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1%] 가족과 친구를 위해 하는 일을 묘사할 때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잠시만 생각해보면 사랑의 노동이 대개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보살핌 노동”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보살핌과 관련된 일은 가족이나 사회적 지원을 받는 서비스 기관에 의해 제공되거나 시장에서 구매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사립 또는 공립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이들은 사립 또는 공립 양육 센터와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중환자는 가정에서 가족 성원의 보살핌을 받거나 유급 간호사의 보조를 받고 공립 또는 사립 기관에서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그 일은 유급이고 보살핌 제공자는 소득을 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 보살핌 노동은 무급이고 화폐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보살핌 노동은 그것이 유급이든 무급이든 경제적 후생에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보살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현재 경제학에서 보살핌 노동을 다루는 방식은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영향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보살핌 노동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성별 이데올로기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유급이 아닌 모든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했다. 더욱이 그들은 보살핌 노동의 취지나 그것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을 밝혀야 할 근거도 찾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보살핌 노동이라는 충분히 발전된 개념을 통해 경제학을 재구조화하고자 한다. 경제사상사에서 가구노동에 대한 관심은 별개의 두 학문 영역인 마르크스주의와 제도주의에서 부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급 가구노동의 중요성에 맹목이었음을 지적했다. 가사노동 논쟁으로 알려진 논의에서 마가렛 벤스톤, 낸시 폴브르, 하이디 하트만, 수 힘멜화이트, 제인 험프리즈, 막신 몰리뉴 그리고 시몬 모흔 같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구 내 무급 노동이 사회적 재생산에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무급 가구노동이 구매된 상품을 성인 노동자들을 위한 요리된 식사, 세탁된 옷, 깨끗한 집으로 변형하며, 또 미래의 노동자 세대를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양육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가사노동 논쟁은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가족의 경제적 후생―부르주아 가족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가족도 포함하여―에서 성별분업의 중요성을 밝혔고 현재의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가구는 여전히 생산의 중요한 영역임을 보여주었다. 가정이 단지 소비의 장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핵심적인 점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재생산 노동의 개념적 중요성을 주장했다. 19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샬롯 퍼킨스 길먼과 토스타인 베블렌은 가정의 일의 중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사람들 중 일부였다. 그들에 이어 20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하젤 키르크와 마가렛 라이드는 노동의 전문화가 가정의 핵심적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졌다. 키르크와 라이드는 유급 고용의 확대가 무급 노동의 공급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했다. 이 경제학자들은 무급 가사노동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2차 세계전쟁 이후 수년 동안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이론과 강의에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가구노동에 대한 고려는 가정 경제학의 영역으로 강등되었다. 특정한 페미니즘 경제학이 출현하면서 그들의 작업은 재발견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다시 한 번 가정 내에서 수행되는 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경제학은 사랑, 공감, 동정, 연계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보살핌 노동의 관점에서 재생산 노동에 대한 논의를 재구조화했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르의 작업은 이런 논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살핌 노동은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따라서 보살핌 노동은 대개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대개 보살피는 사람에게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영유아, 취학아동, 환자, 장애인, 노인이 받는 보살핌은 이들이 보살피는 사람과 맺는 관계의 질에 좌우된다. 가족이 시장 소득을 늘려야 하는 압박이 증대하는 세계에서 유급고용의 수요가 보살핌 노동의 공급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여성과 남성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유급고용에 할애하면서 “보살핌 결핍”이 나타난다. 오랜 성별분업 하에서 여성은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보살핌 노동을 하기 위해 가정에 있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노동력 참여율은 남성의 참여율에 근접하고 있으며, 편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있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확대가족은 규범이 아니라 예외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살피는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에 주목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정책을 발전시키려 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시각은 완전 고용이라는 특별히 숭배되는 거시경제정책의 목표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일자리를 갖는 동시에 보살핌 노동의 저임금, 미조직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회의 의존자들은 고도의 불안전성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서 보살핌 노동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해 가정 밖의 여성의 급여가 너무 낮기 때문에 여성이 무급의 보살핌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가정에 머물면서 발생하는 위장된 실업을 지속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살핌 노동자들이 당면한 급여와 노동조건을 변화시키자는 주장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과 이와 관련한 쟁점들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후원해왔다. 국제노동기구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은 한 사람 또는 더 많은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발달상의 욕구를 돌보는 일로 정의된다. 그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의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는 한 가지 방법은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고 보살핌의 능력과 숙련을 보장하는 적절한 규제 지침을 마련하고 규제 규범의 강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국가는 원하는 이들이 양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위해 지불할 충분한 소득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조금과 소득이전을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가족 역시 보살핌의 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탠딩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유급 보살핌이 중요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피할 수 있다면 공식적인 보살핌의 공급에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의존하려 하지 않고,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살핌 노동은 이타성, 상호존중과 존엄, 호혜성과 같은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적 관계다. 이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도출된다. 