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만을 위한 보물섬,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지난 5월 22일부터《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취재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결과를 연속으로 발표하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245명 중에는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정직하게 세금을 내며 살아온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작 이런 자들을 그냥 둔 채 정부가 지하경제양성화를 추진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황이 분노를 더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의 탈세를 처벌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까? 조세피난처는 단순한 부유층의 자금은닉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자본의 논리를 강제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1%] 초국적자본이 얻는 이득 조세피난처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소득에 대하여 과세를 하지 않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하거나, 또는 특수한 조세혜택이 부여되어 있는 지역 또는 국가를 말한다. 조세피난처의 활용은 조세조약, 이전가격 등을 이용한 다양한 조세회피를 유용하게 해주기 때문에 특히 초국적자본에게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2001년 론스타는 강남에 소재한 스타타워 빌딩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매입한 후 2004년에 싱가포르투자청에 매각해 2,800억 원의 차익을 얻었지만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미국 론스타펀드 본사가 아니라 조세피난처 벨기에에 설립한 자회사(스타홀딩스)를 통해 거래를 하면서, 거래로 인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양국에서 이중과세하지 않는다는 한-벨기에 조세협약 규정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한 명목으로 만들어진 조세협약을 악용해 사실상 이중비과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전가격을 활용한 조세회피 역시 조세피난처와 결합될 때 더욱 효과적이다. 초국적기업은 생산, 유통, 마케팅, 보험, 경영자문 등 여러 기능을 세계 곳곳의 자회사에 분산시킨 후 내부거래에 있어 정상가격(독립기업 간 가격)보다 높거나 낮은 가격을 적용함으로써, 높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매우 적은 소득을 얻고, 낮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높은 소득을 얻는 것으로 조작한다. 가령 조세피난처에 있는 금융부문 자회사는 다른 자회사에게 대출을 하고 폭리로 막대한 이자소득을 얻은 후 조세피난처에서 아주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 반면, 높은 세율의 나라에 있는 자회사는 소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낼 소득세도 거의 없다. 이런 방법을 통해 초국적기업 본사는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민중에게 비용전가 조세피난처를 매개로 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해외로 유출되고 초국적기업에 집중된다. 또한 조세피난처는 각국 정부의 세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재정정책∙사회정책을 통한 경기진작 및 재분배 기능을 악화시킨다. 자본가의 조세회피는 노동자의 조세부담을 늘린다. 미국 사례를 보면, 1950년대 미국 기업들은 미국 전체 소득세의 약 5분의 2를 부담했으나 현재는 5분의 1만 부담한다. 최상위 0.1% 부자들의 유효세율(세전이익 가운데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대 60%에서 2007년 33%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동안 세수 총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초국적기업과 부자들 대신 노동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아온 것이다. 금융세계화의 첨병 조세피난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낮은 세율과 약한 규제를 향한 국가 간 경쟁을 야기함으로써 전 세계에 자본의 논리가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세피난처는 대부분 금융실명법이나 부동산실명법이 없고 재판이 간편하며 회사의 설립과 해산∙청산이 간단하다. 각국 정부는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한다는 이유로 조세피난처에 준하는 환경, 다시 말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경쟁한다. 한국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이후 투자보장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투자자유화 협정 체결, 자본시장법 등 자산유동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경제자유구역에서의 각종 혜택 제공 등을 지속했다. 그러나 낮은 세율과 약한 규제를 향한 국가 간 경쟁은 각국 노동자 입장에서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의미했다. 인수합병(M&A)과 재매각을 통한 차익실현을 위해 기업 가치를 올리려고 구조조정을 감행하거나, 주주들의 단기적인 이윤추구 동기에 생산이 좌우되면서 장기적인 설비투자나 고용안정은 부차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임금인상 억제, 노동유연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동반되었다. 조세피난처는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왑(CDS) 등 파생상품 거래의 활성화에 기여했고, 2007년 미국 금융위기를 전 세계로 전염시키는 고리로 기능했다. 가령, 2007년 6월 베어스턴스가 영국령 조세도피처 케이먼제도에 설립한 2개의 헤지펀드는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CDO에 200억 달러를 운용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확대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이는 베어스턴스의 파산과 금융위기의 세계적 확산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조세피난처는 사라져야 한다 이처럼 조세피난처는 초국적자본과 부유층이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각국의 규제를 우회하거나 법∙제도를 개악하는 기능을 한다. 사실 조세피난처 자체가 세금이나 규제를 재앙처럼 인식하는 자본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개념이다. 그러나 초국적자본은 실제로는 오히려 초법적 존재로 군림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조세피난처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경제 중심부에서부터 자본의 세계적 이동성을 중단시키려는 시도에 주목해볼 수 있다. 금융거래세 도입을 주장해온 유럽 아탁은 “부유한 국가들이 스스로 역외금융센터로 기능하거나 그것을 옹호한다면, 조세천국에 지점을 운영하는 은행을 폐업시키거나 역외금융센터와의 거래에 높은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일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외국인투자기업의 ‘먹튀’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삼성∙현대처럼 수많은 해외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이 각국에 낮은 세금과 약한 규제를 향한 경쟁, 노동자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는 시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주의를 견지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관점과 실천은 단순히 규제가 확보된 금융체제 구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가 확보되고 보다 민주적인 대안적 세계를 향한 근본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정부 정책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로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창조경제 개념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창조경제론자들은 그것을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즉 성장전략으로서 제시한다. 