤에 최고 가치를 부여한다. 6. 투자와 경쟁, 정부 조달 (투명성), 무역 원활화와 같은 소위 새로운 주 제들에 대한 협상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개발도상국들을 빈곤의 나락 으로 이끌 뿐이며, 성 불평등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들을 만 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7. 우리, 여성들은 세계화에 대한 대안적 의제를 개발해 나갈 것이다. 이 대안은 여성의 인권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중심에 놓을 것이 며, 또한 v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식량 안보와 주권을 담보케 할 것이며, 농업 생 산에 있어서 여성의 주된 역할을 인정하고, 여성의 시민권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 역할과 관계를 변혁시킬 것이다. v 인권과 환경, 노동, 재생산 및 성적 권리에 있어서 국제적 협정과 규 약들이 무역 법제나 협정들보다 우선시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v 국가들간의 민주적 관계 방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사례와 기제들의 작 동을 촉진시킬 것이다. 또한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주권에 대 한 권리를 회복시키게 할 것이다. 이러한 기제들은 여성의 정당하고 평등 한 참여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무역협정과 여성의 권리에 관한 국제 포럼은 모든 나라의 정부들에게 여성 의 삶의 질에 거역하는 협정에 서명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WTO의 대안에 대한 민중포럼에 이 선언을 채택하고, 전세계 빈곤층 의 70%를 점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민중포럼의 요구로서 지지해 줄 것을 요 청한다. 2003년 9월 8일~9일 멕시코 퀸타나로 칸쿤 영문 번역: Mujeres Hacia Cancun (mujereshaciacancun@yahoo.com.mx mujerdialogo@prodigy.net.mx 한글 번역: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제국 (kisto@jinbo.net)
* PDF 파일이고 아홉쪽 짜리 짧은 글입니다. 참조하세요. ILO의 최근 논의 동향과 과제 - 이성기 (노동부 주제네바 대표부 노무관)
UN, 미국에게 합법적인 점령군의 지위를 승인하다! 지난 5월 22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대 이라크 UN 제재 해제 결의안’(UN 결의안 1483호)을 통과시켰다. 15개 상임이사국 중에서 시리아만 기권했고, 나머지 14개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골자는 1990년 8월 이후 이라크에 내려진 무기금수를 제외한 모든 무역■금융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전제로서 미국과 영국을 점령군(occupying force)으로 규정하여 그 권한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UN 회원국은 범죄와 잔혹 행위에 책임이 있는 이라크 정권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으며 이들을 법에 따라 처벌한다”고 명시하여 이라크 정권을 범죄자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과 모든 당사자들이 1949년 제네바협약을 비롯해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라크 정권 인사들을 ‘인권유린’과 관련된 국제법과 제네바협약 위반으로 처리할 길을 열었다. 반면에 미국은 점령군으로서 제네바협약이 명시한 의무를 준수하는 가운데, 이라크 통치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을 관리,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 받았다. 이라크 중앙은행 하에 신설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이 점령군의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 중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점령에 대한 보상을 위해 UN보상기금에 적립할 5%를 제외한 모든 돈이 개발기금에 위탁된다. 그리고 이 자금이 인도적 요구, 경제 재건, 사회기반시설 복구, 이라크 무장해제, 민간행정 운영에 사용될 때 점령군이 그 결정권을 갖는다. (또한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원유 유출을 비롯한 생태학적 사고를 제외하곤 모든 법적 절차에서 면제된다”고 명시하여, 모든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한편 이 결의안을 통해 UN이 획득한 권한은 “이라크 새 정부 출범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를 임명해 점령군 당국과 ‘협의’한다는 것, UN을 포함해 IMF, 세계은행, 사회경제개발아랍기금의 대표들이 이라크개발기금의 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의 회계감사원을 임명하는 것, 12개월 후 결의안 이행을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침략전쟁의 적법성과 그에 따른 피해, 지난 12년에 걸친 장기적인 경제제재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은 점령국의 지위를 UN으로부터 승인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UN(그리고 ‘반전국’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이 제한적인 권한을 대가로 침략전쟁의 정당성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논리적 모순과 함께 전쟁 발발 이전부터 우려했던 문제들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하여 드러냈다. 애초 UN의 이라크 제재 결의안은 “이라크에 대랑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찰단의 확증이 있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므로, 제재 해소를 위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UN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복귀가 먼저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했고 결국 미국 뜻대로 이루어졌다. UN 제재의 근거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이제는 오히려 미국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의안은 점령의 종료시점을 명시하지 않고 단지 “1년 후에 결의 사항을 재평가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한다”는 구절을 삽입하여,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장기 점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라크개발기금의 지불권을 점령군 당국이 쥐게 되므로, 미국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식하는 방식으로 이라크 석유자원을 착취하는 것도 완전히 정당화되었다. 