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여성운동사 세미나 준비를 하던 중에 귀한 자료를 하나 발견하여 올려봅니다. 이 글은 70년대 중반 '대화'지에 실렸던 일기로 동일방직 노동자 석정남이 쓴 수기입니다. 아래의 글은 자료를 찾은 <삶이보이는 창> 홈페이지 '여성노동자글쓰기교실'게시판에 올라온 설명글입니다. =========== *동일방직 노동자 석정남이 쓴 수기 '불타는 눈물'을 올립니다. 이 글은 70년대 중반 '대화'지에 실렸던 일기입니다. 이후 석정남 씨는 동일방직노조 투쟁이 끝나고 나서 <공장의 불빛>(일월서각, 1984)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는 한 여성노동자가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조합을 알고,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노동운동을 하고, 갈등하고, 울고, 웃던, 이야기들이 참 세밀하게 써 있습니다. 뭐랄까, 참 말하기 힘들 만한 그 알 수 없는 감정들마저도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공장의 불빛>의 처음이라고 할 만한 '불타는 눈물'을 함께 읽어봅시다. 도서관을 뒤져 이 자료를 찾아내 우리가 읽을 수 있게 해준 연정 님, 고맙습니다. ========== <공장의 불빛>은 단행본으로 나와 도서관 등에서 구해볼 수가 있네요. 여성노동자 수기 읽기 모임이라도 꾸려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ㅎㅎ 참고로 이 자료를 구해 올린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 [연정]씨는 최근 발간된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 창)에 기륭전자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르뽀를 쓰신 분이랍니다. 기륭투쟁에 언제나 헌신적으로 결합하시고 글도 멋지게 쓰신 동지죠. 연정씨의 '다시 목련을 기다리며'역시 여성노동운동자료로도, 그리고 문학적으로도 참으로 멋진 글이니 꼭 한번들 읽어보셔요 ^^
2002년 5월에 제작한 5.18 광주민중항쟁 토론자료집입니다. 다음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 5.18 혁명의 현재적 의의에 대하여 - 사진으로 보는 5,18 그리고 2002년의 투쟁들 - 금융비리, 금융파탄에 대한 정치 폭로글 - 불안정 노동 철폐 투쟁의 의의와 상황 - 노동법 개악 저지 - 행사일정
'공무원·교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진상조사한 내용을 백서로 만든 것입니다. 백서 목차 1. 공무원노동인권탄압 진상조사단 구성의 배경 2. 진상조사단 구성 단체 3. 진상조사단 활동 목적 4. 진상조사단 활동 일정 5. 진상조사단의 권고 사항 가. 대구 북구청 나. 전남 완도군 다. 강원 원주시 라. 충북대 마. 노동부 바. 행정자치부 6. 구체적인 진상조사 사항 ◎ 대구 북구청 진상조사 보고 ◎ 전남 완도 진상조사 보고 ◎ 강원 원주 진상조사 보고 ◎ 충북대 진상조사 보고 ◎ 노동부 노사정책국장 면담 보고 ◎ 행정자치부 장관 면담 보고 ◎ 진상조사 관련 첨부자료 목록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10주년 기념 **아시아 이주여성 국제포럼(Asia Women's Forum on Migration) *Theme : Feminization of Migration & Women Migrants' Human Rights 이주의 여성화와 이주여성인권 <일 시 : 2005년 9월 24일 - 29일> //자료집입니다.
한미 FTA와 노동자운동의 대응 신자유주의 재앙의 완결판 4월 17일~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2차 비공식 사전준비협의에서 양국은 17개 세부협상 분과를 확정함으로써 본격적인 협상 국면으로 돌입했다. 협상 분과는 △상품무역(자동차, 의약품, 의료기기 작업반 포함) △농업 △섬유 △원산지/통관 △무역구제 △위생검역조치(SPS) △기술장벽(TBT)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투자 △정부조달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분쟁해결/투명성/총칙 등이다. 그리고 양국은 5월 19일까지 협정문 초안을 교환하고 6월 5일부터 9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1차 공식협상에서 이를 검토할 예정이다. 2월 2일 협상 개시선언부터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한미 FTA 협상은 노무현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이르면 연말까지 늦어도 내년 3월 말까지 타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17개 협상분과 구성의 면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미 FTA는 경제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국내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제반의 장벽과 규제를 철폐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전면 통합이며 자본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노동자 민중에게는 새로운 재앙이 될 것이다. 1995년 시작된 WTO 체제가 민중의 삶과 권리를 파괴해 왔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FTA는 WTO보다 더욱 강도 높은 무역자유화와 규제 철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미 각종 자료를 통해 한미 FTA의 파괴적 효과는 충분히 예견되고 있다. 무차별적인 농업개방은 농업몰락과 농민생존권 파탄, 토지와 종자를 비롯해 식량 전반에 대한 민중의 접근권과 통제권을 의미하는 식량주권을 파괴한다. 의료서비스 산업화와 영리병원화, 민간의료보험확대와 건강보험 축소, 약가 인상은 민중의 건강권을 약화시킨다. 교육개방 역시 교육을 이윤추구의 장으로 만들어 공교육을 더욱 붕괴시키고 교육비 폭등과 교육불평등으로 이어져 교육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금융에 있어서는 초국적 투기자본이 제한없이 드나들면서 금융투기와 거대한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지적재산권 분야에 있어서도 특허와 저작권 강화는 공공의 정보접근권을 훼손하게 된다. 물, 전기, 가스 등과 같은 공적서비스 사유화는 이윤논리로 인해 가격 인상과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환경기준의 약화는 환경파괴를 심화시키게 되고 노동 관련 법적 보호조치 해제는 불안정노동을 확대하고 노동자를 무권리 상태로 만든다. 그 밖에 문화, 방송 등 한미 FTA가 포괄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자본의 권한과 기회는 확대되고 민중의 생활과 권리는 축소된다. 특히 이러한 생존권 유린과 기본권 악화는 여성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저임금 여성노동의 확산과 그에 따른 빈곤화 심화, 가사와 노동에 있어서의 이중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결국 한미 FTA는 민중이 먹고, 자고, 입고, 보고, 공부하고, 일하고, 치료받고, 이동하고, 쉬는 사회의 모든 부문을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 확실하게 내맡기는 고통스러운 재앙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거짓말과 사기 노무현 정권의 국가 미래비전은 원래 '동북아 중심국가' 플랜이었다. 노무현은 집권하자마자 2003년에 이 계획을 내놓고는 물류중심지화, 비즈니스거점화, 첨단기술산업 클러스터 조성의 세 축으로 해서 경제자유구역을 그 실행방안으로 도입했다. 물론 경제자유구역은 노동규제완화, 세금감면, 의료-교육 개방 등 초국적자본에 대한 온갖 특혜로 가득했다. 그 당시에도 노무현 정권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서 어정쩡해 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으나 실상은 일본에서 생산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고, 중국에서는 기술력이 아직 부족해 생산하기 어려운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 전략에다 실현 가능성 희박한 외자유치 전략일 뿐이었다. 이를 놓고 노무현은 '민족의 팔자를 바꾸는 계기'라고 했다. 그러나 애초 20년 계획으로 야심차게 내놓았던 동북아 중심국가 플랜이 지금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으며 경제자유구역은 어떤 성과를 낳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아니, 그 계획이 한미 FTA 체결이라는 더욱 화끈한 것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시기 한국의 지배세력은 파이를 키워 분배할 수 있을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 매야하고 철저히 재벌자본과 지배계층에게 부를 집중시켜야 한다고 선전해 왔지만 파이를 나누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동안 명목상으로라도 얘기했던 국민경제의 발전 자체가 사라졌으며 오로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몇몇 핵심 자본들의 생존과 성장만을 보장하는 것에만 지배세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즉, 한미 FTA가 체결되어 성과가 나더라도 그것은 한국이라는 공간에 위치한 특정계층의 특정집단만의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노무현은 '한미 FTA와 양극화해소는 선진한국으로 가는 양날개'라는, 누가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극심한 경쟁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사회 전 부문에서 해고와 실업이 늘고 생활수준이 하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은 전체 민중을 상대로 한 거짓말과 사기인 것이다. 한미 FTA가 양극화해소에 기여한다면, IMF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자유화와 규제완화, 구조조정 조치는 왜 양극화를 심화시켰단 말인가! 민중 기만을 일삼아온 노무현은 이제 자리를 내놓을 일만 남았다. 