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총파업투쟁 평가와 하반기투쟁의 과제 박 민 영 | 노동국장 현 시기 명확한 계급투쟁 관점만이 힘찬 투쟁을 예비한다 지배계급 내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소위 4대 개혁법안을 두고 이전투구가 계속되고 있다. 여야 정당은 각종 색깔론과 좌우논쟁을 동원하여 사활을 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은 결코 한국 사회의 미래는 이들에 의해 담보될 수 없다는 것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세게 밀고 나가고 있으며, 대다수 노동자 민중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참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계속해서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쌀 시장 개방, 경제자유구역법 시행과 기업도시 설치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상시적으로 침해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응해야 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여전히 실리적이며 고립적인 투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에서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불철저하게 인식하여 노무현 정권의 개혁에 기대려 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불철저한 정세인식은 ‘탄핵’사태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 민중을 지배 계급에 동원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투쟁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며, 또한 작동하더라도 성과가 축적되기 어렵다. 현 시기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이 지배 계급에 대해 독자적인 대안적 세력으로 서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의 창출은 현 정세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하반기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 실현을 위한 노사정위 참가여부가 지하철노조의 공동투쟁과 하반기 투쟁 등에 의해서 연기되었다. 하지만 좀더 본질적으로 보면 이러한 과정은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 계속해서 반복된 행태로서, 결국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무현 정권이 노동자민중에게 줄 수 있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노동자민중이 주체가 되어 전망을 열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총파업 투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다시금 총파업 깃발을 올렸다.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결정은 비정규대표자들의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로부터 촉발되었다. 9월 2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을 결의한 직후, 민주노총 임원진의 현장 순회, 총파업 찬반 투표가 실시되고 현장 활동가들의 결의대회가 연이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총파업을 통한 비정규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의 파고는 어찌 보면 아직 커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금속 중심으로 네 시간 총파업이나 하루 파업하고 말겠지’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주위 사업장의 동향이나 살피며 투쟁에 돌입하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는 파업에 돌입하는 것 못지않게, 어떠한 준비를 거쳐 파업을 성사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하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 교육과 선전은 기본이지만, 총파업 자체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노동법 개악 저지에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면, 향후 노동자 운동의 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시기 민주노총이 총파업 선언과 철회를 반복했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투쟁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투쟁 전술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계속되었지만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뛰어넘지 못했다. 96, 97년도에 노동자 민중의 강력한 총파업이 있었지만, 결국 정리해고 등의 노동법 개악을 뛰어넘지 못한 채 노동 유연화는 전면화되기 시작했다. 초민족적 자본을 대변하는 구조조정은 ‘위기를 헤치고 제2의 건국’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폭풍처럼 밀려 들어왔다. 금융 부문과 공공 부문에 이어 기업 부문과 노동 부문에 대한 4대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정권과 자본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를 완성시켜 나갔다. 이에 맞서 노동자 운동은 정리해고 저지투쟁과 사유화 저지투쟁,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벌였고,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을 통해 고용안정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98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한 이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를 소환하고 총파업을 결의하였지만 이마저 불발로 그쳤다. 매년 선언되는 총파업 선언과 총파업 선언 철회, 4시간 총파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성적인 총파업은 조합원에게나 정권과 자본에게나 위력적인 행동이 될 수 없었다. 지난 2002년 발전, 가스, 철도의 3사 노조 공동 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이 한번의 기회를 갖는 듯 했지만, 민주노총은 기존의 관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해 하반기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이 안고 있는 심각성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과 대응으로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법률 제정을 허용하고 마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 공무원조합법 저지, 경제특구법 저지 등 3대 악법 저지를 내걸고 돌입한 11·5 총파업에 대해 근로기준법 개악이 연기되었다는 이유로 8시간 만에 중단한 것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둘째, 신자유주의 공세에 적합한 노동자 운동의 조직화 방식을 창출해야 한다. 80년대 말 형성된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여러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민주노총 1기 지도부가 98년 노사정위 정리해고에 합의한 이후 대중적으로 촉발되었고, 이에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커다란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후에도 민주노총 2기 지도부의 총파업 선언 철회, 2002년 발전노조 투쟁에 대한 연대총파업 철회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주노총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담론은 확산되어 갔다. 2003년 열사 정국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존재하였음에도, 노동운동의 혁신은 계속해서 지체되고 있다. 비단 노조운동의 위기는 이런 파국적인 사건 속에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 상당수는 관례화된 노사교섭에 따라 무쟁의 상태에서 임단협을 타결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비정규직, 사내하청 등 불안정노동자에 대해서 무관심을 넘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럴 때마다 많은 논자들은 위기의 원인으로 민주노총의 지도력, 타협적인 지도부가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는 표면적인 진단일 뿐이다. 문제는 오히려 80년대 후반에 형성된 조합원 동원 식의 투쟁이 신자유주의 대응에 무력했다는 점이며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 대중이 그러한 투쟁과제를 수행하는데 역시 한계적이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합의주의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단히 한계적이며,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전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투쟁의 교훈은 노동조합이 기업별 수준이든 국가적 수준이든 사회적 합의주의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본격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노총은 노동의 불안정화를 막아낼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도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재의 노동자운동에 대해서 발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검토를 위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운동의 전형적인 동원형 투쟁방식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은 매년 여러 차례 ‘총파업’을 선언하곤 했다. 그러나 총파업을 선언했다가 철회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총파업’임에도 금속과 몇몇 관련된 투쟁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산하 노조들은 생색내기 수준에서 참여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투쟁을 회피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투쟁의 동원을 상당히 중요한 무기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투쟁 동원 전략은 영향력 행사를 위한 목적에 국한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일차적으로는 자본 및 국가를 협상의 장에 끌어내기 위한 ‘압박’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투쟁을 기획한다. 사실 압박이라는 ‘영향력 행사’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을 그 목표에만 국한하여 사고하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노정하는 일이다. 투쟁이 교섭 자체를 위한 영향력 행사로만 생각되는 한, 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연대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기존 노조들의 교섭 지원 성격만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지난 시기 투쟁이 오히려 실리주의를 강화하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연대를 약화시킨 역사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반기 투쟁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첫째,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다. 현 시기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자본의 이익을 구축하기 위해 노동 유연화를 제도화해 온 지배계급과 여기에 저항해온 피지배계급과의 연속적인 투쟁의 접점을 그릴 것이다. 