첫째, 보살핌 노동에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이런 일의 감정적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수행하는 모든 일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이런 직업이 좋은 급여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가 많고 감정적인 고갈을 동반하는 성질 때문에 이런 일의 중요성은 대체로 인정되고, 누구도 이런 유급 노동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꿔야 후생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대한 급여를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사실 그들의 일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보살핌 제공자)와 그 노동의 수혜자(보살핌 수혜자)가 가족이고 그 일이 가정 내에서 수행될 때, 여성과 가족 내 이타주의에 대한 문화적 가설로 인해 우리는 이런 일이 무급이기 때문에 그 질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높은 급여가 몸져누운 노인과 장애인에게 양질의 보살핌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양육의 질은 무급일 때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역설은 모성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친근하고 배타적인 관심을 요구한다는 통념은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의 우연적인 가공물이다. 상호 배타적인 공/사 영역을 만들어 여성에게 사적인 가내 세계를 할당하는 과정은 동시에 어머니를 아이의 후생을 위한 배타적인 보호자로 정의했다.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 관한 모든 시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여성에게 전일 가정생활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양질의 양육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의 길이 열린다. 둘째, 보살핌 노동, 특히 양육과 관련된 보살핌 노동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인 외부효과”라고 부르는 중요한 사회적 혜택을 갖는다. 아이들이 배려있고 생산적인 시민으로 길러짐으로써 생기는 이득은 사회에 돌아가지만, 이런 특성의 인간을 생산하는 비용은 대체로 여성에게 전가된다. 18세기 버나드 만데빌의 “벌들의 우화”는 사적인 미덕과 공적인 악덕에 대해 논했다. 그는 이타심, 관용, 정직과 같은 사적인 미덕이 경제와 정치의 공적 영역에서 행동 지침으로 활용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런 미덕들이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만데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성의 경제적 비용 보살핌 노동의 사례 중에서 양육과 관련된 노동보다 더 좋은 예는 없다. 정치가, 사회 비평가, 교육자, 종교 지도자는 가족과 아동의 부양에 대해 점점 더 창조적이 되어간다. 어떤 이들은 가족의 양육비 부담을 보조하기 위해 세금 공제를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양질의 조기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직접적인 보조금을 요구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직장-가족 균형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이런 정책들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쟁이 몇 권의 책에 달하고 신문기사의 제목을 장식하며 저녁 뉴스에 풍부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논쟁의 참가자들은 어머니의 일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을 참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용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에 왜 놀라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정책 논쟁은 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는 가정(그리고 이 가정은 종종 현실이다)을 반영한다. 산업혁명 이전, 즉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이는 부모와 더불어 노동하고 놀았다. 그러나 직장이 가정 밖의 공장, 가게,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가사와 양육이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 되어버린 새로운 성별분업이 발생했다. 바바라 버그만은 생물학으로 인해 여성이 가사담당자라는 하나의 직업에 고정되어 버리는 신분 체계가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부상하는 성별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성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정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직업적 성취와 경제적 독립의 권리를 주장함에 따라 이런 신분 체계는 붕괴하는 중이다. 이처럼 여성의 유급 고용이 크게 증대했지만 남성의 무급 가구노동 기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맞벌이 가족에서 산다. 1998년에 한살 미만의 아이를 둔 여성의 59%가 고용됐고, 한살 이상의 아이를 둔 어머니의 73%가 가정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왜 일하는가? 남성이 일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직장, 경력, 소득이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듯이 어머니에게도 의미가 있다. 성별분업의 유산 중 하나는 작업장에서의 평등을 위한 여성의 요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 즉 누가 양육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가구의 남성 가장이 가족임금을 벌어 전업 주부를 부양하는 오래된 합의, 즉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델이 모든 이에게 실제로 작동한 적도 없었다. 가난한 가족에서는 능력 있는 모든 이들이 일했다. 농촌 공동체에서 농사는 몹시 고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 형제, 자매가 모두 참여했다. 화폐임금에 의존하는 가족에서 여성과 아이는 산업 노동을 수행하거나 가내 하인으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일할 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페미니스트와 반(反)페미니스트는 모두 모성이 여성의 노동시장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 양육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중요해서 저널리스트 앤 크리텐든은 그것을 “엄마세”(mommy tax)라고 불렀다. 엄마세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벌 수 없는 소득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미셀 버디그와 파울라 잉글랜드는 모성으로 인한 임금 불이익이 5~7%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여성은 대개 직업 경험을 잃고 이 때문에 다시 평생소득이 낮아진다. 더욱이 어머니는 모성친화적인 직업을 위해 고임금을 포기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할 것이다. 양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일하는 어머니는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을 활용할 수 없을 때 파트타임 일자리를 매력적인 선택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전일제 대신 파트타임 일자리를 선택함으로써 어머니의 평생소득은 더 낮아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파트타임 고용이 언제나 시간당 급여가 낮고 전일제 고용에 따르는 수당이 거의 없으며 총 노동시간(주당, 월당, 혹은 연당)도 더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디그와 잉글랜드는 전일제와 파트타임 노동 사이의 차이와 고임금에 관련된 다른 객관적 수치(경험, 근속 등)를 통제한 후에도 여전히 어머니가 더 적게 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육의 사회적 책임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양육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이 있다. 많은 국가들이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따라서 높은 수준의 직업 교육, 충분한 급여의 직업, 그리고 육아 휴직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공공기금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와 다른, 특히 미국과 같이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국가들에서는 이런 사회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 잘 양육된 아이의 혜택이 더 큰 사회에 돌아갈 때조차도 양육의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양육에 관한 국가 정책은 육아휴직 정책에서 시작된다. 표 3-1은 7개 산업국의 육아휴직 정책을 보여준다. 표 3-1 OECD 7개국의 모성/육아 휴직 수당 (* 첨부자료 참조)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책, 가족의료휴가법(Family Medical Leave Act)은 전혀 관대하지 않다. 이 법은 회사가 12주에 달하는 무급 육아휴직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50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또 대부분의 여성들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법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 또한 이 법은 육아휴직 중에 부모의 소득을 보전해주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 서비스의 공급은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대다수의 가족은 믿을 만한 양육기관에 아이의 전일 보살핌과 교육을 맡길만한 여유가 없다. 