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가늠하고 대응하는 데에 핵심적인 질문들을 놓고 당일 발제와 토론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했다.
중국 정권의 성격,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발제문은 미중 갈등을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으로 파악하고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새로운 헤게모니에 미달하며 중국공산당의 ‘중국몽’은 주변국들에게 수용 가능한 선진적 민주문명질서로 비치기보다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한, 강권적인 세계질서 구상으로 비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몽과 함께 이를 위한 강군 건설로 제시된 ‘강군몽’에 따른 군사력 현대화 공세적 군사전략 역시 오히려 주변국들로 하여금 경제적·군사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적 대응을 강화하게 촉발하고 있다.
토론에서도 미중 갈등의 결과가 전 세계 미래의 향방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 한국 사회운동에 중국 정권과 중국 체제의 성격에 대해 보다 명확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었다. 발제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와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 체제, 중국몽과 같은 민족주의의 확대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다. 중국의 패권 도전은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오히려 주변국들로 하여금 경제적·군사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적 대응을 강화하게 촉발하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 있어 중국의 잠정적인 양보, 협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으나, 그러한 단기적 전망은 트럼프의 중간선거 패배 가능성(현재 민주당 후보들은 트럼프보다 더 강경한 입장임), 혹은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즉 더 큰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토론자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하는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 비관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정치·경제적인 부분이나 대외정책을 보면 대안적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패권에 대응하는 또 다른 패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공산당의 방침 변화와 시진핑의 권한 강화를 둘러싸고 독재의 강화인지,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로의 전환인지 등에 대해 찬반 논쟁이 비교적 뚜렷했는데 지금은 시진핑 독재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으로 대부분 수렴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을 트럼프와 함께 ‘스트롱맨’이라는 범주로 동일시하는 것에는 아직 의구심이 있다고 발언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벌여온 국지전, 특히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시리아·예멘 등 미국의 중동 개입이 불러온 재앙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중국의 권위주의적-국가자본주의는 미국의 침략주의와는 또 다른 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발언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나토 동맹에 대한 견제 기능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한편으로 (노동착취의 현실이 있기는 하나) 199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의 경제정책이 ‘대국-추격자로서’ 유효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 역시 사라졌다. 중국의 전략은 어떤 새로운 대안적 성장체제 형성이라기보다는 현존하는 위기 구조 내부에서 세계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며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는 것이며, 한국과 같은 후발 추격자를 자국의 크기에 맞게 잘 모방하여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와 다르며, 거기에 미달한다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자본주의 재건’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같은, 세계 관리전략이 존재했던 데에 비해 중국에는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것 이상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장기적 위기에 접어들고 중국 역시 성장률 저하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전략이 권위주의-민족주의-군비경쟁 강화로 예측된다는 점은 앞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더욱 카오스로 빠져들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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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국이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라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동급의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으로 볼 수 있냐”, “현 동아시아 정세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각국의 일방주의로 인한 갈등 증대로 보아야 하느냐”와 같은 플로어 질문들에 대해 발제자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군사세계화의 모순에 대해서 중국이 일국적인 국가자본주의로 도전하는 구도가 현재 존재하나, 이를 레닌이 19세기 자본주의의 특성을 개념화해 설명한 ‘제국주의’의 틀로 보는 것보다는 다른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냉전’이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중국이 미국과 경쟁적인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각국 일방주의라고 하기 보다는 중국·일본의 민족주의가 서로 화해하기 어려우며 각국이 글로벌 공급사슬 내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과거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군사적 헤게모니, 자본이동, 초국적 자본의 변화 등을 경제적 관계로 환원해서 설명했는데, 21세기에 들어서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도 정치적 헤게모니(영토주의, 지정학적 헤게모니) 추구를 전부 경제적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수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입각해서 보면 실제로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느냐 할 때, 경제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는 상태고 국내에서는 불균등 발전 상태다. 자본주의 경쟁의 핵심이 생산성 우위의 국가가 생산성 열위 국가의 부가가치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을 때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종속적 국가인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미국과 비대칭적인데, 미국의 군비가 그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도 미국만큼 무기를 갖겠다는 입장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상태라 미국도 위협을 느낀다. 정리하면 중국은 전통적 의미에서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지정학적 헤게모니 경쟁에 뛰어들었고 지역적 패권국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미국도 유럽도 세계를 관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민주의가 발호하고 있고, 중국 역시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는 속에서 군사적 국지전의 형태도 발생 가능할 국면이다.
한국 사회운동은 홍콩시위를 지지해야 하는가?
올해 6월부터 현재진행형인 홍콩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이날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최근 미중갈등에서 홍콩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발제문에 해당 내용이 나오지 않았음을 짚으며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중국 역사에서 기존의 ‘화약고’가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지역이었다면 현재는 홍콩 문제가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베이징 정부 당국의 시위 진압 행태 등에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홍콩 시민들의 요구나, 영국 깃발, 성조기 등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모습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어려워 홍콩 시위에 대한 입장을 단순하게 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찌 되었든 미중갈등과 중국을 파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쟁점인데 한국 진보운동이 이에 대한 판단을 일정 유예하고 있다.
