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투쟁단과 지금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2003년 11월 15일 차가운 명동 바닥에서 2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사활을 걸고 노숙 투쟁에 들어간 지 330일이 넘어 이제 1년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외치며 노동비자를 쟁취하자고 했던 농성 투쟁은 점점 사회적인 이슈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농성 초기 정부의 입장과 첨예하게 대립하며 일부 대정부 협상 자리까지 따낼 수 있었던 때와는 달리 노무현 정부는 올해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실시를 앞두고 7월 말부터 다시 합동 단속을 전면적으로 시작하더니 현재까지도 단호한 태도로 이주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합동 단속과 고용주 처벌 원칙, 경기침체 등이 겹쳐 사업장에서도 점차 일자리를 잃어가며 항상 불안한 마음을 안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다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그나마 E-9 비자 등으로 2003년에 일부 합법화되었던 이주노동자들 또한 온갖 부당노동행위에도 어떤 법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자리에서 쫓겨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합동 단속 등으로 작년부터 현재까지 20여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반인권적인 단속을 피하려다 크게 다치고 인권침해를 받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자진출국을 생각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한국에 있는 동안 더 열심히 장시간 노동하면서 출국준비를 하는 이주동지들도 늘어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카에다가 한국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을 잠재적 테러 온상지로 매도하기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명동 이주 농성 투쟁단이나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은 5월 단속이 무디어지기 시작한 이후 합동 단속에 대한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또한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단속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명동농성 투쟁단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1년 가까이 수입이 없이 투쟁을 전개해오면서 앞으로의 장기적 투쟁에 대해 다분히 회의적이기도 한 상황에 놓여있어 수적으로 이주노동자 운동의 주체들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현재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의 상황 농성 200일이 되어가던 시점부터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은 더 이상 농성 투쟁이나 선도적 투쟁만으로는 우리의 목표를 쟁취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이주노동자 대중의 조직화와 노동 조합으로서의 조직적 틀거리를 통한 보다 장기적이고 강력한 투쟁의 전열을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왔다. 농성 투쟁단만의 고립된 투쟁을 탈피하기 위해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농성 투쟁단은 경기수도권 전역에 있는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 단체들과의 간담회와 연대 고민을 함께 해왔으며 주요하게는 이주노동자 대중들을 만나 선전하며 집회나 모임 등으로 이들을 조직해 왔다. 1, 2차에 걸친 수도권 순회 조직화 투쟁과 지역에서의 집회, 교육 등등으로 수도권 지역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모일 것을 결의하고 있다. 전국적인 연대를 위해 모든 이주 관련 단위들과 이주노동자 대중 조직에게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한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단 건설을 제안하며 이주노동자 주체의 전국적 틀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를 설명해왔다. 또한 농성 투쟁단을 그 조직을 위한 전국 순회 투쟁까지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하반기 노동허가제 입법화를 시작으로 대중 투쟁과 지역 현장에서의 투쟁을 통해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을 건설하자는 계획을 내고 있고, 민주노동당과 함께 11월 중 노동허가제 입법안 상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과는 달리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이주노동자 사안을 실질적으로는 다른 사안에 비해 부차화하며 이주노동조합 전망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나 전국 이주노동자 인권연대 소속(이하 이주인권연대)의 경우 이주노동자 운동에서의 장기적인 역할을 시민운동적 영역으로의 전문화로 고민하고 있기에 전국이주노동자 투쟁단에 대해 동의는 하되 참여하기보다는 지원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역할을 자임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외노협 소속 단위들이나 이주인권연대의 이주노동자 상담소들의 경우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에 대해 민주노총이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반기면서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투쟁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책임져서 노동조합이 투쟁을 자임하기를 바라고 있다. 애초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의 경우에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이주지원센터와 이주상담소 중심의 이주노동자 조직들이 대다수였기에 외노협이나 이주인권연대가 소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전국투쟁단의 목표와 의미를 많이 삭감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향후 이주노동자운동의 향후 사업과 투쟁 방향 농성 투쟁단을 중심으로 한 이주 운동 진영은 모두 향후 투쟁과 사업의 방향으로 노동허가제 입법화 투쟁과 서울 수도권 지역 조직화 및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의 건설과 그 경로로서의 사업들을 축으로 잡고 다음과 같은 계획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입법화 투쟁으로서의 전국적인 노동허가제 도입 촉구를 위한 대시민. 대노동자, 대이주노동자 서명운동 -지역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입법 설명회 또는 토론회 -대 노동부 동시다발 규탄 투쟁 -합동 단속에 대한 대응으로서 단속 피해백서 발간과 국정감사 기간 활용 -이주노동자 주체 교육을 위한 전국 이주노동자 활동가 수련회 -각 지역에서의 연대단위 구축 및 현장에서의 현장사안 투쟁을 적극 조직화 -서울수도권 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 준비 -전국노동조합을 전망으로 하는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단 건설 준비 한시적인 투쟁을 위한 고민이 아닌 상시적이고 안정적인 조직적 틀거리를 구축하는 계획을 잡고 있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노동허가제 입법화 투쟁의 시작과 함께 보다 많은 이주노동자 주체의 발굴 및 단련 등을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다. 남겨진 과제 먼저 현재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단속과 해고를 이대로 방치해 두고서는 장기적인 전망 확보가 불투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최소한의 대응조차 현재로서는 계획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직접 대응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진퇴양난에 놓인 것이 현재 이주 노동자 운동 진영의 고민이다. 그 다음으로는 수도권 지역과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에 대해 실질적인 조건 준비와 역량 확보가 절실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40여 만 이주노동자들이 나누어져 지역별 집중 공단지역에 밀집해 있고 수도권 전지역과 각 지방 대도시에 포진되어 있음을 볼 때 이주노동자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주로 인한 차별과 탄압을 겪는 이유로 강력한 동질을 갖고 있어 하나로 조직되기 쉬운 특성도 있으나 그와 달리 국적이 달라 이질성 또한 있어 통합이 어렵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포진해 있는 가운데 각 지역에서의 연대와 활동가 주체 발굴을 위해 또한 각 지역에서의 지역 활동/현장 투쟁 등의 조직화를 위해서도 사실 수많은 한국인 활동가들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들이 턱없이 부족해서 수도권 노동조합이나 전국 노동조합으로 가기 위한 길은 아주 험난하고 지난한 길이 될 수 도 있다. 정부의 현재 단기 로테이션 정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현장으로 옮겨가면서 운동의 장기적인 경험 축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도 사실 전면 합법화 투쟁과 노동허가제 쟁취 투쟁 깃발을 계속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이주노동자 운동이 안정적인 노동자 교육과 선진노동자 교육에 대한 준비나 체계화를 못해왔으나 향후 이주조직의 강화와 발전을 위해 이에 대한 연구와 안정적인 체계 구축의 과제도 남게 된다. 진보 진영 일부와 학생 운동 진영 일부를 제외하고는 연대 활동이나 연대 투쟁의 파트너쉽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한계점으로 남고 있다. 지역별 연대와 지역별 노동조합과의 튼튼한 연대 관계 구축이 내실 있는 전국 조직 건설의 선결 과제일 것이다. 삶의 전망이 불투명해지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이때 조직적인 결집과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상황이다. 농성 투쟁의 이후를 고민하며 더욱 강한 단결력으로 결집할 수 있을 때, 이 정세를 돌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 이주노동자 노동조합과 전국이주투쟁단의 건설을 매개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안건지에 나왔던 한국 노동자와 노동운동 진영에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노동자 조직 대 조직으로서 연대해 갈 수 있는 그런 날을 위해 빠짐 없는 준비와 역량 집중이 필요하다. PSSP
