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샤워를 하고 새하얀 방진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손에는 티끌 하나 없는 반도체가 반짝인다. 뉴스에서 매연과 분진 없는 공장의 모습으로 소개되는 반도체 산업은 ‘청정 산업’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였다. 그뿐인가. 작은 판 안에 복잡한 회로가 가득한 그 모습은 반도체 산업이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며, 21세기를 지배할 최첨단 산업이라는 이미지를 부가한다. 사람들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를 계속 선도해 나갈 것이라 믿고 있고, 국가경쟁력이 상승됐다며 자부심에 넘쳐한다. 하지만 이런 반도체 산업의 ‘깨끗한 첨단산업’이라는 이미지는 허구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업에게는 돈을 벌어다 주는 첨단기술이지만, 민중은 ‘환경’ 문제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고 그 뒷수습은 국가세금으로 해결된다.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은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지나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오염으로 가득하다. 반도체 산업은 노동자의 불건강과 지역 환경의 파괴, 그리고 반도체 폐기물을 야기하는 더러운 산업이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은 국경을 넘나들며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전자산업의 건강과 환경 파괴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산업은 독립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부터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나 노출 양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의 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미리 인지되지 않았고, 인지된 위험도 감취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노동자에게 작업 중 사고가 나거나 질병이 생겨나면서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노동보건, 환경보건 문제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피해자들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지역사회의 노동, 보건, 환경 운동가들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부터 지역사회의 노동보건운동 소그룹 ‘전자산업 안전보건위원회(ECOSH)’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건강 문제를 제기해왔다. 1980년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전자 제조업 사업장에서 최초로 건강유해성 평가를 실시한 것도 이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또한 주 정부의 조사도 이끌어냈다. 조사 결과는 이 지역의 지하수가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TCE)등의 유해화학물질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그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생식독성에 노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2001년 이후 10년에 걸쳐 스코틀랜드 그리녹에 있는 내셔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암 위험에 대한 역학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역학연구에 정부가 나서게 된 계기도 미국과 유사하다. 그리녹 시에서 노동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암 피해자들의 모임을 꾸리고 지원한 스코틀랜드 노총과 피해 당사자들의 끈질긴 투쟁 때문이었다.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반도체 제조에 벤젠, 클로로포름, 디클로로메탄 등 발암물질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반도체 회사들도 여론의 압박에 자체적인 조사를 시작했지만 명확한 결론도 없는 기만적 구색 갖추기에 불과했다. IBM이나 반도체산업협회(SIA) 등이 지원한 연구는 일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결과만을 도출했고, 지원하던 연구 기금을 통제해 추가적인 평가를 불가능하게 했다.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노동자의 질병과 작업환경 사이의 연관성이 확인되면 산업재해 대상이 되고, 기업도 안전 대책을 세워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반도체 회사들이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1985년 IBM 연구소에서 일한 한 노동자가 동료 10명 가운데 8명에게 림프종이나 뇌종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것에 대해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부터 전자산업과 암 발생과의 관련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반도체 기업들은 제한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업장에서 암과 같은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해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IBM은 1969년부터 2001년까지 IBM 종사자 가운데 사망한 3만여 명 노동자의 인적 사항과 사망 보험금을 수령한 이들의 내용이 담긴 ‘기업 사망자료’를 축적해 왔지만 이 자료의 존재 자체를 숨겨왔다. 하지만 직업병 피해자들은 회사가 불법적으로 독성 화학물질을 노출시켰고, 유해한 작업 환경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기업 사망자료’가 소송 중 법원의 결정으로 2004년에 공개되었고, IBM 노동자들의 암 사망률은 미국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력한 증거였던 ‘기업 사망자료’를 판사가 배제하면서 IBM이 승소했다. 그러나 IBM의 직업병 은폐 의혹이 계속 불거졌고, 의혹을 취재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소송 과정에서 줄곧 노동자들이 일하는 클린룸의 안전성을 주장했던 IBM은 이후 대부분의 작업을 자동화했고, 염화메틸렌, 글리콜 에텔 등 각종 화학물질의 사용도 금지했다. 암을 앓는 250여 명에게는 산재보험금이 지급됐고, IBM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 대부분에 대해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했다. IBM 노동자들의 건강과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고, 현재 IBM에게 지역 환경오염의 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이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로 확대되어 온 전자산업과 그에 맞선 투쟁들 노동자들과 지역 사회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은 성장을 거듭하며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시장접근성과 물류 환경 등의 특성을 살리면서 공급망을 구축했다. 아시아 전자산업은 1970~8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전자회사들이 홍콩, 싱가폴,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가들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본격화 됐다. 생산설비를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고 생산라인을 하청화하면서 미국에서 제기됐던 반도체 노동자 논란도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집중된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IBM에서 대량 발생되었던 백혈병 등 반도체 산업관련 직업병도 산업의 이전에 따라 한국을 거쳐 중국의 폭스콘 등에서 차례로 재현되고 있다. 홍콩, 대만, 중국 등의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을 들여오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유무역구역에 공장을 세우고, 인건비를 낮추며, 세금혜택을 주며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고, 태국과 필리핀 등의 국가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다국적 IT기업들이 미국에서는 금지된 화학 약품 사용을 아시아에서 계속 사용했지만 이 국가들은 직업병 발생과 환경오염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다. 전자회사 RCA는 1960년대 미국 인디애나 공장에서 심각한 환경오염과 노동쟁의가 발생하자 해외로 공장을 옮겨, 1970년대에 대만으로 진출했다. 대만에서는 산업단지 내의 공장들이 ‘합법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도록 법 제도와 환경영향평가 완화를 허용해주었다. 