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의 배경과 목적 한국사회 내에서 노동자들의 '궁핍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매년 생계비 증가율이 노동소득 증가율을 상회.1)하는 가운데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 추세2)는 계속되고 있고, 저임금이 내재화된 비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비정규직 중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규모가 여성, 고령자, 이주민 등 노동권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규모는 2002년 85만 명(6.4%), 2003년 104만 명(7.6%), 2004년 125만 명(8.8%), 2005년 173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표준생계비에 한참 모자랄 정도로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이 저임금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고용상태3)와 열악한 노동조건4)으로 인해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체감하는 궁핍 정도는 '생계 위협' 그 자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의 불안정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현상하는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권리주체인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에서부터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 조직률은 아직까지도 미미한 수준이다. 정규직 노동자에 비교했을 때 평균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005년 현재 3.2%에 그치고 있다. 특히 임금이나 노동조건 면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위치해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 가입률이 1%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어 절대적 다수가 각종 차별과 초과착취에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5)이 같은 바닥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자 조직률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저임금 문제의 해결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대응은 매우 한계적이다.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기존 노동자운동의 대응 역시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현장투쟁들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거센 물리적·이데올로기적 공세, 이에 대한 전체 노동자운동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서 각개약진 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운동은 자본과 정부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분할과 위계화에 무기력했고 대부분의 투쟁들이 눈앞에 닥친 사안에 대해 단사 혹은 업종 차원에서 대응하는 데 급급했을 뿐 신자유주의 맞선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로는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지금은 비정규법 개악과 노사관계 로드맵 등 노동자계급 전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안에서조차 대중투쟁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적일 수밖에 없는 노-사-정 협의구조에 기대는 수세적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투쟁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기존 노동자운동의 내적 변화를 추동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주체화하는 데 중요한 매개로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최저임금투쟁의 저변 확대가 눈에 띄게 정체되고 최저임금제도 개선과 최저임금위원회 협상구조에 의존하는 관성이 굳어져 대중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계기들이 소실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노력의 한계에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최저임금제도의 제도적 한계에 기인하는 바 크다. 최저임금제도가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최저임금의 수준, 최저임금의 적용 등에서 한계를 노정 하는 것은 이 제도가 지금 시기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실업, 빈곤 등의 위기징후 폭발을 억제하는 등 사회의 위기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정치적 고려'가 최저임금 인상률의 실질적인 결정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의 계급적 힘의 역학관계가 제도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최저임금투쟁은 이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중운동적 기획, 주되게는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주체화 전략 속에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임금과 노동의 불안정화를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그리고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에 조응하면서 운동의 가능성들을 잠식당할 위험이 농후한 노-사-정 협상구조와 제도 개선에 의존한 해결방식을 뛰어넘는 노동자운동의 다각적인 활로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활로들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직화·주체화하는 기획들과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요구와 배경에서 지난 7월 21일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이 열렸다. 워크샵은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에 안착한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의 변화를 총론 수준에서 개괄하고 최근 지역단위 저임금문제 대응에 있어 유의미한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생활임금' 운동에 대해 검토하기 위한 목적에서 준비되었다. 또한 그동안 조직화의 사각지대로 존재해왔던 자활 및 사회적 일자리의 저임금 실태 및 대응방향과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서울지역 전략조직화 사업의 현황과 이후 보완점 등을 함께 살펴보면서 향후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노동자운동 및 사회운동의 실천적 과제들을 도출하고자 했다. 워크샵에는 사회진보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민중복지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등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과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공공연맹 조직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이 글에서는 워크샵에서 주되게 쟁점이 되었던 노동의 불안정화 원인과 양상, 노동연계복지와 사회적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 생활임금 운동의 가능성과 쟁점 등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끝으로 워크샵 말미에 과제로 제기되었던 지역적 차원의 노동자운동 강화 방안에 대한 내용들을 담았다. 2. 노동 불안정화의 원인과 양상 (1) 금융세계화와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금융화'라는 핵심적 특징을 가진다. 197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세계 경제의 구조조적 위기에 대해 자본의 대응방향은 금융적 팽창이었다. 금융 주도의 세계화된 축적체제, 즉 '금융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인 강탈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구축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금융'이라는 화두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IMF 구제금융 협약으로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기존의 재벌들과 대거 유입된 해외투자자들은 한국경제를 빠른 속도로 금융세계화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이후 경제의 금융화는 가속화되었고 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은 증대했다. 한편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에 대한 투자가 금융논리에 종속되었다. 주식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업에 대한 주주의 권한이 강화되고 '주주의 이익'을 얼마나 잘 보장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재 유무가 판가름 났다. 이는 이른바 '주주 자본주의'가 일반화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조건 하에서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산에 투자하기보다는 주식시장에서 자기주식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단기적인 비용절감에 주력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논리 및 주주 자본주의가 한국경제 전반에 관철되면서 이른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합리화'가 진행되어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아래 '상시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했다. 기업은 한편으로는 시장의 일상적인 평가에 기반해 인수합병, 금융건전성 감독 강화 같은 방법으로 부실금융·기업을 줄여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외주·용역화, 분사, 비정규직화, 연봉제 개편 등 불안정 노동을 일상화했다. 이를 통해 노동유연화와 고용형태의 분절화가 급속도로 진척되었고 기존의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불안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기업은 이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값싸고 통제가 용이한 노동력을 항상적으로 유지·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초과착취할 수 있는 방식을 구조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수 년 간 진척된 노동자 일반의 궁핍화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착취율이 증가했음을 뜻하기도 한다.6) (2) 신규노동력 유입 촉진 : 여성, 고령인구, 외국인력 등 저출산·고령화 위기담론이 사회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정부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가 중장기적으로 노동력 규모의 감소와 노동생산성 저하를 가져올 것이고 이를 통해 소비 위축, 투자 위축 등 한국경제 전반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며 강한 위기의식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 정부는 분야별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수립해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건강가정기본계획', '중장기 보육정책기본계획', 지난 7월 4일 발표된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계획은 각기 다른 분야 정책의 사업과제를 담고 있지만 일관된 여성정책과 노동정책의 흐름 속에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 6월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7%이며 고용률은 60.6%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성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남성 인구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각각 74.8%, 72%로 OECD 평균 수준을 상회한다. 사실상 한국에서 남성 신규노동력이 노동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1.3%에 그치고 있으며 OECD 상위국 수준인 60%대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인구 구성의 측면에서 노동인구 정체 현상에 직면해 인력난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여성 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해내는 것에서 찾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구조적 인력난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고 현재 실업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규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계속 유입시키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기본계획'들은 이 같은 고려가 대부분 반영되어 있다. '기본계획'이 담고 있는 여성고용 확대, 고용차별 시정, 출산·양육·부양에 대한 사회적 지원, 일·가정 양립 등의 정책방향 및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의 확충을 통해 여성 인구를 노동시장에 조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구나 이렇게 창출된 일자리는 여성에게 적합한 탄력근로제 도입, 파트타임 일자리 확산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를 기본으로 설계되고 있어 향후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유연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장 유인의 대상이 되는 인구집단은 여성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성 이외에 고령인구, 외국적 동포 및 외국인력 등이 꼽히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① 연령차별 금지 법제화 및 정년제도 개선 ② 외국적 동포·외국인력 활용방안 등이 거론되어 있다. 정부가 고령자 고용확대 방안으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년의무화 제도는 임금 피크제 확산, 파트타임·일자리 나누기, 전문계약직 재고용 등을 전제로 하고 있어 고령인구에 대한 노동착취가 제도적으로 구조화할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이를 통해 노동시장 전반의 노동조건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외국적 동포 활용 차원에서 지난 5월 26일 심의·확정된 정부의 '외국인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에는 중국동포들에 대해 1회 입국 시 3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5년 유효의 복수사증을 발급하여 방문과 취업이 동시에 가능한 '방문 취업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저임금 단순 노동력으로서 이주노동력에 대한 국내 자본의 수요를 중국동포를 중심으로 충당해 나갈 것이고 현존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동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선별적으로 합법화하겠다는 새로운 이주노동력 도입 및 관리 정책에 가깝다. 이는 국내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동포라는 혈연적 관계,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쉽게 관리될 수 있는 재외동포로 충당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3) 노동연계복지와 사회적 일자리 정책 과거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정책은 실업, 빈곤 등 사회적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은 사회 전반을 시장과 밀착시키면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잠재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상품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전면에 등장한다. 노동연계복지는 해석이나 용어사용이 매우 다양하지만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의무, 즉 직업훈련, 구직 등과 같은 일련의 활동을 복지수급의 조건으로 연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분명한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정책방향은 1960년대 경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이른바 복지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대륙에서도 수용되었고 세계적으로 확대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이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한다.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제정과 함께 그동안 자활공동체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존재해왔던 자활사업에 대한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초법상의 조건부 수급 규정은 자활 참여와 복지 수급을 연계하면서 복지 수급자에 대한 노동 강요를 구조화하는 데 기여했다. 노무현정부에 들어서 이 같은 노동연계복지는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포괄되기 시작했다. 노무현정부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회적 일자리는 각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장기실업자나 빈곤층에게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 유럽에서의 사회적 경제나 제3섹터의 개념과는 상이하다. 