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말, 한국을 비롯해 한반도 문제에 핵심적인 나라들이 권력 재편기에 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정부의 안보 및 대외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알려진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지난 10월 5일 보고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국가안보 가이드’를 펴내면서 ‘미국 경제가 처한 심각한 위기로 인해 2012년 대선에서 후보와 미디어는 물론 대중에게까지 국가 안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법이 모든 쟁점을 압도해 대선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할 쟁점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비슷하다. 아직 본격적인 선거활동에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주자들은 각각의 정책 비전이나 구상을 발표하면서 예비후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남북문제나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체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서해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남북 간 충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나 기존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전전 정권에 대한 의혹 제기를 통한 정치 공세 수준이며, 남북 간 상생과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구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지는 방식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색깔론이거나 한국 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 개척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두말할 필요 없이 현재 한반도가 놓인 정세는 엄중하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은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큰 논란을 겪었던 한일 정보협정 문제에서 알 수 있듯, 한일 간 군사협력 강화를 발판삼아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실현이 눈앞에 와 있다. 한미일 세 나라의 군사협력은 날로 긴밀해 지고 있으며, 위협적인 군사훈련이 반복되면서 북한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한다. 이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모색을 해야 할 시기다. 이 글에서는 18대 대선 주요 주자들의 한반도 정책과 함께 현재 한반도 문제에서 고민되어야 할 쟁점들을 개괄하고자 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 18대 대선 주요 주자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여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고 평가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북경제협력 3대 과제’에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고 개발이 낙후되어있다는 ‘현황’ 분석을 하고 있어 문재인 후보의 평가와 유사하다.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비슷하다. 박근혜 후보는 ‘유화주의적 포용정책과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 모두 북한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를 유도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해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이전 정부의 그것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인데, 모두 한국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평화가 곧 경제다’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 문제를 철저하게 한국의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다룬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그가 자칭 615, 104 선언으로 상징되는 햇볕정책의 계승자라는 측면에서도 알 수 있다. 안철수 후보는 ‘북방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남북경제협력을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영토를 북방으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 활성화 이전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을 주장하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은 두 후보와 비교해 이러한 특성이 훨씬 약하지만,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가 재원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한국 경제 상황에 종속시킨다는 면에서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비핵개방3000’으로 표상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핵 문제나 미사일 문제에 있어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는 평가는 매우 일반적이다. 심지어 한 국책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선언적 대북정책이 북한에 대남비난의 명분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의 평가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현상을 지적할 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각 후보가 제시하는 해법에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한다. 햇볕정책의 재현: 문재인, 안철수 문재인 후보는 ‘남북경제연합’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다. 남북 간 포괄적인 경제협약을 체결해 자유롭고 안전한 투자와 경제활동을 보장,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국민소득 1인당 3만 달러-인구 8천만’의 한반도 공동시장을 탄생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경제연합을 실현하기 위해 104 선언 중 경제적 효과가 높은 사업을 우선 선택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북한의 산업기반 구축을 위해 ‘한반도인프라개발기구’를 설립해 국제사회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울산-포항-삼척-동해-나진선봉 등 동해안을 거쳐 중국, 러시아까지 연결되는 ‘환동해 경제권’과 제주-전라-충청-인천-경기-해주-남포-황금평-신의주 등 한반도 서부지역과 중국 동부지역이 포함되는 ‘환서해 경제권’을 조성해, 이를 바탕으로 인구 6억 명 시장의 ‘동북아협력성장벨트’를 형성해 가겠다고 말한다. [표 1] 남북경제연합을 위한 추진과제(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의 키워드는 ‘북방경제’다. 저성장 시대에 중소기업이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기에 경제영토를 북방, 즉 북한을 기반으로 중국, 러시아까지 뻗어나가 중소기업의 새로운 희망을 찾겠다고 말한다. 또 남북 경협이 정치 상황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경제협력 구조가 정착되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남북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북방경제권 형성을 위해 안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은 ‘환황해·환동해 경제권’ 추진이다. 서해를 황해로만 바꿨을 뿐 문재인 후보가 제시하는 내용과 동일하다. [표 2] 남북경제협력 3대 과제(안철수 후보) 두 후보의 이러한 구상에 대해 즉각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첫째, 남북 경협의 안정적인 제도화가 과연 가능한가. 이를 위해 문재인 후보는 ‘경제협약 체결’을, 안철수 후보는 ‘남북경제공동위원회 가동’을 제시한다. 그러나 두 후보가 모두 평가하고 있듯이 남북 경제협력이 불안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104 선언이 매우 전향적인 조치들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행하겠다고 공언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렇다면 남북 경협을 발판으로 한 동북아시아 중심 국가 구상이 가능한가. 문재인 후보가 제시하는 ‘동북아협력성장벨트’나 안철수 후보가 제시하는 ‘북방 경제’는 모두 북한과의 안정적인 경제 관계가 확보될 때에만 가능하다. 최소한 외국 자본이 북한의 경제 주체들, 즉 기업이나 금융 기관과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셋째, 북한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가능한가.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인프라개발기구’를 설치해 해외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주장한다. 안철수 후보는 ‘북방통합물류운송망’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한다. 인프라 투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반면, 그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언제 거래가 끊길지 모르는 국가에 투자를 할 자본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북한의 경제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지난 8월 방중 한 북한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만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북중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법률을 개선하고, 토지와 세금에 시장시스템을 적용하는 등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일종의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는 중국마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상황에서 해외 자본의 인프라 투자가 가능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두 후보의 구상은 김대중 정부 햇볕 정책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전략에 철저히 종속되어 추진되었던 햇볕 정책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문제는 미국이, 경제문제는 한국이 담당하는 것을 전제했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치들, 즉 군사력 감축이나 불가침협정 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승인하면서 남과 북이 경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전혀 제어할 수 없으며, 늘상 정치 상황에 종속된 경제 협력마저도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계승: 박근혜 상기한 두 후보와 비교해 박근혜 캠프에 있어 한반도 정책의 중요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캠프는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공식 홈페이지에 한반도 관련 정책을 게시하지 않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서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이 현재 박근혜 후보의 공식적인 한반도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데, 이조차 매우 빈약하다. 