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DDA 협상 양허안 제출 시한에 즈음하여 WTO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 이하 DDA)가 9월 멕시코 칸쿤에서의 각료회의와 서비스 협정 및 농업 협정 양허안 제출 시기(3월말)를 앞두고, 설정된 의제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반면 9월 각료회의를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 사회운동들의 네트워크가 꾸려지는 등 DDA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 역시 거세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남한 민중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해 10월 7일 교사, 학생, 교수, 교육단체 등 교육주체들은 「WTO교육개방·교육시장화 관련 4대 입법 및 양허안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를 출범시켰다. 공투본은 향후 서비스협정에서 교육 부문 개방뿐만 아니라 이를 예비하는 각종 입법안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공투본은 3월 6일 국제포럼, 3월 7일 「WTO 교육개방 음모 분쇄를 위한 비상 시국선언」, 3월 15일 「WTO 교육개방음모분쇄와 교육공공성쟁취를 위한 3.15 범국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도 양허안 제출 시한을 앞두고 투쟁의 의지를 드높이고 있다. WTO DDA 협상뿐만 아니라, 얼마 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까지 체결된 상황에서 정부의 농업말살정책이 그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전농은 3월에 예정되어있는 시·군·구 영농발대식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 반대투쟁으로 만들어가고, 3월 말 열릴 WTO 농업위원회 회의에 맞춘 전 세계 농민들의 투쟁에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이미 많은 수입농산물이 들어오고 있고, 2004년 쌀 재협상에서 쌀 개방을 준비하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방화-사유화 정책 일등 국가, 한국 남한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WTO DDA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다. 작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개방할 것은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그만큼 우리가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는 것이 WTO DDA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라고 천명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 입장은 변할 것이 없다. 현재 DDA 협상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의제는 서비스 분야와 농업 분야이다. 서비스 분야는 국가의 공적 서비스 영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농업 분야는 농산물 수입국과 수출국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있는 상황에서 갈등적인 분야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 두 분야에 있어서도 WTO의 모범생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대다수의 국가들이 아직 양허요청안도 제출하지 않은 서비스, 농업 부문에서 자발적인 자유화 조치까지 취하면서 개방을 꺼리는 다른 국가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와 농업 분야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마무리 될 당시 완전한 협상에 이르지 못한 분야였다. WTO 출범 시(1995년), 이 두 분야는 기설정의제(후속협상의제, Built-in agenda)로 규정되어 5년 이내에 협상을 재개해야하는 분야가 되었다. 이 규정에 따라서 2000년 2월부터 협상이 재개되었으며, 각 국은 올해 3월 31일까지 개방요청 사항을 담은 1차 양허안을 제출해야 한다. 현재 서비스협상의 경우 145개의 WTO 가입국들 중 단지 30여 개 국가만이 시장개방에 관한 양허요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농업협정의 경우도 1차로 제출된 세부원칙이 농산물 수출국의 입장을 강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저개발국 중 많은 나라가 아직 어떤 양허요구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 또 발전도상국 역시 다자간협상에서 서비스부분을 자유화하는 대가로 얻게 될 이익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지극히 회의적이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두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 개방 입장을 제출했다. 과연 한국 정부는 개방화 조치에 뒤따르는 어떤 특혜를 노리고 자진해서 입장을 제출했는지 사뭇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교육 개방을 핵심으로 하는 서비스 협상의 문제점 서비스 분야는 12개 분야 155개 사항을 포함하고, 구체적으로는 교육, 의료, 문화, 금융, 건설, 해운, 통신, 법률, 시청각, 에너지 등이 포함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 해 6월말 36개국을 상대로 12개 분야에 걸쳐 서비스 시장 개방에 관한 양허요청서를 제출한 후, 미국,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중국 등 18개국과 총 37회에 걸쳐 양자 협상을 가지며 양허요청안에 대해 조율해왔다. 정부는 지난 2월말까지 26개국으로부터 양허요청서를 접수했으며, 3월 3일부터 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비스 시장개방 협상의 일환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이집트 등 주요 개도국들과 양자협상을 갖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양허요청서와 양자협상의 결과에 따라 3월말까지 양허안을 제출하는 것이 개략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서비스 개방 협정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입장이 확연히 갈리는 분야이다. '무역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국제센터'가 지난 2월에 제출한 서비스협정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국들은 더 많은 시장개방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저개발국 중 많은 나라는 아직 어떤 양허요구도 하지 않았고, 개발도상국은 다자간 협상에서 서비스 부분을 자유화한다고 해서 그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회의적"이라고 한다. 사실 선진국의 경우 서비스 협정의 많은 분야가 이미 상당 수준 개방되어 있어서 더 개방할 것도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서비스 협정의 많은 부분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개도국의 서비스 분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한 개도국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갈등으로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은 이미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이룬 국가들에게 특혜를 주자는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취한 자유화 조치에 대해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인데, 이 또한 이미 개방을 상당 수준 진행한 선진국의 입장이 강하게 담겨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이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는 이미 남한이 많은 부분을 자발적으로 자유화했다는 것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정부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서비스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의 경우 지난 시기 상당 수준의 자유화 조치를 자발적으로 시행했고, 이제 남은 것은 그나마 공적서비스 영역뿐이다. 미국, 유럽연합 등의 국가들이 남한에게 개방을 요구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중 특히 교육의 경우 현재 알려진 바로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이 양허요청안을 통해 한국의 교육시장을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며 한국 정부의 의지 역시 비상한 부문이다. 그런데 교육시장이 개방될 경우 생기는 문제점들은 누차 지적된대로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교육의 공공성이 붕괴될 것이다. 교육개방은 국가가 공적인 지원을 철회하고, 영리행위를 추구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규제나 조절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 개방을 통해 국가의 공적 지원이 축소, 철폐되면 교육비의 부담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외국의 자본이 교육의 영역에 무차별 침투하게 된다. 교육기관의 질적인 책임을 담보할 수 없는 외국교육기관이 난립하면서 학문의 인기도에 따른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투기의 대상,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외국의 대학 또는 대학원이 국내에 설립된 후 파산하게 되면 그간 투자했던 자본들을 고스란히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한술 더 떠 양허안이 확정되기도 전에 교육관련 법령을 정비하여 입법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특구법, 사립학교법 등이 바로 이러한 개방의 흐름에 맞춰 추진되고 있는 실내용들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 농업 포기를 공식 선언하다 농업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부터 농업 부문을 개방하는 문제는 농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던 분야이다. 그만큼 개방을 반대하는 입장들이 다양하게 제출되었던 부문임에도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개방제안서를 제출했다. 비슷한 시기 WTO 농업협상특별위원회 의장 하빈슨은 DDA 농업협상의 세부원칙에 관한 1차 초안을 배포했다. 세부원칙이 담고 있는 주요내용은, 관세를 감축하고, 감축대상에 대한 보조를 줄이고, 시장접근 물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및 주요 농산물 수출국은 기대수준보다는 미흡하지만 협상의 기초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한 반면, 유럽연합, 일본 등 농산물 수입국들의 경우 세부원칙 초안이 수출국 입장에 치우쳐 수입국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은 개방제안서를 스스로 제출하는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 주요내용은 2006년부터 6년 간에 걸쳐 관세감축을 이행하되 품목별로는 최소한 15%를 줄이고 농업 국내보조금 역시 총액기준 55%를 6년에 걸쳐 감축하는 방안이다. 현재 호주, 미국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 수출국 및 유럽연합만이 개방제안서를 제출했을 뿐인데 한국은 제안서를 제출한 유일한 개도국이 되었고, 성급하게 구체적인 개방 수치까지 포함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당시 국내 농업의 생산기반, 농가소득, 경영규모 등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고, 현재의 한국 농업 상황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가 가능했음에도, 알아서 개방제안서를 제출해 수출국들에게 개방의 여지를 제공한 것이다. 이번 DDA 협상에서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분야의 개방 제안서를 미리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문화만큼은 협상에서 제외한다는 발언을 한 것 등을 종합해 볼 때 통상당국이 특히나 농업 협상을 포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UR협정에 이어 WTO DDA 협상이 이대로 타결된다면 우리 농업은 시장개방이 전면적으로 가속화되어 파탄날 수밖에 없는 최대의 위기상황이라 하겠다. 더 많은 자본유치를 위한 한국 정부의 자해(自害)와 민중에 대한 공갈협박 한국 정부의 '알아서 기는' 협상태도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전략은 기존의 중화학·수출중심 발전 국가에서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부실을 처리하여 남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실확대를 막고, 공적자금 조성을 통해 위기에 빠진 재벌, 금융사들을 구제함으로써 경제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막았으며, 금융부문의 규제를 없애고, 금융시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초민족 자본을 다시 유인하는 것이 김대중 정권이 이야기했던 경제위기 극복이고, 경제성장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권에게 남겨진 과제는 분명한데,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함으로써 '자본유치형'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이 계속해서 '신흥시장'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저금리, 연기금 주식투자 등의 증시부양 정책과 금융 및 서비스 분야의 개방, 자유화 조치 등이 계속해서 추진되는 것이다. 금융부문에 있어서 자본의 진입 및 이탈에 대한 규제는 상당 수준 자유화 되어있는 상황이고, 따라서 DDA 서비스 협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남은 분야는 교육, 의료, 문화 등이다. 결국 서비스 협정에 앞장서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하여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이 속에서 민중의 삶의 권리는 투자의 대상으로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된다. 게다가 남한 자본주의의 이러한 전략은 기존 산업의 파괴―특히 농업의 포기―를 동반한다. IT, BT 등 외국자본 유치에 매력적이고, 주식시장 부양책과 연관되어 있는 산업들이 적극 육성되는 것이다. 농업 협정에서 보여주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은 외국인 자본 유치를 위해 농업을 대가로 내어놓는 것이라 할 것이다. 전 민중의 투쟁으로 WTO 개방에 맞서자! 남한 민중들이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넓은 개방, 더 많은 자유를 외치는 정부의 모습은 민중의 삶을 담보로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남한 자본주의가 민중에게 돌려주는 것은 더 커다란 궁핍과 배제, 삶의 파탄이다. AIDS를 비롯한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적재산권 협정을 무기로 위세를 부리는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 때문이다. 수입 농산물의 싼 가격에 밀려 농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소규모 농민들의 비애는 전 세계 농산물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의 요구에서 비롯된다. 수도사업이 민영화되어 외국자본에게 넘어간 후,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사람들만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남한에서도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교육, 의료, 문화, 통신 등 각종 서비스 분야 개방은 외국자본을 더 많이 유치해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자본의 팽창을 위해 민중들의 권리를 팔아 넘기는 것이다. 교육시장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교육주체들의 싸움, 농업개방을 막아내기 위한 농민들의 싸움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 민중의 싸움으로 만들어가야 할 임무가 우리에게 있다.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해 민중의 삶과 권리를 희생시키는 WTO 개방, 경제특구 등에 맞서 오늘 한국의 민중은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다. 