유럽에서 사회적 일자리는 지역공동체와 협동조합, 상호부조조직, 자발적 조직들의 자생적인 움직임 등이 배경이 되어 형성된 데 반해 한국에서의 사회적 일자리는 급격한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과 빈곤을 흡수하고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을 유지·관리하면서 노동유연화를 더욱 진척시키는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노무현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2003년 7월 노동부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사회적 서비스 확충과 연계하여 노동, 안전, 보건의료, 복지, 환경, 문화 등 사회서비스 영역 전반을 아우르면서 부처별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2004년 11월에 발표된 정부의 '일을 통한 빈곤탈출 정책'에 따르면 2008년까지 국내 사회적 일자리의 규모는 2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현재 실업률을 낮추면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심각해져 가는 실업,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여 사회서비스 중심의 사회적 일자리를 새롭게 정책수단화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확대 방식이 공공서비스의 확대로 이어져야 함에도 이것이 사회적 일자리로 포괄되면서 민간위탁 방식의 민영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익적 성격의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정책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경과적·일시적 일자리이기 때문에 고용상황을 악화시킨다. 결국 노무현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확대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사회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예컨대 간병인 서비스의 경우 24시간 서비스제공의 대가는 5만원으로 시급 2,803원 수준이다. 통상 시급 3,100원인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론 이마저도 병원이나 시설 등에서의 직접고용보다는 민간위탁의 형태를 띠고 있어 중간착취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대한 지원은 사회적 기업(여기에는 영리·비영리법인, 단체 등이 모두 포함된다)에 대한 지원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해소되기 힘들다. 또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여성 직종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어 공공성 강화와 노동조건 개선 대책 없는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은 여성 비정규직 확산과 성별 직종분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3. 생활임금 운동의 가능성과 쟁점7) (1) 미국의 사례 - 사회적 배경과 생활임금 운동의 시작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실질 임금과 이익 감소, 실업, 경제 불안정성 증가를 경험하였다. 1968년 이래 최저임금의 실질가치는 계속 감소했으며 취업자 계층 내 빈곤층의 비율이 점점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경기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상관없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층간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1979년부터 2001년 사이 5분위 중 최하 20%의 소득증가율이 3%에 머문 반면 상위 20%의 증가율은 53%에 달해 증가율만 보더라도 무려 17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1994년 12월, 볼티모어시는 '주, 시, 카운티 등의 지방정부와 거래 관계를 갖는 사업체의 고용주들이 1999년까지 연방 최저임금 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한다. 이를 계기로 생활임금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지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볼티모어시가 선구적으로 조례를 제정한 이후 전국에 걸쳐 백 수십여 개의 시의회와 카운티 위원회가 다양한 형태의 생활임금 조례를 통과시켰다. 미국에서의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 과정 속에서 생활임금 조례의 적용 범위와 수준을 확대하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사기업 부문과 비영리 기관에서 근무하는 돌봄노동 종사자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 생활임금의 개념 생활임금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가와 수단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임금' 등으로 개념화된다. 그러나 전사회적인 공감대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근거를 가진 생활임금의 결정기준이나 적정 수준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에서 생활임금의 수준을 '빈곤선 이상'으로 대략 설정하는 것은 이 같은 난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생활임금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생활임금 결정기준은 공식적인 빈곤기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가 설정한 빈곤선을 활용하면서 부가적인 조항들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처럼 생활임금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의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분명한 목표와 의미를 담고 있는 사회적 기준선을 제출하기란 어려운 과제이다. 이는 질적인 수준의 의미들을 양적인 화폐량으로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같은 전환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운동의 목표에 질곡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생활임금 결정기준마련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기준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운동의 목표와 의미들을 고려할 때 최소한 다음의 원칙들은 견지해야 한다. 생활임금은 ① 지역 간 생활비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고 ② 가구 규모와 특성에 따른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며 ③ 필요한 지출에 기반하여 설정될 필요가 있고 ④ 단지 빈곤선 이상이 아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 생활임금의 적용 대상 생활임금 정책은 법률이나 조례로 강제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세금감면, 보조금 혜택을 주는 등의 유도정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의 적용대상이 누구인가, 즉 어떤 기업에 대해서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이다. 적용대상의 범위에 따라 이 조례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수가 달라진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생활임금 적용 대상은 다음과 같다. ① 지자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기업 : 청소, 경비, 주차관리 등 ②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 : 미국의 경우 지자체로부터 세금감면, 채권을 통한 지원(bond financing), 증세재정지원(tax increment financing), 조세환급, 대출 등의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됨 ③ 비영리법인 : 보육, 노인간병, 가정간병, 정신건강 서비스 등의 대민서비스를 담당하는 비영리법인 ④ 노동연계 복지 프로그램 참여자 : 공공근로,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 등이다. 미국에서 생활임금을 비영리법인 종사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운동 초기에는 비영리 법인을 포함하지 않았기에 상당수의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노동연계 복지 프로그램 참여자에 대한 생활임금 적용도 중요한데,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기존 노동자들과의 일자리 경쟁은 격화되고 저임금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연대지원위원회>는 14,000명의 복지제도 수급자를 최저임금 이하의 일자리로 몰아넣는 복지개혁이 시작되자 이들을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관계가 아니라 동맹관계를 맺도록 노력했다. 이처럼 생활임금 운동이 진척되면서 생활임금 적용 범위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으나 해당 지역 전체 노동자의 규모에 견주었을 때 아직까지도 매우 협소한 편이다. 그러나 지역 법정 최저임금의 형태로 일괄 적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뉴멕시코의 산타페 시정부가 생활임금의 보편적 적용, 즉 시계 내 25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기업이 생활임금 이상을 지급할 것을 규정하였고 샌프란시스코도 시위원회 투표를 통해 시내의 거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생활임금 조례를 확정하였다. (2) 미국의 사례를 통해 본 생활임금 운동의 관건 - 조례 제정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 사례를 보면 저임금,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금 보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노조활동권, 고용안정 보장 등의 노동기본권 그리고 공공서비스 확충 같은 기본생활권 전반의 문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이를 위해서 생활임금 운동은 생활임금 조례를 통과시키거나 생활임금 수준을 인상하는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기본생활권 보장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서도 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점차 '실질임금'의 보장에 관한 조례의 제정으로 운동 목표가 수렴되는 사례는 발견된다. 이는 생활임금운동이 제도화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시사해주는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여러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긴밀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생활임금 운동은 생활임금 문제를 작업장 문제만이 아닌 지역 사회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해야 한다. 또한 노조 활동의 경험이 없고 고용 불안정성이 심한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운동들의 연합이 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임금 운동이 가지는 큰 매력은 미국에서처럼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광범위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산별노조의 지역조직과 AFL-CIO의 지역본부, 지역의 교회, 소수민 단체, 학생단체 등이 결합된 즉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통해 형성, 전개되었다. 이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운동의 연대는 ① 빈곤임금의 근절 ② 공공서비스 영역의 사유화 및 외주화 반대 ③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④ 대안적 지역 경제발전 및 활성화 등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하며 생활임금을 매개로 폭넓은 활동을 벌였다. (3) 쟁점들 - 생활임금 조례 제정 운동은 지역공동체 경제정의를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운동의 일부로 기획되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지역공동체의 경제정의'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며,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제정의'라는 생활운동의 목표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지자체를 상대로 생활임금 운동이 준비된다면 어떠한 목표 아래에 배치될 수 있을 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 외국에서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역사를 갖고 성장한 탄탄한 지역운동이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한 운동이 미약한 상황이다. 또한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매우 빈약하며 지역토호들의 이전투구에 휩쓸리는 현상도 여전한 상황에서 오히려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최저임금투쟁보다 생활임금 운동이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 생활임금 조례는 공적 기금, 재산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기업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가장 큰 한계를 갖고 있다. 생활임금 운동은 만연한 저임금과 무능한 최저임금 제도를 폭로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함을 지역사회에 제기한다는 효과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수는 제한적이다. 지자체의 낮은 재정자립도로 인해 기업에 대한 지원이 더 적으리라 추정되는 한국의 경우에 더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빈곤의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제기하고 운동을 조직할 것 인지의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고 이를 위한 전반적인 논의와 구상이 필요하다. 4.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사회운동들 간의 교류는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번 워크샵은 다시 한번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의 중요성을 각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계급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를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노동조합을 건설이나 가입이 어려운 중소영세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노동권이 취약한 여성·고령·이주노동자이고 고용불안과 생계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사회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 같은 저임금 노동자의 존재조건을 감안했을 때 대공장·정규직·남성·내국인 중심의 정체성을 내재화한 기존 노동자운동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현재 노동자운동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이해에 기반 해 실리주의·경제주의·현장주의적 편향을 보이고 있으며 당장의 경제적 실리와 무관한 연대운동과 비정규직 조직화 등은 부차적이고 임의적인 활동으로 치부해 뒤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동자운동이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대표성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나아가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 분절화·위계화 앞에 무기력해질 것이 자명하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불안정화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여성정책·복지정책·사회정책 등이 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여성·복지·사회정책이 노동정책과 맞물리며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한 통합적 대응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운동 및 빈곤·여성·이주 등 사회운동의 연대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일상적인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의 확보와 행동 프로그램의 수립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토론의 과정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자 존재양태에 주목한 상태에서 '지역'이라는 운동적 거점에 대한 판단과 검토도 이 같은 과정에서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워크샵은 이러한 사회운동들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소중한 성과를 남겼고 향후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의제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함께 남겼다. 1) <민주노총 2006 임금요구안>(민주노총, 2006)에서 인용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을 제외하고 노동소득 증가율과 가구주소득 증가율에 견주어 가계지출 증가율과 소비지출 증가율이 웃돌고 있다. 도시 노동자 가계지출과 주요 비목별 지출 증가 추이를 보면 주거비와 보건의료비,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등이 전체 가계지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고, 특히 사교육비는 2003년 무려 40.8%나 늘어난 뒤에도 9.0%(2004년), 9.5%(2005년)로 높은 폭으로 인상되고 있다. 본문으로 2) [<민주노총 2006 임금요구안>(민주노총, 2006)에 의하면 매년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은 실질임금 인상률 비교지표인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에 밑돌고 있다.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은 2000년 10.8%, 2001년 7.9%, 2002년 9.7%, 2003년 6.7%, 2004년 8.0%이고, 반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은 2000년 3.0%, 2001년 6.6%, 2002년 4.9%, 2003년 7.0%, 2004년 3.5%에 그치고 있다.본문으로 3) 2006년 현재의 실업률은 3.9% 정도로 IMF 이후 1999년 8.5%까지 올라갔던 실업률에 비해 많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표상의 수치일 뿐 실제로는 급속히 진행된 노동의 불안정화에 의해 극단적인 경쟁적 노동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실업률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높게 유지되고 있는 체감실업률은 이 같은 현실, 취업과 실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기 실업자의 수 증가, 중간 수준 일자리 감소와 하위 일자리 증가 추세 등을 반영한다.본문으로 4)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은 퇴직금, 상여금 등의 노동조건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사회보험 등의 사회보험 적용에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2005년 현재 정규직의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률은 82~98%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1~33%밖에 안되고, 정규직의 퇴직금·상여금·시간외수당·유급휴가 적용률은 81~98%에 이르지만 비정규직은 15~20%에 그치고 있다. 