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서비스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참가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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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유화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 IMF 위기 직후부터 정부는 외환위기와 재정위기를 빌미로 공공부문에서 돈 될 만한 공기업을 앞뒤 가리지 않고 팔아치워 왔다. 그러나 공공부문 사유화는 소유권의 이전을 넘어, 민중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에 접근하여 이를 누릴 권리를 제한,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통신부문은 민간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지 오래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높은 통신요금과 잦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력부문은 사유화 시도가 발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부딪쳐 제동이 걸렸으나 최근 다시 주식상장 방식으로 사유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철도, 상수도 등이 사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특히 상수도는 최근 정부가 ‘물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먹는 물까지 민간자본의 손에 넘기는 것은 많은 해외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요금 폭등과 수질저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7년 7월 8일~12일 태국에서는 ‘필수서비스(물과 전력) 사유화에 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와 전략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전역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인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현황을 분석하고 공동의 전략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JS-APMDD)> 주최로 개최되었다. <주빌리사우스>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외채에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운동체이며, 제국주의 지배와 외채, 국제금융기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주빌리사우스 아시아태평양>은 특히 IMF, 세계은행과 WTO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강제하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 지역의 반사유화 노동자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투쟁의 핵심 주체로 세우고자 한다. 국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은 2004년부터
국제노동자협회 - 설립, 조직, 정치·사회적 활동, 그리고 성장394)
<번역> 장진범 |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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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회의 창립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최근 벌어진 폴란드 봉기였다. 런던 노동자들은 파머스턴 경(Lord Palmerston>)에게 호소문을 지닌 대표자를 보내 그가 폴란드 편에서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그들은 파리의 노동자들에게 연설문을 보내 공동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했다. a파리인들은 런던에 대표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1864년 9월 28일 롱 에이커(Long Acre) 성 마르틴 회관에서 공식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참석했다.
이 집회에서 국제노동자협회가 탄생했다. 집회를 소집한 정치적 목적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적 조건이라는 주제가 제기됐다. 집회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일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기본적 악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폭로했다. 집회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집회를 통해 임시 중앙 평의회를 선출했는데, 이는 뒤에 총평의회a로 개명되었으며, 소재지는 런던이었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되었다. 평의회는 장래에 결성될 협회의 중앙 집행부와 (일종의 강령인) 창립 연설의 출판, 그리고 임시 규약의 기초를 임시로 위임받았다.b만장일치와 열광이 집회를 지배했다. 각 나라에서 신망을 얻은 사람들이 대표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가 노동자들에게 결사의 권리를 부여하도록 강제받았던 1824년 이래.395) 유럽의 다른 지역의 정치·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와 독립적으로 지배계급과 싸웠던 영국노동자들은 이제 처음으로 국내적 고립에서 벗어났으며,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의 공동 행동 필요성에 동의했다. 열광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회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것이 노동자운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2. 협회 초창기의 어려움들
새로운 운동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급한 시대적 요구에 응할 것을 요청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전부터 새로운 조직들을 그렇게나 자주 좌초시켰으며, 최소한 애초의 진정한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 암초들을 피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쇠퇴하는 운동 형태의 대표자들이 새로운 운동에 가담하여 이를 낡은 운동의 수단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시 중앙 평의회의 이탈리아 구성원들은 마찌니(Mazzini)의 추종자였다. 그들은 마찌니 스스로 입안한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396)초안을 중앙 평의회에 제출했다. 이 연설에서 마찌니는 약간의 사회주의 문구로 꾸며진 그의 낡은 정치 강령을 되풀이했다. 그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의 규약은 비밀 정치 결사에 어울리는 엄격히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규약은 애초, 운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산된 다양한 나라들의 계급 운동을 단결·결합시키는 것을 구상했던 국제노동자협회의 토대 자체를 파괴했을 것이다.