그 후 20년이 지나서야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학자들에 의해 RCA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장 주변 지하수는 식수안정기준치의 1000배가 넘는 TCE로 오염되어 있었고, 공장 기숙사에 거주한 RCA 노동자들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각종 암에 걸렸고, 2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 RCA는 1996년부터 대만 환경보호국 관리 하에 공장 부지와 지하수 정화작업은 시행했지만 노동자들의 암 발생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환경보호국 또한 마찬가지 행태를 보였다. 결국, 1998년에 RCA 공장 주변 지역이 정화 불가능한 영구오염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수천 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이 10년 이상 진상 규명과 보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대만 RCA 노동자들은 여러 연대체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위한 희생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대만 정부에 항의하며 환경과 산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뤄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RCA는 대만을 떠나 더 값싼 노동력이 있고, 국가 차원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법적 규제나 관리 감독이 느슨한 태국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한편 대만 자본은 2000년부터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워왔다. 1990년 대만은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80%의 노트북을 제작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전세계 노트북 생산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이 상당 부분은 대만 기업의 투자로 이뤄진 결과이다. 현재 대만 IT기업들은 생산은 중국에서, 연구개발은 대만에서 진행하는 형태의 분업을 도입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애플 하청업체인 폭스콘이나 윈텍 등에서는 수십만 명을 고용해 근로계약서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폭발사고, 공장 인근 지역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국제적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 미국의 IBM 공장, 영국의 내셔널 반도체 공장, 대만의 RCA 공장, 중국 폭스콘 공장 등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삼성반도체의 상황과 흡사하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등 전자산업은 복잡한 하청체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개발도상국에서의 대량생산에 기초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경우, 기술개발 이후의 생산과정은 노동집약형 산업이기 때문에, 고도로 유연화 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에서 생산직 노동력의 다수는 젊은 여성들이다. 연령과 성별의 위계에서 하위에 위치한 이들은 자신의 작업환경에 대한 고민이나 불편함, 건강상의 문제점 등을 드러내거나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아시아 개도국 대부분이 노동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법이 상대적으로 부실하고 역량도 취약한 실정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각 정부가 새로운 성장 동력인 IT 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로버트 노이스 인텔 공동 설립자는 "노동조합이 없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만약 우리가 노동조합을 허용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파산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무노조 무파업’에 있다는 외국 기업주들의 이야기는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는 삼성과 닮아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규제가 없고,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으로 계속적으로 이동하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며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짓밟고 있지만, 기업은 물론 해당 국가에서도 이를 은폐하고 무마하기 바쁘다. 기업들은 이윤을 쫓아 규제가 약한 곳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이것은 비단 반도체 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30년 전 한국의 원진레이온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다. 레이온(비스코스 인견사) 기계는 나라와 기업이름만 바뀐 채 일본의 동양레이온, 한국의 원진레이온, 중국의 화학섬유공장에서 차례로 사용되었다. “이황화탄소 중독”에 의한 직업병이 발생해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공장 폐업 후 설비는 다른 국가에 팔아버리는 행태를 보이며 이미 알려진 직업병이 되풀이되었다. 거대 반도체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저질러온 환경오염과 노동자 건강문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영국,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기업을 감독하거나 제어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해주고, 이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정부의 모습 또한 유사하다. 이 문제는 한 지역이나 한 국가에서 해결한다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은 민중들의 삶과 건강을 ‘세계화’하여 파괴하고 있으며, 국경을 이동하면서 더욱 치밀하고 강도 높게 파괴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어느 개인, 특정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노동자 민중들의 공통적 이야기다.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전파되는 모든 더러운 산업에 의한 파괴되는 '세계화'의 역사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국경 없는 직업병과 환경파괴를 만들었다. 이는 자본의 이윤창출 욕구와 신자유주의 구조 하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또한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와 공동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아시아감시정보지원센터(Asia Monitor Resource Centre, AMRC),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캠페인(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 ICRT),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Supporters for Health and Right of People in Semiconductor Industry, SHARPS), 대만 지구공민기금회(Citizen of the Earth Taiwan, CET) 등의 전자산업 관련 환경/노동보건/노동운동 단체들은 전자산업의 노동안전보건, 환경안전보건 행태를 변화시키고, 자본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 중이다. 6월 18일부터 3일간 한국에서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를 위한 국제회의(Global Strategy Meeting on Sustainable Eletronics Industry)가 있다. 국경 없는 직업병과 환경파괴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임을 폭로하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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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룸’에는 아무런 물증도 없었다. 56명이 죽어 나간 클린룸은 말끔하게 리모델링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화학물질'은 영업상 기업비밀이란 명목으로 행방이 묘연해 졌다. 밀실 살인이다.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공장, 같은 라인, 같은 팀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연이어 암과 희귀질환으로 죽었다. 노동자들의 건강에 책임이 있는 산업안전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의 집단 암 발생이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없으며, 우연일 뿐이라 변명하기에 바빴다. 