본문으로 5)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특성과 정책과제>(한국여성개발원, 2005)에 따르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 고용되어 있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93%에 이르고 있다. 이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문으로 6) 전체 취업자 대비 임금노동자의 비중은 2000년 들어 63.1%에서 2004년 66.0%로 꾸준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소국민소득 대비 노동소득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4년 58.8%에 머물고 있다. 즉 노동자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 본문으로 7)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에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구미영, 민중복지연대 권혁기 동지가 발제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1.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의 배경과 목적 한국사회 내에서 노동자들의 '궁핍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매년 생계비 증가율이 노동소득 증가율을 상회.1)하는 가운데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 추세2)는 계속되고 있고, 저임금이 내재화된 비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비정규직 중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규모가 여성, 고령자, 이주민 등 노동권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규모는 2002년 85만 명(6.4%), 2003년 104만 명(7.6%), 2004년 125만 명(8.8%), 2005년 173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표준생계비에 한참 모자랄 정도로 지나치게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이 저임금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고용상태3)와 열악한 노동조건4)으로 인해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체감하는 궁핍 정도는 '생계 위협' 그 자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의 불안정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현상하는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권리주체인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에서부터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 조직률은 아직까지도 미미한 수준이다. 정규직 노동자에 비교했을 때 평균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2005년 현재 3.2%에 그치고 있다. 특히 임금이나 노동조건 면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위치해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 가입률이 1%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어 절대적 다수가 각종 차별과 초과착취에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5)이 같은 바닥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자 조직률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저임금 문제의 해결과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대응은 매우 한계적이다.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기존 노동자운동의 대응 역시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현장투쟁들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거센 물리적·이데올로기적 공세, 이에 대한 전체 노동자운동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서 각개약진 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운동은 자본과 정부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분할과 위계화에 무기력했고 대부분의 투쟁들이 눈앞에 닥친 사안에 대해 단사 혹은 업종 차원에서 대응하는 데 급급했을 뿐 신자유주의 맞선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로는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지금은 비정규법 개악과 노사관계 로드맵 등 노동자계급 전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안에서조차 대중투쟁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적일 수밖에 없는 노-사-정 협의구조에 기대는 수세적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투쟁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기존 노동자운동의 내적 변화를 추동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주체화하는 데 중요한 매개로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최저임금투쟁의 저변 확대가 눈에 띄게 정체되고 최저임금제도 개선과 최저임금위원회 협상구조에 의존하는 관성이 굳어져 대중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계기들이 소실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노력의 한계에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최저임금제도의 제도적 한계에 기인하는 바 크다. 최저임금제도가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최저임금의 수준, 최저임금의 적용 등에서 한계를 노정 하는 것은 이 제도가 지금 시기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실업, 빈곤 등의 위기징후 폭발을 억제하는 등 사회의 위기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정치적 고려'가 최저임금 인상률의 실질적인 결정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의 계급적 힘의 역학관계가 제도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최저임금투쟁은 이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중운동적 기획, 주되게는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주체화 전략 속에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임금과 노동의 불안정화를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그리고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에 조응하면서 운동의 가능성들을 잠식당할 위험이 농후한 노-사-정 협상구조와 제도 개선에 의존한 해결방식을 뛰어넘는 노동자운동의 다각적인 활로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활로들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직화·주체화하는 기획들과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요구와 배경에서 지난 7월 21일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이 열렸다. 워크샵은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에 안착한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의 변화를 총론 수준에서 개괄하고 최근 지역단위 저임금문제 대응에 있어 유의미한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생활임금' 운동에 대해 검토하기 위한 목적에서 준비되었다. 또한 그동안 조직화의 사각지대로 존재해왔던 자활 및 사회적 일자리의 저임금 실태 및 대응방향과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서울지역 전략조직화 사업의 현황과 이후 보완점 등을 함께 살펴보면서 향후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노동자운동 및 사회운동의 실천적 과제들을 도출하고자 했다. 워크샵에는 사회진보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민중복지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등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과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공공연맹 조직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이 글에서는 워크샵에서 주되게 쟁점이 되었던 노동의 불안정화 원인과 양상, 노동연계복지와 사회적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 생활임금 운동의 가능성과 쟁점 등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끝으로 워크샵 말미에 과제로 제기되었던 지역적 차원의 노동자운동 강화 방안에 대한 내용들을 담았다. 2. 노동 불안정화의 원인과 양상 (1) 금융세계화와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금융화'라는 핵심적 특징을 가진다. 197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세계 경제의 구조조적 위기에 대해 자본의 대응방향은 금융적 팽창이었다. 금융 주도의 세계화된 축적체제, 즉 '금융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인 강탈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구축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금융'이라는 화두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IMF 구제금융 협약으로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거의 완전히 개방되었고 기존의 재벌들과 대거 유입된 해외투자자들은 한국경제를 빠른 속도로 금융세계화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이후 경제의 금융화는 가속화되었고 외국계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경제 전반에 대한 지배력은 증대했다. 한편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에 대한 투자가 금융논리에 종속되었다. 주식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업에 대한 주주의 권한이 강화되고 '주주의 이익'을 얼마나 잘 보장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재 유무가 판가름 났다. 이는 이른바 '주주 자본주의'가 일반화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조건 하에서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산에 투자하기보다는 주식시장에서 자기주식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단기적인 비용절감에 주력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논리 및 주주 자본주의가 한국경제 전반에 관철되면서 이른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합리화'가 진행되어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아래 '상시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했다. 기업은 한편으로는 시장의 일상적인 평가에 기반해 인수합병, 금융건전성 감독 강화 같은 방법으로 부실금융·기업을 줄여나가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외주·용역화, 분사, 비정규직화, 연봉제 개편 등 불안정 노동을 일상화했다. 이를 통해 노동유연화와 고용형태의 분절화가 급속도로 진척되었고 기존의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불안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기업은 이 같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값싸고 통제가 용이한 노동력을 항상적으로 유지·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초과착취할 수 있는 방식을 구조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수 년 간 진척된 노동자 일반의 궁핍화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착취율이 증가했음을 뜻하기도 한다.6) (2) 신규노동력 유입 촉진 : 여성, 고령인구, 외국인력 등 저출산·고령화 위기담론이 사회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정부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가 중장기적으로 노동력 규모의 감소와 노동생산성 저하를 가져올 것이고 이를 통해 소비 위축, 투자 위축 등 한국경제 전반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며 강한 위기의식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 정부는 분야별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수립해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건강가정기본계획', '중장기 보육정책기본계획', 지난 7월 4일 발표된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계획은 각기 다른 분야 정책의 사업과제를 담고 있지만 일관된 여성정책과 노동정책의 흐름 속에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 6월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7%이며 고용률은 60.6%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성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남성 인구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각각 74.8%, 72%로 OECD 평균 수준을 상회한다. 사실상 한국에서 남성 신규노동력이 노동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1.3%에 그치고 있으며 OECD 상위국 수준인 60%대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인구 구성의 측면에서 노동인구 정체 현상에 직면해 인력난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여성 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해내는 것에서 찾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구조적 인력난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고 현재 실업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규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계속 유입시키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기본계획'들은 이 같은 고려가 대부분 반영되어 있다. '기본계획'이 담고 있는 여성고용 확대, 고용차별 시정, 출산·양육·부양에 대한 사회적 지원, 일·가정 양립 등의 정책방향 및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의 확충을 통해 여성 인구를 노동시장에 조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구나 이렇게 창출된 일자리는 여성에게 적합한 탄력근로제 도입, 파트타임 일자리 확산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를 기본으로 설계되고 있어 향후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유연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장 유인의 대상이 되는 인구집단은 여성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성 이외에 고령인구, 외국적 동포 및 외국인력 등이 꼽히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① 연령차별 금지 법제화 및 정년제도 개선 ② 외국적 동포·외국인력 활용방안 등이 거론되어 있다. 정부가 고령자 고용확대 방안으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년의무화 제도는 임금 피크제 확산, 파트타임·일자리 나누기, 전문계약직 재고용 등을 전제로 하고 있어 고령인구에 대한 노동착취가 제도적으로 구조화할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이를 통해 노동시장 전반의 노동조건 하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외국적 동포 활용 차원에서 지난 5월 26일 심의·확정된 정부의 '외국인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에는 중국동포들에 대해 1회 입국 시 3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5년 유효의 복수사증을 발급하여 방문과 취업이 동시에 가능한 '방문 취업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저임금 단순 노동력으로서 이주노동력에 대한 국내 자본의 수요를 중국동포를 중심으로 충당해 나갈 것이고 현존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동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선별적으로 합법화하겠다는 새로운 이주노동력 도입 및 관리 정책에 가깝다. 이는 국내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동포라는 혈연적 관계,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쉽게 관리될 수 있는 재외동포로 충당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3) 노동연계복지와 사회적 일자리 정책 과거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정책은 실업, 빈곤 등 사회적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생활상의 심각한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이탈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은 사회 전반을 시장과 밀착시키면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잠재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재상품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가 전면에 등장한다. 노동연계복지는 해석이나 용어사용이 매우 다양하지만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의무, 즉 직업훈련, 구직 등과 같은 일련의 활동을 복지수급의 조건으로 연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분명한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정책방향은 1960년대 경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이른바 복지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대륙에서도 수용되었고 세계적으로 확대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이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한다.