이는 단순히 중도와 부동층을 의식한 선거 전략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한창 고조되고 있는 동안에도 한미동맹에만 올인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처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보수층의 빈약한 인식을 보여준다. 박근혜 후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한다. 그동안 남북한 사이 또는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 이뤄진 많은 약속과 국제기준을 지키는 전략적 신뢰관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포용이건 원칙적 대북정책이건 성공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남북 사이에 맺은, 그리고 북한과 국제사회에 맺은 기존의 약속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해야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표 3]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박근혜 후보) 남북의 당국자 간 대화 재개나 인도적 지원 활성화도 언급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강조하는 것은 기존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프로세스의 전제라는 점이다. 이는 재원조달방안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박근혜 후보는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 이전에 남북간 신뢰를 공고히 하자는 공약이므로 남북협력기금에 의한 인도적 지원 이외의 별도 재원조달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남북 간 신뢰가 자리 잡기 전에는 경제협력 활성화도 없다는 것이고, 이 신뢰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기존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북한의 유의미한 태도 변화 전에는 어떠한 지원이나 협력도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현재 자세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동일하다. 2012년 말, 한반도를 둘러싼 조건 미국 대선과 중국 경제 문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미국 대선에서 대중 관계는 핵심 이슈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경제적 파트너이나 안보적 경쟁자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대외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고, 대중국 전략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대외 정책을 둘러싼 쟁점을 살피기보다는, 현재 미국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쟁점을 간략히 살펴본다. 앞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신미국안보센터의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국가안보 가이드’ 보고서는 미국의 차기 지도자가 대중 관계에서 마주해야 할 의제를 정리해 제시했다.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상호간 불신을 종식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보다 높은 수준의 경기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중국을 압박해 미중 무역 관계를 향상시켜야 한다. 이는 지적 재산권의 보호, 나아가 시장 환율에 맞는 적절한 중국 통화, 외국 기업의 시장 접근 보장 등을 의미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책임 있는 세계 파워로서 이란이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것과 같은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의 근원이 되는 미국의 경제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법의 역할을 확대하고, 인권을 존중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여기에는 소수자(민족)에 대한 처우 보장, 자유로운 정보 접근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현재 미국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미중 관계의 갈등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미국은 중국의 빠른 군사력 증강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2011년 중국은 11.8%의 국방비를 증액했는데, 이는 1,200억-1,800억 달러에 달한다. 5,3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국방예산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향후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국방비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재균형’ 전략을 통해 아시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에 커다란 장애 요소다. 특히 일본, 필리핀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들과 영토 분쟁을 벌이며 노골적인 군사적 팽창을 꾀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세계 경제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는 양국이 입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위안화 절상이나 지적 재산권 등 쉽게 풀기 힘든 문제들이 많다. 중국의 성장과 확장을 제어하고,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시도들이 계속되는 한 이러한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셋째,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에 대한 제재를 번번이 무산시킨 중국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대결의 반복은 미국의 패권을 제어하길 원하는 약소국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은 이런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들 수밖에 없다. 넷째,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과 같은 지역 다자기구 참여나 전통적인 우방이 아닌 신흥 세력들과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에 대해 중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섯째, 중국 내 인권 문제, 소수민족 탄압 등 전통적인 갈등 요인들이 끈질기게 양국 관계를 괴롭힐 것이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 천광청의 망명을 두고 벌어졌던 갈등과 같은 상황이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 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자국의 성장을 억누르려는 의도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 분쟁과 관련한 미국의 행보는 미국의 안보 정책이 중국의 이해와 충돌한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며,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커다란 축으로 작동할 것이다. 중국의 정권 교체와 북한 중국 역시 18차 당 대회를 통해 지도부 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시진핑 현 국가부주석이 주석 직을 승계할 것이 유력한데, 중국 지도체제가 전환되더라도 북중 관계는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도체제가 안정화될 때까지 중국 내부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는 차단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의 지도체제가 바뀌더라도 북한이 지니는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순탄하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중국에 대한 지금과 같은 의존적 상황이 북한에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경제·금융 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한이 현재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대가 중국인데, 북한도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는 없다. 특히 광물 자원과 관련된 중국의 무차별적 독점과 불공정 무역 문제는 북한으로서는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 제의를 거부했고, 일정 기간 북중 고위급 교류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북한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비동맹 세계와 접촉하는 등 대외 관계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핵 문제다.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중국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동북아시아의 전략 균형을 뒤흔드는 중대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다. 더구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미국은 핵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 수역에 파견해 군사훈련을 펼친 바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보다 적극적인 미국의 개입을 부른다는 면에서도 중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을 고쳐 ‘핵보유국’을 명기하고,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는 등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한다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북한이 핵보유국에 가까워질수록 중국과의 갈등 가능성 역시 커질 것이다. 민중운동은 지금 얼마 전 때 아닌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대해 한 진보 학자가 인터넷 언론에 글을 게재했다. NLL은 국제법적으로 어떠한 효력도 없으며, 국경선으로서의 요건에 미달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에 한 네티즌은 ‘독도도 국제법상으로 따지자면 분쟁지역’이라며, ‘필자와 같은 논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영토 분쟁이 심각해지면서 NLL을 지키는 것도 영토, 영해를 지키는 것과 동일하게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어떠한 합리적 비판도 거부한 채 영토, 영해 문제를 금기시하는 맹목적 애국주의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러한 때, 민중운동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여름 이명박 정부의 한일 정보협정 추진이 알려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을 때, 한국 평화운동의 일부는 반일 감정을 적극 활용했다. 한일 정보협정이 군수지원협정 등으로 이어지면 유사시에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거나, 혹은 한반도를 점령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보다는 민족적 감수성에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 한반도 침략 야욕에 맞서 한국도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논리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배타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폭력성만이 아니라, 이것이 결국 자국의 보호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티즌의 예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호소해 온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혹은 일정 자초한 현실이라면 너무 과장된 이야기일까. 