노동에 대한 공격 2004년 한일 FTA가 추진될 당시 일본은 노동쟁의 억제, 무노동무임금 관철, 퇴직금 유연화, 불법노동쟁의 신속조치 등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들도 무역장벽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현재 한미 FTA에서 노동에 대한 요구사항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짐작을 해볼 수 있다. 하나는 지난 4월 1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다. 여기서 미국은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라고 요구했다. 또 하나는 작년에 발표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정책보고서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로의 전환, 작업중단 중 대체노동력 투입 허용, 노사관계 균형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즉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도록 할 것,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률이 아니라 유연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할 것, 경영진의 권리를 보호할 것, 파업 중 대체근로를 허용할 것, 단체협약 효력을 현행 2년 이상으로 연장할 것 등이다. 이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내용과도 유사한 것으로서, 노골적인 자본의 요구를 담고 있다.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이러한 노동권 해제조치 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한미 FTA가 몰고 올 강력한 구조조정 조치로부터 나온다. IMF위기의 열배, 백배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말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자본 측이 엄청난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하면 해고자가 양산된다. 일각에서는 5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업의 충격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바로 흡수되지 않으므로 장기화될 것이고 이는 전반적인 임금 감소와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로 인해 생존권과 노동권이 파괴된다는 결론이다. 피해 지원이라는 사탕발림 한미 FTA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고, 한미 FTA 연구보고서와 관련한 통계수치를 정부가 조작했다는 비난이 커지자 다급해진 정부는 FTA로 인해 피해를 입는 기업과 노동자를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4월부터 10년간 총 2조 8,473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기업에는 2조 6,400억이지만 노동자에게는 2,073억 원이다. 그 돈으로 노동자는 전직이나 재취업 지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은 그런 지원이나 받을 수 있을까? 이 대책은 미국의 '무역조정지원제도'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제도는 무역제도가 변할 때 실직하거나 임금이 삭감되거나 소득이 감소하는 노동자들이 제도 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증명될 때 2년 동안 재훈련과 소득보조, 구직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국정부는 NAFTA에 대해서도 이 제도를 적용했는데, 2002년까지 이 제도를 이용한 노동자의 숫자는 413,123명이라고 한다. 그만큼 해고의 규모가 컸으며 실제로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해고자 숫자는 더욱 막대한 것이다. 피해에 대한 사후 보상 및 지원은 한칠레 FTA 체결 당시에도 있었다. 정부는 2004년에 '자유무역협정체결에따른농어업인등의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여 특별융자, 소득보전직불금, 폐업지원금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협정 발효 이후 2005년 2월까지 칠레산 농축산물 수입액은 50.3%나 늘었으며 시설포도, 복숭아, 키위를 중심으로 농가의 폐원신청이 급증했다. 농림부 통계로도 2004년 포도와 키위, 복숭아 재배농가의 폐업지원 신청면적은 전체 재배면적의 24.6%를 차지했다. 이는 정부가 당초 책정한 향후 5년간의 폐업지원 예산총액을 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지원책이 폐업을 하는 대가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농민들로 하여금 농업에서 철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피해지원을 가장한 농업포기 정책의 확장이다. 제조업이나 여타 부문에 있어서도 지원이 구조조정에 대해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대량 해고와 실업, 극심한 노동유연화가 노동자에게는 재앙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가 얼마만큼 피해를 입을 것인지 정확한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원 대책이라는 것은 달콤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사후 약방문, 언발에 오줌 누기 격인 이러한 지원 대책들은 사실은 FTA 추진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무역자유화에 반대하는 노동조합과 이해집단들의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운동진영이 한미 FTA가 초래할 각종 산업적 피해들을 강조하면서 FTA 반대 논리를 구사하다보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원을 하겠다는 정권의 논리와 명확한 반대전선을 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각계각층이 모여 'FTA저지 범국본'이 결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부문에 대해 협상의제로 하지 않겠다거나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식의 각개격파 전술을 구사하면 전선 일부가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FTA를 산업의 피해가 아니라 전체 민중의 삶과 권리에 대한 자본 세력의 총체적인 공격으로 인식하고 한미 FTA 저지라는 명확한 목표 하에서 우리의 주장과 민중의 권리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미 FTA 저지투쟁의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생존권과 노동권 파탄을 저지하는 투쟁이다. FTA는 민중의 생존을 볼모로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배를 불리겠다는 지배세력의 전략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대투쟁은 일차적으로 민중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다. 둘째, 민중을 외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이다. 노무현 정권은 무엇 하나 하는 것이 없는 무능정권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자 농민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폭력정권이다. 그러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단호한 투쟁을 우회하고서 FTA 저지투쟁은 가능하지 않다. 셋째,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이자 대안세계화 투쟁이다. 삶의 모든 것을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놓고 전 세계를 약탈하는 초국적 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민중의 투쟁과 대안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개방을 반대하는 쇄국투쟁 혹은 한국의 국익을 지키는 투쟁이 아니라, 무한경쟁만 강요하는 야만적 체제에 맞서 대안체제를 개척해 나가는 투쟁인 것이다. 결국 한미 FTA 저지 투쟁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놓고, 더욱더 자본 중심적으로 가고자 하는 지배세력의 의도를 저지 파탄내고 민중의 권리를 확장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대응 역시 이러한 기조 하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은 교육, 보건의료, 미디어-시청각, 금융, 공공부문, 교수-학술 등의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한미 FTA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각 연맹의 투쟁을 총연맹 차원으로 모아내고 있다. 굵직한 흐름으로는 6월 미국 원정투쟁, 11월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에 대해 노동자 대중들의 체감도는 아직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바, 각급 단위에서 교육과 선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민중의 삶을 총체적으로 공격하는 한미 FTA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노동자운동 전체가 단결하여 투쟁에 앞장서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범민중적 항쟁을 불러 일으켜야 한미 FTA를 저지할 수 있다.