상수도 민영화는 철회되어야 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서형택 물!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자연재다. 물자원의 효율적인 이용과 보전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에 해당하며,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인구팽창,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물소비의 증가와 수질악화 등의 현상 및 장래에 예견되는 물 부족상태를 상태를 개선하는 노력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08년 뚝도 정수장이 수돗물을 공급한 이래 현재 전 국민의 87.8%(2001년 말)가 수돗물을 공급받을 만큼 양적 성장을 이뤘으나, 원수수질 악화, 기술발전 미흡, 투자부족, 중금속 검출, 바이러스 오염 등 수돗물에 대한 질적 서비스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 수도사업이 167개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적 문제점, 공공부문운영의 비효율적인 요소, 공공운영에 대한 산업정책의 부재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육성이 부족하고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인한 서비스 시장 개방 논의, 다국적 물기업의 국내 진출 등이 맞물리면서 종합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상수도를 민영화(공사화)하는 방안이 정부에서 제기되었고 현재 연구용역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추진단계로 이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물시장은 연간 500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21세기에는 물산업이 석유산업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 그리고 최근 물시장의 특징인 개방화·민영화 추세, 물시장이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수도사업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현실에 있다. 이에 발맞추어 정부가 주장하는 우리나라 수도사업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는 취약한 산업구조 즉 수도사업 규모의 영세성, 투자 및 운영의 비효율성, 지역별 서비스 불균형문제이고, 둘째로 경영주체의 한계로 인한 책임경영체제 미흡, 전문인력 양성곤란, 경영수지 악화이며, 셋째는 기술경쟁력 부족으로 지방상수도의 낮은 유수율, 정수처리 공정기술 부족, 플랜트 운영기술 부족, 수질검사 능력부족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영화(공사화)가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고 있다. 우선 상수도의 민영화(공사화)에 대한 문제점 지적에 앞서 정부가 주장하는 수도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이러한 정부의 주장이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과 외국의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천박한 사대주의 사상의 발로라는 사실을 밝힐 것이다. 지방상수도 사업의 효율적인 공사화 추진 전략연구 보고서(한국지방공기업학회, 2004. 5)의 연구 용역 중간보고를 요약하면, 7개 특·광역시 평가결과는 경제적 효율성면에서 경영수지, 경영지표, 생산지표, 인력현황 등에서 평가결과 우수, 경쟁력도입 물산업육성 우수, 소비자지향성 우수, 수용가능성은 지방자치단체와 전문가만 우수로 평가하고 지역주민 보통, 공무원노조 낮음, 시민단체 보통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① 경영성과 분석에서 당기순이익이 29,816백만원(광역)으로 나타나 경영수지 악화라는 정부주장이 사실 무근임이 드러났으며 , 다만 30만 이하 시군의 경우 318백만원으로 이는 규모의 영세성보다는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결과로 공공재의 특성을 반영하는 당연한 이치이다. ② 요금현실화 및 주요경영지표 분석에서는 요금 현실화율이 광역기준 92.6%, 영업수지비율 118.3%, 인건비/급수수익은 19.98%, 직원 1인당 영업수익은 158천원으로 분석되었다. 30만 이하의 시군에서도 비슷한 지표를 나타내고 있는 사실을 보면, 정부가 주장하는 투자의 비효율성, 운영의 비효율성, 직원의 낮은 전문화 주장 역시 사실왜곡임이 드러났다. ③ 상수도 지표 분석에서는 전국 평균 유수율 80%, 시설가동율 72.3%로 정부가 주장하는 낮은 유수율과 정수처리 공정기술 부족, 수질검사 능력부족, 플랜트 운영기술 부족 등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주장한 문제들은 대부분 인과관계를 왜곡한 것이다. 낮은 유수율은 누수 발생원인이 주로 관노후(73%)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이는 공공재의 특성상 정부의 투자가 필수적인 것 뿐이며 정수처리 공정기술 부족은 기술부족이 아니라 공업화의 현상으로 인한 새로운 오염물질의 검출과 이를 정수할 처리시설의 미비인 것이다. 수질검사 능력부족 역시 수질조사 항목을 미국수준인 85개로 확대하면 될 것이며 경영능력 역시 지방자치 단체에서 경영수익 사업으로 먹는 물을 판매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점과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실시하던 수질검사를 지자체가 처리하는 기관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없다. 또 플랜트 운영기술 부족은 정작 플랜트의 자동화가 문제임을 정부가 직시하고 사실왜곡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정부의 상수도 민영화(공사화) 추진 계획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본질이 드러났다. 거기에 더하여 상수도가 민영화(공사화)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문제점 위주로 살펴보자. 첫째, 상수도 부문에 대한 공공의 통제성 및 안전성이 상실될 우려가 있으며, 국민의 정서적 반감이 커질 수 있다. 즉 물이라는 공공재까지 외국기업에서 장악하여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국민적 정서를 자극하고 예속 당하는 수모를 겪을 우려가 크다. 둘째, 민영화(공사화)에 따른 채산성 위주의 경영으로 영세 민중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지나친 요금 인상 등으로 국민경제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불투명한 사업자의 선정, 원칙 없는 부대사업의 허용 등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며 외국의 초국적 기업이 선정될 경우 공공성의 파괴가 심화 되여 국민의 건강을 담보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넷째, 민영화가 효율적인 경영을 내세우지만 결국 경영개선 방안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인력감축등을 초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공공부문에 관리개념으로 도입되게 되어서 정부효율 제고와 개혁을 를 목표로 하고 그 수단으로 공무원노동자를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하여 생산성 향상의 틀로 몰아가면서 정작 생산성 향상 방안은 노동총비용을 감소시키는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즉 이 정책은 임금의 하락이나 인력의 감축으로 나타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상수도사업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노동자의 노동생존권을 위협하는 민영화(공사화)정책에 결사 반대하며, 노무현 정부가 과거 정부에서 추진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광역화 등을 통해 실제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공공성이 확대되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충고한다.
[%=박스1%] 1. 현재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등을 중요시하며 2004년 사업계획에서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하게 내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새로운 사회적 교섭 기구 참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현재 민주노총에서 주장하는 사회적 교섭구조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총연합단체로서 민주노총은 자신의 정책제도 개선과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대정부, 대사용자단체를 상대로 하는 사회적 교섭구조가 필요하다. - 따라서 민주노총은 ‘중층적, 총체적 교섭 구조’를 쟁취하기 위해서 산별교섭, 대정부 교섭과 함께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올바르게 개편하고 새로운 노사정 교섭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민주노총은 요구를 천명하고 관철시키는 경로로서의 사회적 교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교섭, 사회적 대화의 논의는 주로 유럽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요.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반적으로 정책협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공공정책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을 대표하는 최상위 고용자 연맹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최상위 노조 연맹 사이의 공개적 협상을 통해 공식적, 비공식적 협약으로 결정하는 노사정 공동결정의 형태를 일컫습니다. 국가는 정책을 작동시키기 위해 다른 경제 행위자들의 협력과 동의를 필요로 하게 되고 정부는 노조와 기업이 협력하도록 설득하려 하고 이러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에게 정책결정의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이러한 내용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했던 조건은 자본주의 호황기의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강력한 노조(높은 가입률)의 존재와 함께 노조의 지지를 받는 사민주의 정당의 존재가 정책협의를 더욱 활성화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변화의 국면, 그리고 만연한 경제위기와 불안한 요소(산업자본, 노동)가 혼재해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도입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가집니다. 