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파업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1. 지난 3월 18일부터 △근로조건 개선(1일 8시간 노동보장과 유급휴일 및 주·월차 보장) △평균임금 하락과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재하청(다단계) 금지 △산업안전 보장 △탈의실, 샤워실과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노조 인정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파업에 돌입한 1000여명의 울산건설플랜트 일용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는 비정규개악법안을 추진하면서 노동자탄압에 앞장서는 노무현정권을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2.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식당도 휴게실도 없는 극도의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산재사고 등 죽음의 현장에서 일해 왔다고 한다. 8개월간 14차례의 교섭요구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은 교섭에 불참하여 노동자들은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요구사안도 열악하기 그지없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것인데 공권력이 탄압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이다. 경찰은 노조간부 9명에 대해 계속 소환장을 발부하더니,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간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심지어 파업을 음해하는 보도자료까지 수차례 배포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정당한 노동자파업을 공권력으로 짓밟겠다는 조치에 다름아니다. 3. 노무현정권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비정규보호법안’이라고 우기는 것도 모자라 비정규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마저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하이닉스매그나칩비정규직, 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한원CC 등 노동자들은 사측경비대, 경찰병력의 탄압으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노무현정권은 법개악으로 노동자들을 아예 학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며 파업권까지 무력화시키는 ‘신노사관계로드맵’ 추진 등 노동자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4. 정부는 울산 건설노동자의 합법적인 파업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교섭을 회피하는 사업주들을 처벌해야 한다. 비정규법개악을 집어치우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외면하는 정권에 대해 노동자들은 끈질긴 투쟁으로 화답할 것이다. 2005년 3월 31일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산별최저임금 투쟁현황과 과제> 정책워크샵 자료 - 민주노총 산별최저임금 투쟁현황과 과제(총연맹) - 보건의료노조 산별 최저임금 투쟁 평가와 과제 - 2004년 산별최저임금협약 평가와 2005년 투쟁과제 금속노조 보조발제문
* 민주노총에서 나온 비정규 쟁점해설 자료입니다.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부결시키고,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혁신을 결의하자 박 하 순 | 집행위원장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운동진영 안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적 교섭 안건을 기어이 상정하여 통과시키겠다고 하고 있고, 사회적 교섭 안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는 전노투 등은 사회적 교섭 안 자체의 상정을 ‘결사 저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한 차례 토론과 몇 번의 지면논쟁 등이 진행되었긴 했지만 여전히 사태는 2월 1일의 상황의 지속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 촉박한 시기에 사태의 해결의 키는 여전히 민주노총 지도부에 있다고 판단하며 민주노총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 비판을 하고자 한다. 동지적 비판으로 이해하길 당부드린다. 민주노총 사회적 교섭안의 개요는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통해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교섭기구’를 구성하여 사회적 교섭의제를 다루는 것인데, 2005-2006년 사회적 교섭 3대 의제는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사회보장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노동3권 강화 및 노사관계 민주적 재편관련 제도개선이라고 한다. 비정규개악안도 이 사회적 교섭기구로 가져와 저지시킬 것이며, 해고를 대폭적으로 자유화하고 노조를 무력화할, 그래서 민주노총 조합원(특히 자동차 조선 등 대공장과 사무관리직)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노사관계로드맵도 이를 통해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선 이 사회적 교섭 참가는 “사안에 따른 참여, 불참, 합의 거부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전술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며, 대중투쟁과 철저히 결합해 나가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니며”, “4월 국회에서 비정규 개악안을 강행처리하면 사회적 교섭방침은 폐기한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태도와 사회적 교섭안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세인식의 안이함이다. 작년말 투쟁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비정규 관련 개악 법안 통과가 내년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열린우리당을 통해 흘러나오자 투쟁을 축소시키면서, 다음 국회에서 권리입법 쟁취투쟁을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마치 법안을 폐기시키기라도 한 것처럼(사실 이런 태도는 당시 민주노총의 투쟁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을 향하여 법안저지 투쟁을 서둘러 종결하려는 차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런 지도부가 최근에는 투쟁으로 비정규법안을 막아낼 수 없으니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개악 법안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열린우리당이 자본가단체를 매개로 하여 한나라당까지 끌어들여 4월 국회 처리를 계속해서 공언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또다시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설사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비정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쐐기를 박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작년말 좌고우면하지 말고 애초의 공언대로 가능한 최대한의 투쟁을 조직했어야 했다. 