마찌니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특히 런던으로 가리발디(Garibaldi)가 개선 방문을 한 이래로 그랬다.397) 따라서 마찌니는 자신이 국제노동자협회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점을 빠뜨렸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성 마르틴 회관의 집회에서 임시 중앙 평의회에 선출된 그는 마찌니에 맞서 자신의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 초안을 제출했다. 마르크스의 초안 두 편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출판되었으며, 임시 규약은 훗날인 1866년 제네바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승인된다.a
따라서 한 독일인이 국제노동자협회에 분명한 방향과 조직적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또 런던의 중앙 평의회가 그 역할을 재차 승인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칼 마르크스의 창립 연설.398)
이 연설을 영어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면, 이하와 같다.
노동자 여러분,
노동자 계급의 비참이 1848년에서 1864년 사이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반면 이 때가 산업 발전과 상업 성장 면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시기였다는 점은 중대한 사실입니다. 1850년 당시 평균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던 영국 부르주아지의 온건 기관지는, 만일 영국의 수출입이 50% 오른다면 영국의 극빈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399) 아아! 1864년 4월 7일 영국 재무상 글래드스턴(Gladstone)씨b는 영국의 무역 총 수출입이 1863년에 443,955,000파운드까지 성장했다고 발표하여 청중a을 크게 기쁘게 했는데, 이 액수는 비교적 최근인 1843년 무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적 비참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아의 경계에 있는 이들,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임금, 십중팔구는 나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b그는 아일랜드 인민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북부에서는 기계로, 남부에서는 목양장(牧羊場)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양조차, 사람만큼 빠른 속도로는 아니지만, 줄어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는 상위 일만명의 최고위급 대표자들이 갑자기 겁에 질려 막 누설한 사실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살강도에 대한 공포(garotte panic)400)가 일정한 수준에 달했을 때, 상원에서는 유형(流刑)과 징역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보고서로 출판했습니다. 1863년401)의 두꺼운 청서(Blue Book)에 살인 내용이 실렸는데, 공식적 사실과 수치로 증명됐다시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최악의 범죄자들과 유형 농노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농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덜 고생하고 훨씬 더 나은 음식을 대접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뿐이 아닙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문에 랭커셔와 체셔의 직공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동일한 상원이 공장지대에 의사를 보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값싸고 형편없는 형태로 공급되던 탄소와 질소의 최소량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의회의 의료 위원인 스미스 박사(Dr. Smith)는 28,000 그레인의 탄소와 1,330 그레인의 질소가 평균적인 성인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겨우 면할 수 있는 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이 양은 극단적인 곤궁의 압력 때문에 가난한 면직공들이 실제로 처하게 된 빈약한 영양 상태와 아주 근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다가 아닙니다. 동일한 이 박식한 의사에게 정부a는 훗날 다시 노동자 계급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위임했습니다. 그의 조사 결과는 "공중 보건에 관한 6차 보고서"에 실려 있으며, 올해(1864))b 의회의 명령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의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견직공들, 재봉 여공들, 장갑제조공들, 양말 제조공들 및 여타의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면직공들의 궁핍한 음식조차,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탄소와 질소 분량조차 얻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더욱이 조사된 농업 주민 가족들을 보자면, 1/5 이상이 탄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1/3 이상은 질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섭취했으며, 3개 주(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에서는 불충분한 질소 함유 식품이 평균적인 지역 식단이었다." 공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식량 부족은 매우 참기 어렵다는 점, 따라서 대체로 형편없는 식단은 다른 것이 부족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점이다." … "심지어 청결조차도 값비싸거나 어려운 일로 판명될 것이며, 만일 청결을 유지하려는 자존(自尊)적인 노력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이 같은 모든 노력은 굶주림의 격통이 추가된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언급된 빈곤이 게으른 자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빈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경우가 노동 인구의 빈곤이다.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이 대개의 경우 과하게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는 이상할 뿐더러 예견하지도 못한 사실을 드러냈는데,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의 4개 지역,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중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농업 인구가 가장 영양상태가 형편없다는 것, 그러나 심지어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의 농업 노동자들조차 런던 이스트 엔드 실내의 숙련 직공들 대다수보다 영양상태가 낫다는 게 그것입니다.