유력한 용의자 '화학물질'을 은폐한 삼성은 백혈병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직업병도 아니며, 반도체공장과의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희귀질환이니, 노동자들의 죽음을 그들 각자의 질병에 의한 자연사로 치부해 버렸다. 그야말로 밀실살인사건. 삼성반도체공장이라는 거대한 밀실에 피해 노동자와 유족들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함께 그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들어섰다. 이 글은 그 투쟁의 역사를 정리한다. 점차 확대되어온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 국내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7년 3월 故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부터다.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자 한 황상기씨의 끈질긴 노력이 그 시작이었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백혈병 등 각종 직업병에 걸렸거나 그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으나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이에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2만 7천 명의 직원 중 6명의 백혈병 환자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실제 암발생률은 대한민국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고 주장했다. 2008년 초 대책위는 ‘반올림’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상규명과 산재인정을 위해 여러 활동들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제보자는 늘어났고, 현재 반올림에 접수된 백혈병,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경화증, 루게릭 등 희귀암과 중증질환 등의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자는 160여명이고, 6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삼성 직업병 제보자는 140여명이고, 지난 6월 2일 故윤슬기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56번째 삼성 직업병 피해노동자가 발생했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을 얻으면, 산재보험보상이라는 제도로 치료비나 생계비의 일부를 보전 받게 된다. 하지만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은 희귀질환을 가져서 자신의 질병이 직업병이라는 의심을 잘 하지 못했다. 설령 직업병이라도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 하는 절망감 같은 것을 가져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이하 산재신청)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노동자가 어떻게, 어떤 물질에 노출되어 이 병에 걸렸는지 입증할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영업기밀의 이유로 물질목록을 공개하지 않는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은 불승인률이 높았다. 산재신청과 미흡한 역학조사의 문제 2007년 6월 故황유미씨의 산재신청을 시작으로 반올림과 삼성반도체 피해노동자 및 유족들은 2008년 4월 4명의 제1차 집단 산재신청, 2010년 5월 산재피해자 증언대회 및 5명의 제2차 집단 산재신청, 같은 해 7월 3명의 추가 집단 산재신청 등을 진행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암 질환으로 22명(삼성 노동자만 21명)의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었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승인되었다. 우리나라 산재 판정 기관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며,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하게 된다. 2007년에 삼성반도체에서 여러 건의 백혈병이 발생하고, 산재인정투쟁이 진행되면서 삼성 백혈병 논란 사건과 관련한 역학 조사는 그동안 세 차례 실시되었다. 2007년 사망자 개개인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2008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지난 10년간 전체 국내 반도체 종사자 23만 명의 림프조혈계 암 발병 위험에 대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2009년 삼성전자 반도체등 국내 반도체 3사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작업환경 역학 조사’가 그것이다. 첫 번째 역학조사는 업무와 백혈병 질병 연관성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2008년 12월에 발표된 두 번째 역학조사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의 암 발생률은 일반인보다 높게 나왔고, 비호지킨 림프종·백혈병 발병률의 경우는 일반인에 비해 1.31~5.16배까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연관성이 낮다고 결론을 냈다. △백혈병은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증가를 찾을 수 없었고, △반도체 공정 작업 현장에서 백혈병 유발 가능 물질인 벤젠·전리방사선은 검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고, △높게 나온 비호지킨 림프종의 경우 원고 가운데 한명은 남자이므로 업무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역학조사를 할 당시 삼성이 작업장의 물량을 줄이고 화학물질을 치우는 등 대대적인 청소를 함으로써 조사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반박했다. 또한 반올림은 노후 라인에서 발병률이 높을 가능성이 훨씬 많은데도 전체 노동자를 표본으로 설정하여 일반인의 발병률과 비교해 별 다른 특징이 없는 것처럼 결과를 나오게 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국 2009년 5월 근로복지공단은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작업환경이 백혈병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미흡하다’며 전원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2009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이의신청 즉 심사청구를 하였지만 전원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행정소송을 둘러싼 삼성의 회유와 은폐에도 투쟁을 지속하다 2010년 1월, 피해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산재 불승인’에 불복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행정소송의 형식적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었지만, 실제로는 세계 초일류 기업임을 자부하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벌이는 법적 투쟁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소송 초기부터 삼성전자 측 변호사들이 소송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실제 삼성전자가 피고 보조참가로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성은 피고 보조참가로 소송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산재를 은폐하려 했다. 삼성은 故박지연씨 가족에게 산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보상해주고 집까지 고쳐주겠다고 했다가 산재신청을 하자 수차 퇴사 권고를 하였다. 故황유미씨의 아버지에게도 거액의 금품으로 회유하여 산재신청 시도를 차단하려 하였다.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주들이 낸 보험료로 정부가 운용하고, 필요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주어진다. 때문에 삼성은 작업 공정 과정에서 산재가 발생한 것을 인정하고 정부 보상받는 걸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 왜 삼성이 이를 방해할까. 삼성전자는 무재해 기록 때문에 보험료율을 50% 감면 받고 있어 연간 143억 원 정도를 절감했다. 하지만 반도체 피해자들 중 한명이라도 공식 산재 인정이 되면 절감됐던 보험료를 다시 내야한다. 진짜 재해가 없어서 보험료를 감면받은 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몇 억 원씩 주겠다며, 산재 신청을 못하게 회유하고 은폐해왔던 것이다. 한편, 2010년 9월 삼성전자·하이닉스·엠코테크놀로지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작업환경 역학 조사’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되었다. 조사결과에는 삼성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감광제에서 0.08ppm에서 8.91ppm의 벤젠(국내 벤젠 노출 기준은 1ppm 이하로 규제)이 검출되었고, 각종 유기화합물질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삼성전자가 2008년 국정감사장에서 벤젠은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바로 삼성이 의뢰한 조사 결과에서 벤젠이 검출 된 것이다. 