많은 지역에서 확실히 검증된 양육기관의 연간 수업료는 종종 지방 주립대학의 연간 비용을 초과하지만 입학 대기자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질 뿐인데, 이것들은 모두 신임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양육을 의미한다. 유아가 있는 가족은 아이를 최소한의 안전과 보육교사의 요건만을 갖춘 양육기관에 아이를 맡긴다. 이런 기관조차도 매우 비싸다. 또 다른 선택지는 가내 양육시설을 이용하거나 보모를 고용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양육기관들에는 허가를 위한 필수규정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주나 지방만이 매년 안전점검을 요구하고 소방 안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해놓고 있다. 양육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타의 위험을 점검하는 주(州) 보건 감독관에 대한 요건은 없다. 가내 양육기관의 경우 연령에 따른 커리큘럼을 개설하고, 아이 당 보육교사의 비율을 높이며, 넓고 장비가 갖춰진 놀이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쾌적한 설비의 제공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선택지인 보모의 고용은 교육과 훈련의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과 후생을 위한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셈이다. 재정적 능력이 있는 여성은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미룰 수 있다. 다른 여성들에게, 특히 아이가 어리지만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는 양육비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육기관으로서 초등학교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신이 작업장 정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가장 자유로운 회사조차 노동시간을 학교 일정과 맞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확실히 부모들은 학교와 직장의 일정을 잘 조정하지 못함으로써 고용상의 책임을 다하는 데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아이를 어머니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견해로 인해 여성은 비용이 많이 들고 아이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방식들을 선택할 수가 없다. 평등이 여성과 남성이 직면하는 선택과 제약이 대체로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양육과 관련된 확실한 사회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사회 정책과 관련하여 서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미국과 기타 영어권 국가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영어권 국가에서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책임을 균형있게 수행하려고 할 때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국가들은 상황이 매우 다른데, 이들은 모든 시민이 잠재적으로 노동자이자 양육자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들은 여성과 남성의 유급 노동자이자 무급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지원하는 정책을 선도해왔다. 다시 말해 국가 정책이 작업장과 가정에서의 평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런 정책들에 대한 사회적 헌신은 우리가 점차 맞벌이 가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만 더 이상 한 사람에게만 가사노동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정책들의 비용은 충분히 수용가능하다. 고용된 여성 1인의 가족 휴가를 위한 년간 지출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가족 휴가 관련 지출은 고용된 여성 1인 당 약 900달러였고,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600~700달러였다. 이 같은 지출은 이들 국가의 GDP의 0.7~1% 정도다. 이런 관대한 프로그램이 다른 산업 국가에서는 GDP의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불행하게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반대 방향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동유럽의 이행기 경제는 그런 사례를 보여준다. “자유 시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 국가들은 사회 서비스를 심각하게 축소하고 있다. 보건, 양육, 교육이 모두 손상되고 있다. 결과는 좋지 않다. 일부 나라에서는 기대 수명이 줄었고, 초등교육 진학률이 감소했으며, 여성의 노동부담은 증대했다. 부유한 나라들이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려 할 때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양육 제공자로 일하는 여성이 자기 가족의 경제적·감정적 안전을 해치는 고용 조건에 직면한다는 것은 그 예다. 양육 노동은 급여가 매우 적고 건강과 안전 조건이 감독되지 않으며 사회보장 급여를 거의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유색인종 여성(특히 남부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백인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했다. 2차 세계전쟁 이전에 아프리카계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가내 노동자로 고용되었다. 사실 시민권 운동과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들 중 하나는 그 수를 급격히 줄인 것이다. 현재에는 개발도상국과 동유럽의 구(舊)공산주의 경제 출신의 이주자들이 주로 양육 노동을 수행하는데, 이들은 특권층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더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다. 하지만 여성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이주할 때 대다수가 자신의 아이를 두고 떠나야만 한다. 알리 혹쉴드는 이것을 “보모 사슬”, 즉 양육 노동에 기초한 일련의 지구적 연계망이라고 부른다. 부유한 나라의 전문직 여성은 외국인 보모를 고용함으로써 자신은 전일제로 일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 또는 지역 출신의 보모는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가정에 두고 떠나오며, 그 곳에서는 나이가 많은 딸이나 여성 친척이 그들을 돌본다. 이런 지구적 보살핌 사슬에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 변종들의 공통된 특징은 양육 노동의 흐름이 항상 빈자에게서 부자로 향한다는 점이다. 이주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떠나는 상황은 1959년 아동의 권리에 대한 유엔선언의 허울뿐인 전망을 폭로한다. 선언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행복, 사랑, 이해가 넘치는 가족 환경에서 자라야 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부모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주 여성에 대한 착취는 구식민주의의 현재적 변종이며 이를 통해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인적·자연적 자원을 착취한다. 로버트 에스피노자는 다양한 출처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가사노동에 종사하기 위해 가난한 지역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여성들의 초민족적인 흐름을 네 가지로 규명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은 백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수입했으며 이들은 현재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유사하게 많은 유럽 국가들이 스리랑카와 필리핀 출신의 가내 노동자에게 의존한다. 일례로 1987년에 이탈리아의 가내 노동자의 52.5%가 필리핀 출신이었다. 모로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 서유럽으로 향하는 흐름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증가하고 있다. 수십만의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필리핀 출신의 여성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가내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미국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본 학생이라면 이것을 인종 착취만큼이나 오래된 한 이야기의 변종으로 여길 것이다. 노예상이 서아프리카 사람들을 포획할 때 그들은 가족과 마을을 일부러 파괴하고 부모와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았다.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이 몇 백 마일 떨어진 플랜테이션으로 빈번히 팔려갈 때 이런 상황은 미주(美洲)에서도 지속되었다. 노예해방 이후 남부의 엄격한 인종 분리정책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백인 여성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관련된 일뿐인 경제적 조건을 창출했고 그녀들은 다시금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미국에 왔던 아일랜드, 폴란드, 그리스, 중부 유럽 출신의 다른 이주 여성들 역시 부유층의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였다. 부유층의 아이를 보살피는 가난한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것이 해결하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는 구식 해법이다. 