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7일 신용평가기관인 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3등급 하향조정했다. 이 조치는 유로존 회원국과 IMF가 그리스에 대한 지원의사를 확정한 이후에 내려진 조치이므로, 그 여파가 상당했다. 이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에 대한 최초의 투자부적격 사례로서, 신용평가기관들의 이와 같은 조치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같은 해 5월 2일 유로존 회원국들과 IMF가 단일 국가에 대해서는 사상최대 규모인 1,10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그리스에 지원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5월 10일 유로존 회원국들은 회원국에 대한 대출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인 유럽금융안정기금(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 EFSF)을 설립에 합의하여, IMF의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약 7,50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안정메커니즘(Europe Stabilization Mechanism, ESM)을 갖추게 되었다(표1).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그리스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번져갔고, 2011년 10월 유럽 정상들은 민간 채권자의 그리스 국채 손실부담률(헤어컷비율)을 50%로 상향조정하고 EFSF의 레버리지, 즉 EFSF가 채권을 매입하여 금융기관의 자본을 확충하고 이렇게 매입한 채권을 담보로 차입을 해서 다시 채권을 매입하는 신용차입을 가능케 하여 EFSF의 규모를 1조 유로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한다. [표 1] 유럽안정 메커니즘의 구조 그리고 같은 해 12월 9일 영국을 제외한 EU 26개국 정상은 연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최대 3.5% 이하, 누적 공공적자를 60% 이하로 유지하지 못하는 회원국을 자동제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재정통합에 합의했다. ‘통화동맹’이었던 유로존이 ‘재정동맹’으로 한걸음 옮긴 것이다. 그리고 같은 달 21일 ECB(유럽중앙은행)가 새로 도입한 3년 만기 장기대출(LTRO) 입찰이 실시됐다. 3년 만기 LTRO는 ECB가 유럽의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A- 등급 이상의 유럽 국채를 담보로 이들에게 3년간 1%의 저리로 무제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ECB의 대출프로그램 만기는 1년이 가장 긴 것이었다.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 위기가 심화되면서 국채 수익률이 치솟자(국채 가격 하락) 유럽권 은행들은 신용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ECB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이 시행되어 국채 위기 안정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이날 스페인 정부가 실시한 3개월과 6개월물 단기국채 입찰은 56억 유로 규모를 발행해 목표치를 웃돌았고 발행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 참고로 앞서 ECB가 실시한 가장 큰 규모의 단일 대출프로그램은 2009년 6월의 4,420억 유로였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시스템 안전망 공급에도 불구하고 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AAA 등급 국가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유럽 재정위기의 전개를 제도적 측면에서 정리하자면 대략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재정위기에 대한 유럽 좌파의 분석과 입장을 정리하고 소개한다. 유로존에 내재한 근본적 모순 유로화 도입의 편익과 위험 전후 유럽의 통화제도는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의 달러는 금의 가치에 고정되고 유럽 각국의 통화는 다시 달러를 중심으로 ±1%, 일시적으로는 ±2%의 변동을 허용하는 고정환율제로 운영되었다. 유럽 각국이 고정환율제를 선호했던 것은 1919-26년 변동환율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한 결과 무역수지 흑자를 위해 자국화폐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하며 벌어졌던 화폐전쟁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동시에 당시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의 성공을 위해서는 각국 농산물 가격의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독일의 경기과열과 그에 따른 독일정부당국의 통화환수 정책으로 인해 마르크화의 가치가 급등한 반면 프랑스 프랑화의 가치는 절하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유럽 공동체 차원의 통화협력의 틀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EC 집행위원회는 EMU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통화통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는데(베르너 보고서), 1971년 미국의 달러 불태환 선언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면서 베르너 보고서의 내용이 실제로 집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유럽 각국의 통화 통합을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1970년대 초 EEC 6개국과 노르웨이는 일종의 공동변동환율제(joint float)를 채택하게 된다(달러화에 대해선 변동폭의 제한 없으나, 유럽 각국 화폐간에는 고정환율제). 유럽의 공동통화를 향한 시도는 1979년 유럽통화제도(European Monetary System)의 도입으로 한 단계 진전을 맞게 된다. 유럽통화제도의 특징은 외환보유고로서의 역할을 하는 유럽통화단위(European Currency Unit, ECU)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의 체제와 차별화된다. 이러한 통화협력과 관세동맹의 출범으로 역내교역이 원칙적으로는 자유화되었으나, 규범과 제도적 차이로 인해 비관세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이로 인해 국가 간의 시장은 분절현장을 보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단일시장을 향한 논의가 지지를 얻으면서부터 단일통화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역시 진전을 보이게 된다. 1991년 합의된 마스트리히트 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은 유럽연합(EU)의 제도적 틀을 완성시키고 통화동맹의 완성을 위한 3단계 계획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는데, 여기에 명시된 EMU의 원칙은 1) 통화정책의 주체는 ECB이며, 2)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ECB는 물가안정을 우선 목표로 하고, 3) 재정준칙을 기반으로 회원국들간의 경제정책 수렴을 목표로 하고, 4) ECU를 단일통화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2년 영국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파운드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으로 작용했고, 영란은행의 환율 방어 시도는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 펀드의 파운드에 대한 대규모 투기 때문에 실패한다. 결국, 영국은 1992년 9월 17일 유럽 환율 조정 메커니즘에서 탈퇴한다. 이러한 유럽적 차원의 외환위기를 겪으며 통화동맹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절실해져 통화동맹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는 진전을 보이게 된다. 유로존의 모순: 불균형성 심화, 정책 제약 이러한 단일시장과 이를 위한 단일통화 사용을 통해 노릴 수 있는 명목상의 편익은 다음과 같다. 1) 교환비용의 감소: 환전비용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독일, 프랑스 같은 큰 국가에는 GDP의 0.1~0.2% 정도로 측정되며, 작은 국가들에서는 1%까지 나타난다. 2) 환율 불확실성 제거: 금융자본의 이동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명목환율은 경제력을 반영하는 실질환율로부터 괴리되는 것이 보통이며, 이러한 환위험 관리를 위한 정부나 개별 기업의 헤징은 부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 개별통화에 대한 대규모 환투기에 대한 직접 노출을 피할 수 있다. 3) 투명성 제고: 재화에 대한 직접적 가격비교가 가능해져 일물일가 법칙에 가까운 가격체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편익에 대비해 단일통화 사용이 갖는 비용은 다음과 같다. 1) 독자적 통화정책의 상실: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명목환율의 변동을 통해 대외불균형을 교정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한다. 2) 독자적 재정정책 제약: 통화정책 이외에도 재정정책의 독립성 또한 상당히 제한된다. 각 회원국들간의 정책 수렵을 요건으로 하는 통화동맹의 특성상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수준을 규정하는 1997년 성장-안정 협약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통화동맹 구축의 함의는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지불과 축장(보유통화)의 수단인 세계통화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회계단위를 창출하여 금융화 아래서 유럽 산업 및 금융자본의 이해에 복무한다. 중심부 국가의 자본으로서는 역내교역증가의 수혜를 입을 수 있고, 달러만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발권이익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며, 자국의 통화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주변부 소규모 국가로서는 상존하는 외환위기의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 2] 유럽 각국의 명목 단위 노동비용 유로화가 출범하고 유로존의 모든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ECB가 재정적자와 총 공공부채 비율에 대한 상한선을 설정하였으나, 이를 준수할 것인지는 개별국가에 맡겨두었다. 