KT해고자 이해관 조합원 인터뷰 [%=박스1%] 사회운동 : 지난 3월 23일 KT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제명 처리가 통과되었는데요, 당시 상황과 지금까지의 경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이해관 : 해고자를 정리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는데, 단행하게 된 계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1월에 있었던 KT노조 선거부터입니다. KT노조 역사상 유례 없는 부정선거가 진행됐고, 특히 노사가 담합해서 선거가 치러지면서 내부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선거가 423개 투개표소에서 분산되어 치러지는데 심지어 20인 미만 선거구도 20여개 됩니다. 그런데 개표를 하고 보니 이승만 선거시절과도 같이 특정 위치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거 규약에 따르면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에게 추천을 받아야 되는데, 이는 회사가 아닌 노조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천 서명을 받아서 제출하려고 하면 추천해 준 사람들이 찾아와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과장한테 불려갔다는 것이지요. 선관위에서 회사측에 자료를 넘겨준 게 아니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노조 선거에 회사가 개입 안하는 경우가 있냐고 얘기하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다릅니다. 서명한 거 취소하라고 하고, 투표용지 어느 위치에 찍으라는 것까지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노사담합 선거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것이 이슈가 되면서 KT 노조 성격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지요. 일부 동지들이 또 협조주의적이지 않은 대기업노조가 얼마나 되느냐고 얘기하는데요, 노사협조주의 집행부가 단위 기업노조에서 들어선다고 민주노총에서 쫓아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KT 노조는 아무런 민주성, 자주성도 없는 신어용노조입니다. 근본이 다른 것이죠. 노조가 다소 온건하고 무기력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사용자의 지시 통제 하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계기가 된 것이 지난 민주노총 4기 임원 선거입니다. 당시 기호 1번 진영에서 KT 노조의 어용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대의원 입장을 막겠다고 나섰습니다.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했다기보다는 어용성을 규탄하는 이벤트성 항의시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KT 대의원들이 출입하지 않아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KT 사측의 노사협력팀 직원들이 와 있다가 끌려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근데 그 끌려 나간 사람들이 대의원이냐 노사협력팀이냐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1명은 대의원이었고 3명은 노사협력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내용적으로는 KT노조의 어용성이 노동운동 내에 드러날 대로 드러났습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안건으로도 KT노조 제명 건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KT노조에서 전격적으로 해고자 제명을 단행한 것입니다. 단순히 KT노조가 해고자들의 행동이 기분이 나빠서 제명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전날 문화일보 2면 상단에 해고자들이 억대연봉을 받아가면서 노조를 강성으로 몰아간다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났었어요. 그리고 대회 당일에는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민주노총이 이렇게 해고자들에게 끌려 다니면 혁신 안 된다는 내용을 실었을 정도였지요. 이는 단지 KT노조 지재식 위원장이나 집행부가 작업한 것이 아니라, 사측이 작업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대단히 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위상 자체를 흔들기 위해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까지 염두에 둔 회사 측의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만 제명했다고 하면 노조집행부가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도 있는데 유덕상 위원장이 포함된 건, 저쪽도 사건이 대단히 커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랬다는 것이지요. 대의원대회에서 지재식위원장이 유덕상 동지를 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이 야유를 보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KT노조 자유게시판에 가면, 민주노총이 이런 식으로 강성해고자들에게 끌려 다닌다면 민주노총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이런 걸 볼 때, KT자본이 KT노조를 통해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KT노조가 자본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고 볼 때, 그렇게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1%] 사회운동 : KT노조 대의원들이 제명을 발의하고 이에 동의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장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해관 : 일단 제명 이후에 노조에서 이 사실을 전혀 홍보하지 않고 있어서 조합원들은 잘 모릅니다. 민주동지회 중심으로 현장을 다니면서 유인물을 뿌려서 제명 사실이 알려진 편입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해고자들이 안됐다’고 여긴다고 할까, 그런 편입니다. 문제는 KT노조가 완전히 무력화되면서 조합원들은 노조를 통해서 지금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해고자가 옳다’, ‘아니다’ 이런 판단 이전에 노조나 해고자들 활동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반응이 일반적인 것이지요. 대의원들의 경우, 안건을 발의한 대의원이 대의원대회 며칠 전부터 회사 관리자들한테 불려 다니면서 술판을 벌인 것이 목격이 됐고, 회사가 매우 적극적으로 조직한 것이기 때문에 대의원들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운동 : 조합원들이 일상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다 보면, 해고자들에 대해서는 조합이 유지되는 한 안정적으로 구제기금을 타가기만 한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요. 이해관 : 해고자들이 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제명을 해야 된다는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제 생각에 조합원들은 KT노조가 무력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옛날에 열심히 싸우던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있는 거지, 현실적으로 해고자들이 문제해결의 주체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와 해고자들 제명은 별개의 문제지요. 해고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든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든가 그렇게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별로 없지요, 대체로 좀 안됐다는 반응들입니다. 물론 불만이 있을 수는 있어요. 이를테면 KT노조가 뭘 잘 해보려고 하는데 해고자가 힘을 안 보태 준다든가 하면 불만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KT노조에 대해 조합원들이 실망을 넘어 절망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고자들이 KT조합원을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식의 불만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우리가 희망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희망적인 것을 못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조합원들이 해고자들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 어떤 글에서 KT를 ‘구조조정이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으신데, 구조조정과 지금의 노사담합이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해관 : 과거 공기업들에서는 임금이 높지는 않았지만 느슨한 노동 강도와 가족주의적, 가부장적 노사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어용 한국노총의 빅3가 철도, 전력, 한국통신 포함한 체신이었고요, 이들이 한국노총을 쥐락펴락했지요. 어떻든 임금이 높지는 않았지만 민간 제조업보다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87년 대투쟁을 통해 민간부문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정부는 민간의 임금상승을 막기 위해 공공부문 임금을 꽁꽁 묶었고 예산통제도 심하게 했습니다. 한편 독재정권 하에서 공공부문은 임금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연된 비리 구조 등으로 인해 뒤로 생기는 돈들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사정을 통해 하위직들의 뒷돈이 틀어 막히게 되었지요. 