정권은 이번 노동법개악이 비정규보호 법안이라고 말한다. 11월 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비정규입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남용을 규제하되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조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지 ‘차별금지’란 문구로 정부는 노동법 개악안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며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안은 비정규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양산법이다. 개악안은 이제까지 26개로 제한해 왔던 파견허용업종을 제조업을 포함한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50대 이상 준 고령자를 기간 제한 없이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개악안의 목적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이며, 비정규직 고용을 보편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와 계약기간의 자유화를 통해 기간제 고용과 파견제에 관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없애버림으로써 비정규직의 확산과 남용을 막을 수 없는 무노조, 무권리의 자본의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둘째는 구조조정·시장화·개방화에 대비하는 자본의 총체적 공격 저지 투쟁이다. WTO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자 각 국 정부는 보다 쉽게 더 높은 무역 자유화를 이룰 수 있는 양자 간, 지역별 교섭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이즈미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한일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자유무역협정은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초민족적 금융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생산과 고용을 파괴하여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은 초민족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철폐’하고 이들이 침투하여 이익 창출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 측이 제시한 비관세 장벽 철폐 목록에 ‘무노동 무임금 준수’, ‘퇴직금 산출의 유연화’, ‘휴가수당에 대한 사용자의무 면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적 재산권을 강화하고, 교육, 의료, 에너지, 우편 등 노동자 민중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도 자본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도록 할 것이다. 최근 정권에서 추진하는 기업도시는 △파견근로제의 무제한적 허용으로 인한 비정규노동자 확대 △생리휴가와 월차휴가 무급화로 실질임금의 삭감 △국내 노동관계법 및 사회보장법 적용 불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경제자유구역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초민족 자본을 보호하고,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 셋째는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합의주의 공세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번에 국무회의에 통과된 노동법 개악안은 작년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 로드맵(이정표)’의 연장선으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의 출발이 될 것이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동법을 개악해 비정규직을 확대, 파업권을 제한하며, 정리해고를 완화하고, 단체협상의 무력화를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에서 내놓고 있는 ‘유사 근로자 단결 활동 등에 관한 법률’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노사정위의 이러한 시도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수면 아래로 들어간 상태지만, 이번 노동법 개악이 어떻게 처리되느냐 따라 충분히 다시 거론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국면에서 노동법개악 저지 투쟁은 향후 이루어질 총체적인 노동법개악을 저지하는 의미를 갖는다. 넷째는 노동기본권의 박탈과 민중의 권리 침해를 저지하는 투쟁이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다. 지난 10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공무원노조법안(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이 확정되었다. 법률안은 일반직 6급 이하와 이에 상당하는 별정직 등의 공무원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되 단체행동권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노조 가입 범위에 경찰·소방·외교관 등 특정직과 이미 다른 노조법이 적용되고 있는 철도청과 정보통신부 종사 기능직, 교원 등은 제외했다. 공무원 노조는 보수와 복지, 근무조건 등을 놓고 소속 기관의 대표와 교섭을 할 수 있으나, 정책 결정 사항이나 임용권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안의 문제점은 단체행동권을 불허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단체교섭권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법안에 따르면 단체협약은 ‘법령·조례 및 예산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과 법령 또는 조례에 의해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기본권이 보장조차 안되는 ‘고용허가제’라는 법을 만들어 놓고, 이주노동자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때까지 쓰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공무원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정권의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는 일체의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노동법 개악안 저지를 넘어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쟁취하는 것이다. 지난 7월 12일에 단병호 의원의 대표발의로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상정이 이뤄졌다. 비정규 권리보장입법은 크게 네 가지 근기법개정안(근로기준법 중 개정 법률안), 노조법개정안(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자 중 개정 법률안), 파견법폐지안(파견근로자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폐지안), 직업안정법개정안(직업안정법 중 개정 법률안)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 투쟁은 수세적인 파견법 개악저지가 아니라 그간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차별을 합법화하였던 희대의 노동악법, ‘파견법’을 완전폐지하고 비정규직 사용의 엄격한 제한과 사용자처벌강화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삽입하는 투쟁으로 상승되어야 한다. 더불어 개악안 저지투쟁을 넘어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목표로 함으로써 어떠한 정권의 유도적인 전술에 넘어가지 않고 강고한 전선을 유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병군 철군과 연장동의안 저지, 국가보안법 완전철폐이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한국정부는 협력을 약속했다. 부시는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벌이려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3,000여명의 자이툰 부대주둔의 연장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12월로 예정된 연장동의안 처리 강행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공허하고 맹목적인 한미관계로는 노동자 민중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파병이야말로 침략과 학살의 제안에 굴복한 것이며, 피의 악업에 동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중의 정치사상의 자유’의 문제이며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남북관계 재정립’의 문제이다. 진정한 국가보안법폐지는 정치적 탄압과 인권유린의 지난 역사를 반성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민중이 압제와 탄압으로부터 저항할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재 한반도 위협의 근본적 원인이 미제국주의의 일방주의와 전쟁 책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을 계속해서 증진시키는 한미동맹의 해체 없이는 국가보안법폐지의 온전한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하기에 현재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형법 보완을 통한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은 불충분함을 넘어 대단히 한계적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반도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반공발전주의의 역사를 청산하는 과정에 놓여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조건 없이 완전 철폐되어야 한다. 위기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투쟁을 만들어 가자 몰락해가는 세계자본주의는 구조적 위기를 지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공세를 취하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노동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비정규직 확대와 정리해고 자유화 등 ‘노동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이 문제만큼은 타협하지 않는다. 97년 정리해고 법제화, 98년 파견법 제정, 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03년 주5일제를 빌미로 한 근기법 개악, 04년 비정규 노동법 개악을 출발로 하는 노동법 개악 공세 등 지난 수년 간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한 치의 양보도, 후퇴도 없이 노동에 대한 공격이 몰아쳤다. 이번 총파업은 작년 열사 투쟁처럼 일부만이 참여하는 총파업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4시간 부분 파업과 어정쩡한 집회 몇 차례로 끝내는 형식적인 하루 총파업은 기만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파업대오가 빈틈을 보인다면 저들은 파죽지세로 들어올 것이다. 사업장에서부터 단호한 결의로 총파업 투표를 압도적으로 가결시키고 위력적인 총파업과 집회 투쟁으로 맞서야 하고 사업장별 비정규 노동자와 공동투쟁, 공동파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공동파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공동실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와 공동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이번 총파업이 형식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단결을 통한 실질적인 투쟁을 꾀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와 노동자 단결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56%이다. 한국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특히 심한데, 그 이유는 유연화된 고용 형태 때문에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값싼 임금을 별다른 저항 없이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고용형태를 만들어 왔다. 단지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자본이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해고되는 것이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러한 차별은 반사회적일 뿐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하여 노동자 대중 전반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70%가 여성노동자인 현실은, 남녀차별이 이제는 고용 형태에 따라 구조화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이번 하반기 투쟁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동운동의 미래가 달려있다.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을 각인하고 투쟁으로 나아가자. PSSP
