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은 발제문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정세인식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어느 계급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기적 이해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라 평하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재 정세에 대한 반전의 계기를 모색해야만 하는 엄중한 정세”라고 말했다. 또한 “발제문의 평가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평가이자 운동의 일부인 사회진보연대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엄중한 정세 속에서 함께 대안을 논의해가자는 취지로 발제문을 작성했음을 밝혔다.
발제문은 2008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10년을 평가하는 두 가지 의미를 설명한다. 첫째로 이 시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위기가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시기이다. 1970년대 불황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반작용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의 최종적 결과로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이후 10년간 미국은 비전통적인 수단까지 동원하여 위기를 막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출구전략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 헤게모니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2008년 이후 10년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흐름 속에서 노동자운동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를 살펴볼 때,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자운동의 독자성과 대안은 사라지고 반보수전선을 매개로 민주당과 긴밀히 결합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내재적 비판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단사차원의 구조조정 투쟁이 정부지원 요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공공부문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중심으로 정부의 공약이행을 촉구하는 부차적인 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총노동전략의 부재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근거로 한 임금극대화전략과 조응한다. 결국 단사별 경제투쟁의 극대화는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과 격차를 심화시켰다.
한편 비정규직 운동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관철되는데, 비정규직 역시 단사별 임금극대화를 통한 정규직 추격을 목표로 하였고 결과적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과 나머지 민간의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화된다.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격차의 구분선으로 두지만 실제로는 대기업·공공부문과 나머지를 경계로 노동자 내부의 격차가 발생한다고 재해석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연대임금-연대고용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발제자는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빠져있는 현재, 연대임금-연대고용은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연대임금-연대고용에 도전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취업자와 경쟁하는 실업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 스스로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조운동은 계급적 목표를 지향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런 관점을 견지했다면 발제문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공공부문의 운동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 일방향의 운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과 민간의 단결과 연대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었는지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이런 평가가 공공부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2000년대 이후 형성된 비정규직 운동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동반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총노동수준의 전략구상과 실현을 위한 조직혁신이 필요하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은 발제문과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운동평가’, ‘경제위기 분석’, ‘앞으로의 방향성’ 세 꼭지로 나누어서 토론문을 제출하였다.
민주노총에 대한 발제문의 평가에 대체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토론자 역시 민주노총 내에서 여러 입장이 전혀 조율되지 못하고 있으며 총연맹 차원에서 그저 가맹조직의 현안요구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현실은 총노동수준에서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임을 이야기하면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도 그런 흐름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설사 대안적인 방안이 제시되어도 조합원 간의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아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노동운동에 명확한 좌표가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인데, 이를 혁신하기 위해 조직체계 혁신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그 구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다시 제대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단순히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넘어서서 “총연맹과 산별의 관계정립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임”을 주장한다.
토론문은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도 짧게 언급하는데, “대체로 사회진보연대의 분석에 동의하지만, 현재의 국면을 ‘최종적’위기라고 명명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의문이다. 붕괴라고 하면 남미국가들의 붕괴양상을 떠올릴 수 있는데 한국은 그와는 다를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라고 쟁점을 제기하였다. 이에 발제자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위기가 장기간 관리될 수 있을지는 주류 경제학자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진보가 어려워지고 헤게모니 교체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윤율이 0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붕괴, 최종적 위기의 의미이고 그런 상황이 이미 벌어졌다는 것이다”고 답변했다. 더해서 “이와 같은 분석은 현재의 국면에서 노동운동이 경제위기가 구조적 위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를 노동운동의 양보를 강요하는 빌미라고 인식하면서 기존의 투쟁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임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경계를 넘어서서 함께하기 위하여