애초에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추구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 불안정노동이라는 현실에 직면해있는 대다수 노동자들(특히 비정규직)의 요구를 오히려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사회적 대화는 이러한 정책결정의 일주체로서 노동자의 위치규정을 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조직된 노동자들의 요구를 노사정간의 합의의 틀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2. 예전부터 정권은 노사협조주의, 신노사관계,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것이 현재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기구 추진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90년대 초반부터 구조조정은 한국자본주의의 화두였습니다. 당시는 신발 섬유 등 쇠퇴 산업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자본과 인력을 배분하려고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무리한 중화학 공업 투자 등으로 과잉축적이 더 심화하였고 이윤율은 더욱 하락하였습니다. IMF 위기가 발생한 이후 구조조정은 더욱 격렬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과잉자본과 과잉인력의 처리,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을 심화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국가와 자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해고의 경직성이 한국경제를 발목잡고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공격, 폭동을 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 조직화된 노동자들 및 그 지도자들의 포섭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가와 자본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입니다. 그래서 신 노사관계,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등이 노리는 것은 노동의 신축화, 노조 무력화이지요. 이를 통해서만 구조조정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이런 시도는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고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확산되어 있는 불안정노동, 조직률 감소, 전투적인 노조운동의 실리주의 보신주의로의 경도 등이 그 증거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국가와 자본은 이런 것들을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총의 일부 세력도 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상대적 진보성에 기대면서 불안정노동 문제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세계화 과정 중에 파생된 다양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사회적 교섭기구에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면 나오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은 몇 차례의 사회적 합의주의 및 타협체제 구축(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도 이것의 일종) 시도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이 내놓는 안이 언제나 우리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은 거론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구조적 경제위기 또는 이를 극복하겠다고 나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세계화로의 편입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묵인하는 경향을 띕니다. 국가와 자본은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사회적 교섭기구를 이야기하면서 불안정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제고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이 불안정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시키겠다는 약속은 번번이 사기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이제 신 노사관계 구축, 사회 통합적 구조조정, 사회적 교섭기구 등에 더 이상 솔깃해하지 맙시다. 3. 민주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위한 논의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의 추진’을 주요 사업 계획으로 설정하고 올해 초부터 논의를 진행해왔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2004년 3월 3일 1차 중앙위, 4월 1일 3차 중앙집행위에서 노사정 교섭기구 추진을 위한 내부 토론 지침을 확정하고, 5월말 토론 지침을 각 연맹과 지역본부로 보내 7월말까지 조직토론을 끝내고 8월경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계획 속에서 지난 5월 31일 청와대에서의 노사정 토론회와 6월 4일과 7월 5일 2차례의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 회의는 8월 6일 민주노총 주관으로 개최하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18일 정부가 엘지정유를 직권중재에 회부한데 이어, 20일 엘지정유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서울·인천지하철과 도시철도를 직권중재에 회부하는 일련의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노사정 대화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은 "탄압을 계속하면 한국의 노사정관계는 어떠한 발전적 논의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고, 7월 27일 상임집행위 논의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3차 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 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에 대한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교섭안을 공식적으로 확정하기 위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 25일 열린 9차 중앙집행위에서 "올바른 사회적 교섭기구를 만들어 민주노총의 주요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교섭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사회적 교섭 대책안'을 심의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노동탄압에 항의해 그 동안 유보해왔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다시 가동해 합의를 추진한 뒤 9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안건은 격론 끝에 8월 31일 2차 중앙위로 넘겨지고, 다수 중앙위원들의 반대로 내년 1월 정기대의원대회로 안건상정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총연맹은 이후 중앙집행위에서 사회적 교섭과 관련한 일정과 계획 등을 논의할 방침이며, 노사정대표자회의도 당분간 열리긴 어려울 듯합니다. 4. 사회적 교섭기구 혹은 노사정위 참가문제를 전략적, 혹은 전술적 판단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며, 이것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전략과 전술은 그 격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전략이란 운동의 기본적 방향과 목표, 혹은 그 실현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술은 이를테면 그 하위격으로 기존의 전략 하에 해당 시기 정세나 주체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구체적 투쟁의 방향이나 그 방법 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기구, 혹은 노사정위 참가문제에 대한 전략적, 전술적 판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노사정위 참가의 문제를 전략적 차원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교섭전략 쪽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교섭기구의 문제를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전술적으로 판단하자는 말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정부, 기업과 협상을 해야 할 시기”라며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가했던 일들이 대부분 이런 전술적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전술적 판단에 있어서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술적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노무현 정권은 참여민주주의 등을 주장하며 노동조합을 대화 혹은 교섭의 파트너로 보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만, 이는 궤도연대 파업이나 그 이전의 각종 투쟁의 경험을 통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둘째, 전술적 판단의 외피를 쓴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민주노총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우리 노동운동 내에는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 문제를 전략적 차원에서 판단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노동운동의 커다란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에 대한 논쟁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방향전환이 어떤 좋지 않은 후과를 낳을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한국 노동운동의 커다란 퇴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5. 노사정위,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 문제에 대해 ‘실익이 있을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전술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떤 실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회적 교섭기구에 전술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득이 된다고 합니다. ‘투쟁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교섭과 투쟁을 결합해나가는 게 유리하다’, ‘고립된 투쟁에 집착하지 말고 교섭을 통해 모색해야 한다’, ‘제도개선을 위한 협상의 유일한 장이다’ 등의 말을 합니다. 