이들은 대체로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창조경제론의 논리는 1990년대부터 유행한 지식기반경제론과 매우 유사하다. 1990년대 미국 신경제 호황에 힘입어 한국에도 지식기반경제론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IT벤처기업 창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었고, 굴뚝경제에서 지식경제로 이행한다는 장미빛 전망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신경제 호황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2007년 이후 미국경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경제의 불안정성이 더욱 증대되었고 각국에서 고용, 소득불평등 같은 전통적인 문제들이 더욱 악화되었다. 지식기반사회 내지는 정보사회의 화려한 외양에만 주목한 미래학자들과 정부 관료들의 장미빛 전망은 전혀 현실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아래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론의 주요 내용을 분석한 후, 그것이 과연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박근혜 정부는 왜 창조경제를 제시했나?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살펴보면 1990년대까지는 높은 성장세가 나타났지만 2000년대 들어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다. 2010-11년 1인당 실질GDP는 27,157달러로 1970년대의 7배 이상으로 높아졌으나 1인당 GDP성장률은 4.4%로 1970년대의 1/3 수준으로 낮아졌다(그림1).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가 하락함에 따라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 말 정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대하며, 국내경제 활력이 저하되는 3중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어 지난 3월에도 한국경제가 7분기 연속 전기대비 0%대의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기둔화가 장기화할 위험이 있음을 우려했다(그림2). 단기적으로도 정부는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3%로 조정하는 등 경제전망 수치 대부분을 하향조정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제조업 부문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증가에 힘입어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제조업 부문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감소하고,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 증가율도 하락했다. 2005년 현재 한국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OECD 25개국 중 12위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반면 서비스업의 경우 최하위에 머물러 있어, 서비스업의 낮은 노동생산성이 2000년대 들어 한국 전체 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둔화시키고 나아가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그림3). 이는 1997년 이후 제조업의 잠재성장률은 그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서비스업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함에 따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림4).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는 노동시간 및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속도를 둔화시켜 경제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향후 20년 동안 한국경제 GDP 성장률이 연평균 4%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 평균 4.5% 수준이었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4.9%, 2020년대 6.1%까지 증가해야 한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 추격(catch-up)에 성공해 선진국과 노동생산성 격차가 크게 축소되어 있는 제조업 부문의 경우 연구개발(R&D) 투자의 확대를 통한 기술혁신이 요구된다. 반면 여전히 선진국과의 노동생산성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부문, 특히 서비스업의 경우 시장개방을 통해서 선진국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런 방법을 통해 특히 의료, 법률, 금융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이래 장기적인 성장추세 악화에 대응해서 한국 정부는 기존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함과 동시에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선진국 추격형’에서 ‘세계시장 선도형’으로,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이 발현되고 새로운 부가가치가 마련되도록 우리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전환을 상징하는 표현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 전략 한국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전략은 이미 지난 2월 국정과제로 제출된 바 있다. 새 정부의 6개 국정과제 중 첫 번째 과제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는 △창조경제의 생태계 조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 동력 강화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운영이라는 6개 전략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여섯 번째 전략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운영’은 거시경제 안정을 의미하므로 직접적인 창조경제 실현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 번째 전략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와 다섯 번째 전략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 역시 수출-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반영한 것이지 장기적인 성장추세 회복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표1]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전략의 핵심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산업 전반에 융합확산될 수 있도록 한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전반적 내용을 담고 있는 첫 번째 전략 ‘창조경제의 생태계 조성’, 정보통신보건산업 등 정부가 주목하는 산업별 육성전망을 담고 있는 두 번째 전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 동력 강화’, 이를 뒷받침하는 네 번째 전략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에 있다. 이런 전략들을 종합하는 표현이 최근 유행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기존 산업과 IT과학기술이 융합돼 일자리 창출과 성장으로 연결되는 경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ICT 융합이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플랫폼 확보 기업의 성공 덕분이다. 