“동아시아 운동세력이 홍콩시위 지지해야 하지 않나? 중국체제 반대하는 민중투쟁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대안적인 동아시아 체제를 말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중국공산당의 민주화가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홍콩시위가 과연 막다른 골목을 피할 수 있을지?” 등 플로어에서도 홍콩시위에 대해 여러 질문이 있었다.
발제자는 홍콩시위의 저항적 특성과 대안에 미달하는 특성을 구분해서 보자고 제안했다. 현 상황이 어떻게 나왔느냐 했을 때,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 속에서 홍콩이 중국 본토 경제에 일정 정도 통합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이 홍콩에 가고 그 과정에서 이민자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등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원정출산, 물가 폭등 등도 반중국정서 형성에 기여했고, 근본적으로 일국양제 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자유 억압과 홍콩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왔다. 현재 시위 양상을 보면 반중국 정서를 강하게 가져가면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5개 요구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직선제 요구를 중국 당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일국양제가 2047년까지 지속될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 간의 갈등은 장기적으로 계속될 문제인데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 측면에서 우리의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시위대의 요구와 양상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홍콩문제의 직접적 발단은 ‘범죄인 송환법’이지만 시위를 이렇게 키운 반중국 불만의 대표적 원인은 홍콩 청년들이 한국보다도 훨씬 심한 취업난, 주택난을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사회의 전망 없음에 대한 절망감, 중국 본토인의 홍콩 점유에 대한 반감. 그러나 이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보다도 홍콩에 대한 경제 정책일 텐데 베이징 정부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인 송환법은 이미 공식 폐기되었고 현재 홍콩 시위대의 핵심 주장은 행정장관 직선제인데, 이는 독립국가로 가는 초입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져 베이징 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중국체제를 비판하는 관점에도 불구하고 홍콩시위를 지지하지 않다면 모순이 아니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판적 대상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자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중국체제 비판이 홍콩시위의 지지로 등치되지는 않는다. 중국공산당의 독점적 지위 자체가 일정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중국공산당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입장을 내고 주장을 할 수는 있더라도, 이를 제1요구로 놓고 개입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북한의 ‘핵 동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대토론회에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이 군비경쟁의 형태로 지속될 것이며 그 속에서 핵무장이 확대되어 핵전쟁의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미국이 실제로 ‘리비아 모델’을 실행한 바 있으므로 북한이 핵무장 해제를 두려워하는 현실적 요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이 이를 빌미로 “자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주면 추가적인 핵개발·실험을 동결하겠다”고 하는 주장도 남한 사회운동은 수용할 수 없다. 이는 곧 한반도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것이고 동아시아 전체에 일본·남한의 핵무장 추진 등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운동 내 주체사상파가 한반도 핵무장을 인정하고 미국의 침략주의만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연대가 필수적이나, 최근의 한일갈등으로 이러한 연대의 지반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한 우려지점이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10여 년 전에도 “북한은 핵무장을 한 것이고, 그 핵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은 비핵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핵동결, 핵군축 협상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NL 내에서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극소수의 의견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의도가 핵동결·핵군축에 있고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남한 사회운동 안에서 분석이자 주장으로 대거 부상하고 있다. 북미 간 협상과정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분석하며 북한은 의지를 가지고 성의를 보이는데 미국이 양보 안한다는 인식도 사회운동 다수 의견이다. 결국 북한의 핵전략에 대한 비판이 NL뿐만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상당히 느슨해져 온 것이다.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필요성, 반핵평화운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발제문은 북한 정권이 권력세습과 체제유지를 위해 점점 거세지는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거듭하여 핵 무력 완성을 추진한 것은 수령론(‘신화화된’ 개인숭배)을 핵심으로 하는 극단화된 스탈린주의(국가자본주의)라는 북한의 사회성격에서 구조적으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하여, 미국은 북한이 영변 외 핵시설의 폐기를 거부하면서도 ‘제재의 전면적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2016년 후 채택된 5건의 제재 결의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6년 이전, 2006년부터 2013년까지 UN 제재들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직접 관련 있는 개인과 단체에 대한 제재와 무기 수출 금지 정도를 담은 것으로, 미국은 결국 ‘노딜’을 택했다.
비핵화 개념의 쟁점과 협상의 목표를 분류하면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확인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어야 하는가(‘한반도 비핵지대화’), 아니면 핵동결·핵군축을 실질적 목적으로 하는 협상이어야 하는가(‘단계적 비핵화’)라고 할 수 있다. 9.19 공동성명은 1항에서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면서 다음을 합의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한국은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통일운동 또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지지했다. 예를 들자면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서울 채택 결의문이나 범민련 강령에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명시되어 있었다. (2001년 개정 강령에는 빠짐)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북한과 미국 양자로부터 동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이행방안도 없어서 모호하다. 이 과정에서 ‘중재자’를 자처했으나, 북한은 남한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비난까지 하고 있다. 또한 남북평화경제로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하면서도, 국방비를 증액하고 미국 무기 수입을 늘리는 등의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모순적이고 무능한 행보는 다시 북핵 협상에 대한 남한 사회 내 국론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연 실현 가능한지도 쟁점이지만)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동결을 승인받으며 체제를 보장받으려 한다면,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와 일본의 재무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일-중국 간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경우 한국은 미국의 핵 공유 옵션을 받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한미 동맹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실질적 핵 보유를 결코 묵인할 수 없다.
