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 주요 내용 | 예산 (억 달러) | 종료 |
감세연장 | ▫ 전 소득계층에 대한 세율인하 (부시 감세) ▫ 부동산세, 증여세, 자본이득세, 배당세 인하 | 5,684 | 2012 |
▫ 근로소득세 중 사회보장세 2% 인하 | 1,116 | ||
실업자 보호 | ▫ 장기실업수당 지원 연장 | 565 | 2011 |
저소득층 지원 | ▫ 학자금 지원, 육아 지원 | 441 | 2012 |
기업투자 지원 | ▫ 설비투자, R&D 투자, 재생에너지 개발 관련 투자 세액공제 | 772 | 2012 |
합계 | 8,578 |
아일랜드의 2011년 재정건전화 방안 1. 재정지출 축소 (40억 유로) ▫ 자녀복지수당을 자녀당 매월 10유로 삭감 ▫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임금상한 설정(250,000유로/연) ▫ 수상 및 장관 임금 15% 삭감 ▫ 연 12,000유로 이상 공무원연금 수혜자에 대한 연 4% 연금 지급액 삭감 2. 세수증대 (20억 유로) ▫ 국민보험 기여금 납부상한액 폐지 ▫ 자영업자, 고소득공무원 등의 국민보험 기여금 증액 ▫ 사적연금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 축소 ▫ 고소득자 대상 각종 세금감면 혜택의 폐지 ▫ 유류세 리터당 4센트 인상 ▫ 예금이자세를 2%p 인상 |
2010년 | 2011년 | |
경제성장률 | 6.1% | 5% 내외 |
취업자 증감 | 31만 명 | 28만 명 |
소비자 물가 | 2.9% | 3% 수준 |
경상수지 | 290억 불 | 160억 불 |
사회투자전략론과 스웨덴 모델의 잘못된 조합 복지담론이 ‘대세’인 듯하다. 각 정당과 정치인마다 내세우는 복지담론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진보언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담론 중 하나가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매개로 진보진영이 대통합을 이루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는 2010년 2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일부는 복지국가 담론이 확대되도록 정책을 가다듬는 데 더 집중하자며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을 출범했다. 포럼의 주요 인사들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제안하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7년 7월 창립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양극화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현재 100여 명의 전문가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논리와 전략>(2010, 도서출판 밈), <복지국가혁명>(2007, 도서출판 밈) 등에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영국식 자유주의 복지국가나 독일식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의 4대 영역으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언급한다. 1)보편적 복지는 가난한 일부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하는 국민 모두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2)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적, 사회적 자본을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가 포함된다. 3)공정한 경제는 시장 만능주의가 아니라 시장과 경제제도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개입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신장, 연대적?누진적 조세제도 등의 확립이 요구된다. 4)혁신적 경제로 지식기반경제를 제시하며 이것이 달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산영역의 혁신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응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사회 모델로 제시하면서 전체 사회구조, 의료, 육아, 노인, 빈곤, 장애인, 교육, 금융, 노동, 조세개혁에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바탕에는 노동유연성을 수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유연성을 수용하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이 각 영역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검토해볼만한 내용이 많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유연화를 제어할 수 없다면, 다양한 정책들은 보기 좋은 선물세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먼저 역동적 복지국가담론의 ‘계보’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맥락에서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가 조합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검토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언급한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스웨덴 모델의 한계를 짚어본다.1) 사회투자전략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말은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유럽이사회에서 등장했다.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리스본 전략은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경제로의 성장과 함께 사회통합과 고용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유럽’을 천명했다. 이는 지식기반경제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Magnusson, 2010). 그 구체적 방안은 유연안정성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로의 복지모델의 개혁이다.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합성어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이동의 증가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정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정책이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또한 지식기반경제로의 변화, 생산의 혁신, 유연안정성을 제시한다.) 유럽이사회의 입장은 사회투자전략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투자전략론은 사회투자국가론과는 구분되는 사회투자담론의 또 하나의 축으로 에스핑-안델센, 테일러-구비,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이후의 유럽위원회 등이 이런 입장이며 적극적 사회정책론, 적극적 복지국가론으로도 불린다(김영순, 2007). 사회투자국가론은 1990년대 말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신자유주의도 전통적 사민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제시했던 것으로 그 핵심은 복지가 갖는 투자적 성격, 생산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전통적 복지국가론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득보장을 선별적 제공한다(김영순, 2007). 전통적 복지국가담론이 복지를 시민권으로 봤다면 사회투자국가론은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사회투자국가론은 복지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정의한다. 반면, 사회투자전략론은 권리 개념과 같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가치를 여전히 옹호하면서 복지지출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회투자전략론이 사회투자국가론과 다른 점은 소득보장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과 사회투자전략론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이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전략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화정책, 노동유연화, 경제개방 확대를 수용한다. 다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역사적, 경제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론이 부각되었고,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투자전략론이 등장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투자국가론자마저 사회투자전략이 사회투자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천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한다(양재진). 복지프로그램 내용 면에서 배치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보육, 교육, 장기요양 등 보살핌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 신자유주의에 의해 변형된 복지전략인 사회투자국가론이나 사회투자담론의 핵심에는 노동의 유연안정성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 역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유연안정성 추구를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복지’가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고용은 복지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많은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직접 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전후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협약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가로 복지를 확대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후 케인즈주의 경제에서 완전고용 원칙 하에 고용을 통해 소득을 획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출’의 형태로 제공되는 간접임금은 완전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위상을 가졌다. 현재 ‘복지’가 중요한 위상으로 제기되는 것은 케인즈주의 이후 신자유주의로 넘어오면서 완전고용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기되는 것이 유연안정성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말하는 ‘복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제한 뒤 적응력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복지’이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일컬어지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위험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이다.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신자유주의는 배제된 실업자를 근로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경쟁의 계기를 마련한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실업자와 빈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에 참여할 것을 자극한다는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진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일자리의 이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근로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능력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을 키우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설정한다. 