문제는 통화 및 재정 정책에 대한 제약이 설정된 아래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과 노동 비용 절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전체에서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두고 “바닥을 향한 경쟁”이 심화되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중심부 유럽과 주변부 유럽으로의 분화의 핵심에는 (노동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한) 독일의 경쟁력 향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의 근원은 전적으로 임금 제약을 통해 독일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표2).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과 같은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희생하여 획득된 경쟁력은 중심부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주변부 국가의 적자로 귀결되며,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주변부 국가의 부채는 증가한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2007년 금융위기 전까지는 거시경제적으로는 물가가 안정되고, 유럽 각국의 국채수익률이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표3) 유로화 도입을 통한 리스크가 감소 효과가 나타났고, 역내 교역이 크게 증가하여 독일이 세계 2위의 수출국으로 부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국가채무 역시 일본이나 미국의 그것을 하회하는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각국 정부는 재정지출을 증가시킬 수 밖에 없었고, 특히 이미 대외 불균형과 중심과의 격차가 확대되어가던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재정건전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게다가 그리스가 숨겨온 재정적자 있음을 인정하면서 남유럽 국가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유럽 각국과 대형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는 도미노현상이 벌어졌다. 2011년 12월 현재 유로존에서 최상위 트리플A(AAA)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등 6개국 뿐이다. EU는 재정위기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 시행을 요구했고, 이미 졸라맨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긴축’은 ‘99%’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겼으며, 국가시스템의 변화까지 초래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추가긴축 재정안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으로 정부가 무너지고 과도내각이 들어섰으며, 스페인에서는 실업률이 20%선(청년실업 약 45%)을 넘어서면서, 이른바 ‘분노한 사람들’의 대규모 시위가 수도 마드리드를 넘어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은 청년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게 됐고, 프랑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비유로존 국가인 영국에서도 은퇴연령과 연금전액수령 연령이 늦춰지면서, 유럽인들은 더 오래 일하고, 더 적은 연금과 복지혜택을 받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표 3] 독일 국채 기준 주요국채 스프레드 문제는 주변부 국가의 채무불이행은 곧바로 중심부 은행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또 다른 세계 경제 위기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부 국가의 채무위기 극복은 중심부 국가에게도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ECB는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주변부 국가 부채를 유통시장에서 구매하였고, 중심부 국가들은 공동 지급보증을 통해 위기국가들이 공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치의 결과 2010년 4/4분기와 2011년 1/4분기 그리스의 GDP 성장률 저하와 실업률 증가는 1930년대 대불황 시기 미국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이는 또다시 부채 부담을 증폭시키고 건전성 위험을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해법은 독일의 지배계급의 이해에는 정확히 부합한다. 은행위기를 회피함으로써 유로의 세계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시키고, 주변부 국가의 디폴트에 따른 비용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에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주변부 국가에는 긴축재정을 압박한다. 이러한 전략의 성공 가능성 역시 낮기는 하지만,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 자본주의의 패자로 등극하며, 제2세계 화폐에 대한 통제권을 쥐게 된다. 유로화 논쟁: 유로존을 유지해야 하는가 탈퇴(혹은 해체)해야 하는가 유럽의 좌파 사이에서 일단 광의의 합의가 있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1) 긴축재정 반대 2) 누진세/부유세 도입과 자본 통제 3) 은행의 국유화/사회와와 민주적 통제 4) 디폴트 후 민주적 통제 아래 부채 감사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디폴트의 방식과 디폴트 이후의 전략에 있어서는 여러 상이한 입장이 제출되고 있다. 일단 좌파적 입장에서 재정긴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해법인 것은 당연하다. 재정긴축을 통해 노릴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긴축재정을 통해 채무 이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얻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어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긴축은 오히려 경기침체와 조세감소를 수반하여 지급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하나의 효과는 인위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일으켜 임금을 억제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인데, 이는 위기 극복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로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로존 해체? 부채위기에 대한 유럽 좌파 진영의 대응을 구분하기 위해 먼저 유로존 유지와 해체라는 양 스펙트럼으로 거칠게 나누어 보자. 먼저 유로존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유럽좌파당과 유럽 전반에 걸쳐 널리 퍼져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그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유로존 유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입장은 유로화의 위기가 소위 “사회적” 유럽의 위기를 의미하고, 유로존의 해체는 반동적인 국민국가로의 퇴행이라는 점 때문에 유로존을 유지시키는 것이 노동권과 복지를 지키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흐름은 유로존이라는 구상 자체가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적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유로존 유지를 정치적 목표로서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미 유럽의 인민이 공동체 구조 안에 깊숙이 포섭되었기 때문에 이의 붕괴 대신 유럽을 근본적으로 (아래로부터) 재설계할 것을 주장한다. 전자의 입장을 유럽좌파당 내의 전반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입장은 제4인터내셔널의 후송(Michel Husson)이나 구 LCR의 사마리(Catherine Samary), 또 다른 IS계열 Socialist Resistance지의 오나란(Ozelam Onaran) 등이 대표한다. 후자의 입장에서는 ‘위기’의 원인을 유로에 내재된 모순이 아니라 “EU의 약한 고리에서 작동하는 투기적 금융”에서 찾는다. 이들의 주장은 대규모 디폴트 선언을 통해 범유럽적인 중심과 주변부 노동자들의 은행과 EU기구들에 대항한 투쟁을 촉발하고, 은행 사회화를 통해 ECB가 실질적으로 유럽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부채에 관한 입장에서도 전자는 “채권자 주도”의 부채탕감(헤어컷)을 주장하는데, 이는 채권자(중심부 은행, 중심부 국가)의 합의를 통한 부채 탕감이다. 이 경우 충분한 규모의 부채가 탕감될 수 있을 지가 미지수이다. 오나란 등은 “아래로부터의 디폴트”를 주장하는데 이는 “채무자 주도”의 일방적인 디폴트 선언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경우 디폴트 비용을 중심부 국가, 그 중에서도 중심부 국가의 은행들이 부담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은행이 여전히 국민국가적 경계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중심부 은행의 부담은 중심부 국가 정부와 나아가 그 국민들이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연 주변부 국가의 일방적인 디폴트 이후 유로존의 해체는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때 기존의 유럽공동체의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 지는 낙관할 수 없다. 유럽적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는 기술적 경로는 ECB의 대출(수량 완화)과 유로본드 발행으로 정리할 수 있다. 수량완화와 관련된 근본적인 논쟁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ECB의 주변부 국가의 부채 인수를 놓고 보자면, 1) ECB가 채무를 평가절하된 가격으로 인수하는 경우, 주변부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으며, 또 이를 액면가로 인수한다고 하면 그 위험부담은 ECB, 따라서 공적인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 밖에 없다. 유로본드의 경우에도 이러한 논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유로본드는 개별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재정통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유로본드가 발행되면 원칙적으로는 유럽 각국은 1차 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거나, 만기연장 차환(롤오버, 만기 때 현금지급 대신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만기를 연장하는 것)을 하지 못해 재정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 국채금리를 낮추어 재정조달 비용이 감소한다. 