현자노조의 결의, 공무원 투쟁, 철도 투쟁 등 투쟁을 키우고자 한다면 충분히 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설사 패배를 했다손 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조합원들의 불만과 조합원 내부의 분할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안이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해고의 자유화가 핵심인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을 국가와 자본이 예정을 하고 있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교섭테이블을 구성해 이를 논의하겠다고 한다(게다가 직접적인 노동 사안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침략전쟁을 편들며 대규모 파병을 강행하였고 이에 반대해 위원장이 파병반대 단식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노무현 정권과 안정적인 교섭 틀을 구성하려 드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이 되자마자 정규직의 해고를 보다 쉽게 해야 한다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핵심(이는 국내 자본뿐만 아니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한국 진출 일본 자본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 등에서 계속 주장해 온 바이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는 노무현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대국민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사실 이번 비정규법안은 비정규직을 일반화하겠다면서 그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왔던 많은 노동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꺾어버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권과 자본으로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우기고 있는 법이다. 비정규 관련 보호법안이 이러할진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고 있는 정규직에 대한 법안의 내용이 어떠할지는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주로 포진되어 있는 대사업장에서 사실 해고는 명예퇴직금 등 일정한 부담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적자가 심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새로운 법안에 따르면 흑자를 많이 내는 기업일지라도 더 많은 흑자를 내기 위해, 그리고 주가가 조금만 내려도 주가부양을 위해 추가적인 부담을 하나도 지지 않은 채 해고를 일상화할 것이다. 민주노총에서 외쳤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는 실천의지가 전혀 없는 단순한 구호였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다. 경기가 좀 나아지면 정권과 자본의 태도도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우리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경제는 이미 저 성장기에 접어들었으며 금융세계화에 편입되어 있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만 초국적 자본을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있고 그것이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그런데 국민들의 다수 구성원인 노동자의 삶이 궁핍해지면서 한국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권과 자본은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해 주겠다는 마음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일정한 침해나 자본에 대한 통제를 가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이는 지난 노사정위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국가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세는 지속될 것이며 이는 교섭테이블에서 저지될 성질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어찌된 일인지 사회적 교섭에 목을 매고 있다. 둘째, 교섭과 투쟁 병행론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민주노총 지도부나 사회적 대화 안건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노조는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투쟁 없는 교섭이 허구적인 실리주의라면, 교섭 없는 투쟁은 공허한 전투주의’가 되고 만다.”라고도 한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연히 사회적 교섭 틀이 있어야 될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단위노조, 산별노조, 총연맹 차원에서 조금씩 다르겠으나 사회적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총연맹 차원에서는, 교섭 틀이 아무리 잘 마련되어 있을지라도 투쟁(력)이 없이는 실질적인 교섭이 이루어질리 만무하며(특히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항상적인 교섭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주체들의 투쟁의 과정에서 투쟁의 흐름 상 교섭을 원할 때 교섭테이블이 절대로 설치되지 않는다는 것도 상정할 수 없다. 즉 교섭테이블이 있다고 해서 투쟁(력) 없이 교섭만으로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거나, 교섭테이블을 항상적으로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투쟁의 성과를 갈무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총연맹 차원의 사회적 투쟁을 교섭 틀을 항상적으로 유지하면서 진행하는 것은 노사정 인사들이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면서(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노조간부들이 주로 자본가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 역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노조간부들로서는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해서 교섭결과가 형편없는, 혹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교섭을 하게 되는 것이 또한 지난 노사정위나 민주노총이 참가하는 각종 위원회들의 실상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교섭과 투쟁을 병행한 96-97년 노개위의 ‘성공’과, 전적으로 교섭에만 의존했거나 전적인 투쟁만을 선언했던 98년 이후 민주노총의 노사정위를 둘러싼 지그재그 행보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96-97년 노개위 이후의 총파업을 ‘성공’이라고 보는 것도 따져볼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97년의 외관상의 성공은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김영삼 정권 말기에 안기부법을 매개로 한,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당시 야당 ‘개혁’세력(현재의 집권세력 및 386세대들)과의 은밀한 합작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그들과의 합작은 민주노총 및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반대 범대위의 투쟁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로 나타났고, 투쟁의 결말이 그렇게 부실하게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상당부분 이들과의 합작에서 연유했다고 본다. 한편 그들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집권 이후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의 최소한의 동참도 내팽개친 채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자들로 변신했는데 민주노총 지도부는 아직도 ‘개혁’세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바지 끈을 부여잡고 있다. 