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정부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한국의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재 캄보디아 정부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탄압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바이다. 1월 2일과 3일에 걸쳐, 캄보디아에서는 의류 및 봉제 산업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벌이고 있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파업에 대해 경찰과 군대가 실탄 사격을 포함한 무자비한 진압을 자행하여 최소한 5명이 사망하고 23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부상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수가 당국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최소 10명의 노동자들이 경찰과 군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2013년 12월 23일부터 평화롭게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캄보이다 정부가 무력진압을 시도하여 유혈충돌이 벌어진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혈 충돌은 1월 2일에 노동자들이 Veng Sreng 거리에 평화행진을 캄보디아 당국이 불허하면서 촉발되었다. 국내외 언론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찰과 군대는 쇠파이프와 칼, 전기 곤봉은 물론 AK-47소총을 동원하여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였다. 그 결과 캄보디아 IDEA( Independent Democracy of Informal Economy Association, 비공식부분노동자협의회)의 Vorn Pao 대표와 CCFC (Coalition of Cambodian Farmer Communities, 캄보디아 농민공동체연합회)의 Theng Savoeun 간사를 포함한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캄보디아 폭행당한 후 체포당하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노동자들은 타이어를 태우고 도로를 점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월 3일 아침, 군대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하여 최소한 5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왜 캄보디아 정부가 최저인금인상이라는 정당한 요구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은 캄보디아 정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려움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시민들이다. 현재 캄보디아 의류 및 봉제업종의 최저임금은 월 75/80달러로 노동자들이 생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하기에 캄보디아 정부의 주도하에 만든 노동자문위원회실태조사작업반은 최저임금을 월 157달러에서 177달러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권고하였다. 캄보디아에서의 의류 봉제 산업은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35만 명에 달하는 의류노동자들은 캄보디아 경제에 중요한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의류노동자들은 노동빈곤층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가 및 생활비는 상승하고 있음에도 임금인상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노동자들은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불안정한 계약을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생활비를 벌기위해 장시간 연장 및 휴일근로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4000명의 노동자들이 작업 중에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노조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사용자와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따라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2013년 12월에 정부최저임금을 157달러에서 177달러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노동조합과 노동자문위원회실태조사작업반이 권고 했음에도 100달러 수준으로만 인상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캄보디아 노총과 노동조합들은 이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25만 명의 캄보디아 의류 및 봉제 산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이며, 12월 26일까지 127개 공장에서 파업이 진행 중 이다. 국제 노동기준과 캄보디아 헌법 및 노동법에 따라 정당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캄보디아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캄보디아 정부를 규탄하는 행동이 조직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한국 업체들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한국 의류업체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은 비단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필리핀, 니카라과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는 캄보디아 의류생산자 협회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임금이 인상될 경우에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 이번 무력진압의 한 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한국 업체들이 사태수습을 위한 대화에 나서기보다 피해를 입었다면서 캄보디아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한국에서도 걸핏하면 파업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걸어 파업을 무력화해온 못된 행태를 캄보디아에서도 되풀이하려는 것에 우리는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현지 한국 대사관 및 관련기관이 한국 기업이 인권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소송과 같은 국제망신을 초래하는 노동권탄압 행위에 협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물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하는 바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캄보디아 정부는 즉각 무력진압을 중단하고 모든 연행자들을 석방하라! 하나, 캄보디아 정부는 무력진압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나, 캄보디아 진출 한국 업체들은 국제망신 자초하는 손해배상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노동조합과의 대화에 나서라 하나, 한국정부는 UN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및 ILO협약,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현지 한국기업들이 인권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하라 2014년 1월 6일 공익법센터 어필/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국제민주연대/노동자연대다함께/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사회진보연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좋은기업센터/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인권운동사랑방/인천인권영화제/유엔인권정책센터/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을 중심으로 이 글에서 나는 미국 제2노총인 승리를위한변화(Change to Win, CtW)의 월마트 세계 공급사슬 사업에서의 짧은 공동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국제 노동자운동에서 새로운 노동조합 국제연대로 제기되고 있는 공급사슬 조직화 전략을 평가하고자 한다. CtW와의 첫 만남 CtW와 나의 인연은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2010년 11월이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안정적인 활동 공간을 찾고 있었다. 서울에서 선진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될 즈음 CtW 활동가 2명은 이에 대응하는 민중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 서울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민주노총과 교류관계가 없어 미국의 어떤 재미교포 단체를 통해서 나의 연락처를 얻어 메일을 보내게 됐다. 연락한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에 파견된 CtW 채용활동가였고 둘 다 이름이 ‘닉’이었다. 당시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와 롱비치 항을 통해 수입된 물류를 보관하는 인랜드엠파이어 창고단지의 파견노동자를 조직하는 창고노동자연합(Warehouse Workers United, WWU) 전략조직화 사업에 파견되어 사업 코디네이터(총괄 담당)와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메일에서 창고노동자연합을 소개하면서 “이 노동자의 잠재력(untapped potential)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같은 공급사슬로 연결된 물류노동자와 교류하고 싶다며 특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에 내가 속한 노동자운동연구소는 공공운수노조연맹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간담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 간담회는 내가 CtW뿐만 아니라 공공운수노조연맹과도 인연을 맺고 공급사슬 조직화를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왜 월마트인가? 간담회에서 닉과 닉은 미국에서 진행되는 월마트 매장노동자와 창고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대해 발표하였다. 월마트는 미국의 최대 소매 기업이며 140만 명을 고용하는 미국의 최대 고용주이다. 월마트가 미국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 때문에 미국 노동자운동은 수십 년 동안 월마트 매장 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 모든 노력은 실패로 귀결됐다. 그 핵심 이유는 월마트의 무노조 경영이었다. 삼성과 유사하게,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월마트 사측의 압박과 해고 위협에 처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CtW 가맹조직인 북미식품상업노동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International Union, UFCW)은 CtW의 지원으로 새로운 방식의 조직화를 다시 시도하고 있었다. UFCW와 CtW가 미국 노동자운동의 전통적인 조직화 전략, 즉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과반(‘50% + 1명’, 미국 노동법 상 교섭대표노조로 인정되기 위해서 필요한 비율)이 중앙노동위원회(NLRB)가 실시하는 노조설립 투표에서 노조에 찬성하도록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조직화 전략을 포기하고, 대신 ‘오픈소스’(open source) 또는 ‘소수 조직화’(minority organizing)라고 불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UFCW와 CtW는 월마트 매장 노동자들이 지역이나 사업장과 상관없이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전(全)월마트 노동자협의회를 조직하고 있었다. 조직이 열려 있고 노동자는 노동탄압에 대한 큰 두려움 없이 쉽게 참여할 수 있어서 ‘오픈소스’라고 부른다. 동시에 월마트의 도덕적 폐해를 폭로하는 캠페인, 월마트의 대도시 진출을 막기 위한 지역사회단체와의 공동활동, 그리고 명절과 같은 성수기에 월마트를 압박하는 가시적인 직접행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 전략을 통해서 2010년부터 현재까지 UFCW와 CtW는 수천 명의 월마트 매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총 14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월마트 노동자의 일부에 불과하고 공식 노동조합 설립까지 갈 길이 멀지만, 과거의 조직화 사업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 사실이었다. 창고노동자연합은 CtW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이다. CtW는 몇 년 동안 인랜드엠파이어 전체 창고를 대상으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다가 한국의 공공운수노조연맹과의 간담회 전년도부터 월마트 전용 창고에 집중하고 있었다. 월마트 전용 창고가 많고 창고노동자의 투쟁이 월마트에 강한 압박을 행사하여 매장 노동자 조직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닉과 닉은 월마트의 세계 공급사슬 구조도 설명하였다. 사실 월마트는 미국 최대 소매 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연간 매출이 4천5백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초국적기업이자 전 세계에서 240만 명 이상을 직접고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고용자이기도 하다. 월마트의 세계 공급사슬은 중국에서 남미까지 연결되어 있고, 이들이 취급하는 상품도 의류, 식품, 자동차 소부품 등 다양한 산업과 업종을 망라하고 있다. 이 공급사슬로 연결되는 수백 만 명의 생산 및 물류 노동자는 대부분 파견, 용역,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세계 최대 초국적 소매 기업으로서 월마트는 그 규모와 구매력을 활용하여 자신과 계약한 하청 및 용역업체들에게 단가인하를 지속적으로 강요한다. 또한 적시에 소규모의 물량을 신속 정확하게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해 월마트 하청용역 업체에 속한 수백 만 명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화,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고강도 노동과 노조탄압에 시달린다. 이는 사실상 월마트가 여러 나라에 걸친 공급사슬을 완전히 통제하며, 이에 속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원청의 지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세계 최대의 구매자이자 수입자로서 월마트는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유사한 비용절감 전략을 쓰도록 함으로써 월마트의 공급사슬에 속하지 않은 훨씬 많은 노동자들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마디로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CtW의 제안 닉과 닉은 사업을 제안했다. 한국 내 월마트 공급사슬의 ‘지도를 그리고’(mapping) 그 공급사슬에 배치된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의 공동투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다음 네 가지 전제에 입각하였다. (1)한국의 수출 공급사슬과 미국의 수입 공급사슬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삼성과 LG의 전자제품을 비롯한 여러 한국산 제품들이 월마트 매장에서 팔린다는 사실이 첫 번째 근거였고, 선적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파악된 부산항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는 연 수십 개의 선적(shipment)이 두 번째 근거였다. (2)월마트는 한국의 수출 공급사슬에 대해 절대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3)한국 수출품을 운송하는 물류 노동자의 잠재력은 세계 최대 초국적 기업인 월마트를 타격하기에 충분하다. 닉과 닉은 한국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칠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태국, 남아공 등 여러 나라에서 월마트 공급사슬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세계 최대 초국적기업의 공급사슬로 연결된 여러 지역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주나 국경을 넘어서 더 넓은 관점을 가지고 행동을 조율할 수만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명 이는 현재 수준에서 과도한 전망이었다. 이러한 구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CtW의 기원과 그 핵심 조직인 북미서비스노동조합(SEIU)의 조직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SEIU와 CtW: 크고 포괄적인 캠페인 한국에서 CtW는 미국 제2노총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미국노총(AFL-CIO)에서 몇몇 산별연맹들이 분리하여 새 노총을 결성하였고, 현재 SEIU, UFCW, 북미화물운송노동조합(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he Teamsters, IBT), 북미농업노동조합(United Farm Workers of America, UFW) 등 4개 가맹 조직 약 550만 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CtW 가맹 조직들이 미국노총에서 탈퇴하여 CtW에 가맹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미국노동조합의 조직률 하락과 조직화 모델을 둘러싼 논쟁이 주요한 계기였다. 1980년대부터 조직화 노선을 주장한 SEIU와 같은 노조들은 2000년대 초까지 AFL-CIO의 변화 속도가 더디고, 또 AFL-CIO에 내는 조합비의 상당 비율이 민주당 후보 지지 사업에 쏟아지는 상황에 대해 많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국외 이전이 불가능한 서비스유통물류 산업에 종사하는 수천만 미국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조직화 사업에 노동자운동이 가장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2005년 AFL-CIO에서 탈퇴하고 CtW를 결성한 것이다. CtW는 재정의 75%를 배치해서 전략조직화센터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1)가맹조직들의 조직화사업 조정, (2)대규모 조직화사업의 설계와 실행, (3)전략조직화사업을 위한 조사연구 (4)조직 확대를 위한 세계적 동맹 구축과 강화를 목표로 했다. CtW는 사업을 전략조직화센터로 집중시켰고, 그 밖의 부차적 기능은 애초부터 최소화했다. 유일한 목표, 즉 대규모 전략조직화 사업을 통한 조직률의 급속한 상승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제2노총은 형식적으로 SEIU의 상급단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SEIU의 ‘자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SEIU는 1980년대부터 조직화가 불가능하다고 간주된 저임금,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전국적 조직화사업을 벌이고 지부 통합을 통해서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SEIU의 조직화전략은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을 가진다. 첫 번째가 규모이고 두 번째는 포괄성이다. 규모라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노조 설립에만 관심을 국한할 경우, 어느 사업장이든 노동법 상 노조 인정에 필요한 ‘50% + 1명’ 노조 찬성률을 달성할 때까지 조직대상 노동자를 차례로 가입시키고 사용자의 탄압을 이겨내 공식 노조설립 투표를 실시하면 된다. 이것이 전통적인 미국 노동자운동의 조직화 전략이었다. SEIU는 이를 포기하고 대신 경제적으로 중요한 전국 범위 고용주를 전략적으로 선정하여 공식 노조설립 투표 없이도 사측이 노조 설립을 한 번에 인정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포괄성은 그 압박을 행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현장조직화, 지역사회연대, 언론사업, 정치활동, 부정부패나 도덕적 폐해를 폭로하기 위한 기업 상대 캠페인, 주주전략 등 다양한 전술을 ‘포괄적 캠페인’으로 통합함으로써 고용주가 회피할 수 없도록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CtW를 통해서 SEIU는 포괄적 캠페인 전략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자 했다. CtW는 다산업적, 전국적, 나아가 세계적인 조직화 사업을 계획했다. 전략조직화센터는 조직화사업의 매개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SEIU 부위원장 톰 우드러프(Tom Woodruff)가 센터 소장을 맡고 SEIU 출신 활동가들은 CtW에 대규모로 진출했다. 물류 노동자의 잠재력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SEIU와 CtW의 야심찬 계획이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의 하나의 계기였다면, 1980년대 신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한 물류혁명 이후 물류노동자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과 관심도 또 다른 계기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킴 무디(Kim Moody)와 같은 노동자운동 분석자들은 적기(JIT) 공급 체계에 내재한 공급사슬의 취약성과 함께 공급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물류 노동자의 잠재적 힘을 주장해왔다. 『비용절감 세계의 노동자』(Workers in a Lean World[한국어판: 신자유주의와 세계의 노동자, 문화과학, 1999])에서 무디는 1997년 1월 국제운수노련(ITF)이 사업장 폐쇄에 직면한 영국 리버풀 머지사이드 항만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서 조직한 국제행동을 기록한다. 세계 100개 이상 항만에서 하역운수 노동자들이 이 행동에 동참했고, 미국, 일본,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파업에 돌입하거나 리버풀로 향하는 컨테이너의 운송을 거부하는 행동에 나섰다. 이 투쟁에 대해서 무디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세계 무역 중심점에서의 국제행동의 전망, 새롭고 더 통합된 국제 생산체계의 또 하나의 허점을 시사했다. 세계 몇 개 주요 항만에서의 파업투쟁은 무역과 해외로 향하는 컨테이너의 적기 공급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머지사이드 항만노동자는 항만, 해운, 기타 운송업 뿐 아니라 취약한 운송 체계에 의존하는 모든 초국적기업의 권력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계 노동자운동에게 보여줬다.” 이로부터 약 10년 뒤에 엔나 보나시츠와 제크 웰슨은 물류혁명 이후 한편으로 물류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노동조건 저하, 또 다른 한편으로 물류 노동자의 잠재적인 파급력에 대해 책을 썼다(Edna Bonacich and Jake B. Wilson, Getting the Goods: Ports, Labor, and the Logistics Revolution, Cornell University, 2008). 이 책에서 두 필자는 월마트와 같은 초국적 소매 기업이 적기 생산공급과 물류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서 제일 많은 이익을 보는 이해관계자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공급사슬 중심 전략을 제안한다: (1)공급사슬 내 강한 노조 파악, (2)공급사슬 지도 그리기(mapping), (3)투쟁 대상 선정, (4)투쟁의 범위 설정, (5)허점을 파악해서 타격. 