이 경우 해당 국가의 국채 스프레드(기준채권, 미연준국채나 독일 국채와 해당 국가의 국채와의 금리 차이, 스프레드가 높을수록 국채의 발행비용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다)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국가의 위험도를 반영하기 때문에 독일이 단독으로 국채를 발행할 경우에 비해서 높아 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를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며, 더욱이 유로화 사용국의 공공채무에 대해 EU의 재정지원을 금하고 있는 조약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나, 각국의 국민투표시 통과될 지는 미지수이다. 또 ECB의 부채 인수는 세계 화폐로서의 유로화의 위상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독일이나 프랑스 지배계급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유로존 유지를 전제로 한 입장과는 반대로 유럽 좌파당의 코스타스 라파비사스(Costas Lapavitsas)는 부채 위기에 대한 “급진적” 해결책으로 유럽 공동체의 해체를 주장한다. 유로화를 세계통화로 만들려는 시도는 중심부나 주변부 국가 노동자에게 모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며, 노동조건의 하락만을 불러오기 때문에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은 통화 공동체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을 투쟁을 통해 거부해야 할 뿐 아니라, 금융통제를 통해 은행을 국유화하고 채무 이행을 위한 세금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이 수출중심 성장전략을 버리고 내수 중심의 정책을 취할 필요가 있는데, 따라서 통화정책 결정권한을 ECB로부터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부 국가에서는 채무자 주도의 디폴트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때문에 금융시장 접근권 상실, 스프레드 급상승 등의 어려움을 겪겠지만, 노동자 주도의 부채감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부채를 분류하여 이를 처리하고, 디폴트 선언에 따른 필연적인 유로존 탈퇴 이후 통화제도의 변화에 따른 충격이 은행위기로 번져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은행 사회화와 민주적 통제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화폐 도입에 따른 평가절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나 이를 통해 생산부문이 활성화 되고 수출 증대를 도모할 수 있으며,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득하락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누진세/부유세 도입을 요구함으로써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평가절하를 통해 과연 급속한 경쟁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궁극적으로는 생산성에 종속되는 대외경쟁력을 평가절하만으로 역전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반론은 유로화 탈퇴에 이은 평가절하는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실질임금이 저하되는 효과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가절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의 평가절하에 따라 얻어지는 일시적인 경쟁우위는 뒤이은 중심부 국가 통화의 평가절하로 상쇄된다는 것이다. 또 유로존 탈퇴를 전후로 한 은행의 대량인출 사태(뱅크런)의 위험도 있다. 2001년 말을 전후해 발생한 아르헨티나 외환위기가 역사적 사례인데, 당시 아르헨티나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속에 미 달러화의 1:1 고정환율 제도의 붕괴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긴축을 단행하는 등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존 페소화 예금을 달러화 예금으로 바꾸려는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결국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유로존 탈퇴에 대한 이 같은 현실적인 비판 이외에 후송(Husson)은 유로화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진정한 쟁점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오나란 등과 같이 후송은 현재 유로화의 폐기를 주장하는 라파비사스와 사피르(Jacques Sapir) 등이 전제하고 있는 (자국통화로의 복귀에 이은) 평가절하를 통한 경쟁력 회복은 재분배, 임금인상, 사회시스템의 개조, 자본통제, 은행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며, 유로화를 탈퇴하는 동시에 투기의 위험에 노출되고, 유로화 탈퇴가 노동에 호의적인 측면으로의 역관계 전환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후송은 오히려 유로존 탈퇴는 은행과 사회의 민주적 통제 및 재구조화를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체로 적극적인 좌파의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량완화 정책 프랑스 공산당, 체코 사민당, 독일 좌파당 등이 소속된 유럽 좌파당의 의장단(presidium)은 2011년 11월 22일 공동성명을 통해 긴축재정정책 철회, 부채 탕감 및 남은 부분의 ECB로의 이전, ECB 또는 특별기구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주문하였다. 한편 2011년 12월 3년 만기 LTRO의 무제한 공급이 시작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쟁점이 부각되었다. 인플레이션은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지만, 미국 정부의 순 부채는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인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가의 조세수입은 증가하며, 또 기존 채권의 가치는 큰 폭으로 절하되어 국가부채의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재정긴축 정책 등의 시행을 조건으로 IMF, EU, ECB가 그리스 등에 제공한 구제금융에서 보여지듯 유동성 공급을 요구하는 것 자체는 결코 민중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또 수량완화에 이은 인플레이션은 거의 전적으로 임금에 수입을 의존하는 대다수 민중들의 실질 임금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기의 해법이 가지는 딜레마 2011년 한 해 동안 EU 회원국들 중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곳은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핀란드, 덴마크, 슬로비니아 등 6개국이다. 추가 긴축재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했다가 물러난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정권과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까지 합치면 8개국이다. 과도정부가 들어선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조기총선 결과 야당이 승리할 경우, 소위 PIIGS에서 모두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이미 민중들은 기존의 세력과 체제가 대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극우정단인 대중정교회(LAOS)가 그리스 내각 구성에 참여한 것을 보면, 이러한 민중들의 움직임이 유럽적 차원의 연대가 아니라 반동적 민족주의, 퇴행적 고립주의로 귀결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겠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입장들이 진정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자본통제, 재분배, 산업정책, 국가 재구조화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사회적 프로그램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거나, 위기 극복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시행을 위해서는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 민중들의 연대, 현재의 계급 역관계를 뒤바꿀 아래로부터의 흐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유럽에서 좌파들의 위기 해법에 대한 논의만이 아니라, 정치적 운동의 동향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북한 사회는 변화할 것인가? 혹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권력승계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의 권력승계라고 말한다. 후계자 김정은이 공식적인 승계과정에 돌입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고(후계자 수업은 길게 잡아도 3년 정도로 볼 수 있다), 권력의 중추로 떠오른 김정은-장성택-김경희는 결코 이상적인 ‘드림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북한은 어떤 변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그 전망은 여전히 추측에 지나지 않겠지만, 북한의 객관적 현실을 파악하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에서 후계자의 현재 지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내 직함은 당 총비서, 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장 겸 정치국원, 당 비서국 내 조직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 부장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일 위원장은 당의 모든 요직을 겸직하였다. 그에 따라 당의 의사결정 김정일 위원장에게 고도로 집중되었고, 당 규약을 따르지 않는 편의적이고 변칙적인 당 운영이 일상화되었다. [%=사진1%] 조선노동당 중앙조직의 조직구조는 상식적으로 볼 때도 매우 변칙적이다.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중앙위원회 산하 비서국 총비서가 당수 역할을 한다.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상은 중앙위원회와 동급이다. (중앙위원회 산하의 군사위원회가 당 대회 승인 없이 중앙군사위원회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선군정치’가 현실 권력구조에 반영된 형태다.) 