일단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가하고 교섭을 하다가 안되겠다고 판단되면 그때 틀을 깨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실익’, ‘참가’의 관점은 그야말로 (앞 질문들에서 말한)노사협조주의와 실리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섭기구의 참가문제는 단순한 ‘실익’의 크기 문제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그들의 주장대로 실익이 논의된다 하더라도, 복잡한 방정식으로나 계산될 것이며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교환되는 이익의 내용이 다르므로 이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참여론자들은 교섭기구 참여가 노동법 개정, 사회개혁 등 정책 및 제도개선의 실현을 위한 정책참가의 일환이라고 말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생산적 복지와 간헐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서 노동자운동을 관리하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보완물 역할을 할 뿐입니다. 때로는 ‘조합원들이 더 원하고 있다’는 근거로 교섭기구 참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이 노동자 내부를 분할해낸 결과로서, “저들은 나와 ‘다른’ 노동자”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나아가, 이 선을 따라 분할된 노동자집단 간의 ‘이기주의적’ 행위를 조장했던 영향입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나의 노동조건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다른’ 노동자집단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한 노동자내부의 위계화, 분절화가 지속되는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특정노동자들의 이익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2001년도 노사정위의 ‘복수노조 5년 유예와 노조전임자 임금연장의 합의’는 결국 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를 보장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제약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는 노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은 노조운동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총연맹 몇몇의 대표자가 참가하는 노사정체제는 조합원들을 구경꾼으로 만들고, 대표자들에게는 관료주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교섭기구의 참가 문제는 ‘참가하는 만큼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어도 무방한’ 문제도 아니란 것이 분명합니다. 6.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하며 국민통합,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강조해왔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노사정위를 추진하는 것도 이와 연결되어 있을 텐데 이것이 갖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노무현정권이 내세운 ‘참여민주주의’란 흔히 ‘제3의길’이라고 불리는 유럽식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변종이며, 그 양 축은 ‘참여-분권’과 ‘국민통합(사회적 합의주의)’입니다. 참여민주주의의 핵심키워드는 참여, 분권화, 국민통합, 빈곤개선과 여성의 통합입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 모델은 그 진원지인 유럽에서조차 말만 번지르르할 뿐 일관성과 실내용이 없고 이렇다하게 실현된 것도 찾기 힘듭니다. 다만, 나름대로 일관되고 독특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살인적인 구조조정의 실행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능력입니다. 이른바 ‘온정주의적 구조조정’과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은 국정 12대과제의 하나였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상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핵심으로 노사정위원회의 기능 강화를 통하여 사회적 합의체로 기능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유연화정책의 정당성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정권에 협조하는 세력을 포섭하고, 그와 반대로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손배가압류 및 구속과 탄압을 일삼아 왔습니다. 여기서 본질이 드러납니다. 즉, 참여민주주의란 극히 제한된 영역에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그를 명분으로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노동자민중의 의지와는 반대로 추진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난 2003년, 출범 100일 만에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허구성을 잘 보아왔습니다. 노동법 개악으로 노동유연화를 촉진하고, 포섭과 배제를 통해 노동자대중운동을 관리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의 노사정위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바로 관리된 사회적 합의주의가 양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7. 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정권이라 하는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이 현재의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과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입니까? 포퓰리즘이란 흔히 ‘민중주의’로 번역되는 정치용어입니다. 주로 한 나라의 지배체제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개념으로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지배체제 유지 및 발전의 기반으로 삼는 국가 혹은 정부를 지칭하죠.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포퓰리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적 인기와 지지에 영합’하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성은 지배체제가 추구하는 사회의 발전 방향과 대중적 인기와 지지의 방향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배계급과 대중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전략을 봅시다. 이 전략은 실업이 만연한 지금, 고용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라는 것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서 불안정노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전혀 대중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정책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끌어들이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지배계급이 자신만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을 왜 포퓰리즘 정권이라 할까요? 노무현 정권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가만히 살펴봅시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화두는 ‘참여’였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이었죠. 이런 노무현 정권은 과거의 군사독재 등의 억압적 국가체제와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군사독재는 경찰, 군대 등의 폭력적 국가기구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국가에 대한 개입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지는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국가참여를 보장한다고 선전합니다. 실제로 386세대의 정치개입, 시민단체의 정책개입, 노사정 합의체제 구축 등으로 참여를 보장하는 듯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많은 대중이 국가 운영에 참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국가를 이끌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란 지배계급이 추진하고자 하는 핵심 정책이 신자유주의인 포퓰리즘을 뜻입니다. 노동법 개악을 놓고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 혹은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노동법 개악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노동유연성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핵심 전략임에도 말입니다. 8. 최근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 스웨덴 모델 등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데요, 이것이 사회적 교섭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일단 정부와 자본 측의 논의들은 대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제도와 관행이 꼭 필요하며, 일정한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사정위원회의 긍정성과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직면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약 - 주로, 특히 노동운동의 전투적 성격 - 을 제기합니다. 