첫째, 가장 명백한 문제는 가내 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의 아이들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일자리는 급여가 많지 않고, 따라서 빈곤을 영속화한다. 셋째, 이런 직종은 수당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고, 가내 노동자는 작업장의 학대로부터 거의 보호받지 못한다. 넷째, 이런 가내노동을 조직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성별분업을 심화할 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을 심원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 노인 또는 환자를 비롯한 가족의 의존자들에 대한 보살핌이 여성의 고유한 일로서 사적인 가족의 문제라는 가설에 도전해야 한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은 보살핌 노동의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저개발국을 계속 착취하고 있다. 이 사슬의 끝에 있는 여성들은 종종 자신의 아이를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의 아이에게 감정적 지원, 애정,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는 부러워할 것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가난한 여성이 다른 이의 아이에게 보살핌, 사랑, 애정을 제공할 때 모성애는 돈으로 교환된다. 1960년대 비틀즈는 돈이 당신에게 사랑을 사줄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다. 사랑의 노동, 즉 보살핌 노동은 많은 면에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이다. 본질적으로 문제는 그것의 상품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화가 착취에 기초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보살핌 노동이 사적 시장에 놓일 때 그것의 가치와 보상은 낮다. 그 이유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전통적인 이원론이 모성애를 본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특질이 본성이라면 훈련이나 숙련이 필요 없고 따라서 높은 급여를 받을 가치도 없다. 우리는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보살핌 노동이 전문직으로 인정된다면 급여는 증대할 것이고 노동조건도 개선될 것이며 보살핌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보살핌 노동이 비숙련의 여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가정은 성별분업에 관한 본질주의적인 견해를 재생산한다.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고, 은행을 경영하고, 우편을 배달하고, 심장수술을 하고, 법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기술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보살핌에 필요한 능력과 기술도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삼십년간 유급노동에서 여성의 기회가 급변했지만 남성이 보살핌 노동과 맺는 관계는 겨우 변화의 초기단계에 있다. 충분한 평등을 위해서는 남성과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구성이 변해야 한다. 또한 유급 고용의 구조도 변화하여 보살핌에 대한 인간의 요구가 고용의 책임과 동등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직장-가족 분리를 연결하기 양육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지원이 부재한 상황과 더불어 여성이 일차적으로 아이를 책임진다는 가정은 여성의 경력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법학 교수 조안 윌리엄스의 연구에 따르면, 생산직 또는 전문/관리직 노동자를 위한 최고의 일자리는 “전일 또는 초과근무를 하고 출산과 양육에는 거의 또는 전혀 시간을 뺏기지 않는 노동자의 이상”을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에 “이상적 노동자”만이 풍부한 승진의 기회를 갖는다. 결국 승진은 저녁에 일하고, 갑작스레 출장을 가고, 주말에 출근하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문제는 아이들, 특히 12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그들이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고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방치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만약 중요한 회의가 저녁 7시에 있고 양육기관이 저녁 6시에 끝난다면 일하는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엄마의 진로”로 알려진, 덜 유망하고 경력을 덜 요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유전자 조작된 태아가 산업화된 인큐베이터에서 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 알도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끔찍한 전망에서조차 보육교사를 둔 탁아소가 등장한다. 양육의 엄청난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현재의 재생산 양태에 결부된 비용과 혜택을 따져봐야 한다. 문화, 교육, 시민 생활, 좋은 직업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도록 육성된 성인이라는 혜택은 우리 모두가 향유한다. 그러나 그 비용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법률, 과학, 기술, 회계, 의료, 정부 분야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명망 높은 최상위층을 조사해보면 불온한 양태가 드러난다. 승진과 양육을 결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랜디 알벨다와 크리스 틸리 교수가 훌륭하게 지적했듯이, 아내를 위한 직업과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 있다. 그들의 요점은 승진에 대한 “정상적인” 기대는 회사 일정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 때 24~27시간 활용할 수 있는 양육전담자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양육전담자가 없다면 의무적인 초과근무, 출장 또는 주말근무에 대한 고용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과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MBA학위를 받았거나 CEO 지위의 최상층에 오른 여성의 49%만이 아이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지위의 남성의 84%가 아이가 있다. 이런 수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종이 여전히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종”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베티 굿 와이프> 광고가 보여주듯이, 가정에만 있는 전통적인 배우자의 역할을 수용하는 전업남편이 있다면 확실히 많은 여성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상자 3.1). 상자 3.1 <베티 굿 와이프> 광고(북 캘롤라이나 상점에 붙어있던 전단지, 1998) 모든 잡다한 일이 해결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아내를 빌려주는 <베티 굿 와이프>에 전화하세요. 방문해서 집을 깨끗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 집 청소 · 양육 · 임시일 · 식료품 구매 · 오븐, 창, 차일 청소 · 요리 · 세탁 · 심부름 우리는 당신의 모든 가사 요구를 돌봐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이것이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0여 년 전에 베티 프리단은 “이름 없는 문제”는 여성을 가정에 유폐하고 유의미한 직장과 자기실현에 대한 여성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상황을 뒤집어 또 다른 아내의 신분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과 가족 의무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일자리 공유, 가족·의료 휴가, 신축적인 노동일정과 같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이 생산되었다. 이런 정책이 표방하는 목표는 소득을 버는 데 필수적인 고용주에 대한 책임과 가족의 성원들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스웨덴은 이런 움직임의 선두에 있었고 그 정책들은 종종 하나의 모델로 간주된다. 스웨덴은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육, 유급 노동, 가사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을 실행했다. 아이의 출산 또는 입양 시에 부모는 둘 다 소득을 보전해주는 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자신의 1일 노동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그들의 급여 또한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유급 의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노동자들이 매우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문화된 조기 아동 교육과 보육의 체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이 모성과 승진을 결합하도록 하는 명백한 국가적인 노력을 스웨덴에서 발견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식 해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엘렌 무타리와 데보라 피가트에 따르면, 육아휴직과 관련된 법의 젠더 중립적인 언어와 남성이 휴가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사용한 사람 중 단지 6%만이 남성이었다. 