이렇게 되니 진짜 우리 임금이 적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죠.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 뒤늦게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불붙기 시작하는데 당시 한국통신을 비롯해서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가 ‘관치철폐’였습니다. 그런데 임금가이드라인, 예산, 정원통제 등에 맞서는 관치철폐 요구는 불가피하게 시장친화적인 분위기로 이어졌고 기업 내 협조주의적 분위기가 유지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계급대립보다는 정부통제에 맞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인데요, 그만큼 우리가 세계사적 조류도 몰랐던 것이지요. 민영화 반대투쟁 하면서도 전면적인 민영화반대가 아니고, ‘재벌특혜 민영화 반대’였고 ‘자율경영 보장’, ‘규제철폐’를 노조가 주장했습니다. 한통노조의 강력한 투쟁으로 임금가이드라인이나 관치 이런 건 많이 풀렸는데, 반면에 권력이 고스란히 시장으로 넘어가는데 그에 대한 노조의준비는 매우 취약했던 것이죠. 결국 협조주의적인 기업문화가 노조의 강력한 투쟁시기에도 유지가 된 것이고 극복되지 못한 채 IMF 사태를 맞았는데, 그 결과 당시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이 비판하듯, 한통이나 한전 등 공기업들은 ‘우리가 먼저 매각되면 안 된다’면서 자율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기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협조주의가 변화된 모습이었지요. 노동자들이 한때는 강력하게 투쟁했지만, 그에 걸맞은 계급의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IMF 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 내 협조주의로 경도된 일차적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노사담합이 더욱 노조 선거를 통해 심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면, KT는 423개 사업장을 갖고 있는 전국 사업장입니다. 하위 10%는 인사고과에서 무조건 D를 받는데 이것을 2년 연속 맞으면 비연고지로 발령 받습니다. 우리 민주파 활동가 동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거도, 흑산도, 거문도 등 섬에 가 있는데요, 대한민국 도서지역 통신은 대부분 민주파 활동가들이 지키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런 현상이 어용노조의 방조 하에서 매우 심해졌습니다. 단순히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선거에서 민주파 표가 많이 나오면 그 소속 지부조합원들에 대해서도 회사는 인사나 예산에 상당한 불이익을 줍니다. 우리가 한방에 무너진 건 아닙니다, 위원장을 뺏겼어도 지부조직은 우리가 더 많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KT가 예나 지금이나 돈을 잘 버는데요, 지사별로 경영평가를 통한 내부 워크아웃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구로지사가 내부워크아웃에 걸렸는데, 워크아웃에 걸리면 인사나 모든 것에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래서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어떤 걸 하냐면요, 자구노력이라는 식으로 일요일에 전 직원이 나와서 무보수로 일합니다. 내부 경쟁을 격화시키는 거지요. 그리고 전화국간 경영평가에서 노사화합점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민주파 지부장이 있는 곳은 항상 평가가 나쁘게 나오고, 조합원들은 민주파 지부장들을 부담스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민주파 표가 많이 나오면 우리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점점 더 무너지면서 지난 IMF 이후 6-7년간에 걸쳐 완전히 무너져서 지금은 민주파가 대의원 한 명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 : 이러한 협조주의 문제가 KT만의 문제가 아니고 민주노조 전반의 문제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해관 : 현장이 전반적으로 무너져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KT는 경우가 다릅니다. 예컨대 민주동지회 활동가들이 대부분 섬에 가 있고, 대표적으로 광주의 김모 활동가는 지난 4년째 섬에 있습니다. 가족과 완전히 떨어져 있어서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유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걸 노조가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민주파 활동가들에 대한 선별 탄압을 노조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노조가 스스로 조직을 계속 깨먹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도와줘도 될동말동한데 말이죠.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문제가 되었던 ‘KT상품판매전담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회사의 감시와 차별에 시달린 끝에 5명이 그 어렵다는 정신질환 산재승인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지들 싸우는데 집행부가 단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인권운동 단체들까지 들고 일어나 문제를 삼았는데도 말입니다. 또 2003년 줄줄이 열사들이 났던 해에, KT노조는 9월에 5,505명 명예퇴직을 노조가 먼저 제안해서 시행했습니다. 노조가 먼저 제안했단 말입니다.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노동운동이 전략적 대응을 잘 못해서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회사에 의해 당선되어 회사를 위해 현장의 움직임을 억압하는 것을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KT노조는 좀 온건하고 무기력한 협조주의 노조가 아니라, 정확히 어용인 것입니다. 사회운동 : 지금 현재 민주노총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민주노총은 현재 어떤 논의를 하고 있습니까? 이해관 : 지난 4월 14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은, 4월 30일까지 IT연맹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 그게 되지 않을 시 민주노총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는 것과, KT 노사담합 선거의 진상을 규율위원회에서 최우선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간단히 보지 않는데요. 이는 조직적인 갈등이 아니라 어용노조가 회사의 사주를 받아 민주파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현장에서 현장투쟁으로 노조를 바로 세워 우리의 명예를 회복할 테니 민주노총이 운동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서 이건 안 된다고 입장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민주노총이 어려워하고, 일각에서 이 문제를 마치 정파 간의 갈등인양 하는 건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지지방문 오는 동지들에게도 많이 얘기하는 건데, 미국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운동성마저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건 베트남전이었는데요. 당시 미국 내 모든 양심세력들이 반전운동에 나서는데도 불구하고 AFL-CIO는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2차 대전이 마무리된 후 매카시 선풍 때 공산주의자를 추방한다며 노동현장에서 대대적인 좌파 축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딜체제 이래 타협체제 하에서 각종 국가위원회 등에 참석하며 자신들의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던 상층 노동관료들은 이런 현장에서의 운동가 추방문제에 대해 외면했지요. 그 결과 현장은 완전히 공동화되었고 그러한 말로가 바로 베트남전에서의 전쟁지지에서 보여준 반동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제명사태를 그러한 문제와 비슷하게 봅니다. 정권과 자본은 겉으로는 노사정위원회다 해서 노조 상층을 각종 기관에 참여시키지만, 아래에서는 운동적인 부분을 계속 죽여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제명사태도 그 연장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의 문제로 바라보는데, 이 문제에서조차 민주노총이 입장 표명을 주저한다면 이는 대단히 실망스럽고 우려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미 복수노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 우리도 민주파가 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통상적 수준의 회사의 개입만으로도 우리는 지재식 후보가 60%대의 득표로 당선될 거라고 봤는데, KT 사측은 민주파가 10% 미만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 지침을 각 지사로 내리면서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는 강력한 선거개입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공연히 얘기했어요. 복수노조 시행에 앞서 민주파의 싹을 잘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KT 자본이 민주노총 집행부한테 압박하고 있는 내용은, KT노조 지재식 집행부가 민주노총 소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3만 명의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나가는 걸 각오하고 민주동지회를 택하든지 하라고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문제가 원칙과 기풍을 선택할 것인가, 즉 운동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3만 명의 조합비, 즉 파이를 선택할 것이냐의 시금석이라고 봅니다.