정부와 자본의 비정규직관련법안 개악시도에 맞서 총파업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그 동안 꾸준히 진행되어온 노동의 불안정화 과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촉진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번 하반기 투쟁이 97년과 비교되는 것도 단지 '총파업'이라는 투쟁형태가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쟁점에 있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둘러싼 계급적 대립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이번 하반기 총파업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한발 더 내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반기 총파업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번 하반기 총파업 투쟁은 '비정규노동법개악 반대 총파업'이다.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막기 위한 투쟁이다. 법안의 개정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투쟁의 직접적인 목표는 당면 투쟁의 구호들 속에서 요약되어 있다. 또한 법안의 국회 상정일정에 맞춘 각종 투쟁도 이 투쟁의 성격을 보여준다. 규제개혁위원회, 당정협의, 국무회의, 상임위, 본회의 등에 각 투쟁이 배치되어 있다. 민주노총의 투쟁 요구는 크게 4가지로 제시되어 있는데, 하반기 투쟁의 성격으로 볼 때 그 중 '파견법 개악 저지와 비정규 차별철폐'가 핵심이다. 그 동안 주5일제 관련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 경제자유구역법 반대투쟁 등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하거나 조직하려고 했던 투쟁들은 주로 국회의 입법처리 과정과 맞물린 것이었고 이런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번 투쟁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투쟁의 계기가 법제도 개악으로 조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측면이 투쟁의 한계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투쟁요구가 수세적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운동주체들은 이 투쟁이 단지 법안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90년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추진되고 98년 IMF구제금융위기 이후 전면화된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투쟁의 의미를 확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안들처럼 현재 입법이 준비되고 있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를 넘어서는 파견법과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전개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과 단락시켜야한다 이번 비정규노동법개악이 왜 추진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 투쟁의 요구가 어느 방향으로 확장되어야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하반기 투쟁에서는 개악시도의 원인을 대중과 함께 인식하고 당면 투쟁을 이 원인에 대한 투쟁으로 단락(short-circuit)시킬 필요가 있다. 이 투쟁이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에 대한 투쟁이면서 동시에 법안을 상정한 정권과 그들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투쟁 슬로건에 반영해야한다. 예를 들어 조합원 교육에 있어서도 "이번 비정규노동법개악이 우리의 처지를 이러 저렇게 악화시킨다"는 논리가 조직화의 기본이 되어야하지만, "이번 개악시도는 자본과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런 저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점을 대중과 공유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투쟁의 요구는 당면한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 슬로건과 '신자유주의 반대', '신자유주의 정권 노무현 정권 반대'로 확장되어야한다. 노무현 정부의 계급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번 과정을 통해 노동자 대중이 이 투쟁의 정치적 성격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신자유주의 제반요소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제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투쟁의 쟁점을 보다 확장시키고 정치적인 쟁점과 단락시키는 것은 투쟁의 성과를 단지 법안의 상정여부, 통과여부로 좁히지 않고 총파업 투쟁을 계급투쟁의 진전에 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번 총파업의 준비과정에서 각급 대중조직들은 조합원 대중에 대한 교육을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조직화해가고 있다. 이런 교육 과정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폭로를 넘어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이 공격의 원인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되도록 조직하자. 이를 위해서 하반기 투쟁의 핵심의제들(비정규노동법 개악반대, WTO DDA, FTA, BIT반대, 전쟁반대)을 신자유주의 반대의 맥락 속에서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신자유주의 반대', '정권반대' 등의 정치적 슬로건을 단락시키는 것은 이 투쟁을 보다 정치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장 하반기의 투쟁의제인 WTO DDA, FTA, BIT반대, 전쟁반대 투쟁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투쟁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사회적 합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도 주목하자.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반대를 대중적으로 전면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많은 운동주체들이 깨닫고 있는 것처럼, 노조운동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고분고분한 협조자로 조직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구성을 파탄 내는 것은 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정면으로 투쟁하는 과정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세를 변화시키자 : 투쟁동원에서 계급형성으로 이렇게 투쟁의제를 확장하는 것은 이 투쟁의 성과를 어디에 남길 것인가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직접적으로 정권의 비정규노동법 개악시도를 분쇄하고 수년간 거침없이 추진되어온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에 저지선을 구축해야한다. 법안의 통과여부, (어떤 식으로든 통과될 경우) 구체적인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 이 투쟁의 성과는 법안 개정의 '수위'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위력적인 투쟁을 통해서 폭주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을 멈추고 수년간 개별 사업장에서 진행된 분산된 투쟁에서 계속 패퇴해왔던 노동자 대중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가, 이를 통해 계급형성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성취되었나가 성과의 척도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기본적으로 투쟁동원 전략에 입각해있다. 가능한 최대의 조합원을 파업 혹은 가두시위에 동참시키는 것을 통해서 정부와 자본을 압박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번 하반기 총파업 투쟁도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비록 이번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도화 전략에 치중해 왔을지라도 그렇다. 투쟁동원과 제도화 전략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실재로 민주노총의 각 지도부는 강조점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양자를 병행해왔기 때문이다.{{) 『노조운동의 전략 분석 : 민주노총의 과거, 현재, 미래』 장귀연 2004 }} 이러한 투쟁동원은 당면한 현안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 제한되고 그렇게 조직되기 쉽다. 투쟁동원은 다른 무엇보다 대정부, 대자본 '압박수단'으로 사고되기 때문에 사후적인 평가도 눈에 보이는 실리적 '성과물'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놓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이번 투쟁에서는 법안의 상정여부, 상정된 법안의 내용여부가 평가의 대상인 '성과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규모에서 조직되고 진행되는 투쟁 사안들이 가지는 특수한 성격에 비추어 생각하자면 이러한 대차대조표를 중심에 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방식의 평가는 (보다 확장된 형태라고 할지라도) 대중의 실리주의를 부추길 뿐더러 투쟁의 다음 전망을 열어가는 데에도 장애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투쟁의 성과를 어디에 남길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할 것인가? 올해 하반기 총파업과 같은 전국적이고 전계급적 쟁점에 대해서 진행되는 투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과는 계급 내적으로는 '계급형성'으로 남겨진다. 개별화된 사업장의 요구가 아니라 전계급적 요구, 계급투쟁의 쟁점이 가장 첨예하게 격돌하는 쟁점에 대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계급적 단결이 강화될 수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 투쟁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쟁점으로 진행되는 연대투쟁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계급형성의 과정으로 적극적 조직할 경우 많은 성과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투쟁의 성과를 법안 내용의 일부 개정 등 실리적인 것으로 제한할 때 개별노조에서도 쟁점은 실리적인 것으로 제한된다. 그 '실리'가 단위사업장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전체 투쟁에 복무할 과제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투쟁의 전체 목표를 계급적 역관계의 변화, 계급형성에 복무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광범위한 조합원 교육과 현장투쟁, 가두투쟁을 배치해야한다. 한편, 전계급적인 쟁점에 대한 투쟁이 진행되는 경우에도 반드시 계급적 단결이 우선되고 계급형성적 투쟁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주의해야한다. 지난 2002~2003년에 진행된 주5일제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투쟁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당시 대기업노조들의 경우 이미 각자 주5일제 교섭을 완료하고 있었거나 향후에 교섭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에 동참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었다.