이들이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 대전제하에서 이론적 버팀목으로 삼는 것이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이며 이것이 한국사회에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은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이에 기반한 중앙단체교섭, 사민주의정당,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강력한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 이에 기반한 생산성 증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특히 네덜란드 모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로 제기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유럽 사민주의 국가 특히, 영국과 스웨덴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를 공격하거나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조화될 수 없고 모순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네덜란드는 신자유주의 유연화를 합의의 방식으로 갈등 없이 추진하는 동시에 낮은 실업률, 최소한의 사회적 노동기준을 유지한 특이한 사례였습니다.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에게 네덜란드 사례는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하고자 했던 일, 즉 노동의 협력 하에 이루어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능함을 입증한 사례였던 것이죠. 네덜란드의 모델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정당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한국은 역사적 구조적 조건이 매우 다릅니다. 네덜란드는 사민주의체제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오랜 경험과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취약하다고 하나 중앙 집중적인 산별노조체제, 사민주의정당이 있었습니다. 또 강력한 복지제도와 높은 수준의 노동 보호제도와 기본권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에는 이와 비교할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들은 정책입안/집행자의 의지나 각성과는 무관하게 두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 또 합의기구나 개별 합의의 실질적 의미가 크게 달라지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대체로 무시되거나 간과됩니다. 사회통합적 방식의 구조조정 사례,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합의의 틀 속에서 수행한 사례들을 찾아내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는 한국사회에서 동일한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일한 방식의 합의기구와 합의의 내용이 필요하다는 식의 결론이 있을 뿐입니다. 동일한 제도가 다른 사회에 이식될 수 있으며 동일한 결과를 산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현실의 구조적, 상황적 한계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이는 지난 10여년의 경험 속에서 노사정위는 합의기구라기보다는 통제기구란 점이 계속 확인되어왔습니다. 불평등의 확대와 극단적인 고용불안, 기본권 제약, 폭력적 억압과 법적 통제의 강화, 자본과 국가의 노동에 대한 일관된 배제전략 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보다는 ‘파멸적 구조조정’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적용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유럽/네덜란드 모델 자체도 빌려다 쓰기에는 매우 낡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 서구유럽의 합의주의 모델은 1980년대 전지구적 수준의 경쟁 격화, 경기후퇴와 만성적 실업, 사용자의 노동유연화 요구와 적대, 노동계급 내부의 이질화와 계층화, 단체교섭의 분권화 등으로 인해 1990년대에 전반적인 변형 과정을 거칩니다. 서구 사민주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바뀌는 것입니다. 즉, 1990년대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임금 억제,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의 축소와 합리화 등 국가와 자본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이나 노동운동 일각에서의 제기하는 스웨덴 모델론 또한 근거가 희박한 낙관이라 할 것입니다. 스웨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도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노동유연성의 증가, 임금교섭의 탈집중화, 탈규제와 공공자산 매각, 사회민주주의적 재정정책과 공공지출의 포기, 실업과 임금격차의 끊임없는 증가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모든 조건들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의 대규모 해외유출은 국내 계급간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던 스웨덴 모델을 지탱한 물질적 토대를 잠식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스웨덴 모델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국가와 자본 그 누구도 한국의 노동운동이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산별 조직체제나 중앙 집중적 권위를 갖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사정위원회의 존재와 구조조정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자신의 지위가 강화되고 있는 자본은 그럴 필요조차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한국사회는 유럽의 국가들에 비하여 사회적 합의주의가 성립가능한 사회적 역사적 기반이 부족할 뿐만아니라 유럽의 경우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그것이 실질저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나 의지가 국가와 자본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부에서 생각하듯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보호’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배제’에 불과합니다. ‘합의’와 ‘보호’라는 국가-자본과 노동의 동상이몽 속에서, 노동운동의 조직적 자율성과 운동적 자주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며 노동운동은 자본의 원활한 축적과 위기관리에 적합한 조건을 창출하는 일방적 약속을 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9.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사회적 교섭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성과 투쟁성을 해치고 무력화와 위기로 귀결된다는 이유로 참가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교섭기구 불참으로 현재 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습니까? 물론 사회적 교섭기구에 대한 불참하는 것만으로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노동자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 의한 노동의 불안정화 공세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비정규직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성별과 인종, 계층적 분할이 심각해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계급 자체가 이리저리 해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신자유주의 경제위기 아래에서 노동자 대중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실리적 접근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기에 사회적 교섭기구가 지금과는 다른 실익을 줄 수 있겠지 하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적이냐 비전투적이냐 혹은 급진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누어서 운동을 갈라치기 하거나, 과거의 정파적 정체성에 기대어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식으로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은 문제의 본질에서 빗겨난 대응입니다. 이는 정작 필요한 ‘발본적인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막아내는 것은 최소한의 대응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안을 계기로 더욱 논의를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진정 노동운동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 속에서 ‘노동자가 계급으로서 형성되기 위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흐름 만들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과 사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10. 그렇다면 향후 사회적 합의주의를 넘어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까? 노동자간 분열이 심화되고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의식이 많아지고 더 열악한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식은 얕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황과 대결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계급타협의 기반도 없어 그 자체로도 실현 불가능하고 자본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세련된 탈을 쓴 공세인 사회적 합의를 넘어 노동자가 새로이 계급으로 형성되기 위한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노동자간 분할을 막고 연대의식과 헌신성을 강화하는 계급 형성의 관점이 당장의 실리적인 영향력 행사보다 오히려 더 긴급한 시점이라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은 노동운동의 연대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이 투쟁을 자기과제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노동운동이 보다 보편적인 사회운동으로 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연대 지향적인 노동운동, 불안정노동 철폐투쟁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운동으로 주체를 발굴하고 계급 형성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위해 노력을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면해서는 비정규직을 양산시키고자 하는 노동법 개악에 대해 전체 노동운동의 단결된 투쟁으로 저지하고 그 과정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노동법 개악 강행하는 열린우리당을 박살내자 지난 16일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이 열린우리당 의장실을 점거했다. 