독립을 해도 진즉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즉 98년 이후 노사정위의 ‘실패’는 이들의 배신과 완전한 전향에 의해, 그리고 민주노총 내 그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세력의 지속적인 동요로 인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양상은 작년말 국가보안법 투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제 그들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투쟁을 일궈야 할 때다. 그렇지 않는 한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노동운동에서 정권 내부로흡수된 인사들과의 절연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회적 교섭기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이들은 또한 총연맹이 여러 사회적 의제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주장은 마치 사회적 교섭기구가 마련되면 노동자들이 이들 의제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 것처럼 오도한다. 그러나 사회적 의제가 있다고 해서 이 의제들과 관련한 노동자의 요구가 이 사회적 교섭기구에서 관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오산이다. 이는 현재 신자유주의적 쟁점의 노자간의 대립적 성격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 하겠다. 사정이 이러한데 투쟁을 통해 비정규법안을 못 막아내기 때문에 사회적 교섭 자리로 끌어내 우리의 안을 관철시키겠다는 말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넷째,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기존의 노사정위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새로운 교섭기구’의 한계도 뚜렷하다. 한계를 ‘극복’한 노사정위(대통령의 이행 담보 약속 등)의 새로운 구성도 쉽지 않겠지만, 구성된다 한들 정세와 주체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은 이상 그 성격은 98년 노사정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호언과는 달리 얻을 것은 거의 없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해제를 당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추진기구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적 교섭 안을 ‘결사 저지’하겠다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2월 1일의 폭력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꼭 이들에게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나, 폭력이 다시 발생할 경우 민주노총 내 어느 정파든 그 부정적 후과를 면할 길이 없다. 운동진영 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하여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은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물론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의 운동이 일본과 필리핀의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 하겠다. 한편 우리는 이들이 현재의 민주노총의 위기를 지도부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들의 이런 행보의 근저적 배경에는 조합원들의 보신주의나 수동성이 일정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 내부의 여러 분할 및 그 안에서의 상대적으로 나은 지위, 계속된 패배, 확실한 승리의 전망과 대안의 부재, 사태를 정확히 볼 수 있는 개념과 이론의 부재 등. 그래서 우리는 지도부 비판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운동이 아래로부터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현재의 노동운동의 위기의 확실한 방안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 그러나 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교섭과 투쟁 병행논리로 항상적인 교섭기구를 요구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길이 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제국, 초국적 자본, 국제금융기구 등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투쟁은 노무현 정권 반대만으로 완수될 수 없겠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담보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를 경유하지 않고는 시작조차 될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정권과의 전선을 치지 않는 어떤 전술운용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이는 김대중 정권 이래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투쟁이 증명하는 바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사회적 교섭안 폐기 및 부결과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혁신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안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공약사항 이행이라든지 다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옹색한 논거를 들이대면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대의원들의 현명한 처신이 절실한 시점이다.PSSP
노동의 성차별, 두가지 경향 장 귀 연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하기 나름'일 수 있는... 솔직히 고백하면, 나의 경우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성차별이라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딸이라고 해서 특정한 규범이나 행동양식을 주입하는 일이 절대로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장땡이었다. 전국의 같은 또래 남학생들과 꼭 같은 시험문제로 경쟁하여 대학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성차별이라는 '사실'을 경험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원서를 낼 때였다. 당시 내 경험에서 보면, 서류전형의 기준은 일단은 학벌 차별이 가장 심했던 것 같다. 그 차별 구도에서 나는 이른바 대학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출신이었으므로 대단히 유리했다. 그럼에도 가끔 몇몇 군데에서 내 원서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같이 원서를 낸 같은 학교, 같은 과 비슷한 학점 대의 남자들은 서류전형 통과 명단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성차별이라는 거구나'하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내 반응은 '에잇, 더러워서 안 간다!(못 간다?)'였다. 최종면접에서도 그러했다. 당연히 대개 여성과 남성이 반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입사에서 여자는 몇 명 뽑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더라'라는 루머가 난무했고, 그에 따르면 훨씬 좁아진 확률 속에서 나는 남자들은 제쳐두고 여자들을 경쟁상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박했던 건 아니다. '여기 입사하지 못하면 딴 데 가지'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호황을 누리고 있던 10여 년 전이다. 