고용경쟁력은 실업의 상태에서 훈련을 통해서 기술을 연마하고 다음 일자리를 더 잘 찾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노동력의 질을 유지, 향상시켜야 하며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저임금의 일자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과 복지수급 사이에 계속 머물게 된다. 즉, 고용경쟁력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노동연계복지를 적극 활용했는데 노동당이 선호했던 경제학자 라야드에 따르면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해야 하며 경쟁은 임금하향 합박을 유지하는 열쇠다.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클수록 경쟁의 잠재적인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실업자다. 장기실업자는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실업자는 임금하향 압박에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에 대한 자본가들의 관심은 언제든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단기 실업자의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잠재적인 산업예비군’ 또는 ‘예비실업자’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잠재적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커지고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실업률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임금의 하향압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1995년에서 2001년 동안 미국에서는 실업률은 4%대로 비교적 낮게 유지되었지만 임금상승률은 낮았고 물가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더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정리해고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노동조합의 강력한 임금인상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박상현, 2009). 과거에는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상승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지만 1990년대에는 낮은 실업률이 임금과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일자리의 유연성 확보와 같은 노동시장의 ‘재편’으로 비교적 ‘높은’ 고용에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단기실업자와 예비실업자군의 존재는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간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만든다. 또 외부적 유연성이든, 내부적 유연성이든, 노동유연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어하지 않은 채 보편적 복지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허황된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 모델 노동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이 아니라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한다는 것은 정책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이다. 전후 케인즈주의에서 사회정책은 재정정책의 일부로 통합되어서 성장에 대한 관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박상현, 2009). 전후 각국별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결합되는 양상은 달랐지만 국가가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원리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제도화되었다. 소득 보장을 위한 일차적 수단은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존재했다. 따라서 완전고용은 미국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다양한 나라들에서 지향해야 할 일종의 ‘원칙’이었다.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정책에 종속적이 되었다. 완전고용은 포기되고 사회정책이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정책이 축소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증가한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정책의 목표가 이전과 달리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정책은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유연화+보편적 복지’라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틀에서 ‘보편적 복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신자유주의 프레임이라 할지라도 사회정책은 집권정당에 따라 재량이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핵심 정책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제시하는 정책 패키지들은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의 상황,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맹목은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들은 비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영미식, 독일식, 북유럽 자본주의 등을 비교하며 그 중에서 더 나은 모델을 찾자고 한다. 자본주의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보편적이지도 않다. 북유럽식 자본주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일부이고, 고에너지 고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파괴적이다. 스웨덴을 모델로 놓고 추종하는 것은 미국을 대체한 다른 버전의 근대화론에 불과한 것이다. 스웨덴을 바라보는 이들은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와해되는 과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모범으로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스웨덴과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고 역사적 경험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다만 “스웨덴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여, 이것을 우리나라의 조건과 상황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여러 제도와 체계를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려면 현재의 체계에서 복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정책의 조합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스웨덴이 그러한 체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는데 각 정책의 특수한 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또 어떻게 쇠퇴했는지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웨덴은 중앙집중적 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서 실업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복지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은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운동의 자생적인 투쟁들을 억압하면서 계급 간 타협을 했던 결과물로서 복지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모델이 안착화되기 전까지 노동자 파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송호근, 1997). 스웨덴의 노동자 파업은 ‘잦은 빈도×장기적 지속’의 유형이어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스웨덴의 경우 1900년 초반에서 1930년대까지 폭발했던 노동자 파업은 1938년 살쮀바덴 협약으로 ‘무마’되었다. 살쮀바덴 후 노동자투쟁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노사간 타협을 통해 ‘노사 분쟁을 평화적이고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맺은 협약으로 노사분쟁 처리 절차를 명문화한 협약이다. 또한 살쮀바덴 협약을 통해 노동조합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다. 노조가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주요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 내부의 전투적 분파가 계속적으로 임금인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정이환, 2006). 1930년대 초 LO 내 입장은 수출부문과 내수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LO내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했던 금속노조는 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치열한 국제 경쟁 대문에 임금 인상에 제약이 있었고 노조 스스로 임금 억제의 필요성에 합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수 부문인 건설 노조는 전투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임금인상 투쟁을 지속했다. LO는 산하 노조의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해왔지만 1933년 건설부문 대규모 파업을 전환점으로 그 전통은 깨지고 만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공공 건설을 통한 고용 창출을 추진 중이었는데 건설업의 파업은 이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당시 연정 파트너였던 농민당은 사민당의 공황극복정책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건설업의 파업을 종식시키라고 요구했다. LO는 처음에는 건설업 파업을 지지하다 이러한 압력들로 인해 결국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이로 인해 LO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살쮀바덴 협약 이후 LO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LO의 중앙집권화 조치 중 하나는 조합원의 인준 투표 없이 지도부가 교섭과 타결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한 것이었다. 이는 노조 내부의 전투적 노선이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산하 노조의 주체적 투쟁을 차단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중앙집중적 교섭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에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교섭은 연대임금정책을 작동시키는 틀이었고, 연대임금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짝을 이루어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이루게 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인구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이며 이는 연대임금정책과 결합될 때 재정조달이 가능하다.