지난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서도 벤젠은 검출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발암성과 연관성이 낮다는 근거로 작용해 산재 불승인 결정이 난 것이었다. 2011년 2월에 반올림이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반도체사업장 역학조사 자료 및 화학물질 정보 등 정보공개 신청을 했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2011년 6월 백혈병 행정소송 1심에서 故황유미, 故이숙영씨의 백혈병 사망을 산재로 인정 받게 된다. 하지만 故황민웅, 송창호, 김은경씨는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故황유미, 故이숙영에 대해서는 "반도체 공장에서 세척작업을 해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 측 2명은 직업병으로 인정하였지만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정황상 추정해 판단할 수 있다면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기존 판례의 취지를 볼 때, 3명의 삼성백혈병 노동자들에게 기각 판정을 한 것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에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나 부분적으로 직업병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산재인정 판결에 대해 공단은 항소를 하였고, 삼성은 인바이런사 재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삼성으로부터 연구비용을 받은 인바이런은, "사업장은 잘 관리되고 있다", "노출재구성 연구 결과에서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어떠한 과학적 인과 관계도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인바이런의 발표는 주장과 결론만 있을 뿐 데이터가 없는 보고서이며, 인바이런은 폐암 환자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대변하고, 고엽제 관련하여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의 건강 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던 컨설팅 회사이다. 2011년 8월 고용노동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보건관리 강화’를 위해 실천방안 요구 및 이행 모니터링 계획을 밝혔다. 이는 故황유미씨가 세상을 떠난지 4년 5개월만, 행정법원 1심에서 산재로 인정받은지 약 2개월 만에 발표된 노동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책임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을 책임질 노동부는 삼성에게 직업병 재발방지 계획 등을 떠맡기고 뒤에서 모니터링만 하겠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삼성 백혈병’으로 표현되는 반도체 및 전자산업의 유해성을 ‘삼성 반도체’만의 문제로 한정시켜서는 안 되며, 전체 전자산업 직업병에 대한 재발방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12년 2월 정부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장서 1급 발암물질이 발견되었다고 처음 인정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간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등 국내 반도체 공장을 대상으로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를 수행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 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공장 설비가 현대화된 이후에도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삼성 측의 주장처럼 그동안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이 끊임없이 개선됐다면,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노후화된 수동라인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측정된 부산물의 양이 모두 노동부에서 지정한 노출 기준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고, 고용노동부도 측정된 노출량은 극미량이어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노동부가 제기한 기준치는 관리 기준치일 뿐, 발암물질에는 역치가 없기 때문에 노출허용 기준 미만에서도 충분히 희귀병이 발병할 수 있다. 정부는 산재승인 뿐만 아니라 제도를 개선하고, 삼성은 유족들에게 사과하라! 2012년 4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김지숙씨의 산재신청이 처음으로 승인 처분을 받았다.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은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를 근거로 불승인을 남발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반올림 활동가들은 갖은 탄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고, 연대가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 아직은 한 명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공식 기록으로 남아야 정책을 통해 산업에 대한 예방과 규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공식 블로그에 매일 ‘물타기’ 정보를 올려왔던 삼성반도체는 이번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보상을 받는 일은 삼성이 받아들이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삼성이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산재 인정 다음 정부가 해야 할 것은 그동안 시행했던 여러 조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정보가 공개돼야 전·현직 노동자들, 시민들이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 충분히 알고 사회적 조치에 대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취지에 맞게 산재 입증책임을 완화하기 위해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의 개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국회는 국가차원의 신뢰성 있는 진상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산업재해 및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제도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삼성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를 인정하고, 유족들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과거 작업환경과 질병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삼성이라는 거대밀실 속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멈추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노동자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참여만이 또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박스1%]
민주통합당은 무상의료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공공병원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공공성을 파괴할 영리병원이 현실화되려는 지금,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제정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되면서 영리법인이 세울 수 있고,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영리병원 추진을 시작하고 주도해 온 것은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무상의료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의료비 상승을 주도하는 제약자본, 병원자본, 보험자본을 제어하는 전략이 없는 무상의료 정책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그리고 영리병원이 현실화 될 상황에 처하자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두 달 가까이 민주통합당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번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확실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민주통합당의 무상의료 공약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거짓 공약일 뿐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건강보험을 무너뜨리고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영리병원이 존재하는 한, 무상의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송영길 인천시장 역시 민주통합당과 똑같이 행보하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2008년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하였다. 