서보람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 조직국장은 발제문에 대해 “발제문의 요지가 본인이 활동하는 공공부문과 연관이 많이 되어있어서 그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토론문의 취지를 밝혔다. 토론문은 전반적으로 “지금 시기에 어떻게 더 많은 노동자를 모아내고 싸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최근 급격히 조직이 확대되었는데, 주로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직종에서 그러했고, 정작 공공운수노조가 주목했던 사회서비스(보육, 요양 등)에서는 조직 확대가 미미했다. 신규조합원들이 대규모 공공기관을 위주로 포진하고 투쟁도 이를 위주로 진행되는데, 비조합원인 대다수의 노동자는 전국에 퍼져있고 영세한 사업장 소속이 많다보니 노동조합의 투쟁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를 볼 때, 조직화의 ‘원칙’이 먼저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소위 ‘될 만한 곳’을 위주로 조직화를 진행하는 경향을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으로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이 기업과 기관별로 성과의 차이가 나고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쌓은 연대도 무너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양적으로 늘어난 조직을 어떻게 통합적이고 질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즉 어떻게 연대를 확대하고 무엇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인가에 대해 (묶어내는 방식은 쟁점이 있겠지만)기관별, 기업별 형태는 지양해야 하며 이를 넘어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강고한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한 이념의 재건이 필요하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국장은 발제문과 관련한 몇 가지 평가를 이야기하면서 토론을 시작하였다. 장석원 국장은 먼저 “발제문에서 ‘왜 노동운동이 촛불과 민주당에 끌려다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박근혜 퇴진촛불이 결국 제도적 장치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재 남한의 정치체제가 굉장히 강고한데 이에 비해서 민중운동이 이를 넘어서는 것은 고사하고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노조운동의 이념이 점차 사라져왔던 역사를 짚는다. 노조운동의 초기, 전노협이 출범할 당시에는 ‘노동해방 평등사회’라는 구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라는 지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의했으나 오늘날에는 총노동차원에서 이와 같은 차원의 논의가 전혀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는 “2000년대 이후 노동자운동은 이념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반자본주의 이념의 복원, 사회연대국가라는 전략의 확보, 이를 실현할 주체인 ‘사회운동정당과 사회운동노조’의 건설이 중요한 과제임을 제기한다. 관련하여 발제문의 단체협약적용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과 연대임금-연대고용을 추구해야한다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왜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추구하는가 하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변혁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연대임금과 연대고용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런 의지를 현재 노동자 운동이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결국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만들고 이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석원 국장은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례를 보며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3시간 정도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이는 모비스 등 부품사가 멈췄기 때문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공장의 식당노동자들을 조직했는데, 3만 명 정도 되는 공장에서 식당이 3일만 멈춰도 작업이 진행될 수 없다. 이처럼 주변에서 압박한다면 원청노동자들도 가만히만 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너무 희망적으로만 보는 것일 수 있으나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운동이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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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임금-연대고용, 함께 토론하고 실천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하여
발제문의 핵심 주제가 연대임금-연대고용이었던 만큼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가 임금(체계)과 관련한 토론을 주되게 진행하였다.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 임금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다. 그는 “현재 사회의 큰 화두가 ‘공정함’인 것 같다. 특히 정규직 전환이 된 사업장에서 많이 나온다. 그런데 ‘임금’은 과연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입직을 위한 노력의 대가라고 흔히 인식하는데, 그 노력의 대가인 신분에서 오는 지대로서 임금을 사고하는 것은 봉건적인 사고가 아닌가 한다. 불로소득 추구가 만연한데 비슷한 맥락이다. 임금은 중요한 전장이다. 지대, 불로소득에 전선이 필요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노동자 단결을 확대·강화할 수 있는 임금체계의 형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노동운동 내에서 주체적으로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문에서 이를 언급한 데에 크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보람 조직국장은 “비슷한 생각이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데 들인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조합원부터가 반발한다”고 이야기하며 “남한사회에서 임금이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관, 어떤 기업, 즉 어디서 하는가’가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취업준비생의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볼 때, 정규직 전환 당시에 반대했던 이들의 왜 그런 입장이었는지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서보람 조직국장은 또한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동의 기준을 논의해야 할 텐데, 이 부분이 방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어떻게 가야 할지 판단해야만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국장은 “연대임금은 교섭전략 같은 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가 현재 연대임금에 준하는 전략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하후상박 같은 전략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계급 일반의 이해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동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은 “임금 문제가 비정규직, 공공기관 전반에서 어떤 식으로든 마찰과 이탈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임금체계의 변화에 있어서 내 소득을 깎는 문제라고만 접근하면 그런 갈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러나 현재 정세가 노동자운동에게 강제하는 조건이 있기에 지금과 같은 호봉제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노동자운동의 목표, 즉 노동자 단결의 확대와 사회 변혁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그러한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면서 “결국 정세에 대한 인식과 이념에 대한 토론을 어렵더라도 활성화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해서는 노동자운동이 마주한 조건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노조 내부의 주체적 위기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 노동자운동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시간만큼 그 방향성을 재고하고 변화시키는 데에는 더 많은 토론과정과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토론회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는 한방이 제출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려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확산한다면 모든 참여자가 공감했듯이 희망이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 정세를 가늠하고 대응하는 데에 핵심적인 질문들을 놓고 당일 발제와 토론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했다.