다른 글에서 보나시츠와 웰슨은 같은 관점에서 월마트의 공급사슬을 검토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동착취로 가득 찬 월마트 세계 제국에서 국내외 판매 노동자, 월마트의 수천 공급업체에서 일하는 각지의 노동자, 세계 각 지역에서 매장까지 물품을 운송하는 노동자 모두를 포괄하는 연대체를 구축하고 월마트에 맞선 투쟁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중략) [이러한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월마트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저임금만 준다’는 경영 철학을 바꾸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 캠페인에서 물류 노동자가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생산된 물류는 공동행동에 특히 취약한 항만과 주변 운송, 창고 거점과 같은 결정적인 관문(critical choke points)을 통과해야 한다. 세계 물류는 세계 생산체계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다.” 닉의 말에 의하면 이들의 글은 CtW 창고노동자연합에게 일종의 ‘바이블’이었다고 한다. 월마트 공급사슬사업의 전개 창고노동자연합이 하나의 ‘결정적인 관문’에 위치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닉과 닉이 공공운수노조연맹 간담회에서 제안한 사업은 전체 체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아시아지역에서 수많은 납품업체들이 월마트를 위해서 물량을 생산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물량을 운송하고 있다. 이 물량의 환적 중심지는 부산항이다. 부산항을 마비시킬 수 있는 화물연대를 비롯해 아시아 전체 공급사슬 노동자들이 함께 행동에 나설 수 있다면 세상, 아니 최소한 월마트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간담회 이후에 닉과 닉은 노동자운동연구소에 사업을 제안했다. 한국 내 월마트 공급사슬, 그 공급사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조직화 가능성을 조사하자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한국에서만 진행된 사업은 아니었다. CtW는 칠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월마트를 상대로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노동자를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활동 공간을 모색하던 나는 CtW와 함께 아시아지역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을 시작했다. 이 글에서 한국 공급사슬 조사결과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2011년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펴낸 보고서 「월마트의 한국 공급사슬」(Wal-Mart’s South Korea Supply Chain, 2011년)을 참조할 수 있다. 핵심 결론은, 월마트에 납품되는 물량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생산되거나 부산항에서 환적되긴 하지만 한국 물류 노동자나 생산 노동자는 월마트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닉과 닉이 중요시 한 월마트에서 판매되는 삼성 전자제품은 한국에서 생산되고 월마트에 직접 납품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생산지에서 만들어지고 조립된 후 삼성의 미국 현지법인에 먼저 납품된다. 월마트와 삼성 간의 모든 거래는 미국 현지에서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월마트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았다.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은 주로 (1)공급사슬 지도 그리기, (2)사업파트너 발굴, (3)공동활동 추진 및 사안 발생 시 국제적인 이슈화와 대응 등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 단계들이 순차적인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나라마다 달랐고 한 나라에 두 개 이상의 단계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첫 단계는 위에서 설명한 공급사슬 지도 그리기였다. 현지 연구기관과 협조를 통해서 국내 공급사슬과 그에 속한 노동자의 현황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의 의류노동자, 칠레의 농산물을 운반하는 창고노동자, 태국의 새우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버마와 캄보디아의 이주노동자 등을 주요 대상으로 선정했다. 두 번째 단계는 현지 파트너 발굴이었다. 월마트 대상 캠페인에 협력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를 만나서 월마트 캠페인의 중요성과 그에 동참해야 하는 의의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내가 접촉한 파트너는 다양했고 그 중 훌륭한 조직들이 많았다. 태국에서 만난 조직을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군주제와 억압적 노동법 제도라는 환경 속에서 태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약 3%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은 76개 주 중에서 39개에만 존재한다. 대다수는 방콕 수도권 지역에서만 활동한다. 18개 노동조합연맹과 13개 노총이 존재하지만 가맹률은 매우 낮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수백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태국 내에서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미등록체류자라는 사실과 이주노동자의 노조활동에 대한 법적 제약 때문에 이들을 조직하려고 노력하는 노동조합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CtW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식품노조 대신 이주노동자 권리를 꾸준히 주장해온 공공노총(SERC)과 새우가공공장 밀집지역인 마하차이에서 활동하는 500여 명 회원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단체인 이주노동자권리네트워크(MWRN)를 사업파트너로 삼았다. 캄보디아의 경우, 프랑스 식민화, 독립운동, 베트남 전쟁, 크메르 루즈 통치, 미국의 폭격과 이후 내전이라는 130여 년의 상흔 가득한 역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야 노동조합이 광범위하게 설립되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운동 역사가 채 20년도 안 된 상황이다. 아직도 민주노조 활동은 일상적 탄압과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노조가 존재하는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1개 이상의 어용노조가 존재한다. 캄보디아에서는 5개 캄보디아 노총 중에 유일하게 독립성을 유지하는 캄보디아노총(CLC)과 민주노조 운동 지원조직인 커뮤니티법률교육센터(CLEC)와 손을 잡게 되었다.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점에서 의류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서 의류브랜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수십 년 동안 활동한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와 같은 대형 비정부기구(NGO)들도 꾸준히 접촉했다. 세 번째 단계는 공동활동 추진이었다. 공동활동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었다. 애초의 목표는 공동조직화 사업이었다. 노조가 없는 월마트 공급사슬 노동자를 찾아내고 노조 설립 투쟁을 통해서 월마트가 공급사슬에서 가하는 착취를 폭로하고 공급사슬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수많은 이유 때문에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인적재정적 자원이 매우 제한적인 것은 물론이고 접촉한 대부분의 조직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없었고 조직적 여건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CtW가 제시한 사업 시한도 매우 촉박했다. 공급사슬 활동은 2011년 말쯤 시작했는데 애초에 제안한 목표는 이듬해 추수감사절에서 새해까지 이어지는 명절 시즌에 미국의 매장창고 노동자와 함께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파트너 조직들이 주도하는 조직사업을 지원하는 형태로 공동활동을 벌일 수 있었고, 대부분 지역에서는 언론사업과 연대활동을 통해서 월마트 공급사슬에서 발생한 사안에 대해 월마트의 연관을 폭로하고 책임지도록 요구하는 형태로 공동활동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사업을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지역은 캄보디아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사업 사례를 검토하겠다. 2011년 하반기에 CLC를 비롯한 여러 캄보디아 조직에 접촉한 후 2012년 초에 CLC에 사업을 제안했다. 지도 그리기 사업을 통해서 파악된 월마트 납품 의류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고, 공급사슬의 구조와 월마트의 책임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현장사업을 진행하면서 월마트에 요구하고 압박할 수 있는 다사업장 위원회를 구성하고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CtW는 외부 재단을 통해서 소액의 재정을 확보하였고 CLC는 월마트 공장에 전념할 수 있는 조직활동가 2명을 채용하도록 지원하였다. 사업담당자인 닉과 나는 캄보디아를 여러 번 방문해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고 스카이프와 같은 온라인 통신을 이용해서 사업 방향을 논의하고 진행 현황을 점검했다. 조직화사업은 2012년 중순부터 2013년 초까지 진행되었다. 이 사업의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채용 조직활동가의 노력으로 여러 신규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접촉하고 일부에서 노조를 설립하기도 했다. CLC 주요 임원과 간부들의 경우 이 사업을 통해서 월마트를 비롯한 세계적 브랜드들이 의류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브랜드 대상 사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었다. 현장에서 표출되는 노동자의 불만과 때때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투쟁을 언론사업, 온라인 서명운동, 미국 내 소규모 연대행동 등 상층 활동을 통해 월마트의 공급사슬 통제와 연결시킴으로써 월마트의 이미지에 일정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제일 성공적인 사례는 월마트와 에이치앤엠(H&M)에 공급하는 킹스랜드라는 의류업체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는 사실 CLC의 조직화사업과 무관했다. 2013년 초에 사업장 폐업으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 200여 명이 2개월 동안 공장 앞에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CtW와 CLC의 지원으로 H&M과 월마트에 보상 요구안을 제출하였고 CtW는 꾸준한 언론사업과 연대사업으로 월마트를 압박하였다. 결국 3월에 H&M과 월마트 대표는 노동자와 지원 조직을 만나서 보상에 합의하였다. 결과적으로 월마트가 직접 보상하지 않고 중간 구매업체가 부담하긴 했지만, 월마트 대표가 캄보디아 공급사슬 노동자의 요구를 인정하고 만나기까지 한 첫 사례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몇 가지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이나 시민, 노동자운동은 지리적으로 먼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일보다 국내 상황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월마트의 캄보디아 공급사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한 노력이 한계에 부딪혔다. 더 중요한 문제는 CLC가 여러 현장의 투쟁을 주도, 조율, 통합,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주객관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다사업장 투쟁을 계획하고 추진한 경험이 사실상 없었고 그렇게 하기 위한 역량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지도부와 간부 사이에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동일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짧은 기간 안에 애초 제안한 다사업장 월마트 노동자위원회를 구성하지는 못했고, 1년간의 사업 후 양쪽 파트너는 사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상 각 나라에서 진행된 사업은 제각기 다른 특징이 있지만 부딪혔던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사업을 진행한 후 현재 재정 부족을 이유로 월마트 공급사슬 캠페인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의 성과와 한계 나는 여기서 월마트 공급사슬 캠페인의 주요 한계가 대상국 노동자운동의 취약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를 비롯해 각 나라에서 접하게 된 특수한 역사적사회적조직적 조건은 시작부터 주어진 조건이었다.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할지 판단하는 것은 공급사슬 사업을 추진하려는 CtW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문제는 CtW가 각 지역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 한계를 극복하고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시간과 인내심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담당 활동가의 상과 목표와 월마트 캠페인 지도부의 상과 목표는 상이했다. 닉과 닉은 공급사슬의 약한 고리에 실제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직화 사업을 구상했다.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사업을 추진하려면 훨씬 더 장기적인 계획과 훨씬 더 큰 인적재정적 투자가 필요했다. 반면에 월마트 캠페인 지도부는 대체로 공급사슬 사업을 월마트의 이미지를 타격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의 하나로 보았다. 제한적인 인적재정적 자원으로 월마트 공급사슬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안의 언론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즉, 월마트의 비용절감 전략으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권인권 침해를 폭로하고 이슈화시키는 수준, 여타의 기업 상대 캠페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사업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따라서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담당 활동가의 목표가 다분히 이상적이고 장기적이었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캠페인은 짧은 시한과 단기적 목표에 긴박당해 있었다. 다른 한계는 월마트 캠페인의 선정 범위에서 유래했다. 월마트 캠페인의 우선적 목표는 월마트를 압박해서 매장에서의 노조 설립을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월마트 공급사슬에 속한 하청 기업들은 월마트 뿐 아니라 여러 초국적기업에 납품함에도 불구하고 CtW는 복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을 지원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월마트만을 타격하는 캠페인은 미국 매장 노동자의 입장에서 유리할 수 있었지만 공급사슬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경우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 다른 문제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월마트 공급사슬 관리 정책에 대한 요구가 충분히 논의되지도 않았고 구체화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요구안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급사슬 노동자를 위한 요구안의 중요성에 대한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은 위에서 암시했듯이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월마트에 대한 실질적 압박을 행사함으로써 월마트로부터 민감한 반응을 유도하였다. 킹스랜드와 같은 일부 사례에서는 공급사슬 노동자에게 유리한 노사합의로 이어졌다. 또한 공급사슬 사업을 포함한 포괄적인 월마트 캠페인의 결과로 매장 노동자, 창고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탄압이 예전만큼 노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을 통해 CtW와 파트너 조직의 초국적기업 대응전략 필요성과 공급사슬 조직화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었다. 이러한 효과는 일부 국제 산별노조에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만의 효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 국제서비스노련(UNI) 차원에서 세계 월마트 매장 노동자 네트워크 사업이 강화되고 있다. 국제운수노련에서도 최근에 공급사슬 캠페인을 추진할 수 있는 부서를 설치하고 11월 초에는 사상 최초로 ‘공급사슬과 물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제운수노련의 일부 가맹조직들은 국제운수노련의 공식 회의체계 외에서도 공급사슬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급사슬 사업을 통해서 월마트 공급사슬로 연결된 노동자의 기초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노동자들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기초적인 연대사업을 진행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쉽게도 위에서 지적한 한계 때문에 네트워크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평가와 시사점 월마트 공급사슬 사업은 상징적인 국제연대를 넘어서서 실질적인 공동조직화와 공동행동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이 있는 공급사슬 조직화 모델은 아니었다. 성공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참여 조직의 장기적 전망과 계획 수립이 요구된다. 현재 공공운수노조연맹의 국제사업의 핵심 축이 되고 있는 국제운수노련에서 공급사슬 조직화를 고민하고 있으므로,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몇 가지 방향을 제안하겠다. 첫째, 공급사슬 조직화 전략을 국내 차원에서 먼저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호주 노조들이 다양한 업종의 물류 노동자 뿐 아니라 생산이나 유통 노동자까지 단결시켜 울워스(Woolworths)나 콜스(Coles)와 같은 호주 소매업에 맞선 포괄적 캠페인을 설계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우리는 물류 노동자의 잠재력을 일깨워 삼성을 압박하고 제조업 노동자와 서비스 노동자가 단결하는 전략을 고민할 수 있을까? 국내 다업종 공급사슬 전략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그 다음 단계로서 지역적(regional) 차원으로의 확대도 가능할 것이다. 둘째, 아무리 크고 상징성이 있더라도 한 개의 기업만을 중심으로 세계 공급사슬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급사슬이 너무 복잡하고 한 공급사슬에 참가한 기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 주요 소매제조물류 기업의 공급사슬이 교차되는 점을 파악하고 여러 연관된 대상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업 구상과 계획 단계에서부터 공급사슬의 각 지점에 있는 조직과 노동자들이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계획 과정에서 구체적인 요구안이 논의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넷째, 공급사슬 사업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대상 지역조직주체가 충분한 조사와 연구 후에 선정되어야 하고, 또 포괄적인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조직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 조직과 활동가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수년에 걸친 장기적 사업계획에 대한 결의가 있어야 하며 공급사슬 구조에 대한 조합원간부지도부 교육이 꾸준히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섯째, 분산된 지역에서 진행된 조직사업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급사슬에 대한 객관적 분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각 지역 공급사슬 노동자들이 직접 만나서 노동조건과 투쟁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배우며 공급사슬 규제에 대한 공동요구를 논의하고 개발할 기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섯째, 위 주장들을 종합하면 공급사슬 산업업종기업에 속하는 노동조합은 장기적인 재정적인적시간적 투자를 결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제산별조직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결론을 대신하여: 호주운수노조 공급사슬 조직화 사례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위에서 제안한 모델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짧게 검토하겠다. 최근에 공공운수노조와 화물연대본부는 호주운수노조(TWU)의 ‘안전운임’ 법률 쟁취 캠페인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가 안전운임 캠페인을 검토하는 이유는 TWU가 쟁취한 법률이 화물연대가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정부가 국외 사례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표준운임제’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TWU의 안전운임 캠페인과 그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법제도는 특수고용 화물운송노동자를 위한 최저운임제도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20년에 걸쳐 진행된 안전운임 캠페인을 통해서, TWU는 공급사슬 노동조건을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소매 대기업의 권력에 대한 조합원 교육을 실시하고 그 대기업들의 책임을 요구하며 투쟁하도록 조직했다. 또한 통과된 법률에 ‘공급사슬 책임’ 개념을 포함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호주의 안전운임법 하에서는, 특수고용 화물운송노동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운행(과적, 과속, 음주 등)하도록 유도하는 운임이나 노동조건이 발견되면 호주 국내 공급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소매업과 여타 화주(또는 운수 대기업)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제도 상으로는 이러한 대기업들이 형사법 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이 법제도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고 게다가 지금 보수정권에 의해 위협받고 있지만 TWU의 안전운임 캠페인은 특수고용 물류노동자들이 화주에 대해 요구할 법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 사례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TWU는 국내에서 화주 대기업들이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는 물류회사들과만 계약하도록 하는 협정(헌장)을 체결하도록 투쟁하고 있다. 국외에서는 현재 안전운임법제도와 같은 법안이 다른 나라에서 도입될 수 있도록 다른 나라 노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TWU는 ITF에 공급사슬 조직화 사업을 제안하여 이런 노력을 지역이나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사업이 발전될지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WU는 향후 발전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화주에 책임을 물기 위한 법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요구가 가능하다. 