파견법과 기간제근로와 관련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집권여당으로서 이번 노동법 개악에 장본인이 열린우리당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농성을 정리해야 면담을 들어주겠다며 아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는 집권여당의 눈에 노동자들은 국민으로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이번에 정부와 여당이 제출한 노동법안은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확대, 양산 법안이다. 파견법과 기간제근로관련 법개정안을 보면 거의 전적으로 사용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졌음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지금도 불법파견이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파견업종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그 기간도 늘리면 대한민국은 착취의 온상, 노동자의 무덤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법안을 내놓으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선전하는 정부와 여당의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릴 따름이다. 지금 열린우리당을 점거하고 있는 이들은 단지 비정규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이땅 1600만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걸고 이들은 노동법 개악의 주범, 열린우리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점거농성은 결코 고립된 투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투쟁을 시작으로 해서 전국 노동자들의 총단결과 거대한 투쟁이 일어나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삶을 끊임없이 불안정과 빈곤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에 맞서 힘차게 투쟁하자.
노동법 개악이라는 독약 정부가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며 정부는 자신만만하게 법안을 제출했다. 경총은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이 법안이 노동유연성 제고에 미달한다며 득달같이 성명을 발표했다. 분위기로만 보면 정부에서 비정규직에 관한 획기적인 보호입법안을 제출한 듯 하다. 그러나 달짝지근한 겉포장 속에 들어있는 것은 쓰디쓴 독약이었다. 그야말로 노동자를 한방에 보내기 위한 독약이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에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현재 노동법 개악에 관해 분명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투쟁 방향 및 계획을 설정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은 비정규직 확대법안이다. 이번 노동법 개악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파견법의 경우 첫째 파견허용업무의 전면적 확대(네가티브 방식)는 한국사회를 비정규노동과 중간착취의 온상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불법파견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용자들이 이 법안을 얼마나 환영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법에 묶여 파견노동자를 사용하지 못했던 수많은 업종에서 대대적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며 이 태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 파견허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직접고용 간주규정'을 삭제한 것은 사용자에게 파견노동자를 '1년 더 혹은 그 이상'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도록 해준 조치다. 종전에는 2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면 직접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새 법안에 따르면 그 기간이 3년으로 확대된 것이다. 또 '직접고용 간주규정'의 삭제로 인해 사용자는 어떻게든 파견고용의 정당성만을 입증한다면 3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안정적 파견노동을 위한 것이라 떠벌리지만 3년 이내에는 사용자 마음대로 고용기간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 법안은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기간제 고용의 허용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대폭 연장한 것은 파견법 개악안과 똑같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유발한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1년 후 직접고용이라는 압박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기간제 고용이 3년을 초과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상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말장난만으로 손쉽게 정규직을 기간제 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또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기간제 노동자를 3년 이상 사용할 경우 해고가 제한된다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입법예고안의 규정은 '정당한 이유'없는 해고를 규제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정당한 이유'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일반적 경향은 비정규직의 해고정당성에 대해 사용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를 도입했다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정부의 안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동종업종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차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현재의 업종을 더욱 세분화하여 '동종업종이 아닌' 업종을 만들어낼 것이고-말장난에 불과한-이런 업종에 대해 무제한적으로 파견 및 기간제 노동자들을 고용할 것이다. 게다가 설사 위법적 차별을 했다하더라도 그에 대한 징계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전부다. 결국 '조삼모사' 수준도 안 되는 차별금지 조항으로 정부는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노동법 개악은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문제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의 노동법 개악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악안의 내용은 파견법과 기간제 근로등 비정규직에 관한 내용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된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나 해고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견 및 기간제 노동을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구조조정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 재고용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는 97년 IMF사태 이후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이는 직접생산공정이 파견업종에서 제외된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제조업인 완성차 산업의 경우 주 생산라인과 하부 생산라인에 대해 주 생산라인만을 '직접생산공정'으로 인정하게 되면 하부 생산라인은 파견이 가능하게 된다. 즉 지금까지 정규직이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파견 혹은 기간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법안은 '차별금지'란 명목으로 정규직을 공격하여 비정규직을 더 많이 양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는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만큼 정규직이 줄어들고 있음은 약간의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눈감고 눈앞의 실리만을 추구했던 우리 노동운동에게 지금의 노동법 개악안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법 개악안을 내놓은 이유 이번 정부의 입법안은 애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던 공익위원안보다도 후퇴한 최악의 개악안이다. 정부가 이런 개악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신감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정부는 이 정도의 안을 내놓아도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리 거세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상반기 투쟁과 최근 2-3년 간 노동자투쟁을 회고해보면 정부의 이런 판단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깊은 골로 인해 노동운동의 조직력은 심각하게 무너졌고 올 해 전개된 주 5일제를 둘러싼 투쟁들은 엄청난 여론의 비난 속에 고립되어버렸다. 현재 노동운동이 안팎으로 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다. 정부는 이런 판단에 기반해 지금까지 진행해온 노동유연성의 제고를 위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차후 예상되는 '유사근로자단결활동등에관한 특별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의 악법조항 등의 제정이 유연화의 완벽한 제도화라면 이번 개악안은 그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다. 따라서 이번 개악안이 별 '무리 없이' 통과된다면 노동유연화의 확산을 막을 길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또 시기적으로 봤을 때 우선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정부로서는 이에 대해 조만간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또 작년과 올해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사용자들은 파견업종의 확대 및 파견기간 연장 등 비정규직에 관한 규제 철폐를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었다. 