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제정과 함께 그동안 자활공동체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존재해왔던 자활사업에 대한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초법상의 조건부 수급 규정은 자활 참여와 복지 수급을 연계하면서 복지 수급자에 대한 노동 강요를 구조화하는 데 기여했다. 노무현정부에 들어서 이 같은 노동연계복지는 '사회적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포괄되기 시작했다. 노무현정부가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회적 일자리는 각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장기실업자나 빈곤층에게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 유럽에서의 사회적 경제나 제3섹터의 개념과는 상이하다. 유럽에서 사회적 일자리는 지역공동체와 협동조합, 상호부조조직, 자발적 조직들의 자생적인 움직임 등이 배경이 되어 형성된 데 반해 한국에서의 사회적 일자리는 급격한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과 빈곤을 흡수하고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을 유지·관리하면서 노동유연화를 더욱 진척시키는 목적에서 형성되었다. 노무현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2003년 7월 노동부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사회적 서비스 확충과 연계하여 노동, 안전, 보건의료, 복지, 환경, 문화 등 사회서비스 영역 전반을 아우르면서 부처별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2004년 11월에 발표된 정부의 '일을 통한 빈곤탈출 정책'에 따르면 2008년까지 국내 사회적 일자리의 규모는 2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현재 실업률을 낮추면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심각해져 가는 실업,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여 사회서비스 중심의 사회적 일자리를 새롭게 정책수단화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확대 방식이 공공서비스의 확대로 이어져야 함에도 이것이 사회적 일자리로 포괄되면서 민간위탁 방식의 민영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익적 성격의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정책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경과적·일시적 일자리이기 때문에 고용상황을 악화시킨다. 결국 노무현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확대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사회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예컨대 간병인 서비스의 경우 24시간 서비스제공의 대가는 5만원으로 시급 2,803원 수준이다. 통상 시급 3,100원인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론 이마저도 병원이나 시설 등에서의 직접고용보다는 민간위탁의 형태를 띠고 있어 중간착취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대한 지원은 사회적 기업(여기에는 영리·비영리법인, 단체 등이 모두 포함된다)에 대한 지원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해소되기 힘들다. 또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여성 직종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어 공공성 강화와 노동조건 개선 대책 없는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은 여성 비정규직 확산과 성별 직종분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3. 생활임금 운동의 가능성과 쟁점7) (1) 미국의 사례 - 사회적 배경과 생활임금 운동의 시작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실질 임금과 이익 감소, 실업, 경제 불안정성 증가를 경험하였다. 1968년 이래 최저임금의 실질가치는 계속 감소했으며 취업자 계층 내 빈곤층의 비율이 점점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경기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상관없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층간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1979년부터 2001년 사이 5분위 중 최하 20%의 소득증가율이 3%에 머문 반면 상위 20%의 증가율은 53%에 달해 증가율만 보더라도 무려 17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1994년 12월, 볼티모어시는 '주, 시, 카운티 등의 지방정부와 거래 관계를 갖는 사업체의 고용주들이 1999년까지 연방 최저임금 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한다. 이를 계기로 생활임금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지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볼티모어시가 선구적으로 조례를 제정한 이후 전국에 걸쳐 백 수십여 개의 시의회와 카운티 위원회가 다양한 형태의 생활임금 조례를 통과시켰다. 미국에서의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 과정 속에서 생활임금 조례의 적용 범위와 수준을 확대하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사기업 부문과 비영리 기관에서 근무하는 돌봄노동 종사자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 생활임금의 개념 생활임금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가와 수단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임금' 등으로 개념화된다. 그러나 전사회적인 공감대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근거를 가진 생활임금의 결정기준이나 적정 수준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에서 생활임금의 수준을 '빈곤선 이상'으로 대략 설정하는 것은 이 같은 난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생활임금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생활임금 결정기준은 공식적인 빈곤기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가 설정한 빈곤선을 활용하면서 부가적인 조항들을 추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처럼 생활임금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의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분명한 목표와 의미를 담고 있는 사회적 기준선을 제출하기란 어려운 과제이다. 이는 질적인 수준의 의미들을 양적인 화폐량으로 전환시키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같은 전환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운동의 목표에 질곡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생활임금 결정기준마련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기준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운동의 목표와 의미들을 고려할 때 최소한 다음의 원칙들은 견지해야 한다. 생활임금은 ① 지역 간 생활비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고 ② 가구 규모와 특성에 따른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며 ③ 필요한 지출에 기반하여 설정될 필요가 있고 ④ 단지 빈곤선 이상이 아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 생활임금의 적용 대상 생활임금 정책은 법률이나 조례로 강제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세금감면, 보조금 혜택을 주는 등의 유도정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의 적용대상이 누구인가, 즉 어떤 기업에 대해서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이다. 적용대상의 범위에 따라 이 조례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수가 달라진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생활임금 적용 대상은 다음과 같다. ① 지자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기업 : 청소, 경비, 주차관리 등 ②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 : 미국의 경우 지자체로부터 세금감면, 채권을 통한 지원(bond financing), 증세재정지원(tax increment financing), 조세환급, 대출 등의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됨 ③ 비영리법인 : 보육, 노인간병, 가정간병, 정신건강 서비스 등의 대민서비스를 담당하는 비영리법인 ④ 노동연계 복지 프로그램 참여자 : 공공근로,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 등이다. 미국에서 생활임금을 비영리법인 종사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운동 초기에는 비영리 법인을 포함하지 않았기에 상당수의 돌봄노동 종사자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노동연계 복지 프로그램 참여자에 대한 생활임금 적용도 중요한데,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기존 노동자들과의 일자리 경쟁은 격화되고 저임금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연대지원위원회>는 14,000명의 복지제도 수급자를 최저임금 이하의 일자리로 몰아넣는 복지개혁이 시작되자 이들을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관계가 아니라 동맹관계를 맺도록 노력했다. 이처럼 생활임금 운동이 진척되면서 생활임금 적용 범위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으나 해당 지역 전체 노동자의 규모에 견주었을 때 아직까지도 매우 협소한 편이다. 그러나 지역 법정 최저임금의 형태로 일괄 적용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뉴멕시코의 산타페 시정부가 생활임금의 보편적 적용, 즉 시계 내 25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기업이 생활임금 이상을 지급할 것을 규정하였고 샌프란시스코도 시위원회 투표를 통해 시내의 거의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생활임금 조례를 확정하였다. (2) 미국의 사례를 통해 본 생활임금 운동의 관건 - 조례 제정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 사례를 보면 저임금,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금 보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노조활동권, 고용안정 보장 등의 노동기본권 그리고 공공서비스 확충 같은 기본생활권 전반의 문제로 제기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이를 위해서 생활임금 운동은 생활임금 조례를 통과시키거나 생활임금 수준을 인상하는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기본생활권 보장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서도 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점차 '실질임금'의 보장에 관한 조례의 제정으로 운동 목표가 수렴되는 사례는 발견된다. 이는 생활임금운동이 제도화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시사해주는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여러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긴밀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생활임금 운동은 생활임금 문제를 작업장 문제만이 아닌 지역 사회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해야 한다. 또한 노조 활동의 경험이 없고 고용 불안정성이 심한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운동들의 연합이 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임금 운동이 가지는 큰 매력은 미국에서처럼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광범위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산별노조의 지역조직과 AFL-CIO의 지역본부, 지역의 교회, 소수민 단체, 학생단체 등이 결합된 즉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통해 형성, 전개되었다. 이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운동의 연대는 ① 빈곤임금의 근절 ② 공공서비스 영역의 사유화 및 외주화 반대 ③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④ 대안적 지역 경제발전 및 활성화 등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하며 생활임금을 매개로 폭넓은 활동을 벌였다. (3) 쟁점들 - 생활임금 조례 제정 운동은 지역공동체 경제정의를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운동의 일부로 기획되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지역공동체의 경제정의'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며,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제정의'라는 생활운동의 목표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지자체를 상대로 생활임금 운동이 준비된다면 어떠한 목표 아래에 배치될 수 있을 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 외국에서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역사를 갖고 성장한 탄탄한 지역운동이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한 운동이 미약한 상황이다. 또한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매우 빈약하며 지역토호들의 이전투구에 휩쓸리는 현상도 여전한 상황에서 오히려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최저임금투쟁보다 생활임금 운동이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 생활임금 조례는 공적 기금, 재산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기업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가장 큰 한계를 갖고 있다. 생활임금 운동은 만연한 저임금과 무능한 최저임금 제도를 폭로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함을 지역사회에 제기한다는 효과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수는 제한적이다. 지자체의 낮은 재정자립도로 인해 기업에 대한 지원이 더 적으리라 추정되는 한국의 경우에 더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임금 빈곤의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제기하고 운동을 조직할 것 인지의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고 이를 위한 전반적인 논의와 구상이 필요하다. 4.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사회운동들 간의 교류는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번 워크샵은 다시 한번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의 중요성을 각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계급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를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노동조합을 건설이나 가입이 어려운 중소영세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노동권이 취약한 여성·고령·이주노동자이고 고용불안과 생계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사회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 같은 저임금 노동자의 존재조건을 감안했을 때 대공장·정규직·남성·내국인 중심의 정체성을 내재화한 기존 노동자운동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현재 노동자운동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이해에 기반 해 실리주의·경제주의·현장주의적 편향을 보이고 있으며 당장의 경제적 실리와 무관한 연대운동과 비정규직 조직화 등은 부차적이고 임의적인 활동으로 치부해 뒤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동자운동이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대표성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나아가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 분절화·위계화 앞에 무기력해질 것이 자명하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불안정화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이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여성정책·복지정책·사회정책 등이 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여성·복지·사회정책이 노동정책과 맞물리며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한 통합적 대응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운동 및 빈곤·여성·이주 등 사회운동의 연대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일상적인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의 확보와 행동 프로그램의 수립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토론의 과정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자 존재양태에 주목한 상태에서 '지역'이라는 운동적 거점에 대한 판단과 검토도 이 같은 과정에서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워크샵은 이러한 사회운동들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소중한 성과를 남겼고 향후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의제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함께 남겼다. 1) <민주노총 2006 임금요구안>(민주노총, 2006)에서 인용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을 제외하고 노동소득 증가율과 가구주소득 증가율에 견주어 가계지출 증가율과 소비지출 증가율이 웃돌고 있다. 도시 노동자 가계지출과 주요 비목별 지출 증가 추이를 보면 주거비와 보건의료비, 교육비(사교육비 포함) 등이 전체 가계지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고, 특히 사교육비는 2003년 무려 40.8%나 늘어난 뒤에도 9.0%(2004년), 9.5%(2005년)로 높은 폭으로 인상되고 있다. 