지난 농민운동의 역사를 모두 바쳐 투쟁에 임하겠다는 농민, 교육의 시장화를 막아내고 교육공공성을 쟁취하겠다는 교육부문, 그리고 개방으로 인해 침해당하는 노동권을 지켜내려는 노동자 등이 선도하고 전 민중이 가세하는 투쟁으로 삶을 지켜내야 한다. 3월 말의 민중대회부터 9월의 WTO 각료회의 투쟁, 11월 전민중 총궐기 투쟁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중연대를 중심으로 단결항 저항해야 한다. 나아가 WTO를 본질을 폭로하고 WTO 반대와 해체를 주장하는 전세계 민중들과 연대하여 DDA 협상에 대응해야 한다. 초민족적 기업과 국제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저항의 세계화'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엘리트들의 배타적인 사교모임인 '다보스 포럼'에 맞서 민중 중심의 대안적 전망을 모색하는 세계 인민들의 연대의 장으로 2001년 1월에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은 올해로 3회를 맞게 되었다.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3회 사회포럼은 놀라울 만큼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올해 세계사회포럼에는 156개국 717개 조직의 대표단 2만763명을 포함하여 10만여 명이라는 거대한 인원이 참석했다. 전체 회의, 세미나, 패널토론 등 공식 프로그램도 대폭 확대되었고, 이외에도 포럼기간동안 참가자들이 다양하게 조직한 워크샵이 1.286개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2회에 걸친 세계사회포럼은 유럽사회포럼(2002.11, 이탈리아 피렌체) 아시아사회포럼(2003.1, 인도 하이데라바드), 등 '지역별 사회포럼'과 정세적으로 중요한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주제별 사회포럼'('개발도상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 2002. 아르헨티나, '팬-아마존사회포럼')등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 곳곳의 더 많은 사회운동들에게 더욱 풍부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볼 것은 양적인 성장만이 아니다. 'Um outro mundo poss vel(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으로 표상되는 이 거대한 흐름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극복될 수 없는 자본의 구조적 위기속에서 스스로 삶의 대안을 모색해가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는 장이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분출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상호 적합한 연대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모색해가고 있다. 3회 사회포럼의 개요- 무엇이 논의되었나? 2001년 9.11 사태이후 '대 태러전쟁'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는 미국의 세계 각 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이라크에 대한 공습계획과 북한 핵의혹을 둘러싼 한반도에 대한 전쟁위협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장기적 불황과 이에 따라 민중의 삶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한 사회운동 세력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포럼의 시작과 끝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반대, 식량 주권을 훼손하고 의료, 전력, 수자원 등 공공 서비스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WTO 도하개발의제와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전 세계 민중의 삶의 위기를 초래하는 외채시스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로 이루어졌다. 특히, 그 동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반전시위의 기운은 개·폐막 행진으로 이어져, 참석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처해있는 이라크,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등의 기를 흔들며 각 국 민중들과 연대의 의지를 표명했다. 4일간 진행된 크고 작은 회의들은 짧게는 2003년 한해, 길게는 향후 몇 년간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24·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세계 사회운동 대회(World Social Movements Assembly)'에서는 오는 2월 15일 30여 개의 주요도시에 동시다발로 '반전평화 국제 행동' 개최할 것을 결의했으며, 3·8 여성의 날에는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G8 정상회의(6월, 프랑스 에비앙), WTO 5차 각료회의(9월, 멕시코 칸쿤), IMF/세계은행 연차총회(9월, 미국 워싱턴), FTAA 전미 정상회의(10월, 미국 마이애미)를 계기로 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로 했다. 더불어 국제소농조직(Via-campesina)의 '국제농민대회', 주빌리사우스(Jubilee South- 남반구 외채거부 캠페인 네트워크)의 '외채의 부당성에 관한 회의', [우리의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연합(Our World Is Not For Sale-WTO 도하개발의제 반대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전략회의, '세계 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의 워크샵'등에서는 이러한 행동 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세계 정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각 국에서 혹은 지역별로 이루어진 투쟁들을 보고하였으며, 향후 몇 년간의 계획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는 국가 붕괴와 경제파산을 경험한 남미의 참석자들은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채시스템으로 지적하며, 이는 IMF와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조정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채무국들의 지불 거부를 통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외채 지불거부가 민중들의 삶에 아무런 악영향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으며,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올해 새롭게 취임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초국적 곡물기업에 의해 토지에 대한 권리와 종자 및 비료 사용에 대한 결정권 등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각 국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미자유무역지대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음이 보고되었고, 이러한 투쟁을 오는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5차 각료회의 반대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 제기되었다. 2001년 출범한 WTO DDA 협상이 식량, 물, 교육, 의료, 에너지 등의 공공서비스를 상품화함으로써 민중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HIV/AIDS등 심각한 전염병으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민중들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과 여성들의 건강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파괴하고 있음이 증언되었으며, 특히 이를 추동하는 농업협상과 서비스협상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더불어 현재 남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에 항의하는 반미시위가, 미국의 군사주의적 전략을 반대하는 국제연대 투쟁으로 급진화 될 가능성에 주목하며, 부시정부의 북한 핵의혹을 빌미로 한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한국 참가단의 호소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분출과 연대의 조건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브라질의 CUT(노동조합총연맹), MST(무토지농민운동), ATTAC(금융거래과세운동)등 8개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조직으로 구성된 '브라질 조직위원회(Brazilian Organizing Committee)'와 100여개의 조직으로 구성된 '국제평의회(Internatioal Committee-자세한 목록은 http://www.forumsocialmundial.org.br 참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브라질 조직위원회의 역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2002년에 2차례 진행된 국제평의회 회의에서는 그 역할을 국제평의회로 옮겨올 것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점차 대륙별 사회포럼과 지역별 네트워크들이 활발하게 조직되고 있고 그 규모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러한 기구들의 역할은 개최 장소를 결정하고 이에 따른 각종 실무사항을 점검하는 정도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동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합의해 가는 과정은 이들 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운동들간의 수평적인 논의와 교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미 사회운동들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미국과 인접하여 끊임없는 군사적, 정치적 위협과 반복되는 국가 경제의 파산 상태를 경험하며 폭발적인 민중들의 투쟁이 분출하고 있는 남미는 최근 브라질, 에콰도르 등 잇단 좌파정권의 등장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극한의 생존의 위협이라는 상황을 맞이한 실업노동자, 무토지 농민, 여성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교육훈련 하며 삶의 터전을 공동으로 형성해 가는 방식의 운동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들은 '다양한 운동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라는 논점을 제출하며 세계사회포럼의 규모와 내용이 풍부해지는데 많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좌파정당들의 제도화와, 타협을 통한 기득권의 방어로 일관하고 있는 노조운동들을 목도하면서 스스로를 '정당이나 노조에 독립적인 사회운동들'로 표상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노조운동과 사회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논점이 긴요한 논의과제로 제기되도록 하였다. 포럼의 참석자들은 작게는 몇몇 토론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할당된 2개의 마이크를 번갈아 가동하며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운동이 서로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며 연대의 조건을 창출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사회포럼은 수많은 사회운동들 간의 다양한 논쟁과 경험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의 긍정적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각 국의 투쟁을 강화하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이행의 조건을 제시해 줄 것인지는 단언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한의 민중운동이 전 세계의 민중들과의 수평적인 연대의 장에 뛰어들기 위해 스스로 어떤 조건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PSSP
지난 2월 1일(현지시간)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16일 동안의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도중 공중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7명의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다. 이에 따라 42년 유인(有人) 우주탐험 역사상 사고로 희생된 우주 비행사는 총 21명에 이르게 됐다. 사고 직후 미국 정부는 무기한 우주왕복선 발사 중지를 선언했다. 86년 챌린저호 폭발사건 때도 32개월 동안 우주왕복선 발사가 일절 불가능했다. 더구나 폭발 후 발견된 잔해들이 워낙 심하게 파손되고 불에 타 사고의 인과관계를 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이 어려울 수도 있어 약 3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우주왕복선 계획은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 정부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추진해 온 우주개발계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부시 미국 대통령은“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은 이번 참사를 극복하고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주개발, 우주탐사는 적어도 근대가 시작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J. 베른의 [달세계 일주]는 270m나 되는 대포를 쏴서 운항하는 탄환우주선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1969년 7월 21일, 전 세계의 수많은 인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지구 이외의 행성에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은 아마 우주여행의 꿈이 공상이 아닌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 우주를 여행하며 지구 이외의 행성에 도시를 만들고 인류 이외의 생명체와 만나는 상상은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우주탐사의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이런 선언이 되풀이된다. "인류는 어떤 역경을 이겨내더라도 지구의 한계를 벗어나 우주를 자유롭게 거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들에는 '왜'라는 질문이 생략되어 있기 일쑤다. 주변의 환경의 제약을 넘어 서고자 하는 인류의 불굴의 의지만이 반복되어 선언되고, 낭만적 이미지들로 채색되어 되풀이될 뿐이다. 우주왕복선/국제우주정거장 계획을 둘러싼 논란 이번에 사고를 당한 우주왕복선의 컬럼비아호는 우주 공간에서 과학적 실험을 수행하는 한편, 국제우주정거장(ISS: International Space Station)을 건설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우주공간의 거대한 실험실로 활용한다는 계획에 따라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은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 모두 16개국이 참여한 최초의 국제 우주프로그램이다. 컬럼비아호 등 미국 우주왕복선은 정거장 건설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전담해 실어 날라 왔다. 태양전지판이나 트러스와 같은 부피가 큰 부품을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은 우주왕복선만이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폭발사고는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작업은 물론 우주실험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촉발시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은 화성에 가거나, 달 등에 인간이 거주하는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주 공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거장 건설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산출될 수 있는 과학적 성과에 비해 비용이 턱없이 비싸다는 것.