남북평화경제, 남북민중연대가 실제로 가능한가?
주체사상파는 미국에 대한 태도와 일본에 대한 태도,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현 집권 세력과 거의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남북경협 확대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보이는데, 주체사상파의 전략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공명하는 것이 바로 ‘남북평화경제’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남북평화경제 형성이나 남북교류 사업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그 현실적 실효성을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한일갈등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일각에서도 남북평화경제를 일본과의 관계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나, 남북한 평화경제와 남북 민중연대는 북한 정권의 핵 포기, 북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전제되지 않은 한 실질적인 의미가 없을뿐더러 남북평화경제로 (단기간에) 일본 경제를 따라잡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선동일 뿐이다. 현재는 (문재인 정권이나 주체사상파의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UN과 미국의 대북제재 속에서 제대로 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제재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 국제적 현실이다.
문재인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깨려고 하는가?
자유한국당이 공격하는 대로 실제로 문재인 정권이 ‘주사파’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여당 세력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 외의 장기적 계획 없이 행동하면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민주당 세력은 ‘친일파’, ‘독재 잔재’ 세력이라는 상징적 적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정당화를 만들어 내왔고, ‘2015년 위안부 합의 무력화’나 ‘징용노동자 개인청구권 인정’ 역시 일본을 역사의 주적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것을 통해 정치적 지대를 챙겨온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징용노동자 관련 판결은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 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3권 분립 원칙 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실제로 징용노동자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도 그에 대해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일본이 무역보복을 하자 이는 한국의 기술진보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며 강력한 갈등적 수사를 통해 국내의 지지를 모으고자 했다. 일본의 대응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과의 역사적 갈등을 쟁점화 시켜 국내에서 정치적 지대를 챙기려는 것은 대안적 한일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행태는 저성장 국면에서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기는 상황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른) ‘1965년 체제’라는 것이 1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난 50년간 한일관계를 규정해온 구조이고 실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에 꼭 그렇게 협상을 했어야 했나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이미 지난 수십 년을 규정해 온 역사적 사건의 영향을 고려하며 그 속에서 개입 지점을 찾아야지, 그저 “1965년 체제는 없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65년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히 무책임하고 상당히 문제적이다. 문재인 정권이 가장 비판받아야 하는 점은 역시 정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전 한국 정권들은 65년 체제를 부정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권도 명시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이 식민지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는 문제적 협정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 협정을 깨고 한일국교단절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행보다. ‘남북평화경제’로 한일 갈등의 공백과 문제를 극복하자는 것 역시 50년 간의 한일관계를 청산해버리자는 식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발제문은 맹목적 반일감정과 “생존을 위해 자존을 포기하지 말자”(한겨레신문), “평화경제로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문재인) 같은 주장을 더 밀고 나가면 경제관계 측면에서 동아시아 자유무역 질서를 이탈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려했다. 한일 경제관계 단절이 기회가 된다는 주장은 주관적 희망일 뿐이며, ‘대안세계화’는 노동자운동이 국제적 노동표준 수립을 위한 국제연대 같은 대안자유무역협정을 추구해 동아시아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내적 비판을 통한 개조를 시도하자는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 질서를 거부하고 이탈하자는, 오히려 그래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세계화’적 논리에 가깝다. 브렉시트의 예처럼 이는 실행 가능성도 낮고, 민족주의나 보수주의, 심지어 인종주의나 외국인혐오를 동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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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인가, 대안세계화인가?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평가를 두고 사회운동 내에서도 많은 혼란과 쟁점이 야기되고 있다. 민족해방(NL), 통일운동 진영은 과거 민주당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한편, ‘친일잔재 청산’ 등 더욱 일본에 더욱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나 보수언론도 ‘토착왜구’라는 식으로 같이 취급) 미국 패권의 자본주의 비판,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미동맹을 비판해 온 좌파진영에서도 역시 ‘진의’를 의심할 뿐, 한미일동맹의 폐기라는 관점에서 식민지배 배상(대법원 판결 이행)과 지소미아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즉 두 입장 모두 문재인 정부가 지금 하는 걸, 더 잘하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NL의 입장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좌파의 입장 또한 문재인 정부의 민족주의·포퓰리즘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민족주의·포퓰리즘적 성격을 고려하면, 갈등이 극단화되며 기존 한일관계가 사실상 단절되거나 동아시아 자유무역 체제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상황에 내몰릴 경우, 국내 여론이 양분되고 극단화되며 발생할 후과와 반작용은 재앙 수준일 수 있다. 미중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미협상이 매우 불안정한 변수라는 것을 고려하면,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 약화나 개입 축소가 곧바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대법원 판결이나 지소미아 파기와 같은 행위가 동아시아 냉전 질서를 데탕트 국면으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은 이러한 흐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숙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중 간 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북핵에 대한 무비판적인 남북경협이나, 반일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대안적인 경제사회구조와 평화를 향한 방향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운동은 오랜 시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해왔지만, 현 시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보다 포퓰리즘, 보호무역주의가 만들고 있는 반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더 시급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이라는 점과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는 가운데 좌파적 대안도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섣불리 근거 없는 대안을 찾기보다는 경제위기, 전쟁과 같은 노동자민중의 삶에 극단적인 위험과 파괴를 만드는 상황을 제어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확장가능한 대안적 이념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보수세력이 선점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사회운동이 자본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주도할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국제주의,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노력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모색해야 한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이에 대해 현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비판보다 포퓰리즘, 반세계화 비판이 더 시급하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와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지금 당장 실질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자유주의와 반세계화 양자에 대한 비판을 비슷한 비중으로 유지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현 상황이 체계적 카오스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반세계화 비판이 정세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가 바로 반세계화라는 점이다. 미국의 군사세계화가 반세계화를 초래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반세계화 비판은 신자유주의 비판의 강력한 형태라는 것이다.