그리고 최소한 ITF의 형식적 결의를 얻은 상태이다. ITF 내에서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는 다른 소수조직과 간부들이 TWU와 함께 본격적인 국제연대 사업, 즉 조직대상을 선정하기 위해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더 많은 노동조합을 설득시켜서 결의하도록 하고, 장기적인 전망 하에서 전략조직화를 추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이 발전한다면 공공운수노조연맹을 비롯한 한국 노동자운동이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 노사관계 구축 노력, 노조네트워크, 국제기본협약을 중심으로 문제제기 사례1. 2009년 3월 금속노조는 현대-기아 국제 노동자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산업 자본이 해외로 진출한 지역들은 노동운동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데다 국제적인 노노 간 경쟁을 유발하여 전체 노동조건 하향평준화를 형성할 가능성 크다”는 인식 아래 “해외지역에 대한 개입과 대응을 위한 정보교환과 상호 소통구조 확보와 교류가 당면 과제로 나선 상황”에서 “실질적인 국제연대를 통한 대응과 교류를 진행코자” 개최된 이 회의에는 인도, 터키, 슬로바키아, 체코, 미국 등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진출한 지역의 노동자들이 참석하였을 뿐 아니라, 국제금속노련(International Metal Workers’ Federation)의 자동차 분과장 등이 참석하여 회의를 주재하였다. 그 후 현대기아 노동자 네트워크는 현대차 사측의 철저한 무시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2010년~2012년 유럽에서 네트워크 회의를 이어가면서 정보 공유와 공동 행동 조직 등의 활동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사례2. 2013년 4월말~5월초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GM 네트워크 회의와 정보공유포럼에 참석했다. 2011년 이전까지는 GM유럽 소속의 GM노조와 GM 유럽직장평의회(European works council, EWC)가 미국의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mobile Workers, UAW)가 참석하지 않은 GM 액션 그룹(GM Action Group)을 중심으로 노동자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2011년 UAW와 GM간의 단체협약을 통해 사측의 핵심 임원과 노동자 네트워크가 함께 참석하여 경영상의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공유포럼을 설치할 것을 합의하고, 2011년 초 GM의 본국 노조인 UAW와 GM/오펠 유럽직장평의회는 1차 GM 노동자 네트워크 회의를 가지고 GM/오펠 유럽직장평의회를 세계노동자위원회로 확장할 것을 결의한다. 2011년 말 2차 네트워크 회의를 가진 후 2013년 4월에 열린 3차 GM 네트워크 회의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회의와 글로벌 정보공유 포럼을 향후 2년간 한시적으로 회사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며, 그 비용부담 및 주최는 UAW와 GM사측이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글로벌 노동자 네트워크 회의 참가자들은 이후 글로벌 네트워크 회의 및 정보공유 포럼의 상시 설치와 국제기본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 GFA) 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GM에 요구할 것을 결의했다. 세계화와 함께 부상한 초국적기업들은 저임금 국가로의 생산시설 이전, 노동권에 대한 보호가 제도화 되어 있지 않는 국가에서의 해외 공장 설립, 글로벌 아웃소싱 등을 통해 기존 조직 노동운동이 기업별산업별 단체협약이나 사회적 타협 등을 통해 얻어낸 성과를 되돌리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확립된 노동법 등의 규제를 간단히 무력화한다. 이들은 이동성이 현저히 낮은 노동으로 하여금 일자리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하게 만들어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임금 및 노동조건의 저하를 감내해야만 하는 ‘바닥으로의 경주’를 강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의 노사관계와 마찬가지로 초국적기업과 해당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전세계 노동자 대표 사이의 단체협상(초국적 차원에서의 기업별 교섭)이나 초국적기업과 해당 부문의 국제 산별노련 사이의 협상(초국적 차원에서의 산별 교섭)을 통해 국제적 노사관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당연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현대-기아 네트워크나 GM 네트워크의 경우도 그러한 대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초국적 노사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되어 왔는지를 유럽직장평의회(European works council, EWC) 및 세계직장평의회(World Works Council, WWC)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초국적 차원에서 기업별 협상을 통한 국제기본협약(International Framework Agreement 또는 Global Framework Agreement)의 체결 현황, 배경, 의의 등을 살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와 경험들이 한국의 노동자 운동에 갖는 함의를 짚으며 마무리할 것이다. 초국적 노사관계를 향한 노력 초국적기업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노력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당시 국제산별사무국은 미국 노총인 CIO, 그 중에서도 특히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UAW)의 소위 조율된 협상(coordinated bargaining) 또는 공동 교섭(coalition bargaining)의 경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CIO 협상의 기본 취지는 여러 개 공장을 거느린 회사를 상대할 때, 각 공장 별로 협상권을 가진 노조가 여럿 존재하게 되면서 노동조합 조직이 파편화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편화가 분열로 나타나지 않게 해당 회사를 상대하는 모든 노조가 공동으로 요구안을 만들고, 공동의 전략을 통해 공동 전선을 취하는 것이다. 국제산별사무국은 이러한 전략을 세계적 차원에 적용했다. 여러 국가에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상대로 각국의 노조들이 "요구안과 협상 전략을 공동으로" 만들고, "회사의 통합된 힘"에 대응하여 국제적인 노조조직을 건설하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실제로 국제화학노련(ICF, ICEM의 전신)은 196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전략을 실천하였고, 1969년 생 고뱅(Saint-Gobain) 사를 상대로 전후 최초로 공동 교섭(coalition bargaining)의 원칙에 입각해 미국에서의 26일 파업을 포함 4개국에서 공동행동을 조직하는데 성공한다. 국제금속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Metalworkers' Federation, IMF, 현 IndustriALL의 전신)도 유사한 원리에 입각해 1960년대 세계 자동차 직장평의회(World Auto Company Council) 설립을 전략으로 채택하고, 1966년 포드, GM, 크라이슬러, 폭스바겐-벤츠, 1968년에는 피아트-시트로앵에서 세계 직장평의회를 설립한다. IMF는 이러한 평의회를 통해서 본사 소재국 노조의 경험 있는 협상가를 자회사가 설립된 타국 교섭에 파견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고용투자상황생산계획 등에 대한 경영진과의 회의노조 간 정보공유연대 파업 조직 등의 전술을 펼친다. IMF의 이러한 전략은 현 국제제조산별(IndustriALL)의 국제노조네트워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 IndustriALL의 노조 네트워크 전략은 다음과 같다. <국제노조네트워크 회의에 대한 IndustriALL의 전략> • 회사 차원에서 인정하는 글로벌 노조 네트워크의 건설 및 발전 • 본국 이외 다른 나라의 공장을 차례로 포함 • 상호 정보 교류 및 지원 • 공급사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제기본협약 체결 • 조직화 캠페인 지원 • 자동차 및 고무화학 분야 신기술 소개를 통해 노동자들의 기술 및 작업장 혁신 • 비정규직 등 특정 사안에 대한 공통의 이해 증진 초국적 단체교섭을 향한 노력과 좌절 1970년대 들어 초국적기업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국민국가의 통제권을 벗어나 공장 폐쇄나 생산기지 이전 등을 아무런 제약없이 행했다. 이 결과 이들은 대중적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76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을 채택공표하는데, 이 지침은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 차별금지, 일방적인 기업 이전이나 폐쇄금지, 환경과 소비자 보호, 뇌물금지, 공정경쟁과 세금 납부 등을 초국적기업들이 실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국제노동기구(ILO)도 1977년 일반정책, 고용, 직업훈련, 노동 및 생활조건, 노사 관계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다국적기업 및 사회정책에 관한 원칙들의 3자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3자선언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인정,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금지 등 4개 분야, 8개 핵심협약을 명시하고 있어 초국적기업에 대한 초국적 규제노력의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자동차 부문에서의 7개 세계직장평의회(WWC)가 1971년 런던에서 모여 각 기업 최고 경영진이 평의회와 회의를 열어 생산, 투자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정부와 국제기구에는 초국적기업의 행태를 관장할 규범을 작성할 것을 촉구했다. 이듬해 60개가 넘는 세계직장평의회가 결성되었지만 대부분은 단명하였다. 이들 세계직장평의회에서 추구한 초국적 노조 전략은 1)각 노조간 국제연대의 창출, 2)여러 국가에 소재한 초국적기업의 자회사들 간에 동시다발적 교섭, 3)각 국가의 모든 노조의 요구를 종합한 요구안을 바탕으로 한 초국적기업 최고 경영진과의 "통합 교섭 혹은 중앙 교섭"의 순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da Costa and Rehfeldt, 2008). 하지만 첫 번째 단계를 달성하기도 어려웠을 뿐 더러, 2단계까지 도달한 사례는 생고뱅(Saint-Gobain), 미쉐린(Michelin), 론뿔랑(Rhone-Poulenc), 로열 더치 쉘(Royal Dutch-Shell) 밖에 없었거니와, 3단계까지 도달한 사례는 필립스 정도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상시 기구의 설치를 목표로 한 필립스에서의 교섭이 결렬되고 난 후 유럽금속노조(EMF)는 다른 초국적기업으로 눈을 돌린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1985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초국적기업인 톰슨(Thompson) 사와 상시 연락 위원회를 설치하는 협약을 맺으면서 빛을 보게 되고, 이듬해에는 국제식품노련(IUF)이 프랑스의 다농(Danone)과 비슷한 협약을 맺는다. 다농과의 협약은 1988년 최초의 국제기본협약(IFA)을 체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필립스 공동 교섭 사례> 1967년 유럽에서 국제금속노동조합연맹(IMF)은 유럽 금속노조위원회(European Committee of Metal Trade Unions)를 설립하고, 필립스에서 교섭권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그 목표는 모든 필립스 노동자들에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고 기술 발전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장기적 목표는 임금, 노동조건, 노조권, 대표권 등을 관할하는 국제 단체교섭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필립스와 세 번의 회의를 통해 기술발전으로 인한 고용 및 임금 충격 보호, 생산시설 이전, 정리해고 및 기업의 전반적인 활동을 논의하기 위한 상시적인 노사협의기구 설치 등을 논의하였다. 4번째 회의에서는 “고용, 사회정책, 노사관계 문제를 다루는 상시 자문 기구의 설치”에 대해 논할 예정이었지만 필립스가 국제적 수준에서 노사관계를 가져가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논의는 중단된다. 1996년 유럽직장평의회(EWC) 지침에 의거 유럽 필립스 포럼이 설치되고, 2001년에 IMF가 개최한 세계 필립스 노동자 총회(Philips World Conference)에는 18개국 60여 명이 참가한다. 이 자리에서 세계 직장평의회를 설치할 것을 결의했지만, 필립스 사측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국제기본협약(IFA)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네슬레 국제 공동 투쟁> 1972년 국제식품노련(IUF)은 네슬레 노동자 총회를 개최하여 네슬레를 상대로 고용안정, 임금 정책 등에 관한 공동 요구안을 확정하고, 네슬레의 사회적 책임(공정 분배, 공정한 가격 책정, 공정 무역, 원료 생산국에서의 가공)을 요구한다. 네슬레 상설 위원회는 네슬레 경영진을 만나 이러한 요구사항을 전달하였고, 네슬레 경영진은 이에 대해 노사관계를 중요시하며,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고, 고용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1973년, 네슬레가 미국에서 반노조 정책을 펴는 스투퍼 식품(Stouffer Foods)을 인수한 데 대한 노조의 협의 요청을 거부하고, 페루의 자회사인 페루락(Perulac) 치클래요(Chiclayo) 공장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본사 차원의 개입을 거부하면서 노사관계가 악화된다. 당시 치클래요 공장 노동자들은 리마(Lima)의 마기(Maggi) 레슬레 공장에 동조파업을 벌이고 4월 10일 복귀하였으나, 사측이 비노조원에게만 파업 기간 임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치클래요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6주간 파업을 벌였다. IUF의 조직을 통해 15개 국 네슬레 노동자 조직이 파업 지지입장을 밝혔다. 특히 뉴질랜드의 낙농노조(Dairy Workers' Union)가 남미 태평양 연안 전체에 분유를 공급하는 공장의 파업을 추진하면서 힘의 균형이 노조 쪽으로 기울었다. 그 결과 네슬레는 파업 기간 전체를 보상하는 일시금 지급, 20% 임금 인상, 유급휴일 15일에서 20일로 확대, 고소고발 철회, 노조원 차별 철폐, 사후 파업 합법성 인정 등의 합의안에 서명한다. 이후 페루를 찾은 IUF 사무총장 등이 연행되면서 다시 경색된 관계는 1989년에 가서야 풀어지고 네슬레는 결국 IUF를 대화상대로 인정한다. 이후 유럽 차원에서 네슬레 평의회와 경영진간 회의를 갖다가 1996년 유럽직장평의회(EWC)로 공식화 된다. <코카콜라 국제 공동 투쟁> 1980년 국제식품노련(IUF)은 코카콜라사와도 분쟁을 겪는다. IUF는 1980년 과테말라의 코카콜라 보틀링 자회사에서의 노조 인정을 위해 국제적 연대 집회 등을 조직했고, 이를 통해 노조 인정 및 정부의 반노조 테러 중지 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후 1984년 코카콜라는 공장의 파산을 발표한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IUF는 다시 국제행동을 조직했다. 미국과 캐나다 공장에서는 노조 대표를 파견하여 점거 공장을 지지방문하고, 미국 기업책임을 위한 종교 간 협의회(Interfaith Council for Corporate Responsibility) 소속의 독립 회계사는 장부가 조작된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필리핀의 레스토랑과 스웨덴의 슈퍼 등에서는 웨이터와 캐셔들이 코카콜라를 팔지 않겠다며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이로 인한 기업 이미지 타격은 심대했다. 그 후 공장을 책임 있는 제3자에게 매각하되 단협 승계, 정리해고 배제, 사업 재개까지의 임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하는 협약을 맺고 연대행동은 종료되었다. 이후 IUF는 코카콜라 경영진과 회의를 통해 몇몇 협약을 맺었으나 기본협약은 맺지 않았다. 당시 IUF의 판단은 과테말라 노동자의 목숨(공장 점거와 동시에 공장 외곽에 과테말라 정규군이 배치되었다)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분쟁을 끝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적 교섭을 시도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세계직장평의회(WWC)와 국제산별노련(GUF)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교섭 시도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위의 사례에서 보듯 분쟁을 경험한 기업들이 국제적 차원에서 노조의 동원투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사안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지만 국제 노사관계의 기본이 되는 협약(IFA) 체결에는 한사코 반대를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1970년대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초국적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힘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노조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자리 지키기에 더욱 골몰하는 수세적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조간 초국적 조율 및 조직화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일부 노조들은 국제 기구에 자신의 권한을 이전하기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충분한 자원을 지원하지도 않았다. 또 국제산별사무국 역시도 국제적 통일을 강화하기보다는 국가별 가맹노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어떤 초국적기업에 국제적 수준에서 노조 조직을 인정하거나 교섭에 참여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국제법은 없다. 따라서 국제적 수준에서 기업별 교섭을 한다는 것은 결국 노조의 힘과 조직화 정도에 달려 있는 것으로, 그러한 기획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렇게 세계적 차원에서 기업별 교섭은 실패하였으나 유럽에서는 그 우회로로서 유럽직장평의회(EWC)가 제안된다. 초국적 단체교섭을 향한 유럽적 우회로 – 유럽직장평의회(EWC) 1970년대 노조들은 초국적기업 규제에 있어 OECD 초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나 ILO 3자 선언과 같은 국제기구들의 역할에 주목하기도 하였으나 이를 강제할 수단 및 법적 기준이 없어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 앞서 살펴 본 바대로 국제적 차원에서 기업별 단체교섭의 노력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EC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사회문제 담당위원인 헹크 브레들링(Henk Vredeling)이 중심이 되어 1980년 소위 브레들링 지침 초안을 제안한다. 이 지침은 초국적기업 노동자들에게 정보 공유 및 협의의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인데, 특히 공장의 (일부) 폐쇄시 강제적 협의 의무를 경영진에게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결국 1994년 EWC 지침으로 구체화된 이 기획은 구조조정 시 강제 교섭 의무는 삭제되었지만, EEA 지역(EU+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리히텐슈타인)에 1,000명 이상, 한 국가에 150 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모든 초국적기업으로 하여금 정보공유와 협의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교섭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령 이 지침에 따르면 현대 자동차의 경우 유럽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로부터 교섭 요청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응해야 하고, 요청이 제기된 지 3년이 지날 때까지 유럽직장평의회(EWC) 설치의 진전이 없을 경우 자동적으로 EWC가 설치된다. EWC는 노조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단체협약 체결권 등은 여전히 노조에 귀속된다. 직장평의회와 노조가 분리되어 있는 독일의 노사관계를 유럽 차원으로 확장시켰다고도 볼 수 있는데, 하지만 EWC 지침에는 노조와 EWC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어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EWC에 참석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EWC 규정은 법적으로는 단체교섭을 강제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있다. 게다가 영국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임금, 노조권, 파업권에 관한 법적 규정권은 EU 차원이 아니라 개별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초국적 연대파업을 조직한다 하더라도 일부 국가에서는 불법으로 규정될 소지가 있다. 국제네트워크 회의의 발전: 유럽GM 대 GM/오펠 유럽직장평의회의 초국적 구조조정 교섭 경험을 중심으로 2000년대 들어 자동차 부문에서 유럽직장평의회(EWC)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공유와 협의를 넘어 초국적 단체교섭으로까지 발전했다. EWC에서 최초로 맺은 유럽 차원의 협약은 2000년 포드 협약이다. 그 내용은 포드의 협력사인 비스테온(Visteon)으로 전보된 포드 노동자들이 근속인정, 임금수준 및 퇴직금 유지를 보장 받고, 포드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최초의 유럽GM(GME) 협약도 2000년 체결되었다. 당시 피아트(Fiat)와 GM 사이에 전략적 제휴가 맺어졌는데, 이 때 피아트 및 협력사로 전출된 GM 노동자들의 권리와 관련된 협약이 GM에서 처음 체결된 초국적 협약이다. 실제로 2005년 전략적 제휴가 해체된 뒤 노동자들은 이 협약에 근거하여 GM으로 복귀하였다. GM 유럽 차원의 두 번째 협약은 2001년 3월 체결되었다. 당시 GM은 전 세계에서 10,000명을 정리해고 하고, 그 중 유럽에서는 영국의 복스홀 브랜드의 루튼(Luton) 공장폐쇄를 포함하여 6,000명을 정리해고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에 정리해고 계획이 발표되면 각국별로 서로 경쟁하는 형태의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나, 당시 GM/오펠 유럽직장평의회는 노동자간 경쟁으로 귀결되는 국지적 교섭을 거부하고 동원과 협상을 모두 활용한 초국적 연대 전략을 택했다. 그리하여 2001년 1월 25일 거의 모든 유럽 GM 공장의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에 항의하는 파업과 ‘행동의 날’에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협상에 압력을 준 결과 GM경영진은 강제적 정리해고는 회피한다는 협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파트타임, 희망퇴직, 조기퇴직, 다른 GM 사업장으로의 전보 등을 비롯한 해고 회피노력을 하고, 루튼 공장에서는 승용차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기타 차량 생산은 유지키로 하였다. 2001년 10월에 체결된 세 번째 GME 협약은 “올림피아 계획”으로 알려진 일자리 감축 계획이 발표된 뒤에 나온 것이다. 이 계획은 GM 오펠, 복스홀, 사브의 생산감축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EWC와 경영진은 결국 생산성 목표에 동의를 하고, 생산능력을 조정하되 공장 폐쇄나 강제적 정리해고는 피한다는 데 합의했다. 2004년 9월 GME 경영진은 또 다시 공장폐쇄와 12,000명에 달하는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다. EMF는 “유럽 노조 조정 그룹”을 만들고 EMF 사무국, 각국 노조 대표, GM EWC 대표 등을 성원으로 하여 공동 행동 프로그램을 제기하고, 2004년 9월 19일 공동행동의 날을 제안하였다. 