대선 시기 민중운동의 자세도 짚어 보아야 한다. 정권 교체의 희망에만 매달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를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가두고, 정작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스스로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역내 국가들이 개입된 문제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한반도 주변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제어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점들을 찾기 위한 민중운동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중국의 국지전 계획에 담긴 핵전쟁의 위험성 2012년 10월 19일 일본 언론은 자위대가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과 일본의 국지적 해전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일본은 6척의 미사일구축함과 1척의 헬기 구축함이 피해를 보는 반면, 중국은 동해함대와 북해함대가 작전 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궤멸적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 군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양위쥔(楊宇軍, 양우군) 국방부 대변인은 10월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의 급선무는 맹목적으로 무력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이런 상태에 이른 원인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점잖게 말했지만 다른 인사들은 더욱 구체적으로 일본의 시뮬레이션을 반박했다. 멍옌(孟彦, 맹언) 국방부 국제전파국 부국장은 “일본이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고려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지전 발생으로 양국의 함정과 전투기가 출동하기 전에 중국 측의 미사일 선제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뤄위안(羅援, 나원) 군사과학학회 부비서장은 “국지전이 발생하면 중국은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 제2포병이 입체적인 작전을 벌여 승리를 얻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이 두려워하는 핵무기를 갖추고 있다”면서 “비록 중국은 핵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핵무기 보유 자체가 우리의 불패를 보증하는 최후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 보유 자체가 불패의 카드가 된다는 중국 인사의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중국 핵전력을 전담하는 제2포병 부대의 독특한 구조를 알아야만 그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핵미사일을 통괄하는 제2포병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지전에 대비하여 재래식 중단거리미사일도 보유하기 시작했다. 즉 동일한 기지에서 핵미사일도, 재래식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다. 중국은 적국이 재래식 미사일 발사 기지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곧 핵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적국도 인식하기 때문에 함부로 중국 미사일 기지에 반격을 가할 수 없으리라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적국에 마음껏 재래식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핵 보유가 ‘불패의 카드’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반면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자는 중국의 바로 그 독특한 구조 때문에 국지전이 핵전쟁으로 상승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상대국은 중국 기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핵미사일인지 재래식미사일인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중국 기지를 완파하기 위한 공격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작용, 반작용의 악순환을 작동시켜 순식간에 국지전이 본격적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은 이미 1980년대 말 세계 3위의 핵무기 국가였다. 현재 약 100기에서 4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제2포병 부대는 약 10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공식적 입장은 ‘핵 선제 불사용’을 고수하고 있으나, 중국의 핵전략이 국지전의 승리를 목표로 점차 공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핵과학자회보에 실린 <중국의 핵전쟁 계획 수립>(John W. Lewis, Xue Litai, ‘Making China’s nuclear war plan’)이라는 논문을 토대로 중국이 가정한 국지전 시나리오의 위험성을 짚어 보겠다. 중국의 핵무기 접근법 중국의 핵무기 관련 접근법은 ①군사전략방침 ②핵정책 ③핵전략 ④핵위협(核威懾, 핵위섭) 이론 ⑤작전운용원칙 ⑥작전규칙(作戰令, 작전조령)이라는 여섯 개 층의 개념적 요소들로 구성된다. 인민해방군 군사전략의 출발점은 ‘적극적 방어’다. 즉 적이 먼저 공격한 후에 적을 공격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는 원칙이다. (후발제인(後發制人). 즉 ‘뒤에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뜻으로 <순자>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원칙은 중국의 기본 핵정책에서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1964년 최초 핵실험 후, 중국은 공식적 핵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핵 정책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 핵무기는 완벽히 금지되어야 하고 범세계적으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 핵 강대국의 위협은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강요했다. 중국의 소규모 핵보유고는 오직 자위 방어를 위한 것이다. - 어떤 때라도, 어떤 조건에서도 중국은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명백히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 또는 ‘후발제인’ 정책의 파생물이다. -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나 비핵무기지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한다고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 중국은 핵 확산을 반대하며, 다른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국가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으나 중국은 계속 부정하고 있다.) - 1980년대 이후로 중국은 중국으로부터 핵관련 물질과 장비를 수입하는 국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물질보장조치를 수용해야 하며 중국의 동의 없이 수입품을 제3국으로 이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한 중국은 수입된 모든 핵물질, 장비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보장한다. (중국은 1984년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했고 기구의 핵물질보장조치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1992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이러한 중국의 핵정책은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반해 군사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핵전략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지만 자세히 공개된 바 없다. 중국은 1966년 7월 1일 제2포병 부대를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중국 제2포병은 핵무기 전담 부대로 창설되었다. 육군, 해군, 공군 삼군 편제와 구분되는 ‘제4군’인 셈이다. 중국은 소련의 ‘전략로켓군’을 차용했다.) 그 후 마오쩌둥에서 니에룽전(聂荣臻, 섭영진)에 이르는 초기 지도자들은 핵정책을 위한 방침을 제시했을 뿐 핵전략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후 어떤 지도자도 핵전략에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핵무기의 제조와 이용에 관한 한 지도자들은 중국 핵보유고 규모를 ‘최소 보복수단’ 수준으로 제한했을 뿐 어떤 세부적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에 따라 1966-76년 문화대혁명의 혼란기 동안 제2포병은 엄밀한 작전계획, 목표계획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더디었다. 1964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중국은 명시적 핵전략을 갖추지 않았다. 1977년 덩샤오핑이 권력에 복귀한 후 중앙군사위원회는 최초로 핵전략 연구를 장려했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정부의 중앙군사위원회가 명칭과 구성원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별도로 칭하지 않겠다.) 1987년 제2포병은 포괄적 핵전략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연구팀을 구성했다. 2년 후 중앙군사위원회는 초안의 최종 판본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초안은 ‘최소보복’을 대체하는 ‘제한핵보복’(有限核報復, 유한핵보복) 전략을 제시했다. 2006년에야 중국은 공식적 핵전략으로서 ‘자위방어적 핵전략’ 개념을 선언했다. 그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다른 국가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핵억지 이론 핵전략을 발전시키기에 앞서 중앙군사위원회는 핵억지라는 개념을 거부했고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의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거부 의사는 중국의 공식 입장에서 자주 반복되었다. 1995년에 중국이 군비통제와 비확산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발행한 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 정부는 언제나 핵 위협과 핵억지 정책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 언급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오의 후계자가 핵억지 이론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중국에 대항하는 어떤 국가도 중국의 핵무기 보유고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군사 분석가들은 중국이 마오 이래로 ‘실존적 핵억지’(存在性核威懾, 실존성핵위섭) 이론을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은 중국의 핵보유가 소규모이고 매우 취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어떤 정보원에 따르면, “우리 중국의 소규모 핵미사일은 적국의 핵 반격 전력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한다. 