당 구조가 변칙적이기 때문에 당 내 권한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큰 게 사실이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모든 핵심 요직을 장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2010년 개최된 당 대표자회의에서는 당 규약을 개정해서 총비서가 중앙군사위원장을 겸직하도록 규정해서 권한 충돌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80년 이후로 30년 간 당 대회가 개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당의 의사결정을 독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후계자 김정은이 당에서 지도권을 확립한다는 것은 당을 정상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조직지도부 활동을 통해 유일지도체제를 수립하면서 당권을 장악했던 과정에 비하면, 김정은은 당을 사실상 ‘재건’해야 한다는 더욱 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김정은이 현재 당 내에서 공식적으로 맡은 직함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뿐이다. (조직지도부 역할을 수행한다는 보도도 있기는 하다.) 따라서 김정은이 당 내에서 맡은 역할이나 지금까지 수행한 임무도 아직도 지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김정은이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당에서 맡은 모든 역할을 빠른 시일 내에 실질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권력 배분, 곧 ‘집단지도체제’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의 운영이 재활성화되고 공정한 규칙이 수립되어야 하며, 이는 당의 실질적 체질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지는 현재로서 예상하기 어렵다. 국가 체계 내에서 후계자의 현재 지위 김정은은 국가 체계 내에서는 어떤 공식 직함도 맡지 않고 있다. (국방위원회 지도원으로 활동한다는 보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국방위원회 위원은 아니다.) 올해 2011년 4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국방위원회의 공식직함(부위원장)을 맡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지도 아직 불확실하다. [%=사진2%] [%=박스1%] 북한 헌법 상 최고인민회의가 최고주권기관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최고영도자’인 국방위원장의 선출권과 소환권을 지닌다. (국방위원장의 임기는 5년이고 연임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특정인이 국방위원장 직을 언제까지라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은 국방위원장과 그를 보좌하는 국방위원회다. 이는 김일석 주석 생존 당시의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국방위원장은 국가의 전반 사업을 지도하며, 조약의 비준, 폐기권을 행사하며, 국가의 비상사태, 전시상태, 동원령을 선포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생존 시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위는 국가주석의 지도를 받는 중앙인민위원회 산하의 위원회 중 하나였다. 김정일은 1990년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1993년 위원장에 취임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국가주석은 공석이 되었고, 국방위원장이 사실상 국가주석에 버금가는 역할을 하다가 2009년에 와서야 헌법을 개정해서 국방위원장의 역할과 임무를 명문화했다. 과거 권력승계 과정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조차도 국가주석직을 곧바로 승계하지 못했고,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및 상임위원장)와 내각(및 총리)의 권한이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2009년 헌법개정을 통해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권한 중 일부가 국방위원장에게 이관되었다.) 따라서 현재 후계자 김정은이 국방위원장 직을 곧바로 승계할지는 불확실하다. 김정은이 어떤 경로를 통해 국가체계 내에서 성장할지 단언할 수 없으나 상당 기간 동안 권력의 거대한 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아마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과정에서의 권한 분산보다 더욱 확대된 형태의 권한 분산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 향후 북한 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일 것이다. 북한 경제의 전반적인 대외의존도를 고려할 때 중국과 미국이 새로운 북한 체제에 향후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는 북한의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태도는 ‘주시하고,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그 출발점은 데프콘, 즉 전투준비태세의 격상이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항시적으로 테프콘 4가 발령되어 있는데 이는 ‘적과 대립하지만 군사적 행동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로 데프콘 3으로 격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데프콘 3이 발령된다면 작전권이 한국군에서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간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데프콘 격상과 같은 방식으로 즉각 북한의 탈안정화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미국은 누구를 접촉선으로 해야 할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을 중심축에 두고 접촉한다면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김정은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고, 역으로 다른 자를 중심축에 둔다면 김정은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누가 자신의 대화 파트너로 적절한지 정보를 획득해야 하며, 나아가 그 파트너의 기본 성향이 어떤지를 파악해야 한다. 미국은 바로 최근까지 식량지원과 핵 협상 재개 문제를 두고 북한과 접촉을 했지만, 이제 새로운 정권을 전반적으로 다시 파악하기 위한 시간을 설정할 것이다. 따라서 북미 대화는 얼마간 접촉이 유지되더라도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국이 권력승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은 미국의 전략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반확산을 핵심적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나쁜 행위’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한 적이 없다. 미국은 시진핑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차기 지도부가 미국과 함께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기를 원하지만 중국이 종래의 방침을 순식간에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이 핵보유 수준을 높이면서 중국(및 러시아)과 경제관계를 발전시킨다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압박하는 지렛대를 잃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 가능성은? 현재 북한 조선노동당의 상황을 볼 때 과거와 같은 유일지도체제가 실질적으로 수립되고 기능하리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승계 과정이 잠재적인 경쟁 집단, 개인을 제거하고 ‘유일’ 지도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이었다면, 현재는 후계자 홀로 당 구조와 운영을 정상화할 수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체계 내에서도 후계자가 국방위원장의 모든 권한을 곧바로 승계 받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 하에서도 최고인민회의와 내각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분점이 불가피했다면, 현재 조건에서는 그러한 필요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과거 1953년 스탈린의 사망 후 그와 같은 카리스마적 권력자를 대체하는 방법은 집단지도체제였다. 즉 권력분점의 제도화였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도 권력쟁투는 늘 발생할 수 있다. (스탈린 사망 직후 가장 유력한 권력자였던 KGB 베리야가 전격 체포되었고, 나머지 스탈린 측근들이 권력 배분을 통해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권력 쟁투가 발생했다. 흐루시초프의 개혁 노선의 실패 후 또 다시 ‘궁정쿠데타’ 형식으로 브레즈네프가 권력을 장악했다.) 따라서 당분간은 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급격한 정치적·사회적 변동을 막기 위한 안정화를 추구할 것이고 권력배분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이는 순전한 권력 다툼이라기보다는 정책 갈등을 계기로 비화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권력분점 속에서 정치적, 정책적 갈등의 표면화는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정치엘리트들은 실질적 의미에서 대중동원을 철저히 배제하는 통치방식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엘리트 간 권력쟁투가 곧 체제 위기로 치닫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 북한에서 수령제가 확립되는 과정을 보면 수령의 직접적인 현지 지도를 매개로 당과 기업소에서 중간관리자의 관료주의,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일종의 ‘대중동원’이 이뤄졌다. 과거 중국에서는 모택동과 유소기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건설 노선의 대립이 문화혁명과 대중투쟁을 매개로 내전의 위기로까지 발전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당 내부의 문제를 진정한 의미의 대중동원, 대중운동의 형태로 제기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북한의 권력승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 지도부 내부의 첨예한 갈등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