스마트기기의 확산에 따라 주로 컴퓨터에서만 쓰이던 운영체제(OS)가 모든 스마트기기에 탑재되고, 기기 내 모든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통제하는 핵심기능을 수행하면서, 플랫폼을 확보한 기업은 ICT 관련 모든 산업의 가치사슬에서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제공 가능한 콘텐츠, 서비스, 소프트웨어까지 장악함으로써 관련 산업 내에서 자신의 독보적 지위를 강화하여 수익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나아가 스마트기기 제조업의 경우 완제품 경쟁력에 있어서 ICT가 적용된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부각되고, 이를 최적화하는 제조기술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가령 핵심부품인 CPU, AP 등의 제조역량을 갖추었거나, 이런 핵심부품과 플랫폼 등의 모듈을 결합하여 차별화된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하드웨어 제조역량이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주도적인 하드웨어 제조업체로 자리 잡은 대표적 사례다. 자동차를 비롯한 기존 제조업에서도 제품의 차별성을 위해 ICT를 도입한 서비스 기능을 부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는 자사의 전기자동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서비스(Windows Azure)를 장착했다. 애저를 통해 자동차의 전력관리, 배터리 잔량 원격점검, 홈 네트워크 원격제어 등을 수행한다. 롤스로이스는 24시간 원격으로 전 세계 8,300개 엔진을 관리하고 엔진 가동시간 기준으로 임대료를 받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업의 경우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ICT 융합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가령, 보건서비스 분야의 원격의료 서비스는 서비스업 고부가가치화 및 ICT 융합의 핵심으로 사고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원격의료 서비스는 삼성전자가 제작한 당뇨관리 의료기기(삼성헬스다이어리)를 당뇨환자 집에 설치하고 SK텔레콤의 정보전달 플랫폼을 통해 병원으로 환자의 건강상태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보건서비스뿐만 아니라 교육서비스로도 확대될 수 있으며, 나아가 재난안전, 치안 등 정부행정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외에도 정부는 “소프트웨어, 영화, 게임, 관광, 컨설팅, 보건의료, MICE(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을 ‘창조형 서비스업’으로 분류하고 이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처럼 창조경제의 핵심인 ICT 융합은 플랫폼 확보, ICT 핵심부품 생산 및 완제품 제조, ICT 기술과 융합된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 등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 기업 모델과 관련된다. 이런 기업 모델에서는 혁신적 기술이나 창조적 아이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창의성이야말로 소득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강화된다. 나아가 정부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일자리를 만드는 창조경제”라고 설명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개인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까지 확산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ICT 융합이라는 신성장동력을 바탕으로 장기적 성장추세를 회복하고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창조경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인가 굴뚝경제에서 지식기반경제로, 그리고 창조경제로? 사실 정보통신기술(ICT)과 지식, 정보, 아이디어가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인식은 1990년대 지식기반경제론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창조경제라는 개념도 지식기반경제라는 개념과 거의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대체로 지식기반경제 내지는 정보경제를 보충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그것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한다는 미래학자들의 전망을 공유한다. 가령 1990년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창조사회를 제4의 물결로 설명했고, 『창조경제』(2001)의 저자 존 호킨스 역시 창조경제를 새로운 경제체제라고 정의했다. 노동이나 자본 투입이 아니라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사회로 이행한다는 지식기반사회론에 창조적 아이디어도 부를 창출한다고 보충하는 셈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 현실적 기반은 197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지속되고 있는 제조업 부문 축소와 서비스업 부문의 성장이었다. 미국의 경우 이미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세계적으로도 1974-83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업, 광업, 제조업의 고용은 크게 감소했다.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부분적으로 서비스 산업이나 금융보험 부문으로 흡수되었고 부분적으로 실업의 증가를 낳았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서비스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은 70%, 발전도상국은 50%까지 상승한다. 이와 같은 서비스 부문의 확대에 더해 1990년대 미국 신경제 호황과 실리콘밸리의 신화는 정보통신기술의 적용을 통해 굴뚝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성장 모델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IMF 이후 모든 정부가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이라는 전망과 목표를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다만 정부에 따라서 정치적 표현방식과 정책적 강조점이 부분적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가령, 김대중 정부가 IT 벤처창업과 신지식인 개념을 강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산업의 결합사례로 두바이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의 팽창 과정은 지식과 정보에 의한 부의 창출이 확대된 결과가 아니었다. 서비스부문 내 사회서비스, 금융서비스, 생산자서비스, 개인서비스 등 각각의 서비스업은 서로 다른 축적 요구와 결합되어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볼 때 서비스업은 20세기 초중반 정부, 보건, 교육 같은 사회서비스의 팽창에서 시작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으며, 산업적 축적이 위기에 처한 1970년대 이후에는 특히 금융서비스가 팽창하고 기존 생산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던 업무의 외주화에 따른 생산자서비스가 증가하면서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생산자서비스는 기업의 핵심적 전문업무를 외주화한 법률, 공학건축 서비스, 회계, 감사, 세무, 연구, 검사, 경영, 광고 등 기업서비스(business service)와 경비, 청소, 식당 업무 등 기업의 업무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쉽게 분리될 수 있는 업무영역으로 양극화되어 등장했다. 또한 서비스 부문의 팽창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굴뚝경제로부터의 탈피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의 징후로 해석할 수도 없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대표하는 금융서비스와 기업서비스의 경우 고용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이 굴뚝경제를 대표하는 자동차산업에 비견될 만한 전후방 효과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의 후방에는 무수히 많은 기계산업의 발전이 있고, 그 전방에는 자동차산업의 발달에 따른 소비산업과 오락산업의 성장이 있다. 반면 정보통신기술은 성장과 고용의 확대 보다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한 시장의 확대(인터넷 상점, 신용거래 등), 금융세계화, 국제적인 하청계열화(글로벌 아웃소싱)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이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역사상 전례가 없는 큰 폭의 혁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전신의 발명은 대륙 간 통신에 걸리는 시간을 몇 주에서 몇 초로 줄였다. 