점령의 위험/ 잔인한 8월 이처럼 미국은 전승의 위세를 떨치며 정치적 정당성과 이라크 점령의 결정적인 권한들을 확보하면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는 단지 더 큰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즉 ‘점령의 위험’(occupational hazard)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위험은 무엇보다도 이라크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저(低)강도 전쟁’이라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위험은 미국이 다른 사회를 점령하여 통치할 수 있는가, 즉 이라크에서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사회를 재건하고 ‘민족형성’(nation-building)에 성공하여 ‘통치성’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미국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희망과 달리 이라크의 상황이 점령 이전보다 더 악화되고 이라크 내부의 갈등이나 미국에 대한 저항이 수습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면, 그 역풍은 곧바로 주변 중동 지역으로 전이되거나 미국 사회로 역수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시 대통령이 5월 1일 종전을 선언했지만, 5월 27일 팔루자에서 미군 4명이 피격 사망한 것을 비롯해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했다. 9월초까지 사망한 미군 285명 중 147명이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군은 6월 9일 ‘사막의 전갈’ 작전이라는 대규모 소탕전을 개시했고, 7월 16일에는 존 아비자이이드 중부군사령관은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다”고 공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다수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포를 조성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하거나 마을을 급습하고, 대중들을 검거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작전은 민간인 사상과 주민들의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야기했고, 오히려 미국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미국의 게릴라 소탕 작전이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갈등을 더욱 부추기던 와중에, 특히 8월은 미군으로서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기 충분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8월 초 바그다드의 요르단 대사관 밖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이라크인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비롯해, 두 주 후 19일에는 바그다드 주재 유엔본부에 차량폭탄공격이 발생해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 특사 등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했다. 29일에는 이라크 종전 이후 최악의 참사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자프시의 이맘 알리 회교사원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126명이 사망하고 시아파 최고 지도자이며 과도통치위원회 위원인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이 사망하였다. 도대체 누가 적인가? 이러한 사태로 인해 미국 언론은 “민중봉기와 게릴라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제3의 걸프전 위험이 있다”, 또는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다”며 점령군이 처한 위협만을 크게 부각하는 선정적인 표제 기사로 문제를 몰아갔다. 하지만 ‘저강도 전쟁’에 직면하여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가장 심각한 골치 꺼리는 “도대체 누가 적이냐”는 문제였다. 후세인/바트당 충성파, 전후 이라크 민족주의자, 이라크 수니파 그룹, 이라크 외부 아랍 출신 자원병들, 역시 이라크 외부의 조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그룹(알 카에다와 느슨한 연계를 맺고 있는 그룹을 포함하여)이 다양하게 언급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정체와 경향, 군사적 역량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보 분석가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음모 이론’을 창조해내고 언론은 그것을 퍼 나르기에 바쁠 뿐이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공격자들을 한결같이 ‘테러리스트’로 묘사했고, 그들이 9■11 테러나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있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교묘히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반테러리즘’이라는 가장 간편하고도 인기 있는 구호를 계속 밀고 나갔다. 왜 이라크 내부에 ‘민족주의’적 기류가 발생하고 있는가, 또한 ‘민족-형성’을 둘러싸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 “미국 정부는 전후 사태에 대해 충분한 예상과 준비 없이 전쟁에 돌입했으며, 국제적 지원도 결핍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비난의 초점이 부시 정부로 옮겨질 것이다. 나아가 이라크의 상황이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상처로 남아 있는 베트남이나 레바논, 소말리아와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더 많은 군사력을? 따라서 미국은 국내외에서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서둘러서 이라크 내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8월에 이르러 검토된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확대하자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경우 국방예산이 대규모로 확대됨에 따라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미국의 배치 가능한 공군, 해군, 해병대의 40%를 이라크에 집중해야되는 큰 부담이 있었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두 번째 방안은 UN으로 문제를 끌고 가서 UN의 역할을 확대하고 ‘UN의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UN 군대‘의 역할은 평화협정의 이행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실제 ’저강도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실제로 군대를 파병할만한 군사적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는지, 그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문제가 불분명하였다. 