한미일 반핵평화운동 연대, 어렵더라도 유일한 답
발제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포퓰리즘적 반세계화와 군사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핵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중심축으로 하여, 일본의 비핵3원칙과 평화헌법을 지지대로 하여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위한 대중적 여론을 형성하려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지금 당장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을 막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실현’ 요구를 중심으로, 남북미의 군사적 행동 재개를 저지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반세계화의 강화가 아니라 대안세계화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노동자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국제적 노동표준, 초민족자본의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한 통제, 무역협정에서 노동조항에 개입하는 노동기준 연계 전략 등이 이러한 고민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인 제약이다. 현재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무역질서는 미국이라는 시장을 두고 수출경쟁을 하는 구조다.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상태 역시 비대칭적인데 현재 중국과 북한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사회운동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남한 일본, 대만, 미국 등의 노동자운동은 공동의 요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셋째, 현재 대안세계화를 위한 동아시아 노동자연대가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전쟁 위기가 상존하고 있는 지역 내 상황에 대한 긴급한 대응 차원에서 반핵평화운동 관점의 동아시아 연대를 모색해볼 수 있다. 핵무기금지조약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 비준을 전 세계 정부에 요구하는 국제적 운동 흐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 7월 7일 유엔 총회에서 122개국의 찬성(반대 1, 기권 1)으로 통과한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간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첫 번째 국제적 합의다.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배치 전달, 사용, 사용 위협을 금지하였다. 핵무기금지조약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50개국 이상에서 발효되어야 하는데 현재(2019년 10월 초) 32개국에서 발효되어 18개국이 남았다.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보유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평가되는 4개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9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한국, 일본 등 미국의 핵우산에 포함된 국가도 불참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조약 발효 실현에 현실적인 제약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부터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위한 대중적 여론을 만들어 가기 위해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주목하고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동아시아 비핵화라는 전망을 실현하는 국제연대에 매우 중요한 지지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영토와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공동의 흐름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한일 노동자, 시민 간 교류와 공동 행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서로 각국의 지배계급을 비판할 뿐 현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외교적 해법을 공동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일 민중연대를 통해 불법적 한일병합을 원천무효화하고 식민지배 청산을 완수하자”는 일각의 주장 또한 실천적으로 복잡한 문제다. 일본에도 이러한 입장이 적지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지금이라도 한일협정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협정 체결을 위해 한일관계의 단절도 불사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인식하며 문재인 정부의 민족주의·포퓰리즘적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국제주의적 대안이념으로 사회운동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남미와 남유럽 좌파들의 한계와 실패를 통해, 사회변혁의 일국적 우회로는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대토론회는 한국에서부터 진정 현실적이고 정세적 과제로서 국제주의·평화주의적 사회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결의로 막을 내렸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해마다 히로시마·나가사키를 번갈아가면서 본대회를 치른다. 올해는 나가사키에서 본대회가 열리는 해로, 일본 전역에서 온 5000여 명의 참가자가 나가사키 시에 모였다. 그만큼 나가사키에서의 일정은 밀도가 매우 높았다. 실제로는 8월 7일 개막총회와 청년집회, 8월 8일 주제별 분과회(워크숍)와 여성집회, 8월 9일 폐막총회와 피폭자 국제서명 거리캠페인의 순서로 일정이 진행되었지만, 내용의 흐름상 사회진보연대가 참가한 <비핵·평화 동북아시아와 운동의 역할> 워크숍을 먼저 소개하고 개막총회와 폐막총회, 청년대회와 여성대회 등 나머지 행사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비핵·평화 동북아시아와 운동의 역할> 워크숍