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통해 낮은 생산성 부문의 자연도태로 인해 발생한 취약 노동계층을 공적 지원을 통하여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자본집약적 부문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렌-마이드네르 모델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기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래 스웨덴의 경제가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연대임금정책의 효율성은 약화되었으며 연대임금정책은 숙련노동자의 임금양보를 지속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송호근, 1997). 결국 1983년 LO가 중앙단위 교섭에서 이탈함으로써 중앙집중적 교섭체계는 붕괴했고 연대임금정책은 유명무실화되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구의 4%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인데 1995년 실업률이 13%에 달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실업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스웨덴 모델은 1980년대 ‘제3의 길’ 정책을 통해 경제정책의 자유주의화를 진행시키며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사회복지정책 및 노동시장정책에도 시장원리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신정완, 2009). 스웨덴 정부는 1985년 대출상한규제를 철폐하고, 조세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제3의 길 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신임 재무부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적 정책목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는 완전고용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정책목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가 되면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한다. 1993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1994년 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이는 스웨덴 사민당도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시점의 스웨덴 모델은 복지삭감, 완전고용 포기, 조세개혁 등 자신의 복지국가 원칙을 폐기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조세기반의 보편적 복지는 침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1~1992년 보수당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기업 및 자본에 대한 세금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올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조세개혁이 있었다. 1994년 사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즉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다시 올렸지만 임금생활자의 세금부담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 꼭 직접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면서 간접세가 높은 복지국가의 예로 스웨덴을 들지만, 사실 이는 1991~1992년 노동계급에게 더 많이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세개혁의 부정적인 결과이다. 스웨덴은 1991년까지 GDP의 20%에 달하는 복지지출비를 감당하면서도 흑자재정을 유지해왔지만 복지수혜층의 수적 증가로 복지지출비가 급속히 증대하고, 국제경쟁력의 하락, 인플레, 실업 등이 중첩되어 정부재정은 1995년 GNP 13%에 달하는 적자상태에 직면한다(송호근, 1997). 이에 사민당은 기업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 외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복지지출비 삭감을 단행하였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어 2007년 복지지출은 1980년 수준이 되었다. 결국 스웨덴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웨덴은 자신의 호황기 모델이 침식해가는 과정에서 그 잔재로 신자유주의적 위기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론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과 빈곤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은 같으면서도 처방은 다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사회변화가 더 많은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에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복지의 확대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드는 그 요인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잘못된 처방을 제시한다. 복지는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복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묵종’을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보편적 복지‘라는 슬로건이 민중들의 생존을 불안정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고, 금융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복지국가담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일 수 없다. 현 시기 대안은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실업, 빈곤,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 사회의 상은 그러한 투쟁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은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노동자민중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박스1%] 1) 단, 이 글에서 ‘보편적 복지’는 주로 구조조정의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복지의 의미가 주로 반영되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노동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양육, 노인 등 전반적인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포괄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사회투자전략론과 스웨덴 모델의 잘못된 조합 복지담론이 ‘대세’인 듯하다. 각 정당과 정치인마다 내세우는 복지담론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진보언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담론 중 하나가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매개로 진보진영이 대통합을 이루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는 2010년 2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결성하는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일부는 복지국가 담론이 확대되도록 정책을 가다듬는 데 더 집중하자며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을 출범했다. 포럼의 주요 인사들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제안하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7년 7월 창립 당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양극화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현재 100여 명의 전문가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논리와 전략>(2010, 도서출판 밈), <복지국가혁명>(2007, 도서출판 밈) 등에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영국식 자유주의 복지국가나 독일식 조합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식 보편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은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의 4대 영역으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를 언급한다. 1)보편적 복지는 가난한 일부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하는 국민 모두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2)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에게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인적, 사회적 자본을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가 포함된다. 3)공정한 경제는 시장 만능주의가 아니라 시장과 경제제도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개입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의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의 신장, 연대적?누진적 조세제도 등의 확립이 요구된다. 4)혁신적 경제로 지식기반경제를 제시하며 이것이 달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산영역의 혁신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응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사회 모델로 제시하면서 전체 사회구조, 의료, 육아, 노인, 빈곤, 장애인, 교육, 금융, 노동, 조세개혁에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의 바탕에는 노동유연성을 수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유연성을 수용하되 보편적 복지라는 안전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이 각 영역에서 제시하는 정책은 검토해볼만한 내용이 많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유연화를 제어할 수 없다면, 다양한 정책들은 보기 좋은 선물세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먼저 역동적 복지국가담론의 ‘계보’가 무엇인지 추적하고,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맥락에서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가 조합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검토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언급한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스웨덴 모델의 한계를 짚어본다.1) 사회투자전략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말은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유럽이사회에서 등장했다.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리스본 전략은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경제로의 성장과 함께 사회통합과 고용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유럽’을 천명했다. 이는 지식기반경제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Magnusson, 2010). 그 구체적 방안은 유연안정성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로의 복지모델의 개혁이다. 