이 행사에는 약 50,000명의 GM 노동자들이 참여하였다. 2004년 12월 GM 유럽 경영진, EMF, 국가별 노조, EWC가 함께 서명한 협약에서는 GM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비용 및 일자리 절감의 필요성을 인식하나, 클라우스 프란츠(Klaus Franz, 독일 출신의 GM EWC 의장)가 말한 “부담 공유”의 원칙에 따라 이전에 약속한 대로 “강제적 정리해고”와 “공장폐쇄”를 피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2006년 6월 GME 경영진은 포르투갈 아잠부자(Azambuja) 공장의 폐쇄를 발표하였다. 모든 유럽 GM 공장에서의 공동 행동이 벌어졌고, GM 경영진은 새로운 유럽 차원의 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공장은 결국 폐쇄되었다. 2010년에는 또 다른 공장인 벨기에의 안트베르프 공장이 폐쇄되었고, 유럽 전역에서는 정리해고가 진행되었다. 2010년 유럽의 GM 노동조합과 EWC는 경영진과의 협약을 통해 2014년까지 매년 2억6,500만 유로의 비용을 절감할 것을 합의한 대가로 2014년까지 추가적인 공장폐쇄와 강제 정리해고는 시행하지 않을 것을 보장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유럽 차원에서 조율된 노조 전략이 일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초국적 협약이 가지는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취약함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10년 동안 EWC 차원에서공동 행동의 경험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노조 간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의 경험을 만들어 낸 것은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전까지는 각국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던 데서 벗어나 1) 국가별 분할을 극복하는 혁신적이고 중요한 전략을 도출하였고, 2) 경영진의 구조조정에 대한 유럽 차원의 대응, 즉 “공동 부담”이라는 대응전략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GM에서의 경험은 EMF가 구조조정과 기본협약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기본 모델이 되었다. 자동차 분야 국제 네트워크 회의 현황 하지만 자동차 부문의 초국적 단체협상이 전 산업 부문에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자동차 완성사 EWC에 비해 다른 대부분의 EWC는 상황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유럽노총(ETUC)도 다른 일반적인 EWC는 너무 취약한 나머지 EWC 지침이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고 유럽기본협약(EFA)에 노조가 공동으로 서명할 권한을 보장하는 쪽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자동차 부문은 선도적으로 노동자의 요구를 제출하고, 자동차 부문의 노사관계가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포드, GM, 다임러의 경우 여러 위원회를 통해 각국의 노동자 대표들이 일년에도 수 차례 만나 신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일부 회사의 경우 유럽 바깥에 있는 주요 생산기지의 노동자 대표가 EWC에 참여토록 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1990년 EWC 지침 이전에 최초로 자발적 EWC를 설립하였고, 1999년에는 최초로 세계직장평의회(WWC)를 설치하였다. 르노와 다임러크라이슬러도 2000년과 2002년에 뒤를 따랐다. 이 경우 EWC는 WWC 설치의 모델이 되었다(da Costa and Rehfeldt, 2008). 이들 새로운 WWC는 국제금속노련(IMF)이 1960년대에 설치한 기존의 세계 자동차 직장평의회를 대체하였다. 최근 IndustriALL은 다면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기존의 세계 평의회를 더 작은 단위로 쪼개 상시적인 만남을 갖고, 그 비용을 기업에 청구하는 것이다. 포드나 GM의 경우 노조 네트워크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포드의 경우 세계 포드 운영위원회(Ford World Steering Committee)이고, GM은 GM 액션 그룹(Action Group)이었는데 2011년부터 UAW가 참가를 하면서 GM 노조 네트워크로 전환되었다. 자동차 분야 국제 네트워크 현황 [표1] 자동차 분야 국제 네트워크 현황 한국에서는 금속노조와 IndustriALL이 현대기아 네트워크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위 표에서 보듯, 자동차완성사 중 비승인 네트워크는 현대차와 피아트크라이슬러 오직 둘 뿐이다. 현대차 사측은 네트워크 회의에 대해 상당히 비협조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현재 EWC 지침에 따라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등 현대기아가 진출한 국가를 중심으로 EWC 구성을 위한 의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협상은 유럽 지침에 따라 현대 사측이 임의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협의를 시작한 지 3년이 되는 2015년까지 양자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EWC가 설립된다. 유럽의 경우 이런 강제설립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현대차는 강제 설립시까지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천명한 상태다. 또한 활동가직원에 대한 공격적 탄압을 통해 EWC의 설립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성희롱 사건 공동대응, 앨라배마주 인종차별법에 대한 국제 행동의 날 조직 등 일부 가시적 성과를 통해 네트워크 회의를 통한 국제 연대의 성과가 일부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금속노조 한국지엠 역시 GM 노조 네트워크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 UAW-GM 단협에 근거해 한시적으로(2013년까지) 네트워크 회의 및 정보공유 포럼을 열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GM의 기본 전략은 정보, 복지 등에 있어 현지법에 규정된 이상은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더욱이 노조간 교류를 통해 각국의 정보 공개 수준 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노동자 네트워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본사 소재국 노조가 설립과 운영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본사 소재국 노조가 얻는 정보의 질과 노사협의의 수준은 타국의 어느 자회사 노조의 정보 및 협의 수준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며, 사측도 본사 소재 노조의 요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기아 세계 노동자 네트워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본사 소재 노조와 타국의 자회사를 분할관리하는 유인이 된다는 점, 또 이러한 상황에 안주해 본사 노조가 초국적 교섭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미 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우 해외생산이 한국의 생산을 앞질렀다. 언제까지나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지부가 자회사 노조들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현대기아차 네트워크의 신뢰를 다지고 이 네트워크를 현대차나 기아차 사측과의 정식 교섭 파트너 지위로 올려놓아야 세계적 생산통합의 효과로 점점 커져가는 현대차 그룹의 힘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초국적 교섭의 산물인 국제기본협약(IFA)의 출현 앞서 살펴 보았듯이 1960년대와 1970년대 국제산별노련(GUF)의 국제노사관계 구축을 향한 노력은 노조 간 국제행동 조직화 및 조율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자본의 변화(자본의 집중, 정책결정 장소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대응으로, 초국적 기업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국제행동에 비해 국제기본협약(IFA) 체결은 핵심 목적이 아니었다. 게다가 국제산별사무국을 노사 관계의 상대로 인정한 회사들도 IFA 체결에는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초의 IFA는 국제식품노련(IUF)과 다농 사이에 체결된 협약이다. 양자는 1988년 “공동 견해”(Common Viewpoint)라는 제목으로 세계 최초의 IFA를 체결하였다. 이 협약의 4가지 요점은 1)구조조정 및 기술 발전에 따른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 2)모든 단위에 동일한 수준의 양질의 정보 공유 3)남녀 평등 보장 및 제도화 4)ILO 87, 98, 135 번 협약 등에 규정된 노조권 적용이다. 이 협약은 비유럽 지역의 모든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이후 협약들이 추가되었고, 2001년 다농 IFA는 유럽의 비스킷 사업장 구조조정 시 적용된 사회적 기준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EWC 지침이 통과되고 난 후인 1996년 “정보공유 및 협의 위원회”를 EWC 지위로 설립하고, 국제식품노련(IUF)가 수행하던 역할을 해당 위원회가 이어 수행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렇듯 IFA는 유럽에 기원을 두고 세계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지역적으로든 형태상으로든 다양한 형태의 IFA가 존재한다.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자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농의 경우 우호적인 상황에서 IFA를 체결하였으나,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IFA 체결을 거부하고 있고 IFA가 체결된 기업 중 일본 기업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협력적 노사관계가 IFA 체결에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론 노조의 강력한 압박으로 IFA가 체결된 경우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IFA 체결만을 위해 노조가 직접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어서 IFA의 체결을 위한 조건은 복합적이고 쉽게 단정 내릴 수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 체결된 IFA는 불과 30건이 채 안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IFA 체결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2년에서 2006년 사이에는 체결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기업들이 노동 관련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채택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노동 관련 문제를 기업 행동규범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의 영역, 즉 기업의 호의와 자발성에 의존하는 차원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노조의 대응은 이를 기업의 자발성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 및 국제 노사관계의 문제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제기본협약은 기업 행동규범처럼 회사의 이미지 개선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업 행동규범의 경우 기업이 독단적으로 선택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적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이러한 행동규범의 경우 오히려 노조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캐터필러(Caterpillar) 사의 행동규범은 "직원들이 노조나 다른 제3자에 의해 대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도록 기업을 경영"한다고 되어 있다. 듀폰(Dupont)의 규범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무노조 상태를 지속하겠다는 경영진의 합법적인 의견표명을 기꺼워 할 것이나, 직원들이 노조에 의한 대표를 선택한다면 회사는 노조와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상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2006년 이후에는 IFA 체결 건수가 뜸해 졌는데 이는 당시 협상을 하고 있던 보잉, 네슬레, 지멘스, 제르다우(Gerdau) 등이 IFA 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조의 강조점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단순히 IFA 체결과 준수뿐 아니라, 이행 강제 조치 및 분쟁 해결 절차, 그리고 조직화 촉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IFA 체결에 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근접한 IFA의 사례는 있지만, 이러한 모델에 부합하는 IFA는 아직 없다. 국제기본협약(IFA)의 핵심 내용 IFA는 ILO의 1998년 “노동에 있어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의 8개 핵심 협약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일부 IFA는 UN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를 노동기준과 권리에 대한 해석 및 중재의 준거로 삼는데, 이 차이는 의미가 있다. ILO를 참고하는 것은 한계적이나마 국제적으로 공적 영역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인 반면, 글로벌 컴팩트와 같은 자의적이고 시혜적인 민간 기구의 원리를 국제협약의 준거틀로 삼는 것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A조항이 준거틀로 삼고 있는 원칙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을 언급하며 각종 다자간 협약들(UN 세계인권선언, UN 글로벌 컴팩트, OECD 초국적 기업 가이드라인, 다국적기업 및 사회정책에 관한 원칙 ILO 3자 선언)을 참조한다. ILO 협약에 대한 참조는 1개 협약을 언급하는 경우에서부터 20개 이상의 협약을 언급하는 등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8개 핵심 협약에 더해 부문 및 기업별 관련 협약 언급이라는 기본틀은 확립되어 있다. 두 번째로, IFA에는 고용, 임금, 노동시간 등에 관한 국내 규제를 준수한다는 조항도 있다. 한 예로 OTE-국제사무노련(UNI) 협약은 정규 고용과 관련한 노동법 및 규제를 준수하고 상시 고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임금, 노동시간에 관련하여 국내 법규를 준수하고 “법적, 산업적 최소 기준”을 상회한다거나, 동일임금 원칙, 임금에 관한 명확한 정보 제공, 국내법에 의하지 않은 임금 삭감 금지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일부 IFA(Brunel, Euradius, Impregilo, Inditex, Norske Skog, OTE, Portugal Telecom, Royal Bam, Veidekke, VolkerWessels)는 “생활임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세 번째 단계로 안전보건, 교육훈련, 구조조정 등에 관한 조항이 있다. 특히 안전보건이 큰 부분을 차지하며, 특정 산업에 관계된 ILO 협약 등을 참조한다. 산업 안전에 대한 교육훈련을 언급하고 있는 IFA도 다수이나, 일부 IFA(DANONE, EDF, Rhodia)는 넓은 관점에서 작업 조직화, 내부 노동시장, 지리적 이동성, 구조조정 등과 교육훈련을 통합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하다. 네 번째로 IFA는 사설 기준들, 예를 들어 Social Accountability 8000(카르푸), ISO 14001 등을 참조하기도 한다. • ILO 핵심 협약: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1948년),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1949년),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1930년), 제105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1957년), 제111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1958년), 제100호 동일가치 근로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1951년), 제138호 취업의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1973년), 제182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1999년) • 노동에 있어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에 관한 ILO 선언 • 세계적 수준에서 노조 및 그 가맹 조직의 인정 • 공동 평가 위원회 설립 • 정보 공유와 협의 등 구조조정에 관한 의무 • 협약의무 공급사슬의 협력업체에까지 연계 • UN 글로벌 컴팩트 원칙 연계 • UN 세계 인권 선언 확인 • 반부패 • 노조 편의시설 제공 • 환경 의무 • 사회 공헌 활동 및 사회적 책임 경영 원칙 •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합리적’ 노동 시간 • 사회적 대화 강화 • 안전보건 기준 • 일부 협약의 경우 기본적 노동권 문제를 넘어 회사의 고용, 인사, 노사관계 정책 및 절차 등에 관한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가장 흔한 것은 교육훈련과 기술 계발에 관한 내용이다. IFA는 기업행동규범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과는 어떻게 다른가? 행동규범은 감시 절차가 없는 반면, IFA는 감시와 이행을 위한 세부적인 조항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IFA는 단체협약으로서의 구속력은 없지만 IFA의 체결 상대방인 노조의 존재 자체가 모니터링 수단이다. 즉 이러한 국제적 협약을 강제하는 기구나 법이 없으므로 IFA의 실효성은 바로 노자간 역관계에서 출발한다. 국내의 단체협약에도 약한 단협이 있고 강한 단협이 있듯이 IFA도 마찬가지이며, 국제적인 법적틀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더욱 역관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약 IFA를 단순히 기업행동의 규제책으로만 본다면 행동규범과의 큰 차이는 없을 수 있겠으나, 조직화의 도구로 본다면 행동규범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IndustriALL의 경우 국제기본협약(IFA)의 협상과 체결 과정에서 IndustriALL이 초반부터 개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IFA의 최종서명의 당사자는 IndustriALL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IFA는 다국적기업의 모든 작업장과 시설에 적용되어야 하며, 협약의 조항은 IndustriALL과 기업 경영자 사이에 협상하되, 기업 본사 소재국의 노조와 세계직장평의회(WWC)는 그 협상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기업의 도급하청회사에 협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행과정에서 노동조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경영자는 노동자와 노조에게 IFA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실제로 폭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의 경우 IFA에 IndustriALL이 공동 서명자로 이름을 올려 놓고 있으며, 포드는 글로벌 정보공유 포럼 구성원이 서명을 했고, IFA가 체결되지 않은 GM의 경우는 유럽 차원의 기본 협약이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IMF가 아닌 유럽금속노조(EMF)의 서명으로 유럽 차원의 효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IFA로의 전환을 논의 중이다. [표2] 국제기본협약(IFA) 체결 현황(2012년 현재) 국제기본협약(IFA)의 의의 그렇다면 IFA를 체결하는 상대방인 사측은 IFA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부분 기업들의 경우 IFA를 국제적 노사관계의 일부가 아니라 노조와의 대화의 한 도구로 보는 경향이 크고, 이를 앞으로 발전되어갈 국제 노사관계의 단초가 아니라 일회성에 그치는 노조와의 관계 개선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이 크다. 즉 기업들은 ‘협약’(agreement)이 가지는 법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협약’이라기보다 오히려 ‘대화에 동의(agreement)’로 보며 대화 과정의 일부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노총(ITUC)의 전신인 국제자유노련(ICFTU) 시절 제안된 IFA의 전범을 보면 “국가 및 지역 차원에서 체결된 협약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노조 활동이 취약한 국가의 노조가 IFA의 체결을 통해 자국 노조활동의 활력 저하를 우려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IFA가 국내법 및 규제의 구속을 받는 단체협약과 같은 수준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IFA를 통해 도모할 수 있는 직접적인 효과는 초국적기업에 ILO 핵심 결의안을 비롯한 국제 노동규범 준수 강제, 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사업장의 노동기본권 확보, 전 세계 사업장의 노동 및 임금 조건 관련 기준 설정, 기업의 정보 제공 의무 명시, 초민족적 기업의 하청 네트워크 등에 노동권 관련 의무 부과 등을 압박하는 것이다. 가령, 결사의 자유 조항 등을 통해 노동권 보호가 미약한 국가의 노동자에게 노조 설립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직접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IFA가 가져오는 직접적인 효과는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코카콜라 투쟁의 경우를 보아도 IFA는 현안에 비해 그 우선순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IFA의 가장 큰 의의는 교섭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협상 과정이 전제되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초국적기업이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자 대표, 즉 그것이 GUF가 되었건, WWC 같은 노동자 대표 조직이 되었건, 아니면 본사 소재 노조뿐 아니라 전 세계 자회사 노조의 공동 서명이 되었건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을 대화 및 협상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출발점, 즉 국제적 노사관계의 기반을 이룬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금속노조의 현대차 지부와 기아차 지부는 2009년부터 현대기아 네트워크 구성 및 IFA 체결을 위한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다. 회의를 계속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차와 협상은 전혀 진전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고유한 조건, 즉 2년마다 집행부가 바뀌고 그 때마다 모든 사업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현대기아 IFA의 의의를 조합원 차원에까지 알리고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모아나갈 수 있다면 집행부 구성의 변화에도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노조가 생긴 것은 2001년 평등노조 이주지부 결성부터다. 그 흐름을 이어 이주노동자의 독자적 노조로서 서울경인이주노조(MTU)가 2005년 결성되었다. 이주노동자 노조활동은 기존의 민주노총 내외부의 노동운동 진영에 새로운 문제의식과 자극을 주었다. 특히 2003~2004년 단속추방저지와 합법화를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이주노동자 주체 형성과 사회운동 연대 확장의 성과를 남겼고, 이주노동자 조직화 혹은 세력화라는 과제를 운동진영에 제기했다. 