8월 8일에는 나가사키 시 각지에서 주제별 분과회(워크숍) 10개와 현장답사 프로그램 3개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분과회 주제는 ①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 풀뿌리운동의 활동 ② 비핵·평화 동북아시아와 운동의 역할 ③ 탈핵·평화 기반 지자체 만들기 ④ 일본헌법 9조 수호를 통한 탈핵·평화 일본 만들기 ⑤ 피폭 경험을 세계에 알리고 계승하기 – 피폭자와의 연대 ⑥ 핵무기와 핵발전 ⑦ 군사비 삭감을 통한 평화와 인간다운 삶 ⑧ 반핵·평화의 문화 확장 ⑨ 청년포럼 – 피폭자 방문, 배움과 교류 ⑩ 영상으로 배우는 히로시마·나가사키였다. 현장답사 프로그램으로는 ① 사세보 미군기지 답사 ② 나가사키 원폭 건축물 및 기념비 방문 ③ 소년소녀 평화포럼이 있었다. 사회진보연대는 분과회② 비핵·평화 동북아시아와 운동의 역할에서 카와타 타다아키 일본원수협 전국상임이사, 조셉 거슨 미국 평화군축안보캠페인 대표와 함께 패널 발표를 맡았다. 분과회 제목은 ‘동북아시아’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발표와 질의응답의 대부분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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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는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며 동아시아의 핵 경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일 평화운동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주제로, 한일 평화운동이 양국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요구하면서 북한에도 과감한 비핵화 결단을 촉구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사드(THAAD) 철회 투쟁, 일본 평화헌법 개헌 반대 투쟁,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에 한일 평화운동이 지속적으로 연대하여 군비대결의 악순환이 아닌 선제적 군축 조치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나아가 평화 확립만이 아닌, 민주주의와 노동권, 평등 확대에 있어서도 한일 사회운동 연대의 강화가 필요하다. 발표의 상세 내용은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로! - 원수폭금지2019년세계대회 참가기①>(http://www.pssp.org/bbs/view.php?board=focus&nid=7873&page=1)에서 참고할 수 있다.
카와타 타다아키 일본원수협 전국상임이사의 발표는 <판문점 회담 후 과제와 전망 – 일본은 헌법 9조에 맞는 대응을>이란 제목이었다. 우선 심각해지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침략과 식민지배 역사의 직시와 반성에 입각한 이성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6월 30일 판문점 회담 이후로 2,3주 내에 재개될 것이라던 북미 실무회의가 8월까지도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카와타 상임이사는 북미대화 교착 상태를 깰 ‘2개의 열쇠’로 ① 비핵화와 평화의 일체화 ② 단계적 전진을 제시했다. 우선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와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교환되고, 북미대화가 진전되어 종전선언이 (미·중·남·북의)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면 동북아 정세의 대변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 국무부가 북한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전진해야 하는 목표로 두고, 북한이 현재 계속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 활동 등을 중단시키는 핵 개발 동결안이나 대량 살상 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동결안을 비핵화 협상의 최초 단계로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향후 정세에서 일본 평화운동의 역할은 아베 정권이 일본헌법 9조의 평화정신에 따른 대북정책을 실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북한을 군사적·외교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중단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거론하기 전에) 조건 없는 북일대화를 통해 북일 국교 수립을 포함한 포괄적 교섭을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 160여 개 국이 북한과 국교가 있는 상황이다. 2002년 9월 17일의 <북일평양선언>에 명시된 “핵문제 및 미사일문제를 포함한 안보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겠다” “(북일)국교정상화 조기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교섭을 재개한다. 일본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현안 문제에 대해 북한 측은 이러한 유감스러운 문제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와 같은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일본 정권이 1993년 8월 4일의 ‘고노 담화’(<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 관방 장관 담화>)와 1995년 8월 15일의 ‘무라야마 담화’(무라야마 총리 담화 <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을 맞아>)에 명시된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배 및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요구는 특별하거나 무리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권과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과거 사죄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북미프로세스와 한일관계의 해결에 있어 한일 평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조셉 거슨 미국 평화군축안보캠페인 대표는 북미대화 진전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미국 평화운동의 움직임을 소개했다. 이전에는 한반도 문제가 미국 평화운동의 중심 의제가 아니었지만, 2010년대를 경유하면서 제2의 한국 전쟁의 위협이 가시화되었다는 판단에 기존의 미국 평화 운동가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전국적 연대체 코리아피스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가 창설되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코리아피스네트워크는 미국과 북한이 레토릭과 전쟁 준비로 위기를 고조시키던 때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 한국, 일본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쌍중단’(freeze for a freeze)을 요구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부터는 한국 전쟁 종전 선언과 특히 남북한 간의 신뢰 구축을 가로막는 경제 제재의 완화를 요구하면서, 그러면 북한이 호응하여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라 기대했다.
현재는 로 칸나 하원의원이 발의한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법안(H.Res.152)에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의원 37명(2019년 8월 현재)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공동발의 의원의 수를 늘리려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레이스 멩 하원의원이 발의한, 한국계 미국인과 북한 내 가족들의 상봉을 추진하는 법안도 코리아피스네트워크가 함께 하고 있다.