철도, 자동차, 오디오, 텔레비전, 항생제, 전화, 전기, 제트비행기, 플라스틱, 가내배관 등도 마찬가지다. 고객맞춤형 다품종 생산으로 인해 신제품 숫자가 오늘날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하더라도 혁신의 속도는 더 느릴 수 있다. 1870년에 태어나 70년 간 살았던 사람이라면 1950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서비스 부문의 양적 팽창에만 주목하거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과대평가함으로써 그것을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지식기반경제론 또는 창조경제론은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저하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산업과 상업에서 금융과 서비스로 경제의 무게중심을 옮긴 과정에서 부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 또는 창조경제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반영하는 금융세계화에 따른 금융서비스의 성장, 과거 제조업 내 부서로 포괄되어 있던 서비스 부문의 아웃소싱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성장담론, 새로운 성장단계가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생존방식이다.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재분배 역량의 강화 창조경제가 성장과 고용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기업들의 성공이 가치의 생산보다는 그 재분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식, 정보, 창조적 아이디어를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사업화해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인과 기업은 소득을 막대하게 늘릴 수 있지만, 이것이 전체 경제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조경제는 특정 개인과 기업에게만 고소득의 기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플랫폼을 확보한 ICT 기업의 막대한 소득은 지대(rent)와 상당히 비슷하다.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에게 토지를 대여함으로써 지대를 획득하는데, 그 전제는 토지에 대한 자본가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토지 소유권이다. 소유자는 실제 생산과정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지만, 즉 생산적 노동의 착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자본가로부터 임대료를 받음으로써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단 한 명의 노동자도 고용하지 않고도 소득을 얻으며, 그 소득은 자본가로부터 제공된다. 창조경제가 주목하는 지식, 정보, 아이디어는 지식재산권이라는 배타적 소유권에 의해 보호되고, 이 지식, 정보, 아이디어를 대여하는 자본가는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단, 토지소유자가 1명에게만 그것을 빌려줄 수 있는 반면 지식재산권 소유자는 그것을 아주 싼 가격에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명에게 그것을 대여할 수 있고, 따라서 엄청나게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같은 운영체제(OS)는 구매자 수가 많아질수록 그 유용성이 커지기 때문에 대여자 또는 소비자가 이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경쟁기업의 신규 시장진입도 어렵다. 대부분의 플랫폼 확보 기업의 고소득은 이러한 시장지배력에 기인한다. 지대와 마찬가지로, 지식재산권 소유자에게 제공되는 소득은 자본가가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사용료 또는 자본가로부터 노동자가 받은 임금의 소비로서 간접적으로 이전(transfer)되는 것이다. 지식, 정보, 창조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고방식은 구글과 같이 웹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고수익을 얻는 기업 모델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모델이 결국 광고수익에 의존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자본가로부터의 소득 이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무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개인들은 어떤 지출도 없이 사용가치를 얻기 때문에 이런 사업모델이 경제의 기본법칙을 거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아주 오래된 소득 이전 방식을 새로운 기술에 적용한 것일 따름이다. 창조경제는 경제 전체의 성장과 관련되기보다는 소유권을 보장받은 개인이나 기업의 성장과 관련된다. 이런 논의를 더욱 확대해보면,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가치의 재분배와 관련된다. 생산자서비스의 경우 애초 생산기업으로부터 외부화되었다는 점에서 가치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한편 생산기업에서 생산된 가치를 분배받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주목받는 법률, 회계, 컨설팅 등 기업서비스는 주주의 소유권에 기여하는 국제적 행위 규준을 개발도입하는 대가로 생산기업이 생산한 가치의 많은 부분을 재분배 받을 수 있다. 금융서비스 기업의 소득 역시 이자, 수수료 등의 형태로 생산자본의 순환으로부터 잉여가치의 일부를 보상으로 받은 것이다. 만약 금융기관의 소득 원천인 순이자가 이처럼 이전으로 다루어진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금융기관이 생산한 가치는 없는 반면, 금융기관 소유자나 금융기관에 고용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급여만 존재하므로 금융기관의 부가가치는 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자의 지급을 통한 금융중개기관의 수익을 제외할 경우 OECD의 표현에 따르면 “[경제 각 부문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이 국민총생산에 보잘 것 없는 수준 혹은 심지어 마이너스로 기여하는 것으로 나오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금융부문의 생산적 기여를 정당화하는 추계방법을 고안해왔으며,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구분하는 노동가치론의 정치적 함의를 의식적으로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의 결함은 금융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무엇인지, 금융의 생산적 기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의 생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노동, 즉 산업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노동을 생산적 노동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상업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 중에서도 운송창고통신업무 같은 유통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생산적인 반면 매매업무와 재무회계마케팅광고홍보 같은 순수유통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비생산적이다. 그러나 상업자본이나 금융자본에 고용되는 비생산적 노동자도 잉여가치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한편 서비스노동은 비생산적일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과도 무관하다. 그리고 서비스노동 중에서는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유용한 노동이 있는 반면, 일부 개인서비스처럼 무용하거나 유해한 서비스노동도 있다. 이 때 어떤 경제활동이 비생산적이라는 명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필요없다거나 쓸모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자본주의에서 신용의 공급은 경제활동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산업자본의 가치 생산 촉진에 신용과 금융의 필수적인 역할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가치이전의 크기와 효과를 분석하는 것과 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가치의 생산과 이전 그리고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은 국민계정이 경제주체들이 실제로 생산한 부가가치를 제대로 집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중요한 기제인 것이다. 