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20개국 행정부 수반이 정상(summit)에 선다. 1년에 한두 번씩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셰르파의 도움을 얻었다. 스무 명은 해가 지기 전에 힘든 등정을 끝내고 맞잡은 손을 강조하며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정상(회의)’이라는 용어는 윈스턴 처칠이 만들어낸 말이다. 냉전이 막을 열던 1950년 처칠은 소련에 “정상에서의 회담”을 제안했다. 어떤 계기로 처칠이 ‘정상’이라는 등산 용어를 외교에 적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한 점은 분명하다. 당시 그 용어는 영국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1940년대 후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 등반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칠이 평화의 의지를 다지는 최고위층 회담을 다시 호소하던 바로 그때, 세계 최고봉은 1953년 5월에 마침내 정복되었다. 정상회의는 20세기의 산물이다. 이전에도 정상회의가 없진 않았으나 안전과 체면의 문제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피되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타국으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그의 낮은 신분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회의 중간에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동반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정상회의는 빈번한 외교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항공기 여행의 발달은 육로나 해로로 며칠씩 걸리던 여행길을 한나절 내외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두세 명의 국가 원수들이 만나 며칠 동안 안건을 협상하는 형식의 전형적 정상회의는 193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벌어졌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지 30년이 지나자 항공기는 운송과 여행의 수단이 되었고 상업적인 항공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정치인으로서 최초로 항공기 여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국적인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전통적인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처칠은 1940년대 초반 미국을 방문할 때 두 번이나 배를 타고 갔으며,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1945년 처칠과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흑해연안의 얄타까지 가는 데 열하루가 걸렸다. 미국에서 지중해까지 열흘 동안 배를 타고 갔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정상회의가 빈번했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 때문이다. 열전과 냉전이 정상회의의 주 무대였다. 먼저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전후 처리를 위해서 정상회의가 열렸다. 나치의 독일인 거주 체코슬로바키아 지역 병합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1938년 뮌헨회담,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과 파병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1940년대 초반 처칠-루즈벨트 회담, 전후 처리문제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논의한 1945년 얄타회담이 각각을 대표한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정상회의가 이어졌다. 1961년 케네디와 후르시초프, 1972년 닉슨과 브레즈네프, 1985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의는 냉전의 격화, 데탕트, 신데탕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 정상회의의 계보를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G7이나 G20 정상회의에 적절한 자리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두 회의는 20세기 정상회의의 일반적인 관례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프랑스의 재무부장관이던 헬무트 슈미트와 지스카르 데스탱은 1974년에 각각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은 1년 전에 처음으로 열렸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부장관이 참가하는 G5 회의 경험을 정상회의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1970년대의 위기로 긴급한 경제 문제를 다룰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75년 이탈리아가 포함된 G6 정상회의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캐나다가 포함된 G7 정상회의로 확대되었다. G7 정상회의는 기존의 정상회의와 다른 점이 많다. 먼저 두세 명이 모이는 소수의 회의가 아니라 일곱 명이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모였다. 모임의 주기도 일 년으로 정례화되면서 긴급한 현안 논의보다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협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정상회의의 초점이 정치ㆍ군사가 아니라 경제 문제에 맞춰졌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어렵다. 정치인인 한 국가의 수장이 경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매년 열리는 회의를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각국 지도자는 장관이나 보좌관을 자신의 개인 대리인(셰르파)으로 지정하여 회의 준비와 합의의 얼개를 짜는 일을 담당시켰다. 또한 1년에 네 차례 열리는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는 독자적인 리듬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상회의를 보조했다. 이렇게 되자 G7은 지도자들의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의 의미는 퇴색되고 의례화되고 제도화된 정상회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는 아니지만 제도화된 정상회의라는 G7의 독특한 지위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적격이었다. 초기에는 선진국 간의 환율조정이나 경제정책 공조 문제를 주로 논의했지만 점차 다룰 문제가 늘어났다. 1980년대가 되자 서유럽 미사일 배치와 같은 정치ㆍ군사 문제가 회의석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동구권의 붕괴 이후 이 지역 경제와 정치를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수적’ 문제들, 외채탕감이나 빈곤퇴치를 다루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된 가장 중요한 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공개되는 자료인 성명에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좋은 말이 넘쳐났다. G7 정상회의의 성명은 점차 길어졌지만 정상회의에 앞서 몇 달 동안 정성스럽게 준비된 이 문서는 실제 논의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예를 들어 1989년 파리 성명의 3분의 1은 환경문제로 채워져 있었지만 이것은 만찬 때 잠깐 이야기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15년 동안의 G7 정상회의 성명에 대한 1992년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각국 정부는 209건의 약속 가운데 3분의 1만을 이행했고, 특히 미국과 프랑스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다. 대신에 G7은 비공식적인 결정,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담론을 통해서 실제 권력을 행사했다. 독자적인 집행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유연하게 활용해서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에 비공식적이지만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먼저 G7은 국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유엔과 국제금융기구를 활용했다. G7은 IMF와 세계은행을 사실상 지배했다.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는 IMF와 세계은행의 봄ㆍ가을 회의 직전에 회의를 열어 이 기관의 대출 절차와 정책에 대해 미리 토론하고 합의를 꾀했다. 그리고 연이어 열리는 IMF와 세계은행의 회의에서 G7은 보다 공식적인 절차와 기구를 통해서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논의를 주도했다. 따라서 G7의 회의 결과에 따라 IMF와 세계은행 회의의 주요 의제가 정해지고,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의제는 공식적으로 상정되지 않았다. 즉 G7은 IMF와 세계은행의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하고 거부권을 가짐으로써 국제금융기구의 활동에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 또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진행되는 G7 정상회의는 국제 문제에 관한 담론을 주도하면서 세계경제, 비G7 정부, 국제기구, 초국적 정책기구, 국내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G7 정상회의가 문제를 제기하고 의제를 설정하고 네트워크를 창출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국내에서 정치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층 쉬워진다. G7 정상회의의 성명(코뮈니케)은 비공식적이고 법적인 효력이 없는 순수한 도의적 합의문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내용 중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국제적인 합의’나 ‘글로벌스탠더드’의 이름으로 쉽게 강요할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국제 정치ㆍ경제 엘리트와 집권 세력의 필요에 따라 선택된 3분의 1 정도만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G7 정상회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심지어 2년간의 조정 끝에 20개국을 최종적으로 선정한 것도 G7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G20은 G7의 운영구조와 역할을 많이 계승하고 있다. G7의 주요 역할은 달러화 가치 조정과 신자유주의 확산이었다. 전자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는 일로 1985년의 플라자합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후자는 무엇보다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배후 개입이었다. 이러한 두 축은 G20에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었던 ‘환율전쟁’이 한 사례다. 환율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저달러 정책에 있다. 실업률이 계속해서 10%를 위협하고 소비와 투자의 부진으로 내수회복이 지체되면서 미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침체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 거품에 힘입어 지탱되던 고소비의 경제가 거품 붕괴 후에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는 이전과는 달리 수출을 통해서 미국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저달러 기조를 유지하고 타국 환율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의 피해자가 범죄자로 몰리는 형국이다. 환율갈등은 이번에도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조정하는 문제, 즉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는 문제의 다른 이름인데도 말이다. 