세계적으로도 이주노동자 이슈는 정책과 사회운동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며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여파와 반이주민 정서의 확대가 극우정치의 토양이 되고 있는 상황, 세계화로 인해 국경을 넘는 이동이 증가하여 시민권과 관련한 요구가 늘어나는 상황 등은 이주노동자 운동이 주목해야 하는 바다. 이주노동자운동은 국제적 문제와 국내적 문제 양자 모두에 개입해 왔고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현재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주노동자 관련 쟁점들을 살펴보고,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국제연대 활동을 개괄하며 향후 주목해야 할 과제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세계 이주민 현황 개괄 지난 10년 간 국제 이주민 숫자는 2000년 약 1억7,500만에서 2013년 2억3,200만 명으로 늘었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세계 이주민 숫자는 그 이전 10년보다 두 배 더 빨리 늘어났다. 1990년대에는 연간 약 200만 명이 늘었는데 2000년대에는 연간 약 460만 명이 늘었다. 2010년 이후에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그 속도가 줄어서 연간 약 360만 명이다. 남반구에서 이주민의 증가는 2000~2010년 사이에 1년에 2.5%이고 북반구에서는 2.3%였다. 1990년 2.9%였던 이주민은 2013년 세계 인구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 이주민의 비율은 거의 11%에 이르고 개도국에서는 2% 미만이다. 이주민의 절반가량은 10개 국가에 살고 있다. 미국에 약 4,600만 명, 러시아에 1,100만 명, 독일에 980만 명, 사우디아라비아에 910만 명, 아랍에미리트에 780만 명, 영국에 780만 명, 프랑스에 750만 명, 캐나다에 730만 명, 호주와 스페인에 각각 650만 명이다. 이 중 난민은 약 1,600만 명으로 이주민 숫자의 7% 정도이다. 한편 여성은 전체 이주민의 48% 정도를 차지하는데 유럽에서 51.9%로 비율이 가장 높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51.6%, 북미 51.2%, 오세아니아 50.2%, 아프리카 45.9%, 아시아 41.6%이다. 아시아에서 비중이 적은 것은 중동지역 이주노동자 중 남성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남반구에서 남반구로의 이주민이 8,230만으로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의 이주민수인 8,190만보다 약간 많다. 이주민 비율이 높은 나라는 카타르(87%), 아랍에미리트(70%), 요르단(46%), 싱가포르(41%), 사우디아라비아(28%) 등이다. 아시아 지역의 이주민의 숫자는 1970년에 2,810만 명에서 2000년에 4,380만 명으로 증가했다. 아시아 지역에는 주요 이주 본국들이 있으며 전통적인 목적국과 새롭게 떠오르는 목적국도 있다. 인도나 중국, 태국 등은 본국이자 목적국이자 통과국이다. 약 43%의 아시아 이주민이 아시아 내에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위기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2010~2011년에 OECD 국가에서 15세 이상 외국출생인구 실업자는 700만 명이었는데 실업률은 11.6%였다. 특히 건설과 제조업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들이 많은 타격을 받았다. 이주민의 송금액은 2000년 1,320억 달러에서 2010년에 4,4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경제위기 상황으로 인해 정체 상태인데,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하면 송금액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에 송금액 상위 5개국은 인도, 중국, 멕시코, 필리핀, 프랑스였다. 미국은 최대의 송금 유출국인데 2009년에 483억 달러였고 그 다음이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러시아 순서였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주요 쟁점 이주노동자의 현실 (1) 무권리 상태의 중동지역 이주노동자 앞서 보았듯이 중동지역 국가들은 노동력 중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카타르가 가장 높은 87%에 달하고, 아랍에미리트 70%, 사우디아라비아 28%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적으로 이 지역의 이주노동자 상황이 가장 열악하다는 것이다. 건설업에는 주로 네팔,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 등 서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많고 가사노동자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출신이 많다. 건설현장의 열악한 상황은 최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카타르의 노동기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종과 산업 구분 없이 최소 100명이 모여야 비로소 일반노동자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고, 이렇게 설립된 위원회는 무조건 카타르일반노동조합에 가맹된다. 복수노조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원회의 모든 활동은 법으로 규율되며 위원회가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면 노동부장관은 이를 해산할 권한을 갖는다. 단체교섭은 절차내용해석 모두 정부가 규율하며, 파업 역시 조합원의 3/4 찬성을 얻어 노동부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모든 분쟁 조정 절차를 마친 후에 할 수 있다. 공무원, 가사노동자를 비롯해 공공부문의 많은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적인 노동권조차도 카타르 국민이 아니면 누릴 수 없다. 다시 말해 카타르 내 노동인구의 87%는 무권리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의 고유한 이주 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을 더욱더 극악한 착취로 내몬다. 카타르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카팔라’라고 불리는 “보증인 제도”에 따라 채용되는데, 이주노동자로 카타르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카타르인 사용자의 보증이 필요하다. 자신을 고용하는 사용자가 ‘보증인'이 되어 체류기간동안 해당 노동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보증인의 허가가 없으면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출국할 수도 없어서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산업재해비인격적 대우 등 모든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12시간을 일하고도 한 달 임금이 550리얄(약 15만원)에 불과하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7명이 좁은 방 하나에 함께 거주하는 등 기숙사 시설 역시 열악하다. 네팔에서 온 5년 거주 건설노동자의 월급은 750리얄이며 도하 시내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통근버스를 타고 집단 숙소와 공사현장을 오가며 일한다. 공사 현장에는 안전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매년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국제노총과 국제건설목공노련은 카타르 정부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 페이지를 개설했다(http://act.equaltimes.org/ko/). 국제앰네스티는 ‘카타르 건설분야에 드리운 이주노동자의 어두운 측면’이라는 보고서에서 일부 이주노동자의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하는데다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에 처해있으며, 충격적인 수준의 숙소에 기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 이주민인권 특별보고관도 최근 최저임금제 도입, 외국인노동자의 여권 압수와 비자에 대한 고용주의 출국서명 금지 등 노동환경 개선과 관련된 14개 권고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가사노동자의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150만 명, 쿠웨이트에 66만 명 등 중동지역에 300만 명에 달하는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극도의 저임금, 고용주의 폭력과 성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법적 권리가 거의 없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걸프 지역의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은 하루 9~15시간, 일주일에 60~100시간가량 일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임금은 터무니없이 적다. 필리핀 출신 한 가사노동자는 당초 월 1,700리얄(467달러)을 받기로 하고 카타르에 왔으나 실제로는 월 900리얄(247달러) 정도를 손에 쥘 뿐이다(한국일보, 2013.5.10). 폭력과 학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0년 한 스리랑카 여성은 고된 노동을 호소하다 집주인으로부터 온 몸에 못과 망치가 박히는 고문을 당했고, 한 인도네시아 여성은 가위로 입술이 잘리고 다리미로 지짐을 당하는 폭행을 당했다. 2011년에는 폭언과 감금에 시달리던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가 고용주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결국 참수형을 당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네시아 정부 사이에 갈등이 커져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우디 등 중동국가로의 가사노동자 송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의 이주노동자 보호 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협정을 체결하지 않는 나라에는 노동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한 스리랑카 여성은 우유를 먹이다 아이를 숨지게 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스리랑카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사우디 정부가 참수형을 집행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2010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이 보고서는 한 해 70억 달러를 인도네시아에 벌어주지만 휴일도 없이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며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양국 정부의 적절한 보호조치를 촉구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주 여성 가사노동자들을 돈 주고 사온 개인 재산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지위가 극히 낮으며 노동자로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학대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단체들과 이주노동자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하지만 개선조치가 취해진 적은 별로 없다. 걸프협력협의회가 가사노동자, 요리사, 정원사, 운전기사 등 지금까지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한 정도다. 중동지역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 문제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것이고 관련 운동도 계속될 것이다. (2) 가사노동자 노동권과 가사노동자협약 가사노동자는 ‘세계화의 하인’으로 불린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노동의 국제적 분업도 확대되는데 이에 따라 이주도 확대된다. 재생산 영역 역시 이러한 국제적 분업이 확대된다. 하지만 그 양상은 극히 인종적이라는 측면에서 인종적 분업이라고 불린다. 유럽, 북미, 동아시아, 중동, 호주 등 선진국과 북반구 중산층 이상의 요구에 부응하여 저개발국과 남반구 여성들의 국제적 재생산 노동시장 진입이 계속 늘어났다. ILO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가사노동자는 약 5,260만 명이지만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수를 합하면 1억 명에 달한다. 한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약 30만~60만 명이 가사노동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 세계 가사노동자 중 42.5%는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며, 56.6%는 법정노동시간 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44.8%는 일주일 중 하루의 휴일(24시간 이상 연속적인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다. 여성 가사노동자의 35.9%는 출산휴가에 대한 법적 권리가 없고, 39.6%는 출산휴가 중 임금보전이 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사생활 침해, 폭언 및 폭력 등을 포함한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으며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 스트레스 및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 안전사고의 문제를 겪고 있다. 가사노동은 비공식 노동부문으로서 노동자로서 인정되지 않았고 노동법의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노동단체,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2011년 6월에 열린 100차 ILO 총회에서 찬성 396표, 반대 16표, 기권 63표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가사노동자협약)’이 채택되었고 우루과이와 필리핀의 비준으로 2013년 9월 15일부터 효력이 발생하였다. 현재까지 14개 국가에서 비준하였다. 가사노동자협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 회원국이 가사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인정과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제3조), 가사노동자로 하여금 계약기간, 수행업무, 보수에 대한 계산방법, 노동시간, 휴가 및 휴게시간 등이 기재된 근로계약서 등을 통하여 근로조건을 알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제7조), 노동시간, 초과근무수당, 휴게시간 및 휴가, 퇴직금 등에 있어서 가사노동자와 일반적인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또한 가사노동자는 주당 24시간의 연속된 휴게 시간을 보장받으며, 일정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하며(제10조),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보장된다(제11조). 각 회원국은 가사노동자로 하여금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제13조), 출산 등에 관한 사회보험제도를 가사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제14조). 이러한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각 회원국은 가사노동자에게 효과적이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고 제도와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제17조). 이처럼 가사노동협약은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일정 수준의 노동조건 보장, 근로계약서의 작성 의무 부여, 휴일 및 휴게 시간 보장, 노동3권 인정, 산업재해 인정 등 가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련의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자협약이 효력을 발휘하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가사노동자협약 채택 이후 국제가사노동자네트워크(IDWN, 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Network)는 세계적으로 협약 비준 캠페인(189호 협약 캠페인이라는 의미에서 ‘C189캠페인’)에 돌입하였다. 6월 16일을 세계 가사노동자의 날로 선포하고 각 국에서 비준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네트워크는 가사노동자 단체와 많은 노동조합들로 구성되었으며 국제식품노련 등의 지원을 받아 2009년에 시작, 2013년 10월에 우루과이에서 창립대회를 열어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 International Domestic Workers Federation)을 출범시켰다. 국제가사노동자연맹은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에서의 권력관계 변화, 성평등 및 인권 촉진을 목표로 각 지역에서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식 제고활동, UNILO국제노총국제산별노련 등의 논의에 참여, 사회운동 및 노동운동과의 연대 형성, 가사노동자 리더십 육성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에서 협약 비준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이 네트워크에 가입해있다. 이주 과정에서의 문제점 (1) 송출업체의 착취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이동에 있어 송출업체가 많은 부분 개입한다. 이는 과거 한국의 ‘산업연수생제도’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송출업체 혹은 중개업체가 이주 본국과 목적국 양자에 존재하며 (이들은 동일한 업체일수도 있고 각기 다를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으로 가기 위해 송출업체에 돈을 주고 업체는 목적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 이주노동자를 보낸다.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내야하는 돈 자체가 많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송출업체는 목적국에서도 이주노동자 임금의 일정부분을 수수료 혹은 관리비 명목으로 떼어간다. 예컨대 몇 달치 임금을 가져가거나 매월 일정 비율을 떼가는 식이다. 이주노동자는 많지 않은 임금으로 송출업체에 돈을 내고 또 빚도 갚아야 하므로 정해진 기간을 넘겨서 초과체류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더욱이 송출업체는 이주노동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서류나 신분증을 압류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한국의 산업연수생제도 하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용은 1,000만 원이 훌쩍 넘었으며 그 과정에서 본국의 송출업체들과 한국의 담당기관인 중소기업중앙회가 비리로 얼룩지기도 했다.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산업연수생들은 인권유린의 공장을 이탈하여 미등록체류자가 되어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옮겼다. 당시 연수생들의 80% 이상이 미등록체류자가 되었다. 또 다른 예로 홍콩의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 사례가 있다. 이에 관한 국제앰네스티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15만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이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홍콩에 오기 전 인도네시아에서 중개업체에 의해 모집되어 우선 훈련센터에 들어간다. 거기서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15개월 동안 언어와 가사기술을 배우는데 그동안은 가지고 있던 각종 서류들과 전화기를 압수당한다. 홍콩 법에서는 임금의 10% 이상을 공제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중개업체가 중개비 명목으로 7개월 동안 임금에서 떼어가는 돈이 총 2,700달러에 이른다. 현재 홍콩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월 517달러 정도인데 월급의 대부분을 중개업체가 가져가는 셈이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을 짓기 위해 동원되고 있는 네팔노동자들 역시 중개업체들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중개업체들은 모집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빚을 지게하고 이를 이용해 착취를 한다. 업체는 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2개월분 임금을 항상 연체하고, 신분증을 압수해 놓는다. 이런 횡포 속에서 7월 한 달에만 4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서울신문, 2013. 9. 26). 중개업체들은 밀입국을 알선하거나 인신매매에 개입되어 있는 조직들이 많다. 밀입국 알선에는 단계별로 브로커들이 개입하는 데 여기에는 본국과 목적국 양측의 공무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인신매매의 경우 사람을 상품처럼 취급하면서 폭력, 강압, 사기를 일삼는다. 특히 여성과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산업과 관련된 조직범죄 집단도 개입되어 있다. 지난 10월 초에 열린 ‘이주와 개발에 관한 UN 고위급 대화’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제출한 5개년 행동계획의 첫 번째 의제에도 이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주노동중개 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효과적 기준과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국경 강화와 이주노동자의 사망 전 세계적으로 각 국의 이주정책은 숙련 인력과 투자자에게는 문호를 여는 반면, 숙련 인력의 이동은 제한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해졌는데 저숙련 인력이 포화상태고 이후에 실업 등으로 인해 사회복지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권 혹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요건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민정책의 우경화다. 예컨대 영국은 2013년 10월부터 새로 개정된 이민법을 시행한다. 이에 따르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으려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영어 능력을 보여야만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또한 전과 기록이 있으면 영주권 취득이 어려우며, 범죄자 추방 절차도 간략해졌다. 그러나 상사 주재원과 기업인의 출입국은 더 쉬워졌고, 허용범위도 더 넓어졌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는 2011년에 이민법을 개정해 이주노동자를 추방하기 쉽게 제도를 바꿨고, 반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과학자컴퓨터공학자예술가 등에게는 3년 거주 허가를 부여했다. 독일 역시 연간 44,000유로(약 6,500만 원) 상당의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는 ‘블루카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 지난 6월에 통과된 이민개혁안은 미등록체류자들에게 임시비자 부여, 고학력 전문직을 위한 별도의 비자 발급, 국경 경비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헤럴드경제, 2013. 7. 5). 한국 정부도 최근 몇 년간 투자이민제도를 도입하여 일정액 이상을 한국 기업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을 구입하면 영주권을 발급해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결혼이주민에 대해서는 비자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미등록체류자 단속추방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밀입국하는 이주노동자를 막으려는 국경 강화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합법적 유입 경로가 거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악화로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어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로부터 작은 보트를 이용하여 밀입국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지인데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보트가 뒤집혀 죽는다. 