반면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가치의 이전이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제거해온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금융의 생산적 기여를 여러 취약한 논리들로 정당화하는 것이 곤혹스런 과제가 된다. 던컨 폴리는 현대 국민계정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 교육, 의료, 전문기업서비스 등 서비스업의 부가가치로 계산되는 부분을 제외한 ‘좁은 범위로 측정한 부가가치’와 GDP 간의 편차, 고용지표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금융과 부동산, 정부서비스 부문 등에서의 여타 귀속소득을 GDP에 포함시키는 현행 방식이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 규모를 과소추정하고 반대로 금융권의 재건과 그들의 소득 진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기회복의 수준은 과대평가함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좁은 범위로 측정한 부가가치’로 부가가치를 계산할 경우 전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기존 3.3%에서 2.4%로 1/4정도 하향 조정된다. 따라서 지대 수취와 유사한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하는 ICT 관련 산업과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고소득을 핵심으로 하는 창조경제가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일 수는 없다. 그것은 가치의 생산보다는 생산된 가치의 더 많은 부분을 재분배 받으려는 기업 모델일 뿐이다. 창조경제에서의 가치사슬과 임금노동조건의 악화 굴뚝경제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의 또 다른 징후로 해석되곤 하는 것은 제조업 가치사슬의 변화다. 제조업 가치사슬은 여전히 연구개발(R&D)→제조→마케팅→서비스 등의 단계를 이루지만 그 단계별 경중이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고정자본 투자와 저임금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제조 단계가 이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가치사슬의 앞에 위치한 연구개발 및 기획 단계와 뒤에 위치한 마케팅이나 서비스 단계가 더 중요해졌다. 연구개발, 판매전략 수립, 제품 디자인, 광고, 유지관리 서비스 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지식, 정보, 아이디어의 활용이기 때문에 제조업 가치사슬의 변화는 창조경제로의 전환의 징후로 해석되곤 한다. 단적으로 아이폰, 아이패드는 스티브 잡스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낳은 성과로 평가되며, 최근 기아자동차 K시리즈의 성공은 피터 슈라이어라는 창조적 디자이너의 역량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부터 살펴보자. 완성차 기업들은 시장경쟁의 격화에 대응해서 생산전략을 변화시켜왔다. 표준제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보다는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제품차별화를 위해서는 연구개발과 기획디자인 능력이 중요해지는데, 2000년대 들어 현대, 기아, 쌍용자동차 모두에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또한 시장확보를 위한 유통망 장악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중요해지면서 이를 위한 마케팅 능력이 핵심적인 경쟁력으로 등장한다. 특히 마케팅 능력은 소비자들의 불만과 요구를 신속히 파악해 이를 연구개발과 기획단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 결과 1999년 현대차와 기아차는 외부화되어있던 자동차 판매부문인 현대자동차서비스와 기아자동차판매를 각각 내부화했다. [그림7] 한국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 구조변화 연구개발기획, 마케팅 기능은 강화된 반면 기존에 완성차 기업에서 수행하던 최종조립 및 주요 부품생산의 상당부분은 축소외부화되었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현대모비스를 설립하여 주요 모듈의 독점 공급 기업으로 육성하고, 여타 부품기업을 현대모비스의 하위부품기업으로 재편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모듈화를 총괄하고 하위 생산사슬 전반을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중간관리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위부품기업을 조정통제하는 관리구조 덕분에 완성차기업은 생산을 축소외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부품기업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완성차기업이 최종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인 디자인과 설계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공신력있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종속적이고 위계적인 생산구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생산기능의 축소외부화는 완성차기업 입장에서 생산공정이 비용절감의 대상이 된다는 점, 그리고 외부화를 통해 경기변동에 따라 쉽게 그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기아차는 비용절감과 유연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모듈화와 플랫폼 통합이라는 새로운 생산기술을 적용했고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노동과정을 표준화단순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임금과 고용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해지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림 8] 휴대전화 글로벌 가치사슬 이와 같은 가치사슬 변화는 창조경제를 대표하는 ICT 제조업에서 더욱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전자산업은 핵심 기술과 범용 기술의 구분이 명확하여 모듈화가 용이하고 업계표준도 잘 정리되어 있어 생산 외주화가 용이하게 진행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적인 전자산업 대기업들 역시 생산의 외주화, 나아가 탈생산 방식을 채택했다. 가령 애플은 연구개발과 디자인만을 담당하며 생산 일체를 대만계 위탁제조업체(EMS, 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인 폭스콘에 외주화한다. 탈생산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애플과 같은 대기업들은 불황 시 설비 유휴에 대한 비용을 위탁제조업체에 넘길 수 있다. 물론 타 제조업체에 휴대전화 조립을 위탁하는 정도는 기업 간에 차이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노동집약적 생산 부분의 외주화와 핵심부품 생산의 그룹 내부화를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휴대전화 조립은 중소기업들이 전문적으로 담당하지만 (물론 이 경우에도 전량 외주화하는 것은 아니고 자체 생산능력을 유지하며 일부를 외주화한다) 핵심 부품 중 자체 기술을 갖출 수 있는 범위의 부품들은 그룹 내부화하는 형태다. LCD 패널, 메모리 반도체와 같이 기존에 생산 능력을 갖춘 부품 외에도 RF모듈은 삼성전기가, 배터리 모듈은 삼성 SDI와 LG화학이, 카메라 모듈은 삼성테크윈, LG이노텍 등이 담당한다. 이런 방식은 자체 생산과 외주생산을 병행하면서 위탁제조업체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낳을 수 있는 변수를 통제하여, 내부 생산에 따른 위험 비용은 외부화하고 탈생산에 따른 단점은 내부 생산으로 극복하는 이중 체계이다. [그림9] 애플 아이폰4의 부가가치 배분 휴대전화 가치사슬에서도 글로벌 대기업은 하위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생산과정에서의 비용절감을 달성한다. ICT 산업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이미지와 달리, 소수의 고기술 핵심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면 가치사슬 내 대부분 노동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휴대전화 가치사슬은 아프리카 탄광의 강제노동에서부터 폭스콘 공장의 학생인턴과 인도콜센터의 교대 근무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비정규직에 의존한다. 