물론 1985년의 G7과 2010년의 G20은 다르다. 1985년의 일본과 독일처럼 미국을 위해 일방적인 양보를 감행할 수 있는 당사자가 없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중국은 달러표시 자산을 매각해버릴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은 서로 의존하고 있는 둘에게 모두 좋지 않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불균형 문제의 구조적인 해결이 없다면, 10월 경주 재무장관회의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환율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때때로 갈등적인 방식으로 분출할 수밖에 없다. IMF에 대한 개입은 G20이 더욱 노골적이다. 세부적인 금융규제의 방안 마련과 관리ㆍ감독 절차는 대부분 IMF와 FSB(금융안정위원회)에 위임되었다. IMF에 국제적인 금융 감독의 권한까지 부여해준 것이다. 각국의 환율과 무역수지 균형을 다루는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협력체계’는 향후 G20의 핵심 과제인데 이를 지원하고 감독하는 역할도 IMF에 맡겨졌다. 이렇게 IMF의 권한은 대폭 확장된 반면 IMF의 지배구조 개혁은 생색내기로 진행되고 있다. 개도국에게 IMF의 지분을 일부 이양한다고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IMF와 세계은행의 총재를 유럽과 미국이 나눠먹는 관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거부권, 고위관료들의 회전문 인사 관행, 지분에 따라 부여되는 투표권이 문제의 근본적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IMF-미 재무부-월스트리트의 견고한 동맹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별로 없다. G20은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관리하기 위해 분주하다. 금융세계화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수준에서 금융규제 정책을 손질하고 있고, 각국 간의 정책조율 틀을 짜고 있다. 이 일에 개도국을 일부 포함시켜 적절한 관리와 포섭을 모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발전과 환경 같은 국제 이슈를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 G20 정상회의가 이렇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이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전권을 위임 받은 비상대권을 쥐고, 위기와 위기에 대한 대응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G20은 위기를 일으킨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위기 대응을 경영학으로 즉 관리의 기술로 다룬 것이다. 비상대권은 일상적 권력 밖에 있는 권력이다. 비상 상황 때문에 기존의 법과 절차를 뛰어넘어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이다. 이러한 권한이 아래로부터 부여된다면 민중의 혁명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지배자의 계엄령이 된다. 정상회의의 역사는 바로 지배자의 위치에서 비상대권을 부여받은 자들의 모임에 관한 기록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서 그들은 모였다. 그 자리에서 영토를 분할하고, 국경선을 긋고, 한 민족과 세계의 미래를 결정했다. 미국과 소련, 양극이 맞붙을 때도 정상회의는 필요했다. 당장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요소는 덜 했으나, 핵무기를 둘러싼 지루한 긴장감은 더 했기 때문이다. 반면 G7과 G20은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정상회의다.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는 긴장보다는 합의의 꽃이 만발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권력의 문제, 정치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 복잡한 경제 용어와 화려한 언론 보도 속에 숨어 있는 정상회의는 더 이상 정치적인 사건의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정상회의에서 다루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정상회의라는 형식 자체도 비정치적인 문제로 숨어버린다. 그렇다면 개도국이 포함된 일은 좋은 것이다. 정치는 기껏해야 각국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드러날 뿐이다. 그 이해관계는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 위에 세워진 것이지만 더 이상 누구도 그 점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과거의 정상회의가 열강 지도자가 약소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 그러한 까닭에 제도정치의 의미에서든 대중운동의 의미에서든 정치적 쟁투의 핵심에 위치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경제 용어와 수치 속에 감추어진 정상회의는 월드컵과 같은 축제이고, 국가브랜드 향상을 통해 수십조 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세일즈의 장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을 만들 권리가 민중이 아니라 지배자의 손에 있다고 선언될 때, 그들의 수중에 놓인 비상대권이 당연한 권력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는 정말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한 미래를 원하지 않는 자라면 G20 정상회의에 부여된 권력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싸울 수밖에 없다. 11월 11-12일 서울에서 20개국 지도자가 모여 세계경제의 향방을 논의한다. G20이 그리는 미래는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이라는 수려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를 관리하고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는 계급적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질문은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민중운동의 주체적인 상태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 민중 내부의 분할과 분열을 극복하고 정치적 운동으로서 스스로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에 대한 대중적 열망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조금이나마 더 열심히 대답하고자 10월 21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출범했다. 지난 호에 그 동안의 고민을 정리하여 실었고, 이번 호에는 연구소 출범기념 토론회를 정리하고 박하순 연구소장을 인터뷰했다. 연구소 출범을 기념하여 번역 출간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은 책소개에 실었다. 집권 전반기에 타임오프제 시행과 민주노조 파괴 공격을 밀어붙였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 하반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국가고용전략 2020을 내놓았다. 앞으로 진행할 노동유연화 공세를 종합한 이 보고서는 노동자운동에 대한 공격이 새로운 방향에서 한층 강화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박준도 노동위원장의 글은 이명박 정부의 선전포고에 대한 긴급한 분석을 담았다. 경제위기 책임전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 돌봄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 모색에 관한 글에 현재 운동의 구체적인 과제를 담았다. 북한 당 대표자회의 후 지도체제의 변화와 북한 사회 전망에 대한 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글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 정세를 분석했다. 2010년 마지막 호는 다소 얇게 발행되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되는 의미는 가볍지 않기를 기대한다.
노동자 간 경쟁을 격화하는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신축화 일자리 창출동력 없는 고용전략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2004년 노무현 정권이 내놓은 일자리창출 종합대책에서도 그랬지만) 뚜렷한 일자리 창출 동력을 설계하지 못한 채 고용률을 높여 볼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적으로 고용인구의 확대는 노동생산성 상승률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높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즉 이윤율 하락을 상쇄할 만한 새로운 성장 동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지배세력들은 고용률을 어느 선까지는 유지해야 자신의 통치성과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변칙적인 방식으로 고용대책을 내놓게 된다. 이번 국가고용전략 2020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방안은 오로지 다양하고 세련된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나누기’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는 일자리 창출 동력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 중 하나가 고용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종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가 뿌리산업․부품소재산업(․녹색성장산업) 등을 육성하여 고용비중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규노동시장 창출을 동반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논외로 하면) 서비스업종 규제완화가 고용을 확대할 수 있을 지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아서, 서비스업을 규제 완화하고 대형화해서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면 신규고용이 창출되더라도, 그에 따라 몰락하게 될 자영업자 규모 또한 이에 못지않다. 실질적인 고용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소․중견기업을 활성화해서 고용을 늘리겠다는 구상 역시 우리나라에서 재벌들의 이익 창출 방식과 중소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려하면 말잔치에 끝나고 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재벌들의 이익창출 방식은 설비투자 증대와 고용확대에서 비롯한다기보다는 비용절감, 특히 하청으로의 비용 전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때 비용전가의 대상이 바로 고용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다는 중소기업들이다. 문제는 이들 중소기업 대다수가 기술개발보다는 인건비 절감 방식에만 의존해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시간․노동강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소 부품산업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에만 의존하는 한, 중소 부품산업의 고용 불안전성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여기서 일자리 증대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일자리 나누기에만 의지하는 고용전략 국가고용전략 2020을 이명박식 ‘일자리 나누기’ 전략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면, 그 특징을 살펴보기 전에 일자리나누기가 고용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상황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비교할 때, 노동시장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1997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기업도산과 함께 고용조정이 대세를 이루었다면, 2009년에는 임금삭감(/조업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가 시도되면서 고용조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2008년 당시 한국의 경제위기 탈출 방식이 고강도 구조조정보다는 저금리정책을 유지하면서 경기회복을 도모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던 데다, 1997년 이후 진척된 노동신축화로 인해 상시적인 고용조정체제와 일자리나누기가 위기의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운동이 대체로 양보교섭에 응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용조정이 야기하는 대규모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나아가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지배계급들로서는 ‘일자리나누기’를 통한 고용위기의 해결이야말로 최우선적인 정책 대안이 되게 된다. 