일단 섬에 오르면 유럽에 상륙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죽을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건 시도를 한다. 1993년 이래 람페두사로 향하다 익사한 사람의 숫자가 25,000 명에 이르며, 1999~2012년 사이에만 20만 명이 람페두사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유럽 이민길에 오른 ‘보트 피플’이 늘면서 람페두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들은 섬에 내린 뒤 망명허가를 받지 못하면 수용소에서 기다리다 다시 추방된다(경향신문, 2013. 10. 3). 지난 10월에도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사람들이 탄 보트가 침몰하여 400여 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모로코 등지에서 스페인의 카나리제도를 향해 배를 타고 불법 이주를 감행하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다. 유럽연합은 난민신청자 처리에 관한 더블린 조약(2003), 유럽난민기금(2000), 신청자의 지문정보와 신원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유럽난민정보(Eurodoc, 2003), 유럽연합 국경관리기구(Frontex) 등을 설립하여 유럽연합 차원에서 난민 부담을 공평하게 분담하고 난민의 인권을 최소한이나마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구들은 실제로는 ‘요새화된 유럽’을 추구하는, 즉 이주민과 난민의 유럽연합으로의 유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2003년에 개정된 더블린 조약은 유럽 난민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이 조약에 따르면 난민들은 최초로 도착한 나라에서만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다. 국경을 제대로 수비하지 않거나 유인을 제공한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만약 난민이 다른 유럽연합 국가로 숨어들 경우에도 이들은 처음 땅을 밟은 나라로 환송된다. 이를 위해 난민의 지문을 비롯한 신원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인 유로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더블린 조약은 사실상 EU 외곽의 일부 국가들에게 난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호주로의 밀입국에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호주 북부 크리스마스섬으로 보트를 타고 가는 루트가 이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다.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인데, 해마다 수백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200km에 달하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장벽이 세워짐에 따라 밀입국자들은 점점 더 위험한 경로를 택하게 된다. 밀입국 과정에서 사망의 대부분은 사막에서 수분결핍과 배고픔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코요테라고 불리는 불법입국 알선조직을 통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용은 수천 달러가 들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경이 강화되고 밀입국 경로가 막힐수록 이주자들은 더 위험한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여 이주를 감행한다. 본국에서의 삶이 더 지옥 같기 때문이다. 결국 본국의 경제나 분쟁상황이 나아지거나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 한 이러한 위험한 이주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목적국 이주정책의 문제점 (1) 단기 순환이주의 문제 단기 이주는 이주노동자가 목적국에서 몇 개월에서 몇 년의 비교적 짧은 기간을 일하다가 본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유럽 국가들이 단기취업 노동자를 들여오기 위해 도입했던 ‘초청노동자(guest worker)’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가족동반과 정착이 허용되지 않는 단기 이주노동 제도가 결국은 정착과 가족동반까지 이어져 목적국 내 새로운 이주민 집단을 허용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목적국 정부들은 정착한 이주민 집단의 사회통합, 복지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기 순환이주라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으로만 받고 기간이 만료되면 내보내고, 또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노동력을 순환시키는 정책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현재 한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그렇다. 이러한 단기 순환이주는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정착을 허용하지 않고 이주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고용허가제 역시 정착을 금지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예컨대 고용허가제는 최대 4년 10개월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5년 간 합법적으로 일하게 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한을 둔 것이다. 단기 순환이주는 사실상 착취의 순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만 일할 수 있으므로 고용주들과 목적국의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하기 쉽고 그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단기 이주노동 제도는 연령 제한을 두고 노동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노동자만을 받아들이는데 이 역시 빈곤한 나라의 노동력 착취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단기간만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초과체류하는 미등록체류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주를 위해 지출한 막대한 비용을 보상받기 위해 충분한 경제적 저축 등을 위해 장기간 일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형성되고 이들은 체류기간을 초과하므로 비자가 없는 미등록체류자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등록체류자들이 존재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2012년에 미등록체류자가 1,170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10월 말 현재 18만 명이 넘는 미등록체류자가 존재한다. 고용허가제에 따른 고용기간 만료자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2011년 이후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이주 연구자인 카슬(Catsle)은 “초청노동자 제도는 헌법과 법체계로써 모든 사람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고용은 중동 산유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계약노동 체계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권 규정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에서는 가족 재결합 및 정착을 금지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단기 이주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단기순환이주라는 것도 결국 더 엄격한 국경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라고 비판한다. 단기 순환이주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한다는 측면에서 폐기되어야 하는 정책이다. (2) 미등록체류자 인권과 합법화 미등록체류자는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데 이주운동 진영에서는 체류에 필요한 적절한 서류를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서류미비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미등록체류자라고 부른다. 범죄자를 연상시키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는 모든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주민의 인권보장에 적합한 용어가 아니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도 이주민 운동의 공통구호 중의 하나가 “No One is Illegal(아무도 불법이 아니다)”이다. 미등록체류자의 규모는 유럽 500만~800만, 미국 1,100만 명 등으로 추정된다. 아시아에는 태국 국경지대와 태국 내에 200만 명의 미얀마 이주민이 거주하는데 대부분이 미등록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약 18만 명이 존재한다. 미등록체류자가 발생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대개는 이주민이 개입할 수 없는 정부의 자의적인 정책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유럽의 미등록체류자들은 합법적으로 유입되어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적절한 노동허가나 거주허가를 받지 못하는 미등록 체류자가 다수이며 범죄가 아니라 행정적 위반에 의해 미등록체류자가 된다. 정보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거나 착취와 학대로 인해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행정적인 지연으로 인해 비자를 상실하기도 한다. 물론 밀입국처럼 입국 자체가 합법적인 경로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난민 신청이나 거주신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거주허가를 받지 못하면 미등록체류자가 된다. 한국에서도 고용허가제가 규정하는 짧은 노동기간으로 인한 초과체류자 발생,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업장 이동 제한으로 인해 사업장을 옮길 수가 없어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례, 정해진 기간 내에 구직을 못해 미등록이 되는 경우 등 정책상의 문제로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일이 많다. 결국 목적국의 까다로운 이민정책으로 인해 합법적 이주 경로를 찾지 못한 이주민들이 큰 비용을 들여서 밀입국을 선택해 미등록체류자가 되거나, 합법적 이주를 했다 하더라도 이주민을 배제하는 정책들로 인해 쉽게 비자를 잃게 되어 미등록체류를 하게 된다. 갈수록 이주의 목적국들은 저숙련 인력의 입국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므로 이주 비용은 그에 따라 늘어가고 이를 중개하는 이주산업은 커져 가고 있다. 이주가 어렵지 않고 본국과 왕래가 가능하며 목적국에서 차별적 정책이 없다면 오히려 미등록체류는 줄어들 것이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 먼 나라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싶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미등록체류자는 이주민이 겪는 문제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합법적인 거주허가나 노동허가가 없어서 최소한의 법적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노동현장에서 가장 열악한 착취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단속추방에 대한 불안은 생활과 심리상태 전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회복지에서도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구조를 받지 못하고, 범죄피해를 당하더라도 신분노출의 우려 때문에 경찰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본국의 가족을 초청하거나 방문할 수도 없다. 종종 극우 인종주의 단체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등록체류자라 하더라도 일단 목적국의 사회에 속해 있고 기본적 인권이 있다. 그러므로 이주민 운동에서 미등록체류자의 인권 보장, 합법화 등의 요구는 중요한 부분이다. 예컨대 피난처에 대한 권리, 의료에 대한 권리, 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결사의 자유, 교육훈련에 대한 권리, 최저생계 및 최저임금에 대한 권리,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 미등록체류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 등을 미등록체류자에게도 보장해야 한다. 현재 미등록체류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인데 이들에 대한 사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은 이미 1986년에 이민법 개정을 통해 약 300만 명의 미등록체류자를 합법화한 바 있다. 현재의 이민개혁법안(국경경비, 경제기회, 이민현대화 법안)은 지난 6월에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을 통과했고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어서 연내 처리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민개혁법안의 핵심은 2011년 12월 31일 이전에 입국한 미등록체류자들에게 임시비자를 발급한 후 10년 후에는 영주권, 13년 후에는 미국시민권까지 취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법안에는 국경순찰대원을 2배 늘려 4만 명으로 확충하고 밀입국을 막기 위해 추가 국경장벽을 설치하고, 무인정찰비행기를 대거 투입하며 미등록체류자 고용을 감시하기 위한 고용자격전자확인시스템(E-Verify)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이주민단체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미등록체류자 사면에 중점을 두고 법안의 하원통과를 위해 공화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한 해에 40만 명을 강제추방하는 세계 제일의 추방국가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운동은 강제단속과 추방을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미등록체류자의 인권과 합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극우 인종주의 세력의 발호 이주민에 대한 극우 인종주의 집단의 반대활동은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격화되었다. 이들은 경제위기로 인한 복지의 후퇴, 일자리의 감소와 실업의 증가, 삶의 질의 하락 등의 원인을 이주민, 유럽연합의 탓으로 돌린다. 또한 이주민에 대한 혐오정서를 조장하고 공공연하게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선전선동하면서 경제위기로 인해 박탈감을 가진 시민들을 파고들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극우정당을 만들어 반이슬람, 반유럽연합, 반이민자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정치권에서도 세력을 확산하고 있다. 특히 긴축정책으로 경제위기의 고통을 시민들에게 가중시킨 유럽 지역에서 그러하다. 최근의 각종 선거에서 극우정당들은 지지율과 의석이 대폭 상승하여 극우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거연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프랑스 국민전선과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가 최근에 만나서 이러한 합의를 했으며 공동선거와 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표1]유럽 극우정당 현황 반이민자를 내세우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선거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오스트리아인이라면’과 같은 노골적인 민족주의 반이주민 구호를 채택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 대표는 “그리스는 그리스인이 소유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 우리의 수천 년에 걸친 역사를 보호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인종주의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종주의자가 맞다”고 말했다. 경제 불황, 긴축정책, 무슬림 등 이민자 증가, 실업 증가 등의 상황은 인종주의자들이 이민자에 대한 공격을 선동하는 기반이 된다. 그들은 초국적 자본이나 지배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집단, 특히 이주민들을 악마화 하면서 위기의 원인을 엉뚱한 데로 돌려 현재의 지배질서를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반동적 집단이다. 극우정당들은 지지율 상승과 당원 확대를 위해 이주민 범죄를 과장하고 극단적인 인종주의적 담론을 사용하면서 국민의 공포를 자극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외국인혐오증은 전체 사회에 전파된다. 극우세력들이 인종주의적 범죄를 유도하고 조직하고 직접적으로 저지름으로써 이주민을 보다 위축시키고 테러 분위기를 조성한다. 즉,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이라는 상황에서 극우세력들은 인종주의적 정서를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일찍부터 반인종주의 운동이 발전해 왔고 최근 그리스의 ‘인종주의 파시즘위협 반대공동행동(KEERFA)’, 프랑스의 ‘SOS Racism(인종주의)’, 영국의 ‘인종주의반대 전국회의(National Assembly against Racism)’나 ‘반파시즘연합(United against Fascism)’ 등은 신나치와 극우정당에 대항하여 여러 이주민 공동체들과 함께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아직 반인종주의 운동이 대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주노동자운동은 한국의 인종주의를 분석하고, 인종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이주정책의 근본적 변화와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국제적 규제 체계 10월 3~4일 뉴욕 UN 본부에서는 ‘이주와 개발에 관한 UN 고위급회담(High-Level Dialogue on International Migration and Development)이 열렸다. 이는 2008년 12월 19일 UN총회 결의안 63/225에 따라 2013년 68차 회기에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UN에 따르면 이 회담의 목표는 ‘국제이주의 이익을 이주민과 국가들에 확대하기 위해 모든 수준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감소시키며 개발과 연계’하는 것이다. UN은 2006년 이주와 개발에 관한 고위급 회담을 열었고 여기서 세계적으로 이주에 관해 논의하는 틀로서 ‘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포럼(Global Forum on Migration and Development, GFMD)’을 만들었다. GFMD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개최되었고 2013~14년 행사는 2014년 5월 스웨덴에서 열린다. 이전에는 2007년 벨기에 브뤼셀, 2008년 필리핀 마닐라, 2009년 그리스 아테네, 2010년 멕시코 멕시코시티, 2011년 스위스 제네바, 2012년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주에 관한 국제적 틀이 어떤 상설기구가 아니라 포럼의 형식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GFMD는 정부에 어떠한 강제력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압력을 행사하는 단위가 아니다. 오히려 이주를 개발과 연계시켜, 경제적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혐의가 짙었고 처음부터 이주민 운동 단체들의 비판과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국제이주민권리(Migrants Rights International, MRI)라는 네트워크는 GFMD가 열릴 때마다 ‘민중의 국제 행동(People's Global Action, PGA)’이라는 부대행사를 개최하여 이를 비판했다. GFMD의 논의가 ‘지극히 근시안적이고 이주민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며’, ‘이주와 개발을 연계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고, 이는 이주민의 인권과 이주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를 배제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들이 이주를 단순히 경제발전의 도구로 생각하고 이주민을 송금 수단으로만 여기며 이주민의 생존과 인권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주민이 그 출신국이나 목적국, 고용주들에 의해 계속 착취당하고 있으며 GFMD는 이러한 정책과 담론만 참가국들에 유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이주민연대(International Migrants Alliance, IMA)는 ‘이주가 권리가 되고 이주민의 완전한 인권이 보장되며 그들의 기여가 인정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입장서를 이번 UN 고위급 회담에 앞서 제출하였다. 이들은 2006년 UN 고위급회담 이후에 이주-개발 연계 논의가 더욱 강화되어 더 많은 정부와 국제기구, 민간 그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러한 담론은 GFMD라는 틀에서 더욱 확대되면서 경제위기 하에서 이주노동과 송금을 성장과 개발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한다. 한편 이주가 개발에 기여하는 측면에 대한 부분은 과도하게 연구되는 데 실제 현실에서는 왜 저개발의 결과로 이주가 발생하는지는 아무런 논의가 되지 않음을 비판한다. 국제금융기구, 정부 간 기구,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주에 관한 실용적인 관점만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의 과실만 활용하려는 논의는 결국 이주와 안보의 연계로도 이어지는데, 국경의 군사화, 엄격한 비자 정책, 이주민에 대한 편견 조장 등이 그러한 것이다. 즉 필요한 만큼의 정규적인 이주를 넘어서는 비정규적 미등록 이주를 막기 위해서 국경을 요새화하는 정책을 쓰고 이주민을 범죄자화 한다. 그 과정에서 이주민의 권리와 복지, 인권은 생략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국제이주민권리와 국제이주민연대 두 그룹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주민 권리운동 단체들은 GFMD를 규탄하고 이 체계가 아닌 다른 체계의 구성을 주장한다. GFMD가 이주민의 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이주민을 경제적 활용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GFMD가 정부와 고용주들의 이해에만 부합하는 논의를 해왔고, 더이상 국제적인 이주 논의의 기본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GFMD와 같은 UN 바깥의 틀이 아니라 UN 내에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에 초점을 맞춘 체계를 만들어 이를 통해 각 국가를 규제하라고 주장한다. 그 전제는 GFMD를 해체하는 것이다. 물론 UN 내에서 이주 관련 책임단위를 일정하게 만든다고 해서 이주민을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송금과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온 틀을 권리를 중심에 둔 틀로 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이주민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국제 법제도의 형식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주민의 권리가 국제적, 일국적, 지역적으로 신장되기 위한 이주민 조직화와 세력화일 것이다. 