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정이 투여되어야 함에도 정거장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실험들은 '그리 중요치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훨씬 저렴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이 반대의 근거이다. 나아가 유인 우주탐사 전반에 대한 반대의 입장도 있다. 무인(無人) 우주선과 무인 탐사로봇 등을 이용해서 훨씬 풍부한 과학적 탐사가 가능함에도 유인 우주탐사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우주탐사의 성과는, 과학적이든 실용적이든 거의 모두 무인 우주선과 인공위성에서 얻어 온 것이 사실이다. 결국 우주정거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연구의 성과가 인류에게 그리 중요한 과학적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미 우주항공국은 왜 유인 우주탐사, 그리고 우주왕복선과 우주정거장 계획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원인은 미국의 우주탐사 계획이 1950-60년대 소련과 체제 경쟁 속에서 왜곡되어 온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왜 달에 갔는가?: 우주를 향한 정치적 레이스 인류를 최초로 달 표면 위에 올려놓은 '아폴로 계획'이 미국이 1950년대 냉전체제에서 소련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스푸트니크호의 발사에 성공한 것이 미국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존재했던 우주개발에 대한 계획의 방향을 선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소련을 이길 수 있는 유인 우주탐사 계획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킨다는 '아폴로 계획'이 수립된다. 결국, J.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10년 안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은 69년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의 성공으로 현실화된다.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인'이었다. 그는 "모든 인류를 위해 (달에) 왔다."고 쓰인 깃발과 함께 미국의 국기를 달 표면에 꽂았다. 미국은 전 세계 수많은 인류에게 자신의 체제가 가장 우월함을, 자신의 능력만이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어떤 방식보다 강력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아폴로 계획 이전에, 유인 우주탐사 계획은 단계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주되게 입안했던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인 V-2를 개발했던 W. 폰 브라운이었다. 그는 먼저 지구 상공에 우주정거장을 띄우고, 우주정거장과 지구의 연락을 담당할 우주왕복선을 개발하여, 이후 달, 화성 혹은 그 이상으로 탐사를 하기 위한 발사시설을 건설하는 구상을 세웠다. 그러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J.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러한 단계적 접근 방식을 단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올 수 있는 아폴로 계획으로 대체했다. 또한 극적인 효과를 위해 무인 우주탐사보다 유인 우주탐사가 훨씬 선호된다. 일단 목표가 달성되자 미국의 우주탐사 계획은 정치적 추진력을 잃어 갔다. 더구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실패로 돌아가며 미국 정부는 엄청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72년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재정이 바닥난 미 항공우주국에 더 이상의 전폭적인 지원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왕복선에 대한 개발을 선택하는 대신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은 유보한다. 그러나 '정거장 없는 셔틀버스'(컬럼비아호)는 그 근거가 부족했다. 미 항공우주국은 우주왕복선 계획을 폐기하는 대신 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를 되살리는 방안을 택했다. 결국 1984년 레이건 정부에 의해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은 다시 살아났고, 90년대에 들어와 몰락한 구소련 등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이 추진되기에 이른다. 미국의 우주탐사 계획은 1950-60년대 정치적 목표에 종속되어 왜곡된 방식으로 기틀이 잡혀져 버렸다. 무인 탐사보다는 유인 탐사가 선호되었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데 집착해 왔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관련된 기업-특히, 보잉-와 전문가로 구성된 강력한 집단을 형성시켰고, 다시 이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우주탐사가 진행되어 왔다. 지금의 우주왕복선-국제우주정거장은 이런 뒤틀린 구조의 결과물인 것이다.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의 또 다른 추진력: 우주의 군사적 이용(1950-60년대) 그런데, 정치적 배경만으로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미국 정부가 다소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계획을 추진하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은 단지 냉전시대의 정치적 선전(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값비싼)이나 미 우주항공국의 특수한 이해 때문만은 아니다. 냉전시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우주를 개발하고 활용함에 있어 군사적 목표와 이를 위한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왔다. 미국이 군사적인 차원에서 우주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이다. 특히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자, 소련이 머지않아 지구 궤도상에 무기를 배치해 미국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달을 군사기지화 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우주레이스는 단순한 선전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적 이유에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우주의 군사적 이용의 역사는 탄도미사일의 방어 수단 개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탄도미사일 능력은 핵무기 기술과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확실하게' 수천 만 명 내지는 수억 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미국과 소련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방어하는 수단을 개발하고자 박차를 가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우주에서 핵무기를 통해 요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다. 1958-62년에 걸쳐 미국은 7차례, 소련은 4차례에 걸쳐 우주 공간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그러나 핵탄두를 사용하는 우주 요격 계획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만큼 비용이 엄청났고, 핵폭발로 인한 전자기파가 자국의 레이더망을 무력화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은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제한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1963년에는 제한핵실험금지조약으로 우주에서 핵실험 금지를 포함시켰고, 1967년에는 UN 결의안 형태로 '우주의군사적이용금지조약'이 통과되기도 했다. 또한 1972년 '미사일방어망제한협정'(ABM Treaty)을 통해 미소 양측이 우주 배치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금지하기도 했다. 미국의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위한 구상은 단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요격 계획으로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에는 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핵무장을 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에 있어 중요한 프로젝트로 검토되었다. 달의 뒷면(언제나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을 이용하여 미사일기지와 적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는 정보기지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주되게 제기되었다. 1958년에는 미국의 공군에 의해 체계적인 검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정보수집 활동을 주로 하는 기지를 건설하는 'SR-183'과 직접적인 공격을 담당하는 'SR-192', 달의 궤도에 무기를 설치하거나 무기를 실은 우주선을 배치하는 'SR-182' 등의 계획이 연구되었다. 공군만이 아니라 육군 역시 59년 "Project Horizon" 이라는 비슷한 연구 보고서를 내 놓았다. 물론 대부분 연구 결과 군사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끝내 정부의 승인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60년대 아폴로 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달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공군은 61년 케네디의 '달 착륙 선언'이 있자, 50년대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LUNEX'(Lunar Expedition Plan: 달정복계획)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 들여 졌다면, 69년에는 미국의 국기만이 아니라 미국의 국기가 새겨진 무기가 지구를 겨냥하고 세워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비전 2020: "우주를 통제하는 자가 지구를 장악한다!" 군사적 목적으로 우주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70년 이후 사라진 듯 했다. 분명 1950-60년대와 같은 우주공간에서 군비경쟁은 사라졌다. 경쟁의 한 축이었던 소련은 해체되었고 냉전체제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자신의 지위를 유지·강화하는데 우주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중요한 측면으로 고려해 왔다. 미 우주사령부(The United State SpaceCommand)는 1996년 '비전 2020'을 발표하여 "모든 전장에서의 모든 형태의 지배력"이 필요하며, 우주공간을 군사적으로 장악할 준비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이는 이후 1998년 '장기계획서'(Long Range Plan)로 보다 구체화된다. 장기계획서는 "지금이야말로 혁신된 개념의 군사작전인 우주공간에서의 군사작전 능력과 조직을 개발해 21세기의 도전에 대비해야 할 때"라며 구체적인 우주통제계획, 우주장악계획, 군통합계획, 전지구적 개입계획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우주공간의 군사적 활용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전2020'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계경제의 통합은 지속될 것이며, 부국과 빈국의 간극은 더욱 커지는 상황을 맞아 우주공간과 이를 통한 지구 장악을 통해 미국은 빈국의 불만을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의 필연적인 결과 배제된 지역과 사람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지역적 분쟁들을 군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얼마나 직설적인 화법인가?) 이를 위해서는 우주라는 전략적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 우주(특히 근-지구권의 우주)는 기존의 무기체계, 육지, 바다 등과 같은 다른 전장(戰場)에 비해 손쉽게, 그리고 정확히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세계 전역에 손쉽게 군사적 억지력 혹은 공격력을 행사할 수 있어, 앞으로 문제가 될 지역적 분쟁을 관리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구상이 50년대의 '달의 군사기지화'를 위한 수많은 제안들과 달리 '계획'에서 '실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서 드러난 미국의 새로운 전쟁개념인 '예방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우주의 장악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의 MD(미사일방어)계획은 이러한 미국의 우주를 통한 지구장악 전략의 첫 걸음이다. MD의 핵심적 기술인, 정확한 정보수집 능력, 우주기반 레이저 개발 사업, 미국의 첩보위성을 보호하기 위한 탄도미사일 요격 기술 등은 바로 이후 우주장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다. 더구나 현재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는 도날드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은 '국가안보를 위한 우주공간 관리 및 조직평가 위원회' 의장을 맡으며 "럼스펠트보고서"를 통해 "대통령이 우주무기를 배치할 권한을 보유해야 하며, 현 우주사령부를 우주군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미국의 우주지배 전략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부시 행정부가 이후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런 우주개발 계획에는 지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진취적인 인류의 끝없는 탐험의 공간으로 그려지는 낭만적인 우주는 어디에도 없다. 또 다른 전장(戰場)으로서 우주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우주만이 있는 우주개발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억압과 배제, 전쟁과 대량학살을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만을 가져 올 것이다. 컬럼비아호 사고: 우주의 사전 경고? 최근 미 항공우주국은 컬럼비아호가 발사된 지 하루 만에 우주에서 뭔가와 충돌했거나 선체로부터 모종의 물체가 떨어져 나간 사실을 확인하고 자세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고원인인지, 무엇과 충돌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멍이 뚫린 날개가 발견되면서 '우주 쓰레기'와 충돌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통상 우주는 비어있다고 생각되지만, 지구 근처의 우주는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현재 추적이 가능한 직경 10cm이상의 물체만 9000여 개에 달하며, 구슬크기 이상의 쓰레기는 100,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위험한 직경 10cm이상의 것은 대부분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로켓발사 당시 혹은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 등을 통해 주로 발생한다. 특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MD계획은 엄청난 우주 쓰레기를 양산할 수 있다. 우주 무기를 실험하는 단계에서 뿐 아니라, 만일 실제로 우주에서 폭발이 발생하면 지구 250-600km 상공의 지구 저궤도는 '우주 쓰레기장'이 될 것이라며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더욱 정확히 표현하면 지구의 상공은 초속 7.9km의 속도로 도는 수많은 미사일로 뒤덮일 수 있다. 이번 컬럼비아호의 참사는 혹시 우주의 군사적 이용이 불러 올 참혹한 결과를 인간에게 경고하는 '우주의 사전경고'가 아니었을까? 이번 사고가 '우주쓰레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하더라도 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유럽에서 시작된 '대항해의 시대'는 수많은 인종학살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 그리고 두 차례의 끔찍한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조심스럽게 시작된 새로운 공간을 향한 인류의 항해가 어디로 향할지. 현재 MD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우주공간의 군사화 시도를 막지 못한다면 더욱 끔직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PSSP