중국의 핵미사일 발사는 의심할 바 없이 감당할 수 없는 핵보복을 촉발할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볼 때 중국이 핵공격을 먼저 단행한다는 가정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다.” 중국이 핵 미사일을 먼저 발사한다는 결정은 자살과 같다. 물론 1960년대 이후로 소련, 미국과의 논쟁에서 ‘선제 불사용’은 ‘자기 파괴의 회피’보다 더 나은 장신구였다. [사진] 중국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중국 관리와 안보전문가들은 서방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마오의 금언과 거리를 두었고 핵억지를 전략적 용어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중국의 핵보유고는 더 이상 매우 제한적이거나 취약하지 않으며, 새롭고 덜 위협적인 전략적 안보환경 내에서 성장하고 있다. 드디어 현대적 핵전략을 모색하면서 핵억지를 추가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2006년에야 중국의 방위 백서는 공식적으로 핵억지력(核威懾力量, 핵위섭역량)과 전략적 억지(戰略威懾, 전략위섭)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방위백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2포병은 정보화라는 조건에서, 핵미사일과 재래식미사일을 보유하는 전력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핵억지와 재래식 타격 능력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제2포병은 핵무기의 안전성과 확실성을 보장하고 핵억지력의 신뢰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중국에서 핵억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중앙군사위원회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장쩌민이, 그 후 2012년까지 후진타오가 이끌었다. 이 시기 동안 중앙군사위원회는 핵억지 이론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지만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장쩌민 시대의 이론은 억지력의 강화를 위한 핵무기와 재래식무기를 포괄하는 다양한 수단의 결합(核常兼備, 핵상겸비, 또는 多種手段配合, 다종수단배합) 이론으로 설명된다. 장쩌민은 중국 고유의 이중적 억지로서 ‘재래식무기=창’과 ‘핵무기=방패’의 관계를 강조했다. 2006년 후진타오는 손자의 말에 따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병법의 최선이다’(不戰而屈人之兵, 부전이굴인지병)라며 자위방어적 핵전략을 옹호했다. 그에 따라 후진타오는 핵억지력과 재래식 타격능력을 갖추기 위해 제2포병이 능률적이며 효과적인 전력을 구축하도록 촉구했다(精干有效·核常兼備的戰略打擊力量, 정간유효·핵상겸비적 전략타격역량). 전략방침의 진화 핵억지 개념이 공식적으로 채택되고 점차 정교화하면서 기본 군사전략방침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7년 덩샤오핑이 복귀한 후 그는 중국에 대한 안보위협을 재평가했다. 1980년대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되고 소련의 위협도 감소하기 시작하자 덩은 전쟁이 세계적 차원에서 발발하지도 않을 것이며 곧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로 세계적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베트남과의 전쟁에서도 곤경을 겪었다. 덩은 중국이 베트남과 충돌할 것이며, 아마도 상당 기간 후에 인도와 충돌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덩의 전략적 계산에 따라 1984년 중앙군사위원회는 국지전과 제한적 충돌(有限衝突, 유한충돌)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방침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곧 발발할 전쟁, 전면전, 핵전쟁’에 대비하라는 마오주의적 방침을 폐기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덩의 방침에 따라 군부는 제한적 국지전에 대비한 정밀 재래식무기 연구를 개시했다. 중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저열했고 현대화하기 어려운 조건이었기 때문에 중앙군사위원회는 제2포병에 재래식 미사일을 도입하는 응급책에 의존했다.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전쟁은 매우 단기간에 벌어졌지만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웠다. 중국 당국은 인민해방군이 국지전에서 통합 전력으로 전투를 벌일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1987년 안보 이론가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연합작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88년에 이르러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는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마오 시대의 유산에서 벗어나, 국지전과 돌발사태(突發事件, 돌발사건)에 대비한 전략방침을 세우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91년 미국은 걸프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둔 후 ‘군사혁명’에 돌입했다. 이는 현대적 정보통신체계, 비밀정보력, 우주기술, 초현대적 항공기, 고급 작전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이등휘)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응해야 했다. 1992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장쩌민은 국제정세의 급속한 전개와 세계적 군사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지침에 대한 연구를 지시했다. 1993년 1월 장쩌민은 중국 동남해에 초점을 맞추어 ‘하이테크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침을 채택하라고 지시했다.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의 요소들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방침은 인민해방군의 핵심적 군사임무를 재정의했고 중국의 ‘가상 적국’을 정의했으며 미래 작전의 규모와 유형을 설정했다. 하이테크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의 우선적 임무로 규정되었다. 새로운 방침은 중국 본토 침공에 대비한다는 역사적 과업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나도록 촉진했다. 미래의 가상 적국은 대만과 그를 지지하는 핵무장한 미국이었다. 중국의 총괄적 국가전략은 여전히 평화, 안정성, 발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예상되는 하이테크 국지전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재래식 미사일 프로그램 1984년 초반 중국 우주항공국은 주로 해외 수출을 위한 재래식 전술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학술부를 설립했다. 1985년 10월 학술부는 미사일 총괄 디자인을 시작했다. 군부는 미사일 M-9이란 암호명을 붙였지만 내부적으로는 DF-15라 불렸다. 그것은 일단계 미사일로 6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를 지녔고, 재래식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었다. 미사일은 어느 정도 강화 방어설비를 갖춘 장소에 저장되었고 이동성이 있고 고체로켓추진 체계였기 때문에 탐지와 파괴 위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로 몇 년간 인민해방군 전략가는 “재래식 국지전이 벌어지면 핵무장한 제2포병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심사숙고했다. 당시 중국은 주변국, 특히 베트남, 인도, 일본의 군사적 도전이 거세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세 나라는 첨단 재래식무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남중국해의 남사군도(南沙群島)의 통제권을 둘러싼 분쟁은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강화했다. 인민해방군은 항공모함도, 공중급유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남사군도에 대한 공중통제권을 지배할 수 없었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임시변통책으로 중거리 미사일 DF-25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이 새로운 중단거리 미사일을 정규군에 배치할지, 제2포병에 배치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이를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졌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제2포병의 의견을 받아들였는데, 투자 비용이 적고 신속히 배치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2포병은 대만 맞은편에 있는 52기지에 부대를 설치하기 위해 준비했고, 1992년 4월 처음으로 DF-15를 수용했다. 미사일이 계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중앙군사위원회는 1년 후 최초로 재래식 미사일 여단을 설치하고, 1년 내로 발사 준비를 마치라고 명했다. [사진] 수송 중에 촬영된 DF-25 1995년 7월과 1996년 3월, 중국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지도자에 대한 경고의 표시로 대만 인근 바다에 재래식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가 위기를 악화시켰는지, 완화시켰는지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지만 중국은 자신이 정치적 목표로 삼은 대만의 여론과 미국의 방위 정책에 대해 의도한 만큼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았다. 중국 정보원에 따르면, “1995년 7월 6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 6천 명의 대만인이 독립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만 주식시장은 미사일 발사 직후 절반으로 폭락했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사일이 대만의 분리주의자들에 대해 압력을 유지하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인식했다. 제2포병 지휘자는 1990년대 중반의 미사일 발사가 대만 독립세력의 오만함을 억제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대만에서 분리주의 경향이 감소하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했지만, 52기지의 재래식 여단의 수와 더욱 정밀한 탄도미사일 규모가 점차 증가했다. 신속대응부대(拳頭 部隊, 권두부대)는 대만 맞은 편 해안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나아가 2008년 미국 방위보고서에 따르면, 상당 규모의 대지 순항미사일 DH-10가 윈난 남부에 배치되었고, 일부 핵 기지가 재래식미사일과 핵미사일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지로 바뀌었다. 하이테크 국지전에서 이중 억지의 모순 중앙군사위원회는 핵=방패와 재래식무기=창의 동적인 관계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재래식미사일을 중국의 전략적 억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용도 수단으로 간주한다. 재래식·핵미사일 여단들을 순차적으로 활용하거나 함께 결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의 근본적 원천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정적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일으키는 원천이기도 하다. 