일단 취업문을 통과하고 난 후 직장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성별은 별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은, 그래서 더욱 엘리트(?)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나는 소수 여성으로서 주목받았고 그래서 더 우쭐했다. 결국 나의 노동과 사회적 활동에서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이른바 커리어우먼인 내 친구들도 그렇게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할 수 있었다. '여자라는 게 뭐가 문제야,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와 여성노동에 대한 공격 실제로, '그렇다'. 단, '자기가 하기 나름'일 수 있는 경우에는. 의대 여학생 비율이 절반이 넘고, 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도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급상승세를 보이고, 각종 전문직이나 간부직 승진에서 성차별은 금지되었다. 물론 비공식적인 차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결국 몇몇 직장에 합격할 수 있었듯이 '자기가 하기 나름'으로 돌파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성차별 금지'가 확산되는 이면에서, 여성평균임금은 남성평균임금의 60%선에서 정체하거나 떨어지고 있고 반대로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70%에 도달했다. 빈곤의 여성화도 점점 심화되어, 국민기초보장의 여성수급가구 비율이 50%를 넘으면서 상승하고 있고, 여성 가구주 가구의 빈곤율은 남성가구주의 두 배에 달한다. 나는 '여자라는 게 뭐가 문제야, 자기가 하기 나름이지'라고 말했으나, 전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성별 격차는 명백히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 서로 모순된 얘기의 함정은 '자기가 하기 나름'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데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그러하다. '자기가 하기 나름', 즉 이른바 노력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조차 특권적인 위치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가 노력과 능력을 통해 자본가가 될 수 있는가, 승진할 수 있는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가? 무수한 노동자들은 노력과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도 없고 그럴 필요나 이유도 없다. 자본은 노동을 언제든지 갖다 쓰다가 쓸모없어지면 폐기하고 대체할 부품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력과 능력이라는 것은 노동 강도 경쟁을 강화하는 허위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교묘함을 더해가는 비정규직 형태들을 이용하면서 자본은 맘 내키는 대로 노동자들을 폐기처분하고 심지어 노동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은폐한다. 노동자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나는 노력과 능력을 가진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다!"라는 찍 소리 한마디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 분명히 고용과 승진 등에서 성차별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성차별 금지법이 다루는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데, 그것은 직종과 직무의 성별분리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77%가 여성 직종에 집중되어 있고, 바로 이 직종들에서 비정규직화와 저임금화의 추세가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차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많은 여성 직종들의 직무는 감정노동이나 가사노동의 연장선상에서 취급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적'(!) 일들은 주변적인 것이므로,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임금을 많이 줄 필요가 없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한다. 남자들과 동등하게 노력과 능력을 보여주는 개별 여성을 성차별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일'은 여전히 '하잘 것 없는 일'인 것이며, 따라서 그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노동자'에 미달하는 것이다. 2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하게 해 달라고 호소한 여성 노동자의 모습. 그녀는 말했다. 대의원도 아니고, 조합원도 아니라고. 노조도 없다고.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은 노동자로서 '오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른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아줌마, 뭐야?"라고 대꾸했던 한 노조간부의 말은 '노동자에 미달하는 여성'이라는 자본의 목소리를 반복한다. 참관인석의 아줌마와 아가씨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대의원 석상에도 적지 않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여성 노동자로서 노조 활동가로 활약하는 그들은 존경받을 만하다. 그 뿐 아니라 몇 년 사이 각종 단체에서도 여성 활동가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성차별은 줄어드는 경향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의 공격 하에 가장 불안정해지는 노동자 집단이 바로 여성 직종이고, 여성의 빈곤화는 더더욱 심화되고 있다. 성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도 증명할 방법도 없이,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힘겹게 싸워야 한다. 나를 비롯하여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거의 불이익을 겪지 않거나 또는 '자기가 하기 나름'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운이 좋았다. 훨씬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하기 나름'으로 성차별을 극복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성차별은 약화되고 있지만, 여성 노동자 집단에 대한 구조적인 성차별은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 석상에 들어오지 못한, 참관인석의 아줌마와 아가씨들. 적어도 '여성'을 보기 위해서는, 어쩌면 대의원석의 훌륭한 여성 노조 활동가들보다 그들의 얼굴을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의 하잘것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여전히 '아줌마'와 '아가씨'로 지칭하는 노동운동의 뒷면에서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인 것이다.PSSP