중국 정권의 성격,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발제문은 미중 갈등을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으로 파악하고 중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새로운 헤게모니에 미달하며 중국공산당의 ‘중국몽’은 주변국들에게 수용 가능한 선진적 민주문명질서로 비치기보다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한, 강권적인 세계질서 구상으로 비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몽과 함께 이를 위한 강군 건설로 제시된 ‘강군몽’에 따른 군사력 현대화 공세적 군사전략 역시 오히려 주변국들로 하여금 경제적·군사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적 대응을 강화하게 촉발하고 있다.
토론에서도 미중 갈등의 결과가 전 세계 미래의 향방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 한국 사회운동에 중국 정권과 중국 체제의 성격에 대해 보다 명확한 판단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었다. 발제는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와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 체제, 중국몽과 같은 민족주의의 확대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다. 중국의 패권 도전은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오히려 주변국들로 하여금 경제적·군사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적 대응을 강화하게 촉발하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 있어 중국의 잠정적인 양보, 협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으나, 그러한 단기적 전망은 트럼프의 중간선거 패배 가능성(현재 민주당 후보들은 트럼프보다 더 강경한 입장임), 혹은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즉 더 큰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토론자들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하는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 비관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정치·경제적인 부분이나 대외정책을 보면 대안적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패권에 대응하는 또 다른 패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공산당의 방침 변화와 시진핑의 권한 강화를 둘러싸고 독재의 강화인지,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로의 전환인지 등에 대해 찬반 논쟁이 비교적 뚜렷했는데 지금은 시진핑 독재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으로 대부분 수렴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을 트럼프와 함께 ‘스트롱맨’이라는 범주로 동일시하는 것에는 아직 의구심이 있다고 발언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2000년대 이후 미국이 벌여온 국지전, 특히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시리아·예멘 등 미국의 중동 개입이 불러온 재앙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중국의 권위주의적-국가자본주의는 미국의 침략주의와는 또 다른 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발언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나토 동맹에 대한 견제 기능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한편으로 (노동착취의 현실이 있기는 하나) 199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의 경제정책이 ‘대국-추격자로서’ 유효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 역시 사라졌다. 중국의 전략은 어떤 새로운 대안적 성장체제 형성이라기보다는 현존하는 위기 구조 내부에서 세계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며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는 것이며, 한국과 같은 후발 추격자를 자국의 크기에 맞게 잘 모방하여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와 다르며, 거기에 미달한다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자본주의 재건’이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같은, 세계 관리전략이 존재했던 데에 비해 중국에는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것 이상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가 장기적 위기에 접어들고 중국 역시 성장률 저하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전략이 권위주의-민족주의-군비경쟁 강화로 예측된다는 점은 앞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더욱 카오스로 빠져들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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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국이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라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동급의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으로 볼 수 있냐”, “현 동아시아 정세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각국의 일방주의로 인한 갈등 증대로 보아야 하느냐”와 같은 플로어 질문들에 대해 발제자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군사세계화의 모순에 대해서 중국이 일국적인 국가자본주의로 도전하는 구도가 현재 존재하나, 이를 레닌이 19세기 자본주의의 특성을 개념화해 설명한 ‘제국주의’의 틀로 보는 것보다는 다른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냉전’이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중국이 미국과 경쟁적인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각국 일방주의라고 하기 보다는 중국·일본의 민족주의가 서로 화해하기 어려우며 각국이 글로벌 공급사슬 내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과거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군사적 헤게모니, 자본이동, 초국적 자본의 변화 등을 경제적 관계로 환원해서 설명했는데, 21세기에 들어서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도 정치적 헤게모니(영토주의, 지정학적 헤게모니) 추구를 전부 경제적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수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입각해서 보면 실제로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느냐 할 때, 경제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는 상태고 국내에서는 불균등 발전 상태다. 