이번 이슈페이퍼는 한미FTA 이후 물 민영화 전망을 담았습니다. 한 줄로 요약한다면 상수도는 사실상 유보 목록이 아니고, 개방 이후 한국에서도 익숙한 기업인 맥쿼리 , 베올리아 등이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문서를 참조바랍니다. --------------------요약 --------------------------- 한미FTA로 한국의 상수도 부분은 사실상 개방. 음용수 처리 및 공급 서비스에 대한 유보조항은 민간 공급이 허용되는 부분에서 적용되지 않는데, 이미 한국 수도법에서는 광범위한 지방상수도 민간 위탁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 이로 인해 민간위탁 부분에서 민간 기업과 같은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나 환경관리공단은 ISD와 내국민대우 의무에 따라 미국 물 기업에 의해 제소 당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나마 민간위탁 피해를 줄여보려 만든 환경부의 여러 규제들도 최소시장규제 의무에 따라 무력화될 가능성이 큼. 미국에는 세계적 물기업 대부분이 법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미FTA 발표와 함께 한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며,이로 인해 한국 지방상수도 위탁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 될 것. 베올리아와 맥쿼리(템즈워터)가 한국 시장에 가장 빨리 진출할 것으로 보이며, 이미 미국에서도 민간위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한국에서도 많은 분쟁이 발생할 것으로 보임. 물 민영화의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인 장기 민간위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미FTA 폐기와 함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지방상수도 통합 위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함.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새로운 조직화가 필요하다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죽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한 달 전 광주에서 베트남 노동자 2명이 경찰과 출입국의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죽었는데, 11월 8일 출입국의 단속 과정에서 중국 이주노동자 H(남, 44세)씨가 사망했다. 출입국 단속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1%]H씨의 죽음은 특별히 비극적이다. 지난 11월 8일 H씨와 다른 중국노동자 3명이 김포에서 출입국 단속반원의 불심검문에 걸려 연행되었다. H씨는 200m가량을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수갑 채운 상태에서 단속차량에 실렸는데 타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있던 이주노동자가 단속반 직원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H씨를 차량에서 내려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은 증상이 나타난 지 1시간~1시간 반 후였다. 반성할 줄 모르는 출입국 부검결과 H씨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H씨가 심장질환이 있었으며, 그 상태에서 수백 미터를 달렸으면 심근경색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즉 단속으로 인해 도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심근경색이 와서 사망한 것이다. 아마도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H씨를 병원에 데려갔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H씨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국은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이 범죄자 잡다가 범죄자가 도망가다 사망하면 경찰이 사과하냐’는 식으로 책임과 사건의 비극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출입국의 잔인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출입국의 비인권적인 태도만이 H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경시는 출입국관리제도와 외국인인력관리제도에 구조화되어 있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본질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한국의 전체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근본적으로 출신국가와 계급 차이의 차별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온 동포와 거액을 투자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 장기 체류할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 제3세계에서 이주하고자 하는 자를 ‘외국인근로자’고 규정해 체류기간과 국내 활동범위를 엄격히 제한한다. ‘외국인’이라는 지칭은 민족국가의 외각에 있다는 뜻으로, 국가가 필요에 따라 관리하고 배제할 수 있는 존재다. ‘근로자’는 노동력 필요에 따라 국경 안쪽으로 도입된 자로, 고용주의 편의에 맞게 제공된 인력인 것이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는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을 정부가 선정한 산업과 사업장에서만 일하게 하고, 고용주에 종속시켜서 속박된 노동으로 만든다. 법제도는 이주노동자를 권리나 자유의 주체 아니라 상품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전제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용허가제 개정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10월에 발의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한나라당 개정안)에도 잘 드러난다. 법안은 △기업에는 숙련인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주노동자로부터 ‘성실근로’를 유도하면서도, △‘정주화 방지’와 ‘단기순환 원칙 견지’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고용주가 신청할 경우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은 노동자에 한해 추가 체류기간을 부여한다. 추가 체류 자격을 얻으려면 여러 요건이 필요한데, 핵심은 현재 허용된 3번의 사업장 번경을 포기하는 것이다. 개정안의 추가 체류 기회는 기존 4년 10개월의 체류 기간 중에 사업장 변경(폐업, 휴업이나 비슷한 불가피한 상황은 제외)을 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즉, 이미 현행법 하에서 엄격히 제한된 사업장 선택의 권리를 완전히 포기한 이주노동자들에게만 추가체류가 허용된다. 사업장을 이동하지 않는 것을 ‘성실근로’와 연결시키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보다 심각하게 종속시키고 온갖 학대와 착취에 노출시킬 것이다. 개정안은 또한 이주노동자가 기존 체류기간이 끝나면 추가체류기간을 시작하기 전에 1개월 동안 출국하도록 규정한다. 이 규정은 ‘정주화 방지’를 위한 수단이다. 현재 한국 국적법은 합법적으로 5년 연속 체류한 자에게 귀화할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일부 이주노동자는 최대 9년 8개월 동안 체류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출국 요건을 전제로 하여 합법적정착을 방지한다. 사업장 변경 포기와 1개월 출국이라는 두 요건은 이주노동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고용주가 보다 손쉽게 다룰 수 인력으로서의 취급을 영속시킨다. 개정안의 모순 개정안은 추가 체류기간을 규정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이주노종자의 장기체류 필요성과 필연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점점 긴 체류기간을 허용하는 것은 출입국 정책의 최근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체류기간은 벌써 3년에서 4년 10개월로 연장되었다. 올해 상반기에 시행된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은 일부 미등록 동포에게 F-4 체류자격(영주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주노동자 체류가 장기화될수록 취업국 사회로의 통합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많은 국가는 장기 체류한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유엔이주노동자권리협약은 장기 이주로 인해 서로 떨어진 이주민 가족의 결합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취업국가에 요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개정안은 이주민의 장기 체류의 필연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주노동자를 원칙적으로 단기방문객으로 취급해 영주권 획득의 기회나 가족결합 등의 권리 보장은 아예 언급조차 않는다. 이 모순은 (제3세계에서 온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는 이 법안의 인종주의적 본질을 드러낸다. 단속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기능 단속은 개정안이 영속시키는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주축이다. 물질적으로 쉽게 관리되지 않은 노동자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정부가 지정한 사업장 외에도 취업하고 정부가 정한 체류 기간을 초과해 한국사회에 정착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차별에 기반 한 출입국․외국인력 제도 전반을 위협한다. 그래서 정부가 단속을 통해서 내보내려고 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단속은 국가가 외국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국가가 외국인들을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배제하는 권리를 강조함으로써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의 규제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속은 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력 제도를 유지하는 데에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필수적이다. 그리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가 전제로 한 차별은 인간 아닌 관리할 노동력과 관리체계 바깥에 있을 때 제거하면 되는 존재, 단속으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단속으로 인한 또 다른 비극적인 죽음을 방지하려면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조직화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화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단속반대 투쟁, 개정안 반대 투쟁도 시급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내고 운동을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단속을 막을 힘, 제도 개선을 쟁취할 힘을 키울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고용허가제 개정안에 당연히 관심이 많고 의견도 많다. 