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운동이 좌냐 우냐 이전에 어용화되고 있다는 지점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문제가 정파 간 갈등이 전혀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실제로 민주노총의 의사결정이 자꾸만 운동적 원칙,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는 다르게,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의 다수 총의라는 식으로 결정되는 속에서, 가입되 있는 상당부분이 협조주의화되고, 어용화되면서 민주노총 자체가 급격히 운동성을 상실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은 80만 조합원의 조합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계급의 유일 대표조직 아닙니까. 한국노총은 국가와 자본이 세운 것이 불과하니까요. 그러니 그에 걸맞은 위상과 기풍 이런 걸 지향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자꾸만 소속 조합원의 평균으로만 갈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어도 기풍의 문제에 대해서는 노선의 문제 이전에 최소한의 규율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제재조치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필요합니다. 단적인 예로, KT 노조가 작년 11월 선거 때는 97% 투표에 90% 찬성이었는데 불과 열흘 뒤 비정규직 개악 저지 총파업 투표는 1%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KT노조는 지금까지 모든 민주노총 사업에 대해서 집행한 적도 별로 없는데, 각종 선거권은 예외 없이 행사합니다. 우리를 제명한 대의원대회에서도 민주노총 파견대의원 46명에 후보대의원 80명을 뽑았습니다. 한마디로, 의결권 행사를 다 하겠다는 것인데요, 이런 걸 언제까지 용인해야 합니까. 혹자는 지금의 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지만, 자주성의 위기입니다. 자주성이 있어야 민주성이 있는 것입니다. 노동운동 내 조직된 기득권층의 이해만 대표하는 구조가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이런 기풍과 규율에 대해서는 추상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부터 병듭니다. 사회운동 : 끝으로 향후 계획이나 결의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해관 : 제명 철회라는 시각으로 보면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쨌든 이번을 계기로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지점도 많이 있습니다. KT노조가 복수노조시대 노동운동의 일반화된 모델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복수노조를 통해 운동적인 부분들을 계속 고립시켜 나가고 협조주의 세력들을 키워나가면서 결국은 렌고라는 조직으로 통합시켜 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운동성은 다 죽었지요.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KT라는 어용성의 문제로만 보지말고, 모든 민주노조활동가들이 전체 노동운동의 기풍의 문제로 활발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어떤 수준에서건 현장을 복원하기 위한 실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성찰을 할 수 있었고요 분발하는 마음도 많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이 문제를 보편적 운동 기풍의 문제로 제기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활동을 해야겠지요.
한국합섬노동조합의 정리해고 분쇄투쟁 자본의 부패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한국합섬의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에 따른 산업공동화가 경영위기를 부추기고, 이것이 직접적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어진지 오래다. 특히 화학-섬유 산업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생존경쟁이 가장 치열한 산업이다. 이미 효성, 태광 등 대기업들은 앞 다투어 중국으로 설비를 이전하였고, 너도나도 그 물결에 뛰어 들어 발생한 산업공동화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산업공동화는 기업의 극심한 경쟁력 약화와 구조조정을 낳았고, 이는 다시 대량 정리해고와 노동조건 저하로 이어져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일상화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약육강식의 논리 속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원사생산업체라고 자부하던 한국합섬도 그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영자체가 너무나 비전문적이다 못해 족벌경영으로 일관했고, 부패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썩은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위기는 너무나 당연했다. 이렇게 위기가 본격화되자 한국합섬 자본은 인원감축과 임금삭감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2월 13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351명 여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겠다고 신고하였다. 한국합섬 자본은 모든 자본과 마찬가지로 노조무력화를 노렸고, 검증된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내 놓으며 승리를 자신했다. 100% 승률을 가져 왔던 자본의 구조조정 시나리오 한국합섬 자본은 노동조합 무력화를 위해 수 년전부터 노무전담을 맡는 이사와 노사협력팀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두는 등 구조조정에 경력이 있는 관리자들을 영입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을 꾸리고 치밀한 노조파괴 과정을 진행시켰다. 여러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수 년전부터 컨설팅을 꾸리고 수십 억 원을 들이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제 그 시나리오는 모든 자본들이 따라 하기만 하면 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자본은 노동조합과의 힘의 맞대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충분한 계획을 가지고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법과 구사대, 용역깡패, 노-노 분열이 그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를 알면서도 질 수밖에 없는 투쟁들을 계속해왔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최대 권력인 자본에 맞서 노동조합은 단순히 단결된 힘만으로 자본의 준비된 힘과 부딪쳤고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부담은 한국합섬노동조합에서도 제대로 투쟁도 하기 전에 빠져나가려는 일부 세력에게 구실과 명분을 제공했고, 개별 조합원으로 하여금 노동조합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서 흔들리게 했다. ▷ 임금체불로 경제적 어려움과 경영위기 부각 회사는 먼저 2004년 말부터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다.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지급일을 절대 지키지 않았으며 그 마저도 분할해서 지급했다. 노동조합이 항의하고 농성해 봤자 실제 지급해야할 회사가 지급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도 지급일로부터 15일 이상이 되어야만 체불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처벌도 벌금정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와 같은 체불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2005년 1월부터 50%의 공장을 휴업시키는 등 경영위기를 조장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2005년 임금동결, 상여금 200% 유보, 복지비 일부 유보 및 반납 등 노동조합 설립이래 처음으로 양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대신 회계감사를 할 수 있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체불금을 분할 지급받기로 합의하게 된다. 그 전제조건은 합의를 어길시 사장의 사퇴였다. ▷ 노조무력화- 노동조합의 불법성 유도 회사는 항상 노조무력화를 노리고 있었다. 회사 측 세력들을 조직해서 노조 집행부를 어용으로 바꿔내고 손쉽게 구조조정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노사관계로드맵이 한참 통과된다는 말이 나올 때인 2005년 10월, 경영위기 차원을 넘어서서 노조파괴를 목적에 두고 구조조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006년 1월부터 300명에 이르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한 단체협약도 노조무력화를 목적에 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회사는 2005년 10월부터 단체협약 및 노사합의를 고의로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을 유도했다. 