자본주의 경쟁의 핵심이 생산성 우위의 국가가 생산성 열위 국가의 부가가치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을 때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종속적 국가인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미국과 비대칭적인데, 미국의 군비가 그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도 미국만큼 무기를 갖겠다는 입장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상태라 미국도 위협을 느낀다. 정리하면 중국은 전통적 의미에서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지정학적 헤게모니 경쟁에 뛰어들었고 지역적 패권국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미국도 유럽도 세계를 관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민주의가 발호하고 있고, 중국 역시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는 속에서 군사적 국지전의 형태도 발생 가능할 국면이다.
한국 사회운동은 홍콩시위를 지지해야 하는가?
올해 6월부터 현재진행형인 홍콩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이날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최근 미중갈등에서 홍콩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데 발제문에 해당 내용이 나오지 않았음을 짚으며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중국 역사에서 기존의 ‘화약고’가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지역이었다면 현재는 홍콩 문제가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베이징 정부 당국의 시위 진압 행태 등에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홍콩 시민들의 요구나, 영국 깃발, 성조기 등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모습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어려워 홍콩 시위에 대한 입장을 단순하게 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찌 되었든 미중갈등과 중국을 파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쟁점인데 한국 진보운동이 이에 대한 판단을 일정 유예하고 있다.
“동아시아 운동세력이 홍콩시위 지지해야 하지 않나? 중국체제 반대하는 민중투쟁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대안적인 동아시아 체제를 말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중국공산당의 민주화가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홍콩시위가 과연 막다른 골목을 피할 수 있을지?” 등 플로어에서도 홍콩시위에 대해 여러 질문이 있었다.
발제자는 홍콩시위의 저항적 특성과 대안에 미달하는 특성을 구분해서 보자고 제안했다. 현 상황이 어떻게 나왔느냐 했을 때,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 속에서 홍콩이 중국 본토 경제에 일정 정도 통합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이 홍콩에 가고 그 과정에서 이민자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등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원정출산, 물가 폭등 등도 반중국정서 형성에 기여했고, 근본적으로 일국양제 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자유 억압과 홍콩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왔다. 현재 시위 양상을 보면 반중국 정서를 강하게 가져가면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5개 요구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직선제 요구를 중국 당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일국양제가 2047년까지 지속될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 간의 갈등은 장기적으로 계속될 문제인데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 측면에서 우리의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시위대의 요구와 양상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홍콩문제의 직접적 발단은 ‘범죄인 송환법’이지만 시위를 이렇게 키운 반중국 불만의 대표적 원인은 홍콩 청년들이 한국보다도 훨씬 심한 취업난, 주택난을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사회의 전망 없음에 대한 절망감, 중국 본토인의 홍콩 점유에 대한 반감. 그러나 이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보다도 홍콩에 대한 경제 정책일 텐데 베이징 정부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인 송환법은 이미 공식 폐기되었고 현재 홍콩 시위대의 핵심 주장은 행정장관 직선제인데, 이는 독립국가로 가는 초입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져 베이징 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중국체제를 비판하는 관점에도 불구하고 홍콩시위를 지지하지 않다면 모순이 아니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판적 대상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자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중국체제 비판이 홍콩시위의 지지로 등치되지는 않는다. 중국공산당의 독점적 지위 자체가 일정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중국공산당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입장을 내고 주장을 할 수는 있더라도, 이를 제1요구로 놓고 개입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북한의 ‘핵 동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대토론회에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이 군비경쟁의 형태로 지속될 것이며 그 속에서 핵무장이 확대되어 핵전쟁의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미국이 실제로 ‘리비아 모델’을 실행한 바 있으므로 북한이 핵무장 해제를 두려워하는 현실적 요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이 이를 빌미로 “자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해주면 추가적인 핵개발·실험을 동결하겠다”고 하는 주장도 남한 사회운동은 수용할 수 없다. 