국제노동자협회 - 설립, 조직, 정치·사회적 활동, 그리고 성장394)
<번역> 장진범 | 편집부장
[%=박스1%]
1. 협회의 창립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최근 벌어진 폴란드 봉기였다. 런던 노동자들은 파머스턴 경(Lord Palmerston>)에게 호소문을 지닌 대표자를 보내 그가 폴란드 편에서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그들은 파리의 노동자들에게 연설문을 보내 공동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했다. a파리인들은 런던에 대표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1864년 9월 28일 롱 에이커(Long Acre) 성 마르틴 회관에서 공식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참석했다.
이 집회에서 국제노동자협회가 탄생했다. 집회를 소집한 정치적 목적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적 조건이라는 주제가 제기됐다. 집회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동일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기본적 악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폭로했다. 집회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집회를 통해 임시 중앙 평의회를 선출했는데, 이는 뒤에 총평의회a로 개명되었으며, 소재지는 런던이었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되었다. 평의회는 장래에 결성될 협회의 중앙 집행부와 (일종의 강령인) 창립 연설의 출판, 그리고 임시 규약의 기초를 임시로 위임받았다.b만장일치와 열광이 집회를 지배했다. 각 나라에서 신망을 얻은 사람들이 대표로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입법부가 노동자들에게 결사의 권리를 부여하도록 강제받았던 1824년 이래.395) 유럽의 다른 지역의 정치·사회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와 독립적으로 지배계급과 싸웠던 영국노동자들은 이제 처음으로 국내적 고립에서 벗어났으며,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의 공동 행동 필요성에 동의했다. 열광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회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것이 노동자운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2. 협회 초창기의 어려움들
새로운 운동들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급한 시대적 요구에 응할 것을 요청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전부터 새로운 조직들을 그렇게나 자주 좌초시켰으며, 최소한 애초의 진정한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 암초들을 피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왜냐하면 쇠퇴하는 운동 형태의 대표자들이 새로운 운동에 가담하여 이를 낡은 운동의 수단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시 중앙 평의회의 이탈리아 구성원들은 마찌니(Mazzini)의 추종자였다. 그들은 마찌니 스스로 입안한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396)초안을 중앙 평의회에 제출했다. 이 연설에서 마찌니는 약간의 사회주의 문구로 꾸며진 그의 낡은 정치 강령을 되풀이했다. 그는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의 규약은 비밀 정치 결사에 어울리는 엄격히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규약은 애초, 운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산된 다양한 나라들의 계급 운동을 단결·결합시키는 것을 구상했던 국제노동자협회의 토대 자체를 파괴했을 것이다.
마찌니는 당시 영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특히 런던으로 가리발디(Garibaldi)가 개선 방문을 한 이래로 그랬다.397) 따라서 마찌니는 자신이 국제노동자협회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점을 빠뜨렸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성 마르틴 회관의 집회에서 임시 중앙 평의회에 선출된 그는 마찌니에 맞서 자신의 창립 연설과 임시 규약 초안을 제출했다. 마르크스의 초안 두 편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출판되었으며, 임시 규약은 훗날인 1866년 제네바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승인된다.a
따라서 한 독일인이 국제노동자협회에 분명한 방향과 조직적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또 런던의 중앙 평의회가 그 역할을 재차 승인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칼 마르크스의 창립 연설.398)
이 연설을 영어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면, 이하와 같다.