그러나 송 시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이 후보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리병원 반대 입장을 선언하고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인천 송도에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법률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송도영리병원 설립이 어렵다”는 식으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작년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단회에서 송 시장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송도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모든 추진일정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겠다"고 말했으나 이후에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영리병원 설립 추진에는 막힘이 없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천시의 하부 조직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뒤에 숨어있지 말고, 법률적 장치가 마련되려는 지금 송도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민주통합당 역시 그간의 무상의료 공약이 입에 발린 거짓 공약이었는지, 조금이라도 반성과 진정성이 있는 약속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대로 영리병원이 추진된다면 민주통합당이야말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012년 6월 12일 사회진보연대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의사-정부 간 갈등의 구조적 원인 지난 5월 2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구조적으로 공급자에게 불리하다고 문제제기하면서 전격 탈퇴를 선언했다. 의협의 탈퇴는 7월 1일부터 전면 실시되는 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를 완강히 거부한다는 뜻이다. 의협은 ‘진료비정액제’라고도 불리는 포괄수가제가 과소진료를 조장하여 결국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를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를 통해 현재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일어나는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97년 시범사업과 2002년 선택 적용을 통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의 질 저하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5월 30일 의협이 불참한 건정심 회의에서 7월 1일부터 포괄수가제를 당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의협과 정부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의사들 내부에서는 포괄수가제에 이어 총액계약제까지 시행된다면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할 때처럼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5월 23일 ‘포괄수가제는 국민을 위한 제도다’라는 사설을 통해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압력을 넣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논평을 했다. 또한 건정심에 참여하는 가입자단체와 시민단체들도 의협이 이해득실에 급급해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의약분업부터 최근 포괄수가제까지 의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반대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또한 정부의 주장대로 포괄수가제는 진정 ‘국민을 위한 제도’인가? 건강보험제도에 국한된 정책개혁이 만드는 갈등과 왜곡 포괄수가제의 목적은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억제해서 재정을 안정화하는 것에 있다. 포괄수가제를 통해 공급자에게 의료서비스의 비용에 대해 일정정도 책임을 주어서 과잉의료를 줄이려 한다. 현재의 의료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위주의 왜곡된 공급체계를 공공적 성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없이 정부는 포괄수가제라는 건강보험에 국한되는 수가제도의 도입만으로 의료비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민간병원을 운영하고 재정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의사들은 정책변화에 반발하거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건강보험제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게 된다. 게다가 의사협회가 정부 정책에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정부와 여론이 이러한 행태를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혁의 진정한 쟁점은 가려진다. 정부는 제도의 관철에 집중하면서 공급자 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수가 인상 등의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도는 왜곡되어 그나마 내세웠던 취지마저 상실되기도 한다. 만성질환관리제가 왜곡되었던 과정이 단적인 사례다. 만성질환관리제는 선택의원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추진되었다. 이 제도의 목적은 만성질환 환자가 의원을 선택해서 꾸준히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게 하는 것, 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제도 참여를 높이는 방법으로 정부는 환자관리표를 제출하고 관리 실적 평가를 받은 선택의원들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주고, 환자들에게는 선택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경감시켜주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의협, 그 중에서도 현 노환규 의협 회장이 대표였던 전국의사총연합 등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선택의원제가 신규 개원의의 진입장벽이 될 것이고, 정부가 의사를 통제하는 주치의제로 가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환자가 의원을 선택하는 과정과 의원이 환자관리표를 정부에 제출하는 제도 등은 삭제된 후 만성질환관리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포괄수가제도 현재 같은 갈등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타협 과정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가 주는 교훈 만성질환관리제와 포괄수가제로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은 정부의 정책이 의사와 갈등을 만들고 사회적 쟁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의약분업과 비교해 볼 수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사례를 통해 정책개혁의 한계가 어떤 갈등과 왜곡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약분업은 광범위한 임의조제, 음성적 약가마진 등 의약품을 둘러싼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과잉처방, 약제비 지출 증가의 구조적 문제인 민간 의료기관의 경쟁과 제약자본의 특허 독점 문제 등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리베이트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의사들의 부도덕성을 공격하고 제도를 합리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추진과정에서 4차에 걸친 의사파업과 같은 의사집단의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의사·약사·정부 간의 타협과정에서 의약분업은 의료수가와 조제수가의 인상, 상품명 처방, 대체 조제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애초의 안과는 상당히 달라진 타협안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타협안의 결과로 인해 의약품 리베이트로 대표되는 음성적 약가마진 통제와 의약품에 대한 보장성 강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시행 이후 오리지널 약 처방의 증가와 의약품 가격 관리 실패로 인해 약제비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민중의 의료비부담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제약자본과 민간의료보험은 더욱 성장했다.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진정 바라보아야 할 쟁점 포괄수가제 논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진정한 쟁점은 바로 의료공급체계의 성격이다.