<비정규운동 대토론회>를 다녀와서 비정규직 운동 어디까지 왔는가 -<비정규운동 대토론회>를 다녀와서 김 준 우 | 편집부장 1월 29~30일 양 일에 걸쳐서 고려대 경영대 학우강당에서는 <비정규직운동대토론회>가 열렸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를 비롯하여 34개의 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이틀에 걸쳐서 다섯 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무엇보다도 생생한 사례들과 현장을 통해서 생산된 문제의식을 통해서 새로운 노동자대중운동의 가능성과 현재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한 400여명에 이르는 참가자 수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운동의 활로를 찾기 위한 뜨거운 열망을 확인한 자리였다. 비정규직 투쟁, 현장의 고민들 ‘비정규직 현장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첫 번째 토론마당을 비롯하여 제 마당에서 제출된 다양한 노동조합의 사례들은 비정규직 운동이 처한 조건과 어려움의 현재 스코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마당에서 발표 단위였던 학습지노조, 건설일용노조 , 건설운송노조, 화물연대등의 사례에서는 노동자성의 인정 문제에 맞선 투쟁에서부터 노동조합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문제와 투쟁방향의 초점을 맞추기 조차 어려운 단위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노조들은 법적으로는 특수고용의 형태라는 점과 사업장이 분산되어 있는 점 그리고 대부분 노동의 특성들이 개별적, 고립적 근로형태라는 조건을 공유하고 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들의 공동투쟁의 현재적 처한 조건들의 사례는 여러 가지 쟁점들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 지하철 청소용역 노조와 같이 정규직 노조와의 공동의 틀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나, 간부들 수준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승리적 공동 투쟁을 만들어간 대학노조 외대지부, 금호타이어의 사례들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뚫어야 할 조건과 장애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들이었다. ‘영세사업장노동자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 마당의 경우 다양한 사례와 발표들 속에서 미조직화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바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마당의 사례들이 대부분 지역일반노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했다. 둘째 날 열린 이 마당에서 우리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시작되는 곳에서의 역동성과 건강성 그리고 동시에 현실적 난관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토론회에서 확인한 과제 비정규직 노조운동에서 주체의 발굴과 양성의 어려움, 고립된 투쟁이 가져올 어려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의 난관 등 현 시기 노동조합이 처한 조건들과 양상들 속에서 몇 가지 평가와 원칙을 추출할 수 있었다. 우선 이번 토론회는 주체의 발굴과 양성에 대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고민이 절실히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조직적인 문제는 현재 몇 가지 층위로 나뉘어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특히나 형성 당시의 주체들을 중심으로 운동이 진행되는 경우들이 많으며 주체들을 새롭게 양성하는 문제, 주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 훈련하는 프로그램은 단위사업장에서 풀기에는 한계적임을 알 수 있었다. 주체의 발굴과 양성이 시급한 문제로 제기되지만 개별 조합 안에서만 풀릴 수 없다면 이는 여타의 토론마당에서 제출된 의견들처럼 비정규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민중운동의 대공업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메인마당에서 철폐연대의 발제 등에서 이야기했듯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체운동 범위에서 비정규운동에 대한 고민을 풀어갈 조직적 기획의 필요성은 몇 년의 투쟁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기존의 민주노총 체계에서 토론과 실천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서울본부)과 아울러서 노조에 제한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조의 주체화-활성화를 위한 활동가 조직의 필요성은 비정규직 운동이 한 발 더 내딛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보여진다. 지난 몇 년간 개별 노동조합의 와해로 유실된 성과들만 떠올려보아도 현재 비정규운동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교통망, 모임의 건설은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또 대부분 일반노조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소 사업장에서의 미조직화 운동의 경우에도 전술한 활동가 조직과 같이 전체 노동운동이 함께 책임지고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정규직 운동(및 비정규직 운동)의 쇄신 역시 강조되었다. 토론회 과정에서도 종종 확인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운동간의 불신이나 도덕적 비난은 현재 운동의 조건을 드러낸 단면이다. 모범적 사례로 알려진 금호타이어조차 현실적으로는 정규직 운동이 “일상적 시기에는 비정규직을 ‘관리’해야 하는 부서로 사고하고, 투쟁기에는 ‘비정규직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태도가 팽배했다”는 고백은 현재의 골이 메워지는 것의 현실적 고충을 말해준다. 현재 많은 곳에서 비정규운동이 정규직을 실리적으로 활용하거나 정규직 운동이 비정규직 운동에 대하여 안전판으로 생각하거나 일정한 차별을 개선(!)하는 수준의 운동으로 그치는 경향들과 ‘단절’해야 한다. 공동의 대중투쟁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정규)운동의 전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정규 운동이 가져가야 할 정치적 목표, 방향을 정초함에 있어서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으로 확장하는’(비정규센터)과 ‘단사의 시급한 사안을 넘어선 전망을 획득한 투쟁’(재능노조)등의 필요성들이 제기된 것은 비정규직운동의 미래 그리고 정규직 운동의 혁신과 연대에 있어서 역시 필요조건으로 보인다. 특히 비정규운동이 ‘정규직화’뿐 아니라 노동의 보편적 권리를 주장하며 모성권과 건강권(학습지노조), 생활권 등의 보편적 의제를 운동의 목표로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설정하는 것은 비정규 운동이 ‘전투적 경제주의’에 그쳤던 많은 기존 노조운동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디딤돌이 아닐까 한다. 이후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토론회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빈곤과 불안정화에 내몰리는 이들은 확실히 90년대를 거치면서 제도화된 노동자운동과는 다른 결에서 새로운 운동으로 출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에 대한 화답은 여전히 미진한 수준임은 모두 아는 바이다. 토론회 주최단위에서 밝힌 바처럼 아직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운동의 새로운 전망이 무엇인가라는 바에 대해서 이제 겨우 기본적인 원칙과 문제의식이 제출되고 있는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 참가자 수에서 확인된 운동의 혁신과 연대의 열망을 이어가는 것이 거듭된 대의원 대회의 우울한 풍경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실마리가 아닐까 한다. PSSP