군사전략가들이 겪는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능력과 목적을 지닌 재래식 미사일과 핵 미사일이 동일한 부대, 즉 제2포병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중국의 고유한 이중성은 중국의 핵정책과 핵전략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복잡하게 한다. - 수량이 안정적인 소규모의 핵보유고는 대규모이고 점점 더 그 수량이 증가하고 있는 중거리 재래식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 핵무기의 선제 불사용은 공식적으로 선언된 정책이지만 재래식 미사일은 먼저 발사될 수 있는데, 이는 핵미사일을 보관하고 있으며 핵미사일이 발사될 때 활용되는 지휘명령 인프라와 동일한 인프라를 사용하는 기지에서 발사된다. - 중앙군사위원회만이 핵무기 사용을 승인할 수 있지만, 재래식 미사일은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 승인과 함께 전역 합동지휘부의 작전통제 하에 있다. 미사일 전력은 자기 방어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사일은 그 성격상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며 그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발사되어야만 한다. 미사일 전력은 더 강력하고 공격적인 적국과 대치할 때 항상 ‘사용할 것이냐, 파괴될 것이냐’라는 곤경에 직면한다. 또한 미사일 전력을 방어하기 위한 공중·미사일 방어 시스템도 적극적 방어라는 전략방침이 함축하는 전투 임무 와중에 파괴될 수 있다. 만약 중앙군사위원회가 재래식 미사일로 적국을 선제공격한다고 승인한다면 상대방은 그것이 재래식 미사일인지, 핵 미사일인지 즉각 구분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상대국은 중국의 모든 지휘통제 체계와 미사일 발사 기지의 모든 미사일 관련 시설을 목표로 삼아 보복 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의 재래식무기에 의한 자위 방어적 선제공격이 중국 핵미사일과 관련 지휘통제 체계에 대한 보복 파괴로 종결될 수도 있다. 이 공격으로도 파괴되지 않고 생존한 중국의 핵미사일 부대가 남아 있는 미사일을 적국 본토로 발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작용, 반작용 싸이클에서 핵전쟁으로의 상승이 가속화될 것이며,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중국의 이중 정책이 상호 핵공격을 억지하기보다는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군사계획가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론을 펼치고 있다. 핵 기지에서 재래식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 상대국의 직접적인 대응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선제공격에 의한 피해가 재래식무기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 기지에 대한 보복이 낳을 결과에 대한 공포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재래식 무기에 의한 반격이 중국의 핵 반격을 촉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공격을 당한 상대국의 대응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중국과 그 잠재적 적국이 처한 딜레마가 드러난다. 재래식 충돌이 벌어질 경우에 신속한 승리나 전술적 우위를 추구함으로써 예상치 못하게 핵전쟁으로 상승할 위험을 양측 모두 무릅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딜레마는 매우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레디앙 칼럼 2012년 10월 31일] 조어도에서 중국과 일본의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 중국의 국지전 계획에 담긴 핵전쟁의 위험성 임필수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2012년 10월 19일 일본 언론은 자위대가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과 일본의 국지적 해전을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일본은 6척의 미사일구축함과 1척의 헬기 구축함이 피해를 보는 반면, 중국은 동해함대와 북해함대가 작전 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궤멸적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 군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양위쥔(楊宇軍, 양우군) 국방부 대변인은 10월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의 급선무는 맹목적으로 무력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이런 상태에 이른 원인을 깊이 반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점잖게 말했지만 다른 인사들은 더욱 구체적으로 일본의 시뮬레이션을 반박했다. 멍옌(孟彦, 맹언) 국방부 국제전파국 부국장은 “일본이 중국의 미사일 능력을 고려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국지전 발생으로 양국의 함정과 전투기가 출동하기 전에 중국 측의 미사일 선제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뤄위안(羅援, 나원) 군사과학학회 부비서장은 "국지전이 발생하면 중국은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 제2포병이 입체적인 작전을 벌여 승리를 얻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이 두려워하는 핵무기를 갖추고 있다"면서 "비록 중국은 핵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지만, 핵무기 보유 자체가 우리의 불패를 보증하는 최후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 보유 자체가 불패의 카드가 된다는 중국 인사의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중국 핵전력을 전담하는 제2포병 부대의 독특한 구조를 알아야만 그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핵미사일을 통괄하는 제2포병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지전에 대비하여 재래식 중단거리미사일도 보유하기 시작했다. 즉 동일한 기지에서 핵미사일도, 재래식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다. 중국은 적국이 재래식 미사일 발사 기지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곧 핵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적국도 인식하기 때문에 함부로 중국 미사일 기지에 반격을 가할 수 없으리라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적국에 마음껏 재래식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핵 보유가 ‘불패의 카드’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반면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자는 중국의 바로 그 독특한 구조 때문에 국지전이 핵전쟁으로 상승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상대국은 중국 기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핵미사일인지 재래식미사일인지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중국 기지를 완파하기 위한 공격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작용, 반작용의 악순환을 작동시켜 순식간에 국지전이 본격적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은 이미 1980년대 말 세계 3위의 핵무기 국가였다. 약 100기에서 4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제2포병 부대는 약 10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공식적 입장은 ‘핵 선제 불사용’을 고수하고 있으나, 중국의 핵전략이 국지전의 승리를 목표로 점차 공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핵과학자회보에 실린 <중국의 핵전쟁 계획 수립>(John W. Lewis, Xue Litai, ‘Making China's nuclear war plan’)이라는 논문을 토대로 중국이 가정한 국지전 시나리오의 위험성을 짚어 보겠다. 중국의 핵무기 접근법 중국의 핵무기 관련 접근법은 ① 군사전략방침, ② 핵정책, ③ 핵전략, ④ 핵위협(核威懾, 핵위섭) 이론, ⑤ 작전운용원칙, ⑥ 작전규칙(作戰条令, 작전조령)이라는 여섯 개 층의 개념적 요소들로 구성된다. 인민해방군 군사전략의 출발점은 ‘적극적 방어’다. 즉 적이 먼저 공격한 후에 적을 공격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는 원칙이다. (후발제인(後發制人). 즉 ‘뒤에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뜻으로 <순자>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원칙은 중국의 기본 핵정책에서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1964년 최초 핵실험 후, 중국은 공식적 핵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핵 정책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 핵무기는 완벽히 금지되어야 하고 범세계적으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 핵 강대국의 위협은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강요했다. 중국의 소규모 핵보유고는 오직 자위 방어를 위한 것이다. - 어떤 때라도, 어떤 조건에서도 중국은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명백히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 또는 ‘후발제인’ 정책의 파생물이다. -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나 비핵무기지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한다고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 중국은 핵 확산을 반대하며, 다른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결코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국가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파키스탄의 핵 프로그램을 지원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으나 중국은 계속 부정하고 있다.) - 1980년대 이후로 중국은 중국으로부터 핵관련 물질과 장비를 수입하는 국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물질보장조치를 수용해야 하며 중국의 동의 없이 수입품을 제삼국으로 이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한 중국은 수입된 모든 핵물질, 장비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된다는 것을 보장한다. (중국은 1984년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했고 기구의 핵물질보장조치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1992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이러한 중국의 핵정책은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반해 군사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핵전략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지만 자세히 공개된 바 없다. 중국은 1966년 7월 1일 제2포병 부대를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중국 제2포병은 핵무기 전담 부대로 창설되었다. 육군, 해군, 공군 삼군 편제와 구분되는 ‘제4군’인 셈이다. 중국은 소련의 '전략로켓군‘을 차용했다.) 