{{) 물론 주5일제 투쟁은 이것이 과연 '전계급적 쟁점'을 담보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란 정규직 노조의 것으로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노동자 대중 다수에게 실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투쟁 자체를 고사시켰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운동의 대응』 이현 2003) 그런 점에서 올해 하반기 총파업 투쟁은 노동의 불안정화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투쟁요구의 성격이 투쟁 전개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 이번 비정규직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더라도 자기 조합원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노조들에게는 동일한 선택이 여전히 가능하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균열을 확인하고 오히려 심화시킬 이런 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상급단체와 단위노조, 현장 활동가의 수준에서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대중을 변화시키는 총파업을 조직하자 계급투쟁 지형의 변화, 계급형성 관점에서 진행되는 전체 투쟁의 흐름에 따라 각 단위의 투쟁계획이 구성되어야한다. 단순히 상급단체의 지침을 실행하기 위한 수동적인 방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 단위에서 가장 효과적인 투쟁조직화 방안을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이 일정한 시기에 그냥 집회투쟁에 결합하도록 조직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투쟁에 결합하는 것을 통해서 조직적 운동적 성과를 남길 수 있도록, 이를 통해 투쟁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이 각 현장에 맞게 생산되어야한다. 그것은 단지 실무적인 일정을 짜는 문제가 아니라 해당 조직의 상황에 가장 맞는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서 해당 조직과 이에 속한 대중을 변화시키는 종합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문제이다. 각 사업장에서는 총파업 집회에 조합원을 동원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활동을 전개하자. 각 현장에서 각 현장의 쟁점으로 임단투를 진행할 때처럼 총파업 찬반투표를 거쳐 준법투쟁부터 시작해서 투쟁의 파고를 높여가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 연결시키자. 전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반드시 배치하자. 이 시도가 노동자 계급 전체에 가하는 공격이라는 점, 우리 현장도 빗겨갈 수 없다는 점을 공유해야한다. 정권과 자본의 비정규노동법 개악이 우리 현장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스스로 분석하고 선전하는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의 모든 부분을 가동시키자. 각 사업장에서 '우리 사업장의 파업을 준비할 때처럼' 총파업까지 가는 과정에서 노조의 활동을 하나하나 배치하자. 이는 힘있는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과정일 뿐 아니라 조합원 대중이 이 투쟁의 요구를 자신의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렇게 각 현장의 힘이 모였을 때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단지 '하루파업'의 형태로 집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그 힘을 소진하지 않고 비정규직노동법 개악을 실질적으로 철회시키는 투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번 투쟁과 같이 전계급적인 사안에 대해 전국적으로 조직되는 투쟁은 각 단위 사업장에게는 하나의 기회다. 조합원 대중에게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교육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이를 통해서 대중과 조직 모두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인 것이다. 올해 하반기 투쟁은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노동의 불안정화 공세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투쟁임은 물론이지만 노동자 운동이 스스로의 체질을 개선해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노동자 운동은 이 투쟁을 통해서 정권과 자본의 비정규직노동법 개악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실리주의도 분쇄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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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민중대회 11월 14일 노동자 대회 그리고 총파업. 굵직굵직한 투쟁일정들이 준비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반복된 패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다. 특집에서는 이상민과 박준형이 총파업을 앞두고 점검해야할 과제들과 임무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작년 노동자 대회의 눈물을 되새겨보며 특집글들이 이번 총파업 투쟁이 한 발 전진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노동연계복지(Workfare)비판을 중심으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해체와 노동연계복지국가의 등장 자본주의의 성장국면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토대로, 계급타협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다. 민족국가의 헤게모니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을 철회하는 대신 고임금 및 사회복지를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안정화에 일조한다.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케인즈주의적 합의를 통한 계급타협의 시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이전에 계급타협을 가능케 했던 물질적 조건을 서서히 잠식한다. 대량실업의 지속과 그에 따른 복지비용의 급증 속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성장기에 일상생활의 상대적 안정성을 보장했던 일련의 제도적 장치들-특히 사회보장-을 '시장'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구조적 위기의 직접적 원인으로 공격한다. 이러한 일련의 반(反)복지 공세는 1980년대 이후 서방 국가들로 하여금 '복지국가의 양적축소'라고 할 수 있는 끊임없는 복지체제의 재편을 강제하게 하였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실업과 노동시장의 문제는 지속되었고 복지국가의 축소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공세를 더욱 강화하여 문제의 본질은 복지국가의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였다. 그리하여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을 동시적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조율하는 '질적 개혁'의 흐름이 형성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연관된 명제들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동적' 복지체제를 '능동적/적극적인 것'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완전고용이 구조적 실업으로 대체된 상황에서 국가는 과거와 같이 사회적 위험의 사후적 해결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실업의 사전 예방 또는 조기해결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복지와 조세제도 전반에 스며든 노동유인(work incentive)의 저해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복지제도는 노동시장 밖에서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 왔을지 모르나, 이것 자체가 강한 탈노동유인(work disincentive)이 되어 '복지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촉진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복지수급자들의 취업기회를 늘리기 위해서는 저임금이나 비정규 일자리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고용보장과 유연성의 적절한 조화이다. 주요한 내용은 단체협상의 탈중앙화, 해고제한 완화/철폐, 사회보험료 등의 비임금 노동비용의 면제/인하 등이다. 이들은 이렇게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을 개인의 노동윤리와 노동유인의 부족/부재로 인한 '복지에 대한 종속'에서 찾는 만큼 복지급여의 수준을 크게 낮추고 수급자격과 기한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복지수급자의 노동시장 편입을 촉진하는 정책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정책 아래에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아예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 소득보장을 위해 마련되었던 제도는 이제 이들을 강제로 일자리로 몰아내는 장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복지급여에서 일자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의 강제성은 상호성으로 포장된다. 권리와 의무의 균형회복이 복지개혁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내리는 처방은 19세기 영국 자유방임주의자들의 구빈법의 열등수급의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복지급여가 노동시장으로부터의 소득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때의 복지는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 아니라, 복지의 수급이 최악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보다 열등한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한 '형벌'의 성격을 갖는다.{{) 1980년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 머레이는 다음의 세 가지가 모든 사회정책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 1 : 사람은 유인과 탈유인에 반응한다. 채찍과 당근은 효과가 있다. 전제 2 : 사람은 본래 근면하거나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다. 상응하는 억지력이 없는 경우 사람은 노동을 회피하고 무도덕 상태에 빠진다. 전제 3 : 사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 이와 같은 전제 아래에서 서방 각국은 노동유인의 제일 저해요소로 공공부조를 지목하고 복지급여 삭감, 수급자격 강화, 수급기간 제한 등의 전통적인 조치와 함께 복지수급을 노동의무와 연계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정책을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노동연계복지는 공공부조의 조건으로 수급자에게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노동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수급자격을 주지 않으며 복지급여의 소득대체율도 크게 낮추어(급여액 삭감) 형벌적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부조제도이다. 또한 수급대상자를 노동능력자와 무능력자로 나누어 후자에게는 노동의무를 면제하는 것도 노동연계복지의 중요한 원리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의 복지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입증된' 빈민에게만 주어지고 노동능력자가 일 대신에 복지에 유인되는 현상을 차단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저소득 취업자에게 주는 조세혜택도 주요한 정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로소득에 조세혜택을 덧붙여 복지급여액과의 차이를 인위적으로 확대하여 노동유인을 높인다. 