이들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결국 직장과 가족의 의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책임은 어머니에게 남겨진다. 따라서 대다수 스웨덴 여성은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파트타임 노동자가 된다. 이런 정책이 가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것은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강화한다. 이런 발견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해 여성은 계속해서 양육과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을 떠맡는 불이익을 당한다는 바바라 버그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보다 매우 적은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게 이치에 맞다. 임금 형평성을 창출하는 강력한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계속해서 무급의, 대체로 비가시적인 노동을 하는 암사자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과 거의 동등할 때 이런 이점은 사라지고 양육을 좀 더 평등하게 분담된 사업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상당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이런 점을 인식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보편적인 양육자 등가1)를 촉진하는 정책과 임금 형평성을 촉진하는 정책의 신중한 결합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임금 형평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옹호해왔다. 여성과 남성의 소득 불균형의 감축은 여성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근본적인 원인을 감축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은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적절한 것이다. 또한 양육자 등가 정책은 고용주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가족을 돌보는 데 똑같은 책임감을 갖는 동등한 파트너로 취급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태도의 변화, 즉 시민권과 보편적 참정권과 관련된 변화만큼이나 거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최대한의 평등은 가능하다. 결론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사람―아버지와 어머니, 빈자와 부자―들이 양육, 노인부양, 환자 보살핌 그리고 자기 보살핌에 필요한 시간과 경제적 자원을 가질 때, 사회의 최고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런 쟁점을 다루는 효과적인 정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보살핌 노동의 중요성과 지속적으로 보살핌 노동을 여성의 일로 가정하는 명백한 불공정성 그리고 보살핌 노동의 급여와 존중을 향상시킬 필요성에 대한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 보살핌이 시간소비적이고 노동집약적이라는 사실을 우회할 방법은 없다. 어떤 기술적 변화도 이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건강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세계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 또는 더 큰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이 모든 노동을 하고 있다. 여성의 낮은 소득, 양육자로서 가난한 여성의 착취, 가족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그 비용은 여전히 사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 혜택은 사회적이다. 1)[역주] 지난 호 <책속의 책>에서 언급된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말한다. 이는 가정 안과 밖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분업하는 모델로, 이 하에서는 가사 노동, 아동과 피부양자의 양육, 유급노동이 성인 가구성원 사이에서 평등하게 분담된다. 자세한 것은 드루실라·바커, 「가족문제: 성별분업의 재생산」, 『사회운동』, 2006, 1/2월호를 참조하라.본문으로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2006년 지자체 선거는 다음해 대선의 예비무대이자 집권세력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세력은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을 위한 '소재'의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이나 '외자확대가 한국경제의 프리미엄을 높여 전체 국부를 증진한다'는 주장은 기만성이 점차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물론 현정부가 민중에게 무언가 양보할 수 있다거나 정부의 정책개혁의 큰 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은 사회운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미국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해외로부터 엄청난 부를 수탈하는 메커니즘을 향유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흡수하는 자본소득(이자, 배당, 초민족기업 계열사의 유보이윤)은 미국기업이 국내 활동으로 얻는 이윤의 8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이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에 압력을 가하여 얻는 이득과 주변부의 저렴한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부의 이전은 막대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수입증가가 수출증가를 훨씬 앞지르면서 무역적자는 계속 확대되어 2000년 이후 GDP 4% 수준을 계속 상회하고 있다. 또한 무역적자에 조응하여 미국 내 외국인의 자산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즉 외국은 무역을 통해 번 달러를 미국에 다시 투자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지불해야 하는 자본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외국인 자산은 1984년 GDP 대비 19%였으나, 2003년 72%로 증가했고, 미국의 해외자산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미국이 해외자산을 통해 얻는 자본소득은 외국이 미국 내 자산으로 얻고 있는 규모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미국의 수익률이 두 배나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는 해외에서 강력하게 소득을 흡수하고 해외 자본가, 기업, 국가에게 그것을 다시 지불하고 있다(이를 '달러 환류'라 부른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이 해외에서 소득을 빨아들이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궤도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의 대외불균형이 계속 악화되면 미국에 대한 투자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달러 가치하락은 미국의 무역적자 교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환율 변화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지배력과 국제적 지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물론 미국이 이자율을 높여서 달러를 방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외국에 지불하는 소득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해외의 자산 규모를 더욱 빠른 속도로 늘리거나, 무역적자를 통제하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보다 더 빠른 수준으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공산이 크다. 또한 무역적자 악화의 주요원인인 부유계급의 가계소비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인 지지층의 반발을 초래할 정치적 위험이 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은 세계자본주의와 착취자들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파괴는 곧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적 위기, 나아가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동아시아 미국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질수록 이런 우려 자체가 불균형을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시정부는 2009년까지 현재의 재정적자를 절반 이하로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대규모 전비가 지출되었고, 감세조치의 영구화와 연금개혁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긴 어렵다. 