본문으로 2) [<민주노총 2006 임금요구안>(민주노총, 2006)에 의하면 매년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은 실질임금 인상률 비교지표인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에 밑돌고 있다.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은 2000년 10.8%, 2001년 7.9%, 2002년 9.7%, 2003년 6.7%, 2004년 8.0%이고, 반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은 2000년 3.0%, 2001년 6.6%, 2002년 4.9%, 2003년 7.0%, 2004년 3.5%에 그치고 있다.본문으로 3) 2006년 현재의 실업률은 3.9% 정도로 IMF 이후 1999년 8.5%까지 올라갔던 실업률에 비해 많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표상의 수치일 뿐 실제로는 급속히 진행된 노동의 불안정화에 의해 극단적인 경쟁적 노동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실업률의 안정에도 불구하고 높게 유지되고 있는 체감실업률은 이 같은 현실, 취업과 실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단기 실업자의 수 증가, 중간 수준 일자리 감소와 하위 일자리 증가 추세 등을 반영한다.본문으로 4)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은 퇴직금, 상여금 등의 노동조건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사회보험 등의 사회보험 적용에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2005년 현재 정규직의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률은 82~98%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1~33%밖에 안되고, 정규직의 퇴직금·상여금·시간외수당·유급휴가 적용률은 81~98%에 이르지만 비정규직은 15~20%에 그치고 있다. 본문으로 5)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특성과 정책과제>(한국여성개발원, 2005)에 따르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중 고용되어 있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93%에 이르고 있다. 이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본문으로 6) 전체 취업자 대비 임금노동자의 비중은 2000년 들어 63.1%에서 2004년 66.0%로 꾸준히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요소국민소득 대비 노동소득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04년 58.8%에 머물고 있다. 즉 노동자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몫은 줄어들고 있다. 본문으로 7) '저임금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워크샵'에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구미영, 민중복지연대 권혁기 동지가 발제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지난 6월 29일,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에서 주최하는 성노동자의 날 1주년 행사가 열렸다. '성매매여성을 위한다는' 성특법이 역설적이게도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낙인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2005년 6월 29일, 성노동자도 인간임을 노동자임을 선포하면서 성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이하 전성노련)을 출범시켰다. 이후 지역차를 극복하고 성노동자운동의 활성화와 전망을 찾기 위해 전성노련에서 탈퇴하고 결성된 민성노련은 출범(2005. 8. 27) 이후 지금껏 '성노동자에게 횡행하는 오명과 낙인에 맞서 성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글에서는 지금껏 전개된 민성노련의 성노동자 운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쟁점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성노동자 운동의 과제 평택 집창촌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자의 날은 투쟁의 날이자 휴일이었다. 당일 모든 업소는 문을 닫고,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약 200여명의 성노동자와 <성노동자운동연대를 위한 네트워크>(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연구팀, 이성숙, 이하 네트워크) 회원 및 활동가들, <연분홍치마> 등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다. 민성노련과 네트워크가 함께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노동자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단위들을 결합시키려했던 애초의 기획은 다소 축소되었다. 평택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동 투쟁은 진행되지 못하였고(다른 지역에서도 성노동자의 날을 기려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전개했다는 소식은 성노동자의 날 행사가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네크워크 단위가 확대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가 확대되지도 못했다. 성노동자의 요구와 외침을 여론에서조차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인 성노동자들 중에 행사의 의의나 자신들의 조직인 민성노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성노련이나 민성노련의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한 신규 조합원의 유입, 성매매가 불법적인 상황에서의 잦은 인원 변동, 장시간 야간 노동 등의 조건이 성노동자 조직화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성노련의 실천이 기동적인 성명전이나 집행부 중심의 논의와 활동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성노련은 내적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의 부제 '성노동자여 단결하라'처럼 성노동자들의 요구와 의식을 조직화하는 것과 외적으로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들을 조직해야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 지지, 성특법 비판을 넘어서야 성노동자의 날 1주년 기념사에서 민성노련은, 연대하고 있는 네트워크 및 단체를 소개하고, 덧붙여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 속에는 성특법을 비판하고 성노동자의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론한 이를 포함하여 '자활정책의 실패'를 언급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집창촌에 대해 규제주의를 통해 양성화되길 바란다'는 민주당 김강자 의원, 2004년 국회 앞에서 성노동자들이 단식농성 했을 때 방문해 '격려'해주었다던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른바 성특법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개개인들의 발언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성특법이라는 법이나 정책의 한계 내지 실효성을 지적하는 것이 모두 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지 않는 성노동자의 인간 선언과 권리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낫다. 소위 저명 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성노동자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데 이용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인사(?)들이 성노동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노동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법개정 논의를 끌고 갈 위험마저 존재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주의적 한계 성특법에 대한 비판의 한 축으로 성특법이 성인 남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6.29 집회 연대발언에서, 평등연대 공동대표라는 헌법학자 곽순근은 '성매매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성특법은 위헌 소지가 많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노동자의 권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대고 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헌법에서 여러 자기결정권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곽순근 또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국가 억압이 없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성특법도 없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소유권, 노동, 계약적 동의 및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담론은 경제·사회·정치권력의 불균형을 은폐하거나 자연화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르면 남성에게는 성을 구매할 권리가, 여성에게는 성을 판매할 권리가 제기된다. 그러나 왜 여성만이 성을 판매하는지, 왜 성노동자만 낙인과 차별에 시달리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보호를 누리지 못하는지 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빌미로 남성의 성적 구매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성노동자 운동이 지향해야 할 것과 배치된다. 우리는 성노동의 범죄화를 반대하지만, 남녀의 섹슈얼리티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 실천은 재생산과 연관된 것만 허용되고, 여성의 육체와 이미지가 대상화, 상품화되는 현재의 상황이나 담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성적 자유주의에 반대한다. 1997년 인도 꼴까따에서 열린 '인도 성노동자 전국회의'에서 채택된 '성노동자 선언'2)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에서 성노동자들이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남녀 불평등을 인식하고,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사회에서는 성적 거래가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노동자 운동을 통해 여성의 성적 억압이라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집창촌 '합법화' 요구에 대한 우려 성매매 금지주의에 대한 법률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민성노련은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비범죄적 규제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성인 남녀를 비범죄화하되 '일정 지역 내'에서 성거래(성노동)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집창촌은 음성적 성매매나 일대일로 성구매자를 대해야하는 다른 형식들에 비해 안전하고, 업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쉬운 상대적 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성노동자들은 집창촌에서는 업주와의 관계가 착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성특법 시행 이후 민성노련에서는 성산업인들과 단체협약을 맺어 휴가, 임금 협상 등에 있어 주도권을 획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창촌이 성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성노동자 조직화에 유리하다는 것이 집창촌만을 합법화시키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현재의 성특법이 음성적 부문을 비대화하고 있으므로 이를 '대안적으로 축소'해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민성노련의 의견은 이를 위해 국가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특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단속한 결과는 어떠한가. 경찰은 접근이 용이한 집창촌만을 단속하고 음성적 부문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했다. 결국에는 경찰력의 무능을 드러내며 시민감시단까지 운용하겠다고 나섰다. 오히려 합법적 규제주의는 허가된 지역이나 성노동자만을 손쉽게 통제하고, 음성적 부문은 다시 방치해버리도록 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다. 민성노련은 성매매의 비범죄화가 전국을 사창화할 것이고 그리하여 비범죄화가 국민적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기존의 금지주의자들이 성매매를 '나쁜 것'으로 보고,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과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규제에는 허가된 성노동자의 수를 적절히 유지하고 그녀들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성매매를 '축소'하는 게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는 것으로 대치될 수 없지만 성매매가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성노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의 성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합법적 규제주의 하에서 허가된 업소나 격리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제한적인 권리는 누릴 수 있겠지만 비허가된 업소나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범죄화되며 음성화된 공간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성노동이 아닌 인신매매나 노예제의 경우,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모두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여성이 낙인이나 범죄화의 우려 없이 법률에 호소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할 때 음성적 부문의 착취나 인권 침해가 해결될 수 있다. 강제된 성매매에 종사하는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여성단체의 무분별한 시도가 성노동자의 주체성과 생존권을 억압하듯이, 성노동자 일부만을 위한 전략이 성노동자의 분할과 착취를 지속시킬 수 있다.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실시되던 '면허 매춘여성 관리 법률'이 폐지된 후, 생존권을 요구하는 (면허)성노동자들이 다시 제한적인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죄화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의 참조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반성매매운동을 넘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자 지금껏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성적 노예제로 분석하며 '성매매여성'을 피해자화 했다. 물론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여성이 납치되거나 판매되어 장기간 타인(대리인, 포주, 소개업소)의 소유물이 된다면 그 관계는 노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성은 육체의 어떤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협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육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적 견해는 이러한 노예제적 계급 과정을 통해 성매매가 조직되는 경우에 대한 설명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성매매여성들이 노예제의 상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모든 성노동이 노예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신매매나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관련이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성산업은 사회의 주변에 법적·관습적 제한 외부에 존재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 및 경제적 기회를 방어할 권력은 이미 사회에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성노동자들이 겪는 착취와 폭력이 낮은 지위에 있는 여타의 직업에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볼 때, 이른바 그 노동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노동에 부과된 낙인이나 편견이 노동자의 취약성과 인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Jo Bindman, 「국제적 아젠다에서 매춘을 성노동으로 재정의하기(Redefining Prostitution as Sex Work on the International Agenda)」, 1997, http://www.walnet.org/csis/papers/redefining.html) 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노동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외부에 두는 것을 철폐하는 것, 노동에 부과된 낙인과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껏 여성단체가 주도해왔던 성산업 특히 집창촌을 없애버리려는 식의 반성매매 운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성노동자를 '피해자' 혹은 '노예'화하려고 했던 여성단체의 전략은 성매매를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전제하는데 이는 성노동자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노동 자체를 '폭력'이라고 간주하는 담론 안에서는 성노동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착취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폭력적인 성매매'에서 즉각 철수할 것만이 성노동자에게 요구되기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성노동을 지속하거나 그만둘 권리조차 없게 된다는 점에서 성특법은 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해왔다. 우리가 이른바 '성매매여성'을 성노동자로 정의하며 성노동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의 성과 노동의 상품화를 막는 전략이 특정한 산업을 즉각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 등을 통해 조직화된 주체들이 그들이 직면하는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를 조직화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지지지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 시민권, 노동권, 존중에 대한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그들이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는지와 상관없다. 