이는 곧 한반도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것이고 동아시아 전체에 일본·남한의 핵무장 추진 등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운동 내 주체사상파가 한반도 핵무장을 인정하고 미국의 침략주의만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반핵평화운동 연대가 필수적이나, 최근의 한일갈등으로 이러한 연대의 지반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한 우려지점이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10여 년 전에도 “북한은 핵무장을 한 것이고, 그 핵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은 비핵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핵동결, 핵군축 협상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NL 내에서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극소수의 의견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의도가 핵동결·핵군축에 있고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남한 사회운동 안에서 분석이자 주장으로 대거 부상하고 있다. 북미 간 협상과정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분석하며 북한은 의지를 가지고 성의를 보이는데 미국이 양보 안한다는 인식도 사회운동 다수 의견이다. 결국 북한의 핵전략에 대한 비판이 NL뿐만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상당히 느슨해져 온 것이다.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필요성, 반핵평화운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발제문은 북한 정권이 권력세습과 체제유지를 위해 점점 거세지는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거듭하여 핵 무력 완성을 추진한 것은 수령론(‘신화화된’ 개인숭배)을 핵심으로 하는 극단화된 스탈린주의(국가자본주의)라는 북한의 사회성격에서 구조적으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하여, 미국은 북한이 영변 외 핵시설의 폐기를 거부하면서도 ‘제재의 전면적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2016년 후 채택된 5건의 제재 결의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6년 이전, 2006년부터 2013년까지 UN 제재들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직접 관련 있는 개인과 단체에 대한 제재와 무기 수출 금지 정도를 담은 것으로, 미국은 결국 ‘노딜’을 택했다.
비핵화 개념의 쟁점과 협상의 목표를 분류하면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확인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어야 하는가(‘한반도 비핵지대화’), 아니면 핵동결·핵군축을 실질적 목적으로 하는 협상이어야 하는가(‘단계적 비핵화’)라고 할 수 있다. 9.19 공동성명은 1항에서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면서 다음을 합의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한국은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통일운동 또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지지했다. 예를 들자면 1990년 1차 범민족대회 서울 채택 결의문이나 범민련 강령에 한반도 비핵지대화가 명시되어 있었다. (2001년 개정 강령에는 빠짐)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은 북한과 미국 양자로부터 동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이행방안도 없어서 모호하다. 이 과정에서 ‘중재자’를 자처했으나, 북한은 남한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비난까지 하고 있다. 또한 남북평화경제로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하면서도, 국방비를 증액하고 미국 무기 수입을 늘리는 등의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모순적이고 무능한 행보는 다시 북핵 협상에 대한 남한 사회 내 국론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연 실현 가능한지도 쟁점이지만)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동결을 승인받으며 체제를 보장받으려 한다면,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와 일본의 재무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일-중국 간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경우 한국은 미국의 핵 공유 옵션을 받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한미 동맹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실질적 핵 보유를 결코 묵인할 수 없다.
남북평화경제, 남북민중연대가 실제로 가능한가?
주체사상파는 미국에 대한 태도와 일본에 대한 태도,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현 집권 세력과 거의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며 남북경협 확대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보이는데, 주체사상파의 전략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공명하는 것이 바로 ‘남북평화경제’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남북평화경제 형성이나 남북교류 사업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그 현실적 실효성을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한일갈등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일각에서도 남북평화경제를 일본과의 관계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나, 남북한 평화경제와 남북 민중연대는 북한 정권의 핵 포기, 북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전제되지 않은 한 실질적인 의미가 없을뿐더러 남북평화경제로 (단기간에) 일본 경제를 따라잡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선동일 뿐이다. 현재는 (문재인 정권이나 주체사상파의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UN과 미국의 대북제재 속에서 제대로 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제재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 국제적 현실이다.