따라서 부시정부는 환율·통상 등 대외경제정책을 경제적 난관을 부분적으로 타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는 위기의 대가를 타국의 민중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시정부는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통상정책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하고, '경쟁적 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이는 미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에게만 미국시장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차별을 우려하는 다른 나라도 FTA를 체결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FTA를 단순한 교역확대수단(관세인하)으로 여기지 않고, 비관세장벽의 제거와 경제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자간무역협정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즉 단순히 무역적자 교정을 넘어서 미국의 금융적 지배를 위하 초민족기업의 활동을 보장하는 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2) 최근 부시정부는 무역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외중앙은행이 달러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표시 자산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주요통화대비 20-40%의 절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 수준에 이르러 동아시아 통화를 중심으로 환율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특히 미국 의회는 위안화의 추가절상을 위해 무역제재를 준비중이다). 부시정부 2기와 민주주의·인권외교 이라크 전쟁은 부시 정부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는 "이라크 보안군이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라크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게 될 때" 달성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정의를 따르면 미국의 승리는 요원하다. 미 의회는 2006년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범세계적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3500만 달러를 승인해야만 했다. 이 규모는 한국전쟁 당시 전체 비용과 맞먹는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의회에 이라크 재건 기금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했고, 이라크 재건지원이라는 허울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라도 추인 받고 싶은 듯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는 일방주의적 개입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시 정부 2기가 출범한 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 활약했던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네오콘'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장악한 미국 의회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민주주의증진법(ADVANCE Act)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세계 45개 독재자들을 2025년까지 끌어내린다'는 목표를 세웠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비폭력적 수단에 호소해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안은 국무부가 담당을 맡아 처음 두 해 동안 민주화운동에 2.5억 달러를 지출하고, 민주화에 저항하는 국가의 자금흐름을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이는 탈냉전 이후 클린턴 정부의 '다자주의'와 세력균형 정책과 다르고, 인권 이슈를 제기해 공산권과 데탕트(무역협정이나 군축협정 체결)에 찬물을 끼얹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포진한 냉전 매파의 전통적인 '인권외교'의 확장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여, 최근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위조화폐-마약 등 불법거래 자금차단에 나서면서 6자회담이 큰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인권 의제는 한반도 정세에 장기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한국 사이에 협의가 긴밀해질수록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3) 초민족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치며 초민족자본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매각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크게 증가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2004년 말 42%에 이르렀다. 당연히 개별기업에서도 외국인 지분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금융업 부문에서 직접투자가 크게 증가해서 SC제일, 외환, 한국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며, 우리금융지주와 전북은행을 제외하면 모든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초과했다.4)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외국자본의 성격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계 홍콩자본인 BIH가 브릿지증권의 유상감자를 실시해(자본금 규모를 줄이고 지분을 가진 주주에게 보상금을 지급)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회수한 사건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JP모건이 만도에서 514억원을 회수하고 인터브루가 OB맥주에서 1699억원을 회수한 사건도 있었다). 외국자본이 높은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서 배당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문제가 되었다. 2004년 하나증권은 110%, 메리츠증권은 207%의 배당성향을 보여서, 주주들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배당액을 챙겨갔다. 외국자본이 가져가는 배당액 전체 규모도 크게 증가하여 1998년 5억 달러였던 것이 2003년 33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외국자본이 거래소 상장을 폐지하여 자본조달보다는 단기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외국인직접투자(직접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비중이 줄고 포트폴리오 투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직접투자로 분류되더라도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지분참여 수준의 인수합병(M&A)형의 비중이 증가한다, 한국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서며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점차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유상감자를 인허가 사항으로 바꾸고, 과거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을 뛰어넘는 고배당을 금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배당가능이익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소액주주운동을 펼치며 초민족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편에 섰던 쪽은 이러한 비판이 '외자 마녀사냥론'이고, 재벌개혁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사이비 민족주의'를 부추긴다고 정면으로 대응했다.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될수록 논쟁은 더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에 주식배당액으로 외국자본이 가져간 금액이 2004년보다 50% 급증한 73억 달러에 이르고, 2005년 주가 폭등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3조 6천억원 어치의 주식을 처분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버린의 SK(주) 적대적 M&A 시도나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경영권 위협 사건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5) 최근 정부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또 다른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반대하는 입장은 국내 상장사 지분의 40%가 외국인이어서 자금이탈 가능성이 높고, 홍콩-싱가포르 등이 자본이득과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의 와중에도 한국 자본 역시 초민족화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투자와 '글로벌경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금융사 역시 해외투자 펀드를 내놓고 있으며, 퇴직연금과 각종 연기금 역시 해외로 투자대상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에 60만대 규모의 중국공장을 세웠고 200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미국 공장을 설립했다. 또한 2006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법원, 채권단의 관리에 처해 있던 대형기업들의 매각이 이루어져, 글로벌펀드와 국내 사모펀드의 각축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국제금융기구, 한국정부, 신자유주의 NGO는 초민족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력을 보장했고, 한국의 기존 재벌은 초민족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며 명운을 걸고 초민족화의 혈로를 찾고 있다. 