국제노총(ITUC)은 노동이주에 관련한 UN의 유일한 공식기구인 ILO의 역할과 권리기반 접근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고, 이주에 관한 모든 논의와 정책과 프로그램, 협정이 UN의 일상적 체제에 기본이 되도록 정부들에 요구하고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채택된 UN총회 선언문은 인권, 국제노동기준, 인신매매 반대, 인종주의와 불관용 반대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주와 개발의 연계 하에서 기존의 활동을 옹호하며 GFMD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개방된 논의’를 하는 가치 있는 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UN의 모든 관련 기구, 기관, 기금, 프로그램이 이주와 개발 문제에 관해 협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와 관련한 새로운 규제 틀은 결국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내 이주노동자운동의 국제연대 활동 한국에서 이주 관련 NGO들의 국제연대 활동이 아닌 이주노동자 노조의 국제연대 활동을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MTU)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이주노조는 2005년 설립 이래 다양한 국제연대 활동을 해 왔으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은 아니었다. 국제연대 활동은 국제담당자가 있던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008년 10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차 이주와 개발에 관한 국제포럼(GFMD)’ 시기에 이주노동자운동 진영에서 조직한 대응 행사에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주노조와 함께 구성한 참가단이 참여한 것이 가장 큰 규모였다. 국제산별연맹(Global Union Federations, GUFs), 국제이주민권리, 국제이주민연대가 각각 대응행사를 개최하였고 이주노조는 세 행사에 모두 참가하였다. GFMD 대응행사들은 실질적인 자극을 주었다. 이주민 관련 단체들이 큰 규모로 세계적으로 결집하여 경험을 공유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낸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국제산별연맹이 정책개입에서부터 조직화 방식에 이르는 주제들을 다룬 이틀간의 회의를 주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주노동자의 노조 결성권과 가입권이 커다란 주목을 받았고, 이주노조와 이주노조 합법화에 관한 대법원 소송이 결사의 자유권을 위한 미등록이주노동자 투쟁의 중요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주노조가 지도부에 대한 표적단속의 영향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을 때, 투쟁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인식과 국제적 수준의 연대는 힘을 주었고 국내에서 투쟁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민주노총은 GFMD 대응행사에 참가함으로써 크지는 않지만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특히 참가자들은 여기서 제기된 이슈에 대해 성실하게 개입하고자 노력했다. 민주노총 중앙지도부와 산별노조, 지역본부 간부들이 이주노조와 이주노조의 밀접한 연대단위와 함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을 전개한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2009년에도 당시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은 그리스에서 열린 GFMD 대응행사에 참여하였다. 2011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관한 회의, 2012년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이주사회포럼’에도 이주노조는 참여하여 한국 이주노동자 제도의 문제점과 이주노동자 투쟁, 조직화에 관하여 알리고 연대를 모색하였다. 한편 GFMD에 대해 국제이주민권리는 개입해서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제이주민연대는 전면적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주노조는 GFMD 대응행사나 이주사회포럼에 참여할 때 어느 일방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교류하려고 노력하였다. 국제노총과 국제산별연맹에서 강조하듯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세력화, 투쟁에 중심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행사 참여 이외에 노조 간의 연대는 주로 홍콩의 인도네시아이주노동자노조(IMWU)와 이루어졌다. 이 노조는 홍콩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여성 2,000여 명이 가입되어 있는데 이주노조 성원의 홍콩 방문, IMWU 위원장의 한국방문 등을 계기로 이주노조와 연대관계가 형성되었다. 이후 2010년에 홍콩에서 IMWU가 이주노조 합법화를 촉구하는 한국대사관 앞 집회를 개최하고 서로 연대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활발하게 연대가 이어졌다. 이러한 노조 간의 연대는 인적인 유대관계로 더욱 강화될 수 있고 동일하게 고통 받는 처지라는 점에서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주노조 국제연대에서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본국으로 추방당하거나 돌아간 이주노조 활동가들과의 연대다. 이주노조는 2008년 6월에 네팔에서 ‘송출국과 한국 이주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열고 네팔, 방글라데시 동지들과 함께 ‘국제이주노동자 연대네트워크’ 결성을 결의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 여러 가지 문제와 사정으로 네트워크는 가동되지 못하였고, 현재는 네팔로 돌아간 동지들이 결성한 ‘네팔 이주노동자 연대센터’ 활동을 이주노조가 지원하는 형태다. 여기에는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희망연대노조 등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려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선전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조의 직접적 지원은 아니지만,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전 위원장이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필리핀 이주민단체인 미그란테(MIGRANTE)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개인들이 활동비를 모아서 지원하고 있다. 2010년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네팔노총(GEFONT)과 협약을 체결하고 이주노동자 활동가를 민주노총 간부로 채용하여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벌였다. 이 역시 국제연대 활동의 한 축이며 민주노총의 노력이다. 민주노총은 다른 나라 노조들과도 협약을 체결하여 연대를 확장하고 국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이주노동자 운동 국제 네트워크와의 연대활동, 해외 이주노동자 노조와의 연대활동,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조 활동가들과의 연대활동 등이 이주노조의 주요한 국제연대활동이다. 물론 이주노조 지도부의 단속추방 대응,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주노조 설립신고 소송, 합법화 캠페인 등에서 메시지를 받거나 연대캠페인도 진행한다. 이러한 국제연대 활동에 있어 이주노조의 이주노동자 간부 활동가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며 국제연대가 이주노동자 주체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가며 이주노동자운동은 그 특성상 연대사업 자체가 국제적일 때가 많다.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은 그 나라 출신이 아니므로 본국의 운동과도 연관되어 있고, 목적국 내의 운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주는 국제적 수준에서의 쟁점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중개업체의 횡포, 국경을 넘는 노동력과 성산업의 인신매매, 노동조건이 열악한 특정지역의 문제, 가사노동자와 같은 특정한 집단의 권리 문제, 각국에서 발호하는 인종주의와 극우세력 문제, 국제적 이주 규제체계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국내적 쟁점을 넘어선다. 공통적인 것은 어느 쟁점이든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이 무시되고 파괴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하려는 운동, 세력, 법, 제도 등이 상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의 이주노동자 운동이라도 그 나라의 이주노동자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의 성격과 동시에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국제연대 활동과 관련하여 몇 가지 과제를 확인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주노동자운동은 여러 가지 과제를 안고 있고 이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주체 형성이 관건이다. 특히 체류권이 제약되어 있고 기존의 활동가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활동가 육성이 시급하다. 민주노총이 전략조직화 사업을 통해 이주노조 조합원 숫자를 많이 늘렸지만 여전히 노조 활동가, 간부 육성은 더디다. 노조를 이끌어갈 간부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활동이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이 노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통로, 기회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간부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 활동가들이 노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토론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단조직화 사업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해외 노총과의 협력을 통해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확대하려는 민주노총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노총 간 협력사업은 활동가 채용뿐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해당 국가 말로 번역된 노동조합 설명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본국 노총의 활동가가 정기적으로 방한하여 이주노동자 공동체들과 만나 교육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본국 노총이 한국으로 가려는 자국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선전 사업을 하는 등 상황과 조건에 따른 다양한 협력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이주노조가 본국으로 돌아간 예전 조합원, 간부들과 연대하여 더욱 추진해야 할 것도 이런 부분이다. 물론 민주노총과 이주노조만의 몫은 아닐 것이며 이에 연대하는 이주운동 진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농축산업분야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노동자의 경우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이들이 안산의 ‘지구인의 정류장’과 같은 지원단체와도 관련을 맺고 ‘크메르노동권협회’와 같은 공동체도 만든 상황에서 이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캄보디아노총(CLC)과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주노조가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과의 연대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국제이주노동자 연대네트워크는 이주노조의 역량과 재정 부족, 본국 활동가들의 불안정한 상황, 소통의 어려움 등이 맞물려 가동되지 못했다. 사실 본국으로 돌아간 활동가들은 생업을 꾸려야 하므로 안정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기 힘든 측면이 크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국의 노동현실을 경험하고 본국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살려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장기적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이주노조가 이러한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이주공동행동과 같은 연대체에서 함께 논의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사업 전반에서 국제연대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민주노총은 강령에서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와 연대하여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계획, 투쟁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제연대가 전략으로 고민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로 부서별 사업계획의 일부로 포함된다. 민주노총 내에서 ‘국제연대’라고 하면 아마 “외부적 지원을 이끌어 내는 일” 정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창립 당시 민주노총은 국제연대 활동 방침을 “①국제자유노련에 가입해 적극 활동한다. ②각국 민주노조 단체와의 쌍무적 연대협력관계를 발전시킨다. ③노조 상층 간의 교류가 아니라 현장중심의 교류활동을 강조한다. ④진보적 노조운동과의 연대관계를 강화한다. ⑤저개발국 노조운동에 대한 지원활동을 강화한다. ⑥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인권유린과 노조탄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⑦국내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자와 동등한 인권과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한다” 등으로 설정하였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결성과 함께 민주노조 운동은 국내의 억압적 노사관계를 극복하는 주요한 투쟁전술 중 하나로 국제연대 활동을 채택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및 각종 국제노동조직의 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억압적 노사관계를 폭로했고, 대내적으로는 ILO 국제노동기준을 비준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①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노동자 국제연대 전선을 구축한다. 이를 위한 유력한 공간으로 남반구노동조합연대회의를 주목하며 이를 내용적으로 강화한다. ②진보적인 노동조합 블록을 강화해 국제자유노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를 비롯한 국제노동조직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반신자유주의 정책의 관철을 위해 노력한다. ③아시아 지역 노동조합 연대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해 지역 내 민주적 노동조합들 간의 상호 연계와 연대, 교류활동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반신자유주의 아시아 노동조합 행동 네트워크 건설의 토대를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한다. ④세계사회포럼,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 등 반세계화 국제 사회운동 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한다” 등으로 과제를 확대하였다. 민주노총이 국제적인 운동과 접촉하는 공간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민주노총 및 가맹조직(산별연맹)들이 가맹한 국제조직(국제노총, 국제산별노련) 내에서의 활동이다. 현재 민주노총과 대부분의 가맹조직들이 국제조직에 가입해 있다. 각각의 기원과 역사, 지향은 다르지만 국제조직들은 대체로 유럽 중심성이 강하다. 이 안에서 민주노총 및 가맹조직들은 민주노조 운동의 주도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북반구/유럽 중심의 노동자운동을 넘어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형성하는 것을 자기 과제로 정립하고 있는 남반구 중심의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다. 여기에는 과거 신흥산업국의 전투적 노동운동 또는 사회운동 노조주의로 주목받았던 남아공노총(COSATU), 브라질노총(CUT) 등이 속해 있고 민주노총은 2001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국제노총의 북반구 중심 관료적 노조운동을 비판하면서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국제적인 차원에서 실현한다고 표방하고 있으나, 실천에 있어서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세 번째로 민주노총 주도로 새롭게 구축하려는 공간으로서 아시아의 민주노조 운동간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2007년부터 아시아 노조활동가 교육 교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추동력이 약화되었지만 세계사회포럼을 거점으로 하여 대안세계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당시에 민주노총은 이 공간에서 노동조합과 보다 폭넓은 사회운동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러한 시도 역시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민주노총이 시도한 국제 활동을 이러한 공간을 축으로 개괄, 평가하고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국제적 연대와 압력 조직화 최근 정부의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에 대해 국제교원노련(EI), 국제노총(ITUC),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등 국제 노동조합 조직들은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국제연합(UN), ILO, OECD 등 국제기구에 가입할 당시 스스로 약속했던 사항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ILO 역시 ‘노조 아님’ 통보의 근거가 된 해고자의 노조가입을 금지하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교원노조법 관련 법 조항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결사의 자유 원칙과 ILO가 한국정부에 수 차례 내린 권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긴급하게 개입했다. 국제조직들이 이렇듯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그 동안 민주노총이 국제노동조합 조직과 ILO 등 국제기구에서 국제노동기준에 미달하는 한국의 노동기본권 현실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정부로 하여금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본권에 관한 원칙을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활동을 전개해 온 데 따른 것이다. 민주노총 초창기 이러한 활동은 국제 사업의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민주노총 창립 이전 전노협, 업종회의 시절부터 민주노조 운동은 국내의 억압적 노사관계를 극복하는 주요한 전술 중 하나로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준을 근거로 정부를 압박하여 최소한의 안정적 활동 공간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가 결성되었고, 국내에서는 ILO 핵심협약, 특히 87호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에 관한 협약’, 98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에 관한 협약’의 비준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국제적으로는 ILO 총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탄압 현실을 폭로하고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을 호소했다. 이후 한국의 노사관계 법제도를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하려는 시도는 크게 두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와 협력하여 OECD가 한국의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 현황을 모니터링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96년 김영삼 정부가 OECD 가입을 시도할 당시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를 주장하던 클린턴 정부는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ILO 협약으로 명시된 국제노동기준 준수를 요구했고, 김영삼 정부는 ‘임기 내 OECD 가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 가입 후 국제노동기준 준수 여부 모니터링’을 수용했다. 이렇게 해서 가입 당시부터 2007년까지 OECD 고용노동사회위원회(ELSAC)는 다음과 같은 개혁 과제를 제시하고 시행 여부를 모니터링 했다(이를 한국 노사관계 법제도에 대한 OECD 특별감시과정이라고 부른다). 1) 초기업단위/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2)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에 대한 입법적 관여 중단(노사 자율교섭) 3) 제3자개입금지 철폐 4) 직권중재 폐지 및 (파업권이 일정 제한될 수 있는) 필수업무 축소 5) 민주노총 합법화 6) 교사 단결권 보장(전교조 합법화) 7) 공무원 단결권 보장 8) 노동조합 간부 구속 수배 관행 및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노동쟁의 형사처벌 관행 개선 9) 해고자, 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민주노총은 특별감시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ELSAC 회의에 TUAC와 함께 직접 참여하여 ‘한국의 노사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정부의 주장을 비판하며 노동기본권 탄압 현실을 지속적으로 폭로함으로써 ‘노동기본권 쟁취, 노조법 재개정 투쟁’에 힘을 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특별감시과정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국 정부에 대해서만 실시되었고 ‘회원국의 국제노동기준 이행 여부에 대한 감시’는 OECD의 본래 역할과도 거리가 멀어 이를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었다. 제3자개입 금지 철폐, 민주노총 합법화, 전교조 합법화 등의 조치를 근거로 2007년 특별감시과정은 중단되었고, 노사관계로드맵 통과로 유예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관해서만 2010년에 진전상황을 보고할 것을 과제로 남긴 채 흐지부지 되었다. 