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자본, 제약자본, 민간보험자본의 확대가 바로 의료비 증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포괄수가제는 이론상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행위별 수가제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병의원들은 수익을 위해 다른 방법을 추구할 수 있다. 실제 증상보다 더 심각한 진단명을 기록할 수 있고, 허위 진료건을 청구할 수 있고, 비용대비 이득이 적은 건들은 다른 공급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이렇게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에서 포괄수가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형병원들로 이뤄진 병원협회가 포괄수가제에 대해 조건부 찬성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병원자본의 입장에서 포괄수가제가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오히려 자본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거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허용 등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영역이 확대될수록 민간의료보험의 시장은 커질 것이다. 물론 포괄수가제가 이러한 결과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의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 없이 포괄수가제만 추진한다면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포괄수가제로 인한 의료비의 감소가 민간의료보험사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서 보험사의 이익 증대로 귀결된다는 비판이다. 이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포괄수가제가 가장 광범위하게 도입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관리의료는 단순한 의료보험의 기능을 넘어 보험회사가 의료과정 자체에 개입하면서 비용절감을 주도한다. 포괄수가제가 민간의료보험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공보험이 없는 미국의 사례를 남한 건강보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나, 포괄수가제라는 제도만으로 의료비를 통제하고,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고, 보건의료체계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보건의료운동진영은 나쁜 의협, 착한 정부라는 이분법 속에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의사들이 이익을 추구하도록 만든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의 근본적 개혁방안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민간 중심적 의료공급체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의사들의 반발과 제도의 왜곡은 항상 발생할 수 있으며 의료비 상승과 무질서한 의료공급체계로 인한 피해는 결국 민중에게 돌아올 것이다. 의료공급체계에서의 공적 투자와 통제가 필요하다. 민중이 아파야 의사와 병원이 이익을 얻는 이윤추구적 보건의료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이 건강한 것이 의사에게도 좋은 보건의료체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박스1%]
이명박 정부 말미 공공부문에 대한 공세가 거세다. 정부 초기 공공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다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주춤하던 이명박 정부는 올해 들어 KTX 분할 민영화를 시도하고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민간자본이 운임 기습인상을 시도하고 이에 대해 제제를 가하려는 서울시에 소송을 거는 등 공공부문에 대한 국내외 자본의 공세도 거세다. 계속되는 의료민영화 시도: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 추진의 경과 2006년 이후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이 끈질기게 추진되었고, 그에 발맞춰 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법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2007년부터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이 시도되어왔다. 수차례에 걸친 법 개정 시도가 민중운동의 반대와 영리병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무산되자 이종철 인천자유구청장은 법 개정이 힘들다면 현행법 하에서 관련규정을 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요건과 허가절차를 규정하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영리병원 설립을 강행하기 위해 여론 수렴이나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우회하여 시행령 개정을 택한 것이다. 시행령이 통과되기 전부터 이미 인천시는 영리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ISIH컨소시엄(지분구조 : 일본 다이와증권 60%, 삼성증권․삼성물산․KT&G 40%)을 사업주체로 선정했고, 병원설립 및 초기 운영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6,000억 원 중 최대 3,000억 원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지원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시행령 개정을 주도한 지식경제부는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에 송도국제병원이 설립될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2012년 말까지 준비를 마치고 2015년 12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민영화의 교두보가 될 송도국제병원 지식경제부는 시행령 개정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수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외국의료기관은 ‘영리병원’으로 변질되었다.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당시에는 외국인이, 외국의 의료인을 고용하여, 외국인을 진료하는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의 설립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내국인 진료가 허용되었고, 국내 자본이 투자하여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국인 의사를 90%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으며, 의사의 90%가 내국인인 의료기관이라고 한다면 경제자유구역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의료기관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있게 법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이 영리병원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에 전체 의료체계에 차지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6개로 전국에 걸쳐 지정되어 있으며 추가로 지정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된다면 결국 영리병원의 전국적 허용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목적으로 외국인 정주여건의 개선과 외국인환자 유치를 들고 있지만 이는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2011년 10월 현재 송도의 인구는 10만 2천 명이며 이 중 외국인은 1,834명에 불과한데, 외국인 진료를 위해서 600병상 규모의 의료기관을 짓는다는 주장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외국인 환자 유치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없다. 