그리고 파병국이 그에 걸맞는 ’정치적 결정 권한‘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의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이라크에 파병한 미국 이외의 31개국 군대도 지휘통제나 병참지원, 재정지원 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각종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세 번째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장한 것으로, 이라크인들을 군사력 확대에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이미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이라크 사회의 완전한 ‘탈(脫)-바트당’을 목표로 이라크군을 해체했고, 40만 명의 군인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가장 간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최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단지 이라크인들 훈련하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인을 내세운 ‘소탕작전’이 극도로 정치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적절한 훈련과 언어 소통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라크인들이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분할과 갈등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하기 위한 어느 방안도 모순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택한 것은 이른바 ‘미군의 지휘를 받는 다국적군’이라는 방식으로 두 번째 방안을 밀어 부치는 것이었다. 그 대상으로 한국을 비롯해 터키, 인도, 파키스탄 등 10여 개 나라가 물망에 올랐고, 한국 정부에는 9월 초 서울에서 열린 ‘미래한미동맹조정회의’에서 공식 요청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군은 군사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군 파병 시나리오의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이 군대는 미국의 101 공중강습사단이 맡고 있던 북부 산악지대를 맡게 되며, 단순한 보호활동이 아니라 게릴라 군에 대한 소탕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한국군이 그 지역에 주둔하게 될 다른 나라의 주둔 비용을 사전에 부담하고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전쟁비용을 책임져야 할 전망이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종파(宗派)적■종족적 구성 한편 7월 13일 점령군 당국이 임명한 25인으로 구성된 ‘과도통치위원회’가 취임식과 첫 회의를 열었다. 애초에 브레머 최고행정관은 이 위원회의 역할을 순수한 ‘자문’으로 한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라크 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조만간 정치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제스처를 취해 미군의 점령 현실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저항세력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서둘러 과도통치위원회를 창설한 것이다. 점령군 당국은 과도통치위원회가 새로 수립될 정권의 모태라면서 법적 정통성을 부여했고, 몇 가지 상징적 권한을 제공했다. 장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하고, 점령당국이 제시한 윤곽 내에서 정책을 세우고, 장차 새로운 헌법을 기초할 역할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점령군 당국의 최고행정관이 최종 결정권과 위원회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브레머 행정관은 위원회를 구성할 때 ‘7 그룹’이라고 불리는 정치세력들에게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그 구성원들의 배경과 정치적 제휴세력은 실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후세인 정권 때 해외로 망명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후세인 통치 시절 이라크에 남아 있던 인물들이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봉쇄하고 경쟁자들에 대한 거부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브레머는 미국의 관점에서 종파와 종족을 안배하여 구성하였다. 즉 시아파 무슬림 13인, 수니파 무슬림 5명, 쿠르드 5명, 투르크 1인, 아시리아 1인. (9월 3일 과도통치위원회가 임명한 25명의 과도 내각은 통치위원의 구성 비율과 동일하게 맞춰졌다.) 그러나 ‘7 그룹’을 구성하는 각 세력들은 ‘연방제’ 창설이라는 대강의 공약을 제외하면 정치 비전에서 공통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점령군에 관해 최고혁명위원회의 알 하킴은 최대한 빠른 철수를 요구하지만 찰라비는 해방군으로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 활동의 투명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널리 제기되었다. 8월 12월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 총선 실시를 위한 헌법을 설계할 제헌위원회를 임명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누구인지조차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의 레바논화? 그러나 과도통치위원회의 권한과 투명성 문제를 넘어서, 미국이 이것을 창설할 때 채택했던 접근방식이야말로 위원회의 미래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정치, 사회를 극히 단순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여, 사회■정치적 정체성의 복합성을 무시하고, 종파나 종족이라는 협소한 프리즘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그들이 후원하는 망명 그룹들은 시아, 수니, 쿠르드 주민들의 상대적인 인구수 비율을 반영하여 연방의 대표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의 정치적 틀을 옹호해왔다. 14명의 시아 통치위원의 5명은 명백히 종파의 성격이 강하며, 5인의 쿠르드 대표는 종족적 경향이 강하다. 수니는 단지 5명이고 그 종교적 지도자는 위원회에서 배제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미군에 대한 공격이 “수니 삼각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근거를 들어서 수니를 바트당과 동일시하고 나아가 후세인 충성파와 똑같게 취급하는 잘못을 범했다. 이러한 미국의 경향은 수니파 아랍인들에게 장차 이라크 사회에서 주변화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종교적 기초로 재결집하도록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점령 통치 전략은 수니파 아랍인들이 점령군 당국에 대한 저항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게 만들거나, 장차 수니-시아-쿠르드 간의 잠재적 긴장을 높여 이라크의 “레바논화(化)”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미래와 미국의 지배 전략 물론 이라크의 미래에 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사회에는 정체되었거나 퇴행적인 방향으로 흘러 갈 수밖에 없는 고유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고, 외부의 힘이 그것을 교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피점령국 이라크 사회가 직면한 객관적인 현실과 미국의 점령통치 전략이 낳을 실제적 위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려는 시도, 특히 종파적■종족적 동일성을 부추겨 이라크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외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래된 지배 전술은 이라크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쿠르드, 수니, 시아 등 어느 세력도 (각기 다른 이유로) 완전히 지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종파적■종족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주도하거나 조장하면서도, 그 균형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이라크 경제의 재건 과정이 석유산업의 사유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사회의 분리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빅뱅을 거치며 이루어진 마피아 유형의 사유화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군사력을 신뢰할수록 이라크 주변 국가의 지역을 포함해 비대칭적(즉 비정규적) 저항의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미국이 오히려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확산되어, 이라크 사회의 장기적인 혼돈의 씨앗을 뿌리게 될 위험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은 바로 오늘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일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PSSP