알랭 족스(이하 AJ) 그리고 그것은 정밀무기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했고, 그러한 정밀무기는 단지 핵무기가 아닐 뿐, 고도로 효율적이며 초고속 작동능력을 갖춘 무기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현재 핵무기는 더 이상 전쟁억지력이 없는데, 이제 더 이상 동서대립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디테일리스트"의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지쳐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이 선취해야하는 진정으로 일차적 부분이며, 나는 그들이 그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다". 따라서 키신저는 익살맞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단지 "내가 한 말의 뜻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미친 것입니다"라는 방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외교를 과학이 아닌 예술로 여기는데 아주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좋든 싫든 간에 어느 정도는 유럽인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걸프전 발발 초기에, 그러나 언제나 약간의 유머를 섞어서,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군인이 도착했고 이동해야 했을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해안봉쇄 대신에 전쟁을 시작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왜냐하면 코카콜라가 바닥난 상황에서 군인들을 너무 오랫동안 사막에 남겨둘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은 교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런 경우라면 군사 수를 줄이지 않고서는 이동할 수 없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NATO 군 모두를 소모하지 않고서는, 그들 모두를 구조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군대를 철수하기 전에 그들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마치 퇴각처럼 비춰질 것이었고, 그러면 그들의 지렛대는 사라질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세분화된 전략입니다. 그리고 나서 키신저는 최대한 빨리 2만명 이상 혹은 5만명 이상을 파병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들은 주어진 날짜 전에 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철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SL 그렇다면 공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정밀 무기류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J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군사적 원정에 성공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렇게 많은 군사를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군을 지속적으로 주둔시키는 것이 가능했을 텐데, 그들이 너무 많은 군을 파견했기 때문에 미국은 군사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철수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SL 그렇다면 위협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얘기입니까? 그것이 실제적이기 때문에... AJ 위협은 그것이 불변인 채 유지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파병군을 감축시킨다면...... SL 맞습니다. 그러나 파병군은 걸프에 포진한 많은 요소들 가운데 오직 하나에 불과합니다. 걸프에는 군함도 있고, 전폭기도 있었습니다... AJ 우리가 만일 전쟁 억지의 맥락에서 이성적으로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풀리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연관된 것도 있습니다. 당신이 원정군을 파병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그 숫자를 줄인다면, 해양봉쇄도 마찬가지로 신뢰를 상실합니다. 게다가, 해양봉쇄는 그다지 효과적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라크는, 그곳이 특히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도처에 있는 섬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봉쇄할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이라크의 생각은 이럴 것입니다. "좋다. 그들은 너무 강해서 우린 협상할 것이다"―파병군을 계속 감축시키면서도 이것만으로 봉쇄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이런 식의 생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 및 기술적인 억지력은 심리적인 억지력과 마찬가지입니다... SL 미국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즉각 공격해야 했습니다. AJ 아닙니다. 당신이 주어진 날짜에 군사 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즉시, 당신은 그 전에 공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정확히 사태는 이와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키신저는 그 시점이 9월이라고 말했는데, [이 시점은] 달리 말하면 이론적으로 공격을 결정하기 이전인 셈입니다. SL 전쟁 억지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봅시다. 핵억지력을 대체하는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첫째, 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실제적인 위험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을 수립할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AJ 오늘날 강제정치 시기 하에서 전쟁 억지를 연구하기 위해 톰 셸링(Tom Shelling)에 의해 창안된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셸링은 게임이론 및 핵전략 이론가인데, 그는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핵 이후(post-nuclear)' 혹은 '핵에 준하는'(para-nuclear) 것을 시작할 것을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에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제한적으로 목표가 설정된 폭격이라면 베트남인들로 하여금 "그래, 이런 조건에서라면 우리는 협상하겠다"라고 말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강제정치"라는 생각인데, 달리 말하자면 정확한 결과를 얻기에 충분한 압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베트남에서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북 베트남이 공산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이 없다고 가정한 후―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전자공학의 시대를 누리지 못했고, 기술진보가 그 시대 이후로 비로소 발전되어 왔다면―다시 셸링의 사고로 돌아가 보면 이러한 압력은 뜻대로 작동될 것입니다. 이러한 도식은 어떤 관점, 즉 보편 역사의 척도에 근거한 전략적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점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재 미국은 핵이 더 이상 '게임'의 일부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작동할 수 없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밀한 전자체계 따위가 향상되었고, 위성 관측은 미터 수준보다 미세한 것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된 탓에, 우리는 벤담에 의해 창안된 판옵티콘처럼 완벽한, 혹은 더 나아가 우리가 "판옵폴리틱스(Panopolitics)"라 부를 수 있는 체계와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계는 꿈입니다. 현실이 아닌 꿈일 따름입니다. SL 그러나 그것은 전쟁억지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입니까? AJ 개인적으로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무언가로부터 전쟁을 억지한다는 것은 야망과 세력 관계 등에 상응하는 책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전쟁억지를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인민들의 전쟁억지입니다. SL 어떤 인민을 말합니까? AJ 일반적으로 모든 인민을 말합니다. 제3세계에서 가속화된 빈곤과 부 사이에서 양극화된 사회에서 꼼짝못하는 대중들 말입니다. 만약 대중의 반란을 억지하고자 한다면 전체 경제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대중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중의 봉기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억지 전략은 그들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 그러나 그들은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당신이 그들의 생명을 쳐부술 따름입니다. 분명히 당신은 모든 대중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승리라 부를 수 없습니다. 승리가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학살로 끝날 따름입니다. 저는 학살이 미국 문명과 문화의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다소 우연히 목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기술 진보로 인해 목표 조준과 전자장비에 있어 정밀성의 특별한 증가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정된 적이 없고 그래서 남아있는 적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름을 찾습니다. "마약불법거래상" 또는 이슬람 같은 이름을 찾습니다. 그러나 미국인은 사우디의 와하브주의자들(Saudi Wahabites)과 매우 밀접하게 일해왔기 때문에, 이것은[적으로 이슬람을 찾는 것은] 작동하기에 확실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아닌 적은 전혀 발견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거하고자 하는 대상(무질서, 소란)을 바라본다면 그렇습니다. 자, 이러한 무질서와 소란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경제전략에 의해 발생된 것입니다. 추리는 순환논법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이 그것을 더 면밀하게 조사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L 그러나 당신은 적이 없는 군사 형태를 찾거나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순환논법 아닙니까? 나는 그것이 현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J 그것은 순환논법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순환논법 주위를 돌 수 있고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습니다. 즉 만약 당신이 미망인과 고아, 팔이 잘린 어린아이 등을 구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탐험을 시작한다면 탐험은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자행되고 있는 잔혹한 일들은 멈춰져야 합니다. 원인은 실제로 이러한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발전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간다면 그들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들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재분배는 부패로 대체되었기 때문에...이것들은 모두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당신이 정치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면 이것들을 미국인의 방식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상황은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국가는 형태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고 오로지 경제만 파괴적인 형태가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인이 하지 않는 사회적 공화제의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제국에 대립하여 공화제를 반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패트릭 뷰캐넌인데 그는 민주적 제국에 대립하여 극우 공화주의자를 말하면서 그가 "공화제"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데, 이는 제가 말하고 싶은 바가 전혀 아닙니다. 뷰캐넌은 미국을 신에 의해 축복을 받은 국가로 보는 미국 전통의 일부입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데, 그래서 세계 무역에 개방하거나 그것에 의존할 이유 등이 없습니다. 이 꿈은 오랜 세월동안 실제로 지워져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교역 형태 덕분에 그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아주 많은 비극이 있다면 정확히 그것은 그들이 정상적인 국가로 남는 것 대신에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SL 제국의 아이디어는 자유방임입니다. 민주주의는 경제를 통해 신장되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미국을 통솔하는 것과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기능은 오랫동안 여기저기에 있어왔습니다. SL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수준에 있어 어떤 형성이 있는데, 경제가 지금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민주주의를 생산한다는 한에서 그것은 갈등을 없애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AJ 그러나 경제를 형성하는 것은 어떤 억압 형성을 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이 억압은 그 자체로 억압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위기나 국가분열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SL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AJ 물론 미국은 좋은 상태를 따라왔는데 왜냐하면 미국은 그 방향에 있어 일관된 흐름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그리고 억압은 또한 민주주의 복구의 형태로 출현합니다. 민주주의 복구는 결국 독재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자유시장 경제는 예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복구와 일치하기 위해 수많은 이행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칙이 아닙니다. 이는 몇 나라에서 발생하는데 왜냐하면 그 나라들은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모델에 맞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모델은 어떤 나라에서는 특이한 것입니다. 지금 칠레는 매우 민주적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형태와 동시에 민주주의가 복구되었습니다. 위기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는 가혹한 경제적 탈규제 조치와 전쟁국면 양자에 직면해서 기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5년이나 10년이 지나 상황이 경제적으로 나아지고 민주주의와 평화가 복구될 때 기회는 작동할 것입니다. 그 전략은 극단적으로 잔인합니다. 