노동조합은 노사합의에 따라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회사가 이를 거부했고 노동조합은 사장의 집기를 들어내고 정문 출입을 통제하였다. 이에 회사는 관리자들을 총동원하여 정문에서 대립하게 만들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물리적인 충돌을 감수하면서 사진을 회수했다. 이후 형사 고소고발을 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지만, 회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장거리에서 몇 대의 사진기를 가동했다. 그리고 업무방해금지 법원판결이 고시되었다.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은 투쟁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회사가 급작스럽게 유인물을 배포하고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치밀하게 대처할 뿐 아니라, 휴업실시, 잔업통제 등 정리해고 요건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즉시 조합원 간담회를 통해 구조조정 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장기 투쟁을 준비하게 된다. 정문통제를 풀고 사장의 출입도 묵인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노동조합 성향 상 쉽게 결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구조조정 투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정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전 조합원에게 인지시켜 나가면서 전환을 결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단은 이후 구조조정 투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3월 8일 회사측이 사장에 대한 간접강제 및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 중간관리선 장악 및 노-노 갈등 야기 회사는 모든 구조조정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먼저 중간관리선을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2006년 1월부터 조장, 반장, 기사 등 조합원이지만 현장을 관리하는 이들의 임용과 면직을 회사 마음대로 한다는 규정을 제정한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은 이에 반대한다는 서명 작업 및 간담회를 실시했다. 그러나 회사는 중간 관리선에게 회사측의 계획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하도록 했고, 이에 반대한 조장과 반장들은 전원 면직됐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측에 찬성서명을 한 이들은 중간 관리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직접적인 당사자 중 50% 이상의 서명이 있으면 법적으로도 사규를 변경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셈이 된다. 이후 회사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주로 모임을 조직하고 활동비를 지급하며 조합원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또 다른 어용조직을 만들어 역시 현장을 분열시키기 시작한다. 노동조합이 회사의 잔업 통제 문제 등을 이유로 현장투쟁을 통해 규정된 작업 이외의 업무를 거부하기로 했으나 어용조직들은 이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투쟁조끼 미착용, 집회 참석거부 등 철저하게 회사의 지시만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현장에서는 결의를 통해 이들의 직책뿐 아니라 부서원으로서 인정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노동조합은 이들 중 7명을 제명하고 3명을 정권에 처하였다. 구조조정 투쟁에 실패한 노동조합의 경우 어용세력들이 대의원회의를 장악한 예가 많았고, 결국 이것이 내부적인 노-노 갈등으로 이어져, 노조가 무력화되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의 힘이 투쟁과정에 작용하지 못하도록 본격적인 투쟁돌입 전에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실제 코오롱노동조합의 경우 투쟁을 마무리하고 조합원징계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결국 징계가 늦어지면서 이들이 철저히 회사 편에 서서 활동하였고 현장을 분열시켰다. ▷ 희망퇴직 실시 2월부터는 희망퇴직을 실시하였다. 노동조합은 즉각 반대를 표명하고 현장에 희망퇴직 관련 면담거부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관리자와 밀접하게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지원부서는 개별면담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이들 위주로 2월부터 희망퇴직을 신청하게 된다. 4월 현재까지 176명이 희망퇴직 하였다. 위로금은 많아봐야 일천만원, 근속년 수가 적은 사람은 3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렇게 볼 때 희망퇴직은 1년 수개월에 걸친 체불 반복과 경영위기에 따른 불안감에 따른 것이었으며, 27억 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도 일정부분 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희망퇴직자 중 상당수가 당장 단돈 몇 푼이 아쉬운 경제사정의 어려움으로 인한 것이었고, 개별적으로 결정하면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퇴직신청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었다. 노동조합은 때늦게 금융, 재무교육 등 일상적인 경제활동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으며 구조조정에는 손배가압류가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기에 그에 따른 사전 교육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합섬노조의 경우 손배가압류 대처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지만, 어쨌든 구조조정이 닥친 이후에 교육을 준비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늦은 감이 있었다. 사전교육과 대처에 대한 토론이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 핵심적인 전직 집행간부에 대한 공격 회사는 371명의 인원감축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회사는 법을 떠나 노조무력화만이 정리해고에 있어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여겨,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노조파괴를 동시에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1차 희망퇴직의 성과는 30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회사는 기름을 붙는다. 전직 핵심간부들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전직 대의원뿐 아니라 전직 위원장, 임원 등 핵심 간부들을 목표로 삼고 작업에 들어갔으며, 결국 2명의 전직 핵심간부들이 희망퇴직하면서 현장이 술렁거리고 그 간부가 속한 해당부서는 비교적 많은 인원이 희망퇴직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였다. 타사업장의 경우와 같이 희망퇴직의 급물살로 발전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하고 구조조정 투쟁의 본질을 공유하였으며, 오히려 더욱 단결해야하는 이유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면서 활동가 및 핵심간부 위주의 조직이 살아있을 때는 활기차지만 무너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아래로 부터의 투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2월13일, 드디어 회사는 작년 영업적자를 인당 노무비로 나눠서 계산한 것이라며 351명 정리해고를 노동부에 신고한다. 이것도 애초 수개월간 충원하지 않아 발생한 자연감소와 희망퇴직자가 발생함으로써 줄어든 숫자였다. 노동조합은 정리해고 국면에 들어서면서 즉각 매일같이 구미노동부를 압박하는 집회를 전개하였다. 이는 그동안 노동부가 자본의 편에서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노동조합의 압박 투쟁은 쉽게 노동부가 자본과 결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낼 수 있었고, 회사의 직장폐쇄 신고를 반려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노동조합의 파업이 아닌 자본에 의한 파업을 만들어낸 노동조합의 투쟁방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 계속된 희망퇴직 및 구사대 편입 강요 회사는 정리해고를 신고해 놓고 본격적인 희망퇴직 강요에 들어갔다. ″너는 정리해고 대상자다. 내가 노력해 봤지만 뺄 수가 없더라”, “구조조정 못하면 어차피 회사 문 닫을 생각이다. 지금 돈 줄 때 나가라”, “당신 자식이, 당신 남편이 손배가압류에 걸려들었다. 지금 희망퇴직하면 그거 다 풀어주고 돈을 더 준다”, “당신 자식이 불법을 저질러서 구속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집에 데리고 가라” …. 회사의 이러한 강요에 176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하였다. 176명의 희망퇴직을 결심한 데는 심리적인 압박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투쟁을 노-사간의 싸움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자본가와의 싸움, 자기 자신의 마음과의 싸움임을 인식시켜 나가면서 신청을 막아갔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으로 남아 있는 대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의 대응 ▷ 현장중심의 투쟁 전개 노동조합은 우선 아래로 부터의 투쟁, 현장 중심의 투쟁을 기본으로 두고 노동조합에 의한 투쟁지침을 지양하였다. 