물론 2009년 일자리나누기가 완전히 성공했던 것만은 아닌데, ‘고용위기’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중심으로 상시적인 고용조정이 발생한데다, 경제위기로 인해 신규 채용이 억제되면서 청년․여성을 중심으로 고용위기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포함되는 잠재실업자 층이 여성․저학력 노동자를 중심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2003년 63만 명에서 2009년 상반기 101만 명으로 증가했다.) 더군다나 상시적인 고용조정과 함께 임금, 고용, 노동시간, 노동강도 등 모든 면에서 노동조건이 후퇴함에 따라 불완전한 취업이 급격히 확산된다. 노동자의 임금소득과 고용이 원청으로부터의 물량수급에 완전히 종속되고, 그에 따라 고용을 유지하는 동인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낮아지는 경제활동참가율(1997년 62.5% → 2009년 60.7%)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15세 이상 인구증가율(2009년 1997년 대비 15%증가)에 비해 경제활동인구 증가율(2009년 1997년 대비 11.7%증가)이 더 낮았던 것이다. 더구나 2016년부터는 저출산 고령화로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 자체가 아예 감소할 전망이어서 이 점까지 감안하면,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의 정체는 (저임금 구조를 존속 가능케 하는) 산업예비군 형성을 곤란하게 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이 노동력 공급난을 호소했던 것은 현상적인 면에서 봤을 때 그냥 엄살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번 국가고용전략 2020을 살펴보면 다음 2가지를 핵심적으로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의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둘째, 취약계층을 포괄하는 ‘일자리나누기’ 방안이다. 여성․청년․노년층의 일자리 창출계획, 그리고 노동력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고용규제 합리화는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의 정체를 극복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나름의 방안이고, 단시간근로제의 도입, 노동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의 도입, 근로시간 계좌제 등은 노동시간을 더욱 신축화해서 ‘일자리 나누기’가 취약계층을 포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나름의 방안이다. 물론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의 정체를 극복하려는 방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후자는 전자를 포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 핵심은 고용규제 합리화와 (단시간 일자리 확대를 도모하는) 노동시간 신축화에 있다.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고용불안전성을 심화하는 고용전략 : 저임금 구조 확산, 간접고용 확대 먼저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활력을 위한 개선방안이라고 내세우는 고용규제 합리화방안부터 살펴보자. 실망실업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근로권익을 보장하겠다면서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것은 서면근로계약 교부를 의무화(2012년 1월 시행)하고, 임금체불 예방을 위한 개선대책을 수립한다는 것이며, 최저임금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내 및 건설 하도급 개선 방안도 제안하였다. 다른 것은 논외로 하고, 최저임금 규제 강화방안만 살펴보자.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한편에서 최저임금을 저임금 노동시장의 임금가이드라인으로서 기준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사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고용의 신축성과 노동력 공급 양자를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저임금 노동시장의 표준시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시장에서 이는 더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표준시급을 낮추는 최저임금은 노동자로 하여금 고용유지동인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고용의 신축성을 보장한다. 또 낮은 최저임금 시급은 부족한 한 달 소득을 벌려면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시간 노동으로의 유인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일정한 기준 이상의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노동의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공급업체를 통한 취업을 용이하게 하고, 그리하여 노동시장의 노동력공급을 원활하게 한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직접고용업체의 최저임금 위반사례 및 임금 체불 사례가 종종 발견되지만, 용역 및 파견업체들에서는 최저임금 위반사례나 근로기준법 위반사례가 상대적으로 덜 발견된다는 사실은 역으로 이를 반증한다. 사내하도급 근로자 개선 방안은 거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다.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실태조사부터 엉망이다. 이번 실태조사의 기준이 되고 있는 노동부의 2007년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은 다수의 판단기준을 열거하면서 이 중 몇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파견이 아니라는 식이었고, 이렇게 불법파견 여부를 종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조사해서 지난 3년간 제조업 불법파견으로 적발한 업체는 6곳(건수로 하면 7건)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번 사내하도급 실태조사는 설문문항을 공개하고 이를 하청노동자에게 질문하는 공개설문방식이어서, 사용자측이건 위장하도급 업체건 하청노동자에게 불법파견․위장도급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을 사전에 훈련시킬 것이 자명하다. 결국 위장도급․불법파견 여부를 은폐하는 실태조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선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원청업체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사용범위를 사내하도급 노동자에게로 확대하는 정도이고, 위장도급․불법파견 하청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3권 보장 문제는 원청의 노사협의회 참여 정도로 제한하고 있고, 그나마도 원청업체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진성도급화하기 급급했던 원청사용자가 어느 세월에 사전에 동의해 준단 말인가? 고용규제의 합리화 방안으로서 핵심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제한의 예외 대상을 확대하는 것과 파견허용업종을 조정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로자공급사업을 실질화하는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2009년 당시 사용기간 제한을 없애려 했던 것을 우회하는 것이다. 신규법인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예외를 두는 것이라 하지만, 인건비 절감이 기업 경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마당에 이는 곧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켜 사용기간 제한 규정을 아예 없애자는 논거만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청소․경비 업무에 대해서 사용기간 제한을 없애겠다는 것은 기간제 사용 비중이 대단히 높은 업무부터 기간제 사용제한을 없애 사실상 사용기간 제한을 실질적으로 없애겠다는 방책에 불과하다. 한시적이며 일시적인, 그것도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서 기간제 고용이 사실상 자유화된 마당에 이런 식으로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을 없애겠다는 발상은 이제 신규채용 노동자에 대해서만큼은 해고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겠다는 주장일 뿐이다. 더구나 기간제 고용은 국가고용전략 2020이 그토록 강조하는 취업애로계층의 고용 불안전성을 높이는,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게 하는 대표적인 방안이다. 또 낮은 근속년수를 구실로 저임금을 정당화하고, 노동조합 활동도 불가능하게 하여, 동일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마저 하향 평준화하는 반노동자적인 방책이기도 하다. 파견허용업종을 조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조삼모사 술수에 불과하다. 32개 파견허용업종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활용정도가 낮은 파견허용업종을 삭제하고, 활용정도가 높은 파견허용업종을 추가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파견노동자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오늘날 파견노동은 저임금을 구조화하는 최저임금제도와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력공급의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위장하도급 관계를 매개로) 기간제 노동과도 결합되어 있다. 최저임금제와 기간제 노동의 문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고용한 자본가가 사용주로서 법적인 최소한의 의무마저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견노동은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가장 악랄한 고용형태이다. 부르주아 법체계 내에서 인력소개업과 근로자공급사업은 구분되어 있고, 인력소개업은 규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근로자공급사업만큼은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근로자공급사업이 (고용불안을 심화하고, 중간착취를 가능하게 하며, 노동3권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지배세력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을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사업의 예외조항으로 구성된 특별법 형태로 공표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는 이마저도 손을 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일자리 안정망 확충을 구실로 직업안정법을 ‘고용서비스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로 전부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15일 직업안정법을 전부 개정하겠다며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의 보론을 참조하시오) 노동력 공급사업과 인력소개업, 직업능력개발업 일체를 복합고용서비스라는 미명아래 하나의 업체가 주관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입법 예고한 것이다. 인력소개업과 근로자공급사업의 구별도 희미해지고, 또 직업안정법의 취지를 전면적으로 개정한다는 점에서 이는 근로자공급사업의 전면 확대를 예고하는 법 제도 개선방안이라 할 수 있다. 파견법은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사업의 예외를 인정하는 법안이었는데, 직업안정법이 이렇게 개악되면 원칙법에서도부터 근로자공급사업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는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국가고용전략 2020을 기초한 이데올로그들의 주장대로 고용알선업무가 고용률 증대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잠재적 실업자 층과는 다른 경직적인 비경제활동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할 때 그나마 효과가 있다. 즉,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 국면에서 외부노동시장의 부족한 노동력 공급 상황을 타개하고, 급격히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강제적인 시도를 동반하기도 하는)들을 사용할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복합고용서비스가 대상으로 하는 취업애로계층의 대다수는 잠재적 실업자 ― 즉, 경제위기로 인해 고용의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이유로 인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취업알선이 전문화되고 확대된다고 한들 고용 불안전성이 개선될 리가 없다. 