노동자 여러분,
노동자 계급의 비참이 1848년에서 1864년 사이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반면 이 때가 산업 발전과 상업 성장 면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시기였다는 점은 중대한 사실입니다. 1850년 당시 평균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던 영국 부르주아지의 온건 기관지는, 만일 영국의 수출입이 50% 오른다면 영국의 극빈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399) 아아! 1864년 4월 7일 영국 재무상 글래드스턴(Gladstone)씨b는 영국의 무역 총 수출입이 1863년에 443,955,000파운드까지 성장했다고 발표하여 청중a을 크게 기쁘게 했는데, 이 액수는 비교적 최근인 1843년 무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회적 비참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아의 경계에 있는 이들,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임금, 십중팔구는 나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b그는 아일랜드 인민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북부에서는 기계로, 남부에서는 목양장(牧羊場)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 불행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양조차, 사람만큼 빠른 속도로는 아니지만, 줄어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는 상위 일만명의 최고위급 대표자들이 갑자기 겁에 질려 막 누설한 사실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살강도에 대한 공포(garotte panic)400)가 일정한 수준에 달했을 때, 상원에서는 유형(流刑)과 징역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여 이를 보고서로 출판했습니다. 1863년401)의 두꺼운 청서(Blue Book)에 살인 내용이 실렸는데, 공식적 사실과 수치로 증명됐다시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최악의 범죄자들과 유형 농노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농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덜 고생하고 훨씬 더 나은 음식을 대접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뿐이 아닙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문에 랭커셔와 체셔의 직공들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동일한 상원이 공장지대에 의사를 보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값싸고 형편없는 형태로 공급되던 탄소와 질소의 최소량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의회의 의료 위원인 스미스 박사(Dr. Smith)는 28,000 그레인의 탄소와 1,330 그레인의 질소가 평균적인 성인이 기아로 인한 질병을 겨우 면할 수 있는 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이 양은 극단적인 곤궁의 압력 때문에 가난한 면직공들이 실제로 처하게 된 빈약한 영양 상태와 아주 근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다가 아닙니다. 동일한 이 박식한 의사에게 정부a는 훗날 다시 노동자 계급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위임했습니다. 그의 조사 결과는 "공중 보건에 관한 6차 보고서"에 실려 있으며, 올해(1864))b 의회의 명령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의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견직공들, 재봉 여공들, 장갑제조공들, 양말 제조공들 및 여타의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면직공들의 궁핍한 음식조차, "기아로 인한 질병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탄소와 질소 분량조차 얻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보고서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더욱이 조사된 농업 주민 가족들을 보자면, 1/5 이상이 탄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1/3 이상은 질소 함유 식품의 추정 적정량 이하를 섭취했으며, 3개 주(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에서는 불충분한 질소 함유 식품이 평균적인 지역 식단이었다." 공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식량 부족은 매우 참기 어렵다는 점, 따라서 대체로 형편없는 식단은 다른 것이 부족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점이다." … "심지어 청결조차도 값비싸거나 어려운 일로 판명될 것이며, 만일 청결을 유지하려는 자존(自尊)적인 노력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이 같은 모든 노력은 굶주림의 격통이 추가된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언급된 빈곤이 게으른 자들이 마땅히 겪어야 할 빈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경우가 노동 인구의 빈곤이다.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식량을 얻기 위한 노동이 대개의 경우 과하게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는 이상할 뿐더러 예견하지도 못한 사실을 드러냈는데,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의 4개 지역,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중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농업 인구가 가장 영양상태가 형편없다는 것, 그러나 심지어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세트셔의 농업 노동자들조차 런던 이스트 엔드 실내의 숙련 직공들 대다수보다 영양상태가 낫다는 게 그것입니다.