그것은 미국 시스템의 언급되지 않은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유럽적 관점에서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면, 미국 공중의 견해에 대해 나쁜 놈들처럼 보일 텐데 이것은 완전히 역사적 관점이 부재한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우리는 알제리에서처럼 이러한 유형의 실수를 범했습니다. 만약 콘스탄틴 플랜(Constantine plan)을 도입하는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복구했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플랜을 수립했고 그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정상에서 민주주의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SL 알제리에서 그것은 이끌려서 경제적 조치와 "화해"한 것입니다. AJ 맞습니다. 처음에 화해하고 그리고 나서 발전 계획을 가진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발전계획은 계획일 뿐이었고 그래서 자유주의적 죄악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당신들이 통제된 경제를 원했기에 그에 반하여 우리는 자유주의를 행한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알제리를 보기만 해도 알제리는 민주주의 없이 자유주의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지 않지만 불행히도 폭력은 고삐가 풀려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장된 그룹과 독재의 합입니다. 그리고 원유가 연루되어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이익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우리가 덜 말하며 게다가 더 적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훌륭하고 때때로 매우 급진적인 연설을 합니다. 미국 NGO들은 미국 정부가 행동하는 방식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정부의 의사결정 수준에 있어서는 고려되지 못합니다. NGO들은 활동적이지만 콜롬비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는 세계 경제시스템과 군사시스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심각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군사시스템은 사실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군사시스템의 순화는 결코 그것으로 하여금 충분한 방지에 대한 것을 다루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SL 그리고 위협 수준에서는... AL 어떤 경우에도 수많은 것에 의해 위협받은 사람들을 연루시키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 간섭에 의한 위협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인들은 설탕과 쌀을 가지고 오고 문제는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배시스템에서 경제와 무장 폭력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치를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정치를 제쳐놓았기 때문에 그 관계는 직접적입니다. 그것을 다뤄봅시다. 그러나 모두가 안된다고 외칠 것이고 미국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의 다른 두 부분이 있으므로, 국방부와 IMF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다뤄봅시다. 만약 실제로 그 관계가 미국 대통령에 의해 중재되기 때문에 그 질문이 어리석다면, 연관된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연히 같은 것이 유럽을 위해서도 필요한데 왜냐하면 유럽에는 수장이 없고, 그래서 쉬운데, 단지 국가에 의존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수장이 없고 수장이 없는 돈은 없습니다. 그것은 신용할 수 없습니다.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유럽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면, 유로화는 상승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히 경제적인 혹은 순수히 군사적인 기업으로서, 미국은 진실이 없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SL 또한 이른바 [일종의 고유명사로서] (미)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데요,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어떤 형태입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공산주의자 작가인 앙드레 우름세르(Andr Wurmser)가 1950년대에 예컨대 미국의 인종들, 사회계급들 간의 분할들을 비난하면서 "비-합중국(Dis-United States)"이라고 지칭했던 상황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AJ 현재 유럽 연합(EU)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유럽 합중국(United Europe)이라는 이름을 가질 권리를 가질 때 그렇게 불리게 될텐데, 그때 그것은 연방 또는 심지어 연합국가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합중국을 프랑스어로 표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유럽은 의식적으로, 미국이 건국된 이후, 미국식 과정을 모방해왔습니다. 모네(Monnet)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미국의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유럽은 미국식 프로젝트의 수준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했죠. 미국에서 각각 상이한 국가[주(州)]들의 자율성을 회복시키자는 것이 이따금 논의될 때 유럽인들은 유럽 국가들을 연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50년 이내에 유럽 합중국은 미 합중국을 닮고, 미 합중국은 유럽 합중국을 닮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어떤 경우, 미 합중국은 전체적으로 중심의 핵심을 지배하는 단일 권력으로서의 존재라는 자신의 독점력을 상실하게 될 겁니다. 분명히 이 독점력을 상실할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합중국을 구성하는 국가들이] 그처럼 강탈할 것이라는 어떤 이유도 존재하기 않기에... SL 미국이 유럽의 여러 이점(利點)들에 대한 독점력을 상실할 것이다라는 말인가요? AJ 네, 제일 먼저 유럽국가들의 이점들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합니다. 유럽의 지배계급은 대체로 주민의 수, 자본비율, 등등에서 미국의 지배계급과 [사회조건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실제 지표들의 수치는 유럽이 [미국에 비해] 더욱 강하지만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현재 유럽이 합중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분명하고 주요한 미국의 우위는 군사(력)입니다. 그것은 단일화의 우월함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 군사적 단일화를 포함하는 단일화에서의 우위, 그리고 단일화로 생긴 열매의 일부분으로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포함했습니다. 미국은 단일한 군대를 가졌고, 동시에 소련을 대신하여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대는]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도 월등한 군대로 남아 있습니다. SL 하지만, 군대 그 자체나, 그것의 엄청난 기술적 발전들 등은 미국이 추구하는 경제체계에 부합하는 비중 있는 부분이고, 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작동했습니다. AJ 맞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기술적 발전들이 군사적 우월성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어떤 경계들 내에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과잉-발전국가들을 지배하는 데 이러한 기술적인 군사적 지배가 결국 유용할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파키스탄의 중심부에서 아편을 재배하는 사람들을 [군사적] 목표로 해서 싹 쓸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일례일 뿐입니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유럽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 아마도 유럽의 주변에서 무질서의 지대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일 겁니다. SL 그것은 당신이 때때로 지적했던 점입니다. AJ 내가 유일하게 지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하게 그들이 그 생각을 유럽에 적용하려고 시도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러시아에서 하나의 무질서의 지대를 유지하고자 했을 겁니다. 유럽이 이러한 종류의 사태들을 통제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사실상 그러한 상황은 유럽에게나 미국에게나 모두 재앙과 같은 것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군사적 우위를 통한 유럽의 지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긴 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주요한 의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의 군사적 수단들이, 더 이상 적성국이 존재하지 않는 유럽에서와 같이 동맹국들을 지배하기 위해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 체계들에 대한 군사지배는 상업을 통한 평화라는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 이른바 민주적 사고 등의 미국식 독트린에 완전히 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체계에 대한 군사지배는 파시즘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언젠가 깨달을 때에 .... SL 왜 그것이 파시즘으로 귀결되죠? 어떤 국가는 자신의 무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AJ 왜냐하면, 정의상 군사지배를 통한 경제체계의 통제는 내부 주민들을 노예화하는 직접지배 체계―물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이기 때문입니다. SL 그들은 모든 책임들로부터 벗어난 제국을 원한다... AJ 그렇습니다. 그들은 군사지배가 아닌 제국의 형태를 발명해야만 합니다. SL 그리고 그것은 "형성중인 것"이어야 합니다... 貨 殖 화식 AJ 네, 그들은 부분적으로 군사적 우위로부터 나타날 무엇으로서,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재학(理財學, chrematistics)이라고 지칭한 성질, 그리고 또한 경제로부터 나타날 무언가로서 형성중인 것을 상상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심스럽게 양자를 구분하였고,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재학"은 투기적인 거품, 즉 투기인데, 돈이 돈을 만든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그것은 "자연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경제는 노동이 자원들을 생산할 때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범주들에 따르자면, 자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재학과 경제가 함께 혼용된다면, 그 형태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SL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분입니다. AJ 그것도 시기에 달려있죠. SL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투기의 장구한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AJ 네,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또한 실제 경제에서 실제 투자들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이 점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데요, 왜냐하면 때때로 과열되는 투기적인 거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위험도 아닐 뿐더러 투자된 노동으로 환산되는 회사들의 실제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자본}에서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교란을 생산합니다. SL 그리고 기술은 이것을 더욱 증식시킵니다. AJ 오늘날 기술은 채권시장과 같은 것들의 다른 유형들 모두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시장은 본질상 난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폭력에 대한 가상의 독점(최소한 시장에 대한)을 포기함으로써 평화의 공간으로 형성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보다 숙고해 볼만합니다. 나는 시애틀에서의 [반세계화] 시위가, 적어도 지배적인 국가들에서, 일반화된 제3세계라는 상황의 출현을 막아내기 위한 선례를 우리에게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어떤 누구도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가 시에라리온처럼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 상황의 초래로부터 대중들의 극빈화를 막기 위한 수단들이 취해져야 한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이민금지 지대들은 등장하는 것입니다. SL 멕시코, 알제리아, 남아메리카, ... AJ 현재, 예컨대, 전(前)자본주의적 독재정치들의 청산을 옹호하는 실질적인 미국적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콜럼비아의 독재정치들이 제거되었다면, 이후의 선거들이 현재 보여지고 있는 양상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콜럼비아는 독재정치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분명한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농업적 독재정치는 제거되지 않았고 마피아 독재정치는 그 구조 내부에 터를 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피아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사회 정화의 실행에 동반하여 등장하는 것입니다. SL 전쟁 억지의 첫 번째 시기동안 미국이 핵무기를 가진 유일한 나라였던 "축복 받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아마도 당시의 축복 받은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그 순간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기술을 통한 절대 지배를 다시 확보할 수 있을까요? AJ 실제로, 당시는 정말 축복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무기를 가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절대무기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핵무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절대 적(敵)에 대한 절대무기였습니다. SL 절대무기는 [전쟁]억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술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가,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AJ 나는 절대무기가 그런 심각한 내용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 파워는 정확한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상대적인 무기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핵무기의 폭발력의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핵분열에 의해 엄청난 힘이 확산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핵무기의 종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처럼 엄청난 물체들에 상응하는 어떠한 소프트웨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무기는 하드웨어입니다. 극한의 하드웨어. 