결국 복합고용서비스업이란 노동자에 대한 고용불안전성은 개선하지 않은 채, 저임금․고강도 노동시장에 노동력을 더욱 수월하게 공급하는 전문가 집단을 육성하려는 방안인 것이다. 나아가 사회서비스업과 같은 신흥노동시장에서 근로자공급사업을 다양한 형태로 확대함으로써 간접고용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려는 방안에 불과하다. 신흥고용불안에 따른 노동자의 고통은 그대로 둔 채 노동력 공급의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주들의 곤란만을 해결하는 것 ― 그리하여 노동신축성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고용서비스촉진법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노동자간의 경쟁만을 격화하는 고용전략 : 일자리나누기와 노동시간 신축화 본래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 란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정리해고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임금 및 조업시간을 조정하여 일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최근 이 개념은 교대제 개편, 일시 휴직, 교육휴가 등 노동 재조직화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는 추세이다.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도 이 점은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국가고용전략 2020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가 단시간 근로제를 상용직화 할 수 있도록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직무분할(job sharing)이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단시간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로형태를 확산하는 것은 (통계수치로서의) 고용률을 개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될 때는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임금설계가 1인 생계형 가구에 기초해 있다고는 하지만(가족임금) 저임금 구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실제로는 2인 생계형 가구가 더 일반적이고, 따라서 여성의 일자리 수요도 (이른바 맞벌이 부부라 할지라도) 전일제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더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일과 가사에 치이더라도 가계에 필요한 월 소득을 충분히 벌 수 없다면, 육아 및 가사노동을 위해 단시간 일자리를 소망하는 것(대개의 설문조사에서 드러난다)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전일제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한편 단시간 근로는 전혀 다른 형태로의 노동시간 경쟁을 가속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양육을 담당한 사람(주로 여성)이 육아 휴직에 들어가거나 단시간 일자리만큼의 소득을 벌 수밖에 없다면, 가계의 중심 소득원으로 간주되는 사람(주로 남성)이 부족한 임금소득을 메우기 위해, 잔업특근을 마다하지 않는 노동시간 연장 경쟁에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단시간 근로로 고용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노동자가구가 이러저러한 일자리로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면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어떤 형태로든 가속하게 되고, 이는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켜 육아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더군다나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일자리 나누기로서 단시간 일자리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일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단시간 근로가 실제로 직무분할의 효과나 제대로 낼 수 있을 지조차 의문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 상용직 단시간 근로의 확산을 위한 사례로 거명되고 있는 업무 중 상당수는 상담업무, 보육업무처럼 업무량이 집중되는 시간대에서 단시간 근로를 활용하고 있는 형태다. 정부는 이런 형태의 단시간 근로를 민간으로까지 확대 개발하기 위해 2011년 「시간제근로자 고용촉진법」제정할 예정이다. 또한 시간제 근로자 인사관리에 대한 전문 컨설팅 지원 비용만 10억 원울 배정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형태의 단시간 일자리는 직무분할효과 보다는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효과가 더 크다. 전일제 고용으로 8시간 임금을 주어야 할 일자리가 6시간 임금을 주는 일자리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 제품생산에 들어간 시간과 여기에 투여되는 실질노동시간을 똑같이 하는 경향이 기본 방향인 상황에서 직무분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명확하다. 직무분할 결과 실질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예컨대 라인위주의 제조업 산업) 직무분할은 거부될 것이요, 실질노동시간이 늘어나면 (예컨대 간호 업무) 직무분할은 장려될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지만 임금분배율은 제자리인 채 (즉 한 가구당 월 평균 임금소득은 제자리인 채) 노동강도만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이번 국가고용전략 2020에는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범위를 확대하고,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담겨져 있다. 양자 모두 1년 단위의 실노동시간 단축방안이다. 전자는 3개월에서 1년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는 것이고, 후자는 1년 단위로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과 ‘휴가’를 상호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제한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와 근본적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1.5배 시급을 주도록 규정한 것은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여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사장이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도록 경제적인 제약을 둔 것이고, 주단위로 연장노동시간을 제한한 것도 마찬가지 의미에서 법․제도적인 제약을 둔 것이다. 그런데 1년 단위로 실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일거리가 많을 때에는 연장근로를 시켜도 1.5배 시급을 안 줘도 되고, 일거리가 적을 때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여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활용하여 휴가를 소모하게 하면 된다. (연장근로시간 만큼 휴가를 주겠다고 하지만, 일거리가 많은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휴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특히 근로시간저축휴가제는 잔업․특근수당을 제대로 주지도 않은 채 일정한 범위의 노동자 고용만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세련된 변형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형태의 노동시간 신축화는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일자리 나누기 효과도 없을뿐더러 일자리 나누기를 빙자해 노동강도를 높이고, 임금을 삭감시키는 방안인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일자리나누기의 본질 결국, 국가고용전략 2020이 제시하고 있는 일자리나누기란 (양보교섭 차원이 아니라 아예) 노동신축화를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을 재조직해서, 다시금 도래할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에 닥칠 손실을 더 손쉽게 떠넘기는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 놓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고용위기 해법으로 일자리 나누기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다 일자리나누기 역시 실제 고용위기 해소 수단으로서 적합하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고용위기의 대안이라는 미망에 빠지는 이유는 부가가치 생산에 필요한 총 노동시간을 단순히 더 많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는 단순 계산 때문이다. 하지만 임노동시장에서는 그와 같은 단순 계산이 결코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는 노동력을 팔아야만 자신의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노동자라는 현실이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가속하고 있으며, 정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시대 노조 조직률의 하락과, 장시간 저임금 고강도 노동 등 노동조건의 악화가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한 경쟁 구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건 경제위기시대에 고용문제만을 매개로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일자리나누기가 노동신축화를 확산하는 매개 고리가 되고, 경제위기로 인한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형태가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고용문제에만 매달리면 일자리나누기의 미망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용위기를 야기하는 현실적 토대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조건을 바꾸기 위한 이행적 요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태가 지속하는 한, 재벌기업들이 비용전가를 외부화하고, 자본 이동의 자유를 누리며 이윤을 집중하는 틈바구니에서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초민족적 자본의 투기적 행태가 지속하고, 이윤을 초민족적으로 쉽게 빼돌릴 수 있는 한, 자본 철수가 너무나도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자본이 기술생산성보다는 저임금 구조에 기대어 비용절감만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한,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아낼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자 개개인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어떠한 방안도 나오지 않는다. 국가고용전략 2020은 노동자운동이 이제는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시험하고 있다. 똑같은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박스1%]