독자평을 덥석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 여간 후회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 『월간 사회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편집위원인 내가 제대로 된 독자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쓴소리를 포함한 제대로 된 독자평은 포기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글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게 무슨 독자평이냐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분이 계시겠지만 양해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
독자평을 덥석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 여간 후회한 것이 아니었다. 매번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 『월간 사회운동』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고 편집위원인 내가 제대로 된 독자평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간 망설여지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쓴소리를 포함한 제대로 된 독자평은 포기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읽었던 글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게 무슨 독자평이냐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릴 분이 계시겠지만 양해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이번 『월간 사회운동』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칼럼 및 인터뷰,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이랜드-뉴코아 투쟁까지 우선 이번 호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이랜드-뉴코아 투쟁에 대한 소중한 칼럼과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노동자 스스로가 역사의 주인이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노동자라는 점이었다. 정경원의 칼럼과 노옥희의 인터뷰는 87년 노동자들이 왜,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현재적 의미와 현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민주노조를 결성하거나,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는 등 온전한 노동 3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87년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단결의 무기로 민주적 노동조합을 만들어냈고, 노동자 스스로 '불순세력'이 되어 '외부세력'과의 연대의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바로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이며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글 모두 87년에 대한 이러한 기록과 기억들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에 머무르기보다는 87년의 단결과 연대의 정신의 복원을 통해 현재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남신의 인터뷰는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곧바로 극히 취약한 고용 관계에 노출된다. 노동자는 고용 안정성의 상실에 더해 사회적 안정성까지 상실당한 상태에 처한다.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노동 기본권을 집단적으로 대변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상태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 실상이 그대로 소개된다면, 아마도 모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저렇게 되지는 말자"고 혀를 찰 것이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제 노동단체의 주요 관계자가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이번 이랜드 사태는 단순히 악덕한 개별 자본과 힘없는 개별 노동 간의 대립이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이 사태는 현 정부 내내 지난한 진통을 겪으며 겨우 입법화를 이룬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이, 실상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번지르르한 입법 취지와 달리 현실적으로 상당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비정규직도 2년 후에 반드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규정은 2년이 되기 전에 마음껏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사용자들의 해고 남용을 제어할 수단이 없고서는,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용 시작 단계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경고가 계속 나왔으나 모르쇠로 일관한 정부는 뒤늦게 허둥대는 꼴이다. 또한 이번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대량해고 사태는 핵심 노동이 아니라 주변화된 노동,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가 아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는 여성노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몰려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을 이랜드 사측은 핵심적인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외주화로 더 낮은 임금의 여성노동자를 고용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1)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전반의 지배적인 관념과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변화시켜내지 못하면 이랜드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한편 인터뷰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쟁점과 기본적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는 글과 인터뷰가 같이 실렸으면 인터뷰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바라보는 사회진보연대의 색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갈증이 남는 인터뷰였다.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와 인터뷰이께서 소중한 시간을 내고 발로 뛰어 만든 현장감 있는 인터뷰인데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비정규 투쟁의 전망에 대한 보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민족주의는 인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적 정치이념의 주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인민주의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취약한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도 한다.2 민족주의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글이 임필수 집행위원장의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 - 남북한의 종족적 민족주의와 '단일민족'의 환상」이다. 이 글은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 실린 글로 인해 촉발된 논쟁을 계기로 남북한을 비롯한 동북아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과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민족 고유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혼혈과 이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유럽의 극우세력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민족의 기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며, 민족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철저히 '야만적 이상'에 불과"하다.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대 이전의 민족, 즉 민족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민족에 주목하면서 특히 종족적 신화와 상징이 민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이전의 민족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구성될 따름이다. 국경(border)이 아니라 변경(frontier)만 존재할 따름인 세계제국에서는 다종족주의가 일반적인데 '민족의 순수화(정화)', '종족적 순수성'이라는 반동적 해결책은 '야만적 이상'인 것이다.3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며 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각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경화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미국의 패권주의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의 민족주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반동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는 이 글은 민족주의 이론에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월간 사회운동의 힘찬 도움닫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서평이 7/8월호에서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9월호부터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획 서평이 실린다고 하니 큰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2007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통해 얻게 될 사회진보연대의 운동적 고민과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회원들과 함께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월간 사회운동』 9월호를 기대해 본다. 1)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크리스 틸리(Chris Tilly) 교수는 8월 21일「Wal-Mart and Its Workers」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캐셔(계산원) 외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캐셔를 외주화한다고요? 월마트 주요 관리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겁니다. 돈을 다루는 업무를 외주화 하겠다니…. 한국 유통업체들이 캐셔 외주화에 성공한다면, 월마트 관계자들이 한 수 배우러 찾아오겠는데요.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악화'로 대표되는 월마트식 모델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조차 유통업종 내 외주화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종의 핵심 업무인 계산업무의 외주화는 전혀 시도된 바 없습니다." 본문으로 2)윤소영, 2007, 「민족주의 비판」,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쟁점들』, 공감.본문으로 3)위의 글.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