1953년 10월 1일 한미양국은 공산진영의 군사적 도전을 억제하고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북한에 소련과 중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음에도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해방’하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오랫동안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논리였다. 이는 미국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해서 남한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고, 중국과 소련이 개입된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자유한국’을 방어했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이란 결국 냉전 하 남북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 특히 주한미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매우 특수한 의존과 종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와 억지’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출발한 한미 군사동맹은 점차 그 호전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은 1957년부터 한반도에 핵무기를 반입, 배치했고 1974년부터는 ‘작전계획 5027’을 수립하면서 주한미군 작전개념을 사실상 북침 시나리오에 다름 아닌 ‘전진적 방어전략’으로 대체했다. 탈냉전 이후에도 미국은 역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동북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위협론’과 ‘북핵’을 빌미로 한미일 삼국의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시켜왔다. 특히 21세기에 전개될 미래전에 대비,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온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대테러 전쟁 전략’에 따라 한미양국은 최근 ‘동맹의 현대화’를 약속한 상태다. SOFA개폐와 전시작전권반환 문제 등 ‘호혜평등한 한미관계’ 구축이라는 최소한의 요구마저 묵살한 채, 한반도 위기 국면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한미동맹의 현대화 - 그 파장과 의미에 대해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세계화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안보전략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세계화 시대 군사적 개입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 무엇이 국익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 세계화 시대의 국가안보를 재정의하기 위해 다수의 위원회들이 구성되었다. 이중 영향력 있는 하원의원들과 유명한 경제학자들(예컨대 폴 크루그먼)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가 포함되어 있는 ‘미국국익위원회’는 ‘중대한 이익, 중요한 이익, 절 중요하거나 부차적인 이익’ 등으로 미국의 국익의 위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권력 행사가 ‘인류전체의 이익’이나 ‘가상적인 국제공동체’와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닌, ‘국익의 확고한 지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구실 아래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또 미국은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주체이고 세계화의 주요 수혜국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옹호가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미군이 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세계화의 옹호란 ‘상업 및 금융 네트워크, 수송과 에너지, 환경 등 세계의 주요 체계들의 안정과 원활한 작동의 유지’를 의미한다. 즉 세계화에 따라 국가안보 개념은 ‘자국 영토의 불가침권’이라는 전통적 접근으로부터 ‘세계체계들의 생존가능성(원활한 작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1999)에서 채택하도록 만든 계획과 동일한 것이다. 미국은 그 중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수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금융자본가들의 이익에 대해 제기하는 위협을 인지하고 잠재적 요인들에 투쟁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군사전략 역시 개편되기 시작했다. 1997년 미 의회의 국방패널(NDP)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전구전쟁’ 개념이 냉전상황에 근거한 것이며 발생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에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2010-2020년까지 필요한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발전에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방전환」(Transforming Defense). 이러한 비판의 핵심은 ‘2개의 주요 전구전쟁 승리전략’이 상정하는 전쟁이 광범위하게 분산된 전력배치와 재래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미래전 대비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적인 중국의 위협 부상, ‘불량국가’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점도 비판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군 투입능력의 향상, 첩보■정찰■감시 능력의 중요성, 군사기술혁신(RMA)을 최대한 활용하는 무기체계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국방전환」은 장래에 개연성이 높은 ‘비대칭적 위협’을 포함한 분쟁의 모든 국면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①미국 본토의 방위, ②동맹강화와 통합전력의 확립, ③군투입능력의 개발, ④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⑤우주와 사이버공간의 활용과 통제 등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를 거치며 분명하게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안보 전략은 자신들의 사활적인 이익인 ‘자유시장-자유무역’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이러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선제공격 독트린’을 핵심으로 한다. 