그 후 마오쩌둥에서 니에룽전(聂荣臻, 섭영진)에 이르는 초기 지도자들은 핵정책을 위한 방침을 제시했을 뿐 핵전략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후 어떤 지도자도 핵전략에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핵무기의 제조와 이용에 관한 한 지도자들은 중국 핵보유고 규모를 ‘최소 보복수단’ 수준으로 제한했을 뿐 어떤 세부적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에 따라 1966-76년 문화대혁명의 혼란기 동안 제2포병은 엄밀한 작전계획, 목표계획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더디었다. 1964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중국은 명시적 핵전략을 갖추지 않았다. 1977년 덩샤오핑이 권력에 복귀한 후 중앙군사위원회는 최초로 핵전략 연구를 장려했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정부의 중앙군사위원회가 명칭과 구성원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별도로 칭하지 않겠다.) 1987년 제2포병은 포괄적 핵전략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연구팀을 구성했다. 2년 후 중앙군사위원회는 초안의 최종 판본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초안은 ‘최소보복’을 대체하는 ‘제한핵보복’(有限核報復, 유한핵보복) 전략을 제시했다. 2006년에야 중국은 공식적 핵전략으로서 ‘자위방어적 핵전략’ 개념을 선언했다. 그 전략의 궁극적 목적은 ‘다른 국가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핵억지 이론 핵전략을 발전시키기에 앞서 중앙군사위원회는 핵억지라는 개념을 거부했고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의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거부 의사는 중국의 공식 입장에서 자주 반복되었다. 1995년에 중국이 군비통제와 비확산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발행한 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 정부는 언제나 핵 위협과 핵억지 정책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 언급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오의 후계자가 핵억지 이론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중국에 대항하는 어떤 국가도 중국의 핵무기 보유고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군사 분석가들은 중국이 마오 이래로 ‘실존적 핵억지’(存在性核威懾, 실존성핵위섭) 이론을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사진] 중국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 중국의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은 중국의 핵보유가 소규모이고 매우 취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어떤 정보원에 따르면, “우리 중국의 소규모 핵미사일은 적국의 핵 반격 전력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한다. 중국의 핵미사일 발사는 의심할 바 없이 감당할 수 없는 핵보복을 촉발할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볼 때 중국이 핵공격을 먼저 단행한다는 가정은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다.” 중국이 핵 미사일을 먼저 발사한다는 결정은 자살과 같다. 물론 1960년대 이후로 소련, 미국과의 논쟁에서 ‘선제 불사용’은 ‘자기 파괴의 회피’보다 더 나은 장신구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중국 관리와 안보전문가들은 서방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마오의 금언과 거리를 두었고 핵억지를 전략적 용어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중국의 핵보유고는 더 이상 매우 제한적이거나 취약하지 않으며, 새롭고 덜 위협적인 전략적 안보환경 내에서 성장하고 있다. 드디어 현대적 핵전략을 모색하면서 핵억지를 추가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2006년에야 중국의 방위 백서는 공식적으로 핵억지력(核威懾力量, 핵위섭역량)과 전략적 억지(戰略威懾, 전략위섭)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방위백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2포병은 정보화라는 조건에서, 핵미사일과 재래식미사일을 보유하는 전력구조를 전진적으로 개선하고, 핵억지와 재래식 타격 능력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제2포병은 핵무기의 안전성과 확실성을 보장하고 핵억지력의 신뢰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중국에서 핵억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중앙군사위원회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장쩌민이, 그 후 2012년까지 후진타오가 이끌었다. 이 시기 동안 중앙군사위원회는 핵억지 이론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지만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장쩌민 시대의 이론은 억지력의 강화를 위한 핵무기와 재래식무기를 포괄하는 다양한 수단의 결합(核常兼備, 핵상겸비, 또는 多種手段配合, 다종수단배합) 이론으로 설명된다. 장쩌민은 중국 고유의 이중적 억지로서 ‘재래식무기=창’과 ‘핵무기=방패’의 관계를 강조했다. 2006년 후진타오는 손자의 말에 따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병법의 최선이다’(不戰而屈人之兵, 부전이굴인지병)라며 자위방어적 핵전략을 옹호했다. 그에 따라 후진타오는 핵억지력과 재래식 타격능력을 갖추기 위해 제2포병이 능률적이며 효과적인 전력을 구축하도록 촉구했다(精干有效·核常兼備的戰略打擊力量, 정간유효·핵상겸비적 전략타격역량). 전략방침의 진화 핵억지 개념이 공식적으로 채택되고 점차 정교화되면서 기본 군사전략방침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7년 덩샤오핑이 복귀한 후 그는 중국에 대한 안보위협을 재평가했다. 1980년대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되고 소련의 위협도 감소하기 시작하자 덩은 전쟁이 세계적 차원에서 발발하지도 않을 것이며 곧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로 세계적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베트남과의 전쟁에서도 곤경을 겪었다. 덩은 중국이 베트남과 충돌할 것이며, 아마도 상당 기간 후에 인도와 충돌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덩의 전략적 계산에 따라 1984년 중앙군사위원회는 국지전과 제한적 충돌(有限衝突, 유한충돌)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방침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곧 발발한 전쟁, 전면전, 핵전쟁’에 대비하라는 마오주의적 방침을 폐기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덩의 방침에 따라 군부는 제한적 국지전에 대비한 정밀 재래식무기 연구를 개시했다. 중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저열했고 현대화하기 어려운 조건이었기 때문에 중앙군사위원회는 제2포병에 재래식 미사일을 도입하는 응급책에 의존했다.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전쟁은 매우 단기간에 벌어졌지만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웠다. 중국 당국은 인민해방군이 국지전에서 통합 전력으로 전투를 벌일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1987년 안보 이론가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연합작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88년 에 이르러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는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마오 시대의 유산에서 벗어나, 국지전과 돌발사태(突發事件, 돌발사건)에 대비한 전략방침을 세우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91년 미국은 걸프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둔 후 ‘군사혁명’에 돌입했다. 이는 현대적 정보통신체계, 비밀정보력, 우주기술, 초현대적 항공기, 고급 작전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 이등휘)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응해야 했다. 1992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장쩌민은 국제정세의 급속한 전개와 세계적 군사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지침에 대한 연구를 지시했다. 1993년 1월 장쩌민은 중국 동남해에 초점을 맞추어 ‘하이테크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침을 채택하라고 지시했다. 새로운 군사전략방침의 요소들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방침은 인민해방군의 핵심적 군사임무를 재정의했고 중국의 ‘가상 적국’을 정의했으며 미래 작전의 규모와 유형을 설정했다. 하이테크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의 우선적 임무로 규정되었다. 새로운 방침은 중국 본토 침공에 대비한다는 역사적 과업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나도록 촉진했다. 미래의 가상 적국은 대만과 그를 지지하는 핵무장한 미국이었다. 중국의 총괄적 국가전략은 여전히 평화, 안정성, 발전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예상되는 하이테크 국지전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재래식 마시일 프로그램 1984년 초반 중국 우주항공국은 주로 해외 수출을 위한 재래식 전술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학술부를 설립했다. 1985년 10월 학술부는 미사일 총괄 디자인을 시작했다. 군부는 미사일 M-9이란 암호명을 붙였지만 내부적으로는 DF-15라 불렸다. 그것은 일단계 미사일로 6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를 지녔고, 재래식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었다. 미사일은 어느 정도 강화 방어설비를 갖춘 장소에 저장되었고 이동성이 있고 고체로켓추진 체계였기 때문에 탐지와 파괴 위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로 몇 년간 인민해방군 전략가는 “재래식 국지전이 벌어지면 핵무장한 제2포병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심사숙고했다. 당시 중국은 주변국, 특히 베트남, 인도, 일본의 군사적 도전이 거세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세 나라는 첨단 재래식무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남중국해의 남사군도(南沙群島)의 통제권을 둘러싼 분쟁은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강화했다. 인민해방군은 항공모함도, 공중급유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남사군도에 대한 공중통제권을 지배할 수 없었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임시변통책으로 중거리 미사일 DF-25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사진] 수송 중에 촬영된 DF-25 중앙군사위원회는 이 새로운 중단거리 미사일을 정규군에 배치할지, 제2포병에 배치할지 결정해야 했으므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제2포병의 의견을 받아들였는데, 투자 비용이 적고 신속히 배치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2포병은 대만 맞은 편에 있는 52기지에 부대를 설치하기 위해 준비했고, 1992년 4월 처음으로 DF-15를 수용했다. 미사일이 계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중앙군사위원회는 1년 후 최초로 재래식 미사일 여단 설치하고, 1년 내로 발사 준비를 마치라고 명했다. 1995년 7월 1996년 3월, 중국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지도자에 대한 경고의 표시로 대만 인근 바다에 재래식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가 위기를 악화시켰는지, 완화시켰는지 여전히 논쟁이 분분하지만 중국은 자신이 정치적 목표로 삼은 대만의 여론과 미국의 방위 정책에 대해 의도한 만큼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았다. 