이제 우리는 점차 소프트웨어를 개선해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에 비견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SL 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국가가 핵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AJ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상업의 기본적 사실은 어느 곳에서든 거래수단(chips)이 가장 저렴하게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펜타곤의 거래수단은 [이미] 인도에서 만들어졌고 중국에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윤의 합리성, 대량생산의 합리성은 유지하기 매우 어렵고, 또한 이것은 군사적 상품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자는 두 주요 강대국들이 스스로를 근본적인 적―각자 절대무기를 휘두르면서, 한 국가는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고, 다른 한 국가는 공산주의를 위해 싸우는―으로 선언하자마자 미국-소련의 핵 대립의 기간 동안 고유한 투쟁이 존재했었다고 매우 훌륭하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험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L 절대무기는 이제 상대적인 용도를 갖는데요, 즉 "불량국가들", 테러리스트 등에 대한 용도로서 말입니다. AJ 핵무기들은 전략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만약 중국이 스스로를 미국의 절대 적(敵)으로 선언한다면 재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정도로 영민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걸 두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SL 그리고 나서 그들은 내부로부터 붕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계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은 공산주의적 노멘클라투라 내에서 그것을 재생산하였기 때문입니다. AJ 네, 그들은 서서히 근대 파시즘 체제로 이행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의해 침식되었습니다. 아니, 내 생각으로 그것은 종결되었고, 결코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대 역사에서 제국들간의 적대의 최고점이 존재했다고 상상해봅니다. 사산조 제국과 로마 제국의 적대는 평형 상태에 들어갔고 로마가 파르티안 땅을 점령함으로써 그 상태는 종료됩니다. 알랙산더가 그것을 해냈지만, 그는 갈리아와 지중해 서부지대는 정복하지 못하였고, 이후에 아무도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게다가 최악의 사실은 평형점이 회복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럽을 완전히 정복하는 평형점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등장과 소멸을 반복했을 겁니다. 그것은 만약 미국인들이 정복 류의 철학을 갖고 있다면, 하지만 그들이, 세계의 지배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정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확신할지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복에 대한 자각은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독일과 일본을 정복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인들이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부여한 이유일 것입니다... SL 독일인들은 그것을 깨달았죠. AJ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러의 독일을 일소하고 공백으로부터 그들의 민족을 재건하도록 돕는 과정에 동의했습니다. 독일인들은 혁명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미국인들 덕분에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의 경우라기보다는, 독일과, 어느 정도에서는 일본에 해당합니다. SL 일본인들은 중세적 전통에 따라 모든 것을 유지하면서 재창조되었습니다. AJ 왜냐하면 그들은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정복되었죠. 그들은 러시아-미국인들에 의해, 점령군의 도착에 의해 그리고 모든 정치권력의 완전한 제거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휴전 수단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정복이 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독일 국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자폭탄 투하 후 바로 항복했지만,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핵폭탄을 통해 정복되었고, 따라서 협상이 반드시 존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실제로 패배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들의 민주주의는 독일의 민주주의에 비해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SL 그것은 아마도 왜 미국이 당시에 관여했던 폭력의 다른 형태들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했는가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AJ 그들은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돕지 않았고, 그것은 엄연한 진실입니다. 당시에 미국인들이 그들은 결코 정복하려 한 적이 없고 단지 정권[의 붕괴]을 노렸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매우 상대적입니다. 그와 같은 두 가지 사례들이 존재하는데요, 모두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 프랑스에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인들―미국인 일반은 아니고―의 무능력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죠. SL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왜 그들이 직접적으로 단행하려고 시도하지 않는지의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라고 지칭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지도자로 여기면서 그것을 지배, "리더쉽"이라고 부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는 가능합니다만, 항상 그리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SL 그들은 어떤 때는 이것을 인식합니다. 어떤 때는 전략적 사고가 미국의 강점은 아니다라는 것을 수용하기도 합니다. AJ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편제이고, 작동체계입니다. 미국 내부지형에서 좌파에 속했던 클린턴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억제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노동계급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미국 외부를 주시하도록 떠밀렸습니다. 그것은 얼마간 그의 사회민주적 의무였지만, 그것은 언제나 같은 스토리를 같습니다: 베트남에서 존슨 대통령과 "위대한 사회" ... SL 클린턴과 "신경제"... AJ 그것은 바로 "신경제"였습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거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또한 군사주의적 거품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장들이 계속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등등, 이것은 마치 하나의 프로파간다와 비슷합니다만, 나는 맥나마라가 권력을 잡고 있던 당시의 펜타곤을 방문했고 또 맥나마라의 측근들이 설명해줘서 이미 알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명확하고, 매우 미국적인 설명입니다. 합법적으로 계획된 경제의 일부분은 이제 더 이상 [뉴딜 정책의 상징이었던] 테네시 강 유역 개발공사처럼 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산업, 그리고 무기산업입니다. 그것은 방위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펜타곤은 미국의 사회적 개입주의입니다. SL 이제 무기가 기술이 되고 기술이 군사적인 동시에 민간의 성격을 갖게 된 이후로 그들은 더 이상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AJ 그것이 바로 사실상 진짜 위기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레이건 시대까지 확립되고 지속된 이러한 종류의 군사 케인즈주의가 존재합니다. 레이건은 군사지출을 통한 자신만의 케인즈주의적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레이건의 위선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별별 악담을 퍼붓고 무기신용을 증가시키려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맥나마라가 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SL 최근에, 펜타곤은 [군사]기술을 확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사이에 전국이 군사화 되었습니다. AJ 기술은 그 기원상 민간 부문이며, 미국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돌연히, 그들은 군사제품들이 다른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비-군사제품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프트웨어도 필요하고, 컴퓨터들의 진보를 마치 타자기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영리한 기인들도 필요합니다. 군사 부문의 컴퓨터들이 민간 부문의 사무용 컴퓨터들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80년대에 발견된 것들입니다. SL 그래서 그들은 양자간의 차이를 폐지했던 겁니까? AJ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 부문이 전략 모델로서 산업 모델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허용하였습니다. SL 그것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인터넷은 군사 발명품이었습니다, ARPANET은 말이죠.... AJ 네, 그것은 군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그저 그것은 또다른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술 및 사무 관리 소프트웨어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업에 군대가 뒤쳐지지 않아야 했고, 산업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교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인터넷은 "군사 업무에서의 혁명"이었습니다. 군사 업무상의 혁명은 결코 기업 혁명에 뒤지는 것이 아니었죠. SL 결국에, 미국은 국민들의 상당수를 가상 군인들로 훈련시켰습니다. AJ 네, 어떤 점에서 군인들은 또한 키보드 조작자들이죠. 하지만 중요한 이론적 문제는 그들은 군사의 기준들과 기업의 기준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확립했다라는 사실에 있는데요, 말하자면, 정치가들을 무시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관계는 모순적이지 않다라는 겁니다. 정치를 통한 파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특히 마약 거래에서, 또는 자금세탁의 과정에서― 하에, 모든 유형의 사안들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즉 "올바른 통치"를 부과함으로써 자신들이 활성화되고자 하는, (정치적 부정)거래법률의 제정에 개입함을 통해 정치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독점입니다. 펜타곤은 그러한 상황을 바라지 않고,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펜타곤은 기업의 주권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정치가들은 절멸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은 예의주시 중입니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매우 격노한 바 있는데요, 이것은 아직도 자신들이 경제의 도덕성에 개입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낡았어, 법, 등등 말이야. 하지만 사실상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최소국가는 경제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입니다. SL 그들은 어떠한 국가 경쟁자도 원하지 않습니다. AJ 그들은 국가 경쟁자를 갖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그것은 초-국가(trans-state) 라이벌이고, 절대적으로 전략적 이유들 때문입니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이것을 잘 깨닫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 수준에 상응하는 무엇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전히 경제적인 논리의 명분에서 수행된 집중의 효과들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군사무기 부문의 집중 역시 법인기업의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논리는 또한 특정 직업의 논리이며 따라서 그것은 기업들에게만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하이테크 및 군사 영역들에서 취해지는 모든 집중들은 각각 유럽의 기업들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승리도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해 통제되는 다국적 기업들의 형성을 막아야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교역하는 "합작회사들"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고,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미스테리입니다. SL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AJ 유럽의 법인기업들이 [합작을 할만한] 다른 유럽의 법인기업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의미하는데요, 왜냐하면 그들과 공통적인 무엇, 즉 기업문화와 국가 조절의 유럽식 버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다른 세계로부터 온 미국의 법인기업들과 합작했다면, 그들은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윤조차 남기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결과, 심지어 사적인 회사들조차 정치적 입장―어떤 경우에 민주적이지 아닌 입장―를 갖지만, 그러나, 만약 기업 문화를 하나의 정치 문화로 칭할 수 있다면, 하나의 정치 문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협정들을 도출하는 것, 등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위계적 문화입니다만,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스테리하게 남아있는데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전략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학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이 국가로부터 도출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SL 어떤 경우에 그것은 국가의 약화로부터 도출됩니다. AJ 네. 하지만 그것은 동어반복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력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우리는 현재 법인[기업]의 주권을 위해 민주적 주권을 살해하는 과정에 있다는 분석이, 사실상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유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권은 오직 국가들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하지만 만약 국가들이 소멸한다면, 법인기업들이 실제 관계들을 통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비민주적 주권의 형태가 된다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동맹체들(the unions)과 함께 싸워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동맹체들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분쇄되고 있다는 근거들도 발견됩니다. 