반면 여기서 발생하는 가치는 소수 국가 및 글로벌 대기업에게 집중되어 심지어 대표적인 공급업체들에도 적은 수익만이 돌아간다. 예를 들어 중국의 조립업체가 아이폰4 한 대를 수출해서 받는 대가는 소매가(600달러)의 1%에 그친다. 대부분의 가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고기술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 제조업 국가의 전자제품 대기업과 이 제품을 설계하고 판촉하는 애플에게 돌아간다. 자동차산업과 휴대전화 가치사슬 분석에서 알 수 있듯, 연구개발기획과 마케팅 분야의 강화는 생산과정에서 임금과 고용의 불안정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는 창조경제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노동과정을 표준화, 단순화시킴으로써 노동의 탈숙련화를 통해 노동의 가치저하를 지속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개별 기업이 제품차별화, 시장확보, 비용절감에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과잉축적에 따른 시장 경쟁 격화에 있다는 점은 우리가 어떤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시사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경제위기에 대응해서 ICT 융합과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재개하겠다는 담론으로, 1990년대 이래 유행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론을 한국경제 사정에 맞게 일부 보완한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의 팽창은 금융세계화 및 제조업 아웃소싱의 결과였고 정보통신기술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볼 때 지식기반경제 및 창조경제를 새로운 성장단계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창조경제가 주목하는 ICT 플랫폼,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는 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가치의 더 많은 몫을 재분배받는 기업모델이기 때문에 성장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리고 ICT와 제조업의 융합 역시 각 기업이 경제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여전히 임금과 고용불안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선진국들의 창조경제 실현 전략은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의 재분배 능력을 제고하여 타국으로부터 생산된 가치를 자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은 실물경제의 쇠퇴에 대응하여 환태평양파트너십(TPP)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의 설립을 통해 금융서비스와 기업서비스 수출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재개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결국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받음으로써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재개하려는 시도다.일본의 TPP참여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이와 같은 재분배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유무역을 유지하면서도 수출을 증가시키려는 각국 정책은 국제적인 갈등과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의 재분배 능력을 제고하려는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은 자본의 소유권 강화로 귀결되고, 이는 소득불평등이 심화시켜온 기존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저임금 후진국에 잉여가치의 생산을 집중시키는 반면 고소득 선진국은 금융서비스, 기업서비스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잉여가치를 재분배받는 불평등한 분업이 강화될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소유권 강화에 더해서 임금과 고용조건의 불안정화, 의료교육서비스의 영리화 등으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저성장 속에서 불평등의 확대는 결국 대중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기반경제론과 마찬가지로 창조경제론은 이러한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이 수평성을 강화하고 개인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돕는다는 믿음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와 연결된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수직적 위계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대체하고 있고, 국가와 기업은 개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북돋기 시작했으며, 임금과 고용의 불안정은 오히려 역동적인 삶을 의미할 수 있다는 식이다. 1990년대 신지식인 담론 이후 꾸준히 확산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작년 총대선에서 IT벤처기업 출신의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지지로 그 힘을 발휘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김대중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 담론의 진정한 의미는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있다.
노동자를 위한 국민연금을 만들자 주식시장의 ‘큰 손’이 되어가는 국민연금기금 국민연금은 현재 400조 원을 넘어선 기금 자산 중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을 향후 더 높이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29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중기(2014~18년) 자산배분(안)을 심의‧의결하였다. 이 내용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기금운용의 목표 수익률은 6.1%이고 이를 위해 2018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30%이상으로, 대체투자 비중을 10% 이상으로, 채권투자 비중은 60% 미만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2012년 말 주식투자 비중이 26.7%, 대체투자 비중이 8.4%이므로 향후에 채권투자는 줄이고 주식투자, 대표적 대체투자인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부동산투자를 늘린다는 의미다. 채권에서도 해외채권 투자를 늘릴 예정이다. 언론에서는 ‘국민연금 주식투자 200조원 시대’가 열린다고 보도한다. 2012년 말 연금기금 중 주식투자 금액은 104.8조 원이다. 2018년 연금기금이 669조 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되는 바, 그 중 주식투자 비중이 30%라면 200조원이 넘는 것이다. 200조원은 현재 코스피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0%에 가깝다. 5대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주식을 모두 사고도 남는 돈이다. [%=사진1%] 기금고갈을 걱정하면서 주식투자를 늘린다? 왜 연금기금이 주식투자를 늘리는 것일까? 정부는 투자다변화를 통해 연금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재테크 상식’으로도 틀리지 않은 말처럼 보인다. 자산을 분산해서 투자하면 한 곳의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크게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러한 논리의 근거가 된다. 지난 3월의 재정 추계 결과에서도 “국민연금 2060년 고갈”이 강조되었다. 