유연안정성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합성어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이동의 증가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득 및 사회적 안정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정책이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또한 지식기반경제로의 변화, 생산의 혁신, 유연안정성을 제시한다.) 유럽이사회의 입장은 사회투자전략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투자전략론은 사회투자국가론과는 구분되는 사회투자담론의 또 하나의 축으로 에스핑-안델센, 테일러-구비, 2000년 EU의 리스본 정상회담을 이후의 유럽위원회 등이 이런 입장이며 적극적 사회정책론, 적극적 복지국가론으로도 불린다(김영순, 2007). 사회투자국가론은 1990년대 말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신자유주의도 전통적 사민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제시했던 것으로 그 핵심은 복지가 갖는 투자적 성격, 생산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전통적 복지국가론과 다른 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과세와 지출 대신 사회투자를 강조한다, △인적 자본 및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득보장을 선별적 제공한다(김영순, 2007). 전통적 복지국가담론이 복지를 시민권으로 봤다면 사회투자국가론은 ‘시민의 권리는 의무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사회투자국가론은 복지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정의한다. 반면, 사회투자전략론은 권리 개념과 같은 전통적 복지국가의 가치를 여전히 옹호하면서 복지지출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회투자전략론이 사회투자국가론과 다른 점은 소득보장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과 사회투자전략론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이 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전략 모두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화정책, 노동유연화, 경제개방 확대를 수용한다. 다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역사적, 경제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론이 부각되었고,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투자전략론이 등장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투자국가론자마저 사회투자전략이 사회투자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고 실천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한다(양재진). 복지프로그램 내용 면에서 배치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보육, 교육, 장기요양 등 보살핌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유연안정성과 ‘보편적’ 복지 신자유주의에 의해 변형된 복지전략인 사회투자국가론이나 사회투자담론의 핵심에는 노동의 유연안정성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 역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유연안정성 추구를 명시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복지’가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고용은 복지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많은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직접 임금’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국가들이 전후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협약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가로 복지를 확대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후 케인즈주의 경제에서 완전고용 원칙 하에 고용을 통해 소득을 획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출’의 형태로 제공되는 간접임금은 완전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위상을 가졌다. 현재 ‘복지’가 중요한 위상으로 제기되는 것은 케인즈주의 이후 신자유주의로 넘어오면서 완전고용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기되는 것이 유연안정성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말하는 ‘복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제한 뒤 적응력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복지’이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일컬어지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위험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이다.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신자유주의는 배제된 실업자를 근로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경쟁의 계기를 마련한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실업자와 빈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에 참여할 것을 자극한다는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진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일자리의 이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근로연계복지처럼 강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능력강화(empowerment)라는 ‘자발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또 목표대상도 등록된 실업자에서 빈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 비용과 지속시간도 다양하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고용경쟁력(employability)을 키우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설정한다. 고용경쟁력은 실업의 상태에서 훈련을 통해서 기술을 연마하고 다음 일자리를 더 잘 찾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노동력의 질을 유지, 향상시켜야 하며 가급적 신속하게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저임금의 일자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과 복지수급 사이에 계속 머물게 된다. 즉, 고용경쟁력을 증가시키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노동연계복지를 적극 활용했는데 노동당이 선호했던 경제학자 라야드에 따르면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해야 하며 경쟁은 임금하향 합박을 유지하는 열쇠다.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클수록 경쟁의 잠재적인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실업자다. 장기실업자는 노동시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실업자는 임금하향 압박에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에 대한 자본가들의 관심은 언제든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단기 실업자의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잠재적인 산업예비군’ 또는 ‘예비실업자’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잠재적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커지고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실업률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임금의 하향압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1995년에서 2001년 동안 미국에서는 실업률은 4%대로 비교적 낮게 유지되었지만 임금상승률은 낮았고 물가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더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정리해고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노동조합의 강력한 임금인상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박상현, 2009). 과거에는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상승이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지만 1990년대에는 낮은 실업률이 임금과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일자리의 유연성 확보와 같은 노동시장의 ‘재편’으로 비교적 ‘높은’ 고용에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단기실업자와 예비실업자군의 존재는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간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만든다. 또 외부적 유연성이든, 내부적 유연성이든, 노동유연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제어하지 않은 채 보편적 복지로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허황된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스웨덴 모델 노동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이 아니라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한다는 것은 정책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이다. 전후 케인즈주의에서 사회정책은 재정정책의 일부로 통합되어서 성장에 대한 관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박상현, 2009). 전후 각국별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결합되는 양상은 달랐지만 국가가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원리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제도화되었다. 소득 보장을 위한 일차적 수단은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존재했다. 따라서 완전고용은 미국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다양한 나라들에서 지향해야 할 일종의 ‘원칙’이었다.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에서 경제정책에 종속적이 되었다. 완전고용은 포기되고 사회정책이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정책이 축소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증가한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정책의 목표가 이전과 달리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정책은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유연화+보편적 복지’라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틀에서 ‘보편적 복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완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정책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신자유주의 프레임이라 할지라도 사회정책은 집권정당에 따라 재량이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핵심 정책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제시하는 정책 패키지들은 금융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의 상황,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맹목은 스웨덴 모델을 표방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들은 비교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영미식, 독일식, 북유럽 자본주의 등을 비교하며 그 중에서 더 나은 모델을 찾자고 한다. 