중국 정보원에 따르면, “1995년 7월 6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 6천 명의 대만인이 독립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만 주식시장은 미사일 발사 직후 절반으로 폭락했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사일이 대만의 분리주의자들에 대해 압력을 유지하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인식했다. 제2포병 지휘자는 1990년대 중반의 미사일 발사가 대만 독립세력의 오만함을 억제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대만에서 분리주의 경향이 감소하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했지만, 52기지의 재래식 여단의 수와 더욱 정밀한 탄도미사일 규모가 점차 증가했다. 권두부대(拳頭 部隊, 신속대응부대)는 대만 맞은 편 해안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나아가 2008년 미국 방위보고서에 따르면, 상당 규모의 대지 순항미사일 DH-10가 윈난 남부에 배치되었고, 일부 핵 기지가 재래식미사일과 핵미사일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지로 바뀌었다. 하이테트 국지전에서 이중 억지의 모순 중앙군사위원회가 핵=방패와 재래식무기=창의 동적인 관계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중앙군사위원회는 재래식미사일을 중국의 전략적 억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용도 수단으로 간주한다. 재래식·핵미사일 여단들을 순차적으로 활용하거나 함께 결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의 근본적 원천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정적 불확실성이라는 문제를 일으키는 원천이기도 하다. 군사전략가들이 겪는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능력과 목적을 지닌 재래식 미사일과 핵 미사일이 동일한 부대, 즉 제2포병에 배피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중국의 고유한 이중성은 중국의 핵정책과 핵전략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복잡하게 한다. - 수량이 안정적인 소규모의 핵보유고는 대규모이고 점점 더 그 수량이 증가하고 있는 중거리 재래식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 핵무기의 선제 불사용은 공식적으로 선언된 정책이지만 재래식 미사일은 먼저 발사될 수 있는데, 이는 핵미사일을 보관하고 있으며 핵미사일이 발사될 때 활용되는 지휘명령 인프라와 동일한 인프라를 사용하는 기지에서 발사된다. - 중앙군사위원회만이 핵무기 사용을 승인할 수 있지만, 재래식 미사일은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 승인과 함께 전역 합동지휘부의 작전통제 하에 있다. 미사일 전력은 자기 방어 능력을 지니고 못하고 있다. 결국 미사일은 그 성격상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며 그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발사되어야만 한다. 미사일 전력은 더 강력하고 공격적인 적국과 대치할 때 항상 ‘사용할 것이냐, 파괴될 것이냐’라는 곤경에 직면한다. 또한 미사일 전력을 방어하기 위한 공중·미사일 방어 시스템도 적극적 방어라는 전략방침이 함축하는 전투 임무 와중에 파괴될 수 있다. 만약 중앙군사위원회가 재래식 미사일로 적국을 선제공격한다고 승인한다면 상대방은 그것이 재래식 미사일인지, 핵 미사일인지 즉각 구분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상대국은 중국의 모든 지휘통제 체계와 미사일 발사 기지의 모든 미사일 관련 시설을 목표로 삼아 보복 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의 재래식무기에 의한 자위 방어적 선제공격이 중국 핵미사일과 관련 지휘통제 체계에 대한 보복 파괴로 종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재앙적 결과는 파괴되지 않고 생존했지만 여전히 공격에 취약한 중국의 핵미사일 부대가 남아 있는 미사일을 적국 본토로 발사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처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작용, 반작용 싸이클에서 핵전쟁으로의 상승이 가속화될 것이며,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중국이 이중 정책이 상호 핵공격을 억지하기보다는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군사계획가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론을 펼치고 있다. 핵 기지에서 재래식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 상대국의 직접적인 대응을 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의 선제공격에 의한 피해가 재래식무기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 기지에 대한 보복이 낳을 결과에 대한 공포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전문가들이 보기에 재래식무기에 의한 반격이 중국의 핵 반격을 촉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공격을 당한 상대국의 대응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그 잠재적 적국이 처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재래식 충돌이 벌어질 경우에 신속한 승리나 전술적 우위를 추구함으로써 예상치 못하게 핵전쟁으로 상승할 위험을 양측 모두 무릅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딜레마는 매우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끝>
새로운 전쟁 사령부의 탄생을 예고하는 한미안보협의회의 규탄한다! 한미 양국은 10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4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열었다. 이 회의는 한미연합사 해체 후 이를 대체할 새로운 ‘동맹 지휘 기구’ 신설 논의를 비롯해 북한 도발을 빌미로 한 한미 양국의 호전적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양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남북관계의 상을 재정립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길을 함께 고민해야하는 지금, 한미 양국은 다시 한 번 대결과 갈등의 길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은 회의 직후 공동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한 대비계획을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천안함, 연평도 문제를 언급하며 한반도에서의 연합훈련 실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실질적 전쟁 수행이 가능한 작전계획 수립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지속해왔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한국의 동해와 서해에 진입하는 등 그 대응 수위를 높여왔다. 반전평화운동 진영은 이러한 한미 양국의 대응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음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준비, 전쟁 연습만을 부르짖는 한미 양국의 호전 세력들은 대화와 타협, 외교적 해법은 등한시한 채 오로지 군사력 증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한국의 서북도서 및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 이 일대에서의 연합훈련을 지속할 것임을 확인하며, 북한이 NLL의 실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주장했다. 군사 작전의 한계지점을 설정한 NLL을 마치 국경선인 양 일방적인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후 해상에서의 분계선이 지정되지 않으면서 서해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과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충돌이 지속되고 있는 서북도서 일대의 바다는 꽃게잡이 등 남북한 어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긴장과 충돌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위협적인 군사훈련이 아니라 남북한 양국의 대화와 외교적 해법 모색이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 이후를 대비해 새로운 지휘구조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애초 한미 양국은 전작권이 이양되면 전작권을 보유하지 않는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작권을 행사하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를 미국의 한국사령부(KORCOM)가 지원하는 형태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미 양국은 1개의 전구에 2개의 사령부가 존재하면 유사시 효율적인 대비를 하기 어렵다며,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분야별 협조기구 설립을 넘어 새로운 지휘 구조를 설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는 이후에도 미국이 한국에서의 작전통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점과, 호전적인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회의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에 적극적으로 조응해 들어가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공동성명 발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미래 미사일방어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능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해, 한미 양국이 MD 체제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미국의 MD 체제에 참여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온 것이 거짓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의 MD 체제 추진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극렬 반발해왔고, 결국 이것이 이미 새로운 군사적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는 한국의 MD 추진이 이러한 갈등의 한복판에 발을 들이는 것이고,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임을 직시해야 한다. 남북한 민중의 평화적 생존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에서 우리가 한미 양국의 호전 세력에게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이번 44차 한미안보협의회의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북한 도발을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과 호전적 전쟁연습, 군사동맹의 강화, 그리고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을 부르는 MD 참여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한층 고조시켜 민중의 삶을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 뿐이다. 한미 양국은 지금에라도 군사력 증강,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책을 중단하고 진정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필요한 길이 무엇인지 민중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갈등과 충돌을 부르는 호전적 군사훈련 중단하라! 한반도 전쟁 위협 고조시키는 한미동맹 폐기하라! 2012.10.25. 사회진보연대
새로운 전쟁 사령부의 탄생을 예고하는 한미안보협의회의 규탄한다!