성노동자들이 권리를 지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성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도 기본적 인권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노동자를 법치의 외부에 두는 모든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의 철폐,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동의에 기초한 성인의 성거래에 대한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사기, 학대, 폭력, 강제를 금지하는 법은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성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성노동자 운동의 고유한 한계 및 쟁점에도 불구하고 제 운동단체 및 활동가들은 성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낙인과 편견을 깨고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기를 당부한다. 한국의 성노동자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있으며 그 힘이 미약하지만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침해되고 있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나아갈 방향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의와 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 김철수 헌법학 개론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은 자기의 사적인 사항, ①결혼, 이혼, 출산, 피임, 낙태와 같이 자신의 인생 전반의 설계에 관한 사항, ②생명연장치료의 거부, 존엄사와 자살, 장기이식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사항, ③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취미에 관한 사항, ④혼전성교, 혼외성교, 동성애 등 성인간의 합의로 이뤄지는 성적 행동에 관한 사항 등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를 '자기결정권'의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권' 개념으로 파악한다(신상숙, 「성폭력의 의미구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딜레마」,『여성과 사회』, 2001).본문으로 2) 성과 섹슈엘리티에 대한 사회규범은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출산 목적이 아닌 성적 욕구가 승인될 때는 그것은 오직 남자들에게 뿐이다. 공동체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근대성의 이름으로 습속이 조금씩 변했지만,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다수의 성적 파트너를 추구할 권리를 향유했던 사람은 거의 남자였다. 여성들은 언제나 한 남자에게 충실할 것이 기대되었다. (중략) 자율적인 섹슈엘리티에 대한 상상을 통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등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며, 동등하게 참여할 것이며, 'yes' 혹은 'no'라고 말할 권리를 가질 것이며, 심판이나 억압의 공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이상적인 사회적 세계에 살지 않고 있다. 언제 이상적인 사회질서가 실현될지 혹은 과연 그렇게 될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적이지 못한 세계에서 음식이나 건강에 대한 상업적 거래의 비도덕성이 용납된다면, 왜 돈을 받고 하는 섹스는 비윤리적이고 용납불가능한가?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 사회에서는 아마 그러한 거래가 불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탐색하고, 그 근본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맞서고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계화에 불만있는 여성들을 위한 자료집: 여성적 사고, 지구적 저항』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펴냄-에서 발췌본문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지난 6월 29일, <민주성노동자연대>(이하 민성노련)에서 주최하는 성노동자의 날 1주년 행사가 열렸다. '성매매여성을 위한다는' 성특법이 역설적이게도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낙인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2005년 6월 29일, 성노동자도 인간임을 노동자임을 선포하면서 성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이하 전성노련)을 출범시켰다. 이후 지역차를 극복하고 성노동자운동의 활성화와 전망을 찾기 위해 전성노련에서 탈퇴하고 결성된 민성노련은 출범(2005. 8. 27) 이후 지금껏 '성노동자에게 횡행하는 오명과 낙인에 맞서 성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글에서는 지금껏 전개된 민성노련의 성노동자 운동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쟁점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성노동자 운동의 과제 평택 집창촌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자의 날은 투쟁의 날이자 휴일이었다. 당일 모든 업소는 문을 닫고,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약 200여명의 성노동자와 <성노동자운동연대를 위한 네트워크>(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 연구팀, 이성숙, 이하 네트워크) 회원 및 활동가들, <연분홍치마> 등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였다. 민성노련과 네트워크가 함께 성노동자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노동자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단위들을 결합시키려했던 애초의 기획은 다소 축소되었다. 평택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동 투쟁은 진행되지 못하였고(다른 지역에서도 성노동자의 날을 기려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전개했다는 소식은 성노동자의 날 행사가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네크워크 단위가 확대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가 확대되지도 못했다. 성노동자의 요구와 외침을 여론에서조차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인 성노동자들 중에 행사의 의의나 자신들의 조직인 민성노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성노련이나 민성노련의 활동을 함께 하지 못한 신규 조합원의 유입, 성매매가 불법적인 상황에서의 잦은 인원 변동, 장시간 야간 노동 등의 조건이 성노동자 조직화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성노련의 실천이 기동적인 성명전이나 집행부 중심의 논의와 활동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성노련은 내적으로 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의 부제 '성노동자여 단결하라'처럼 성노동자들의 요구와 의식을 조직화하는 것과 외적으로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들을 조직해야하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성노동자 운동 지지, 성특법 비판을 넘어서야 성노동자의 날 1주년 기념사에서 민성노련은, 연대하고 있는 네트워크 및 단체를 소개하고, 덧붙여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그런데 이 속에는 성특법을 비판하고 성노동자의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론한 이를 포함하여 '자활정책의 실패'를 언급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집창촌에 대해 규제주의를 통해 양성화되길 바란다'는 민주당 김강자 의원, 2004년 국회 앞에서 성노동자들이 단식농성 했을 때 방문해 '격려'해주었다던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른바 성특법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개개인들의 발언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성특법이라는 법이나 정책의 한계 내지 실효성을 지적하는 것이 모두 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지 않는 성노동자의 인간 선언과 권리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낫다. 소위 저명 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성노동자 운동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데 이용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러한 인사(?)들이 성노동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노동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법개정 논의를 끌고 갈 위험마저 존재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주의적 한계 성특법에 대한 비판의 한 축으로 성특법이 성인 남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6.29 집회 연대발언에서, 평등연대 공동대표라는 헌법학자 곽순근은 '성매매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성특법은 위헌 소지가 많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노동자의 권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지닌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대고 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이 헌법에서 여러 자기결정권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곽순근 또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국가 억압이 없어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성특법도 없어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소유권, 노동, 계약적 동의 및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담론은 경제·사회·정치권력의 불균형을 은폐하거나 자연화 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따르면 남성에게는 성을 구매할 권리가, 여성에게는 성을 판매할 권리가 제기된다. 그러나 왜 여성만이 성을 판매하는지, 왜 성노동자만 낙인과 차별에 시달리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보호를 누리지 못하는지 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빌미로 남성의 성적 구매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성노동자 운동이 지향해야 할 것과 배치된다. 우리는 성노동의 범죄화를 반대하지만, 남녀의 섹슈얼리티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 실천은 재생산과 연관된 것만 허용되고, 여성의 육체와 이미지가 대상화, 상품화되는 현재의 상황이나 담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성적 자유주의에 반대한다. 1997년 인도 꼴까따에서 열린 '인도 성노동자 전국회의'에서 채택된 '성노동자 선언'2)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에서 성노동자들이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남녀 불평등을 인식하고,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사회에서는 성적 거래가 불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노동자 운동을 통해 여성의 성적 억압이라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고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집창촌 '합법화' 요구에 대한 우려 성매매 금지주의에 대한 법률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민성노련은 '비범죄주의와 합법적 규제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비범죄적 규제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성인 남녀를 비범죄화하되 '일정 지역 내'에서 성거래(성노동)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집창촌은 음성적 성매매나 일대일로 성구매자를 대해야하는 다른 형식들에 비해 안전하고, 업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쉬운 상대적 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성노동자들은 집창촌에서는 업주와의 관계가 착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성특법 시행 이후 민성노련에서는 성산업인들과 단체협약을 맺어 휴가, 임금 협상 등에 있어 주도권을 획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창촌이 성노동자에게 안전하고 성노동자 조직화에 유리하다는 것이 집창촌만을 합법화시키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현재의 성특법이 음성적 부문을 비대화하고 있으므로 이를 '대안적으로 축소'해갈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민성노련의 의견은 이를 위해 국가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특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단속한 결과는 어떠한가. 경찰은 접근이 용이한 집창촌만을 단속하고 음성적 부문에 대해서는 방치하다시피했다. 결국에는 경찰력의 무능을 드러내며 시민감시단까지 운용하겠다고 나섰다. 오히려 합법적 규제주의는 허가된 지역이나 성노동자만을 손쉽게 통제하고, 음성적 부문은 다시 방치해버리도록 하는 빌미를 주게 될 것이다. 민성노련은 성매매의 비범죄화가 전국을 사창화할 것이고 그리하여 비범죄화가 국민적 설득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기존의 금지주의자들이 성매매를 '나쁜 것'으로 보고,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과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규제에는 허가된 성노동자의 수를 적절히 유지하고 그녀들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깔려있다. 성매매를 '축소'하는 게 특정 지역에서만 성노동을 허용하는 것으로 대치될 수 없지만 성매매가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성노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의 성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합법적 규제주의 하에서 허가된 업소나 격리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제한적인 권리는 누릴 수 있겠지만 비허가된 업소나 지역에 존재하는 성노동자는 범죄화되며 음성화된 공간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성노동이 아닌 인신매매나 노예제의 경우,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모두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여성이 낙인이나 범죄화의 우려 없이 법률에 호소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할 때 음성적 부문의 착취나 인권 침해가 해결될 수 있다. 강제된 성매매에 종사하는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여성단체의 무분별한 시도가 성노동자의 주체성과 생존권을 억압하듯이, 성노동자 일부만을 위한 전략이 성노동자의 분할과 착취를 지속시킬 수 있다. 대만의 타이페이에서 실시되던 '면허 매춘여성 관리 법률'이 폐지된 후, 생존권을 요구하는 (면허)성노동자들이 다시 제한적인 합법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범죄화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의 참조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반성매매운동을 넘어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자 지금껏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성적 노예제로 분석하며 '성매매여성'을 피해자화 했다. 물론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여성이 납치되거나 판매되어 장기간 타인(대리인, 포주, 소개업소)의 소유물이 된다면 그 관계는 노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성은 육체의 어떤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협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육체'를 판매하는 것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적 견해는 이러한 노예제적 계급 과정을 통해 성매매가 조직되는 경우에 대한 설명만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성매매여성들이 노예제의 상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모든 성노동이 노예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신매매나 노예제, 그것과 유사한 실천이 성산업과 관련이 있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성산업은 사회의 주변에 법적·관습적 제한 외부에 존재하며, 성노동자들의 권리 및 경제적 기회를 방어할 권력은 이미 사회에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성노동자들이 겪는 착취와 폭력이 낮은 지위에 있는 여타의 직업에서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볼 때, 이른바 그 노동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노동에 부과된 낙인이나 편견이 노동자의 취약성과 인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Jo Bindman, 「국제적 아젠다에서 매춘을 성노동으로 재정의하기(Redefining Prostitution as Sex Work on the International Agenda)」, 1997, http://www.walnet.org/csis/papers/redefining.html) 성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노동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외부에 두는 것을 철폐하는 것, 노동에 부과된 낙인과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껏 여성단체가 주도해왔던 성산업 특히 집창촌을 없애버리려는 식의 반성매매 운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성노동자를 '피해자' 혹은 '노예'화하려고 했던 여성단체의 전략은 성매매를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전제하는데 이는 성노동자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노동 자체를 '폭력'이라고 간주하는 담론 안에서는 성노동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착취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폭력적인 성매매'에서 즉각 철수할 것만이 성노동자에게 요구되기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성노동을 지속하거나 그만둘 권리조차 없게 된다는 점에서 성특법은 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해왔다. 