많은 이들은 추가체류 기회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질 것이다. 개정안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이주노동자 대중들과의 토론이 중요하다. 개정안 발의를 많은 이주노동자를 접촉하고 출입국·외국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할 기회로 삼자.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고 그 요구를 바탕으로 제도개선투쟁을 점차 조직하는 것은 현재 시기에 제일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활동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ISD 재협상 제안은 국회 강행처리를 위한 기만 술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15일 “일단 한미FTA를 비준하면, 3개월 내에 투자자국가제소조항(ISD) 재협상을 미국에 제안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선 비준 후 ISD 재협상’ 안이다. 이에 미국 백악관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1월 16일에 이러한 이명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미국 측의 제안은 한미 FTA 국회비준 강행처리를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위 세척을 약속해 줄 테니 독약을 먼저 먹으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미국 측의 답변도 비준 후에 한국 측에서 ISD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 협의안을 제기하면 ‘협의해 볼 수 있다’는 답변에 불과하다. 백악관과 USTR은 ISD를 재협상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없다. FTA 본항에 포함된 ISD를 수정,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은 미국 의회가 가진다.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측이 말하는 ‘재협상’이란 단지 한미 FTA 본안에 이미 적혀있는 ‘비준 후 협의’에 불과한 것이다. 이 협의는 말 그대로 비준이 결정된 이후에 실제 FTA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한번 만나 협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통령 제안의 속뜻은, 비준안이 국회에서 어떻게든 처리만 되면 그 이후 미국 측에 ISD 재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건넨 뒤 몇 마디 의견을 나누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재협상 결과 별 내용 없는 보완시행책이나 발표하고 어물쩡 넘어가려는 기만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제안은 아무런 내용도 실효성도 없는 제안이다. 단지 목적은 하나다. 강행처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민주당은 오늘 의원총회에서 이명박대통령의 이 제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동안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애초에 한미 FTA를 체결한 책임은 민주당에게 있다. 한미 FTA를 날치기하려는 한나라당을 방조한다면 한나라당에 앞서 온민중의 집중 규탄대상이 될 것이다. 더욱이 한미 FTA는 ISD 조항 말고도 독소조항이 넘쳐난다.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미래 최혜국 대우’, ‘역진방지 조항(Rachet)’, ‘비위반 제소’,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제' 등의 독소조항은 ISD와 유사하게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소권한을 제공한다. 이들 조항을 남겨둔 채 ISD 조항만을 손보는 것만으로는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해결했다고 볼 수 없다. - 한미 FTA 선 비준 후 ISD 재협상은 기만이다. 한미FTA 국회비준 강행 음모 즉각 중단하라! - ISD 이외 독소조항 넘쳐나는 한미FTA 비준안 즉각 폐기하라!! 2011년 11월 16일 사회진보연대
차례 요약 1 1장 서문 4 2장 미국서비스노조(SEIU)에 대한 기본 이해 6 1. SEIU 소개 6 2. 한-미 노동법제 비교 9 3. 미국의 노동조합 체계 13 3장 최근 조직화 사례 15 1. 마이애미대학교(UM) 청소노동자, 캠퍼스관리 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15 2. 재가요양보호사조직화활동(SEIU 1199P) 23 3. 공항 조직화 캠페인 31 LA공항 조직화 31 덴버국제공항조직화 34 4. SEIU 32BJ 지부의 뉴저지 건물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37 5. 병원 조직화 사례 45 4장 한/미 조직화 프로그램 비교 51 1. 한/미 대학 청소노동자 전략조직화 비교 51 2. 미국 재가요양보호사와 병원 간병인 조직화 비교 56 3. 한/미 공항 전략조직화 비교 62 5장 결론 : 시사점과 제언 66 <자료> 추가 이해를 위한 참고 자료들 71 <부록 1> 미국서비스노조 활동가 인터뷰 자료 73 1. 마이애미대학 서비스노동자 조직화 담당자 인터뷰 74 2. Local 1199PA 재가요양보호노동자 조직화 담당자 인터뷰 83 3. SEIU 105 지부 덴버 국제공항 조직화 캠페인 담당자 인터뷰 94 4. SEIU 32BJ 지부 뉴저지 상용빌딩 청소노동자 조직화 캠페인 담당자 인터뷰 103 5. SEIU 병원 조직화 전략 담당자 인터뷰 114 <부록 2> 미국서비스노조 교육 자료 124 1. SEIU의 상근자 및 노동자 교육 소개 125 2. 실천단/상근자 훈련 프로그램(발췌) 129 3. 국장급 상근자 능력계발 교육 진행자 가이드 131 4. 리더쉽 아카데미 136 5. 노동자 동원에 관한 82 지부 상근자 및 노동자 실천단 교육자료 149
[발간사] 우리는 왜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민중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1월 초 G20 정상회의에 한미 FTA 국회 비준 결과를 들고 가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애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날치기로라도 올해 안에 한미 FTA를 비준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갈팡질팡하는 행태를 볼 때, 민중들의 투쟁이 확대되지 않는 한 한미 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 외에도 이미 44개국과 FTA를 체결, 발효한 상태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FTA 대상국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FTA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일수록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무역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 재벌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정부와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수출 증대, 투자 확대, 통상제도 선진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양국 간 협상에서 이익균형만 잘 맞추면 FTA는 쌍방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므로 대책만 잘 마련하면 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FTA의 핵심적 문제점을 감춥니다. FTA는 단순히 국가 간 통상전략이나 부문간 이해득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시작해서 한미 FTA로 완성된 미국식 FTA는 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의 자유화와 서비스·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포괄합니다(질문1). 이에 따라 자본에게는 국경을 오가며 막대한 이윤을 누릴 자유가 보장되지만, 노동자에게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굴레가 강요됩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자본도피와 국부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FTA가 체결되면 수출경쟁력을 갖춘 재벌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만 경제 전체적인 성장과 고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질문2, 질문3). 따라서 FTA가 1997년 이후 장기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습니다(질문5). 한미 FTA는 비단 경제적 측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특히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질문4). 또 한미 FTA에 포함된 각종 투자 자유화 조치들은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질문6). 이와 관련하여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에서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독점권이 대폭 강화되고 의료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질문8).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한EU FTA도 한미 FTA 못지 않은 파괴적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질문9).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당면한 한미 FTA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구상을 저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FTA에 대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별 FTA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질문10, 질문7). 이 소책자는 이상 10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지난 5월 발간된 초판에서 현재 상황을 반영하여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고, 또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부록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각각의 질문 당 4-5쪽 분량으로 짧게 쓰려고 노력했고 사이사이 사진도 넣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소책자가 한미 FTA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운동의 물결을 더욱 크게 일으키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목차> 1. 미국식 자유무역협정 모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자유무역이 세계를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사실인가요? 