자본주의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자본주의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보편적이지도 않다. 북유럽식 자본주의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일부이고, 고에너지 고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파괴적이다. 스웨덴을 모델로 놓고 추종하는 것은 미국을 대체한 다른 버전의 근대화론에 불과한 것이다. 스웨덴을 바라보는 이들은 스웨덴 모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와해되는 과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모범으로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스웨덴과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르고 역사적 경험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다만 “스웨덴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여, 이것을 우리나라의 조건과 상황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여러 제도와 체계를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려면 현재의 체계에서 복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정책의 조합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스웨덴이 그러한 체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는데 각 정책의 특수한 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또 어떻게 쇠퇴했는지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웨덴은 중앙집중적 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서 실업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복지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은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분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운동의 자생적인 투쟁들을 억압하면서 계급 간 타협을 했던 결과물로서 복지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모델이 안착화되기 전까지 노동자 파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송호근, 1997). 스웨덴의 노동자 파업은 ‘잦은 빈도×장기적 지속’의 유형이어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스웨덴의 경우 1900년 초반에서 1930년대까지 폭발했던 노동자 파업은 1938년 살쮀바덴 협약으로 ‘무마’되었다. 살쮀바덴 후 노동자투쟁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살쮀바덴 협약은 노사간 타협을 통해 ‘노사 분쟁을 평화적이고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맺은 협약으로 노사분쟁 처리 절차를 명문화한 협약이다. 또한 살쮀바덴 협약을 통해 노동조합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다. 노조가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주요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제1노총(LO) 내부의 전투적 분파가 계속적으로 임금인상을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정이환, 2006). 1930년대 초 LO 내 입장은 수출부문과 내수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LO내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했던 금속노조는 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치열한 국제 경쟁 대문에 임금 인상에 제약이 있었고 노조 스스로 임금 억제의 필요성에 합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수 부문인 건설 노조는 전투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임금인상 투쟁을 지속했다. LO는 산하 노조의 독자적 교섭권을 인정해왔지만 1933년 건설부문 대규모 파업을 전환점으로 그 전통은 깨지고 만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공공 건설을 통한 고용 창출을 추진 중이었는데 건설업의 파업은 이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당시 연정 파트너였던 농민당은 사민당의 공황극복정책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건설업의 파업을 종식시키라고 요구했다. LO는 처음에는 건설업 파업을 지지하다 이러한 압력들로 인해 결국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이로 인해 LO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살쮀바덴 협약 이후 LO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LO의 중앙집권화 조치 중 하나는 조합원의 인준 투표 없이 지도부가 교섭과 타결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한 것이었다. 이는 노조 내부의 전투적 노선이 협상 타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산하 노조의 주체적 투쟁을 차단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중앙집중적 교섭체계가 확립되는 과정에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교섭은 연대임금정책을 작동시키는 틀이었고, 연대임금정책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짝을 이루어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이루게 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인구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이며 이는 연대임금정책과 결합될 때 재정조달이 가능하다. 렌-마이드네르 모델을 통해 낮은 생산성 부문의 자연도태로 인해 발생한 취약 노동계층을 공적 지원을 통하여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자본집약적 부문을 키워주는 것이다. 즉, 렌-마이드네르 모델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완전 고용을 달성하는 기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래 스웨덴의 경제가 기술집약적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연대임금정책의 효율성은 약화되었으며 연대임금정책은 숙련노동자의 임금양보를 지속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송호근, 1997). 결국 1983년 LO가 중앙단위 교섭에서 이탈함으로써 중앙집중적 교섭체계는 붕괴했고 연대임금정책은 유명무실화되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노동인구의 4%를 공공사업과 재훈련과정으로 흡수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기제인데 1995년 실업률이 13%에 달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실업자들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스웨덴 모델은 1980년대 ‘제3의 길’ 정책을 통해 경제정책의 자유주의화를 진행시키며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사회복지정책 및 노동시장정책에도 시장원리 요소를 도입하게 된다(신정완, 2009). 스웨덴 정부는 1985년 대출상한규제를 철폐하고, 조세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제3의 길 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신임 재무부는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적 정책목표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는 완전고용을 포기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정책목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가 되면 스웨덴은 고평가된 크로나화에 대한 환투기 공격으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한다. 1993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기조로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1994년 집권한 사민당은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이는 스웨덴 사민당도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통화주의적 합의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시점의 스웨덴 모델은 복지삭감, 완전고용 포기, 조세개혁 등 자신의 복지국가 원칙을 폐기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조세기반의 보편적 복지는 침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1~1992년 보수당 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기업 및 자본에 대한 세금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소득세와 소비세를 올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는 조세개혁이 있었다. 1994년 사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즉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세금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다시 올렸지만 임금생활자의 세금부담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 꼭 직접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면서 간접세가 높은 복지국가의 예로 스웨덴을 들지만, 사실 이는 1991~1992년 노동계급에게 더 많이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세개혁의 부정적인 결과이다. 스웨덴은 1991년까지 GDP의 20%에 달하는 복지지출비를 감당하면서도 흑자재정을 유지해왔지만 복지수혜층의 수적 증가로 복지지출비가 급속히 증대하고, 국제경쟁력의 하락, 인플레, 실업 등이 중첩되어 정부재정은 1995년 GNP 13%에 달하는 적자상태에 직면한다(송호근, 1997). 이에 사민당은 기업가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인상 외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복지지출비 삭감을 단행하였다. 1994년 이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어 2007년 복지지출은 1980년 수준이 되었다. 결국 스웨덴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웨덴은 자신의 호황기 모델이 침식해가는 과정에서 그 잔재로 신자유주의적 위기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결론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평등과 빈곤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인식은 같으면서도 처방은 다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사회변화가 더 많은 사회적 위험을 낳고 있기 때문에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는 하면서도 복지의 확대를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드는 그 요인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잘못된 처방을 제시한다. 