2004년 '4대 개혁 법안'관련 투쟁을 비판하며 지난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것인가 - 2004년 '4대 개혁 법안' 관련 투쟁을 비판하며 박 준 도 | 사무처장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서 보인 지배분파들 사이의 다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낡은 유물'이라는 노무현의 지적 이후 17대 국회는 이른바 '4대 개혁 법안'과 '한국형 뉴딜 3대 법안'을 둘러싸고 아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2005년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볼모로 삼아 서로 윽박지르다가, 여야 4인 대표회담을 열어 타협의 여지를 모색하였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는 타협의 정치'라고 전제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여야는 4인 대표회담에서 합의와 번복을 반복하였다. 이 진통을 겪고서야 17대 국회는 몇 가지 시급하다는 법안을 처리하며 2004년 정기국회를 마감하였다.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먼저 통과시켜 놓고는 2005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공무원노조특별법, 신문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을 처리한 것이다. 파병연장동의안은 전쟁범죄행위를 연장하겠다는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안은 초국적 자본의 국내 활동을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며, 공무원노조특별법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법안이다. 언론관계법 중 하나인 신문법은 조·중·동을 견제하겠다는 애초 취지(?)조차 무색케 하는 것이다. 기금관리법은 투기자본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며, 민간투자법은 사회기반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민간투자의 길을 열어 공공재에 대한 사유화를 확실히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급한 민생법안이라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그렇게 다투다가도 민중을 수탈할 때만큼은 확실히 단결하는 17대 국회의 진면목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여의도 국회 앞 농성텐트들도 철수했다. 수많은 요구사안을 내걸었던 10여 개의 농성텐트들은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이 많은 천막농성은 오늘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떤 것이 요구사안인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방식의 투쟁을 무작정 지지할 수만은 없는데, 이런 방식의 운동이 민중운동에 고착화되고 지배적이게 되었을 때, 그것은 민중운동을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 정기국회 개원을 전후하여 시작된 이 농성은 그간 민중운동이 지키려고 했던 최소한의 원칙(자주성, 연대성, 전투성, 변혁성)들을 상당부분 훼손했다. 우리는 국회 앞 천막 농성 투쟁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전선의 성격은 무엇이고, 우리가 운동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왜 운동하는 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다. 소위 '4대 개혁 법안'의 허구성 노무현 정권에게 (정치적) '개혁'은 언제나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이 설사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다 한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자유주의 분파들의 세력규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이 곧 자유주의 분파의 안정적인 세력규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세력의 여러 조치들 즉, 신자유주의 개혁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행정부 모두 공유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이것만 가지고는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프로그램들로 대중들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무현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처지에 빠지게 된다(물론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배세력 내 여러 분파들 사이의 정체성 논쟁이 쉽게 불붙기 마련이다. 세력규합에 이것 말고는 별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나라당 박근혜가 당대표로서 재신임된 이후 정치권에서 불거진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 사이의 '국가정체성'-'유신청산' 논쟁을 상기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의제라도 '개혁'(반대로 '색깔시비')을 이유로 쟁점을 삼을 수 있는데, 세력규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수도이전, 호주제, 성매매, 국가정체성, 과거사진상규명, 심지어는 국가보안법, 북핵 문제까지 모두 다 의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그리고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로)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대중을 동원하고 소모해버린다는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되었건 반대편의 보수집단 시위가 되었건 간에 말이다. 이 때 내걸린 '개혁'과 '민주주의'는 빈곤, 실업 대중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에는 민중에 대한 어떤 양보 조치도 전제되어 있지 않으며, 그 배경에는 어떤 정치이념도 없다. 이런 짓을 지배세력들이, 특히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이 반복해 왔던 것이다.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역시 그러한데, 정치적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그 쟁점으로 지지세력을 결속하고 심지어 운동진영도 흔들려는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 중순 경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법안'을 일괄처리 하겠다고 밝힌 후 여야 사이에서 본격적인 정국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는 그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4대 개혁 법안'은 의회주의적인 정치테크닉으로 보았을 때, 사안 사안을 분리해도 의회차원에서 처리하기에는 녹녹치 않은 것들이다. 한나라당이 당의 존폐를 걸고 막겠다고 공언한 것인데 열린우리당이 이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실제로 이를 처리하는 것보다는 정국 주도권 장악에 더 관심이 있음을 반증할 뿐이다. 열린우리당에게 '4대 개혁입법안'은 꽃놀이패였던 것이다.(그리고, 노무현이 이야기하는 민생법안이란 구조조정을 뜻하고, 일자리 창출은 노동유연화 확대에 불과했다는 점도 환기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같은 허구적인 정치쟁점이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를 은폐해 버렸기 때문이다. '4대 개혁법안'이 논란의 정점을 차지하고 2004년 하반기 내내 정치쟁점이 되면서, 노동법 개악, 쌀 수입 개방 확대, 미군기지 평택 이전, 파병연장동의안 등이 별다른 저항없이 진척되거나, 확정되어버린 것이다. 민중운동의 NGO화 상당히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탄핵정국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상당부분 유실시켰다. 시민운동 진영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노무현의 복권을 자축했고, 여러 개혁 사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였다고 자부했다. 그들은 파병반대운동을 하면서도 자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에 대해 끝끝내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무지함과 반동성을 부각하는 것에만 골몰했다. 