3.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왜 한미 FTA를 추진했을까요? 4. 미국 오바마 정부는 왜 한미 FTA를 다시 추진할까요? 5. FTA를 통하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가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무엇일까요? 6. 한미 FTA는 주권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나요? 7. 한미 FTA 노동조항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미 노동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나요? 8. 한미 FTA는 한국의 보건의료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9. 한EU FTA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10. 이명박 정부의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맞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부록]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 독소조항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제국주의 개입의 모순 10월 20일 카다피가 사망했다. 리비아 반란군이 10월 4일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선언한 지 두 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다피 일행은 시르테의 함락 직전인 10월 20일 오전 8시에 차량 100여 대에 나눠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나토는 무인 폭격기와 프랑스 미라주 2000 전투기를 출동시켰고, 폭격으로 15대가량이 불타고 50여 명이 사망했다. 카다피는 고속도로 밑에 있는 콘크리트 배수관에 몸을 숨겼으나 결국 반란군에 발각되었고, 반란군에 의해 호송되는 과정에서 결국 사망했다. (카다피의 최종사인이 무엇이냐는 것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우발적으로 사살되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카다피가 최종 사망한 것은 10월 20일이지만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된 8월 23일 이후 카다피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 지난 8월 20일 아침부터 수도 트리폴리 내에서 민중봉기가 시작되었고 다음날인 8월 21일 정오경에 이르러 트리폴리 여러 구역에서 봉기세력이 정부 보안기구를 격퇴하였다. 8월 21일 저녁 트리폴리 외부에 있던 반란군 중 첫 번째 부대가 트리폴리에 도착했고 남아 있는 카다피 군 거점을 공격했다. 트리폴리는 내부의 민중봉기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리폴리의 국가과도위원회(NTC) 성원은 나토의 ‘인어작전’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토는 사전에 계획된 40개 목표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지 않았고, 외부 전사는 실제로 봉기계획 시간보다 48시간 후에야 트리폴리에 도착했으며 아무런 전투도 수행하지 않고 녹색광장으로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리비아 반란군은 8월 23일 카다피 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트리폴리의 핵심 거점인 알 아지지야 요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신중한 트리폴리 주민은 처음 일주일간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10여 일이 지난 후부터는 정부가 사라진 트리폴리에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트리폴리의 지구별로 주민들이 원로, 반란을 계획했던 지하지도부, 종교지도자와 함께 지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공서비스를 재개하고 사회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카다피가 선언했지만 진정으로 실현된 적이 없는 ‘자마히리야’(대중의 공동체), 즉 분권적 기층 네트워크이자 비당파적 인민위원회가 카다피가 사라진 바로 그곳에서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지구위원회는 NTC의 이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 NTC와 직접 접촉하는 것은 아니다.) 10월 23일 지브릴 국가과도위원회 위원장은 벵가지 키쉬광장에서 열린 해방 선포식에서 카다피가 없는 리비아의 새 시대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리비아 봉기는 이제 해피엔딩만을 남겨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이고, 누가 그것을 주도할 것이냐는 문제로 진입하는 새로운 국면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과도위원회의 안정화 계획과 헌법 초안 국가과도위원회(지브릴 정부)가 설계한 ‘안정화 계획’은 그들이 구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단호한 의도를 보여준다. 70페이지에 달하는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에서 폴 브레머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행한 것과 정반대의 방책을 제시한다. 안정화 계획은 ‘이라크의 교훈과 모범사례를 통합한다’고 선언하면서, 브레머의 바트당 축출 구상을 국가장치를 공백으로 만들고 이라크 중산층이 미국의 점령에 등을 돌리게 한 원인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안정화 계획은 과거 정권과 관계를 맺은 모든 인물을 배제하거나 그들을 조사하는 것에 반대하며, 카다피 정권 인사를 향후 정치계획에 포괄하는 구상을 지지한다. 구정권 인사들을 사회에 통합하고 그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곧바로 무기를 들 수도 있다는 것이 논거가 된다. 과거 정부와 보안기구에서 고위직을 차지했던 부족이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리비아 헌법선언도 발표되었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수개월 전부터 헌법선언을 작성했다. 리비아 헌법선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식 헌법 초안이 제헌의회 수립 후 2개월 내에 제출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즉 국가과도위원회의 구상에 따르면 자신들의 임무는 제헌의회 선거로 마무리되며, 제헌의회 구성 후 1개월 내에 총리를 지명하고 2개월 내에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해야 한다. 카다피 사망 후 10월 23일 국가과도위원회는 해방 선포를 계기로 본거지를 벵가지에서 수도 트리폴리로 옮기고 30일 이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이어 8개월 내에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카다피 독재를 고려하면, 리비아 사회에 산적한 여러 근본적 문제를 토론하기에 2개월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다. 게다가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한 혁명세력이 이미 발표된 헌법선언을 미리 검토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리비아 사회가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헌법과 제도를 창출하기 위한 토론에 모든 리비아인이 참여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무시된다면 새로운 헌법과 정부는 정통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헌법선언에서 국가과도위원회는 혁명으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끌어오지만, 국가과도위원회 인사들과 전선에서 희생한 혁명전사의 관계가 희박하므로 그러한 규정은 곧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가과도위원회 구성원 자격에 관한 정의도 불충분하다. 구성원은 원칙적으로 지역 위원회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지만 헌법선언에서는 선출 메커니즘이 정의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비민주적 수단에 의해 즉 스스로 자신을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브릴 총리가 30일 내에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불씨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사라진 후에도 구질서가 회복된다면 이는 반란군의 희망을 위협할 것이다. 반란군은 여전히 카다피가 소유했던 부동산과 트리폴리의 항구, 중앙은행을 손에 쥐고 있으며 방어군이란 이름으로 주요 시설에 주둔해 있다. 해외 추방을 당했다가 돌아온 이들과 이슬람주의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 반란군, 해외 망명객, 이슬람주의자 모두 구 국가제도를 완전히 갈아엎고 처음부터 새롭게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넘쳐나고 있는 무기와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강력한 열정이 결합하면 어떤 심각한 내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가 반란군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채 그들의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분리주의적 경향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스트라 지휘부는 트리폴리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라는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나푸사 산맥지역의 베르베르인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미스트라 반란군과 달리 트리폴리 점령 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전투에서 획득한 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리비아 민족통합과 부족주의 최악의 경우 리비아가 소말리아 유형으로 분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논자는 리비아가 진정으로 민족적 통합을 경험하지 못했고 언제나 지역주의부족주의가 강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논자는 리비아 봉기가 부족 간 충돌이 아니라 민족 혁명이라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부정한다. 물론 카다피 정권과 국가과도위원회 양자 모두 전쟁 기간 동안 부족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고심했다. 카다피는 트리폴리가 포위되기 전에 부족 대표 회의를 조직하고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냈으며, 그의 연설은 항상 리비아 부족들을 언급했다. 