문재인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깨려고 하는가?
자유한국당이 공격하는 대로 실제로 문재인 정권이 ‘주사파’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여당 세력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 외의 장기적 계획 없이 행동하면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민주당 세력은 ‘친일파’, ‘독재 잔재’ 세력이라는 상징적 적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정당화를 만들어 내왔고, ‘2015년 위안부 합의 무력화’나 ‘징용노동자 개인청구권 인정’ 역시 일본을 역사의 주적으로, 정치적 반대파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것을 통해 정치적 지대를 챙겨온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징용노동자 관련 판결은 중요한 외교적 사안이 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3권 분립 원칙 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실제로 징용노동자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도 그에 대해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일본이 무역보복을 하자 이는 한국의 기술진보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며 강력한 갈등적 수사를 통해 국내의 지지를 모으고자 했다. 일본의 대응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과의 역사적 갈등을 쟁점화 시켜 국내에서 정치적 지대를 챙기려는 것은 대안적 한일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행태는 저성장 국면에서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기는 상황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른) ‘1965년 체제’라는 것이 1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난 50년간 한일관계를 규정해온 구조이고 실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에 꼭 그렇게 협상을 했어야 했나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이미 지난 수십 년을 규정해 온 역사적 사건의 영향을 고려하며 그 속에서 개입 지점을 찾아야지, 그저 “1965년 체제는 없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65년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히 무책임하고 상당히 문제적이다. 문재인 정권이 가장 비판받아야 하는 점은 역시 정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전 한국 정권들은 65년 체제를 부정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권도 명시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이 식민지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는 문제적 협정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 협정을 깨고 한일국교단절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행보다. ‘남북평화경제’로 한일 갈등의 공백과 문제를 극복하자는 것 역시 50년 간의 한일관계를 청산해버리자는 식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발제문은 맹목적 반일감정과 “생존을 위해 자존을 포기하지 말자”(한겨레신문), “평화경제로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문재인) 같은 주장을 더 밀고 나가면 경제관계 측면에서 동아시아 자유무역 질서를 이탈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려했다. 한일 경제관계 단절이 기회가 된다는 주장은 주관적 희망일 뿐이며, ‘대안세계화’는 노동자운동이 국제적 노동표준 수립을 위한 국제연대 같은 대안자유무역협정을 추구해 동아시아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내적 비판을 통한 개조를 시도하자는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 질서를 거부하고 이탈하자는, 오히려 그래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반세계화’적 논리에 가깝다. 브렉시트의 예처럼 이는 실행 가능성도 낮고, 민족주의나 보수주의, 심지어 인종주의나 외국인혐오를 동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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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인가, 대안세계화인가?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평가를 두고 사회운동 내에서도 많은 혼란과 쟁점이 야기되고 있다. 민족해방(NL), 통일운동 진영은 과거 민주당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한편, ‘친일잔재 청산’ 등 더욱 일본에 더욱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나 보수언론도 ‘토착왜구’라는 식으로 같이 취급) 미국 패권의 자본주의 비판,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미동맹을 비판해 온 좌파진영에서도 역시 ‘진의’를 의심할 뿐, 한미일동맹의 폐기라는 관점에서 식민지배 배상(대법원 판결 이행)과 지소미아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즉 두 입장 모두 문재인 정부가 지금 하는 걸, 더 잘하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NL의 입장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좌파의 입장 또한 문재인 정부의 민족주의·포퓰리즘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민족주의·포퓰리즘적 성격을 고려하면, 갈등이 극단화되며 기존 한일관계가 사실상 단절되거나 동아시아 자유무역 체제에서 한국이 이탈하는 상황에 내몰릴 경우, 국내 여론이 양분되고 극단화되며 발생할 후과와 반작용은 재앙 수준일 수 있다. 미중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미협상이 매우 불안정한 변수라는 것을 고려하면,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 약화나 개입 축소가 곧바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대법원 판결이나 지소미아 파기와 같은 행위가 동아시아 냉전 질서를 데탕트 국면으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운동은 이러한 흐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숙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중 간 경쟁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북핵에 대한 무비판적인 남북경협이나, 반일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대안적인 경제사회구조와 평화를 향한 방향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운동은 오랜 시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해왔지만, 현 시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보다 포퓰리즘, 보호무역주의가 만들고 있는 반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더 시급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이라는 점과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는 가운데 좌파적 대안도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섣불리 근거 없는 대안을 찾기보다는 경제위기, 전쟁과 같은 노동자민중의 삶에 극단적인 위험과 파괴를 만드는 상황을 제어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확장가능한 대안적 이념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보수세력이 선점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사회운동이 자본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주도할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국제주의, 평화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노력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모색해야 한다.