고용보장, 졸속매각 저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재건하자! 10월 19일 한국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는 시각, 산업은행 정문에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민유성 산업은행장 면담과 국정감사 참관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그 자리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이 날 국정감사에는 3,000여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박영태 공동관리인이 출석해 2009년 법정관리 과정에서의 회계조작 의혹, 구조조정, 향후 매각과정에 관해 증언했다. 박영태 공동관리인은 ‘아직 여유인력이 많다’며 매각과정에서 또다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산업은행 정문에서 장시간의 항의 끝에 마련된 산업은행 실무자와의 면담에서 산업은행은 11월 중으로 마힌드라로의 매각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0년 5월 매각 공고로 시작된 쌍용차 재매각에서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이하 마힌드라)이 8월 12일 단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9월 한 달 쌍용차에 대한 정밀실사 이후 매각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11월 중으로 매각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임이 산업은행을 통해 흘러나온 상황이다. 쌍용차 재매각에 대해 쌍용차 노동자들과 대다수 시민들은 ‘제2의 상하이차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 목표가 기술 확보라는 점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2005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3~4년에 걸쳐 1조 2,000억여 원을 투자하고 완전고용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기술 유출에 먹튀까지 발생했다. 마힌드라는 ‘제2의 상하이차’를 우려하는 여론을 의식해 투자와 개발 약속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안정 서약에 공증까지 받고도 3,000여 명을 해고하고 도망친 상하이차의 사례를 떠올린다면,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대책마련 없는 마힌드라의 약속 또한 믿을 것이 못 된다. 상하이차로 쌍용차를 부실매각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 산업은행과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일사천리로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쌍용차 투쟁이 한국 사회에 남긴 메시지를 다시금 환기하고, 고용보장과 졸속매각 저지를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할 때다. 10월 5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여의도 산업은행 옆에 비닐천막을 차리고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10월 4일~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쌍용차 정리해고와 재매각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쌍용차 문제를 전국화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기 위함이었다. 국정감사 일정은 끝났지만 비닐천막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힌드라로의 매각이 예정되어 있고, 매각 협상의 핵심 주체이자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가 바로 산업은행과 정부이기 때문이다. 마힌드라 현황과 쌍용차 인수 목적 마힌드라는 인도의 자동차 기업으로 자산 규모가 약 2조 4천억 원이다. 스포츠실용차(SUV), 농업용 기구(트랙터 등)를 판매하며 2009년 매출 약 3조 7천억 원, 순이익 약 2,200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의 56%를 차지하는 자동차는 180만 대(삼륜차 포함, 승용차는 20만 대)를 판매했다. 올해 순익은 5,500억 원 정도로 작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쌍용차 인수에 대해 마힌드라는 인수 의향을 밝혔던 어느 기업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취했다. 르노닛산이 공장 시설 확장과 쌍용차 인수 비용 사이를 저울질할 때, 마힌드라는 30명에 가까운 실사단을 한국에 보내고, 그룹 차원의 재정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인수자금 모집에 적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중급 이상의 자동차 기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008년 영국 로버자동차 인수에서 인도 타타자동차에 밀렸고, 올해는 르노자동차와의 전략적 제휴도 끝났다. 한편 미국 시장에 픽업트럭을 수출하려다 안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힌드라가 인도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국외 시장 진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독자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인도보다 앞선 디젤 엔진 기술과 조립 공정을 갖춘 쌍용차는 마힌드라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이다. 졸속매각 우려에 대해 마힌드라가 상하이차와 다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쌍용차 인수를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 신뢰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마힌드라에게 ‘먹튀’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 또한 양해각서(MOU) 체결 시 한국을 찾아 ‘제2의 먹튀는 없을 것’이며, ‘상호 기술협력을 지향’하고, ‘쌍용차 노사가 만든 합의서를 그대로 준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인수 후 계획만 보아도 마힌드라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마힌드라의 자동차 부문 사장 파완 고엔카는 마힌드라가 렉스턴과 코란도 C를 완제품이 아닌 CKD(조립 전 상태)로 인도에 수입할 예정이며, 인도에서 두 제품은 고가 SUV 제품군으로 도요타 포츄너, 지엠 캡피타, 현대 투싼과 경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 자동차 전문가들은 마힌드라가 고가 제품 시장에서 연 300~400대를 팔기 힘들 것으로 본다. 현재 고가 SUV시장은 인도에서 대중적이지 않다. 마힌드라는 연 1,000대 정도를 팔아야 수지 타산이 맞는 수준인데, 인도 SUV 시장은 6~7년 후에나 4~5만 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마힌드라의 현재 점유율(9.2%)을 고려할 때, 쌍용차의 인도 수출이 언론에서 부풀리는 것처럼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한편 현지 언론에서 마힌드라는 MOU 체결 시 고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으며 ‘임금협상만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공장 안의 쌍용차 기업노조는 추석연휴 이후 몇 차례 마힌드라와 만남을 가졌지만 고용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이 없는 상태다. (쌍용차 기업노조는 2009년 쌍용차 투쟁 이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를 탈퇴하고 2010년에 결성된 노조다. 이 노조는 노사협조주의를 활동 기조로 삼고 있다.) 한편 마힌드라는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 일부를 제외하고 쌍용차의 생산시설을 인도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노조와 부딪힐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힌드라의 내수 시장 점유율도 낮고, 인도 노동자의 임금이 한국의 6.36%(2005년 기준)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는 장기적으로 한국 공장을 유지할 이유가 많지 않다. 제2의 먹튀로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고용과 생존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이다. 쌍용차 팔아먹기에 급급한 산업은행과 경영진: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77일의 공장점거파업을 종료하며 2009년 8월 6일 맺은 노사대타협 중에 이행되고 있는 합의사항은 단 하나도 없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등에 부과된 손해배상 가압류 액수만 120억 원이 넘으며, 무급휴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 역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파업 참여 조합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매우 어렵고, 일부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올여름 정신질환으로 지난 1년 내내 자신의 집에 점거 파업 당시를 재현해놓고 있었던 조합원의 충격적인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쌍용차 사측은 구속 상태에 있는 한상균 전 지부장을 포함한 15명에게 징계 해고와 정직 3개월 조치를 취하는 등 매각 과정에 대해 불안함과 불만을 갖고 있는 공장 안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단속하기 위해 다양한 수를 쓰고 있다. 또 사측은 올해 8월 6일, 노사대타협에 의해 현장에 복귀했어야 할 무급휴직자들에 대한 복귀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중앙노동위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해고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쌍용차 살인진압을 진두지휘한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을 경찰청장으로 승진시켰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작년 경찰의 살인적 진압으로 크게 다친 조합원들에게 3,000만 원의 건강보험료 환수조치를 내렸다. 노동자와 한 약속을 모두 내버린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채권단은 일사천리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파업 종료 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1원도 지원할 수 없다는 정부 방침하에 2010년 상반기 쌍용차는 공장을 돌려도 계속 빚이 쌓이는 실정이며, 상반기 이자 비용만 237억 원이었다. 헐값매각과 먹튀로 쌍용차를 이 지경에 빠뜨린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생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채권회수에 급급하다. 지난 7월 운영자금 부족을 이유로 쌍용차 안성 부지를 팔아넘긴 채권단의 행보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인수가 끝날 때까지 우량 자산은 보유하는 것이 당연한데, 산업은행을 통한 출자가 아니라 자산 매각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쌍용차를 또다시 헐값매각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한편 상하이차는 인수 당시의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기술을 유출한 후 경영이 어려워지자 바로 쌍용차를 내팽개쳤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러한 외국계 기업의 횡포는 쌍용차 뿐 아니라 발레오만도, 포레시아, 3M 등에서 공장 청산, 해고와 징계라는 방식으로 무수히 많이 벌어졌다. 외국계 기업의 먹튀 행각과 노동자에 대한 횡포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IMF 이후 해외매각 증가로 국내 제조업에서 외국계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3.2%에 달하며 17만에 가까운 노동자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는 헐값매각을 도와주고 지자체들은 토지무상임대, 각종 보조금 지원, 조세감면 등 특혜를 준다. 그러나 이는 세금 낭비일 뿐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 공장을 단순 하청기지로 활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아무 책임 없이 버린다. 지난 8월 9일 2009년 투쟁으로 구속된 전 지부 지도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주장이 과장이 아니며 기술 유출, 법정관리를 불러온 상하이차와 경영진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상하이차의 책임을 물을 길은 별로 없다. 오히려 재판부는 기술유출에 관한 재판에서는 검사를 교체하는 등 진행을 연기시키면서 정부와 경영진, 상하이차의 책임을 은폐하는데 급급하다. 