국가과도위원회도 카다피 제거를 요구하는 부족 지도자들의 선언을 장려했다. 하지만 리비아 봉기가 민족혁명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는 리비아 부족주의 문제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리비아에서 부족 관계는 견고한 동맹분할 체계가 아니며 매우 신축적인 존재다. 어떤 리비아인은 부족 정체성을 중시하지만 다수는 과거의 유물로 간주하며,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래 ‘소속된’ 부족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리비아에 300개 부족이 있다지만 다수는 단일 지역에 위치한 균질적 집단이 아니며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부족 지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네트워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리비아인은 부족관계와 민족적 정체성 사이의 충돌을 경험하지 않았다. 나아가 리비아 부족 문제는 카다피의 정치 프로젝트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카다피는 40년 동안 진정한 시민사회의 형성을 가로막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족관계에 의존해서 일상을 영위해야 했다. 또한 민족적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한 카다피의 시도는 항상 부족 간 ‘분할과 지배’라는 형태를 띠었다. 카다피는 교묘하게 부족 간 불협화음을 조장하면서 자신이 떠나면 리비아가 부족들에 따라 분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 리비아인은 리비아 민족이라는 관념으로 투쟁을 전개했고, 현재의 무장충돌이 종식된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민족혁명을 지지하는 논자가 제시하는 결론은 부족 파벌이 부족적 공감대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려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리비아 혁명이 지방주의부족주의적 지향의 분리주의에 추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반란군 세력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과도정부위원회의 안정화 계획이나 헌법제정 시도가 반란군 세력을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리비아 혁명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보호책임의 성공사례인가, 제국주의의 납치인가 리비아 혁명은 국제정치에도 중대한 쟁점을 던진다.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나토의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논자는 리비아 혁명의 결과가 곧 유엔이 자임한 ‘보호책임’의 성공적 사례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닉 휘트니 전 유럽방위청 청장은 “결정적 개입이 전장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흔들 수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은 후폭풍을 피하면서 그런 개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것을 비판하는 논자는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hijacking)했다고 주장한다. 보호책임은 지금도 논란을 지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쟁점이기 때문에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호책임은 아직 조약이나 국제관습법과 같은 경성법(hard law)이 아니고, 2005년 유엔총회결의 형식으로 채택된 연성법(즉 응고과정에 있는 법)이기 때문에 실제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한 보호책임의 일반적 해석과 구체적인 실행방식 문제는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엔의 리비아 결의안과 나토의 군사행동은 보호책임의 실행방식에 관한 국제관행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에 던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 서방 국가의 군사개입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논자도 비서구 세계의 반권위주의 운동과 국제 정부의 행동의 시너지가 나토의 성공적인 리비아 개입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정권교체를 추진할 당시에는 이라크 민주화운동을 군사개입으로 대체함으로써 시너지를 중단시켰다면 리비아의 사례에서는 나토와 반란세력 간 동맹이 훨씬 더 개방적이었고 그로 인해 시너지가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리비아 반권위주의 운동도 성공을 거두고, 서구 세계도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한 더욱 효과적인 방식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구 제국주의가 리비아 민중혁명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논자는 서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리비아에서의 이권에 주목한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국가과도위원회를 지원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9월 15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카다피 집권 시절부터 서구의 석유회사는 이미 리비아 석유를 장악했지만 언제 카다피가 인도와 중국 같은 경쟁자들과 흥정을 벌일지 불안을 느꼈다. 프랑스 기업은 리비아의 막대한 수자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프리카군사령부(AFRICOM) 기지를 설치할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지금도 AFRICOM 기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국가과도위원회가 구질서를 보호한다는 분명한 방침을 세우고 있는 현실은 제국주의가 혁명을 납치하고자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보호책임론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의 군사적 일방주의와 유엔의 보호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분명하다. 유엔의 보호책임 적용 여부는 오직 서방 강대국만 결정할 수 있다. (유엔 안보이사회는 보호책임에 관한 제재를 가할 재량을 갖지만 반드시 모든 경우에 제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유엔 안보이사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또한 보호책임의 명문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적 일방주의를 제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엔이 미국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강대국이 상황에 따라 군사적 일방주의를 가동할 수도 있고, 보호책임을 활용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나토 공습, ‘인도적’ 전쟁인가, ‘위험전가’ 전쟁인가 또한 나토의 자화자찬은 초정밀 인도적(자비로운) 전쟁이라는 환상을 유포할 위험이 있다.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을 지지하는 논자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공중폭격은 서방국가 군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상의 민간인에게 전가하는 ‘위험전가 전쟁’ 방식이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 벌어진 사례를 보더라도, 벵가지 주변 반란군이 장악한 지역에 추락한 2명의 나토군 비행사를 구출하기 위해 나토는 500파운드 폭탄 두 발을 투하한 후 헬리콥터를 착륙시켰고, 이 과정에서 6명의 리비아 주민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나토의 본능이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군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4월 7일 아즈다비야에서도 나토의 공습으로 인해 13명의 반란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나토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21세기 판본의 미국 주도 군사모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001년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공군과 해군 능력을 극대화하고 지상군 활용을 최소화하는 전쟁, 즉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녔다. 하이테크 전쟁이라는 전망은 911 사건, 이라크전쟁을 거치며 더욱 현실화되었다. 이에 따라 두 가지 경향이 강화되었다. 첫째, 특수부대가 강조되었다. 미국 합동특수전사령부 인원은 911 이후 10배 증가했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고 그 비밀성은 CIA를 능가한다. 둘째 다양한 유형의 무인항공시스템(UAS)이 널리 활용되었다. 지금도 보잉사는 스텔스 무인전투기 팬텀 레이와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정찰기 팬텀 아이를 개발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토는 리비아 전쟁을 최근 성공 사례로 추켜세울 것이다. 6개월 이상 계속된 공습, 무인항공기의 지속적 활용, 광범위한 특수부대 작전 등. 이에 따라 공습으로 인해 수백 명의 군인 또는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거의 무시된다. 리비아에서 얻은 결과는 전쟁을 수행하는 효과적이고 수지가 맞는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20일 카다피 사망에 관한 특별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단 한 명의 지상군도 투입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리비아 혁명의 미래 카다피가 수도 트리폴리에서 도피한 후 리비아 민중은 지역별로 주민위원회를 결성하여 사회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위원회나 반란군을 실질적으로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국가과도위원회가 제시하는 안정화계획과 헌법제정 절차는 구질서의 완전한 해체와 민주주의의 건설이라는 민중혁명의 목표와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나토의 군사작전을 통해 리비아 개입의 정당성을 획득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려고 골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며 하이테크 전쟁 모형을 가속할 것이다. 리비아 민중 스스로 시작한 리비아 혁명은 어떤 사회를 누가 주도해서 건설할 것이냐는 혁명의 본질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