복지는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복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묵종’을 이끌어냈다는 데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보편적 복지‘라는 슬로건이 민중들의 생존을 불안정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도록 하고, 금융세계화와 그것이 추동하는 노동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복지국가담론은 노동자 민중의 대안일 수 없다. 현 시기 대안은 더 많은 복지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실업, 빈곤,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 사회의 상은 그러한 투쟁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은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노동자민중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박스1%] 1) 단, 이 글에서 ‘보편적 복지’는 주로 구조조정의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복지의 의미가 주로 반영되어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노동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양육, 노인 등 전반적인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포괄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투자자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 “많은 경우 양자 간 투자협정(BIT)은 자발적이고 강제되지 않은 거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받아들일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라는 입장으로 이해되었고,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그 상대국은 그에 애원하는 형태였다는 것이 진실이다. 양자 간 투자협정 협상은 평등한 주권국 간의 토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에 의하여 미국의 용어로 이루어진 강도 높은 훈련세미나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의 용어에 기초하여 미국의 초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호세 E. 알바레즈, 1992. (미국 국무부 양자 간 투자협정팀)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공방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양국이 무역장벽(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조절하여 슬기롭게 ‘이익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속히 한미 FTA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 FTA의 가장 본질적인 어떤 측면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 투자자유화 협정 현재 한미 FTA 논란은 자동차와 쇠고기 무역장벽을 둘러싼 양국 간 힘겨루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한미 FTA의 기본 이념이다. 즉 투자자, 곧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국 간의 관세철폐라는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정의되었고 투자 문제는 FTA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문제는 대개 양자 간 투자협정이란 형식으로 별도로 다루어졌다. 전통적인 투자협정은 투자의 설립 후 단계에서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산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투자보장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통에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는 투자보장협정에다 투자자유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의 설립 단계 이전에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유화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에 모든 투자 기회를 완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무역협정에 투자협정 모델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에 투자협정이 포함된 후 자유무역협정은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본이동과 투자의 자유화를 포괄하기 시작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NAFTA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초과하는 내용을 담은 ‘NAFTA 플러스’였다. 따라서 당연히 한미 FTA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식 투자협정 모델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헌법을 대체하는 자유무역협정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한국-유럽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둘러싼 논란은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초민족 기업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개요를 간략히 살펴보자. 2010년 3월 14일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는 한국 의회가 추진 중인 SSM 규제가 한-EU FTA를 위반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초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와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협의회에서 SSM 규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EU FTA 체결 당시 유통업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SSM 규제 강화는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정당이 합의 하에 추진하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등록제를 SSM에도 적용하여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다는 것이었고, 상생법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사업조정이 신청되면 중소기업청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 이후 조정 및 협의를 거쳐 주위 상권이 지나친 타격을 입지 않도록 품목이나 영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그 후 김종훈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 SSM 관련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10월 25일 민주당 자유무역협정 특위에서도 ‘국회가 SSM 쌍둥이법을 모두 처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며 한국경제의 신인도 문제까지 운운했다. 어떻게 행정부 관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 관리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당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월 28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개최한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는 정당한 규제마저 어렵도록 한-EU FTA가 불리하게 체결된 것이 문제인데 그 책임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이 도리어 한-EU FTA 위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서 10월 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영국 테스코 한 회사의 로비로 그동안 상생법이 제지돼 왔다는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SSM 규제법안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무서운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군다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도입되어 있는 것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통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자가 제소 가능성을 언급만 하더라도 투자대상국은 감히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NAFTA의 경우에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방정부가 공공 자동차보험 도입을 준비했지만 자동차보험 회사가 소송을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도입을 포기한 사례가 유명하다.1)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자유 또는 투자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초민족 기업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한국의 헌법보다 기업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의 헌법이 바뀌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SSM 관련법 논란은 사소한 사례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의 권리를 절대화하는 자유무역협정 1997년 세계무역기구 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단일 세계경제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헌법’이란 표현이 단지 은유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들이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어떤 권력과 법률도 투자자의 목표를 침해할 수 없도록 세계의 정치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른다. 왜 새로운 입헌주의인가. 과거의 입헌주의가 ‘인간·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치와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될 대상이 인간·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국가와 국제정치형태에 개입하여 법에 준하는 규칙과 징벌을 부과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가. 첫째, 국가장치의 재구조화. 새로운 국제협정에 대비하거나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족국가의 헌법형태가 변화되곤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남아공은 양자 간 투자협정 체결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해야 했다. 또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균형예산이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를 요구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헌법, 각종 법률, 제도, 정책의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막강한 국가장치를 새롭게 구축했다. 둘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의 구성과 확장. 