송도국제병원이 연간 6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인천지역에서 유치한 외국인 환자의 수가 2,898명에 불과한데 병원 하나 건설해서 6만 명을 추가로 유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고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지금도 영리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기존 의료기관들은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또한 영리병원이 법적으로 보장된 이윤추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체계를 이탈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영리병원의 일반화와 건강보험체계로부터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영리병원-민간의료보험이 중산층 이상의 건강을 보장하고 비영리병원-건강보험이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는 이원화된, 의료 양극화 체계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 부실화와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KTX 분할 민영화 추진 경과 지난해 12월 27일 국토해양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15년 초 개통 예정인 수서~목포, 수서~부산 간 KTX의 운영권을 민간 기업에게 넘기는 안을 공표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10년 업무보고에서는 노선 개통으로 연 2,700억 원의 순이익을 얻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적자를 보전할 계획을 제출하고는, 돌연 입장을 바꾸어 민영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철도노조와 민중운동의 거센 반대로 잠잠해졌던 KTX 민영화 문제는 총선 후 다시 불붙었다. 4월 19일 국토해양부는 수서역 고속철도 운송사업 사업제안서 초안을 발표한 후 다시 여론전을 시작했고, ‘5월이 지나 준비가 부족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추진을 위해 준비하겠다’며 강행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즉각 반대의사를 표명하였고 4월 20일 쟁의행위 총투표를 진행하여 86%의 찬성율로 민영화 시도에 맞설 것을 결의한 상황이다. 노동자 착취와 세금으로 대기업 배불리는 KTX 분할 민영화 정부가 제시하는 KTX 민영화 추진의 목표는 경쟁체제 도입이다. 현재 철도 운영의 많은 문제점이 코레일의 독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민영화를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 달리 철도부문은 민영화가 되더라도 경쟁체제가 되지 않는다. 철도는 표준 기술을 토대로 선로 위를 여러 열차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신호에 따라 운행되므로 민영화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이용객은 자신이 가까운 역에서 제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지금과 같은 소비 패턴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KTX 분할 민영화는 경쟁체제 도입이 아니라 민간 자본에게 철도노선 중 유일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KTX의 운영권을 주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는 특별한 투자 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장기간 보장받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반면, KTX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무궁화호․새마을호․화물열차 및 선료사용료 등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코레일은 신규노선 민영화로 경영 악화가 더욱 심해지고 이는 적자노선 폐지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적자 해결과 운임료 하락, 안전성 증가를 예상한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면 효율성이 증가하여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하는 경영 효율화의 실체는 인력을 줄이고 더 많은 업무를 외주화하며,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철도 운임의 31%를 차지하는 선로사용료를 정부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오로지 인건비 절감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주화와 인력감축은 철도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2011년 연이어 안전사고가 발생하자 구성된 민간안전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경영효율화 논리에 밀린 구조조정으로 인한 유지보수 인력 부족’을 안전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들면서 ‘적정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TX 분할 민영화는 철도 분야의 사유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공기업 지주회사를 통한 철도 민영화 방안은 유보되었지만 단계적인 분할 민영화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시설과 운영의 완전한 분리를 위한 시설유지보수 업무의 외주화가 추진되어 왔으며 여객과 화물, 노선별 운영사업자를 분할하고 민간기업을 진입시키려 해왔다. 그 시작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KTX 분할 민영화인 것이다. KTX 민영화를 막아내지 못하면 다음은 화물,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노선의 민영화가 이어질 것이다. 공동투쟁으로 KTX 민영화 - 영리병원 저지하자. 정부와 자본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자본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부문 사유화에 에 필사적이며, 영리병원 설립과 KTX 분할 민영화는 공공부문 공격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정부와 자본은 공기업 독점 해체, 경영효율화, 해외자본유치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집요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는데 반해 운동진영의 대응은 산발적인 투쟁을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도 KTX 투쟁은 철도노조의 개별적 투쟁으로 비춰지고 있고, 송도 영리병원 문제 역시 보건의료운동이나 인천지역의 문제로 한정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과 KTX 민영화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정책인 공공부문 사유화의 두 얼굴이므로 민중운동 전반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그 뿐 아니라 총선 이후 민중운동 진영의 사기저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공공부문 민영화에 맞선 연대투쟁이 절실하다.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맞서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및 대안 모색을 위한 공동의 실천을 만들어 나가자. [%=박스1%]
5월 22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노동해방실천연대(이하 해방연대) 회원 4명을 연행하였다. 또 진보넷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는 탄압을 자행했다. 경찰은 해방연대에게 국가보안법 7조 위반, 즉 ‘반국가단체 구성 및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문서 등을 제작·수입·복사·소지’한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자본과 정권의 착취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반민중적 악법을 존속시키고 그것을 악용하는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반동이자 사라져야 할 현대사의 수치다. 경제위기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전세대란을 낳으며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정부는 임기 내내 친기업-반노동자적 길만을 걸어왔다. 또한 이러한 정부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을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활용하여 탄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반전 평화, 민중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악법,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노동해방실천연대 동지들을 즉각 석방하라! 비민주적 반민중적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하라! 2012년 5월 22일 사회진보연대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의 의미와 과제 2012년 4월 17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하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요건과 허가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당초 이번 건은 경제자유구역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었으나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운동의 반대로 통과가 힘들어지자 시행령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의료정책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여론 수렴이나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관료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주도한 지식경제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2002년부터 추진해온 외국의료기관 설립이 본격화될 것이며, 인천 경제자유구역(송도)에 600병상 규모로 세워질 송도국제병원이 그 시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리병원 설립 문제는 인천시의 주요한 논란거리 중 하나였는데, 송영길 인천시장은 그간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해왔으나 지역사회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는 형편이다. 