물론 한국 경제의 급격한 재편과 초민족자본의 지배력이 확대에 따라 삼성과 같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로비와 여론조성에 몰두해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지배구조개혁) 대 한국자본 보호(적대적 M&A 방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위기 때문에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 일부의 공생·경쟁관계가 작동하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자본소득을 퍼올리고, 세계는 미국에 상품을 수출함으로써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를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출분야의 팽창, 한국증시의 급상승과 같은 현상은 미국의 금융세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체계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종속성과 취약성은 더욱 극적으로 표출될 것이다.6)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부의 집권 하반기 프로그램 주식시장은 팽창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M&A가 이뤄지면서 금융지배력과 집중력은 날로 강화되지만, 한국 경제는 경기회복은 매우 짧고 경기침체는 매우 오래 이어지는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다. 인민주의적인 선거전략과 대중동원에 의존해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로 기사회생하여 2004년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친 김에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 즉 개헌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연정제안 실패와 2005년 10월 재보선 참패 때문에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노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간의 미래구상'을 1월 또는 2월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고, 여기에는 노대통령의 탈당과 거국내각 구성, 임기단축과 조기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은 특정 정치분파가 압도적인 지지와 우위를 바탕으로 이를 공고화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하거나, 사회경제적 위기가 정치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지배세력의 '집단적인' 책임이 긴급해진 경우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집권세력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다.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에서 이질적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개혁 전망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민족자본이나 대자본에게 개헌을 매우 긴급한 과제로 제시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7) 따라서 집권세력에는 소폭 수준이더라도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 현재의 위기관리 체계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 기술관료-NGO 활용), 이런 체계에 여러 사회운동 세력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해 있다. 개헌에 미련을 두는 입장은 애초의 생각했던 내각책임제나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서 상원제 도입이 어려우면 대통령과 국회위원 임기불일치 조정과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노대통령은 지역 맹주간 연대의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시킬 수 있다며 정부통령제 도입에는 부정적이지만, 결선투표제는 중도개혁-진보진영의 연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한다고 알려졌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의 하나로 꼽히는 정동영은 개헌이나 정계개편을 포함한 중장기적 정치프로그램에 대해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 내의 확고한 입지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당헌당규 개정을 시도하여 당의장 권한 강화, 전당대회 1인1투표제도 도입,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 선거 분리를 시도했으나 당 내부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한 명의 당내 주자인 김근태는 '양심세력통합론'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과 고건, 박원순, 이수호 등 외연을 넓힌 통합을 시도해야 하고, 지방선거전 통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도 집권세력 내에서 확고한 정치프로그램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전망의 불투명성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연설에서 정치프로그램에 관한 '미래구상'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취임 전부터 검토된 사회경제정책 묶음을 다시 꺼내들었다. 물론 청와대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 마련'(저출산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적 정책과제 해결)이 노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완전고용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시혜 형태로 제공된다. 또한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거나 노동신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되는 증세(법인세 인상도 포함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가 확보한 약간의 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이 활용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와 정책방향은 인민주의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연설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재정 확충,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보호,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가 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만 없다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는 듯이 역설했다. 또한 노대통령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정부의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대리전'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보였다(이미 지난해 '사회양극화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결성되어 이러한 의도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증세는 부유계급에 대한 수사적 공격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그렇지만 인민주의 전략이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사적인' 공격(립서비스)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 반대급부로 민중에게 요구하는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통합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공유한다. 노무현정부는 성장잠재력의 약화, 사회양극화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한 새로운 미래 위험요인의 등장이 한국경제의 당면 문제라고 명시하면서 각종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8) 그러나 값싼 노동력 투입의 둔화(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예비군층의 축소)와 설비투자의 감소, 생산성 향상의 저하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고갈, 산업부문·업종·기업·계층간 양극화 심화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가 택한 신자유주의 생존전략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세계화운동 미국 제국주의가 내포한 모순의 폭발은 곧 세계자본주의의 동반 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환율·통상정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표출을 지연하고 그 비용을 세계 민중에게 전가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정치군사적 헤게모니의 강고함을 과시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전성과 금융지배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또한 부시정부는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나마 승인 받기 위해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라면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도 불사한다는 전략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지역을 더욱 확고히 포위하여 그 지역의 불안정이 중심부로 전이되는 것을 봉쇄한다는 전략에 불과하므로 본질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재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장기불황에 빠져 있다.