또는 초민족적 동맹체들의 필요가 제기되고 있거나 말입니다. 아딱(ATTAC)은 프랑스에서 보다 흥미로운 발견의 지점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분명히 자생적인 민중으로부터 기반하지만, 여전히 전략적입니다. 전략은 이해관계들, 사람들, 함의들 동맹의 구성 형태, 그리고 적대지점들을 동일화합니다. 내가 한가지 잊은 것이 있는데, 왜냐하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나는 나의 글쓰기 스타일을 바꾸거나 아니면 정원을 가꾸고 싶은데요, 내가 10년쯤 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나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서 10년의 여생을 갖고 싶습니다. SL 하지만 사태는 중단되지 않을 겁니다. AJ 진정 독자적인 자본주의의 차원을 대체하는 이례적인 변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초-분과적 접근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적 범주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사용되어져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단순히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이상의 다른 무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계급들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계급 개념은 양심적인 자본주의자인 아담 스미스와, 내 생각에 분명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니었던, 다른 이들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사회계급은 따라서 국가의 개념과 연결되고, 어쨌든 평화로와야만 합니다. 계급투쟁은 정치체계에 의해 국가 내부로 제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만약 이 모든 것을 제거하려면, (아직 사회계급의 개념을 지워버리지 못했다면 말입니다) 조절의 개념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말하듯이 "아, 이제 전쟁은 오직 인종집단들 간에만 존재하는군요, 등등, 그건 정말 사실이네요"와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인종들의 전쟁은 계급들의 전쟁이고, 언젠가 이것은 더욱 분명해질 겁니다. 나의 견해로는, 지금으로부터 10년에서 15년 내에 말입니다. SL 그때가 분명해진다면 우리는 계급들로 복귀할게 될까요? AJ 아닙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인류의 생존의 각 측면, 예컨대 폭력에 대한 국가의 독점에 대한 반대를 통한 평화의 문제나, 생산수단의 통제를 통한 식량문제 등을 다루고자 한다면 계급이라는 개념은 재창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사고로 복귀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조절된 경계들 안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더 이상 민족국가의 형태를 갖지 않게 된다면, 그때 보다 거대한 연합의 형태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형태는 내전, 즉 계급들간의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정치(학)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곳에 내전이 만연할 것입니다. - 파리, 2001년 5월. Ⅱ. 제국의 반격 비대칭적 위협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복귀 "악의 축" 엔론 스캔들 군사적 신뢰의 변화 불균형한 대응 법인의 주권과 군사 법인 제국이 형태를 갖추다 헌팅턴의 반동적 시나리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 위로부터 아래로 SL 2002년 일반교서(2002 State of the Union)에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독트린"에 적성국가들―이른바 "악의 축들"인 이라크, 이란, 북한―을 포함시켰습니다. 현 행정부가 집권하지 오래지 않아 전세계에 죽음의 위협을 보여준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처음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보복 원정은 알-카에다 테러조직의 궤멸과 탈레반 정권의 교체를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이라크가 공공연한 타겟이 되고 있습니다. 9·11은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 2년 전에, 저는 이스라엘의 Cesarea에서 개최되었던 탈냉전을 주제로 한 군사전략가들의 회의에 참가―이 회의에 미국 펜타곤을 포함한 10여개 나라의 국방관련 고위관료들과 방위전문가들이 참석했습니다―했었는데요, 여기서 "비대칭적"("asymmetrical")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회의 최대 쟁점이었습니다. ... AJ 네, 당신의 의견은 1995년 이후, 미국이 확실한 방식으로, 추상적인 방식으로 준비해왔다고 말해도 좋을 겁니다. 클린턴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과 동시에, 정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던(그것은 심지어 전제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 경제'의 확장에 대한 신념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진보적이었습니다. 분석된 세계화의 유형들 중 하나는 모든 것은 "불량국가들"의 네트워크들에 침투(/잠입)함으로써 획득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시 독트린은 [이상과] 동일한 형태를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적성국가들"과 테러리즘에 대한 일반적인 전쟁 선언인 것입니다. 약한 국가/집단과 싸우기 위해 강한 국가/집단에 의해 사용되었던 이러한 방법은 항상 존재했었고,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모든 군사적 장치들이 약한 국가/집단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적인 민주당원이었던, 클린턴은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필요한 시기에, 그 역시 [미국에 대한] 위협임을 천명하고 군대를 파견하기 위해 군사적 장치들을 사용했지만, 그의 목적, 그가 생각하는 제국의 본질적 정의는, 미국의 극우파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자간의 차이는 군사적 폭력의 사용을 악마와의 싸움으로 보여지게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클린턴은 그와 같은 종교적인 신화를 천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부시가 이스라엘의 우익들―이들이 어떤 우익인지 상관치 않고―과 공명하기 시작했는가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종교적 우익들은 외부와의 관계들과 자폐증적 정의에 기반하여 성장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지난 30년간 침공의 위협을 받는 나라로 여겨지게 한, 이러한 종류의 시각, 즉 순전히 군사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시각은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미국화와 동반되는 미국의 이스라엘화의 양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SL 그것은 중요한 정치적 변동, 또는 변이이지만, 이것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나머지 국가/집단들과도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여집니다. AJ 예, 그것은 제국적인 시각과 군사적인 시각 양자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변이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유형의 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첫 번째는 테러리즘인데, 그것은 포착하기 어렵고 어디서든 등장합니다; 두 번째는 국가 구조들 내에서 배태되는 적(들)입니다. 부시는 그러한 국가들을 묘사함에 있어 세계외교사의 관점과는 상이한 방법을 갖고 있는데, 이미 이라크는 영구적인 처벌을 받고 있지만, 반면에 클린턴은 이란과 북한이 진보[상황의 개선]가 만들어질 수 있는 국가로 여겼습니다. SL 부시 행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그리고 심지어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기도 전에, 군사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신속하게 북한을 고립시키고 이라크와 이란으로 하여금 인지가능한 적대 국가들로 지정하였습니다. AJ 네, 제 생각으로는 럼스펠드와 그 주변인물들에 의해 매우 분명한 결정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즉, 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국가들의 생존여부를 질문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적 실재를 군사화하기 위해서, ... 클린턴은 얼마간 교묘하고 위협적이었던 일련의 예비 단계들 이후, 한반도의 통일, 다시 말해 북한의 해방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일 통일의 모델에 기초한 진보적인 재-점령의 전망이었습니다: 즉 시장의 힘을 이용해 북한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잠식하고 자유를 통해 전제적인 국가를 붕괴시키기 위한 존재하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앤소니 레이크(Anthony Lake,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역자) 혹은 클린턴의 이데올로기에는, 만약 폭력적인 네트워크와 폭력적인 국가들 간의 음모를 막아낼 수 있다면 폭력을 사용한 필요가 없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앤소니 레이크는 자신의 몇몇 연설들에서 이러한 책략의 분명한 정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사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분명히, 모든 종류의 위험, 재난, 등등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외교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혹은 체계를 조작―즉, 폭력적인 네트워크와 폭력적인 국가들 간의 점증하는 음모를 막아냄을 통해 세계를 구성하는 것―하는 것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현재로선, 이러한 두 가지 차원들[폭력적인 국가들과 네트워크들]과의 대치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SL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퇴보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제국의 역류(逆流) .... AJ 이렇듯 그들을 잔악무도함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SF 장르의 환타지들―그들은 [SF 소설/영화에 나오는] 미친 과학자들인 것이죠―를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다시 말해, 유럽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그것이 주로 무력의 사용을 막는 기술들로 구성되는 외교(diplomacy) 문화가 퇴보하는 것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과 그 관료들의 결정이 [외교] 기술의 사용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사안에 대해 군사적 폭력만을 강조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갖게 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의문점은 이러한 방식이 앞으로 어떠할 것인가 입니다. 이는 그것이 구성적인 정치권력들과의 상호작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적 관점에서, 지중해 시대의 상황은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반드시 협상되어야 했던 근접성(proximity)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반대로, 미국의 시각은 이곳 저곳 어느 곳이든지간에 절대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고 군사적으로 싹쓸어 버려야만 하는 지역들을 지정하는 것이고, 그후엔 더이상 정책 조정을 해야 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클린턴은 공격적인 제국의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군사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장애물들을 회피하고 명분들을 부과하는 영민한 정책 조정에 의존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정복한 국가들로 하여금 스스로 관리/통제되게 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제국들의 정의(定義)였습니다. 하지만, 부시에게는, 세계문화에서 이러한 공격과 변화들을 주도하는 것은 군사입니다. 당신이 못된 짓을 한 사람을 벌하려고 결심하자마자, 더 이상의 조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클린턴과 그의 관료들은 한반도의 통일, 이란의 온건화의 독려를 유도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슬람을 엄하게 대하려 한다면, 이슬람의 온건화를 위한 방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끝낼 수도 없습니다. 이라크는 아버지 부시에 의해 과시와 억지의 목적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즉, 당신이 더 이상 유순하게 행동할 수 없다면, 이것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이라크의 운명과 함께 전세계를 협박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통상 의좋게 지내지 않던 모든 사람들을 결집하게 하고 이러한 힘을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저항하게 합니다. SL 부시는 광신(狂信)에 대해 광신으로, 또는 편집증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무리 나빠 봤자 그것은 음모론이고, 아무리 좋아 봤자 위험한 정책 전환이겠죠. AJ 그것은 마니교적, 종교적, 군사주의적 퇴보이며 그러한 수단들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세계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어떠한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상시적인 위협인 거대한 테러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안보적인 시각이라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시각(또는 병리적인 시각)입니다. 만약 그것이 네트워크라면, 안보의 태도가 요청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세계적 조직이라면, 우리는 국제 체계에 대한 공상적 인식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우려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정치 권력이 우리가 믿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신앙적 형식(formula)를 내포하는 결정을 내리면, 아무도 다음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신앙적 형식도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응답을 실제로 제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상당한 놀라움과 충격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아직 권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변인도 없고, 유럽의 대통령도, 일반교서(State of the Union)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일반교서는 세계에 대한 교서(state of the world)가 되었습니다. 일반교서에 담긴 메시지는 정당한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교서에 담긴 메시지는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에 의해 부당하게 행사된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지식인의 관점에서 볼 때(숙고된 진단이라 해도 좋겠군요)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강령이고, 그런 점에서 논쟁적인 것입니다. SL 그것은 두 개의 날을 갖는 강령입니다. 