대표적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생명과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지적 재산권의 제도화는 초민족 자본의 권리가 관철되는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초민족자본의 새로운 창,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뿐만 아니라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 더 정확히 말하자면 투자자(초민족 기업)가 투자국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2)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내포한 치명적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198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따라 정부 규제가 기업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전면화되었다.3) 이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업이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규제는 법률적 용어로 ‘간접수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직접수용’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국유화와 보상)을 의미했다면 간접수용은 기업의 미래 소득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 규제도 기업 소유권(미래소득창출권)에 대한 규제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중재판정은 ‘균형성 심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경향을 다소 완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이 그 원인일 것이다.) 둘째. 궁극적인 문제는 투자국의 입법권, 본질적으로는 인민주권의 원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따르면 투자국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중재심판의 대상이 된다. 중재심판은 극소수의 중재심판관, 즉 누구도 그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는 자들이 각 국가의 법률이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격을 가하자 한국 헌법은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경우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민을 구속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초민족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는 한국의 헌법을 사실상 바꾸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보를 제소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1994년까지 국제중재 건수는 5건에 불과했으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건수는 245건에 이르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추구하는 최신형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먼저 ‘알아서 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논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노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규제가 기업 소유권의 침해이며 굳이 규제를 가하려면 기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미국식 소유권 개념의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적 비약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EU FTA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으로부터 투자자-정부 소송제도에 대한 협상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FTA는 개별 회원국이 특정 국가와 양자 간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승인한다. 이미 한국이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체결한 양자 간 투자협정에는 투자자-정부 소송제도가 포함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본문으로 2) 초기의 양자 간 투자협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만 다루었다. 그러나 1965년 워싱턴 협약에 의해 ‘국가와 타방국가 국민 간의 투자분쟁 해결에 관한 국제센터’(ICSID)가 창설되면서 외국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에 관한 중재 절차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ICSID의 심판이 개별 국가에 구속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에 ‘이 사안은 우리나라의 법적 권한에 속하지 않으며, ICSID의 중재심판 대상이 된다’는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했다. 즉 그 국가가 투자자와 계약을 맺을 때 분쟁이 발생하면 ICSID에 심판을 맡긴다는 동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은 모든 투자자에게 모든 투자에 관해 ICSID의 심판에 복종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일괄계약과 같다. 본문으로 3) 혹자는 뉴딜 이후 신자유주의적 반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미국에서 소유권 개념은 ‘정부가 허용하는 만큼의 소득을 취할 권리’로 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현상적으로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호황 시기와 불황으로 진입 시기에 자본이 취한 전략을 종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호황기에는 ‘정부가 허용하는 소득’이 자본가에 결코 불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투자자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 “많은 경우 양자 간 투자협정(BIT)은 자발적이고 강제되지 않은 거래라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받아들일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라는 입장으로 이해되었고,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그 상대국은 그에 애원하는 형태였다는 것이 진실이다. 양자 간 투자협정 협상은 평등한 주권국 간의 토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에 의하여 미국의 용어로 이루어진 강도 높은 훈련세미나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의 용어에 기초하여 미국의 초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호세 E. 알바레즈, 1992. (미국 국무부 양자 간 투자협정팀) 현재 한미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중심으로 양국이 공방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양국이 무역장벽(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조절하여 슬기롭게 ‘이익균형’을 맞출 수만 있다면 조속히 한미 FTA를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미 FTA의 가장 본질적인 어떤 측면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것은 한미 FTA가 기업의 자유와 투자의 자유, 즉 자본가 집단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헌법적 기능을 실행한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 투자자유화 협정 현재 한미 FTA 논란은 자동차와 쇠고기 무역장벽을 둘러싼 양국 간 힘겨루기인 듯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한미 FTA의 기본 이념이다. 즉 투자자, 곧 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의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국 간의 관세철폐라는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정의되었고 투자 문제는 FTA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 문제는 대개 양자 간 투자협정이란 형식으로 별도로 다루어졌다. 전통적인 투자협정은 투자의 설립 후 단계에서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산의 보호 문제를 다루는 ‘투자보장협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전통에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는 투자보장협정에다 투자자유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의 설립 단계 이전에 투자자에 대한 비차별대우와 투자자유화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에 모든 투자 기회를 완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양자 간 투자협정 모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무역협정에 투자협정 모델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었다. NAFTA에 투자협정이 포함된 후 자유무역협정은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본이동과 투자의 자유화를 포괄하기 시작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NAFTA를 모델로 삼으며, 그것을 초과하는 내용을 담은 ‘NAFTA 플러스’였다. 따라서 당연히 한미 FTA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협정과 미국식 투자협정 모델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헌법을 대체하는 자유무역협정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과 한국-유럽 자유무역협정(한-EU FTA)을 둘러싼 논란은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초민족 기업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개요를 간략히 살펴보자. 2010년 3월 14일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는 한국 의회가 추진 중인 SSM 규제가 한-EU FTA를 위반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초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와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협의회에서 SSM 규제 문제가 현안으로 제기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EU FTA 체결 당시 유통업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에 SSM 규제 강화는 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정당이 합의 하에 추진하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유통법은 대형마트 등록제를 SSM에도 적용하여 재래시장 500미터 내 SSM 진출을 규제한다는 것이었고, 상생법은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사업조정이 신청되면 중소기업청이나 지자체가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권고할 수 있고 이후 조정 및 협의를 거쳐 주위 상권이 지나친 타격을 입지 않도록 품목이나 영업시간을 조정하게 된다.) 그 후 김종훈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회 SSM 관련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10월 25일 민주당 자유무역협정 특위에서도 ‘국회가 SSM 쌍둥이법을 모두 처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라며 한국경제의 신인도 문제까지 운운했다. 