현재 보험료와 연금 급여 수준이 유지된다고 했을 때, 2045년부터 적자가 커지면서 2060년에 쌓아둔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2060년은 현재 18세의 청소년이 연금을 지급받는 65세가 되는 시점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자신들이 모아놓은 기금의 운용 수익이 높아지면 기금 고갈을 막거나 최소한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연기금이 축적될수록 금융자본에게 이득 그러나 정부는 기금이 고갈되어도 연금은 지급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왜 그럴까? 기금고갈을 걱정하기 전에 연금의 원리인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의 차이를 이해해야한다. 부과방식은 한 해에 노인들에게 지급될 연금 재원을 그 해의 자본의 이윤과 노동자의 소득으로부터 거두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노인 비율이 높아지고 성장률이 악화될수록 부담이 커진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적립방식이 제기된다. 적립방식은 기금을 축적해서 그 기금의 운용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완전적립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은 부분적립방식을 도입했다. 운용 수익만 가지고 연금을 지급할 수 없는 부분적립방식 역시 노인 비율이 높아지고 성장률이 악화되면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자로 인해 기금이 고갈되면 그 때부터는 그 해 돈을 거둬서 그 해에 사용하는 부과방식으로 연금의 운영원리를 바꾸면 된다. 적립방식은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된다. 연기금은 증시가 침체할 때마다 주식 매수를 통해 ‘주식 구원투수’로 불려 왔다. 이렇게 자본시장이 활성화 될수록 금융자본이 거래를 중계하면서 얻는 수익은 커지게 된다. 또한 연기금을 위탁받아 직접 운영하면서 막대한 운영수수료를 챙기는 등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연기금이 커지고 주식투자가 확대될수록 금융자본에게 더 이득이 되는 것이다. 2012년 주식과 채권의 국내위탁운용 규모는 60조 원에 달한다. 50조의 해외 주식, 해외 채권 역시 대부분 해외운용사에 위탁운용이 된다. 해외운용사의 위탁수수료만 1000억 원에 달한다. 국내운용사 역시 이득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의 돈놀이, 노동자에게 이득일까? 국민연금이 높은 운용 수익을 올린다고 노동자 개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노후에 받는 연금은 연금에 가입한 기간과 자신이 낸 보험료에 따라 연금급여는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운용 수익이 많을수록 기금이 더 쌓이고, 기금 고갈 시기가 늦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식투자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높은 위험성 또한 동반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코스피 지수는 1000에서 2000을 널뛰기 해왔다.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회보장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더욱 노출시키는 것이다. 또한 연기금 주식투자의 확대는 주주행동주의, 즉 기업이 단기적 이윤추구를 최우선시하는 경영 방식을 강화시킨다. 노동자들의 사회보장을 위한 자금이 오히려 주식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정리해고, 인력감축, 비용절감, 노동강도 강화를 요구하는 부메랑이 되어 노동자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든다. 노동자를 위한 국민연금을 만들자 현재 국민연금제도는 기금운용 뿐만 아니라 제도 전반이 모두 금융자본의 이해에 종속되어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매년 소득보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을 강화할 계획은 없이 퇴직연금, 민간보험에 가입해서 개인적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할 때 국민연금 가입자를 차별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국민연금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재정적으로, 제도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연금을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노후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로 확립해야 한다.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서 국민연금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라는 요구를 통해 노후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연기금의 운용방향 역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 현황과 문제점 (철도 및 가스 등 에너지 산업) - 공공운수노조연맹 철도 민영화 관련 정책 건의서 - 철도노동조합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추진에 제동을 걸자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추진했으되 통과시키지는 못했던 몇몇 민영화 사안들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에게로 넘어왔다. 영리병원 설립, 인천공항 민영화, 면세점 민영화, 수서발KTX민영화, 가스 직도입 허용 등이 그것이다. 당선 이후 상당히 신중한 행보를 보여 온 박근혜 정부는 최근 들어 공공부문 민영화를 위한 수순을 하나하나 밟으며 미뤄둔 ‘과제’들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사진1%] 뒤집어진 약속, 국민적 합의와 철도발전 지난 5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철도 산업 민간 검토 위원회’의 이름으로 현재 검토 중인 철도 산업 개편 계획을 언론에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하는 자회사가 수서발KTX의 운영권을 지니게 된다. 자회사의 지분은 코레일이 30% 미만으로 소유하고 나머지는 공공 연기금으로 채우는 안을 고려중이라 한다. 코레일의 지분이 30% 미만인 것은 공기업의 지분이 30% 이상일 경우 공공기관으로 지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안은 그 동안 검토해 왔던 ‘제 2공사 건설’이나 ‘민간으로의 지분 매각’에 관한 비판을 요리조리 피해가기 위한 미봉책 혹은 단계적 민영화 정책에 불과하다. 공공 연기금으로 채워져 있는 정부 기금은 언제든지 매각 가능하며,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수서발KTX뿐만 아니라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 등 기존 적자노선이나 신규로 건설하는 철도 노선들 역시 코레일과 분리된 자회사에 소속시키고 여기에는 민간 참여까지 가능하게 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모든 계획의 명분으로 들고 있는 것은 철도산업 독점 구조가 가져오는 폐해 극복을 위한 ‘경쟁 도입’이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허구적인 쟁점이다. 기본적으로 철도는 시민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재화이다.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가는 노선은 독과점 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의 참여는 결국 ‘나눠먹기’가 된다. 철도는 건설비용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건설비용 부담이 없는 운영자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손쉽게 수익을 보장받는다. 예를 들어 보면, 건설비용이 19조에 매해 흑자가 3500억 선으로 예상되는 KTX의 운영권의 판매 금액은 현재 4500억 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민간사업자의 철도산업 참여에 재벌 특혜 논란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대체 경쟁은 어디에 도입되나? 새로운 사업자의 참여는 철도 산업 전반에서 임금 삭감, 인원 감축, 고용유연화를 통한 비용 절감 경쟁을 촉진할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사태에서처럼, 민영화 추진의 이면에는 반드시 ‘노동’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조건의 하락은 당장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 위험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속적인 인력 감축을 추진해 왔던 철도는 이로 인해 검수주기가 늘어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철도 정책 추진 이전에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을 먼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 돌아보면, 당시 언급했던 ‘국민적 합의’는 정부의 입맛에 맞게 구성된 ‘민간위원회’에서의 졸속·밀실 논의로 대체되었다. 