한일관계와 한반도 비핵·평화에 대한 일본 활동가들의 질문들
패널 발표 뒤에는 장장 3시간가량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다. 세계대회 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해외 참가자들에도, 일본 패널들에게도 날카롭고 솔직한 질문을 던지면서 평화운동 내 쟁점들을 논의하고자 한 일본 청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카와타 상임이사의 발표를 듣고 “발표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비판이 너무 적고 무른 것 같은데요. 혹시 원수협에 북한의 핵과 장기적으로 공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거나, 피폭 경험을 공유하는 일본 피폭자 패널에게 “원폭 투하에 대해서 미국이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조선인 피폭자에는 일본의 책임도 있는 것이고, 또 식민지배 역사 전반에서는 일본이 가해자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경청하는 일본 청년들을 보면서 이러한 청년들의 활동이 일본 평화운동에 새로운 활력이 되기를 기대했다.
이하 질의응답은 8월 8일 나가사키 분과회에서 일본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질문과 사회진보연대의 대답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히로시마 일정에서도 비슷한 질의응답들이 있었는데, 내용이 겹치므로 여기에 합쳐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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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조차 존재해서는 안 될 악, 핵무기
나가사키 대회에는 핵무기 폐기와 군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투쟁 주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히로시마 대회에 발언문을 보내 대독시킨 히로시마 시장과 달리, 타우에 토미히사 나가사키 시장이 나가사키 세계대회 개막총회에 직접 참여하여 “핵무기를 없앨 가장 큰 힘은 시민사회로부터 나온다. 피폭자 국제서명을 널리 확산시키자. 지금은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당사자가 생존해 있는 세대에서 그렇지 않은 세대로 넘어가고 있는 분기점이다. 핵무기의 무서움과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아이 세대에까지 제대로 전달하고 알리자”는 취지 발언을 해 인상 깊었다.
핵무기금지조약을 이미 비준·발효한 국가들에서도 세계대회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게오르게 빌헬름 갈호퍼 오스트리아 유럽통합외교부 공사(2018년 5월 8일 핵무기금지조약 발효), 메이렘 리베로 주일 쿠바 임시대리대사(2018년 1월 30일 발효), 멜바 프리아 주일 멕시코 대사(2018년 1월 16일 발효), 세이코 이시카와 주일 베네수엘라 대사(2018년 3월 27일 발효)가 참석하여 자국에서 어떻게 핵무기금지조약을 비준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비핵보유국들이 힘을 합쳐 핵보유국들에 핵무기 폐기를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주로 비동맹 운동에 포함되었던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지역을 중심으로 20여 개 국이 핵무기금지조약을 발효한 가운데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발효한 오스트리아의 사례나, 멕시코 헌법에는 “핵 기술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언급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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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전 세계 정부에 요구하는 피폭자 국제서명 운동 진행상황을 일본 내 각 지역, 주체, 단체별로 보고하는 가운데, 인도와 미국에서 받은 국제서명도 전달되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수합된 서명은 3000만 명 이상에 달한다. <고등학생 1만인 국제서명> 캠페인을 진행하는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피폭자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로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운동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결의했다. 홋카이도,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서 히로시마를 향해 행진해온 ‘평화행진’ 팀도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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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와 후쿠시마에서 온 참가자들은 지역의 투쟁을 소개했다. 새 미군기지인 헤노코 기지가 건설될 예정인 오키나와 현 나고 시의 전 시장이자 오키나와 현 나고 시 전 시장 겸 헤노코신기지건설반대올(All)-오키나와회의 공동대표인 이나미네 스스무 씨는 왜 신기지가 필요하며 왜 이 위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전혀 내놓지 못하면서, “헤노코가 유일하게 적합하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 투쟁은 평화헌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 환경 문제, 민주주의 문제이며 오키나와만이 아니라 일본 전역의 문제라는 발언에서 한국의 성주 소성리 사드 미사일 철거 투쟁이 떠올랐다. 오키나와에서 온 중학교 2학년 학생은 자신은 어패류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 미군기지가 생기면 생태계가 파괴되어 지금 하고 있는 어패류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고 호소했다. 오키나와 현 서남쪽의 미야코지마에 육상 자위대 부대를 배치하는 일본 정부의 계획도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섬 중심부에 500~600명 규모 부대와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어 주민들은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하며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온 여성들은 후쿠시마 어린이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팀 활동을 시작했으며, 오염된 토양 문제 등에 대응하여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소개했다. 작년 2월에 후쿠시마 제2원전이 폐쇄된 것은 2011년 사고 이후 지난 8년에 걸친 투쟁의 결과이며, ‘원전(原電)제로’를 이루는 날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여성대회나 그 외 행사에 참가한 여성들의 발언은 ‘어머니’로서 ‘아이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메시지가 두드러졌다.
대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한일 양국의 피폭자 증언이었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일정 전반에 피폭자들의 고통과 지난 70여 년 간 피폭자들이 이끌어 온 반핵·평화운동에 대한 깊은 존중이 깔려있었다.