정부의 졸속매각과 상하이차의 먹튀를 규탄하는 쌍용차 재매각 투쟁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와 먹튀 규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모으는 과정에서 더욱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용보장과 졸속매각 저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재건하자 정부의 졸속매각, 상하이차의 먹튀로 쌍용차에서 4,300여 노동자가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실직하고, 9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또 94명이 구속, 46명이 불구속되었으며 사측과 정부가 200여 노동자에게 청구한 벌금과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이 200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책임자인 정부와 경영진은 어떤 책임도 반성도 없이 이전과 똑같은 졸속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 안의 기업노조는 노동자들의 고용보장과 상하이 사태 재발 방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채 사측과 다를 바 없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 해고와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부당한 해고의 억울함과 살인적 경찰 진압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 등 조합원들이 처한 어려움은 쌍용차 재매각 투쟁이 처한 현실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이 남긴 깊은 상처를 딛고 무급휴직, 해고 조합원들을 조직하면서 졸속매각 저지와 민주노조 재건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쌍용차 제2의 졸속매각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해고자 복직 △총고용 보장 △졸속매각 반대 △쌍용차 사태 책임자 처벌 △손배 철회 및 구속자 석방을 요구로 쌍용차지부와 함께 정부, 산업은행과 쌍용차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재매각 국면에서 고용 보장과 외국계 기업 규제 등의 요구에 대한 사회적 지지 형성 여부와 공장 안팎의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가 이러한 요구들을 관철시키는 데 관건이 될 것이다. ‘제2의 먹튀’ 우려는 쌍용차 매각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2010년 쌍용차 재매각 대응 투쟁은 2009년과 달라진 바 없는 졸속 매각을 최대한 알려내며 정부, 지역사회, 채권단이 해고자 및 무급휴직자들의 복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쌍용차지부가 공장 밖에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재매각 대응 투쟁을 통해 매각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교섭력을 획득해야 한다. 2010년 외투자본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결의한 금속노조는 전형적인 외투자본 먹튀행각으로 벌어진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09년 GM 유럽법인인 오펠 매각 협상 시 독일금속노조는 정부에게 고용유지 우선 기업에 매각할 것을 요구하여, 고용협약을 맺겠다고 약속한 매그나와 우선 협상을 하도록 했다. 결국 GM이 매각을 철회하기는 했으나 노조가 매각 과정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고용협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고용보장과 지역협약을 요구하면서 실제 매각을 주도하는 정부에 대한 사회적 투쟁을 펼쳐가야 한다. 이 투쟁 과정에서 마힌드라가 이를 언급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요구를 수용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 과정은 77일 간 함께 투쟁했던 무급휴직, 해고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고, 공장 안 노동자들로부터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투쟁의 동력을 형성하는 과정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이는 매각 과정에서 실제 교섭력을 확보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이지만 사측과 독립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무력화하고, 장기적으로 민주노조 재건을 준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재매각 국면은 조직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는 공장 안 노동자들의 매각에 대한 불만과 의문을 해소하고, 매각 과정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용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책임지려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를 통해 졸속매각 저지와 민주노조 재건에 이들이 함께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공장 안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여론전과 실천투쟁을 펼치고, 정리해고와 살인진압의 깊은 상처 속에 신음하는 해고자, 무급휴직자, 파업 참가 조합원들이 다시금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연대단체와 운동세력들은 적극적 역할을 자임해야 할 것이다. 매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 매각 이후 쌍용차의 미래가 순탄하기는 어렵다. 고용보장과 해고자, 무급휴직자 원직복직에 대한 단체협약과 사회적 협약을 맺지 않는 매각은 제2의 먹튀를 부를 뿐이다. 이를 막는 확실한 길은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제기하고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투쟁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번역, 출판했다. 이 책은 케네스 라피데스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 기원, 발전, 해석』(Kenneth Lapides, Marx’s Wage Theory in Historical Perspective: It’s Origin, Development and Interpretation, Wheatmark, 2008) 중 마르크스의 저술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전체 구조를 펼치고 초기의 사상을 성숙기 사상으로 대체하면서 수많은 정식화들을 논리 정연하게 종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노동조합에 관한 저술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최초의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피데스는 『자본』에서 정점을 이루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임금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이로부터 노조이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자본』의 집필 시기에 작성된 마르크스의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을 바탕으로 그가 당대 노동자운동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주의 내외부에서 전개된 두 개의 이론적·실천적 논쟁을 검토하면서 합리적 핵심을 추출하고 있다. 전자가 『자본』의 ‘작업의 계획 또는 저작의 구성’을 의미하는 ‘플란’ 논쟁이라면, 후자는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 내에서 전개된 자본주의의 위기이론과 연관된 ‘궁핍화’ 논쟁이다.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논쟁인 만큼 이번 기회에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 저작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 의의는 ‘마르크스 문헌학(Marxology)’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의 과학적 문제설정에 대한 이해에 있을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의 당부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소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조합 이론서가 대체로 노동조합에 대한 정당의 우위를 강조하는 편향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시각을 정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논지를 보충하면서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해설하겠다. 경제학의 임금이론 임금이란 무엇인가? 라피데스는 ‘자본주의 경제 관계의 가장 익숙한 양상 중 하나인 임금은 그 중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명제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학은 임금 문제를 어떻게 규명하였나? 임금이론은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면서 임금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 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고전파 경제학 이전의 임금론은 주로 규범적이거나 국가의 정책과 관련된 논의에서 나타났다. 가령 가격이 소도시와 동업조합 관계자들에 의해 강제로 결정되었던 중세에서 임금은 장인들에게 관례에 따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강제로 결정되는 ‘공정가격’이라는 규범적인 형태를 띠었다. 또 초기 중상주의는 임금 문제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임금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했다. 이들은 저임금이 상품 가격을 낮춰 수출을 늘리고 따라서 산업 성장과 국부의 증가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임금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규율을 갖추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간주했다. 중세 봉건적 질서의 쇠퇴와 더불어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규제가 아닌 시장을 통한 자연 가격 형성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임금관계가 상품교환과 관련된 것임을 규명함으로써 초기 중상주의와 단절한 윌리엄 페티, 임금이론에 최초로 계급투쟁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존 로크, 노동자의 욕구의 사회적·역사적 성격에 착안한 제임스 스튜어트, 노동력 가치의 결정이라는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초보적인 잉여가치 개념에 도달한 캉티용 등이 후기 중상주의 임금이론을 대표한다. 이어서 중농주의를 대표하는 케네는 잉여가치의 원천이 생산에 있음을 인식하지만 농업노동만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전 시기의 경제학적 분석을 종합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고전파 경제학을 창시한 아담 스미스는 국부(민족·시민의 부)의 본성은 노동생산물이고, 그 원인은 분업에 의한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타인과의 자유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을 자연적·불변적·보편적 인간형으로 승화시킨다. 각 개인들은 분업에 기초한 사회에서 생산물을 생산하고 교환관계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생계에 필요한 생산물을 얻는다. 이때 시장에서 교환되는 노동생산물, 즉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스미스는 소상품생산 사회를 전제한 나머지, 교환을 통해 영유할 수 있는 타인의 노동생산물에 들어간 노동량(‘지배노동’)과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노동(‘투하노동’)이 동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윤과 지대가 노동자에게 지불된 임금을 초과하여 잉여노동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아래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노동력과 교환되는 법칙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를 비판한 리카도 역시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종속시키는 사회적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잉여가치의 신비를 풀지 못했다. 리카도는 임금 수준을 노동에 대한 수요·공급의 관계로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 대신, 노동의 시장가격(‘수요-공급 비율의 자연적 작용 때문에 실제로 노동에 지불되는 가격’)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노동의 자연가격을 설정했다. 리카도는 이러한 노동의 자연가격, 즉 자연임금률을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와 그 가족이 필요로 하는 생계수단의 가격(즉 사용가치로 측정되는 생계수단의 양이라는 의미에서 ‘실질임금’)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리카도 역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가치와 노동의 가치(즉 노동과 교환된 임금) 사이의 불일치라는 문제에 계속 시달려야 했고 결국 임금 문제를 해명하는 데 실패했다. 