그들은 또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했고, 운동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연대사업에서 민주노동당을 상대화하려고 했으며, 수도이전 공방에서는 서울시와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며 노무현을 두둔했다. 노무현과 정치운명을 함께 할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쳐 왔던 것이다. 민중운동진영은 2003년 열사투쟁 당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민중운동진영은 이들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정치적 단결력을 고무시키려 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민중운동이 걸어왔던 길의 귀결일 것이다. 지배세력은 그동안 범세계적 변화에 조응하여 일관된 비전(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진해왔다. 지배세력-특히 행정 관료들과 이른바 '개혁'세력은 10년이 넘도록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를 선점해왔다. 그들은 농민의 권리를 말하기도 전에 농업시장을 개방해왔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며, 여성의 권리를 거론하기도 전에 삶의 기반을 해체하며 빈곤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구조조정을 부문별 산업별로 진행시켜왔다. 구조조정 대상을 국가권력과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다른 부문들로부터 고립시킨 뒤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부문을 구조조정 할 때 앞서 진행된 부문의 구조조정 사례를 들먹였다. 차례로 구조조정을 진척시킨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 구조조정의 대가가 소비자(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 여성이 소비자(시민)가 누려야 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듯이 꾸미면서 손쉽게 구조조정 했다. 이 과정은 다른 부문으로 이어졌고, 구조조정이 늦어진 부문일수록 특권계층(?)으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민중운동은 부문별, 산업별로, 사업장별로 저항해왔다. 연대를 호소했지만 해당 사안의 문제로만 멈추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자신의 생존권 투쟁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민중운동은 소비자(시민)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시민운동을 끌어들이려 했다. 소비자(시민)를 설득할 때, 민중운동 인사들은 해당 사안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이해와 같다는 것을 호소하기 바빴고, 산업의 이해가 곧 자신의 이해인 것처럼 꾸미기 바빴다. 이렇게 해서 '사안별' (범국민) 대책위가 오늘날 민중운동의 연대 사업 모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중운동의 광범위한 참여와 단결보다는 시민운동의 참여여부가 사안별 대책위 구성의 중요 잣대가 되었다. 사안 해결이 중요해질수록 민중운동의 활동은 국가기구와 협상을 하거나 압력 행사에 집중했다. NGO의 활동방식이 민중운동에게까지 일반화된 것이다. NGO들이 홀에서 서류를 들고 로비를 했다면, 민중운동은 행정부처나 청와대, 국회 앞에서 수많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며 압력을 행사했다. 청와대 앞에서 관련 사안이 계류 중이면 청와대로 달려갔고, 국회에서 진행 중이면 국회로 달려갔다. NGO들도 이렇게 동일하게 쫓아다녔다. 정치 1번지는 대중과 만나는 시위 현장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 앞이었다. NGO와 민중운동의 시위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만 졌다. 압력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민중운동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 시위와 달라진 것이었다. 이제 이 시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시민들이나 대중이 아니었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국회에 있는 의원들,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기자들이었다. 시민들을 향한 정치폭로도 국가를 상대로 하는 압박 수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민중운동의 정치활동은 국가기구를 매개로 해서만 진행되었고, 그럴수록 민중운동은 지배세력과 대중 사이에 유리된 공간(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자신이 대신 메워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NGO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리고 2004년 국회 앞 농성투쟁 4·15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원내다수가 되었지만 '아파트 분양가 공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는 '비리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대중의 실망은 늘어만 갔고, 평당원마저 대거 탈당하기까지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매우 높였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국감에서도 수세에 몰렸다. 탄핵무효운동의 자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한나라당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정치위기의 징후였다. '개혁' 사안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시민운동세력은 물론이거니와 상당수 민중운동 세력도 함께 목소리를 외쳤다. '민주개혁전선 강화', '수구냉전보수세력 해체'. 열린우리당은 11월 국회에서 '4대 개혁법안'을 일괄 처리할 것을 공언했다. 대규모 군중동원에 실패한 사안별 대책위들은 모두 11월 국회를 겨냥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사안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였다. 장애인 이동권, 사립학교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관계법 개정, 과거사진상 규명, 노동법 개악 저지, 의료 시장 개방 반대, 파병연장동의안 반대, 평택 미군기지이전 반대, 쌀수입 개방 저지, 공무원 노동3권 보장. 이제는 역으로 이 수많은 농성텐트들 사이에 자신의 요구가 없는 것이 조바심 날 지경이었다. 경쟁적으로 들어온 만큼 또 자신의 사안이 묻히길 원치 않았던 만큼 이들 사이의 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약했다. 여기서 연대라곤 약간의 생활물품을 나누어 갖고, 시간을 쪼개어 서로의 집회시간을 조절하자는 예의수준에 불과했다. 공동의 적(최소한 17대 국회를 향해서라도)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모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제 국회 앞 농성 텐트는 자신의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거점으로서 특정 부문의 개별적인 요구를 해결하고 압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농성과 시위도 달라졌다. 그리고 연대의 의미도 분명히 달라졌다. 2004년 늦가을과 초겨울 국회 앞 농성투쟁의 중심은 국보법 폐지 투쟁이었다. 국보법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4대 개혁법안' 중 핵심이었다. 