이 모든 정책은 노동시장 밖에서의 소득(즉 복지급여)을 삭감하여 일이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지의 최소화를 통해 노동력 재상품화(the recommodification of labor power)에 주력하는 복지체제(이것을 복지라고 할 수 있다면)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그 역도 가능하다. 노동력 재상품화를 통해 복지의 최소화에 주력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복지개혁이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앵글로-색슨 모델(Anglo-Saxon model)이다. 이 중 미국 복지개혁은 매우 특수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미국의 복지개혁에 유럽 국가들과 같은 거시 경제적, 체제적 구조변환의 압력이 기본적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특유의 강한 노동윤리와 가족주의, 이에 부착된 인종주의는 사회복지제도 자체와 그에 '기생'하는 빈곤층에 대한 혐오를 배태하였다. 이로 인해 양적, 질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던 미국의 복지의 축소라는 다소 역설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미국 : 저복지에서 탈복지로 2-1 반복지공세의 배경과 1996년 '복지개혁' 이전의 상황 미국에서 복지(welfare)란 통념적인 의미의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붙은 특정한 공공부조를 가리키는 일종의 코드이다. 미국에는 '사회보장국가'는 있을지언정, 전통적 의미의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로 철저히 분절되어 있다. 사회보장은 연방사회보험인 공적 연금제도를 뜻하고, 사회복지는 공공부조를 가리킨다. 노동과 기여를 바탕으로 한 전자의 수급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나, 후자의 수급자는 미국사회에서 치부로 인식된다. 따라서 미국의 복지개혁은 유럽 국가들의 개혁과는 처음부터 매우 다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미국 공공부조의 대표격이며, 미국 사회에서 있어서 흔히 말하는 '복지'(welfare)를 의미하는 AFDC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는 1935년 사회보장법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부양 아동이 있는 편부모가족이 기본적인 지원대상이다. 미국의 복지개혁과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은 거의 전적으로 AFDC 프로그램을 향해 이루어졌다. "막대한 복지비용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빈곤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어 왔다."고 하면서 미국의 복지제도가 미국 하층계급의 빈곤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부양아동가족의 빈곤율은 1973년 11.4%에서 1995년 16%로 늘어났다. 그러나 AFDC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제도가 폐지되기 직전인 1994년의 AFDC 지출은 연방정부 예산의 1%도 되지 않았다. 미국의 복지개혁이 단순한 재정적 이유를 넘어서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그리고 "복지로 시작하면 영원히 복지 안에 갇히게 되고, 일로 시작하면 빈곤을 벗어나 사회의 주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이런 믿음의 저변에 깔려 있었다. 노동윤리와 자활/자립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게으르고, 일은 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대며,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AFDC 수급자는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었다. 수급자의 대다수가 10~20대 흑인 편모 2인 가족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지배적 인종주의 담론과 함께, 복지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위한 논거를 단단하게 구성하였다.{{) 복지급여를 수급하는 어머니들의 72%는 단지 두 명 이하의 자녀를 두고 있고 61%는 복지급여를 받고 있는 동안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복지 수급자들은 노동시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는데, 43%는 복지수급과 임금노동을 병행하거나 이 둘을 번갈아 반복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복지급여 수급자들은 2년 이내로 수급자 명단에서 떠났으며 복지를 수급하는 어머니들의 3분의 2는 취업하기 위해서 복지수급을 중단하였다. 이 모든 것은 "수급자들의 복지의존을 없애기 위한" 개인책임법이 실시된 1996년 이전의 수치들이다. }} 미국의 복지개혁이 탈복지와 노동강제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복지제도가 만들어진 직후인 1940년대부터 이미 주정부차원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복지개혁론자들은 복지 수급자들이 복지수급 대신에 시장노동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혹은 복지급여 수급과 시장노동 참여를 동시에 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확립되기 시작한 지방법들은 일부 복지수급자(일반적으로 유색인종 여성들)을 "취업이 가능한 어머니들"로 분류하여 그들의 복지수급 자격을 없애버렸다. 1962년에는 31개의 주가 어떠한 형태로든 의무노동조항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다. 연방차원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노동의무 조치인 1962년 공공부조 수정법안은 복지급여 지급의 조건으로 수급자들에게 지역사회 공공근로 참여나 훈련 프로그램 참여를 요구할 수 있었다. }} 노동의무 조항을 통해 복지수급자의 수를 통제하고 복지비용을 조절함과 동시에, "복지사기꾼"을 벌하고, "새끼만 치는 여자들"에게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하고, "여성가장들"에게 결혼할 동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노동조치야 말로 잘못된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돌보며 집에 머무는 잘못된 여성들에게 국가가 급여를 제공하는 잘못된 관행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1967년에서 1988년까지 복지정책은 복지급여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도덕적 조건들을 부과하면서 의무노동조항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여섯 번이나 수정되었다. 법안이 수정될 때마다 빈곤한 모자가정 어머니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그들의 행동을 고쳐나가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고 빈곤한 모자가정 어머니들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고조되었고 미국사회의 지배 여론은 AFDC로 대표되는 '복지'에 원초적인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AFDC 수급자가 늘어날 때마다 복지개혁의 구호는 더욱 거세어졌고, 모든 복지정책의 성과는 언제나 수급자가 얼마나 줄었는가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1인당 실질 AFDC 급여액이나 여성가구주의 비율, 흑인 수급자의 비율은 지난 20여 년 간 꾸준히 하락하였으나 이런 지표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강제적인 시장노동 참여와 복지수급 자격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연방정부도 시장노동 참여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고 주정부의 조치들에 대해 제동을 걸었으며 노동 의무 완화, 노동 의무 면제 규정과 조치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복지(즉 공공부조)개혁 정책은 복지수급자를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1981년에 레이건이 집권한 이래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노동중심적인 복지개혁(work-centered welfare reform)이 시도되었다. 그 중에서도 1988년의 '가족지원법' (Family Support Act, FSA)과 1996년의 '개인책임 및 근로기회조정법'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 PRA)은 미국의 공공부조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획기적 사건이다. 2-1-1 가족 지원법(FSA)과 JOBS 프로그램 레이건 정부는 집권 첫 해인 1981년에 '종합 예산 조정법'(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 of 1981, OBRA)을 만들어 공공부조에 대한 대대적 수술에 나섰다. 이 법은 각 주로 하여금 복지와 노동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각 주에서는 '지역사회 근로경험 프로그램'(Community Work Experience Program, CWEP)을 만들어 복지수급자의 참가를 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이 노동연계복지(workfare)로 불리게 된다. 1988년이 되면 빈곤한 모자가정의 어머니들 모두가 가정 밖에서 취업하도록 하는 정책이 실시된다. 같은 해인 1988년 '가족 지원법'(FSA)이 제정되고 '일자리 기회와 기초 기능 훈련 프로그램'(Job Opportunity and Basic Skills Training Program, JOBS)이 실시되었다. FSA는 사상 처음으로 각 주에 복지와 노동의 연계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요구한 점에서 미국 공공부조의 물줄기를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미국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조세수입의 하락과 각종 사회복지 지출 증가에 직면한 각 주 정부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JOBS 프로그램을 점차 기피하였고 이 프로그램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경제 침체에 따른 AFDC 수급자의 증가는 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가져왔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클린턴의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제도를 끝내겠다."(end welfare as we know it)는 공언도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2 1996년의 '복지개혁' - '개인책임 및 근로기회조정법'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 PRA)의 탄생 자립과 자활을 종교와 같이 신봉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복지개혁은 노동윤리의 회복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1996년에 제정된 PRA는 60년 이상 유지되었던 AFDC를 폐지하고 미국 공공부조의 근본 틀을 바꾸는, '혁명적'인 법이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곤층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AFDC를 폐지하고 한시적 원조제도인 TANF(Temporary Assistance to Needy Families)로 대체한다. TANF의 수급자에게는 엄격한 근로의무가 주어진다. 아울러 개인의 수급 기간은 전 생에 동안 총 60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둘째, 공공부조에 대한 연방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철폐하고 주정부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이양한다. TANF에 소요되는 예산은 연방정부가 포괄적 교부금(block grant)의 형태로 각 주에 지급하며 각 주는 이 돈을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 포괄적 교부금 제도 또한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연방정부의 포괄적 교부금은 각 주의 1994년 지출 수준을 기준으로 책정되었고 이 액수는 2002년까지 변동이 없다. 