어떻게 행정부 관리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 관리가 앞장서서 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당들은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월 28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개최한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는 정당한 규제마저 어렵도록 한-EU FTA가 불리하게 체결된 것이 문제인데 그 책임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이 도리어 한-EU FTA 위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서 10월 2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영국 테스코 한 회사의 로비로 그동안 상생법이 제지돼 왔다는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2010년 SSM 규제법안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무서운 힘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군다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도입되어 있는 것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통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자가 제소 가능성을 언급만 하더라도 투자대상국은 감히 어떤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투자가-국가 소송제도는 뒤에서 다시 언급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NAFTA의 경우에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지방정부가 공공 자동차보험 도입을 준비했지만 자동차보험 회사가 소송을 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도입을 포기한 사례가 유명하다.1) 자유무역협정은 기업의 자유 또는 투자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초민족 기업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의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한국의 헌법보다 기업의 소유권을 우선시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사실상 한국의 헌법이 바뀌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찌 보면 SSM 관련법 논란은 사소한 사례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투자자의 권리를 절대화하는 자유무역협정 1997년 세계무역기구 총장 레나토 루지에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단일 세계경제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헌법’이란 표현이 단지 은유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자들이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어떤 권력과 법률도 투자자의 목표를 침해할 수 없도록 세계의 정치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새로운 입헌주의’(new constitutionalism)라고 부른다. 왜 새로운 입헌주의인가. 과거의 입헌주의가 ‘인간·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치와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의미했다면 현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될 대상이 인간·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국가와 국제정치형태에 개입하여 법에 준하는 규칙과 징벌을 부과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자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제한하고자 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되었는가. 첫째, 국가장치의 재구조화. 새로운 국제협정에 대비하거나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족국가의 헌법형태가 변화되곤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는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남아공은 양자 간 투자협정 체결하기 위해 헌법을 수정해야 했다. 또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균형예산이나 독립적인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를 요구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헌법, 각종 법률, 제도, 정책의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막강한 국가장치를 새롭게 구축했다. 둘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장의 구성과 확장. 대표적으로 토지와 자연자원의 사유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생명과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지적 재산권의 제도화는 초민족 자본의 권리가 관철되는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초민족자본의 새로운 창,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의 가장 핵심적 특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뿐만 아니라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 더 정확히 말하자면 투자자(초민족 기업)가 투자국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2)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내포한 치명적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 198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따라 정부 규제가 기업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전면화되었다.3) 이는 정부의 규제로 인해 기업이 소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규제는 법률적 용어로 ‘간접수용’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즉 과거의 ‘직접수용’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재산권의 직접적 박탈(국유화와 보상)을 의미했다면 간접수용은 기업의 미래 소득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보건 규제도 기업 소유권(미래소득창출권)에 대한 규제로 심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중재판정은 ‘균형성 심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경향을 다소 완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격렬한 저항이 그 원인일 것이다.) 둘째. 궁극적인 문제는 투자국의 입법권, 본질적으로는 인민주권의 원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따르면 투자국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중재심판의 대상이 된다. 중재심판은 극소수의 중재심판관, 즉 누구도 그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는 자들이 각 국가의 법률이 초민족 자본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저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격을 가하자 한국 헌법은 ‘조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경우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국민을 구속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초민족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하는 한미 FTA는 한국의 헌법을 사실상 바꾸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투자협정 위반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보를 제소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1994년까지 국제중재 건수는 5건에 불과했으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건수는 245건에 이르고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이 추구하는 최신형 자유무역협정(투자협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할 것이다. 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가 국내법에 우선한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무역협정 체결 국가가 먼저 ‘알아서 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언론의 논리는 한미 양국 정부가 노리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은폐한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규제가 기업 소유권의 침해이며 굳이 규제를 가하려면 기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미국식 소유권 개념의 확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질적 비약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EU FTA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으로부터 투자자-정부 소송제도에 대한 협상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FTA는 개별 회원국이 특정 국가와 양자 간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승인한다. 이미 한국이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체결한 양자 간 투자협정에는 투자자-정부 소송제도가 포함되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본문으로 2) 초기의 양자 간 투자협정은 정부 간 분쟁해결 절차만 다루었다. 그러나 1965년 워싱턴 협약에 의해 ‘국가와 타방국가 국민 간의 투자분쟁 해결에 관한 국제센터’(ICSID)가 창설되면서 외국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에 관한 중재 절차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ICSID의 심판이 개별 국가에 구속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에 ‘이 사안은 우리나라의 법적 권한에 속하지 않으며, ICSID의 중재심판 대상이 된다’는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했다. 즉 그 국가가 투자자와 계약을 맺을 때 분쟁이 발생하면 ICSID에 심판을 맡긴다는 동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이 추진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은 모든 투자자에게 모든 투자에 관해 ICSID의 심판에 복종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일괄계약과 같다. 본문으로 3) 혹자는 뉴딜 이후 신자유주의적 반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미국에서 소유권 개념은 ‘정부가 허용하는 만큼의 소득을 취할 권리’로 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현상적으로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호황 시기와 불황으로 진입 시기에 자본이 취한 전략을 종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호황기에는 ‘정부가 허용하는 소득’이 자본가에 결코 불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