노동조합은 투쟁방향을 치밀하게 결정하되, 투쟁방법은 각각의 현장에서 조건에 맞게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결과 똑같은 투쟁방향을 놓고도 현장의 투쟁은 각각 달랐다. 예를 들어 회사의 잔업통제 업무지시에 대해서는 부서별 토론 후 어떤 부서는 철저하게 잔업을 들어가지 않음으로서 희망퇴직으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기 않았고, 또 다른 부서는 회사의 업무지시는 당장 제품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에 따라 이후 노동강도가 심각히 상승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체적으로 잔업실시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또한 회사의 생산 활동에 타격을 주는 행동은 법적으로 따지면 불법이지만, 노동 강도 상승에 따라 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정당성이 인정되는 부문에서는 전 부서가 공히 노동조합의 지침 없이 작업을 거부하면서 결과적으로 회사가 스스로 공장가동을 중단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노동조합 투쟁지침이 없는 현장 중심의 투쟁은 회사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한 직접적인 탄압 구실을 찾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회사는 결국 다수의 현장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징계와 손배가압류를 그 대응방안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조합원들의 심리적인 위축을 가져오기보다는, 조합원 전체가 함께 징계를 받고, 또한 함께 손해배상을 책임지는 결의를 하게 됨으로서 오히려 더욱 단단한 단결투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정리해고 투쟁은 노동조합 중심이 아니라 조합원 개개인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핵심임을, 개인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집행부의 건재가 필수임을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지속적인 조합원교육 노동조합은 1주일에 1회 이상의 조합원교육을 실시하였다. 직접적으로 구조조정에 관한 교육(구조조정 투쟁 실패 사업장 사례, 손배가압류, 법적대응, 선동 등)을 편성하고 나아가 노동철학, 노동역사 등 의식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교육에 대한 토론을 반복함으로서 교육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법률 관련 전담팀 가동 물론 법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다. 그러나 법적 대응이 노동조합 투쟁에 질곡이 되지 않는 한, 법적인 문제에서 자본에게 너무도 쉽게 칼자루를 넘길 필요는 없다. 투쟁은 잘해 놓고 이후 법적인 문제가 큰 충격을 주어 노동조합 조직에 심각한 분열이 발생하는 예들이 적지 않다. 노동조합은 수년에 걸쳐 노동운동에 함께해 온 노무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법률 전담간부를 통해 모든 투쟁에 대해 법적인 점검을 해 나갔다. 법을 따르려고 마음먹으면 투쟁방법의 폭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하면서 최선책을 찾아내고 투쟁방법을 결정해 나가면서 조금씩 법에도 단련되어 갔다. 현재까지 위원장을 포함하여 형사고발 된 조합원이 35명이다. 그러나 정리해고 투쟁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에서야 한두 명씩 출두해서 조사를 받아주는 정도다. 물론 노동조합에 단결력이 부족하다면 상황전개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 실천적 연대투쟁 전개 회사측이 정리해고 신고를 위한 요건을 만들기 위해 실시한 휴업에 맞서 노동조합은 즉각 전 조합원 출근투쟁을 전개하며 동시에 주 1회 상경투쟁을 조직했다. 상경투쟁단은 2박3일에서 4박5일 일정으로 서울무역부, 채권단을 압박하는 투쟁과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에 실천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고 느끼고 직접 부대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노동자 의식을 고취시켜갔다. 실제로 노동조합 대오 450명 전원이 이 같은 상경투쟁을 2회 이상 함께 하면서 현장토론의 수준을 급상승시켜냈다. ▷ 용역깡패와 구사대에 대한 철퇴 회사는 3월11일 토요일 저녁을 기해 용역깡패 140명과 구사대 100명을 동원하여 공장을 점거하였다. 노동조합은 이 같은 상황에 최대한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시기를 알 수 없었다. 당시 조합에는 3명 정도의 간부뿐이었다. 회사는 용역깡패를 동원해 정문과 노동조합을 통제하고 공장 내 노동조합의 투쟁시설들을 철거해 들어갔다. 그러나 긴급 가동한 조합원 소집에 1시간 이내에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공장에 진입하였고 결국 관리자들과 용역깡패들은 사무실에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어들거나 공장 밖으로 밀려 투석전을 전개하다가 조합원들에게 철저하게 심판을 받고 전원 공장에서 퇴거하였다. 이날은 긴장감과 자신감이 공장을 휩쓸었으며, 노동조합의 거품조직을 완전히 구분 짖고 제거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한 날이었다. ▷ 초유의 자본파업, 그리고 자본의 떠돌이 생활 : 한국합섬 구조조정 싸움의 대 전환점 드러난 회사의 문건에 의하면 용역깡패 투입 목적은 ‘노동조합의 폭력성 증거(쇠파이프, 신나 등)들을 확보하고, 그리고 노동조합 대오를 정문에서 차단하고 가동 중단된 일부 기계를 구사대를 동원해서 가동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노동조합의 마지막 고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싸이로 탱크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잘라내는 등 회사는 노동조합이 깡패들에게 몰려 피신할 곳을 사전에 차단하기까지 했다. 용역투입으로 완전히 노동조합을 누를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후부터 모든 상황은 회사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회사는 구사대들과 함께 출근하지 않았다. 공장을 세우기 전까지 노동조합은 수 차례 출근할 것과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를 요구했으나 어떠한 업무지시도 없었다. 그만큼 회사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원료가 바닥나기 직전 현장에 전화로 가동중단을 지시했으나, 노동조합은 정확한 업무지시를 요구했고 결국 3월 15일부로 가동이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4월20일 사상초유로 자본이 결의대회를 갖고 공장으로 들어올 때까지 구미지역 외곽지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구사대만의 별도 단합대회 등 모임을 가졌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고 구사대 모임 및 세미나 등에 최소의 인원을 동원하여 압박했다. 이러한 대응은 실제로 구사대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고, 집에서 노-사간 대립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조합원들을 노동조합으로 이끌거나 최소한 구사대가 되지 않게 만들었다. ▷ 관리자 및 구사대 압박 노동조합은 구사대 및 관리자들을 상대로 가정방문을 하고 진정으로 회사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내고 더불어 회장 및 핵심 관리자에게는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직접적인 타격투쟁을 병행하였다. 특히 노-사간 물리적인 충돌에 구사대가 직접적으로 참가한다면 구사대와 노동조합은 이후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것이며 나아가 노-사간 해결지점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바로 구사대문제가 될 것임을 인식시켰다. 무엇보다 노-사간 힘의 균형에서 노동조합이 공장을 사수해 내는 등 우위를 점하고 관리자와 구사대들이 밖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3월11일 용역깡패 투입 실패는 시간이 갈수록 회사측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구조조정 초기 노동조합 현장에 심리적인 위축이 있었다면 3월11일 이후 오히려 구사대와 회사가 심리적인 압박을 크게 느끼게 되었고, 실제로 구사대들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즉 구사대들 중 상당수는 “회사 편에 있기는 하겠으나, 물리력 행사 등 구사대로 활동시킨다면 사표를 던지겠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3월11일 이후에는 노동조합 투쟁대오에서는 전혀 이탈자가 없었으나 오히려 구사대 중 희망퇴직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다. ▷ 관공서에 대한 압박 4월20일 회사는 실제 노사간에 아무리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공장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했다. 따라서 회사는 조금이라도 한국합섬에 관계된 업체라면 인원동원을 요청했고 500명 이상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부와 경찰이었다. 자본이 파업한 3월11일 이후 노동조합은 곧바로 노동부에 직장폐쇄에 대한 질의를 하였고 노동부는 쟁의행위에 있지 않다면 직장폐쇄 요건에 있지 않음을 회신해 왔다. 그리고 3월21일 회사의 직장폐쇄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반려시켰다. 