특별감시과정이 종료될 즈음 TUAC는 “특별감시과정 초기에는 민주노총/전교조 합법화, 제3자개입 금지 철폐와 같은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 낼 만큼 한국 정부가 이 과정을 실질적인 압박으로 느끼고 영향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약화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후 그리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후 노동권을 크게 후퇴시킨 노동유연화를 촉진하는 법제도는 특별감시과정의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노동유연화 확대가 OECD의 권장사항이었다는 점에서 이 특별감시과정 활용 전술은 큰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어용노조 육성과 민주노조 파괴 ▶직권중재 폐지 후 긴급조정제도 도입 및 필수공익사업장 규정 및 광범위한 필수유지업무 규정에 따른 공공부문 파업권에 심각한 수준의 제약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노동쟁의 형사처벌 및 천문학적 손배가압류 ▶해고자 가입을 이유로 한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및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현실을 볼 때 제 3자 개입금지 철폐와 민주노총 합법화를 제외하면 특별감시과정을 통해 이끌어낸 변화마저도 되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는 ILO 감시감독 절차를 통한 압박이다. ILO는 국제적인 수준의 노사정기구인데, 주된 기능은 국제노동기준을 제정하고 각 회원국이 이를 비준하고 준수하도록 독려하는 역할과 노동 정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에 활용하는 ILO의 기능은 전자다. 그 중에서도 ILO의 핵심 원칙인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보장’에 관한 원칙을 규정한 87호, 98호 협약은 해당 협약 비준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회원국이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시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는 절차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결사의 자유 위원회(Committee on Freedom of Association)>가 그것이다. 한국 정부는 ILO에 가입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비준한 협약의 수는 매우 적고, 특히 87호, 98호는 비준하지 않고 있어서 한국 정부의 노동기본권 침해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유일하다. 민주노총이 국내적 수준에서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는 상황과 국제적 수준의 노사정기구인 ILO에 참여하는 상황은 일견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ILO 관련 활동은 ‘사회적 대화’와 연관이 있다기 보다는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나는 법 제도 관행을 문제제기하고 ILO로부터 권고를 얻어내는, 국제적 수준에서의 법적 대응의 성격을 지닌다. 1991년부터 한국 정부의 결사의 자유 침해에 대한 제소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약 30차례의 권고를 내렸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 제소와 이에 따른 권고는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약하는 국내법을 개정하고 탄압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ILO는 국제기준을 정하고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이를 준수하도록 독려하는 체계라서 노동기준이나 권고가 그 자체로 구속력을 지닌다거나 불이행 시 이를 제재할 수단은 없다. 지금까지의 숱한 권고가, 국내 법제도 관행이 국제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고 국제 기준에 따른 개정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노동기본권을 확대하려는 투쟁에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은 심각한 수준의 탄압이 있을 때마다 국제노총 및 국제산별조직들을 통해 한국 정부를 겨냥한 국제 공동 항의행동을 조직한다. 올해만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 ▶한진중공업 손해배상 철회와 최강서 열사 명예회복 및 유족보상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 이행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성기업 사용자노조 해산, 노조파괴 중단 ▶공무원 및 공공부문 해고자 복직과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 등 5대 현안 요구를 내걸고 집중행동을 펼칠 당시, 각국 노총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앞 항의서한 보내기, 한국 대사관 앞 항의시위 등을 조직했다. 이러한 행동은 <레이버 스타트>라는 온라인 캠페인 사이트를 통해 신속하게 조직되기도 한다. 공무원노조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 위원장 단식 투쟁, 전교조 법외노조화 항의 등의 행동에 이 온라인 캠페인을 통한 연대행동이 조직되어 각각 9천~1만건에 이르는 항의 이메일이 전달되었다. 현재 준비 중인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에 대해서도 탄압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제 공동행동의 날, 온라인 캠페인 등이 조직되었다. 국제노동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국내 노동법, 노사관계 제도가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현실에서, 국제기준에 호소하여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투쟁을 방어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민주노조 운동이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노총 초창기부터 우선시 되었던 이러한 활동이 여전히 민주노총 국제 사업 또는 국제사업 담당자의 역할에서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더불어 이러한 국제기준이 전혀 구속력이 없다는 점, 그리고 OECD, ILO 가입 초기와 달리 이러한 국제적 개입이 정부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선 순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기준 자체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2년, 2013년 ILO 총회 기준적용위원회에서 사용자그룹은 8개 핵심협약의 비준 정도와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논의에서 “파업권은 87호, 98호 협약에 직접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파업권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실현하는데 불가결한 요소이므로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본권에 포함된다는 전문가위원회의 유권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 며 국제노동기준을 약화하려고 시도했다.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따라서 국제노동기준은 ‘안정적으로 확립되어 투쟁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도 방어하고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한 대상이다. 국제노총, 국제산별노련 민주노총이 국제연대 활동을 펼치는 또 다른 공간은 각국 총연맹이 가입한 국제노총(ITUC)과 각국 산별연맹이 가입한 국제산별노련이다. 국제노총은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의 결의로 가입한 국제자유노련(ICFTU)이 2006년 세계노동총연맹(WCL)과 통합하고, 또 여기에 프랑스노총(CGT), 네팔노총(GeFONT), 인도자가고용노동자연합(SEWA) 등이 가세하여 출범한 조직으로서 노동조합 국제 조직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노총이 ILO안에서 노동자그룹의 활동을 주도하는 한편, WTO, IMF에서부터 최근 G20에 이르기까지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면, 국제산별노련들은 해당 산별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국제기본틀협약 체결을 비롯한 노동조합의 개입력 확대, 권리 강화를 위한 활동을 펼친다. 민주노총은 국제노총에 단순히 참여하는 것을 넘어 유럽/북반구 중심성을 탈피하고 남반구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국제노총 내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도록 국제노총을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국제노총 내 “민주적, 진보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들의 소통과 공동행보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국제노총 내에서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국제노총이 주도하는 활동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것 자체의 문제점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노총의 전략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개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국제노총은 과거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노동조합의 권리, 인권, 환경권 존중을 고려해야 함”을 주장해왔고, WTO, FTA에 대해서는 “노동장 삽입”을 추구해왔다. 최근에는 G20, APEC, ASEM 등의 국제기구 포럼에서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국제노총은 각 기구의 정상회의를 뒷받침하는 고용노동장관회의의 설치를 주장하고, 고용노동장관회의가 사회적파트너(노사단체)와 협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공식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노총은 “고용소득 주도 경제성장”을 주축으로 하는 요구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 ▶사회보장 최저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공적 투자 등이 그것이다. 다양한 국제기구에는 자본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통로로서 ‘비즈니스포럼’과 같은 로비기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국제노총은 이를 지렛대로 ‘비즈니스포럼’에 상응하는 ‘노동포럼’을 제도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가시화하기 위해 지난 2013년 G20 러시아 정상회의에서는 <비즈니스20(B20)-노동 20(L20)> 공동선언을 추진하고, ‘양질의 견습제도 확대’ 등을 노사 공동요구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노총의 이러한 사회적 대화 제도화 전략은 민주노총의 지향이나 현실과 거리가 멀다. 또한 국제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요구를 여러 국제기구 내에서 관철시키는 데에 유력한 힘을 형성하지도 못한다. 국제노총의 활동 중 민주노총이 주목하는 것은 2012년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에서 채택한 사업 기조의 변화다. 국제노총은 전세계 노조 조직률이 7%이며 각 국에서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①노조 조직률 제고 ②기본권 확대 ③지속가능한 소득사회보장 확보를 주요 사업과제로 내세웠다. 오는 2014년 5월에 개최될 3차 세계 총회(World Congress)를 통해 이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확정하고 결의할 계획이다. 국제노총은 이 중에서도 “조직화 사업”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고 있으며, 샤란 버로우 사무총장은 국제노총이 추진하는 모든 사업을 조직화와 연계시키고, 구체적인 조직화 목표를 적시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직률이 가장 낮은 불안정비공식 노동, 여성, 청년, 이주노동자, 경제자유구역자유무역지대 등 조직률이 낮은 영역을 우선적인 조직화 대상으로 설정하고 각각에 대한 조직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국제노총 지역조직(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유럽) 별로 조직화 사업 책임자(Lead Organiser)를 두고 조직활동가 교육 훈련을 위한 조직화 학교(Organising Academy)를 시기별로 개최하고, 각 가맹조직이 진행한 조직화 사업 모범 사례를 교류하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조직화 사업 책임자는 비정규직 조직화 경험이 많은 홍콩노총 (HKTU)이 맡고 있다. 2013년 9월 1차 조직화 학교를 개최한 후 버마,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를 조직화 사업 집중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여 각 국 조직화 사업 구체 계획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하였다. 더불어 지역 전체를 관통하는 계획으로서 비정규직 조직화, 초국적 기업 내 노동자 공동 조직화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 밖에도 조직화 사업의 토대로서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병행하기로 했는데, 노동기본권을 가장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는 집단을 가시화하여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집중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우선 2022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에서 경기장을 건설하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이주노동자이고, 임금, 노동조건, 노동안전보건 등 모든 측면에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카타르의 이주정책이 이주노동자들을 거의 노예 노동의 상태에 방치하고 있는 현실에 근거하여 카타르 내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기본권 없이 월드컵 없다> 캠페인을 주력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제건설목공노련(BWI)이 카타르 내 이주제도 개혁 및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집중하고 있다면, 국제노총은 국제사회에서 이를 이슈화하는 활동을 주로 전개하고 있다. 또한 노동기본권 확대 캠페인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국제노총 내에 인권노동조합권네트워크(Human and Trade Union Rights Network, HTURN)를 두고 있는데, 네트워크는 노동기본권 탄압이 가장 심각한 나라를 지역별로 선정하여 집중 캠페인을 진행한다. 해당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취약하여 국제적인 이슈 파이팅과 캠페인이 필요한 나라를 국제캠페인 집중국(아시아에서는 방글라데시)과 해당국 노동조합의 역량강화를 목표로 하는 지원 대상국(아시아에서는 피지, 버마)으로 구분하여 각각에 적합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경험과 평가를 바탕으로 아태지역 조직화 사업에 관한 전략 수립에 기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국제노총의 조직화 사업은 국제기구 내에서의 ‘사회적 대화 제도화’ 사업과 비교할 때, 각국 노조운동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과 각국의 민주노조 운동의 역량 강화와 국제연대 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이 더욱 주목해야 할 영역이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연대 공간으로서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남반구(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호주) 민주노조 운동의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로, 1991년 남아공노총(COSATU)과 호주노총(ACTU) 서호주 지역본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1차 총회에는 필리핀노동절운동(KMU), 인도네시아 연대노조, 말레이시아 독립노조, 스리랑카,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남아공노총이 참가하여 민주노조 건설 전략과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노동조합 건설 방안을 논의하였다. 민주노총은 1997년 4차, 1999년 5차 총회에 참관한 후 2001년 서울에서 개최된 6차회의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민주노총은 국제자유노련을 통해 국제 사업을 개시하였지만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제3세계 민주노조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사업이라는 판단에 기초하여 여기에 참여하였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북반구/유럽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국제자유노련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남반구 노동조합의 대안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왔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네트워크’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국제 노조조직과 같은 체계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가맹조직이 의무금을 납부하여 운영비용을 마련하고 그 비용으로 사무국을 운영한다거나, 의결단위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한 집행 총괄 역할을 담당하는 사무총장과 같은 직책도 없다. 주로 3~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총회(Congress)를 통해 큰 틀에서의 운동방향을 합의하고 이에 참여하고 있는 조직들이 각자 자체적인 계획 하에 실행한다. 또한 1년에 한 번씩 지역조정위원회(Regional Coordinating Committee) 회의를 통해 총회 사이의 활동을 점검한다. 그러나 이러한 느슨한 체계 속에서 총회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그 지향과는 무관하게 국제 노동자운동 내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2003년 칸쿤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2004년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등에서 남반구노조연대회의 포럼을 주도적으로 조직하는 등 남반구노조연대회의의 활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민주노총의 참여 이후 브라질노총(CUT)과 아르헨티나 제2노총(CTA)이 합류함으로써, 인도양 인근에서 시작된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라틴아메리카로까지 확대되었다. 2010년 브라질노총(CUT) 주최로 개최된 9차 총회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남반구 노동조합의 과제로 ▶남반구의 산업화와 발전을 위한 정의로운 교역 ▶금융투기의 종식, 발전과 사회적 평등에 종속되는 금융시장으로의 전환 ▶초국적기업의 권력에 맞서고 착취와 노동권 박탈로부터 노동자를 방어하기 위한 노동자계급 연대 구축 ▶생태위기와 기후변화가 노동자 그리고 미래 세대에 미치는 재앙적 효과에 대한 대중적 인식 제고 ▶성평등, 노동안전보건, HIV/AIDS의 재앙에 맞선 캠페인 ▶글로벌 지배구조의 효과적 전환과 글로벌 권력구조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 ▶각국 노동기본권 방어와 확대 강화 ▶제국주의 침략, 핵무기, 점령적경제적 봉쇄, 부당한 제재 없는 세상 만들기 등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남반구노조연대회의가 위에 제시한 과제를 실제로 추동할 역량이 있는지가 의문시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참여조직 간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화하고 지향의 공유를 넘어 구체적인 공동 실천을 조직하고 실행하는 조직으로서 남반구노조연대회의를 강화하기 위한 역할을 계속 해 나갈 계획이다. 아시아 노조활동가 교육교류 프로그램 2007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아시아 노조활동가 교육교류 프로그램은 민주노총이 국제연대 활동의 장을 새롭게 확대하기 위한 시도다. 민주노총은 국제노총 아태조직 내외의 민주노조 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지역(특히 동남아시아) 신생 노동조합의 젊은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각국 민주노조 운동의 여러 시도를 공유하고, 아시아 민주노조 운동이 공통으로 처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했다. “아시아 노조활동가의 교육 교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아시아로 넓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공동으로 직면한 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라고 사업 제안의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올해까지 총 7차 과정이 진행되었고,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젊은 노조활동가 약 60여 명이 이 과정을 거쳐 갔다. 일본 렝고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매년 대규모로 청년 활동가 교육과정을 개최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 반해, 민주노총의 프로그램은 열악한 재정 여건으로 인해 매년 7~8명의 참가자만을 가맹조직과 함께 초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민주노조 운동 탄압에 대한 대응 전략, 노동의 불안정화와 비정규직 확산에 맞서기 위한 대응전략,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공동 실천 과제 등을 논의해왔다. 이 과정을 거쳐 간 많은 활동가들이 각국의 굵직한 투쟁을 주도하는 한편, 국제조직 내에서 민주노총과 공동으로 행보하는 등 미미하지만 점차 성과가 만들어지고 있다. 맺으며/b> 민주노총의 국제사업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끌어 모으는 데에서 시작해서 국제적인 노동자 연대를 강화하고 북반구/유럽이 주도하는 국제 노동자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 위한 여러 활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의 위상, 우선순위, 역량투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보 전진을 위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에 요구되는 역할이 적지 않은데, 국제 노동자운동은 한국 기반 초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노동유연화를 확산하고,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민주노총이 주도적으로 마련하고 실천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건설을 출발점으로 한 글로벌 기업 삼성 내 노조 조직화와 노동기본권인권 침해에 대응하는 국제적 투쟁캠페인이 향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 - 포드 국제기본협약(IFA, International Framework Agreement)의 전문입니다. - 공동서명자는 사측에서는 포드사, 노측에서는 국제금속노련(IMF, 현재는 IndustriALL)과 포드 정보공유 네트워크입니다. - 가장 최근에 국제제조산별(IndustriALL)과 자동차 완성사 사이에 체결된 IFA로서 최근 IFA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현재 IFA가 체결되어 있지 않은 GM에서도 정보공유포럼 차원에서 본 포드 협약을 기초안으로 IFA 체결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 원문은 http://www.imfmetal.org/index.cfm?c=29843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IFA의 배경과 의의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는 조은석, 「초국적기업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 『사회운동』 2013년 겨울호(113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