과거에는 주정부의 복지지출액의 4배를 연방정부가 무제한 지급했던 데 반해, 이 방식은 주정부의 빈민지원재정을 크게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TANF의 도입과 함께 연방정부가 책임지는 빈민들의 복지 수급권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각 주 정부가 빈곤 가족에 대한 지원의무를 갖게 된 것도 아니다. 빈민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는 반드시 근로의무가 부과된다. 복지급여는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에는 기간 제한이 따른다. TANF의 도입은 복지가 결코 하나의 생활양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사회의 지배적인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복지수급 자격권의 철회는 이미 절망적인 경제상황이 비참한 수준으로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정부의 소득 보조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정부는 수급자들이 급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복지법에 정해진 기준을 얼마나 준수하는가에 따라 지급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책임법은 다음의 열두 가지 "노동활동"을 법에서 정한 의무노동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인정한다. (1)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않는 취업, (2)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민간영역에서의 취업, (3)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공공기관에의 취업, (4) 민간 부문에서 취업이 여의치 않은 경우, 공공주택 등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노동을 포함한 노동경험 활동, (5) 직업훈련, (6)구직 및 직업 준비 보조, (7)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 (8) 직업교육 훈련(12개월을 넘지 않는 것), (9) 취업과 직접 관련 있는 직업 기술 훈련, (10)고등학교 졸업장이 없거나 이와 유사한 학위를 가지지 못한 수급자들에 한해서 취업과 직접 관련 있는 교육을 받는 활동, (11)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이와 유사한 학위가 없는 수급자들이, 중등학교에 출석하거나 혹은 GED(General Equivalency Degree)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 (12)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을 위해 탁아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 }} TANF는 노동윤리의 결정판이다. 개인책임법의 의무노동 조항은 두 달 동안 연속으로 복지급여를 받은 한부모가족의 가장에게 몇 시간에 걸친 지역사회 봉사 노동을 하게 하거나 주정부가 정해놓은 일을 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인책임법은 복지급여를 24개월(연속적이거나 비연속적인 경우 모두)동안 받은 한부모가족의 가장에 대해서는 노동의무 규정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며 시장노동 참여 의무시간을 점점 연장시킨다. 의무시간은 1998년에는 주당 20시간, 2000년에는 30시간이었다. 이 법은 주정부에 강력한 의무조항을 부과하여 결국은 그것이 복지수급자 개인에게 부과되게 하고 있다. 각 주는 매해 "노동 관련 활동"에 더 많은 복지수급자들을 등록시켜야 하는데, 1998년에는 30%, 2002년에는 50%였다. 이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약 수급자가 의무시간 만큼 (임금을 받거나 받지 않는) 시장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정부가 그 가족의 복지혜택을 삭감하거나 박탈해야 한다. 만약 주가 의무노동 참여율에 미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첫해에는 TANF 정액교부금의 5%, 그 다음해에는 7%, 그 다음해에는 9%, 최대 21% 까지 교부금이 삭감된다. 개인책임법의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공격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생애복지수급 가능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한 것인데, 실제로는 주정부가 이 기간을 더 줄일 수 있다. 생애복지수급 가능 기간의 제한은 가난한 모자가정의 어머니로 하여금 강제로 취업하거나 혹은 그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남자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떠한 활동이 일로 간주되는지에 관한 지침은 '어떤 일이든 괜찮다'(any-job-will-do)이다. 예를 들면 무보수의 지역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노동활동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단지 일을 위한 일일 뿐 복지수급자의 수익력이나 잠재력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역사회 서비스 노동은 매우 단순한 일로서, 공원의 낙엽을 긁어모으는 것, 도시의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 학교 급식 센터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이 수급자들이 이미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일들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영어가 서툰 수급자들은 더욱 미래의 소득 보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한 일들을 맡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런 일들이 복지수급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무보수로 행해지기 때문에 노동을 하고 있는 빈곤계층의 소득을 증진시키기 위한 연방차원의 조치인 근로소득세액공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역사회 서비스 노동에 복지수급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복지수급자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족한 예산에 시달리는 주정부와 지방정부들이 단순노동을 무보수노동으로 대체하게 하여 노동시장을 잠식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자를 복지수급자로 직접 대체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나, 계약이 만료된 노동자들과 일부러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더 많은 수급자들을 노동에 참여하게 해야 하는 주정부의 의무조항과 함께, 값싼 혹은 무보수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유혹은 엄청난 노동의 착취와 수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볼티모어에서는 아홉 개의 공립학교들이 시간당 6달러를 받던 노동자들과 계약 갱신을 하지 않고 수급자들을 시간당 1.50달러에 고용하였다. 1997년 중반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천여 명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자리가 노동참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훈련생들로 채워졌다. 뉴욕 시에서도 수천 명의 노동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이전에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했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 }} 개인책임법의 노동의무 조항이 어떻게 경제적인 자립능력을 높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수급자들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조항과 노력도 없을뿐더러 수급자의 소득기회를 향상시킬 수 있는 서비스에 투자하지도 않는다. 이 법은 직업 교육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가족지원법(FSA)에서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원 약속 조항들을 철회하였다. 구체적으로 취업과 연관되지 않는 이상,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본적 언어교육을 제공해 주지 않고 직업훈련에 적절한 자금도 지원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동의무 조치를 시행하면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해내는 노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들은 복지를 수급하는 4백만의 성인을 수용할 수가 없다. 기존의 직업들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만큼의 임금을 제공하지 않는다. 교육/기술수준이 낮고 인종적으로 차별 받는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직업-예를 들면 서기, 소매업, 음식 서비스, 청소 등-에 종사하게 된다. 이러한 직업들은 대개 최저임금(시간당 5.15 달러) 이하의 임금을 지급한다. 만약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여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다 해도 가난한 여성들이 주로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제 노동은 그들의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기에 역부족이다. 더구나 취업으로 인한 비용-교통비, 의복비, 특히 탁아비-의 증가는 이들을 수급권자였을 때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2-3 '복지개혁 이후 이렇게 노동연계복지 하에서 이 제도에 순응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의무 불이행)하여 공공부조 수급을 탈피 또는 중단한 어머니와 그 자녀들(약 300만 가구, 900여만 명에 달한다.)이 처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자. 공공부조 수급이 중단된 사람 가운데 취업한 경우는 60~75%에 달한다. 그러나 산업별로 보면 취업자의 절반 가량이 서비스업에, 그리고 1/4 가량이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임금수준과 안정성이 높은 제조업 분야에는 불과 10% 정도만이 취업하고 있다. 직종별로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데, 약 12%가 판매직, 20%가 행정업무 보조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서비스 직종에는 약 40%가 취업하고 있다.{{) 미국의 전체 여성노동자중 서비스직종 종사자 비율은 20%이다. }} 이렇게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낮은 서비스 및 판매부문에 주로 고용됨으로써 공공부조 수급 중단자들은 취업 이후에도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취업 이후 고용지속기간이 평균 3~9개월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1년 내에 직업을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 취업자 중 전일제 노동자(주당 40시간 이상 노동)의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취업을 통해 공공부조 수급에서 벗어난 이들의 상당수가 다시 실업상태에 빠지거나 임시직, 시간제 등의 직종에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함으로써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있다. 고용안정성 뿐만 아니라 임금 또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취업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대략 7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미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 15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임금으로 주당 40시간 씩 1년 내내(50주) 일을 한다고 가정하면 14,000달러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데 이는 편모-아동 1인 가구의 빈곤선 12,207달러보다 조금 높지만 편모-아동 2인 가구의 빈곤선 14,269달러에는 미치지 못한다. 