미국에 대한 공격의 즉각적인 효과는 정부와 정당들간의 관계양상의 완전한 변화였고 군사작전과 관련된 정보, 죄수들의 대우에 대한 이례적인 권리들, 지식에 대한 검열 을 정당화하는 전쟁시기의 정신적 착란을 대중에게 부과하였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극단적인 의제들을 실현하기 위해 그 상황을 착취하였던 것입니다. AJ 그 사건은 수천가지 다른 방식으로 착취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이득을 얻기로 결정했던 것이죠. 왜? 답은 바로 체제입니다. 미국인들의 국가의 구조, 기능은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따라서 자신의 제도들의 정당성 또는 권력 또는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신화화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SL 가장 분명한 변화는 국방예산입니다. 9·11 이전에, 부시는 새로운 "스타워즈"를 밀어붙이고 있었고, 동맹국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있었죠. 빈 라덴은 의회로 하여금 국방비에서 지난 20년간 최고의 증가액을 승인하도록 하였죠. AJ 약 15%의 국방예산의 증가는 군사지출을 위한 케인즈주의적 시동을 의미합니다. 민주당은 종종 그러한 것을 시도했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그가 말한 바와는 달리 동일한 방식을 취했었죠. 아마도 그것은, 투기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지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경제에 시동을 걸기 위한 방식이었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 가능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행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어떤 것은 우리가 비판할 수 있겠고, 또 어떤 것은 정상적인, 미국의 국가장치의 마키아벨리적 행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자유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만 그렇습니다. 국내에서, 그것은 군사 신용들을 이용한 재분배를 위해 거대한 재정적 노력을 만들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초유의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군사적 신용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부시는 소련에 버금가는 범세계적 위험을 창조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세계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침소봉대하지 말라. 현재 추진중인 전쟁을 정당화하는 위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SL 진주만을 제외하면, 미국은 단 한번도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부시의 극단적 대응과 미국민들로부터 부시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그러한 상황에 알맞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AJ 네, 그것이 사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폭격을 당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새로움으로서 경험한 사람들도 그들뿐입니다.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역사에서 파괴를 경험해왔습니다. 세계의 나머지는 여전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9·11을 겪은 미국에 대한 동정은,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히틀러나 러시아인들에 의해 준비된 세계전쟁의 전조일 수 없습니다. SL 확실히, 9·11은 가공할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만, 또한 분명한 것은, 전세계에 걸쳐 미국의 권력―그리고 미국의 경제―을 부과하려는 목적에 그것을 이용하려는 시도 또한 존재합니다. 어쨌든, 부시 독트린은 경제적 관계의 군사적 형태입니다. AJ 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가장 혼란스러운 양상은 바로 그 형태가 완전히 미국적이라는 겁니다. 최근에 미국인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유럽? 우리는 유럽을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을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유럽은 미국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관점은 아닙니다. 당신이 상호작용들에 대한 질문들을 물어오기 시작할 때, 당신은 또한 세계에 대한 어원―자폐증적인, 단일한, 무언가 공유될 수 없는―상에서 "어리석은" 관점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다수의 공론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일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의 나머지가 뭔가 귀중하다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무엇보다도, 동맹들은 종결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동맹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서양 공동체로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SL 우리는 미국이 스스로 세계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물론 미국은 자신이 두목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가 권력의 제한이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확연한 군사적 팽창이 전통적인 동맹들을 희생시켜가면서 미국의 리더쉽을 강변하려는 시도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앞서 우리가 토론한 바 있듯이 미국은 아직 자신의 [제국적] 형태를 찾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9월 11일의 사건들이 그것을 규정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아메리카 제국이 사실상 바로 우리 눈앞에서 형태를 갖춰가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AJ 나는 당신의 의견에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제국은 지금 당장 형태를 취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1995-6년이래 느리게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고 과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보다 군사적인 형태로 귀결되었습니다. 한편, 미국과 이슬람,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의 의도적인 부재가 있습니다. 나는 심각한 불안을 발견했는데요. 샤론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행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들의 접근법을 동시화라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벽으로 둘러 봉쇄할지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벽으로 감쌀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게토화를 원하고 있고, 이러한 것들은 진정 극적인 문제들이지만, 그들이 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SL 자유주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그리/하트의 {제국}을 읽어보았나요? 책의 내용은 미국은 제국이 아니지만 그것을 상징하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인데요. 현재 그 제국은 스스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어떠한 한계나 고정된 경계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것은 광범한 규모에서의 탈영토화입니다. 들뢰즈/가타리와 달리, 그들은 이러한 세계성이 자신의 본질에서만 대답되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이상의 분자혁명들이나 특이성들도 존재하지 않죠. 제국은 반-제국을 만납니다. 당신은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십니까? AJ 나는 네그리/하트가 군사와 관련된 질문을 충분히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본주의 체계의 확장에 대한 이상주의적 시각―아마도 심지어 클린턴주의적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진실여부가 아니라 네그리가 제국을 문제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SL 우리가 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것은 어떤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갖는, 절대적일 수 없는, 다시 말해 절대적이기를 또는 직접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는 제국이었습니다. 질문으로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정확히 이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관찰하고 있는 제국의 강력함의 징후라기 보다는 허약함의 그것일 겁니다. 그 징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절대적 제국을 회복하려는 시도이고, 아메리카 제국으로 만드는..... AJ 예, 하지만 그것은 상위 제국에서 하위 제국으로의 이행처럼 보여집니다. - 뉴욕-파리, 2002년 5월. [끝] PSSP
월간 [사회진보연대] 3월호 특집글입니다. 아래 정영섭동지가 모아서 올린 자료글들과 함께 참고하십시요 ps> 내일이 노무현 취임식인데, TV를 켜니 장택상, 유진산과 김두환의 민중학살을 무협활극으로 미화한 쓰 레기같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이 주욱 나와서 동북 아중심이 어쩌구, 국민참여가 어쩌구하는 꼴깝들을 떠는통에 잠이 확깨네 요.. 앞으로 이 나라꼴이 어떻게 될런지, 안타까운 밤입니다.
미국 CIA 조지 테넷 국장이 의회에서 증언한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과장 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참조하시길... *출처: http://seattlepi.nwsource.com/opinion/108569_missile14.shtml Friday, February 14, 2003 North Korean threat exaggerated IVAN OELRICH SCIENTIST CIA Director George Tenet told Congress Wednesday that North Korea has a missile that can reach the United States, even though North Korea has not yet demonstrated this capability. Coupled with the crisis of Pyongyang's nuclear weapons, this has led many to believe North Korea could strike the American West Coast with nuclear weapons. Yet this is not the case. Events in North Korea are indeed worrying, but the public debate is not helped by exaggerating the threat. Most of our information about North Korean missiles comes from observing flight tests; so we know much about the shorter-range missiles that the North Koreans have flown. But Pyongyang has not tested intercontinental-range missiles. Without flight tests, U.S. intelligence analysts can only estimate the sophistication of North Korean technology and the calculated range of any large missile is extremely sensitive to these estimates. How far a missile can deliver a payload is determined by the efficiency of the engines, the amount of fuel and the weight of the rocket structure and payload. For any long-range rocket, fuel makes up the great majority of the initial weight. The structure is the great majority of the remainder and the payload is typically a tiny fraction of the total initial weight. Thus, small changes in the estimates of the required structural weight of the rocket or the efficiency of the engines translate into large changes in the mass left for payload. In general, as the range of the rocket increases, the calculated performance becomes ever more sensitive to these technical assumptions. It is important to distinguish between what is known about North Korean missiles and what is extrapolation. The North Korean short- range SCUD has been exported and the United States almost certainly has access to samples of the missile. The single-stage No Dong missile has been tested and also revealed much of its capability. The North Koreans flight tested a three-stage space launch vehicle in August 1998. Most analysts believe the first two stages are the equivalent of the intermediate-range Taepo-Dong 1 missile. Radar tracking of that single test revealed the performance of the first two stages and, with an estimate of the mass of the third stage, the overall performance of a hypothetical two-stage version can be calculated. (The third stage apparently failed, possibly exploded, and the satellite payload did not reach orbit.) The so-called Taepo-Dong 2 -- the missile that is claimed to be able to reach America -- is even more problematic. The second stage could be the same as the first stage of the Taepo-Dong 1, sitting atop a new, bigger and as yet publicly unknown first stage. Until something is flight-tested, performance of the missile will remain speculation about what the North Koreans could build with available technology. A total assessment of the North Korean ballistic missile threat also requires some knowledge of the possible payloads. If the missiles are intended as nuclear weapon-delivery vehicles, then advances in nuclear bomb design can have as much of an effect as advances in missile technology. Unfortunately, the United States knows even less about North Korea's possible nuclear weapons than it does about its missile technology. But our government estimates that North Korea missiles can reach the United States with a nuclear warhead assume quite sophisticated nuclear weapon designs. Until the North Koreans flight-test the missile, it is too early speak with any certainty about their ability to reach the Pacific Northwest and government officials should be more careful to qualify their estimates of dangers facing the nation. * Ivan Oelrich is a senior research associate with the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