즉, 노동력과 노동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따라서 노동력)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창조한 것보다 더 적은 가치를 가지는가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82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투쟁이 전면으로 확대되면서 부르주아 경제학은 변호론적이고 속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경제학은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분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윤의 원천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가령 세는 이윤이 자본가가 지니고 있는 생산수단의 생산성 때문에 창출된다고 보았고(‘자본생산성론’), 시니어는 자본가가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직접 충족시키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절욕’의 대가가 이윤이라고 생각했다(‘절욕설’). 이중에서도 당시 속류화된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설은 바로 임금기금설이었다. 1820-70년대를 풍미한 임금기금설은 ‘특정 시점에서 임금에 지불될 자본의 총량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크기를 변경하려는 노동조합 등의 인위적 노력은 무용하다’는 것을 요지로 한다. 특히 임금기금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임금을 강제적으로 인상하려고 시도하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지불될 임금기금의 일정 부분을 강탈하여 그들을 실업·저임금 상태로 내몬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반대를 정당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는 노동자의 생활조건이 개선되려면 그들 스스로 ‘도덕’을 증가시켜서 출산을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배정되기로 ‘예정된’ 기금이 설정하는 수준으로 노동력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임금이론을 어떻게 비판했나? 마르크스 최초의 ‘경제학에 대한 진지하고 비판적인 연구’인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고전파 경제학 임금이론을 따라 수요-공급 법칙과 노동자의 생계적 필요를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일차적 요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1844년 경제학·철학 원고』는 마르크스의 성숙기 분석의 근본적 특징인 생계적 필요가 역사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시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혁명주의’적 입장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이 발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엥겔스와의 조우였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5년)에서 이전의 경제적 분석을 종합하며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엥겔스의 가장 큰 성취는 맬서스의 절대적 과잉인구를 비판하는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실업 노동자 예비군’)에 있다. 엥겔스로부터 자극을 받은 마르크스는 1847-49년 임금과 관련한 일련의 강연과 저술을 병행하는데, 이는 후에 『임금노동과 자본』으로 출간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최초로 ‘노동력’이라는 표현을 도입함으로써 잉여가치이론의 기초를 수립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생계수단으로 측정되는 실질임금과 ‘자본과 노동 간의 사회적 부의 분배’를 의미하는 상대적 임금을 구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경제적 약점을 지적하고 있다. 1848년 발표된 『공산주의자 선언』은 청년기 마르크스가 ‘이전의 철학적 의식을 청산’하고 성숙기로 이행하는 저작이지만, 여기서 제시되는 임금론(‘임금노동의 평균 가격은 최저임금으로서, 최저생계를 연장하고 재생산할 수 있을 정도이다’)은 이후 마르크스의 임금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지속적인 곤란을 야기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의 패배로 런던으로 망명한 이후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던 마르크스는 『자본』 서술에 선행하는 연구 과정으로서 1857-58년 원고와 1861-63년 원고를 작성한다. 1857-58년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도입된 노동력 개념을 발전시켜, 가치를 창조하는 현실적 노동으로서 사용가치와, 노동 또는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자의 능력이 지닌 가치로서 교환가치 양자를 명확히 구별한다. 또 리카도가 강조하는 실질임금의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노동력 가치의 ‘역사적·도덕적 요소’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861-63년 원고에 이르러서야 임금이론을 노동조합과 분명히 연관 짓는다. 이러한 예비적 과정을 거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임금이론을 완성한다. 『자본』에서 종합되는 임금이론에서 임금 결정 법칙을 분석하려면 우선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모순, 즉 적대적 사회관계를 전제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듯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적대적 관계의 배후에 ‘은폐된 비합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원동력이자 그 본질적 계기인 잉여가치의 생산은 임금이라는 통상의 현상에 의해 망각되고 은폐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임금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임금은 노동력 상품의 가격, 즉 노동력 가치의 화폐 형태다. 마르크스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 역시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생산, 따라서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이는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노동자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계수단의 일정량의 가치에 상응한다. 그러나 다른 상품들과 달리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생산·재생산되지 않는 특수한 상품으로서 노동력의 가치는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투쟁을 둘러싼 ‘관습’ 또는 역사적 제도에 따라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임금을 규정하는 기본 요인을 분석한 뒤, 그 수준을 변화시키는 요인을 분석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특징짓는 기계제 대공업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을 결합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은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토대로 노동력 가치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마르크스는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면서 노동일의 길이, 노동강도, 노동생산성이라는 세 가지 주요 변수들이 노동력 가치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한다. 먼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노동자의 생계수단으로 소비되는 상품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 노동력 가치가 감소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력 가치의 감소가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노동력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필수품의 양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일정량에 상응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일정량의 노동일에 투여되는 노동력 가치가 증가하면서 노동력 가격이 가치 이하로 하락하거나 또는 노동력 가치 자체가 하락한다. 끝으로 노동일의 길이가 연장됨에 따라 노동력 마모가 급증하면서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과 작동에 필요한 일체의 조건들이 억제된다. 이상의 분석은 기계제대공업에 고유한 임금 지불 방식, 즉 시간급과 성과급에 대한 분석과 통합된다. 표준 시간급이 저하하면 노동자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일정 액수의 화폐임금을 충당하기 위해 잔업·특근과 같은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시간급의 전환된 형태’로서 성과급이 저하할 경우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높여 화폐임금을 충당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시간급과 성과급을 통해 노동자에게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제하고 이는 노동력 가치 아래로 임금률(단위 시간 당 임금)을 저하하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마르크스의 노조이론 이로부터 노동조합의 의의가 도출된다.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라는 자본의 전제적 침략을 막고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인상, 노동일 단축, 노동조건 개선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방어적 계급투쟁)을 펼치게 된다. 경제투쟁이 없다면 ‘임금노예’에 불과한 임금노동자는 노예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궁핍만 가득한 처지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이 집약되는 것은 영국의 오언주의자 웨스턴이 주장하는 임금투쟁 무효론을 반박하는 동시에 임금투쟁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는 국제노동자연합 총평의회 강연록 『가치, 가격, 이윤』이다. 이 팸플릿은 마르크스가 『자본』 3권 마지막 52장 ‘계급’에서 분석하려고 예정했던 계급투쟁의 개요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일종의 ‘관습’ 또는 계급투쟁의 역사적 제도는 임금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임금률의 장기 추세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노조의 경제투쟁으로 인해 임금률은 노동력 가치와 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노조의 경제투쟁에 따라 임금률이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경제투쟁의 최선의 결과는 현상 유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강조하듯이 경제투쟁은 임금제도라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노조가 자신의 조직된 힘을 노동자계급의 최종적 해방,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진정한 결과는 [임금률의 인상이라는]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그들의 단결이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문구를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노조이론은 국제노동자연합 활동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 1848년 유럽 혁명이 패배로 막을 내린 뒤에도 185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는 노동자 투쟁과 민족해방의 물결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 결성되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863년 각국 노동자운동 지도부가 임시회의를 개최하여 ‘국제노동자연합’을 명칭으로 채택하고 각국별 대표위원으로 총평의회를 구성했다. 