미국은 이러한 전략에 발 맞추어 미군의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정보수집 및 정찰능력, 첨단 통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 정밀유도무기 등이 중시되고, 기존의 중무장한 지상군은 가벼운 군사장비로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정밀타격으로 속전속결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재편된다. 한편 과거 해외주둔이 위험한 지역에 대규모로 거주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기동력 있는 군대들이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 주둔 미군의 개편 탈냉전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1990.4)을 통해 극동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두 개의 ‘냉전형 위협’이 남아 있음을 지적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역의 안정 유지’로 정의하였다. 이때 미군주둔의 유지는 ‘역내 미국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익이 증대했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는 전방전개 미군에 대해 한국, 일본, 필리핀으로부터 상당규모의 미 지상군과 일부 공군병력을 3단계에 걸쳐 감축함으로써 냉전 해소에 따른 국방비의 ‘적절한 조정’ 요구를 충족시켰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5년「접촉과 확대의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여러 문제에 개입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세계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천명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 일명 「나이(Nye) 보고서」를 통해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에 ‘접촉’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 전략의 분기점을 형성한다. 그런데 부시정권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중국위협론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의 전환’과 ‘동아시아 주둔 미군 전력의 재조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2002년 7월 발표된 「미중안보 검토보고서」(U.S.-China Security Review)는 부시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중국의 해상수송로 위협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공군력과 해군력을 전진배치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미 괌 기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조치들은 중국이 2020년을 목표로 남중국 해역에 항공모함을 배치할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북아에 집중된 미군 전력을 동남아로까지 확산하고 ▴괌을 아시아 중추기지로 활용하여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키나와와 필리핀 베트남에 중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근거지 증설 등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미일 양국은 중국 위협론을 빌미로 군사동맹을 재정비, 강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양국은 군사협력을 보다 조직화하고 그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부담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1978년 합의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1995년 이후 재검토하기 시작하여 1997년 새로운 지침을 완성했다. 연달아 1998년에는 새로운 미일군사협력강화의지를 현실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주변사태법안’으로 불리는 일련의 법안들이 의회에 상정됐다. 또 일본은 2001년 ‘반테러특별조치법’, 2003년 ‘유사법제안’을 각각 통과시킴으로써 동맹국인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표명했다. 이는 아태 지역과 기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미일간의 항구적 동맹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또 미국이 MD 체계를 신속히 추진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이른바 ‘북한 위협론’은 한반도 위기와 직결되고 있다. 최근 부시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 유지를 위해 미사일방어망 구축은 계속될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MD 추진이 안착될 때까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 또한 미국은 MD 관련 무기구입을 일본, 한국, 대만 정부에 종용함으로써,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한미동맹의 현대화 따라서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재조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 2002년 12월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안보연례협의회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한국의 이준 국방장관에게 미군의 구조개편작업이 본격화되면 주한미군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동시에 미국의 전략가들은 ‘세계 전역에 보다 신속하고 가깝게 군사력을 전개(배치)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능력 개선은 한반도 방위에 더 적은 미국 군사력만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남한 방위에서 한국군이 미군의 역할을 대체,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한미동맹’의 응축된 문제점들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연이어 불거졌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성이라는 내적 모순은 ‘촛불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범위한 반미시위를 낳았다. 또 성범죄와 미군기지 등 대규모■장기 주둔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제반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면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해갔다. 