덧붙여 집권 중반기에 접어드는 지금 노무현정권으로서는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현 정권의 근본적 목표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와 노동유연화의 완성이라고 했을 때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기 전 그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은 사활적 문제다. 이는 현재 정권이 추진중인 과거사청산, 국보법 개폐 등의 쟁점에 미루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아직 본격적 레임덕 현상에 빠져들지 않은 지금이 노무현정권에게는 자신의 전략을 추진할 적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 시기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것이 가지는 정세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노동법 개악저지는 현재 수세에 몰려있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는 투쟁이며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분쇄하기 위한 핵심적 투쟁이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힘차게 싸우자. 노동법 개악저지를 위해 현 시기 노동운동에 주어지는 과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릴 때가 아니다. 또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수세적 구호로는 지금의 국면을 돌파할 수 없다. 이미 '차별철폐'는 이번 노동법 개악안을 계기로 무력화되어 버렸다. 정규직이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마당에 '차별철폐'가 무슨 소용인가? 만약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번 개악안에 대해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이후 벌어질 사태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노동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노동권을 위해, 그리고 끝이 안 보이는 위기에 봉착한 노동운동을 다시금 굳건히 세워내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활을 건 투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의 행보는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지금과 같은 개악안을 내놓는 정부와 이른바 '교섭'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 의도는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교섭'의 이름으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오직 정부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회적 교섭에 지금까지 헛된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의 사회적 교섭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투쟁의 전면에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사회적 교섭으로 노동법 개악을 저지할 수는 없다. 또한 허울뿐인 차별금지조항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 노동하게 될 파견, 기간제 노동자들은 지금 어려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어려운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이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전체 노동운동의 몫이다. 현재 노동운동의 암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간의 분할을 극복하고 굳건한 연대투쟁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여러 가지 여건을 종합해봤을 때 현재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은 우리에게 만만한 싸움이 아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과거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을 되짚어 볼 때-국회 본회의로 넘어가면 사실상 저지는 힘들어진다-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2개월 남짓이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노동운동이 이런 긴박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만큼 순발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수세적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정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결이다. 전체 노동자의 총단결, 총투쟁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결정적으로 파탄내기 위한 전체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을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자.
정부는 노동법 개악을 즉각 중단하라! -9월 10일 노동부의 파견근로와 기간제 근로에 관한 새 법안 발표에 대해 1. 정부에서 파견근로와 기간제 근로에 관한 새 법안을 발표했다. 근로자 파견업종을 종전의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가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파견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정부에서는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위해 이 법안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 법안은 오히려 파견노동자, 비정규노동자를 법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일 따름이다. 2. 정부의 이번 법안의 내용과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파견 업종의 전면확대는 법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우리 노동법에는 중간착취의 금지(근로기준법 제8조)가 명시되어 있다. 파견업종을 몇가지를 제외한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은 중간착취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의 정신마저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사회적으로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의 고용의 불안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또 파견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 조치는 사용자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해준 것이다. 파견기간의 연장은 결국 파견노동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준 것일 뿐이다. 이런 조치는 파견노동자의 보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니 오히려 파견노동자를 법의 사각지대로 밀어넣는 것이다. 이건 눈가리고 아웅정도가 아니다. 명백한 개악이다. 이러한 개악을 단행하면서 정부는 이번 법안이 파견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보호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불합리한 차별 금지규정이다. 그러나 파견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규정은 위의 조치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3개월의 휴지기간을 둔다는 것 역시 3년이하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에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규정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법파견과 차별도 규제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철저히 규제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대한 립서비스일 뿐이다. 3. 온 사회가 불황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불황의 모든 원인이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잦은 파업, 투쟁에 있다며 화살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난 IMF이후 지속적으로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을 받아왔고, 신자유주의는 거칠것없이 노동자들을 짓밟아왔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는 끊임없는 불안정성의 확대를 그 특성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이번과 같은 노동법 개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정부와 기업은 지속적인 노동의 불안정화를 추진해왔다. 상시적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끊임없는 확대를 통해 이들이 추구한 것은 자본에게 무한대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노동자에게는 끝없는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번 노동법 개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불안정한 노동은 결국 불안정한 삶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실업과 빈곤으로 노동자들을 내몰게 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그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왔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란 결국 이런 것이었다. '합의'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를 들러리로 세워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었다. 더 이상 이런 정부와 '합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손발 다 잘라내고 목을 조여오는 이와 '합의'한다는 건 자멸을 부르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노동자 스스로의 힘찬 투쟁이다. 이제 쓸데없는 기대와 합의의 골방을 박차고 투쟁의 광야로 나서자.