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구조조정에 편승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응한 일부 산업·기업은 주가폭등, 수출확대를 통해 팽창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초민족자본의 자본소득과 경제지배력 확대에 기여할 뿐이다. 최근 초민족자본의 성격과 이들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다드와 재벌개혁을 외치든,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추구하든 이 모두는 민중에게 다른 형태의 재앙일 뿐이다. 노무현정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있고,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계승하면서도 인민주의적 대중동원에 의존해 지지층을 끊임없이 재규합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기술관료-NGO를 매개로 위기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운동을 공격 또는 포섭하면서,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서 정치적 국면들을 돌파해왔다. 그러나 아랫돌을 빼내서 윗돌로 얹는 조삼모사 방식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려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정부의 집권 이후 인민주의적인 정치토양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계경제의 위기는 초민족자본과 한국 자본의 '공생관계'를 근저에서 잠식하고 있으며, 한국 지배세력의 정치프로그램을 제약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거나, '외국자본'에 대항해 한국자본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현 정부와의 대와나 협약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지양하려는 사회운동은 위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서만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개조,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결합,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의 결합이라는 우리 사회운동의 과제를 펼쳐나갈 수 있다. 1) 뒤메닐 & 레비, [21세기로의 전환과 미국 제국주의의 경제학], {사회진보연대}, 2004년 7-8월호와 [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세에 대한 전망], {사회운동}, 2006년 1월호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신년사에서 한미 FTA 타결 의지를 밝혔고, '유일한'(?) 장애 요소로 꼽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장기적 편익이 증대하나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산업(노동집약적 제조업, 농업)에서 고용감소, 임금하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조정비용이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노동신축화가 다시금 등장한다. 본문으로 3) 현재 북한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집단은 냉전 매파에서 유래한 NGO와 기독교 복음주의 NGO이다. 그들은 북한자유연합을 결성했고 북한인권법안을 지원했다. 이들 집단이 북한인권 문제를 북한붕괴 유도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접근법들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 안보, 경제문화교류, 인권 문제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하는 '꾸러미 접근법', 2) 인권 탄압국이라고 '망신'을 주기보다는 북한 관리와 은밀한 접촉을 취하는 '조용한 외교', 3) 경찰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는 방식처럼 미국은 강경노선을 취하고 남한은 북한을 구슬리는 역할을 하는 '좋은 경찰/나쁜 경찰' 방식, 4)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권의 주요 척도라고 인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에 방점을 두는 '인도주의적 접근', 5) 북한의 경제적 개혁을 유도해 개혁주의적 정치세력-기업가-신중간층을 육성하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활성화하자는 '경제개입' 전략.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입장은 각자 분리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유럽이 조용한 외교를 취하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인도주의 NGO는 식량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주류 NGO(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와 미국은 "망신주기"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견지에서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를 분석할 수 없으므로, 자유주의 개혁을 인권 문제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본문으로 4) 2005년 말 국내 은행산업에서 외국계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은행 기준으로 33.7%에 달해 199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한편 외국계 생명보험사는 시장점유율(수입보험료 기준)이 1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계 손해보험사는 0.9%에 머물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회사는 16.5%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1995년부터 삼성전자의 기업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삼성의 경영권 방어가 첨예한 경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LG는 기업규모가 여전히 작은 상태이므로 오너 가족의 지분을 통해 지배가 가능하나, 삼성은 해외투자자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기능하게 하고, 후계자 이재용의 '불법상속'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시도했다. 이는 지금도 총액출자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금융보험사가 고객자산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때 의결권을 제한), 지주회사요건 등이 쟁점이 되는 이유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의 상속문제를 얼마간의 '사회환원'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본문으로 6) 초민족자본의 지배력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반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 요지는 첫째, 한국의 배당수익률(1주당 배당금/주가)은 1.9%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 비해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기업 전반이 높아졌다. 또한 외국자본이 대규모 유입된 후, 국내기업이 배당을 높였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높아지고 주식프리미엄이 생겨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투자부진의 원인이 순전히 고배당에 의한 자금부족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기업 부채비율 감축정책으로 인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말 396.3%를 기록한 후 2004년 말 현재 104.2%로 크게 감소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여건이다. 셋째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주주가 지분을 늘리거나 지배하는 계열사를 줄이는 방법을 택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 규모를 확대해 개별회사의 시가총액 규모가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정책을 펼쳐 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등등. 결국 주식시장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게 M&A도 막아내고 나눌 수 이득도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의 거품과 이에 따른 원화가치의 거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문으로 7)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기술관료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된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본문으로 8)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처방을 요약하면 1) 근로연계복지(workfare) 강화: 국가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보건·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 2) 취약계층의 직업능력개발 확대, 근로소득보전세제 2007년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3)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차상위계층과 노인·장애인 지원 강화, 4)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확대(저소득층 장학금지원, 성인대상 직업교육), 5) 영세자영업자 보완대책 마력, 비정규직 보호 법령 정비, 비정규직 고용개선 5개년 계획 수립. 6)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시책 추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