노동으로 소득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정부로부터 받는 이전소득의 감소분은 새로운 소득보다 매우 커서 절반 이상의 수급 중단자들은 공공부조 수급 당시보다 소득이 줄어들었다. 또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의 절반 가량이 주당 40시간 미만의 노동에 종사하고 1년 내내 노동하는 경우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로 1997년 공공부조 수급중단 1년 후의 이들의 평균 소득은 6,467달러이다. 노동활동에 참여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평균소득은 7,709달러에 불과하다. }} 공공부조 수급중단자가 노동활동만으로 빈곤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노동으로 통한 자활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복지개혁은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으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나아가며 미국은 스스로를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함으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제국의 중심부로서의 모범 역할을 해내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과거의 "수동적이고 비효율적인 복지제도를 개혁"하려는 미국의 탈복지정책은 빈곤층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실상 복지 자체의 종식을 가져왔으며, 빈곤층을 더욱 사회의 하층과 주변으로 밀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듯 하다. '노동의 종말', '고용없는 성장'으로 표현되는 '일의 고갈' 시대에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순이 그것을 반증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일을 통한 빈곤탈출'은 불가능하다. 아니, 애초부터 인민에 대한 국가 역할·책임의 최소화를 위해 만들어진 그럴듯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미국을 모범으로 삼으려 하는 한국이 이 '복지개혁'의 기본정신과 방향을 이미 모방하였거나 모방하려 하고 있다. 종속적 발전주의와 억압적 국가장치가 낳은 '복지와 권리의 부재'라는 상황과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개인노동윤리의 존재는 미국과 매우 유사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빈곤해결'이라는 한국 '복지개혁'의 전망을 점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PSSP
. 우정사업의 이해 1) 보편적 공공서비스 우정사업 우정사업은 전국 각 지역에 분포한 우체국, 집중국, 취급소에서 주로 우편물(통상우편물, 소포우편물)을 접수, 배달하는 기본 우편역무와 부가 우편서비스(등기취급, 우편물방문접수-택배, 우편주문판매-우체국쇼핑, 민원우편 등)제공 그리고 우체국 예금, 우편환, 우편대체 업무와 더불어 우체국보험 업무를 취급하는 공공성이 강한 업종에 속한다. 전통적인 보편적 서비스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기본적인 서비스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정사업은 보편적 서비스를 기본적인 목표로 삼고 꾸준히 국가기관으로서 우편과 금융사업 역무를 이행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정보통신의 발달과 민간기업의 사업확대 그리고 대외시장 개방, 금융시장의 대형화·겸업화 및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한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시장 진입 확산 등으로 사업환경이 변화되어 우정사업에 대한 경쟁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보편적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변화가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2) 우정사업 구조조정 변화기제 우정사업은 전통적으로 국민의 기본적 통신권의 보장과 서민 금융부조에 큰 기여를 해왔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부 또는 그 대리인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884년 우정총국을 개국, 우편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정부부처 형태로 사업운영을 정부가 독점해 왔으나 우편사업의 재정적자가 매년 심화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이 사실은 곧 정부기관의 독점적 경영체제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정부부처 형태로서의 우편사업은 공공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보편적인 우편서비스를 제공받아 왔던 국민들의 시선은 비교적 온정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운영체제개편 논의가 계속 제기되어 왔다. 1994년 1월 체신부 업무보고에서 ‘1997년 공사화방침’이 보고 되고, 1995년 1월에는 체신공사설립 추진위원회 및 동사무국이 구성되는 등 공사화가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공사화는 보류되고, 정부부처형 공기업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영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가 개편되었다. 그리고 1997년 IMF체제의 국제외환위기에 처한 우리의 경제난국의 상황에서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기업의 비효율은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각계의 체제개편 요구가 빗발쳤다. 또한 우정사업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우정사업의 경영이 과거의 공공성 위주에서 상업성 위주로 전환 할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우정사업은 정보통신수단의 발달과 대체통신수단의 급성장과 규제완화에 따른 파급효과로 우정사업의 독점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민간업체의 국제화·다각화·다양화 전략에 따른 우정상품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으로 우정서비스시장은 경쟁체제로 전환되고 있고, 우정사업의 이용패턴 및 고객의 요구도 날로 다양화 고도화됨으로써 우정서비스의 공공성은 상대적으로 감소되고 상업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공공성에 기반한 우정사업은 조직, 인사, 예산, 회계 등의 자율성 제약으로 정부독점으로서의 한계에 직면하여 이제 그 존재여부 마저 심각히 위협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Ⅱ. 우정사업 구조조정 과정 1) 제1. 2차 정부조직 개편의 인력감축 제1차 정부조직개편은 1997년말 불어닥친 IMF 구제금융 이후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 인력감축을 단행하였다. 경영혁신의 구조조정 1차 정부조직개편(1998. 2. 28)은 기능직정년 58세를 57세로 단축하고 61세까지 가능하던 정년연장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기능직 정년이 사실상 4년이나 단축했다. 정보통신부는 그 동안 계속 누적적자를 보여 온 우정사업에 2000년까지 98년 정원기준 체신인력을 4,048명 감축토록 했다. 그런데, 제1차 인력감축이 진행되고 있던 중 1999년 제2차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하여, 이미 진행되어 오던 체신부문의 인력감축계획을 변경하여 2002년까지 98년 정원의 25%인 8,500명을 감축토록 하는 내용의 인력감축 규모를 확대하였다. 이것은 ‘안진회계법인과 아더앤더슨코리아’의 <정보통신부 경영진단보고서>를 토대로 한 ‘경영합리화계획’을 1999년 5월 확정하면서다. 2) 인력감축에 따른 파장 이처럼 1.2차 정부조직 개편에 의한 우정부문 인력감축 방안에 대해 체신노동조합은 강력하게 반발하게 된다. 1999년 5월 30일 체신노동자 2만여명이 여의도에서 인력감축저지 및 생존권 사수 궐기대회”를 개최하며 투쟁을 결의하기도 하였지만, 2000년말까지는 대체로 위와 같은 감축방안에 의거하여 인력감축이 진행되었다. 체신부문의 인력감축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특위에서 다루어지게 되고, 2000년 8월 4일 노사정위 공공부문 구조조정특위에서 ‘체신구조조정 및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하여 ‘체신부문 인력감축계획’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고, 2000년 8월 31일 노사정위 본회의에서 "2000년도 감축분까지는 당초 계획대로 감축하고, 2001년 이후 감축분 3,756명에 대하여는 정통부에서 용역을 의뢰하여 2001년 4월말까지 정밀 직무분석을 실시한 후 감축규모 및 시기를 결정한다"고 합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력감축으로 ’98~2001까지 체신노동자 5,742명이 감축되어<표3> 남아 있는 집배원들은 하루 근무시간 16시간, 한달 초과근로시간이 150시간에 이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살인적인 장시간·중노동으로 혹사를 당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피로가 누적되어 사망 및 중경상자가 98년 이 후 폭증했으며<표4>, 2001년 한해 중·경상자만 508명에 도달하였다. <표3> 우편물 증가대비 인력감축 현황 우편우편물증가대비 인력감축 현황물증가대비 인력감축 현황 <표4> 조합원 사망 및 중.경상자 연도별 추이 (2003년 전국체신노동조합 통계) 더구나 집배원은 대국민서비스 사랑의 전령사로서 우체국의 최일선에서 정상적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려면 6개월 이상의 숙련기간이 필요하나 이러한 기능인력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유연화 정책’에 따라 ‘98년부터 4년 동안 단기간에 5,742명을 감축하고 그 빈자리에 이직율이 46.2%인 비정규직 3,800여명을 대체 투입했으니 우편물 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 질 수가 없었다. Ⅲ. 비정규직 도입 등 민간화 촉진 1) 우정사업 운영의 한계와 문제점 1997년 1월 1일자로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 발효와 함께 정보통신부는 현실성 있는 우정사업 경영개혁 방안으로, 조직 및 인력의 추가소요 없이 정보통신부 내에 「우정사업본부」를 설치하기로 한다. 그리고 「우정사업본부」는 책임경영체제 확립 및 인력의 대폭 감축을 통한 건전경영기반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2000년 7월 1일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특례법상” 우정사업총괄기관으로 자율성. 독립성을 확대한다고는 하지만 조직. 인사. 예산 및 자산운영에 있어 정부조직법, 국가공무원법, 예산회계법, 기업예산회계법 및 국유재산법 등을 적용 받고 있어 사실상 “ 공무원 인력증원 및 예산확보”에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불완전하고 어정쩡한 우정사업본부를 총괄하는 본부장을 민간인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우정사업에게 책임운영기관의 경영합리화를 부추기며 흑자경영을 재촉하게 된다. 이미 1998년부터 우정사업은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현장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본부의 출범은 한마디로 우정사업의 민간화 촉진그 자체였다. 2) 체신노조 대정부 협상과 파격 합의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구조조정의 인력감축 이후 날로 급증하는 우편물량과 신도시개발 등으로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해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국체신노동조합의 대정부 “조합 5대요구”를 위한 긴급 체신노사협의회가 2002년 8월 24일 열렸다. 이날 노사간의 협정에서는 우체국 부족인력충원에 대해 ‘집배원의 내부업무 지원을 위한 대무사역(파트요원)비를 확보 배정’하는 것과 도시지역 ‘소포위탁배달 추진’ 그리고 ‘대단위 아파트지역 통상우편물 배달위탁 시범 추진’을 협정하였다. 또한, 상시위탁집배원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전체 집배원의 10% 이내로 유지 될 수 있도록 3년 이내 정규직화 추진’을 합의 했다. 이번 노사간 협정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집배원의 과중한 업무부하 경감을 위하여 인력증원, 상시위탁집배원 정규직화 및 집배업무 경감대책을 노사가 함께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의 하였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비정규직 및 민간위탁을 확대하는데 노조가 묵인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파격이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들의 업무를 경감하기 위하여 상시집배인력 증원, 파트타이머 지원, 소포위탁배달 등을 추진하였다. 