시장이 지역 민심을 의식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자 지경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은 인천을 방문하여 빠른 결단을 내릴 것을 재촉했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인천을 배제하고 다른 지역에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은 정말 외국인을 진료하기 위한 것일까? 시행령 개정이라는 변칙적 수단까지 동원하며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경부는 그 효과로 외국인 정주여건의 개선과 의료관광 활성화를 들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이 목적이라는 입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2011년 10월 현재 송도의 인구는 10만 2천명이며 이 중 외국인은 1,834명이다. 600병상 규모의 외국인 대상 의료기관이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현재도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또한 외국인진료를 위한 의료센터(인하대 국제진료센터)가 마련되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들의 의료접근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의료관광 활성화 또한 마찬가지다. 연간 6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얼핏 살펴봐도 6만 명이라는 수치는 비현실적인데,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인천지역에서 유치한 외국인 환자의 수가 2,898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외국인을 진료할 병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내 거주 외국인 진료와 외국인 환자 유치는 현행 시스템 하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실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진료가 정말 문제라면 질 높은 의료시스템을 마련하고 언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될 일이다. 환자 입장에서 볼 때 외국의료기관의 유일한 차별점으로 규정된 것은 외국면허 소지 의사를 10% 이상 배치하도록 한 것인데, 외국면허 소지와 외국인들에 대한 질 높은 의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설립의 진짜 목적은 영리병원의 전국적 허용이다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법의 개정 과정을 살펴보자.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당시에는 외국인이 외국의 의료인을 고용하여 외국인을 진료하는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의 설립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내국인 진료가 허용되었고 국내 자본이 투자하여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으며(외국인투자비율 50%가 최소요건) 내국인 의사를 90%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애초의 취지는 유명무실해졌다.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으며, 의사의 90%가 내국인인 의료기관이라고 한다면 경제자유구역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 의료기관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있게 만드는 법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경부는 외국인 정주환경 조성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일 뿐이므로 영리병원 문제와는 무관하며,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에 전체 의료체계에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6개로 전국에 걸쳐 지정되어 있으며 추가로 지정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이처럼 광범위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된다면 결국 전국적 허용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낼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이 불러올 연쇄효과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법인의 목적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므로 당연히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환자에게 돌아간다. 또한 진료의 일차적 목적이 이윤창출이므로 의료의 질이 저하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많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심지어 영리병원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보건산업진흥원에 발주한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 연구에서도, 영리병원은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의료인력 편중으로 중소병원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외국인 진료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막상 영리병원이 현실화되고 나면 내국인을 주로 진료하는 고급화된 병원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어서 실제로 외국인을 진료하는 것도 아닌데 외국인투자비율 50%, 외국면허 소지 의사 10% 등의 규정은 과도하다는 현실론을 근거로 설립요건이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자유구역이 이미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영리병원이 확산되면 전체 의료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영리병원의 전면적 허용에 대한 요구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체계를 통해 통제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법적으로 보장된 영리병원의 이윤추구를 건강보험이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할 경우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의 일반화와 건강보험체계로부터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영리병원-민간의료보험이 중산층 이상의 건강을 보장하고 비영리병원-건강보험이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는 이원화된 체계가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건강보험의 부실화를 초래할 것이다. 의료민영화, 의료 이용의 불평등, 건강보험의 부실화 등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될 때 이미 보건의료운동 진영에서는 영리병원 허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당시 정부는 이를 허무맹랑한 억측이라고 단정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려했던 가능성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한미 FTA가 발효되었기 때문에 영리병원 설립 후에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해도 이를 되돌리는 것은 투자자국가제소(ISD)의 대상이 된다.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막기 위한 투쟁이 절실하다 현재 상황에서는 송도에 영리병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경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로 송도국제병원 설립을 명시하고 있다. 송도국제병원을 설립․운영하기 위한 컨소시엄이 이미 구성되었으며(ISIH 컨소시엄: 다이와증권캐피털마켓 60%, 삼성증권·삼성물산·KT&G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음), 인천시는 지난 3월 ISIH 컨소시엄을 우선투자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인천경제청은 올해 말까지 사업계획 수립과 운영기관 선정을 끝내고 2015년 12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송도국제병원 설립은 결코 병원 하나를 짓는 문제로 가볍게 볼 수 없다.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문제는 우리 사회에 영리병원이 현실화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의료비 상승과 건강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킬 영리병원 설립을 반드시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