정종권 편집국장은 이에 대해 현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비판보다 포퓰리즘, 반세계화 비판이 더 시급하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와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지금 당장 실질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자유주의와 반세계화 양자에 대한 비판을 비슷한 비중으로 유지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현 상황이 체계적 카오스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반세계화 비판이 정세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가 바로 반세계화라는 점이다. 미국의 군사세계화가 반세계화를 초래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반세계화 비판은 신자유주의 비판의 강력한 형태라는 것이다.
한미일 반핵평화운동 연대, 어렵더라도 유일한 답
발제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포퓰리즘적 반세계화와 군사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핵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중심축으로 하여, 일본의 비핵3원칙과 평화헌법을 지지대로 하여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위한 대중적 여론을 형성하려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지금 당장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을 막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실현’ 요구를 중심으로, 남북미의 군사적 행동 재개를 저지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반세계화의 강화가 아니라 대안세계화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노동자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국제적 노동표준, 초민족자본의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한 통제, 무역협정에서 노동조항에 개입하는 노동기준 연계 전략 등이 이러한 고민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인 제약이다. 현재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무역질서는 미국이라는 시장을 두고 수출경쟁을 하는 구조다.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상태 역시 비대칭적인데 현재 중국과 북한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사회운동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남한 일본, 대만, 미국 등의 노동자운동은 공동의 요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셋째, 현재 대안세계화를 위한 동아시아 노동자연대가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전쟁 위기가 상존하고 있는 지역 내 상황에 대한 긴급한 대응 차원에서 반핵평화운동 관점의 동아시아 연대를 모색해볼 수 있다. 핵무기금지조약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 비준을 전 세계 정부에 요구하는 국제적 운동 흐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 7월 7일 유엔 총회에서 122개국의 찬성(반대 1, 기권 1)으로 통과한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간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첫 번째 국제적 합의다.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배치 전달, 사용, 사용 위협을 금지하였다. 핵무기금지조약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50개국 이상에서 발효되어야 하는데 현재(2019년 10월 초) 32개국에서 발효되어 18개국이 남았다.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보유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평가되는 4개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9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한국, 일본 등 미국의 핵우산에 포함된 국가도 불참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조약 발효 실현에 현실적인 제약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부터 동아시아 비핵지대 창설을 위한 대중적 여론을 만들어 가기 위해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주목하고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동아시아 비핵화라는 전망을 실현하는 국제연대에 매우 중요한 지지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영토와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공동의 흐름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한일 노동자, 시민 간 교류와 공동 행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서로 각국의 지배계급을 비판할 뿐 현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외교적 해법을 공동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일 민중연대를 통해 불법적 한일병합을 원천무효화하고 식민지배 청산을 완수하자”는 일각의 주장 또한 실천적으로 복잡한 문제다. 일본에도 이러한 입장이 적지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지금이라도 한일협정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협정 체결을 위해 한일관계의 단절도 불사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인식하며 문재인 정부의 민족주의·포퓰리즘적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국제주의적 대안이념으로 사회운동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남미와 남유럽 좌파들의 한계와 실패를 통해, 사회변혁의 일국적 우회로는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대토론회는 한국에서부터 진정 현실적이고 정세적 과제로서 국제주의·평화주의적 사회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결의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