2002년 8월 26일에 상시위탁집배원이 76명 증원 배정되었는데, 이 시기에 파트타이머는 1,827명, 소포위탁배달 인원은 600명, 그리고 통상위탁우편물 위탁 인원은 305명이 증원 배정되었으며, 2002년 2월부터 2003년 2월 사이에 상시집배인원은 1,256명이 증원되었다.(전국체신노동조합 2002사업년도 사업보고, p. 360). 3) 비정규고용 및 민간위탁 확대와 문제점 우정사업의 구조조정으로 기능직 공무원 인력감축의 빈자리는 상시위탁집배원, 일용직, 파트타임(시간제), 도급(위탁)근로자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증가는 어떻게 보면 우정부문의 정규직 공무원 정원이 감축되는 상황에서 우편물량의 증가와 택배사업과 같은 부가사업 실시로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체국 현장의 집배, 집중국 및 발착, 창구영업, 운송, 관리지원 등에서 인건비 절약에 의한 경영평가 상위등급 확보를 위해 공공연히 비정규직 및 위탁을 서슴없이 계약하고 해약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 나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의 고용은 우정업무의 효율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집배분야에 있어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복지혜택과 보수차이가 존재함에 따라서 직원 간 갈등이 발생하고 상시위탁집배원 이직률이 27.8%로 높게 나타나 집배업무의 안정적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임금 및 법정부담금을 포함하면 비정규직인 상시위탁집배원 1인당 노무비용은 정규직의 95% 수준에 이르고, 1인당 업무처리량은 90% 수준에 불과하여 오히려 비용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우정사업본부 자신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상시위탁집배원 정규직화’를 추진하여 2002년 6월 4일에는 집배원 부족인력 2,973명의 증원을 행자부에 요청하고, 또 2002년 8월에는 체신노동조합과의 협의를 통해서 상시위탁집배원의 비율을 전체 집배원의 10%(1,515명) 이내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정규직화하기로 협의한 후, 총 700명을 정규직화하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863명의 상시위탁집배원의 정규직화를 추진할 계획임을 밝히고, 2003과 2004년2년에 걸처 1726명을 정규직화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상시위탁집배원에 대해서는 정규직화를 추진할 방침을 밝히면서도 일용직 및 시간제 노동자에 대해서는 ‘물량증감에 대비 인력의 탄력적 운영을 위해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되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의거, 전 부처가 공통으로 지급하고 있으므로 처우개선을 위해 범정부차원에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하여 우정사업본부 차원에서 일용직 및 시간제 근무자의 처우개선을 실현하기 곤란함을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정규직 집배원과 상시위탁집배원의 보수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이나, 상시위탁집배원과 일용직, 파트타이머 등 다른 비조합원 신분의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에 새로운 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우편물량이 증가하여 우정사업 기회요인이던 우편사업이 2002년 말을 기점으로 통상우편물량이 감소하고 금융의 예대마진율이 떨어지면서 위협요인으로 돌변하여 오히려 비정규직의 감소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표5.6.7.8>에서 알 수 있다. Ⅳ. 계속되는 구조조정 위협 1. 우정사업 주변환경과 동향 정부는 우정사업을 정부조직이 운영함으로써 혁신적인 변화 없이 현 상태를 지속하다보면 인건비 상승에 의한 적자로 우정사업의 투자 노력이 어려워지고, 민간업체와 경쟁으로 우정시장이 교란되어 경쟁이 심화돼 우정시장이 잠식될 것을 우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우정사업이 처해있는 위협요인을 살펴보면 경영체계의 심화(민간 및 해외업체간, 금융기관 간 독점범위 축소), 고객요구의 고도화·다양화, 대체통신의 발달로 인한 전통적 통신수단 이용의 감퇴, 농어촌 경제력감퇴로 인한 도·농간의 사업여건 격차 심화, 우정사업본부의 금융·택배사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 우정분야 직원, 특히 집배원 노령화, 선진국과 비교해서 경쟁력 약화, 우정조직의 비합리화(책임운영기관임에도 독립. 자율권 부족)등이 있다. 한국행정연구원(‘01년) <우정사업본부 정밀직무분석>, p.23~4 이와 같은 위협요인 하에서 우정사업의 경영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실천적 장치를 설계하여 ‘위협요인을 최적화’하는 획기적인 개선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는 우정사업의 구조조정 내지 조직변경은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본다. 한편, 외국의 경우 일본우정을 비롯한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이 공사화를 추진하고 민영화 수순을 밟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 영향력이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2004년 10월 21일 국회 국정국감에서 진대제 장관은 유승희 국회의원의 민영화 방안에 대한 질의에서 “우정사업의 공사화 내지 민영화는 단기적으로 추진할 사항이 아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도 우정사업의 조직변화를 임기내에는 하지 않겠다는 점을 언론에 밝힌 적도 있다. 하지만 우정사업을 둘러싸고 있는 사업여건들은 조직 내에서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지탱할 수 없는 어려운 행태로 바꿔가고 있음을 현장 조합원들은 감지하고 있다. 이렇듯 우정사업의 현장 어려움은 곧 우정사업 자체위기이며 제2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2) 긴축적 예산 및 인력운영 우정사업본부는 ‘03년 경영실적과 향후전망의 경영실적 분석을 통해 그 경영부진의 원인이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경직적인 인력운용”과 “고비용 저수익” 사업형태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평가하고 조직. 인력운용의 효율성 및 탄력성 부족을 손꼽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동반자적 노사관계 정립을위한 노사간담회의 자료> 2004. 2월, p.5~6 이에 따라 세입축소, 업무량 감소에 상응하는 인력의 재배치, 시간외 수당.보상금 조정등 수익과 조직. 인력운용을 연계시키겠다는 의도도 내 비췄다. 이처럼 우정사업 경영이 2003년도부터 흑자구도에 비상이 걸리자 우정사업본부는 수익사업을 위한 투자는 물론 각종 수익사업을 펼칠 수 있는 각종 예산을 긴축적으로 운용하며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인력을 활용 및 감축, <표.7,8>으로 경영목표달성에 열을 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장 조합원의 초과근무 수당과 연가활용을 강제하는 등 조합원의 근무여건을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인력감축의 구조조정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정사업본부’가 인건비를 삭감해 보려는 궁여지책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력감축 대신 인건비를 삭감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업장 우체국에서는 우정부문의 구조조정이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이후 다시 공사화 혹은 민영화 논의가 다시 대두될 전망이며, 이러한 논의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방법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도구”가 활용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활용과 관련한 고용형태의 재편도 계속 진행될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우정부문 노사관계에 대해서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표7> 최근 현업관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원현황 출처: 정보통신부(우정사업본부) ERP시스템, 우정사업 인원현황 <표8> 창구, 발착, 집배분야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원현황 출처: 정보통신부(우정사업본부) ERP시스템, 우정사업 인원현황 Ⅴ. 보편적 우정서비스는 지속되어야 한다.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하면서 우체국은 ‘국가의 공공기관’으로서 도시서민은 물론 농어촌의 산간벽지와 섬 주민들에게 우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공공기관으로서 사회복지적 우정서비스는 고스란히 우정사업의 적자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외딴 산골이나 멀리 떨어진 섬마을에 편지 한두통을 가지고 여러시간을 소비하여 우편물을 배달해 주는 수고는 발신자와 수신자 입장에서는 고맙고 충실한 서비스가 되겠지만, 우체국 경영적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적자를 내는 부실거래 서비스가 틀림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정사업 정책을 입안하고 관리하는 윗사람들은 우정사업 적자가 지나친 인력투입으로 인한 과다한 인건비와 조직화 되지 않은 직원들의 마케이팅 능력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조직변화를 장려하는 정책자들은 우정사업이 공익성과 기업성의 조화를 모색하는 데로 옮겨지게 됨에 따라 그동안 공익성 위주의 우정사업 운영과정에서 야기되었던 만성적 재정적자 누적과 새로운 우편서비스 개발의 제약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의 국가재정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기관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당위적인 필요성 인식과 규범적인 계획 수립만으로 구조조정 실행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우정사업처럼 민간기업이 수행할 수 없는 공공의 사회복지적 서비스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부터 국민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우정사업에 있어 1997년 이후 단행된 구조조정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철회 투쟁은 우정관료는 물론 국민들이 이러한 보편적 서비스를 통해 도시서민과 영세민 및 농어촌 산간·도서벽지의 주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최저생활 서비스를 정부가 부담하고 보장해야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에서 동조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국내외 민영화 내지 공사화를 위한 구조조정의 사례를 살펴보면 관료적 이해관계나 노조의 반대 등으로 구조조정 정책들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계획 집행이 지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혁의 실패는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정책 설계와 방법 선택의 실패에서 연유하기도 했다. 따라서 체신노동자들은 우리나라의 우정사업의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우정사업만큼은 보편적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사업장을 견고히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체신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단결하여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투쟁하여 공공기관으로 우정사업을 지키고 더불어 이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하고 민주적인 체신노동조합을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