나가사키 피폭자를 대표하여 나가사키 청년집회 간담회 패널을 맡은 다나카 테루미 씨는 13세 때 원폭 투하를 경험했다. 그러나 2차대전 종전 직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일본에 가한 원폭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증언했다. 1952년 미군정이 끝나고, 1954년 마샬 군도에서 진행된 미국의 핵실험에 일본 어부들이 피폭되는 사건이 있고서야, 즉 원폭 투하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피폭자들이 피해를 이야기하며 핵무기 금지와 미국의 배상 책임을 주장할 수 있었다. 다나카 씨는 피폭에 따른 건강 문제는 거의 겪지 않은 축에 속하지만, 패전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되었던 일본의 절대적 빈곤 시기를 견디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원폭 투하로 무너진 나가사키는 특히 더 그러했다. 전쟁은 일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고통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살아왔으며 이러한 점을 반드시 후세에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원폭 투하에 대해서 미국이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식민지배 역사 전반에서는 일본이 가해자가 아니냐”는 한 청년 참가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하지 말았어야 할 잘못으로, 시작은 작은 계기였지만 결국 엄청난 전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이라는 것 자체의 무서움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미국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에 적대적이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 아베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 일본 시민들은 한반도와 다른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고통을 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3년 전 ‘피폭자 국제서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2020년 NPT 재검토회의 즈음하여 무언가 긍정적 프레임을 형성하는 정도를 기대하고 시작한 것인데, 바로 다음 해인 2017년 UN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이 채택되어 상상도 하지 못한 성과를 거두었다며, 자신이 죽기 전에 꼭 핵무기금지조약의 전 세계 발효를 실현시키고 싶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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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폐막총회에서 나가사키 피폭자 요코야마 테루코 씨는 4세 때 겪은 원폭 투하 경험을 증언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피폭 사흘 후에야 겨우 방공호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에 아버지의 두 눈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고 얼굴이 피범벅에 퉁퉁 부어있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온 천지가 ‘죽음의 마을’이 되었다. 원폭 투하 후에 태어난 동생에게까지 건강 문제가 발생하여 입퇴원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요코야마 씨는 그런 고통을 인류가 다시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원히, 나가사키가 인류 최후의 피폭지로 남도록 만들자”는 요코야마 씨의 발언이야말로 피해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고자 하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정신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느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이규영 이사의 발언이 바로 이어졌다. 발언 도중 74년 전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시간인 오전 11시 2분이 되어, 약 1분간 모든 참가자가 묵념하며 기리기도 하였다. 이규영 이사는 어릴 적 히로시마에서 겪은 원폭 투하와, 그 날 이래로 아버지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유골조차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한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릴 때 객석에서도 함께 탄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머니는 부상을 입은 팔에서 벌레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해방이 되자 가족들과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고향 사람들은 겉으로는 반겨주면서도 내심 피폭당한 이들을 꺼리는 눈치를 보였다. 피폭의 후유증도 평생 지속되었다. 한국인 피폭자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과 원폭을 투하한 미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시민을 보호해야 할 한국 정부로부터도 오랜 세월 동안 제대로 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 이규영 이사는 핵무기는 그 이름조차 존재해서는 안 될 악으로, 모든 핵무기의 제조와 사용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폭자들은 앞으로 미국과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고,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희생된 한국인 피폭자들의 위령비를 한국 국내에도 세우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나가사키로부터의 호소’와 ‘나가사키에서 전 세계 모든 국가 정부에 보내는 편지’를 참가자가 낭독하며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일정은 막을 내렸다. (이 두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글 아래에 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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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보낸 시간 동안, 일본 평화운동에서 피폭자가 차지하는 엄청난 위상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는 놀라울 만큼 비가시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국의 원폭 투하에 의한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총 사망자 5만 명, (당시) 생존자 5만 명, 총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한국과 한국 시민도 피폭의 ‘당사자’인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피폭 생존자 중 대다수가 한국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며 살아왔다. 1945년으로부터 74년이 지난 2019년 4월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으며, 원폭 2·3세 피해자에 대해서는 파악·지원이 전무하다.