그러자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 경우 미군의 전방 주둔을 비롯한 동맹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고서들은 ①북한위협에 대한 남한의 안보우려 급감, ②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인한 남한의 민족적 자존심 강화, ②냉전의 해소 - 특히 냉전과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 - 가 현재 반미의식의 원천이라고 분석하면서 남한 내에서의 ‘반미감정’을 순치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재확립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형은 미국과 남한의 보수세력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미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주한미군 감축안을 안보논리로 활용하여 ▴남한의 대북제재 동참 ▴방위비 분담 증액 ▴MD 참여 등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동맹’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작업도 이루어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외교게임’의 논리라기보다는 경제위기와 햇볕정책의 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노무현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선택지가 협소했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다. 2차례에 걸친 파병 요청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그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결국 방미 과정에서 분단의 안정화를 통해 동북아중심국가로 웅비한다는 구상을 내포한 노무현 신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북핵’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공동 목표 속에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동참했다. 이와 함께 일련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협의’를 통해 꾸준히 추진된 한미동맹의 현대화란 크게 '선제타격능력의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요새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기존의 군사력을 기동화, 첨단화, 경량화하고 이를 위해 미군기지를 핵심(Hub) 기지 중심으로 재편하며, MD 체제를 구축하여 보다 공세적인 군사행동으로 인해 되돌아 올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004년 요구한 예산안의 상당부분이 MD체제의 도입을 위한 무기도입과 한국군의 기동화, 첨단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포함한 주한미군 및 한국군의 전력 개편은 군사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이며 그것도 더욱 패권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반도에서의 남한군의 역할 증대를 넘어 미국의 더욱 확장된 동맹체계로의 철저한 편입을 전제로 하고 있어, 역내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와 지역 불안정성의 심화로 귀결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또 미2사단의 후방배치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으로까지 보는 것도 가능하다. 즉각적인 선제공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술적인 선택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압박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의에서 한미양국은 ▴한미 연합전력 강화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전력증강에 향후 3년 간 1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하고 ▴한국군 역할 증대에 따른 신무기체계도입을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용산 미군기지 대체부지 선정 및 이주 비용을 한국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남한의 국방비 증액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4차 회의가 진행된 현재까지 전시작전반환권 문제논의가 유보된 것을 비롯, 한미동맹 관련 주요 협의 사항이 되어야 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 개폐 논의는 아예 상정되지도 않았다. 평화운동의 미래 현재 많은 전략가들은 동북아 역내에서 미군이 사라진다면 아태 전략 구조에 주요한 공백이 생기고, 이 공백은 심각한 군비 경쟁, 한반도 통제와 해양■항공로 통제를 둘러싼 경쟁, 심지어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한미군 주둔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북한이 재래식 전력을 유지할 능력이 소진되자 전략적 중점을 핵과 미사일 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미국 본토를 위한 미사일방어체계와 함께 한국과 일본에 배치된 미군도 전역 미사일방어능력을 향상시키고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지난 50년 간 한미일 삼각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이미 역내에서 과도한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신화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MD 계획과 북한에 대한 ‘선제핵공격 옵션’은 분명 ‘과잉억지’와 ‘긴장고조’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미군의 동북아 주둔이 안정을 창출한다는 현실주의적 ‘세력균형론’과 힘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대결구도를 창출함으로써 적을 굴복시켜 평화를 달성한다는 군사적 사고를 지양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은 북한과의 협상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서 미군사력의 존재는 미국과 한국의 자세를 유연성 없이 만드는 토대로 작용한다. 첨단전쟁능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또는 첨단전쟁능력을 끌어들일 전진기지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하며, 따라서 유일한 생존전략으로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유혹’을 조장한다. 셋째, 주한미군의 존재가 남한 군사당국으로 하여금 그릇된 안보의식을 제공함으로써 남북 당사자들에 의한 한반도 군비통제 및 군축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둔감하게 만든다. 남한군이 북한군에 비해 전력상 열세에 놓여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허구임이 밝혀졌다. 일례로 현재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국내총생산을 능가할 정도이며 전력 측면에서도 남한은 80년대를 경과하며 북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과 동아시아로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에 따른 남한의 국방비 증가와 전력 강화를 반대하는 평화군축운동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주축으로 하는 반전-반미운동의 흐름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평화군축운동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