이때 마르크스는 독일 통신서기로 선출되어 국제노동자연합 발기문과 임시규약을 작성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국제노동자연합은 1864년 런던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한 뒤 1866년 마르크스가 기초한 「창립선언문」(발기문)과 임시규약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또한 마르크스는 「총평의회 회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대한 지침」을 작성하여 국제 노동자운동이 연합을 매개로 노동일의 제한과 여성·아동 노동의 보호를 위해 투쟁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그는 이 「지침」에서 ‘노동조합은 그 원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위대한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투쟁을 사회·정치 운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국제노동자연합의 창립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상정한 노동자 조직의 모델이 최소한 ‘형식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원리의 측면에서 국제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 자율성의 원칙, 정치권력의 쟁취라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의 기본원리, 국제주의의 원리를 표방했다.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연합은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조직 형태들과 경향들의 통일을 추구했다. 특히 영국 노조주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대중적 토대라는 조건을 충족했다. 그 결과 연합 내에는 △직능노조를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한 영국의 노조주의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상호부조 사상을 펼친 프루동주의 △비밀결사를 바탕으로 국가폐지론을 주장한 바쿠닌주의 △정당을 기반으로 국가주의를 표방한 라살주의와 같은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871년 파리코뮌 이후 국제노동자연합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는 동시에 내부적 대립이 격화되었다. 프랑스 노동자운동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 탄압이 강화됐다. 독일 사회주의 내부의 반목, 바쿠닌 세력의 부상, 미국 전국노동동맹의 약화, 영국 노조주의의 국제노동자연합 탈퇴 등으로 국제노동자연합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1871년에 개최된 국제노동자연합 런던 임시대회에서는 파리코뮌 패배의 교훈으로 노동자 정당을 통한 정치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연합은 ‘노동자계급은 유산계급과 독자적인 정당으로 자신을 조직할 경우에만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안을 결의한다. 동시에 바쿠닌주의자를 제명하고 본부 소재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데, 이는 곧 국제노동자연합의 해산을 의미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의 약점을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조직의 중심의 부재’라고 설명했지만 결코 정당을 노동자 조직의 일반적 형태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관념에서 정당이란 ‘계급투쟁의 최고로 발전된 형태이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노동자대중에 앞서 노동자운동의 조건·경과·결과에 대한 인식을 갖는 ‘계급투쟁의 분석자’이자 ‘사회운동의 실험자’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노조와 당을 제도적으로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바쿠닌주의자와의 갈등이라는 표면적 요인도 있었지만 영국 노조주의의 개량화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궁핍화 논쟁과 독일사민당, 제2인터내셔널 영국 노조주의의 이탈 이후 국제 노동자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독일 사회주의가 부상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독일 사회주의는 과연 그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1869년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마르크스파’ 또는 일명 ‘아이제나흐파’)가 주도하여 창당한 독일사회민주노동당과 1863년 라살이 주도하여 창립한 전독일노동자협의회는 1875년 고타대회를 개최하여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한다(1890년부터 독일사회민주당으로 개명). 그러나 ‘마르크스파’는 마르크스와 라살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구분하지 못한 채 오히려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수용하고 만다.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의 독일어 초판 서문(1867년)에서 라살이 자신의 ‘지적 정수’를 참칭하면서 저지른 ‘중대한 오류’를 명시적으로 지적했지만 독일 사회주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마르크스는 1875년 『고타강령 비판』을 집필하여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비판하지만, 리프크네히트의 만류로 이를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우리 국민은 스스로 라살의 ‘임금철칙’이라는 짐을 졌다. 이것은 우리 당의 거대한 정신적 패배다”라고 개탄한다. 그렇다면 임금철칙설의 오류는 무엇인가? 라피데스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 자신은 성숙기로 이행한 이후 실질임금이 노동자계급의 ‘최저생계’ 수준으로 하락한다거나 빈민으로 전락한다는 의미에서 ‘궁핍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우선 지적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웨스턴과의 논쟁(『가치, 가격, 이윤』)에서 사회주의 사상에까지 침투한 정통적 임금론, 다시 말해 라살의 임금철칙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제학의 임금기금설을 기반으로 하는 라살의 임금철칙설은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이나 전투적 행동에 대한 반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철칙설로 위조된 사이비 ‘마르크스주의’는 노조주의에 대한 라살의 오도된 적대와 함께 ‘마르크스파’의 정통 노선으로 승인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르크스 사후 독일사민당과 제2인터내셔널의 ‘궁핍화’ 논쟁은 마르크스의 임금이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르크스파’는 궁핍화론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교의로 수용한 반면, 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것이 마르크스 임금이론의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890년대 이후 독일에서 생활조건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의회에서 사민당이 약진하자, 당 내에서는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수정주의가 전면에 등장했다. 베른슈타인은 사민당의 혁명적 수사로 장식되던 묵시론적 성격의 붕괴이론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정식화된 마르크스의 궁핍화론의 탓으로 돌렸다. 그 실천적 함의는 독일사민당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포기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회주의와 계급연합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사민당과 자립적으로 노사관계를 제도화하고 단체협상의 파트너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로 대표되는 정통파는 수정주의를 비판하면서 혁명적 수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시간’이 도래하기 이전에 정치적 행동에 돌입하는 것을 우려했다. 정치적 수동주의와 대기주의가 정당화된 것이다. 이는 총파업과 같은 노동쟁의를 정당이 주도할 경우 의회 안에서의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불충분하게 준비된 파업이나 성공의 희망이 없는 파업은 노조를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노조 지도부의 공포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독일사민당의 의회주의와 노조의 조직보존 논리가 결합해서 집단적 ‘대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독일 노동자운동의 우경화는 사민당의 1차 대전 참전 결의와 노조의 ‘산업 휴전’ 동의로 귀결됐고, 이는 곧 제2인터내셔널로 상징되는 국제 노동자운동의 거대한 분열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갖은 오해를 야기한 ‘궁핍화론’에 대한 마르크스적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엥겔스가 1891년 독일사민당 강령(에어푸르트 강령)의 ‘궁핍화’에 반대하면서 “실제로 증가하는 것은 존재의 불안전이다”라고 주장한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결론부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창출’, 즉 ‘착취·억압의 증대’와 ‘빈곤·무지·야만·타락’의 축적을 ‘궁핍화’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대면하는 가장 큰 재앙이란 임금하락이 아니라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 위협이다. 임금노동 제도의 가장 큰 해악은 비판자들의 억측대로 ‘궁핍화’가 아니라 임금노동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노예관계’ 그 자체인 것이다. 시사점 마르크스는 임금이론을 통해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조직형태라는 점을 밝혀냈다. 동시에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신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임금노동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정치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라피데스는 마르크스가 임금이론을 완성함으로써 노조 투쟁에 대한 적대와 종파적 불모성으로부터 사회주의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생디칼리즘의 파업 일변도로부터 노조 운동을 해방시켰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우리는 이상의 논의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방어적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어투쟁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방식이다. 즉 노동조합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를 방어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실업자와 반(半)실업자를 포괄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구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후자의 입장에 선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노선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체교섭의 행위자로서 노조가 사회·정치 운동의 주체로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동시에 노동자운동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노동조합의 변화·발전은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 책이 마르크스주의 노동조합 이론에 관한 하나의 지침서로 활용되어,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처한 안팎의 곤란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출범에 발맞춰 본서가 출간된 것은 연구소의 활동 방향을 어느 정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노동자운동을 변화·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정책과 노동자운동의 이념을 쇄신하기 위한 다양한 토론·교육을 통해 활동가들과 만날 것을 약속한다.
한미, 한EU FTA 쟁점 토론회: 한미FTA 재협상,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 2010년 10월 28일 (木) 장소 : 민주노총 15층 교육원 □ 발표(각 20분) - 한미FTA 재협상, 무엇인 문제인가 |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통상연구소 소장 - 미국의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와 한국정부의 대응 | 박상표,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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