민간위원회가 철저히 국토부의 거수기 역할을 위해 꾸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4명의 위원들이 ‘국토부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사퇴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철도산업의 장기 비전 마련’이라는 과제는 철도산업을 갈기갈기 찢어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계획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자들과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말을 하고 들으면서도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캠프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노동자서민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나라라는 사실이 다시금 분명해지는 시점이다. 에너지 재벌의 성장과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 가스, 전력 등의 에너지 분야는 90년대 중반 이후 민간 부문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직접 매각 방식의 민영화가 추진되지는 못했다. 거세게 일던 반대 여론 때문이다. 대신에 민간사업자들에 가스 직수입, 발전소 건설을 조금씩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공공 부문의 영향력을 상대화 해왔다. 현재 민간발전 4대 메이저 기업은 포스코, SK, GS, 엠피씨 등으로 이들은 전력 뿐 아니라 가스 직수입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내 천연가스 중 47%는 발전의 연료이기 때문에 발전회사와 가스 직수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현대와 삼성까지 천연가스 직수입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는 판이다. 정부가 민간사업자들에게 천연가스 직수입의 길을 열어준 것에 더해 물량의 교환, 판매까지를 보장해주는 법 개정이 6월 임시 국회에 상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10명의 국회의원이 지난 4월 9일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천연가스 직수입기업은 “수급 안정 및 일정사유 발생 시 직수입자간, 해외, 가스도매사업자에게 판매 가능”해진다. 개정 법안이 업자 간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는 하나, ‘일정 사유 발생 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실제로는 에너지 재벌에게 천연가스 시장을 좌지우지할 공급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민간자본은 철저히 수익의 논리에 맞추어 움직인다. 가스 가격이 싸면 대량으로 구입하지만, 비싸면 구입 양을 대폭 줄여 리스크를 모면한다. 반면 가스공사는 부족한 물량을 채워주고, 남는 물량을 처리해주며 국내 천연가스 전반의 수급안정 담당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2007년 국제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GS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GS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가스공사는 단기 스팟시장에서 비싼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당시 SK는 아예 3개월 간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 버렸다. SK의 발전중단으로 인해 다른 발전소는 가동률을 높여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발전용 수요가 높아지자 도시가스 수요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천연가스 직수입제도 개정안은 가스 공급을 철저히 재벌지배에 귀속되게 한다. 천연가스의 공공적 정책운용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가스공사가 천연가스 수급 불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기계약보다 단기계약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스공사가 공급하는 가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수요가 민간 수입자 쪽으로 이탈하면 가스공사는 영업이익 유지를 위해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가스민영화가 추진되어 30여개 종합상사, 10여개 발전회사 및 도시가스회사가 가스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일본의 도시가스 요금은 평방미터당 2199원이다. 847원의 한국 도시가스 요금과 비교했을 때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치솟는 가스비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에 떨어야 하는 저소득층일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양상의 민영화 정책 추진에 맞서자 민영화 반대 운동이 성장하면서 정부는 점점 더 우회적, 단계적인 방식으로 공공부문에 민간사업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민간사업자의 가스 직수입을 허용해주었던 것, 외국인 학교, 영리병원 건설을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허용해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정권 초 한꺼번에 밀어붙였던 민영화 시도가 좌절된 이후에는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 등으로 법안 개정 없이 교묘히 민영화를 추진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선진화’, ‘경쟁체제 도입’과 같은 말장난이 시작된 것도 이 때이다. 박근혜 정부도 비슷한 전략을 택하고 있다. 분야별로 경쟁 도입, 위탁 운영, 규제 완화, 단계적 매각 등의 우회적인 방식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며 국민들의 눈을 속이려는 것이다. 이명박이 일으켰던 것과 같은 소란을 최대한 피하며 조용히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임무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철도, 가스뿐만 아니라 의료, 상수도, 공항, 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화 정책이 선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복잡해보일지라도 이들 사안의 본질은 정확히 같다. 증세 없는 복지재정 확대로 인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공적인 영역들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은 경쟁과 수익성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노동자 서민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109개 단체로 구성된 ‘민영화 반대 공동행동’은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를 집중투쟁주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공공운수노조를 포함한 공동행동의 단체들은 출근 선전전, 주·야간 선전전, 촛불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다. 민영화 저지 투쟁은 박근혜 정권과의 첫 싸움이다. 우리에게는 철도/가스/발전 노동조합의 공동 파업으로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계획에 제동을 걸었던 2002년의 기억, 몇 달간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어 집권 초의 이명박 정부를 식물 정부로 전락시켰던 2008년의 기억이 있다. 우회적, 기만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 정책들에 맞서는 투쟁은 분야별로 고립 분산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투쟁의 논리와 계기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중운동 전체가 이 투쟁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
[금융과 노동] KEC, 역외탈세 비자금 그리고 노조탄압,
떼인 임금 특별법이라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