더불어 노동부는 한국합섬의 공장가동 중단은 노동조합의 파업에 의한 것이 아니며 재가동은 회사 의지의 문제이지 노동조합의 점거를 이유로 재가동하지 않는 것은 노조무력화에 의도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특히 회사가 업무방해에 대한 각각의 내용들에 대해 업무방해가처분을 신청했으나 투쟁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점인 4월17일 김천지법이 노동조합의 공장 내 출입과 생활, 그리고 욕설, 비방 및 선전활동 금지를 기각함으로서 회사는 모든 명분을 잃게 된다. 또한 3월11일 이후 경찰서에 대한 압박에도 온 힘을 다했다. 회사의 용역경비 동원이 신고제라 할지라도 의도자체가 노조무력화가 분명한 만큼, 그리고 경비업무를 벗어난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은 극렬하게 대항할 것이며, 유혈사태는 필연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폭력사태를 충분히 예견하고 있는 경찰도 그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경찰로 하여금 “용역경비(계약직) 동원으로 폭력사태를 유발한다면 폭력교사 및 방조죄를 적용할 것이다”는 입장을 회사에 통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특히 자본이 500여명으로 공장을 침탈하고자한 4월20일에는 경찰병력이 회장을 필두로 한 회사측을 우선 통제하면서 노동조합이 사원임을 입증하는 사람만을 선별해서 공장에 진입시켰다. 이 같은 상황에 빠지자 관리직 사원 70여명을 뺀다면 실제 구사대중 경찰병력을 통과하고 공장에 들어온 인원은 십 수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차마 공장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나서게 만들어 사태를 크게 부각시킴 회사가 공장 청소를 하기 위해 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 노동조합은 즉각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기자회견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또한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함께 구미 노동부 및 경찰서를 방문하며 한국합섬 사태를 더욱 크게 확산시켜 냈다. 그리고 이것이 노동부와 경찰, 언론을 움직였고 결국 용역깡패 투입을 사전에 차단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합섬노동조합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연대투쟁, 정치세력화 투쟁의 중심에서 지역을 책임져 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곧은 노동운동정신으로 가고자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 선전 대립에서의 승리 구조조정의 시작은 바로 회사의 선전전의 시작과 함께 했다. 유인물을 자주 발행하지 않던 회사가 선전활동을 강화하면서 그 내용 또한 그동안 화섬동향과 현장소식 위주였던 것들이,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타깃으로 하는 내용으로 바뀌면서 갈등을 촉발시켰다. 발행주기도 점차 많아지면서 업무방해, 징계,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 굵직한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유인물 내용대로 상황이 실제로 진행된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주었다. 이렇게 회사는 자신들의 소식지 내용대로 상황이 그대로 진행된다는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협박의 표현을 점점 노골화하였고 실제 현장의 심리적인 위축으로까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또한 즉각 소식지 발행주기를 앞당기고 속보 체제로 전환하였으며, 회사의 부당성과 노동조합의 정당성, 투쟁성을 부각시켜내고 그리고 회사의 행보를 앞서서 짚어냄으로서 집행부의 판단과 대응에 조합원들이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 갔다. 더불어 대시민선전전을 출퇴근 시간에 맞춰 매일같이 전개했으며, 조합원 가정통신문, 소식지 전달, 관리자와 구사대 가정에 대한 선전까지 확대해 나갔다. 또한 관공서 및 민주노총 산하단체, 민주노동당 등에 인터넷 홍보를 계속하면서 한국합섬 투쟁을 알려내고, 심지어 가장 중요했던 4월 20일 사측의 결의대회의 부당성을 한겨레신문, 매일노동뉴스 등 일간지에 신속하게 광고하였다. 이것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기자회견과 함께 사태를 크게 부각시키고 사측의 결의대회를 자괴감이 들 정도 수준으로 전락시켜 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 결국 회사에게 남은 것은 구사대와 법적인 조치뿐이다. 그러나 구사대는 물리력을 발휘할 수 없는 수준이라 회사가 더 이상 기댈 수가 없다. 회사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무기는 고작 정리해고와 손배가압류, 형사고발 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2월13일 정리해고를 신고 받고 4월말인 지금까지 폭력사태를 최소화하면서 조사 진행을 늦추어갔고 단 한 명의 간부도 수배되지 않게 했다. 투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유리한 싸움을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폭력으로 불리하게 끌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밀려나는 국면이었으면 선택의 여지없이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3월11일 이후 공장가동이 전면 중단되었지만 우리는 법적으로 임금을 받아낼 수 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지 않고 자본이 파업을 한 특수한 상황전개로 노동부에서조차 휴업으로 인정하고 있고, 직장폐쇄까지도 반려된 것이다. 그러는 한편 2006년 임단협 협상은 21차까지 진행 중이다. 물론 단 한 차례도 사측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노동조합은 쟁의찬반투표를 가결한 상황에서 줄기차게 교섭을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별도로 총파업투쟁의 합법성을 준비해 간 것이다. 정리해고 투쟁은 언제나 처절한 장면뿐이었다. 그러나 한국합섬에 처절한 모습은 없다. 투쟁하는 조합원과 연대동지들이 함께 웃으면서 싸우고 있으며, 공권력, 용역깡패, 구사대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벗어 던진 것이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정리해고, 손배가압류, 형사고발 등의 철회를 전제로 한 노사대화 요구에 마지막 남을 명분이라며 자존심을 세우고 있지만 이미 그 기세는 죽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에 끝이 있을 수 없으나, 또한 노동자들이 싸우기에 따라 승리한다는 자신감들이 현장에 팽배하다. 노동조합이 걸어 온 길 노동조합은 결국 조합원의 단결투쟁이 담보되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그동안 노동조합 집행부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희생하며 투쟁을 전개해 왔다. 민주노총의 투쟁, 정치세력화의 투쟁, 연대투쟁에 가능한 최대한 결합해 왔다. 물론 간부 위주의 투쟁이 잦았고 투쟁의 피로도도 없지는 않았으나 현장에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끝없이 학습하고 실천하는 현장 활동가들의 존재는 노동조합의 흔들림을 견제해 왔으며 단점을 지양하고 장점에 장점을 더한 집행부의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노동조합의 신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순수한 운동성을 끊임없는 실천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힘이 그 어떤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이어졌고 집행간부의 학습을 보이지 않게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활동가들의 깊이와 주변의 동지들이 많아졌고 그 진정성이 유지되었다. 이 같은 힘이 초기 민주노조를 건설했던 간부들 대부분이 구사대로 돌변했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흔들림 없이 투쟁해 갈 수 있게 하였다. 앞으로의 길 한국합섬노동조합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본과 노동자와의 투쟁은 끝이 없는 것이고, 이번 구조조정 투쟁에 있어 정리해고를 분쇄할 수 있을지언정 구조조정을 완전히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특히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진 현실 속에서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만 머무르는 투쟁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노동자는 투쟁 속에서 10년 이상을 교육해도 생기지 않을 노동자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 자본을 상대로 투쟁을 어떻게 싸워왔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얼마만큼 노동자 의식으로 무장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갔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앞으로도 투쟁을 계기로 현장의 움직임을 역동성 있게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지역노동운동을 하나로 묶어내고, 역시 지역의 비정규직 투쟁을 책임지는 지역조직으로 거듭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한국합섬노동조합은 향후 지역운동을 이끄는 시선으로 지금의 구조조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투쟁에 있어 승리 여부는 정리해고 분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5년, 10년 후 한국합섬노동조합의 모습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