2012.10.25. 사회진보연대
미사일 지침 개정 규탄한다 한국 정부는 어제(10월 7일) 오후 새로운 ‘미사일 정책 선언’을 발표해 11년 만에 미사일 지침을 개정했다. 이번 지침의 개정으로 300킬로미터로 제한되었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킬로미터로 크게 늘였다. 탄도중량의 경우 기존의 500킬로그램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사거리를 줄일 경우 탄도중량을 늘리는 방식(트레이드 오프)을 채택해 사거리를 300킬로미터로 할 경우 최대 4배인 2톤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중부권 기준으로 북한 전역이 미사일 사거리에 포함된 것이며, 트레이드 오프 방식을 통해 미사일의 파괴력을 훨씬 더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이번 개정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유사시 민첩하게 대응할 종합대책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일부 호전세력들은 한술 더 떠 이번 지침 개정도 부족하다며,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아예 지침을 폐기해 미사일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북한 위협을 빌미로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해왔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에는 남북간 평화와 화해의 노력은 사라지고 남북 관계는 오로지 강경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정을 보호하고 전쟁을 억지해야 하는 정부의 의무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자극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든다. 언론을 포함한 호전 세력들은 이번 지침 개정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의 미사일 지침 개정이 발표되자마자 중국은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을 통해 우회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근 도서 지역의 영토분쟁이 격화되는 등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군사력 증강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이것이 또 다른 군사력 경쟁의 도미노를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이 한국형 MD 구축 과정일 뿐 미국의 MD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MD 참여를 협상카드로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요구해왔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서는 미국의 MD 시스템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하루가 다르게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긴장과 대결 구도 속에서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아니라 민중들의 평화적 생존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주변국들의 군사력 경쟁을 불러오고, 미국의 MD 체제에 깊숙이 참여하게 될 한국 정부의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2012년 10월 8일 사회진보연대
미사일 지침 개정 규탄한다
2012년 10월 8일 사회진보연대
반전평화연대에서 발간한 이슈페이퍼 '한국정부의 파병 상황과 문제점' 입니다. 레바논, 소말리아, UAE(아랍에미리트),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현황과 문제점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목차> 평화유지군 5년, 동명부대가 레바논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 | 김태경(2005파병철회단식동지회) 소말리아 파병의 현황과 문제점 | 수열(사회진보연대) UAE 원전수주 백지화하고, 위헌적 아크부대 철군하라! | 김환영(평화재향군인회) 국군 해외파병연장에 관한 이슈페이퍼 - 아이티 단비부대 | 최재훈(경계를넘어) 오쉬노부대,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진실 | 김어진(다함께)
침략과 점령을 끝내야한다 “이슬람에 대한 가장 악랄한 공격”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무슬림의 무지’라는 동영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반이슬람 동영상으로 촉발된 이슬람의 반미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금새 예멘, 튀니지, 수단, 모로코, 팔레스타인, 이라크,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미국 대사의 추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성난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캠프 피닉스 미군기지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지난 9월 21일 파키스탄에서는 금요기도회를 마친 무슬림들이 파키스탄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실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진압했고, 하루 동안 17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반미 시위는 아시아권 이슬람 국가로까지 확산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도 자카르타를 포함해 여러 도시에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또한 규탄 대상 역시 미국을 넘어 서방 세계 전체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인다. 반미에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분노로 한국의 한 언론은 반 이슬람 동영상으로 시작된 반미시위가 프랑스의 만평을 기화로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규탄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의 한 주간지에서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었는데, 이 사건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세계 전체가 무슬림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보도였다. 들끓는 무슬림 여론을 프랑스가 자극해 전체 서방 세계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에는 프랑스 주간지의 만평 사건이 없었다면 무슬림의 시위가 ‘반미’에 국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번 사태를 오로지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과 그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라는 틀에 가두어버린다. 때문에 이번 사태 초기에 수단의 무슬림들이 영국과 독일 대사관을 습격한 일은 ‘격앙된 시위대의 우발적 폭력 사태’ 정도로 치부된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러한 보도는 뿌리 깊은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연결된다. ‘거룩한 예언자를 모욕한 이를 자신들이 직접 처벌할 것’이라며 주먹을 흔드는 시위대의 인터뷰 장면은 무슬림 혐오에 생생하게 색을 입힌다. 표현의 자유는 종교적 인물에도 예외가 아닌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무슬림들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문제가 된 만평을 게재한 프랑스 주간지의 편집장이 ‘종교는 하나의 철학,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무함마드도 칼 마르크스도 만화로 그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서방 세계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을 도왔던 미국의 영사관을 습격해 대사를 살해한 리비아 무슬림들에게 ‘은혜를 모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그러나 이번 시위가 이렇게 단기간에 전체 이슬람 국가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침략과 점령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 모두 독재자들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원하면서 이라크 침략과 점령,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예멘에서 지속되는 군사 공격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지난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반미 시위들은 없었을 것이라 평가했다. 해외 언론이 예멘이나 다른 지역의 시위자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그들의 분노가 동영상 자체를 훌쩍 넘어 미국과 서방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배후 조종?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아에서 발생한 미국 대사 살해 사건은 이번 시위의 의미를 폄하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리비아 당국은 재빨리 이번 피습 사건은 성난 시위대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역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미 시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 테러리스트들의 개입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실제 리비아의 미국 영사관 피습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으로 보인다. 이슬람 그룹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반미 시위를 호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동영상이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되었다거나, 미국 정부의 사전 심의를 거쳐 승인받은 영화라는 식의 거짓 주장을 퍼뜨린 정황도 포착된다. 그러나 시위가 시작된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시위 초기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얼마 후 무슬림 형제단은 동영상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지만, 9월 14일에 평화로운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다른 이슬람 종교 학자와 그룹들도 동영상을 비난했지만 평화로운 저항을 호소했다. 이번 사태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부각시키는 것은 기나긴 침략과 점령의 세월에 대한 무슬림들의 분노를 가리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미완의 민주주의?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초기 상황을 분석하면서,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 중 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작년 ‘아랍의 봄’을 타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정부가 세워졌거나 그러한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 하에서 강력하게 유지되던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고, 아직 그러한 통제력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의 폭력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자칫 서방의 군사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국제 사회는 그동안 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할 수 없을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타국의 개입은 주권에 우선한다는 이른 바 ‘보호책임’ 개념을 계발해 왔다.(이에 대한 신념은 작년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성공적인’ 개입을 계기로 한층 강화되었다.) 민주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치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나 극단주의 세력들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인식은 결국 평화를 위해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가 그동안 유엔의 평화유지군이나 미국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경계해야 한다. 침략과 점령을 중단하라 반미시위의 급속한 확산은 그동안 지속된 침략과 전쟁에 대한 무슬림의 뿌리 깊은 분노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미국이나 서방 세계의 또 다른 개입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개입이 세계를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보호를 사활적인 이익으로 정의한 미국의 군사교리는, 세계화가 내세우는 담론과는 반대로 세계에 평화가 아닌 폭력과 파괴, 점령과 전쟁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조응해 적극적으로 파병을 하면서 불안한 중동 정세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무슬림의 분노가 단지 동영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언제든지 미국의 패권 정책을 충실히 수행해 온 한국으로 향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별다른 의문 없이 지속되고 있는 해외 파병을 중단하고, 중동에 대한 침략과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반전평화운동의 또 다른 한걸음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박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