우리가 이른바 '성매매여성'을 성노동자로 정의하며 성노동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의 성과 노동의 상품화를 막는 전략이 특정한 산업을 즉각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 등을 통해 조직화된 주체들이 그들이 직면하는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노동자를 조직화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지지지원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개인의 인권, 시민권, 노동권, 존중에 대한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그들이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는지와 상관없다. 성노동자들이 권리를 지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성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도 기본적 인권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노동자를 법치의 외부에 두는 모든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의 철폐,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동의에 기초한 성인의 성거래에 대한 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사기, 학대, 폭력, 강제를 금지하는 법은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성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성노동자 운동의 고유한 한계 및 쟁점에도 불구하고 제 운동단체 및 활동가들은 성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낙인과 편견을 깨고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기를 당부한다. 한국의 성노동자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있으며 그 힘이 미약하지만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침해되고 있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나아갈 방향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의와 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 김철수 헌법학 개론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은 자기의 사적인 사항, ①결혼, 이혼, 출산, 피임, 낙태와 같이 자신의 인생 전반의 설계에 관한 사항, ②생명연장치료의 거부, 존엄사와 자살, 장기이식 등 삶과 죽음에 관한 사항, ③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취미에 관한 사항, ④혼전성교, 혼외성교, 동성애 등 성인간의 합의로 이뤄지는 성적 행동에 관한 사항 등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이를 '자기결정권'의 개념으로 파악하지만, 미국에서는 '프라이버시권' 개념으로 파악한다(신상숙, 「성폭력의 의미구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딜레마」,『여성과 사회』, 2001).본문으로 2) 성과 섹슈엘리티에 대한 사회규범은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출산 목적이 아닌 성적 욕구가 승인될 때는 그것은 오직 남자들에게 뿐이다. 공동체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근대성의 이름으로 습속이 조금씩 변했지만,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다수의 성적 파트너를 추구할 권리를 향유했던 사람은 거의 남자였다. 여성들은 언제나 한 남자에게 충실할 것이 기대되었다. (중략) 자율적인 섹슈엘리티에 대한 상상을 통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등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며, 동등하게 참여할 것이며, 'yes' 혹은 'no'라고 말할 권리를 가질 것이며, 심판이나 억압의 공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이상적인 사회적 세계에 살지 않고 있다. 언제 이상적인 사회질서가 실현될지 혹은 과연 그렇게 될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이상적이지 못한 세계에서 음식이나 건강에 대한 상업적 거래의 비도덕성이 용납된다면, 왜 돈을 받고 하는 섹스는 비윤리적이고 용납불가능한가? 물질적이고 감정적이고 지적이고 성적인 수요가 공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결되는 이상 사회에서는 아마 그러한 거래가 불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탐색하고, 그 근본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들에 맞서고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계화에 불만있는 여성들을 위한 자료집: 여성적 사고, 지구적 저항』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펴냄-에서 발췌본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2차 협상이 끝났다. 1차 협상에서는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총칙/분쟁 해결,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등 총 15개 분과 중 총 11개 분과에서 통합협정문을 작성했고,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4개 분과에서는 이견이 커 통합협정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에 이어 양국 정부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2차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에 대한 양허 유보 리스트를 교환하고, 상품, 농업, 섬유 분야에 대한 양허안을 일괄적으로 8월 초까지 교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표하며 마지막 날 분과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긴 했지만, 최근 2차 협상의 마지막 날인 14일 미국이 몇 가지 조건을 내걸어 이미 이를 수용했음이 드러났다. 초민족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양국의 합의는 척척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섬유쿼터제, 농산물쿼터제,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입장이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에 한·미 FTA 자체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신성불가침의 합의였다. 한미 양국이 협상 전부터 굳건히 합의한 사항은 모든 것에 우선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이고, 이견이 있는 분야에서도 한국 협상단은 민중의 이해보다는 그 산업의 이해를 우선시한다. 제 아무리 언론이 한국 협상단에게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을 주문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한국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고 '초민족 자본의 이해와 이를 대변하는 지배 세력의 전망 때문에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삶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혀야 하느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여성의 통합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 정책이나 여성 통합 방안을 내놓는다.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등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 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 의제나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통한 전반적 사회 변화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지는 않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 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산되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 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 덕분에 미국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 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 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초래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의 팽창을 수반했다. 이는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 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력한 대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은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2)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식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보장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이중부담 강화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될뿐더러, 이것이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국가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逆)개방 정책 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다. 이는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일 뿐이어서,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동은 '주부'라는 이름 뒤에 은폐되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맞벌이부부’라고 불렸던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가장 모델에 입각해 해고 1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이 재생산노동의 강도를 더욱 높이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아예 농업 포기를 선언한다. 이에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양가적 효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여성 인력 활용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 의제로 떠오른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 같은 정책은 이중 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면서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시장에 의해 사회화시키는 한편, 이런 노동을 저임금의 유연한 이른바 ‘여성적 일자리’ 형태로 재생산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이중 착취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더구나 이는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케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단결을 심각히 저해한다는 해악을 갖는다. 더불어 모성이라는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마저 '저출산'이라는 담론 하에 국가가 통제하고 여성의 의무로 할당하려는 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정책이 여성의 실제 권리와 전혀 무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인식을 교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본질적 측면인 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이 기본적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이를 좀더 여성친화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여성의 문제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재벌과 지배 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 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익과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 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체결 이후 대다수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악화된 현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당장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렇게 되면 이미 이중·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에 놓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며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 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투쟁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앞장 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기대를 보내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 세력의 적극적인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여성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 없이 여성의 권리가 있을 수 없고, 여성의 권리 없이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가 있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 FTA가 강요하는 미래가 세계의 노동자, 농민, 여성의 권리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 발전 과정에 여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보세럽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생산성 증가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런 기여가 국가 통계나 개발 계획에서 무시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연구들은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1975~1985)를 선포하고 '발전에서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접근을 채택하는 기반이 되었다. WID 접근은 여성을 발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을 생산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외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구조조정 정책이 심화되면서 WID 접근의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다수 여성이 재생산의 일차 책임자인 상황에서 구조조정 정책은 재생산에 관한 여성의 역량을 무한한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여성이 재생산 영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은 여성의 실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구조조정 정책이 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인식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WID 접근은 여성의 재생산 역할을 고려하는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접근으로 전화되며, 이는 이후 성주류화 전략으로 체계화되어 각 국 여성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기된다. 유엔을 매개로 한 세계적 차원의 여성정책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재생산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한 세계화 주창자들은 여성·빈곤 친화성 등을 주제로 한 여성 정책을 각 국에 권고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 여성인력 활용 등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2) 헤스터 에이젠슈타인, 「위험한 불륜? 페미니즘과 법인기업 세계화」, 『사회운동』, 통권 63호, 2006, 6.본문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2차 협상이 끝났다. 1차 협상에서는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총칙/분쟁 해결,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등 총 15개 분과 중 총 11개 분과에서 통합협정문을 작성했고, 농업, 위생검역, 섬유, 무역구제 4개 분과에서는 이견이 커 통합협정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에 이어 양국 정부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2차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에 대한 양허 유보 리스트를 교환하고, 상품, 농업, 섬유 분야에 대한 양허안을 일괄적으로 8월 초까지 교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표하며 마지막 날 분과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의 사태가 빚어지긴 했지만, 최근 2차 협상의 마지막 날인 14일 미국이 몇 가지 조건을 내걸어 이미 이를 수용했음이 드러났다. 초민족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양국의 합의는 척척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섬유쿼터제, 농산물쿼터제, 개성공단 생산품의 한국산 인정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입장이 한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에 한·미 FTA 자체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신성불가침의 합의였다. 한미 양국이 협상 전부터 굳건히 합의한 사항은 모든 것에 우선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원칙이고, 이견이 있는 분야에서도 한국 협상단은 민중의 이해보다는 그 산업의 이해를 우선시한다. 