그런 만큼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수구보수 대 민주개혁 전선을 분명히 했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를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세력은 6월 항쟁과 탄핵무효 운동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잇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기 침체로 대중들의 삶은 유린되고, 빈곤 실업 막대한 부채로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마저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쟁취'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쳐놓은 '민주주의'의 울타리를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국보법 폐지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이 보이지 않아서 열린우리당이 주저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한편에서는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민연대는 11월 정기국회 내내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몇 사람의 무기한 단식에서 지도부 단식으로 그리고 천 여 명이 참여하는 집단 단식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농성은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여의도'에서는 확실히 '부각'되고 있었고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투쟁에 우위를 지켰다. 연내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흘러나오면서부터 상황은 극단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의 이중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연내'에 폐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를 한사코 반대하는 수구보수세력 한나라당만을 보았을 뿐, '비정규직보호입법안', '용산기지이전비준동의안'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날 처리될 운명이었던 '파병연장동의안', '공무원노조특별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 등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와 이를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의 작태는 보려하지 않았다. 공동의 의제를 내걸어 공동투쟁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에 가서 국민연대는 이 모든 사안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국보법을 어떻게든 '연내'에 폐지하자고 '직권상정'할 것을 주장했다.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가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그것도 열린우리당이 이 모든 조치가 달린 상황에서 민중운동은 들러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직권상정'을 외치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던 것이다. 민중운동이 지키려했던 원칙이 실종되는 순간이었다. 열린우리당과 협력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를 보고도 열린우리당과 그 일당들에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자기 사안만이라도 해결하자고 다른 사안들은 등한시하고 공동투쟁의 정신마저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국보법폐지투쟁은 민중운동의 자주성과 연대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민족주의 진영의 실용적 주장에 따르면) 2004년 가장 유력한 정치투쟁이라는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 가장 최악의 조합주의적 투쟁의 면모(자기중심적 실리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을 국회에서 국회 앞 광장으로 끌어낸 성과가 있었다며 2005년을 기약하자고 자평했지만, 사실은 민중운동이 (거리에서, 대중들 앞에서) 국회 앞으로, 국회의원 앞으로 끌려간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친 노무현 개혁세력에 의해서 말이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을 높이면서 반미반전·반신자유주의 전선의 복원을! 사안별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회 앞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가 문제다. 작년 우리가 국회 앞에서 벌인 투쟁들이 운동의 원칙들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동이 계속 이런 식-그러니까 '오로지' 국회만 바라보며 '오로지' 자기사안만을 해결하겠다고 애쓰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그리고 이런 운동이 확산되고 장려된다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중단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시민운동세력들과 똑같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것이다. 대중의 불만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적절히 관리하고 조절하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노력보다 '오로지' 사안 해결에만 골몰하여 대중운동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치적 열망을 소비시킨다면, 그것은 사안을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지체시킬 뿐이다. 정치적 주체 없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부분 봉합되거나 결국에는 정치적 주체의 부재로 얼마 안 있어 상황이 역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10여 년의 역사가 이를 온전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 집권 2년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개혁'을 내세우며 국민을 동원하고 국민의 정치적 열망을 소모시키고는 도리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조치를 더욱 강화하면서 민중을 우롱해온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민중운동은 자신의 독자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과 시민운동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치적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 (한국)자본주의의 위기가 지배세력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지배세력들이 민중을 어떻게 착취하려 드는지,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분명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신자유주의 정책개혁,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과 실업의 구조화, 배제의 원리와 공동체의 위기-민족국가/학교/가족의 위기, 그리고 폭력의 증대-군사적 긴장의 고조). 그리하여 오늘 지배세력과 민중의 핵심적인 대립지점이 무엇이며(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의식화와 조직화)을 높여나갈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며 대안을 스스로 수립하는 것(의식화), 전체 민중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조직하며 수평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운동의 질서를 찾아내고 개인의 자발성이 전체를 한 걸음 나가게 하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조직화). 바로 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고자 우리는 운동하는 것이 아닌가? 2004년 국회 앞 투쟁을 반성하면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