한편 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여론을 조사하면 늘 ‘찬성’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피폭자들이 겪은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핵무기 사용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인 피폭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긴 하지만 원폭 투하 자체는 불가피했다” “원폭 ‘피해’ 강조는 태평양전쟁 전범국인 일본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구실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핵과 관련된 논의가 억압되어 온 역사에 기인한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핵무기 배치, 핵 발전)을 시종일관 지지했으며 이에 반하는 논의는 차단했다. 반핵을 주장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것이었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문제는 의도적으로 금기시되었다. 일제를 패퇴시킨 원폭을 찬양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 반핵운동과의 연대는커녕, 반핵운동의 성장 자체가 어려웠다.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한국전쟁 당시 미국 트루먼 행정부와 이를 이은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대한 원폭 투하를 진지하게 고려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를 “비장한 각오로 환영”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핵 위협은 한국전쟁 시기 내내 상수로 존재하고 있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출격시킨 B-29 폭격기로 모의 한반도 핵공격 훈련, 일명 ‘허드슨 항구 작전’(Operation Hudson Harbor)이 실시되기도 했다. 한반도 핵공격이 현실화되었다면 한반도 민중과 자연이 엄청나게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과 달리 원폭 투하가 오히려 미소 간의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 확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핵공격이 결과적으로 실행되지 않은 것도 이에 대한 우려가 큰 이유였다.) 원폭 투하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그 후유증을 지금까지도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한반도 핵공격이 실현되지 않은 데에는 일본을 포함한 세계 평화운동의 역할이 있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충격과,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냉전 속에서 오히려 핵 개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반핵운동이 분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3개월 전인 1950년 3월 19일, 세계평화위원회(World Peace Council)는 ‘스톡홀름 호소문’(Stockholm Appeal)을 채택하고 서명운동에 나섰다. 호소문은 ‘모든 핵무기 금지’를 요구하며 “어떤 나라든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전범국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과 세계 각국의 총 2억 명 이상이 서명했는데, 일본 평화운동 역시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60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러한 운동이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미 국무장관을 맡았던 헨리 키신저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지적해 온 사실이다.
핵이라는 인류 절멸 무기의 등장,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수의) 자국 시민들이 겪은 끔찍한 희생.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현실화될 뻔한 한반도 본토 핵공격.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전쟁위기.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 사회가, 적어도 평화운동이 적극적으로 핵무기 반대와 피폭자와의 연대를 천명해오지 못한 사실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자 모순이다. 우리의 시계는 이 지점에서 아직 1945년에 멈춰있다.
오늘날까지도 사회운동이 핵무기 숭배나 원폭이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데에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맹목은 한편에서는 보수진영의 ‘핵무장론’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가 곧 우리 민족의 핵무기라는 주장과 때때로 동반하여) 북한의 핵무기 개발·보유 옹호로 나타나고 있다. 두 진영은 정치적으로 극과 극에 있지만 핵에 있어서는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침략과 간섭의 역사를 더 겪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도 핵무장을 포함하여 독자적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상 완전히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극우 지배세력과 일부 민족주의 운동 양자가 공유해온 것이다. 그리고 ‘북핵 문제’는 이를 강화시키고 증폭시키는 물질적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나아가 동아시아 비핵지대 형성이라는 지향은 평화운동 안에서조차 쉽게 합의되지 못하고 있다.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우리의 미래는 ‘핵 없는 세상’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일단 말 그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의 생존이 핵 없는 세상에 달려 있다. 둘째로, 우리 사회운동이 앞으로 가야 할 길도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는 세계 평화운동에 동참하는 데에 있다.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핵무기금지조약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의 핵무기 철폐를 염원하는 세계 평화운동이 있었기에 핵 군축을 강제할 수 없었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한계를 넘어 모든 핵무기를 금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이 탄생할 수 있었다. 8월의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9월 말인 지금까지 두 달 여가 지나는 동안에도, 보츠와나·도미니카·탄자니아·그레나다·레소토·세인트키츠 네비스·잠비아(9월 26일) 총 7개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고 볼리비아(8월 6일), 카자흐스탄(8월 29일), 에콰도르(9월 25일), 방글라데시·라오스·몰디브·키리바티·트리디나드 토바고(9월 26일) 총 8개국이 발효까지 마쳤다. 핵무기금지조약이 UN 차원에서 발효되어 국제사회에 시행되려면 50개국 이상에서 발효되어야 하는데 현재 32개국에서 발효되어 18개국이 남았다.
물론 핵무기 공식보유국들(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들(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남한·일본 등 미국의 핵우산에 포함된 국가들이 핵무기금지조약을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이 운동이 여기까지 왔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하지 않을까. 69년 전의 스톡홀름 호소문 서명운동은 결국 핵무기 금지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핵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막아내는, 애초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운동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 그 자체가 우리에게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한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핵 없는 세상을 향한 길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 사회운동이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 또한 될 수 있다. 아픈 역사를 잊어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억압과 비극의 역사를 우리 역시 핵무기를 개발·보유함으로써 강대국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논리에 활용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과거에 얽매여, 과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핵무기가 이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수많은 한반도 민중을 희생시켰고, 오늘날까지 한반도의 항구적 위기 요인으로 작동해왔다는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베트남·쿠바 등 한반도와 유사하게 미국에 의한 개입을 당해 온 국가들이 이미 핵무기금지조약을 발효했다는 사실은 시사점을 준다.
마지막으로,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은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이지만, 전후 7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일본의 재무장화를 저지하고 국제적 핵무기 철폐 운동을 확대한 데에는 전쟁과 피폭의 쓰라린 과거를 바탕으로 “영원히 나가사키를 인류 최후의 피폭지로 남길 것”을 결의한 일본 평화운동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평화를 실현해가는 데에 한일 평화운동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갈등, 나아가 양국 간의 역사적 쟁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을 성찰하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