제 아무리 언론이 한국 협상단에게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을 주문하고 협상단이 '국익'을 위한 협상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한·미 FTA가 노동자민중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쟁점은 '한국이 더욱 잘 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고 '초민족 자본의 이해와 이를 대변하는 지배 세력의 전망 때문에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삶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혀야 하느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여성의 통합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하고, 처참한 빈곤을 경험하며, 엄청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나라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도 점차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런 파괴적 효과를 보완하고자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은 '인간적인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빈곤 친화 정책이나 여성 통합 방안을 내놓는다.1)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등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기구에 여성 의제가 포함되고, 세계은행이 여성 참여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여성 참여와 같은 포괄적 의제나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을 직접적인 의제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 협정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통한 전반적 사회 변화에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는 한·미 FTA에서 직접 다뤄지지는 않지만, 여러 분과의 기본 전제로 인식되고 지배 세력 또한 한·미 FTA로 인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확산되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여성 통합, 여성인력의 활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한·미 FTA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이라는 이슈로 가시화되거나 구체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입장은 산업별, 부문별, 협정 내용 별로 달라질 수 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3월 한국 여성경제인연합회 조찬 강연에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 덕분에 미국 여성들이 얻은 혜택들을 구구절절 설명한 후 ‘FTA로 인한 시장 개방과 경제정책 개혁이 촉진됨에 따라 기업 관행의 투명성이 증진될 것이고 이는 양국 경제 전반과 특히 양국 여성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1970년 대 이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탈산업화, 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팽창,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초래했는데, 이런 전환은 모두 여성 고용의 팽창을 수반했다. 이는 여성들의 고용 확대를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사고했던 미국의 여성운동과 맞물렸다. 동일 임금, 훈련과 승진에 대한 접근권, 성희롱에 대한 강력한 대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affirmative action), 동등가치 캠페인 등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작업장 내 평등과 여성에 대한 모든 직종의 개방을 위해 싸웠다. 이런 운동은 의료, 법률, 건축, 학술과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많은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되었다.2) 사실 버시바우가 강조한 미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은 이런 여성들의 성공에 빚진 바 크고, 이는 세계적으로 널리 선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 식 자유화, 작업장 내 평등을 보장할 노동시장 기준이 여성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를 자극한다.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여성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기대가 생겨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이중부담 강화 하지만 미국 여성운동이 거뒀다는 이런 성공이 무엇을 대가로 했는가는 그 후광에 가려 은폐될뿐더러, 이것이 오히려 세계화를 보완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커다란 문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성에게 양가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점, 신자유주의 세계화 하에서 자본의 전략이 여성에 대한 이중착취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한·미 FTA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윤율의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초민족자본이 1970년대 취한 전략 중 하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노린 값싼 노동력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노동착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국가 발전에 복무했다. 한국은 분단과 대(對)사회주의권 쇼케이스라는 독특한 지위를 통해 미국 시장을 보장받았고, 섬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제3세계로 이전한 많은 공장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발전을 모색할 수 있었고, 미국의 역(逆)개방 정책 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가족임금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화된 적은 없었다. 이는 몇몇 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제한된 혜택일 뿐이어서, 이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비공식 부문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벌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동은 '주부'라는 이름 뒤에 은폐되었다. 가정에서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자라는 지위는 이들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났다. ‘맞벌이부부’라고 불렸던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가장 모델에 입각해 해고 1순위가 되었으며, 악화된 경제상황은 가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이 재생산노동의 강도를 더욱 높이게 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줄어든 가계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여성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노동의 여성화'라는 말처럼 유연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여성의 노동이 바탕이 되기까지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에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아이의 교육비와 가계의 소득을 담당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배세력이 채택한 재벌 중심의 성장과 세계화, 그리고 적극적인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라는 전략은 아예 농업 포기를 선언한다. 이에 여성 농민들은 재생산 노동과 농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더해 부족한 농가 소득을 메우기 위해 식당이나 인근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성매매에 나서기도 하는 삼중의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양가적 효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은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여성 인력 활용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 통합시키려 한다. '직장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최근 주요 의제로 떠오른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 같은 정책은 이중 부담에 내몰린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면서 유연한 여성노동력의 활용이 여의치 않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가족 내 일차적인 가사 담당자라는 여성의 지위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보육이나 노인 부양의 부담을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시장에 의해 사회화시키는 한편, 이런 노동을 저임금의 유연한 이른바 ‘여성적 일자리’ 형태로 재생산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이중 착취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더구나 이는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출혈판매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활용케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단결을 심각히 저해한다는 해악을 갖는다. 더불어 모성이라는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권리마저 '저출산'이라는 담론 하에 국가가 통제하고 여성의 의무로 할당하려는 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정책이 여성의 실제 권리와 전혀 무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인식을 교정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본질적 측면인 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이 기본적으로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이를 좀더 여성친화적으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불만과 현실을 관리하고 여성을 통합시켜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 FTA는 여성의 문제다 한·미 FTA는 이런 여성의 현실을 한 치도 개선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FTA는 장기화된 한국 경제의 불황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재벌과 지배 세력이 택한 길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화시키면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를 본격화했지만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결국 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IMF 구조조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이 편입했다. 한국의 지배 세력이 택한 이런 전략이 대다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이익과 날카롭게 대립된다는 사실은 여러 현상을 통해서 이미 드러났다. 한·미 FTA는 세계화를 한 단계 구체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재벌과 지배 세력이 대다수 민중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한·미 FTA 체결 이후 대다수 여성들은 지금보다 더 악화된 현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당장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들도 크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이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데, 이렇게 되면 이미 이중·삼중의 부담에 내몰린 여성 농민의 경우 삶의 극단에 놓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의 개방과 시장화는 가족 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여성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청소, 가사도우미, 간병, 전화 교환원 등의 기업 및 개인 서비스 직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들을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과 엄청난 노동 강도, 저임금 착취로 내몰 것이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가 전부는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이 여성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재생산 노동의 부담도 가중시키며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것인 한, 그리고 한·미 FTA가 이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한층 더 구체화시키는 지배 세력의 전략인 한 여성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투쟁 따라서 한·미 FTA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많은 여성단체들이 한명숙 총리 지명을 촉구·지지했으며, 국회에서 비준되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한명숙 총리가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진할 것을, 보육 등 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정책을 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앞장 서 추진하는 여당의 총리에게,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기대를 보내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가? 한·미 FTA는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여성화 문제, 여성의 재생산노동 문제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며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겠다는 지배 세력의 적극적인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이나 여성인력활용방안에 대한 비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여성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는 이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결합되어야 한다. 여성이 당당히 누려야 할 출산을 비롯한 재생산에 대한 권리조차 국가의 인구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의 일환으로 통합하면서 여성에게 출산의 의무만을 지우는 현실, 여성이 부담하는 이중의 부담을 다른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덜어내도록 강요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여성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는 현실은 현재 한·미 FTA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 FTA가 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고 삶을 박탈하면서 초민족자본의 이윤과 살 길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투쟁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 없이 여성의 권리가 있을 수 없고, 여성의 권리 없이 노동자, 농민, 빈민의 권리가 있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미 FTA가 강요하는 미래가 세계의 노동자, 농민, 여성의 권리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한·미 FTA 저지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여성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 발전 과정에 여성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보세럽은 여성들이 지역에서 생산성 증가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런 기여가 국가 통계나 개발 계획에서 무시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 연구들은 유엔이 '세계 여성의 해'(1975~1985)를 선포하고 '발전에서의 여성'(WID, Women in Development) 접근을 채택하는 기반이 되었다. WID 접근은 여성을 발전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을 생산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외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구조조정 정책이 심화되면서 WID 접근의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다수 여성이 재생산의 일차 책임자인 상황에서 구조조정 정책은 재생산에 관한 여성의 역량을 무한한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여성이 재생산 영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통합시키는 것은 여성의 실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구조조정 정책이 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인식이 대두된다. 이에 따라 WID 접근은 여성의 재생산 역할을 고려하는 '젠더와 발전'(GAD, Gender and Development) 접근으로 전화되며, 이는 이후 성주류화 전략으로 체계화되어 각 국 여성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기된다. 유엔을 매개로 한 세계적 차원의 여성정책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재생산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한 세계화 주창자들은 여성·빈곤 친화성 등을 주제로 한 여성 정책을 각 국에 권고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 여성인력 활용 등을 강조한다. 본문으로 2) 헤스터 에이젠슈타인, 「위험한 불륜? 페미니즘과 법인기업 세계화」, 『사회운동』, 통권 63호, 2006, 6.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