“국제자유노련(ICFTU) 사무총장인, 가이 라이더(Guy Ryder)는 지난 6월 23일~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20차 ICFTU 집행위원회에서 국제자유노련(ICFTU)과 세계노동총연맹(WCL)의 통합에 대한 입장과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국제노동운동의 통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다. 2)통합 논의가 ICFTU가 해야 할 본연의 다른 활동들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3)ICFTU의 원칙과 가치(principles and values)가 통합 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4)통합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이 예견되지만 세계단위의 통합이 국가단위 통합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5)통합에 따른 정체성(identity) 문제가 있을 것이다. 6)ICFTU와 WCL 어디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당수의 미가맹 노동조합들이 통합세계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7)국제산별연맹(GUF)과 지역기구에 통합에 따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8)통합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세계노동운동 통합 현실로’에서 인용,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김성진-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종전 이후 반공주의 노선에 기반해 세계노동운동의 주류적 흐름을 대변해온 국제자유노련(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ICFTU)과 기독교계 노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세계노동총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r: WCL)의 통합이 현실 일정에 올랐다. ICFTU의 조합원수는 현재 1억 5천 1백만 명이며, WCL은 수치의 진실성을 믿기 어렵긴 하지만 약 2천 6백만 명 정도이다. 이들은 2006년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출범을 목표로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양대 국제노동조직의 통합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세계통합노총 건설은, 절차상 관료주의적·비민주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회원 조직들의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고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중요하게는 국제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정한 사고와 실천을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현재 국제노동운동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금융 세계화와 노동 유연화에 맞선 대응 전략과 실천의 빈곤함에 있다. 즉 “자본이 무역과 생산의 영역에서 금융거래와 투기로 전환되는” 과정, 그에 따른 부와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남북 불평등의 심화, 남북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및 삶의 질 악화에 대한 무능력한 대응이 현재 국제노동운동 위기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국제노동운동은 이러한 근본 원인에 맞선 전략과 전술의 혁신, 이를 통한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국제노동운동의 주류적 흐름인 ICFTU는 그동안 북반구 노동자를 대변해왔으며 또한 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인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ICFTU는 ‘노동조합 권리, 인권, 환경권’ 등을 존중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또한 ICFTU는 ‘남반구 노동기준의 향상’이 WTO 협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진정으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요구였다기 보다는 북반구 노동자들의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북반구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및 삶의 질 악화가 “그들보다 아래에 있는 다른 국가들-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하여 자국의 산업을 유지하려는-로 인해” 심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의 향상을 통하여 자국 생산품을 보호하거나, 또는 적어도 개발도상국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제3세계와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도모”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개선, 임금 향상은 ‘국제적 차원의 보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산업 활동이 재배치된 특정 국가에서 태동한 강력하고도 전투적인 노동계급의 투쟁이 주요한 요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ICFTU의 주장은 고용과 임금에 있어서 ‘자기 방어’에 급급한 북반구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이며, 국제적인 사회운동진영의 광범위한 저항과 투쟁으로 ‘정당성 위기’에 빠진 WTO 체제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OECD에서 논의되었던 다자간투자협정(MAI)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의 태도는 더욱 분명한 형태로 북반구 주도 국제노동조직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당시 다자간투자협정은 초국적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인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자본의 금융투기적 축적 경향을 촉진시키고, 경제주권을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는 광범위한 투자 자유화를 동의해주고, 대신 고작해야 노동 및 환경권 존중이라는 문구를 다자간투자협정 전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ICFTU를 위시한 주류적 국제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 대안적인 세계질서의 모색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존 세계질서 내에서 북반구 노동자들만의 특별한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왔다. 즉 ICFTU는 “자국이 자본유치를 위한 상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자국 정부를 지지”한 북반구 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책들을 펼쳐왔다. 이러한 ICFTU 정책들은 북반구 정부 그리고 WTO,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과의 ‘협의와 로비’를 통해 추진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효과는 당연하게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할 능력이 있는 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주변부 국가들 사이에서 차별적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자유무역, 투자 자유화, 산업활동 재배치 등 다양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슈를 다룰 때, ICFTU의 주장처럼 “핵심노동기준 존중”만을 요구하는 것은 특히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대단히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이 남북 불평등과 분할, 남북 노동자들의 노동, 생활 조건 악화, 자본의 금융, 투기로의 전환과 고용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면, 특히 북반구 노동자들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와 자원 분배에 있어서 약자인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신자유주의 과정’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등의 보장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ICFTU와 북반구 노동자들은 왜 남반구 노동조합 의제에는 신자유주의 반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 모색, 고용과 소득 창출 등이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비록 현재 ICFTU-WCL 통합 과정이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이데올로기 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계노동운동의 주류를 자임해왔던 ICFTU를 비롯한 북반구 주도의 국제노동조직의 역사적 실천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새롭게 탄생할 거대한 통합세계노총은 오히려 북반구 노동자들의 ‘자기 방어’적 실천을 강화하고, 남반구/북반구 노동자들간의 위계와 분할을 더욱 심화시키며, 남북 노동자들의 진정한 ‘단결’을 위한 사고와 실천을 지연시킬 것이다. 나아가 더욱 비대해진 통합세계노총의 관료주의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늘어난 조합원 수를 기반으로 한 ‘로비’ 전략에의 의존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욱 심각하게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ICFTU-WCL 통합 과정이 국제노동운동의 당면 과제에 대한 포괄적이며 민주적인 토론을 동반하지 않음으로서, 주류 국제노동운동에 의한 진보적·민주적·자주적 노동운동의 소외와 배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항상적으로 요구되지만, 이는 명백한 비전과 목표, 구체적 실천을 동반하지 않으면 오히려 운동의 발전에 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잇는 ICFTU-WCL 통합 논의는 1)ICFTU의 북반구 편향적 정책과 실천에 대한 평가, 2)남북 노동자들간의 분할과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인식지반 확대, 3)노동계급을 넘어 국제적인 반전/반세계화 사회운동 진영과의 포괄적인 동맹관계 형성을 위한 계획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제들이 논의되지 않는 통합 과정은 국제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사고와 실천을 지연시킬 뿐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